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15년 12월 13일
☞산행날씨: 오전에 흐린날씨... 오후에 맑음
☞산행거리: 도상거리 25km + 어프로치1.5km / 8시간 55분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점촌고개-경부고속철-묘지-체육시설-묘지-그늘막-덕우저수지 갈림길-약수터
서봉산-217.4m봉-명봉산 갈림길-묘지-현화사 안부-묘지안부-도이리 갈림길
동오리갈림길-묘지-동산숲유치원-동오정 한식당-관리고개-철계단-대형환기구
139m봉-천석바위-노인복지회관갈림길-행정리갈림길-68번도로-가로고개-절개지
고개-NO6송전탑-인동장공묘지-안부-벌목-창녕성씨가족묘지-139.1m봉-밀성박씨묘지
향남3배수지-306지방도-양석골사거리-뽕나무식당-댕산-사토장-절개지-갈림길
잡목지대-송전탑-129.8m봉-고려레미콘-도로-절개지-전주이씨세장비-청송심씨 가족묘
갈림길-십자안부-토취장 담장-논두렁-공장마당-절개지-세종레미콘-도로-절개지-묘지
주산봉-전주류씨 재실-요당리고개-은행나무-요당리마을회관-버스정류장-양감산업단지
도로-덕지산-덕지산 갈림길-광승갈림길-고령신씨 가족묘-체육시설-넓은공터-백제약국
도로-절개지-창녕조씨가족묘-공장도로-잡목지대-묘지-방앗간-토진2육교-청북중 정문
삼거리-오성산업단지 정문-민가-묘지-39번국도-오뚜기라면 정문
☞소 재 재: 경기도 화성시 발안읍, 정남면, 향남읍 양감면 / 평택시 청북면 / 오성면
요즘 대한민국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황당무개한 일을 참으로 많이 겪다보니 이제 놀라지도 않는다
그 첫번째가 민주노총 위원장이란 자가 한국불교의 심장부인 조계사 경내에 들어와서 25일간이나
틀어 박혀서 2,000만 불자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마치 자기가 부처라도 된양 2,0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하니 우짜니 하면서 괘변을 널어 놓다가 불자들의 압력에 못이겨
경찰에 연행되어 가면서 마치 순교자라도 된 양 쑈를 하는데 정작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내일이라도 짤릴까봐서 입도 벙긋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알고 있는지...
둘째는 요즘 정치권에서 여.야 할것 없이 온갖 난리부르스다.
야당은 야당대로 여당은 여당대로 난리인데 지체 높으신 나리들... 그게 과연 민초들을
위한거요 아님 당신네들 밥그릇 싸움이요... 시원하게 말이나 좀 해보소
얼마전에는 야당의 최고위원까지 지낸자가 자기 아들이 로스쿨 시험에서 떨어지자
대학 관계자를 국회까지 불러서 회유하고 급박하더니 또다른 국회위원은 분과 위원장이란
직책을 이용하여 국회에서 출판 기념회를 하면서 카드기까지 설치해놓고 책장사를 하지 않나
며칠전에는 야당의 전 대표와 현대표가 기득권 싸움에 충돌하더니 탈당을 하는 소동도 벌어진다
다들 참으로 정신들 못차리고 있다... 지금 나같은 자영업자들 IMF때보다도 더 혹독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민초들의 녹봉으로 살고 있는 자들이 민초들을 이렇게 핍박하니...
이웃나라의 일본이나 중국의 지도자들은 어케하면 국익을 추구하려고 애쓰건만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뭔 똥배짱인지, 과연 이 시대엔 다산선생같은 목민관은 정녕 없단 말인가...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해병대 사령부 버스 정류장(06:50)
이른 새벽에 일어나 9개월만에 서울에서 가까운 서봉지맥 제2구간을 하기 위해서 집을 나선다
최근에 여러가지 스트레스로 인하여 몸의 컨디션이 최악이라 원거리 지맥을 하지 못하겠다.
행장을 간다하게 꾸려서 지하철 2호선 사당역에 도착하니...06시 20분
사당동에서 화성시 조안읍으로 가는 8155번 첫 차가 출발하기 직전이다
서둘러 버스에 오르니 버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더니만 27분만에 해병대사령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해병대 사령부 정류장에 내리니 아직도 어둠이 가시지 않아서 20분동안 걸어서
도착한 곳이 9개월만에 도착한 곳이 점촌고개 아래에 있는 상봉시골밥상집이다
아직도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산행을 준비한다
점촌고개(店村峴:07:10)
좌측 고개 아래에 있는 점촌에서 지명을 따온듯하며 점촌을 점말이라고도
하며 예전에 이 지역이 옹기점이 많이 있었다고 하여 붙혀진 지명이란다
지맥길은 우측 절개지로 올라서야 하나 KTX 선로가 지맥길을 막고 있어서
부득이 좌.우 쪽으로 돌아가야 하는 곳이다
어차피 우회길이라 좌.우 어느쪽으로 가던지 그것은 산꾼 개인의 몫이다
나는 내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와서 고속 철도 아래로 지나간다
고속철도를 지나니 공장지대가 나오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고속철도 선로와 오일교한 공장 사이로 올라선다
경부고속철도 철조망을 끼고 등로로 올라선다
등로에 오르면서 바라본 정남면 오일리(五逸里)의 모습
정남면의 중심에 있는 마을로 조선조 중엽 어느 도사가 이 마을 앞을 지나면서
"다섯 번 큰일을 당하고 다섯번 경사를 맞을 것"이라 말했다 하여 오일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그러나 원 이름은 오곡(五谷) 곧 오실 이었으며, 이 오실을 거쳐 오일이 되자 한자로 '五逸'이라 쓰게 된 것이다.
자연마을로는 오곡, 여목 등이 있는데 여목은 오일리 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지형이
목처럼 생겼다는 데서 여목이란 이름이 붙었으며 또한 조선 말기 이(李)씨가 이 마을에 정착한 이래
매사마다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되었다고 해서 여의동(如意洞) 혹은 여목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잡목을 헤치며 올라서니 강릉류공 묘지가 나오는데 묘지를 가로질러서 간다
삼거리(07:25)
본격적인 제도권 등로롤 접어드니 서봉산으로 오르는 길은 무지하게 좋아진다
넓은 공터(07:30)
넓은 공터에는 각종 체육시설과 팔각정, 서봉산의 유래 안내판이 서 있다
넓은 공터에 서 있는 서봉산의 유래 안내판
서봉산으로 오르는 길은 고속도로 수준이다
등로 옆에는 멋진 암릉이 이른 아침에 길을 걷는 산꾼 범여를 반기고...
그늘막(07:40)
산객들의 쉼터가 있고 이정표(→정상 1.0km, ←수라청 1.3km)가
있는데 수라청이란 화성시에서 운영하는 농수산물 센터를 말한다
간간히 내려오는 등산객들과 인사를 나누며 서봉산으로 오른다
덕우(발안)저수지 갈림길(07:47)
약수터(07:52)
좌측 100m 아래 지점에 약수터가 있지만 물은 말라 있다
약수터 갈림길에 오르막으로 오르니 우측으로 서봉산 정상이 보인다
서봉산 정상 이정표
서봉산 정상 아래에 있는 거창신공과 진주강씨 부부 합장묘
팔각정이 있는 서봉산 정상으로 오른다
서봉산(棲峰山:249m:07:55)
경기도 화성시 발안읍과 정남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팔각정과 정상석
쉰길바위, 이정표와 안내도, 그리고 등산객들을 위한 의자들이 배치되어 있다.
발안읍의 진산으로 정상에 서니 지나온 서봉지맥과 내년초에 걸을 태행지맥이
한 눈에 들어오고, 바로 아래에는 해병대사령부와 그 너머로 서해대교가 아련히 보인다
지맥의 유래는정상을 멀리서보면 봉황을 닮았다고 해서 불렀다는 설과, 예전에
봉황이 살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는 두 가지 설이 존재한다
이 산골짜기 안에 쉰길바위가 있을 정도로 비교적 높고 골짜기도 대단히 깊다
1794년(정조18년)에 발간된 「수원부읍지」에 의하면 서봉산은
‘부(府) 서남 15리 정송면(貞松面)에 있는 산으로 작은 소암(小岩)에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1831년(순조31년)에 발간된 「화성지」에서도 ‘부남 35리
남곡면(南谷面)에 있으며 능원(융릉, 건릉) 화소 내에 포함된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러한 기록 때문인지 정남면 백리에서는 서봉산을 화소산(火消山)이라고도 부른다
서봉산 쉰길바위의 유래
서봉산은 옛부터 봉황이 깃드는 산이라 하여 서봉산이라 불려오고 있다.
아주 오랜 엣날 서봉산 중턱 작은 암자에 젊은중과 동자승이 시주걸립을
하며 살았다...어느날 젊은 스님이 시주걸립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마을
어귀 우물가에서 아름다운 낭자를 보았는데 그날 이후 스님은 낭자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려 잠이 오질 않았고 불경을 외우는 것도 내키질 않았다
스님은 모든것을 잊기로 결심하고 마을로 시주걸립을 떠날 때 낭자의 부친이
깊은 병이나서 눕게되어 온갖 치료를 다해 보았으나 효험이 없다는 소식을
듣게되어 약 처방을 써주고 차도가 있은 뒤 자기 암자에 와서 3일간 불공을
드리라는 말을 남기고 암자로 돌아 갔는데 낭자는 스님의 처방대로 약을 달여
부친에게 드리니 병세가 금방 호전되었고, 낭자는 스님의 말대로 서봉산
암자에 들어가 사흘동안 정성을 다해 부처님께 불공을 드린 다음 스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나려할 때 스님은 그 동안 낭자를 사모하여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솔직히 고백하고 낭자와 함께 불도수행을 떠나 환속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겠으니 들어줄 것을 간청하였다.
환속을 약속하겠다는 표시로 서봉산 쉰길바위에서 턱걸이 백번을 하기로 하고
낭자가 보는 앞에서 온 힘을 다해서 턱걸이를 하였는데 99번째 가서 기운이 빠지고
의식이 몽롱해지고 손이 풀리면서 급기야는 높이가 쉰길이나 된다는 바위의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낭자는 너무나 지나친 요구를 하여 스님이 불의의 변을
당한 것을 후회하고 슬픔을 못잊어 한참을 엎드려 울고 있다가 일어나니 앞에
난데없이 바위가 하나 우뚝 솟아나와 눈믈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가 스님을 이루지 못한 영혼이 깃들어 눈물을
흘리며 울고있다 하여, 눈물바위라 불러오게 되었으며 쉰길바위와 함께 지금도
스님과 낭자의 한맺힌 사연이 담겨져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서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발안읍의 모습
화성시사에 보면 [발안리] 옛날에는 이곳이 갯벌(浦原)이었는데,
그 벌의 안(內)쪽에 있다고 하여 벌안(坪內)이라 하였는데,
이것을 한자로 발안(發安)이라 쓰게 된 것이다.라고 쓰여있다.
발안읍에는 해병대사령부가 있으며 그 너머로 태행산과 건달산이
보이는데 내년초에 걸어야 할 화성(태행)지맥 구간이 범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발안읍 너머로 서해대교가 아련히 보인다
다시 팔각정으로 되돌아와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지맥길로 내려선다
서봉산 정상에 있는 구간 안내도
구조이정목을 지나면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내리막길에도 등로는 아주좋다
화성종합 운동장도 보이고...
해병대 골프장에는 라운딩하는 골퍼들도 보이고...
217.4m봉(08:18)
명봉산갈림길(08:20)
직진을 하면 명봉산으로 향하는 길인데 일반 등산객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서봉지맥길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명봉산 갈림길을 내려서니 묘지 너머로 화성시 정남면 문학리가 보인다
묘지를 지나니 좌측으로 현화사라는 사찰이 보인다
현화사 안부(08:25)
현화사 안부를 지나니 휴게용 의자가 2개 나오고 또다시 안부가 나오면서
우측으로는 묘지가 나오면서 다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명봉산이 보이고 오르막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니 이정표를 만난다
도이리 갈림길(08:35)
이정표(←서봉산정상 1.9km, ↑도이리(동오리) 1.1km, 하가등리 0.5km)
도이리 갈림길 이정표에서 좌측으로 90도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산길이 아닌 트레킹하는 기분으로 편한길을 걸어서 가니 체육시설이 있는 또다른 이정표가 나온다
체육시설이 있는 넓은 공터가 동오리 갈림길이다
동오리(東梧里) 갈림길(08:45)
화성시 향남읍에 있는 동오리는 마을 대부분의 지형이 비교적 완만한
구릉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부는 산지로 조성되어 있는 마을이다
자역마을로는 구억, 벌터, 장터마을이 있으며,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3기가 있고, 옛부터 전해오는 서낭굿이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 좌측으로는 동오리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직진으로 내려서는 길이 지맥길인데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있다.
그런다고 맥 산꾼이 안 가는건 아니지...지난주부터 심한 독감으로
컨디션이 최악인 가운데 산행을 시작했고 어제도 뭘 먹지 못한 탓에
이른 새벽에 집을 나왔더만 배가 상당히 고파오기에 집에서 가져온
양송이 스프로 간단한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간단한 범여의 아침식사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출입금지 방향의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우측 도이리 방향으로 인도어 골프장이 나오는데 연습장에는 단 2명만이
내년 봄을 대비하여 열심히 칼을 갈고 있는데 나도 한때는 저 정도 미쳐 있었지
골프 연습장을 지나니...
좌측으로 묘지가 있는 갈림길에서 묘지 방향으로 향한다
全州柳氏 묘지로 내려선다
전주류씨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좌측으로 서봉산 안내도와 출입금지 팻말이
있는데 출입금지 이유를 알겠다... 묘지쪽으로 다니지 말라는 뜻이다
이곳으로도 서봉산을 많이 오르는지 먼지를 터는 에어컴프레스도 설치되어 있다
동산숲유치원(09:05)
유치원을 끼고 우측 도로로 내려간다
좌측으로 한옥으로 된 동오정이란 한정식 집을 지나니...
도이리(桃李里) 고개(09:10)
화성시 향남읍 도이리와 양감면 관리의 경계에 있는 삼거리 고개로 82번 도로가
지나가며 SK LPG 주유소가 있는 고개가 도이리 고개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우측에있는 도이리에서 지명을 따온듯 하다
도이리의 지명유래는 예전에 복숭아와 오얏나무가 많아서 붙혀진 지명이다
건널목을 지나...
SK LPG 주유소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잡풀이 무성한 비계 철계단으로 오른다
능선에 올라서서 뒤돌아 본 도이리의 모습
숲속으로 들어서자 엄청나게 큰 환기구 굴뚝을 만난다
정상에 오르니 산불감시초소가 나오는데 무용지물인듯 싶다
사방이 꼭막혀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데 산불감시초소가 왜 필요한 지?
산불감시초소(139m:09:15)
산불감시 초소 아래에는 준.희 선배님께서 표지판을 붙혀놨다
다시 편안한 낙엽길을 따라서 조금을 걸어가니 커다란 바윗 덩어리가
나타나는데 지도상에도 나타나질 않는 천석산이라는 곳이 나온다
천석산(天石山:139m:09:16)
화성시 향남읍과 양감면 경계에 있는 조금만 능선에 있는데 산이라기이에는
약간 민망할 정도의 봉우리에 커다란 돌덩어리 하나가 있고 최근에 설치한 듯한
천석산의 유래에 표시판이 있는데 이 지역 사람들도 천석산이 어딘지 알지 못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조금을 더 가면 산 기슭에는 천석사라는 조금한 절이 있다
천석산의 유래판을 인용해 보면 하늘이 천명을 구할 수 있는 산이라고 붙혀진 이름이라는 설과,
이 산골짜기에 천 명이 앉을 수 있는 바위가 있어서 붙혀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는데 입이 남쪽으로
향하고 비구가 북쪽을 향하며, 멀리 서해가 바라 보이고 사방이 한 눈에 보이는 곳으로 하늘이
맞닿은 바위라 하여 천석바위라 부르기도 하고 또다른 일설에 의하면 부근에는 전혀 다른 바위는
볼 수 없어 옛날 삼신할머니가 놓고간 바위이며 하늘에서 떨어뜨렸다하여 천석(天石)바위라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 화성시 -
천석산의 지명유래 안내판
천석산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1분정도 지나니 이정표가 나오는데 우측으로 노인복지회관이 있다
산책객들이 가끔 다니는 곳인 모양이다
휴게용 의자도 보이고 등로도 반질반질하건만 오늘은 개미세끼 한마리도 안보인다
오늘은 지난주에 걸었던 문혜(대득)지맥과는 달리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심심찮게 보인다
행정리 갈림길(09:22)
이정표(↑행정리 0.7km, ↓천석바위 0.2km, ↗노인복지회관0.3km)가
있는 Y자 갈림길에서 좌측 행정리 방향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뚜렸한 길을 가다가 갑자기 길이 없어지고 낙엽만 수북하다
우측으로 약간 꺽어지니 낙엽속에 파묻힌 무명묘지 2기를 지난다
갑자기 나뭇가지 사이로 폐골재처리장이 나오고 원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나잡목이 무성하고 등로가 보이질 않는데... 대다수 선답자들은 우측으로 갔기에
나 역시 그 길로 내려서니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68번 도로로 내려서니 좌측으로 폐골재공장 정문이 나오고...
폐골재 공장(09:30)
폐골재 공장을 지나 가로고개로 올라선다
가로고개(09:32)
화성시 향남읍 행정리와 백토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82번 도로가 지나가며
좌측으로는 폐골재 공장과 우측으로는 행복나루라는 오리고기집이 있다
가로고개 정상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식당 뒷쪽으로 오른다
배추밭을 지나서 조그만 봉우리로 올라선다
능선에서 뒤돌아 본 원지맥길과 내가 걸어온 길
수도권의 지맥길은 대부분이 망가지고 있는데 맥 산행을 하는
산꾼으로서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사유재산권에 대한
의문을 달고싶은 맘은 추호도 없지만 자꾸만 망가지는 맥길에 대한 안타까움 뿐이다
능선에서 바라본 향남읍 행정리의 모습
대산꾼 준.희 선배님
한번도 뵌 적은 없지만 아마 이 분 때문에 맥산행을 좀 수월하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식당 뒷쪽 능선으로 올라서니 아카시아, 청미래 등 잡목들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참으로 대한한 친구여!... 얼마전에 지나간 모양이구먼
잡목의 강력한 저항을 뚫고 능선을 걷는데 좌측으로 공장이 야금야금 지맥길을
갉아 먹고 있는데 저 건너편에 서있는 NO 6 송전탑을 바라보며 지맥길을 이어가고 있다
공장 도로길(09:40)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등장하지 않는 도로가 새로 생겼다
또 지맥길이 망가지고 있는 현실... 후답자의 산행기에는 어케 기록될까
도로에서 우측 절개지로 기어올라 간다
조금전에 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다시 편안한 길을 만난다
NO 6송전탑(09:45)
송전탑 아래 갈림길에서 우측 등로로 향한다
묘지가 나오고 묘지 윗쪽에는 컨테이너하우스가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인동장씨부부묘(09:46)
편안한 길로 내려서니 안부가 나오고...
안부(09:50)
좌측으로 벌목지가 나오고...
벌목지 너머로 바라본 백토리(白土里)의 모습
백토(白土)가 나므로 백토골, 백토동 또는 변하여 한두골, 환두곡이라 한데서 백토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애내, 두물, 한두골 등이 있다. 애내는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기라고도 부르며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촌이라고도 부른다.
두물은 한두골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한두골은 백토리의 원마을이다.
능선으로 오른 다음에 편한 길을 걷는데 우측으로 창녕성씨 가족묘가 보인다
창녕성씨 가족묘(09:58)
139.1m봉(10:00)
139.1m봉에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호화묘지들이 많이 보인다
농장도 보이고...
밀성박씨 가족묘(10:03)
부모님의 은혜를 기리는 표시석도 있고...
좌측으로는 향남3배수지가 보인다
배수지 옆 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비포장 길로 내려가는데 새로 심은 소나무가 몽땅 말라 죽었다
전시행정의 표본인가...
309번 지방도(10:08)
도로를 따라서 양석골 사거리로 향한다
양석골(兩石谷) 사거리(10:10)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양감, 경기도 사격장 방면으로 43번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향남읍 하길리에 있는 양석골(兩石谷)은 샘물이 풍부하고 사람들도 농사에 힘써 심한 가뭄
때에도 벼농사가 잘되어 양석 소출을 낸 다고 하여 양석골(兩石谷)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하길리는 조선시대 말기에는 남양군 분향면이었는데, 면소재지의 아래쪽 안길에 마을이
위치해 있다고 하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하길리(下吉里)이란 마을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하길리의 마골(麻谷)은 옛날 이 마을 뒷산에 麻谷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들끓어 廢寺되어
없어졌다고 한다.
도로를 따라서 걸어가는데 ‘화리현一리(양석골)’을 만난다
상두리 갈림길(10:15)
이곳에서 도로를 버리고 우측 뽕나무골 표시석 방향으로 오르는데
그 아래에는 농촌진흥청에서 조성한 누에박물관이 조성되어 있다
누에박물관
2001년 6월 17일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하길리에 개관한 잠사 전문박물관이다.
농촌진흥청에서 35년간 누에를 연구해온 임수호 관장이 약 5만 500㎡ 규모의
뽕나무골을 조성하고 누에박물관과 곤충생태관·자연학습장·산림욕장 등을 세웠다.
이 가운데 500㎡ 규모의 누에박물관에는 누에치기 시설물과 실켜기·물레잣기·뽕가꾸기
용구 등 누에 관련 자료 3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누에치기 발전사, 명주와 베틀, 누에와 실크를 이용한 각종 제품과 누에 관련
캐릭터 수집품 등이 전시되어 있고 이 밖에도 뽕나무 생산과정을 직접 볼 수 있고,
덴마크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조선시대 풍속화 〈뽕 따는 아낙네〉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뽕나무골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잡목으로 인하여 심히 걷기가 불편하다
야생화 나비동산이라는 비닐하우스는 망가져서 흉물스럽다
댕산(121.3m:10:25)
화성시 향남읍 하길리와 화리현리의 사이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야생화 나비동산이라는
비닐하우스가 흉물스럽게 정상을 지키고 있고 멋진 소나무가 있으나 댕산의 표지는 없다
예습을 하지않고 산행을 하면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곳이다
댕산 정상은 오르는 곳은 등로가 비교적 뚜렸하나 내려가는 길은 보이질 않는다
잡목의 저항을 뚫고 이리저리 헤맨끝에 겨우 날머리를 찾았지만 맥길은 이리저리 찢겨있다
내려서니 이곳 역시 맥길이 난개발로 인하여 끊겨 있기는 마찬가지...
그래도 원칙대로 가고 싶어서 절개지로 올라 섰다가 잡목으로 인해
바지가 찢어지고 얼굴이 할키는 수난을 당하는데 후답자들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우회하여 편하게 걸으시기를...
절개지를 올라서서 곡예하듯 능선을 걷는데 좌측에는 골재 야적장이 보인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 가시에 얼굴이 할켜 피가 묻어 나온다
내가 멀쩡한 집 나두고 뭔 개고생이람...
5분정도 잡목과의 사투를 벌아며 임도로 내려서 우회하면 만날 수 있는 길로 내려선다
등로가 거의 보이질 않는 희미한 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다시 희미한 길로 내려서니 선답자의 시그널이 보이는데 반가운 사르리님 것도 보인다
희미한 등로는 계속되고...
잠시 후 좌측으로 넓은 밭과 전원주택이 나오는데 좌측에 보이는 봉우리를 향해 걷는다
잡목이 버려진 능선으로 오르니...
능선 우측 아래에는 송전탑이 지나고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등로를 이어간다
다시 등로는 좋아진다
이곳 역시 지맥길 아래까지 전원주택이 있으니 언젠가는 이곳 맥길도 없으질 것 느낌이다
노끈으로 해놓은 걸 보니 아마 개발을 할 모양이다
조금을 더 지나니 묘지를 옮긴 자리가 나온다
‘국유지’라고 표기해 놓은 노란 말뚝을 자주 만난다
조금을 더 진행하니 희미한 갈림길이 나오는데 선답자들은
우측으로 가신 분들이 많지만 난 조금 편한 직진으로 진행을 한다
129.8m봉(11:15)
갈림길에서 직진을 하니 129.8m봉이 나온다
가야할 주산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측 아랫쪽에는 고려레미콘이 지맥길 정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직진으로 가는데 갑자기 뚜렸한 등로가 없어지고 낙엽이 수북한 험한
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레미콘 공장 안쪽으로 들어선다
레미콘 공장안으로 들어 선 다음에...
고려레미콘 정문을 지나...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레미콘 공장 좌측으로는 넓은 초지가 보인다
강원폐차산업(주) 정문을 지나니...
대양리 고개(11:30)
도로를 가로질러 공장옆 절개지로 올라선다
절개지로 올라서 지나가니 공장쪽으로 편하게 오르는 편한 길이 보인다
괜히... 개고생 했구먼
시멘트 도로 삼거리에서 직진을 한다
전주이씨 세장지(11:35)
전주이씨 가족묘에서 바라본 향남읍(鄕南邑)의 모습
경기도 화성시의 동남쪽에 위치한 읍이다. 21개 법정리가 있으며 2007년에 읍으로 승격하였다.
향남읍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옛 수원군 공향면(貢鄕面), 남면(南面) 그리고 옛 남양군
분향리면(分鄕里面)이 통합었으며 오늘날 향남면의 남쪽 지역인 구문천리 · 하길리 · 상신리
등이 옛 남양군 분향리면 지역이었다.
18세기 때 제작된 남양의 고지도에서는 이 분향면을 분고면(分古面)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공향면은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고려 시대 때 특수행정취락인 공이향(工二鄕)이 있었던 곳이다.
『수원부읍지』에는 공이향면(工二鄕面)으로, 『화성지』에 공향면(貢鄕面)으로 각각 기록되어 있다.
또 공향면에 옛 서북면(西北面)이 합쳐졌다고 『화성지』에 기록되어 있다. 『팔도군현지도』,
『팔도지도』, 『해동여지도』 등 18세기에 제작된 지도들에는 공향면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공향면에 있었던 해창(海倉)만 표시되어 있다.
이에 비해 『1872년지방지도』는 공향면의 위치를 표시하였다. 옛 남면은
현재의 향남면의 동쪽 지역인 화리현리 · 백토리 일대를 관할하였다.
『수원부읍지』 편찬 당시에는 동면(東面)이었다가, 후에 남면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18세기 고지도들에서 동면 혹은 그 이후의 남면이 표시되어 있지 않고, 『1872년지방지도』에서
비로소 남면이 표시되어 있는데 그러나 실제보다 훨씬 동쪽에 배치해 놓았다.
향남읍에는 오래 전부터 유명한 발안장(發安場)이 있다.
발안장은 『1872년지방지도』에도 표시되어 있다.
향남(鄕南)이라는 면 이름은 공향면과 남면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공향이라는 지명은 옛 공이향을 줄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남면의 명칭 유래는 알 수가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향남읍[鄕南邑, Hyangnam-eup]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 12., 국토지리정보원
전주이씨 가족묘를 조금 지나니 청송심씨 가족묘가 나온다
청송심씨 가족묘(11:37)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 밭가장자리로 올라선다
전주유씨 가족묘(11:40)
전주유씨 가족묘를 지나...
넓은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김해김공과 전주유씨 부부묘를 지나고...
다올 선생 시그널도 만나고...
내리막길도 내려서니 십자안부가 나오는데 원 지맥길은 내리막길 전에 우측으로 가야한다
십자안부(11:55)
철제 담장을 끼고 걸어간다
원 지맥길은 산산히 망가지고 있다
녹슬은 담장을 지나...
논두렁 가운데를 걸어가는데 이게 뭔 지랄인지?
山自分水嶺을 위배하며 지맥길을 이어간다
논두렁에서 바라본 원 지맥길
도랑 가운데를 지나서...
공장 앞마당도 지나고...
공장 가운데를 통과하여 절개지로 올라선다
이곳은 공장부지를 조성하고 있다
절개지로 올라서니 좌측으로 세종레미콘 공장이 보이고...
우회를 하면서 절개지로 올라온다
절개지를 지나 세종레미콘을 끼고 도로로 내려선다
306번 지방도(12:15)
306번 지방도를 가로지른 다음에 진성레미콘 뒷쪽 절개지로 오른다
절개지에서 내려다 본 모습
남양홍공 묘지를 지나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을 만나고...
새집
주산봉(109m:12:30)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다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이곳 정상에 삼각점이 있다고 했는데 수북한 낙엽속에 찾을 길이 없다
그냥 모르고 지나가기 충분하며 서봉지맥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수확을 끝낸 인삼밭이 나오고 도로옆엔 전주유씨 재실이 있다
全州柳氏 洗馬公派 영묘재(12:40)
전주유씨 재실을 지나니 파산한 축사가 나오고 커다란 은행나무가 보인다
이곳이 박사마을로 유명하고 은행나무 마을로도 불리는 요당1리이다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의 모습
전주 류(柳)씨 집성촌인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요당(蓼塘)1리.
명봉산(鳴鳳山) 자락 아래 '갈대(蓼) 연못(塘)'이 있다고 해서 요당리로 붙여진
이 마을은 400여년 된 은행나무가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은행나무 마을로도 불린다.
이 마을은 36가구가 전부지만 국내 굴지의 기업 회장을 비롯해 교수, 의사, 한의사 등 13명의 박사가 배출됐다.
류덕희(70.명예 경영학박사) 경동제약 회장을 비롯해 류준수(80.명예 철학박사) 한양대 명예교수, 류인수(73.농학박사)
단국대 대우교수, 류관희(64.공학박사)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 등 생존해 있는 박사만 13명이다.
이들은 경영학, 철학, 공학, 이학, 문학, 의학, 한의학, 교육학 등 각 분야에서 두루 박사로 배출돼 저마다 각자의 분야에서
고향을 빚내고 있으며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뒤 20여년간 고향에서 교편을 잡은 류정수(82)씨는 요당1리는 '4.19'가
발생한 1960년부터 대학생이 많기로 소문난 마을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 면 단위에서도 찾기 힘든 대학생이 우리 마을엔 30명이 넘게 있었다"며 "공부를 못한 것이
한이 된 조상들이 광복 직후 땅을 팔아서라도 자식 공부를 시켜야겠다는 마을정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요당1리가 박사마을이 된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이 마을은 축산대학으로 널리 알려진 건국대 졸업생이 유독 많아 경기도에서
낙농마을의 시초가 됐고 황우석 박사의 복제소 '영롱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자료 인용)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는 400년된 은행나무
요당마을의 지명유래 표지판
요당1리 마을회관
겨울이라 식수를 조금밖에 가져오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물이 많이 먹힌다
이곳 마을회관에 들려 생수를 보충한 다음에 다시 덕지산으로 향한다
마을회관을 지나니 도로가 나오고 다시 도로를 따른다
요당리 사거리(12:55)
오늘은 마을과 도로를 많이 지나가기에 식당이 많을 것 같아서 도시락을 싸오질 않았는데
생각보다 식당은 보이질 않고 해서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사거리 우측에 ‘국송’이라는 한식
뷔페식당이 있어 점심식사를 해결하러 갔는데 문이 굳게 닫혀있어 발걸음을 되돌린다
양감산업단지 사거리에서 우측의 도로를 따른다
양감산업단지의 모습
양감산업단지를 지나 고개 오르기 직전에서 좌측 숲으로 들어선다??????? ?? ?? ??? ???? ?? ??? ????
묘지 2기가 보이고, 뒷쪽 능선으로 오르니...
덕지산으로 오르는 편한 길이 나온다
덕지산(德智山:138m:13:15)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과 평택시 청북면의 경계에 있는 야트막한 산으로 정상에는
사각정자와, 이정표, 삼각점, 산불감시초소, 각종 체육시설이 너무 많아 어지러울
정도인데 누워 있는 정상석에는 덕지산이 아닌 ‘명봉산 정상’이라 표기가 되어 있어
약간은 혼란스럽다...정상 아래에는 덕지사라는 조그만 사찰이 있다
산불감시초소와 이정표
서봉산을 지나온 이후 처음으로 산에서 등산객을 만난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 초콜렛 하나와 쥬스하나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이제 베낭에 먹을 것이라고는 초콜렛 하나밖에 없는데 식당이 나타나겠지
망가진 덕지산 삼각점(△남양 320 / 1987재설)
다시 광승방향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덕지산을 지나면서 화성시를 완전히 벗어나 평택시로 접어든다
체육시설이 나오고...
내리막길을 지나니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향한다
덕지사 갈림길(13:35)
약간의 오르막에서 또다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의 오르막길로 향한다
오르막길을 오르니 묘지가 나오고...
묘지에서 바라본 평택시 청북면 어소리(魚沼里)의 모습
어소리(魚沼里)는 오래전에 큰 연못이 있어 양어(養魚)를 하였다는 연유로 불린
지명으로 원어소리(元魚沼里)와 구억(九億), 설창(設倉)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광승 (光升)갈림길(13:45)
평택시 청북면 현곡3리에 속해있는 마을로서 마을 뒷산이 큰 성채와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서봉지맥길은 어소리 방향으로 직진을 한다
고령신씨 가족묘(13:47)
묘지를 지나니 삼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직진을 한다
두릅밭이 나오고 봉우리가 보이는데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옆사면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체육시설을 지나면서 우측으로 백제약품 건물이 보인다
등로 사이로 바라본 백제약품
망가진 지맥길(13:52)
개발이란 미명아래 망가진 지맥길을 지나 다시 숲속 등로로 들어선다
잠시후에 좌측으로 잘 관리된 무명묘지를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백제약품 평택 물류센터(14:00)
백제약품 펜스 뒷쪽 절개지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다시 심한 잡목지대로 도저히 빠져 나갈 수 없어서 백제약품 펜스 옆으로 내려간다
이런 편한 길을두고 윗쪽으로 걸어온 내가 왜?... 지맥길이 뭔 지
백제약품 펜스와 이별을 하고 도로로 내려서니 좌측으로 어소리가 보인다
도로(14:05)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오르니...
꽤나 큰 두릅밭이 보인다
공장지대의 절개지를 따라서 곡예하면서 걷는데 아카시아를 비롯한 잡목이 상당히 성가시다
고령으로 이 험한 길을 어케 지나셨는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지나온 지맥길을 한번 더 뒤돌아보고...
무명봉(14:12)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니 창녕조씨 가족묘가 보인다
창녕조씨 가족묘 옆쪽으로 내려서서...
공장으로 통하는 시멘트 도로로 내려선다
공장 사이를 가로 지르니...
다시 절개지가 나오고... 절개지 위 능선으로 오른다
조금전에 왔던 길을 뒤돌아 본 모습
이 길도 조만간 사라질 것 같다
지나온 덕지산을 다시 한번 뒤돌아보고...
무명봉(14:25)
이곳도 개발을 하려는지 철조망으로 막아놨다
심한 잡목의 저항을 뚫고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내리막을 내려서니 공장지대 절개지가 나오고...
우경테크 앞 도로를 지나...
다시 공터로 올라서서 무명봉으로 올라선다
다시 잡목을 저항을 받으며 무명봉에 올랐다가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능선 우측으로는 황토밭이 보인다
묘지로 내려와 밭을 가로 지르니...
마을 도로를 따라서 간다
방앗간(14:35)
토진2육교(14:40)
육교 아래에는 평택에서 제천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육교 위에서 바라본 평택 → 제천간 고속도로
육교를 지나니 민가가 나오고 청북중학교 담장사이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청북중학교 담장 맞은편은 드넓은 배추밭이 전개되고...
청북중학교 담장옆 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청북중학교 정문(14:45)
청북중학교 정문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청북중학교를 지나자마자 서보레미콘을 만난다
토진리 삼거리(14:50)
340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면 좌측으로는 요양병원이 있고 우측으로는
한옥집이라는 식당이 보이는데 영업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배는 고파 죽겠는데...
한옥집을 끼고 우측 도로로 향한다
버스 정류장을 지난 다음에...
현곡산업단지와 오성산업단지 방향으로 향한다
오성산업단지 입구(14:53)
산업단지 입구에서 뒤돌아 본 모습
배는 고파 죽겠는데 뷔페식당이 있건만 이곳도 휴업중... 이런 젠장맞을...
뷔페식당 맞은편 편의점이 있다
이곳에서 컵라면 하나사서 먹고나니 그나마 조금은 살것만 같다... 집 나오니 개고생이네
편의점에서 휴식겸 민생고를 해결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원래 안성 북(서봉)지맥길은 좌측 공장지대 뒷쪽으로 가야하는데 이곳은 공장 철조망으로
인하여 갈 수 가 없기에 산업단지 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간다
이곳은 외국계 기업들이 많이 입주해 있고 특히 일본계 기업들이 많이 보인다
산업단지 도로 좌측으로는 오봉산이 보이고...
이제 양쪽으로는 공장이 전혀 보이지 않고 공장부지만 보면서 걷는다
멀리 보이는 NO40 송전탑을 바라보며 걷는다
오성산업단지 버스 정류장(15:35)
특고압 NO40 송전탑을 지나고...
산업공단 사거리를 지나서 마을 입구로 들어선다
마을입구로 들어선 다음에...
주택가를 지나고...
주택가 도로를 지나 좌측으로 올라서 밭을 지난 다음에...
이공 묘지가 나오고...
조그만 무명봉에 오르니 묘지 2기가 있고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엄청나게 험하다
잡풀을 헤치고 논으로 내려선다
밭을 빠져나와 도로로 향한다
도로로 나오니 조금전 주택앞 도로에서 헤어진 도로를 만난다
진라면 간판이 보이는 오뚜기라면 정문을 포스트 삼아 걷는다
시멘트 도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십자가가 있는 상가 건물 가운데를 지나간다
빠져 나가니 상가 건물이 아니고 교회이다
이곳에서 맞은편에 오뚜기 식품 정문을 바라보면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오뚜기 라면 정문(16:05)
안중에서 발안으로 이어지는 39번 국도가 지나가는 오뚜기라면 공장 앞에서
오늘 산행을 접고 베낭을 정리한 다음에 도로를 따라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후사1리 버스 정류장(16:20)
안중에서 수원으로 가는 7481번 버스를 타고 해병대 사령부 앞(버스비 1,900원)까지
가는데 이 버스는 왠만한 빨간 신호등은 거의 다 무시해 버리는데 버스 기사놈이 조폭인가
그러면서 아들넘이 내일 면허 시험을 치는지 전화기를 붙잡고 10분이상 통화를 하면서
운전을 하는데 정말 아찔한 기분이다... 버스 회사는 이 넘을 당장 짤라야겠다
대형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조암읍에서 나오는 8155번 버스를 타고 사당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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