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2016년 2월 28일
☞산행날씨: 잔뜩흐림...진눈깨비...함박눈...비...하루종일 변덕스런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9.5km+어프로치 약6km / 6시간 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한천 주차장-물한교-황룡사-구름다리-민주지산 지름길-잣나무숲-목교
석기봉갈림길-은주암폭포갈림길-돌탑-쉼터-삼마골재-전망암-안부
삼도봉-헬기장-1,195m봉-1185m봉-음주암골갈림길-팔각정-석기봉
삼두마애불-내북마을 갈림길-안부-1,150m봉-1,105m봉-무지말골갈림길
1,138m봉-1,184m봉-쪽새골갈림길-민주지산-휴양림갈림길-대피소
1,167m봉-1,185m봉-묘지-각호골갈림길-쌀개봉-각호산-전망암
산불감시초소-상용정-도마령
☞소 재 지: 경북 김천시 부항면 / 충북 영동군 상촌면, 용화면 / 전북 무주군 설천면
아무것도 해놓은 것도 없이 丙申年도 두달이나 훌쩍 지나가 버리고 가야할 산은 너무도 많은데
세월이 이렇게 가버리니... 모든게 다 아쉽기만하다... 진작에 맥길을 았았으면하는 아쉬움이다
이번주 원래 계획은 지난해 백두대간 남진을 같이했던 동료산꾼들과 완도지맥을 계획했는데
3월중순부터 공사가 들어갈 현장에서 토욜일 오후에 현설(현장설명)을 브리핑 해 달란다.
완도가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 사는게 우선이 아닌가
동료산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브리핑을 끝내고 집에오니 온 몸이 파김치가 되는 느낌이다.
이왕지사 이리된 걸 올해 마지막 눈구경이라도 할겸... 2개월전에 너무 추워 개고생한
민주지산도 한번 볼 겸 각호지맥 첫구간을 가기로 하고 지도하나만 달랑 출력한 다음에
베낭을 꾸려놓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한 20분정도 잠을 잤나 싶은데 우리집에서 일하는
인부가 술에 취해 전화를 하여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잠을 설쳐 꼬박을 뜬 눈으로 밤을
지새는 바람에 엄청나게 피곤한데 잠을 이룰수가 없다... 넌 월욜날 죽었어...
새벽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집에서 영등포역까지 태워주는 바람에 좀 편안했다
초강(각호)지맥(角虎枝脈)
백두대간 삼도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민주지산, 각호산, 도마령을 건너고 천만산, 삼봉산,
백마산을 지나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에서 금강으로 빠지면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7km의 산줄기다.
남으로 천만산에서 발원한 영동천과 북으로 초강을 나누는 분수령이며, 동시에 상주 봉황산부터 영동
삼도봉까지의 백두대간과 북쪽의 팔음지맥과 함께 초강물을 오롯이 가두어 금강으로 흘려보내는 울타리가 된다.
초강(草江) 금강의 제1지류이며, 길이는 68㎞이다. 경상북도 상주군 화서면 상현리 봉황산
(鳳凰山:741m) 남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석천(石川)이라 불리면서 남쪽으로 흐른다.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에서 추풍령천(秋風嶺川)과 고자천(高子川)을 합친 뒤 유로를
서쪽으로 바꾸어 초강천이라 불리면서, 영동군 심천면 심천리 심천교를 지나 금강에 흘러든다
백두대간 삼도봉(1177.7)~1.2km~석기봉(1242)~2.4km~민주지산(1241.7)~2.8km~
각호산(1202)~1.3km~도마령~1.4km~천만산(960.1)~3.6km~삼봉산(929.9)~15.1km~
가리재~3.4km~백마산(534.4)~6.5km~솔치재~9.6km~초강(우) /47.3km
대동여지도
삼도봉이 나누는 3道는 조선 태종대부터 현대까지 그대로이고, 백운산을 현재의 민주지산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며, 상촌, 물한 지명은 현재도 그대로 쓰이고, 초강은 송천, 영동천은 동천으로 표기되었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진혁진님 지도
영등포역(05:40)
이른 새벽이라 집에서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 올림픽대로를 거쳐 영등포역까지 오는데
20분밖에 안걸렸고, 역에 도착하여 표를 예매한 다음에 커피한잔을 마시고 영등포역
플렛홈으로 향한다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부산으로 향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영동역으로 향하는 열차에서
잠을 좀 청해보려 했지만 좀처럼 잠은 오지않고 멍하니 차창만 쳐다보다 영동역에 도착한다
영동역(08:25)
영동역 맞은편의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영동역에서 물한리로 가는 버스는 06:30, 07:30이고 다음 버스는 12시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물한리를 향하는데 택시비가 36.000원이나 나온다
산꾼이 뭔 돈이 있다고... 내려와서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면서 명함을 달라고 하니까
꼭 전화를 해달라고 하면서 택시비를 33,000원만 받는다.
내려와서 전화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내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 큰 걱정은 없다
물한식당(09:20~09:50)
밥 생각은 그렇게 없지만 오늘은 행동식으로만 간단하게 준비해와서 억지로라도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지난 겨울에 민주지산 내려와서 들렸던 물한식당에
들리니 가족끼리 식사중이다... 아침 식사를 부탁하니 아직 식사준비가 안되었다고
하면서 우리 식구끼리 먹는데 같이 먹자고 한다...그러면서 돈은 받지 않는다
식당 쥔장이 가족끼리 먹는 식사에 숟가락하나만 더 걸쳤다
반찬은 김치와 고추 튀김이고 냉이국에 밥을 말았다... 아침부터 빈대다
그러나 후한 인심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니 커피한잔까지 타준다
쥔장 할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산행에 나선다
한천 주차장(10:00)
지난 겨울에 이곳에서 민박을 하면서 추워서 개고생을 했고 음식도
별로여서 썩 좋지않은 추억을 남겼던 나그네 민박집을 지나간다
물한계곡(勿閑溪谷:10:05)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에 있는 계곡으로 물이 많아서 붙은 이름으로 물이 차다해서
붙여진 한천(寒川)마을 상류에서부터 약 20㎞를 흐르는 깊은 계곡으로, 삼도봉(1,176m)·
석기봉·각호산(1,176m)· 민주지산(1,242m) 등 1000m고지급 산 4개를 아우르고
둘러싸여 있어 계곡의 물이 풍성하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이 끝없이 흐른다
대동여지도의 勿困의 困(곤)은 閑(한)의 약자로 보이고, 勿閑 지명이 표기된 옛 지도도
여럿인데, 안내판에 표시된 계곡 이름만 미니미골부터 은주암골, 무지막골, 쪽새골,
배나무골, 보리밭골, 각호골까지 일곱이니 물이 많기도 하겠다
물한교를 지나 좌측으로 올라서니 삼도봉 민박집이 나오고 스키로 담장을 쳐놨다
황룡사(10:10)
황룡사(黃龍寺) 대웅전앞 석등이 이채롭다... 삼도봉(三道峰)의 정기를 이어받아
민족화합, 남북통일, 국태민안을 성취하려는 취지로 1972년에 창건했다고 하며
황룡들이 석등(石燈)을 떠받들고 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황룡사 경내로 접어들어 대웅전을 향해 오늘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저두삼배의 예를
올린 후 삼도봉을 향하는데 이곳 황룡사 대웅전은 아직도 비닐로 문까지 봉해져 있다
삼성각 지나면서 황룡사를 나와 출렁다리를 건너 삼도봉으로 향한다
출렁다리를 지나면서 좌측 계곡으로는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휀스가
처져있고, 이곳 안에는 옥소폭포를 비롯한 폭포들이 있는데 지금은 접근이
불가능하다
옥소폭포를 '기우제(祈雨祭)폭포'라고도 하는데 거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통일신라시대 가뭄이 심할 때에 황간 현감이 이 옥소폭포에서 기우제를 지내어 가뭄을
이겨냈다는 기록이 있고, 그 후에 이 상촌지방에 가뭄이 심하게 들었을 때였다.
이 옥소폭포에서 면장이 농민들과 함께 기우제를 지내려고 하였더니 지내기도 전에 후드득
후드득 내리기 시작한 비가 장대비로 변하더란다...그 후로는 마을에서 큰 고목이나 큰 바위에서
지내던 기우제를 아예 이 옥소바위로 옮겨서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민주지산 지름길 갈림길(10:20)
지난 겨울에 내려왔던 길이다... 민주지산으로 향하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
호젓한 잣나무 숲을 지나...
잣나무숲(10:23)
이곳에서도 우측으로 가면 민주지산으로 가는 길이다
木橋(10:23)
영동군에서 한 헛지랄... 멀건 등로를 두고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곳에 목교를 설치해놨다
저것도 영동군수 치적사항인가...민초들의 고혈을 빨아서 뭔 짓거린지... 제발 정신들 좀 차리소
언 넘의 발상인지... 이곳에 목교를 만들자고 제안서 낸 자한테 영동군민들 손해배상 청구해야 할듯
산꾼들은 아무도 저쪽으로 안다니고 편안 아랫길로 다닌다
석기봉 갈림길(10:37)
민주지산 갈림길 지나면서 등로에서 처음으로 산꾼을 만난다
물한리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의 거의 100%가 민주지산으로 향하고 삼도봉으로
오르는 산꾼은 나밖에 없다...어젯밤 삼도봉에서 비박을 하고 하산을 하는 산꾼들...
비박족은 나에겐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나도 침낭과 텐트 등 비박장비를 갖쳐놨지만
맥산행의 매력때문인지... 아직까진 하고싶은 맘이 없다
미니미골에도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음주암폭포 갈림길(10:45)
호기심에 좌측의 음주암 폭포로 향해 보지만 꽁꽁 언 폭포 오르기를 포기하고 되돌아 온다
미나미골 폭포
미니미골에서는 미니미폭포를 이루다가 내려오면서 음주암폭포, 의용암폭포, 옥소폭포로
물한계곡의 절경을 이루며 길고 하얗게 흐르고 있는데 겨울이라 폭포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폭포 윗쪽 등로는 데크목으로 단장되어 있다
돌탑(11:00)
쉼터(11:10)
계속되는 오르막길에 간간히 내리는 비는 진눈깨비로 변하는 바람에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 물한모금 마시고 레인커버로 베낭을 씌운다
계속되는 오르막... 고무판이 설치된 등로를 만난다
삼막골재(森幕谷嶺:11:25)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여기서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일명 삼마골, 삼박골로 불리는 삼도봉 준령의 하나이며 지명유래는
나무가 우거져 장막을 쳐놓은 것 같다하여 나무빽빽할 삼(森)자와 장막 막(幕)자를 따서
삼막골이라 하는데 산마골재는 산막골재의 誤記로 보인다
삼마골재는 삼마골에서 비롯된 명칭으로 본래 '산막골'이라 불리다가 '삼마골'로
변음된 것으로 보이며, 일제시대부터 이곳에 화전민들이 정착해 숯을 구워 팔며 살았고
한국전쟁 전후로는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까지 이곳에 들어와 화전민 그룹에 합류했으며
그들은 생활력이 강했고 참나무를 베어 일주일만에 산막 한 채를 뚝딱 지었다고 한다.
백두대간에 걸친 마을이 대부분 그랬듯 한국전쟁 동안, 그리고 휴전 후에도 한동안
이곳은 국군과 빨치산 사이에 놓인 접전지였으며 산을 점령한 군인이 주야로 바뀌던
시절, 화전민들은 며칠씩 산 밑에서 피신해 지내다가 산막으로 올라오고, 또 내려갔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했으며,당시 전쟁으로 같은 날 희생을 당한 화전민들이 많았다.
삼마골 아래 해인리만 해도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집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휴전 뒤 숯은 더 이상 팔리지 않았고 이후 화전민들은 산비탈을 골라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생계를 해결했다...외부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었던 소금 정도를 제외하곤 모든 것을
산 속에서 생산했던 것이다...그러다가 1960년대 말기 김신조 사건 같은 일들이 터지면서
정부 정책에 따라 화전민들은 산을 내려와야 했는데 그게 삼마골에 살던 화전민들의
숨겨진 역사다.
물한계곡에서 이곳까지 계속 오르막으로 삼막골재에 오르니 바람이 드세다
진눈깨비는 굵은 함박눈으로 변하면서 주위는 짙은 눈보라로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2013년 4월 28일 백두대간 남진길에 이곳을 지나갈 때 없었던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물한리에서 이곳까지 4.5km... 영동군에서 이곳에서 운동기구를 설치한 이유를 모르겠다
아침 운동을 왕복 9km를 와서 할 수 있으런지... 그렇다고 갈길 바쁜 백두대간 산꾼이
운동할 리는 없을테고...
예전에 걸었던 나무계단도 그래도 이구나
나무 계단을 올라오니 백두대간 능선의 1124m봉이 보인다
암봉전망대(11:50)
백두대간길에 이곳에 서니 가야산도 한 눈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한치 앞도 안보이니...德이 모자람인가
암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해인리의 모습(김천시 부항면 소재)...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구조 표지판도 예전 그대로이구나
안부(11:53)
나무 계단을 따라 힘겹게 올라오니 멋진 노거수들이 힘든 산꾼에게 응원을 보내고...
이곳 오름길은 굴참나무를 비롯한 고산식물의 나뭇가지가 자라지 못하고 천태만상으로
구부러져 있어 신기함을 자아내고 있다. 희귀한 고산 식물이 많이 자생하고 있어,
생태학자들의 연구의 현장이기도 하다. 수목은 상수리나무가 특히 많으며,
김천 부항면 해인리 쪽으로는 호도나무가 많아 호도의 생산량이 연 70톤에
이른다고 한다.
삼도봉(三道峰:1,176m:11:55)
전북 무주군 설천면, 경북 금릉군 부항면, 충북 영동군 상촌면 3도에 걸쳐
있는 봉우리로 1989년부터 영남, 호남, 충북의 삼도 화합의 상징인 거북,
용, 검은 여의주의 돌탑을 세우고, 매년 10월10일 삼도의 산악인과 주민들이
동서화합의 제를 올린다고 한다...금릉군은 1995년 전국 행정구역 개편으로
김천시에 통합됐다.
이곳은 삼남(三南)의 기(氣)가 한곳으로 모이는 꼭지점이며 원 지명은 화전봉이었다
조선조 태종(1414년) 때에 조선을 8도로 나누면서 이 봉우리가 충청, 전라, 경상 3도가
나뉜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며 삼국시대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이기도 한 곳이다
삼도봉 서쪽의 물줄기는 금강으로 흐르고, 동쪽은 부항천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조망 또한 사방으로 확트여 서북쪽으로 석기봉, 민주지산과 각호산이 이어지고
동북쪽으로는 화주봉을 비롯한 백두대간 능선과 황학산 줄기가 달리며, 남동쪽으로는
해인리 산곡마을을 지나 가야산 줄기가 남으로는 삼봉산 너머 덕유산 줄기가 이어진다
삼도봉 대화합 기념탑
흔히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 3개 도를 가장 빨리 돌아보려면 삼도봉에 오르면 된다는
말이 있는데, 느린 걸음으로도 단 1분이면 3개 도를 모두 섭렵할 수 있는 곳이다.
행정구역으로 충북 영동군, 전북 무주군, 경북 김천시가 만나는 곳이다.
역사적으로는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였고, 지정학적으로는 영호남의 기세와
충청의 완충이 교차하는 지점이고, 국토의 ‘균형추’인 셈이다
박무가 가득한 곳에서 셀카로 인증샷
삼도봉엔 나말고 아무도 없다... 전세낸 기념으로 삼각대를 이용해 인증샷을 남긴다
본격적인 각호지맥길을 시작한다
백두대간을 2번이나 하면서 낯이 익은 삼도봉... 오늘은 대간이 아닌 지맥길을 시작한다
삼도봉 헬기장(12:00)
석기봉가는 길에 뒤돌아보니 바람의 영향인지 구름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다
제도권 등로라서 길은 무쟈게 좋고...
1,195m봉(12:16)
1,185m봉(12:18)
음주암골 갈림길(12:20)
석기봉 오름길에 물한계곡 갈림길이 나오는데 “모든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듯이
삼도봉에서 각호산까지 우측의 모든 등로는 물한계곡으로 내려서는데 백두대간 북진길에
이곳으로 내려갔는데 엄청 급경사 코스다...이곳은 몇시간전에 올랐던 음주암폭포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갈라지는 등로와 연결된 길이다
팔각정(12:25)
어젯밤 잠을 설쳤던 탓인지 급경사 오르막길에 서서히 체력의 저하가 초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하는 수 없이 이곳에서 물한모금 마시며 2~3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석기봉으로 오른다
이정표에서 바라본 석기봉
석기봉 이정표(12:27)
석기봉 오름길에서 뒤돌아 본 백두대간...백수리산, 대덕산 방향
로프를 타고 석기봉 정상으로 오른다
석기봉(石奇峰:1200m:12:35)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전북 무주군 설천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전체가
암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식품봉(食品峰), 석의봉(石衣峰)이라고도 한다
쌀겨처럼 생겼다고 하여 쌀개봉이라 부른데서 석기봉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삼도봉에서 북서쪽으로 약 40분 거리에 우뚝 솟아 있는 석기봉은 민주지산의 주릉 중에서
가장 빼어난 산이기도 하며 석기봉 한켠에는 일신삼두상(一身三頭像) 또는 삼두마애불(三頭磨崖佛)
안내판이 서 있는데 ‘민주지산 석기봉 삼신상(民主之山 石奇峰 三神像)’이라고 적혀있다.
석기봉 정상에서 인증샷
석기봉 정상에서 바라본 석기봉 북사면의 모습
저 암릉 아래에 삼두마애불(三頭磨崖佛)이 있다
삼도봉에서 개스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질 않은 조망도 강한 바람 때문에 조금씩 보이길 시작한다
석기봉 남쪽으로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 골짜기도 보이기 시작하고...
설천면의 지명유래는 조선 영조 때 이봉상(李鳳祥, 1676~1728)이 이곳에 살면서 자신의
호를 설천(雪川)이라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또한, 이 고장에 9천 명의 승려들이
수도하였는데, 이들의 밥을 짓기 위해서 아침 저녁으로 쌀을 씻던 하얀 쌀뜨물이 계곡을
따라 온통 눈과 같이 하얗게 흘러 내렸다 하여 '설천'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1914년에는 이전의 금산군에 속했던 구천동 지역을 설천면에 통폐합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석기봉 정상에는 서 있기조차 힘들만큼 강풍이 거세다
석기봉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
산꾼들에겐 늘 동경의 대상인 백두대간.... 아마 저기가 백수리산쯤 되겠구나
저너머로 해인사를 품고있는 가야산이 보일만하건만 범여의 德이 부족한 지
오늘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길을 가다가 길이 끝나는 곳에서
나는 하늘을 밟고 가리라.
기다림은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이 아니다.
걸어서 누군가에게로 찾아가는 것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산이거든 들이거던 바다거던
길이란 낯선길을 만나
낯설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가는 앎다운 과정이다
나는 오늘도 그 아름다운 길을 만나야겠다.
항상 베낭을 곁에 두고 살면
삶의 길이 새의 깃처럼 가벼워진다
김 택근 시인의
베낭을 메면 몸이 가벼워진다 中에서
석기봉에서 바라본 물한계곡(勿閑溪谷)의 모습
물한계곡(勿閑溪谷)은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에 있는 청정 계곡으로"물이 차다"고
하여 이름붙은 한천마을 상류에서 상도대리까지 12.8km에 이르는 긴계곡을 말하며
계곡물은 한여름의 낮에도 목욕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물이 차서「한천」이라고도
했는데 이 때문에 「한천계곡」이라고도 부른다.
한천계곡은 삼도봉과 석기봉을 오르는 등산로에 황룡사 뛰엄바위, 옥소, 옥소폭포,
의용곡폭포, 백일산제골, 구시용소 흔들바위 등의 명소가 있어 이중 8명소를
「한천팔경」이라고도 부른다
조금전에 지나온 삼도봉도 조금씩 속살을 보이길 시작한다
석기봉 정상에 잠깐 머무는 사이에 강한 바람의 영향인지 엄청난 추위가 몰려온다
서둘러 민주지산으로 향하는데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을 하면 정통 지맥길이긴
하지만 응달에다 암릉구간이라 상당히 미끄럽고 위험하다
좌측 아래로 내려서면 거리는 멀지만 양지에다가 안전한 구간이라 산악회 띠지들이
대부분 이쪽으로 붙어 있는데 정통 맥길을 고집하는 범여로서는 당연히 우측으로
가야겠지만 좌측 아래는 삼두마애불(三頭磨崖佛)이 있기에 나도 좌측으로 향한다
급경사를 내려오니 삼두마애불상 안내판이 나오는데 ‘민주지산 석기봉 삼신상(民主之山 石奇峰 三神像)’이라고 적혀있다
석기봉 삼두마애불(石奇峰 三頭磨崖佛:12:50)
전북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 내북마을 중고개(중현)에서 오르는 석기봉 정상아래
암벽의 암릉에 새겨진 마애불로 3두의 佛頭(부처님의 두상)가 연화대좌 위에
가부좌한 마애불상 머리위에 조금 작은 불두를 올리고 그 위에 더 작은 불두를
올려 3두의 불두가 피라미드 형태로 양각되어 있는 특이한 마애불로서 이런
불상은 우리나라 마애불중에 유일한 형태이다.
마애불은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왼쪽발 발가락이 오른쪽발 정강이 밑으로
돌출되어 있는 특이한 자세로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납의는 음각된 두 선이
오른쪽 허리까지 돌려 지극히 형식적으로 표현했다.
몸에 비해 비대한 얼굴은 방형에 가깝고, 머리는 소발이며, 귀는 목까지 내려왔다.
비교적 짧은 목에다가 삼도(三都)를 표현했고 양쪽 어깨에서 가슴까지는 영락(瑛珞)이
장식되었으며 양 손은 약간 벌어진 형태로 배에 앉혀 있는데 손가락만 너무 선명한
부분은 누군가 손을 댄 느낌이다.
얼굴은 오랜 풍우(風雨)에 마모된 탓인지 윤곽은 투렸하지 못하나 옅은 미소를
머금고 가늘게 뜬 눈과 다문 입술, 얕게 조형된 코등이 희미하게 보인다.
본존불의 코는 마멸되어 형상만 짐작할 뿐이다.
삼두 마애불의 조성 연대도 혹자는 고려때 또는 조선초기의 작품이라 하나
마애불의 마모 정도로 보아 삼국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지정학적으로 삼두마애불이 있는 무주군 설천면은 백제의 주천 땅이었고
등너머 무주군 무풍면은 신라 무풍현 영토였음은 지금의 사용 언어로 보아
백제에서 국토보존의 염원으로 마애불을 조성한 것이 아닐까?
석기봉 삼두마애불샘
삼두마애불이 양각된 바위 밑에있는 샘이다. 삼두마애불이 있는 모암벽에서 떨어지는
석간수인데, 1m 높이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석간수인지라 약수라하여 이 샘물을
먹고 목욕을하면 피부병이 낫는다고 알려져왔다...석간수 한바가지 들이키고 싶어
약수 안쪽을 들여다보니 물은 꽁꽁... 입맛만 다신다
내북마을 갈림길(12:55)
삼두마애불상을 지나니 내북마을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응달이라 눈이 무릅까지 차오른다... 길도 미끄럽고...
안부(13:05)
다시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석기봉에서 내려오는 마루금의 모습
1,150m봉(13:10)
그 넘 참 희안하게 생겼네
1,105m봉에서 뒤돌아 본 석기봉
무지말골 갈림길(13:15)
1,138m봉(13:35)
구조이정표(13:42)
1,184m봉(13:50)
1,184m봉에서도 우측으로 내려서면 아침에 지나온 잣나무숲에서 오르는 물한계곡길이다
쪽새골 갈림길(13:57)
이곳에 오니 등산객들의 소리로 왁자지껄하다
2달전 개고생하면서 내려갔던 추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쪽새골 이정표
낙동정맥을 같이했던 기분죤산악회 시그널이 보인다
민주지산 오름길에서 바라본 조금전에 지나온 삼도봉과 석기봉의 모습
백두대간 능선이 아련히 보인다... 화주봉과 황학산이 아련히 보이고...
민주지산 1등 삼각점(△영동11 / 2013재설)
민주지산 정상에 오르니 등산객들이 꽤나 많다.
왜 100대 명산에 들어가는 이유를 알것만 같다
난 개인적으로 석기봉이 훨씬 멋있어 보이는데...
가야할 각호산도 보이길 시작한다
민주지산 정상에서 인증샷
민주지산(岷周之山:1,242m:14:02)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전북 무주군 설천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민주지산(岷周之山)의 한자(漢字) 이름을 보면 민(岷)은 산맥을 뜻하고,
주(周)는 두루 혹은 둘레를 뜻하므로 첩첩산중에 둘러싸인 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 등에는 백운산(白雲山)이라고 표기가 되어있다
그 이후에 삼도봉에서 각호봉까지의 산세가 민두름(밋밋)하다고 해서 ‘민두름산’이라고
부르던 것을 일제시대에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민주지산(岷周之山)으로 단순
표기하여 원래의 이름과는 다른 지명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대에 YS가 이 산의 지명이 산악회의 지명으로
사용됨으로 전국적인 명성과 유명세를 더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민주지산’이 민주화투쟁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막연히 여기는걸까.
하지만 민주지산(岷周之山)은 민주(民主)와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
또한 봄철 능선에 지천으로 피어난 진달래와 산죽이 매우 아릅답다.
민주지산 정상에는 경향 각지에서 온 산꾼들로 인해 돗대기 시장같다
난 이런 곳은 딱 질색이라 서둘러 각호봉으로 향하는데 북사면은 상당히 미끄럽다
휴양림갈림길(14:10)
대피소 입구(14:12)
민주지산 무인대피소(14:13)
1998년 4월1일 특전사 소속 제5공수 특전여단(흑룡부대) 부대원들이 눈보라와
폭설로 6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된 사고가 난 뒤다. 당시 특전여단 부대원들은
천리행군 훈련 도중 만난 강풍과 폭설 등 4월 이상기온에 의한 저체온증으로 피해를 입었다.
민주지산을 생각하면 공수특전 부대원들의 천리행군 구간이 연상되는 건 어쩔 수 없다.
2달전 강추위에 개고생한 기억속에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온누리님은 잘 계시는지?
그리고 마칼대장, MK, 유소운님, 몽골에서 온 여인 이쁜 윤하님도... 다들 보고싶다
무인대피소를 지나면서 산꾼들은 한명도 보이질 않고 나홀로 호젓하게 걷는다
1,167m봉(14:20)
이곳에서도 우측으로는 물한계곡으로 내려가는 등로가 보인다
등로에 부는 바람이 어찌나 쎈지...몸을 가누기가 힘이들 정도이다
가야할 각호산은 점점 가까워지고...
암릉구간을 곡예하며 걷는다
1,185m봉(14:38)
1,185m봉 북사면은 상당히 미끄럽다... 로프에 몸뚱이를 의지한 채 조심스레 내려선다
묘지(14:45)
2달만에 뵙습니다...추운데 잘 계셨죠?
각호골 갈림길(14:50)
금욜날 마신 술로인해 속이 불편하여 여기까지 오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체력이 급격하게 다운이 된다... 각호산 오름길이 넘 힘드는데 갑자기 눈발이 시작된다
각호산 오름길에서 바라본 석기봉과 민주지산
쌀개봉 걸림길(15:10)
이곳에 각호산이란 표지판이 붙어 있는데 이곳을 방아쌀개처럼 생겼다 하여
쌀개봉 혹은 아가리째진 산으로도 불리는 각호산은 해발 1,176m이다.
옛날에는 이 바위밑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전하며 상촌면과 용화면의 경계가 되는
산으로 주변 능선에는 봄에는 철쭉이 만발하며 가을에는 온갖 버섯이 지천이란다.
물한리 버스종점에서 1시간 30분이면 오를 수 있는데 정상은 맞은편 암봉이다
쌀개봉에서 바라본 각호산의 모습
배걸이봉에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서서 좌측으로 우회한다
다시 오르막으로...
각호산 정상은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로프에 매달려 젖먹던 힘까지 다해 정상으로 오르는데 함박눈은 진눈깨비로 변하고...
각호산(角虎山:1,176m:15:20)
충북 영동군 용화면과 상촌면에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인근의 민주지산의
명성에 가려 등산객들이 뜸한 산이며 국립지리원 지도에는 고도가 1,202m로
표기가 되어 있는 산으로, 2개의 암봉으로 되어 있으며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는
접근하기가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옛날에 뿔달린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동국여지도에는 각괴산(角魁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배거리산이라는
지명도 가지고 있는데 개념도상 배거리산은 여기가 아니다
『대동여지도』에는 '각귀산(角鬼山)'이 기록되어 있고,『조선지지자료』에는 "각휘산(角輝山)은
용화면 조동에 있다."..."각휘곡(角輝谷)은 용화면 조동에 있다.", "각후산(覺后山)은 군동면
상가리촌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또한 지금의 산 이름인 각호를 각휘(角輝), 각후(覺后)와
같이 다양하게 표기하고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각호산의 다른 이름으로 '쌀개봉'과 '아가리째진산'을 기록하고 있으며,
"산에 있는 바위가 뿔 또는 쌀개처럼 생겼으며, 그 아래에 호랑이가 살았다."라는 각호산의
지명 유래를 소개하고 있다
조금전에 내리던 함박눈이 진눈깨비로 변하더니만 이젠 비로 변한다
날씨 한번 변화무쌍하다... 베낭으로 인증샷을 대신하고 서둘러 등로로 내려선다
각호산 정상에서 바라본 쌀개봉의 모습
뒷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각호골에서 올라오는 등로에 있는 배걸이봉이다
웅덩이(15:30)
각호산 정상에서 내려오니 웅덩이같은 곳이 보이는데 갑자기 사람소리가 들린다
5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산꾼 2명이 나를 보더니 이곳 지리를 잘 아느냐고 묻는데
‘왜 그러냐’고 물으니 자기들은 우두령을 가야 하는데 길을 잃었다고 한다
에~~잉...우째 이런 일이
그러니까 백두대간을 타는 산꾼인데 부항령에서 우두령가는 길이란다
그러니까 삼도봉에서 직진을 해야 하는데 좌측으로 꺽어져 민주지산쪽으로 왔다
이곳까지 왔으니...10km 이상을 알바를 한 것이다... 알바대왕이신가?
빗줄기는 굵어지고 기왕지사 도마령으로 내려서 우두령으로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한다
그런데 택시를 불렀다고 한다... 이 참에 빈대 붙어야지
전망암(15:35)
잠깐 사이로 밀려온 짙은 개스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젊은 친구들은 맘이 급한지 마구 내달린다... 저러다가 도가니 아작나지
쉼터(16:42)
택시 좀 얻어 타 볼끼라고 젊은 친구들 따라 죽기살기 달렸더니만 죽을 지경이다
산불감시초소(15:50)
산불감초소 옆에는 이동통신탑과 삼각점이 있다
산불감시초소봉 삼각점(△영동456 / 1980 재설)
상용정(上龍亭:841m:15:52)
상용정의 유래는 상촌면과 용화면의 앞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란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면서 빗줄기는 자꾸만 굵어지고...
상용정 아래에서 비를 피하면서 베낭을 정리하고 있는데 택시가
도착했다고 하길래 죽기살기 뛰어서 택시가 있는 쪽으로 내려간다
도마령(都馬嶺:800m:16:00)
충북 영동군 상촌면 고자리와 용화면 조동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49번 도로가 지난다
영동 횡간에서 무주로 넘어가는 길이고 지명의 유래는 '말을 키우던 마을',
'혹은 칼 찬 장수가 말을 타고 넘던 고개'라고 하는데 용화면 방향은 구절양장의 도로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도마령보다는 고자리고개라 부른다
도마령 주차장에 도착하니 택시가 와 있다
알바한 친구들 덕분에 택시를 타고 내려오는데 비는 엄청나게 쏟아진다
택시를 타고 오다가 나를 상촌면소재지에 내려주고 그 친구들은 우두령으로 향한다
상촌면소재지(16:40)
상촌면소재지에 도착하니 영동역으로 향하는 640번 버스가 서 있다
그런데 이 버스는 금방 출발하지 않고 10분정도 서 있다가 여기저기를 들려서
17시 30분경에 영동역에 도착을 하는데 비가 함박눈으로 변하면서 앞이 안보인다
영동역(17:30)
영동역에 도착하여 기차표를 예매하는데 좌석은 없고 입석이다
시간은 40분이상 여유가 있고하여 표를 예매한 다음에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잠근 다음에 몸을 간단히 씻고 머리까지 깜고 옷을 갈아 입고나니
조금을 살것만 같다... 아직도 속은 덜 풀렸지만 허기가 지기에 집에서
가져온 야채 수프에다가 과일로 허기를 면하고 영동역 풀랫홈으로 향한다
영동발→영등포행 열차표
열차는 7분정도 연착이 된 다음에 열차는 들어오고 평소버릇처럼 카페열차로 향하는데
눈이 내린 영향 탓인지 이곳은 승객들로 발디딜 틈도 없다... 그 바람에 영등포역까지 서서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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