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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일반산행 ♣/梵如의 山行記

고흥의 숨어있는 명산... 두방,병풍,첨산을 찾아서

by 범여(梵如) 2015. 9. 30.

☞ 산행일시: 2015년 9월 29일

산행날씨:맑은 날씨에 한 여름같은 무더위

산행거리: 도상거리16 km / 5시간 2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당곡마을-당곡저수지-용흥사-귀절암-전망대삼거리(왕복)-전망대-암봉-두방산- 암릉구간-코재삼거리

                 봉두산갈림길-너럭바위-병풍산갈림길-병풍산-갈림길- 비조암-삼거리-너덜길-원매곡갈림길-첨산-택촌갈림길

                흥국사-고흥식품공단-매곡리-당곡마을

 소 재 지: 전남 고흥군/  동강면 /  대강리, 매곡리, 한천리

 

추석 명절을 맞아도 딱히 어디 갈데도 없고하여 추석 전날 오랫만에 불알친구 淸眼과 함께 송추계곡에서

출발하여 여성봉, 오봉, 자운봉으로 이어지는 도봉산 구간을 걸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오랫만에 힐링 산행을 하면서 부어라 마셔라 했더니만 몸이 엄청 무겁기만 하다

그리고 습관처럼 매주 목적산행으로 2~30km씩 산행을 하던 濕이 몸에 박혔 있는 탓인지 뭔가 자꾸만 허전하다

추석날 은사스님의 사찰에서 부모님 제사를 모시고 집에 왔다가 시골에 계시는 장모님을 뵈러 오랫만에

그것도 아주 오랫만에 처갓집으로 간다... 혼자 계시는 탓에 요즘 몸 상태가 좋질않아 한달에 한번씩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오시는데도 큰 사위인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도 뵙지 못했다.장모님 역시

큰 사위라 그러신지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시며 우리집엔 오시지도 않고...처갓집에 갔다가 10분 거리에 있는

고흥의 숨어있는 명산인 두방산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당곡(當谷)마을 회관앞(07:30)

처갓집에서 10분 거리인 당곡마을 회관앞에 도착하여 산행을 준비한다

시골 마을치고는 꽤나 큰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농사일을 하는 村老들만

가끔 보일뿐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동강면 매곡리에 속해 있는 당곡마을은 조선시대 중엽 이전까지는 마을 명을

「땅골」이라 불렀으며 그후 棠谷이라고 命名한 뒤 변동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길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

당곡마을 골목길을 지나서 두방산으로 향한다

두방산 들머리(07:35)

두방산 전위봉인 전망대가 보이고...

탐스럽다...찌는듯한 더위에 시달리다가 잠깐 사이에 가을은 벌써 우리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두방산 가는 길에서 만난 수수

당곡마을의 모습

당곡저수지

당곡저수 지입구(07:45)

입구에는 이정표와 함께 두방산 등산 안내도가 있고 등로는 아주 잘되어 있다.

우측으로 가면 용흥사란 사찰이 있는 곳이라는데 0.6km라고 하여 그냥 두방산으로 향한다

당곡 저수지 입구에 있는 두방산 등산안내도

꽤나 많은 등산객들이 오는 모양이다... 띠지(시그널)들이 많이 보인다

두방산 오르는 길은 그야말로 고속도로 수준이다

내가 50여개의 기.지맥을 타면서 가장 개고생한 곳이 이 지역에 있는 고흥지맥인데

이곳은 그 반대이다... 고흥군수 나리는 동강면장에게 등로 관리 기법을 한 수 배워야겠다

여산송씨 묘지를 지나니...

휴게용 벤취도 산꾼 범여를 반기고...

등로에는 씨알이 꽤나 굵은 밤들이 떨어져 있는데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가랴...

베낭을 벗어놓고 정신없이 밤을 줏는데 생각보다 많이 밤을 줏었기에 베낭이 묵직하다

용흥사 갈림길(08:10)

이곳에서는 용흥사까지 0.25km 거리라고 표기가 되어있어 용흥사로 향한다

사찰입구에 있는 운동기구

용흥사(龍興寺) 대웅전(08:20)

한국불교태고종 소속의 사찰로, 전라남도 고흥군 두방산(, 489m)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중종 24년(1529년)경에 어느 도인이 斗榜山 상봉에 "귀절암"이라는 바위동굴에서 약수를 마시다가 부처님을 親見하고 바위옆에 "해조암"이라는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해조암은 일제강점기말기에 소실되었으며 지금은 터만 남았다. 하지만 귀절암 약수는 지금도 흐르고 있는데 피부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현 용흥사는 1930년경에 유둔 사는 서영민 거사가 창건했으나 한국전란때 불탔으며
그후 1953년에 김상호 스님이 다시 건립하여 도량을 확장하고 용흥사(龍興寺)라 칭하였다. 1974년과 1976년도에 대웅전과 종각을 중건하였으며 1980년 스님이 입적한 후 1998년 승범 스님이 법당을 새로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운동기구가 있는 사찰 입구에서 오르막을 오르니 용흥사 삼성각을 만난다.

 절 마당에 들어서면서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대웅전 참배를 위해

대웅전으로 들어 서려는데 아~~~ 글쎄 문이 굳게 잠겨 있는게 아닌가

삼성각 입구에 자동차가 있는걸로 봐서는 분명히 스님이 있을법한데

문을 잠가 놓다니...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참배하러 온 불자를 문전박대하니 그냥 떠널수 밖에...

대웅전을 나오면서 바라본 용흥사 요사채

불경기로 인해 절집 살림이 어려운 모양이다

하기야~~~ 남도지방의 절집 살림이야 다들 어렵긴 마찬가지다

이 지역은 워낙 기독교 세력들이 강하다보니... 그러나 어쩌겠소

스님 힘내소... 그리고 대웅전 문은 꼭 열어두소

다시 갈림길(08:30)

같은 라이온이라 반갑습니다

고흥군에서 두방산 가는길엔 100m 단위로 이정표를 설치해놨는데... 조금 낭비인듯 합니다

용흥사 갈림길(08:50)

두방산 오르는 길은 모두 용흥사로 연결되는지 이번이 3번째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한참동안 치고 오르다 편안한 옆사면길로 두방산으로 향한다

동강면에서 두방산 가는길을 너무 잘 정비를 해놓아 참으로 편하게 길을 걷는다

산이조치요님 기맥, 지맥길이 아닌 이곳에서도 만나네요..반가워요

너덜겅을 지나니...

시누대 숲길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기는 울창한 시누대숲을 통과하여 잘 정리된 등로 올라서니 거대한 암벽(巖壁)이 앞을 가로막는다.

귀절암(09:00)

두방산 전위봉인 전망대 아래에 있는 커다란 암릉으로  암릉 아래에는 동굴 세 개가 뚫려 있는데

그 중에 두 곳은 동굴 깊숙한 곳에 물이 고여 있고 동굴의 상단 바위틈에서 석간수가 떨어져

물이 조금씩 보이는데 올해는가뭄탓인지 물이 그리 많지는 않다.

여기에 고인물이 피부병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약수인데,오늘 물로 봐서는 식용이 불가할듯 싶다

 

이곳 귀절암에는 약수(藥水)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조선 중종 24년(1529년)에 어느 도인(道人)이 두방산 상봉에 있는 귀절암의 바위동굴에서

약수를 마시다가 부처님을 만난 후에, 바위 옆에다 해조암이라는 암자(庵子)를 지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말기에 불에 타 없어진 절터에는 시누대만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또한 도인이 마셨다는 동굴 속의 약수는 피부병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하여 심심찮게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가장 넓은 굴인 이곳은 나홀로 산꾼들의 비박장소로도 좋을듯 싶다

물이 고여있는 약수터

오랜 가뭄탓인지 물이 조금 있으나 수질은 좋지 않은 편이다

귀절암 앞에서 바라본  고흥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첨산(尖山)의 모습

두방산 가는 길에서 만난 이정 구조목

국립공원도 도립공원도 아닌 이곳의 조그만 산이 마치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의 산처럼

이정 구조목과 이정표가 너무나 잘되어 있고 등로 정리도 깔끔하여 참으로 편하게 걷는다

전망대 삼거리(09:05)

엉터리 이정표가 처음 온 산꾼 범여를 상당히 헷갈리게 한다

당곡저수지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두방산 표지판을 100m 단위로 표시를 해놓고

이곳 능선에 오르니 두방산이 한참이나 남았건만 뜬금없이 병풍산이라니... 시정해 주시길...

전망대(09:07)

귀절암에서 급경사를 치고 오르니 돌탑이 있는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의 멋진 암릉이

나오는데 말 그대로 전망대라 고흥반도와 여자만, 팔영산, 그리고  멀리 장흥의 천관산까지 보인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강리(大江里) 두산마을과 고흥반도의 모습

斗傍山 아래 위치한 마을로서 옛날 연못에서 龍이 산으로 올라 등천했다하여 산 이름을

「용각산」이라 불렀고 이 용각산 등성이에는 용뿔이라는 삼각형 긴 바위 두 개가 서 있으며,

李朝 英祖때 泰江을 斜橋里(사교리)라 칭하였으나 高宗 32년 을미개혁에 따라 泰江을 大江으로

改稱하고 본 마을은 斗傍山 중앙에 위치한다하여 斗山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여자만과 동강면 매곡리(梅谷里) 쌍암(雙岩)마을의 모습

昇平朴氏 비문에 의하면 서기 1636년 李朝仁祖 병자호란 당시에는 마을이름을 九都洞이라

칭하였고 그후 貴德골이라 부르다가 별칭 귀뚝골이라 하였으나, 순조(1880년)때 마을뒤

큰 연못가에 큰바위 두 개가 있어 그 바위에서 낚시질을 하였다고 하여 쌍암이라 칭하여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다시 전망대 삼거리로 복귀하여 두방산으로 향한다

전망바위에서 넓은 암릉위를 걸으면서 바라보니 다도해와  저너머 호남정맥 능선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두방산이 0.3km 남았단다

능선에서 바라본 고흥지맥길

내가 걸었던 50여개의 기.지맥길중에 가장 힘들게 걸었고 2번 생각하기 싫은 곳이 고흥지맥이었다

길이 없어서 등로도 힘들었지만 가시와 잡목과의 전쟁으로 정말 고생했기에...

능선 넘어로 봉두산이 보이는데 저 아래가 범여의 처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암릉길 위로 걸어면서 오늘 범여의 두 눈은 산과 바다... 2군데를 다보니 눈이 오랫만에 호강한다

신선대(神仙臺:09:15)

주상절리와 비슷한 기암(奇巖)들이 뾰쪽한 능선을 일렬로 장식하고 龍의 등허리를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인데 또한 덤으로 고흥반도와 좌측의 득량만, 우측의 여자만과

천관산과 운암산, 팔영산뿐만 아니라 바로 앞에 조성과 벌교쪽으로는 호남정맥길에 걸었던

방장산, 주월산, 존제산, 백이산을 바라보며 신선놀음 하듯 걷는 이 길... 신선이 따로 없다

잠시후에 가야할 병풍산이 보이고...

장군바위(09:20)

두방산 오르기 직전에 꼿꼿하게 서 있는 멋진 바위를 만나는데 모습이 장군(將軍)의

기상을 닮았다고 하여 이름붙은 장군바위는 누운 여자의 속눈썹에 해당된다고 해서

눈썹바위라고도 부르기도 하고, 바위가 흔들린다고 해서 흔들바위라고도 한다.

이 바위에는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가 있는데 옛날 이 능선에 100개의 바위가 늘어서 있었는데

산 뒤쪽에 사는 보성 사람들이 바위가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99개를 쓰러트렸으나 장군바위를

쓰러트리려고 할 때 마른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쳐서 남았다는 전설(傳說)이 바로 그것이다

구절초가 많이 보이니 가을은 우리곁으로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두방산 정상에 오르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산꾼 범여를 반기는데

남도땅의 멋진 이 산에 유독 부산사람들의 시그널이 참으로 많이 보인다

두방산(斗傍山·489m:09:25)

전남 고흥군 동강면 대강리, 마동리, 한천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말의 명당자리가 있어 말봉산으로도 불린

두방산(斗傍山·489m)은 옛날 귀절암이 있었기에 귀절산으로도, 임진왜란 때는 낙안군수와 송득운 장군을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서산으로도 불렸으며, 향토사에는 지내산으로도 기록돼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모 방(方)을 쓰는 산이름이 일제 때 곁 방(傍)으로 왜곡됐다.

두방산은 병풍산과 첨산, 그리고 봉두산과 더불어 동강면의 4대 명산(名山)으로 꼽힌다. 1872년 지방지도에 처음으로 지명이 등장하며 두방산(斗方山)으로 표기되어 있고『조선지지자료』『조선지형도』『호남지』에는 두방산(斗傍山)으로 기재되어 있다조선지지자료에는 지리산(智異山), 조선지형도에는 일본어로 둔방산으로 병기되어 있고호남지에는 지래산(智萊山)이라고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산은 흙산(肉山)의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능선은 암릉으로 이루어진 게 특징이다. 덕분에 기암괴석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고, 거기에다 주변의 조망까지 보너스로 즐기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두방산 정상에 오르니 그야말로 一望無際이다... 남쪽으로는 고흥의 진산인 팔영산과

그 너머로 천등산이 좌우 양쪽으로는 고흥반도를 감싸고 있는 득량만과 여자만이 보인다

북동쪽에는 잠사후 걸어야할 병풍산, 비조암, 첨산이 손에 잡힐듯이 가깝고  북서쪽으론

봉두산과 그 너머로 조성면 뒷쪽엔 주월산과 존제산 또 그 뒤로는 제암산과 일림산이 보이고... 

두방산 정상 2등삼각점(△순천24 / 1991 재설)

두방산 정상에서 셀카로 인증샷

잠시후에 가야할 병풍산과 첨산의 모습

두방산 정상에서 바라본 5년전에 걸었던 호남정맥길의 모습

방장산과 주월산, 존제산... 조정래 선생의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무대가 되기도 했던 저 능선을 바라보는 범여의 맘은 착잡하기만 하다

주인공 김 범우의 눈에 비친 좌.우란 뭣이었던가 그리고 좌,우 이념으로

갈라진 염상진, 염상구 형제간의 운명...또다른 남자 하대치... 그리고 한많은 여인 외서댁

저 능선 넘어로 해방후 좌익활동의 극심한 빨치산의 근거지였던 보성군 율어면은

보성의 모스크바로 불리기도 했던 저 곳...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민초들의

영혼이 묻혀있는 저 능선... 그런데 70년이 지난 이 땅은 아직도 분단 국가이니 말이다

 

5년전 호남정맥길에 산행대장을 맡았던 도강재 대장의 고향도 저쪽 어디쯤일텐

의리의 돌쇠처럼 생긴 수더분한 얼굴에 마이크를 잡으면 본인은 웃지 않고

늘 동료 산꾼들을 웃기며 재력있는 산꾼(?)들의 주머니를 털어 산악회 살림에 보태는 멋쟁이

지금은 꼬라지도 못보니... 잘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했으니 잘 살겠지

인연이 있으면 운제 소줏잔 기울이며 꼬라지 한번 볼 날이 있겠지

대서면의 진산인 봉두산의 모습

두방산 저상에서 바라본 득량만과 고흥반도

저 넓은 들은 그 예전에는 전부 바다였는데 둑을 막아서 간척지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을 지나가는 지명이 전부 물과 관련되어 있다. 이드리재, 배거리재,

주월산, 무넘이재 등등... 예전에는 이곳이 강이 아니면 바다였을까?

하긴 백두대간길에 구례의 고리봉은 배를 묶어논 곳이라 했고 낙남정맥길의 함안 여항산도

그와 같았으니...  고흥은 이 순신 장군이 마지막 전사할 당시 노량대전에서 투입된 병사들이

고흥출신들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해전 당시에도 고흥반도는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고흥은 옛 지명이 흥양으로 사면이 거의 바다를 끼고 있어, 전라도좌수영 5관 5포 중에

1관(고흥) 4포(사도진, 여도진, 발포진, 녹도진)를 차지하고 있는 군사요충지였다.

 고흥군에 있었던 1관 4포 옛 지형도
이순신 장군은 임진전란이 일어나기 1년(1591) 전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여 주로 고흥지역에 있는

 1관 4포를 순회하며, 군비확충 및 판옥선을 개조해서 거북선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 1관 4포의 전력은 판옥선 11척과 발포진에 거북선 1척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수군 병력은

1100∼1400여 명으로 임진전란이 발발하자 옥포해전, 사천포해전, 한산도대첩, 부산포해전 등에

참전하여 왜선 330여 척을 격파햐였는데 그때에 아군 사상자 211명 중 131명이 고흥출신

수군들로 알려지고 있다

두방산 정상에서 바라본 여자만(汝自灣)의 모습

여자만(汝自灣)의 원 지명은 고흥만(高興灣)이었는데 일제시대때부터 순천만이라고 불렀다행정구역상으로 순천만은 순천시 해룡면 와온(臥溫) 해변부터 순천시 별량면 화포(花浦) 해변까지의 바다를 말하는데 그렇다면 순천만의 옛 이름 여자만의 유래는?
조선시대의 기록 <낙안읍지(樂安邑志)>에서 지금의 순천만 일대를 "여자만(汝自灣)"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여자 섬(島)'까지가 낙안군(郡) 남아면(面) 관할이었다는 근거 자료에 따라 순천만의 옛이름이 여자만(汝自灣)이었다고 한다

두방산 정상에서 내 베낭으로도 인증샷을 남기고...

내가 가야할 등로의 궤적

두방산 정상 너럭바위를 내려서 병풍산으로 향한다

두방산을 내려서니 다시 멋진 암릉이 나오고 우회길로 가라고 하는데 멋진 仙景을 두고 돌아 가라니...

우회길을 버리고 암릉구간을 오르니 두방산 못지 않은 멋진 풍경이 연출된다

오르지 말라고 경고판을 붙혀놓고 난간을 설치해놓은 건 뭐야... 이걸두고 이율배반이라 하는건 아닌지

암릉길을 내려서니 급경사의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등로 가운데 멋진 노거수 한그루가 산꾼 범여를 반긴다

고흥군 동강면의 등로관리 정말 기가 막히다

고흥군수 나리는 동강면장에게 한 수 배워야 할듯 싶다

고흥지맥길 걸으면서 개고생한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코재(09:45)

두방산에서 급경사로 내려섰다가 아주 편한 등로를 따라서 완만하게 오르니 돌탑 2개가

서있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우측으로는 용흥사로 향하고 직진은 병풍산으로 가는 삼거리

이정표에 코재라고 붙혀 있는데 이렇게 완만한 곳을 코재라니... 지명유래 이유를 알 길이 없다

코재 이정표

코재에서 편안한 능선을 따라서 조금 걸어가니 봉두산 갈림길이 나온다

이정표(코재삼거리(이정표 : 비조암 1.9Km/ 용흥사 1.64Km/ 두방산 0.86Km)가 서있다

봉두산 갈림길(447m:09:50)

봉두산은 고흥군 대서면의 진산으로 우리 처갓집 뒷산이기도 한데 이곳

갈림길에 세래야 박건석님께서 코재봉이라고 코팅지를 붙혀놨다

봉두산(鳳頭山 426m)은 동강면 마륜리와 대서면 개명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산 중턱에는 나와 인연이 있는 관일스님이 주지로 계시는 제석사가 있는 곳이다

너럭바위(10:00)

너럭바위에서 바라본 가야할 비조암의 모습

병풍바위 삼거리(10:05)

길이 두 갈래(병풍바위삼거리 이정표 : 비조암/ 비조암(약자)/ 두방산)로 나뉘고어디로 가든지 비조암으로 가는 길인데 노약자는 좌측 사면(斜面)길로 가라는 얘기인데표현이 등산객을 좀 무시하는 처사이다...비조암으로 곧장 가는 사면길로 진행할 경우 병풍산을건너뛰고 곧장 비조암으로 가게 되는데 우측으로 보이는 가파른 오름길로 진행해야만 병풍산 정상으로 오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병풍산( 屛風山:479m:10:10)

고흥군 동강면 매곡리와 한천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옛 지명에는 지래산(智萊山)으로도 기록되어

있는데 인근 두방산도 호남지에는 지래산(智萊山)으로 표기되어 있어 조금은 혼란스럽다

해남읍의 지형 옥녀탄금형의 병풍에서 유래된 산이라고 하는데 아랫쪽에서는 병풍으로

보이는 모양이나 정상은 그저 밋밋한 특징없는 산처럼 보인다

박선생님 멀리까지 왕림하셨습니다

병풍산에서 바라본 비조암의 모습

병풍산에서 바라본 첨산의 모습

철없는 철쭉

갈림길(10:15)

병풍산 정상에서 갈림길 내려오는 길에서 오늘 처음으로 잡목이 강력한 태클을 걸어온다

아마도 등산객들이 이곳 병풍산을 오르지 않고 노약자들이 다니는 우회길로 다니는 모양이다

또다시 멋진 노거수 한 그루가 산꾼 범여를 반기고...

비조암가는 길은 최근에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았는지 이곳에서 30분동안 씨알이 굵은 밤을

반말정도는 줏은듯 싶다... 베낭이 가득차서 더 이상 줏지 못하고 아쉬운 맘으로 비조암으로 향한다

코앞에서 바라본 비조암의 모습

산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가진 신문사...부산사람들의 산사랑 대단혀요

비조암(飛鳥岩:456m:10:50)

고흥군 동강면 매곡리와 한천리와 보성군 벌교읍의 경계에 있는 암봉으로 정상에는

상당히 넓은 암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30여명이 족히 앉을수 있는 넓은 암릉이다

날아가는 새의 모양처럼 날렵하게 생겼다고해서 하여 붙혀진 지명으로 부인들이

옛날에 머리를 얹은 것처럼 생겼으므로 ‘머리 영근사’ 이라고 했다고 했다

비조암 정상의 모습

비조암 정상에서 바라본 벌교읍과 목포~순천간 고속도로의 모습

비조암에서 바라본 동강면 한천리 운동(雲洞)마을과 여자만의 모습

한천리 운동(雲洞)마을의 유래는 西出東流의 옹달샘 물이 좋아 한때 水洞이라 불러왔으며

宋, 鄭, 李氏 등이 새 터를 잡아 設村 할 때는 修道할 곳을 뜻하여 修洞이라 칭하다가

 비조암이 있는 산 일대에 구름이 많이 끼므로 1956년 리동 행정구역 개편시 雲洞으로

개칭하여 변동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조암 정상에서 바라본 동강면 매곡리 원매곡(元梅谷) 마을의 모습

飛鳥岩(비조암)과 屛風山(병풍산)이 主山을 이루고 東北간에 名山인 尖山(첨산)이 솟아

梅花落地(매화락지)라는 명당이 있어 첨산아래 村落(촌락)을 이루어 한때 尖山洞이라

부르다가 뒷산 주변에 매화가 만발하므로 원매곡이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운동(雲洞)마을 갈림길(10:55)

가야할 첨산을 바라보면서 비조암에서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너덜길을 지나 편한 길을 내려선다

구조 이정목 지나니...

등로 옆에 묵묘 하나를 만나고...

등로는 무지하게 좋다... 동강면장님 넘 고마워요

우측으로 벌목지가 나오고 매곡리가 보이며 그 너머 동강면소재지가 보인다

저곳은 막걸리 맛이 기가 막히게 좋은 동강 막걸리 양조장이 있는 곳인데...

모싯대도 이별을 준비한다

이곳의 모든 이정표는 두방산을 기준으로 되어 있다

안부(11:25)

좌측은 동강면  한천리 운동마을 우측은 매곡리 원매곡 마을로 향하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이곳부터 급경사의 오르막을 따라서 신령스럽다는 첨산으로 오른다

첨산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오늘 내가 걸어온 능선의 모습

첨산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고흥군 동강면의 모습

고흥군 동강면(東江面)은 고흥군 북부에 있는 면으로 면 소재지는 유둔리 이고 지형은

북고남저(北高南低)형으로 북에 두방산(斗傍山,489m), 병풍산(屛風山,481.7m),비조암(飛鳥岩,458m)을

경계로 보성군 벌교읍과 접하며, 북서쪽은 봉두산(鳳頭山,427m)을 중심으로 보성군 조성면, 고흥군 대서면과 닿는다.   

동강면의 기후는 한마디로 하계고온다우(夏季高溫多雨), 동계온난건조(冬季溫暖乾燥)의 특성을 보인다.

급경사의 오름길은 참으로 힘이든다

거기다가 산행길에 줏은 닷되 정도의 밤무게가 너무 무거워 휴식을

취하며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힘들게 오르니 첨산 정상이 나타난다

첨산 정상에서 바라본 벌교읍

'벌교(筏橋)'란 한자 말은 '筏(떼 벌)橋(다리 교)' 즉 '떼다리'란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한 말로서

지금의 벌교읍 벌교리에 있는 '홍교'가 있던 자리에 홍교가 만들어지기 세워지기 전에

사람들이 오갈 수 있도록 나무로 떼를 엮은 뗏목으로 다리를 만들어 사용하였기에

그 지역의 지역을 '떼다리'라고 부른데서 유래가 되어'떼다리'를 한자어로 표기함에서

따라서 '벌교'로 불리워진게 아닌가 짐작이 된다

 

벌교는 행정구역상으로는 보성군 벌교읍에 속하지만 보성읍보다 훨씬크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남도지방 내륙의 물자를 수탈하기 위해서 개발된 곳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낙안고을의 꼬리끝에 매달려 있는 빈촌에 불과했다.

일제시대부터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영화(榮華)를 간직했지만 지금은 인근의

순천, 여수, 광양에 비해 많이 침체되었지만 최근소설 “ 태백산맥”의 주무대 조명을 받는 곳이다

 

교통의 요지였던 탓에 흔히 남도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말로 ‘ 벌교가서 주먹자랑, 돈자랑 하지말고,

순천가서 인물자랑 하지말고, 여수가서 멋자랑 하지말라’  했다고 한다

첨산 정상에서 바라본 고흥의 관문인 뱀골재의 모습

벌교에서 고흥땅을 넘나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고개가 있다.

뱀처럼 구불구불하다 하여 뱀골재라 불리는 고개이다.

이 뱀골재를 막 넘으면 붓끝처럼 뾰족하게 생긴 첨산(尖山)이 보이는데 유교사상을

중시하던 옛날 선비들은 이 산을 대강(大江)의 필봉(筆峰)이라 불렀단다. 첨산(尖山)의

필봉(筆峰)이 두방산(斗榜山)에서 흐르는 대강(大江)의 먹물로 글을 쓰면 천하일필(天下一筆)이라는

속언(俗言)이 있어 선비들이 몰려와 자기의 필적(筆蹟)을 다투어 남겼다고도 한다.

 

특히 마륜(馬輪)은 선비들이 수레를 타고 드나드는 고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동강에 선비들이 많았음을 알려주며 선비들이 과거를 보려고 한양이나 전주 고을에

가려면 반드시 뱀골재를 넘어야만 했다. 이 뱀골재에는 어여쁜 미녀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면 그날이 무사히 지나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재앙이 닥친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착한 선비가 수레를 타고 과거를 보러 가는데 뱀골재 모퉁이에서 어여쁜 미녀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더란다.

 선비는 어여쁜 미녀의 안내로 무사히 시험을 치르고 과거에 급제했는데, 부도덕한 선비가 뱀골재를 지날 때는

큰 뱀이 길바닥에 서리고 있어 도망쳐서 시험장에 갔으나 과거시험에 낙방했다는 이야기이다.

인심좋고 정직한 고흥땅에 들어올 때 부정비리가 많고 시기와 질투, 모함과 배신, 그리고 부도덕을

일삼는 죄를 지은 사람은 뱀골재에 서리고 있는 큰 뱀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괴상한 뱀을 만난 사람은 고흥땅에 와서 불행을 맞게 된다는데 개과천선하지 않고

부정한 사람들을 마을에 들이지 않으려는 조상들의 혼을 느낄 수 있다.

  풍수지리설에 흥양 68혈 가운데 고흥읍으로부터 동북 60리에 비사재수형(飛蛇載水形)의

명혈(名穴)이 있다고 하는데 그곳이 뱀골재 부근일 것이라 추측되며 또 동북 50리에

군왕대좌형(君王大座形 )의 혈(穴)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곳이 동강면 마륜리 지점일 것으로 추측된다.

와우형(臥牛形)인 고흥에서 머리부분에 해당되는 곳이 동강면인데 문필봉을 수문장으로 한

동강면은 많은 관료와 문관, 충효열사가 배출되는 명적지(名蹟地)라고 말하고 있다.

- 고흥문화원 『고흥의 전설』 참조

첨산(尖山:313m:11:50)

고흥군 동강면 매곡리와 한천리, 마동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벌교에서 고흥으로

들어서는 초입에 수문장처럼 뾰족하게 서 있는 산으로 조 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주인공 김 범우 눈을 통해 필봉(筆峰) 또는 신비로운 산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이곳 주민들은 첨산을 신성시하며 함부로 오르지 않고 쳐다만 보는 산이다.

 

1597년(선조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의 막하에서

활약하였던 송대립장군이 의병을 모집하여 분전하다가 순절하였던 곳이 또한 첨산이다.

사람들은 이곳 첨산을 숫첨산, 순천시 별량면 동송리에 있는 첨산(295m)을 암첨산이라 부른다.

별량에 있는 암첨산은 옛부터 국가에 큰 변란이 있기전에 사람 울음 소리와 비슷한 곡성이

난다고 전해지며, 여순사건, 6.25한국전쟁, 80년 5.18때에도 이 같은 소리가 들렸다고 전해 온다

첨산 정상에서의 인증샷

첨산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동강면 한천리의 모습

급경사의 내리막길이지만 등로 관리는 잘되어 있고 돌탑 2개를 만난다

암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택촌(宅村) 갈림길(12:05)

동강면 한천리에 있는 택촌마을은 원래 設村당시 연못을 발견하고 定着하였는데

물이 좋고 못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그때부터 澤田(택전)이라 불러왔으며, 또 찬물

水源이 많아 寒泉이라고 했으며 1956년 리동 행정구역개편시 집"宅"자로

바꾸어 宅村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택촌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흥덕사 방향으로 향한다

흥덕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흥덕사(興德寺:12:15)

고흥군 동강면 매곡리 첨산 아래에 있는 사찰로서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조선조 영조 52년(1776년) 당시에 첨산의 북쪽 중간에 낙안사가 있었고

남방 중간에 흥양사가 있었다고 하며 현재의 사찰은 산 위에서 미륵불이

굴러 내려와 현재의 절터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1929년까지 첨산사(尖山寺)라고 부르다가 1980년도에 흥덕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흥덕사 범종각

흥덕사 대웅전

흥덕사 가람의 모습

요사채에는 외출중이라는 팻말이 붙어있고 대웅전도 굳게 잠겨있다

흥덕사를 빠져나와 아침에 출발했던 당곡마을로 향한다

흥덕사를 내려오니 첨산 아래에 태양광이 설치되어 있는데 첨산과는 언밸런스다

경제적인 가치가 얼마나 있는지는 몰라도 산꾼이 보기엔 신령스런 첨산의 경관을 망쳐놨다

벌교에서 고흥으로 이어지는 15,27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고흥청정식품단지 입구(12:25)

15번 국도 구길을 따라서 무한정 걸어간다

첨산동(尖山洞)이라 불렀던 원매곡(元梅谷)마을 버스 정류장도 지나고...(동강면 매곡리 소재)

15.27번 구(舊)국도 좌측에는 신(新) 국도가 시원스레 지나간다

쌍암(雙岩)마을 버스 정류장(12:40)

쌍암마을 지나 T자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당곡마을로 향한다

당곡마을 이정표(12:42)

도로에서 바라본 비조암(좌측)과 첨산(우측)의 모습

두방산 주차장12:50)

등산객들이 많이 오는지 주차장과 화장실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두방산 등산 안내도

아침에 출발했던 두방산 등산로 입구까지 원점회귀하여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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