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8년 11월 11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지독한 미세먼지
☞ 산행거리: 도상거리 20.5km / 6시간15분소요
☞ 참석인원: 동료산꾼 8명과 함께
☞ 산행코스: 기지시 버스 정류장-e편한세상 아파트-도고머리 육교-반촌육교-능성구씨 묘
서원사 갈림길-NO5, 114송전탑-오룡산-NO6, 115송전탑-무명봉-서해안고속도로
국일철강산업-대우볼트-신평산업단지 버스 정류장-철마산-마을 사거리-54m봉
올리고전통문화체험관-올리고 마을 입구-초대1리 갈림길-고센농원-거산육교
신평중.고 입구-신평 중.고교-형제농장-삼거리-흥국농장-일흥목장-흥국사 입구
세한대학교 입구-남산육교-신평농협 오거리-망객정 궁도장-공터-69.9m봉-망객정
망객산 입구-신평이씨 사당-파니시아 골프장 입구-경수제철 입구-도성사거리 버스정류장
도성리 입구-야굴산-도성리 마을회관 버스 정류장-한정리 입구-한정초교-고려소재
한솔스틸-한정리 보건지소 버스 정류장-매산리 사거리-38.77번 국도 암거-사거리
석화산-맷돌포 나루터
☞ 소 재 지: 충남 당진군 송악읍, 신평면
참으로 오랜만에 맥산꾼들과 함께 단체로 하는 산행을 해본다.
삽교(석문)지맥 마지막 구간인데 이 구간은 산이라기보다는 도로를 걷는다는 표현이 맞을듯한
그야말로 非山非野 구간이긴 하지만 동행하는 산꾼들이 워낙 호화준족이라 자신이 없어 망설였는데
대장을 맡고있는 산동네님이 보조를 맞춰줄테니 오라고 하여 진권아우와 같이는데 서해안 지역에는
엄청난 미세먼지로 인해 앞에가는 차량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고숨쉬기조차 힘이들 정도이다...
양재역을 출발한 미니버스는 기흥휴게소 잠깐 들렸다가 들머리인 당진시 송악읍 기지시에 도착하는데
이곳도 서해안 지역이라 중국발 미세먼지로 인하여 숨쉬기조차 힘이 드는데 마스크를 가지고 오지 않은게
후회스럽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차에서 내려 간단하게 산행 준비를 한 다음에 곧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기지시 버스정류장(08:35)
산행을 시작하다
버스정류장을 지나니 우측으로 롯데캐슬 아파트가 보인다
e-편한세상 아파트 정문(08:36)
e-편한세상 아파트를 끼고 알찬공인중개사 간판을 바라보면 좌측으로 꺽어진다
알찬공인중개사 간판을 지나 e편한세상 아파트 단지와 한빛아파트 사잇길인 '도고머리길'로 향한다
도고머리 육교(08:38)
도구머리 마을로 넘어가는 육교인데 아래쪽은 619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도구머리는 구억말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한적한 농촌마을인데 점점 도시화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도고머리 마을 가운데로 가로질러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지맥길은 오룡산 방향으로...
반촌육교(盤村陸橋:08:47)
당진시 송악읍 반촌리에 있는 육교로 아랫쪽으로는 633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있다.
반촌리(盤村里)는 북동쪽의 오룡산을 주산으로 하여 남동쪽으로 길게 향배한 저산성 구릉 지대로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완만한 구릉성 지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마을 남서쪽에는 송악 저수지가 있다.
반촌리는 반소리(盤所里)와 대촌(大村)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반촌리(盤村里)라 하였으며
북쪽의 오룡산을 경계로 하여 가학리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국수봉을 경계로 기지시와 접하며
중산간 평야지대로 마을 중앙으로 오봉천이 동류하여 남원천으로 유입이 된다
반촌육교에서 바라본 633번 지방도
초반부터 도로를 따라서 걷는데 삽교(석문)지맥은 지난구간 갈산육교를
지나면서부터 급격한 도시화 맥길의 기능을 상실한 듯 하다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의 비포장 도로로 올라선다
등로옆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흔적
능성구씨 묘(08:51)
능성(綾城) 구씨(具氏)는 고려 구존유(具存裕)를 시조로 하는 성씨로 구존유는 고려 시대 벽상삼한삼중대광검교상장군
(壁上三韓三重大匡檢校上將軍)을 지냈다. 고려 충숙왕[1313~1330] 대에 능성구씨 4세조인 중대광판전의시사
(重大匡判典儀侍事) 구예(具藝)가 입향조이다. 구예가 죽자 그의 산소를 가교리 신암산에 정하고 그의 부인
아주(鵝州) 신씨(申氏)가 이곳에 구룡사(九龍寺)[申菴寺]라는 절을 지어 남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게 된다.
이후 후손들이 조상의 묘가 있는 송악읍 가교리에 정착하면서 현재까지 가교리에 능성구씨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다
서원사 갈림길(08:52)
낙엽이 수북한 등로옆에는 벤취가 있고...
NO5, 114송전탑(08:57)
밭 가장자리로 걸어가니...
등산로 입구 표지판 방향으로 올라간다
팔각정이 나오고...
약간의 오르막길로 올라서는데...
우측으로 2번째 팔각정을 만나고 좌측 능선 윗쪽이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오봉산 정상에 오른다
오룡산(五龍山:113.4m:09:03)
당진시 송악읍 반촌리와 가학리, 영천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그저 밋밋한 뒷동산인데도
그래도 명색이 족보가 있는 산으로 산 능선 좌측 아랫쪽엔 서원사와 대성사가 있다
오룡산에 대한 지명유래에 대한 자료가 없어 알 길이 없으나 다섯마리 용에 대한 사연이
있어서 그렇게 부르지 않았을까(범여의 생각 中에서)
서원사는 최근에 창건한 사찰이며 대성사는 약 50여 년전에 이대인 승려가 창건한 작은 암자였는데,
2005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 새로 지었으며 1996년에는 대한 불교 조계종의 포교당으로 등록하였다.
대성사는 북한의 어느 절에서 왔다고 전해지는 종이로 만든 관음 보살상이 있다. 종이로 만든 불상은
흔치 않은데, 이 불상 안에는 복장물(腹藏物)로 책이 들어 있다고 한다. 소장품으로 천염주(千念珠)가 있다.
천염주는 염주알 5개마다 불경 구절인 듯 한 종심(宗心), 묘청(妙淸) 등의 각자(刻字)가 있고 천염주의 길이는 9m가 된다.
은입사 향로(銀入絲香爐)가 있다. 바탕은 청동으로 종성되었고 학 다섯 마리가 나는 각각의 형상과 바닷물결
같은 은이 입사되어 있는데 하지만 일부 바닷물결의 은입사는 빠져 나갔다. 향로 바닥에는 양산(陽山)인 듯한 낙관이 있다.
고문서도 보관하고 있다. 내수사(內需司)[조선 시대 왕실 재정의 관리를 위해 설치되었던 관청]에서 절에 보낸 것이라 한다
오룡산을 내려선다
NO 6, 115송전탑(09:06)
NO 6, 115송전탑을 지나 조그만 능선을 넘는다
우측에 묘지가 있고 임도를 따라서 내려선 다음에...
갈림길이 나오고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다시 갈림길 우측의 편안한 등로를 두고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선다
무명봉(09:12)
잡목을 헤치고 개고생을 하면서 내려서니...
등로 우측 아랫쪽엔 김해김공 가족묘지가 보인다
벌목지를 지나니...
사거리(09:16)
반촌길 도로표지판이 붙은 사거리에서 직진으로 향한다
인삼밭을 지나니...
갈림길이 나오고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비포장 도로로 향한다
임도가 끊어지는 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선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비포장 임도가 나온다
서해안 고속도로(09:28)
서해안 고속도로 인해 끊어진 지맥길은 우회하면서 암거를 통과한다
이곳부터는 맥길이 난해하다...산꾼들마다 가는 길이 달랐고 생각도 달랐던 모양이다
내가 다운을 받아서 온 트랙은 우측으로 이어지는데 산동네님은 좌측이 맥길이란다.
그러나 어쩌랴... 어차피 도시화가 돼버린 맥길...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바라보이는 건너편 태성밴딩 뒷쪽이 맥길 같은데...
좌측의 묘지쪽으로 올라간다
묘지에서 바라보니...
내가 다운 받아온 트랙의 지맥길로 보이는 태성밴딩 뒷쪽의 이동통신탑이 눈에 아른거린다
다시 시멘트 도로를 만나고 조금을 더 가니...
C자형 도로에서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내려선다
우측 아랫쪽에 공장 건물이 보인다
직진쪽이 지맥길이나 길이 막혀 우측 아래로 내려선다
신평산업단지의 공장지대로 맥길이 끊겨 버린 부분
공장으로 내려가는 길
공장 마당을 지나간다
국일철강산업(09:43)
국일철강산업 정문으로 나오니 도로가 나오고...
도로 맞은편 공장 뒷쪽이 맥길이나 갈 수가 없어 도로를 따라서 우회를 한다
대우볼트 정문(09:47)
도로를 따라서 가니 신평산업단지 교차로가 나오고 32번 도로 암거가 보인다
좌측으로 꺽어지니...
신평산업단지 버스 정류장(09:48)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신평산업단지 입간판을 지나...
김영석가구 전시장 주차장을 지나니 Kcc당진 물류센터가 보인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서 비포장 농로로 들어선다
농로 좌측으로는 수로가 지나가고 있다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이쪽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공단으로 인해 철마산을 가기위해 거꾸로 올라간다
버려진 호박밭 너머로 미세먼지가 심한지 모든게 뿌옇게만 보인다
농로를 따라서 철마산으로 향한다
철마산(鐵馬山:92.8m:10:08)
당진시 신평면에 있는 철마산은 야트막하며 사람들이 찾지 않는지 등로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판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낡은 삼각점이 정상을 지키고 있고 철마산의 유래도 알 길이 없다
당진시의 자료는 산명에 대한 유래는 전혀없어 불편한 점이 한두개가 아니다
철마산 정상 삼각점(△당진 421)
삼각점 실물로는 판독이 불가능하다
반갑습니다
마루금으로 복귀하여 제대로 가고 있다
조금전에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가고 있다
다시 왔던 길에 복귀를 한 다음에...
수로 옆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농로를 따라가니...
마을 사거리(10:25)
신평면 거산리(좌)와 송악읍 영천리의 갈림길인데 우측엔 CJ비비고 물류창고 있다
마을사거리를 지난 다음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또 다시 수로를 만나고...
넓은 농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인공수로 윗쪽을 지난다
이곳을 지나면서 좌.우 모든 행정구역이 온전히 송악읍을 벗어나 신평면으로 들어선다
54m봉(10:35)
54m봉을 지나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올리고전통문화체험관(10:40)
주력하고 있으며 올리고전통문화체험관을 적극적으로 활용, 농촌체험관광과 연계한 체험상품도 인기다.
주말농장 운영을 통해 단호박이 도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마을 특산품인 단호박은 토심 깊은 황토에서 해풍을 맞으며 커서 당도가 높으며 국내시장은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올리고전통문화체험관을 내려서 우측 도로를 따른다
수로를 끼고 도로를 따른다
올리고 마을 입구(10:45)
올리고 마을을 지나 갈림길에서 좌측 도로를 따른다
가을의 시 / 김현승
넓이와 높이 보다
내게 깊이를 주소서
나의 눈물에 해당하는
산비탈과
먼 집들에 불을 피우시고
가까운 곳에서 나를 배회하게 하소서
나의 허공을 위하여
오늘은 저 황금빛 열매들마저 그 자리를
떠나게 하소서.
당신께서 내게 약속하신 시간이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기적들을 해가 지는 먼 곳으로 따라보내소서
지금은 비둘기 대신 저 허공으로 산 까마귀들을
바람에 날리소서
많은 진리들 가운데 위대한 허공을 선택하여
나로 하여금 그 뜻을 알게 하소서
이제 많은 사람들이 새 술을 빚어
깊을 지하실에 묻을 시간이 오면
나는 저녁 종소리와 같이 호올로 물러가
내가 사랑하는 마른 풀의 향기를 마실 것입니다.
도로가 있는 삼거리 버스정류장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비포장 도로에서 다시 우측으로...
아로니아 재배지를 지나...
황토밭 가운데로 지난다
밭 가장자리를 따라서 가니...
소나무숲을 지나...
다시 도로를 따라서 간다
초대1리 갈림길(11:06)
당진시 신평면 초대리(草大里)는 신평면의 서쪽에 위치하여 말목 고개를 넘어서 통할 수 있으며, 송악읍 전대리와
읍면 경계를 하고 있는 마을로지방도 622호선이 금천리에서 송악읍 중흥리 쪽으로 관통하는데, 초대리를 지나가고 있다.
마을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마을 북서쪽에는 초대 저수지가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마을 중앙에 초대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자연마을로는 초대, 밭골, 새창머리 마을 등이 있는데 초대 마을은
새내 아래쪽에 새로 터를 잡아 이룩된 마을이라 해서 새터 또는 신대 마을이라 불리다 후에 초대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밭골 마을은 전에는 논은 없고 밭만 있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지명이며, 새창머리 마을은 옛날에 창고가 있었다
해서 새창머리 마을이라 불린다
고센농원(11:09)
아파트 단지가 있는 거산리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가고 있다
거산육교(11:13)
거산육교에서 바라본 34번 국도
코아루 아파트를 바라보며 좌측 도로를 따른다
순둥이
삼거리에서 좌측 도로를 따라서 간다
당진시 신평면에 있는 거산리(巨山里)는 신평면 최대의 인구 밀집 지역으로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면소재지에서 떨어져 있음에도 상업 지역이 형성되어 있는데 국도 32호선, 34호선이
마을을 관통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지만 현재는 공장과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마을 북쪽에는 초대 저수지가, 남
쪽에는 오봉 저수지가 있으며,본래 면천군 손동면 지역으로 거미, 거뫼로 불리다 한자 표기에
의하여 ‘거산리(巨山里)’라 하였는데, 독암 고개에서 발원한 거산천이 부락 남쪽으로 동서로 흐르며,
오봉천에 유입되며 국도 32호선을 따라서 북쪽 지역에 저구릉성 야산을 중심으로 동서로 길게 분포된
전통적인 농촌 마을로 현재는 자연 경지가 대지로 바뀌면서 아파트가 많이 입지하고 있다
신평중,고등학교 입구에서 우측으로 맥길은 이어진다
신평중고교 담벼락을 따라서...
신평중.고교(11:21)
학교 건너편에는 신성아파트가 보인다
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외롭겠다
무우밭이 많이 많이 보인다
도로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이어진다
점심식사(11:35~12:05)
이곳에서 선두로 가던 동료산꾼들이 점심밥상을 펼친다...난 베낭 무게를
감안하여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입만 가지고 온 바람에 조금은 미안하다
진권아우가 끓인 라면에다 숟가락을 걸쳐 점심을 해결하고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돈사(豚舍)들이 많이 보이는데 축사 분뇨가 코를 찌른다
겨울은 이미 우리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형제농장(12:13)
삼거리(12:17)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우측에는 전원주택 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흥국농원(12:22)
일흥목장(12:25)
흥국사 입구(12:26)
세한대학교 입구(12:28)
남산육교(12:30)
남산육교에서 바라본 34번 국도
신평농협 오거리(12:31)
당진시 신평면(新平面)은 본래 백제의 사평현(沙平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신평으로 고치고
혜성군(槥城郡: 지금의 唐津郡 沔川面)의 영현으로 삼았다. 1018년(현종 9)홍주(洪州)에 예속되었고,
그 뒤 1895년(고종 32)면천군(沔川郡)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면천군이 없어지면서
인접면의 일부를 병합하여 신평면으로 개칭하고 당진군에 편입시켰다.
위치상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는 주읍(主邑)인 홍주목(洪州牧)과는 덕산(德山)을 사이에 둔 월경처(越境處)였다.
지명유래는 천지개벽을 하여 한진포(漢津浦)가 터질 때 산으로 형성되었던 지역이 넓은 평야 또는 갯벌로 변한 데서
새롭게 생긴 들이라는 뜻으로 신평이라 하였다 한다. 고려 말에 수차례에 걸쳐 왜구의 침입을 받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세곡을 운반하는 아산만의 교통상의 요지였다
신평농협 오거리를 지나니 농협주유소가 나온다
주유소를 지나 도로를 따르는데 맥길은 도로 건너 묘지쪽이나 그냥 도로를 따라서 간다
망객정 궁도장 입구(12:34)
좌측 아랫쪽에 국궁장이 있다
도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오르는데 진드기에 조심하라면서 약품을 비치해 놓았다
공터(12:37)
넓은 공터를 지나는데 등로 아랫쪽에 묘지가 보인다
오늘 산행중에 시야가 가장 잘 확보되는 곳이나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모든게 흐릿하다
69.9m봉(12:43)
급하게 선두를 쫒아가느라 인식할 수 없는 삼각점을 놓치는 憂를 범한다
선답자의 신행기에는 준.희님과 여영님의 표지판이 많이 보였는데 지금은 하나도 안 보인다
망객정(望客亭:12:44)
망객정이란 2층으로 된 팔각정과 운동기구들이 많이 보인다
이곳에서 직진으로 난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팔각정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망객산(望客山:64m)
당진시 신평면 금천리와 한정리 사이에 있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신평면에서 가장 높은 산이란다.
지맥길에선 약간 떨어져 있고 정상 아랫쪽엔 부흥사란 사찰과 파나시아 골프장이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망객산을 손바라기재라고도 부르며 이 지명은 이곳에서 수도했다는이인(異人)인 김복선(金福善)의 전설에서 유래됐다고 한다이곳에 서면 지금은 삽교천으로 가로막힌 아산만과 소들강문으로 불리는 우강평야(牛江平野)가한 눈으로 내려다 보이는 곳인데, 임진왜란 무렵에 이곳의 한 미천(微賤)한 집에서 김복선이태어났는데(일설에는 신평이씨 노비였다고 한다) 갖은 꽤와 속임수로 상전을 골탕 먹이고끝내 상전의 딸과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는 대단한 힘을 가진 장수였다고 하는데 송악읍 중흥리 절 아래에 있는 큰 바위에는그가 잠시 앉았다가 간 엉덩이 자국과 주먹을 짚었던 주먹자국이 있다고 한다
그는 또한 미래를 예측하는 탁월한 이인이기도 했는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를 업신여겼으나율곡(栗谷)이이(李珥)와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은 그의 숨은 재주를 인정하여 가끔 찾아와세상사를 의논했다고 한다...율곡과 토정이 앞으로 있을 임진왜란을 크게 걱정하니 김복선은토정과 율곡의 얼굴을 번걸아 보면서 ‘인신년상사(寅申年喪事)에 왜 임진년(壬辰年)을 걱정하십니까?’하면서 한탄하다가 작별하였는데 두 분이 돌아가시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았으므로 이 산을손바라기재(望客山)라고 불렀으며, 그 후 토정은 무인년(1578년:선조11)에 율곡은 갑신년(1584년:선조17)에 작고하여 임진왜란(1592년)을을 보지 못했으니 김복선이 미래를 정확히예측했다고 한다
망객정을 내려서니...
망객산 입구(12:48)
망객산 입구에는 샘표식품과 선진정공 당진공장, 선진 특장차 입간판이 보인다
지맥길은 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간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좌측에는 파나시아 365골프장에서
라운딩하는 골퍼들이 보이는데 굿샷을 외치면서 걸어가니 라운딩을 하다말고 쳐다본다
참으로 곱다
바람둥이 민들레도 이별을 준비하고...
저 호돌이는 적폐세력이 아닌가?
모 광역시 교육감이 관내 학교 운동장에 세워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하고 외치다가
무장공비에게 무참하게 숨진 故 이승복 동상을 철거하라고 지시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역사란 있는 그대로 기록되어야 하거늘 자기들과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적폐세력으로
몰아 부치는 형태... 과연 그게 맞는지 궁금하다...참으로 한심한 자들이 너무 많다
축하합니다
부디 정치 세력에 휘둘려 보수니 진보니 하는 곳에 기울거리지 마시고 오직 국민만을 생각하시길...
신평이씨 사당입구(12:55)
신평이씨 시조 이덕명(李德明)은 고려조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냈다. 본관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신평은 충남 홍성군에 있던 지명이다. 백제 때의 사평현을 신라 경덕왕 때 신평으로 고쳤으며 그 뒤
고려 현종 때 홍주에 예속시켰으며, 시조의 선대는 고려에서 이부시랑을 지낸 이인수(李仁壽)이다.
그래서 이인수를 시조로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인수 이후 정확한 문헌이 없어 계대를 알 수 없다.
시조 이덕명(李德明)은 백제 때 신평호장(新平戶長)을 지낸 이인수(李仁壽)의 후손이다.
그러나 도중에 후손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고려시대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한 이덕명을 시조로 하고 있다.
이덕명의 묘소는 충남 당진군 송악면 오곡리에 있고 음력 10월 1일에 향사한다. 이덕명의 아들 이환은 좌복야를 지냈다.
이환의 맏아들 이임은 시중을, 차남 이비는 시랑을 지냈다.
신평이씨가 낳은 출중한 인물 쌍매당 이 첨은 1368년 문과에 급제, 가문의 초석을 다졌다.
그는 하 륜, 권 근과 함께‘동국사략’을 수찬(修撰)했다. 공민왕과 우왕, 창왕, 공양왕 등 고려 말 네 왕에 걸쳐 벼슬을 지냈다.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해 그가 올린 상소문은 구규(九規)로 널리 알려졌다. 의정부사(議政府事)를 거쳐 조선 개국후
대제학(大提學)에 올랐다. 문장과 회화에 능하였고 저서에‘저생전(楮生傳)’‘삼국사략(三國史略)’등이 있다.
이가종(李可種)은 태종 때의 인물로서 1405년 봉사(奉事)로 있을 때 태종의 총애를 받아 가종(可種)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그는 태종 때 문과에 올라 수의교위 신무시위 등을 거쳐 의정부사인, 이조참의 성균관대사성을 지냈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 이조참판을 했고, 그 뒤 여러 차례 명에 다녀왔다.
세종 때 이조판서 겸 홍문관 부제학을 끝으로 이듬해 벼슬을 버리고 귀향, 세조 때 문정이라 시호되었다.
지안주사를 지낸 이광필의 손자 이상(李祥)은 효행이 지극하여 정려(旌閭), 서원(書院)이 향사(享祀)된 인물이다.
그는 7세 때 왜구에게 10년간 납치되었다가 환국하여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당시 왜장이 그의 인품에 탄복, 보화(寶貨)를 주면서 귀국케 하였으나 그는 모두 바다에 버리고 꽃 한 송이만
들고 왔다고 하며 돌아왔을 때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여서 어머니 상(喪) 등 모두 6년 동안 시묘(侍墓)살이를
한 지극한 효성이 알려져 세종 때 정려(旌閭)되었다.
지맥길은 귀림보신정 간판이 서 있는 좌측 시멘트 도로를 따라야 하나 공장과
골프장으로 막혀 있어 5번 군도가 지나가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군도라서 그런지 교통량이 적은 편이다
삼거리가 보이는데 좌측으론 골프장, 우측으로는 삽교호관광지로 가는 길이다
파나시아 골프장 입구(13:00)
경수제철 입구(13:04)
자강산업 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우측 자전거 도로로 올라선다
도성사거리 버스 정류장(13:11)
버스정류장을 지나니 신당교차로가 나오고 이곳에는 우렁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많이 보인다
우렁촌 식당을 지나...
신당사거리에서 34번 국도에서 갈라지는 작은 도로를 따른다
도성리(道城里) 입구(13:13)
당진시 신평면에 있는 도성리는 신평면의 진산 망객산 동쪽 너머, 삽교호 서쪽 신평면 한가운데에 위치한 마을이다.
대부분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로 운정리에 위치한 신평현성(新平縣城)의
뒤쪽에 해당되기에 뒤재, 즉 도성(道城), 도치(道峙)라 하였다. 원래 성(城)은 순수한 우리말로 잣 혹은 재로 쓴다.
도는 뒷→되→도로 변해서 뒤쪽을 의미한다. 혹은 재를 음차하여 성(城)이라고 쓰지 않고 치(峙)라고 쓴 경우도 있다
좁은 도로를 따라서 가니 고물상이 나오고 도로를 버리고 고물상 뒷쪽으로 올라선다
밀양박씨 묘지로 올라서니...
야굴산(42.1m:13:23)
당진시 신평면 도성리에 야트막한 산으로 산 아래까지 연립주택과 고물상이 있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산인듯 싶은데 당진시는 족보가 산임에도 불구하고 지명에
대한 자료는 찾을 길이 없고, 정상에는 선답자의 시그널과 삼각점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야굴산 정상 삼각점(△아산311 / 1980재설)
석문지맥길은 이곳에서 난관에 부딪힌다
① 어떤 산꾼들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도로로 내려가서 운정나들목을 지나
삽교천 방조제에서 산행을 종료하는 산꾼도 있다 ②또 하나는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서 한정초등학교를 지나 석화산을 찍고 맷돌포나루터를 합수점으로 잡고
가는 산꾼들도 있어서 상당히 헷갈린다
난 홀대모의 조진대님의 트랙을 받아서 왔는데 삽교천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 대장을 맡고있는 산동네님은 맷돌포나루터로 가는게 맞다고 하여 그곳으로 향한다
산행을 마치고 대한 산경표의 저자 산으로님에게 전화를 하니 삽교천과 아산만이 만나는 방조제가
합수점이 맞다고 하니 조금은 찝찝하다...담에 시간나면 이곳에서 삽교천까지 걸어볼 생각이다
야굴산에서 묘지로 내려선 다음에...
연립주택을 끼고 무우밭을 지나 내려서니 조금전 도성리 입구에서 헤어진 도로와 만난다
도로로 내려서 우측으로 향한다
참으로 지루하다
도성리 마을회관 버스정류장(13:37)
계속되는 직진길
가을은 깊어만 가는데 아직도 내 몸뚱아리는 자유롭지 못하니...언제쯤 일상으로 돌아 오려나?
한정리(寒井里) 표지판
좌측의 도로를 따른다
당진시 신평면에 있는 한정리는 신평면 소재지인 금천리와 북동쪽으로 접하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지만, 최근 교통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일부 중소공장들이 입지하고 있으며 마을 남쪽 아굴산(42.1m)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북서류하면서
충적지를 형성면서 답작 지대를 이루고 있는데 지명의 유래는 차디찬 물이 나오는 우물이 있다고 하여
찬 우물, 즉 ‘한정리(寒井里)’라 하였다
한정리는 원머리, 반월, 강동말, 비천, 쥐방골, 사금배, 갓골, 은수터, 하나물의 9개 자연 마을이 있다.
원머리[堰頭里]는 옛 면천군 현내면 언두리 지역이며, 신원들의 머리쪽, 즉 앞쪽이 된다.
갯펄을 새로 막아서 언(堰), 즉 원을 쌓아서 생긴 들을 신원들이라 한다. 언두리, 언두라고도 부른다.
반월(半月)은 한정리 중앙에 있는 마을이며, 지형이 반월(半月) 형국이라 한다.
강동말[江東村]은 반월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비천은 반월 남쪽 비천산 기슭에 있는 마을이며, 전에
비천사라는 절이 있었다 하며 쥐방골[鼠防谷]은 강동말 동쪽에 있는 마을로, 노서 하전형(老鼠下田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한다. 주방골, 서방곡이라고도 부른다. 사금배는 원머리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갓골은 반월 동쪽에 있는 마을이며, 부락의 골이 갓 모양으로 둥그렇게 생겼다.
은수터는 부수리와 한정리의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하나물은 한정 초등학교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며,
옛날에 찬 우물이 있었다.
한정초등학교(13:45)
학교 근처의 볏집단에 이런 것이...
고려소재(13:50)
경남모직 세라믹(타일) 당진공장도 지나고...
반사경 앞에서 셀카놀이
한솔스틸(13:58)
이 지역은 유난히 철강과 관련된 공장들이 많이 보인다
한정리 보건지소 버스 정류장(14:00)
매산리(梅山里) 사거리(14:01)
당진시 신평면에 있는 매산리는 마을 남동쪽 아산만가에 있는 매산(梅山)[석화봉(石花峯)]의 이름을 따서
‘매산리(梅山里)’라 하였으며 신평면 소재지에서 북동쪽 끝 아산만가에 위치한 마을이다. 원래 바다 쪽으로
나온 곶이었으나 제일 농장 방조제가 완성되어 답작지가 대부분의 지대를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남동쪽에 석화산이 있으며 아산만과 접해 있다. 초대천 주변에 간척 평야인 미작 지대가 있다.
행담도는 유태계 독일 상인 오페르트(Oppert)가 덕산 가야산에 있는 남연군 이구(李球)의 묘소를 도굴하기
위해서 1868년 음력 4월 17일 차이나호를 타고 와 정박한 곳으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섬이다
매산사거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매산사거리에서 우측으로 가자마자 삼거리 갈림길이 나오고 큰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향한다
마을 도로를 따라서 가니 365ENC(주) 공장이 나온다
공장 건물이 보이는 사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공장 사이를 지나니 38,77번 국도 암거가 보인다
공장 마당에 앉아 산동네님, 진권아우와 함께 휴식을 취하면서 간식을 먹고 있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서둘러 길을 나선다
38,77번 국도 암거(14:10)
암거를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꺽어진다
이동신탑을 바라보면서 걸어간다
다시 좌회전...공장 사이의 도로를 따른다
공장 우측 안에는 두남재란 표석이 있다
사거리(14:26)
매산리 사거리를 지나 헤어진 도로를 다시 만나 우측으로 향한다
다시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맥길 가운데는 별장이 길을 막고 있다.
좌측으로 내려서니...
수확이 끝난 고구마 밭이 나오고...철조망을 넘어 도로로 내려선다
시멘트 도로에서 좌측으로 올라서니...
석화산 가는 길
진권아우와 함께 석화정을 배경으로...
석화산 정상에 있는 석화정(石花亭)
석화산(石花山46:4m:14:35)
당진시 신평면 부수리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석화정과 운동기구들이 보이고
석화산을 상징하는 돌과 2등 삼각점이 있으며 아산만이 보이는 곳이지만 오늘은
짙은 미세 먼지로 인해 모든게 오리무중이다
지명의 유래는 돌이 많고 모양이 매화가 땅에 떨어지는 형국이라 유래된 지명으로
이 지역 사람들은 매화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석화산 정상의 2등 삼각점(△아산 23)
다들 대단혀요
합수점으로 가는 길
석화산에서 내려오니 도로가 나오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망해버린 해수피아 건물을 바라 보면서 걷는다
나한테는 늘 고마운 산친구인 진권아우님
해수피아 건물을 끼고 우측 주택가 안쪽으로 향한다
주택가를 빠져나와 다시 좌측으로...
갯마을 횟집이 보이면서 합수점에 도달한다
맷돌포(梅乭浦) 나루터(14:50)
드디어 삽교(석문)지맥의 마지막 합수점인 맷돌포 나루터에 도착하면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삽교천과 안성천이 만나서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맷돌포 나루터는 옛 기능을 잃어 버렸고
주변의 상권들도 완전히 죽어 버렸는지 모든게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맷돌(梅乭浦)는 독우물 북쪽 매산(梅山), 즉 석화봉(石花峯):46.4m) 밑 아산만 바닷가에 있는 포구 마을이다.
삽교(석문)지맥 졸업을 축하해주러 온 진권아우
맷돌포 나루터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조금전에 지나온 우렁이촌으로 점심을 먹으러 간다
우렁이 박사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참으로 천만 다행이다...산행중에 비가 왔으면 아마도 산행을 포기했을 것이다
아직까지 몸뚱아리가 온전치가 못해 감기와 폐렴에 걸리지 않으려고 무척 신경을 쓴다
5개월만에 단체 산행을 해본다...예전처럼 산행 속도가 나지않아 동료 산꾼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는데 모두들 나를 배려해 주는 바람에
무사히 삽교(석문)지맥을 마친다...동료산꾼들, 다들 고마웠습니다
서울에 도착하니 오후 5시 30분...비가 오지않아 무사히 집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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