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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차탄(보개)지맥(終)

차탄(보개)지맥 제2구간 - 대소라치에서 동마네미 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17. 5. 5.

☞ 산행일시: 2017년 5월 5일

☞ 산행날씨: 맑고 쾌청함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8.5km + 어프로치 약5.5km  / 6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동송터미널-철원여고 앞-금학정 입구-주차장-금학체육공원-금학산 입구-우회도로

                 탱크방호벽-대소라치-넓은공터-벙커봉-보개산-암봉-안부-650m봉-암봉-무명봉

                 안부-710m봉-안부-676m봉-무명봉-벙커봉-651m봉-암봉-안부-벙커봉-북마넘이재

                 벙커봉-벙커봉-암봉-공터-안부-벙커봉-잘루맥이 갈림길-지장산-우회로갈림길

                 석대암갈림길-화인봉-벤취봉-너럭바위-암봉-동마네미재-지장계곡 도로

소 재 지: 강원도 철원읍, 동송읍 /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 포천시 관인면


5월 1일부터 시작되는 퐁당퐁당으로 진행되는 휴일... 나같은 자영업자에게는 해당 사항이전혀 해당사항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오질 않으니 상당히 피해가 막심하다

우린 최악의 경기불황을 겪고 있고, 설령 일감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일할 사람이 없으니

예전처럼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가 되어버린 레드오션 직업이 되어 버린 셈이다.

사람들은 불경기네, 어렵네 하면서도 다들 놀러를 가버렸는지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질 않는데

나혼자 멀건히 사무실 지킨다는 것도 그렇고 하여 지난해 첫구간을 끝낸 백운지맥을 가려고

자료를 준비했는데 원주쪽으로 향하는 버스고 열차고 표가 다 매진되어 버렸다.

그래서 꿩대신 닭으로 생각하고 나선 곳이 차탄(보개)지맥 2구간이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06시 20분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마신 다음에 표를 예매하고 버스타는 플렛홈으로 향한다

06시 40분 동송행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포천이다

이곳부터는 웬만한 동네를 다 거친 다음에 동송터미널을 향한다

동송터미널(08:45)

동송터미널에 내려서 도로를 나와 철원여고 방향의 도로를 따라서 무작정 걸어간다

도로에서 바라본 금학산의 모습

철원 여.중고 정문(08:55)

금학 약수터(08:58)

금학정 표시석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오른다

금학산 안내판이 보이고...

주차장을 지나 금학체육공원으로 향한다

금학체육공원(09:05)

金鶴山神 표석

금학체육공원 옆에는 무속인들이 설치한 듯한 표석이 있고 번이 보인다 

金鶴山亭 팔각정에서 본격적인 산행을 위해 스틱을 펴면서 산행준비를 마치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금학산 갈림길(09:15)

금학산 우회길을 향해서 걸어간다

지난해 10월 30일날 내려왔던 길을 따라서 다시 올라간다

분홍색 병꽃들이 많이 보인다

병꽃(꽃말:전설)

꽃은 통 모양으로 흰색 또는 붉은색을 띠며 키가 약 4m인 곧추서는 줄기에 달린다.

이 속에 속하는 대부분의 식물은 잎이 폭이 좁고 타원형이며, 무리져 피는 꽃은 길이가 3.5㎝ 정도이다.

폭은 좁으나 긴 씨꼬투리는 2쪽으로 벌어진다.

 

한국에는 병꽃나무를 비롯해 골병꽃·붉은병꽃나무·통영병꽃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이중 병꽃나무와 붉은병꽃나무가 가장 흔하다. 병꽃나무는 5월에 꽃이 피는데

 처음에는 황록색으로 피지만 나중에는 붉은색으로 변한다. 병꽃나무의 꽃받침은 가

운데가 나누어져 있으나, 붉은병꽃나무는 밑까지 나누어져 있어 이 2종을 구분할 수 있다.

통영병꽃나무는 전세계에서 한국의 경상남도 통영시 미륵산에서만 자라고 있다.

버들강아지도 다 피어 버렸구나

비포장도로를 따라서 나홀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걷는것도 수행이라 생각하면서...

조팝나무(꽃말:노련하다)

꽃핀 모양이 튀긴 좁쌀을 붙여놓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조팝나무라고 한다.

키는 1m 정도이고, 전국의 산기슭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며 흰색의 꽃이 4월 초순에 촘촘한

우산살 모양으로 무리져 피며. 꽃이 진 뒤에 나오는 난형의 잎은 어긋나는데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에는 잔톱니가 있다. 열매는 9월에 익는데 익은 후 벌어진다.
방향성·밀원식물이며 추위에도 잘 견디며, 최근에는 꽃꽂이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고 정원·도로변·공원 등에 관상용으로 심으며 번식은 꺾꽂이로 한다.
관상식물로 가치가 매우 높으며 뿌리에 알칼로이드를 함유하여 치열제,

말라리아 치료제로 사용하고 토탐증 치료에도 쓴다

지난해 보이지 않았던 군 시설물도 간간히 보인다

차탄(보개)지맥 임도(09:45)

차탄(보개)지맥은 이 임도를 가로질러 금학산 아래까지 올라가야 한다 

지난해 늦가을 개고생하면서 올랐던 금학산 저 능선은 녹음으로 우거져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조금을 더 걸어가니 임도 주위에 여러 종류의 야생화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노란색의 피나물꽃... 참으로 이쁘게 피었구나

당개지치도 보이고...

올해는 첨으로 현호색을 만난다

오랫만에 만나는 졸방제비꽃... 제비꽃은 하도 종류가 많아 볼 때마다 헷갈린다

바람둥이꽃 민들레... 자기에게도 눈길 한번 달라고 애걸복걸을 한다

군사도로인 임도를 걸으면서 야생화에 취해 있는 사이 탱크 방호벽이 보인다

탱크방호벽 사이로 잠시 후 올라야 할 보개산이 보인다

금학산을 내려오는 도로를 만나면서 동송터미널에서 이곳까지 4km의 소득없는 접속구간이 끝나고 본격적인

차탄(보개)지맥이 시작되는데  좌측으로 지장산이 우람하게 보인다

대소라치(大松亭峙:547m:10:00)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약천동에서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윗대광골 넘어오는 고개로, 고개 아래에

있는 대송정(大松亭) 마을에 있는 큰 소나무로 인하여 ‘대(大)+솔(松)+치(峙)’의 합성어로 이루어져는데

앞 음절과의 연결과정에서 매개모음‘아’가 동반되어‘ㄹ’이 뒤로 옮겨오면서 ‘대솔아치’로 불리웠는데 變音이

되어 ‘대소라치’ 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대소라치(大松亭) 마을은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백천조씨(白川趙氏)들이 산제사를 모시던 큰 소나무가 있었는데

지명은 거기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고개 주위로는 군 탱크 훈련장이 보이고 대전차 방어진지와 넓은 도로가 있다.

이곳에도 탱크 방호벽이 있고 고개에는 오거리 도로가 보이는데 좌측으론 담터계곡으로 가는 뚜렸한 도로가 있다

본격적이 차탄(보개)지맥 능선을 밟는데 이곳은 최전방에 속하는 군부대 지역이라서 모든게 조심스럽다

조팝나무도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뒤돌아 본 대소라치와 금학산의 모습

군 시설물인 넓은 공터를 지나서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

청순한 각시붓꽃도 보인다

대소라치에서 보개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숲속이라 아무것도 조망할 수가 없고 철쭉만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시원한 바람이 간간히 불어와서 산행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이다

호젓한 등로를 나홀로 걷는 이 기분... 뭘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쿨하다

이젠 나홀로 산행이 습관이 된 탓에 누구와 동행을 하는 산행엔 괜스레 어색하기만 하다

2015년 1월 1일에 금학산 - 보개산 - 고대산을 걸으면서 추운 날씨에 개고생을 하면서

걸었던 이 능선... 綠陰이 우거진 때 다시 걸으니 새로운 맛이 난다

벙커봉(634m:10:20)

개산(山:752m:10:28~10:50)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과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그리고 연천군 신서면에 걸쳐있는 보개산 보개봉의

쪽방향으로는 금학산과 남쪽방향으로는 지장산으로 이어지는 차탄(보개)지맥의 산줄기가 보이고있다.

 

금학산과 고대산은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준령급 산으로 DMZ와 청정지역 철원평야를 조망할 수 있는

금학산은 6·25 때 (평강을 중심으로 철원과 김화지역 일대를 아울러 이른바 '철의 삼각지(iron triangle)'로

불린 곳이며 이 지역은 군사적으로 우리나라 수도 서울을 탈환하는데 요충지였다.

때문에 6·25 때 중공군과 북한군이 이곳 철원지역에 군사물자와 병력을 대거 투입하여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6·25때 열흘 동안 고지의 주인이 24번 바꿔가며 선배 군인들에 고귀한
영혼들이 뭍힌곳이다

보개산에서 바라본 금학산의 모습

산의 형태가 학(鶴)의 막 내려앉는 형국이라 하여 금학산(金鶴山)이라 불리게  저 산은 패자의 역사를

가슴속에 묻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궁예가 철원을 도읍으로 정하고 태봉이란 국가를 건설하여 초반에는

엄청 잘 나갔으나 나중에 폭정을 일삼다가 한때 자기 부하였던 고려 왕건에게 멸망하는 비운을 맞았다.

늘 역사는 승자의 기록으로만 남는다... 지금 이 나라는 헌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하야라는 불행을 맛보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할 날이 몇일 안 남았는데...엄청나게 많은 후보들이 난립하여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들 난리지만 백척간두에 서 있는 이 나라를 어떻게 구하겠다는 비젼은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되려는 자들이여!... 이것 하나만 기억하시요... 民心이 天心이라는 걸

셀카로 금학산을 배경으로 인증샷

보개산 정상에서 바라본 지장산과 담티계곡의 모습

궁예의 恨많은 哀歡이 서린 철원군 동송읍의 모습

철원은 6·25 전쟁 당시 남과 북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던 곳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역사책을 펼쳐 보면 짧은기간이지만 한 국가의 수도로서 한반도 통일을꿈꾸던 도시이기도 하였던 곳이었다.

철원은 수도로서의 역사가 짧았던 탓인지 고려라는 중세 국가가 조명 받기 전까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있었다.

 

궁예(弓裔:?~918)가 905년에 신라 치세말기에 고구려의 부흥을 부르짖으며 애꾸눈의 한 사내가 새로운 나라인

태봉국을 건국했는데 그의 이름이 궁예였다.궁예는 당시 많은 민초들은 불안한 마음에 사회가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믿었던 미륵불을 자처했지만 실상 그가 죽을때는 자비로운 미륵이 아닌 폭정을일삼는 군주로서 민초들의

기억에 남는다.

 

궁예는 신라 제47대 헌안왕 또는 제48대 경문왕의 아들이라는 기록이 있지만어디가 정확한지는 알 수가 없고,

후궁의 아들로 태어난 신라 왕족의 후예였지만 어릴때 왕궁에서 쫓겨나 거지, 나뭇꿋 등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겨우 배고픔을 달랬고, 나중에 절에 들어가 중이 되었는데 그것 역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가슴속에 늘 큰 뜻을 품고 있었는데 하나는 ‘삼국통일’ 또 하나는‘모두가 잘사는 미륵정토 건설’이었다

궁예(弓裔)라는 이름도‘활 잘쏘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후예’ 라는 뜻이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경기, 황해, 강원지역을 중심으로 901년에 후고구려를 건국하였고

904년엔 국호를 마진(摩震)으로 바꾸었고, 911년엔 태봉(泰封)으로 다시 고친다.

마진은 ‘摩訶震檀’의 줄임말. ‘마하’는 범어로 ‘크다’는 뜻이고 ‘진단’은 동방을 말한다.

또 주역에는 ‘태(泰)는 천지가 어울려 만물을 낳고 상하가 어울려 그 뜻이 같아진다’고 했고, 봉(封)은 봉토를 뜻한다.

결국 궁예는 ‘영원한 평화가 깃든 평등 세계’, 즉 대동방국의 기치를 높이 든 것이다.

“비겁한 자의 친구가 되느니 정직한 자의 원수가 되는 게 낫다”고 설파한 궁예.
그는 철원(896년·현재 구철원 동송)~

송악(898년)에 이어 905년 다시 철원(이곳 풍천원)에 도읍지를 정했으며 철원에만 두번이나 도읍을 정한 것이다.

궁예가 뜻을 폈던 시기에 신라 천년왕국이 뿌리째 무너지면서 백성들은 유리걸식하고 있었다.

백성들은 미륵불을 자처하고 나타난 궁예에 홀딱 빠졌고 상이 끝나는 날 홀연히 출현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미륵불이 현신했다니까. 그는 세상을 구원한다는 원대한 포부를 세운 것이다.
철원 환도 이후 궁예는 907년 무렵 삼한 땅의 3분의 2를 품에 안았다.

그러나 그 후 폭정을 일삼다가 918년 자신의 부하였던 그려 태조 왕건에게 멸망하고 만다

철원을 내려다보며 옛 역사에 대한 만감이 교차한다역사란 예나 지금이나 승자의 역사인가 보다...

퍠한 궁예는 모든 역사책에 악역으로만 등장하니...

북서쪽으로 눈을 돌리니 큰고래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지명 고대산 정상과 좌측으로 대광봉이 보인다

북동쪽으로는 우측에 동송읍, 지난해 10월 30일에 나홀로 걸었던 차탄(보개)지맥 1구간 능선인 숙향봉 너머로

북한땅에 있는 김일성 고지라고 불리는 오성산이 아련히 보이는데 저 북녘땅에는 요즘 귀때리기 새파란

젊은 친구가 권력을 쥐고, 핵이란 아주 위험한 장난감으로 전세계를 겁박하고 있는데, 대다수 국가들이 그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압박을 가하고 있건만 이 나라의 진보정당과 진보주의자들은 입도 뻥끗 안하고 있다

우리민족이라 그런가... 그런 넘이 자기 고모부를 총살하고 자기에게 충성하는 고급 간부가 회의장에서

잠깐 졸았다고 고사포로 시체의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리는 그런자들의 두둔하셔

제발 정신들 차리소...

서쪽으로는 지난해 걸었던 한탄(왕재)지맥 능선이 아련히 보인다 

금학산을 다시한번 바라보고 20여분간 보개산 정상에서 혼자 놀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헬기장 아래로 내려서니 생각보다 등로는 뚜렸하다

뚜렸한 등로 좌측의 위험한 곳에는 로프로 안전 시설들을 해놨다

암봉(10:55)

암봉에서 바라본 용정능선의 모습

철쭉이 이제사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하고...

푹신한 낙엽길을 편하게 걸어가는데 사람이 다닌 흔적이라곤 거의 보이지가 않는다

그렇다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는 곳도 아니고...그러나 등로는 상당히 뚜렸하다

코끼리처럼 생긴 바위도 지난다

전생에 뭔 악연으로...

아무런 표식은 없어도 특별히 알바할 일은 없을듯 싶다

말발도리(꽃말:애교)

 말발도리는 꽃이 진뒤 달리는 열매가 말발굽에 끼는 편자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가지가 바람에 날리면 꽃들이 애교를 떠는 듯 사랑스럽게 보이는데, 말발도리랑 형제뻘 되는

만첩빈도리(꽃이 겹꽃으로 꽃잎이 다닥다닥 붙음)는 가지를 시원스럽게 아래로 늘어뜨려 꽃을 피운다

 

말발도리는 범의귀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세계적으로 60종이 분포하는데, 히말라야로부터

아시아 동부에 이르기까지 자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빈도리, 만첩빈도리, 애기말발도리,

둥근잎말발도리, 말발도리, 물참대, 바위말발도리, 매화말발도리 등 10여 종(변종)이 자생한다

안부(11:05)

우측으로 연천 내산리와 좌측의 담터고개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650m봉(11:13)

오랫만에 선답자의 시그널을 만나는데 바랑산 월성봉이란 분이다

바랑산이라면 금남지맥에 있는 산인데 아마 논산에 거주하시는 분이 아니신지?...

암봉(11:16)

무명봉(11:18)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철쭉능선이 나오는데 능선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산벚꽃 한그루에서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안부(11:25)

710m봉(11:27)

내리막길에는 가느다란 로프가 보이고...

신갈나무 밑둥에 월세사는 산괴불주머니

등로 우측 응달 능선에는 이제사 나무들에 새순이 나오기 시작하고...

안부(11:37)

안부에서 676m봉 오르는 등로에는 피나물꽃과 현오색이 많이 보인다

676m봉(11:40)

676m봉 정상에 있는 군삼각점

바람이 약간씩 불어오는 능선을 걷는데 신갈나무 노거수 한그루가 산꾼을 반긴다

나의 유일한 친구라곤 베낭속 라디오에 들려오는 음악소리 뿐...

차탄(보개)지맥과 한탄(왕재)지맥을 걸으면서 느끼는 건 멧돼지의 횡포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아마 군부대가 많고 사격장에서 들려오는 총소리 때문이 아닐까? 

돌로 쌓은 벙커를 지나니...암봉이 보인다

무명봉(11:54)

權不十年, 花無十日紅

10년 가는 권세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고 했는데 저 고사성어를 모르는 사람은 정치하는 사람밖에

없는듯 하다... 어떤 대통령 후보는 내가 정권을 잡으면 적폐청산을 하겠니 어쩌니 하는데 그것보다

修身齊家) 治國平天下가 먼저가 아닐런지?...상대방을 배려하고 용서하여 같이가는게 먼저일듯 한데...

벙커봉(11:58)

점심만찬(12:00~12:15)

벙커봉을 내려서니 사람들이 전혀 다니지 않을듯한 곳에 벤취가 보인다

안 그래도 아침을 먹지 않았던 터라서 배는 고파오고 집에서 싸온 도시락에

캔맥주 하나로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치열한 생존경쟁?

식사를 마치고 맞은편 봉우리로 올라서니...

6사단 벙커라는 이정표가 있다...이곳이 지도상 651m봉이다

651m봉(11:20)

벙커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민백이꽃도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암봉(12:22)

가야할 지장산이 보이고...

안부(12:25)

벙커봉(12:27)

오늘 산행중에 2번째 벤취를 만나고... 아마 군인들의 시설물인 모양이다 

타이어로 만든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마넘이 고개530m:(北馬踰峴:12:34)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리와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내산리를 연결하는 군사도로에

위치한 고개로 고개 정상에는 이정표와 폐전봇대로 만든 벙커가 보인다

좌측으로는 상노리 담터계곡으로 내려가는 도로인데 맞은편엔 지장산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담터계곡이 있는 담터마을은 옛날 짐승을 잡아먹고 버린 뼈로 담을 쌓았다고 하여 붙여진 곳이다.

고개 정상에는 폐전봇대로 만든 벙커가 보이고...

이정표

고개를 가로질러 데크목 계단으로 올라선다

능선에서 바라본 금학산에서 용정산으로 이어지는 용정능선의 모습

급경사로 올라서는 길엔 손가라 굵기의 로프와 군 교통호가 보인다

이 넘이 나한테 고개를 쳐들고 덤빌 태세이다... 스틱으로 감아서 던져 버린다

3번째 벤취를 만나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산행하기 좋은 날씨라 쉬고 싶은 생각이 없다

벙커봉(12:43)

군 교통호를 지나가는데...

벙커와 4번째 벤취를 만난다

멋진 기암도 지나고...

알록제비꽃(꽃말: 나를 생각해 주셔요)

계속되는 암릉구간

암릉으로 오르는 구간에는 로프가 처져있고...

벙커봉(12:55)

벙커봉 입구의 모습

오랫만에 선답자의 시그널을 만나고...

암봉(13:04)

등로 좌측으로 보이는 고남산의 모습

고남산(古南山:643m)은 경기도 포천군 관인면 삼율리,사정리,초과리에 걸쳐진 산으로
명칭의 유래는 지금의 경기도 포천 관인면이 강원도 철원에 속해있을 때 철원의 최남단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며,후삼국시대 궁예가 태봉국을 세우고 철원을 도읍으로 했을 때

동송읍 이평리의 금학산(金鶴山,947m)과 고남산중 어느 산을 남산[男山]으로 정할 것인가

대신회의에 붙였는데 고남산이 남산으로 정해지자 금학산이 분하게 여겨 나무에 잎과 꽃이

3년동안 피지 않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데 옛날의 남산이라 해서 고남산(古南山)이라 부른다.
여기서 남산의 의미는 서울(옛 한양)의 남산,신라의 도읍이었던 경주의 남산과 비슷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칼날같은 능선을 곡예하듯 걸어간다

공터(13:18)

헬기장인듯 보이긴 하다만 헬기장치고는 너무 적은 공터를 만난다

지장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안부(13:20)

안부에서 빡세게 올라서니 망가진 군교통호가 나오고...

금학산이 아쉬운 듯 산꾼 범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퍠주인 궁예를 알고나 있는지...

벙커봉(13:28)

잘루맥이 갈림길(13:33)

숲속에 갇힌 또 하나의 이정표를 만난다

잘루맥이에서 갈라지는 능선의 모습

지나온 능선들이 주마등처럼 보이고...

고남산 너머로 아침에 지나온 관인면과 그 너머로 철원 군청소재지가 있는 갈말읍과 명성산이 보인다 

공터를 지나면서 지장산 정상에 올라선다

지장산 오름길에 바라본 한탄(왕재)지맥 능선과 신서면 내산리의 모습

신서면 내산리는 본래 철원도호부의 외서면 지역으로, 험준한 보개산의 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산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도리들(, ), 목목골(),

신틀거리(), 윗신틀거리, 대소라치(), 삼각동(), 초막() 등이 있다.

도리들은 고대산에서 발원하여 이 마을 앞을 지나 내산리 중앙을 관통하는 아미천이 마을을

크게 돌아서 흐른다고 해서 유래된 지명이며, 목목골은, 예전에 어떤 사람이 이곳의 조상 묘를

찾을 적에 관 안에서 흰 새가 '목목 목목'하며 날아갔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오늘 산행중 하일라이트인 지장산 정상에 오르니 정상에는 연천군과 포천시에서 세운 정상석이

따로있고 연천군의 마스고트인 고롱이와 미롱이 2개중 고롱이는 휴일이라 출타중인지 보이질 않는다

그뿐이랴... 이정표와 3등 삼각점, 그것도 모잘라 등산 안내도까지 어지러울 정도이다  

연천군에서 세운 지장산 정상석

보개산(寶蓋山)"지장봉"은 원래 영주산(靈珠山)인데 영주산이란 이름은 영주사라는

사찰이름에서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심원사의 옛 이름이 영주사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보개산의 의미는 ‘보배로 가득 뒤덮인 산’인데, 불보살의 보배스러운 가피와 영험이 가득한

산이란 의미가 함축된 것인데 이 이름이 생성된 유래를 암시해 주는 내용이 이만부가 지은

 ‘지행부록 보개산기’에 자세히 전해진다.

 

조선초기 흥림사(심원사)의 무학대사가 주지하면서 보개산이라고 개칭하였고

처음 지장봉의 이름은 환희봉(歡喜峰)으로 한국불교의 지장신앙인 본산지로 널리

알려진 후 구한말에 이르러 지장봉으로 각인되었다.

 

지장봉이란 이름은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지지자료> <근세조선지형도>에 최초로 보이는데,

이를 국립지리원이 지형도에 검증 없이 옮겨 적으며 세상 사람들에게 더욱 혼동을 주게 되었다.

 

민지의 이 ‘보개산 석대기’가 영험한 이야기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지장보살(地藏)이 현신한 기도처(山)’라는 의미로 지장산이라고 불려지게 된 것이다.

옛 기록 중 보개산의 풍광을 ‘보개산 석대기’가 비교적 잘 설명한 편이어서 일부 내용을 옮겨 본다.

 

송도(松都·개성)에서 동쪽으로 180리 되는 곳에 명산이 하나 있으니 보개라.

높고 험한 준봉들이 열을 지어 솟아 있고 산림은 깊숙하고 그윽한데,

산 중앙에 하나의 기이하고 빼어난 봉우리가 높고 우뚝하게 솟아 있으니 환희봉(歡喜峰)이다.

그 봉우리 아래 3리쯤에 암자가 있는데, 그 이름이 석대다.’

 

내보개산의 최고봉인 환희봉과 관련된 옛 기록은 미수 허목의 ‘고양산수기’에도 보인다.

‘내가 일찍이 보개산 환희령에 올랐을 적에도 석대(石臺)에 민지의 고적이 있었다’가 그 것이다.

이처럼 환희봉은 민지가 석대에서 지장진신의 체현을 감동적으로 목격하고는 환희심이 절로 일어나

불사를 일으켰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이름인데, 아직껏 국립지리원 지형도에는 이를 ‘화인봉’으로

기록하여 일제 때 기록한 엉뚱한 산 이름이 널리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니 바로 잡아야할 것이다.

지장산이라 불리지만 고문헌인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대동여지지도 등의 지리지에는

한결같이 보개산으로 표기가 되어있고, 환희봉이라고 부르기도 해서 상당히 혼란스러운 점이 엿보인다

 

불교에서의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육도중생(六道衆生·미혹의 세계에서 태어나고 죽는 것을

거듭하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모두 구제할 때까지는 영원히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보살이다. 

유명해진 산으로 보개산, 보개산 지장봉, 보개산 환희봉, 지장산 등 여러가지 지명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운

곳인데 거기다가 연천군과 포천시가 각기 다른 지명으로 표시석을 설치하여 혼란을 부추기고 있으며 지리관련

옛 문헌에는 모두 보개산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잘못 붙인 지명이란 주장도 있다.

 

보개(寶蓋)란 원래 불보살 위덕을 나타내는 장엄구의 하나로 천개(天蓋)라고도 부르며

원래 햇빛이나 비를 막기 위한 우산에서 출발하여 귀인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나 점차

불보살상의 머리 위나 사원의 천장을 장식하는 장식물로 변했으며 뒤에는 승려에게도 허용되었다.

고대 인도에서는 더운 날씨를 피하기 위해, 또 귀인이 행렬할 때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BC 2세기경의

바르후트 대탑과 BC 1세기경의 산치 대탑의 부조에 그 예들이 남아 있다

지장봉 표시석의 뒷면

연천군의 마스코트 고롱이와 미롱이

연천군 케릭터이며, 축제의 마스코트로서 "고롱이"는 고대, 구석기, 고인돌 등

과거를 상징하고 "미롱이"는 미래지향적, 미래 발전 등을 상징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연천군의 비전과 축제의 특성을 표현하고 있다.

연천군 지역의 지장봉을 구경하고 포천시로 넘어온다

지장산(地藏山:877.2m13:38~52)

경기도 연천군신서면 내산리와 포천시 관인면 삼율리와 중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봉우리

정상이 마치스님의 머리같이 생긴 바윗덩이를 이고 있기 때문에 생긴 명칭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현 동북쪽 20리 철원 경계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최고봉인 지장봉과 화인봉, 북대, 삼형제암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을 이어주는 주능선은

기복이 심하고, 동쪽 산줄기에는 무너진 석축이 있는데, 태봉의 왕 궁예가 부하 왕건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은거했다는 보개산성(일명 궁예성)의 유적이다. 보개산성 주변에는 대전지, 지장계곡 등이 있다.

포천시에서 설치한 표시석 뒷면엔 포천출신이었던 조선시대  명재상이었던 백사 이항복의 시가 적혀있다

고려말 목은 이색은 목은시고(牧隱詩藁)에 보개산

지장사(寶盖山地藏寺)라는 제목으로 전해지고 있다.

목은 이색이 고려말 사람임을 감안해 볼 때, 고려시대에는 지장암도 암자 규모가 아니라 사(寺)의

규모였지 않았나 추측하여 볼 수 있으며, 이 지장암은 신라 헌안왕(憲安王) 때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 한다.

 

 목은 이색은 유교의 입장에서 불교와의 절묘한 조화를 추구하고자 했던 인물로 특히 원나라와 명나라의

교체기에서 친명의 입장을 지지하였고, 그의 문하에는 권근, 김종직, 변계량 등과 같은 걸출한 인물이

조선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다. 목은이 언제 철원 보개산 지장사에 왔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시에 깊게 배어 있는 인간의 고뇌를 읽을 수 있으니 아마도 정치의 부침이 심했던 말년의 시작이 아닌가

생각된다.

 

遊山如啖蔗(유산여담자) 산에 노닐음은 맛좋은 음식 먹는 듯하니,
最愛入淨境(최애입정경) 정토의 경계에 들어감을 무엇보다 좋아해.
雲望共無心(운망공무심) 구름 바라보면 함께 무심해지고,
溪行獨携影(계행독휴영) 시내 거닐면 그림자만이 친구가 되는구나.
鍾魚林壑空(종어임학공) 숲 속 계곡에 종소리 목어소리 퍼져나가며,
殿宇松杉冷(전우송삼냉) 불전과 소나무 삼나무 차기만 하구나.
甚欲辦靑纏(심용판청전) 깊이 좋은 세상만을 얽으며 살고 싶어져,

臨風更三省(임풍경삼성) 바람을 쐬며 다시금 나를 돌아본다.


 <이색(李穡 : 1328 -1396) 보개산지장사(寶盖山地藏寺)>

강원도민일보 자료 인용

가야할 화인봉의 모습

이 지장산에는 심원사를 비롯하여 석대암, 지장암, 성주암 등의 사찰이 있었다.

특히 지장암은 목은시고(牧隱詩藁)에 보개산지장사(寶盖山地藏寺)라는 제목으로 전해지고 있다.

목은 이색이 고려말 사람임을 감안해 볼 때, 고려시대에는 지장암도 암자 규모가 아니라 사(寺)의

규모였지 않았나 추측하여 볼 수 있으며, 이 지장암은 신라 헌안왕(憲安王) 때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 한다.

지장산 정상의 3등 삼각점(△철원312 / 2007 재설)

지장산 정상을 완전 독점하여 한참을 놀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제2등산로 이정표를 따라서 좌측으로 가니... 절개지가 나오고...

화사한 철쭉이 이제사 피기 시작한다

로프에 몸뚱아리를 의지한 채 급경사를 내려간다

조금을 더 내려가다가...

우측으로 편안한 등로가 보인다

내려와서 뒤돌아 보니 암릉이 지장보살님의 두상처럼 보이는듯 하다

꽃이 진 처녀치마도 만나고...

구조이정목(14:00)

같은곳에 있는데 거리가 50m 차이가 난다...어느걸 믿어야 하나...

지석묘처럼 생긴 바위를 지나니...

군 교통호가 나오는데 오늘 처음으로 이곳에서 등산객 2명을 만난다

암릉구간을 지나니...

화인봉 능선 이정표가 보인다

우회로 갈림길(14:06)

좌측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고 암릉구간에도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데

저 윗쪽에서 남.녀 등산객의 소리가 들린다... 명색이 정통 맥산꾼이

원칙대로 가기위해 암릉쪽으로 오르려는데 바위 사이에 스틱을 세워놨다

올라오지 말라는 뜻인가?... 민폐가 될까봐 좌측으로 우회를 한다

우회 갈림길 이정표

석대암(石臺庵) 갈림길(14:10)

이곳에서 직진을 하면 화인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석대암으로 가는 길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에 속하는 심원사()의 부속암자로 720년(성덕왕 19)에

사냥꾼 이순석()이 출가하여 창건한 절로서, 창건설화가 전래한다.

 

어느날 순석과 순득() 두 사냥꾼은 금빛 멧돼지에게 활을 쏘았는데 멧돼지는 피를 흘리면서

관음봉 쪽으로 달아났다.

그 뒤를 쫓아 샘물이 있는 곳까지 가니 멧돼지는 보이지 않고 왼쪽 어깨에 화살이 꽂힌 지장보살석상()만이

샘 속에 있었다...이에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두 사람은 참회하고 출가하여 도를 이루었다. 그 뒤 그들은 300명의

 제자와 함께 이 절을 창건하였고, 두 사람이 항상 숲 속에서 돌()을 모아 대()를 쌓고 그 위에서 정진하였으므로

석대사라고 이름 하였고 고려 때 중렬()이 중창하였고, 1400년(정종 2) 사승()들이 삼창하였으며,

1861년(철종 12) 내탕금()을 받아 중건하였다. 1887년(고종 24)김상궁()의 시주를 얻어 중건하였고,

1931년 모연금()으로 중수하였으며, 1935년 주지 서상인()이 중수하였다.

 

이 절은 창건설화 외에도 절에 얽힌 많은 이적()들이 전래되고 있다.

절이 있는 보개산은 금강산·오대산과 함께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는 영산()이라 하며, 지장보살상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는 지장보살의 상주처()로서 높이 신봉되는 기도도량이다

최근에는 전 해인사 주지이셨던 혜민스님이 중창불사에 힘을 쏟고 계시는 곳이다

석대암 갈림길에서 직진의 암릉으로 올라 화인봉으로 향한다

지나온 지장산의 모습

화인봉(花人峰:805m:14:17)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과포천시 관인면의 경계를 이루며 지장봉의 남쪽에 있으며 지장봉의 산줄기와 연결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보개산의 한 봉우리로서 화인봉()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근대에 들어 지명이 변

경된 것으로 짐작된다

화인봉 남쪽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상당히 유순하다

우측으로 멋진 암릉을 바라보며 내려서니...

벤취봉(14:25)

우측의 우회등로를 버리고 직진으로 올라선다

너럭바위(14:26)

구조이정목을 따라서 편안 등로를 따른다

구조 이정목(14:30)

급한 내림길로 내려서는데 암릉구간에 마사토 지역이라 상당히 미끄럽다

사고나기 쉬운 구간인데 조심해야 할 듯 싶다

우측에 멋진 소나무를 바라보며 내려서니...

암봉(14:34)

능선 좌측으로 북대에서 삼형제봉과 향로봉으로 보이는 뚜렸한 능선이 보인다

뒤돌아 본 화인봉의 모습

지장계곡 너머로 궁예의 恨이 서린 명성산이 한 눈에 보이고 그너머로 광덕산도 희미하게 보인다

처음 만난 시그널... 아마도 맥산꾼이 아닌듯...

동마넘이 고개(東馬踰峴:14:48)

이곳에서 시간상으로 좀 더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탈출구간이

문제가 될 것 같아 이곳에서 산행을 접고 칫숲으로 표기된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칫숲이란 이정표는 잘못됐고 잣숲이 맞을듯 싶다... 지도에는 잣숲으로 표기되어 있다

다른 산꾼들도 이곳에서 끊었는지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보인다

내리막길은 상당히 미끄럽다...2번이나 넘어진다

이정표를 조금을 더 내려서니...

비포장도로가 보이는데 지장계곡으로 내려서는 도로인듯 하다

나물도 전혀 보이질 않던데요

지장계곡 도로(15:05)

도로를 내려서면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도로를 내려서면서 고민거리가 생긴다

이곳에서 버스정류장이 있는 관인면 중리 버스정류장을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하는데

지나가는 차량은 전혀 보이질 않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겠지

도로에서 바라본 삼형제암의 모습

홍수통제 경보기를 지나는데...

이~~~저게 뭐야!

스타렉스 승합차 한대가 보이는게 아닌가

가까이 가니 등산객이 차에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혹 버스타는데 까지 태워 줄 수 었냐고 하니까

10분후에 출발하는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냐고 하길래... 1시간도 기다릴 수 있다고 하니 웃는다

이 분들은 부부 2쌍이 나물 산행을 온 모양이다... 뜯은 나물을 보니 다래순 밖에 안보인다

그 사이에 계곡물에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에 승합차에 오른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의정부를 가는데 집이 어디시냐고 묻기에 개포동이라고 하니

포천을 가면 강남가는 버스가 있는데 자기들은 포천으로 안 가고 동두천쪽으로 간다고 하면서

소요산역에 내려주면 어떡겠냐고  묻기에 난  얼마나 감사한 지....

소요산역(16:00)

고마운 분들 덕분에 소요산역까지 편하게 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역 바로옆에 있는

부산오뎅 집에서 김밥 한줄과 오뎅 2개에다가 베낭에 남은 막걸리 한병으로 뒷풀이를

한 다음에 전철을 타고 집에오니  저녁 6시 반이 조금 넘었다... 너무 일찍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