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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경안(앵자)지맥(終)

경안(앵자)지맥 제3구간 - 국정개고개에서 분원리 두물머리까지

by 범여(梵如) 2015. 3. 9.

 

☞ 산행일자: 2015년 3월 8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산행하기 딱 좋은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8.2km / 10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국정개고개-파평윤씨 묘-289.6봉-쉼터봉-NO 27송전탑-343봉-NO 89송전탑-325봉

                 310봉-NO 90송전탑-kt이동통신탑-(구)남이고개-남이고개-NO 81송전탑-392.1봉

                자작봉-상품리갈림길-소망수양관 갈림길-전망암-데크목 계단-NO 27송전탑-앵자봉

                숭실대학습림-헬기장1-헬기장2-헬기장3-양자산 갈림길-천진암갈림길-473봉

                455봉- 우산리갈림길-N4103송전탑-NO104송전탑-서낭당-쉼터봉-자작나무군락지

                나무계단-무명묘지-424.5봉-NO 105송전탑-NO 106송전탑-501.3봉-폐헬기장

                북대봉-임도-315봉-292봉-임도-염치고개-NO 114송전탑-석둔마을 갈림길

                NO 115송전탑-돌탑봉-해협산-소나무 쉼터봉-452봉-도수리 갈림길-무명봉

               광수중학교 갈림길-안부-152봉-가마고개-236.7봉-금봉산 갈림길-분원초 갈림길

              망조고개-104봉-폐가-분원리 두물머리

소 재 지: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퇴촌면, 남종면 / 여주시 산북면 / 양평군 강하

 

세상사는게 점점 힘들어지고 겁이난다... 점점 치열해지는 생존경쟁에서 人性이 메말라 간다

한때 살을 섞어며 한 이불덮으며 부부로 살았던 자가  돈 문제로 엽총을 쏴 처오빠와 장인이

숨지고 재산 다툼으로 동생이 형과 형수를 쏴 죽이질 않나... 거기다가 미국대사를 칼로 난도질하여

국제적 망신아니 국익을 갉아 먹는 종북자의 소행까지 정말  신문보기가 겁이난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이 나라가 도덕성은 땅바닥에 떨어지고 어찌하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요즘 재건축 문제로 집과 사무실 이전 문제로 머리가 뽀개지는 느낌이다... 밤에 잠이 안온다

이번주 원래 계획은 머리도 식힐겸 南道의 봄내음을 맡을 겸 머리도 식히면서 고흥지맥 한 구간을

하려고 계획을 잡았는데 토욜에 예식장이 3군데라... 한 곳은 봉투로 대신하고 2곳은 꼭 가야할

곳이게에 부지런히 2군데를  갔다가 집 왔는데도 오는길에 교통이 막히는 바람에 17시가 넘었다

고흥가는 막차가 17:30분이라 부득히 포기하고 사무실에 들어와 앵자지맥 마지막 구간의

지도를 복사하여 집에가서 일찍 잠자리에 든 다음에 아침 일찍 양재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양재역 버스 정류장(05:50)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12분만에 양재역에 도착하여 곤지암가는 500-2번 버스를 기다린다

오늘은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새벽공기가 상당히 따뜻한 느낌이다

경칩이 지나면서 봄은 성큼 다가왔건만 아직까지 내 마음은 嚴冬雪寒이니...

전광판에는 500-2번 버스가 3분에 도착한다는 표시가 또오른다

정확하게 06시 02분에 버스가 도착하여 버스에서 잠을 청해보지만

정류장마다 서면서 알리는 안내방송 때문에 잠을 청할 수가 없다

곤지암 버스 정류장(06:55)

생각보다 버스는 곤지암에 좀 일찍 도착하는 느낌이다

대로변 버스정류장에다가 승객들을 내려주고는 재빨리 도망(?)간다

버스에서 내려 좁은 골목으로 곤지암 터미널로 향한다

곤지암터미널(06:56)

이곳에서 07:15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기다린다. 터미널은 버스 한대도 없이 텅텅 비어있다

곤지암 터미널에서 삼합리가는 36-8버스를 타고 07시 15분에 국정개고개로 향한다.

시골버스가 다 그렇지만 손님이라곤 달랑 5명인데 그것도 만선리에서 다 내리고

나 혼자 국정개 고개로 향하는데 이곳은 지금 제2영동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온 천지가

공사판인데 국정개 마을을 지나면서 버스기사가 어디 내리냐고 묻는다.

국정개 고개라고 하니까... 거기가 어디냐고 나에게 되묻는다

이 곳 사람들은 삼합이 고개라 해야 아는 모양이다... 여기가 버스 종점이다

국정개 고개(國井浦:07:40)

경기도 곤지암읍(옛지명: 실촌읍) 삼합리에서 여주시 산북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국정포(國井浦) 또는 국정개 고개라고 부르면 최근에는 삼합리에 있다고 해서

삼합리고개라 부르기도 하는데 버스 정류장 명칭은 삼합리로 되어 있다

곤지암에서 여주시 산북면과 이포를 잇는 8번 군도가 지나는 곳이다

 

국정개의 지명유래는 고려말기 공민왕이 홍경래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왔을 때

이곳의 샘물을 식수로 삼았다고 해서 ‘국정(國井)’ 또는 ‘국정포(國井浦)’라

부른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국정개 고개에 07시 40분 도착하여 장비를 점검한다

앵자지맥 2구간을 1월11일에 했으니 약 2개만에 온 셈이다

버스 정류장옆 이정표를 따라서 마을 골목안으로 접어 들면서 3구간 산행을 시작한다(07:45)

坡平尹氏 묘지(07:50)

파평 윤씨(坡平尹氏)는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고려 개국통합삼한벽상익찬공신(開國統合三韓壁上翊贊功臣)

2등에 책록되었고 관직은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에 이르렀다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워 고려시대 유명한 문벌귀족 중의 하나였다.

윤신달과 관련해서는 파평현 용연(龍淵)에 있던 옥함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부이므로

그전의 다른 이야기나 모습은 알 수 없으며, 그의 후손들이 파평현을 근거지로 삼아

토착화하여 성장한 것으로 보이며 파평윤씨는 고려조 이후 계속적으로 가문의 번성을

이루었으며, 조선시대를 통틀어 문과 급제자는 418명, 정승은 11명이나 배출한 큰 성씨로 성장하였다.

등로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본 삼합리의 모습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옛지명: 실촌읍)에 있는 삼합리는 국정포(國井浦), 야포(冶浦),

지음(智音)의 세 자연부락을 합하였다고 해서 '三合里'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정포(國井浦:국정개)는 고려 말기 공민왕이 부하를 거느리고 이곳에 피신해 왔을 때

이 곳의 샘물로 식수를 삼았다고 해서 '국정' 또는 '국정포'라 하게 되었고 지음(智音)은

고려 말기에 이곳에 피신해온 공민왕이 매일 음주가무를 즐겨 징소리가 주위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징골'이라 하게 되었다는데 이는 '점골'이 변한 말로 보이며 야포(冶浦:풀무개)는

천덕봉으로 피신 온 고려 군사들이 원나라와 싸울 때, 이곳에서 풀무질을 하여 무기를 만들었다고 하여,

이 마을을 '풀무개'라고 하였다고 한다

파평윤씨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무지하게 좋다

289.6봉과 삼각점(07:55)

자연과 송정님... 무지 반갑습니다

쉼터봉(08:03)

경안(앵자)지맥 3구간의 등로는 그야말로 고속도로다...룰루♪♬♩라라

NO27 송전탑(08:05)

등로에서 바라본 지난구간의 원적산 천덕봉과 유사리의 모습

우회길을 버리고 직진하여 무명봉에 오른다

아무 볼품도 없는 무명봉을 내려와 다시 능선으로 합류한다

좌측 삼합리에서 올라오는 등로 안부에서 편안한 길을 계속 걷는다

343봉(08:22)

좌측으로 난 우회등로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선답자의 시그널들이 바람에 휘날린다

이 종훈님께서 황새 뒤뿌렁산이라고 적어 놨는데 유래는 알 길이 없다

능선 너머로 박무에 가려진 만선리가 아련히 보이고...

NO89 송전탑(08:28)

325봉(08:30)

328봉에서 남이고개 방향 우측으로 꺽어지니 급경사가 나오고...

급경사 내리막길에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으나 음지라 등로가 얼어있어 미끄럽다

다올선생 오늘도 또 만나네요

급경사를 내려서니 좌측으로 송전탑을 건설하며 만든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만난 다음에 곧바로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우측에 NO90 송전탑이 있고...

310봉(08:35)

310봉을 지나 잠시 내려서니 이정표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선다

다시 급경사로 내려서니 등로에는 낙엽이 수북한데 낙엽밑에 얼음이 얼어있어

상당히 미끄러럽기에 조심스레 내려가는데 넘어진 잡목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KT 이동통신 중계탑(08:45)

구 남이고개(08:47)

새로 생긴 남이고개에 모든 榮를 빼앗긴 채 아무도 찾지않고 몰지각한 사람들이

몰래 갖다버린 쓰레기로 인해 모든게 흉물스럽게 되 버린곳이다... 잠시후 남이고개에 도착한다

남이고개(南怡)고개(08:48)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건업리에서 경기도 여주시 산북면 상품리로 넘어가는 길에

위치하며 광주시 곤지암에서 양평으로 이어지는 98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로 골프장들이

많아서 1년에 평균 20번 이상을 넘어다니는 고개로 옛날 남이장군(南怡將軍)이 어렸을 때

이곳에서 군사훈련을 하는데 백마를 타고 이곳에서 활을 당기어 고양이 바위를 향해 쏘고

달려가보면 화살보다 말이 먼저 다다랐다는 설화에서 붙은 지명이라고 한다

 

또 일설에는 남이장군(南怡將軍)이 도둑을 잡기 위하여 이 고개에 주둔한 일이 있다 하여

이 이름이 붙게 되었다 하기도 하는데 이 고개에서 1.5㎞ 정도 떨어져 있는 금사면

후리(後里)마을 진입로 입구 좌측에는 고양이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길옆 산기슭에 있다.

이 바위가 바로 남이장군이 활쏘기 연습을 하던 과녁이었다고 하며 이 바위는 지금 두 조각으로

갈라져 있는데 그때 남이장군의 화살을 맞아 갈라졌다고 한다.

 

또 남이장군은 백마를 타고 다녔는데 이 말은 매우 빨라서 이 고개에서 고양이바위를 향해

활을 쏘고 화살이 목표물에 맞았는지 맞지 않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말을 달려

이 바위에 와 보면 그제서야 화살이 날아와 이 바위에 맞았다고 한다.

 

남이장군은 조선시대의 무신(武臣)으로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의산군(宜山君) 휘(暉)의 아들이다.

태종의 외손(外孫)으로 좌의정 권단의 4녀와 결혼, 1457년 17세로 무과(武科)에 장원하여

세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으며 1467년 이시애(李施愛)가 북관(北關)에서 난을 일으키자

우대장(右大將)으로 이를 토벌,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에 오르고 의산군(宜山君)에 봉해졌다.

이어 서북변(西北邊)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하고 27세의 나이로 병조판서에 올랐고,

1468년 예종이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어 대궐 안에 숙직하던 어느 날 밤 혜성(彗星)이 나타난

것을 보고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이 깔릴 징조라고 말했다.

이에 평소에 그의 승진을 질투하고 있던 유자광(柳子光)이 이것을 엿듣고 역모를 꾸민다고

모함하여 강순(康純) 등과 함께 주살(誅殺)되었다.

지금 남이고개는 변전소 설치반대를 위한 프랑카드로 도배를 하다시피 했다.

데모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그러나 변전소도 꼭 필요한 거 아닌가

정부와 지역주민들이 서로 잘 타협하여 좋은 방향으로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이고개에서 산북쪽으로 조금 가다가 좌측 능선으로 오르는데 갑자기 길이 없다

좌측으로 다시 돌아가니 뚜렸한 등로가 나오는데 차라리 산북쪽이 아닌 건업리쪽으로

오르는게 좋을듯 싶다

건업리쪽으로 나온 다음에 올라서니 뚜렸한 등로에 이정목이 서 있다

NO81 송전탑(09:00)

송전탑에서 바라본 곤지암읍 건업리(建業里)의 모습

조선조 광해군 때에 밀양(密陽) 박씨의 조상이 이곳에 와서 터를 잡고 살게 되었을 때

마을의 안녕을 빌기 위하여 돌탑을 쌓았다고 해서 '건업리'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물류창고와 공장들이 많은 곳이며 저 곳에는

골프치러 다니면서 자주 들려서 맛있게 먹었던 건업리 보리밥집이 있는 곳이다

등로 곳곳에 친절하게 나무에 설명서를 붙혔놨다... 아! 그렇군요

남이고개에서 한참을 치고 오르는데 참으로 힘이든다

급경사를 치고 오르니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생긴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우회하여 올라서니 다시 고속도로(?)같은 넓은 임도를 만나서 편하게 걷는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

최근에 산불이 난 모양입니다

392.1봉(09:15)

이정표(09:20)

392.1봉에서 5분정도 지나니 휴게용 벤치 2개와 이정표가 있는 곳을 지난다

렉스필드C.C의 모습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렉스필드 C.C가 보이고 주말에 라운딩을 즐기는 골프들이 보인다

이 골프장은 세계에서 브리테니커 백과사전을 가장 많이팔아 한국 셀러리맨들의 우상이 있었던

웅진그룹의 윤 석금 회장의 소유였는데 웅진그룹의 부도로 인해 비운을 맛본 골프장이다

예전에 이곳을 꽤나 들락거렸는데 캐디들의 매너가 참 좋은 골프장으로 기억이 남는다

렉스필드를 포함하여 이 지역에는 이스트밸리, 남촌C.C 등 명문 골프장이 많다

멋있는 바위도 만나고...

자작봉(雌雀峰:578m: 09:35)

광주시 곤지암읍 건업리와 여주시 산북면 상품리의 경계에 접해있는 산으로

‘작은 앵자봉’ 또는 ‘큰 앵자봉’으로 불리우며 전형적인 육산(陸山) 형태이나

정상은 암릉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측 능선 아래로는 렉스필드 골프장이 있고

좌측 능선 아래에는 소망수양관이 있다

정상석 우측으로 내려서서 앵자봉으로 향한다

자작봉 능선 아래로는 음지라 그런지 잔설이 남아있고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앵자봉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정표(09:42)

춤추는 소나무(?)

상품리 갈림길(09:47)

이곳 능선에는 등로도 무지하게 잘되어 있지만 이정표도 너무 많이

설치되어 있어서 낭비란 느낌이 든다...過猶不及이라 했는데...

여주시 산북면 상품리는 원래 행정구역이 금사면으로 옛날 이 마을에

삼정승(원 정승과 서 정승, 이 정승)이 살았다하여 품실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윗부락은 후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품리로

아랫부락은 하품리로 정하였다고 한다

소망수양관 갈림길(09:50)

조경업자들이 봤으면 침을 질질흘릴 명품소나무

전망바위(09:55)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명문 골프장인 이스트밸리C.C와 그 너머로 태화산과 마구산이 아련히 보인다

송전탑... 오늘은 참 많이도 본다

멋진 암릉구간 좌측으로 우회하여 걷는다

다시 편한길을 가다가 또 다시 암릉구간을 만난다

우측으로 데크목 계단을 설치해놔서 편하게 오른다

데크목 계단을 오르니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소나무 전망봉(10:03)

멋진 전망암에다 명품 소나무가 즐비한 이곳이 무명봉이란다

이름이 있어도 멋진 이름이 있어야 할 이곳에 말이다

서레야 박 건석님 선생님이 아직 이곳을 안 지나 가셨나요?... 멋진 이름 부탁혀요

누워있는 소나무(臥松)도 만나고...

전망암에서 바라보니 이스트밸리C.C와 그 너머로 무갑산이 아련히 보인다

범여가 한참 잘나가던 시절에 명문 골프장인 저기에 무던히도 많이 다녔는데...

저 골프장은 거리가 짧아 처음간 골퍼들은 한번에 그린을 공략하러 시도하다가

쌍코피 터지는 곳이다... 페어웨이가 엄청 어렵고, 그린이 유리알이라 스코어가

잘 안나는 골프장으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고 그린피가 꽤나 비싼 골프장이다.

지금은 맨날 그린피가 싼 골프장만 찾아 다니니... 아! 옛날이여!

무명봉(10:07)

NO27 송전탑(10:12)

玄梧님 아직도 안 가본 산줄기가 있으신가요?

앵자봉(鶯子峰: 667m:10:18)

경기도 광주시의 곤지암읍과 퇴촌면, 여주시 산북면, 양평군 강하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앵자지맥의 지명을 따온 주봉으로 '꾀꼬리가 알을 품고 있는 산세'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는 양자산()이, 서쪽으로는

무갑산()과 관산()이 내려다보인다.

북쪽으로는 한국천주교회 발상지 천진암()이 자리하고 있다.

『중정남한지』에 '양자산은 퇴촌면에 있으며 일명 우산()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 앵자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광여도』에는 앵자산이 용진(:북한강) 강변에 천진암, 분원 지명과 함께 표현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 앵자산이 상우산동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소산()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전한다.

 

앵자봉은 신유박해와 병인양요 때 가톨릭 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산으로, 천진암은 한국 최초로 가톨릭이 전파된 곳이기도 하다.

천진암에서 들어가는 앵자봉 일원은 로마카톨릭교회의 성역 순례길로 지정되어 있으며,

100년 계획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성전이 건립되고 있어 가톨릭교인들에게는 알려진 산이다.

앵자봉 정상에는 이정표와 정상석, 전망 안내도 2개와, 천진암 경고문 등

총 8개의 표시물들이 있어서 봉우리 정상이 굉장히 지저분한 느낌이 든다

경안(앵자)지맥의 주봉이라 그런지 주위 조망은 좋으나 박무로 인해 모든 산들이

희뿌옇게 보인다는게 아쉽다면 아쉬운 대목이다

봉우리 아래에는 천진암의 대형 십자가가 보이는데 불교도인 범여가 보기엔

예전에 불교의 암자였는데 지금은 카돌릭 성지로 변해 버린게 아쉬운 대목이다

앵자봉 정상에서 인증샷

앵자봉 북서쪽으로 무갑산이 보이고 저 멀리 이스트밸리 뒷쪽으로 1구간에서

만났던 태화산과, 마구산이 실루엣처럼 희미하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앵자봉과 부부산으로 불리는 양자산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오늘 내가 걸어야 할 해협산이 아주 멀게만 느껴질 정도로 멀리 보인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와 아침도 먹지 못한채 여기까지 걸어 왔더니만 허기가 진다

오늘은 산행거리가 30여km 가까이 되기에 베낭 무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먹는걸 최대한 줄였더니 먹을게 막걸리 2통과 생수외는 별로없다

이곳에서 막걸리 한 통과 앙꼬빵 하나에 커피 한잔으로 앵자봉 정상에서

늦은 아침을 먹으며 꽤나 오랜 시간을 휴식한다

 

점심은 선답자의 산행기에서 봐온 염치고개 매점에서 라면 하나로 해결할

요량으로 점심을 싸오지 않은 탓인지 베낭에는 구급약과 갈아 입을 옷 밖에 없다 

앵자봉 정상에서 바라본 천진암(天眞庵)과 퇴촌면 우산리의 모습

천진암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앵자봉() 아래에 있었던 사찰로서

한국천주교회의 발상()과 관련되는 사적지로, 이곳에 있었던 천진암은 지금은 폐사()되었다.

18세기 중엽 권철신()을 중심으로 한 남인계 소장학자들은 이익()의 서학열을

이어받아 독특한 학풍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경기도 광주와 여주 등지의 사찰에서 강학()을 가졌다.

이 강학 장소 중의 하나가 바로 천진암이다.

 

강학의 내용은 주로 유교경전에 대한 연구를 위주로 하였으나 당시 전래된

한역서학서(西)도 집중적으로 검토되어 결국 천주신앙으로 전개되었다.

천주교에 관계하였던 인물들 중 이곳을 자주 방문하였던 인물로는 이벽()과 정약용()이

대표적으로 정약용의『여유당전서()』에는 천진암과 관련된 시문이 여러 편 보인다.

그 때 벌써 퇴락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여유당전서』중 “석재기해동강학우천진암주어사설중이벽야지장촉담경

()”의 구절을 종래대로

 “기해년 동월에 천진암과 주어사에서 강학의 모임이 열렸을 때 눈 속에 이벽이

야밤에 찾아들었다”라고 해석하지 말고 “이벽이 눈 속에 주어사에서

천진암으로 찾아왔다”라고 읽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 주장에 의하면 천진암은 5년간 천주교신앙운동의 본산역할을 한 반면,

주어사는 권철신이 잠시 머물던 휴양처라고 보게 되어 천진암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그러나 서학에서 천주신앙으로 극적인 전환이 이루어진 장소가 천진암인가에

대하여서는 많은 이견이 제시되어 있으며 천진암은 그 뒤 폐허가 되었으나

1962년에 남상철()에 의하여 절터가 확인되었으며, 1979∼1981년 사이에

이벽·정약종()·권철신·권일신()·이승훈() 등 한국천주교회

초기 인물들의 묘소가 이 곳으로 이장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천진암이 자리잡고 있는 우산리(牛山里)는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마을로서

평지보다 고도가 높은 산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줄기로부터 흐르는 우산천이

마을을 따라 길게 뻗어 있으며 마을 주위에 있는 산의 형세가 마치 소가 누워 있는

듯한 와우형()이라 해서 우산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박석거리, 소미, 절막 등이 있는데 박석거리는 오래 전부터 박씨와

석씨가 대를 이어 거주한 곳이라 해서 부르게 된 이름이고 소미를 둘러싸고 있는

산의 형태는 마치 앵소 모양같아서 이 산을 앵소산이라 하기도 하고 소산이라고도 한다.

소미는 그 산 밑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절막은 천진암 아래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해서 절막이라 부르게 되었다.

앵자봉 주위에는 천진암(), 백년암(), 일출암() 등

사람들이 학문을 닦기 위하여 공부하는 암자가 많았다고 한다

앵자봉 정상에서 따뜻한 햇볕을 벗삼아 앵자봉을 전세내어 혼자서 막걸리

한잔 마시고 30여분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 (10:45)

앵자봉 북동쪽 능선 아래는 아직도 잔설이 많이 보인다

등로 아래 낙엽밑에 숨어있는 잔설이 얼음으로 변해서 상당히 미끄럽다

자봉에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에 오르는데 멋진 암릉을 만난다. 

헬기장 1 (10:53)

헬기장 2(10:55)

이정표도 너무 많고 헬기장도 너무 많아 장사꾼 입장에서 보면 낭비요소가 심한 느낌이다

앵자봉에서 천진암 방향은 무조건 가지 말라는 프랑카드가 붙어있다

헬기장3(10:58)

걸어서 5분거리에 헬기장이 3개를 연달아 만난다

국방정책에 시비걸 맘은 추호도 없지만 왜이리 헬기장이 많은지... 아마 사연이 있겠지

헬기장3에서 우측으로는 양자산 가는길이며 앵자.양자단맥의 분기점이기도 한 곳이다

앵자. 양자단맥 분기점

이곳부터 우측으로는 지난구간 천덕봉부터 같이 걸어온 여주시 산북면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양평군 강하면으로 면계를 바꾸지만 좌측은 광주시 퇴촌면이다 

고원지대 같은 느낌을 주는 넓은 공터를 지나간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가다 암릉구간을 만나고...

등로 가운데 설치된 휀스가 넘어져 지맥의 경관을 훼손시키고 있다

천진암 갈림길(11:20)

천진암으로 내려가는 길로 좌측으로 뚜렸한 등로가 분명하건만 ‘등산로 없음’이란 표시가 되어있다

천진암으로 내려가는 능선이 숭실대학교 학습림이란다

알았소... 내려갈 일도 없지만 너무 자주보니 짜증이 나네요

혹부리 영감(?) 나무를 지나 약간의 오르막으로 오른다

이 대장이 지나간 지 얼마안된 시그널이 따끈따끈하게 보인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18km 가까이 남았구나

이정표 뒤 등로 아래로 천진암이 어렴풋이 보이고...

등로에는 두릅나무들이 자주 보인다... 등산객들이 없으니 봄에 오면 내차지가 될라나 모르겠다.

상상은 자유

473봉(11:40)

등로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송전탑 건설로 형성된 편안 임도를 만난다

송전탑 건설로 생긴 임도에 잣나무를 심어놨다

455봉(11:48)

다람쥐 옹달샘에도 가뭄이라 물이 말랐네요

갑자기 머리 위로 소방헬기가 윙윙거리면서 물바가지를 달고 날아간다.

아마 어디서 산불이 난 모양이다

NO 103송전탑(11:53)

裸木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폭력을 쓰지말고

살아잇는 그 어느것도 괴롭히지 말며

괴롭히는 것도 폭력이며 욕망에 집착하는 것도 폭력이다

비폭력 무소유야말로 수행자의 근본이다

(숫타니파타 中에서)

 

요즘 세상사는 자체가 겁이난다.

아무리 사바세계라고는 하나 물질 만능주의에 물든 인간들이

왜 그리 폭력적으로 人性이 변해가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이 세상에 올 때도 빈 몸뚱이로 왔고 갈데도 빈 몸뚱이로 갈걸

왜 그리 아둥바둥거리면서 살아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오늘 산행중에 저 裸木이 나에게 또 하나를 가르쳐 준다

너무그리 아둥바둥 살지 마시게나 저승갈 때 입고갈 수의에는  주머니도 없다네

467봉(11:55)

우산리 갈림길(12:02)

우측으로는 앵자봉과 함께 부부산으로 불리는 양자산이 시원스레 보인다

우산리 갈림길 능선 아래에는 가건물이 보인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편하게 걸어간다

NO 104 송전탑(12:08)

서낭당 이정표

서낭당(12:10)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와 양평군 강하면 항금리를 잇는 고개로

강하쪽 임도는 넓어서 산악오토바이를 즐기는 라이더들의 즐겨찿는

곳이고 좌측 퇴촌쪽으로는 천진암이 있는 우산리로 내려서는 곳인데

넓고 뚜렸한 등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진암쪽 이정표는 한결같이

‘등산로 없음’으로 표기되어 있고 안부에는 돌무더기와 이정표가 서있다

서낭당에서 조금 올라서니 멋진 소나무  아래에 의자 하나가 있는데

마치 법정스님이 생전에 주석하고 계셨던 송광사 불일암의 삐삐용 의자를 연상케 한다

아무리 갈 길이 바쁘지만 이 멋진곳에 쉬어가야 하지 않겠나

베낭을 내리고 물 한모금 마시면서 잠깐동안 꿀맛같은 휴식을 취한다

등로 좌측으로 성우조경에서 조성한 자작나무 군락지가 있고...

고도를 높이면서 올라서니 나무 계단이 나오고...

등로에서 바라본 양자산의 모습

양자산은 여주시 산북면과 양평군 강하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언젠가 한번 오르고 싶다

양자산의 지명유래는 들판에 버드나무가 즐비하다는 뜻인 양평의 지명과 무관하지

않은데 이 산은 양평에서 남한강 건너로 항상 버드나무와 함께 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다른 설은 소처럼 생겼다고해서 ‘소산(牛山)’이라고도 하는데 앵자봉 북서쪽 골짜기

일원을 소미리라 불리기도 하였는데 소와 뫼(산)의 합성어이다

소뫼가 소미로 불리다가 한자화 하면서 우산리(牛山里)로 바뀌었는데 천지암이 있는 마을이다

 

앵자봉은 꾀꼬리가 알을 품고있는 산세라 하여 꾀꼬리봉으로 불리다가  한자화하면서

앵자봉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으며 옛날에는 각시봉으로도 불리웠는데 양자산을

신랑산으로 하여 부부산이라고 한다

자작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낙엽에 묻힌 봉분이 없는 묘지를 만나고...

봉분이 없는 무명묘지 옆에는 두릅나무들이 정말 많이 있지만 등로 주위라 손이 많이  타겠지

기분죤 쑥영감이 봤으면 침을  질질 흘릴만큼 두릅나무가 많네... 오늘 등로는 두릅이 많이 보인다

424.5봉(12:25)

서낭당 고개에서 이곳까지 치고 오르는데 고도를 높이니 꽤나 땀을 흘린다

봉우리 정상에서 좌측 방향 이정표에는 ‘←2.9km 관음3리 버스정류장’ 표시되어 있다

광주시 퇴촌면있는 관음리(觀音里)는 1923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당시에 관음동(觀音洞),

도장동(都長洞), 절골(寺谷)을 통합하여 관음리(觀音里)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도장동은

옛날부터 내려온 지명인데 지금은 도압동(道壓洞), 도장동(道長洞)이라 기록되는데

이것은 필경 불도(佛道)를 닦는다는 ‘도량(道場)’ 이 변음되어 생긴 지명이라 생각된다

절골(寺谷)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따르는 고승이 사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마을을 절골(寺谷)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힘들게 424.봉에 올라 우측으로 꺽어지니 또다시 편안 등로가 시작되고...

NO105 송전탑(12:32)

송전탑을 지나니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고 우측 능선 아래에는 양지바른 명당자리에 묘지 1기가 있다

다시 약간 안부로 내려섰다가 올라서니...

우측에 부부 묘지인듯한 쌍봉으로 된 묘지 3곳이 나란히 있는데 생전에도 금슬이 좋았던 모양이다

등로 우측으로는 양자산이 계속 보이고...

NO106 송전탑(12:45)

501.3봉(13:03)

편안 능선을 따라 여유로운 걸음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내려가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급경사를 만난

관음산 갈림길인 북대봉에 정상에 도착한다

북대봉 정상 이정표

북대봉(北大峰:480m:13:10)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관음리와 영동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관음산으로

이어지는 삼거리봉에 해당되며 정상에는 휴게용 벤치 2개와 이정표, 그리고

우측 염치고개로 내려가는 곳에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정상에 도착하니 오전엔 불지않던 세찬 바람이 꽤나 불어댄다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山自分水嶺... 1월 1일날 보개산 오름길에서 만난 그 산꾼?

북대봉에서 급경사로 내려서니 잣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잣나무 군락지 가운데로 지난다

임도안부(13:25)

능선으로 올라서자마자 내려서니... 임도가 나오고

U자형 임도에서 우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뚜렷한 등로에서 만난 이정표

다시 임도로 내려섰다가 곧바로 좌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등로 가운데 양지바른 곳에 봉분이 거의 없는 무명 음택을 만나고...

315봉(13:37)

정상에는 N0 110송전탑이 있고 저 멀리 재작년 12월에 걸었던 한강기맥길

능선인 용문산과 청계산, 유명산이 보이고 바로 앞에는 잠시 후 가야할 해협산이 보인다

최근에 송전탑을 설치하면서 생긴 넓은 임도 덕분에 아주 편하게 지맥길을 걷는다

292봉(13:45)

송전탑 설치로 인한 임도로 인하여 봉우리 정상만 달랑 남았다

292봉 정상에 설치되어 있는 NO111 송전탑

3050 알파 산악회 알프스 대장님도 최근에 지나가신 모양이다

J3클럽 시그널도 알프스 대장님 시그널... 암튼 대단하심다

가야할 해협산이 코 앞에 온 느낌이다  송전탑이 있는 292봉에서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에서 다시 등로로 들어서는데 배가 엄청나게 고파온다

얼른 염치고개에 도착하여 라면 먹어야지 생각하니 걸음이 빨라진다

저 멀리 용문산은 짙은 박무 때문에 아련하게 보인다

임도로 내려서자마자 또다시 좌측으로 꺽어져 잣나무 숲으로 접어든다

잣나무 숲을 지나자 차량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염치고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염치고개(鹽峙峴:13:55)
광주시 퇴촌면 도수리에서 영동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88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다
예전에 서해지방에서 생산된 소금이 영서지방으로 운반될 때 넘는 고개라 해서 붙혀진
지명으로 보이며 고개 정상에는 유명한 영동리 약수터가 있다

'영동고개'라고도 하며, 퇴촌면 도수리에서 영동리로 넘어가는 큰 고개를 말한다

 

퇴촌면이 있는 이곳은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한강상수도 보호구역으로 각종 규제에

묶히면서 청정지역으로 유명하며, 천진암이 있고, 토마토 재배로 유명한 곳이다

 

퇴촌면([退村面)이란 지명유래는  조선 시대 개국공신 한산군() 조영무()가

노약하여 정계를 은퇴하면서 광주의 동쪽 마을인 광동리로 와서 말년을 보냈는데,

그의 퇴촌(退)이라는 호가 면 이름이 되었다고 전한다.

『중정남한지』에는 고려 말에 왕씨와 백씨 성을 가진 두 사람의 상서가 조정에서 물러나

이곳에서 살았는데, 지붕을 맞대고 이웃되어 살구나무를 수백 그루 심었다고 하여

상서동() 또는 행방()이라고도 불렀다는 기록이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퇴촌은 동쪽으로 첫머리가 20리 끝이 40리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해동지도』에 퇴촌면 지명과 함께 천진암이 기록되어 있다.

 

영동리(嶺東里) 고개라고 부르는 이곳 지명은 조선조 초기에 광주목사(廣州牧師)가 이곳을

지나다가 동쪽 큰 고개 밑에 자리잡은 마을이라고 했다 해서 '영동리'라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염치고개 약수터

염치고개로 내려서니 가건물 형태의 매점이 있고 유명하다는 약수터가 있는데

이곳 매점에서는 약수터를 관리하면서 파전과, 빈대떡에 막걸리와 엄나무, 옻나무

등 각종 약초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메뉴판에는 라면과 잔치국수 등이 있으나

요즘은 라면과 잔치국수를 판매하지 않고 도토리묵, 파전에 막걸리만 팔고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를 보고 이곳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할 요량으로 베낭을

가볍게 지고 왔는데 참으로 난감하기만 하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라면하나만

끓여주면 안되냐고 하니까 쥔장인듯한 젊은분이 연신 미안해하면서 정중하게

거절을 하는데 방법이 없다

 

마침 그 옆에서 이곳에 놀러온듯한 남녀 4명이 파전에다 도토리묵을 시켜 먹으면서

옆에서 내 사정을 듣고는 배고플때는 막걸리가 최고라 하면서 막걸리를 권한다

나도 시키면 된다고 사양을 하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권하는 바람에 연거푸 3잔을 마신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12km 정도 남았기에 얻어 먹은 막걸리 3잔으로 두물머리까지 가기는 힘들것 같아서

파전을 하나 시키고 베낭에 남아있는 막걸리 한병으로 점심을 대신하는데 쥔장이란 자가 心性이 고운지

라면을 끓여주지 못한게 미안했던지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데 내가 괜히 미안하기만 하다

그런데 가야할 길이 먼데 시킨 파전은 갖다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시간되면 주겠지

파전에다 가져간 막걸리 한병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30분간의 긴 휴식을 취한뒤에

염치고개에서 양평쪽으로 잠깐 넘어 간 다음에 좌측 등로로 올라선다

염치고개 등로입구(14:28)

등로 입구에 세워진 이정목과 등산 안내도

등로에는 산불조심 안내판이 서 있고...

조금을 더 오르니 좌측에 묘지가 있는 등로를 따라 오른다

이윽고 넓은 등로에 올라 좌측의 잣나무 군락지를 바라보며 넓은 임도를 따라서 걷는다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생긴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울산에서 이곳까지... 산에 대한 열정...존경합니다

뭐가 맘에 안들어 저리 가 뒤털렸을까

NO114 송전탑(15:00)

석둔(石屯)마을 갈림길(15:02) 

광주시 퇴촌면 영동리에 속한 마을로서 옛날에 이 곳에서 전쟁이 있을 때 돌로

진을 쳐서 석진(石陣)을 만들었다고 해서 애초에는 '석진'(石陣)이라 했는데

이 말이 변하여 '석둔'(石屯)이 되었다고 하며, 또 일설에는 석씨 성을 가진 장

군이 전쟁에서 전공을 세웠고 그의 후손들이 이곳에 집단으로 거주하게 되었다고

해서 '石屯'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NO115 송전탑(15:06)

염치고개에서 해협산 오르는 길은 이른 봄에 꽤나 땀을 흘려야 오를 수 있는 산이다

거리를 감안해도 길은 좋은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마지막 오름길에 선답자의 시그널들이 힘들어하는 산꾼 범여를 응원한다

해협산 전위봉에 서 있는 이정표

해협산 전위봉(15:15)

해협산이 빤히 보이는 전위봉에 오르니 지나가는 산꾼들이 돌로 만든 돌탑이 있고

이정표에는 해협산 0.95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잠시 후 정상아래는

멋진 비박장소가 보이는데 올 봄부터 한달에 한번이라도 비박을 해봐야 할 낀데

해협산(海峽山:531.7m:15:17)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도수리와 남종면 영동리, 수청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에는 3개의 긴의자와 2등삼각점, 등산안내지도와 태양전지시설이 있다

 

해협산(海峽山)은 남한강(南漢江)과 경안천을 동서(東西)로 해협인 양 끼고있고,

팔당호(八堂湖)안으로 내민 남종면의 반도형 지형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귀여리(歸歟里)의 진산(鎭山)이다

따라서 해협산에 오르면 팔당호의 남한강(南漢江)쪽 조망이 발아래 펼쳐지는 듯한

시원한 느낌을 받으며 한강 남쪽의 위성도시인 용인ㆍ성남ㆍ수원ㆍ광주 사람들이

양평ㆍ홍천ㆍ설악산으로 가려고 할 때 대부분 이용하는 남한강 남쪽 강변도로가

퇴촌면에서 양평군 강하면으로 갈 때 넘는 고개 옆에 솟아 있다

 

해협산의 원 지명은 바답산이었으며 표시석 뒷면에 광주 문화원이 기록한 것을 보면

천지개벽 당시에 온 천지가 물바다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배를타고 피난을 하던 중

정상에 있는 “군두바위”에 말뚝을 박고 배를 잡아 매었다고 하여 해협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경안(앵자)지맥 마지막 구간인 해협산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해협산 정상에 서 있는 등산 안내도

해협산 정상 이정표

해협산 정상의 삼각점 표시판

갈등... 고민...그리고 결단

한남정맥의 용인 문수봉에서 분기하여 이곳 해협산까지는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한 경안(앵자)지맥이 분란(?)을 일으키고 혼란스럽게 하는 곳이 이곳 해협산이다

경안(앵자)지맥의 합수점을 검천리 종여울로 할 것인지, 분원리 두물머리로 할 것인지

산꾼들 사이에 논란거리인데 마치 금남정맥의 합수점을 금만봉에서 부여 구드레 나루인가

아님 군산의 금강하구언인가 하는 하는 문제와 진양기맥길의 날머리가 진주 남강인지

의령의 기강나루인가 하는 논쟁거리와 똑같은  문제가 이곳에서 발생한다

 

전자도 대부분의 산꾼들이 부여와 진주로 빠지듯이 이곳 역시 대부분의

산꾼들이 분원리 두물머리가 아닌  종여울로 가고 있고 맥산꾼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산행지도를 제작하는 진 혁진님도 지도에서 종여울로 표기하였다 

그러나 판단은 각자 산꾼 개개인의 자유에 맡길 뿐이지만 범여는 분원리 두물머리로 향한다  

 

산행 고수인 玄梧님의 자료를 인용 해보면

참고도#1

참고도 #1에서 보듯이 노란색 원으로 표시한 종여울에서 끝나는 산줄기가 잠기는 강은 오롯이

남한강으로 되어 있는 반면 녹색의 원형 부분인 분원리 방향은 분명히 경안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록 해협산~404봉~정암산~종여울로 진행하는 줄기가 해협산~국사봉 삼거리~236.7봉~분원리로

떨어지는 줄기(지도 #3의 노란색 선)보다 더 긴 것 같이 보이더라도-실제는 길지도 않습니다

경안(앵자)지맥의 주줄기는 후자라는 결론입니다.

박성태선생님이나 신경수선생님도 마찬가지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진행을 하여 별 볼일 없는 봉우리 가령 참고도 #2의 236.8m의

삼각점봉 정도만을 지나 직진하여 망조고개 방향으로 가느니 보다는 정암산이라는 멋진 봉우리를 보고

한강기맥과 왕숙(천마)지맥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전자의 줄기가 더 지맥답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산줄기 체계가 공인된 게 없는만큼 어느 방향이 주 지맥이냐 하는 것은 진행하는 지맥꾼들 각자의 몫이라 할 것입니다.

참고도 #2

위 지도의 붉은 선을 따르는 길로 가느냐 아니면 여우고개 방향으로 가느냐는 문제는 답사자의 재량일 것이고.....

그러니까 지맥의 주줄기는 장단(長短)에 상관없이 그 두물머리로 향하는 게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다음 블로그 현오 권태화님의 ‘산줄기를 따라서’ 에서 퍼옴

소나무 쉼터봉(15:30)

해협산 정상에서 이곳 저곳을 두루 구경한 다음에 종여울 방향이 아닌 분원리

방향으로 0.5km정도 내려서니 멋진 소나무가 있는 소나무 쉼터이  나온다

소나무 쉼터봉에 서 있는 멋쟁이 소나무

소나무 쉼터봉에서 내려오니 넓은 임도가 나오고 좌측으로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452봉(15:40)

452봉 정상 직전에서 이정표를 따라 옆사면길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우측으로 내려서면 ‘귀여1리 버스정류장’ 방향이다

 

광주시 남종면 귀여리(歸歟里)는 조선조 말 대한제국 시대에는 귀여리(歸歟里 괘내)ㆍ

귀실(貴實 구실)ㆍ제청동(祭廳洞) 등 3개리로 되어 있고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귀여리로 마을 이름을 정하고 3개 마을을 1개리로 만들었다.
예전에 귀여정(歸歟亭)이란 정자(亭子)가 있었는데 조선조 中宗 (1450년 경)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대사간(大司諫) 예조참판(禮曹參判)을 역임한 한승정(韓承貞)이 낙향하여 남석재에

귀여정(歸歟亭)을 짓고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안노(金安老)와는 동문수학한 관계였으나

김안노가 세도를 부리자 절교하였고, 한승정이 김안로를 탄핵한 일로 미움을 받아

벼슬을 사임하고 귀여리로 낙향하게 된 것이다

낙엽이 푹신한 넓은 등로 내리막길이라 상당히 속력을 낸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9km정도 남았다

대부분의 경안(앵자)지맥 산꾼들이 종여울로 빠지는 바람에 선답자들의 시그널은

구경하기가 힘들지만 광주시에서 요소요소 이정표를 잘 설치해놔서 알바할 염려는 없다 

뒤돌아 본 해협산의 모습

무명봉(15:53)

빠른 걸음으로 바쁘게 무명봉 정상에 오르니  오늘 산에서 처음으로

등산객을 만나는데 등로  가운데 자리를 잡고 비켜주지도 않고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아 조금은 불쾌한 느낌이다 

도수리 갈림길(15:55)

이정표에 ‘←1.2km도수3리(쇠뫼기)’라고 표시가 되어 있다

퇴촌면에 있는 도수리는 조선조 말 대한제국(大韓帝國) 시대에는 도지동(陶池洞)ㆍ

수동리(水東里)ㆍ탑선동(塔仙洞) 등 3개 행정구역으로 되어 있었으나,

1914년 일제(日帝) 강점기에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도지동의 '도'(陶)와,

수동리의 '수'(水)를 따서 '도수리'(陶水里)라고 부르게 되었다.
퇴촌면 소재지인 광동리와 연접해 있는 마을로서 이 마을에 도수초등학교와

광수중학교가 있고 쇠뫼기는 도수리에 있는 유명한 한정식집을 말하는데

얼마나 유명했으면 등로 이정표에 등재되어 있을까.

청국장과 토속 한정식으로 유명한 쇠뫼기의 어원은 ‘ 소에게 여물이나 물을 먹이다’

라는 뜻으로 소장수들이 물이나 여물을 먹이면서 본인들도 쉬어가는 곳이란다

등로가 하도 뚜렸하고 이정표가 잘되어 있긴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빠르게 걷는다

우측으로 난 뚜렸한 우회길을 버리고 좌측 무명봉으로 오르지만 아무것도

볼 게 없어서 다시 우회길로 합류하는데 오늘 산행중에 두번째로 사람을 만난다

조금전에 만난 등산객과는 달리 40대쯤 되어 보이는 남녀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나 역시 반갑다고 인사를 하고 한 동안 같이 등로를 걷는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 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진다

참으로 정겨워 보이는 등로

생강나무가 봄소식을 전하려는가 보다

광수중학교 학생들이 등로에 달아논 새집

등로 우측 아래로는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광수중학교. 도수초등학교 갈림길(16:25)

경안(앵자)지맥길은 직진하여 국사봉 방향으로 향하는데 같이가던 등산객 2명이 먼저 가버린다

해협산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 처음으로 백두사랑 산악회 이 대장의 시그널을 만난다

무명봉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잣나무 군락지가 보이고...

안부(16:35)

광주시 퇴촌면 도수리와 남종면 귀여리를  잇는 희미한 안부에 돌탑이 하나있다.

조금전 앞서가던 남녀에서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버리고 나홀로 걷는다

안부에서 조금 올라서니 검은색 차양을 쳐놓고 전기가 흐르는 철사줄로 둘러놨다 

잠시 후 등로 우측 아래에는 묘지가 보이고 저 멀리 종여울로 향하는 등로에서 만날수 있는 정암산이 보인다
 정암산(正巖山:403m)은 광주시 남종면 귀여리와 수청리, 검천리의 3개 마을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옛부터 전하는 말에 의하면 산의 정상에 큰 바위가 있어 그 바위를 중심으로 검천리와 귀여리를
경계를 이룬다고 해서 정암산이라 부르면 남종면의 진산이다

정암산 아래에 아늑한 분지에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어, 예로부터 살기 좋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팔당호를 마을 앞에 두고 있어서, 영농을 하며 생활 하는데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제약이 많다
152봉(16:38)

152봉에서 국사봉으로 향하는 뚜려한 등로를 버리고 약초 재배지의 검은 차양막 방향으로 내려선

국사봉(國思峯)은 도수리 도지동의 뒤에 있는 산인데, 도수리와 오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 봉우리로

곳에서 옛날 몰락하여 이곳에 와서 우거하던 선비들이 이 산에 모여 나라일을 걱정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측의 약초 재배지 차양막을 따라  계속 내려간다

차양막과 전기 철조망을 따라 계속 내려가지만 도저히 갈수가 없어서 되돌아 온다...우이~~~

논두렁을 건너서 포장도로를 따라서 가마고개로 오른다

가마고개에서 바라본 원 지맥길과 우회길

가마고개(16:50)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금사리와 분원리에 위치한 고개로 조선시대에 남종면은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이 있던 곳으로 왕실에서 사용하는 백자(白磁)와 분청사기(粉靑沙器)ㆍ청화백자ㆍ

철화백자 등을 생산하는 관요(官窯)가 있던 곳으로 유명하였다고 한다

가마고개에서 올라 좌측으로 꺽어지니 등로는 좋다

양지바른 곳에 있는 묘지를 지나니 오름길이 나온다

급경사의 오르막에서 넓은 임도를 버리고 이정표에 표기된 금봉산을 향해 좌측으로 꺽어진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니 다시 편안한 안부 능선이 시작되고...

또 다시 보이는 백두사랑 산악회 이 대장의 시그널

등로 나무가지 사이로 금봉산이 살짝 보인다

236.7봉(17:20)

236.7봉에 있는 깨진 삼각점(△이천 302)

서레아 박건석 선생님께서 금사봉이라 이름을 붙혀 주셨네요

잣나무 군락지가 나오는데 날씨가 어두워지면서 갑자기 발걸음이 빨라진다

금봉산 갈림길(05:20)

여기도 두릅밭이 꽤크다

분원초등학교 갈림길(17:25)

이곳에서 거리를 단축하기 위해서는 분원초등학교로 가도 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칙대로 지맥길을 가고 싶어서 거리는 멀지만 분원레포츠 공원 방향으로 향한다

환경부에서 설치한 상수도보호구역 노란 말뚝도 만나고...

휴계용 벤취 2개와 멋진 구름다리가 보인다

망조교(望朝橋)

망조고개(望朝峴17:40)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금사리와 분원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308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으로 이곳은 붕어찜으로 유명한 남종면소재지가 있는 분원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며, 양평으로 이어지는 도로 곳곳에 카페촌이 즐비하다 

고개의  유래는 조선 초기 개국공신 조영무(趙英茂)가 말년에 퇴촌에 와서 살면서

이 고개에 올라와 태종이 있는 한양을 향하여 망배(望拜)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망조교를 건너니 다시 편안 등로가 나오고...

멋진 벤치 2개가 있는 봉우리가 오늘 마지막 봉우리인 줄 알았더니 눈앞에 또 하나의 봉우리가 보인다

백두대간이나 정맥, 기맥, 지맥 등 어느 하나 편하게 마무리하는 법이 없고, 마지막에 골병이 든다

분원레포츠 공원 0.95km 남았다... 아직도 1km나 남았다니... 아! 힘들다

조금 지나니 좌측으로 로프가 처져있는 샛길을 만나고, 또다시 벤치가 나온다

등로 아래는 강보다도 넓게 보이는 경안천이 도도히 흐른다

드디어 경안(앵자)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104봉에 올라선다

이제 더 이상 갈곳이 없다... 직진하여 지맥이 두물머리에

입수하는 걸 봐야하나 상수도보호구역이라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다 

고수님은 역쉬 달라...

104봉(17:55)

104봉에서 녹색 휀스를 따라서 우측으로 내려가다가 두물머리 합수점을

보고 싶어서 몰래 철조망을 넘어니 또다른 철조망이 산꾼을 가로 막는다

이곳은 아예 CCTV 설치해놨다고 급박을 해놔서 어쩔수 없이 우측으로 내려선다

길이없는 곳으로 내려서니 불에 탄 폐가가 나오고...

폐가로 내려선 선 다음 건물을 바라보며 두물머리로 향한다

분원레포츠 공원

분원리 두물머리(18:05)

10시간 20분의 긴 여정끝에 경안(앵자)지맥은 경안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入水하면서

그 맥을 다하고 이런 희열을 맛보기 위하여 험난하고 고된 여정을 걸어온 게 아닌가

내 짧은 두 다리(足)에게 늘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하며 산행을 종료하고 베낭을 정리한다

두물머리에서 바라본 예봉산의 모습
이곳에서 남한강과 경안천이 합쳐서 조금을 더 흘러가서 북한강이 만나는 또 다른
두물머리(양수리)에서  합수하여 팔당댐을 지나 한강으로 도도히 흐르겠지

분원리 두물머리에서 경안(앵자)지맥을 마치고...분원리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버스 정류장 가는 길 좌.우로는 온 천지가 붕어찜 식당뿐이다

분원리 붕어찜 식당들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는 원래 조선백자 도요지였으나 1976년도 붕어찜 조리법이
경기도 향토지적재산으로 등록되고 1980년대에는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유명해져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는 곳으로 현재 붕어찜 전문 음식점은 총 38개소에 달한다고 한다
나 역시 예전에 점심 먹으러 자주오긴 했어도 민물고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분원리는 예전부터 물이 맑고 깨끗해 붕어가 많이 잡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자연스레 붕어찜을 주 메뉴로 하는 식당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며서 자연스레 음식 테마공원이 돼 버렸다.
붕어찜은 오래 전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보양식 중 하나로 유명하다.

붕어는 비위가 약하고 입맛이 없을 때 먹으면 좋은 음식으로 부기를 가라앉히고

당뇨병과 기침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왕실의 대표적인 보양음식이었던 붕어찜이 아직도

분원리에서는 고유의 비법이 전승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분원리는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에 있는 마을로 대부분의 지대가 비교적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 서쪽은 한강과 접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대추나뭇골, 안골, 장터 마을 등이 있다. 대추나뭇골 마을은 대추나무가

많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안골 마을은 분원리 안쪽에 위치한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장터 마을은 옛날 장이 섰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다

 

이곳 분원은 조선시대에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이 있던 곳으로 기록에 의하면,

이 곳에서 자기번조(瓷器燔造)에 종사하던 사기장(沙器匠)은 380명 정도나 되며,

이들 장인(匠人)들은 자기(瓷器) 제조를 위하여 분원리 주위에 따로 1개 촌락(村落)을

형성하여 살고 있었고, 이들에게 딸린 권속(眷屬)과 기타 인구를 합치면 1,000여 명이

하나의 촌락(村落)에서 생활했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사옹원의 사기장(砂器匠)들은

다른 업종(業種)에 종사하지 않고 그 업을 세전(世傳)하게 되어 있었다.

분원의 사기(砂器)는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상인(商人)들의 자본이 개입되었으며,

19세기에 이르러서는 그 규모가 점차 증대되어 조선조말(朝鮮朝末)인 고종(高宗)21년

(1884)에 결국 상업자본가(商業資本家)에 의하여 민영화(民營化) 되면서

사옹원의 분원은 문을 닫게 되었다 

분원도요지 안내판

분원도요지 표시석과 초등학교 정문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버스가 지나가 버리는게 아닌가... 이곳은 버스가 1시간마다 다닌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배고 너무 고파서 근처 구멍가게에서 소세지에다 캔맥주 하나를

마시고 지나가는 차량을 상대로 히치를 시도하는데 날도 어둡고, 이곳의

차량들은 대부분이 카페나 붕어찜을 먹어로 오는 연인들이 많은 탓인지

30분동안 엄청나게 많은 차량들이 한 대도 세워주질 않고 가버린다

땀이 식으니 춥기도 하여 하는 수 없이 퇴촌 택시를 불러서 10분만에

퇴촌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택시비 4,000원)

퇴촌 버스 정류장(18:50)

퇴촌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20여분을 또다시 기다린 끝에 강변역가는 13-2버스를 탄다

그런데 이 버스는 남한산성, 은고개, 하남 구석구석을 다 돈 다음에 상일동, 고덕동, 천호동

골목골목 돌고 나서 1시간 20분이 되서야 강변역에 도착한다 

강변역(2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