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7년 5월 7일
☞ 산행날씨: 맑고 쾌청함... 미세 먼지 심각함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2.6km + 어프로치 약1.3km / 9시간 3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지장계곡 도로-동마네미 고개-608m봉-620m봉-암봉-안부-안부-헬기장-폐헬기장-갈림길
북대봉-안부-가치목-암봉-안부-629m봉-부채바위-542m봉-공터봉-다라미 고개-헬기장
공터-607m봉-안부-590m봉-안부-안부-629m봉-암봉-군삼각점봉-516.9m봉- 군부대 후문
성재-헬기장-레이더봉- 성산 갈림길-성산-다시 성산 갈림길-재인폭포 갈림길-암봉-450m봉
벙커봉-암봉-갈림길-오봉산-거북바위-굴뚝봉-가마봉-오봉산 2봉-오봉고개-수리봉
남베이 고개-남봉고개- 임도-안부-153m봉-임도 사거리-117m봉-고포리 마을-3번국도
고포리 버스정류장-은대1리 버스 정류장-예비군 훈련장 입구-어수물 버스 정류장
연천소방서-바레마을 버스 정류장-은대육교-은대삼거리-개성인삼조합-은대3리 입구
전곡성당-은대근린공원-은대리성-합수점 전망대
☞ 소 재 지: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 연천군 신서면, 연천읍, 전곡읍
퐁당퐁당으로 계속되는 휴무로 인해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진권아우와 오랫만에 지맥을 같이
타기로 했는데 젊은것이 하루전날 부산에서 어머님이 오셔서 산행을 할 수 없단다
어머님한테 효도를 하겠다는데 산이 대수인가... 그래 살아 계실때 잘하거라
난 하고 싶어도 안계셔서 할 수 없으니...안 그래도 벌려논 지맥길이 너무 많아서 고민인데
이틀전에 2구간을 끝내고 마지막 한 구간 남은 보개지맥 마지막 구간을 끝내기 위해 이른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베낭을 챙겨서 동서울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터미널 → 관인행 버스표
06시 10분경 터미널에 도착하여 표를 예매하고 돌솥비빔밥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먹은 다음에 버스를 타기 위해 동송으로 향하는 버스 플렛홈으로 향한다
06시 40분에 철원군 동송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포천시 최북단에 있는 관인면소재지로 향한다
관인버스 터미널(08:20)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미리 알아둔 택시 전화번호(031-533-1655)로 전화를 하니
금방 갈테니 조금만 기다리라 해놓고 10분이 지나도 오질않는다... 잠시후에 도착하여
지장계곡으로 향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계곡을 따라 택시를 타고 오르는데
시멘트 도로가 나왔다고 다시 비포장도로가 나오기를 반복하는데 마지막 들머리 조금
못가서는 택시 씨다바리가 걸려서 오를수가 없어서 더 이상 가자 소리를 못하겠다
향로천 8교라는 다리 입구에서 하차를 한다 (택시요금 16,000원)
향로천 8교(08:55)
지장계곡 비포장도로를 10여분 정도 올라가니 이틀전에 내려왔던 들머리가 나온다.
들머리(09:05)
초반에 아주 느린 속도로 등로를 올라서는데 주위에는 커다란 잣나무들이 간간히 보인다
서울에는 초미세 먼지로 인하여 목이 아플 정도인데 이곳은 공기가 아주 상큼하다
오늘 처음 만나는 넘이 벌깨덩굴이다
벌깨덩굴을 생약명으로 "미한화(美漢花)"라고 부르며 청열해독, 소종지통의 효능이 있어
해열작용과 종독을 풀어주며 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산에서 나는건
약초가 아닌것이 없는듯 하다
이정표를 지나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박새도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고...
개울을 지나 이틀전에 내려오면서 2번이나 미끄러졌던 로프구간을 오른다
동마네미고개(東馬踰峴:564m:09:25)
절골에서 포천군 관인면 중리의 큰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동쪽에 있는 높은 산마루를 넘는 고개’라는 뜻을
가진 곳이며 옛날에 이 고개로 말이 넘어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마’는 ‘으뜸’-‘높음’의
뜻으로 쓰였던 고어의 ‘’의 음운 변천으로 ‘말’이 되어, ‘넘는다’는 뜻의 ‘네미’와 합쳐진 지명인데
이틀전 지나온 북마네미 고개도 같은 뜻으로 보면 될 듯 싶다 본격적인 보개지맥 제3구간을 시작한다
능선을 오르면서 초반부터 암릉구간을 만난다
608m봉(09:29)
계속되는 암릉구간
620m봉(09:34)
우측 내리막길에는 로프가 보이고...
안부로 내려서는 길에는 이정표가 있다.
암릉구간의 오르 내리막은 계속되고...
칼날능선같은 암릉구간을 곡예하며 걷는데 겨울에는 상당히 위험할 듯...
개코 바위(?)
다시 낑낑대며 오르막을 올라선다
뒤돌아 보니 이틀전에 걸었던 지장산과 화인봉이 시원스레 보인다
암봉(09:40)
넓은 공터인데 면적으로 봐서는 헬기장은 아닌듯 싶다
우측 계곡 아래는 심원사가 보인다
좌측으로는 아침에 택시를 타고 올라왔던 지장계곡이 보이고...
안부(09:44)
암봉(09:48)
암릉 좌측으로 우회면서 걷는다
안부(09:50)
이정표에 우측 원심원사 방향으로는 ‘등산로 없음’ 표시되어 있다
암릉지대를 지나면서 등로는 생각보다 뚜렸하다
헬기장(09:55)
헬기장에서 좌측으로는 절터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
약초꾼들의 움막인듯 한데 폭탄을 맞은듯 폐허가 되어 버렸다
차탄(보개)지맥 마지막 등로에는 6.25 참전용사들의 유해 발굴 지역이 많이 보인다
너럭바위도 지나고...
폐헬기장(10:00)
김포산우회 시그널을 만나는데 김포오야지, 깔끄막님, 다영아빠 등 두루두루 다 잘있는지 궁금하다
갈림길(10:02)
좌측의 뚜렸한 임도를 따라가면 삼형제암과 향로봉으로 갈라지는 등로가 나오는데
지맥길을 이곳에서 등로가 아예없는 직진으로 올라가야 하며 좌측으로 가도 다시
임도를 만나지만 북대봉 정상으로는 오를 수가 없다
북대봉(北臺峰:710m:10:04)
포천시 관인면 중리와 연천군 신서면 내산리 경계에 있는 삼형제 바위 북서쪽에
있는 봉으로 정상에는 아무것도 없고 잡목만 무성한데 지도상 북대라고 한다
그런데 트랭글 앱에서는 이곳을 삼형제봉이라고 알려준다
부산 m.t.r님 ...대단하신 분 같은데 멀리서 오셨습니다
조금전 갈림길을 다시 만나는데 이곳부터는 등로가 지맥길값 하려는지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마귀할멈(?)처럼 생긴 노거수도 보이고...
등로를 걷는데 철쭉나무들이 자꾸만 태클을 걸어대니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는 느낌이다
안부(10:20)
암릉을 좌측으로 우회해서 올라가니 넓은 공터가 나온다
가치목 갈림길(加齒項:655m:10:25)
넓은 공터가 나오고 직진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이는데 가치봉과 제인폭포 갈림길로
향하는 등로인데 지맥길을 우측으로 90도 꺽어져야 하는데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이곳에서부터 포천시 관인면과 작별을 하고 좌.우 모두가 연천군 연천읍으로 바뀐다
우측으로 보니 다올님의 시그널이 보인다
내려서니 낙엽에 파묻힌 군교통호가 보이고...
희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틀전에 올랐던 지장산과 화인봉이 시원스레 보인다
등로에 핀 말발도리꽃이 외롭게 걷는 범여를 응원하는 듯...
암봉(10:50)
안부(10:51)
가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629m봉(10:53)
629m봉에 있는 군삼각점(A-8110 / 336FOB)
등로는 뚜렸하나 숲은 자꾸만 거칠어지고...
부채바위(10:58)
병꽃...참 곱다
계속해서 만나는 6.25 유해 발굴현장
벙커도 계속 만나고... 최전방이라 그런지 군시설물 이외는 보이는 것이 없다
542m봉(11:08)
군 교통호를 따라서 간다
벙커를 지나니...
조금전에 헤어졌던 군 교통호를 다시 만나고...
공터봉(544m:11:14)
급한 내리막길을 내려서는데 낙엽으로 인해 상당히 미끄럽다
여러 차례 미끄러지면서 내려서니...
군사도로가 나온다
군부대장의 경고판이 서 있는 다라미고개로 내려선다
다라미고개 터키군 순직표지판
이 분들의 희생이 아니였다면 대한민국이란 존재도 없을터인데 근데 요즘 우리는 안보 불감증에 걸린 건 아닌지...
다라미 고개(多羅美峴:11:23)
연천군 연천읍 부곡리 가마골에서 신서면 내산리 절골로 통하는 높고 큰 고개로 정상에는 6.25동란 당시
터키군이 1개소대가 전멸한 것을 애도하는 순직비가 있고 군부대 사격장 경고 표지판이 서 있는 곳이다
지명의 유래는 고구려어 계통에 많이 나오는 산의 옛 음인 ‘달'이 달아 > 다라로 음이 변하는 과정에서 산의
원음인 ‘뫼'가 발음 습관에 따라 변한 ‘미'를 합하면서 달뫼가 다라+미+고개로 합성되어 ‘다라미고개',
즉 ‘높이 솟아 있는 산 사이로 있는 고개'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다라미현(多羅美峴)'으로 한자 표기가 되어 있다.
다라미 고개 남쪽으로 내려서니 맞은편엔 군인들이 사용하는듯한
이동식 화장실이 보이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서니 군 교통호가 나온다
군 교통호를 따라서 올라서니...
헬기장(11:28)
지나온 능선들이 시원스레 보이고...
타이어로 만든 벙커를 지나 고도를 높인다
공터(11:38~50)
오늘 산행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이곳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물 한모금 마시면서 휴식을 취한다
공터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裸木
607m봉(11:55)
고도차가 그리 크지않는 능선을 걸어간다
지나가신 지가 얼마되지 않은 듯...
이곳부터 공룡 8봉이라 불리는 암릉구간이 시작되는 곳인데 자료가 없어 그냥 지나간다
안부(12:00)
590m봉(12:10)
등로에서 바라보니 다라미 고개에 이어지는 군사도로가 보이고...
공룡 6봉이라는데 암릉구간을 내려서면서 숏다리의 비애를 느끼며 개고생하면서 내려선다
내려서서 뒤돌아 보니 우회구간이 있는데 괜한 고생을 했네
안부(12:13)
우산나물
나물을 해먹기에는 조금 늦은 느낌이다
다시 암릉구간이 시작되고...
암릉구간으로 올랐다가...갈 수가 없다... 되돌아 내려오니 좌측으로 로프가 있다
군인들이 설치한 삐삐선을 따라가는게 가장 편할 듯...
조경업자들이 봤으면 침을 질질 흘릴 정도의 멋진 소나무
지나온 590m봉(좌측)과 가치봉(우측)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있는 군 사격장도 보이고...
넘어진 소나무
암릉 구간을 계속 지나고...
좌측 능선 너머로 군사격장이 보이고...
차탄(보개)지맥 능선에서 바라본 가치봉(加齒峰)
가치목 남쪽에 있는 바위 봉우리로 치아(齒牙)처럼 생긴 길고 큰 바위들이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암릉 사이로 설치된 삐삐선을 따라서 간다
계속되는 공룡 8봉 능선
몇봉인지는 모르겠으나 계속되는 암릉
힘들겠다
멋진 노거수를 내려서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2:40)
능선 좌.우로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629m봉(12:45)
등로 좌측으로 멋진 암릉을 바라보면서 내려선다
622m봉은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아예 우측으로 우회해서 걷는다
또 다른 암봉... 좌측으로 우회한다
암릉구간의 능선에 깔려있는 삐삐선 따라서 오른다
암봉(12:56)
넓은 공터를 지나니...
누워있는 소나무가 보이고...
군 삼각점봉(13:05)
군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는 유해발굴 현장의 구덩이가 있다
군삼각점이 보인다... 좌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마루금은 뚜렸하다
등로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군 교통호와 벙커를 지나 516.9m봉으로 오른다
516.9m봉(13:25)
편안한 능선을 따라서 내려가니...
계속해서 만나는 군 교통호
등로에 서 있는 앙증맞은 레이더
부대장님 세금 아까운 줄 아셔야죠...이게 뭡니까?
군부대 뒷문(13:28)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군부대가 지맥길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우측 아래쪽에는 다라미 고개 아래에 있는 사격장이 보인다
군부대 철조망을 끼고 내려서는데 초병의 눈초리가 매섭다
성재(城嶺:13:33)
연천군 연천읍 동막리 벙골에서 부곡리 가마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동막리산성의 뒤에 있는
고개라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고개 정상에는 성재산 노드부대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 민간인들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지역이다
군 후문에서 점심식사(13:33~55)
아침을 먹고는 아무것도 먹지않고 이곳까지 왔더니만 상당히 허기가 진다
군부대 후문 도로에서 간단하게 밥상을 펴고 밥을 먹는데 베낭의 무게를
줄이려고 반찬 하나에다 물을 말아서 밥을 먹으면서 캔맥주 하나에다가
후식으로 참외를 먹고 있는데 철조망 안의 軍犬 한마리가 나를 잡아 먹을듯이
짖어대니 군인 한명이 오더니만 아무말은 하지 않은채 자꾸만 쳐다본다
내가 “젊은이 자네 계급이 뭔가 물으니, 어르신 하사입니다” 한다
밥 좀 먹게 개를 데리고 부대 안쪽으로 들어가라고 하니 이곳에는 통제구역이라
들어오시면 안됩니다 하는데 나도 알어 금방 갈테니 개 좀 데리고 가라고 하니
부대 안으로 개를 데리고 간다
얼른 눈치밥을 먹고 철조망을 따라서 올라 가는데 부드러운 두릅이 보이길래 조금 수확을 하고...
등로에서 바라본 성재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부대의 모습
헬기장(14:00)
뚜렸한 등로를 올라서니 좌측으로는 헬기장이 있는데 헬기장에서 갈라지는 등로는 토토봉으로
연결되는 등로이고 보개지맥길은 넓은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져야 한다
군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니...
화생방 땡땡이종이 있고...
철조망 가기 직전에 우측으로 꺽어진다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서 올라서니...
레이더봉(14:04)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성산으로 향한다
ㅋㅋㅋ
마귀할멈(?)
성터의 흔적들이 보이고...
내가 지나온 등로가 출입금지구역이었나 보다
성산 갈림길(14:10)
이곳에서 직진으로 0.2km를 가면 성산이 나오고 차탄(보개)지맥은 좌측으로 이어지지만
내 언제 이곳을 올 일이 있으랴...지맥길에서 떨어진 성산으로 향한다
부지런히 걸어서 성산에 도착한다
성산 정상의 모습
성산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
성산(城山:520m:14:13)
연천군 연천읍 동막리와 부곡리,고문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성의 뒤에 있는 산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산 이름은 정상 일원 3면이 높이 20m가 넘는 수직절벽들로 이뤄진 성령산성(城嶺山城)으로 에워싸여 있어
그렇게 불린다고 전해지며 정상에서 동쪽 510m봉으로 이어지는 분지에는 우물터도 남아 있다.
병자호란 때에는 이 산성에서 당시 연천 현감 이창조가 주민들과 함께 청나라 군사들을 물리쳤다는 기록도 전한다.
남쪽 고문리 방면 골짜기에는 신라 때 창건됐다는 오봉사지(五峰寺址)가 있는데, 오봉사는 고려때 나라에서 경영한 절로,
연천에서 가장 큰 사찰이기도 했으며 조선조 숙종3년(1677년)에 중수되기도 했으나 계속되는 배불정택으로 조선말까지
겨우 명맥을 유지해왔다...고종14년(1877년)에는 한반도를 침입한 일본군들이 오봉사가 일본에 항거하는 의병들
은신처라 하여 사찰을 습격, 이때 승려들이 피신한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됐다.
이후 한일합방(1910)이 되면서 1914년 조선총독부에서 오봉사나 소유 山野를 일본인 소유로 인가했다.
1917년 불교계에서 김도현 스님을 오봉사 주지로 임명, 부임시키기도 했으나, 8.15해방 이후 이북지역에
속해 있다가 6.25때 대웅전과 요사채 등이 모두 불타버렸고, 6.25 이후에는 군사작전지역에 묶이면서
현재 농가 같은 건물 세 채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오봉사에서 계곡 안쪽에 오봉대선사부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1호)가 남아있다.
정상에는 성령산성(城嶺山城)이 옛 산성터가 남아 있는데 그러기에 성산(城山)이란 지명은 이 산성에서
유래한 듯 하며 지장산(地藏山)이 모산(母山)이며, 지장산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중에 서쪽 봉우리를
“성재” 또는 “성산”이라고 부르는데 산의 3면이 험준한 절벽으로 되어 있어 군사적 요충지로 천혜의 조건이다
조선후기 지리서인 〈여지도서〉와 〈대동지지〉등 에서는‘고성(高城)’ 또는 ‘성령(城嶺)’, ‘보개산고성’ 등
여러가지 지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성벽 둘레가 약 740m로 내부에는 우물의 흔적이 있으며, 산 기슭에는
깊이 16m, 높이 2.2m의 천연동굴 풍혈과 남근석 등 볼거리가 많고, 근처 한탄강변에는 재인폭포가 있다
정상에서 셀카놀이
오늘 내가 지나온 능선의 모습
다시 갈림길로 향한다
다시 갈림길(14:25)
급경사의 내리막길... 상당히 미끄럽다
힘들게 내려오니...
재인폭포 갈림길(14:27)
좌측으로 토토봉과 재인폭포로 이어지는 이정표가 있고, 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재인폭포(才人瀑布) ...사진 펌
연천읍 부곡리 가마골 입구에 있는 폭포로 높이가 8.5m로 이 폭포에는 고을 원님의
탐욕으로 인한 어느 재인의 죽음과 그 아내의 정절을 담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여지도서』는 다른 전설을 싣고 있는데, 옛날 어느 원님이 재인 아내의 미색을 탐하여 현재의
재인폭포에서 재인으로 하여금 광대줄을 타게 한 후 줄을 끊어 죽게 하고 재인의 아내를 빼앗으려 하였다.
그러나 절개 굳은 재인의 아내는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원님의 코를 물어뜯고 자결하였다고 한다.
그 후부터 원님의 코를 물었다 하여 ‘코문리'라 칭하게 되었으나 차츰 어휘가 변하여 ‘고문리(古文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한편으로 같은 책 연천현 산천조에는, “재인폭포는 연천관아에서 동쪽으 로 20리
거리인 원적사(圓寂寺) 동구에 있는데, 벽립해 있는 양 절벽 사이로 수십 길 높이를 수직으로 흐르며 떨어진다.
옛날에 재인이 마을 사람과 함께 폭포 아래에서 놀다가 그 마을 사람 아내의 미모가 뛰어난 고로
흑심을 품은 재인이 자기 재주를 믿고 그 자리에서 장담하며 말하기를 ‘이 절벽 양쪽에 외줄을 걸고
내가 능히 지나갈 수 있다'고 하였다. 마을 사람은 재인의 재주를 믿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자기 아내를
내기에 걸게 되었다...잠시 후, 재인은 벼랑 사이에 놓여 있는 외줄을 타기 시작하는데, 춤과 기교를 부리며
지나가는 모습이 평지를 걸어가듯 하자, 재인이 반 정도 지났을 때 마을 사람이 줄을 끊어 버려 재인을
수십 길 아래로 떨어져 죽게 하였다. 이 일로 이 폭포를 재인폭포라 불리우게 되었다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측의 등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성산숲길 표지판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희미한 마루금을 따라서 가다가보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암릉길을 걷다보니 우측으로 연천 동막골이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동막골의 모습
1945년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 11월 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오늘에 이르며, 조선 초부터 요업이 번창했던
곳으로 ‘독막[陶幕, 甕幕]’으로 불리다가, 차츰 어휘가 변하여 ‘동막’으로 굳어져 ‘동막리(東幕里)’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동막골, 둔치, 망근도리, 벙골, 부물현, 삼봉동, 샘골, 왜둔치 등이 있고 동막골은 부물현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망근도리는 동막리 태실 옆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망건처럼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왜둔치는 여내골 동쪽에 있던 마을로 기와를 굽던 곳이라 하여 기와말이라고도 불린다.
암봉(14:35)
암봉에서 바라본 연천읍내
그리 먼거리도 아닌데 미세먼지의 영향인지 연천읍내와 그 너머 한탄(왕재)지맥 능선에 있는 청화산이 멀게만 느껴진다
전망대 가는길이라는데 어디가 전망대를 말하는지?
암릉구간을 지나니...
450m봉(14:40)
이정표를 따라서 좌측 능선으로 내려선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올망졸망한 암릉길을 지나니...
낙엽이 쌓인 등로는...
길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숲의 자유(힐링)이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벙커봉(15:05)
보는 이에 따라서 다르긴 해도 범여의 눈에는 거북바위처럼 보인다
성터인지 집터인지 모를 돌담이 보이는 곳을 지난다
좌측으로 내려서니...
일반 등산객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성산숲길 2코스 표지판이 보이고...
오름길에는 층층바위로 불리는 판석(版石) 보인다
암봉(15:10)
좌측으로 우회해서 내려가니...
또다른 암봉이 나오고...
우측으로 우회하여 암릉구간을 통과한다
지나온 성산의 모습...천혜의 요새임이 분명하다... 선조들의 선견지명 참으로 대단하다
갈림길(15:14)
이곳에서 제2 등산로 입구로 가리키는 등산로를 버리고 좌측의 희미한 길로 들어선다
오봉산(五峰山:361.1m:15:15)
성산을 지나 수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5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이를 합쳐서
오봉산이라고 부르며 오봉산이라 표기해놓은 이곳은 오봉산의 4봉으로 정상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과 삼각점처럼 보이는 대리석 말뚝이 있고, 그 아래는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한 4등 삼각점(△ 철원 459 / 2007 재설)이 있다
오봉산 정상의 4등 삼각점
오봉산 정상의 모습
낙엽이 수북한 좌측 능선으로 내려선다
거북바위(15:20)
희미한 등로를 따라가다가 고도를 조금 높혀서 올라서니...
굴뚝봉(15:25)
오봉산 제3봉쯤 되는듯 한데 확신이 서질 않는다
갈수록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벌목지대가 나오기 시작하고...
유해발굴 현장인지 웅덩이가 보이고...
가마봉(釜峰:15:33)
연천군 연천읍 통현리 건쟁이 동쪽에 있는 봉우리로 가마 형상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오르진 못하고 우회해서 지맥길 등로를 이어간다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오봉산 2봉(210m:15:47)
세찬 바람탓인지 생각보다 날씨는 춥다
등로에서 바라본 연천읍
그 너머로 지난해 수헌아우와 같이 걸었던 신천(왕재)지맥 청화산과 군자산이 아련히 보인다
오봉고개(五峰峴:15:53)
연천읍 통현리 건쟁이에서 고문리 오봉으로 넘어다니던 고개로 임도처럼 보이는 넓은 공터가 있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이곳에서 약초와 나물을 채취하는 약초꾼 2명을 처음으로 만난다
오봉고개를 지나면서 너덜길에 잡목이 우거져 오늘 산행중 최악의 코스이다
너덜길에 잡목이 우거져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뒤돌아 본 오봉산의 모습
등로로 올라서서 좌측 능선을 따른다
돌로 만든 벙커가 보이고...
군시설인듯 커다란 웅덩이가 있다
수리봉(220.9m:16:05)
연천군 연천읍 통현리 건쟁이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 북쪽 옥산리와 경계에 있는 봉우리인데 정상에는
지적 삼각점이 있고 군 시설물이 보이면 지맥길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90도 급하게 꺽어져 내려간다
오봉산 오봉중에 제1봉에 해당되는 봉우리이기도 하다
수리봉 윗쪽에 있는 건쟁이 마을은 팔판서 마을로 유명한데 통재 동쪽에 있는 마을이며, 조선 후기까지
8명의 판서가 배출되는 등 강릉 김씨의 권세가 하늘까지 닿을 정도였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군삼각점처럼 생긴 지적 삼각점이 있다
수리봉에서 급하게 내려서는데...
돌로 쌓은 군교통호가 보이고...
아주 미끄러운 급경사를 내려서니 잡목으로 인해 등로는 잘보이지 않는다
잡목을 헤치고 우측으로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넓은 임도를 따른다
넓은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들어선다
묘지처럼 보이는 군벙커를 지나니...
남배이고개(16:15)
연천군 연천읍 통현리에서 고문리를 넘는 고개로 넓은 공터가 있는 곳인데
옛날에 젊은 두 남매가 이 고개를 넘다가 서로 남봉이 났다하여 붙혀진 이름이란다
공터를 지나면서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지니...
다올선생의 시그널이 반갑게 범여를 반긴다...안 본지 오래되서 잘 계시는지 모르겠다
등로 좌측에는 잘 관리된 묘지가 있고...
묘지를 지나 넓은 임도를 따르다가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들어선다
남봉고개(16:23)
연천군 연천읍 통현리에서 고포리를 지나는 고개로 78번 지방도가 지나는데 도로가
새롭게 개설된듯 하며 교통량은 거의 없는 편이다... 절개지 아래로 급하게 내려선다
남봉고개 북쪽 방향으로 갔다가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군부대 경고판이 있는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버리고 좌측 배수로 방향으로 올랐다가 잡목의 저항으로 개고생을 한다
후답자들은 이 등로르 고집하지 말고 우측 임도로 따라서 오르는게 편한듯 하다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임도를 따라서 좌측으로 가다가...
임도를 버리고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들어선다
잡목의 강한 저항을 받으면서 가다보니...
안부(16:35)
조금전에 헤어졌던 임도를 다시 만난다.
153m봉(16:40)
153m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넓은 임도를 따르다가...
다시 좌측으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들어선다
임도 사거리(16:48)
직진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군 참호가 보이고... 우측의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간다
등로 좌우에는 재선충으로 인해 벌목하여 쌓아놓은 소나무 무덤들이 많이 보인다
117m봉(16:52)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고 차탄(보개)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좌측의 넓은 임도를 따라서 내려가는데 우측으로 한탄(왕재)지맥의 끝자락이 보인다
임도를 내려가니...
이곳에서부터는 차탄(보개)지맥 능선은 사라지고 도로를 따라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고포리 마을(16:57)
연천읍 통현리 가장 남쪽에 있는 마을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마을 앞 벌판에서 곡사포 부대가 주둔한 바 있다.
이후 마을이 형성되자 부대장이 곡사포 부대와 인연이 있다 하여 고포리라고 명명하였다. 현재 통현 2리 지역이다.
가사평(袈裟坪) 들녘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들판 가운데로 지나가는데 이곳이 연천에서 가장 넓은 들인 가사평이다
가사평(袈裟坪)은 전곡읍 은대리·전곡리, 연천읍 통현리에 걸쳐 있는 평야. 군 제일의 곡창지이다.
이 곳의 토질이 점토질 성분인 까닭에 이른 봄 해빙기나 여름철 우기 때 인마의 통행이 어려울 정
도로 질고 미끄러워 한탄강에서 통현리까지의 20리 벌판길을 통과하자면 탈진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가사평이란 지명은 예전에 어떤 스님이 이 벌판을 지나다 진흙속에 넘어지고 자빠지기를 거듭하여
걸음을 옮길 수 없자, 입고 있던 가사를 벗고 갔다는 사실에서 유래되었다.
연천읍내의 아파트와 좌측으로 한탄(왕재)지맥 능선인 청화산이 보인다
3번국도(17:07)
들판을 가로질러 도착한 곳이 전곡읍에서 연천, 철원으로 이어지는 평화로라 불리는 3번국도에 도착한다
고포리 버스 정류장(17:08)
이곳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전곡읍 방향으로 무작정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조금전에 지나온 차탄(보개)지맥 능선
도로를 따라서 정처없이 걷는다
은대1리 버스정류장(17:13)
연천읍에서 전곡읍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연천읍은 군청소재지를 비롯한 행정기관이 있긴 하지만 연천읍보다
전곡읍이 3배이상 크며 연천군의 상업중심지인 읍이라고 한다
연천군 예비군 훈련장 입구(17:17)
자동차 정비공장도 보이고...
은대4리 (어수물) 버스 정류장(17:23)
어수물(御水井)은 연천군 전곡읍 은대4리에 있는 마을로 조선조 태종 이방원이 고려 충신인
이양소를 만나기 위해 친히 연천으로 행차하던 중 이 곳 우물에서 물을 마셨다 하여 유래되었다.
연천 소방서(17:27)
국군병원도 지나고...
바래마을 버스 정류장(17:33)
은대리 마을 중 가장 우묵한 골짜기 안에 있어 유래된 뫼안마을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은대육교(17:39)
은대육교 아래로 지나가는 경원선 철길의 모습
3번국도에서 바라본 전곡읍(全谷邑)
조선시대에는 양주군 영근면(嶺斤面)이라 칭하였으며 1914년 군·면 폐합 때 연천군에 편입되었다.
1941년 전곡면으로 개칭되었고 1985년 전곡읍으로 승격되었으며, 8·15광복 후 1945∼1951년 5월까지
전곡(全谷)·은대(隱垈)·신답(薪畓)·고릉(高陵)·마포(馬浦) 등 5개 리는 공산치하에 있다가 수복되었다.
북동부에는 한탄강(漢灘江)의 지류인 차탄천(車灘川)이 흐르며 한탄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관류(貫流)한다.
남부와 중부에는 비교적 산지가 많은데 그 중 마차산(磨叉山;馬車山)·옥녀봉(玉女峰) 등이 유명하다.
쌀 재배가 성하며 그 밖에 잡곡·콩·채소를 성행하며, 경원선 철도와 서울과 연결되는 국도가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다.
전곡리 남쪽 한탄강 철교 근처에는 곡류·계곡·절벽 등의 자연미를 자랑하는 유원지가 있어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며,
특히 한탄강 유원지 근처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문화재로는 전곡리 선사유적지(全谷里先史遺蹟址:사적 268), 연천 은대리의 물거미서식지(천연기념물 412),
수철성(水鐵城), 양원리(兩遠里) 지석묘 등이 있다.
은대 삼거리(17:45)
오랫만에 새마을 운동 표시석을 만난다
전곡읍 은대리(隱垈里)의 모습
본래 양주근 영근면 지역으로서, 고려 멸망 후 김양남(金揚南)이 불사이군의 절개로 음터(隱垈)에 은거했다는
고사에 의하여 그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자연마을로는 개와막(瓦幕), 구호주택, 네즈뫼, 명천동(明川洞), 뫼안,
바레, 벌말(坪村), 새통재, 안말(안전곡), 음터(隱垈, 盤谷) 등이 있다.
구호주택은 전곡읍사무소 북쪽에 있는 마을(은대3리)로, 한국전쟁 후 피난민을 구호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주택이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네즈뫼는 명천동 북쪽에 있던 마을로 옛날 네 집이 모여 살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음터는 은대리 성지 북쪽, 우묵한 지형 안에 있는 마을로 조선 태종과 동학동방(同學同榜)이며 오랜 교유를 했던
고려 말의 진사 김양남이 망국의 한을 품고 절개를 지키며 은거한 곳이라 하여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개성인삼조합 앞(17:51)
은대3리 입구(17:55)
고포리에서 이곳까지 도로를 따라서 5.5km 가까이 걸어 오니 매연탓인지
목이 아프고 발바닥에는 불이 나는 느낌이다... 산꾼이 산을 타야지
도로를 걷는건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모양이다... 허기도 지고 먹을 거라곤
쥬스와 초콜렛 하나뿐... 길바닥에 주저앉아 쥬스를 마시면서 잠깐동안 휴식을 취한다
천주교 전곡성당 앞(18:00)
전곡성당을 지나니 Y자 갈림길이 나오고...좌측으로 향한다
(주)세림미트 간판이 있는 도로를 끼고 좌측으로 향한다
은대근린공원 입구(18:10)
근린공원으로 들어서니 야외공연장도 보이고...
공원을 따라 가다가 좌측으로 올라서는데...
공원 우측에는 팔각정과 화강암으로 조각된 12지신상이 보인다
베트남 참전 기념탑을 지나니...
게이트볼장 신축현장이 나오고...
전곡지게차 건물이 지맥길을 가로막고 있다
지게차 건물을 빠져나오니 전곡24시 셀프세차타운이 나오고 도로가 보인다
도로를 가로 지르니 공터가 나오고 공터를 지나니 또다른 도로... 우측으로 오른다
넓은 공터에 올라서니... 좌측으로 노란색의 연천보건의료원 건물이 보인다
팔각정이 보이고 잔디를 심어논 이곳이 연천 은대리성이라고 한다
연천 은대리성(사적 제469호:18:20)
연천군 전곡읍 은댈리에 있는 연천 은대리성은 한탄강과 차탄천의 합류지점에 형성된
삼각형의 하안단구 위에 축조된 삼국시대의 성곽으로 한탄강과 합류하는 곳이 삼각형의
꼭지점을 이루고 이곳에서 동쪽으로 가면서 점차 넓어지는 형태이다
한탄강과 차탄천의 합류지점에 형성된 마여울은 수심이 낮아 강을 쉽게 건널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인데, 은대리성은 이곳을 통제하는 고구려의 성이다
남벽과 북벽은 각각 자연 절벽을 그대로 성벽으로 활용했으며 동벽은 동쪽에 형성된
개활지를 가로질러 축조되었다.
성의 규모는 동서 길이 400m, 남북 길이 130m로 총 길이는 1,005m 정도이다
연천 은대리성은 연천호로고루, 연천 당포성과 함께 임진강과 한탄강이 지류를 만나
형성되는 삼각형의 대지위에 조성된 독특한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으로 삼국시대
고구려의 남진 경영과 관련된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은대리성 끄트머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한탄강이 보이기 시작하고 차탄(보개)지맥 끝 지점이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소나무숲을 지나니 공사 현장이 나오고...
전망대가 보이면서 차탄(보개)지맥 합수점에 도착한다
차탄천 전망대(18:25)
9시간 30분의 사투끝에 25km... 당일 산행으로선 조금 무리였지만 무난하게 차탄(보개)지맥을
마무리하면서 한탄강과 차탄천이 만나는 이 지점...범여로서는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늘 휴전선에서 가까운 군 지역이라 가슴 조이며 걸었던 한북정맥에 딸려있는 지맥길
이제 12개 지맥중에서 화천(적근)지맥 한 군데만 남았으니 속이 후련하다
한탄강과 차탄천이 합수점 전망대에서 인증샷
저 아래 합수점으로 접근할 수가 없다... 천길 낭떠러지이다
차탄천(車灘川)은 강원도 철원부 서쪽 고을파(古乙坡)이고 남으로 흘러 양주(楊州)
유탄(楡灘)으로 유입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도 이와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광여도』, 『여지도』에는 연천 남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으로
표기되여 있고, 『팔도군현지도』, 『조선팔도지도』에서는 한탄강과 합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곡리에서 한탄강과 합류하며 순우리말로 수레여울이라고 불린다
차탄(보개)지맥 합수점에 있는 삼형제 바위
연천군 전곡읍 은대리성지 서쪽에 한탄강과 장진천이 합류하는 곳에 있는 바위로 한 과부가 아들
삼형제를 기르는데, 우애가 지극하여 여름에 일하다가 한탄강에 목욕 하러 갔는데, 막내가 잘못하여
물에 떠내려 하는 것을 본 형 둘이 구하려 하다가 모두 빠져 죽었다. 아들을 잃은 과부가 애통하여
강가를 헤매면서 울부짖은 지 석달만에 삼형제의 영상이 강 가운데 나타나더니 갑자기 바위로 변하였다고 한다.
그 후부터 해마다 사람이 빠져 죽으므로 큰 바위에 제단을 모으고 제사를 지낸다 한다.
전망대 앞에 있는 삼형제바위 안내판
합수점에서 전곡읍내로 가면서 바라본 한탄강... 그너머로 신천(왕방)지맥과 문산(감악)지맥 능선이 보인다
전곡읍내로 가면서 만난 은대리성 동벽
은대리성 동벽을 지나면서 고포리에서 합수점까지 약 7km 가까이 도로를 따라서 걸었더니만
발바닥에서 불이 나는 느낌이라 도저히 더 걸을 수가 없기에 지나가는 차량을 상대로 히치를
시도해 보려 했지만 외곽도로라서 차량이 거의 다니지 않고 전곡 택시를 콜했지만 감감 무소식
그야말로 강원도 포수다... 계속해서 걷다보니 전곡 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영자네서 식당(19:20)
나홀로 산행을 하다보니 늘 베낭 무게와의 전쟁을 벌여야 하는 탓에 먹는걸 줄이게 된다
오늘 역시 거리가 만만찮아 먹거리가 부족한 탓에 지난해 왕방지맥 졸업때 들렸던 전곡 시장안
영자네서 식당에 들려 소머리 국밥에다 맥주 2병을 게눈 감추듯이 먹고나니 정신이 든다
전곡버스 터미널(19:57)
식당에서 후식으로 커피까지 마신 다음에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터미널로 와서 소요산역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소요산역(20:30)
버스에서 내리는데 열차가 출발해 버린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20시 57분 열차를
서울로 향해 4번을 버스와 전철을 갈아탄 끝에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었다
그런데 아침에 간 관인이나 전곡이나 거리는 비슷한데 교통비는 몇곱이나 차이난다
전곡에서 집에까지 오는데 차비는 3.350원... MB가 잘한건 환승제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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