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川(紫蓋枝脈)... 첫구간 그리만만하지는 않더이다
☞ 산행일시: 2016년 10월 23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 날씨에 오후부터 비
☞ 산행거리: 도상거리 13.3km + 어프로치 약1.3km / 7시간 45분 소요
☞ 참석인원: 후배 산꾼 3명과 함께
☞ 산행코스: 고치령-헬기장-자개지맥 분기점-분기봉(헬기장)-855.7m봉-자개봉-독점마을 갈림길
송이움막1-송이움막2-갈림길-송이움막3-507m봉-묘지-사문마을 고개-이정표
412m봉-갈림길-무넘어 고개-367m봉-시멘트 도로-이동통신 중계탑-산신각-수화고개
과수원-396.3m봉 갈림길-갈림길-안부-묘지-갈림길-371m봉-안부-공터-천마산-안부
부엉이재-보계실 고개
☞ 소 재 지: 경북 영주시 단산면 / 부석면
요즘 썩 편치않은 심기를 다스리고 나를 한번 뒤돌아 볼 겸 혼자서 오대산으로 훌쩍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산행 스케줄을 보니 지난 8월에 후배 산꾼들과 함께 자개지맥 첫 구간을 하기로 약속을 해놨네...
모든 지맥 산행이 다 그렇듯이 첫 구간 접속이 가장 힘이 든다...자개지맥 역시 마찬가지다
당일 산행으로 첫 구간을 시작하려면 버스를 타고 풍기나 영주에 가서 다시 단산으로... 그리고
고치령까지 가면 산행 시작이 11시가 넘어서야 하고, 1박으로 가더라도 영주에 가서 찜질방이나
여관에서 자고 단산가는 첫 차를 타고 그 다음 다시 택시로 타고 고치령까지 가야하는 불편이 따른다
그런데 이 구간은 범여의 친구가 몇년 전 고향으로 낙향하여 좌석리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친구가 있다
단산 저수지 앞에서 운산농장을 운영하는 친구인데... 이곳은 고지대라 포도가 아주 달고 맛있다.
지난 추석에도 10박스를 시켜서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었는데 다들 호응이 좋았다.
이 친구는 3월에 서울에서 내려가서 포도농사를 시작하여 11월이면 서울로 올라온다
그리고 산삼과, 하수오, 송이버섯,겨우사리 등을 채취하여 생활하고, 풍수지리에도 능한 친구이다
지난번 포도를 시켜 먹으면서 우리가 자개지맥을 가야하니 풍기에서 고치령까지 차량 제공을
해달라고 하니 흔쾌히 승락을 한다... 속된 말로 본의 아니게 甲질을 한 꼴이 되어 버렸다
서천(西川:자개지맥:紫蓋枝脈)은 ?
서천(西川:자개지맥:紫蓋枝脈)은 지리산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백두대간이 소백산을 넘어 고치령에서
동남쪽 1.1km, 미내재에선 서남쪽 1.9km 되는 959m봉 턱밑에서 ( 높이 약 920m) 남쪽으로 가지를 쳐
자개봉(紫蓋峰.858.7m),무넘어고개,천마산(386m),국모봉(349m.→0.3km),수나리고개,대마산(373m),
노인봉9364m.→1.7km), 마근당이고개,삽재,박봉산(389.9m.→1.7km),유릉산(299m.→1.4km)를 지나
서천(西川.32km)이 내성천(乃城川.108.2km)에 합류하는 영주군 문수면 승문리 물섬마을앞 무섬교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48.4km되는 산줄기를 말한다.
이산줄기 서쪽으로 흐른물은 서천(西川.길이 32km)으로 들고 동쪽으로 흐른물은
내성천(乃城川.길이 108.2km)이 되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 산경표에서는 서천지맥이라고 한다
필요한지도는 1/25000 : 웅진.순흥.내성.영주.웅천. 1/50000. : 예미.영주.안동. 1/50000영진지도 : 205..231. 257쪽
위 개념도는 박성태 선생님의 신 산경표 별책 부록에서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 → 풍기행 버스표
이른 새벽에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집을 나서 선릉역에서 강변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첫차를 타고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니, 06시가 조금 넘은 시간... 먼저 도착한 진권 아우를 만나고 곧이어
수헌아우님과의 조우...그런데 표를 예매한 산으로님이 보이질 않는다
풍기가는 첫차가 06:15분이고 차량 출발 시간이 5분도 안 남았는데...전화를 하니 06시 45분 버스란다
아침은 풍기에서 먹기로하고 친구한테 풍기에 있는 청국장집에다 아침까지 예약해놨는데
산행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터미널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풍기행 버스에 오른다
풍기시외버스 정류장(08:45)
정확하게 2시간만에 풍기버스 정류장에 내리니 친구가 차량을 대기시켜 놓고 기다린다
이곳은 지난해 여름 혼자서 풍기 십승지를 걸으면서 지났던 길이라 눈에 선하다
몇년만에 만난 친구와 조우를 하고 풍기읍내를 거쳐서 순흥, 단산을 지나 고치령으로 향한다
가는길에 친구가 이 지역의 지명과 역사, 유래를 설명하면서 가이드 역할까지 한다
풍기읍내를 빠져나와 순흥면소지 지나면서 소수서원이 보인다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 즉 임금이 이름을 지어
편액을 내린 서원으로 본디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인 고려 말의 유학자 안향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1542년(중종 37) 주세붕이 풍기군수로 부임하면서 안향의 뜻을 기려 이곳에 서원을 세웠다.
최초에 주세붕이 이곳에 서원을 세웠을 때는 백운동서원이라 불렀는데 이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하면서
1550년(명종 5)에 사액을 받았고 조선 말 서원이 당쟁과 민폐의 온상이 되자 대원군이 이의 철폐를 단행하여
600여 군데를 없애고 40여 군데를 남겼는데, 그때도 소수서원은 살아남았다.
서원을 둘러 산 명품 소나무숲만으로도 일부러 찾을 만한 곳이다
친구와 함께 인증샷
백두대간 남진할테 왔으니 벌써 2년반이란 세월이 흘렀건만 고치령은 변한게 없다
고치령 정상석 옆에 산림청에서 세운 누에고치 모양으로 만든 돌덩어리가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역사의식의 수준을 나타내는듯 한데 한심하기 그지없다
“古峙嶺”... 오래된 고개라는 뜻인데 누에고치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지명 하나 하나에 담긴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으니... 한자교육이 필요할듯 싶다
고치령(古峙嶺760m:09:15)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서 마락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좌석리에서
고치령까지는 1톤 정도로는 차량이 다닐 수 있으나 고치령에서
마락리 방면으로는 비포장 도로로 차량이 다닐 수 없는 고개이다
마락리(馬落里)라는 지명유래는 큰 바위로 된 절벽이 있는데
죽령 다음으로 영남과 충북, 강원, 서울 등지로 통하는 주요 통로였다.
상인이 말에 짐을 싣고 이곳을 지나는데 갑자기 광풍으로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게 되었는데 말이 죽지 않았다 하여 말굴이라는 한자어인
마락((馬落)이라고 하였고, 조선시대 금성대군과 단종사이에 왕래하던
밀사가 말에서 떨어진 곳이라 하여 마락이라고 하였다는 설도 있다.
경북 영주시에서 충북 단양군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크게 3개로 나뉘는데
첫 번째가 죽령이요, 죽령에서 동쪽으로 조금 더 이동을 하면 두 번째 고치령
그리고 세 번째 가장 동쪽에 위치한 고개가 마구령이다.
조선 초기 정유재란 이후 정축지변(순흥땅의 단종 복위사건)이 나기 전에
이곳의 순흥부사(이 보흠)와 금성대군이 영월땅으로 유폐된 단종을 만나기
위해 밀사로 넘던 곳이 이곳 고치령이다
고개 정상에는 조선조 7대 임금인 세조의 동생 금성대군과 조카 단종의 혼을 달래려 있는
산령각과 장승들이 서있고 정상 표시석과 이정표가 고개 정상을 지키고 있다.
아우님들과의 인증샷
고치령... 마락리 방향의 모습
고치령은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와 마락리의 경계인데 좌석리
방향은 포장도로로 되어 있으나 마락리 방향은 비포장 도로이다
단종(端宗) 복위의 애환서린 한 많은 고치령(古峙嶺)
고치령에는 국망봉 11.1km, 마구령 8km의 이정표와 함께 공터의 좌측 소백산 방향에는
백호모양의 수마석과 표지석이 있고 소백지장(小白地將) 장승을 가운데 두고 포도대장군과
단산대장군 장승이 서있는데 우측 태백산 방향 공터 위에는 조금 앙증맞은 산령각(山靈閣)과
태백천장(太白天將)을 가운데 두고 양백대장과 항락 장승이 서 있다.
흔히들 장승하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을 연상하는데 ‘포도대장군’
‘소백지장’ ‘태백지장’ 등은 생경하다.
고치령은 단순히 보부상들이 물류를 위해 넘던 고개가 아니다.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단종애사'의 슬픔을 간직한 한(恨) 많은 길이며,
또한 태백산과 소백산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고개라고 한다.
고치령 산령각(山靈閣)
영주사람들은 북쪽 영월에서 죽은 단종은 '태백산 신령이 되었다'고 믿고,
세종의 여섯째 아들로 단종복위를 꽤하다 남쪽 순흥으로 유배되어 안동에서 죽은
금성대군(錦城大君 1426~1457)은 '소백산 신령이 되었다'고 믿어왔다.
그들 조카와 삼촌 사이에는 죽어서야 만날 수 있었던, 육신은 넘을 수 없었던 고개 고치령이 있는 것이다.
산령각은 태백산 산신인 단종과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세조에 죽임을 당한 금성대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금성대군은 소백산 산신으로 화했다고 한다. 태백의 산신인 단종과 소백의 산신인 금성대군을 모셨으니,
이곳 산령각은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영험하기로 이름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소백과 태백 사이의 양백지간(兩白之間)인 고치령에 산신각을 짓고
금성대군과 단종이 영혼이 되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 줬다.
산신각에는 태백산 신령인 단종과 소백산 신령인 금성대군이 함께 모셔져 있다고 한다.
포도대장군은 20년 전부터 단산면에 포도재배를 시작하여 현재 100여 농가가 포도마을을
이루고 와인도 생산하는데 포도 농사에 대한 풍년을 기원하는 장승인 듯싶다
“원통한 새가 되어 궁궐에서 나오니(一自怨禽出帝宮)
짝 잃은 외로운 몸 깊은 산중에 있구나(孤身雙影碧山中)
밤마다 잠들려도 그럴 겨를이 없으니(暇眠夜夜眠無假)
수없이 해가 가도 끝없을 이 한이여(窮限年年恨不窮)
자규 소리 멎은 새벽 뫼엔 조각달만 밝은데(聲斷曉岑殘月白)
피눈물나는 봄 골짜기엔 낙화만 붉었구나(血淚春谷落花紅)
하늘도 귀가 먹어 슬픈 사연 못 듣는데(天聾尙未聞哀訴)
어찌하여 수심 많은 사람의 귀에만 홀로 밝게 들리는가(何柰愁人耳獨聰)”
고치령 산령각 안에는 금성대군과 단종대왕이 모셔져 있다고 하는데 잠겨있는 문을 열어보니
단종대왕만 모셔져 있다 ... 산령각 옆에 서 있는 太白大將軍은 단종을 小白大將軍 금성대군을 의미한다
금성대군은 단종의 삼촌이며 단종의 복위를 꾀한 인물이다
수양대군이 김종서, 황보인등을 죽이고 영의정 자리에 있을 때, 금성대군은 형인 수양대군의
옳지 못함을 지적하다 순흥으로 귀양을 오게 되었다...그로부터 2년 후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듣자 금성대군은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해 동지를 규합하기 시작했는데 마침 순흥부사로 부임한 이보흠도 합세하였다.
이들은 우선 병력을 모으고 군량미를 넉넉히 준비하여 힘이 생기면 영월에 있는 단종을
순흥으로 모셔온다는 계획을 세웠다...그리고 군사들을 풀어 백두대간 능선에 있는
죽령과 조령을 막고 힘을 기른 후에 한양으로 진격해 다시 단종을 왕위로 옹립하여 사무친
원한을 한꺼번에 풀어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금성대군의 몸종과 순흥부사의 머슴이 세조측에 밀고하는 바람에 거사는 실패하고 만다
잠겨있는 산령각 문을 열어보니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나오는 말을 탄 단종대왕의 진영은 있으나
금성대군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호랑이 등에 타고 있는 산신 탱화 한 점만 보일뿐이다
“太白山神과 小白山神” 이라고 쓴 위패가 보이는데 태백산신은 단종을 말하고 소백산신은 금성대군을 말한다
단종대왕의 모습
고치령 성황당 안내판
산행을 시작하다(09:25)
풍기I.C에서 고치령까지 태워준 친구와 작별을 하고 자개지맥 분기점으로 가기위해
백두대간 능선으로 오르는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주머니를 찾아보니
아뿔싸!... 핸드폰이 안보이네... 이곳은 핸드폰 통화가 잘 안되는 곳인데 겨우 통화가
연결되는데... 이게 어케 된거야... 친구의 차에 내려놓고 온 줄 알았는데 버스에 내려놓고 온 모양이다
버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청소를 하다가 발견하여 보관중이란다...다행이다
고치령 헬기장(09:35)
아이구 깜짝이야... 다행히 탐방로는 제외라네...
이정표(09:48)
자개지맥 분기점(920m:09:50)
백두대간 능선과 작별을 하고 자개지맥 분기봉으로 향한다
난 오늘 핸드폰과 지도도 없는 깜깜이 산행을 하게 되었는데 산으로님이 이곳이 분기점이란다
자개지맥 분기봉(956.2m:09:54)
자개지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나 아무런 표식도 없는 헬기장이다
나무 숲에 가려서 전망도 별로이고 하여 서둘러 좌측 능선으로 내려서면서 자개지맥의 첫 발을 내딛는다
산행 기록을 꼼꼼히 적고있는 산으로님
나뭇가지 사이로 백두대간 능선이 보인다
초반부터 계속되는 내리막길... 간간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지맥의 주봉인 자개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소백산 자락에는 벌써 겨울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낙타 등을 닮은 나무
누굴까... 무척이나 궁금하다... 길이 애매할때마다 나타나는 아무런 표식이 없는 시그널
855.7m봉(10:20)
855.7m봉에서 내려서니 봉분이 거의 보이질 않는 무명묘지 한 기가 나오고...
자개봉으로 향한다
잔나비 걸상버섯일까?... 흰목이버섯 같기도 하고...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는 자개봉 정상에 도착한다
자개봉(紫蓋峰:856.5m:10:45)
경북 영주시 단산면 옥대리와 부석면 소천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자개지맥의 주봉격인데 자개(紫蓋)는 바다의 조개껍질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개봉(紫蓋峰)은 불교에서 나온 산이름으로 “옛날 그곳 촌장들이 모여 밤늦도록 기도한 날이 있었다.
그때 백발노인이 나타나더니 ‘한밤중(子時)이 되면 그곳 산봉우리에 돌문이 열리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면 이상세계가 있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 자리에 모인 촌장들이 한밤중에 그 봉우리로 올라가 돌문 안으로 들어가서 ‘영생불로’했다”고 전해온다.
이여송이 마을 뒷산줄기를 끊었다는 전설도 있다.
소백산 자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형제봉과 국망봉... 구인사로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이 보인다
동쪽으로 바라보니 문수지맥 능선과 문수봉, 좌북쪽으로는 백두대간 옥돌봉이 구름속에 가려져 있다
바로 앞에 보이는 뾰족한 산은 부석사을 안고있는 봉황산이 보이고 바로 앞의 마을이 소천부락이다
영주시 부석면에 있는 소천리는 낙화암천이 흐르며 산지에 위치해 있는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달터, 두들마, 물구지 등이 있다. 달터는 다래 덩굴 밑에서 달이 뜨는 것을 보면
달이 띠를 두른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두들마는 마을이 뱃머리 형상이며 언덕 위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물구지는 물이 맑고, 호수처럼 생겼다고 하여 물구지라 불렀다.
자개봉 정상 삼각점(△영주 21 / 1995 복구)
오늘 산행중에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이곳에서 20여분간 휴식을 취한다
자개봉의 표식들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고 우측의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좌측으로는 임산물 재배지인듯 출입금지 팻말이 보이기 시작한다
짖궂은 맥산꾼의 낙서
독점마을 갈림길(11:05)
독도에 아주 주의해아 할 구간이다... 3주만에 만난 진권아우와 먼저 자개봉에서 내려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직진쪽으로 내려 가는데 뒤따라오던 수헌 아우님이 부른다
잠깐동안 알바를 하는데 알바를 하기 좋은 곳이다... 이 지역으로 시그널이 많이 달려있다
수헌 아우님의 얘기로는 일반산행 하는 등산객들의 시그널인듯 하다고 한다
이곳으로 내려가면 아침에 차를 태워준 친구의 운산농장이 있는 독점마을 방향이다
영주시 단산면에 있는 좌석리는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경지가
소규모로 분포하며 작은 하천이 흐르며 앉은 바위가 있으므로 좌석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좌석, 너분바우, 독점, 물방앗골, 세거리, 성골마을 등이 있다.
좌석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좌석리의 그것과 같다.
너분바우마을은 좌석 북쪽에 있는 마을로, 넓고 평평한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독점마을은 좌석 질그릇점이 있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고, 물방앗골마을은 물레방아가
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세거리마을은 앞에 세 갈림길이 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성골마을은 성이 있던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노루발풀(꽃말: 소녀의 기도)
노루가 잘 다니는 길목을 지키는 노루라는 말이 들어가는 식물이 몇 개 있는데,
노루오줌은 꽃의 뿌리에서 오줌 같은 지린내가 풍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밖에도 노루삼, 노루참나물이 있는데, 식물명에 노루가 들어간 식물들은
노루가 잘 다니는 곳에 자라는 특징이 있다.
노루발은 우리나라 전국 어느 산에나 자라는 꽃으로 봄부터 꽃망울을 달고 있지만
정작 꽃은 늦게 펴서 6~7월이 되어야 하며 한겨울에도 푸른 잎을 간직하고 있는
상록식물이라서 더욱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반그늘의 낙엽이 깔린 곳에 잘 자라는 노루발은 키는 25㎝ 내외로 작은 편이다.
잎은 넓은 타원형으로 밑동에서 뭉쳐서 나며 길이는 5~7㎝, 폭은 3~5㎝이다.
꽃은 흰색이며 길이는 지름이 1㎝가 약간 넘으며. 하나의 줄기 위에 최소 두 개에서
열두어 개 정도가 무리지어 달리는데, 모두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고 각 꽃에는 한두 개의
비늘과 같은 잎이 있다. 열매는 9~10월경에 달리는데, 흑갈색으로 다음해까지 붙어 있는 것이 독특하다.
관상용으로 이용되고 한방에서는 약재로도 사용한다.
노루발과의 상록 여러해살이풀로, 흔히 노루발풀이라고 부른다.
원산지는 우리나라이고 한국, 중국, 일본 등에 분포한다.
다시 등로는 좋아지고...
소나무와 갈참나무가 죽고 못사는 사이...
계속되는 입산금지 표식
송이버섯 채취구역이라 그런지 팻말은 계속 만나고...
첫번째 송이 움막(11:20)
송이 채취가 끝났는지 움막은 텅텅 비어있다
2개의 임도가 보이는데 지맥길은 윗쪽으로 가야한다
고속도로같은 등로는 계속되고...
잣나무 군락지도 보인다
두번째 송이움막(11:26)
너럭바위도 지난다
滿山紅葉
갈림길(11:32)
송이가 있을것만 같아서 이리저리 소나무 잎을 뒤져보지만 송이버섯은 보이지 않는다
묵묘(墓)인지 이장된 묘인지 봉분이 보이질 않는다
2번째 묵묘를 만나고...
좌측으로 넓은 임도가 보이고 맞은편엔 3번째 송이 움막이 보인다
3번째 송이움막(11:41)
507m봉(11:47)
507m봉을 지나면서부터 입산금지 팻말이 끝나고 우측으로 내려선다
507m봉을 내려서자마자 또다시 묵은 묘지가 나온다
서서히 맥길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갑자기 등로는 사라지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겨우 우측으로 내려선다
우산나물은 아직도 여름인줄 아는 모양이다
“대구북”이란 시멘트 말뚝은 무슨 뜻인지?
묘지(12:00 ~ 13:04)
亡者의 자리를 빌려 아우님들과 따끈하게 떡라면으로 거하게 1시간동안 점심을 먹는다
우 쉐프가 끓여주는 떡라면...맛이 기가 막히다
묘지에서 바라본 부석면 소천리 사문(沙文)·마을의 모습
옛날에 학문이 높은 선비 金熙紹(김희소)가 경치가 좋은 산천을 찾아다니며 글 읽기를 즐기던 바
이 동네에 있는 폭포에서 글을 읽고 폭포로 이루어진 모래밭에 글을 썼다고 하여 동명을 沙文이라
했다는 설이 있으며 또 다른 설에는 이곳에 옛날부터 사기그릇을 굽는 옹기굴이 있어서 사그랭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다시 길을 나선다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지만 등로를 이어갈 수 없어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도로쪽으로 내려선 다음에...
사문마을 고개(13:10)
저 윗쪽이 지맥길이다
어린 돼지가 젖을 빨다말고 물그러미 산꾼을 쳐다본다
지맥길은 능선위의 사과밭으로 이어지나 아직 사과 수확이
끝나지 않아 오해 받기가 싫어서 그냥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간다
모과밭과...
사과밭도 지난다
이정표(13;15)
사문마을을 사그레이 마을로 표기를 해놨다.
옛날부터 사기그릇을 굽는 옹기굴이 있어서 사그랭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들깨밭을 가로질러 능선으로 들어선다
조심해서 그냥 지나갈께요
등로에 올라서니 두릅밭이 나오고...
두릅밭을 올라서니 등로는 거의 보이질 않는다
412m봉(13;29)
봉우리 정상에 올라서니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좌측으로 내려선다
희미한 등로로 내려서니...
산초나무
초피나무과의 산초나무...추어탕이나 비린내 나는 음식에 넣어먹는 초피(경상도에서는 제피라 부른다)
초피와 산초는 많이 닮았다...잎이 어긋나는 것은 산초이고, 잎이 마주나는 것은 초피이다
초피나무는 잎 가장자리가 우들투들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시기도 산초보다 한두달 빠르다
또다른 특징은 산초는 열매를 먹고, 초피는 껍질을 갈아서 먹는다는 점이다
갈림길(13:35)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져야 하는데 우측으로는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길이 보이지 않는 등로로 조금가다가 겨우 길을 찾아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부산 멋진 사람들 시그널을 만난다
길이없는 등로를 이리저리 헤매며 내려가니... 소천리 마을이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부석면 소천리의 모습
옛날에는 牛川·소내·쇠내라고 불렀으며 鳳凰産(봉황산)밑에 위치하여 봉황산과 연유한 봉황새는 風流(풍류)를
좋아한다고 牛字(우자)를 韶字(소자)로 변경시켜 韶川(소천)이라 하였다고도 하며 또 일설에는 鄭(정) 玉(옥)
監司(감사)의 號(호)가 牛川(우천)이라서 牛川이라 하다가 韶川(소천)으로 개칭되었다고도 한다.
잡목과 아카시아 사이를 뚫고 내려선다
사과밭 가운데를 지나니 시멘트 도로가 나오는데 무너어 고개란다
무넘어 고개(13;42)
영주시 부석면 노곡리 양지마을에서 소천리 재궁골로 이어지는 농로이다
무넘어 고개를 가로질러...
길이없는 절개지로 올라선다
절개지를 힘들게 올라서니 뚜렸한 등로가 나타난다.
367m봉(13:55)
367m봉을 내려서니 무명묘지 한 기가 나오고 묘지를 지나 좌측으로 내려서니...
인삼포가 나오고 곧이어 소천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만난다
인삼포에서 바라본 소천마을의 모습
시멘트 도로(14:00)
도로 좌측으로 올랐다가 금새 내려선다
메밀밭 가운데를 지나 절개지로 올라선다
잡목에다 아카시아 나무들의 저항이 심하다
어디로 가란 말이야!... 도저히 치고 나갈수 없어서 작전상 후퇴
좌측의 옆사면으로 나간 다음에...
말불버섯 같기도 하고... 아리까리하다
메밀밭에서 등로로 치고 오르는데 바지에는 온통 도둑놈이 잔뜩 붙는다
자개지맥 등로로 복귀한다
갈림길(14:20)
희미한 등로 방향이 지맥길이나 등로가 거의 보이지 않아 좌측의 편한길로
내려선 다음에 묘지를 지나고 밭을 지난 다음에 자개지맥 원 능선으로 복귀한다
산국이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평해황공과 영양김씨 부부 묘지를 지난다
이동통신 중계탑(14:28)
중계탑 뒷쪽 사과밭이 지맥길이나 좌측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영주시 부석면 소재지의 모습
부석면은 경상북도 최북단에 위치하고 백두대간이 병풍처럼 둘러있는 산자수명한 아름다운
고장으로 전국 5대 명찰중의 하나인 부석사가 있고 유불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동쪽으로 봉화군(奉化郡) 물야면(物野面), 서쪽으로 단산면(丹山面), 남쪽으로 단산면과
봉화군 봉화읍 북쪽으로 충청북도 단양군(丹陽郡)과 강원도 영월군(寧越郡)에 접해 있다.
신라고찰 부석사는 동양최고의 목조건물을 자랑하는 무량수전을 비롯한 국보5점, 보물 6점,
도지정문화재 2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연간 100만명을 넘을 정도로 년중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부석의 명품으로는 일교차가 큰 고산지대에서 자란 영주부석 사과는 당도가 높고 수분이 많을 뿐 아니라
비타민C와 탄수화물 등 무기물이 많아 피부미용과 고혈압 조절 등에도 많은 효과가 있으며 오리농법, 활성탄
농법으로 생산한 무공해 청정쌀과 속청콩, 보계자두등 많은 농특산물이 생산되며 민박도하고 농촌체험도 할 수
있는 순수한 전원마을로서 4월에는 사과꽃따기 체험행사, 10월에는 부석사화엄축제, 영주부석사과축제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며 볼거리, 먹거리 등이 많이 준비되어 있다.
산신각(14:34)
좌측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 우회하여 오니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 능선 아래에
산신각이 있는데 자물통을 잠가놓아 안쪽으로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영주소방서 부석119 지역대 앞에는 부석에서 단산으로 넘어가는 931번 도로가 지나간다
수화고개(14:36)
영주시 단산면과 부석면을 931번 지방도가 지나느 고개 옆에 부석119 지역대가 있고
맞은편 아랫쪽으로는 부석면 소재지가 보이는데 지명의 유래는
동쪽에 수화마을이 있어 수화고개라 부르는 모양이다
고개를 가로지른 다음에 시멘트 도로를 따르다가...
임도를 버리고 우측 묘지로 오르는 도로를 따른다
이곳의 댕댕이 덩쿨은 아직도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다
이 넘도 얼마 안있으면 쭈구렁 밤탱이가 되겠지
모든게 제행무상이요 제법무아인걸 어떡하나... 순리대로 살아야지
수로가 보이고...
묘지 뒷쪽 능선으로 올라선다
지맥길로 들어선 다음에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거친 잡목과의 전쟁은 시작되고...
미치겠다
과수원을 가로 지르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비는 그냥맞고 베낭에 레인커버만 씌운다
매실농장 맨 윗쪽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내가 조금전에 지나온 자개봉에서부터 빗줄기가 몰려온다
396.3m봉 갈림길(15:12)
부산 멋진사람들과 조은산님의 시그널을 만나고...
빗줄기는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하고...
갈림길(15:22)
맥을 읽을 수가 없을 정도로 독도하기 난해한 구간이다.
이곳에서 직진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돌아오는 약간의 알바를 한다
다시 돌아와서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내려선다
칡넝쿨이 우거진 곳을 지나니 무명묘지가 하나 있다
안부(15:28)
등로에 올무들이 많이 보인다
철없는 진달래
요즘 세상사가 모든게 비정상적이니 이 넘도 인간사를 따라가는가 보다
묘지(15:38)
안부에서 올라서니...
또다른 묘지가 나오고 묘지를 지나자마자...
갈림길(15:40)
직진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져 희미한 등로를 따른다
371m봉(15:45)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등장하는 님을 그리는 시가 써있는 표찰은 떨어진 채 나딩굴고 있다.
안부(15:52)
공터(15:57)
내년쯤에 걸어볼 생각인 문수지맥 능선인 조운산과 학가산의 모습
천마산(天馬山:385.7m:16:10)
영주시 부석면 노곡리와 보계리 경계 능선에 있는 천마산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무인감시 카메라,
봉분이 커다란 무명묘지와 3등삼각점(△영주 302)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전망은 아주 좋은 곳이다
뒷쪽으로 돌아보니 오늘 산행을 시작한 고치령과 자개봉...단산 저수지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소백산
자락이 보이며 동남쪽으론 봉화군 물야면 들판과 문수지맥 능선이 보인다
천마산 정상 3등 삼각점(△영주 302)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이곳에 있지 않은것 같은데 누가 이곳에 옮겨 놓은 모양이다
천마산 정상에서 바라본 자개봉
산불감시엔 무인 카메라와 산불감시초소(사람)가 있는데 어느것이 더 정확할까
인간들이 자꾸만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기는게 안타깝기만 하다
천마산 정상에서 인증샷
천마산 정상에서 바라본 영주시 단산면(丹山面)소재지의 모습
단산이란 땅 이름은 본래 고려 말의 단양에서 시작되었다.
고구려 때부터 붙여졌던 적산이, 공민왕 때에 이르러 단산으로 고쳐졌다.
그러므로 적산(赤山)이 곧 단산(丹山)이며, 둘은 다같이 ‘붉은 뫼’의 뜻을 안는 공통점이 있다.
오늘의 단양이 어간(語幹)에서 ‘붉다는 의미’를 이어가고 있지만, 뫼까지 포함된 보다
완전한 형태의 지명은 이웃한 죽령을 넘어, 경북의 첫째 고을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곳은 행정구역상 경북에 속해 있더라도 소백산맥으로 이어지는 형제봉(兄弟峰),
국망봉(國望峰)을 통해서 충북의 단양과 연결되고 있다. 땅의 접속은 지질 구조의 동질성을
의미하므로, 영풍군(지금의 영주)의 단산도 석회암의 분포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석회암이 탁월한 지역은 붉은 색을 띠는 토양이 흔하므로, 산 자체가 붉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마치령(馬峙嶺)을 사이에 두고, 남류하는 죽계천변(竹溪川邊)에는 철분의 산화로서 ‘붉은골짜기’의
의미를 안은 단곡(丹谷)리가 있는데 이는 석회암의 붉은 색과 서로 연계되는 땅 이름이다.
단곡리는 지형의 고도차에 따라 상단곡(上丹谷)과 하단곡(下丹谷)으로 분화되고, 다리의 이름에도
단곡이 등장하고 있지만 근원적 의미는 붉은 데 있다.
천마산에서 20여분 동안 휴식을 취한 다음 보계실 도로 방향으로 내려선다
조금을 내려가니 나무 계단 갈림길이 나오나 지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지도엔 인삼포로 나오는 곳인데 지금은 인삼 수확이 끝나고 하수오와 함께 이름모를 작물이 심어져 있다
안부(16:38)
부엉이재(16:52)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고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묘지를 지나...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니...
급경사의 절개지가 나오고 15번 군도가 지나가는 보계실고개가 보인다.
비가 오고 미끄러우니 아우님들 조심하소
보계실(寶溪室) 고개(17:08)
영주시 단산면에서 봉화군 물야면으로 연결하는 15번 군도가 지나가는 고개로
지명은 좌측 아래에 있는 보계리에서 따온듯 하다
영주시 부석면에 속해있는 보계실 마을은 원래 보계암(寶溪庵)에서 연유된 지명이라고 하며,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정토(極樂淨土) 즉 고뇌(苦惱) 없이 지극히 평안하고 자유로운 땅이라는 뜻이다.
보계 마을은 천마산(天馬山)에서 발원한 물과 땅에서 솟는 물이 합류하여 근심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천지신명이 내려준 ‘보배로운 땅’이라 하여 ‘보계’라 했다는 설이 있고, 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고 있어 마치 방 안 같다 하여 보계실(寶溪室)이라 했다고도 한다
‘한국 지명유래 고찰’에 보면 ‘실(室)자가 든 마을은 고려 때 형성된 오래된 마을이라고 하며,
이름난 문한(文翰, 글 잘 하는 사람)이 살든 마을’이라고 했다. 뿔바우(角岩, 珏岩)는 마을 입구에
짐승의 뿔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 ‘뿔바우’라 부르다가 각암(角岩)이라는 지명을 얻었다.
광창(廣倉)은 넓은 들(廣)과 곡식 창고(倉)의 뜻을 따 ‘광창’이라 했다고 한다.
재궁마는 이곳에 선성김씨 재사(齋舍)가 있어 ‘재궁마’라고 부른다 (영주시민신문 자료인용)
원래는 아침에 태워준 친구넘이 날머리에서 영주까지 태워주기로 했는데 천마산 내려오면서부터
계속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내가 아침에 촌넘 취급을 하면서 너무 甲질을 했나?
비는 계속 내리고 마냥 서 있을 수 없어서 지나가는 차량을 상대로 히치를 하는데 2번만에
1톤 트럭이 세워주는 바람에 적재암에 올라타서 단산면소재지로 향한다
우리를 내려주고 가는 트럭...세세생생 복 받을깁니다
단산면 버스 정류장(17:13)
우리를 태워준 트럭 아저씨는 인사도 끝나기전에 가버리고 정류장에 도착하니
비를 맞은 탓인지 춥기 시작한다... 약국이 아닌 약방에서 박카스 하나를 사서
먹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오기에 탈려고하니 풍기를 경유하여 가는
영주행 버스라 포기하고 10분을 더 기다린 다음에 영주행 버스에 오른다
부석에서 출발한 버스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고 우리 넷이만 전세내어 가다가
영주 시내에 거의 도착한 다음에야 승객이 한명 탄다...빗줄기는 자꾸만 굵어지고...
단산 버스정류장 시간표
영주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청소 아줌마를 만나 잃어버린 핸드폰을 되찾은
다음에 영주역으로 가는길에 식당에 들려 착한 쥔장 아줌마를 만나 온수가 나오는
샤워장에서 깔끔하게 샤워를 하고 의관정제 한 다음에 버섯전골에다 안동소주와
맥주를 말아서 배부르게 먹고는 열차를 타러 영주역으로 향한다
영주역(19:35)
식당에서 택시를 타고 영주역에 도착하여 19시 57분 열차를 타고 청량리역으로 향한다
혼자 다니기는 그리 쉽지않은 구간인데 영주 촌넘과 후배들의 도움으로 편히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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