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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서천(자개)지맥(終)

서천(자개)지맥 제3구간 - 마근대미 고개에서 무섬교 합수점까지

by 범여(梵如) 2017. 11. 27.


☞ 산행일시: 2017년 11월 26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가끔 흐림

산행거리: 도상거리 23.8km  / 10시간 소요

☞ 참석인원: 산으로. 수헌님과 함께

☞ 산행코스: 마근대미 고개-과수원-무명봉-294봉-272봉-임도삼거리-234봉-231.4봉

                 단운이 고개-234봉-시멘트 도로-영동선 철로-목장-단운마을 배수장

                 36번 국도-안부- 무명봉-삽재-이동통신탑-에닉스 공장앞-공터-246.7봉

                 솔고개-236봉-안부-238봉-흑석고개-이산치안센터 갈림길-송천교

                 박봉산갈림길-명학봉-임도-NO10송전탑-무명봉-임도-안부-배해삼거리

                이동통신탑-266봉-무명봉1-무명봉2-무명봉3-무명봉-4무명봉5-임도

                272.2봉-274봉-268봉-임도삼거리-선우에너지(주)-예천박씨 영모당

                임도삼거리-배수장-269봉-안부-무명봉-운문1리 삼거리-양갈배기고개

                갈림길-262봉-NO222송전탑-271봉-안부-288봉-큰우무실 고개-과수원

                가선대부 묘지-안부-288.7봉-새배이 고개-갈림길-안부-242.9봉-무명봉

                임도삼거리-205.7봉-녹동고개-배수장-갈림길-187.4봉-임도삼거리-무명봉

                중앙선 철길-무섬교합수점

소 재 지: 경북 영주시 조와동, 상망동, 이산면, 평은면, 문수면 / 봉화군 봉화읍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탓인지 잠에서 깨어나니 새벽 3시경이다

그렇다고 후배들이 곤히 잠들어 있는데 불을 켤 수가 없어 눈만 말뚱거리고 있는데

이게 뭐야...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참으로 난감하다

잠을 자느둥 마는둥 5시쯤에 후배들도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산행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나와 수헌아우님은 빗길에 청승맞게 산행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는 편이고, 산으로 아우님은 비를 맞으면서도 산행을 하자는 편이다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검색하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사이에 빗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6시 30분쯤 여관는 문을 나서니 비는 그치고 근처 김밥집에서 올갱이국에 밥을 말아 먹고는 

택시를 타고 산행 들머리인 마근대미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수헌아우님 트랙인용)

프린스 모텔(22:00~06:30)

어제 투숙했던 프린스 모텔... 조그만 모텔 치고는 생각보다 깔끔하다

남자 쥔장의 마음 씀씀이도 고맙고 3명이 잔다고하니 45,000원을 달라고 하는데

걸어 다니는 산꾼이 뭔 돈이 있다고 방값을 비싸게 부르냐고 하니까 방값도 깍아주고

이불과 타월도 넉넉하게 주고 핸드폰 충전기에다 불도 뜨끈뜨끈하게 넣어 주는 바람에

개운하게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여관을 나온다

마근대미 고개(07:30)

영주시내 김밥집에서 든든하게 아침을 먹은 다음 택시를 타고 마근대미 고개를 향한다(택시비 7,000원)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초반부터 잡목의 저항에 부딪힌다

능선에 올라 숨 한번 크게 쉬고 좌측 능선으로 꺽어진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좌측으로 사과밭이 보이고...

과수원(07:37)

무명봉(07:39)

이곳은 이 지역 사람들의 조깅 코스인지 등로는 아주 좋다

새벽에 비가 온 탓인지 좌측으로 보이는 이름모를 산이 동양화를 연상케 할 만큼 몽환적 분위기이다

산책객들의 쉼터인 벤취도 보이고...

294봉(07:43)

무명봉에서 급하게 좌측으로 내려오니...

272봉(04:46)

272봉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오니 좌측에 묘지가 보인다

시멘트 임도가 보이고 이정표에 단운봉 둘레길 표지판이 서 있다

임도 삼거리(07:51)

임도삼거리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서니우측으로 묘지로 가는 길이 있고 지맥길은 직진이다

잡목이 무성한 낙엽길을 걷는다

234봉(07:58)

234봉에서 심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고...

낮은 포복으로...

구름사이로 해가 솟아 오른다...오늘 이곳은 09시부터 1~4mm 비가 온다고 했는데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231.4봉(08:07)

등로가 보이질 않는 곳으로 내려서니 시멘트 도로가 보인다

단운이 고개(雲峴:08:15)

영주시 상망동에 있는 고개로 고개 우측에 있는 단운() 마을은 다니·단이 또는 단잇골이라고도 하는데,

신선이 이곳에 터를 잡을 때, 붉은구 름을 타고 내려와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도로 우측의 농가 주택길로 올라간다

농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선다

234봉(08:25)

234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신경수 선생님의 시그널이 보이는데 여긴 뭔 단맥인지?

등로 좌측으로는 월성이씨 할머니 묘가 보인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시멘트 도로가 앞을 가로 막는다

시멘트 도로(08:28)

시멘트 도로 윗쪽을 올라서니 영동선 철도가 지맥길을 끊어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시멘트 와서 우회도로를 택한다

영동선 철로(08:35)

경상북도 영주와 강원도 강릉 사이에 부설된 산업철도로 본래 동해북부선·

철암선(鐵巖線)·영암선(榮巖線)·삼척선(三陟線) 등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1963년 5월에 이들 철도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영동선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총연장은 193.6km이다.

철길을 가로질러 절개지로 올라간다

힘들게 올라서니...

농로가 나오고 이동통신탑이 서 있는데 지맥길은  축사가 보이는 뒷쪽이나

요즘 여러가지 가축들의 질병으로 인해 축사 뒷쪽으로 오르기가 뭣해서 직진한다

축사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축사 뒷쪽으로 향한다

산도 아닌곳이 왜 다니지?

축사를 지나 대파를 심어놓은  밭고랑 사이를 가로 지른다

원래 지맥길로 복귀를 한다

길은 좋다...어제 산행에 비하면 양반이다

단운마을 배수장(08:45)

밭 가장자리를 지나서 끄트머리에 도착하니 맥길은 끊기고 영주에서 봉화로 이어지는 신36번 국도가 보인다

맥길을 짤라먹은 신36번 국도

영주에서 봉화, 울진으로 이어지는 36번 국도에 차량 소통이 너무 많아

목숨을 담보로 한 무단횡단이 불가능 할듯하여 우측 묘지로 내려서

지하통로로 향하는데 우측에 거릿단운마을이 보인다


이곳은 영주시 상망동 거리마() 마을인데 조와동 서쪽에 있는 마을로서

거릿말이라고도 하며,이곳에는 큰 바위와 돌들이 많아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길도

만들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옥토로 바뀌었으나 아직도 많은 돌이 남아 있다

36번 국도 지하통로(08:52)

지하통로를 지나자마자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수확이 끝난 도라지밭이 나오고 이곳에서 먹을만한 도라지를 꽤많이 챙긴다

능선 좌측에는 36번 국도가 보이고 이곳도 잡목의 저항이 꽤나 심하다

무명봉에 오른 다음에 우측으로 꺽어진다

안부(09:04)

무명봉(09:07)

이곳도 맥길은 짤려 버렸고 하는 수 없이 절개지로 내려선다

저 앞에 보이는 능선이 지맥길인데 절개지가 높아서 오를 수가 없다

36번 구도로를 따라서 삽재로 향한다

어제 이곳까지 산행을 하려고 했는데 너무 늦어 오지 못하는 바람에 오늘 산행이 상당히 부담스럽다

뒤돌아 본 36번 구도로의 모습

삽재 버스 정류장(09:15)

삽재(09:16)

영주시 상망동과 봉화군 봉화읍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36번 구도로가 지나간다

지명의 유래는 예전에 이 고개가 상당히 높아서 민초들이 넘기가 힘든 곳이었는데

이곳에 민초들의 재물을 노리는 도둑들이 엄청 많았다고 하며 재가 높아서 넘기가

힘이 드는 고개라고해서 삽재라 불렀다고 한다

삽재 정상에 도착하니 맞은편 봉화방향에는 황씨 영주.봉화 종친회관이 보이고 연화정이란 식당도 있다

영주쪽은 거북표 씽크대 공장과 S.K주유소가 있는데 종친회관을 바라보면서 우측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로 들어서니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절개지 방향이 지맥길이다

이동통신탑 우측으로 올라서니...

철조망이 나오고 철조망을 끼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동래정공 묘지가 나오는데 뫳돼지 넘이 어른 밥상에 똥을 싸놨다...에이 나쁜넘

동래 정공 묘지에서 능선으로 올라 우측으로 꺽어지니 에닉스란 공장이

맥길을 짤라먹는 바람에 다시 우측으로 내려오니 묘지들이 보인다

반남반씨 묘지를 지나 마을 도로로 내려온다

삽재에서 마을과 공장으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원칙을 따르다가 소득도 없이 개고생이다

후답자들은 삽재에서 능선으로 오르지 말고 마을 도로를 따라서 이곳으로 오시길 바란다

에닉스 공장 앞(09:28)

농약과 비료를 생산하는 에닉스 공장 정문 직전에 우측 능선으로 들어선다

능선 사면길로 올라선 다음에...

지맥길로 복귀를 하고...

좌측으로 꺽어져 올라서니...

넓은 공터(09:35)

등로 아랫쪽에 묘지가 보이고...

휀스 작업중인데를 지나고...

우측 아랫쪽에 엄청난 규모의 양계단지가 보인다

246.7봉(09:40)

등로가 난해하다... 우측으로 비교적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맥길은 좌측이고

철조망 작업중인 곳을 넘어서 등로가 전혀 보이질 않는 좌측으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조금을 더 내려서니 넓은 밭이 나오는데 지형도상에는 이곳이 솔고개라고 표기가 되어있다

밭을 가로지른 다음에 235봉이 보이고 능선으로 오르기 직전에 좌측 농로로 내려선다

솔고개(09:53)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와 원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예전에 소나무가 많아 솔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에 차량 통행은 거의 없고 좌측 아랫쪽인 석포리쪽엔 솔고개 마을이 보이고

도로가에는 솔고개 안나판이 서 있는데 하고개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안내판을 보면 조선 개국 밑그림을 그린 삼봉 정도전과 관련이 있는 고개인듯 싶다

정도전의 영정

정도전의 고향은 ‘선비의 고장’ 영주로 <삼판서고택>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옛집이 복원되어 있다.

고려조에 세 분의 판서가 태어난 곳이라 하여 붙은 별칭이다.「학자의 고향」에는

정도전이 이 고택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고 영주에서도 그렇게 소개하고 있지만,

정도전은 외가인 충북 단양에서 태어났다.


삼봉이라는 호에 대해서도 「학자의 고향」은 정도전이 삼각산에 우거를 짓고 살 때

들이 붙여주었다 했지만,정설은 단양8경 중 으뜸인 도담삼봉에서 따온 것이다.

형부상서(법무부장관) 정운경의 3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정도전이 역사의 장에 발을

들여놓은 건 18세 때였고, 정도전이 개경으로 상경하여 목은 이색의 문하에 들어간 것이다.

이색은 원나라에서 신학문인 성리학을 도입하여 조선 건국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해

당대 제일의 석학이었는데 이색의 문하에는 정도전보다 다섯 살 위인 정몽주를 비롯하

쟁쟁한 소장 학자들이 열공 중이었다.


이색과 정도전은 기울어가는 고려를 일으켜 세우려는 충정은 같았으되

방법론에서 길달리했으니,이색은 교육을 통해 훌륭한 인재를 길러 국기를 바로

세우려 했고 정도전은 제도를 바꿔 나라의 틀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고자 했다.

 

정도전은 1363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이내 부모상을 당해

사직하고 시살이에 들어갔다.

1370년 정도전이 성균관 박사로 복직했을 때, 나라는 이미 기울어 브레이크가

듣지 않고 노국공주를 잃은 상실감으로 공민왕이 타락의 길을 걷다가 측근에게

암살당한 뒤 나라는 권신들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대륙에서는 명나라가 건국되어 고려의 상국 원나라를 북방으로 내몰고 있었다.

이러한 국제적 환경이 고려의 정객들을 기성 세력집단인 친원파와 신진 친명파로 갈라 놓았고,

신흥세력의 중심인물인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급격하게 권력의 판도가 뒤뀌게 된다.

이 와중에서 원나라 사신 영접령을 받은 정도전은 원나라 사신의 목을 베자고 주장했다가 유배 길에 올랐다.

유배지 나주에서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목격한 정도전은 민본사상을 깊이 새기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무능한 벼슬아치일수록 부패가 심하고 백성들에게는 가혹하다.

정도전은 당대 권문세가들의 비리와 위선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글을 계속 써나갔다.

솔고개 안내판

불혹을 넘긴 1383년, 정도전은 정몽주의 주선으로 함길도에 있는 이성계를 찾아갔다.

수차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성계와 정도전은 서로의 그릇을 알아보고 단박에 의기상통했다.

1388년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과 함께 최영을 제거하고 군권을 장악하면서 단번에 저울추가 이성계에게로 기울었다.

정도전은 이성계 진영의 중심에서 전제(田制를 비롯한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역성(易姓) 혁명의 핵심은 바로 전제개혁이었다.

이는 권세가들이 과다하게 차지하고 있던 토지를 몰수하여 국유화한 뒤 농민들에게

작권주는 제도로서 조선 개국 1년 전인 1391년 과전법으로 완성되었다.

온건한 합리주의자 정몽주는 정도전이 기득권층의 토지대장을 불사르는 등 개혁이 거칠어지자 차츰 소원해졌다.

1392년 7월, 마침내 이성계가 왕좌에 올라 국호를 조선으로 개칭하면서 정도전의 진면목이 찬연하게 드러난다.


첫째는 「조선경국전」 찬술이었다.「조선경국전」은 왕실과 나라의 법과 제도와 운용

방법을 상술한 대전으로 조선 개국의 초석을 쌓았고 이걸 현대적 시각으로 해석하자면

정도전 혼자서 헌법 형법 민법 정부조직법 공무원법 등 모든 법령을 다 만든 것이다.


둘째는 수도 건설이었는데 새나라 조선이 고려 기득권층의 근거지인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는

과정에서 정도왕궁과 성곽을 설계하고 직접 공사를 총 지휘하여 9개월 만에 경복궁을, 49일

4대문․4소문을 포함한 성곽을 완공했다.


셋째는 제도 정비였다...정도전은 조정의 직제를 정하고 인재를 등용․배치하여 나라를 경영하는

역할을 한 치 어그러짐 없이 수행해낸 것이다. 정도전은 민본사상을 발현하여 양반․상민을 가리지

고 고루 등용하자는 주장도 펼쳤지만 성사되지는 못했다.

새나라 건국이 마무리에 접어들 즈음 정도전 앞에 강력한 적수가 나타났다.

조선 개국에 이성계보다 더 큰 공을 세운 이성계의 5남 이방원이었다.

고려말 유수한 권력자들이 과다한 경지를 보유한채 사병을 거느리고 왕권에 맞서고 있었는데,

조선 건국 후에도 이방원을 포함한 기득권층은 치외법권에서 막강한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다.


태조 7년(1398) 음력 8월 26일 밤, 한 무리의 무장괴한들이 송현방에 있는 남은의 첩실

집으몰려들었다.이방원이 이끄는 괴한들은 한창 술판을 벌이고 있던 정도전, 남은,

심효생 이직 등을 차례로 살해한 다음에 모두가 열한살 짜리 강빈 소생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는 데 찬동한 인물들이었다.이로써 백성을 떠받들며 인의로 나라를 다스리려 했던

도전의 이상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며, 이방원은 세자인 방석을 폐하여 귀양길

에 살해하고 방석의 동복형인 방번도 살해했다.제1차 왕자의 난이다.

이 쿠데타로 조선의 모든 권력은 일시에 이방원에게 쏠리게 되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한결같이 정도전을 편협하고 옹졸한 인간으로 그리고 있다.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는 봉화 정씨 90여 호가 사는 집성촌이 있으며 잔학한 이방원도 정도전의

공을 인정하여 그 자손들은 해하지 않았으니 정도전의 장남세종 때 형조판서를 지내기도 했다.

그 후손들이 은산리에 선조인 정도전의 사당을 모시고 기념관을 지어놓았다.

이 기념관에는 고종의 교지가 보관되어 있는데, 교지는 역적 정도전을 복권한다는 어명담고 있다.

고종 2년(1865)에 내려진 교지이니 살해당한 지 무려 467년 만에 조선왕실로부터 공식적으로 용서를 받은 것이다.

솔고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서니 솔잎으로 덮인 묘지 한기가 보인다

236봉(09:58)

236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0:02)

238봉(10:05)

231봉(10:07)

묘지가 나오면서 넓은 임도가 보인다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내려간다

임도삼거리(10:10)

임도 삼거리에서 능선에 올라서니 등로 가운데 지적도근점이 낙엽속에 숨어있고...

간벌한 무명봉에서 올라서 좌측으로 꺽어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묘지를 지나니...

등로 사이로 공단 조성지인듯한 넓은 공터가 보인다

등로 좌측 아랫쪽엔 처사 단양우공 묘지가 있다

무명봉(10:20)

공깃돌처럼 생긴 바위를 지나니 이정표가 나오고 약수봉이란 표시가 보이는데 오늘

산행중에 지형도상에는 산 지명이 있는 봉우리가 하나도 없는데 약수봉이라니...

약수봉(藥水峰:10:25)

지형도상이나 영진 1/50,000의 지도에도 없는 봉우리이라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이곳부터는 영주시 이산면에서 조성한 돗밤실 둘레길이란다

돗밤실 둘레길이란 이산면사무소에서 시작하여 5.6km에 이르는 거리에 2시간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돗밤실 둘레길의 표지판

돗밤실(栗谷) 은 이산면 원리에 있는 마을로 조선세종때 안동 권씨가 어(御)와실(室)에서

이주하였으며 당시 밤나무가 많고 밤이 많이 생산되었다하여 율곡(栗谷)이라고 한다


돗밤실의 유래는 옛날부터 이곳에 졸참나무가 많아서 굴밤(돼지밤)은 돼지밥이라고 하는데

돼지의 다른 옛말인 도(돗)와 밤마을이 합성되어 돗밤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흑석사 갈림길이 있는 이정표에서 직진 능선으로 올라선다

271봉(10:30)

이동통신탑이 있는 271봉에서 급하게 꺽어져 내려와 돗밤실 둘레길을 다시 만난다

흑석사 갈림길(10:32)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로 신라 때 의상대사(湘大師:625∼702)이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이전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으며 이후 사세()가 급격하게 기울었고,

1799년(정조 23)에 편찬한《범우고()》에는 폐사되었다는 기록이 나오며 이후 1945년

초암()이 중건하였으며, 1950년에는 정암산 법천사()에 있던 아미타불 좌상을

이곳으로 옮겨왔으며 유물로는 아미타불 좌상과 복장유물, 석조여래좌상이 있는데 이 중

법천사에서 옮겨온 아미타불 좌상은 효령대군이 왕실에 부탁하여 만든 것으로,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목조불상으로 손꼽힌다.


이 불상 안에서 금동 사리함과 사리 등의 복장유물이 나왔고, 보물 제681호로 지정된 흑석사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때인 9세기 유물로 불상과 광배 .대좌가 분리된 채 놓여 있다.

흑석사 갈림길에서 직진을 한 다음 능선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우측에는 잘 관리된 달성서씨  묘지가 보인다

흑석고개(黑石峴:10:35)

영주시 이산면 원리에서 석포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10번 군도가 지나가고  고개

우측에 돗밤실 둘레길을 조성하면서 넓은 공터에 흑석쉼터와  조경을 멋드러지게 해놨다

흑석고개의 지명은  고개 아래에 있는 석포리 흑석마을에서 따왔는데 동리입구에

검은바위가 있어서 흑석(黑石)이라고 불렀다 한다

돗밤실 둘레길 안내판

흑석쉼터를 지나...

도로 우측의 등로로 들어선다

철딱서니 없기로서니...

본격적인 지맥 등로로 들어선다

돗밤실 둘레길과 자개지맥길이 겹쳐지는데 등로 좌측에 묘지2기가 보인다

임도를 따라서 걷는데 등로 윗쪽이 제비봉이라는데 그냥 패~스...지형도에는 없는 봉우리이다

엄청나게 큰 봉분이 있는 묘지를 지나니...

이산치안센터 갈림길(10:47)

여러 갈래의 등로중에 가운데를 택한다

조금전에 지나온 봉우리가 제비봉이란 걸 여기와서 알았다

송천교(松川橋:10:48)

출렁다리가 있는데 송천교란다

박봉산 갈림길(10:51)

지맥길에서 약간 떨어진 있는 박봉산...족보가 있는 산이지만 갈 길이 멀어서 패스한다

영주시 이산면 용상리에 있는 산으로 산봉우리가 구슬처럼 묘하게 생기고 금이 났다고

하여 박봉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서 돗밤실 둘레길과 작별을 하고 좌측의 험한길로 들어서는데 명학봉이란 표지판이 보인다

명학봉(278.7m:鳴鶴峰:10:53)

이산면에서 돗밤실 둘레길을 만들면서 명학봉이라 붙였건만 자료가 없어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고 다만 추측건데 한문으로 풀이하면 학이 울었던 봉우리라 생각할 수가 있겠다

지형도상에는 278.7봉으로 기록되어 있다

명학봉 정상의 모습

등로는 생각보다 좋다

임도(10:58)

시멘트 임도를 가로질러 넓은 등로로 올라서는데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만든 길이다

NO10 송전탑(11:01)


무명봉(11:03)

y자 등로가 나오고 지맥길을 우측으로 이어진다

약간 까칠한 등로가 나오지만 어제에 비해만 누워서 떡먹기다

관리가 안된 유실수 농장에서 좌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맞은편에는 공장부지나 축사를 조성하려는지 마구 파헤쳐놨다

임도(11:12)

임도를 가로질러 절개지로 올라선다

좌측으로는 부지가 조성중이다

부지 조성지 맨 윗쪽으로 올라선다

뒤돌아 본 부지조성지의 모습

우측으로 꺽어져 묘지로 내려선다

안부(11:18)

등로 좌측으로 마을과 도로가 보이고 지맥 능선과 도로가 나란히 가는 형국이다

선비의 고장답게 묘지들을 참으로 많이 만난다

묘지를 지나 능선에서 지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다시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 다음에...

이곳에는 간벌한 나무들이 마구 버려져 있어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등로에서 바라본 배해 마을의 모습

영주시 이산면 용상리에 있는 배해(背海)마을은 약1500년경 최임수라는 선비가

임진왜란을 피해이 마을에서 처음으로 정착하였으며 마을의 지세가 높은편으로 동에

내성천, 서에 서천이 흘러 동서로 물을 안고 떠있는 배와 같다하여 배해라고 부른다

까칠한 등로를 따라서 걸어가는데...

묘지가 나오고...

배해삼거리로 내려선다

배해마을 버스정류장도 보이고...

용상리(배해)삼거리(11:32)

영주시 이산면 용상리(龍上里)는 내성천이 마을을 따라 남북으로 흐르며 자연마을로는

배해, 어우실, 세배미 등이 있으며 배해는 지세가 높은 편으로 동에 내성천이, 서에 서천이

흘러 동서로 물을 안고 떠있는 배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우실은 임금님이 하룻밤을 머무르고 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세배미는 마을

앞에 논 세배미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상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면 이곳이 선비의 고장답게 고택들이 많은 모양이다

농가앞 능선으로 올라선다

절개지로 올라서니 등로는 사라지고...

이동통신탑(11:37)

마을에서 올라오는 농로와 만나서 우측으로...

넓은 농로를 따르다가 생강을 수확한 빈 밭에서 점심 밥상을 펼친다

점심시간(11:40~12:30)

점심식사 후 깔끔하게 뒷정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서려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엄청나게 고민을 하는데 조금 지나니 빗방울이 그친다

능선에 올랐다가  우측으로 내려서니 묘지가 보이고...

준.희 선생님의 흔적은 아닌듯 싶고... 

266봉(12:42)

좌측의 뚜렸한 임도를 따른다

무명봉(12:46)

밭 가운데를 가로 질러서 간다

다시 임도로 들어선 다음에...

평산신씨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서 우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12:50)

등로 좌측 아랫쪽엔 건재상이 보이고 낮으막한 지맥길이 끊어질 듯 하면서도 이어지고

좌.우측은 밭이 아니면 축사가 즐비한데 이어지는 걸 보면 선답자들의 선견지명이 존경스럽다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살짝 꺽어지는데...

출입금지 팻말이 간간히 보이고...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무명봉(12:55)

발걸음이 빨라지고...

무명봉(13:00)

좌측으로 내려서니 밭이 보이고...

기독교인 무덤이 보인다

밭 가장자리를 지나 다시 임도로 들어선다

무명봉(13:05)

등로 좌측에는 감나무밭이 보인다

임도(13:10)

임도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임도 우측에는 혜민원 주사를 지낸 강릉유공의 묘지가 보인다

혜민원(惠民院)은 1901년에 설치되었던 구휼기관(救恤機關)으로 왕명에 의하여

흉년에는 기근에 빠진 사람을 돕고, 평상시에는 홀아비·과부·고아와 자식이 없는

늙은이 등 무의탁자를 구호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간부직원으로는 3인의 총재를 두었는데, 내부대신과 탁지부대신이 겸직하였고,

나머지 1인은 실직(實職)이 임명되어, 원무를 전관하며 소속관리를 지휘, 감독하였으며,

업무는 2인의 겸직총재와 협동하여 처리하였다.

반사경이 있는 곳에서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좌측 임도로 들어선다

벌목지로 올라서니...

272,2봉(13:20)

272,2봉 정상 삼각점(△414복구 / 건설부 74.11)

백두사랑 산악회에서 붙혀논 표지기

뚜렸한 우측 능선을 버리고 직진으로 향한다

274봉(13:26)

살짝 우측으로 꺽어지니...

또 다시 묘지

임도를 따르다가...

또 다시 산으로 들어선다

268봉(13:31)

등로 좌측엔 가족묘가 보이고...

임도 삼거리(13:33)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다

여유로운 임도길

기독교인 묘지

컨테이너 하우스를 지난다

선우에너지(13:42)

태양광 발전을 하는 선우에너지... 엄청난 규모이다


예천박씨 영모당(13:47)

농장과 농가 주택을 지나고...

임도 삼거리(13:50)

약 1.8km의 임도를 따라서 오다가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잡목의 저항이 시작된다

묘지를 지나 내려서니...

안부로 내려섰다가 배수장이 있는 임도로 올라선다

배수장(13:57)

이곳도 잡목의 저항이 만만찮다

269봉(14:00)

함안조공과 부인 진주강씨 묘지를 지난다

안부(14:01)

무명봉(14:03)

갈참나무 숲을 지나...

능선을 따라서 내려서니 5번 국도가 지맥길을 끊어놔 버렸다

등로 우측 아래에 천주교인 묘지가 있는데 부인이 둘이다..생전에 女福이 많은 분이신 모양이다

지맥길을 끊어버린 5번국도

하는 수 없이 좌측 능선을 타고서 내려선다

5번 구국도로 내려선다

5번국도 영주쪽의 모습

운문1리 삼거리(14:10)

영주시 이산면 운문1리 삼거리에 내려서는데 버스 정류장이 있고 돌트미 마을이 보인다

돌트미 마을은 옛날 이곳에는 돌이 많으며 돌사이에 틈이많다 하여 붙혀진 지명이란다 

운문1리 버스 정류장의 모습

5번국도 지하차도(14:12)

5번국도 대구,안동방면의 모습

굴다리를 지나 축사가 있는 마을로 들어서는데 개쉬끼들이 산꾼들을 보고 지랄발광이다

마을을 지나니 양갈배기 고개가 나온다

양갈배기 고개(14:17)

영주시 이산면 운문리와 문수면 만방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에 길이 2개가 있어서

양갈배기라고 불렀다고 하며 이곳에서 이산면과 작별을 하고 본격적인 문수면으로 들어선다

우측의 아스팔트 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임도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임도를 따라 가다가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묘지 한 기가 보이고...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능선을 따라 가다가 갈림길을 만난다

갈림길(14:28)

우측으로 꺽어지는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직진의 희미한 등로 들어선다 

좌측으로 축사...그 너머로 문수지맥 능선이 아련히 보인다

아카시아 나무들의 저항이 심하다

262봉(14:32)

NO222 송전탑(14:35)

271봉(14:39)

묘지가 나오고...

허들 경기하듯이 넘어진 나무를 피해 가면서 걷는다

안부(14:44)

잡목지대를 반원을 그리듯 빙돌아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칡넝쿨을 뒤집어 쓴 나무는 결국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死해 버렸다

능선에 올라서니...

우측 능선 아랫쪽으로는 기독교 공동묘지가 보인다

288봉(14:55)

우측 능선 아래에는 기독교인 공동묘지가 있고 좌측 양지 바른 곳에는 처사

인동장공과 열녀 안동김씨 묘지가 보이는데 이곳이 자개(서천)지맥의 논란이 되는 곳이다

난 이번 산행에 몸만 따라 왔는데 지맥길에 열공중인 두 아우가 이곳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묘지에서 지도와 트랙을 검토하면서 난상토론을 벌이는 산으로, 수헌아우님

자개(서천)지맥의 끝을 향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곳을 지나 종릉고개를 거쳐 유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서 무섬교로 향하는데

대부분의 산꾼...아니 거의 다가 이 코스를 따라서 자개지맥을 마무리 하는 코스

우리는 대부분의 선답자들이 걸은 유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아닌 합수점에 충실한

187.4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르기로 하고 묘지 아랫쪽으로 내려선다 

서천지맥(대한산경표)/자개지맥(신산경표)은 백두대간 고치령 동남쪽 1.1km 지점에서 분기해서 서천의

물줄기를 따라 남쪽으로 흘러내려 서천이 내성천에 합수되는 무섬교 앞까지 이르는 산줄기이다.

(수헌아우 자료인용)


기존의 대다수 산꾼들이 걸었던 지맥길은  남색 표시이고 범여가 걸었던 트랙은 빨간색이다

맥길에 충실하기 위해 남들이 가지 않은 등로를 향하는데 어쩌면 개척자의 길인지도 몰랐다

그 와중에 이 길을 간 산꾼의 흔적이 보이는데 대구의 비실이부부, 나무와 선녀의 시그널을 만난다

288봉에서 20여분간의 난상토론을 끝내고 묘지로 내려선다

묘지로 내려서니 밭이 나오고 밭 가운데를 질러서 큰우무실로 이어지는 마을 도로가 보인다

큰우무실 고개(15:05)

영주시 문수면 만방리에 큰우무실로 가는 길에 있는 고개로 우무실 마을은

큰우무실, 작은 우무실로나누는데 우무실이란 지명은 임진왜란 때 인명(人命)과

재산이 모두 피해 없이 세(世)청출입(出入)을 피(避)하며 우인자처(愚人自處)라여

우곡(愚谷)이라 칭하다가 무우세거(無憂世居)함에 우무(憂無)실이라고 하였다. 

고개를 지나 밭으로 올라서 지형을 보니 우리가 걸었던 등로는 점선 부분인데 실제 능선은

인동장공 묘지에서 조금을 더 지나서 내려와야 한다...대한산경표의 저자 산으로님은 다시

능선으로 올라가서 원칙대로 걸어 내려온다...참으로 대단하이

능선으로 오르니 좌측으로 유실수를 심어논 과수원이 나오고...

북쪽으로 바라보니 영주시내의 아파트가 보인다


가선대부 봉화정공 묘(15:13)

가선대부(嘉善大夫 )란 조선시대 종2품의 하계(下階) 문관의 품계이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는 조선시대 일정한 직무가 없는 당상관(堂上官)들을

우대하기 위해 설치된 관청인 중추부(中樞府)에 두었던 종이품(從二品관직으로

정원은 8명이었으며 한직(閒職)의 벼슬아치들을 우대하기 위한 관청으로만

존해 오다가 고종(高宗때 다시 중추원으로 고쳐 의정부에 소속되었다

지금으로 보면 돈많은 지역 유지쯤으로 보면 될 듯하다

이곳에서 독도에 상당히 유의해야 할 듯 싶다...이 구간은 선답자들의 트랙도 없고

지도도 없다시피하여 영진 1/50,000의 지도를 가지고 독도를 해가면서 걷는다

길이 아예 보이지도 않는 곳을 내려가니...

등로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밀양박공의 묘지를 지나면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안부(15:30)

288.7봉(15:35)

이곳에서도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뚜렸한 좌측의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2시방향으로 내려선다

길이 전혀없는 소나무 숲사이를 헤치면서 내려선다

좌측은 산, 우측은 과수원과 농가사이를 절묘하게 이어지는 지맥길

외줄타기를 하는 곡예사의 심정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사과밭을 지나고...

맞은편에도 사과밭이 보인다

칡넝쿨에 걸려서 2번이나 넘어지고...그래도 가야할 지맥길... 절개지로 내려선다

쇄배이 고개(15:42)

영주시 문수면 만방리 쇄배이 마을에서 종릉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우측에 종릉마을이 보인다 쇄배이 마을 유래는 임진왜란 때 순흥 안씨

영양남씨 양성(順興 安氏 英陽南氏 兩姓)이 입주하여 은거하던 곳이며

마을 입구에 반석 (盤石)으로 둘러싸인 곳에 사방 1m되는 자연석정이 있다.

석정(石井)의 청량수가 현재까지 주민들의 식수로 이용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영가북방(永嘉北方) 70리에 화개지지(花開之地)가

곧 신방(新芳)이라하여 쇄배이라고 하였다 한다.



쇄배이 고개에서 바라본 종릉(鐘陵)마을

영주시 만방1리에 종릉마을은 조선 태종이 등극 전 류씨(柳氏)성을 가진 친구와

함께 글공부를 했었는데 등극 후 친구 류씨(柳氏)에게 조선 개국에 대한 협조를

구했으나 류씨(柳氏)는 이를 거절하고, 지금의 이 곳에 내려와 종산서원(鐘山書院)을

세우고 글공부를 하다 죽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태종이 친구와의 옛정을 기려

柳氏의 묘를 능으로 칭하도록 하였고 그 때부터 이 마을을 종산서원(鐘山書院)의

종자(鐘字)와 류릉(柳陵)의 능자(陵字)를 따서 종릉(鐘陵)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개를 가로질러 절개지로 올라서니 농로로 이용되는 넓은 임도가 나온다

뒤돌아 본 쇄배이 고개

넓은 임도는 잡초로 무성하고...

등로에서 바라본 내성지맥의 산줄기들

갈림길(15:55)

묘지를 지나고...

아카시아 군락지...키가 크서 그런지 편하게 지난다

또 다른 묘지

또 다시 등로는 거칠어지고...

안부(14:05)

안부에 있는 전봇대 표시

거친 등로를 지나니...벌목지가 나오고...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본다

242.9봉(16:08)

242.9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등로 아랫쪽엔 인삼밭이 보이고...

뚜렸한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희미한 등로로 올라서는데 독도에 주의할 구간이다(16:18)

무명봉(16:20)

달성서공과 부인 경주김씨 묘지를 지난다

넓은 길을 따라서 내려가니 임도 삼거리가 나온다

임도 삼거리(16:23)

205.7봉(16:30)

억새밭을 지나고...

아련히 보이는 산이 학가산인 듯...

잣나무 조림지도 보인다

임도 삼거리가 나오고 직진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우측 능선에서 좌측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유일하게 이 길은

걸은 비실이 부부님 시그널이 좌측으로 걸려있다... 우리도 단축로를 따른다

도로가 보이고...

녹동고개(16:40)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에 있는 고개로 삼거리 길이 보이고 녹동마을 표시석과 버스 정류소가 있다

용혈리는 내성천이 마을 앞으로 굽이굽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놋점, 미림, 납들고개,

시낼, 녹동 등이 있으며  놋점은 마을 안에 대장간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시낼은 마을 앞에 맑은 시냇물이 흘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납들고개마을에서 용혈1리

납들고개마을 서쪽 150m 떨어진 곳에 고려시대 용혈리 와요지( 경상북도 시.도 유형문화재 제310호)가 

있으며, 주변에 있는 입석()을 조사하다가 발견한 3기의 와요이다. 와요들은 각기 약 3.5m와 5m의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으며, 출토 유물은 1∼3호의 요지 바닥에 깔아 둔 와편이 있을 뿐 다른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려 후기에 이용되었던 요지로 보고 있다.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랐으나 길이 없어 다시 우측으로 내려선다

상여보관 장소가 나오고 수헌아우님이 뭔가 궁금한 지 안쪽을 유심히 들여다 본다

임도를 따라서 오른다

배수장16:47)

임도를 따라 올라서니 꼭대기에 마을 쓰레기 처리장이 있고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내려선다

해는 이미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고...

갈림길(16:52)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넓은 임도를 따르다가 고추밭이 나오고 밭 사이 능선이 지맥길인데

절개지에다 아카시아 나무가 너무 많아서 고추밭으로 우회를 한다

고추밭 가운데로 맥길을 이어간다

고추밭을 지나 지맥길로 복귀를 한다

억새가 무성한 길을 지나니 농로가 나오고 좌측 아랫쪽에 밀양박공과 부인 김해김씨 묘지가 있다

밭 윗쪽 능선을 지나...

묘지가 있는 쪽으로 간다

묘지에서 바라본 학가산(882m)의 모습

예천과 안동의 경계에 있는 학가산은 「신선이 학을 타고 노니는 산세」,

「소백산에서 날아온 학을 사람이 타고 노니는 형국」「수레를 타고 날아가는 학과 같다」,

「학이 날개를 활짝 펼친 모습」 등등 이 산을 두고 옛 선인들은 나름대로 보는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느낌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학가산을 가운데 두고 예전에는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도 달랐다고 하는데.

안동에서는 울퉁불퉁 보인다고 문둥이봉, 영주에서는 부드럽고 평평하게 보인다고 선비봉,

예천에서는 산세가 수려하게 보인다고 해서 인물봉이라 불렀다 한다.

 

학가산에는 삼봉(三峯)과 삼대(三臺)가 있다. 삼봉은 학가산 정상으로 치는 국사봉(國祠峯),

국사봉 동쪽의 유선봉(遊仙峯)과 삼모봉(三矛峯)을 이른다. 삼대는 삼모봉 동쪽 능선에 있는

학서대(鶴棲臺)와 난가대(爛柯臺), 그리고 지형도 상의 정상인 882m봉 북릉 초입에 있는

풍대(御風臺)를 일컫는다. 이 이름들은 안동지역에서 평생 벼슬길을 거부하고 학가산을

벗 삼아 살았다는 송암 권호문(權好文·1532-1587) 선생이 지은 것이라 전해진다

묘지에서 좌측으로 내려오니 시멘트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따른다

마지막 봉우리인 187.4봉으로 향한다

진주강공 묘지 윗쪽으로 올라가니...자개지맥중에 족보가 있는  마지막 봉우리에 도착한다

187.4봉(17:05)

판독이 불가능한 187.4봉 삼각점

이 구간을 걸어오면서 유일하게 만난 시그널... 비실이부부, 나뭇꾼과 선녀님 시그널

묘지 뒷쪽 능선을 따라서 내려간다

임도사거리(17:12)

등로를 따르다가 우측 능선을 치고 올라선다

무명봉(17:16)

실질적인 마지막 봉우리이다... 족보가 없을 뿐...

처사 예천임공의 묘지를 지나고...

끝이 다되어 가는 느낌이다...내성천이 보일락말락...

갈림길(17:20)

날씨는 어두워지고 상석에 이끼가 끼어 시력이 나쁜 범여는 누구 묘지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내성천과 서천이 만나는 자개(서천)지맥이 만나는 합수점이 보이건만 중앙선 철길이 가로막아 난감하다

철길 좌측 철조망으로 내려서려니 정글같은 잡목이 앞길을 막아 답이 안나온다

이틀동안 19시간을 잡목과 전쟁을 치렀는데 이것쯤이야...좌측 윗쪽으로 돌아 정면 돌파한다

천신만고끝에 내성천으로 내려서니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내성천 위로 통과하는 중앙선 철길의 모습

무섬교 합수점(17:30)

천신만고 끝에 내성천(좌)과 서천(우)이 만나는 합수점에 도착하니 해냈다는 성취감에 희열을 느낀다

아쉽다면 30분만 일찍와서 밝을 때 발을 담그고 건너편 무섬마을 구경했으면 좋으련만...

50개를 넘는 지맥길을 걸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지맥길이 아니었나 싶다

같이 동행해 준 수헌, 산으로님 아우님께 고마움을 전하면서 산행을 종료한다

합수점에서 인증샷

무섬교 입구로 올라 오면서 영주 택시를 콜했는데 택시는 오질않고 다시 전화를 하니 무섬마을에 가 있단다

다리 입구에는 승문리 돌내마을 표시석이 서있는데 돌내마을은 마을 앞을 흐르는 냇물이 여러 해에 걸쳐

흐르는 동안 흙은 파여 흘러가고 돌만 많이 남게 되자 돌 많은 내라는 뜻에서 돌내로 오래 전해 내려오는

동안 돌내가 도래로 발음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한다

어둠이 몰려오는 자개지맥 합수점

호출한 택시기사가 길을 못찾아 한참을 버벅거리는 바람에 땀이 식으니 추위가 엄습해온다

서둘러 자켓을 꺼내입고 베낭을 정리하고 나니 택시는 도착하고 영주시내로 향한다(택시비15.000원)

영주 시외버스 터미널이 올 1월에 외곽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터미널 근처에는 마땅한 식당이 없어

지난해 10월 1구간을 걸을때 맛있게 먹었던 한우갈비집... 그 집은 씻고 옷을 갈아입기가 좋아

그 집을 찾으려고 구터미널 근처에 내렸는데 찾을 길이 없고 배는 고파서 근처 돼지 갈비집으로

갔는데 고기맛은 그런대로인데 쥔장 여편네의 성질머리가 지랄같아 고기맛이 뚝 떨어진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고깃집은 영주에서 젤 유명한 갈비집이라는데...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음식점은 망하고 흥하고는 건 찰나이니...손님 있을때 잘 하시게나

영주종합터미널(19:15)

터미널에 도착하여 입가심으로 딱 한잔 더하고 싶었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서 19시 35분 버스표를 예매한다

영주발 → 버스표

버스에 오르자마자 얼마나 피곤했던지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동서울터미널

차가 밀리지 않았던지 2시간 조금 넘은 시간에 서울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