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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지명 유래

여주군 흥천면의 지명 유래

by 범여(梵如) 2016. 1. 2.

흥천면의 지명 유래

흥천-면(興川面)

〔면〕여주군 1읍,8면의 하나.

본래 여주군의 지역으로서 긴 내(복하천: 도 산천)가 있으므로 길천면(吉川面)이라 하여 효지(孝池),

상백양(上白羊), 하백양(下白羊), 귀래(歸來), 율동(栗洞), 부극(釜極), 오근(悟根), 신은(莘隱), 청당(靑唐),

대왕(大旺), 양화(楊花), 구양(九陽), 왕대(旺垈), 백석(白石), 내안(內安), 번두(番頭), 도동(都洞)의 17개

동리를 관할 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구양, 왕대, 백석, 내안, 번두, 도동, 신은의

7개 리를 능서면에 넘겨주는 동시에 흥곡면(興谷面)의 하다(下多), 복대(卜大), 내사(內絲), 충신(忠信),

신촌(新村), 문암(文岩), 조장(照章), 외사(外絲), 상다(上多), 의 9개 동리와 금사면(金沙面)의 궁리(宮里)

일부와 이천군 백사면(柏沙面)의 현암리(玄岩里), 온방리(溫方里) 일부와 같은 군 부면(夫面)의

대왕리(大旺里) 일부를 병합하여 흥곡과 길천의 이름을 따서 흥천면 이라 하여 효지, 상백, 귀백, 율극,

신근, 대당, 하다, 복대, 내사, 양촌, 계신, 문장, 상대, 외사, 다대의 15개 리로 개편 관할함.

동쪽은 대신면과 능서면, 남쪽은 능서면과 이천군 부발면, 서쪽은 이천군 백사면, 북쪽은 금사면과 대신면에 닿음.


복하천(福河川)
이천군 이천읍 백사면, 부발면을 끼고 흘러, 郡의 흥천면을 관통하는 하천이다.
이 복하천은 흥천면의 다대리, 효지리, 대당리, 하다리, 귀백리에 너른 들판을 펼쳐 놓고,

또 그 농업 용수를 공급하며 여강에 흘러드는데, 수량의 크기에 비해 천정천이 잘 발달되어,

모래의 유실이 많은 편이다.

제1절 복대리(卜大里)
ㆍ갈여울고개(구전자:이승렬 69세)- 양촌 북쪽, 양촌 에서 계신리로 가는 고개길


※갈(가 邊)+여울+고개
ㆍ고름물- 음촌 동북쪽, 음촌위에 있는 샘물로 항시 샘이 마르지 않는 논고래


※고랫물→고름물
ㆍ긴고래- 동촌 서쪽, 복대리 입구에서 빗저리까지의 긴 논고래


ㆍ낡은터- 석계울 서쪽, 석계울 앞 예전에 부락이 형성되어 살던 곳.


※날근- 헌 것(오래된)
ㆍ능경수(구전자:이범렬63세)- 음촌과 양촌 사이, 음촌과 양촌 사이에 있는 빨래우물로 옥녀의 거울에 해당된다.

 

※능(陵능선)+경(境경계)
ㆍ다뱅이(구전자:이승렬69세)- 양촌 아래(남쪽), 양촌 아래 산모랭이


※다=달(達)(산이나 들)
ㆍ당마루재(구전자:이범렬63세)- 동촌 서북쪽, 양지편 뒷산 오른쪽 산등성이


※ 당(산)+마루(정상)
ㆍ동백골(구전자:이승렬69세)- 동촌 서쪽 장바구니 건너편 논고래


※동(東)+백( 明)
ㆍ동촌(東村) (구전자:이범렬63세)- 음촌 서쪽, 양지편 동쪽에 있기 때문에 동촌이라 부른다.


ㆍ동구미산 (구전자:이승렬69세)- 동촌 남서쪽, 웃밤실위에 있는 동그랗고 작은 산


ㆍ뒷골 (구전자:이승렬 69세)- 동촌 서쪽, 양지편 앞에 있는 논고래

 

※뒷(뒤)+골(고래)
ㆍ등잔모랭이- 석계울 남쪽 석계울 앞산 모랭이


※등(산등)+잔(작은)
ㆍ등잔바위- 석계울 남쪽, 등잔모랭이에 있는 큰 바위


※등잔 모랭이 참조
ㆍ마그니(마구실) (구전자:이범렬63세)- 석계울 남쪽, 약300년전 최씨가 살았는데 비복들이

반란을 해서 모든 것을 쉬논에 묻어버리고 도주하여 충복이 도령을 살려 냈다고 하는 골짜기


※마구(막힌) ※쉬논(수렁논)
ㆍ망심(忘心)- 동촌 남쪽, 괴로움을 잊어버린다는 곳으로 주네개울 앞산 모퉁이 논고래
ㆍ매봉재- 동촌 북쪽 , 양지편 뒷산봉우리로 예전에 매로 사냥을 하던 곳 (응봉)
ㆍ복대리(卜大里)-효지 북쪽, 본래 여주군 흥곡면의 지역으로서 복대굴 또는 북대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복대리라 하였고, 단위 부락으로는 동촌, 음촌, 양촌, 석계울이 있다.
ㆍ분터골 (구전자:이승렬69세)- 음촌, 남쪽, 쇠고개 밑 오른쪽에 있는 논고래


※솟은산 밑에 있는 골(붇(솟은 산)이 분으로 변음)
ㆍ빗저리 (구전자:이범렬63세)- 동촌앞 논고래, 남산밑 양지편 건너편 논고래로 빗모양으로 생겼음.


※빗= 비탈(경사진 곳)+저리(자리, 터)
ㆍ사삭재- 동촌 북쪽, 양이편 뒷산 오른쪽 산등성이


※사(새問)+삭(요철이 없는 평평한)
ㆍ새터골- (구전자:이승렬69세)동촌 서쪽, 뒷골과 여사위 가운데 있는 골짜기로 옛날 부락이있던곳.

 

※새터(새로 新)
ㆍ샘치굴- 석계울 서쪽, 석계울 앞산너머 샘이 나는 논고래

※ 샘치(샘)+굴(고래)
ㆍ석계(石溪)울- 음촌 동쪽, 마을안 모퉁이에 100여평 노출되어 있고, 바위가 흐르는 형상으로 되어있어

마을 이름이 석계울로 불리어 지고 있다.


※돌개울이 아니면서 석계라고 부르는 것을 돌내( 回川 빙돌아 흐르는 내)를 한자로 쓰면서

돌아 흐른다는 뜻을 돌석(石) 시내계(溪)로 썼다.
돌개울(回川) → 돌개울(石溪)
ㆍ섭바탱이- 음촌 남쪽, 주네개울 앞산


※섭- 어떤 물체나 물이 빠지거나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로 막는 것을 말한다.

(울타리를 위한 나무를 울섭 개천에 보(洑)를 막기 위한 나뭇가지 등을 보섭이라고 부른다.

눈 위에 눈썹도 여기에 기인한 것이다) 바탱이= 터전 터의 뜻이다.


ㆍ쇠고개- 음촌 남쪽. 하다리에서 복대리로 넘오는 길로 험한 고개
※쇠=새(새로) (쇳재, 쇠고개, 쇠치, 쇠실)
ㆍ안골- 동촌 남서쪽. 동촌 서쪽 남산밑 골짜기


※안(내부 內部)+골(골짜기)
ㆍ앞내- 석계울 옆 개울로 복하천 하류

※앞(前面)+내(川)
ㆍ양지편 (구전자:이범렬 63세)- 동촌북쪽 매봉재 밑에 해가 가장 많이 비치는 곳.


※양지(陽地)+편(한쪽 )
ㆍ양촌(暘村) (구전자:이승렬 69세)-음촌의 동쪽, 음촌 건너편에 있는 양지바른 마을
ㆍ여사위- 동촌 서쪽, 옛날 매봉재 및 여우가 서식하던 바위골짜기.
ㆍ옥녀봉(玉女峯) (구전자:이범렬 63세)- 석계울 뒷산으로 산세가 옥녀산 발형극임


※옥= 산의 형태가 옥은(좁아지고 높은)것
ㆍ옷구미(구전자: 이승렬69세)- 동촌 서쪽. 복대리 초입에 있는 논고래
ㆍ옹달우물-음촌 가운데 있는 샘물로 지금은 매몰되었다 . ※옹달샘
ㆍ외배미- 동촌 서쪽, 여사위 아래 길위에 있는 논 한 배미


※ 외= 하나 혼자
ㆍ웃밤실- 동촌 남쪽, 안골 밑에 있는 논고래ㆍ음촌(陰村), 늪말- 복대리 중앙, 약 460년 전

조선조 초에 전주이씨가 입주당시 증촌이라 칭하던 것을 현재는 음촌이라 부르고 있는데

동편에 산이 가리워져 있어 부락이 그늘져 있으므로 음촌이라 했다고 한다.
ㆍ장바구니(구전자:이범렬63세)- 동촌 서쪽, 다대리에서 복대리로 와서 금사면 궁리로 가던

웃다부리와 복대리 경계지역에 있는 골짜기


※장바구= 머리통의 뜻(이마바구니, 장바구니)
ㆍ장배미 (구전자:이승렬69세)- 동촌앞 빗저리 밑에 있는 긴 논고래

 

※ 장(長)+배미(논배미)
ㆍ장승자리(구전자:이범렬 63세)- 여사위와 황새물 끝머리 부분에 위치하며 장승이 옥녀를 지켜주는 자리라 한다.


※장승(長丞)- 마을 수호신
ㆍ절터골(구전자:이범렬63세)- 동촌 서쪽, 옛날 절토로 지금도 돌 밑에 빈대화석이 있다고 한다.
ㆍ쪽다리(쪽달비)- 동촌 서쪽, 옥녀의 머리를 보호하던 자리로 장승배미 밑에 위치한 논고래

※쪽(쪼각, 작은)+다리(들)
ㆍ주네개울(주천)- 음촌 남쪽, 복대리 초입에서 김대울 가운데로 흘러 석계울앞 복하천으로 흐르는

개울로 옛날엔 흥곡면 주천이라 불렀다.


※ 주네는 즐은내(또는 周川)이다
ㆍ건살미(구전자:이승렬69세)- 음촌 남동쪽, 주네개울 건너 피랭이 끝자락 논고래


※건(乾 마른높은)+살(살피, 경계)+미(山)
ㆍ피랭이- 음촌 남쪽, 쇠고개에서 복대 리로 내려오는 길옆 논고래
ㆍ황새물- 동촌 서쪽, 뒷골 너머 황새모양으로 생긴 들

제2절 桂信里(계신리)
ㆍ가장골(구전자:우원식55세)-중송골 서쪽, 중송골과 잔 다리 사이에 있는 논고래


※가장자리+골
ㆍ계신리 (桂信里) (구전자:김영택 57세)- 효지리 북쪽, 본래 여주군 흥곡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계장동, 신촌동, 충신동 일부와 금사면의 일부를 병합하여 계장과 충신의 이름을 따서

계신리라 하였으며 단위부락으로는 무신골, 부처울, 중송골, 신촌동으로 구성되었다.

일설에 중송골 입구에 큰 나무가 있었는데 부락민이 이 나무를 계수나무라 믿고 일년 중

보름날에 부락에 안녕을 빌었다하여 계신리라 하였다고도 한다.
ㆍ계장개울(구전자:우해수57세)- 중송골 북쪽, 중송골과 이포사이로 흐르는 개울


※가장+개울
ㆍ덕바우(구전자:우종석55세)- 부처울 북쪽, 샛말 바위 절벽 아래 있는 자라바위를 말하나 경지정리로 매몰되었음

 

※덕(돌→ 독→ 덕)바위
ㆍ땟골-무신골과 신촌동 사이에 있는 골짜기


※ 대(大큰)+골→댓골→땟골
ㆍ동의점(구전자:우원식55세)- 무신골 서쪽, 옛 옹기점 자리로 지금도 질흙이 출토되고 있는

무신골 서북쪽에 있는 논고래


※동이(물동이)=옹기
ㆍ뒷골- 중송골 남쪽 논고래 ※뒤+골(고래)
ㆍ마(痲)산①(구전자:우종석55세)-중송골 동쪽산, 중송 골을 길게 막고 있는 앞산으로,

옛날에 산마(삼)가 많이 나서 붙여진 이름


※마는 마을이기 쉽고 마을 산이 대개 마산 또는 말 산등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마산②(구전자:우해수57세)- 무신골 서쪽, 산모양이 마(痲)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


※마산① 참조
ㆍ매봉재(구전자:우종석55세)- 신촌동 북쪽, 한씨 사당 뒷산으로 옛날 매를 날리던 산봉우리


※ 매(뫼,메 山)이다.
매(山)+봉(봉우리 峯)+재(고개 山)
ㆍ무신골(舞谷) (구전자:김영택57세)- 계신리 초입 부처울 서쪽, 약500년전 이곳에 나무가 무성하여

야생동물이 많고 산적이 나타나곤 하였는데 어느 날 힘이 센 장사가 나타나 산적을 잡았으므로

그 사람의 이름을 물어보니 무신이라 하여 이곳을 무신골이라 하였다한다.


※ 무(물)+신(센 强 또는 선 立)
ㆍ물레방아간(구전자:우종석55세)- 중송골 북쪽, 중송골과 이포 사이 계장개울에 벼를 찧는 물레방아간이 있었다.
ㆍ부채봉(구전자:이호선69세)- 부처울 앞산으로 산봉우리가 부채모양으로 생겨 붙여진 이름
ㆍ부처울(佛巖洞)- 계신리 중심마을, 부락 동편으로 약100m지점에 한강이 흐르고 있으며 강변 바위에

부처가(마애 여래 입상) 새겨져 있어 붙여졌다고 한다.


ㆍ불암(佛巖)- 부채봉 아래, 부처바위(마애 여래 입상), 부처울 동쪽 한강가 벼랑에 새겨져 있는

마애석불로 부처님 머리 뒤 광배가 세 겹으로 되고 따스한 얼굴에 오른손은 어깨위로 올려 안으로

구부리고, 왼손은 옆으로 벌리면서 안으로 내리어서 마치 중생을 맞이하는 어진 마음이 풍기는데

고려 말에 무학대사가 신륵사에 있을 때 배를 타고 한강을 지나다가 삿대로 벼랑에 그려 놓았다 함.
아주 염험하다 하여 주민들이 집안에 근심 또는 일이 있거나 아이를 못 낳는 부인이 치성을 드리면 효험이 있다한다.
ㆍ사당골- 신촌동 북쪽, 신촌동 넘어 한씨 사당이 있는 마을 ※사당(祠堂)
ㆍ삿갓봉(구전자:우원식55세)-중송골 서쪽, 가장골과 잔다리 사이의 산봉우리


※삿갓봉이 여주관내에도 여러 곳이 있다, 대개 큰 마을에서 볼 때 그 위치에서 지어진 이름인데

삿(새 間)+갓(가 邊+봉 峯)
ㆍ샛말(구전자:우종석55세)- 부처울 북쪽, 부처울 건너편 부채봉 밑 동리를 말함
ㆍ석불암(구전자:이호선69세)- 부처울 남동쪽, 부처봉 아래 있는 사찰
ㆍ신촌동(新村洞)- 부처울 서쪽마을, 부처울 서쪽에 새로 형성된 마을
ㆍ아래벌- 중송골 동쪽, 계신리 동쪽 강가 하천 농경지로 소를 매어 놓은 곳
ㆍ외양길- 부처울 서쪽, 부처울에서 한씨 사당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


※외= (하나)
ㆍ외양배미- 신촌동 동쪽. 신촌동과 부처울 사이에 있는 논 한배미
ㆍ웃골(구전자:우종석55세)- 중송골 서쪽, 중송 골 서쪽으로 나 있는 논고래 ※웃(위 上)
ㆍ잔다리(구전자:우원식55세)-중송골 서쪽, 삿갓봉 서쪽으로 나 있는 논고래


※잔(작은 小)+다리(다랭이)
ㆍ 중송골(衆松谷) (구전자:우해수57세)- 부처울 북쪽, 이 부락은 조선시대 초기에 단양우씨가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소나무가 하도 많아 소나무로 무리를 이루었기 때문에 중송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일설(一說)로는 계장개울 앞에 있는 동네라 하여 계장동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 중(가운데)+송(속안 內)
ㆍ청둥소(구전자:우종석55세)- 중송골 동쪽 중송골 앞강에 명주실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갈 정도로 깊었으나 경지정리로 매몰되었다.


※청(푸른)+둥(웅덩이)+소(깊은물)
ㆍ풀무재- 중송골 서쪽, 중송골과 이포사이에 있는 한 섬지기 논고래

제3절 문장리(文章里)
ㆍ갈여울 고개(구전자:한정석41세)- 조장리 동쪽, 복대리 양촌에서 조장리를 거쳐 계신리로 넘어가는 고갯길


※갈(가 邊)+여울+고개
ㆍ거북바위- 조장이 동쪽, 조장이 음식을 먹고 양촌 쪽으로 배설하여 양촌 쪽이 잘사는

사람이 많다는 전설이 있는 거북처럼 생긴 바위
ㆍ곤밭(구전자:김택수60세)- 문바실 북쪽, 문바실에서 마차실로 넘어가는 쉰미고개 중턱 오른쪽에 있는 밭


※골+안+밭= 고란밭+골밭+곤밭
ㆍ꽃밭(구전자:한정석41세)- 조장이 마을 위. 조장이 마을 위에 남양 홍씨 묘소(나비혈)가 있는

부근으로 꽃이 많이 피어 있어 붙여진 이름


※곶(串 또는 불쑥 튀어난 곳)+밭(밧 外)
ㆍ긴말림(구전자:김택수60세)- 문바실 서북쪽, 문바실뒤 망재에서 다무처리 중간부분에 있는 말림 갓
ㆍ김대울고개- 조장이 남쪽, 조장리에서 복대리로 넘어가는 고개


※ 김=긴(長)
ㆍ나븐들(구전자:김택수60세)- 문바실 동남쪽, 산봉아래 있는 넓은 들 ※나븐= 넓은
ㆍ나븐들 안골
문바실 동쪽, 문바실 옆 산모퉁이 끝에 있는 나븐들 안쪽 골짜기
ㆍ너브넝골- 문바실 서쪽산에서 내사리로 이어진 산골짜기


※ 너브(넓은)+넝(넘어)+골(골짜기)
ㆍ노루고개(구전자:한정석41세)- 조장이 동북쪽, 새터에서 계신리쪽으로 난 소로길


※노루(느린 완만한)
ㆍ다무처리(구전자:김택수60세)- 문바실 북쪽, 문바실 뒤에서 망재로 이어진 골짜기
ㆍ독구래- 문바실 동쪽, 나븐들 밑에 있는 들로 연자방아의 돌이 많이 출토되는 지역
※독=돌
ㆍ동녘(구전자:한정석41세) - 조장이 동쪽, 마을 동쪽 마산 못미쳐 논가운데 있는 작은 산


※동녁(獨域)
ㆍ두바위(틈)고개(구전자:김택수60세)- 문바실 서쪽, 문바실에서 내사리로 넘어가는 고개
ㆍ두바위골- 문바실 서쪽, 사이의 골짜기 두바위(문바위)와 너브넝굴
ㆍ마름물(구전자:한정석41세)-조장이 북쪽, 꽃밭너머 이포쪽으로 나 있는 들


※마름=지주의 위임을 받아 소작권을 관리하는 책임자
ㆍ마리들(구전자:김택수60세)- 문바실 마을 앞에서부터 국도까지 길게 이어진 넓은 들


※ 마리(마을 앞)
ㆍ마산- 조장이 동쪽, 조장이에서 계신리 방향으로 동쪽에 있는 작은 산


※마을신→말산→마산
ㆍ마차실(구전자:김택수60세)- 문마실 북쪽, 약수암 너머 있는 산등성이


※마차=큰고개(말+치 峙)
ㆍ망재문바실 서북쪽, 문바실과 내사리 경계에 있는 고개
ㆍ목골(구전자:한정석41세)- 조장이 서쪽, 마차실 고개에서 조장리로 향한 골짜기


※ 제4절 내사리 목골 참조.
ㆍ문바실(구전자:김택수60세)- 문장리 서쪽마을, 옛날에 혼자 살아가는 과부가 이 마을에서

아들하나를 데리고 살았는데 이 아들을 서당에 보내면서 매일 같이 마을 뒷산에 있는 바위에

정성을 드려 이 아들을 글로써 성공시켰으므로 후에 이 바위를 문바위라 부르게 되었고,

바위 아래 동네를 문(文)바실 문암동(文岩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ㆍ문바위(두바위) - 문바실 서쪽, 문바실에서 내사리로 넘어가는 고개길에 있는 두바위(양바위와 음바위)

 

※ 문(門)
ㆍ문앞- 문바실 남쪽, 문바실 앞고래로 문바실 초입에서 외사리 고개까지 연결되어 있는 긴 논고래

 

※ 문앞(門前)
ㆍ문장리(文章里)- 효지리의 북서쪽, 본래 여주군 흥곡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문암동과 조장동을 병합하여 문장리라 하였고, 단위부락으로는 문바실과 조장이가 있다.
ㆍ범의자치고개- 문바실 남쪽, 문바실에서 외사리로 가는 고개길


※ 버(벌어진)+미(山)+자치(다음가는)
ㆍ벼락바위- 조장이 남서쪽, 쐐기 나무골 밑 논가운데 있던 벼락을 맞아 깨졌다는 바위로 경지정리로 매몰됐음.
ㆍ삼봉(三峯)- 문바실 동쪽, 문바실 옆에 있는 세봉우리로 된 산
ㆍ삼봉용수정- 문바실 동쪽, 삼봉밑에 있는 우물


※용수정(聳水井, 龍水井)
ㆍ새터(구전자:한정석41세)- 조장이 동북쪽, 조장이에서 동북쪽 (계신리)으로 근래 형성된 마을 ※새+터(마을)
ㆍ서녘- 조장이 서쪽, 조장이 마을서쪽에 있는 논고래 ※ 서쪽 들녘
ㆍ서녘우물- 조장이 마을 서쪽, 조장이 마을 서쪽에 있는 서녘고래에 있는 우물

 

※서쪽+들녘+우물
ㆍ쉰미고개(구전자:김택수60세)- 문바실 북쪽, 문바실에서 산북면 도곡리로 이어지는 고개


※ 쉰(休)+미(山)
ㆍ쉰미용수정- 문바실 북쪽, 문바실에서 마처실로 넘어가는 쉰미 밑에 있는 우물
ㆍ쐐기나무골(구전자:한정석41세)- 조장이 남서쪽, 조장이 앞산 당마루재(복대리 뒷산)밑에 있는

조장이의 골짜기로 예전엔 개암(쐐기)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


※쐐기- 물체와 물체 틈을 메우는 것
ㆍ쑥바위(구전자:한정석41세)- 조장이 서쪽, 목골 밑에 있는 바위
ㆍ쓰레바위(구전자:김택수60세)- 문바실 동쪽, 문장리 건너편 산에 있던 바위로 싸레 처럼

생겼으나 경지정리로 없어졌다.

 

※ 쓰레(써래의 충청도 사투리)
ㆍ시목골(구전자: 한정석41세)- 문바실 남쪽, 문앞 고래에서 산으로 이어진 골짜기


※시목(柴木)골- 땔나무를 하는 골짜기
ㆍ신미골- 조장이 서쪽, 서녘 건너편 산골짜기 논고래
ㆍ씨말림(새말림)(구전자:김택수60세)- 문바실 동쪽, 문바실 입구 오른쪽 산 말림


※말림=묘역이나 안산, 사패지 등의 이유로 땔나무나 사료용 금초를 금지시키는 산
ㆍ안산(구전자;한정석41세)- 조장이 남쪽에 있는 자그마한 동산 ※ 안산(案山)
ㆍ안삼봉골- 조장이 서쪽, 목골과 삼봉 중간에 있는 논고래


※안(內)+삼봉(三峰)
ㆍ약수암(구전자:김택수60세)- 문바실 북쪽, 문바실에서 마차실로 넘어가는 쉰미 밑에 있는 절
ㆍ양달(말)- 문바실 오른쪽, 햇볕이 잘 드는 문바 실 오른쪽 마을
ㆍ엄청골(구전자:한정석41세)- 조장이 남쪽 김대울 고개 오른쪽에 있는 논고래
ㆍ업나무골(구전자:김택수60세)- 문바실 동쪽, 문바실 마을 옆 산모롱이에 있는

골짜기로 업나무가 많았다하여 붙여진 이름.
ㆍ원수골(구전자:한정석41세)- 조장이 남서쪽 당마루재 밑에 있는 조장이의 논고래


※원수(源水)
ㆍ원수골용수정- 다마루재 밑에 있는 조장이의 논고래에 있는 큰 우물
ㆍ음달(말)(구전자:김택수60세)- 문바실 왼쪽 마을 ※음달(응달)
ㆍ잔다리(구전자:한정석41세)- 조장이 북쪽, 조장이 뒷산너머 계신리 쪽으로 향한 들


※잔(小)+다리(들 坪)
ㆍ조장이(早章里)- 문장리 동쪽마을, 조선시대 선조임금 당시 사또가 이포나루를 건너가기 위해

이른 새벽에 부락을 지날 때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하여 조장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ㆍ천엽산 (구전자:김택수60세)-문바실 서쪽 산으로 소의 천엽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
ㆍ치루개고개(구전자:한정석41세)- 조장이 서북쪽, 문 장리에서 이포로 가는 고개길
ㆍ터우물-조장이 마을동쪽, 조장리 마을 동편에 예부터 사용하던 공동우물
ㆍ풋나무골(구전자:김택수60세)- 문바실 북쪽, 문바실에서 마차실로 넘어가는 쉰미고개

중턱에서 내사리로 이어진 풋나무가 많은 골짜기

 

※풋나무(草場)
ㆍ호초봉골(구전자:한정석41세)- 조장이 남쪽산(매봉재)아래에서 조장이쪽으로 곧게 뻗은 넓은 논고래
ㆍ홈다리(구전자:김택수60세)- 문바실 동쪽, 홈바위 옆에 있던 다리로 현 문장 휴게소 앞에 있었으나 현재는 없어졌음.
ㆍ홈다리들- 문바실 동쪽. 홈다리 부근의 들


※흠(후미진, 떨어진)+다리(들)
ㆍ홈바위-문바실 동쪽, 홈다리 옆에 있는 바위로 홈파 인 곳으로 길이 나있어 붙여진 이름
ㆍ홍영식(洪英植)묘- 문바실 서쪽, 문장리 산82번지에 있는 개화파 홍영식(洪英植)의 무덤
ㆍ흔터골(구전자:한정석41세)- 조장이 남쪽, 옛날에 부락이 있었던 곳으로(헌터)김대울 고개

오른쪽에 있는 논고래 ※흔터(낡은)

제4절 내사리(內俟里)
ㆍ가름자골(구전자:노병호45세)- 바깥시랏 오른쪽 골짜기에서 백고개로 이어지는 산골짜기


※가름자=양쪽 경계 또는 양쪽으로 가르는 선 (머리 가름자를 탄다)
ㆍ감나무골- 안시랏 북쪽, 골안 초입으로 산 밑 발끝머리에 감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
ㆍ갓바지골- 바깥시랏 남쪽골, 용구터 건너 외사리 쪽으로 나있는 산골짜기


※갓=가, 가쟁이, 가장자리
ㆍ곗논- 시랏 남쪽, 장자바골 밑에 있는 논 ※곗= 곁, 옆
ㆍ골안- 안시랏 북쪽, 안시랏 뒷산 골짜구니 ※골+안
ㆍ구렁밭- 시랏 북쪽, 호매기 고개 밑 오른쪽으로 있는 밭


※구렁- 깊은 곳
ㆍ낙타고개- 안시랏 서북쪽, 산시사골에서 골안 산등성이로 이어지는 소나무 모양이 낙타 모양 같아 붙여진 고개
ㆍ남산- 시랏 남쪽, 내사리 앞산
ㆍ내사리(內絲里)- 효지리 서북쪽, 본래 여주군 흥곡면의 지역으로 시랏 안쪽이므로 안시랏 또는

내사전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사리라 부르게 되었다.
시랏 이라는 이름은 실을 중요시하고 실을 좋아한다고 하여 실락으로 호칭되었는데

발음상 시랏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단위부락은 시랏, 안시랏, 바깥 시랏으로 이루어졌다.


※실앗은 골짜기다, 실앗이 시랏으로 변했고, 골짜기 안동네라고 안시랏, 밖았동네라고

밧시랏이 되고, 이것을 한자로 쓰면서 시랏을 실사자로 써서 內絲, 外絲라고 쓰게 된 것이다.
ㆍ내사 저수지- 시랏 남쪽, 남산 동쪽 밑에 있는 저수지
ㆍ당골- 시랏 남쪽, 용구터 앞에서 문장리 쪽으로 나있는 논고래


※당은 대개 산신당, 서낭당 등과 관련이 있지만 그런 관련이 없는데서는 당은 산(山)의 뜻이 많다.
ㆍ도랏골- 안시랏 북쪽, 호매기 고개밑 오른쪽 골짜기 ※도랏
ㆍ뒷동산- 시랏 서쪽, 마을 뒤에 있는 산
ㆍ마차실- 시랏 북쪽, 시랏 북쪽 호매기 고개 산등성이 ※ 마차 =큰 고개
ㆍ만석다랭이- 시랏 북동쪽, 시력골 옆에 붙은 20평 되는 논으로 항상 물이 흔해서 붙여진 이름


※만삭(滿朔)기간이 찾다는 뜻으로 동물은 새끼를 가져 만삭이 되면 배가 부르다.
또 수북하다(가득차도도 넘는다)는 듯도 된다, 만삭이 만석으로 변한 것이다.
ㆍ목골- 시락 동쪽, 내사리에서 문 장리로 넘어가는 골짜기


※물체의 목 부분에 해당하는 곳이나 목쟁이 (통과하는 지점)를 뜻한다.
ㆍ백고개- 바깥시랏 서쪽, 내사리에서 외사리로 이어지는 험한 고개


※배고개가 백고개로 변한 것인데 배는 비탈 (경사가 험한)의 뜻이다.
ㆍ산시사골- 안시랏 서북쪽, 참나무 고목이 있어 예로부터 산제사를 지내던 골짜구니


※산(山)+시사(侍社)
ㆍ서낭고개- 시랏 북쪽, 호매기 고개에 있는 서낭으로 오래된 두 아름이 넘는 참나무가 있다.
ㆍ서울터- 시랏 북동쪽, 시랏 건너있는 빨래터로 겨울에도 얼지 않는 우물
ㆍ소래골- 바깥시랏 남쪽에서 외사리를 잇는 고개길(안소래 골)
소(小)+로(路)=소래
ㆍ소산밭골-안시랏 북쪽 안시랏 뒤쪽 구렁밭 건너있는 밭이름
ㆍ송장골(구전자:양태래57세)- 시랏 남쪽, 내사리 초입 저수지 건너 오른쪽 논고래


※송(松)은 솔이 변한 음이다.
솔은 어떤 액체(꿀)가 수분이 증발하거나 오래되어 말라서 줄어드는 경우다.
(꿀이 솔았다,-이 솔았다) 즉, 작다는 뜻이다. (좁고 길다는 뜻)
ㆍ숲- 아랫시랏 동쪽, 음달말 동쪽에 마을을 가리기 위해 논둑에다 잡목을 많이 심어 놓은 곳
ㆍ시력골(구전자:노병호45세)-시랏 동북쪽, 시랏(넙말)앞에서 오른쪽 산골짜길 이어진 긴 논고래
※시랏골이 시력 골로 변한 것(시랏은 골짜기의 뜻이다)


ㆍ시루떡배미- 시랏 남쪽, 전에 먹을 것이 없어 논 4마지기를 시룩떡 한 시루하고

바꿨다고 하여 생긴 이름으로 내사리 초입의 논고래
ㆍ아랫말우물- 시랏 중심, 시랏 가운데 있는 우물로 지금은 사용하지 않음.
ㆍ안시랏(웃말)- 시랏 위쪽 마을

 

※내사리, 외사리, 시랏 참조
ㆍ양달말- 바깥 시랏 윗마을, 잿말래 넘어 외사리 쪽으로 형성된 마을
ㆍ용구터(구전자:장학영60세)- 시랏 남쪽, 내사리 마을 가운데로 옛날의 용이 승천한 자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


※용구는 용의 머리란 말로 산등성이 내려와 끝부분에서 약간 솟은 곳
ㆍ용바위(구전자;노병호45세)- 안시랏 서쪽, 가름자골위 산등성이에 있는 큰 바위


※용은 솟았다는 뜻, 솟은 바위
ㆍ은행나무자리 (구전자:양태길57세)- 시랏 동쪽, 시랏 초입 논 옆에 오래 묶은

은행나무가 있어 군 지정 보호목으로 지정되어 있음.
ㆍ음달말 (구전자:노병호45세)- 바깥시랏, 아랫마을, 양달말 아랫마을
ㆍ장배미- 시랏 북쪽, 시랏에서 호매기 고개로 가는 오른쪽 긴 고래 ※장(長)
ㆍ장자바골 (구전자:장학영60세)- 시랏 남쪽, 용구터아래 삼거리에 장차 장자가

태어날 곳이란 전설이 있는 터 ※장자(긴재)+바깥쪽(外)
ㆍ잿말래(구전자:노병호45세)- 시랏과 바깥시랏 사이에 있는 산등성이


※재(고개)+말(정상, 끝부분) (고개마루턱)
ㆍ전밭- 시랏 서쪽, 시랏 뒷동산에 있는 뽕나무 밭
ㆍ터골- 시랏 북동쪽, 시력골 오른쪽에 위치해 전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터
ㆍ찬우물- 시랏 남쪽, 장자바골 개울 건너있는 샘물로 항시 차고 깨끗한 물이 나와 식수로 사용한 샘.
ㆍ풋나무골(구전자:양태길57세)- 안시랏 서쪽, 골 안위 산골짜기


※풋나무(草場)연료를 목적으로 생초를 깎아 말렸다가 때는 나무(연료)
ㆍ호매기 고개(구전자:노병호45세)- 시랏 북쪽 내사리 에서 금사면 도곡리로 넘어가는 고개


※호미기는 후미기(後山)의 변음

제5절 외사리(外絲里)

ㆍ거북바위(구전자:박기수48세)- 서낭당 남쪽, 서낭당 아래 장수배미에 있는 거북 형국으로 생긴 바위
ㆍ금반형(金盤形)- 돌꽃이 남쪽, 조선시대 초에 어느 지관이 외사리 방면을 지나가는데

현재 금반형 마을자리에 금빛 서기가 어리어 그 근방에 좋은 집터가 있을 것으로 믿고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하는데 그 후부터 소문을 듣고 전국 방방곳곳에서 지관들이 금소반형 터를

찾아 모여들어 촌락을 이룬 후부터 이 마을을 금반형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풍수설을 즐기는 외지인이 많이 이주해 와서 살고 있다.
ㆍ기와집 연못- 금반형 안쪽, 금반형 마을에 큰 집 앞에 있는 연못
ㆍ긴골- 돌꽃이 동쪽, 문장리 경계에 있는 긴 골짜기
ㆍ깊은골(深洞)- 돌꽃이 북쪽 산골짜기, 남산 밑 후미진 골짜기.
ㆍ남산- 돌꽃이 뒷산, 내사리 앞산으로 돌꽃이 뒷산을 일컫는 말
ㆍ남산밑-들꽃이 마을 뒤쪽으로 남산 아래 4가구가 모여 사는 곳
ㆍ돌꽃이- 외사리 중심 마을, 고려 중엽 외사1리에 풍천임씨가 많이 모여 살았는데 인심이

좋아 내왕하는 손님이 많아 귀찮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소님 대접에 지친 주인이 점장이에게서 손님이 찾아오지 않게 하는 방법을 물어본 즉

동네 아래 우물이 있는데 그 주위 바위에 꽃이 핀 것을 깨어버리면 손님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하여 그 바위를 깨버렸다고 하는데 이때 바위에서 피가 흘렸고(비파배미), 그 후부터는 손님이

끊어졌으며, 가문이 몰락하여 그 이후로 이 동네를 ?돌꽃이? 이라 했다.
또다른 設로는 지형이 굴과 같이 되는 동네라 돌꽃이라 한다고도 한다.


※① 돌꽃이 (자연적이나 인위적으로 큰 돌이 빅힌 곳)
②돌( 돌머리)+오지(外便)
ㆍ드레우물- 돌꽃이 남쪽, 돌꽃이 건너편에 있는 두레박으로 푸는 우물

 

※드레(두레박)
ㆍ드레우물 들- 돌꽃이 남쪽, 돌꽃이 건너편 드레우물 앞 논고래
ㆍ말무덤- 새터 서북쪽, 바깥 소래골 아래에 있는 큰 무덤


※말(큰 大) +무덤
ㆍ미라골 (구전자:정용민75세)- 금반형 북쪽, 전설에 옥녀가 닭먹이로 쌀을 주는 형국이라 붙여진 이름


※미(山)+락(끝부분, 가파르게 그친 곳)
ㆍ바깥 소래골- 새터 서북쪽, 배치 위로 백고개까지 뻗어 있는 골짜기


※소래→소로(小路)
ㆍ배치-새터 서북쪽, 이현 저수지 밑으로 지형이 뱃머리 모양으로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


※배(비탈)+치(고개)
ㆍ백고개(梨峴)- 새터 북쪽에 있는 고개로 몹시 험하고 산짐승이 많아 100사람이 모여야 넘어 다녔다고 하는 고개


※배(가파른 비탈)+고개
ㆍ벌바위(星巖)- 돌꽃이 남쪽, 돌꽃이 건너편 찬 우물 위에 있는 벌어진 바위
ㆍ벌원뱅이(구전자:정용민75세)- 서낭당 남쪽에 형성되었던 마을로 예전에 상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 붙여진 들 이름.
ㆍ범에 자치고개(구전자:박기수48세)- 돌꽃이 동쪽, 외사리에서 문장리로 이어지는

고개길로 옛날에 숲이 우거지고 후미져서 붙여진 이름
ㆍ비파매미- 돌꽃이 남쪽, 돌꽃이 앞고래에 있는 논으로 논에 바위가 있어 깨었더니 피가 나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악기종류의 비파형태
ㆍ사당골- 돌꽃이 서북쪽, 할터거리 위쪽 예부터 사당이 있어 사당골이라 부른다.
ㆍ새터(新村洞)- 돌꽃이 서쪽마을, 외사리에는 ?돌꽃이??지경계? ?흙두지? ?금반형?

터를 찾아보려고 모여든 사람들이 집을 짓고 동리를 이루게 되어 새터라 부르게 되었다.
ㆍ서낭당- 새터 남쪽에 있는 마을로 지금도 서낭이 현존해 있다.
ㆍ소래골- 새터 북쪽, 옥녀봉아래 외사리에서 내사리로 가는 언덕길


※소래 → 소로(小路)
ㆍ아랫왯돈지 (구전자:정용민75세)- 돌꽃이 동쪽, 웃 왯돈지 길 아래 있는 들


※ ①왜둔지(倭屯地)→왯돈지 ②외딴들
ㆍ여우네 들(狐坪) (구전자:박기수48세)- 금반형과 서낭당 사이에 있는 넓은 들로

옛날에 여우들이 놀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

 

※ 여울+내
ㆍ여우네 보- 금반형과 서낭당 사이, 여우네 들에 있는 보

 

※ 여우네 들 참조
ㆍ옥녀봉(玉女奉)- 돌꽃이 북쪽에 있는 산 ※ 뾰족하게 높은 봉
ㆍ외사리(外絲里)- 효지리 서북쪽, 본래 여주군 흥곡면의 지역으로서 시랏 바깥쪽이 되므로

바깥시랏 또는 외사리, 외사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이천군 백사면의

현암리 일부를 폐합하여 외사리라 하여 단위부락으로는 돌곶이, 새터, 지경계, 서낭당 등이 있다.


※ 실사(絲)자를 쓴 것은 날(시랏 옷감을 짜거나 가마니를 짤 때 실(가로)과 날(세로)이 있다.

여기서 날의 뜻은 산능선이다.
ㆍ웃왯돈지(구전자:정용민75세)- 돌꽃이 동쪽, 임진왜란 때 왜놈들이 진을 쳤던 진지라하여

붙여진 들 이름으로 현재 큰 길위 내사리 입구의 골짜기

 

※ 왜둔지(倭屯地)→왯돈지
ㆍ이현(梨峴) 저수지(구전자:박기수48세)- 새터의 서북쪽, 백고개(梨峴) 밑에 있는 외사리

저수지로 약 40여 년전 새터 허강호씨가 사재를 털어 저수지를 축조하여 공덕비가 마을회관 앞에 있다.

 

※배고개 참조
ㆍ작은 배치- 새터 서북쪽, 배치의 작은고개

 

※배고개 참조
ㆍ장등말- 금반형 왼쪽 옆 장등성이 ※장등(긴등)+말(마루)
ㆍ장수배미- 서낭당 남쪽, 예전에 외사리에서 논이 가장 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ㆍ지경계- 새터 서쪽마을, 이천군 백사면 송말 리와 흥천면 외사리와의 경계지점에 부락이

형성되어 있어 이곳을 지경계(地境界)라 부르고 있다.
ㆍ찬우물- 돌꽃이 남쪽, 돌꽃이 건너 논고래에 솟은 맑고 시원한 찬 샘
ㆍ할터거리- 돌꽃이 왼쪽 산골짜기
ㆍ흙두지(구전자:정용민75세)- 돌꽃이 남쪽, 부락앞 들이 넓어서 농사를 짓기에 좋은 곳으로

곡식이 많이 생산되고 이곳에 토질이 진흙으로 되어있어 가을에 추수를 하면 흙으로 만든

뒤주에 곡식을 담았으므로 흙두지(土杜洞)라 불어지고 있다.

※두지-뒤주


제6절 상대리 (上大里)
ㆍ계명현(鷄鳴峴)(구전자:권영창68세)- 상대리 서북쪽 지역, 상대리의 중심부락으로

산세가 아침에 닭이 훼를 치고 우는 형국이라 붙여진 이름(계명재)
ㆍ고래실- 계명현 북쪽, 생다리 밑에서 상대리 입구 쪽으로 나있는 긴 논고래

 

※고래(큰 大)
ㆍ큰골-계명현 북쪽으로 상대리 입구, 복대리에서 상대리로 들어오는 길위 초입에 있는 큰 논고래
ㆍ나래실- 계명현 북쪽 외사 문장접경, 옛 개울로 보이는 곳으로 지금도 모래가 쌓여 있는 지역으로

상대리와 외사리 문장리와 접경된 곳의 산골짜기의 긴 논고래


※①나래는 흙이나 모래를 끌어내기 위한 도구로 소를 이용하여 쓰는 농기구
②내는 개울(川), 래는 흐름
ㆍ다리(多里)- 계명현 동쪽마을, 계명현 동쪽에 있는 마을(다리동)로 옛날 쉰살 먹은 장수가 천근 되는

돌을 양쪽 겨드랑이에 하나씩 끼였다가 지금 다리부락과 계명현 부락사이에 있는 도랑에 놓고

건너다녔다 하여 다리 마을로 불리우고 있다.

 

※다리(橋, 다리(達산 里), 다리(川)
ㆍ다리골- 상대리 부락 중앙, 계명 현에서 다리로 건너오는 쉰 다리 부근의 지명
ㆍ독쪽골- 계명현 북쪽, 나래실옆 골짜기로 예전에 독을 굽는 가마가 있었던 곳


※독은 돌(石)이 변한 경우가 많고, 재(峴) 가 다시변음
독재골→ 독째골→ 독잭골→ 독쪽골
(돌 고개의 뜻에서 붙혀진 경우도 있다)
ㆍ종족골(동이조골)- 다리동쪽 골짜기, 매봉에서 다리로 내려오는 긴 골짜기
ㆍ뒷골- 다리 북쪽, 다리 마을 넘어있는 논고래와 뒷골이라 부르고 있다.


※뒷(後)+골(고래)
ㆍ매봉- 다리 동남쪽, 상대리에서 가장 높은 지역으로 예전에 매를 날리던 봉우리로

매가 회를 치는 형극 ※매는 뫼(山)의:뜻
ㆍ모두골 (구전자:권영창 68세)
계명현 북쪽, 고래실 서쪽으로 나있는 논고래 ※모두- 전부, 합
ㆍ문앞- 다리 서북쪽에 위치, 계명현 앞에 있는 기름진 논고래

 

※문(門)+앞(前)
ㆍ상대리(上大里)-흥천면 효지 리에서 서북쪽에 위치, 본래 여주군 흥곡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계명현과 다리동 그리고 이천군 백사면의 현암리, 온 방리의 각 일부를

상대리라 하였고, 단위 부락으로는 계명현과 다리가 있다.
ㆍ뱀배- 다리 북쪽, 뒷골너머 긴 논고래


※박은 山의 뜻이다. 박이 배, 뱀으로 변한 곳이 많고 또는 뱃으로도 많이 변했다.
뱀(山)+배(山)= 산과 산사이
ㆍ생다리(구전자:권영찬68세)- 계명현 북쪽, 나래실과 고래실 사이의 논고래
ㆍ쉰다리(구전자:백달현55세)- 다리 서쪽, 계명현과 다리를 연결시켜주는 다리로 예전엔 도로

놓여졌었는데 지금은 매몰되었다 한다.
ㆍ심배골- 다리 동쪽 산 너머 골짜기로 역적이 나온다는 배신형 터가 있는 골짜기로 지금도

조씨 묘와 나뒹구는 비석들이 골짜기에 널려져 있다.


※심(심은곳)+배(山)+골(谷)
ㆍ아랫다리- 다리 남쪽 마을, 옛날의 마을이 형성되었던 다리 앞마을로 지금은 서너 가구가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다.
ㆍ아랫벌- 다리 남서쪽 논고래, 쉰 다리 아래에 있는 길고 넓은 기름진 논고래
ㆍ안고래- 다리 북쪽 긴 논고래, 상대리 초입 우꾀기 아래 있는 길고 기름진 논고래
ㆍ여우내- 계명현 남쪽 들, 전설에 천년 묵은 여우가 도섭을 하여 사람을 홀리다가 여의주를

빠쳤다하여 붙여진 들 이름으로 상대리, 외사리, 이천군 백사면과 연결되어 넓은 들


※여우는 여울의 뜻도 되고 아우(물이 합류되는 곳, 어울어진 곳)가 여우로 변한 경우도 있다.
ㆍ우꾀기 (구전자:백달현55세)- 다리 북쪽 논고래, 뱀배 산 너머 있는 골짜기로 안고래

오른쪽 논 고래로 북(상)쪽을 꾀기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


※우(右 상)+꾀다(꼬이다)
ㆍ장괴터(장자터) (구전자:권영창68세)- 계명현 서북쪽, 계명 현에서 외사리 쪽으로 나가는

길목위에 옛날 권씨 부자가 살았다는 기와집이 있었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
ㆍ청량끝- 다리 서북쪽, 뱀배 끝자락의 논고래

제7장 다대리 (多大里)
ㆍ갓골 (구전자:이연호58세)- 웃다부리 서쪽 골짜구니에 있는 논고래 ※갓(가)+골
ㆍ건너말- 다부리 길 건너 있는 마을
ㆍ건답보- 다부리 남쪽, 안말 밑 남동쪽에 위치한 전지 ※건답(乾畓)
ㆍ군위실(軍威室)- 다부리 남서쪽에 있는 마을,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군인 감옥이 있었다하여

군옥동(郡獄洞) 이라 칭하여 왔으나 현재는 군위실이라 부르고 있다.


※軍(내 川)+威(두름)+室(마을)
(내 변두리 마을의 뜻)
이것은 순수한 우리말 내변두리 즉 내두리를 나선다 진출한다는 뜻으로 軍자를 쓰고 두른다는 뜻으로

威자를 써서 한자풀이로 하면 전혀 다른뜻으로 해석하게 되기 때문에 한자에 맞춰 유래를 구전하게 된 것이다.
결국 내(川)자를 쓰는 대신 軍자를 쓰고 변두리을 위(威)자를 쓴 것이다.
ㆍ다대리(多大里)
효지 서쪽, 본래 여주군 흥곡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다동과 하다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다대리하고 하였으며 단위부락으로는 웃다부리와 군위실이 있다.


※총총 붙은 것을 다닥다닥 이라고 한다. 다닥이 다대로 변한 것이다.
ㆍ다부리 고개- 웃다부리 북쪽에 있는 고개로 상대리, 복대리로 연결된다.


※포실한 것을 다부룩 또는 다북이라고 하는데 다북이 다부로 변한 것이다.
부자가 많이 살아서 다부리라 한다는 말과 부처가 많아서 다불(多佛) 이라는 것은 유보적 유래 보인다.
ㆍ독보들- 군위실, 서쪽들, 다대리에서 상대리로 연결되어있는 들로 예전에 독보(獨洑)가 있었다.
ㆍ뒷골- 다부리 북쪽 골짜기, 웃다부리 밑 안골 옆에 있는 골짜기
ㆍ매봉재- 군위실 북쪽, 다부리와 상대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옛날 매를 날렸던 곳


※매+봉
ㆍ배촌(裵村)- 군위실 서쪽, 옛날 배씨들이 처음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던 곳으로 군위실 서쪽 마을


※배(큰)+말
ㆍ범미독골- 웃다부리 위쪽, 남산에서 내려다보아서 범의 꼬리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
ㆍ삼거리보- 군위실 서북쪽, 상대리 배고개와 다대리가 만나는 합수머리
ㆍ삼바우골- 다부리 가운데 골짜기, 다부리 가운데 있는 골짜기에 바위가 셋이 있어 붙여진 이름
ㆍ새보들- 다부리 동남쪽, 다대리 입구에 있는 새로 생긴 들로 새보가 있다.


※새보
ㆍ새텃말- 군위실 동쪽 앞 벌판에 있는 새로 생긴 들로 새보가 있다.
ㆍ샘자리- 웃다부리 남서쪽, 갓골 밑에 있는 샘으로 겨울에도 얼지 않는 논
ㆍ설안터- 군위실 아래, 군위실과 탑모랭이 중간에 있는 터


※설은 ?의 변음 솔은 松일 경우가 많다.
솔(松) 안(內), 터(垈)
ㆍ세거리보- 군위실 남쪽 탑모랭이 앞에 있는 들
ㆍ안골- 웃다부리 밑에 있는 골짜기
ㆍ안말- 군위실 안쪽에 있는 마을
ㆍ웃다부리- 다부리 북쪽 마을, 웃다 부리는 조선시대 초기에 처음 부락이 형성되었다고 전하여지며

사네가 삼태기 모양을 이루어 지역 여건상 아늑하여 감나무가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아 감나무골

이라고도 불리어지며, 또한 400년 전 경주 최씨가 생활이 날로 번성하여 부자가 많이 생겼다하여

다부리라 칭하게 되었는데 위에 있는 부락이라 웃다부리로 불리워지고 있다고 한다.
(다부리 참조)
ㆍ유추골(育畜)- 웃다부리 밑 골짜구니, 웃다부리 밑 남산에서 내려오는 골짜기에 예전에 소를 많이 길렀다고 하여 생긴 이름
ㆍ정수(淨水)물- 웃다부리 밑에 있는 샘물, 유추골 앞에 있는 맑고 깨끗한 옹달샘
ㆍ종오조골- 군위실 북쪽, 매봉재 밑에 있는 논고래
ㆍ중보- 다부리 남쪽에서 대당리를 향해 있는 넓은들


※중보(中洑)
ㆍ창골- 웃다부리 서쪽 골짜기, 매봉재 밑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창고터였다고 하여 지금도 옛기와가 출토되고 있다.

 

※찬(寒)이 창으로 변한 경우도 있다.
ㆍ탑모랭이- 군위실 남쪽, 다대 리에서 상대리로 가는 산모퉁이 길로 예전에 탑이 있었다고 한다.

제8절 하다리 (下多釐)
ㆍ가잿골 (구전자:곽연학58세)- 시광이 북쪽, 돌톳 부랭이와 아랫벌 사이에 가재가 많이 있는 골짜기

 

※가장자리→ 가쟁이→ 가재
ㆍ건너터- 시광이 서쪽, 시광이 옆에 있는 터
ㆍ고개밑(구전자:한 용48세)- 중말 동쪽, 쇠고개(세고개) 밑에 있는 좁은 들
ㆍ구렁배미- 중말 남동쪽, 쇠고개 밑에 있는 논배미로 다른 논보다 지대가 얕아서 붙여진 이름.
ㆍ국골-샘실 동쪽, 샘실과 절골 가운데 골짜기
ㆍ남산골- 중말 동쪽, 옆 남산사 밑에 있는 골짜기
ㆍ남산사(南山寺)- 중말 북쪽산, 남산 밑 절골 위에 있는 옛 절
ㆍ내께 (구전자:곽연학58세)- 중말 남동쪽, 하다리 마을 앞 복하천 가 ※냇개→내께
ㆍ돌톳부랭이- 시광이 북쪽, 시광이에서 계신리로 가는 산모퉁이로 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
ㆍ뒷고래- 시광이 서쪽, 시광이 부락 뒤쪽에 있는 논고래
ㆍ마루들- 중말 남동쪽, 하다리 마을 앞 가운데들로 주변들보다 등마루처럼 높아서 붙여진 이름.
ㆍ물방아거리(구전자:한용48세)- 중말 동남쪽, 하다리 마을 앞에 있는 들로 옛날에 물방아가 있었던 곳
ㆍ박박골- 중말 북쪽, 승지골 위에 있는 골짜기


※박은 산의 뜻도 되고 박(外)도 된다.
받(山)→ 발→ 밝→ 박
ㆍ삼밭골- 중말 동쪽, 삼형제 고개 밑에 삼밭이 있던 골짜기
※산이 삼의 발음도 되고 산(山)+밖(外)-산박 →삼박→ 삼밭
ㆍ삼형제 고개- 중말 북쪽, 아랫 다부리에서 복대리로 질러 넘어가던 옛 고개
ㆍ샘실- 아랫다부리 맨위쪽(서쪽)마을, 마을 맨 꼭대기 산 밑에 있는 맑은 샘이 있어 부락이 형성 되었고,

부락민이 이 물로 생활을 하고 있어 이 부락을 ?샘물?이라고 불려오다 현재는 샘실로 부르고 있다.


※ 실= 마을의 뜻
ㆍ선바위- 중말 북쪽산, 옛 남산사(절)뒤에 있는 큰 바위
ㆍ새내벌- 중말 남쪽 들, 아랫다부리에서 내(복하천가)를 나가기 위해 다니던 길 옆 고래


※ =川+坪+
ㆍ새보들- 중말 남쪽, 하다리 마을 앞 새로 경지정리가 된 들이라 새보들이라 부른다.


※보(洑)가 새로 생긴 경우
ㆍ쇠(세)고개(구전자:한용48세)- 중말 북동쪽, 중말과 시광이 중간에 복대리로 이어지는 높은 고개

 

※새(間)→세→쇠
ㆍ승지골- 중말 동북쪽 골짜기. 옻물 밑에 있는 산골짜기
ㆍ시광이(柴光洞)(구전자:곽연학58세)- 아랫다부리 맨아랫(동쪽)마을, 마을이 정동편을

바라보고 형성되고 제일 햇빛이 먼저 비친다고 하여 ‘시광리’라 부르게 되었다.


※작은 구석안
ㆍ아들바위(구전자:한용48세)- 중말 북쪽, 남산 중턱 선바위 밑에 있는 바위
※선바위는 누은바위가 아니고 일어난 바위라는 뜻에서 남자의 성기로 표현하여 00바위라고 부르기도

해왔는데 고대 여인들이 아들을 낳지 못하면 촛대바우, 선바우 등에 치성하는 민간신앙이 많았다.
선바위 자체거나 그 주위에 있는 바위를 아들바우라고 명칭한 곳이 많다.
ㆍ아랫다부리(구전자:곽연학58세)- 다래리 동쪽 마을. 본래 여주군 흥곡면의 지역으로서, 다부리(다대리)

아래쪽이 되므로 아랫 다부리 또는 하다부리, 하다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하다리라 부르고 자연부락으로는 샘실과 시광이가 있다.

 

※①부처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다불리(多佛里)가 변음 되었다.··
②가구 수가 많은 큰 동네 하는 뜻이다.
ㆍ아랫벌- 시광이 북쪽, 돌톳부랭이 밑에 있는 전지로 대부분 매몰되어 거의 황폐화되었음.
ㆍ안터(구전자:한 용48세)-샘실 아래쪽에 있는 마을 ※안쪽에 있다는 뜻
ㆍ앞버던(구전자:곽연학58세)- 시광이 남쪽 마을 앞 전지

 

※앞(前)+버던(坪)
ㆍ억억다리(구전자:한 용48세)- 중말 동남쪽, 하다리에서 귀백리로 건너다니는 다리


※억만, 억억 - 무한한 세월을 지탱할 수 있는 다리, 본래 石橋이기 때문
ㆍ염소논(구전자:한용48세)- 중말 동쪽, 쇠고개 밑에 있는 논으로 논 모양이 염소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논배미
ㆍ영복암- 중말 북쪽, 남산골 위 옛절로 빈대가 많아 남산사로 옮겼음.
ㆍ옻물- 중말 동북쪽, 삼밭골위에 있는 샘물로 물을 먹고 목욕을 하면 각종 피부병이 낫는다고 하는 약물탕
ㆍ웃모래턱(구전자:곽연학58세)- 시광이 남쪽, 쇠고개 밑에서 시광이 쪽으로 복하천 모래가 많이 쌓여 붙여진 이름.
ㆍ은구들- 샘실 남쪽, 효지리에서 하다리로 들어오는 삼거리들로 오래전에 복하천 물을 끌어 들이기 위해

은구(암거)를 묻었다하여 붙여진 이름.


※은구=암거(물을 끌어 들이기 위해 땅속으로 그들처럼 묻는 방법)의 사투리
ㆍ절골(寺谷) (구전자:한용48세)- 중말 서쪽에 있는 골짜구니로 남산사(절)가 있는 골짜기라 하여 붙여진 이름.
ㆍ중말- 하다리 가운데 있는 마을 ※중(中)
ㆍ진부드리- 중말 남쪽들, 아랫 다부리에서 냇가로 나가던 길로 다른 곳보다 지형이

낮아 항상 질었기 때문에 진부드리라 불렀다.
ㆍ큰밭자리- 중말 남쪽, 새내벌 안에 있는 1,200평 되는 큰 밭
ㆍ피방아골- 시광이 서쪽, 남산 쇠고개위 옛날 피방아를 찧던 곳


※폐방앗골→ 피방아골
ㆍ하다리(下多里)(구전자:한용48세)- 효지리 서북쪽, 본래 여주군 흥곡면의 지역으로 다부리(다대리)

아래쪽이 되므로 아랫 다부리 또는 하다부리, 하다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하다리라 하였고, 단위부락으로는 샘실, 하다부리, 시광이가 있다.
ㆍ한배미- 샘실 남동쪽, 샘실 길 밑에 있는 논 이름 ※한(큰 大)+배미
ㆍ홈건너(구전자:곽연학58세)- 중말 남쪽, 똘 건너 마루들 안에 있는 논 이름
ㆍ황새골(구전자:한용48세)- 중말 북동쪽, 삼형제골과 쇠고개 중간에 있는 골짜기


※황(넓다)+새(間)+골

제9절 상백리 (上白里)
.ㆍ감동골(甘谷洞) (구전자:성낙진56세)-상백리 북쪽마을, 일명 ?꽃미?라고도 불리우며 ‘감곡동(甘谷洞)?

이라고도 하는데 부락에 목단봉이라는 산봉우리가 있고 그 봉우리 밑에 부락이 있어 꽃속에 있는

꿈을 연상하여 ?감동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감골(甘谷)은 「감」골이다.
감은 크다는 뜻이다. 감이 후일 감, 검, 금 등으로 변음 했다. (즉 큰골이라는 뜻이다)
ㆍ강가- 찬 우물 동쪽 한강변에 빨래터
ㆍ강가터(구전자:정인수49세)- 윗다리실 서쪽, 옛날 강씨가 살던 터 ※강가(姜氏)
ㆍ건너말-다리살 서쪽, 윗다리실 앞에 새로 생긴 마을
ㆍ골미-감동골 동쪽, 목단봉 끝자락 양지쪽에 있는 마을(양짓말)


※골(谷)+미(뫼 山)
ㆍ구석땀(구전자:성낙진56세)- 감동골 남동쪽, 감동굴 초입 구석진 곳에 있는 마을


※땀(부락)
ㆍ기관산(箕觀山)(구전자:정인수49세)- 감동골 남쪽에 있는 산으로 기자가 보고 갔다고 함.
ㆍ느섯봉- 다리실 동쪽, 옛날에 세종대왕을 이장하려고 지관이 다녀갔다고 붙은 이름인데 강이

틔여서 능자리론 부적당하다하여 이름만 전해지고 있는 논고래

 

※능(산능선)+골
ㆍ다리실(月谷, 橋谷)- 상백리 가운데, 일명 월곡(月谷), 또는 교곡(橋谷)이라고도 부르는 마을로서

부락위치가 동남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뒷산에 올라 부락지형을 보면 반달모양으로 부락이

생기어서 달실로 불리어졌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다리실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현재 아랫다리실,

중간다리실, 윗다리실로 나누어져 있다.


※다리는 들(坪)+실(마을)
ㆍ달치 (구전자:성낙진56세)- 감동골 동쪽, 목단봉 밑 서쪽 논고래


※달은 산(達)의 뜻도 되고 들(전답)의 뜻도 된다.
ㆍ담미- 감동골 북쪽, 감동골 맨 끝 여울담에 있는 마을


※담은 땀(부락)+미(山)
ㆍ매봉(구전자:정인수49세)-다리실 동쪽, 귀백리와 상백리 경계에 있는 매를 날려 사냥을 하던 봉우리


※매는 뫼(山)+봉(峰)
ㆍ목단봉(牧丹峯)(구전자:성낙진56세)- 감동골 동북쪽, 감동골 뒷산으로 모란봉이라고도 함.


※목단봉(牧丹峯)- 은 「모란」봉인데 모란이란 몰안이고 「몰」은 산을 뜻한다.
결국 몰(山)+안(內)+봉(峰)이니 산으로 싸여 있는 속의 峰이란 뜻이다.
ㆍ미미골- 다리실 남쪽, 매봉아래 능골과 연결된 골짜기


※미(山)+미(山)+골
ㆍ방죽- 다리실 동쪽, 예전에 방죽을 만들었으나 해방되면서 방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주민들에 의해 없어지고 지금은 논을 풀었다.
ㆍ방죽아래- 다리실 동남쪽, 느섯봉 밑 옛 방죽아래 있는 들
ㆍ부엉바위-다리실 서쪽. 서낭당이와 장고개 중간에 있는 바위로 부엉이가 앉아 울던 바위로 지금도 있다.
ㆍ부적산(富積)-다리실 서남쪽, 다리실 초입 왼쪽에 있는 산
ㆍ상백리(上白里)(구전자:성낙진56세)- 효지 북쪽, 본래 여주군 길천 면의 지역으로서, 백양동 위쪽이 되므로

위백양동 또는 상백양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다리실, 찬 우물, 감동 골을 병합하여

상백리라 하였다.
ㆍ서낭당이(구전자:정인수49세)- 다리실 서쪽, 귀백리에서 상백리를 거쳐 부처위로 가는 소로길로

옛날 왕래가 많았으나 지금은 거의 사용을 안하고 있다.
ㆍ쇠도독골- 다리실 서쪽, 기관산에서 귀백리로 이어지는 험한 산골짜기로 옛날에 도둑이 있었다고 한다.
ㆍ승냥이골- 다리실 남쪽, 능골위쪽으로 예전에 승냥이가 많았다하여 승냥이골이라 불렀다.


※승량=대장간에서 농기구를 베리는 행위를 말하는 여주 투리
( 낫과 호미가 무뎌서 승량하러 간다)
ㆍ아랫다리실- 다리실 아랫마을 , 느섯봉 아래 마을 ※다리실 참조
ㆍ아랫말 (구전자:성낙진56세)- 감동골 서쪽앞 복하천변에 있는 마을
ㆍ안녕해 (구전자:정인수49세- 다리실 남쪽 양화고개 중간에 있는 마을(내안동)
ㆍ양화고개- 다리실 동남쪽, 다리실 에서 능서면 내양리 양화동으로 연결되는 고개길
ㆍ어시내(구전자:성낙진56세)- 감동골 서북쪽, 담미 건너 복하천변에 있는 들


※들도 아니요 산도 아니란 뜻에서
(길이 저물어 갈수도 없고 잘수도 없어 갈길이 어시다)
(기둥으로 쓰기는 가늘고 석가래로 쓰기는 굵어 제목이 어시다)
ㆍ엄나무고래(구전자:정인수49세)- 중간 다리실 남쪽, 부적산과 건너말 사이에 있는 엄나무가 많이 있던 논고래
ㆍ여터논- 다리실 서쪽, 중간다리실 앞에 있는 옛날 여씨가 살던 터전


※널터논(넓은터논)이 너터로 변하면서 너를 「汝」로 고쳐 쓴 경우가 있다.
ㆍ온수(溫水)골(구전자:성낙진56세)- 감동골 남서쪽, 기관산아래 복하천변에 더운물이 나오는 산골짜기
ㆍ웅게- 감동골 서북쪽, 복대리와 경계에 있는 상백리 끝자락 들


※웃개
ㆍ뒷다리실(구전자:정인수49세)- 다리실 서쪽, 다리실 맨 위에 있는 마을

 

※ 다리실 참조
ㆍ장(長)고개- 다리실 서쪽, 기관산 아래 있는 긴고래
ㆍ장공바위(구전자:성낙진56세)- 감동골 동쪽, 장구매기에 옛날 장수가 가지고 놀았다는 공같이 생긴 바위

 

※장군공바위-장공바위
ㆍ장구매기- 감동골 동쪽, 땅모양이 장구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ㆍ장수터- 감동골 남서쪽, 기관산 밑에 있는 터로 세자식을 낳았는데 모두 장수가 되어 나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장수(將帥)
ㆍ장자터(長者)-감동골 북쪽, 상백리 끝자락에 있는 들로 옛날에 부자가 살던 곳이라 한다.
※긴 들이라는 뜻이다. 장(긴)+재(들)
ㆍ정효자 정문(鄭孝子旌門) (구전자:정인수49세)- 다리실 동남쪽, 안녕해 뒷산에 있는 정규장(鄭奎章)의 효자 정문
ㆍ중간다리실-다리실 서쪽, 다리실과 웃다리실 사이에 있는 마을
ㆍ진산공묘(珍山公墓)-윗다리실 뒷산, 청주사람 진산 현감 경면(慶綿)의 무덤.
본래 장인 참판 장백인(張佰仁)이 치총한 것인데, 그의 딸 장씨가 우물에 갔다가 이 자리가 명당자리라

하매 아버지 정참판이 죽어 장사지내려 할 때 일꾼들을 독한 술을 먹여 곯아떨어지게 한 후 몰래 물을

길어다 광중에 부어 못쓰게 한후 제 남편이 죽으매 자리를 얻어 쓰고 자손이 잘 되었다 한다.
ㆍ찬우물- 다리실 북쪽마을, 상백리 강옆 마을에 물맛 좋고 차갑기로 인근에 소문이 난 우물이 있어

이 우물이 있는 곳에 부락이 형성되어 찬우물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ㆍ찬우물고개(구전자:성낙진56세)- 찬우물 남쪽, 찬우물에서 다리실로 넘어가는 고개
ㆍ찬우물 나루- 찬우물 동쪽, 흥천면에서 대신면 율촌리로 건너가는 찬우물 동쪽에 있는 나루터
ㆍ차돌고개 (구전자:정인수49세)- 다리실 남쪽고개, 상백리와 귀백리 경계에 있는 고개

제10절 귀백리(歸白里) (구전자:최승웅51세 (전지역))
ㆍ갓골-귀래동 동쪽, 율극리 밤골과 인접한 논고래


※갓(가 邊)=수가쟁이 가장자리 가생이
ㆍ가재골- 백양동 서쪽에 있는 산골짜기로 옛날에 가재가 많이 서식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가재= 가쟁이. 가생이, 가장자리
ㆍ구리실- 귀래동 북쪽, 귀래동 동북쪽에 있는 산골짜기
ㆍ귀래동(歸來洞)- 귀백리 오른쪽, 옛날에 타지역으로 이사를 갔으나 살곳이 이곳만 못하여 다시 돌아와 살게 되었다는 뜻으로 귀래동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현재도 그런 현상이 있다고 하며 귀래동 의 귀(歸)자 백(白)양동의

백자를 따서 지금의 귀백리(歸白里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ㆍ귀백리(歸白里) -효지 북쪽, 본래 여주군 길천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귀래동과

하백양동을 병합하여 귀백리라 하였으며 백양동 , 새터말 , 귀래동 등의 단위부락이 있다.
ㆍ귀백저수지- 백양동 서북쪽, 백양동 뒤쪽 상백리 가는 길밑에 있는 저수지
ㆍ대출- 백양동 남쪽에 있는 긴 논고래로 생산량이 많아서 붙여진 고래
ㆍ뒷절골- 귀래동 북쪽, 귀래동 뒤 귀백리에서 상백리로 가는 북쪽산 골짜기
ㆍ밤나무골- 귀래동 동쪽산, 귀래동 옆산으로 밤나무가 많아서 밤나무골이라 부르고 있다.
ㆍ밭갈- 백양동 남쪽, 옛날 밭이었던 곳으로 밀, 보리를 많이 심어 기러기가 많이 서식했었으나 현재 경지정리로 논이 됨


※밧(外)+갈(水邊)또는 分支
ㆍ백양동- 귀백리 중심 마을, 옛 흥곡면 시절 복대리 남쪽에 있는 산이라하여 남산이라 부른 곳에서

귀백리 아랫마을을 바라보았을 때 흰양이 누워있는 형극이라 붙인 이름.
(白辛洞)(뱅골)


※백(밝은)+양(양지)
ㆍ백장골- 귀래동 북쪽, 구리실 밑에서 상백리로 향한 골짜기


※백(밝은)+장(긴 長)
ㆍ부우물(富貴井)- 백양동 마을 앞, 백양동 앞에 있는 느티나무아래 우물로 샘이 잘나

식수로 썼던 우물로 옛날엔 북어 닮은 고기가 굴을 뚫어 놓고 살았다고 한다.


※부(부리, 부랭이, 산부리)+우물(井)
ㆍ새텃말- 백양동과 귀래동 사이의 새로 생긴 마을 (신대동) ※새터(新)
ㆍ순강(順江)- 백양동 남서쪽, 예전에 복하천이 흐르던 백양동 앞에 들로 요즘은 경지정리가 되어 옥토로 변했음.
ㆍ안골- 귀래동 남쪽, 귀래동 앞 논고래

 

※안(內)+골(고래)
ㆍ앞고래- 백양동 남쪽, 백양동 앞 논고래
ㆍ앞절골- 귀래동 앞 남쪽 산골짜기 ※앞전골(前谷)
ㆍ억억다리- 백양동 서쪽, 세종대왕이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현 성남시 내곡동)에서 천장을 할 때

놓은 다리로 쇠고개에서 넘어와 복하천을 건너기 위해서 급조해서 놓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 엄나무골- 새터말 오른쪽산, 새터말에서 백양동으로 가는 길목 저수지위에 엄나무가 많이 자라던 골짜기
ㆍ엄나무골 저수지- 새텃말 앞 저수지, 새텃말 마을 앞에있던 저수지로 옛날 큰 엄나무가 있었음.
ㆍ역말(역골)- 귀래동 북쪽, 조선시대 파발마가 다니는 곳(강릉쪽)ㆍ원수(元水)골- 귀래동 서북쪽,

뒷골저수지 동쪽으로 원수우물이 있는 논고래
ㆍ원수(元水)우물-귀래동 서북쪽, 물이 잘나고(元水) 겨울에도 얼지 않는 우물이 예전에 빨래 우물로 이용했었다.
ㆍ주누께- 백양동 서쪽, 복하천을 사이에 두고 하다리 (시광이)와 마주보고 있는 밭갈 끝 논 고개
ㆍ진설미- 백양동 서족, 발갈 초입 복하천변 효지리 쪽으로 나있는 들

 

※진(긴 長)+뾰족한
ㆍ행자우물- 귀래동 북쪽, 옛 관리가 행차하다 물을 먹었다는 곳으로 예전에 장을 담글 때 떠다 썼다고 하며

귀래동에서는 식수로 사용했다.

 

※ 행차- 행자
ㆍ허덜령 산고- 귀래동 북쪽, 귀래동 뒷산너머 구리실 쪽으로 향한 쪽에 있는 오래된 산소
ㆍ효지서낭- 귀래동 남쪽, 효자를 기리기위해 효지 사람들이 60년대 중반까지도 소를 잡아 서낭에 고사를 드리던 곳
ㆍ홍서교- 귀래동 북쪽, 흥천면 귀백리와 능서면 내양2리 사이에 있는 다리

제11절 율극리 (栗極里)

ㆍ가막지(釜谷洞)(구전자:심평래57세)- 율극리의 가운데 마을 , 일설에 임진왜란 당시 이웃 밤골은

왜군이 쳐들어갔으나 가막지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발견되지 않아 무사히 난을 피하게 된 후로

부곡동(釜谷洞) 이라 부르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가막지로 불리어 지고 있다.


※감골은 큰 골짜기라는 뜻이다.
감골이→ 감아골→ 가마골→ 가막골
(큰 동네라는 뜻이다)
ㆍ가막지앞- 가막지 북쪽, 가막지 앞에서 밤골로 향해 있는 들


※가막지 참조
ㆍ감발- 발골 서북쪽, 밤골뒤 골짜기 ※ 가막지 참조
ㆍ거북바위- 가막지 동쪽, 가막지 뒷산너머 거북처럼 생긴 바위
ㆍ대국말림- 밤골 서북쪽, 백석고개에서 밤골뒤까지 이어진 들로 거물게 자루모양같이 생겼다.

 

※대국(大局)+말림(末林)
ㆍ동자바위- 밤골 뒷산에 동자바위 혈이 있어 옛부터 율극리에는 기형아가 없다고 한다.
※동자(어린아이 童子)
ㆍ매봉재 (구전자:이경수60세)- 은골 서쪽 율극리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예전에 매를 날리던 장소

 

※매(山)+봉(峰)
ㆍ무네기고개(구전자:심평래57세)- 가막지 남동쪽, 가막지 남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상무들 밑의 긴 논고래


※무=(물 水)+네기(건너 越)
ㆍ밤골- 가막지 북쪽, 능서 구양리나 번도리에서 밤골을 보면 밤송이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 이라고 한다.

 

※받(山의 뜻)+골→밤골
ㆍ밤골다리(율극교)- 밤골 동쪽, 밤골과 능서면 내양리를 잇는 다리
ㆍ밤골앞- 밤골앞 고래, 밤골 마을 앞에서 귀백리 넘어가는 고개까지 길게 이어진 논고래
ㆍ백석고개- 밤골 서쪽, 율극리와 귀백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흰 돌이 출토되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
ㆍ빗가리(구전자:이경수60세)- 은골 북쪽, 가막지위에 논고래

 

※빗=경사=비탈
ㆍ살께 (구전자:심평래57세)- 밤골 북쪽 양화천변에 고기잡이를 위해서 살을 막았던 지역


※①살(물살)+개(浦 또는 가장자리 邊)
②살(물살)+개(개울 川)
ㆍ삼형제골- 밤골 북쪽, 대국 말림 앞에 있는 세골짜기
ㆍ상무니(구전자:이경수60세)- 은골 서북쪽, 은골위 매봉재 밑에 향나무가 있는 들
ㆍ상무니 고개- 은골 서북쪽, 매봉재 밑 상무니 앞 논고래
ㆍ새말(남녘골)(구전자:심평래57세)- 밤골 남쪽, 밤골에서는 남녘골이라고 하고, 기막지에서는

새말이라고 하는 곳으로 밤골과 가막지 사이에 있는 들
ㆍ선바위- 밤골 뒷산에 있는 바위로 율극리에서 가장 높이 우뚝 서있는 바위


※제8절 하다리 중 아들바위 참조
ㆍ성목골- 밤골 서쪽, 장터거리 위에 큰나무가 있던 논고래


※성(산 城)+목(목쟁이)
ㆍ성재- 가막지 동쪽에 있는 산 ※성(城 산)+재(고개)
ㆍ성재고개-가막지 동쪽, 가막지와 성재 사이를 넘는 고개
ㆍ송재골(구전자:이경수60세)- 가막지 동쪽 양화천변에 있는 들
.아랫고래-은골 동쪽, 은골 앞 무네기 고래 동쪽 끝자락에 있는 들
ㆍ웃가막지(구전자:심평래57세)- 가막지 서쪽, 가막지 위에 있는 들 ※가막지 참조
ㆍ유목골(버드나무골)- 밤골 남서쪽, 밤골과 가막지 사이에 버드나무가 많았던 들


※바들(뻗은)
ㆍ율극리 (栗極里)-본래 여주군 길천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율동, 부극동,

효자동 일부를 병합하여 율동과 부극의 이름을 따서 율극리라 하였으며 단위 부락으로는 밤골, 가막지, 은골이 있다.
ㆍ옻물탕- 밤골 북쪽 정지너머들 끝에 있는 약물로 효혐이 있다함.
ㆍ요동묘- 밤골 서쪽 옛날에 큰 묘가 있었는데 경지정리로 매몰되고 지명만 남아있다.
ㆍ용의 머리(구전자:이경수60세)- 은골 동쪽, 율극리 초입 산형상이 용의 머리 형상임, 옛날에 이곳에

큰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하도 거지가 많이와 귀찮아진 부자는 거지를 못오게 하려고 못을 판 후 망했다고 한다.


※용(느러진산)+머리(솟은 곳)
ㆍ은골(隱)- 가막지 남쪽, 옛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싸움에서 백제군이 거의 전사하였으나

장군 한 사람이 이곳에 숨어서 무사히 귀국하게 되었다가 재차 싸움에서 이 장군이 크게 승리를

거둔 후부터 이 고을을 은(隱)골이라 부르게 되었다한다.


※水門=隱(楊花川과 큰 길 사이에 있는 작은 부락)
ㆍ작은 은골- 은골 동쪽, 은골에서 용의 머리로 가는 중간으로 예전에 부락을 이루고 살던 곳.
ㆍ장터거리- 가막지 서북쪽, 은골과 가막지에서 흥천장을 보려가던 길이 있는 들


※①장터(시장터)
②장터= 고대 운동경기 중의 하나로 장치기하던 터
ㆍ정지너머둘-밤골 북쪽, 밤골 너머 있는 들로 거물게 바탕 모양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


※정=잔(小)→장→정
지=재(산고개) (잔등산 너무들)
ㆍ젖은밤골- 밤골 서쪽, 항상 물이 흔했던 논고래 ※젖은 = 잣(작은)+밤(밖外)
ㆍ중특고래(구전자:이경수60세)- 은골에서 가막지 사이에 왜정때 제방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었던 들

 

※중터고래(中垈 가운데)→중턱고개
ㆍ찬우물(구전자:심평래57세)- 가막지 서쪽에 있는 찬물이 나오던 우물로 각종 부스럼을 치료하던 우물
ㆍ효자묘- 가막지 서쪽, 250년 전 청송심씨 효자해관 동몽교관의 묘

제12절 효지리 (孝池里)

ㆍ구두머리(구전자:최범수49세)- 억다리 동쪽에 있는 작은 동산

 

※거북머리라는 뜻
ㆍ기사바골(구전자:장두봉44세)- 효지 남쪽 모장재, 길 건너 있는 논고래
ㆍ기아가마- 효지 서쪽, 효지 앞고래 건너편 산
ㆍ긴등고래- 효지 남쪽, 효지에서 대당리로 넘어가는 긴 등성이로 된 고개
ㆍ대출고개- 효지 북쪽, 산고개길
ㆍ대출고래- 효지 북쪽, 대출산 아래 있는 효지와 귀백리 사이에 있는 논고래
ㆍ대출산- 효지 북쪽산
ㆍ독쪽골 (구전자:최범수49세)- 효지 북쪽, 효지 뒷마을로 옛날엔 최씨들이 모여 살던 마을
ㆍ뒷골- 억다리 북쪽, 억다리 뒤쪽 논고래
ㆍ마나골(만호골)(구전자:장두봉44세)- 효지 남쪽, 청당이와 효지경계에 있는 옛날 1만여호가 살았다는 골짜기


※말(山말)+안(內)+골(谷)=말안골→ 말아골→ 마나골
ㆍ망재- 효지 뒷산, 효지와 귀백리와 경계를 이루는 효지 뒷산
ㆍ모장재-효지 남쪽, 효지 초입 현 흥천중학교에서 효지쪽으로 내려오는 산모랭이


※모랑(隅)
ㆍ백중터-효지 서쪽, 효지 저수지 길건너 위쪽에 있는 옛 절터


※ 받(山)이 박, 백, 배 등으로 변음된다.
(산중(山中垈라는 뜻)
ㆍ비석거리 (구전자:최범수49세)- 억다리 마을 서쪽,억다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서쪽에 비석이 있었다.
ㆍ서낭당(구전자:정두봉44세)- 효지 동쪽, 효지에서 율극리로 넘어가는 고개 마루에 있는 서낭
ㆍ쇠전거리- 억다리 동편 흥천시장터 ※우전(우시장)= 소전 =쇠전
ㆍ술구지- 효지 동남쪽 율극리 쪽으로 나있는 논고래

 

※水口址=松丘址
ㆍ숲거리(구전자:최범수49세)- 억다리 남쪽, 억다리 앞에 있는 참나무 숲 ※숲=수(藪)
ㆍ쑥뎅이(구전자:장두봉44세)- 효지 남쪽, 효지 앞산으로 쑥이 많이 났다.


※쑥(불쑥솟은)+뎅(산등)
ㆍ쑥댕이 고개-효지 남쪽, 효지에서 청당이로 넘어가는 고개길
ㆍ산사터(구전자:최범수49세)- 억다리 동쪽 구두머리 초입에 있었으나 해방이 되면서 없어졌다.


※신사(新寺)=왜정때 일본 황실의 조상이나 일본에 국가적 공로가 큰 사람의 신을 모시는 사당


※신사(新寺)=새절


※신사(神社)=신령을 모시는 사당


ㆍ앞고래 (구전자:장두봉44세)- 효지 서쪽, 효지앞에서 독쪽골 앞으로 길게 나있는 논고래
ㆍ억다리(億橋洞)- 효지리 중심마을, 흥천면 소재지인 효지1리 앞을 흐르는 복하천에 옛날

어떤 장수가 놓았다는 억억다리가 있었다한다.
이 다리로 인하여 하천 옆에 부락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 부락은 조선조 중엽에 생기었으므로

다리 이름을 따서 억다리로 부르고 있으나 현재 다리는 매몰되어 있다.
ㆍ억억다리 (구전자:최범수49세)- 효지 북쪽, 하다리에서 귀백리로 이어지는 돌로 만든 다리
ㆍ여사우- 억다리 남쪽, 복하천옆 억다리에서 청당이로 이어지는 들
ㆍ연사낭골(구전자:장두봉44세)- 효지 동쪽, 효지마을 앞에서 동쪽 율극리 쪽으로 나있는 논고래
ㆍ장터(구전자:최범수49세)- 억다리 마을 동쪽, 옛날 흥천장이 서던 곳
ㆍ쪽다리(구전자:장두봉44세)- 효지 서쪽, 큰 길에서 효지로 들어가는 작은 다리
ㆍ좌디(구전자:최범수49세)-억다리 동북쪽, 귀백리 초입 대출 고개 밑에 있는 산
ㆍ좌디들- 억다리 북쪽, 좌디밑 길건너에서 귀백리에 이르는 넓은 들
ㆍ차나무골(구전자:장두봉44세)- 효지 동쪽, 서낭당 밑에서 율극리로 뻗어있는 논고래


ㆍ효지(孝池)- 억다리 동쪽 마을. 조선조 현종때 현재 효지2리 마을에 노부모를 모시고 근근

덕신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20대 젊은 청년이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수년간 병환으로 누워계시는

동안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였으나 차도가 없는데다 하루는 아버님이 물 생선을 먹고 싶다고 하여

엄동설한에 현재 있는 저수지에 와서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아보았으나 잡히지 않아 밤을 새워가며

고기잡이를 하던 중 이튿날 새벽에 하늘이 훤하게 밝아지면서 잉어가 하늘에서 떨어져 그 잉어로

아버님 병환을 치료하고 난 후부터 부락민이 효자비를 세워놓고 마을이름도 효지(孝池)라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ㆍ효지리(孝池里)(구전자:최범수49세)- 흥천면 중심부락, 본래 여주군 길천면의 지역으로서 효자

김고길(金古吉)이 살았으므로 효자동 또는 효자, 소지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억교동을 병합하여 효지리라 부르며 억다리와 효지 2개의 단위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ㆍ효자비(구전자:장두봉44세)- 효지마을 동쪽끝, 효지리 뒷산에 있는 효자비
ㆍ효지서낭당(孝池城皇堂)- 효지 북쪽산, 효지2리 북쪽 산등성이에 있는 서낭당.
해마다 음력9월 그믐께 효지리, 대당리 사람들이 모여서 제사를 지냄.
제사를 주관하는 관주는 아주 깨끗한 사람 내외와 제수를 준비하는 주비 몇 사람을 뽑아서 10월 상당 초승에 날을 잡아 정성을 다하여 제물을 장만해 가지고 관주가 먼저 산신제를 지내고 이어 서낭제를 지내는데 매우 영험하여 그 근처의 나무를 베거나 돌을 주어도 반드시 벌을 받는다하여, 왜정때 왜경이 제사를 막았다가 번번히 변고를 당하고 마침내 제사를 다시 지내라고 하였다 함.
ㆍ효지저수지- 억다리 효지사이에 있는 큰 저수지
ㆍ흥천교(구전자:최범수49세)- 억다리 서쪽끝, 억다리에서 하다리를 연결하는 다리

제13절 대당리(大塘里) (구전자:경관수59세9전지역))

 

ㆍ검바골 (전부)- 청당이 남서쪽, 청당이 서쪽 산 ※검은 +비탈
ㆍ구두머리- 청당이 북쪽, 청당이 방죽위에 있는 효지리 구역에 있는 들


※군(주체가 아닌 것)+들(坪)+머리(여주지역 사투리로 어떤 목적물의 근처 주위 등의 표현)
ㆍ구렁탱이-청당이 서북쪽, 벌떠구니 끝부분으로 복하천변에 있는 다른 지역보다 지대가 낮은 들
ㆍ구융늪- 청당이 서북쪽, 소 구융(소죽을 담아주는 물건)처럼 생겨서 이름 붙여진 늪
ㆍ굽우물- 대왕이 서북쪽, 말굽으로 파서 생긴 우물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굽(인위적으로 판것이 아니라 천연적으로 파였다는 표현)
ㆍ굽우물들- 대왕이 서북쪽, 굽우물 부근의 들판
ㆍ대당리(大塘里)- 효지리 남쪽, 본래 여주군 길천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청당리(淸塘里)와 대왕리(大王)와 이천군 부발면의 대왕리 일부를 병합하여 대왕과 청당의 이름을 따서

대당리라 하였다고 하며 청당이와 대왕이로 나누어져 있다.
ㆍ대왕이- 청당이 남서쪽, 옛날에 왕이 말을 타고 마을 앞을 지나가다가 말이 죽어 그곳에 묻었는데

그 무덤이 하도 커서 왕무덤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부락이름도 대왕(大王)이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일설에 마을 뒷산에 고려 제32대 우왕(禑王)의 능이 있다고 하여 대왕(大旺)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석북(石北) 신 광수(申光洙)(조선 중말기 시인)가 이곳을 지나면서 지은시가 있다.
過禑墓(우왕의 묘를 지나면서)
삼한기업반천년 (三韓基業半千年) - 오백년 터를 닦은 삼한일세
야토우금만사정 (野土于今萬事精) - 한줌의 흙이 되어 만사가 가련 코나
운거군왕무단갈 (運去君王無短碣) - 운이 가면 군왕묘에 표석하나 없나
춘래봉역입신전 (春來封域入新田) - 봄이 오면 묘터엔 밭이 생기고
용린욕문원운곡 (龍鱗欲問元耘谷) - 용린은 운곡 원천석에세 묻는다지만
마렵수문정도전 (馬렵誰聞鄭道傳) - 마렵은 누가 정삼봉(도전)에게 들어보나
만월대허증과객 (滿月臺墟曾過客) - 일찍이 만월대 빈터를 지나던 과객이
갱가추초석양전 (更歌秋草夕陽前) - 지금다시 가을 석양머리에 읊조리고 서있네
1. 운곡은 원척석의호 그가 비문을 지은 가운데 고려 왕자들은 겨드랑에 비늘이 달렸다는데서 용린이란말이 생겼음(운곡은 고려를 지키다 숨은 사람)
2. 정도전의호는 삼봉, 마렵은 묘의 용미를 칭하는 것으로 정도전이 풍수학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에 그를 빙자해서 하는 말(정도전은 원척 석과는 반대로 이성계를 도와 개국공신이 되었음)
ㆍ방죽- 청당이 북쪽, 효지리 쪽 길아래 있던 옛 연못으로 지금은 없어져 논이 되었다.
ㆍ백자(柏子)목골- 청당이 서쪽, 청당이 뒤쪽 검벅골 너머 있는 논고래로 잣나무 골이라고도 한다

 

※ 柏子(잣나무)
ㆍ벌떠구니- 청당이 서북쪽, 청당이 마을 서북쪽 복하천변에 위치한 넓은 들


※벌떠구니=벌판의 사투리
ㆍ벌집- 청당이 북서쪽, 벌떠구니 옆 넓은 들에 집이 한채 있어 붙여진 이름
ㆍ마당 늪- 청당이 서쪽 복하천변에 늪이 마당모양 4각으로 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ㆍ만호골- 청당이 동쪽 옛날에 1만호가 살았다는 유래가 있는 논고래


※만호(灣湖) 물구비 안골
ㆍ망월재- 청당이 뒷산으로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달맞이 하던 곳 ※望月+재(고개)
ㆍ못(池)골- 청당이 남쪽 연못이 있는 골짜기라 붙여진 이름
ㆍ3형제 늪- 청당이 서북쪽, 벌떠구니 안에 있는 작은 웅덩이가 셋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ㆍ싸리벌떠구니- 대왕이 서북쪽, 백자 목골과 수리재 밑에 있는 들로 들싸리가 많아서 부르던 이름
ㆍ서낭당- 대왕이 동북쪽, 청당이에서 대왕이로 가는 고개로 있는 서낭
ㆍ수리재- 청당이 서북쪽, 안터위 산에 예전에 독수리가 망을 보던 장소라 부르던 이름


※수리=제일 높은 곳(사람이 서 있을 때 제일 높은 곳이 이마 머리부분인데 이것을 정수리라고 부른다.(頂上)
ㆍ안터위-청당이 왼쪽에 있는 골짜기 ※안터 위(上)
ㆍ앞고래- 청당이 앞에 있는 남에서 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논고래
ㆍ약우물- 청당이 남쪽, 앞고래 남쪽 끝에 있는 옛 약수터로 현재 세탁장으로 쓰이고 있다.
ㆍ여남실- 청당이 동남쪽, 신근리쪽 긴등 밑에 있는 논고래
ㆍ여사위- 청당이 북서쪽, 장길거리 밑에 있는 예전에 여우들이 뛰어놀던 넓은 들
ㆍ열녀골- 청당이 동쪽, 청당이 앞산 너머 만호골 오른쪽으로 나있는 논고래로 예전에 열녀가 살았던 곳이라 한다.
ㆍ월치- 청당이 서북쪽, 벌떠구니 초입에 있는 늪이 있는 들
ㆍ장길거리- 청당이 북쪽, 옛날 청당이 주민이 효지1리 장터로 가던 길거리
ㆍ장자우물- 청당이 동남쪽, 여남실 끝에 있는 옛 부자가 살던 곳의 우물


※잔(잣 山)+자(재 峴)
ㆍ절골- 청당이 남쪽, 공동묘지 아래있는 옛절터
ㆍ청당(淸糖)이- 대당리 중심부락으로 옛날에 이 부락에 천석군인 큰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부모님의

병환을 고치기 위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약을 구하여 치료를 해도 효험이 없어 근심하던 중

꿈에 도사님이 나타나 맑은 연못을 파면 그곳에 하늘에서 선녀가 목욕을 하러 내려올 때 약을 갖고

올테니 그 약을 부모님께 드리라고 계시를 하여 큰 연못을 파 부모님의 병환을 낮게 해드렸다고 한다.
그후 이 마을을 청당(淸塘)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연못은 지금 논이 되어 없어졌다고 한다.

제14절 신근리(辛根里)

ㆍ가마웅뎅이 (구전자:심은섭48세)- 오근동앞(광고판) 고래에 근처에서 가장 샘이 잘나는 웅덩이를 말함.
ㆍ가잣물 (구전자:유도희48세)- 행자촌 앞의 옛날 빨래터
ㆍ골말(구전자:이훈49세)- ①-안터 위의 있는 마을
ㆍ골말(구전자:심은섭48세)-②-광고판 서북쪽, 광고판에서 효지리 가는 고개길옆 행자촌 쪽으로 향한 골짜기
ㆍ광고판- 신근2리 중심마을, 오근동 가운데 있는 마을
ㆍ광지우물(구전자:구본경45세)- 구터 동쪽 군봉터 밑에 있는 큰 (광지)우물

※廣池
ㆍ광진우물(구전자:심은섭48세)- 방죽안 서남쪽, 방죽안 위에 있는 큰 저수지로 약20년전 에 경지정리로 없어졌다.

 

※광지(廣池)-광진
ㆍ구레누골(구전자:권영창50세)- 탑산지 서쪽, 탑산지와 아랫말 중가에 있는 고래로 율극리 경계에까지 뻗어 있다.

 

※고래논골
ㆍ구멍터(구전자:권영건60세)- 시광이 동쪽, 구터와 시광이의 산모랭이 들의 경계부근
ㆍ구터(舊)(구전자:구본경45세)- 신은동(신근1리)의 가운데 마을
ㆍ군봉터- 구터 동쪽, 구터와 시광이 사이에 있는 골짜기
ㆍ군봉터들- 구터 동쪽, 구터와 시광이 사이에 있는 군봉터 밑의 광지우물 옆에 들
ㆍ굴우물(金井)(구전자:권영건60세)- 구터 북쪽, 구터 넘어 예전에 金井이 있었는데 금정이

와전되어 굴우물로 불리우고 있다,
ㆍ굴우물고개- 구터 북쪽, 구터넘어 시광이까지 이르는 굴우물이 있는 고개 길.
ㆍ굴청설래(구전자:유도희48세)- 행자촌 동쪽, 백바위들 끝에 있는 들
ㆍ길천교(吉川僑)(구전자:구본경45세)- 구터 동남쪽, 신근리와 능서면 번도리를 잇는 다리


※개울(川)이름이 길천(吉川)
ㆍ독고래(구전자:권영창50세)- 탑산지 서쪽, 구레누골 위로 긴등 밑에 있는 고래

 

※돌고개
ㆍ되렝게말
아랫말 서쪽위에 있는 마을
ㆍ뒷골(구전자:유도희48세)- 행자촌 서쪽, 광고판 뒤에서 수폭말까지 동서로 길게 이어진 논고래
ㆍ막장고래(구전자:심은섭48세)-방죽안 서족 광진 우물 밑에 논고래


※막장<끝부분>- 논 고래의 끝
ㆍ매봉재(구전자:이훈49세)- 안터 서쪽 산위로 신근1리에서 가장 높아 예전에 매를 날려 사냥을 하던 곳

 

※매(山)+봉(峰)
ㆍ방죽고래(심은섭48세)- 방죽 아래있는 광고판 앞의 고래
ㆍ방죽안- 광고판 서쪽에 있는 마을 ※방죽 안쪽
ㆍ백바위들(구전자:유도희48세)- 행자촌 동쪽, 행자촌 앞들로 예전에 날이 가물어 농사를 못지어

백바위들이라 불렀다고 한다.
ㆍ벌떠구니(구전자:구본경45세)- 구터앞 동쪽에 있는 넓은 들로 벌터 쪽으로 나있어 붙여진 이름

 

※벌더구니는 벌판의 뜻으로 여주지방 사투리
ㆍ벙어리골(구전자:심은섭48세)- 방죽안 서쪽, 방죽안의 벙어리 삼개가 살았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
ㆍ삼갑- 광고판 서북쪽, 광고판 너머 대당리와 효지리로 가는 길목의 논고래
ㆍ삼강려(三綱閭)- 방죽안 입구, 방죽안 마을 초입에 있는 선조때 충신 정응린(鄭應麟)과 그 아들

효자 적(迪)과 적의 아내 열녀 청품 김씨의 정문
ㆍ삼형제골짜기 (구전자:구본경45세)- 구터 동쪽, 구씨 부자 삼형제가 광지 우물을 파고 망했다고 하는

골짜기
ㆍ새박골(구전자:권영창50세)- 아랫말 서북쪽, 구레누골과 종달암 사이에 있는 논고래


※새(間)에 박힌 골
ㆍ서낭당이(구전자:심은섭48세)- 광고판 북쪽 효지리 가는 길옆 산에 신근2리와 신근3리 경계에 있는 서낭당
ㆍ성물배기- 광고판 서쪽, 신근리와 대당이 경계에 있는 장씨네 옛 고려장 무덤이 있는 곳.


※석물배기
ㆍ성재(구전자:구본경45세)- 구터 남쪽, 구터 앞산으로 옛날 성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부락민들이

산을 위하지 않으면 부락에 변고가 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성(城)은 산(山)의 뜻으로 낱은 고개
ㆍ성재뜰- 구터 남쪽, 구터앞 성재 밑에 있는 들
ㆍ소마답- 구터 뒷동산 너머에 있는 들로 예전에 소를 매어 놓았던 곳.
ㆍ쇠구배미- 구터 동쪽, 구터 군봉터 밑 광진우물 앞 논고래


※소(牛)=굽(발굽) - 반원형 형태
ㆍ수폭말 (구전자:유도희48세)- 행자촌 서쪽, 행자촌 위의 마을

 

※숲→ 수풍
ㆍ시광이(柴光)(구전자:권영건60세)- ①구터 북동쪽, 옛날 시광이 동네는 떼밭, 즉 세광이

(깔따리풀)라 불렀으나 지금은 시광이라 부르고 있다.
②一說에는 -(구전자:이문수56세) 신근1리(안터, 구터, 시광이)중 동쪽마을로 아침 햇살을 제일

먼저 받는 마을이기 때문에 시광(始光)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ㆍ시광이 들- 시광 마을 앞 동쪽 들


ㆍ신근리(莘根里)(구전자:이훈49세)- 효지리 남동쪽, 본래 여주군 길천면의 지역으로서 고려 때

신잉이처(新仍伊處)가 있었으므로 신잉이처, 신잉이, 신은이, 신느리 또는 신은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은동 , 오근동, 탑산지 3개 마을을 합하여 신근리가 되었는데

신은동에서 신자, 오근동에서 근자를 따서 신근리가 되었고 단위부락으로는 안터, 구터, 시광이,

방죽안, 광고판, 윗말, 행자촌, 아랫말, 탑산지가 있다.


ㆍ신근리저수지(貯水池)(구전자: 심은섭48세)- 광고판 남동쪽, 신근리 주민들의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약 60여년전에 축조한 저수지
ㆍ신은동(莘隱洞)(구전자:이훈49세)- 오근동 남쪽, 현재 능서면 용은1리와 흥천면 신근1리가 서기1928년 이전에는 한 부락이었는데 여주-이천간 도로가 확장되고 능서면과 흥천면으로 부락이 갈리면서 신은동으로 불리게 되었고 자연부락으로 안터, 구터, 시광이가 있다.
ㆍ아랫말- 신근3리 가운데 마을
ㆍ안무술(구전자:심은섭48세)- 광고판 서쪽에 있는 긴 골짜기로 이천군 대관리쪽으로 뻗어 있다.
ㆍ안산너머(구전자:권영건60세)- 시광이 서쪽, 시광이에서 흥천면 소재지로 나가는 굴우물 고개길

 

※안산(案山)
ㆍ안터(구전자:이훈49세)- 구터 서쪽마을, 행정 개편전에 신느리로 웃말, 아랫말로 불리다가

용은동과 신근리로 분리되면서 지금은 안터로 부르고 있다.


※안(내부 內部)+터(마을)
ㆍ연당(구전자:유도희48세)- 행자촌 남쪽, 신근2리에서 3리로 가는 모퉁이로 예전에 연못이 있었던 곳.

 

※연당(蓮塘)→ 연못
ㆍ연당 모퉁이- 행자촌 남쪽, 신근2리에서 신근3리로 가는 연당앞 산모퉁이
ㆍ오근동(悟根洞)(구전자:심은섭48세)- 신근리 가운데 마을, 부락에 예전부터 오동나무가

많이 있었다하여 오근동으로 불리웠다고하며 자연부락으로는 방죽안, 광고판, 윗말이 있다.


※오근- 오목하게 들어간
ㆍ옻나무 고개(구전자 :구본경45세)
구터마을 앞, 주막거리에서 구터로 들어가는 초입의 옻나무가 많이 자라던 고개
ㆍ용의머리(구전자:권영창50세)- 탑산지 동쪽, 탑산지 앞 양화천 변에 있는 산으로 용머리처럼 생겼다.

 

※용(龍)=산줄기 머리=산 끝이 솟은 곳
ㆍ용의 머릿들- 탑산지 동남쪽, 탑산지 마을 앞에 있는 넓은 들 ※용의 머리 참조.
ㆍ웃골(구전자:이훈49세)- 안터 남쪽, 안터마을 앞에서 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논고래
ㆍ웃말 앞(구전자:심은섭49세)- 방죽안 마을 앞 논고래
ㆍ윗말- 광고판 동쪽 마을
ㆍ은행나무 (구전자:유도희48세)- 행자촌 남쪽, 연당 모퉁이 산위에 있는 군지정 보호목으로 수령이 약300년쯤 됨.
ㆍ작은 종달암(구전자:권영창50세)- 아랫말 서쪽, 종달암에서 남서쪽으로 뻗어있는 작은 논고래


※고대신앙 종단암(宗壇岩)→종달암
ㆍ장승거리(구전자:유도희48세)- 행자촌 남동쪽, 연당 앞 들로 논이 하도 가물어 벼가 묘지에 있는

장승처럼 말라죽어 서있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장승- 마을 입구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을 세운 마을 수호신.
ㆍ장터골(구전자:심은섭48세)- 광고판 북서쪽, 광고판 위 옛날 장씨들이 살았던 곳


※장치기=옛날 운동경기중의 하나 풀밭이나 넓은 장소에서 편을 가랄 지금의 하이스키 유형의 경기(장치기하던 골짜기)
ㆍ주막거리(구전자:구본경40세)- 구터 남쪽마을, 구터앞 성재 밑에 있는 마을로 예전부터 주막이 있었다.
ㆍ종달암(구전자:권영창50세)- 아랫말 서쪽, 되렝게말 넘어 긴등으로 뻗어 있는 논고래
ㆍ쪽다리(구전자:심은섭48세)- 광고판 서쪽, 광고판에서 방죽안으로 가는 길목에 옛날 돌로 쌓아

만든 다리로 지금은 매몰되었다.
ㆍ쪽다리께(구전자:구본경45세)- 구터 남쪽, 구터와 주막거리 중간에 있는 다리
ㆍ참나무고개- 구터 동쪽, 구터에서 들길로 시광이로 가는 참나무가 많이 있는 고개


ㆍ탑산지(구전자:권영창50세)-고려 총력왕때 부터 탑산지라고 하는 부락이 형성되었다고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탑산지라고 부르는 유래는 조선시대 어느 선비가 과거를 보러가기 위해 능서면

말마당이를 지나고 있을때 갑자기 먹구름들이 일고 소낙비가 내릴 듯 북쪽에서 천둥번개가 쳐서

북쪽을 바라보니 산끝 부분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이 보이고 마을 에 잇는 집이 탑으로

산을 쌓은 것처럼 보였다고 하여 오늘날 탑산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자연부락으로는 행자촌과 아랫말이 있다.
탑(塔)+산(山)+지(터 址)
ㆍ행자촌- 아랫말 남쪽, 신근 2리에서 3리로 가는 초입에 있는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