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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안성북(서봉)지맥(終)

안성 북(서봉)지맥 제3구간 - 오뚜기라면 정문에서 아산만 방조제까지

by 범여(梵如) 2015. 12. 20.

 

☞산행일자: 2015년 12월 20

☞산행날씨: 잔뜩 흐린날씨에 미세 먼지가 심함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19km / 5시간 17분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오뚜기식품 정문-후문-주차장-절개지-88m봉-마을도로-경주이공묘지-무성산갈림길

                110.8m봉-자미쉼터-묘지-마을도로-100.5m봉-폐초소봉-신안주공 묘지-약사사-밭두렁

               서낭고개-임도-나주나씨가족묘-벌목지-임도-안중공설묘지-태성가설산업-금곡삼거리

               반룡한의원-초계칼국수-안중컨밴션 웨딩홀-경기외국어교육연수원-덕우1리삼거리

               38번 국도-안중1보도육교-안중출장소-현화교차로-GS주유소-로얄관광호텔

              학현리 버스정류장-S-oil주유소-석정삼거리-성혜2리정류장-성혜1리 정류장

              운정리입구 버스정류장-대신정기화물-포도밭-서해플랜트-운정1리 버스정류장

             부엌산-삼거리-현덕제일교회-도대3리 버스정류장-도대2리 버스정류장-동양가스

              가스저유소-권관양수장-삼거리-비포장도로-사거리-무명봉-임도-닭도리백숙집

              오리집-SK주유소-39번국도-가사육교-포장도로-달인 손짜장-현덕교차로-현덕I.C교

              계두봉-충혼탑-아산만 방조제

소 재 재: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 / 안중읍 / 포승읍 / 현덕면

 

12월초 중국 여행을 갔다와서 10번이 넘는 각종 송년회 회식을 참석했더니만 심한 몸살을 앓는다

요즘 흔히 하는 이야기로 ‘백수가 과로사하게 생겼다’... 매주 산을 다니면서 닦은 체력 때문에

5년이상을 감기한번 걸리지 않아 난 건강한 줄 알았는데 이제 세월앞에 어쩔 수 없구나

이번주 토, 일요일에는 결혼식이 3건이나 있었지만 마른 기침으로 인해 어딜 다닐수가

없어서 봉투로 대신하고 집에서 휴식을 푹 취하려고 했는데 범여의 몸 속에서 꿈틀거리는

그 넘의 역마살이 그냥 나두질 않으니... 참으로 심한 병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베낭을 챙긴 다음에 집에서 가까까운 개포동역에서

수원행 전철을 타고 수원역에 도착하니 날씨는 생각보다 상당히 춥다

수원역에서 다시 안중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여만에 오뚜기라면 정문에 도착한다

사실 오늘 구간은 맘이 썩 내키지 않는 구간이다... 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곳은 한 군데도

없고, 최고 높은 봉우리가 110.8봉인이고 그나마도 80%이상은 도시와 도로를 걸어야

하는 곳이지만 엄연한 지맥길이기에 별로 걷고 생각이 없으나 맘 한구석 찜찜함 때문에

나서지만, 오지의 산을 걸을 때처럼 찐한 흥분은 전혀 없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수원역(07:20)

개포동역에서 수원으로 향하는 분당선 전철을 타고 수원역에서 내려 10번 출구로

나가서 10분 정도를 기다리니 안중으로 향하는 8472번 시외버스가 도착한다

수원역에서 안중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8471번과 8472번이 있다

 

땅과 집과 길

시인 / 이 승하

 

나라마다 국경선은 수십 번도 더 바뀌었으리

땅 한평 더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목숨을 버리고

 

집 나서면 세상의 길은 모두 그대 길이었으리

땅은 주인이 있지만 길은 만인의 것

 

신분증도 여권도 없었던 혜초

불자이기에 국경선은 그냥 넘어갔겠지만

해가 지면 잠자리는 매번 어떻게 마련했을까

 

집값 오르니 오년 번 돈보다 더 많은 수익

집값 떨어지니 오년 번 돈보다 더 많은 손실

이 좁은 땅에서 아파트 평수 넓히고자 안달복달인데

 

혜초, 그대는 그 많은 길의 주인이었구나

그대 두 발로 걸어가 길을 길들였구나

 

수원역앞 버스 정류장에 있는 詩

오뚜기 라면 정문앞(08:35)

수원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손님이 꽤나 많다

특히 제약공단에서 일을 하는 외국인과 조선족들이 많이 탔고, 이 버스는

동네 골목마다 들이대는 바람에 1시간 가까이 지난 다음에 오뚜기 식품 앞에 도착한다

1주일만에 도착을 했는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상당히 추운 느낌이다

장비를 점검한 다음에 서둘러 산행을 준비한다

오뚜기라면 정문에서 왔던 북쪽으로 올라 후문 방향으로 오른다

후문쪽으로 오르니 바로 앞에는 S-oil 주유소가 보인다

오뚜기라면 후문(08:40)

후문쪽으로 오르니 주차장이 나오고...

주차장을 지나면서 전봇대를 끼고 절개지를 따라서 오른다

절개지 휀스를 따라서 오르는데 초반부터 아카시아 나무의 태클이 엄청나게 심하다

빛바랜 현오님의 시그널

휀스 안쪽에 의도적으로 심어논 아카시아 나무에 초반부터 얼굴이 할킨다

겨우 등로를 찾아서 오르니 폐초소봉이 나온다

폐초소봉(88m:08:55)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맞은편엔 가야할 110.8m봉이 보인다

폐초소봉이라 부르는 88m봉에 오르니 바로 아래는 뭘 심어놨는지 청색 그물망을 쳐놨고

그 너머로 가야할 오늘 산행중 가장 높은 110.8m봉이 보이는데 짙은 미세 먼지로 인해

그림이 그리 깨끗하게 보이지는 않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만이 반갑게 산꾼 범여를 반긴다

양심불량

88m봉에서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지난 구간인 화성시와는 달리 평택시는 산에 전혀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초반부터 잡목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고 등로도 보이질 않는다

거기다가 등로 곳곳에 생활 폐기물을 아무데나 마구 버려놔서 기분이 영 그렇다

안부(09:00)

안부를 가로질러 오르니 묘지로 오르는 나무 계단이 나온다

경주이씨 가족묘(09:02)

나무 계단을 오르니 예전에 있던 봉분을 없애고 와석(臥石)으로 묘지 표시석을 해놨다

묘지로 오르니 다시 길은 험해지고 능선위로 오르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가니 간간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는데 특히 맨발님 것이 많이 보인다

우측 아랫쪽에는 청북2 배수지의 커다란 원형 시설물이 보이고...

소나무 사이의 편한 길을 걸어간다

넓은 공터(09:10)

공터 아래에는 묘지가 있고 맞은편에는 110.8m봉 정상이 보인다

무성산 갈림길(09:15)

무성산 둘레길이란 이정표에서 약사사 방향으로 향한다

무성산은 평택시 청북면 후사리에 있는 산으로 예전에 군사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지맥길에는 한참 떨어져 있어서 그냥 패스한다

110.8m봉(09:20)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인데 정상에는 칡넝쿨을 비롯한 잡풀이 우거져 발디딜 틈이 없다

이곳은 원래 자미산이란 지명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지도상에는 110.8봉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지역 신문인 평택시사신문에 난 기사를 보면 자미산은 무성산, 비파산과 함께 안중읍과 청북면을

가르는 대표적인 산으로 세 개의 산은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모두

산성이 축성되었으며 자미산성은 해발 110.8m의 자미산 위에 쌓은 삼국시대 석성(石城)이다.

 

자미는 북두칠성을 의미하며 예로부터 북두칠성은 북쪽에 위치하여 북극성과 함께 항해하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었으며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고 믿어왔다.

안중지역 사람들은 자미산을 자매산 또는 마도산으로도 불렀고 자미산에는 임경업 전설이 전해온다.

어린 시절 임경업 남매는 승부욕이 강해서 내기놀이를 자주했는데 어느 날 누이동생과 내기를 하게 되었다.

누이는 돌로 성을 쌓고 임경업은 쇠나막신을 신고 한양을 다녀오는 내기였다.

 

조건도 살벌해서 ‘이기는 사람이 지는 사람을 죽이는’ 엄청난 내기였다.

임경업이 쇠나막신을 신고 한양으로 떠나자 누이는 돌을 져다 성을 쌓기 시작했다.

돌이 흔치 않은 덕우리 일대에서 축성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누이는 특이한 용력으로 성을 완성해갔다.

축성이 완공 되도록 한양으로 간 임경업이 돌아올 줄 모르자 지켜보던 어머니는 애가 탔다.

그래서 어떻게든 아들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맛있는 음식을 해서 먹이고 딸의 머리를 따주는

방법으로 축성을 지연시켰다.

결국 임경업은 내기에서 이겼다. 약속대로 누이동생을 죽였는지는 모르지만.

임경업 설화는 덕우1리 남동쪽 바운목에도 전해온다.

바운목산 정상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는 임경업 장군이

오줌눈 흔적과 오성면의 오봉산까지 뛰어 내린 발자국이 찍혀 있다는 것이다.

스토리의 내용을 임경업전에서 베꼈거나 서해안 일대에 전해지는 아기장수 설화에서

베낀 흔적이 있어 후대에 각색된 것이 분명하지만 외세의 침략이 빈번했던 지역에서

왜 임경업 설화가 많은지에 대해서는 해석해 볼 여지가 있다.

 

평택시사신문 자료 스크랩

110.8m봉 정상에서 산성의 흔적을 찾아보려 했지만 백사장에서 바늘찿기다

모든걸 포기하고 봉우리 아래로 내려서니 자미산장이란 원두막이 나온다

MTB표지판이 있는것로 봐서 이곳이 산악 자전거 코스인 모양이다

내려서니 우측으로 안성 북(서봉)지맥길을 이어가지만 바로 아래 자미쉼터로 향한다

자미쉼터라는 원두막이 있는데 아마도 이곳에서 텃밭을 하는 사람들의 쉼터인 모양이다

자미 쉼터 아래로 보이는 묘지들

다시 되돌아와서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묘지 옆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뚜렸한 임도가 나오고... 조금을 내려서니 좌측으로...

경주이공 부부묘를 지난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마을도로가 나오고...

고개(09:30)

고개를 가로질러 오르니 묘지가 나오고 묘지 뒷쪽의 능선으로 오른다

능선 윗쪽으로는 길이 무쟈게 좋다

100.5m봉(09:38)

2분정도 더 가니 군용감시초소가 있다

군용감시초소(09:40)

이곳이 비파산이 아닌지?...

다시 능선 아래로 내려선다

무성산 둘레길 이정표가 있고 좌측 아래는 신안주공의 묘지가 있다

신안주씨의 묘지

약사사로 내려가는 등로는 무쟈게 좋다

묘지 옆을 지나 내려서니 약사사가 보이고 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나 약사사로 들린다

약사사의 모습

약사사 대웅전(09:45)

약사사의 유래는 신라 문성왕 14년 염거조사께서 운악산에서 안거중에 상서로운 꿈을 꾸시고,

비파산(琵琶山)의 제일 명소에 그 후 고려 태조 왕건 10년에 해인대사께서 중건하여 고승들이

수도하던 고찰로서 약사여래의 주불을 모시고, 병고 중생의 기원 도량이며 득남과 소원을 빌어

이루지 아니함이 없는 영험 도량인지라 기도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약 60여년전 신라 고불을 도난 당하고 현재의 삼존불은 태영노사께서 청동불을 모셨으며

태영노사께서 현재의 대웅전을 짓고, 선방을 지을적에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기적을 보이심이

미륵전 앞 비문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경내 밖에는 연대를 알 수 없는

사리탑과 태영노사의 사리탑이 있다

약사사 미륵대불

미륵대불님에게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다시 지맥길로 복귀한다

새로운 당우를 짓고 있다

당우 뒤를 돌아서...

전봇대옆 밭으로 들어선 다음 숲속으로 들어선다

대부분의 산꾼들이 약사사 앞 도로를 따라서 고개까지 편히 가지만 가급적이면

원칙대로 걷고 싶어서 능선으로 들어서니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잡목의

태클이 어찌나 심한지 괜히 올랐나 후회스러운데 돌구님의 표식이 용기를 준다

잡목을 피해 이리저리 등로를 헤매다 내려서니 약사사에서 오르는 고개를 만난다

서낭 고개(10:00)

서낭고개는 덕우1리에서 후사리와 용성리 강길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다.

서평택 사람들은 이 고개를 넘어 청북면 현곡리와 수원 그리고 서울을 오갔다.

사역골(굴)재는 바운목산 동남쪽 약사사 약사사(藥師寺)를 거쳐 설창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약사사를 거쳐 설창을 지나면 국도 39호선과 연결되었다.

안중읍 덕우리 북쪽 청북면 옥길리나 포승읍 홍원리로 넘어갈 때도 고개를 넘었다

서낭고개 옆에는 NO67송전탑이 보인다

도로를 가로질러서 넓은 임도로 올라선다

잠시 후 넓은 임도를 버리고 등로로 올라서니... 우측으로 폐가가 보이고...

좌측으로 시멘트 도로를 바라보며 험하디 험한 마루금을 고집하며 걷는다

낙엽에 파묻힌 무명묘지 한 기를 지나고...

등로 우측에는 축사와 조립식 주택이 있지만 인기척은 없다

도로(10:05)

고속도로 같은 넓은 임도를 따른다

좌측으로는 지나온 약사사와 안중읍 용성3리인 설창(雪昌)마을이 보이고...

설창마을은 흰 눈(雪)처럼 고르게 창성(昌)하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고려 때 군량(軍糧)등을 저장하는 창고를 지었는데, 이곳에 저장한 양곡은

눈이 내리는 겨울에 백성을 위하여 사용하였다 하여 설창(雪倉)이라 부르게 되었다한다.

양심불량인 넘이 많구먼...

우측으로는 나주나씨 가족묘가 있고...

갈림길에서 등로는 우측 임도로 향한다

임도에서 능선으로 오른다

능선으로 올라 직진으로 걸어간다

벌목지 너머로 잠시후에 경기외국어교육 연수원 건물이 보인다

다시 등로 아래로 내려서니 전의이공 묘지가 나오고...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다시 임도를 따라 걷다가 잠시후에...

안중읍 공설묘지를 만난다

안중공설묘지(10:20)

다시 도로를 따라 지나가니 좌측으로 자동차공업사가 나오고...

태성가설산업 앞 Y자 도로에서 우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금곡삼거리(10:25)

안중읍내 들어서는 초입에 있는 금곡리(金谷里)는 마을의 형상이 소가 누워있는(臥牛)

형태라 하여 소골(牛谷)이라 하다가 쇠(金) 골이 되면서 금곡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금곡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39번 도로를 따라 걷는다

도로 건너편에는 S-oil 주유소가 보이고...

반룡한의원과 버스 정류장도 지나고...

사상의학(四象醫學)이란 사람들을 체질적 특성에 따라 태양·태음·소양·소음의

유형으로 나누고 그에 따라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우리 나라 고유의 체질의학으로

이제마(李濟馬)가 1894년(광무 31) ≪동의수세보원 東醫壽世保元≫에서 처음으로 창안,

발표하였는데 본래 사상이라는 어휘는 ≪주역≫에 나온 말로서, 태극은 음양을 낳고

음양은 사상을 낳는다고 한 데서 유래된 것으로 사상은 태양(太陽)·태음(太陰)·소양(少陽)·

소음(少陰)으로 분류되어 이를 체질에 결부시켜 태양인·태음인·소양인·소음인으로 구분하였다.

그래서 각기 체질에 따라 성격, 심리상태, 내장기의 기능과 이에 따른 병리·생리·약리·양생법과

음식의 성분에 이르기까지 분류하여 이를 사상의학 또는 사상체질의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갈림길(10:35)

안중읍내 중심지로 이어지는 39번 도로를 버리고 우측 골목길로 들어선다

우측으로는 대성자원이라는 고물상을 지나고...

새로 지은 듯한 O2모텔도 지나고...

뉴욕엔젤어린이집도 보이고...

서평택충청향우회관도 보이고... 잠시후 좌측에는 버스 종점도 보인다

경기외국어교육연수원(10:40)

시립안중어린이 집을 지나니... 덕우1리 갈림길이 나오는데 직진을 한다

덕우1리 삼거리(10:43)

덕우리(德佑里)의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한자를 그대로 풀면 덕으로 도우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덕우리에는 큰 부자들이 많았는데 교통은 불편하고 근대시설은

부족했지만 마을 터가 좋고 토지가 비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안중읍 덕우리 유지층들은 부족한 근대 문물을 스스로 해결하였다.

1920년대에는 대지주 이강세와 이기수가 자비로 야학을 개설했고, 오유순과 최기명도

덕우리강습소를 운영했고 서평택지역에서 성공회 교회가 가장 먼저 설립된 곳도 안중읍 덕우1리다.

성공회 덕우리교회는 신명강습소를 개설해 근대교육까지 병행했는데 나중에 성공회 안중교회로 통합되었다.

현재 자미산과 비파산 서쪽에는 청북신도시가 건설되었다.

맛있는 아.점시간(10:50 ~11:35)

덕우1리 갈림길에서 39번 도로를 따라서 걷는데 중국집이 보인다

아직 아침을 먹지않아 출출하던 참에 식당으로 들어가서 식사가 되냐고

물으니 된다고 한다... 지난주에 식당이 없어서 개고생 했던터라 삼선짬봉을

시키는데 생각보다 가격대는 비싸지만(8,000원) 맛은 상당히 훌륭하다

화교가 운영하는 식당인데 분위기도 깔끔하고 음식맛도 일품이다

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 커피까지 한잔 마신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학현(鶴峴) 사거리(11:36)

학현리 마을의 형상이 학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39번 도로를 따라서 걷는데 좌측에는 안중성당이 보인다

 

39번 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안중1보도육교(11:40)

육교를 지나면서부터는 좌.우로 아파트 모델하우스들이 즐비하다

난 안중에 대한 좋지 않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사업을 시작하고나서 처음으로 위기를 맞은 곳이 이곳이다

87년인가 그 당시에 조그만 건설업자에게 연립주택 28세대의

인테리어 공사를 맡았다가 그 당시로는 어머어마한 금액인 3,000만원

정도의 부도를 맞아서 큰 고통을 입은 곳이 이곳이다... 지금은 그곳이 어딘줄도 모르겠다

평택시 안중출장소(11:45)

안중출장소를 지나...

육교와 버스정류장을 지나니 현화교차로가 나온다

현화(玄華)교차로(11:50)

평택시 안중 출장소가 있는 현화리(玄華里)는 현덕면 화양 3리와

4리였다가 뒤에 안중면이 독립하면서 행정리가 설치되자 본래

현덕면(玄德面) 화양리(華陽里)였으므로 그 앞자를 따서 현화리라고 했다고 한다.

교차로 우측에는 홈플러스가 있고...

교차로를 지나 지나 39번 도로를 따라서 직진을 한다

GS칼텍스 주유소(11:55)

주유소 뒷쪽으로는 로얄관광호텔이 보이고...

원학현(元鶴峴) 버스정류장(11:58)

학현 2리의 마을 이름으로학현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S-oil 주유소... 기름이 우리동네보다 L당 300원이상 싸다

석정(石井)삼거리(12:03)

포승면 석정리(石井里) 마을이 처음 생길 때 먹을 물을 찾아 여러 군데를

파보았는데 서쪽편 돌(石)에서 좋은 물(井)이 나왔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삼거리를 지나 성해2리 버스정류장도 지나고...

도로 건너편에는 현대우드와 안중 씽크대 공장도 보인다

성해1리 버스정류장(12:08)

성해리(城海里)는 원래 포승면 석정리였다가 안중면이 생기면서 새로이 만들어진 마을인데,

성외(城外) 마을과 해조(海潮) 마을로 구성되었으므로 두 마을의 앞 글자를 따서 성해로 지었다고 한다.

 

성해 1리는 원래 조선시대에 군마(軍馬)를 기르는 목장이 있었는데, 방목하는 말이 달아나지

않도록 넓게 울타리 역할을 하는 성이 있었으며 바로 그 밖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서해안 고속도로 상황판도 보이고...

중앙공사를 지나니... 삼거리가 보인다

운정리(雲井里) 삼거리(12:12)

도로를 건너서 여태껏 같이 해오던 39국도와 헤어지고 321번 지방도를 따른다

현덕면 운정리는 마을의 형상이 구름 속의 반달 모양을 닮았고, 마을에 큰 우물이

는데 물맛이 차고 시원하며 우물 둘레에 항상 안개가 서려 있어 구름이 덮혀

있는 듯하기 때문에 구름(雲)과 우물(井)을 따서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321번 지방도 입구에는 운정리 입구 버스정류장이 있고...

백두사랑 산악회 이 대장의 띠지가 보인다

대신정기화물(12:17)

321번 지방도에서 바라본 안중읍

포도밭도 지나고...

38번과 39번 국도사이를 연결해주는 321번 지방도는 너무나 한적하다

도로 좌측에는 함평이공 부부묘가 있고...

서해플랜트(12:30)

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간다... 조금을 지나니 삼거리가 나오고 전봇대에는 도로명 주소 ‘운정2길’이 있다

좌측 아래는 꽤나 큰 골재 야적장이 밭 가운데에 있다

고개 옆에는 커다란 목초지가 보이고...

운정1리 버스 정류장(12:40)

낡은 버스 정류장과 마을표시석이 있다

마을 입구를 지나자마자...

321번 지방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부엌산 산책로라는 표지판이 있다

오르는 길에는 가느다란 줄이 처져있고...

부엌산(12:45)

평택시 현덕면 운정리에 있는 마치 묘지의 봉분처럼 생긴 펑퍼짐한 산이 부엌산이란다

이곳 산에 대한 자료는 그 어디 에도 찾을 길이 없다... 팽택의 옛 문헌에는 부엇산으로 나온다

해발은 어림잡아 40m정도 밖에 되지 않을듯 싶고 아무런 흔적도 없다

대부분의 지맥 산꾼들은 이곳을 오르지 않고 321번 지방도를 따라서 간다

능선 아래로 내려서서 조금을 더 가니 라는 구루물이라는 운정1리 마을이 나온다

소나무 사이로 내려가는 길은 낙엽이 푹신하다

피우치(避憂峙)삼거리(12:48)

예전에 어떤 유명한 승려가 우강산-부엿산-을 넘으며, 이 고개를 넘으면 모든 근심을

면하고 살 수 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근심(憂)을 피하는(避) 고개(峙)라고 하였다고 한다

피우치라는 지명은 ‘근심을 피해가는 곳’에서 왔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숲이 우거졌던

날에는 큰길가에서도 마을이 보이지 않아 한 번 숨어들면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운정(雲井)은 구루물의 한자지명이며 맞은편에 보이는 현덕제일교회 방향으로 향한다

현덕제일교회 앞을 지나서 좌측으로 내려선다

다시 좌측으로 꺽어진 다음에...

마을 도로앞을 지나간다

도로 주위에 폐가옥들이 보이고...

좌측 윗쪽엔 묘비가 서 있는 묘지가 나오고 다시 321번 지방도를 만난다

도대(道垈)3리 버스 정류장(12:55)

도대 3리의 마을을 도문곡이라고도 부르며 예전부터 글(文)에

능한 학자들이 많이 나온 고을(谷)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나온 현덕제일교회는 점점 멀어지고...

도대2리 버스 정류장

도대2리는 원도대(元道垈)라 부르는데 도대리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산, 평택호관광단지 방향으로 직진한다

도로 아래로는 인공수로가 지나가는데 마치 금남기맥의 익산구간과 비슷하다

계속되는 도로

도로 우측으로 묘지 4기가 보이고...

가을걷이가 끝난 방축리(防築里) 의 들판

평택시 현덕면 방축리는 마을 앞에 바닷물을 막는 방축을 쌓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동양가스(13:10)

포장도를 따라서 직진한다

도로 우측으로는 수로가 계속 따라온다

SK가스 저장소(13:13)

좌측으로는 안중읍내가 보이고...

멍든 農心

갈림길에서 직진

권관양수장(13:17)

도로 원없이 걷는다... 맥길인지 둘레길인지 가늠이 안된다

갈림길(13:20)

좌측으로 고철수집소가 있고...321번 지방도를 버리고 우측 비포장 농로로 접어든다

비포장 도로를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수로 넘어로 바라본 평택시 현덕면 정수리의 모습

고수님들의 시그널

정신없는 바람둥이

사거리 갈림길(13:28)

편한 임도를 두고 능선으로 오른다

아무것도 없는 무명봉에 올라서니 노루 한마리가 도망을 간다

괜히 헐지랄하고 잡목에 얼굴을 할키며 다시 임도로 내려선다

3분도 안되어 다시 임도로 내려서서 편한길을 따른다

여기저기 버려진 쓰레기가 임도를 어지럽힌다... 양심불량인 넘이 너무 많다

다시 포장도로가 보인다

오리백숙집(13:37)

폐업을 했는지 모든게 마구 버려져 있다

또 다른 오리집을 지나...

SK 주유소를 바라보며 걷는다

SK 주유소(13:40)

주유소를 지나 38번 국도를 만난다... 금곡삼거리에서 헤어진 도로를 다시 만나 아산만 방조재로 향한다

오늘 산행중 80% 이상을 도로로 진행한다

(주) 대명정밀도 지나고...

 

가사보도육교(13:48)

맞은편에는 가사초등학교가 보인다

가사리(佳士里)는 권관 4리의 마을 이름으로 예전 가사면(佳士面)의 소재지였다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버스정류장과 알뜰주유소도 지나고...

미세먼지와 매연으로 인해서 목이 아프다

도로 건너편에는 밥보다 국시집도 보이고...

아산 22km 표지판을 지난 다음에...

 

국도 옆에 있는 도로로 올라선다

 

달인 손짜장 간판이 100m 단위로 서 있다

권관3리 버스정류장(14:08)

권관리(權管里)는 예전에 이 마을에 권세를 부리는 아전배(衙前輩)들이 살아 권관(權官)이라고 하다가

뒤에 권관(權管)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달인 손짜장(14:13)

달인 손짜장에서 다시 38번 국도로 나온다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좌측으로 호텔이 보인다

현덕I.C교

현덕I.C교를 지나니 평택호관광단지 150M → 표지판을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올라서니 서봉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계두봉 정상이 나온다

계두봉(鷄頭峰:44.1m:14:25)

평택시 현덕면 권관리에 있는 서봉지맥의 마지막 봉우리로 정상에는 커다란

암릉사이로 신갈나무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만 보인다

계두봉은 자연 지명으로는 닭머리봉과 닭의 부리라고 부르는데 또 다른 이름으로는

왕자산이라고 부른다...팽택호 광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매점을 하는 아주머니에게

이 뒷산을 왜 계두봉이라 부르냐고 물으니 계두봉은 잘 모르고 왕자산이라고 한다

 

이 봉우리는 토정비결로 잘 알려진 토정 이지함과 관련된 설화가 있다고 한다

토정 이지함이 아산 현감으로 재직할 때 장차 아산과 현덕면 일대에 해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는 주변 지역을 돌며 급히 피하라고 일러주고 돌아오는 길에 계두봉

꼭대기에 앉아 물이 잠길때를 기다렸다.

그 때 등짐장수 한명이 급히 산으로 올라오다가 토정보다 낮은 자리에 지팡이를 뻗치고 앉았다

토정이 그를 부르며 빨리 더 올라오라고 손짓했지만 그 사람은 껄껄 웃으며 ‘참 겁도 많으십니다’

라고 말하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드디어 천둥 번개가 치며 물이 차 오르는데 등짐장수가 지팡이를 꽂은 자리에 이르자

물은 멈췄다... 토정은 예사 인물이 아님을 깨닫고 급히 나아가 절을하며 인사를

청하였더니 등짐장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토정이 그를 잡으려고 아무리 쫒아가도 끝내 잡을 수 없었는데 알고보니

문수보살의 현신이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계두봉에서 인증샷

계두봉을 내려서니 현충탑이 보인다

현충탑(14:35)

일제시대에 항거한 순국선열들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바치신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넋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의 뜻을 모아 건립한 탑이란다

현충탑 아래로 내려오니 자연보호헌장비와 6.25참전 공적비 등 여러개의 비가 서있다

평택지역의 3·1운동은 서울보다 10여 일 늦은 3월 9일 첫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5월 10일까지 약 2개월 동안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단체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준비 중이던 3·1운동은 고종의 국장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망국의 설움과 고종의 죽음은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의 만세운동을 확장하는데 중요한 기폭제가 되었다.

지방에서는 고종의 국장에 맞추어 철시를 하거나 망곡식을 가졌고 평택에서는 지역 유지인 유창근

이성열 남상은 신정훈 이일훈 김문환 최화섭 민재형 등 20여 명이 3일간 휴업하였으며, 조재희

김봉남 정겸수 유창하 이완근 한규동 등 유생들은 비전산에서 망곡식을 가졌다.

그리고 시민 일반은 반기(半旗)를 게양하고 봉도(奉悼)의 뜻을 표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평택지역에서 처음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된 곳은 현덕면이었다.

현덕면에서는 3월 9일 밤 각 마을마다 일제히 산에 올라가 불을 놓고 만세를 불렀다.

현덕면에는 계두봉을 비롯하여 옥녀봉, 고등산 등이 있는데, 이들 산 정상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던 것이다.

3월 10일에는 현덕면 계두봉 등의 만세운동에 영향을 받은 오성면에서도 주민들이 평야와 산에

올라 만세시위를 하였다.

그리고 이날 청북면에서도 토진리 오봉산과 마루산정상에서 주민들이 만세를 불렀다

아산만 방조재

한남정맥 수리산 아래에서 출발한 서봉지맥은 이곳에서 입수하면서 범여의 산행도 끝난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수도권의 지맥들은 도시화되면서 하나둘씩 맥길이 사라지는 걸 보며

안타까움을 더해 가는데 여암이나 고산자 선생에게 죄스러울 따름이다

늘 부족하고 짧은 지식으로 이산 저산을 다니지만 맥길 하나 끝날때마다 남는 아쉬움이란....

 

이곳은 예전에 계두진이란 나루터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개발이란 미명아래 흔적도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수원부조에는 ‘수원부 남쪽으로 80리인데 아산으로 통한다’ 기록하였다.

이 나루는 안성천 하류끝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당진이나 아산으로 통하는 중요한 뱃길이었고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청주와 천안을 거친 나그네가 팽성읍의 곤지나루나

아산의 백석포에서 나룻배를 타고 이곳에서 내려 남양만으로 향했으며 공주와 온양을

지나온 사람들도 백석포에서 이 나루를 건너 왔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남양만 당항성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유학을 가려던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도 이 나루를 건넜을 것으로 추정되며수많은 物産과 人馬가 오간 곳이란다

계두진(아산만)에서의 인증샷

아산만 방조제의 모습

아산만 너머로 다음주 부터 걸어야 할 아산(영인)지맥 능선이 아련히 보인다

아산만 이곳저곳을 살핀 다음에 평택호 광장 버스 정류장으로 들어오는데 버스가 횡~~~ 지나간다

아산만 버스 종점(14:52)

이곳에서 14시 50분발 버스를 놓치고 15시 35분발 버스를 기다린다

안중 → 평택호(아산만) 버스 시간표

안중버스터미널(15:42)

아산만에서 안중까지 오는 버스는 종점까지 손님이라곤 달랑 나 한명

그 바람에 10분 조금 넘는 시간걸려 안중 터미널에 도착한다

16시 정각에 출발하는 안중발 → 남부터미널 가는 버스

남부터미널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도중에 지인을 만나

간단하게 생맥주 1,000cc 한잔 마시고 집에와서 샤워 마치고 꿈나라로 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