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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차탄(보개)지맥(終)

차탄(보개)지맥 제1구간 - 소이산 분기점에서 대소라치까지

by 범여(梵如) 2016. 10. 31.

 

☞ 산행일시: 2016년 10월 30일

☞ 산행날씨: 아침엔 영하의 기온...맑고 쾌청함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5.2km + 어프로치  약6.2km  / 8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노동당사-지뢰꽃길-전망대-소이산-임도- 새우젓고개-무명봉-수도국지-무명봉-임도

                 동주산성터-전망대-동주산-관천리 갈림길-임도-무명봉-군부대 갈림길-임도 갈림길

                 무명봉-묘지-2번군도-벙커봉1-벙커봉2-벙커봉3-501m봉-수정봉-501m봉(왕복)

                 임도 갈림길1-임도 갈림길2-430m봉-무명봉-임도-벙커봉-무명봉-밀양박공 묘지

                 공터-시멘트 도로-벙커봉-공터-벙커봉-473.2m봉(숙향봉?)-무명봉-금학산 우회임도

                 암봉-암봉-보개지맥 갈림길-헬기장-금학산-보개지맥 갈림길(왕복)-대소라치

                 금학산 우회임도-금학산 등로입구-금학체육공원 주차장

소 재 지: 강원도 철원읍, 동송읍 /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 포천시 관인면

 

세상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모든게 비정상적이다

정말 이 나라가 어떻게 될런지... 아수라판같은 요즘, 사바세계에 사는 중생의 업보인가?

요즘 범여는 가급적 TV는 보지 않는 편이다...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기에...

이번달엔 일욜이 5개라 특별히 갈데가 없다 진권아우를 꼬셔서 감천(금오)나 평창(주왕)지맥을

가려고 했는데 부산을 간단다마땅히 갈데도 없고하여 오랫만에 오대산이나 갔다올까 하다가

이곳 저곳을 검색하다가 갑자기 차탄(보개)지맥 첫 구간을 정한 다음에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차량을 가지고 강원도 철원에 있는 노동당사로 향한다 

 

보개지맥(蓋支脈)

보개지맥은 백두대간이 금강산으로 뻗어 내리다가 분수령에서 서남쪽으로 꺾이면서 이어내리는데,

가지친 한강 북쪽의 산줄기인 한북정맥현재 휴전선 북쪽의 백봉, 백암산을 거쳐서 장암산에서

서쪽으로 산줄기를 떨구어서 왕재봉, 발리봉을 지난후 (발리봉에서 수정산을 지나서 금학산 갈림길인

대소라치까지는 비무장지대와 군부대 등으로 출입금지 지대)  남쪽으로도 산줄기를 하나 분기한

수정산, 금학산, 보개봉, 보개산 지장봉, 화인봉, 북대봉, 성산, 오봉산을 거쳐서 남봉고개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1.2km에 이르는 산줄기를 말하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차탄천의 우측 산줄기라 하여 차탄지맥이라고 부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진 모양이다... 자동차 계기판에 나타난 외부 온도가 영하 4도를 가리킨다

집에서 이른아침 6시에 출발하여 철원 근처에 가서 아침을 먹으려고 차를 몰다보니 철원 근교에

이른 아침에 식사할 곳이 마땅찮아 달리다보니 목적지인 노동당사에 도착한다

하는 수 없이 아침을 거르고 베낭에서 초코파이 하나와 보온병의 따뜻한 물로 커피 한잔을

마신 다음에 아침을 대신하고 장비를 점검한 다음 산행을 준비하는데 철원땅은 생각보다 춥다

철원 노동당사(08:00)

강원도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노동당사(勞動黨舍)는 1946년에 완공된 3층 건물이다.

6.25전쟁(六二五戰爭 , Korean War)이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의 노동당사로 이용되었다.

현재 이 건물은 6.25전쟁 때 큰 피해를 입어 건물 전체가 검게 그을리고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게 나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6.25전쟁과 한국의 분단현실을 떠올리게 해서 유명가수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나

유명 음악회의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현재 철원 노동당사는 철원군(鐵原郡)이 안보관광코스로

운영하고 있으며,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2001년 2월 근대문화유산에 등록되면서 정부 차원의 보호를 받고 있다.

10년동안 나의 발노릇을 하면서도 아직까지 한번도 쥔장을 쏙을 썩이지 않은 나의 愛馬

노동당사의 넓은 주차장에는 오직 나의 애마만이 외롭게 주차장을 지킨다

이곳에서 산행 채비를 하고 화장실에 들렸다가 노동당사 주변을 둘러본다

구 철원군 도로원표(舊 鐵原郡 道路原標) 표지판

본 도로원표는 일제강점기에 때 철원군에서 세운 도로원표이다

도로원표에는 “평강 16.8km,  김화 28.5km, 원산 181.6km, 평양 215km, 이천 51.4km

포천(총탄 자국으로 불명) km”라고 기록되어 있다.

옛 철원읍은 철원평야의 중심지에 도시가 형성되었으며 경원선과  금강산 전철이 운행되고

각종 농축산물의 집산과 관광객의 왕래가 빈번했으며, 예로부터 도내에서 춘천과 더불어

도청을 유치하려던 대읍부향(大邑富鄕)으로 손꼽혔다      

도로원표

도로의 기점(起點), 종점(終點), 또는 경과지를 표시하는 것으로 도로원표의 위치

도청, 시청, 군청 등 행정 중심지, 교통의 요충지, 문화적 중심지로 정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도로의 원표가 위치한 곳은 역사적으로 도시의 중심, 교통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노동당사 입구에 있는 지뢰꽃 詩碑

노동당사 내부의 모습

광장에서 바라본 노동당사

러시아식 형식을 따른 노동당사는 한국전쟁(6.25)이 일어나기까지 공산치하에서 반공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잡혀와 고문과 학살을 당했던 장소다. 철원의 시가지였던 이곳에 당시 약 2만 여명이 주민이

살았으나, 한국전쟁의 포화는이곳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다. 주민들조차 모두 떠나게 만들었는데

한국전쟁 전의 옛 사진을 보면 소이산 밑에까지 크고 작은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찬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소이산 일대는 대한민국의 영토로 편입이 되였지만 휴전선 철책은 이곳을 군사경계지역으로 

민통선 안쪽의 땅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20여년 전만해도 일반인의 출입을 차단했다.

논밭 경작을 위한 일부 주민들의 출입은 제한적으로 허용했으나, 일반인들은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한

미지의 땅이 되여버린 것이다.

노동당사 맞은편에 설치된 철원오대미 축제현장

민통선 출입지역 입구의 모습

산행을 시작하다(08:10)

지난 8월 28일에 한탄(왕재)지맥 첫 구간을 이곳에서 시작했다

그때는 좌측 도로를 따라서 새우젓고개를 경유하여 소이산으로 접근을 했는데

그쪽 방향으로 가면 많이 돌아갈 것 같아서 맞은편 철원 오대미 축제현장 뒷편의

눈두렁을 따라서 소이산으로 접급하는 방법을 택했다

눈두렁 사이에는 앙증맞은 나무다리가 있고...

추운 날씨탓인지 서리가 소복히 내려있다

팔각정이 나오고 이곳에서 시 낭송회가 열린 모양이다

시 낭송회 끝난지가 한달이 다되어가건만 아직도 플랑카드는 그대로 있다 

지뢰꽃길(08:17)

우측 철조망 안쪽에는 6.25 동란 당시에 매설된 지뢰지역이다

이곳에서 좌측의 능선으로 무조건 치고 올라야 한다

지뢰꽃길 조성 팻말

철조망에 걸려 있는 시

철원에는 시인이 많은 모양이다

무작정 등로를 치고 오르니 초반에는 길이 없으나 군 교통로가

거미줄처럼 있기에 교통로를 따라서 편하게 소이산 방향으로 향한다

타이어 벙커를 지나고...

벙커에서 우측으로 올라서니...벙커봉 위에 군삼각점이 보인다

벙커봉 위 칡넝쿨속에 숨어있는 군 삼각점

전망대(08:35)

전망대 앞에는 철원용암대지 표시판이 보인다

철원 평강용암대지는 현재 임진강의 지류인 한탄강에 의하여 개석(開析)을 받고 있다.

또 한탄강·임진강·차탄천·북한강·안변남대천 등 5개 유역 분지의 분수계가 존재하여 하계망의 재편성이 지속되고 있다.

용암대지의 남부에 위치하는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어, 이곳이 일찍부터

인간의 거주지로 이용되었음을 알게 해 준다. 철원은 추가령구조곡과 관서∼영서지방을 잇는 교통로가

교차되어 교통의 요지를 이루고, 주변의 변성암(變成岩) 산지가 높아서 방어에도 유리하다.

후삼국시대에 궁예(弓裔)는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후삼국의 통일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때에는 극심한 격전장이 되어 ‘철의 삼각지대’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전망대 소로를 따라서 소이산으로 향한다

2개월만에 만나는 소이산 팻말

소이산 평화공원(08:38)

소이산 평화공원 조형물

소이산 미군막사

이곳은 미군이 레이더기지로 쓰던 막사로 6.25이후 한국군이 사용하다가
지금은 미사용중인 군사기지로 출입이 금지된 곳
6.25 당시 북쪽을 향해 발칸포기지,

레이더기지 등이 있었으며 방공초소와 부대시설을 최근까지 국군이 사용하였던 막사라고 한다

 소이산 정상 오르는 길에서 내려오는 소이산 정상에서 밤을 세우고 내려오는 비박족을 만난다.

나에게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텐트와 침낭등을 다 갖춰놓고도 1년에 한번도 못가니...

지맥길이 뭐길래...

평화(PEACE), 사랑(LOVE), 기쁨(JOY), 희망(HOPE), 믿음(FAITH)을 상징하는 텍스트 타워란다

소이산(所伊山:362m:08:42)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에 있는 철원평야 가운데 우뚝솟은 산으로 마치 섬처럼 보인다

고려시대부터 외적의 출현을 알리던 제1로 봉수대가 위치하였던 곳으로 다른 지명으로는

봉의산(鳳儀山)이라고도 하며 소이산 일원은 한국전쟁 이후 매설된 지뢰로 인해 사람들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고 형성된 숲이며 정상에는 데크목으로 만든 넓은 전망대가 있는데

전방지역의 각 고지와 태봉국의 도성지, 평강고원, 백마고지, 김일성고지, 철원역, 제2땅굴,

노동당사는 물론 최대의 철새도래지와 철원평야와 평강고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소이산 정상에서 인증샷

소이산 정상에서 바라본 철원평야

오늘은 날씨가 정말 좋다... 2개월전 한탄(왕재)지맥 첫구간엔 비를 맞았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가을걷이가 시작된다는 철원평야와 평강고원

참으로 여유로워 보이건만 가장 긴장곳이기도 한 곳... 소이산에서 바라본 철원평야

오늘은 모든게 일망무제이다... 좌측으로는 갈 수 없는 왕재지맥 능선의 야월산과 천덕산

맞은편 북쪽에는 김일성고지라 불리는 고암산과 아이스크림고지, 백마고지,

동쪽으로는 김일성이 한국군 군번줄 3트럭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군사적 요충지 오성산도 한 눈에 들어온다

철원평야 너머 북한땅 김일성고지라 불리는 고암산이 손에 잡힐듯 가깝게 보인다

그리고 북한땅에서 틀어대는 대남방송이 귀가 아플정도로 크게 들린다

 

소이산 정상에서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 그리고 그 건너 북한의 평강고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소이산이 없었다면 전쟁 때 철원평야를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전략적 요충지였던 소이산은 마치 철원평야 논의 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처럼 보이는 산이다

용암이 흘러 내렸던 저 곳... 옛날 철원의 번성기를 누렸던 저곳은 민간인들은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소이산 정상에서 마주하는건 공간과 시간의 막막함이다...남.북한의 대치 그 끝은 언제쯤일까?

그리고 끊어진 북쪽땅의 한탄(왕재)지맥은 내 生前에 걸어볼 수 있을런지...

소이산에서 바라본 백마고지와 대마리의 모습

소이산은 6.25 동란이후 최근까지 민간이들이 출입할 수 없는 통제된 산이다

산 정상에 올라서면 이 일대를 다 볼수 있는 망루같은 탁월한 지형 때문이란다

6.25 전쟁당시 남.북한이 이곳을 차지하려고 백마고지 못지않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당시 김일성이가 철원평야를 잃고 고암산 정상에서 철원평야를 바라보면서 3일 밤낮을 울었다고 한다

수복 후에도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차단된 채 발칸포기지와 레이더기지가 들어서 미군과 한국군이

번갈아 주둔했으며, 통제구역에서 해제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군부대가 떠난 뒤에도 ‘지뢰주의’ 라는 삼각 팻말이 등로를 막았으나  근래들어 철원군의 요청에

6사단의 협조를 하여 출입이 허용되어 소이산 평화마루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범여에겐 늘 동경의 대상인 비박족들

오늘 내가 걸어야 할 수정봉, 숙향봉, 금학산도 한 눈에 들어온다

고암산과 철원평야

후삼국 시절(901년) 궁예가 송악(개성)에서 철원으로 도읍을 옮길 당시 도선국사는 이렇게 예언했다

궁전을 짓대 금악산을 진산으로 정하면 이 산의 정기를 받아 앞으로 300년동안 통치할 것이요

만약 금학산이 아닌 다른 산으로 정하면 국운이 30년밖에 못 갈것이다라고 했다.

소이산 정상의 모습

소이산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09:00)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내려가는데 2개월전에 걸었던 길이라 정감이 간다

너도 이별을 준비하는구나

우측으로 소이산 생태숲으로 연결되는 등로가 보이고...

철원땅이 춥기는 추운가보다

새우젓고개(09:10)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와 관전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소이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새우젓고개의 지명유래는 옛날 한강으로부터 들어온 새우젓을 새우젓 장수들이

철원장에 팔기위해 등에 지고 넘어가다 쉬어가는 곳이라고 한다

새우젓고개 탱크 방호벽 좌측으로 올라선다

갑자기 등로가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움푹파인 봉우리가 나타나는 군 참호인지 유해 발굴현장인지?...

사격 깃발을 세웠던 깃대의 몸통인지 철기둥이 있는 등로에서 약간 우측으로 꺽어진다

무명봉(09:22)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내려간다

滿秋

철원 수도국지(09:27)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에 있는 등록문화재 제160호로 대한민국 근대유산에 지정된 곳이다

옛 철원읍내에서 약간 떨어진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수도국은 일제강점기에 철원읍내

주민들에게 마실 물을 공급하기 위해 1936년에 만들어졌다.

일제식민통치기구에 의해 간행된 “철원읍지”에 의하면 1937년당시 급수세대는 500여호,

급수인구는 2,500명이며 1일 급수량은 1,500㎥에 달하였으며, 강원도내에서 유일하게

상수도 시설을 자랑했던 곳으로,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저수조와 정수장, 관리소 등의 시설물을

갖추고 있었으며, 광복과 더불어 인공 치하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노동당사와 내무서 등에

감금되었던 친일, 반공 인사들을 분류하여 이곳으로 이송, 감금 조치하고 있던 중, 국군이

북진하자, 도주하면서 약 300여명의 인사들을 총살 또는 저수조 속에  생매장하고 도주하였다고

하는데, 아직도 전쟁 당시의 총탄 자국과 폭파된 흔적이 시설 곳곳에 남아있다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 표시판

수도국지 안내판

도로를 가로질러 탱크 방호벽을 능선으로 올라선다

다시 등로는 거칠어 지기 시작하고...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어 우측의 임도로 내려선다.

편안한 임도를 두고 뭔지랄인지...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다시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으로 올라섰다가 다시 내려서니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동주산성터란다

동주산성 터(09:45)

넓은 공터에는 군 훈련시설물들이 보이고...

맞은편에는 데크목 전망대가 보이는데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등장하는 동주산성 표지판이 없다

이리저리 찾아 헤매다가 우측 임도 아래로 내려서니 표지판과 산성의 흔적인 석축이 보인다

동주산성(東州山城:09:46)

동주산성은 궁예가 강원도 원주, 영월, 강릉 등 동남부 일대를 점령하고, 인제, 양구, 화천을

거쳐 896년 철원에 도착하였을 때 잠시 진을 쳤던 곳으로 궁예는 철원에서 패서호족 왕건 일가의

귀부를 받고 그들의 청을 받아들여 898년 송악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901년에 후고구려를 건국한다

그리고 905년 대동방국 건설이라는 원대한 꿈을 이루고자 이곳 철원에 궁성을 짓고 도읍한다

여러 전란과 더불어 6.25 당시 많이 원형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동주산성 안내 표지판

다시 넓은 공터로 되돌아와서 데크목 전망대로 향한다

동주산성 전망대(09:48)

아침에 출발하여 차탄(보개)지맥을 시작한 노동당사와 소이산의 모습

그 너머로 보이는 철원 평야는 광복 당시 이 일대가 철원 읍내가 형성됐던 곳으로

인구 19, 693명이 거주했고, 경원선과 금강산 전철이 운행됐던 교통과 산업의 중심지였다.

예로부터 춘천, 강릉, 원주와 더불어 강원도내에서 큰 도시로 형성됐던 곳이란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철원평야와 평강고원의 모습

임도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동주산으로 향한다

동주산 오름길에서 바라본 철원읍 관전리 관골의 모습

관골은 옛부터 관청들이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동주산(東州山:340m:09:55)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앞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군 벙커와 교통호가 있는데

잡목이 우거져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이다... 수헌 아우님의 산행기엔

군 삼각점이 있다고 했는데 숲 사이를 아무리 뒤져도 찾을 길이 없어 포기한다

 

지명의 유래는 궁예가 쌓았다고 하는 동주산성에서 유래된 듯 싶다

조선시대에 철원도호부(鐵原都護府)가 철원군이 신증동국여지승람 건치연혁(建置沿革)

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본래 고구려의 철원군이며 모을동비(毛乙冬非)라고도 했다

신라의 경덕왕이 철성군(鐵城郡)이라고 고쳤고, 뒤에 궁예가 군사를 일으켜 고구려의 옛 땅을

침략해 차지하고 송악군으로부터 와서 여기에 도읍을 정하고 궁실을 지어 더 할수 없이 사치하게

하였으며, 국호를 태봉(泰封)이라고 고쳤다.

 

궁예의 부하였던 왕건이 궁예를 축출하고, 고려를 개국한 다음 태조에 즉위하여 수도를 송악(개성)으로

옮기고, 철원을 동주(東州)로 부르면서 지명 유래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전리(官田里) 갈림길(09:57)

동주산에서 잡목을 헤치고 내려오니 관전리 갈림길이 나오고 임도를 따라서 걷는다

임도 넓은 공터에는 원통 통과 시설물이 보이고...

헬기장 1(10:00)

헬기장 2(10:02)

팔굽혀 펴기... 예전엔 참 많이 했지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야 하는데 2분도 안되서 내려와야 하기에 그냥 패~스

오리 걸음은 또 얼마나 힘이 들었던고...

군부대 갈림길(10:10)

우측에는 군부대 후문이 보인다

임도 갈림길(10:13)

⊃ 형태의 임도에서 임도를 버리고 길이없는 거친 능선으로 접어든다

능선으로 올랐다가 조금가니 무명봉이 나온다.

무명봉(10:17)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가다가 다시 좌측으로 꺽어지니 군부대가 나온다

우측으로 군부대 철조망이 나오고 철조망 좌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묘지(10:23)

세월앞에 장사가 없구나

잘 관리된 묘지 4기가 있으나 하나같이 상석에는 기록이 전혀없다

My name is nobody

칡넝쿨이 등로를 막고있어 우측으로 우회면서 걷는다

칡넝쿨을 헤치고 내려서니 배추밭이 보이고 도로가 나온다

2번군도10:28)
2차선 도로에서 내려서니 우측으로 군부대가 있고 이동통신탑이 보인다

도로를 가로질러 농로로 들어서니 좌측으로 수확이 덜 끝난 콩밭이 보인다

콩밭에서 우측 능선으로 접어드니 보시다시피 등로는 보이질 않고 아카시아 나무가 산꾼 범여를 엄청 괴롭힌다

길은 아예 보이질 않고 내가 길을 만들어서 걸어야 한다

용담과 비슷하게 생긴 과남풀이 아직도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다

군부대에서 설치한듯한 철조망을 무단으로 넘어간다

벙커봉1(10:55)
벙커봉 위에서 관리가 안된 화생방 시설물이 넘어져 있고 간벌된 잡목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벙커봉 위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잡목들

등로에서 바라본 철원읍 율이리의 모습

벙커봉에서 7시 방향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니...

땅바닥 아랫쪽엔 녹슨 철조망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벙커봉2(11:08)

벙커봉 위에는 안내판이 넘어져 있는데 이곳에서 목이말라 물을 마시려고 베낭을 열어보니...

이게 뭔 변고여! 집에서 출발하면서 수통을 챙기지 않았네그려... 게토레이 한 병만 달랑 있다

하는 수 없이 초반부터 마시고 싶은 물을 마시지 못하고 스포츠 음료로 목만 축이고 간다

오늘 처음으로 산꾼의 시그널을 만난다

벙커봉3(11:20)

정상에는 진지강화/재편성 팻말이 보이고 시야가 트이면서 지나온 소이산과 철원평야가 보인다

내가 걸어온 차탄(보개)지맥 능선과 그너머로 북한땅이 한 눈에 들어온다

비교적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걸어가니...

망가진 군 시설물이 보이고...

또 다시 녹슨 철조망을 만나 좌측으로 올라선다

암릉구간을 우회하며 좌측의 교통호를 따라서 올라간다

지나온 능선을 다시한번 뒤돌아 보고...

벙커봉 2개가 나란히 있다

501m봉(11:38)

벙커 2개가 있는 봉 위에 올라서니 화생방종이 있고 우측으로 헬기장이 있는 수정봉이 보인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는 수정봉으로 향한다

501m봉 나무가지 사이로 바라본 가야할 능선들

수정봉 향하는 길의 임도

임도를 따라서가니 수정봉 정상에는 헬기장이 나온다

수정봉(水晶峰:498.9m:11:42)

철원군 철원읍 율이리와 동송읍 화지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영진 1/50,000의

지도에는 498.9봉으로 기록되어 있고,  정상에는 헬기장과 사격 깃대와 벙커,

삼각점과 군삼각점 등 2개가 있으며 온 사방이 그야말로 일망무제인 봉우리이다

맞은편 바로 아래에 군 시설물이 있고 저 먼 능선은 몇년전에 홀로 걸었던 서천(왕방)지맥 능선인듯 하다

수정봉  정상의 모습

수정봉 정상 삼각점(△철원 308 / 2007 재설)

군삼각점(C-5-6 / 1999매설)

베낭으로 인증삿을 남기고...

수정봉 정상에서 바라본 고대산 주라이등의 모습

내가 걸어왔던 차탄(보개)지맥 능선 너머로 김일성고지(고암산)이 보인다

수정봉을 뒤돌아보며 왔던길을 되돌아 간다

다시 501m봉으로 되돌아 와서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 갈림길(11:50)

남쪽으로 굽어지는 넓은 임도를 버리고 동쪽으로 이어지는 직진 능선으로

들어서는데 길은 보이질 않고 급경사의 내리막길이다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등로는 없고 낙엽이 무릎까지 파묻히는 군 교통호를 따라 내려간다 

길이없는 급경사를 내려서니 잡풀이 가득한 임도가 나온다

임도 갈림길(12:02)

ㅏ자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향하다가 우측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등로는 아예없다

430m봉(12:10)

430m봉에 올라선 다음 조금을 내려서니 타이어로 만든 벙커봉이 나오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길이 전혀 보이질 곳에서 만난 선답자의 시그널... 대단하십니다

조금을 더 내려가니 좌측으로 430m봉 아래에서 헤어진 임도가 보이나 맥길은 우측 능선으로 이어진다

비교적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무명봉(12:16)

군 교통호가 있는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임도(12:18)

여기서부터 임도를 따라서 편하게 맥길을 진행한다

임도 좌측에는 국가유공자인  한양조공과 부인 파평윤씨 묘지가 보인다

넓은 임도를 따라 가다가...

⊃형태로 꺽어지는 임도 직전에서 우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12:38)

능선에 올라서면서 만난 선답자의 시그널

희미한 등로를 따라가다가 우측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벌목한 나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직진의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참으로 등로가 亂解하다

벙커봉(12:48)

벙커봉 정상에는 간벌한 나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좌측 아랫쪽에는 동송읍내가 보인다

이곳에서 점심밥상을 펼친다... 아침을 먹지않고 초코파이 하나와 커피를 마신 탓인지

허기가 몰려온다... 이곳에서 점심밥상을 펼친다

貧寒한 산꾼의 점심 밥상(12:48~13:00)

점심이라곤 커피 한잔과 초코파이 2개, 단감 2개가 전부이다.

12분간 점심상을 끝내고 마실 물이 없어서 이온 음료로 목을 축이고 길을 떠난다 

무명봉(13:03)

무명봉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밀양박공 묘지(13:07)

공터(13:08)

넓은 공터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서니...

평상이 있고 아카시아나무와 잡목들이 심한 태클을 건다

잡목을 헤치고 나가니...

능선 아랫쪽엔 시멘트 도로가 보인다

시멘트 도로(13:15)

좌측의 묘지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서 간다

부인을 둘씩이나 두신 평창이공 어르신 묘지 뒷쪽으로 길을 이어간다

고맙습니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는데 목은 바짝바짝 마른다

아직까지 가야할 길이 멀기에 이온음료를 맘껏 먹을수도 없어 미칠 지경이다

벙커봉(13:35)

공터(13:37)

벙커봉(13:40)

능선 우측으로는 고대산 능선이 보인다

날등을 따라서 좌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암릉이 있는 오르막길...등로는 아예없고 낙엽이 수북해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473.2m봉(14:00:숙향봉:淑香峰?)

헬기장이 나오는데 영진1/50,000의 지도에는 473.2m봉이라 기록이 되어 있고,

일부 지도에는 숙향봉(淑香峰)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헬기장 아래에는 벙커가 있고

우측으로는 고대산과 보계봉... 맞은편에는 가야할 금학산이 버티고 있고 헬기장

좌측 끝 모퉁이에는 삼각점이 숨어 있다

473.2m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금학산

고대산 능선의 모습

북쪽으로는 오늘 내가 걸어온 능선과 철원평야가 시원스레 보이고...

473.2m봉 삼각점(△철원415 / 2007 재설)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는 등로를 따라서 걷는다

암릉구간이 있는 곳에서 우회하며 걷는다

무명봉(14:18)

앙증맞은 암릉

무명봉(14:20)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니...

군 교통호가 보이고  조그만 봉우리에 올랐다가 좌측으로 내려선다

군 교통호 끝부분으로 내려서니...

금학산 우회임도(14:28)

임도를 가로질러 급경사로 오르는데 마사토 지역이라 엄청나게 미끄럽다

능선으로 오르니 콘크리트로 만든 교통호가 보이고...

또 다른 군 교통호를 지나면서 등로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곳부터 급경사의 오르막길에 등로는 실종되고 낙엽이 수북하여 시간은

지체되고 오늘따라 아침을 먹지못한 탓에 체력이 급격하게 저하되기 시작한다

암봉(13:02)

목이말라 더 이상 걷지를 못하겠다... 반컵정도 남은 이온음료를 다 마셔 버린다

암봉에서 바라본 고대산 주능선의 모습

 

고대산(高臺山:832m)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과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연천군 신서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남쪽 철도 경원선의 최북단 역인 신틴리역 동북쪽에 있으며 정상에는 고대산의 최고봉인

고대봉이란 정상석과 넓은 헬기장이 자리잡고 있으며 정상에서는 넓은 철원 평야가 한 눈에

보이고 북쪽으로는 백마고지, 능선 아래는 신탄리 역이 보인다

주변으로는 금학산, 지장봉, 보개봉, 북대산, 향로봉, 종자산 등 큰 산들이 많으며

휴전선 남쪽의 전략적 요충지여서 예전에 오를수 없는 산이였으나 문민정부 이후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산이다

 

고대산(高臺山)의 유래는 "큰고래"라고 부르고 있으나 이것은 신탄(薪炭)지명에서

연루된 것으로 보이며 "방고래"(땔나무를 사용하는 온돌방 구들장 밑으로 불길과

연기가 통하여 나가는 고랑을 고래하고 함)를 이르는 것으로 고대산은 골이 깊고

높아 고대산 (高臺山)이라고 한다.

 

지형도에는 '높은 별자리와 같다'는 뜻과 의미가 담긴 곳이라 하여 고태(高台)라고도 표기하였다.

고대산은 옛부터 광범한 산록과 울창한 산림으로 말미암아 임산자원이 풍부할뿐만 아니라,

목재와 숯을 만드는데도 적합한 곳으로, 부락으로 형성된 주막집들이 있다하여 신탄막(薪炭幕)이라는

지명으로 불리웠으며, 실질적 으로 한국전쟁 이전에는 참숯이 유명했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또한, 1907년 11월 4일 의병진 150명과 임진강에서 의병들을 토벌하러 파견된 일본군 보병

제 20연대 8중대와 연천에서 격전한후, 신탄막에서 흩어지고 의병진 60명이 고대산에서 다시

일본군대와 치열하게 교전한 곳으로써 우리 선열들의 용맹스러운 민족정기가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암릉옆에 야광나무 열매인지 마가목인지 헷갈린다... 넘 힘들어 확인이 힘들다... 그냥 몰라 몰라...

암릉에서 길이없는 등로로 내려서지... 정신나간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있다

꽃이고 인간들이고 간에 다들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낙엽에서 나는 먼지로 인해 목이 아프다

또다시 암릉구간을 기어 오르는데 체력을 고갈되는데 베낭에는 먹을것이 아무것도 없다

암봉에서 바라본 보계봉과 대소라치의 모습

암봉(15:25)

차탄(보개)지맥 갈림길(15:40)

드디어  차탄(보개)지맥 갈림길에 도착한다... 급격한 체력 저하로 인해 예상했던 시간보다 30분이상 더 걸렸다

보개지맥 능선으로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대소라치로 향하는데 기왕 힘들게 이곳까지 왔으니

400여m 정도 떨어져 있는 금학산으로 향한다

100m 단위로 표지판이 서 있다.

지난해 신정(2015년 1월1일)때 혼자서 호젓하게 금학산에서 보개봉, 고대산을

나홀로 종주하면서 느꼈던 그 느낌... 그땐 너무 추워 금학산을 전세낸 기억이 아련한데...

금학산 아래 이정표(15:48)

좌측 교통호 방향으로 가면 금학산 마애불상이 있는 곳이란다

마애불전경

마애불의 몸체는 큰 바위 면을 잘 다듬어 선으로 그리듯이 새겨 놓았고 머리는 별도의 바위로

만들어서 몸체 위에 올려 놓았고 갸름한 얼굴에 큰 눈, 우뚝 솟은 코는 토속적인 한국인의

얼굴이 아니라 마치 인도 태생의 부처님 얼굴 같다.

그에 비해 몸체에 새겨진 조각 솜씨는 지방 석공의 수준을 못 벗어난 듯하다.

두 손도 그렇고 입고 있는 옷의 표현에서도 형식화되고 세련되지 못했다.

전설에 의하면 고암산에 궁궐을 빼앗겨 울던 금학산을 달래기 위해 궁예가 이곳 바위에 마애불을 새겼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은 어쨌든 전설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마애불 앞에는 마애불이 소속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절터가 있다.

그 터에 본체를 잃어버린 두 개의 연꽃 대좌와 석탑 조각들이 있다.(사진, 글 인용)

언제 걸을지 모를 차탄(보개)지맥 2구간의 지장산과 화인봉, 그 너머로 왕방지맥 때 걸었던 종자산이 아련히 보인다

옛 문헌을 보면 이곳 금학산과 저 멀리 보이는 지장산과 잠시후에 가야할 고대산이

모두 보계산의 한 봉우리로 기록되고 있으며 금학산이 “보개산(寶蓋山) 내에서 최고봉”이라 하였다.

금학산, 고대산, 숙향봉, 지장산 등의 보개산의 한 봉우리로 친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많은 자취가 남아있다... 고려말 목은 이색선생이 이곳에 은거하며 살았고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 성계의 장남인 이 방우가 아버지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개국한데 대한 반감으로 이곳 보계산으로 들어와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금학산 헬기장(15:51)

헬기장에서 우측 군부대 옆에 있는 금학산 정상석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窮하면 通한다고 했던가

2년여만에 온 금학산 정상.... 예전에 없었던 데크목 광장이 새로 설치되어 있고 정수기가 있다.

이게 웬 떡이냐... 안 그래도 목이 말라서 미칠 지경인데 컵까지 있는게 아닌가

얼마나 목이 말랐던지 연달아 물을 5컵이나 마시고나니 갈증이 좀 해소되는 느낌이다

내일이 음력 10월 초하루다... 월말이자 음력으로 시월 초하룻날... 아무래도 초하루 법회에

참석하기가 힘들것 같아 어제 절에 갔다온 탓에 부처님의 가피력인가?... 감사합니다

금학산(金鶴山:947m:15:53)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과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의 형태가

학(鶴)의 막 내려앉는 형국이라 하여 금학산(金鶴山)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북으로는

숙향봉(淑香峰:473.2m)과 수정봉이 연결되어 있으며 남으로는 용정산(龍井山:672m)이 있다.

 

궁예가 송악(개성)에서 철원으로 수도를 옮길 때였다. 그는 고암산(북한 소재:김일성 고지))과 이곳 금학산

둘 중 어느 곳을 진산으로 해서 궁궐을 지을 것인지를 고민했다. 도선국사는 고암산에 지으면 단명할 것이나

금학산을 진산으로 해서 궁궐을 지으면 국운이 300년 이상 계속될 것이라는 충고를 해 주었다.

그러나 고민 끝에 궁예는 금학산이 아닌 고암산 주변에 궁궐을 세웠다. 이런 결정이 나자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한 금학산은 몇 년을 울었고 그 결과 이 산에서 난 약초는 써서 먹을 수가 없었다는 전설도 전해져 온다.

전설처럼 도선국사의 예언을 무시하고 고암산에 궁궐을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궁예의 나라는 왕건에게 넘어갔다.

실제로 초기에 그 당시 민중들이 받드는 미륵불을 이용하여 자신을 미륵이라 칭하고 선정을 베풀던 궁예는

나중에 주변 사람들을 불신하고 반대세력을 처형하는 등 광기를 보였다. 결국 자신의 부하였던 왕건(42세)을

중심으로 한 신숭겸, 복지겸, 홍유 등의 세력에 의해 궁궐에서 쫓겨났다.

왕건에게 나라를 빼앗긴 궁예는 명성산(울음산)에서 사흘을 울었다고 한다. 산야를 헤매다니던

그는 결국 부양(평강)에서 백성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되었다(918). 고려를 세우고 난 지18년 만의 일이었는데

현재 아무도 갈 수 없는 비무장지대(DMZ) 안에 태봉의 궁궐터가 있다.

 

『여지도서』 철원도호부에 "금학산()은 부 남쪽 15리에 있으며 수정산()에서 와서

고남산()의 주맥이 되었고 다시 우뚝 솟아 하늘에 뻗어 지방의 명산이 되었다.

산 위에 기우처()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해동지도』를 비롯한 조선 후기에

제작된 고지도에는 부의 남쪽 경계에 빠짐없이 묘사되어 있다.

산의 형세가 학이 내려앉은 모양을 하고 있어 유래한 지명이라 한다.

즉 오지리 방향으로 뻗어 내린 줄기는 학의 오른쪽 날개에, 이평리 방향의 줄기는 왼쪽 날개에

비유하며, 그 날개 품안에서 뻗어나온 지역인 초장족() · 이장족() 등의

마을은 학의 발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산의 정상인 기봉(, 깃대봉)에는 남이장군의 용마가 나왔다는 용탕()과 기우제를

지내던 터가 있으며, 중턱에는 마애석불 · 부도석재() 등이 남아 있다.

북쪽 산록에 위치한 칠성대()는 궁예가 소원을 빌던 곳이라고 전해오며 산세는 부드럽지만 산

속으로 들어서면 곳곳에 매바위 · 용바위 · 칠성바위 · 탱크바위 등 기암들과 암봉들이 많이 나타난다.

 '산자락 반은 단풍, 반은 진달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을 단풍과 봄 진달래꽃이 아름다운 곳이다.

셀카로 인증샷

2015년 1월 1일 금학산 정상에서

금학산 정상석에서 바라본 금학산 헬기장과 보개봉(좌측 봉우리)

금학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철원군 동송읍(東松邑)

철원평야의 핵심지역에 위치하므로 쌀 생산이 많고, 그 밖에 원예농업과 축산이 성하여

한우·젖소·돼지·닭을 많이 사육하며 사과·배·포도 및 콩·옥수수 생산도 상위권에 든다.

현재 민통선 북방의 총경지는 남방보다 훨씬 많고 경지면적이 넓은 만큼 기계화가 촉진되어 기계화영농지가 되고 있다.

문화재로는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63),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223),

고석정 및 순담(-:강원기념물 8), 동송읍 마애불상(:강원문화재자료 33), 이평일리 사지(),봉화산() 애국선열추모비, 심원사(), 신철원리 지석묘군(), 삼부연() 등이 있다.

 

순담계곡은 철원8경의 하나로 조선 정조 때 영의정 김관주()가 연말()을 이곳에서 보내며

20여 평의 못을 파고 제천()에서 순채() 풀을 가져다 심었기 때문에 순담계곡이라고 이른다.

고석정은 한탄강 중류에 있으며, 신라 진평왕 때 10평 정도의 2층 누각을 건립하고 고석정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6·25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71년 지방유지들이 10여 평의 2층 누각식 정자로 재건하였다.

이곳 건너편에는 임꺽정이 석성을 쌓고 웅거하였다는 3칸 정도의 석실이 있고 맞은편에 석성이 있다.

금학산에서 바라본 보개봉과 고대산의 모습(우측)

철원 벌판에서 바라본 금학산은 평원에 삼각뿔처럼 우뚝 솟아서 보개산, 고대산으로 이어지는 형세의 산이다.

북쪽 담터계곡이나 안양골이라면 몰라도 알을 품기에는 너무 우뚝하다. 고문헌에 산 이름은

쇠금 자 금(金)으로 쓰는데 1672년 임자년 이 산의 남쪽 관북대로를 따라 금강산 유람길에 이 산을 바라본

우암 송시열의 정적(政敵) 백호 윤휴는 풍악록(楓岳錄)에서 이 산을 금학산(琴鶴山)이라 적었다고 한다

오늘 내가 걸었왔던 차탄(보개)지맥 능선을 내려다보면서 감회에 젖는다

대소라치 내려가는 등로옆에는 모노레일과 군부대로 연결되는 식수 파이프가 보인다

다시 차탄(보개)지맥 갈림길(16:10)

데크목 계단을 지나고...

넓은 공터에 내려서니 금학산 등산 안내도가 있고...

대소라치로 내려간다

뒤돌아 본 금학산의 모습

대소라치(大松亭峙:547m:16:32)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약천동에서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윗대광골 넘어오는 고개로, 고개 아래에 있는 대송정(大松亭) 마을에 있는

큰 소나무로 인하여 ‘대(大)+솔(松)+치(峙)’의 합성어로 이루어져는데

앞 음절과의 연결과정에서 매개모음‘아’가 동반되어‘ㄹ’이 뒤로 옮겨오면서

‘대솔아치’로 불리웠는데 變音이 되어 ‘대소라치’ 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대소라치(大松亭) 마을은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백천조씨(白川趙氏)들이

산제사를 모시던 큰 소나무가 있었는데 지명은 거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고개 주위로는 군 탱크 훈련장이 보이고 대전차 방어진지와 넓은 도로가 있다.

대소라치에서 다시 돌아와 금학산 우회 임도를 향하는데 이곳도 탱크 방호벽이 있다.

갈 길은 먼데 해는 저물고 기온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금학산 우회임도(16:43)

2시간 15분전에 지났던 임도에 다시 도착한다

임도 갈림길(16:46)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헤드렌턴도 가져오지 않아서 맘이 급해진다... 해는 저물기 시작하고...

좌측으로 군부대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고...

가지 말란다... 난 갈일도 없소이다

금학산 등로 입구(17:05)

날씨도 추운데 이러고 있으니

그 동안 날씨에 무디게 반응한 건 아닌가?

자기의 계절도 모르고 말이다...

하긴 자기의 주제파악도 못하고 꼴값을 떠는

인간들도 한 둘이 아니니 꼭 네 탓만은 아닌듯 싶다

우측으로 꺽어져서 금학체육공원 방향으로 내려선다

참! 곱다... 나도 가을을 타는가 보다

금학체육공원(17:08)

체육공원으로 내려서면서 동송 택시를 호출한다

금학체육공원 주차장(17:10)

체육공원에서 주차장까지 뛰어서 내려오니 호출한 택시가 도착하고  곧 바로 노동당사로 향한다

노동당사 주차장(17:23)

노동당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애마가 외롭게 쥔장을 기다리고 있다(택시비 9,000원)

택시에서 내려 베낭을 정리한 다음에 곧바로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