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본래 아산군 일동면 지역으로서 16개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이동면의 16개리와 천안군 환성면의 공수리를 병합하여 이 지방에 있는 아산의 옛 이름인 음봉의 이름을 따라 음봉면이라 함.
유례
삼거1리(삼거리, 샛터말)
삼거리 및 샛터말의 유래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삼거리 주된 마을이고 면사무소가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 세갈래로 나 있기 때문에 삼거리라 이름이 붙여졌고 샛터말은 삼거2리와 1리의 사이에 있다고 하여 샛터말이라함.
삼거2리(강정골)
삼거2리에 사람이 모여살게 된것은 지금부터 약 250여년전 최씨들이 정착하고 그후 김씨들의 집성촌이 되었으나 갑골이라는 마을의 도적이 강정골까찌 들끓어 폐동이 되었다가 한참뒤에 도적들을 피하여 정착하여 현재의 동네를 이루게됨.
동천1리(뒷내, 후천)
예로 부터 마을뒤로 내가 있고 냇물이 흘러가기 때문에 후천리라고 하였으나 그후 자연재해로 하천을 동쪽으로 새롭게하여 동천리라함.
동천2리(주막거리)
동쪽으로는 무량산, 북쪽으로는 비룡산이 있으며, 윤보선 전대통령 묘소로 유명한곳으로, 마을앞쪽으로는 큰 저수지와 수안으로 산세와 호수가 한데 어우러진 살기좋은 마을임.
신수1리(작은 숫골)
참나무가 많고 참숯을 만들어 팔아서 숯골이라하며, 온천관광특구의 아산온천이 있어 관광지로 유명함.
신수2리(큰숯골)
참나무가 많아 큰숯골이라함.
산정리(산솟말)
산정리는 본래 사정리, 산솟말, 삿골, 나뭇골, 사기리로 이루어졌으며, 산소와 사정의 이름을 따서 산정리라 하였으며, 이충무공 묘소로 유명함.
신정1리(요란)
신정리에서 으뜸가는 마을로 옛날에 요로원이 있었으며, 시장도 형성되었음.
신정2리(자안실)
편안한 동네라하여 스스로자(自), 편안할안(安), 집실(室)자를 써 자안실이라함.
원남리(원남)
옛날 한양으로 다니던 길목으로서 어느 한 원님이 요로원에 있는 주막에 머물면서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원남리라 불리워짐.
소동1리(동리)
연암산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전, 답에 가뭄과 토질이 안 좋아 들판에 소를 많이 메어 놓았던 유래로 소동이라함.
소동2리(중리, 송암리)
마을 양쪽에 500년이 넘는 큰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음.
소동3리(발산)
음봉면 북서쪽 둔포면에 접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연암산 뒤로는 야산이 삼태기처럼 둘러쌓여 있으며 농토가 적은 마을임.
신휴1리(부엉골)
부엉이가 많고 부엉이가 부엉바위에서 울면 신휴1리 부락에 좋은일이 생긴다고하여 부엉골이라 함.
신휴2리(만가리)
높은산이 없고 평야 지역으로 추수철인 가을엔 곡식이 풍부하여 만가리라 함.
신휴3리(구부엉골)
음봉면의 최북단 마을로 부락전방 1.5km 지점에 부엉이 바위가 있다 하여 부엉이골이라 하며 현재는 구범골, 신범골이라함.
의식리(뒤미, 옵밥골)
옷 많고 먹을것이 풍부하여 의식리라 하며, 지금은 배단지로 유명함.
쌍암1리(큰 왕골)
동네에 큰바위가 있어 바윗골 또는 왕골이라함.
쌍암2리(담안)
음봉면 거의 끝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처음 몇 가구가 담을 함께 하고 살았다 하여 담안이라함.
쌍암3리(작은왕골)
1996년에 쌍암1리에서 분구됨.
쌍용1리(자하골)
용 두마리가 동네를 감싸고 있어 쌍용리라하며, 봄날 안개가 자욱한 곣에 검붉은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마치 붉은 노을이 선 듯 그 아름다운 자태를 표현하여 자하골이라함.
쌍용2리(양지동, 교동)
남으로는 연암산, 서쪽으로는 가좌산이 자리하고 온동네를 포용하고 있어 자매스런 마을이며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어 자하동이라함.
월랑1리
동으로는 용화산, 서로는 연암산이 있으며, 남으로는 월랑저수지가 있으며 앞이 트인 아늑한 마을로 용화산 고인돌이 하나 있으며 달이 밝은 마을이라 하여 월랑리라 함.
월랑2리(장수)
일명 장수마을로 용화산 줄기를 이어받은 산새에 자리잡은 마을로 용의 꼬리 부분에 해당되며, 용이 하늘로 오를때 힘차게 차고 오른다하여 길 장(長), 물수(水)자를 써서 장수라함.
산동1리(용혈리)
미륵산과 구좌봉이 위치한 비산비야에 농지가 광활하고 산세 수려한 마을 입구에 가로지른 율지천에 흐르는 장류수가 악취를 세류하며 금마산이 방어하며 굽어보는 남쪽을 향한 양달진 안락한 마을임.
산동2리(공숯골)
산이 많고 숯을 많이 구운다고 해서 공숯골이라 하며 경계지역으로 천안시의 문화 혜택을 받음.
산동3리(뫼골)
용와산 남향쪽으로 위치한 계곡이 많고 산세가 복잡한 산골마을이며 임진왜란때 낙향한 사람들이 정착하여 형성된 마을임.
산동4리(장미아파트)
1998년 2월 산동2리에서 분구됨.
산동5리(삼일아파트)
1998년 2월 산동2리에서 분구됨.
덕지1리(덕지)
나라가 혼란했던 시기마다 별 어려움 없이 지나갔던 마을이라하여 덕지리라함.
덕지2리(초원아파트)
1997년 덕지1리에서 분구됨
동암1리(중리), 동암2리
마을 동쪽에 구리바위가 있어 동암이라 함.
송촌리(청계동, 송오촌, 재너머)
뒷산에 소나무가 많은 농촌이라 송촌리라 하였고, 500년전 김현이라는 사람이 아버지와 한양으로 올라가는데 도둑놈이 아버지를 죽이려 하자 아들이 대신 죽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효자마을이며, 지극한 효심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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