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그릇에서 배운다 / 법정스님
이 가을 들어 나는 빈 그릇으로 명상을 하고 있다
서쪽 창문 아래 조그만 항아리와 과반을 두고 벽에 기대어 이만치서 바라본다
며칠 전에 항아리에 들꽃을 꽂아 보았더니 항아리가 싫어하는 내색을 보였다
빈 항아리라야 무한한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
텅 빈 항아리와 아무것도 올려 있지 않은 빈 과반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어느새 텅 비게 된다
무념무상, 무엇인가를 채웠을 때보다 비웠을 때의 이 충만감을
진공묘유 라고 하던가 텅 빈 충만의 경지이다
빈 그릇에서 배운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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