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와 잡목의 저항...맥산행이 힘든줄 예전엔 몰랐습니다
☞ 산행일시: 2017년 3월 12일
☞ 산행날씨:맑은 날씨에 약간의 스모그 현상
☞ 산행거리: 도상거리 17.2km + 어프로치 1.8km / 9시간 53분 소요
☞ 참석인원: 젠틀맨, 수헌, 산으로님과 함께
☞ 산행코스: 봉화정-봉화산-봉화정-연비지맥 분기봉-776봉-771봉-묘지-오매실재-707봉
안부-720봉-옥잠봉-갈림길-밤골안부-비조재-갈림길-묘지-677봉-오천육교
매치-안산-묘지-배골고개-568봉-안부-진양치-연비산-곰실재-822봉 갈림길
암봉-안부-안부-폐헬기장-조망바위-옥녀봉 갈림길-오봉산-오불사갈림길(1)
875봉-건지리갈림길-오불사갈림길(2)-암봉-850봉-834봉-묘지-팔령산성
팔령재
☞ 소 재 지: 전북 남원시 아영면, 인월면 / 장수군 번암면 / 경남 함양군 백전면,병곡면, 함양읍
2주전 금오지맥 능선에서 만난 젠틀맨과 연비지맥 첫 구간을 같이 하기로 합의하고
젠틀맨님이 귀촌한 남원으로 수헌아우님과 같이 고속버스를 타고가고, 산으로님은
남원에서 합류하기로 한다...전날 불알친구 淸眼과 시청앞 식당에서 이런저런 연유로
폭탄주 서너잔을 마시고, 또다시 광장시장에서 산꾼들과 마신 술이 과했던 탓인지
몸뚱아리가 말을 잘 들어주질 않는다참으로 세상이 시끄럽다...이 나라 국민성은 참으로 요상하다...
목소리 큰넘, 선동 잘하는자들이 판치는 세상... 요즘은 이꼴저꼴 보기 싫어 TV를 일체 보지 않는다
연비지맥(鳶飛枝脈))은 백두대간 봉화산(△919.8m) 북쪽 1km 지점인 전라북도 장수군, 남원시와
경상남도 함양군의 경계인 백두대간상의 무명봉(870봉)에서 남동쪽으로 가지를 쳐 전북과 경남도계를
따라 옥잠봉(705.5m),88고속도로,연비산(842.8m),오봉산(879m),팔량재를 지나 삼봉산(1186.7m)에서
전북도경계를 벗어나 경남 함양군으로 넘어가 동북진하여 지안재,팔두재, 화장산(586.4m)을 지나 임천(臨川)이
남강에 합류하는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8.2km의 산줄기로 임천의 우측 분수령이다.
산계(山界)를 지맥으로 나누는 신산경표와는 달리 요즘 수계(水界)로 지맥길을 나누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연비지맥을 임천(臨川)지맥으로 분류한다
연비지맥 개념도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남원행 16:40 버스표
사무실에서 월요일 작업 스케쥴을 정리 해놓고 서둘러 고속버스 터미널로 나가니
수헌아우님도 헐레벌떡 오는데 급하게 나온 모양이다... 색시처럼 얌전한 아우가
선배님 캔맥주 한잔 하시죠 하면서 캔맥주 2개를 사가지고 버스에 탑승한다
남원 고속버스 터미널(19:50)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정안휴게소에서 15분정도 정차하여 휴식을 취한 다음에
정확하게 3시간 10분만에 남원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젠틀맨님이 어부인을
대동하고 차를 가지고와서 기다리는데 늘 고맙고 미안하기만 하다
귀촌한 젠틀맨님의 그림같은 집
남원에서 젠틀맨님의 차를타고 집에 도착하니 서울에서 오느라 고생했다면서
어부인께서 근처 농장에서 토종닭을 사다가 자연산 능이를 넣어 토종닭 백숙
요리를 해놨는데 얼마나 맛이 있던지...2주만에 만난 젠틀맨님과 폭탄주(?)를
제조하여 서너잔을 마시면서 지맥 산행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조금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어나니 속풀이를 해야 한다면서 누렁지를 끓여서
아침을 먹고나니 점심 도시락에 남원에서 유명하다는 이백막걸리까지 챙겨 주신다
젠틀맨이 운전대를 잡고 운봉과 아영을 거쳐 일대리에서 부동마을로 접어든 다음에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 백두대간 상에 있는 봉화산 아래 봉화정에 이른다
봉화정(烽火亭:07:45)
지맥 산행을 할라치면 늘 첫구간이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백두대간이나 정맥, 기맥에서 갈라지는 첫 구간은 항상 접속구간에다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는데 이곳 역시 그 고민을 하지 않을수가 없는 곳이다
백두대간 능선인 복성이재에서 봉화산을 거쳐서 이곳 봉화정까지 오는 코스와
부동마을이나 송리에서 이곳으로 올라오는 코스가 있긴 하나 어디서 출발하던간에
거의 2시간 가까이 걸어야만 올 수 있는 곳을 자동차로 올라 왔으니 오늘 산행
들머리는 완전히 양넘 지갑줏은 기분이다
봉화정 임도에 우리를 내려주고 젠틀맨님 어부인께서는 차를 타고 다시 내려간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내고 우리는 이곳 팔각정에다 베낭을 벗어놓고 0.7km 떨어진
봉화산으로 향하는데 이곳 남원쪽(아영면)은 시멘트 포장이 되어서 자동차가
이곳까지 올라 올수가 있으나 장수쪽(번암면)은 비포장 도로에다 바리게이트까지
처져있어 차량 접근이 불가능할 듯 싶다...봉화산으로 향한다 (07:50)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억새로 유명하다는 봉화산으로 향하여 걷는다
봉화산 가던길에 뒤돌아보니 장수의 진산이라는 장안산과 잠시후 가야할 연비지맥 분기봉이 보인다
지난해 11월 27일에 봉화산에 올랐으니 3개월이 조금 시일에 다시 봉화산에 오른다
봉화산(烽火山:919.8m:08:00)
봉화산이란 이름이 전국 곳곳에서 50여 곳이 있는데, 옛날에 봉화대가 있었던 산은
특별한 이름이 없으면 그저 봉화산이다.
거의가 적의 침입이 있을 때 봉수대에서 봉화를 올렸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그만큼 적들의 침입이 많았다는 증거다.
남원 봉화산은 봉수대의 유적이 선명히 남아있고, 오래된 봉화 봉수대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큰데,
우리나라에서 봉수제는 삼국시대 때부터 군사적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그 제도가 확립된 시기는
고려시대로 확인되고 있다.
원래의 지명은 장안산이었는데 봉수대가 발견되면서 봉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운봉의 고남산에서 이어받은 봉화는 금남호남지맥에 있는 사두봉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2등 삼각점도 예전 그대로다
복성이재에서 봉화산으로 오르는 등로입구에는 산꾼들의 시그널이 즐비하다
복성이재를 지나 일명 "치재"(현지주민들은 "짓재"라 한다.) 봉화산 오름까지는 철쭉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그 어느곳보다 철쭉이 화려한 곳인데, 난 오늘까지 4번을 봉화산에 올랐지만
철쭉이 필 때 한번도 와보지 못한 탓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젠틀맨님과의 인증샷
둘이서 참으로 얼마나 많은 정맥, 기.지맥을 헤매고 다녔던가
흔히들 남자 셋이 만나 군대 야그만 나오면 1박2일의 이야기꺼리가
나온다고 했던가... 우리 둘이 만나서 맥산행 야그를 하면 5박6일은 할것 같다
복성이재 너머로 고남산과 여원재,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저 능선 옅은
스모그 현상으로 잘 보이지는 않지만 7년전에 감춰진 스토리가 있는 곳이었지
지금도 그 때의 짜릿한 추억이 가끔은 생각난다
봉화산 아래 헬기장 너머로 보이는 지리산 능선.... 요즘의 시국과 같은가... 모든게 五里霧中이다
봉화산은 철쭉만 유명한 게 아니라 억새도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치재에서 봉화산 구간이 철쭉의 군락이라면 봉화산에서 아홉새드리(무명봉)까지는
억새가 군락을 이루는데 가을철에 오면 가히 장관이라 무등산이나 창녕 화왕산 못지 않다고 한다
다시 봉화정으로 되돌아 간다...좌측으로 속금산, 또 그너머로 금.호남정맥에 우뚝 서있는 장안산
속금산(907m)은 백두대간 봉화산 지나 월경산 못 미쳐 서쪽으로 분기한 장수 지역에 위치 산으로
좌우로 요천으로 흘러드는 지류가 흐르고 그 아래는 동화댐이 있는 지지리 계곡 윗쪽에 있는 산이다
우측으로는 봉화산에서 월경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능선이고 건너편은 장안산이라는 명산에다
금.호남지맥이 이어지는 능선 사이에 있어 산꾼들에게 철저히 외면받는 산이라고나 할까.
지지계곡을 끼고 있는 속금산 인근에는 명당이 많다고 전해지며 특히 바랑이명당은 암행어사 박문수가
잡아 주었다는 명당이고, 속금산은 등잔불 명당이라하여 정상에는 묘가 있다고 한다
먼 산
먼 산은
나이 많은 영감님 같다
그 뒤는 하늘이고
슬기로운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다 제각기이고
통일이 없지만
하늘의 이치를 알게 되면
달라지리라고--
먼 산은
애오라지 역사의 거물
우리 인간은
그 침묵에서 배워야 하리
(찬상병·시인)
억새밭에 묻혀 있는 수리취
요즘 사바세계에는 아수라판 같은데, 뭔 미련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서...
다시 봉화정(08:15)
봉화정 임도 이정표
남원쪽은 이곳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되어있어 차량이 올라올 수 있으나
장수쪽은 비포장도로가 되어있어 차량진입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차량을 가지고 올라와 산행을 할 계획이면 안될듯 싶다
부동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이 중간 중간 비포장 도로가 있기에 RV차량이 아니면 불가능할 듯...
그러니 우린 젠틀맨님 어부인의 은총(?)에 정녕 복받은 자들이 아닐까...ㅋㅋㅋ
봉화정 임도에는 산악기상 관측장비와 팔각정(봉화정), 이정표, 지리산 조망 안내도가 있다
봉화정 임도에 도착하여 장비 점검을 마치고 본격적인 산행에 나선다 (08:22)
연비지맥 분기봉(870.6m:08:30)
이곳은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 함양군 백전면이 만나는 3면 경계봉이자 백두대간상의
지리산군에서 덕유산군으로 넘어가는 경계점이기도 한 봉으로 예전에는 무명봉이란 이정표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팻말은 보이지가 않는다... 이른 아침의 스모그 현상으로 인해 사방의 모든
山群들이 흐리게만 보이지만 지리산과 금.호남 정맥 능선과 저멀리 고남산 등이 다 보인다
옛 지명에는 “아홉새드리”라는 지명이 보이나 자세한 유래는 알 길이 없다
백두대간 남진길의 모습(2014년 2월 23일)
분기봉에서 바라본 남원시 아영면 일대리의 모습
마을이 길게 뻗어 있어 띠와 같다는 의미로 일대(一臺, 逸臺)라 하였다가 햇볕을 가장 많이 받는
마을이라 하여 ‘일대(日臺)’로 바뀌었다. 일대리에 속하는 부동리는 뒷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을이
가마솥[釜] 같다 하여 ‘가마말’ 이라고 했는데, 줄여서 ‘가말’이 되었고 한자로 바뀌면서 부동(釜洞)이 되었다
운봉의 북하면 지역으로 일대 마을은 북하면의 면소재지이기도 하였고, 통일신라 때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1914년 송리, 부동리, 의지리 등이 병합되어 일대리가 되었고, 1995년 남원시가
되면서 남원시 아영면 일대리가 되었다. 부동리에는 남원양씨가 ‘봉화산 아래에 있는 만인이 살 수 있는 곳
(烽火山下可活萬人)’이라는 비결 문구를 보고 이곳으로 이주해 살면서 큰 마을이 되었다
봉우리 정상에서 내려와 좌측으로 들어서니 준.희님의 팻말이 반갑기만 하다
분기봉을 내려서자마자 등로는 보이질 않고 초반부터 잡목이 겁나게 산꾼 범여를 괴롭힌다
한참을 치고 내려오니 안부가 나오고 우측으론 희미한 임도가 보이며 다시 능선을 치고 오른다
765봉(08:45)
오늘 산행은 초반부터 전북과 경남의 도계 능선을 따라서 걷는다
765봉에서 지맥길은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있다
나무도 오래 같이 있다보면 닮아가는 모양이다
예전에 헬기장인듯한 흔적도 보이고...
771봉(09:05)
바로 앞쪽에는 마치 여인의 乳頭처럼 볼록 튀어나온 봉우리 하나가 기다리는데 707봉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아침에 우리가 지나갔던 봉화산으로 오르는 임도와 그 너머로 봉화산 정상이 보인다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 갔다가 올라야 하는데 초반부터 가시나무를 비롯한 잡목들이 엄청나게 태클을 건다
묘지(09:20)
771봉에서 내려오니 묘지 2기가 있는데 묘지 양식이 좀 특이하다
대부분의 묘지들은 묘지앞에 亡者의 자손의 기록이 있는 상석이 있지만
이 묘지는 상석이 없어졌는지는 모르지만 퇴주잔 놓는 받침대만 있고
좌측의 잔디밭에는 문인석이 누워있고 우측에는 문인석이 보이질 않는다
아마도 상석과 우측의 문인석은 망실된 듯 하다
우측의 잔디밭에 누워있는 문인석...묘지의 형태로 봐서는 예전에 잘 나가시던 분 같은데...
오매실재(09:22)
허름한 안부가 나오는데 함양군 백전면 대안리로 오매실재란다
지금은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707봉(09:28)
조금전 771봉에서 바라보았던 여인의 유두처럼 생겼던 뾰족한 봉우리... 멀리서 보기와는 달리 유순하다
넓은 공터 같은 곳도 보이고...
해도해도 너무 심하다... 범여가 탔던 지맥중에 가장 악명높은 고흥지맥이 울고갈 듯 싶다
안부(09:40)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을 오르는데 도저히 지맥길을 갈 수가 없어
옆 사면길을 치고 오르는데 주위에는 두릅나무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장애물 넘기는 예사이고...
720봉(09:47)
ㅆㅂㅆㅂ
수헌 아우님도 미치겠는 모양이다
바위가 있는 등로를 지나니...
엉터리 이정표
이곳이 옥잠봉도 아니고 고도도 틀리다...이러니 열심히 하시고도 산꾼들의 공공의 적이 될 수 밖에...
옥잠봉(玉簪峰:705.5m10:10)
남원시 아영면과 함양군 백전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봉우리 주위엔 소나무들이
가려져 있고 꽤나 오래된듯한 준.희 선생이 붙힌 산패에 옥잠봉이란 글씨가 씌여있다.
고도는 현 지도와는 조금 다른 690.0m로 표기가 되어있어 조금은 혼란스럽다
옥잠(玉簪)이란 옥으로 만든 비녀를 말함인데 지명의 연유가 궁금하다
남원시 아영면의 자료를 검색해보니 옥잠봉이 아닌 옥녀봉으로 나오는데 옥녀의 비녀인가?
걸음이 빠르기로는 두번째가라면 서러워 할 젠틀맨님이 먼저 옥잠봉에 도착하여
늦게 도착한 나에게 남원의 명물인 이백막걸리 권하는데 안그래도 목이 말랐는데
연거푸 2잔을 마시고나니 갑자기 힘이 솟아나는 느낌이다
갈림길(10:15)
옥잠봉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선 채로 약간의 휴식을 취한후에 다시 길을 나선다
옥잠봉에서 내려서자마자 우측의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직진의 희미한 능선을 따른다
암릉 사이이 능선을 따라서 내려간다
좌측 저너머 멀리 보이는 산이 백두대간상에 있는 함양 백운산이겠다
등로에서 바라본 함양군 백전면 구산리(龜山里)의 모습
구산리는 옥잠봉 기슭에 자리한 산골마을로서 자연마을로는 가는골, 감나뭇골, 거망골, 도장골,
서당골마을 등이 있으며, 가는골마을은 한자로 음차하여 세곡마을이라고도 하며, 가는 골짜기에
자리했다 하여 지어진 지명이고 감나뭇골마을은 감나무가 많았다 하여 지어진 지명이다.
거망골마을은 지형이 거망(그물)처럼 생긴 골짜기에 자리했다 하여 불리는 지명이다.
도장골마을은 도장처럼 우묵한 골짜기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유래된 지명이다.
서당골마을은 서당이 위치해 있었다 하여 불리는 지명이다
잠깐의 편안한 등로로 내려서니 또다시 등로는 성질을 부리기 시작하고...
무명묘지가 있는 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내려간다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밤골 안부(10:30)
임도를 가로질러 직진으로 내려서니 밤나무 단지가 나오고...
밤나무 단지 가운데로 걷는다
밤나무단지 끄트머리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능선으로 들어선다
한번도 뵌 적은 없지만 엄청나게 깐깐하게(?)...원칙을 고수하며 맥길을 걸으시는 분 같다
지나온 옥잠봉의 모습
우측으로는 남원시 아영면 의지리(蟻池里)인데 본래 운봉의 북하면(北下面) 지역으로
지형이 개미허리 형국이어서 개암주 또는 의지(蟻池)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월성리(月城里)와 의지리 일부를 병합하여 의지리(蟻池里)라 하고 남원군 아영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남원시·남원군 통합으로 남원시 아영면 의지리가 되었다
이 지역의 평균 고도가 500m이며 남강 상류인 풍천(楓川)이 마을 앞을 흐른다.
능선에서 내려오니 무명묘지를 만나고...
조금을 더 내려오니...
경주김공과 유인 동래정씨의 묘지를 지난다
고랑을 따라서 내려가니...
잡목의 저항이 너무 심하여 포기하고 우측 과수원길로 내려선다
사과밭 농로로 내려선다... 과수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
앞에 보이는 농막 뒷쪽 아래가 비조재이다
비조재(飛鳥峙:520m:10:50)
남원시 아영면 의지리와 함양군 백전면 구상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남원쪽은
사과밭이있는 덕분(?)인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되어있고, 함양쪽은 비포장도로인데
고개 좌측에는 예전에 성황당이 있었는지 돌무더기의 흔적이 보인다
준.희 선생의 팻말...떨어져 있는 것을 보수를 하고 길을 떠난다
우측의 임도를 따라서 올라가니 지도상에도 없는 저수지가 나온다
예전의 임도길은 인적이 뜸한 탓인지 숲으로 변해 버렸다
갈림길(11:00)
좌측의 임도 방향은 숲이 우거져 등로는 아예없고 우측으로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시멘트 수로가 있다
이곳에서 꽤나 많은 산꾼들이 좌측의 677봉을 생략하고 우측으로 가버린 흔적들이 보이는데 그건 아니되옵니다
얼굴을 할키면서 잡목을 헤치고 능선을 올라서니...
대단하신 맨발님
가지많은 소나무가 보이고...
묘지(11:20)
연비지맥길을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나...이곳에서 좌측으로 약간 떨어진 677봉으로 오른다
677봉(11:25)
얼마전 작고하신 한현우님께서 飛鳥峰이란 코팅지를 붙혀놨다
다시 되돌아와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내려가는 길 역시 길이 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경주김공 묘지
경주김씨 시조 김알지(金閼智) 의 61대 孫이면 나의 증손자뻘 되는구먼
이곳에서 망자인 증손자 도현공의 밥상을 빌려 이곳에서 점심상을 펼친다
점심시간(11:40~12:35)
떡라면을 끓이고 젠틀맨의 어부인께서 싸주신 밥과 함께 만찬을 벌인다
거기다가 캔맥주에다가 후식으로 커피에다 과일까지... 그 와중에도 지도를 보면서 산이야기다
점심을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우거진 잡목과 가시로 인해 등로가 보이질
않는데 희미한 竹泉선생의 낡은 시그널을 만난다... 잘 가고 있다는 얘기다
거친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묘지를 지나 농로를 끼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아영면 의지리 밤골마을의 모습
달공서공의 묘지를 지나 우측으로 내려가니...
최근에 4차선으로 확장된 88 올림픽고속도로 오천육교가 보인다
오천육교(12:52)
새로 확.포장된 88고속도로가 이 육교 아래로 시원스레 달리고 있다.
오천육교에서 바라본 함양쪽 88고속도로
남원쪽의 88고속도로
매치(430m:12:55)
경남 함양군 백전면 오천리와 전북 남원시 아영면 의지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37번도로가 지나가며 좌측 아래쪽엔 매치마을 버스 정류장이 있고 팔각정이 보인다
좌측의 오래된 비석으로 바라보면서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이 마을길은 지맥 마루금이면서 전북과 경남을 가르는 도 경계점이기도 하다
시멘트 농로에서 바라본 함양군 백전면 오천면 매치마을의 모습
오천리(五泉里)는 봉화산과 괘관산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다.
낮고 평탄한 지대에 자리하고 있으며, 마을 중앙으로 위천이 흐르고 있다. 하천 주변으로
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자연마을로는 구천, 매티, 양지 마을 등이 있다.
구천 마을은 양천 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매티 마을은 양천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양지 마을은 새암골 서북쪽의 양지에 위치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농부 한명이 밭을 갈면서 산에 가시냐고 인사를 건넨다.
나 역시 인사를 건네며 이곳의 유래를 물으니 재미있는 대답을 해 주시는데 웃음이 나온다
뒤돌아보면 조금전에 지나온 오천육교가 보이고 그 뒷쪽 화살표쪽에 예전에 집이
한채가 있었는데 마당 가운데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 지르는 도 경계가 지나가는
곳이었는데 안방과 정지(부엌의 경상도 사투리)는 경상도이고 사랑채와 통시(화장실)는
전라도라서 경상도에서 밥을 해다가 전라도에서 먹고 볼 일도 전라도에서 봤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집이 없어져서 코미딕한 이야기는 사라졌다고 한다
오천리 지하수 물탱크(13:00)
식수 탱크를 지나면서 우측으로 꺽어졌다가...
넓은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오르면서 고행의 길은 시작된다
등로 우측으로는 예전에 공동묘지(?)였는지 무덤같은 봉분들이 많이 보인다
매치마을에서 고도를 200m 이상을 올리는데 상당히 힘이 부친다
안산(641m13:30)
아무것도 볼품없는 그냥 밋밋한 산이다...어릴적 기억으로 마을앞에 있는 산을
안산이라고 많이 불렀는데 두락마을 앞에 있어서 그렇게 부른건 아닌지?(범여의 생각中에서)
우측으로 내려오니 오랫만에 잠깐 동안이지만 편한 길을 걷는다
능선 아랫쪽에 벌목지가 나오면서 등로는 우측으로 꺽어진다
가야할 연비산은 멀게만 느껴지고...
정상적으로 등로를 걸을수가 없을 정도이다... 사면으로 가는데 좌측 아랫쪽엔 녹색 철조망이 보인다
묘지(13:45)
능선상의 묘지에서 90도로 꺽어져 좌측으로 내려오니 대리석으로
뒤집어 쓴 묘지가 나오는데 그 옆엔 뫳돼지가 땅을 마구 파헤쳐놨다
학생 김해김공 묘지(1834~1888)
배골고개(梨峙13:50)
남원시 아영면 두락리 배골마을에서함양군 백전면 오천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요즘 벌목이 한창인데 고개의 유래는 두락리 배골마을에서 따온듯 하다
배골은 두락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이화사(梨花寺)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이동(梨洞)이라고도 불리며 배골마을이 있는 두락리(斗落里)는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국경
마을이어서 남자들이 싸움터에 끌려가 여자들이 농사일을 하였는데, 흉년이 들어 고사를 지냈더니
콩농사·팥농사가 풍년이 들어 ‘콩 두(豆)’자와 ‘물이름 락(洛)’자를 써서 ‘두락’이라 했다고 한다.
그 뒤 다시 흉년이 들어 부처님께 빌었더니 ‘콩 두’자를 ‘말 두(斗)’자로 고치면 풍년이 들 것이라고 하여
두락(斗洛)으로 고쳐 불렀다가 두락(斗落)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논이 많아 ‘두래기’로 불리던 것이
‘두락(斗落)’으로 정착되었다는 설이 더 합리적인 것 같다
배골고개에서 절개지로 오르기 힘이들어 우측의 임도로 올라서는데 버들강아지가 피기 시작한다
잠깐동안 임도를 따르다가...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또다시 잡목과의 전쟁을 치르며 고난의 행군은 시작된다
568봉(14:02)
568봉에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가야할 연비산과 그 너머로 오봉산이 보인다
안부(14:08)
우측으로 계곡처럼 생긴 뚜렸한 등로가 보이는데 아영면으로 이어지는 임도인듯 하다
등로에서 조망이 되는 곳을 만나는데 88고속도로 함양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아련히 보이고
그 너머 거창의 괘관산이 보이는데 일제의 잔재를 없앤다면서 대봉산으로 지명이 바뀌었다고 한다
조망처를 지나 우측으로 살짝 꺽이는 지점에 진양치라는 팻맛이 붙어있다
그런데 지도상에서 진양치는 이곳에 조금 더가야 있다... 동행한 수헌, 산으로 아우님도
이곳이 진양치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준.희 선생이 걸어둔 산패를 원위치로 옮기로 한다
조그만 봉우리를 내려서니 고개가 보이는데 지도상의 진양치이다
진양치(晉陽峙:565m:14:25)
남원시 인월면 유곡리와 함양군 백전면 오천리로 이어지는 고개로 우측의 유곡리 도장골로
이어지는 임도는 사람들이 다니는지 등로가 비교적 뚜렸하고, 함양쪽은 등로가 희미하다
이곳에서 우측은 처음부터 같이 걸었던 남원시 아영면과 작별하고 인월면으로 面界가 바뀐다
지도상의 위치에다가 가져온 산패를 걸어둔다
진양치에서 연비산으로 오르는 급경사의 등로 참으로 힘이든다
자그만 봉우리 서너개를 오르는데도 연비산은 아직도 멀었다... 체력은 점점 고갈되고...
후미에 같이 걸었던 수헌아우님과 선 채로 쥬스 하나를 마시면서 1분간의 휴식을 취한다
연비산(鳶飛山: 842.8m15:05)
남원시 인월면 유곡리와 함양군 백전면 오천리와 함양읍 웅곡리경계인 산으로 산의 모습이 솔개가
날아가는 형상을 닮았다 하여 솔개 연(鳶)을 써서 연비산이라 했다고 하며, 유곡마을의 뒷산으로
마을에서는 솔개산이라 부르며, 연비는 솔개가 날아가는 뜻으로 솔개에는 닭이 있어야 하는데 마을의
형태가 닭장 모양이고 마을 앞 안산은 닭장 가리개 모양이라 하여 닭유(酉)자를 넣어 유곡리라 하였다 한다.
산의 꼭지점은 삼면 경계봉으로 이곳부터는 좌측으론 함양읍으로 면계가 바뀐다
지도엔 연봉산(1961. 4.22고시)으로 표기했으나 2002. 1.5에 연비산으로 변경고시됐는데
아직도 영진 1/50,000의 지도에는 연봉산(鳶峰山)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지도가 바뀌지 않은 것일까?
연비산 정상 삼각점(△운봉 23 / 1988 재설)
연비산 정상에서의 인증샷
연비산에서 바라본 함양읍의 모습
이곳에서도 연비산에 먼저 도착한 젠틀맨님이 막걸리판을 벌려놓고
간식으로 당신이 지난해 직접 농사를 지었다는 생고구마를 건네는데 무겁게
지고온 막걸리를 얻어 먹기엔 너무나 미안하다...그렇다고 주는걸 안 먹을수도 없고...
연비산에서 내려다 본 지리산 낙농협 축사
젠틀맨님에게 이백 막걸리 2잔을 얻어 마시고 원기를 회복한 후에 다시 길을 나선다
약간의 내리막길에는 로프가 있고...
곰실재(熊谷峙:755m:15:20)
함양군 함양읍 웅곡리와 남원시 인월면 건지로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사람들의 왕래가 전혀 없는지 지도를 보지않고 걸으면 고개인지도 모르겠다
지명의 유래는 웅곡 마을에서 따왔으며 곰실이라고도 불리며 깊은 골짜기에
위치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822봉 갈림길(15:24)
곰실재에서 올라서다가 822봉으로 오르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그러나 이곳은 등로를 잊어버릴 염려는 없다... 우측으로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달려있다
忍苦
암봉(15:28)
사람들의 흔적이란 찾아 볼수도 없고...
민망하게시리...
안부(650m:15:38)
지리산 낙농협동조합육성우위탁사업장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임도가 보이고 현재
벌목중이고 일부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이곳을 곰실재라 표기하는 분도 계신다
벌목중인 등로로 올라선다
웅덩처럼 파인 봉우리도 지나고...
안부(15:45)
폐헬기장(15:47)
지도상에 헬기장으로 표기되어 있는 곳엔 키작은 소나무가 무성하다
오늘 산행은 생각보다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느낌이다...그만큼 힘이 든다는 얘기다
음지라 낙엽 아래는 땅이 얼어있어 생각보다 미끄럽다
아직도 殘雪이 남아있고...
뒤돌아 본 연비산의 모습
조망바위(16:05)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옥녀봉과 웅곡마을
상산(오봉산)으로 오르는 길
옥녀봉 갈림길(16:16)
갈림길에서 바라본 옥녀봉(玉女峰)
고추봉이란 지명도 가지고 있는 옥녀봉...고추는 남자를 지칭하며 아래 옥녀봉과 남여를 연상시키는
봉우리로 구룡리 조동마을 앞 활래대의 거울바위를 내려다 보며 옥녀가 머리를 빗었다고 전한다.
이곳의 정남향은 지리산 천왕봉이며, 정면에 보이는 S자형 도로는 건설교통부와 도로교통협회가
선정한 한구의 아름다운 길 100선 "산길" 지안재로 지리사제일문으로 통하는 오도재로 가는 길이며
관광객들의 시선을 끄는 곳으로 옛날 남해안 하동지방과 함양을 연결했던 물물교환의 교역로였으며,
지안마을은 조선시대 사근도찰방에 소속된 지안역이 있었는데 1896년 폐지되었다.
산 밑 관동마을은 서기 503년 신라 지증왕이 즉위 후 중국에서 귀화한 오첨을 천령(속함군)백으로
임명하여 이곳에 와서 갓을 나무에 걸어놓고 마을을 개척하였다 하여 갓거링 마을이라고도 하며,
신라 중기 관청이 이곳에 있었다 하여 마으 이름을 관동(冠洞)이라 하였다 하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오봉산(五峰山:879m:16:18)
함양군 함양읍과 남원시 인월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항상 서리가 내린다고 하여 서리산,
또는 상산(霜山)이라고 하며 남원시 등지에서 보면 봉우리가 다섯이라 오봉산이라 불린다.
서기 1380년 고려 우왕 6년 이성계 장군이 황산 대첩에 앞서 5천명의 장병을 매복시켰던
큰골이 있고 바위능선 중간에 왜구를 대파한 곳으로 장군대좌라는 지명이 남아 있으며
옛날에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전북도계에는 신라와 백제의 경계를 이루었던 경상남도 기념물 제172호인 팔령산성이
있는데 서기 500년 신라 지증왕 즉위 후 중국에서 귀화한 오첨을 천령(속함군)백으로
임명하고 우리 고장을 다스리게 하였더니 이곳에 갓을 벗어 걸어두고 소로 밭을 가는
우경법을 개척하였다하는 우리 나라 오씨의 발상지 관동(갓거리)마을로 하산이 가능하고
응곡리, 죽곡리, 구룡리 방향으로도 하산이 가능하다.
옛 문헌에는 상산(霜山)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었다. 지역주민들은 ‘서리산’이라고 불렀음이
『조선지지자료』에 의하여 확인된다.
그리고 남원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라고 하여 오봉산이라고도 불렀다.
2009년4월부터 국토지리정보원의 고시로 상산에서 오봉산(五峰山)으로 공식 변경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함양과『천령지』에“ 상산은 군 서쪽20리 지점에 있다.
여러바위가 다투듯 빼어난데 형상이 칼날같다. 산 밑에 골이 하나 있는데 홍무(洪武)
경신년(1380), 왜적을 정벌할 때에 병기를 저장했던 곳이다”라고 기록 하였다.
『 함양군지』에서도 “백운산이 월경산을 지나 남쪽으로 내달려 이 산이 되었다.
산 위로는 장단(將壇)과 수치서(竪幟處)가 있고 산 아래에는 깊은 골짜기가 있어 일명 둔기(屯基)라고 한다.
우왕6년(1380)에 이성계가 왜군을 정벌할 때 이 골짜기에 병사를 감추어 왜장 아지발도를 죽였다”고 덧붙여
기록하고 있고『영남지도』(함양), 『조선지도』(함양), 『광여도』(함양), 등의 여러 군현지도에서 상산이 표기되었다.
상산의 유래 안내판
남쪽으로 바라보니 다음 구간에 가야할 삼봉산 능선이 보인다
오봉산에서 바라본 흥부가 살았다는 봉화산 아래 아영면 성리가 아련히 보인다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의 하나인 흥부전의 배경이다.
이곳은 전해내려오는 설화와 지명을 근거로,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발복지(發福地)로 밝혀졌다.
이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복덕가(福德家) 춘보설화(春甫說話)가 전해져 오고 있다.
흥부가와 춘보설화는 가난 끝에 부자가 된 인생역정, 선덕의 베품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내용이 유사하다.
실제로 성리마을에는 박춘보(朴春甫)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다.
매년 정월 보름에 망제단에서 흥부를 기리는 춘보망제를 지내오고 있다.
성리에는 흥부전에 등장하는 지명이 마을 곳곳에 남아있다.
허기재, 고둔터, 새금모퉁이, 흰묵배미 등의 지명은 고전에도 등장했던 지명이다.
지금은 길 양쪽으로 감자농사가 한창인 '허기재'는 허기에 지쳐 쓰러진 흥부를 마을 사람들이 도운 고개라고 전해진다.
'고둔터'는 고승이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흥부에게 잡아 준 명당으로, 흥부는 이곳에서 제비를 고쳐준 발복집터이다.
실제 '고둔'이라는 지명은 곳집(창고)이 모이는 터, 즉 부자가 되는 터라는 뜻이다.
이곳은 장수군 번암면으로 넘어가는 짓재 고개마루에 높다랗게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의 산자락과
이웃 논이 한 눈에 들어오고, '사금모퉁이'는 사금꾼들이 금을 채취하던 곳으로, 흥부가 이곳에서
금을 주워 부자가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되며, 한편, '흰죽배미'란 장소는 흥부가 부농이 된 후 은인들에게
보답으로 주었다는 논으로 전해진다. 흥부아내가 이웃들이 흰죽을 먹고 살아나서 ‘흰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노디막거리'는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부가 화초장을 지고 건넜다는 개울로 추정된다
오봉산으로 오르는 길이 너무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오봉산에 잠깐 서 있는 사이에 약간의 추위를 느낀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서둘러 길을 나선다
오불사 갈림길(1)(16:25)
팔령 3.1km→.오불사 1.2km↑. 상 0.1km↘ 이정표가 서 있다
뒤돌아 본 오봉산의 모습
875봉(16:30)
공터에서 내려오니 너덜길이 나오고...
건지리(乾芝里) 갈림길(16:32)
남원시 인월면 건지리는 지리적 요인으로 물이 풍부하지 못하여 주민들은 물을 갈망하는
심정에서 마을을 하늘이 보호해야 한다는 뜻으로 건(乾)자를 따서 건지(乾芝)라 불렀다.
건지리를 통과하는 도로의 동쪽을 내건(內乾), 서쪽을 외건(外乾)이라 하였다.
연비지맥 봉우리중에 가장 높은 삼봉산의 모습
오불사 갈림길(2)(16:40)
직진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로프가 있는 나무 계단으로 올라가니...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지친 산꾼 범여를 반기고...
썩어빠진 나무계단 굉장히 조심스럽게 오르는데 상당히 위험하다
암봉(16:50)
또다른 암봉 좌측 아래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850봉(16:56)
좌측으론 팔령산성으로 가는 길이고, 살짝 우측으로 돌아서 영선사, 인월쪽으로 향한다
834봉(17:03)
직진으로 가면 인월방향이고 지맥길은 급하게 좌측 내리막길로 향한다
장애물 경기를 하듯 쓰러진 나무를 피해 내려간다
오늘 산행은 잡목과 가시들이 끝까지 태클을 건다
흥부가 태어난 곳인 성산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야할 등로의 궤적
묘지(17:20)
안부를 가로 질러 농로를 따라서 가니 커다란 돌무더기가 나오는데 팔령산성이다
팔령산성(八嶺山城 경상남도 기념물 제172호:551m:17:25)
함양군 함양읍 죽림리에 있는 팔령산성은 함양군과 남원시의 경계를 이루는 팔령치에
위치한 이 성은 산 정상부에 있는 골짜기를 안고 쌓은 위치한 테뫼식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1 ‘함양군 산천조’에 따르면 신라시대에 석
축(石築)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성벽이 거의 무너졌지만 북서쪽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60x15cm 정도의 자연석과 인공석을 벽돌쌓기식으로 축조하였고, 경사가 완만한 남서쪽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며, 둘레 약 500m, 넓이 약 2,000평이며, 서쪽에는 성 밖에서
안으로 오목하게 쌓아올린 서문지(西門址)가 있다. 성 안의 일부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데
경질·도질의 토기조각이 발견된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격전지였으며, 고려 말과 임진왜란 때
왜병이 함양사근산성(咸陽沙斤山城)을 함락시키고 운봉으로 진격하는 것을 방지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산성이 있는 이곳은 지리산 줄기인 덕유산과 백운산이 연결된 곳으로, 지리적으로 방어의
요충지로 특히 산이 높고 숲이 울창하여 적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곳으로, 실제로 고려말
왜구들이 함양의 사근산성(沙斤山城)을 함락시키고 전라도 운봉으로 진격하는 것을 이성계가
산세를 이용해 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팔령재가 가까웠는지 차량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흥부가 탄생한 성산마을의 모습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 지역이었던 이곳에는 마을 남동쪽에
합미성(合米城)이 있어 마을이 성의 북서쪽에 해당하므로 오랜 동안 성북리 또는
성복골로 불리어 왔으며, 성복골은 성 옆에 성인동과 복덕촌이 있었는데 두 마을의
첫글자를 합쳐 성복골로 불렀다고 한다
이곳 성산은 흥부전의 발상지로 흥부전의 모태가 되는 형제애가 돈독한 박첨지
이야기가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 대가 끊긴 박첨지의 묘에서 매년 음력
3월 삼짓날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 내려오다 현제는 흥부제가 열리는 매년 음력 9월9일에 지낸다
마을로 내려가서 이곳 저곳을 둘러보기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인월에서 서울가는
막차가 18시 20분이고 수헌아우님이 택시를 불러놨다고하여 아쉬움만 남긴다
팔령산성 안내판을 지나...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내려서니 팔령재가 나온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화합을 상징하는 장승이 보인다
이곳 저곳을 좀 둘러보고 싶지만 택시가 미리와 있어 그냥 택시에 오른다
팔령재(八嶺峙:513m:17:38)
함양군 함양읍과 남원시 인월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동쪽인 함양쪽은 비교적 급경사면이고,
서쪽은 운봉(雲峰)을 거쳐 남원에 이르는 사면으로 인월리ㆍ운봉 등 분지 사이의 작은 고개를 넘어간다.
동쪽은 남강(南江)의 상류인 함양에서 서쪽으로 분기하는 팔량천(八良川)의 계곡으로 통하고,
서쪽도 같은 남강의 지류인 임천(臨川)의 지곡과 이어진다. 따라서 이 고개의 양쪽 사면은 같은
하천의 하곡에 의하여 연결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팔량치를 통과하는 24번 국도도 이들 하곡을 따라 개통되고, 동쪽으로 함양ㆍ안의(安義)를 거쳐
거창에 이르며, 서쪽으로는 운봉을 거쳐 남원에 이른다. 천연적 요새를 이루어 군사상ㆍ교통상의
요지로 중요시되며 신라 때의 성이 남아 있고, 옛날부터 경상남도의 북부 산간지방과 전라북도의
남동 산간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주변에는 흥부전에서 나타나는 흥부일가의 출
생지로 알려진 흥부마을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팔량관(八良關)이 설치되어 관문 역할을 하였다.
『 신증동국여지승람』(함양과『천령지』에“ 팔량현은 군 서쪽30리 지점에 있다.
전라도 운봉현 경계로서 요충지대이다. 고개위에 신라 때 옛 진터가 있다”라고 적었다.
『함양군지』에는“상산(霜山)이 남쪽으로 내달은 것이 이 고개이다. 전라도 운봉현의 경계이자 요해처이다.
고개 위에는 신라시대의 옛성(壘]이 있다고 한다”라고 기록하였다.팔량재를 통과하는 24번국도가 동쪽으로
함양·안의安義)를 거쳐 거창에 이르며 서쪽으로는 운봉을 거쳐 남원에 이르며 팔량재라는 명칭은 마한의
마지막왕이 행궁을 삼아 최후의 항전을 벌인 무대가 운봉 일대인데 8명의 뛰어난 병사가 지켰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인월 버스터미널(17:45)
팔령재에서 인월버스터미널까지 택시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이다
서둘러 동서울로 향하는 버스표를 예매하고나니 시간은 40분정도 여유...
근처 식당에서 김치찌게를 시켜서 소맥을 말아 연거푸 서너잔을 마신다
늘 신세만 진 젠틀맨님에게 근사하게 식사 대접을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야속하다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터미널로 들어선다
18시25분 인월 → 동서울 버스
젠틀맨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동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오늘은 정말 힘이든 산행이었다... 가시나무 새순이 오르기 전에 끝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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