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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안양(관악)지맥(終)

안양(관악)지맥 제1구간 - 백운동산에서 갈현고개(찬우물)까지

by 범여(梵如) 2016. 7. 3.

☞ 산행일시: 2016년 7월 3일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높은 습도에 바람 한 점없는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8km + 어프로치 2.4km  / 8시간 07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백운동산-묘지-NO30송전탑-안부-NO22송전탑-오전공동묘지-오메기저수지 갈림길-수남골 갈림길

                 백운사 갈림길-백운산-462.2m봉-422.5봉-고분재-바라산-365희망계단-복골재-NO15송전탑

                백운호수 갈림길(1)-백운호수 갈림길(2)-우담산-영심봉-통신탑-KBS TV 운중중계소-하우고개

                공동묘지-송전탑-NO8,9송전탑-원터마을 갈림길-운중저수지 갈림길-돌탑-국사봉-청계사갈림길

                이수봉 능선-이수봉-헬기장-망경대 갈림길-전망대-청계사 갈림길-절고개-삼림욕장 이정목(2)

                삼림욕장 이정목(1)-헬기장-송전탑-암봉-송전탑-과천 매봉-NO20송전탑-안부-349.4m봉(△)

               사기막골 갈림길-안부-259.2m봉-235m봉-이미마을 갈림길-안부 갈림길-잡목지대-제비울미술관 철조망

               텃밭-지하차도-묘지-산막골 소머리국밥-도로-잡목 능선-철조망-화훼단지-83.9m봉-갈현고개-찬우물 정류장

소 재 지: 경기도 의왕시 / 용인시 수지구 / 성남시 분당구, 수정구 / 과천시


어떻게 보낸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한 주가 흘러간다

원래 계획은 진권 아우와 평창(주왕)지맥 3구간을 가기로 했는데 일기예보에 토.일욜에 비가많이 온다고

예보를 하기에 청승맞게 비맞으며  산행하기도 싫고하여 포기하고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그리고 가장

마지막 지맥길을 걸으려고 아껴 두었던(?) 안양(관악)지맥 첫구간을 나선다

 

요즘 들어서 이상하게 오후되면 갑자기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제 산행을 그만해야한... 줄여야 하나 약간은 고민이 되지만 그래도 산엘 갔다오면 맘이 편하다

한남정맥에서 가지를 쳐서 나온 지맥길은 총 10개 지맥인데 이곳은 수도권에 있는 지맥이다보니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도시화로 인해 사실은 맥길의 의미는 별로없지만 그래도 걸어야 하기에...

그 마지막인 관악지맥길을 가기 위해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관악지맥 (冠岳枝脈)은 ?

한남정맥 백운산에서 분기하는 관악지맥은 청계산과 관악산 그리고 국립묘지를 품고 있는 서달산을

거쳐 동쪽으로는 탄천(양재천 포함)이 서쪽으로는 안양천(신도림천 포함)을 가르고 한강에 입수한다.

 

물줄기의 길이와 유역 면적으로는 탄천이 길이 35.6km, 유역면적 303㎢로 안양천보다 조금 큰 하천이나.

산줄기의 길이로는 관악산에서 우면산을 지나 탄천이 한강과 만나는 삼성동 청담교까지 보다는

관악산에서 영등포 들판을 지나 양화동 염창교에서 안양천이 한강을 만나는 산줄기가 더 길므로

안양천쪽을 입수점으로 잡아 신산경표에서는 관악지맥으로 정의하는데 수계를 기준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안양지맥이라고 부른다

 

관악지맥 (冠岳枝脈)은 한남정맥 백운산(566m)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바래산(427m). 학현(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
국사봉(542m). 청계산(615m →0.9), 매봉(369m),관악산(632m)을 넘어 남부순환도로에 내려서 부터는 도심지로
까치산근린공원,국립묘지 뒷산인 서달산(176m봉),신길동 서울지방병무청,문래역을 지나 안양천의 동쪽끝에 이르는
도상거리 34.8km되는 산줄기다.혹자는 관악산 정상을 내려서서 남태령과 우면산을 거쳐 탄천의 서쪽 끝으로 가기도 하지만

이는 각자의 몫이고 신산경표(박성태저)는 북악산.인왕산을 바라보면서 안양천의 동쪽끝으로 가는 산줄기를 따르고 있다.

관악지맥 (冠岳枝脈) 개념도 (박종율 선생 자료인용)

 

 한남 10지맥 지도

안성 북(서봉), 화성(태행), 발안 서(오두), 안양(관악), 탄천(검단), 진위(쌍령), 경안(앵자), 복하(독조), 양화(해룡)지맥

그리고 나중에 추가된 황구(청명)지맥이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수헌님의 자료인용)

인덕원 (仁德院) 버스 정류장(07:20)

도곡역에서 안양가는 11-3번 버스를 타고 안양 인덕원 사거리에서 내려  인덕원역 2번출구쪽에

있는 버스정류장 가는 길에 간단하게 김밥 한줄로 아침을 해결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잠시후 5번 마을버스가 도착하는데 조그만 미니 버스이다

 

인덕원(仁德院)은 조선조부터 내시들이 살던 마을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신체적으로는 비록 거세된

몸이지만, 환관(宦官)이라 하여 궁중의 임금과 가까이 대할 수 있는 신분이라 높은 관직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 신분에 어울리게 남에게 자주 어진 덕을 베풀기도 하는 사람들이라 인덕이란 마을 이름을 얻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나중에는 이 마을에, 공무로 여행하는 이들을 위한 숙소인 원(院)을 두게 되어

이로부터 인덕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원은 임진왜란 전에 폐하여 없어졌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1597년 5월 초사흘에 인덕원에서 쉬어갔다는

기록이 있고 특히 조선 22대 정조대왕이 부친 사도세자의 능 참배시 여섯차례에

걸쳐 인덕원 옛길을 지나갔다는 원정정례의 기록이 있다고 한다.

백운동산(07:40)

버스는 서울구치소를 지나 아파트 단지를 요리조리 뱅글뱅글 돌아간다

이곳에 와 본지가 15년은 더 된듯 싶다... 예전에 화원과 농토가 있었던

전형적인 농촌마을 이었는데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해버려 완전히 상전벽해가 된 느낌이다

과천에서 수원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아래를 지나니 백운저수지가

나오고 다시 고개를 치고 오른 다음에 버스에서 내린다

백운동산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하는데 내일 작업할 현장의 주인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와 이것저것을 꼬치꼬치 캐묻는데 그걸 대답해주다보니 20분이

넘는 시간이 허비된다... 일욜은 모든걸 잊어버리려고 산에 왔는데 갑자기 머리가 복잡하다

장비를 점검하고 등로에 접어드니 등산 안내도가  나오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08:10)

묘지(08:15)

백운동산에서 등로에 오르자마자 묘지가 나오고 묘지 너머로 백운산은 짙은 안개에 쌓여있다

NO30 송전탑(08:22)

안부 사거리(08:23)

←백운호수 1.47km →산들길 (3구간 1.0km) 이정표가 서 있다

NO22 송전탑(08:25)

오전공설묘지(08:27)

오전공설묘지에서 바라본 의왕~과천간 고속도로

묘지옆에 서있는 소나무

공동묘지에 있는 삼각점

묘지를 지나 능선에 오르니 벤취 2개가 있는 쉼터가 나온다

오메기 저수지 갈림길(08:32)

등로 좌측으로 오메기 저수지로 향하는 등로가 보인다

오메기는 의왕시 오전동에 있는 마을로  문화 류씨와 문씨, 진씨, 광주 노씨, 마씨 등이 각각 1개 막(幕)씩을 짓고

살아 ‘오막동(五幕洞)’으로 했다가 조선 말기에 이르러 ‘오매기’로 된 지명을 ‘오메기’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436m봉(08:45)

학의동 갈림길(08:52)

다시 고도를 높이 오르막 계단으로 오른다

어제 비가 온 탓인지 습도는 상당히 높고 바람 한 점이 없이 초반부터 땀을 너무 많이 흘린다

공동묘지 분기점(09:05)

우측으로 백운사입구 850m, 방옥 마을버스 2.4km 갈림길인데 경기도에서

설치한 구조 이정목과 등산객 출입을 체크하는 계수기가 설치되어 있다

공동묘지 분기점에 설치되어 있는 구조이정목

백운산(白雲山:567m:09:10)

경기도 의왕시와 용인시 수지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의왕시에서 설치한

정상석과 팔각정, 4등삼각점(△수원451 / 1983재설)이 있고 멋진 전망대가 설치

되어 있으나 오늘 전망이 꽝이다

 

백운산 정상은 이곳이 아니고 조금 떨어진 미군 통신대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

정상이나 그곳은 접근할 수가 없기에 이곳이 정상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곳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안양(관악)지맥의 첫발을 내딛는다

 

이곳 백운산은  인근의 광교산이나 청계산에 비해 덜 알려진 곳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등산객은 적고 호젓하다...산세가 험하지 않고 고도가 높지 않아

주변의 도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산이며 울창한 숲과 시원한 계곡이 있어

여름철이면 피서객이 많이 찿고 인근에는 백운호수, 백운사, 인덕원이 있어

아름다운 풍광과 역사와 재미있는 유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하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산, 얼마나 높아서 구름이 넘지 못하고 산정에 늘 머문다는 산이 바로 백운산이다.

우리나라에는 백운산이 참 많은데 북한을 제외하고 대한민국에만 20여개 이상의 백운산(白雲山)이 있다고 한다.

광양의 백운산, 함양의 백운산, 평창의 백운산, 기장의 백운산, 무주 백운산, 장수 백운산, 정선의 백운산,

완도 백운산, 밀양의 백운산 의왕시 백운산 등등 " 흰 구름이 걸려있어" 백운산으로 불리는 산은 우리나라에 많다

10년이 넘은 시절에 광청종주를 하면서 이곳을 걸었으니 참으로 오랫만에 오니 감회가 새롭다

정상 아래에 있는 팔각정의 모습

통신대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어 더이상 갈 수가 없다

미군 통신대가 주둔하고 있는 진짜 백운산 정상의 모습

다시 정상석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와서...

백운산 전망대

지금은 모든게 五里霧中

백운산 이곳 저곳을 두루 살핀 다음에 안양(관악)지맥 첫 발을 내딛는다 (09:20)

급하게 내려서니 옛 헬기장인듯한 넓은 공터에 휴게용 벤취가 있다

무명봉(09:27)

의왕시에는 이곳을 의왕대간이란다... 大幹이란 단어는 아무되나 붙이는게 아닌데...

462.2m봉(09:35)

또다시 계단을 내려간다

앙증맞은 암봉도 지난다

422.5m봉(09:40)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산이 보인다

원추리

고분재 이정표

고분재(古盆峙:09:47)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의 맨 윗동네인 고분동  능선에 있는 고개로서 

고분동의 유래는 아주 옛날 이 마을에서 토기(土器)를 만들었다고 해서

‘옛 고(古) 질그릇 분(盆)’이라 해서 고분동이라 불렀고 마을 위의 고개인

고분재는 고분동에서 의왕시 의일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오랫만에 시그널을 만나는데 지맥의 시그널이 아닌 일반산행 시그널이다

멋진 소나무 한그루도 만나고...

바라산 전망대

짙은 박무로 인해 모든게 흐리기만 하다

바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백운호수

백운호수는 의왕시 학의동의 위치에 있으며 1953년 9월 준공된 제방 길이 253m의

인공 호수로서 백운산,청계산 계곡의 물이 이곳에 흘러 내려와서 여기서 모여 만들어졌다. 

물이 맑고,  울창한 숲속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경치도 뛰어난 곳으로 주변은 연인들의 드라이브코스나

산책코스로도 인기 있는 곳인데 호수주변엔 분위기있고 이름난 맛집등 이름난 음식점이 줄비하게

있으며 이쁜 인테리어로 치장하고  아름다운 백운호수를 배경으로 유혹하는 이쁜 카폐도 많다.

바라산 정상의 모습... 데크목 광장으로 꾸며져 있다

바라산(望山:428m:10:05)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과 의왕시 학의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바라산은 의왕 의일 주민들이 정월 대보름날 달을 바라보던 산으로
발아산(鉢兒山),또는 망산(望山)이라고도 불리었으며  “바라본다”는 말이 유래되었다고한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개국공신 조준의 아우 조윤(趙胤)은 자신의 형과 달리

조선을 섬기지 않고  망해버린 고려왕실을 그리워하는 충신이었다.

그는 스스로 망국의 신하됨을 부끄러이 여기어 이름을 견(犬: 개라는 뜻)이라고

고치고 개는 죽어도 주인을 잊지 않는다는 식으로 청계산에 숨어들어 산에올라

옛 수도인 개경을 바라보며 하루도 쉬지않고 통곡을 하니 그가 앉았던 곳이

청계산의 주봉인 망경대(望京臺) 였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 성계의 셋째아들 이 방원(조선조 3대 임금 태종)이

찾아와 출사(出仕)를 할 것을 수차례 권했으나 뜻을 굽히지 않자

이곳 바라산에다 초막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조견은 청계산에서 바라산으로 옮겨와 왕을 그리며 개성을 바라보면서
망국의 신하됨을 부끄러워하며 침식을 잊은채 울고 울다가 숨을 거두웠다고한다

바라산 정상에서의 인증샷

바라산 정상에서 내려오니 바라 365희망 계단이 나온다

바라 365 희망계단(10:10)

바라고개 내려가는 등로에 의왕시에서 설치한 계단에 24절기에 대한 설명판을 붙혀놨다

많이 배웠습니다

계단을 내려선 다음 바라고개로 향한다

등로 우측에는 농장 철조망이 보인다

바라재(10:18)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석운동에 있는 고개로 대부분 석운동은 잘모르고 운중동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있는 곳으로 부촌으로 알려진 분당구에서도 가장 오지로 알려진 마을로

도루니, 고갯말, 논골, 바리산리 등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있으며 대부분 청계산과 백운산 사이에 있는 산촌마을이다.

 

석운동(石雲洞)은 도루니, 되루니, 돌운, 도롤리및 도륜리 등으로 불리웠는데 산이 높고 골이깊어 구름이

자주끼고 돌이 많아서 석운리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과또 예전에 길가던 선비가 해가 저물어 이곳에 머물고 갔는데

이로 인하여 일이 잘못되어 서운하게 되었다고 하여 ‘서운리’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한 조선의 학자 이경석이 낙향하여 이곳에 살면서 도륜리나 수신동으로 불렀는데 몸가짐을 바르게 하려는 

뜻이 담겨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라재 이정표

←백운호수 →석운동2600m 이정표가 서 있는데.의왕시에서는 복골재라고도 부른다

바라고개 안내판

안내판에는 발화산이라고 있는데 아마 우담산을 말하는듯 싶다

NO15송전탑(10:23)

백운호수 갈림길(1:10:28)

이정표에는 ‘제4구간 백운호수 갈림길 능선’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백운호수 갈림(2) (10:38)

또 다른 백운호수 갈림길인 삼거리가 나오는데 우측으로 꺽어져 우담산으로 향한다

등로 잊어버릴 일은 없겠다

우담산(優曇山:424.2m:10:42)

경기도 의왕시와 성남시 분당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나온 백운산, 바라산과는 달리

변변한 표시석이나 표지판의 설명도 없고 그냥 이정표에다 누군가 메직으로 우담산이라 써놨다

정상에는 넓은 공터에다 휴게용 벤취가 있고 구조 안내목에는 ←바라산 1580m,정상 3800m,→고기리 하산길 

라는 표시가 있는데 바라재에서 발화산이라 말하는 건 이곳을 말하는데 왜 발화산이라 한 이유를 모르겠다

 

지명유래는 자세히 알 길이 없으나 불교에서 말하는 상서로운 우

담바라에서 따온 건 아닌지 (범여의 생각中에서) 

 

불경에서 말하는 우담바라...뜻

불경에서 여래(如來)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나타날 때만 핀다는 상상의 꽃이다.

한자로는 優曇婆羅, 優曇波羅, 優曇跋羅華, 優曇鉢華, 優曇華 등 다양하게 표기하고 있다.

영서(靈瑞)·서응(瑞應)·상서운이(祥瑞雲異)의 뜻으로, 영서화·공기화(空起花)라고도 한다.

3천년 만에 한 번 꽃이 피는 신령스러운 꽃으로,

 

매우 드물고 희귀하다는 비유 또는 구원의 뜻으로 여러 불경에서 자주 쓰인다.

불경에 의하면, 인도에 그 나무는 있지만 꽃이 없고, 여래가 세상에 태어날 때 꽃이 피며,

전륜성왕이 나타날 때면 그 복덕으로 말미암아 감득해서 꽃이 핀다고 하였다.

때문에 이 꽃이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은 상서로운 징조라 하였다.

또 여래의 묘음(妙音)을 듣는 것은 이 꽃을 보는 것과 같고,

여래의 32상을 보는 것은 이 꽃을 보는 것보다 백만년이나 어렵다고 하였다.

여래의 지혜는 우담바라가 때가 되어야 피는 것처럼 적은 지혜로는 알 수 없고

깨달음의 깊이가 있어야 알 수 있다고도 하였다

 

우담바라는 보통 한송이만 피어 있는데 주위에서 많이 발견되는 일

명 우담바라는 진짜 우담바라가 아니라 곰팡이나 풀잠자리알이다.

보통 풀잠자리알이 많이 발견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담바라=풀잠자리알 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다

더운 날씨에 높은 습도 탓인지 옷에는 땀이 줄줄 흐르건만 바람 한 점이 없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 마시며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하우현 성당 갈림길(11:07)

의왕시 NO22 이정목이 서 있고  화재경고판이 있는데 아래쪽은 천길 낭떠러지이다

이정표 (↓바라산3200m 정상5630m ←안양판교로 하우현성당1,240m →하오고개) 

능선에서 바라보니 서울외곽 고속도로 청계 요금소와 시흥시 학현동이 보인다

영심봉(369m:11:09)

영심봉 삼각점(△316 재설 / 76.8 건설부)

가야할 국사봉과 그 너머로 망경대가 보인다

367.3m봉(11:15)

정상에는 굉장히 큰 규모의 이동통신탑이 자리를 잡고 있다

367.3m봉을 지나니 이정표가 나타나고...

KBS운중 TV방송 중계소(11:16)

중계소를 지나면서 급경사로 내려서는데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상당히 미끄럽다 

하우고개 가는 길에서 만난 하늘나리

성남누비길 태봉구간이라 적혀 있는데 어디를 말함인지?

하우고개(11:25)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과 의왕시 청계동 원터 마을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구전에 의하면 조선시대 광주목의 영역이 현 안산시  반월동 사리까지  이르렀는데

어느 때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하루는 사리에 사는 염부들이 염전(鹽田)에서

작업을 하다가 사소한 일로 시비가 벌어지자 이를 가리기 위해 당시 관아가 있던경안(현 광주시)으로

가는 길에 이 고개에 이르러 서로 하우(和解)를 했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이 고개를 하우고개(하오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의왕시에서는 학고개 또는 학현(鶴峴)이라 부르는데, 운중동에서는 하오개· 하오고개· 화의고개

등으로 불리며 조선 말기에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피하여 학현 좌우에 숨어 살았다고 하며,

고개 너머 청계동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자 한덕운(토마스)이 체포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조선시대 동양원이라는 역원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학현이란 명칭은 이웃한 의왕시 청계동 점말에 있었던 김해김씨 종산(宗山)이

풍수지리상 학이 거동하는 형국이며, 인근의 안동김씨 묘역도

학의 혈(穴)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인덕원과 판교를 연결하는 지방도 57호선이 지나가며,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청계터널을 통과하여 이 구간을 지나간다

하오고개 육교에서 바라본 판교방향

10년이 지난 시절에 광.청종주를 할 때 목숨을 담보로 무단횡보를 하며 고속도로를

건널땐 조그만 2차선 도로였는데 지금은 왕복 8차선 도로에 현수교가 설치되어 있어

편하게 국사봉으로 향한다  

하우고개 공동묘지(11:28)

현수교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서부터 등산객들이 자주 보이며 공동묘지가 나타나는데 완전 풀밭이다

좌측으로 뚜렸한 小路가 보이는데 아마도 운중동으로 연결되는 등로인 모양이다

서울 외곽이 다 그렀지만 이곳도 상전벽해가 된 곳으로 지금은 최근의 부촌으로 자리매김한 서판교 지역이다 

공동묘지 너머로 서울외곽고속도로 청계요금소와 학현동은 짙은 박무로 가까운데도 보이질 않는다

묘지를 지나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는데 땀은 비오듯이 흘러 내린다...바람아 불어다오...미치겠다

등로에서 살짝 떨어진 우측에 송전탑이 지나가고...

성남시와 의왕시에서 세워논 팻말들

NO 9, 8 송전탑(11:45)

392m봉(11:55)

정상에는 휴게용 벤취가 있고 이정표(↗국사봉 640m ↖원터마을 1800m)가 있다

좌측의 하우고개 아래에 있는 원터(院址)마을은  옛날 광주, 인덕원, 과천을 잇는

동양원(東陽院) 이란 역이 청계동에 있었다하여  처음에는 역원터(驛院址)라 했다가

일제시대부터 원터(院址)라 불렀다고 한다 

 

이 마을은 1880년대에 하우현 성당이 생기면서 민가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현재 주민의

대다수가 천주교인이며 전주이씨와 밀양박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용갱이골 갈림길(11:57)

하오고개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구전(口傳)에 의하면 아주 먼 옛날에 청계사 호래미골 밑

원통사 절터에 있는 바위에서 어느 스님이 독경을 하자 갑자기 바위에서 혹이 나왔다고 한다

그 후 어느날 소나기가 쏟아지자 혹이 터지면서 금송아지 2마리가 나와 한마리는 현재 청계사

 

부근으로 가더니 없어지고, 또다른 한마리는 다른 골짜기에 이르자 용으로 변하더니 광채를 내며

승천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이 골짜기를 용이 광채를 낸 곳이라하여 ‘용광(龍光)이골’ 이라

했는데 세월이 흘러 변음이 되어 ‘용갱이골’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서 이 골짜기에서 백자를 굽기도 하였다고 한다

용갱이골 갈림길 이정표( NO.33 ←청계사, 의왕,용갱이골(800m) → 운중 저수지(1600m)

오르막길에서 만난 돌탑

휴게용 벤취가 있는 쉼터봉을 지나니...

고속도로만큼 넓은 등로가 계속되고...

Y자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국사봉으로 향한다

국사봉(國思峰: 540m12:15)고려말의 충신 조견이 이 봉우리에 올라 

나라(고려)에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였다 하여 국사봉(國思峰)

또는 국은봉(國恩峰)의 이름으로 불리워오다가 이 봉우리 밑에 있는 운중동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개원되자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이곳에 들러 국은봉(國恩峰)으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국사봉 정상에는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의왕시에서 설치한 정상석과 피뢰침이 보이고 봉우리 정상 아래는 막걸리집이 성업중이다

이정표(↓하오고개 안양판교로 1430m 백운산정상7960m ↗운중동버스종점(학국학중앙연구원)

2000m ↖이수봉1140 청계사2510m)가 있는데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쉬지않고 이수봉으로 향한다

국사봉 아래에 있는 멋진 암릉도 통과하고...

안부(12:30)

청계사 갈림길(12:35)

다시 오르막을 오르니 몽돌처럼 생긴 암봉이 나오고 내려서니...

평평한 능선이 나오는데 말레이곰을 잊어버렸다가 찾았다는 팻말을 세워놨다

서울대공원은 돈이 썩은 모양이다... 잊어버린 것은 관리를 잘못해서 그런걸

뭔 기념이라고 팻말을 세워놨나... 챙피한 줄 알아야지... 저 자들 자기 돈이면 저지랄 안알거야

드디어 옛골에서 이수봉으로 오르는 능선으로 오른다... 소위 말하는 내 나와바리 구역이다

이수봉(二壽峰:545m:12:45)

조선 연산군 때의 유학자인 정여창 선생이 스승 김종직과 벗 김굉필이 연루된

무오사화의 변고를 예견하고, 한때 이 산에 은거하며 생명의 위기를 두번이나

넘겼다하여 후학인 정구 선생이 이수봉이라고 명명하였다

아마 수백번도 더 올랐던 이수봉... 안양(관악)지맥을 걸으면서 오른 이수봉의 감회는 남다르다

오늘은 청계산 구간의 막걸리집 때문에 물과 수박 이외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근데 이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다... 지금은 재건축으로 인해 이주를 했지만 10여년을

넘게 한동네에서 살았던 지인을 만났는데 오랫만에 만난 탓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막걸리잔을 기울이다보니 1시간 가까운 시간이 흘러갔다...점심 대신 막걸리 5잔을 마시고나니

정신이 알딸딸하다... 오랫만이라고 지인이 막걸리값을 대신 내준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아쉽지만 다음에 우리 사무실에서 만나 술한잔하기로 하고 헤어진다

이곳은 눈을 감고도 걸을수 있을 정도인 청계산 능선

집 근처에 이런 명산이 있다는 건 어쩌면 난 행운아인지도 모른다

서울, 성남,용인, 과천, 의왕의 5개시에 걸쳐있는 청계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광주목 산천조에

청계산(淸溪山)이라 되어 있고, 관천현 산천조에는 청계산이라 쓰고 일명 청룡산(靑龍山)이라 한다고 써있다.

 

과천읍지에도 이러한 내용이 있다. 

좌청룡 우백호의 개념으로 오른편에 있는 관악산을 백호산이라

부르고, 왼편에 있는 청계산을 청룡산이라 불렀을 것이다.

17세기에 세워진 청계사 사적비 등 여러 곳에 청룡산이라 되어 있고,

택리지 산경표 대동여지도 등에는 청계산(靑谿山)이라 되어 있다 한다.

맑을 청(淸)자가 아니라 푸를 청(靑)자를 썼고, 시내라는 뜻이 같기는

하지만 골 곡(谷)자가 붙은 계(谿)자를 쓴 것이다. 옛날 청룡이

이 산의 허리를 뚫고 나와 하늘로 올라가서 청룡산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헬기장(13:20)

조견선생과 망경대 안내판

이곳에서 보면 망경대가 잘 보이는 곳이지만 오늘은 짙은 박무와 우거진 녹음으로 인해 보이질 않는다

조선조 창건의 일등공신인 조준의 아우 조윤은 형의 변절과 망국과 동시에 죽한 못한 자신의 무능을

 

부끄러워하여 개와 같다는 뜻으로 개 犬 부가 붙은 견(성급하다, 절의를 지켜 뜻을 굽히지 아니 하는 일)으로

이름을 바꾸고 자를 개를 따른다는 뜻으로 종견이라 했다는 것이다.

 

만경대가 망경대로 이름이 바뀐 것도 이색 등 고려 유신들이 이 바위봉우리에서

망한 고려의 서울(개성)을 바라보며 그리워한 터라 해서 정여창이 고쳐 불렀다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는 청계사를 제목으로 지은 이색의 시가 있다

 

망경봉 서남쪽에 있는 천연동굴 마왕굴은 한때 고려 말의 조윤과 정여창이 은거했던 굴로

알려져 있고, 매봉과 망경봉 사이에 있는 혈읍(血泣)재는 피눈물을 흘리며 운다는 뜻으로

정여창이 청계산에 은거하고 있을 때 무오사화를 겪고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한 데서 나온 이름이라 한다

망경대 갈림길(510m:13:22)

전망대(13:23)

이곳에서 서면 바로 아래쪽에 있는 서울 대공원과 맞은편의 관악산과

모락산, 수리산이 모두 다 보이는 곳이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좌측으로는 지나온 국사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에는 데크목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청계사 갈림길(13:35)

안양(관악)지맥길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지고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직진 방향의 청계사 방향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재선충 때문인지 소나무마다 표식번호가 붙어있다

두꺼비 바위(?)

우측으로는 과천 서울대공원 철조망을 끼고 걸어간다

388.7m봉(13:43)

절고개(13:45)

이정표(↑청계사280m ←이수봉1480m, 국사봉2620m →응봉1760m 이미마을4260m)가 있고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내일이 음력 유월 초하루라서 청계사로 내려가 부처님을 참배하고 지맥길을

이어가고 싶지만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조금전에 마신 술로인해 그냥 지맥길을 이어간다

 

절고개란 청계사 윗쪽에 있는 고개라해서 붙혀진 지명인 모양이다

청계사는 청계산 남쪽 태봉 자락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용주사의 말사로, 경기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되었다.

《봉은본말지》에 통일신라 때 창건되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284년(고려 충렬왕 10) 평양부원군인 조인규 (趙仁規)가 사재를 들여 중창하였고, 가문의 원찰로서

후손들이 약 500년간 중창을 거듭하였고 조선의 연산군 때 도성 안의 사찰을 폐하고 관청을 세우자

불교 쪽에서 선종의 본산으로 정해졌고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李穡)이색, (卞季良)변계량

당대 문인들이 즐겨 찾으며 절을 주제로 시를 지었으며 칩거했다.


경내에 신라의 석등과 부도 조각 일부가 남아 있으며, 극락보전과 종각, 삼성각, 산신각, 수각 등

3동의 요사를 비롯해 10채의 건물이 있으며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스님이 입산출가하고 수행했으며,

이후 1955년 월산, 월덕, 탄성, 월탄 스님, 종상 스님 등 금오 스님을 모시면서 가람을 수호하고 주석하신 유서깊은 고찰이다.

경허 스님의 출가지로 경허선사의 선맥을 이은 만공, 보월, 금오, 월산 선사의 체취가 경내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산림욕장2 이정목(13:50)

산림욕장입구 0.2km 라는 표시가 되어 있는데 산림욕장이 어딘지 모르겠다

옆사면길을 버리고 조그만 무명봉을 오른 다음에 다시 등로로 내려선다

산림욕장1 이정목 (←절고개0.2km 전망대1.3km  →헬기장0.4m, 응봉1.6km)을 지난다

헬기장 아래의 막걸리 장사... 파리만 날리고 있다... 한잔을 팔아주고 싶지만 이수봉에서

마신 술이 덜 깬 상태라 그냥 지나가니 조금은 미안하다... 장사는 목(장소)이 중요한데...

헬기장(13:55)

좌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알프스 대장님 반갑습니다

등로 좌측 아랫쪽엔 송전탑이 보이고...

암릉구간을 올라서니...

좌측 산 능선에는 송전탑이 즐비하다

데크목 계단으로 올라 매봉(과천 매봉)으로 향한다

과천 매봉에 있는 이정목

과천 매봉(鷹峰:369.3m14:20)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과 의왕시 청계동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데크목 광장에

쉼터의 의자와 정상석에는 “청계산 매봉 해발 369.3m”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청계산에에는 2 개의 매봉이 있다... 혈읍재와 옥녀봉 중간에 매봉(582.5m)이 있는데

이곳은 청계산에서 가장 높은곳이 망경대이나 이곳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등산객이

접근할 수 없기에 매봉이 청계산의 주봉 역할을 하는데 사람들은 이곳을 ‘매봉’이라 부르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곳을 매봉은 ‘과천 매봉‘이라 부른다.

 

매봉은 흔히 한자로 응봉(鷹峰)이라 쓰고 예전에 매(鷹)가 살던 봉우리라는 설명이 따른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흔치 않고 사실은 마을 앞 눈에 제일 자주 띄는 우뚝한 봉우리를 그냥 ’뫼(山)‘라

한데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고 하며 그 뫼가 어느 날부터 뫼봉이 되었다가 매봉이 되었다 한다.

선비들이 지명을 기록하자니 매(鷹)자를 써서 응봉(鷹峰)이 되었다는 것이다.

과천 매봉에서 바라본 과천시내의 모습... 그 너머 관악산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정상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과천시 문원동의 내려서는 길이 보인다

 

과천시 문원동은 의왕시 청계동과 경계를 맞대고 있으며 『호구총수』의 과천현 현내면에

문원리()라 기록되어 있으며,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향교말() · 다락터() ·

홍촌말() · 새술막() · 구리안() · 베레이(또는 배랭이, )를 합해 시흥군 과천면의 문원리로 편제되었다.

1982년에 원문리의 북쪽 지역에 중앙 · 별양 · 원문의 3개 지역이 떨어져 나가 독자적인 행정단위가 되었고,

1986년에 과천시로 승격되면서 문원동이 되었다. 조선 시대 문원리 지명은 향교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향교에 있던 대성전(殿)인 문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문원리의 중심 마을은 향교말 · 홍촌말 · 새술막이었는데, 현재 이곳의 대부분은 중앙동에 속해 있다

안양(관악)지맥길은 조금전 올랐던 이정목

(과천매봉 현위치↑이수봉3.2km 국사봉4.3 km, ↗ 5.6호 약수터1.5km)으로

되돌아와서 우측 약수터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NO20 송전탑(14:30)

만남의 광장2 갈림길(14:33)

지맥길은 안양방향으로 이어진다

349.4m봉(14:37)

349.4m봉 삼각점△(454 재설 / 76.9 건설부)

무명봉(14;42)

정상에는 조그만 돌들이 있고 쉼터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사기막골 갈림길(14:43)

과천매봉 650m 지점에 있는 갈림길로 우측으로는 사기막골과

정부 과천청사역 방향이며 관악지맥길은 이미마을(1980m) 방면으로 직진한다

사기막골은 지금의 서울대공원쪽에 위치한 곳으로 도자기에 사용되는 백토가

많이 생산된 곳으로 과천 일대에서 확인된 도요지로는 관문동 도요지, 관악산 분청자요지1,

관악산 분청자요지2, 중앙동 도요지, 문원동사기막골 백자요지1, 문원동사기막골 백자요지2,

막계동 분청자요지 등이 있다 고 한다

사기막골 갈림길에 서 있는 이정목

안부(14:55)

다시 나무계단을 따라서 오르막으로 오른다

무명봉(14:58)

과천 매봉을 지나면서 등산객 한명을 구경하지 못한다

이미마을 갈림길(15:05)

갈림길에는 ↑이미마을 980m로 기록되어 있고 이정목  옆에는 조그만한  돌탑하나가 있다

좌측으로는 의왕시 청계동 방향이고 우측은 과천시 문원동이고 맥으로 보면 직진인 이미마을(포일동)

방향인데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전부 다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우측의 희미한 길로 내려섰다

 

의왕시 포일동에 있는 이미마을은 진터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순흥안씨와 나주정씨의 오랜 세거지로

마을에 큰 나무(느티나무) 2그루가 있어 마치 숲을 이룬것과 같다하여 ‘임이(林二)’라 불렀다고 해서

임이마을이라고 불렀는데 변음이 되어 이미마을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희미한 등로에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곧이어 뚜렸한 길을 만나고...

안부(15:10)

오늘 처음으로 잡목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다

우측의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직진한다

안부를 지나 잡목지대로 들어서니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묘터 자리(15:12)

수헌 아우님의 산행기에는 청주이공과 배부인 경주김씨 묘비가 있는 곳인데 移葬을 한 모양이다

묘지 자리에는 나무를 심어놨고 주변에는 잡목만 무성하다

저길 뚫고 나가야 하는데...

힘들게 잡목을 뚫고 나오니 여영님의 시그널이 외롭게 걸려있다

계속되는 잡목과의 전쟁

좌측에는 제비울미술관의 녹슨 철조망이 처져있고 우거진 녹음 탓인지 미술관은 보이질 않는다

철조망을 따라서 내려오니 여러기의 묘지가 잡풀속에  묻혀있고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전주이공& 풍천노씨 묘지(15:20)

묘지앞 小路를 따라서 내려간다

펜스가 처진 텃밭을 따라 내려서니...

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의왕~과천간 고속도로 지하차도(15:25)

도로 건너편에는 과천시 정화자원 센터의 높은 굴뚝이 보인다

지하차도를 빠져 나오니...

좁은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도로 아래에는 어울너울이라는 고깃집이 보인다

지맥길은 우측의 공터로 올라가야하나 습한 날씨 탓에 물을 많이 먹은 탓인지

수통에 물이 거의 다 떨어졌다... 물을 구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으로 들어가니 어쩐지 이곳이 낯설지 않다 했더니 개포동친목회에서 자주오는 식당이 아닌가

주차 관리하시는 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자주 오는 곳이라 했더니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면서

시원한 물에다가 얼음까지 채우 주는게 아닌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공터를 지나 고속도로옆 숲속으로 들어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제비울 미술관

제비울미술관은 기업을 통한 사회봉사의 정신을 미술문화로 구현하고자 설립된 비영리 미술관이다.

이곳은 과천에서 14대째 살고 있는 신창건설 김영수 대표의 평소의 소신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우리 미술 문화 진흥을 위해, 아름다운 청계산 자락의 제비울 마을에

우리의 전통적인 건축양식과 현대적인 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서 지어졌다.

 

제비울미술관은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와 미감을 바탕으로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교육적으로 가치 있는 기획전을 집중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우리의 꿈나무들이 우리 미술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고 미술관 활동을 통해 예술을 향유하고 나아가 나날이 국제화와 세계화되어가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정서적으로 흔들림 없는 건강한 인성을 갖추는 데에 기여하고자 한다.

 

또한 제비울미술관은 다양한 현대 미술의 흐름 속에서 나날이 소외 되어가고 있는 관람자의

입장에서 현대미술을 쉽게 풀어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을 또 하나의 목표로 삼고 있다.
요즘 신창건설이 어려운지 얼마전에 이 미술관의 매각 소식이 전해졌고, 예전에 운영했던

신창건설 코뿔소씨름단도 해체가 된 모양인지 보이질 않는다... 건설사들이 다 어렵지만

신창건설 김회장님이 잘 되었으면 한다

밀양박공 묘지(15:40)

어울너울 식당앞 도로를 따라서 편하게 갈걸...괜히 맥길 고집하다 잡목지대에

들어와서 거미줄에다가 잡목의 심한 태클... 사서 개고생을 한다

묘지로 내려서니 도로가 보이고...

산막골 도로(15:50)

도로 우측에는 산막골 한우 소머리국밥집이 있고 ㅓ자 도로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도로를 꺽어지자마자 다시 능선으로 들어선다

잡목지대 능선을 들어서 조금을 걸으니 다시 도로가 나타나고...

도로(16:00)

갈현삼거리와 샛말로 이어지는 이정표가 있는 도로를 가로질러 다시 능선으로 오른다

선답자의 시그널을 만나고...

잡목지대의 저항이 만만찮다

능선에서 좌측으로 꺽어지니 철조망이 나오고...

아마 알프스 대장님의 시그널인 모양이다

다시 도로를 내려서니 도로옆으로는 화훼단지 비닐하우스들이 보인다

다시 도로를 가로질러 올라서니...

칡넝쿨과 잡풀들로 인해 등로는 보이지도 않는다

조금전에 걸었던 길을 뒤돌아보고...

칡넝쿨을 헤치고 올라서니 배밭이 나온다

80.8m봉(16:10)

80.8m봉에서 바라본 과천시

과천시는 경기도의 중앙부에 있는 시로서 서울특별시의 관악구 · 서초구와 경기도의 성남시 ·

의왕시 · 안양시와 경계를 맞대고 있으며『신증동국여지승람』의 과천현 건치연혁 항목에

 "본래 고구려의 율목군()[일설에 동사힐()이라고도 한다]인데, 신라 경덕왕 때

율진군으로, 고려 초기에 과주()로, 조선 태종 13년(1413)에 과천()으로 고쳤다."고 나온다.

조선 시대의 과천현은 현재의 과천시 · 안양시 · 의왕시의 대부분과 서울특별시의 동작구 · 서초구 등을 관할하였다.

현재의 과천시 영역 대부분은 조선 시대에 과천현의 현내면에 해당되며,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동면의

주암리를 합해 시흥군 과천면으로 편제되었다.

 

 1979년에 과천지구 지원사업소가 설치되었으며, 1982년 경기도 과천지구 출장소로 승격되었다.

1982년부터 정부 제2과천청사와 서울대공원이 들어서고, 1986년에 과천시로 승격되었다.

중앙동 · 갈현동 · 별양동 · 부림동 · 과천동 · 문원동의 6개 행정동을 관할하고 있다

배밭 너머로 다음번에 가야할 관악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갑자기 길이 끊어지고 배밭 쥔장이 쳐논 그물망에 갇혀 버렸다

이리저리 헤메다가 겨우 배밭을 탈출(?)하여 오늘의 날머리인 갈현고개에 내려선다

갈현고개(葛峴:16:15)

과천시 갈현동에서 안양시 관양동 부림말〔富林洞〕로 넘어가는 고개로 47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칡나무가 많아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갈고개의 갈은 땅이름에서 갈라짐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갈현()은 순우리말 '가루개'에 대한 한자 표기였는데, 후에 한자 발음이 그대로 행정단위의 이름이 되었다.

가루개란 고개의 이름이 그 아래에 있는 마을 이름으로 쓰인 것이며, 『조선지형도』에 갈현리란 한자 위에

일본의 가타카나로 '가루개'란 발음이 적혀 있다.

 

오늘은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며 스틱을 접고 찬우물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찬우물(冷井) 버스 정류장(16:17)

갈현고개에서 산행을 접고 과천쪽으로 2분정도 내려오니 찬우물 버스 정류장이 있다

 

찬우물의 지명유래는

조선조 22대 임금인 정조대왕(1752~1800)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원인 수원 현륭원에

능행(陵幸)할 때마다 과천을 통과했는데, 어느 날 이곳에 이르자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한 신하가 근처 찬우물의 우물을 떠다 바치니 이 물을 마시고 물맛이 유난히 좋다 하여, 이때부터

이 우물에 벼슬을 주어 “당상”의 품계에 해당하는 가자당상(加資堂上) 벼슬을 제수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가자당상”이란 정3품 이상의 품계로 왕이 직접 관리하는 곳을 의미하며 이런 연유로 이 우물을

가자우물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 우물은 또한 한여름에도 시원하다하여 찬우물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원래는 암반의 틈새에서 솟아나 많은 샘물로 이루어져 우물로 솟아나는 약수로도 유명하였다

찬우물 버스 정류장 노선표

갈현고개에서 과천방향으로 내려가니 찬우물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11-5 버스를 타고 사당동으로 가서 스크린골프장을 운영하는 바람친구한테

들려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캔맥주 3개를 마시고 2시간 정도 노닥거리다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