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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부처님 같이

금강경 사구게 - 오해와 진실

by 범여(梵如) 2016. 11. 4.

凡所有相 범소유상

皆是虛妄 개시허망

若見諸相非相 약견제상비상

卽見如來 즉견여래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나니

만약에 모든 상이 상 아님을 안다면

곧바로 그 자리서 여래를 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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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송은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질문하시기를 "나의 외모를 가지고 여래

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하시니, 수보리가 "외모를 가지고는 여래라 할 수 없습

니다." 하는 대답을 들으시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게송입니다. 

 여리실견(如理實見)이란 참된 이치를 바로 본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드러난 모양과 현상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야심경을 공부하면서 배우지 않았 습니까?

제법개공(諸法皆空)이라고. 이 참된 이치를 바로 본다면 여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여래를 보는 것입니다. 

이 게송은 달달 외우시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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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들의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대한 알음알이기 위의 설명과 같다. 

달달 외워서라도 이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불경은 석가모니의 말이 아니라, 

석가모니의 말을 단 한구절도 알아들을 수 없는 중생들에

의해서 쓰여졌기 때문에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된 것이다.

 

만약에 중생들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라는 말 중, "소리와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 한구절만이라도 이해 할 수 있었다면...

종교 나부랭이들은 생겨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  "깨달음  "진리"... 그것은 누구에게 배워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석가모니의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라는 말의 뜻이다. 머리깎은 중생들의 알음알이가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만약에 그것들이 조금, 아주 조금... 겨자씨 만큼이라도 올바른 앎이 있다면...

'육조 혜능'의 말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면 육조 혜능과 같이 절간을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절간 지어 놓고 무지한 중생이 어리석은 중생들을 농락하니... 삼악도가 있다면, 육도윤회가 있다면, 

그것들 모두가 그것에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사실 석가모니의 말이나 예수의 말을 전하려는 자들... 그것들이 가장 어리석은 중생이다.

광신자 맹신자들은 성현의 말에서 멀어져갈 뿐이라고 했던 -보리 달마-의 말이 떠오르는

까닭은 그나마  도와 가까운 인물들 중에 그가 경전에 대해서 가장 분명히 설명했기 때문이리라.

 

 

凡所有相 범소유상

皆是虛妄 개시허망

若見諸相非相 약견제상비상

卽見如來 즉견여래

 

석가모니의 말이 왜곡된 경전에는 -석가모니는 소리와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고 했지만-

'즉견여래' 라는 말과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이 끝없이 반복 된다.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앵무새와 같이 말, 말, 말을 중얼 거릴 뿐, 올바른 앎은 겨자씨 만큼도 없기 때문에 서로가

잘난체 하기 위해서 석가모니의 말을 해석한다고 주절거리며, 석가모니를 모독하는 짓을 반복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범소유상 개시허망"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일체유심조의 더 깊은 뜻에 대한 설명과 같이-

인간과 세상 모든 것들이 끊임 없이 변해가는 것들일 뿐, 실체가 없는 것들이라는 뜻이며,

인생 무상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며, 인생은 허무한 나그네라는 말과도 다르지 않은 뜻이다.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라는 말... 달달 외워서 이해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은,

인간 관념으로써는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요즘 도가의 "화원"의 글을 보면서 옛 선사의 말이 떠오른다. "사람이 없어, 사람이 없어" 라고 했던 선사의 말이다. 그 선사가 찾던 사람이 "화원"과 같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중생과 사람의 차이라고나 할까?

 

 

-약견제상비상- 이라는 말의 한자의 뜻을 풀이한다면 머리깎은 중생들의 말이나 다른 중생들의 말이나 모두 옳은 말이다. 

한자를 한글로 바꾸는 일 따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석가모니의 말은 인간의 '내가 있다'고

아는 지식으로써는 감히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중생들은 이해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사실 불경에 대해서 단 한구절도 이해 할 수 없는 말이라고 이해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참으로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안다는 말은 -어떤 중생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아는 앎이 아니라 "산은 산이 아니며, 물은 물이 아니며, 세상은 세상이 아니며, 사람은 사람이 아니며,

우주는 우주가 아니며, 하늘은 하늘이 아니며, 영혼은 영혼이 아니며 더 나아가 부처는 부처가 아니다' 라고 아는 앎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람이라고 본다면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여자를 여자라고 본다면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부처를 부처라고 본다면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우주를 우주라고 본다면, 하늘을 하늘이라고 본다면, 땅을 땅이리고 본다면...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하물며, 불국도가 있다거나, 하늘길... 천도제가 있다고 본다면, 어찌 중생이 아닐 수 있겠는가?

하늘나라와 천국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어찌 스스로 '하나님, 성령'이 될 수 있겠는가?

'내가 깨달았다고, 위빠사나 수행이 옳다고, 간화선 수행이 옳다고... 주절거리는 중생들이

어찌 이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겠는가만은.

어불성설이다.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라는 말은 "일체유심조"이기 때문에 "본래무일물" 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알때, 그때 곧 부처라는 말이다.  '일념법' 수행으로써 다만 '생각의 원리'에

대한 올바른 앎이 드러날때, 그때 비로소 이런 말들 또한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능한 말일 뿐이다.

 

 

간혹 불교수행과 '일념법'이 같은 종류가 아닙니까" 라는 질문을 보곤 한다.

인간 관념(지식, 느낌, 마음, 감정)으로써 금강경을 이해 할 수 없듯이 '화두'라는 말이나,

일념법이라는 말 또한 말, 말, 말을 아는 것일 뿐, -내가 사람이라고 아는 한-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다.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말재간에 의해서 석가모니와 예수가 우상숭배사상의 주인공으로 전락되었기 때문에

그 길, 진리의 길... 고통을 소멸하기 위한 '일념명상법'의 자취가 사라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중요한 말들에 대해서 다시 설명 하노니.

 

 

인간세상에서는 '용수보살(니가르주나)'에 대해서 제 2 불타라고 한다는데,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용수보살' 또한 '공과 무'에 대해서 조차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중생견이라고 했다.

그런데 현 세상에 그 '용수보살'이라는 자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른 인물들이 '도가'에서 '일념법'을 공부하는 인물들이다. 

 

만약에 종교를 통해서 깨달은 인물이 있었다면, 어찌 현시대 까지도  천도제를 지내며, 우상을 숭배할 수 있겠는가?

 

석가모니의 가장 중요한 말이 '나를 의존하지 말고' "진리에 의존하라"는 말이다.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니 그것을 관찰하라는 말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유일한 가르침, 진리이다.

일념법 일념윤회법이 진리이다.

 

진리. 오직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