☞ 산행일자: 2014년 11월 2일
☞ 산행날씨: 이른 아침에 비... 흐린날씨에 강한 바람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5km / 5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싸리재 마을-싸리재-개관산-작은 촛대봉-Y갈림길-임도-방화선 끝부분-임도-451m봉-460m봉
395m봉-석파령-청운봉-전망암-삼악산성지-흥국사 안부 사거리-용화봉-삼악산 동봉-철계단
깔닥고개-상원사-전망암-삼악산장-의암호 매표소
☞ 소 재 지: 경기도 가평군 북면 / 강원도 춘천시 서면
혼자서 땅끝 한구간을 가려고 하는데 이번주는 금욜부터 일욜까지 비가 온다고 예보를 하기에
아무래도 장거리 구간은 비맞고 산행하기는 싫어서 망설이다가 가는걸 포기하고 집에서
한번 쉬어야지 생각을 하고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뭔 넘의 역마살이 아직도
내 몸속에 남아 있는지 새벽 2시가 되니 잠에서 깨어 도대체 잠을 이룰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컴퓨터를 열어 서울 근교에 있는 이곳 저곳을 검색하다가 가평(화악)지맥 Y구간인
작은 촛대봉에서 삼악산을 거쳐서 의암댐으로 내려서는 구간을 가려고 이 구간의 지도를
출력하고, 간단하게 베낭을 싼 다음에 일기예보를 검색하니 오전 8시경에 비가 그친다고
예보가 나와 있기에 05시 20분에 집을 나서는데 아직도 비가 꽤내린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강남구청역(05:35)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강남구청역 도착하여 지하철 역사로 들어서니 이곳에서 상봉역으로
가는 지하철의 첫 차가 05시 49분이라 한참을 무료하게 기다리다 지하철을 타고
상봉역에 도착하여 춘천가는 06시 30분 열차를 타고 전철에서 한참을 존 다음에 가평역에 도착한다
가평역(07:25)
가평역에 도착하여 대합실을 나오니 비줄기는 상당히 굵어지니 괜히 집에서 쉴것하는
생각에 후회가 막심하다... 이곳까지 와서 그냥 돌아 갈 수는 없고 길을 건너서 터미널로
가는 버스에 올라 가평 터미널로 향한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김밥집에 들어가서 순두부로 아침을 해결하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면서 커피 한잔까지 마시고 나오니 빗줄기는 많이 가늘어진다
가평 터미널(08:00)
가평 터미널에서 08시 15분 북면 목동리가는 버스에 올라 목동리로 향하는데 비는 그친다
가평군 시내버스 시간표
터미널에서 북면 목동리까지 나혼자 버스를 타고 온 탓에서 15분만에 북면에 도착한다
목동 버스터미널(08:30:가평군 북면소재)
가평에서 싸리재까지 택시를 타면 요금이 20,000원 정도 나오지만 이곳 북면에서 타면
8,000원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예전엔 이곳에 택시가 없었는데 지난 7월부터 이곳에도
택시가 생겼는데 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택시기사 대기소에 가니 문은 잠겨있고 전화를
해도 받지않아 터미널 구멍가게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아직 출근을 안했다고 하면서
가평 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그러면 가평에서 부터 미터기를 꺽어 오기에 비싸다고 하면서
자가용을 소개해 주는데 자가용이 다른데 갔다오는 바람에 30분을 기다리다가 자가용을
타고 싸리재 마을 맨 윗쪽에 있는 민가까지 10,000원을 주고 타고간다
싸리재 마을 맨 윗쪽 민가(09:20)
차에서 내려 스트레칭을 한 다음에 스틱을 펴서 산행을 준비하는데 비는 그쳤지만 꽤나 춥다
조그만 개울을 건너서 올라가다 마지막 민가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이정표(09:25)
마지막 민가를 지나니 이정표가 나오고 이곳에서 계관산 방향으로 오른다
등로로 접어들어 오르막을 오르는데 이곳은 잣의 고장답게 잣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잠시 후 낙엽이 수북한 등로에 들어서니 비에 젖은 낙엽이 엄청나게 미끄럽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계속해서 기온이 떨어지니 꽤나 추워서 바람막이 옷을 입는다
싸리재(610m:10:05)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를 넘어가는 고개로 정상에는 커다란
갈참나무 노거수 한그루와 이정표(← 북배산 정상 2.8km →계관산 정상 1.2km)가 있으며 춘천과
가평을 잇는 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지 등로가 거의없는 잊혀진 길이 되어 버린듯 하다
예전에 차량들이 없었던 시절에 가평에서 춘천으로 가는 민초들이 넘었던 길이었으며
싸리재의 지명 유래는 고개 주위에 싸리나무 군락지가 있어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하며 지금도
방화선 임도 주위에 싸리나무들이 참으로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 방동리쪽으로 내려서면 고려시대 충신인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 묘지가 나온다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 장군(강원도 기념물 제21호)
고려의 개국공신 장절공(壯節公) 신숭겸 장군은 평산 신씨의 시조로서, 918년 배현경·홍유·복지겸 등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 건국에 이바지하였다. 태조 10년(927) 대구 공산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대와 싸우다가 태조가 적군에게 포위되어 위급해지자 태조의 옷을 입고 변장하여 맞서다가 전사하였다.
적군이 신숭겸을 태조로 오인하고 그의 목을 베어가자 태조는 머리없는 시신에 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장례식을 치루었다고 한다.도굴을 막기 위하여 묘는 하나인데 봉분을 3개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이 묘에는 3개의 봉분이
나란히 있다.
신 숭겸 장군의 묘역은 우리나라 8대 명당중의 하나로 이 묘역은 화악산에서 뻗어
주산인 조치산에 생기(生氣)를 모았고 소양강 줄기와 북한강이 합수하여 사면으로
둘러쌓는 자리의 안쪽에 자리를 잡아 장군봉, 봉의산, 안마산, 부래산 등이 강과
어우러져 반용농주형(盤龍弄珠形:용이 구슬을 물고 노는 형)이라 전해온다.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927) 장군은 고려 태조 때의 무장(武將)으로 평산(平山) 신씨(申氏)의
시조(始祖)로서 원래의 이름은 능산(能山)이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본래 전라묵도 곡성현(谷城縣) 출신으로 태조가
평산(平山)에서 사성(賜姓)하였다고 하였으며, 또『고려사』 열전에는 그를 광해주 사람이라 하였다.
그런데『신증동국여지승람』춘천도호부 인물조에 신숭겸의 이름이 실려있고, 또한 그의 묘가
춘천에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그는 본래 곡성 출신으로 뒤에 춘천으로 옮겨와 살게되어
그의 묘도 이곳에 쓰이게 된 모양이다 (사진 - 펌)
70일만에 다시 싸리재를 만나는데 그때는 잡풀 때문에 개고생을 한 기억이 새록새록 하건만
이제는 방화선 임도에는 등로의 흔적이 뚜렸히 보이면서 걷기는 참으로 좋다
뒤돌아 보니 8월에 걸었던 북배산도 보이고...
諸行無常
여름보다 훨씬 걷기 편한 방화선 임도를 따라서 계관산으로 향한다
헬기장(10:25)
지도상 헬기장에는 계관산 200m 남았다는 이정표와 함께 지적도근점이 설치되어 있다
가야할 계관산이 보이고...
나무 계단을 따라서 계관산으로 오른다
계관산(鷄冠山:735.7m:10:32)
강원도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와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의 경게에 있는 산으로 정상은
방화선 임도에서 우측으로 10여m정도 살짝 벗어있으며 정상석과 나무 의자 2개가 있다
계관산의 지명유래는 산 아래(가평)에 달개지라는 자연부락이 있는데 닭개지라 변음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 주민들에 의하면 옛날에는 달래지라 불렀으나 일제 식민지 시절에 일본인들이 행정지명을
계관촌(鷄冠村)으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산 이름을 계관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또 다른 일설에 의하면 산의 지형이 모이를 쫒는 닭부리를 닮았다고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계관산의 다른 이름으로 큰촛대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계관산 헬기장
계관산에 오르니 서 있기조차 힘들만큼 바람이 불고 너무 추워서 서둘러 삼악산으로 향한다
삼악산으로 가는 길
계관산 400m 지난 지점에서 만난 이정표
지나온 계관산의 모습
작은 촛대봉(665m:10:45)
방화선 임도상에 있는 봉우리로 그냥 밋밋하여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봉우리가 지도상의 작은 촛대봉이다
정상에는 삼각점(춘천 312 / 2005 재설)이 있을 뿐이다
화악지맥 Y갈림길(10:46)
이곳에서부터 화악지맥 Y 갈림길이다... 여름부터 꿈꿔왔던 삼악산 구간을 오늘 걷는데
지금부터 본격적인 Y 구간 삼악산 구간 첫 발걸음을 내디딘다
Y구간 갈림길 이정표
삼악산 구간을 들어서서 삼악산을 바라보니 짙은 박무로 가려져 있다
내려서자마자 커다란 바위를 만나고 방화선 임도가 나오는데 삼악산 구간은 산꾼들이
잘 다니지 않은 탓인지 억새를 비롯한 잡초들이 우거져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어디로 가란 말인지?
지난구간 촛대봉 아래에서 부터 계속되는 방화선 임도는 방화선이 아닌 불쏘시개이다
방화선 임도란 산불이 났을 때 산불 확산을 막기위해 만든 임도인데 이곳은 잡초들이
방화선을 점령(?)한 바람에 산불 확산을 시키는 역할을 하는 곳 같다
임도(11:00)
방화선 임도를 따라서 급경사를 15분정도를 빠르게 내려오니
이정표(←계관산 1.4km →삼악산 7.9km)를 만나는데 Y능선 갈림길에서
이곳까지 족히 1km는 될것 같은데 Y능선 이정표에 8km라고 했놨는데
겨우 0.1km 밖에 안왔단 말인가... 춘천시에서 설치한 이정표는 엉터리가 너무 많다
임도를 내려서서 우측으로 계속간다
방화선 임도에는 지금 억새들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하늘에는 이제 햇빛이 살짝 보이기 시작하건만 강한 바람탓인지 넘 춥다
방화선 임도 끝(11:05)
방화선 임도가 끝나는 ㅏ자 등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삼악산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춘천시 서면 방동리가 나오는데 이곳은 고려시대
충신이었던 장절공 신숭겸의 묘지가 있는 곳이다
방화선 임도 끝부분을 내려서니 낙엽이 수북한 길인데 등로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복숭아밭이었는지 복숭아 나무들이 너무나 많이 보인다
침엽수림을 지나자마자...
로프가 설치된 나무 계단을 오르는데 비에 젖은 낙엽이 너무 미끄럽다
무명봉(11:13)
무명봉에서 내려섰다가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니...
낙엽으로 덮혀있는 수성최공의 묘지가 나온 다음 다시 내려서니 임도가 나온다
임도(11:20)
이곳은 덕두원리와 당림리를 잇는 임도로 차량이 다닐만큼 넓으며 이정표가 있다
이곳 임도에는 이정표가 2개가 있으며 처음 만난 이정표
임도를 가로지른 다음에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오른다
춘천시 서면 당림리는 신당(神堂)을 모신 숲이 있었으므로 당숲 또는 당림(堂林)이라고 했다
능선으로 오르기 직전에 만난 이정표
알프스 대장님 반갑습니다
임도에서 빠른 걸음으로 5분정도 오르니 봉우리가 나온다
능선에 오르니 바람의 강도는 점점 세지더니 마치 태풍이 몰려오는 기분이다
다시 웃도리를 하나 더 껴입고 나니 추위가 조금 가시는 느낌이다
능선에서 다시 내려서니 좌측은 잣나무 숲이 나오고 우측은 갈참나무 군락지다
잣나무 숲이 있는 안부 능선을 걸으니 멋진 소나무 한그루를 만난다
다시 오르막을 오르니 봉우리 정상에 묘지 한기를 만난다
봉우리 정상에는 려흥민공 묘지가 있다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를 지낸 려흥민공의 묘지(11:35)
호조참판(戶曹參判)은 조선시대 호조(戶曹)에 둔 종이품(從二品) 관직으로 정원은 1원이다.
위로 호조판서(戶曹判書: 正二品)가 있고, 아래로 호조참의(戶曹參議: 正三品 堂上) 1원,
호조정랑(戶曹正郞: 正五品), 호조좌랑(戶曹佐郞: 正六品) 각 3원이 있다.
판서를 정경(正卿)이라고 하고, 참판은 아경(亞卿)이라고 한다.
원래 사평부(司平府)에 두었던 좌사(左使)·우사(右使)를 1404년(태종 4) 3월 참판사평부사(參判司平府使)라고
개칭했다가, 1405년 1월 사평부가 호조(戶曹)에 병합되고 육조의 의랑(議郞) 각 2원을 좌·우참의(左右參議)로 바꾸었다.
1432년(세종 14)에 참판·참의 각각 1원으로 개편되어 각 조(曹)의 판서를 보좌하는 차관으로,
예하 주요기관의 제조(提調)를 겸하였다. 1894년(고종 31)의 갑오개혁 이후에는 협판(協辦: 勅任官)이라 하였다.
동지의금부사는 종2품의 벼슬로 왕명에 의한 수사나 관리들의 죄를 조사하던 관청인
의금부의 수장인 의금부 판사, 그 밑의 의금부 지사 다음의 서열 제3위의 관직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묘지에서 내려가는 길에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데 어찌나 미끄러운지 2번이나 넘어진다
다시 오르막을 오르니 암릉구간을 만나고...
누워있는 듯한 멋진 소나무를 만난 다음 다시 오르막으로 오른다
460m봉(12:00)
봉우리 정상에는 나무로 만든 의자가 있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지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반긴다
좌측으로 90도 꺽어져 내려서니 등로 사이로 삼악산의 주봉인 용화봉이 보인다
또다시 멋진 소나무를 만나면서 내리막길을 만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에는 어김없이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미끄러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폐헬기장 같은 공터도 지나고...
좌측 능선 아래에는 벌목지대가 나오고...
벌목지 아래로는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가 보이고 멀리 춘천시내 아파트도 보이기 시작한다
덕두원리(德斗院里)는 북쪽으로 주산, 남쪽으로는 삼악산(三岳山)이 위치하고 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물개말, 웃말, 고도트미 등이 있다.
물개말은 마을이 물가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웃말은 마을이 위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덕두원의 삼학산(三鶴山)은 해발 654m로 세개의 봉우리로 이어져 삼악산이라 불리우며,
폭포 및 등산로로 유명하다.
덕두원은 조선시대 덕두원이 있었으므로 덕두원이라 하였으며, 한양과 춘천으로 통하는 길목이었다.
벌목지를 지나 오르막을 오르니 흔히 차돌백이라고 부르는 규암(硅岩)이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 바람을 피해서 점심으로 싸온 고구마 2개와 보온병에 타 온 모과차 한잔으로 점심을
대신 하고 오늘 처음으로 휴식을 취하는데 그것도 잠시 다시 추위가 몰려와서 서둘러 길을 떠난다
이곳의 산은 벌써 겨울준비(?)를 끝냈다
395m봉(12:52)
이곳에서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3분정도 내려서니 석파령이 나온다
석파령(席破嶺:350m:12:55)
강원도 춘천시 서면 당림리와 덕두원리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춘천의 지명유래』에 "옛날에 춘천에서 한양으로
가려면 신영강 나루를 건너 서면 덕두원에서 석파령을 넘어야 했다. 석파령은 춘천으로 부임하는 부사와 이임하는
부사가 영마루에서 돗자리를 나누어 깔고 환송하던 곳에서 유래하며, 석파령에는 당시의 주막과 민가가 있었던
유적이 발굴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워낙 공간이 좁아서 바위를 부수고 공간을 확보하였다 아여 석파령(席破嶺)이란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대동지지』에 따르면 "부의 서쪽으로 30리에 있다."고 전하고 있으며, 『관동읍지』에는 "부의 서쪽 25리에 있다.
화악산으로부터 와서 삼악산의 주맥이 된다.
민간에서 전하기를 전임관과 신임관이 이곳에서 교체를 하였는데, 관인(官人)이 단지 자리 하나만을 가지고 와서
양쪽을 베어 하나씩 나누어 앉은 까닭에 이러한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석파령 이정표
이곳은 국유임도로 춘천시의 둘레길인 봄내길이 지나는 곳이며 우측은 당림리로
가는 길이고 좌측은 명월리로 향하는 길이라고 이정표는 표기하고 있다
임도를 가로질러 이정표가 있고 나무 의자가 있는 능선 좌측으로 올라선다
석파령에서 3분정도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좌측으론 잣나무 단지가 있고
능선 가운데는 말라죽은 소나무 한그루가 산꾼이 가는 길을 막아선다
안부(13:00)
좌측은 계속해서 잣나무 단지가 같이 계속 따라오고...
무명봉에 올라서니 한낮인데 기온은 자꾸만 떨어지는 느낌이다
서서히 암릉구간이 본색을 들어내기 시작하고...
부드러운 능선을 지나자마자 서서히 청운봉을 향해 고도를 높히기 시작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삼악산의 청운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스듬히 누워있는 소나무를 지나면서 고도를 높히는데 석파령에서 청운봉까지
300m 이상을 올리려니 힘은 드지만 정작 산꾼을 괴롭히는 건 미끄러운 낙엽이다
커다란 암릉을 우회하며 능선으로 오르는데 오늘 산행중 처음으로 사람소릴 듣는다.
잠시후에 능선 정상에 오르니 돌무더기로 만든 청운봉이 정상이 나타난다
삼악산 청운봉(靑雲峰:615:13:35)
강원도 춘천시 서면 당림리와 덕두원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용화봉과 등선봉의 3개 봉우리를 합쳐서 삼악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정상에는 이정표만 달랑 있고 커다란 돌무더기가 있는데 어느 산꾼이
메직으로 ‘청운봉 615M’으로 표기해놨고 봉우리 아래로는 흥국사가 보인다
우측으로 가면 등선봉 가는 길이고 지맥길은 좌측 용화봉으로 향한다
청운봉 정상의 이정표
청운봉 정상에서 오늘 처음으로 등산객 3명을 만난다.
아침에 비가 온데다가 바람이 세차게 불고 날씨가 추운 탓인지 생각보다 사람이 적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용화봉을 바라보며 걷는다... 잠시후 성곽길이 나오는데이것이 삼악산성지이다
또다시 만난 엉터리 이정표
100m전에 만난 청운봉 정상의 이정표에는 등선봉 1.7km라고 표기해놨고
그곳에서 100m 밖에 안 지난 이곳의 이정표에는 등선봉 3.1km라니 틀려도
너무 틀리니 엉청나게 헷갈린다... 춘천시 담당 공무원 나리 제발 현장 점검 좀 하시요
탁상머리에 앉아서 펜대 굴리면서 민초들의 피땀흘린 돈으로 낸 세금 축을 좀 고만 내시고...
삼악산성지(三岳山城址:강원도 문화재 제50호)
삼악산성은 삼악산의 능선 계곡 왼쪽 정상을 따라 쌓은 성으로
삼악산은 춘천-서울간 역로(驛路)였던 곳으로, 석파령을 내려다보는 곳에
천연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마주보고 있는 두 정상의 능선을 따라 산성을 쌓았다.
태봉국을 세운 궁예가 철원에서 왕건에게 패하고 샘밭 삼한골을 거쳐
이곳에 성을 쌓아 피신처로 이용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또 삼국시대 이전에 춘천지역에 있던 부족국가인 맥국(貊國) 사람들이 쌓은 성이라는 설도 있다.
산성의 길이는 약 5㎞로, 성벽은 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자연석을 이용하여
자연 지형에 따라 높이 1∼3m로 쌓았으며 성 주변에서 옛 그릇 조각과 기와 조각이 많이
발견되었으며, 흥국사, 망국대, 대궐터, 기와를 굽던 ‘와대기’등 의미있는 옛 지명들이 전해온다.
등로 사이로 삼악산의 주봉인 용화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삼악산성터 위를 걷는데 너덜겅같은 길에 낙엽이 쌓여서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전망암(13:50)
너럭바위가 있는 전망암에 올라서니 춘천시내와 붕어섬이 보이고 북쪽으론 화악산이 보인다
전망암에서 바라본 춘천시내의 모습
화악산 신선봉과 매봉도 한 눈에 들어오고...
잠시후에 오를 용화봉의 모습
삼악산성터를 따라 내려오니 흥국사 갈림길 안부가 나온다
흥국사 갈림길 안부(13:55)
흥국사 대웅전(사진 - 펌)
강원도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 삼악산 청운봉 아래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흥국사는
894년경 태봉을 세운 궁예(弓裔)가 창건한 사찰로서 이곳은 궁예가 왕건을 맞아
싸운 곳으로, 궁예는 이곳 터가 함지박처럼 넓으므로 궁궐을 지었다.
왜(와)데기라는 곳에서 기와를 구워서 사용했으며, 궁궐을 지은 뒤
흥국사를 창건하고 나라의 재건을 기원하였다 한다.
당시 절 옆 산성 가운데 궁궐이 있던 자리가 지금도 남아 있어 대궐터로 부르며,
왜(와)데기와 칼싸움을 했던 곳인 칼봉, 말을 매 두었던 말골, 군사들이 옷을 널었던
옷바위(의암)가 당시의 흔적으로 남아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규모가 큰 절이었으나
현재는 조그마한 암자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안부에 내려서니 우측으로 흥국사 내려가는 길이 나오고 산성터가 이곳에서
끊어지는데 이곳에 안내판이 서있는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삼악산 정상 용화봉 오르는 길은 코가 땅에 닿을만큼의 급경사이다
거가다가 얼마나 바람이 드세게 부는지 몸을 가누기조차 힘이들고
낙엽조차 미끄러워 이곳에서도 2번이나 넘어진 다음에야 정상 아래에 올라선다
정상 아래의 급경사 올라서니 마구 버려진 안내판도 거리는 엉터리이기는 마찬가지다
청운봉에서 여기까지 40분 가까이를 걸었는데 이정표의 거리라면 400m밖에 안 왔다는 얘기다
버려진 이정표를 지나 능선 안부에 오르니 삼악산의 정상답게 사람들이 보인다
이곳에 오르니 이 추운 날씨에 막걸리 장수가 있어서 배가 너무 고파서 막걸리
한잔을 마시는데 쥔장이 나를 보더니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가평 싸리재에서
왔다고 하니까 그 먼곳에서 이곳까지 하면서 이해를 못하는 눈치이다
그러면서 막걸리 한잔을 서비스로 더 주는데 그 맛이 왜이리 꿀맛인지...
용화봉((龍華峰:654m:14:35)
강원도 춘천시 서면과 신동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기암괴석과 봉우리가 첩첩으로 겹쳐있고
용화봉, 청운봉, 등선봉의 주봉이 3개라 하여 삼악산이라 부른다고 하는데 가장 높은 봉우리가 용화봉이다
화악산(華岳山)의 지맥이 남쪽으로 뻗어 오다 북한강과 마주치는 곳에 위치하며 북한강을 막아 조성된
의암호와 청평호의 상류가 삼악산 기슭을 에워싸고 있고, 많은 기암절벽의 산세가 자리 잡고 있다.
기반암으로 이뤄진 계곡에는 등선폭포를 비롯한 수렴동, 옥녀탕 등 명소가 있다.
산 정상 북서쪽에는 춘천에서 덕두원을 거쳐 가평·서울을 왕래하던 석파령이 있다
삼악산 산록에는 도로를 따라 금성사·등선폭포(登仙瀑布)·신흥사(新興寺) 등이 있으며,
능선을 오르면 대원암(大院庵)·상원사(上院寺)·흥국사(興國寺) 등 오래된 사찰이 있다.
산정에 오르면 의암호(衣巖湖)나 춘천시가 내려다보이는 등 전망이 좋아 주말이면
수도권 각지에서 등산객과 탐승객이 많이 찾아든다.
또한, 산정에는 맥국시대(貊國時代)에 쌓았다고 전하는 삼악산성(三嶽山城)의 유적이 남아 있고,
삼악사터[三嶽寺址]가 있다. 일반 등산코스는 등선폭포에서 흥국사를 거쳐 삼악산의 정상에
이른 뒤 다시 능선을 따라 덕두원(德斗院)으로 내려가는 코스가 대표적이이다
『한국지명사전』에 "강원도 춘천시 남서쪽 14㎞ 되는 지점에 위치하는 해발 654m의 산으로 강원도 춘성시에
속하며, 한북정맥이 화악산을 기점으로 남동쪽으로 내려오다가 소양강 굽이에 끊긴 끝머리를 이룬 곳이
삼악산으로 산 입구에 이름난 등선폭포가 있으나 있다. 산정에 올라서면 북한강 상류와 의암댐, 춘천호가 한눈에 든다.
산중에는 신흥사지, 흥국사 상원사 및 몇 채의 민가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강원도 땅이름』에는 "춘천 서쪽의 암호에 접하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해발 654m의 삼악산은 옛날에
춘천지방에 자리 잡았던 맥국(貊國)의 전설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산으로, 맥국군이 패해 망했다는 망국대,
맥국의 부흥을 기원하는 사찰이었다는 흥국사, 맥국의 마지막 패망 현장이 된 삼악산성과 이외에도 말골 ·
칼봉 · 북문새 등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의암호와 어우러져 풍광이 수려하고 유서깊은 흥국사를 비롯하여
금성사 · 신흥사 · 대원암 · 상원사 등의 절이 자리 잡고 있어서 춘천 사람들은 물론 각처에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는 산이다.
지금도 춘천지방에서는 삼악산이 조화를 부린다고 말하고 있는데, 정상에 검은 구름이 감돌면 맥국의 패망한
원한이 검은 구름으로 감돌다가 비바람을 몰아치게 한다는 것이다. 이곳에는 태봉국을 세운 궁예가 철원에서
왕건에게 패하고 샘밭 삼한골을 거쳐 이곳에 성을 쌓아 피신처로 이용했다는 전설이 있는 삼악산 고성이 있다.
용화봉 정상에서 바라본 화악산
용화봉 정상에서 바라본 소양강
지난해 4월 소양(도솔)지맥 마지막 구간이었던 소양강이 아련히 보인다.
삼악산의 주봉인 용화봉, 청운봉, 등선봉의 지명 유래는 알려진 것이 없다
추측컨데 삼악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용화봉은 화엄경에서 설하는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이 우주의 맨 밑바닥에 있는 향수해(香水海)에는
그지없이 큰 연꽃이 피어 있는데 그 연꽃 속에 무한한 세계가 있으니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 세상도 이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용화장 장엄세계(龍華藏 莊嚴世界)라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인데
아마 그것에서 따온 용어가 아닌가 싶다 (범여의 생각中에서)
용화봉 정상에서 이곳 저곳을 두루 살핀 다음에 용화봉을 내려와 의암댐으로 향한다
안부(14:45)
용화봉에서 안부로 내려왔다가 다시 삼악산 동봉인 데크목 정상에 올라선다
이곳부터는 왜 삼악산 즉 악산(嶽山)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뾰족하게 생긴 암릉길을 조심스레 걸어가는데 아래로 내려보니 아찔하다
삼악산 동봉(14:47)
잠시후에 가야 할 능선의 모습
삼악산 동봉에서 바라본 붕어섬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하리에 있는 북한강 상류인 화천강 한가운데에 있다. 춘천시신북읍(新北邑)의 춘천댐
담수로 인해 만들어진 작은 섬으로 환경보존 및 자연친화적 요소를 가미하여 사계절 녹색체험휴양지로 조성하였다.
낚시터 및 군민의 휴식공간으로 인기가 높으며 최근 화천군에서는 섬의 토양에 적합한 나무를 심어 재배하고
자전거도로를 만드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섬 전체가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있어 드라마나 영화 등의 촬영지로도 자주 이용된다.
잔디축구장·족구장·테니스장·배구장·다목적구장·풋살장 등 운동시설과 수변산책로, 발지압장, 실개울(분수대),
상설무대공연장, 화장실, 급수시설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섬 주변에는 여러 종류의 민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으며 특히 큰입우럭이 유명하다.
매년 1월 중순에 낭천얼음축제, 6월에 비목문화제, 10월에 용화축전 등의 지역문화제가 열린다.
화천읍사무소에서 1㎞ 거리에 있으며, 도로로 이어져 있으며 매년 6월 15일부터 8월 30일까지 개장한다.
주변에 칠성루, 화천향교, 미륵바위, 화천강 등 연계하여 관광할 곳이 많다.
동봉에서 암릉구간을 걷는데 규암으로 된 암릉이라 상당히 조심스럽다
돌탑을 지나 급경사로 내려선다
뿌리가 다 드러난 소나무를 지나는데 상당히 조심스럽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급경사의 고도 내려다 보이는 북한강이 아찔하다
미끄러운 자갈길같은 마사토 능선... 잠시후 철계단을 만난다
철계단으로 내려서니 의암댐이 보이기 시작하고...
북한강 상류인 의암호ㆍ춘천호ㆍ소양호 등의 인공호수와 구절산ㆍ연엽산ㆍ대룡산ㆍ가리산ㆍ
촛대봉ㆍ북배산ㆍ청평산 등의 크고 작은 산들이 있고, 북한강변에 그림같이 떠 있는
남이섬이 있는 호반의 도시 춘천은 천혜의 관광지로 손꼽힌다.
특히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류하는 신동면 의암리의 신연강(新延江) 협곡을 가로질러 축조된 의암댐,
즉 의암호가 봄내라고도 불리는 춘천을 물의 도시, 호반의 도시로 만들었다.
의암호는 강원도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와 신동면 의암리 사이의 협곡에 의암댐을 만들면서 형성된 인공호수이다.
1967년 완공되었는데, 의암리 옷바위 근처의 협곡을 막아서 만들었으므로 의암호라 하였다.
의암호가 생기면서 소양강 주변의 환경이 변하였다. 소양강과 북한강이 만나 이루는 하천이 신연강 인데,
이 강이 호수로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소양강에 존재하던 삼각주들도 섬으로 변하였다.
특히 춘천 시가지는 서쪽으로 의암호에 접해 있는데, 과거 소양강의 문화가 호수의 문화로
변화하였고, 강의 유역이 호반으로 바뀌어져 마침내 춘천은 호반의 도시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의암호의 소양강 배 터에서는 금산 · 중도 · 부래산 · 신매리 방향의 배가 드나들어
옛 소양강 변에 존재하였던 나루의 명성을 찾게 되었다
춘천은 원래 고대에 규모가 큰 원시부족국가였던 맥국(貊國)의 터로, 삼국시대에 들어와
백제ㆍ고구려ㆍ신라의 지배를 차례로 받은 뒤에 조선시대 태종 13년(1413)부터 현재의
이름인 춘천으로 불렸다. 강원도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된 강릉과 원주에 밀려 한적한
고을이었던 춘천이 하나의 전환기를 맞은 것은 1888년이다.
그때 춘천은 유도부(留都府)로 승격되어 경기도에 속해 있었다.
서울에 난리가 일어나 조정이 위험해질 경우를 대비하여 임금과 신하가
피난할 궁궐을 지금의 강원도 도청 자리에 짓게 하였다.
궁궐이 들어선 뒤로 춘천은 강원도의 행정 중심지가 되어갔고 결국 1895년에는
영서지방을 통괄하는 관청인 관찰부가 들어선 뒤 이듬해에 전국을 13도로 나누는
과정에서 영동지방, 즉 강원도 전체를 다스리는 관찰사를 이곳에 두게 되었고
춘천은 그때부터 강원도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1910년에는 관찰부를 도청으로 바꾸었다
춘천에 근거지를 둔 맥국(貊國)은 예(濊)·한(韓)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주된 구성체로서,
『시경(詩經)』·『서경(書經)』등을 보면 중국 주대(周代)에 주나라의 동북방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 뒤 북중국의 요동(遼東)·만주지역으로 이동해 고구려·부여 등이 국명(國名)을
가지기 전까지 예와 맥으로 중국측 기록에 보인다.
이들은 북방정세의 변화 또는 다른 요인에 의해 한반도 내로 이주한
고구려와 계통을 같이하는 맥족(貊族)의 한 집단이었다.
맥국(貊國)의 위치는『삼국사기』지리지에 당나라 사람 가탐(賈耽)이 쓴『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를
인용해 “고구려의 남동쪽 예의 서쪽이 옛 맥의 땅인데 지금 신라의 북쪽이 삭주(朔州: 지금의 강원도 춘천)이며,
선덕여왕(善德女王) 6년(637)에 우수주(牛首州)로 삼아 군주(軍主)를 두었다”고 하였다.
또한『삼국유사』는 “춘주(春州)는 옛 우두주(牛頭州)로 옛날의 맥국인데 혹 지금의 삭주를
맥국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평양성을 맥국이라고 한다”고 하여 춘천을 맥국이라고 보고 있으면서,
일연(一然) 생존시의 삭주(지금의 평안북도)설과 평양성설을 추가하고 있다.
삭주설은 시대적 혼동이며, 평양성을 맥국으로 본 것은 고구려의 주요 구성체가 맥족이었으므로
고구려 초기에는 맥과 고구려라는 국명이 함께 사용했기 때문이다.
의암댐으로 내려가는 길은 곡예를 하면서 걸어가는 기분이다
거기다가 정상에서 마신 막걸리 때문에 바짝 신경이 쓰인다
멋진 소나무도 만나고...
철계단을 지나니 깔닥고개를 만난다
깔딱고개(15:15)
깔딱고개에서 좌측으로 꺽어져서 상원사로 향한다
고비나물은 아직도 푸르름을 유지하고...
상원사 내려서기 직전에 만난 돌탑
상원사로 내려선다
상원사의 풍경(風磬)
상원사 대웅전(15:23)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神興寺)의 말사로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신라시대에 창건한 절이라고 전해지며,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을 중심으로 칠성각(七星閣)·시왕전(十王殿)·요사채 등이 있으며,
특기할 만한 문화재는 없으나 절 주위의 풍치는 빼어나다.
또, 이 산중에는 신라시대에 창건하여 궁예(弓裔)가 몸을 숨겼다는 흥국사(興國寺)가 있다.
상원사 산왕전과 칠성각
상원사 산신탱과 칠성탱
상원사의 이곳저곳을 두루 살핀 다음에 대웅전을 향해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절 마당에 있는 甘露水 한바가지 마시고 절 문을 나선다
참으로 곱다... 울님 만큼이나...
꽤나 큰 돌탑 2개를 지나 우측으로 내려서니 나무 계단이
나오고 의암호가 바라 보이는 멋진 전망암이 나온다
호젓한 나무 계단을 내려서니 햐안 건물이 나오는데 삼악산장이란다
삼악산장(三岳山莊:15:35)
산장으로 내려서니 전망암이 나오고 그림 같은 의암호의 풍경을 한눈에 들어온다
향기로운 차와 함께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삼악산이 보이고, 그 중간 즈음에 서 있는 새하얀 건물이 삼악산장이다.
삼악산에 숨어든 이 비밀 산장은 1967년에 지어진 곳으로 원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별장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지금은 찻집으로 얼굴을 바꿨다고 하는데 오늘은 영업을 안하는지 불이 꺼져있다
이곳에서 200m를 걸어내려오니 의암댐 매표소가 나온다
한북정맥 도마봉에서 시작한 화악지맥 Y구간은 이제 맥을 다하고 의암호로 入水 준비를 한다
의암 매표소(15:40)
가평(화악)지맥의 맥 드디어 의암호에 入水하다
화악지맥 Y구간을 마치고나니 늘 가슴속에 응어리진 것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다
이곳에서 서울을 가기 위해선 의암댐으로 걸어가서 강촌역이나 남춘천역으로
가야 하는데 이곳에는 단체로 온 등산객 20여명이 식당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혹 꼽사리 끼어서 갈 수 있을까 하고 대장인듯한 사람에게 서울을 가야 하는데
혹 전철역 가까운데 내려줄 없냐고 하니까 자기들은 강촌역 근처에 닭갈비집에
음식을 예약해놔서 식당차가 오니까 강촌역까지 태워 주겠노라 하는게 아닌가
잠시후에 25인승 식당버스가 오는 바람에 무사히 강촌역까지 공짜로 온다
강촌역 근처에 있는 우미 닭갈비집까지 와서 산행대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강촌역으로 향한다
예전의 강촌역은 강가에 있었는데 지금은 한참 안쪽으로 있다
강촌(江村)은 춘천시 남산면에 있는 마을로 신연강가에 있는
물께말(물가마을의 토속어)이라 한자로 변하면서 강촌이라 불렀다고 한다
강촌은 젊은이들의 꿈과 낭만이 넘치는 공간으로 1년내내 젊은이들로 북적거린다
나이든 세대에게는 젊은날의 추억이 있는 그리움의 공간으로 다가오며
나에겐 강촌이란 추억은 20대 초반에 친구들과 경춘선 열차를 타고
야외전축에 LP판 들고와서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아련한 곳이다
이곳은 작사가 故김설강 선생이 춘천에서 서울로 가던 중 산기슭에 자리잡은
강촌역의 풍경에 매료되어 배를 타고 들어가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노랫말을 지은 “강촌에 살고 싶네” (김설강 작사, 김학송 작곡, 나훈아 노래)
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새로 생긴 강촌역으로 가는 길목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곳답게 분위기도 그렇게 꾸며져 있다
강촌역(16:10)
집에와서 삼겹살 구워서 소주 1병 간단하게 비우고 깊은 잠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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