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변천과 자연환경 이동면은 조선시대 영평현에 소속되어 동면(東面)이라 부르다가 1895년(고종32년), 영평현이 포천군에 병합되면서 동면을 둘로 나누어 포천군 이동면이 되었다. 1896년(고종33년), 영평이 포천군에서 다시 분리됨에 따라 영평군 이동면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재편성에 따라 영평군이 포천군에 통합되면서 포천군 이동면이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더불어 38선 이북으로 북한 치하에 들어가 철원군에 소속되었다가 6.25때 실지(失地)회복이 되어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 임시 조치법에 의거 포천군 이동면으로 회복되었다. 처음 명칭인 동면은 영평현 동쪽에 있다하여 동면이라 부르다가 둘로 나누어 남쪽은 일동면(一東面), 북쪽은 이동면(二東面)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동면의 총면적은 104.13㎢로 포천군에서 두 번 째로 넓은 면(面)인데 임야가 80%나 되는 산악지대이고 인구는 1998년 12월 말 현재 8,360명이다. 관할 법정리는 장암리, 도평리, 연곡리, 노곡리 등 4개리이다. 지리적으로는 포천군 북단에 위치하며 서쪽으로는 영북면, 동쪽으로는 가평군 및 강원도 화천군과 인접하여 있고 남쪽으로는 일동면, 북쪽으로는 강원도 철원군과 인접되어 있다. 동쪽 강원도와의 경계에는 백운산(白雲山), 가평군과의 경계에는 국망봉(國望峰)의 높은 산이 연이어 있고, 북쪽 강원도와 의 도계(道界)에는 광덕산(廣德山)과 자등현(自等峴), 명성산(鳴聲山)의 연봉이 솟아 있으며 서쪽에는 관음산(觀音山)과 사향산(麝香山)으로 둘러 싸여 있다. 또한 그 여맥이 면내(面內)로 뻗어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다. 광덕현, 백운산, 자등현에서 발원한 영평천, 백운 계곡은 경관이 수려하여 옛부터 시인 묵객들의 발자취가 끊이지 않던 곳이며 지금은 국민관광단지로 지정되어 국내외 관광객의 각광을 받고 있다. 교통은 서울에서 퇴계원을 경유하여 금화로 이어지는 47번 국도가 남북을 관통하고 또한 이동에서 성동을 거쳐 서울, 철원, 연천으로 통하는 도로가 발달되어 편리한 곳이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쌀, 잡곡 등이 생산되며 높은 산에서는 자연생 각종 나물, 약초, 버섯 등이 난다. 자연생 송이도 채취되며 또한 사향노루의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연곡리에 김성대(金聲大), 김성발(金聲發), 김성옥(金聲玉)과 김평묵(金平默)을 배향한 동음사(洞陰祠) 및 흥룡사(興龍寺)의 석조 부도가 있으며 도평리에는 수복 기념비가 있고 선적사지(善積寺址)와 약사지(藥寺址)가 있다. 이 고장은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은 세 가지 자랑거리가 있는데 첫째, 국민 광광지인 백운 계곡과 둘째, 이동막걸리 셋째, 이동갈비가 그것이다. 공공기관으로는 면사무소, 파출소, 우체국이 있으며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 장암리(場岩里) 이동면의 면소재지가 되는 곳으로 본래 영평군 주지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응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장암리라 하였다. 장암의 의미는 마당바위라는 뜻이 되는데 이것은 소나 말이 여물을 먹는 장소를 말하는 것이며 이러한 내용을 말해 주는 것으로 천자문에는 白(흰 백), 駒(망아지 구), 食(밥 식, 먹을 식), 場(마당 장, 장터 장)이라는 글귀가 있다. 이러한 지명이 생긴 이유는 이 곳에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 즉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상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며 이름에 어울리게 장암리에는 전국 최대의 소갈비 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 덕 재 장암리 맞은 편 영북면 산정리와 경계에 위치한 고개 이름으로 덕은 닭장을 한자로 표기한 말이며 옛날에는 마굿간에 닭장을 만들어 왔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 매바위 장암리 입구에 위치한 바위 봉우리 이름으로 그 형상이 장암리 쪽에서 바라보면 고개를 돌려 사향산을 바라보는 매와 흡사하며, 이러한 지명이 생긴 이유는 인접한 연곡리가 상징하는 제비 또는 노곡리가 상징하는 기러기와의 상대적 개념을 나타내는 것이다. ? 여우고개(狐峴) 장암리와 영북면 산정리 경계에 위치한 곳이며 덕재와 인접한 곳으로 덕재가 의미하는 닭장을 침범하는 여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우가 닭장을 침입하여 닭을 잡아먹는 내용은 많이 들어 온 옛날 이야기 소재중 하나이다. ? 가는골 새가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인 새골의 발음이 변하여 세골(細谷), 즉 가는 골이란 전혀 의미가 없는 이름이 된 것이다. ? 뒷둔지 가리산 아래 위치한 곳으로 군사들이 머물러 있는 곳을 주둔지라고 하는데 이 곳의 위치가 마을 뒷편에 위치하여 뒷둔지라는 이름이 생긴 듯이 보인다. ? 배선동(배상골) 마당바위 동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덕재의 맞은 편이 되며 새가 날개를 부채 모양으로 펼치고 나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비선동(飛扇洞) 또는 비상골(飛上谷)로 고쳐 써야 되며 이곳의 위치가 덕재의 맞은 편이 되어 닭(鷄)을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 안동네 마당바위 동쪽에 있는 마을로 도마치(度馬峙)가 의미하는 말(馬)의 안장을 상징하는 것이며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을 말하는 것이다. ? 가골(歌谷) 배선동 뒤에 위치하였으며 새가 골짜기에서 노래한다는 내용이다. ■ 도평리(都坪里) 이동면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도원동(桃原洞) 또는 도리평(桃李坪)으로도 불리었는데 고종 32년(1895년) 지방관제 개정때 영평군 이동면 도평리로 바뀌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때 포천군에 편입되었다. 도원동이란 옛날 전설에 나오는 신선(神仙)이 산다는 무릉도원(武陵桃原)을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이름이 생긴 이유는 이곳에는 옛부터 운중선좌형(雲中仙坐形)이라는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구름 가운데 신선이 앉아 있다는 뜻이 되는데 신선은 천도(天桃) 복숭아를 먹고산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중궁의 고전(古典)인 서유기(西遊記)에 보면 손오공은 하늘에 있는 복숭아 과수원지기였다. 이 과수원에는 세 종류의 복숭아가 있는데 각 품종을 1천2백 그루씩 세 줄로 심었다. 앞 줄 1천2백 그루는 3천년에 딱 한번 열매가 열리는데 이것을 먹으면 선술(仙術)에 능하고 몸이 민첩하며 가벼워진다. 가운데 줄에 심은 1천2백 그루는 겹꽃이며 6천년에 한 번 열매가 열린다. 이것을 먹으면 안개를 타고 승천하며 불로장생(不老長生)한다. 맨 뒷줄에 심은 1천2백 그루는 9천년에 한 번 열매가 열리는데 얼룩반점이 있고 씨는 아주 작다. 이것을 먹으면 천지일월(天地日月)과 수명(壽命)을 견줄만큼 영생불사(永生不死)한다. 손오공은 이 세 가지 복숭아를 배불리 먹어 오래 살았으며 각종 술법에 능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고 삼천갑자 동박삭(東方朔)은 하늘의 서왕모(西王母)가 한 나라 무제에게 선물한 아주 귀한 복숭아를 슬쩍 가로채 먹어 삼천갑자나 살았다는 전설도 있다. 도평리의 도(桃)는 바로 그 천도 복숭아를 뜻하는 것이며 평(坪)은 신선이 있는 곳이니 평화로운 장소 즉 무릉도원이라는 뜻이 된다. ? 구정보루 도평리 남쪽 도평교 인근에 위치하였으며 길가에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진 것으로 그 형상이 거북이가 목을 길게 빼고 엎드려 있는 모습이라 하여 거북이가 머물러 있다는 뜻으로 구정동(龜停洞) 또는 구정지(龜停址)라고도 부른다. ? 도마치(道馬峙) = 度馬峙 도평리와 가평군 북면 사이에 위치한 고개 이름으로 말(馬)이 지나갔다는 뜻이 되는데 이것은 풍수에서 산맥이 흐름을 말하는 것으로 도마치를 지나온 말이 장암리쪽 물가로 물을 마시러 온 형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 새 말 덕재 아래에 위치한 마을 이름으로 새가 있는 마을 즉 새마을이 줄어서 된 것이며 여기에서 말하는 새는 덕재가 의미하는 닭을 일컫는 것이다. ? 감투봉(監鬪峰) 도평리 서쪽에 위치한 높이 603.9m의 산으로 감투의 의미는 옛날 벼슬하던 사람이 머리에 쓰던 것으로 우리가 보통 이야기 할 때 벼슬한 것을 감투를 썼다고 표현한다. 이 산에는 금관옥대형(金冠玉帶形)이라는 명당 자리가 있다하여 이러한 이름이 생긴 것이며 머리에 쓰는 것은 관(冠)이요, 허리에 두르는 허리띠를 옥대(玉帶)라 부르며 원래의 발음은 감두(감頭)로 쓴다. ? 박달봉(朴達峰 799.6m) 운중선좌형(雲中仙坐形)의 주산(主山)이 되는 것으로 밝은 달이라는 뜻이며 달(月)은 옛부터 여성(女性), 또는 왕비(王妃)를 상징하는 것인데 전해 오는 말에 운중선좌형(雲中仙坐形)은 아홉 명의 정승(政丞)과 여덟 명의 장군(將軍)과 세 명의 왕후(王后)가 나오는 명당자리라 하였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삼 왕후를 상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 백운산(白雲山. 904.4m) 운중선좌형(雲中仙坐形)의 조산(祖山)이 되는 것으로 대동여지도에 보면 이 백운산이 원래는 운악산(雲岳山)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두 곳이 모두 구름을 뜻하는 것이기에 의미상 큰 차이는 없을 듯싶다. 그리고 이렇게 된 것은 일제가 식민지 지배의 편의를 위한 조치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백운산은 물이 맑고도 그윽하며 산세가 기이하고 빼어나다. 골짜기 밖에는 선유담(仙遊潭)이 있고 골짜기 안에는 조계폭(曹溪瀑)이 있으며 또 앞으로 나아가면 태평동(太平洞)이 있다. 선유담 옆은 도리평(桃李坪)이니 옛날 동은처사(洞隱處士) 이의건(李義健1533 ~ 1621)공이 살던 곳이며 현재의 도평리는 도원동과 도리평을 합쳐져 생긴 이름인 듯싶다. 시내를 끼고 완의대(玩의臺)와 타맥암(打麥巖) 명월기(明月磯) 등의 승경이 있어 모두 맑은 물줄기가 깎아지른 벼랑을 끼고 흘러가는데 모두다 문간공(文簡公) 김창협(金昌協 1651 - 1708)께서 이름을 지은 것이다. 그리고 전국에 백운산이라는 이름이 여러 곳 있는데 이들은 모두 풍수에서 말하는 학(鶴)이나 신선(神仙)과 관련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이곳 백운산은 그 중의 하나인 신선을 상징하는 것이다. ? 도덕골 바깥 약사 뒤에 있는 골짜기로 닭장을 지나갔다는 의미가 되어 닭의 포란형(抱卵形)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 벌골(伐谷) 도마치 남쪽에 있는 골짜기 이름으로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골짜기에 숨어있는 적을 공격한다는 의미이다. ? 가리산(加里山.774,3m) 도마치 남쪽에 위치한 산으로 가리의 의미는 칼(劍)의 발음이 연철된 것이며 장군이 깃발을 세운 모습이라고 하여 장군건기(將軍建旗)라고도 불리우는 산이다. 봉우리 끝이 두 개로 갈라져 있어 옛 날 청룡도(靑龍刀) 모양과 닮았다 하여 칼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름에 어울리게 산세도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갈마음수형의 주산(主山)이 된다. ? 형제고개 도평 삼거리에서 약사 쪽으로 첫 번째 위치한 고개 이름이며 두 개의 고개가 연이어 있음을 말하는 것인데 현재는 도로 포장 관계로 인하여 두 개의 고개가 평평하게 이어져 형제고개라는 이름을 무색케 한다. ? 작은 새목 형제 고개 넘어 우측 골짜기에 위치한 곳으로 비봉형(飛鳳形)을 상징하는 것으로 암컷의 짧은 목을 의미하는 것이다. ? 큰 새목 작은 새목과 인접해 있으며 작은 새목이 암컷임에 비해 큰 새목은 수컷을 상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 금우소(金牛所) 도평리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황금소라는 뜻인데 여기에서 황금은 실제의 색깔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행(五行)의 의미로 해석한 것이며 와우형(臥牛形)을 상징하는 것이다. ? 오양골 금우소와 인접한 곳에 위치하며 소를 기르는 장소인 외양간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다. ? 광덕고개 백운동에서 화천군 사내면 광덕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고개 북쪽에 있는 광덕산(廣德山. 1046.3m)이름에 연유한 것이며 광덕의 의미는 첫째 넓은 닭장이라는 광덕이 있고 또 하나는 풍수지리학에 나오는 용어로 천광하림(天光下臨) 지덕상재(地德上載)의 줄인 말로 하늘의 빛, 즉 일월성신(日月星辰)이 내려 비취고 땅의 덕을 높이 쌓는다는 뜻이 되어 귀한 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 연곡리(燕谷里) 본래 영평군 주지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도포리, 장암리 일부와 일동면의 사당리 일부를 합하여 연곡리라 하였다. 현재 일동면 사직리와 경계에 위치한 곳으로 제비가 있는 골짜기라는 뜻인데 풍수지리학에서 말하는 연소형(燕巢形)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제비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심 재 장암리와 경계에 위치한 곳으로 새고개 또는 새재라는 뜻인데 연곡리가 의미하는 제비와 맞은 편 매바위가 의미하는 매가 새(鳥)임을 말하는 것으로 새고개 또는 새재로 불리던 것으로 한자로 잘못 번역하여 신재(新峴) 또는 심재라는 전혀 의미가 없는 이름이 된 것이다. ? 조안동(鳥安洞) 제비울 북쪽에 위치하였으며 새가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을 말하는 것으로 자신의 둥지에 앉아 있으니 편안하다는 것을 상징하는 내용이다. ? 도성고개(道城峙) 제비울에서 가평군 북면 적목리로 넘어 가는 고개이다. 이것은 가평군에 있는 장군대좌형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도성고개와 인접한 곳이 북면(北面)의 북은 군사들의 신호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며 북면에 있는 적목리는 말을 기르는 소년인 목동(牧童)을 백둔리는 군사들의 주둔지를 상징하는 것이 되며 도성고개는 바로 이러한 지명과 연관이 되는 것으로 군사들의 방어시설물인 성(城)을 상징하는 것이다. ? 산수골 산에 있는 새의 둥지라는 산소골(山巢谷)의 발음이 변화된 것으로 여기에서 말하는 새는 연곡리의 제비를 상징하는 것이다. ? 안장봉(鞍裝峰) 제비울 동쪽에 위치한 산이며 인접한 가평군의 적목리가 의미하는 말(馬)의 안장을 말하는 것으로 장군을 상징하는 것이다. ? 작은 둔지 큰 둔지 제비울 마을 뒤편에 위치하였으며 군사들이 머물러 있는 것으로 안장봉이 의미하는 장군의 부하를 말하는 것이다. ? 쓰레골 제비울 뒤편에 위치한 골짜기 이름으로 새가 둥지로 날아온다는 의미인 소래골(巢來谷)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다. ? 신새부리 새의 주둥이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서는 연곡리가 상징하는 제비의 부리를 말하는 것인데 신새는 새라는 말이 중복된 것이다. ? 연병골(鍊兵谷) 쓰레골 남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장군의 부하인 병사(兵士)를 훈련시킨다는 의미이다. ? 마산버덩(馬山坪) 제비울 동쪽에 위치한 곳이며 버덩이란 좀 높고 평평한 지형을 의미하며 마산은 장군이 타는 말(馬)을 상징하는 것인데 이 역시 인접한 적목리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 근처의 지형도 버덩이란 이름과 같이 고원(高原) 형상으로 넓고 평평하다. ? 장좌동(長좌洞) 장군이 있는 고을이라는 뜻으로 장군대좌형을 말하는 것이며 지역에 따라 장자말, 장재울 등으로 불리운다. 따라서 한자 표기도 將坐洞으로 고쳐 써야 한다. ? 여우고개 제비울에서 ?소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이며 ?소는 계웅소(鷄雄巢), 즉 수탉의 둥지라는 말로 닭의 둥지를 침입하는 여우를 상징하는 것이다. ? 흑석평(검은 돌배기) 옛날 군사들이 사용하던 무기인 칼(劍)을 상징하는 것으로 검바위라고 한 것을 검은 바위라는 뜻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며 검은 돌은 오석(烏石)이라 부른다. ? 진전동(榛田洞) 장자골(將者谷) 인근에 위치한 곳으로 군사들이 진지를 구축하고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한자 표기도 陣戰洞으로 고쳐 써야 한다. ? 봉우재 심재 위쪽에 있는 고개 이름으로 봉오재(鳳梧峙)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며 봉황(鳳凰)과 오동나무를 상징하는 것이다. ? 오동골 오동나무가 있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봉황이 둥지를 짓는 장소를 상징하는 것이다. ? 진 등 군사들이 산등성이에 진지를 구축했다는 의미이다. ■ 노곡리(蘆谷里) 본래 영평군 주지면 지역으로 갈월 또는 노곡리라 하였는데 이것은 갈대 숲을 말하는 것으로 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 즉 모래밭에 내려앉은 기러기 형상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며 갈월은 갈대(蘆)와 달(月)이라는 뜻으로 기러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 낭유동(狼踰洞) 사향산 자락에 위치하였으며 사향산(麝香山)이 상징하는 노루가 숲에서 나오는 것을 잡아먹으려 길목을 지키고 있는 이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리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 되어 한자표기 狼有里로 고쳐 써야 한다. ? 사향산(麝香山. 664.5m) 노곡리의 주산(主山)이 되며 영북면 산정리와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664.5m의 비교적 낮은 산이지만 정상부분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산세가 가파라 웅장해 보인다. 사향이란 원래 노루 배꼽의 향기를 말하는 것인데 보통 사향노루의 배꼽으로 인식을 하며 사향산이란 이름은 노루형상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 응산말 응암산(應岩山) 남쪽 영평천 가에 있는 마을로 응암산의 이름에서 연유한 것이다. ? 관음산(觀音山. 733m) 일동면, 영북면과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관음이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사승예불형(師僧禮佛形). 즉 승려가 부처님께 불공(佛供)을 드리는 형상의 명당자리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 갈골벌 노곡리 앞에 있는 들을 말하는 것으로 노곡리라는 한자 이름을 우리말로 해석한 내용이며 벌의 의미는 기러기가 내려앉은 들판을 상징하는 것이다. ? 갈미봉 갈월 북쪽에 있는 산으로 갈대가 있는 산이라는 갈뫼의 발음이 변화된 것인데 갈대는 실제로 산에 나는 식물이 아니기 때문에 기러기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지명이다. ? 곰에골 낭유리 뒤편 사향산 자락에 있는 골짜기 이름으로 고무골(高舞谷)의 발음이 변화된 것이며 높은 곳에서 춤을 춘다는 뜻으로 날짐승인 기러기를 상징하는 것이다. ? 복호골(伏虎谷)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을 말하는 것으로 사향산이 의미하는 노루와 상대적 개념의 지명이다. 옛부터 호랑이가 있는 곳에는 호랑이의 먹이가 될 수 있는 산돼지나 노루가 많다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 사향골(새앵이) 관음산과 사향산 사이에 위치한 골짜기 이름으로 사향노루를 말하는 것이며 새앵이는 사향노루가 사양이로 다시 새앵이로 변화된 것이다. ? 송 이 낭유고개 인근에 위치하여 사양이가 생이로, 다시 송이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변화된 것이다. ● 참고서적 ● 포천군지 포천군지편찬위원회 향토문화 유적 사료집 .제2집 (지명유래) 포천문화원 꽃은 남성이다. 도서출판 다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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