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8년 03월 01일
☞ 산행날씨: 강한 바람과 눈...오후에 맑음
☞ 참석인원: 수헌 + 지인, 낡은모자님과 함께
☞ 산행코스: 황병산 가는길(통제)-대광령-월정사 일대 관람
☞ 소 재 지: 강원도 평창군 일대
1개월전인가 수헌아우님과 황병산 첫구간을 가자는 제의를 받았다.
소황병산에서 황병산으로 이어지는 이곳은 오대산 국립공원 국공파들의 강력한 단속으로 유명한 곳이고,
황병지맥의 주봉인 황병산 정상은 공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다
거기다가 특전사와 해병대 요원들의 동계 훈련장소로 유명한 곳으로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곳이다
대다수의 지맥꾼들은 이곳 정상을 밟지 못하고, 주마간산격으로 1구간을 끝내는 곳인데 수헌아우님의
지인이 군부대 지휘관으로 근무하고 있어서 군부대 구간 근처의 산행을 안내주겠다는 솔깃한 제의가
들어오기에 무조건 OK하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탑승장소인 사가정역으로 가기로하고 집을 나서는데
비는 조금씩 내린다 그런데 집을 나와 도로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30분이 되도록 택시를 잡지 못하다가
겨우 택시를 타고 사가정역에도착하니 약속시간 2분전이다...
수헌아우님 친구차를 타고 황병산으로 향하는데 비는 계속 내리고...내리던 비는 원주를 지나면서
눈으로 바뀌는데 조금은 불안하다

황병지맥(黃柄枝脈)이란?
황병지맥(黃柄枝脈)은 백두대간 대관령과 노인봉사이 소황병산(1329m)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오대천과 송천의 물길을 나누며 황병산(1407.1m),용산(1028m),두타산(구 박지산.1391m)을 지나
불당재위 1270m봉에서 한천골을 사이에 두고 다시 두 갈래로 갈라져 한줄기는 상원산(1422m),
옥갑산봉(1302m)을 지나 송천(길이 81.4km. 유역면적 352.06㎢)이 골지천에 합류하는 정선 여량의
아우라지로 가고, 또 한줄기는 갈미봉(1269m),백석봉(1171m)을 지나 오대천(길이 59.6km.유역면적
451.67km)이 골지천에 합류하여 조양강이 되는 나전교에서 금대지맥의 끝인 오음봉을 마주보며 끝이난다.
황병지맥의 본줄기를 신산경표는 상원산-아우라지로 가고 있으나(49.7km),
길이도 3km정도 더 길고 하천의 유역면적도 더 넓고 ,금대지맥과 마주보고 있고,
골지천이 비로소 조양강이란 이름이 붙는 나전교쪽을 본줄기로 봐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 지맥은 군부대가 있는 황병산은 정문에서 울타리를 오른쪽으로 돌아나갈 수 있으나
분기점에서 백일평 임도까지가 오대산 국립공원 지역으로 지정등산로가 아니라는 이유로 출입이 제한된다.
평창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황병산으로 향하는데 강풍과 함께 눈보라는 계속되고 불안하다
대관령I.C를 빠져나와 황병산으로 향하는 길에 우리를 인솔할 장교가 대관령초등학교에서 기다린다
지금 황병산 일대에는 눈이 엄청나게 쌓여있고, 영하12도에 강풍이 초속 30m로 불기에 접근이 불가능한단다
우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오니 대략 난감하다
대관령 초등학교 근처의 모습
아직도 눈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는데 현재 적설량이 60km정도라고 한다
무턱대고 황병산 방향으로 올라가는데 눈은 계속 내리고...잠시후 우리가 타고온 차는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다
강원도는 눈이와도 너무 많이 왔다
雪國
황병산으로 오르는 걸 포기하고 아쉽지만 차를 돌려서 대관령으로 향한다
대관령에 도착하니 자동차 문이 열리지 않을 정도로 강풍이 불어대니 이곳을 둘러볼 엄두가 안난다
대관령
대관령(大關嶺)이라 처음 부른 것은 16세기경인데, 12세기 고려 시인 김극기는 '대관(大關)'이라 불렀다.
이처럼 큰 고개를 뜻하는 '대(大)자를 붙이고 험한 요새 관문이라는 뜻을 담았다. '크다'의미를 사용한 것은
고개의 상징성이며, 관(關)이라 함은 중요한 경계적 요새(要塞)로서 영의 동서를 가르는 출입구를 말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대로 대관령이 영동의 진산으로 중앙과 지방, 영동과 영서를 구분하는 지리적 방어적
관문이자 문화적 경역, 상징적 공간이었다... 일찍이 고려초기 강릉장군 김순식이 태조 왕건을 돕기 위해 출병을 하였다.
그는 대관령에 이르러 제단을 만들고 승전의 기도를 올렸다고 하며 고려사에 기록할 정도로 대관령은 다른 지역으로 들
어가는 초입이자 신성한 영역으로 전한다.
풍수가들은 대관령을 '자물쇠 형국'이라 하는데 이것은 관문으로서 대관령을 넘나드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강릉지역에는 "평생 대관령을 한번 넘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전한다.
하는 수 없이 대관령 주위를 둘러보길 포기하고 아늑한 월정사로 향한다
월정사 일주문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어 현재까지 1,4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사찰로 평균 80여년의 수령을 가진 전나무 1,800여그루가 모여있는 숲길이다
월정사쪽은 바람이 거의 없어 보이고 하늘이 참으로 맑다
월정사 가는길
올해 처음으로 눈다운 걸 구경한다
월정사 전나무숲
오대산국립공원 월정사 일주문에서 경내로 들어가는 전나무숲은 약 2km정도로 경기도 광릉 국립수목원
전나무숲, 부안의 내소사 전나무숲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전나무숲으로 유명한 곳이다
전나무숲이 촘촘하게 하늘을 가리는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소나무가 대표적인 양수식물이라면 전나무는 음수식물이다.
음수식물이라해서 음지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음지에서도 잘 살다는 얘기이다
대표적인 양수식물인 소나무는 햇빛이 없는 음지에서는 살 수 없지만, 전나무는 햋빛이
없는 음지에서도 잘 자란다는 얘기이다
전나무 숲길에는 쓰러져 누워있는 고목도 보이고, 간간히 설치 미술도 보이는데 안목이 낮은
범여의 입장에서 보면 설치 미술이 자연과의 언벨런스란 느낌이 들어 거북스럽게만 보인다
눈길을 조금 걸어 맨 처음 만나는 전각이 성황각이다
눈 속에 묻혀버린 월정사 성황각
월정사 성황각(城隍閣)
성황각은 이 지방의 토속신을 모신 전각으로 맞배지붕의 전각은 약 2평정도이며
토속신앙이 불교에 잘 습합된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모든 사상과 믿음을 수용하려는
불교의 넓은 가르침을 잘 보여주는 전각이라고 할 수 있다사찰로 가는 일주문 에서
사천왕문 사이에 또는 옆에 모시고 있으며, 국사당, 국사단, 가람당이라고도 한다
성황신의 모습
수령 600년된 生을 다한 노거수의 모습
성지순례을 온 불자들의 모습
전나무숲 안내판의 모습
설국이 펼쳐지는 월정사 경내로 향한다
눈에 묻힌 돌부처가 산꾼을 반기고...
천왕문
천왕문에 들어서면서 좌.우에 있는 사천왕상에게 예베를 올리는데 근엄한 위엄과 기품이 있는
사천왕상인데 너무 높게 목책이 둘러있어 사천왕을 감상하거나 사진에 담기에는 너무 불편했다.
똑닥이 카메라를 목책안으로 넣고 촬영을 하는데 전신을 다 찍을수가 없어서 아쉽기만 하다
동방지국천왕(東方指國天王)손에는 검을 들고 봄을 관장하며 동쪽 하늘을 수호하는 천왕이다
서방광목천왕(西方廣目天王)
손에는 보탑을 들고있고 노여움의 감정을 주관하고 서쪽하늘과 가을을 관장한다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
손에는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고 사랑의 감정과 여름을 관장하고 남쪽하늘을 수호한다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
손에는 비파를 들고 있고 즐거움의 감정을 주관하고 겨울과 북쪽을 관장하며 야차와 나찰을 거느린다.
다른 사천왕에 비해 얼굴색이 조금 검은 것이 특징이다
금강루
천왕문을 지나면서 금강루를 만나는데 전각의 형태가 조금 특이하게 형성되어 있다
한국의 가람 배치에 있어서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으로 이어지는게 정설인데 월정사에는
불이문(不二門) 자리에 금강루가 배치되어 있는 것이 조금은 이채롭다
2층으로 된 전각인데 1층 아랫쪽에는 금강문이라 해놨고, 평창 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인
수호랑(좌측)과 반다비가 서 있고, 2층 누각에는 윤장대가 있는게 좀 특이하다
눈덮인 월정사 가람
금강루 입구에 있는 평창올림픽 마스코트
금강문(金剛門)
금강문의 우측에는 울금강역사상이라고 하는 나라연금강이, 좌측에는 훔금강역사상이라고 불리는
밀적금강이 있으며 특히, 밀적금강역사는 지혜의 무기인 금강저를 들고 부처님을 호위한다
이는 일체만물의 생성에서부터 소멸까지 표현한 것으로, 금강역사의 강한 힘과, 지혜로 불법을
호지(護持)하고 사찰을 수호하며 불교의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전면 3칸, 측면2칸, 2층의 누각으로
1997년 9월에 현해스님이 착공하여 1999년 10월에 낙성했다
오대산 월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로 <삼국유사>의 창건유래에는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돌아온 643년(신라 선덕여왕 12)에 오대산이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지라고 생각하여 지금의 절터에 초암(草庵)을
짓고 머물면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또한 민지(閔漬)가 쓴 <봉안사리 개건사암 제일조사 전기(奉安舍利開建寺庵第一祖師傳記)>에 인용한
<대산본기(臺山本記)>에는 이때 그가 머물던 곳이 바로 현재의 월정사 터이며, 자장은 훗날 다시 8척의
방(房)을 짓고 7일 동안 머물렀다고도 전하고 있어 이 절은 643년 자장이 건립했다고 볼 수 있다.
자장은 이곳에서 초가집을 짓고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태백산 정암사에서 입적하였다.
이후 신의(信義)선사가 암자를 건립하여 머물며 이곳에서 입적하였다.
이후 한동안은 머무는 승려가 없어 황폐해 졌다가 유연(有緣)이 머물면서 암자를 건립하여 사찰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1307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이일(而一)이 중창하였고 1833년에 또다시 불이나 전소되었다
1844년 영담(瀛潭), 정암(淨庵)이 사찰을 중건하였다.
1951년 1.4후퇴 때 사찰의 대부분이 전소되었으나 1964년 이후 탄허(呑虛), 만화(萬和), 현해(玄海) 등이 중건하였다.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스러운 땅으로 신앙되고 있는 이 절은 <조선왕조실록> 등 귀중한 사서(史書)를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
(史庫)가 있었고, 1464년(세조 10년)에 말사인 상원사(上院寺)를 중수한다는 말을 듣고 이를 돕고자 시주물(施主物)과 함께
보내 온 <오대산 상원사 중창권선문(五臺山上院寺重祠勸善文)>이 보관되어 있다.
주요문화재로는 석가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한 8각9층석탑과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있다.
이 밖에 일명 약왕보살상(藥王菩薩像)이라고도 하는 보물 제139호인 석조 보살좌상(菩薩坐像)이 있다
보장각(寶藏閣)
예전에 월정사 성보박물관이었는데 지금은 월정사 초입에 굉장히 큰 규모의 성보박물관이 건립되어 종무소로 사용되고 있다
보장각과 적광전 사이 석불들이 도열해 있는게 조금은 이채롭다
적광전의 외부 기둥은 모두 18개인데 이 가운데 16개는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소나무이고
2개는 괴목이며, 내부기둥 10개 등도 모두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전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 이 자리는 과거 7불을 모신 칠불보전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6.25 때 소실된 것을 1964년
주지 만화스님이 다시 중건한 것이라고 하며 현판과 주련(柱聯) 글씨는 탄허스님의 친필이다
내부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불과 근래에 조성한 석가모니후불탱, 1975년에 조성한 신중탱ㆍ
감로탱, 반자 등이 봉안되어 있다
팔각구층석탑(八角九層石塔:국보 제48호)
8각 모양의 2단 기단 위에 9층 탑신을 올린 뒤,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 모습으로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을 새겨 놓았고, 아래ㆍ위층 기단 윗부분에는 받침돌을 마련하여 윗돌을 괴어주도록 하였다.
탑신부는 일반적인 석탑이 위층으로 올라 갈수록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과 달리 2층 탑신부터 거의 같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으며, 1층 탑신의 4면에 작은 규모의 감실(龕室)을 마련해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계단 모양의 받침을 두지 않고 간략하게 마무리하였다.
가볍게 들려 있는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아 놓았고, 지붕돌 위로는 머리장식이 완벽하게
남아 있으며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서 화려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고려시대가 되면 4각형 평면에서 벗어난 다각형의 다층석탑이 우리나라 북쪽지방에서 주로 유행하게
되는데, 이 탑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 전기 석탑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당시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적인 비례와 조각수법이
다각다층석탑을 대표할 만하며, 또한 청동으로 만들어진 풍경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을 통해
금속공예의 수법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인증샷
적광전 앞에서설선당(說禪堂)
사찰의 주요 행사나 모임, 수련법회장으로 쓰이며 또한 스님들의 요사채로 사용되는 전각으로 동별당이라고도 부른다
용금루(湧金樓)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1977년 만화스님이 중건하였다고 한다
본래 용금루는 8각9층석탑 가까이 있던 것을 1994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이다.
누각 기초를 화강석 기둥으로 하였고 밑으로는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하였다
용금루옆에는 종고루와 불유각이 있는데 종고루는 정면 3칸, 측면2칸의 2층 누각으로 1층에는
불교용품 판매장이 있고, 2층에는 범종, 목어, 운판, 법고의 불전사물이 봉안되어 있으며
종고루 바로 옆에는 불유각(佛乳閣)이 있는데 불유각이란 ‘부처님 우유가 있는 집’ 이란 뜻인데
우유는 아니고 수질이 좋기로 유명한 오대산 샘물을 참배객과 등산객에게 제공하는 샘터인데
지금은 날씨가 너무 추워 물이 얼어버려 마실수가 없다
올 겨울에 처음으로 눈다운 눈을 본다
월정사 경내를 주마간산격으로 둘러보는 사이에 동료들은 사라지고...
한폭의 그림같은 설경
날이 밝아지면서 하늘은 너무 곱고...
월정사를 뒤로 하고...
천왕문을 나선다
오대산 만월교
오대산의 모습
오대산은 설악산과 더불어 백두대간의 속하는 고산준령으로 주봉인 비로봉(1,563m)을 중심으로 호령봉(虎嶺峰)·
상왕봉(象王峰)·두로봉(頭老峰)·동대산(東臺山) 등의 고봉들이 솟아 있으며 산의 가운데에 있는 중대(中臺)를
비롯하여 북대·남대·동대·서대가 오목하게 원을 그리고 있고, 산세가 다섯 개의 연꽃잎에 싸인 연심(蓮心)과 같다 하여
오대산이라고 부른다
오대산은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산림지대로 생물상이 다양하고 풍부하며 총 2,748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월정사(月精寺) 옆의 금강연(金剛淵)은 천연기념물인 열목어와 메기·탱수·뱀장어 등이 서식하고 있어
‘특별어류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식물은 전나무·분비나무·신갈나무·자작나무를 비롯하여 총 1,040종이 서식하고 있고, 비로봉 일대의
측백나무·주목나무군락, 호령봉계곡의 난티나무군락, 두로봉과 상왕봉 능선의 철쭉·금강초롱 등은 유명하다.
특히 월정사로부터 상원사(上院寺) 적멸보궁(寂滅寶宮)을 잇는 10㎞의 계곡은 수백 년이 넘은 전나무와
고산식물, 잡목이 우거진 숲으로 수려하고 웅장하다
주차장에는 자동차들이 눈 속에 묻혀있고...
지금 월정사 경내는 정전중이다
상원사로 가려고 했는데 모든게 출입통제란다
도로를 따라서...다리를 지나고...
미치도록 환상적인 전나무 숲길
새로 생긴 성보박물관 앞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길에 진부를 지나
장평으로 향하는 국도를 타고 가다가 이목정1리 노인회관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이목정1리 노인회관 어르신들의 양해를 구한 다음 산에서 먹으려고 가져온 라면에다 떡국을 끓이고
낡은모자님이 가져온 등심을 구워서 소주와 막걸리를 거하게 마시고 서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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