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는데,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불은 328기에 달한다.
창령사지(蒼嶺寺址) 오백나한상(五百羅漢像)의 일부로, 수백년간 땅 속에 묻혀 있다가 다시 사바세계로
되돌아온 역사적인 순간이었다.특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한 뒤 궁극의 경지에 이른 ‘나한(羅漢)’이지만
창령사지 오백나한상은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천진불로 다가왔다. 마치 순진무구한 동자승을 보듯 친근함이 느껴진다.
울고 웃으며, 수줍어하는 표정, 눈을 지긋하게 감고 참선하거나 바위 뒤에서 살짝 고개만 내민 흥미로운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이로 인해 국보 제84호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 ‘백제의 미소’로 불리듯이 창령사지 오백나한상은 ‘강원도의 미소’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눈길을 끌고 있다. 창령사지 오백나한상이 서울나들이에 나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주민들도 보다 편하고 쉽게
오백나한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춘천박물관은 오는 29일부터 6월1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창령사터 오백나한, 당신의 마음을 닮은 나한’ 특별전을 연다
창령사터는 초로봉(해발 약 570m) 동북쪽 경사면의 해발 약 400m정도의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곳에서는
두 차례에 걸친 발굴에 의해 500나한의 일부로 추정되는 나한상과 기와류, 도자기류, 철제류 등이 발견되었다.
특히 일부 기와조각에는 ‘창령(蒼嶺)’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이 곳이 여러 문헌에 나오는 “창령사(蒼嶺寺)”임이
알려지게 되었다.
절터의 소유자가 경작지를 일구던 중 땅속에서 나한상을 발견하면서 절터의 정확한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절터에 대해서는 2001년과 2002년 두 번에 걸쳐 조사가 이루어졌다. 주로 확인된 유적은 건물터, 배수로,
석축, 탑지, 기우제터, 원형 유구 등이고 출토된 유물로는 다수의 나한상, 도자기류, 기와류, 철제류 등이 있다.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절터가 조성된 때는 16세기 정도로 짐작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나한상과 나한전터가
함께 발굴되었다. 조선시대 불교미술사와 사찰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03년 1월 18일 강원도 기념물 제81호로 지정되었다.
강원도 영월 창령사(蒼嶺寺) 터 오백나한(五百羅漢)은 오래전에 폐사된
절터에서 2001년에 발굴되었지만 관람객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 존재이다.
마주하는 순간 그 질박하고 친근한 표정이 우리 마음을 두드리는데 이번 특별전시는 창령사 터 오백나한이
그 주인공인데 佛家의 진리를 깨우친 성자 ‘나한’이 일상 속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와 마주한다.
오백 나한은 부처의 제자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까달음을 얻어 아라한과(阿羅漢果)에 이른 이로
존경과 공양을 받을만한 500명의 성자(聖者)를 말한다...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의 줄인말로
산스크리스트어 아르핫(arhat), 아르한(arhan)을 한자로 음역하여 만든 말이다.
공양을 받아 마땅한 자(응공:應供), 복을 심는 밭(복전:福田), 진리에 상응하는 자(응진:應眞) 등으로 불린다.
이 500이라는 숫자는 “증일아함경”에 오백나한은 부처님 입멸 후 부처님의 말씀을 경전으로 편찬하기 위해
모인 가섭존자를 비롯해 500명의 불제자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또한 「법화경」의 ‘오백제자수기품’중에서 앞으로 부처가 되기로 약속을 받은 오백나한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나한 신앙은 보편적인 불교신앙의 하나이다
부처의 제자로서 뛰어난 수행끝에 구극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일컫는 나한은 점차 신통력을 갖춘 존재로
인식되어 그림이나 조각으로 만들어지고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나한 신앙은 나한이 가뭄에 비를 내리게 하는 등의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여겨 생겨난 것이다
나한은 신라말에서 고려초부터 신앙되기 시작하여 고려와 조선을 거쳐 중요한 불교 신앙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고려시대의 나한도는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주는 듯하며 조선시대의 나한상은 순박하고 친근한 느낌을 주면서
모든 사람들의 소원을 하나하나 귀담아 들어주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인도의 오백나한...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석존(釋尊)의 제자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비구에게 첫 설법을 하여, 다섯 비구(比丘)는 모두 번뇌로부터 해탈(解脫)을 얻어 아라한(阿羅漢)이 되었다.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등 초기 경전에서 오백나한은 석존을 항상 모시고 다녔다는 상수제자(常隨弟子)로 등장한다 대승경전에 이르면 「법화경(法華經)」‘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授記品)’에서와 같이 부처가 될 수기(授記)를 받기에 이른다. 「구사론(俱舍論)」에서는 수행자의 계위를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陀含) · 아나함(阿那含) · 아라한(阿羅漢)의 4단계로 설정하여 그 구극의 목표를 아라한과 성취에 두었다 중국 오백나한, 십육나한과 조사(祖 삼장법사로 불리웠던 현장(玄奘:602~664) 법사가 654년에 한역한「법주기(法住記」에서부터였다. 십육나한과 오백나한을 중심으로 전개된 중국의 나한 신앙은 특히 기우제와 관련하여 보편적인 신앙이 되었고, 그 중심에 당나라 말기에 관휴(貫休:832~912)스님이 그린 십육나한도(十六羅漢圖)가 있었다. 오백나한이 신앙의 대상으로 등장한 주요 전당은 중국 운남성의 천태산(天台山)이었다. 송나라 초기에도 오백나한 신앙이 활발하여 송 태종은 984년에 칙명으로 천태산 수창사(壽昌寺)를 중건하고 나한상 516구를 만들어 봉안하도록 하였다. 신라인 도육(道育(?~938)은 892년에 천태산에 들어와 40년간 수행을 하였는데 여러 기이한 행적을 보여 그를 나한으로 여겼다고 한다 고려의 나한 신앙 고려 태조 6년(923)에 윤질(尹質)이 오대 후랑(後梁)에 사신으로 갔다가 오백나한 화상(畵象)을 가지고 귀국하여 해주의 숭산사(崇山寺:신광사(神光寺)에 봉안하였다. 고려의 왕실에서는 국가의 주도로 나한재(羅漢齊)를 개최하였는데 주로 오백나한재를 자주 열어 기우(祈雨)와 국왕의 장수, 외적의 퇴치 등, 국가와 개인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현재에 남아있는 오백나한도 역시 화기(畵記)에 이런 바람을 담고 있다. 고려의 나한 신앙은 재난 구제가 주요 목적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오백나한 신앙 조선 태조 이성계도 즉위 후 안변 석왕사(釋王寺) 오백나한상의 금가사(金(袈裟)를 만드는 등 고려의 나한 신앙을 이어갔다...조선시대의 나한재는 수륙재(水陸齋)와 함께 진혼(鎭魂) 의식으로도 치르렀다 서울의 북한산 진관사 수륙재와 길상사 나한재가 함께 개설되었으며, 이 의식에 호조판서를 보내기도 했다. 우리나라 오백나한의 존명(尊名)은 영천 은해사 거조암에 전해져 내려오는 “오백성중청문(五百聖衆請文)”에서 확인되는데 이 책은 고려말 석왕사에서 무학대사가 오백나한을 모시고 행한 의례집을 근거로 1805년에 영파(影派)성규(聖奎:1728~1812)스님이 편찬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발원자의 장수(長壽)를 빌고 재앙을 물리치고자 하는 기복적인 요소와 함께 성취라는 종교적인 의의가 부가되어 나한신앙은 폭 넓게 전개되었다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볼수록 정이 가는 투박한 매력으로 많은 관람객들과 전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국립춘천박물관의 2018년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전의 서울전시이다.
이 전시는 도심 속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나한을 닮은 당신이야말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고귀한 존재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줄 것이다
나한전 안쪽에 있었던 2번째 설치작가 김승영의 작품으로 빛과 소리로 五感을 자극한다
전시장 안쪽은 어둡고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마치 숲속을 걷는 느낌을 준다.
時. 空間이 뒤섞이며 과거의 나한(羅漢)과 현재의 사람들이 수줍게 한다.
그러나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는 밤의 야외 파티장을 연상케하는 전시장
오백나한전엔 바깥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 온 듯한 색다른 공기가 흘렀다.
우리나라에서 나한(羅漢)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서 확인이 되며 오백나한상 조상(彫 구체적인 도상은 알 수 없지만 현존하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오백나한의 양상(樣相) 을 대략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데 고려시대의 나한상은 소조, 청동, 석조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되었으며 청자 제작 기술의 발달과 함께 청자로도 제작되었다. 창령사 터에서 수습된 나한상은 화강암으로 제작된 것으로 조각 기법은 화강암을 30~40cm로 가공하여 한쪽 면을 다듬은 뒤 조각하였으며 앞면 위주로 표현하고 뒷면과 측면은 별다른 조각을 하지 않았다. 나한상은 대부분 좌상으로 한쪽 다리를 세우거나 두 다리를 펴고 있는 나한상도 있지만 결가부좌를 하고 있는 상이 가장 많다...결가부좌는 수행하는 나한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자세일 뿐 아니라 두 손으로 지물(持物)을 들기에도 용이하다. 또한 다리 한쪽을 세우고 양손으로 무릎을 감싸안고 있는 모습은 세속에 구속되지 않고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마음대로 모든것을 다스릴 수 있는 나한의 성격을과 잘 어울리는 자세이다 오백나한의 개성을 살펴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한의 시선과 얼굴의 표정이다. 나한의 시선은 일반적으로 정면을 주시하지만 일부는 측면을 바라보거나 고개를 위로 쳐다보거나 어떤 생각에 잠겨 턱을 괴고 있기도 하고, 바위 뒤에서 살짝 고개만 내민 흥미로운 나한도 있다 이 중에 고개를 돌린 나한이 많은 것은 옆의 나한과 진지하게 토론하거나 지긋이 눈을 감고 이야기 듣는 것처럼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목구비의 표현도 다양하여 두터운 가사를 머리까지 걸치고 이마에 골이 깊은 주름살을 표현하고 입술에는 붉은 칠을 하여 깊은 시름에 빠져있는 나이든 노년의 나한을 연상케 하는 상(象)도 있다. 눈을 치켜 뜨거나 아래로 내리 뚠 눈, 지그시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눈, 화두를 해결하기 위해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는 눈, 잔뜩 화가나 째려보는 눈 등으로 되어 있다. 코는 대부분 낮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화강암으로 조성하여 조각이 쉽지 않은 것도 있지만 오랜 세월의 흐름에 따라 풍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입술은 양 입술 위로 올려 가볍게 웃고 있거나 입꼬리가 내려가 침울한 표정으로 슬픔에 잠겨있는 상도 있다. 또한 인증을 강조하여 나이든 모습으로 표현한 상도 있으며 일부는 일부는 입술에 붉은 채색을 하여 여성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창령사 터 오백나한은 성(聖)과 속(俗)이 공존하는 나한의 성격중 세속화된 이미지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희노애락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따뜻하면서도 정감이 가는 순박한 표정이 장인의 손길로 투박하게 표현하였다.
나한은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불보살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닌 존재이지만 대부분이 실제 이 땅에
존재하던 불자들이다...그래서 나한상에는 위대한 성자의 모습과 함께 다양한 개성을 지닌 인간적인
면모도 표현된다.
특히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에는 성(聖)과 속(俗)이 공존하는 나한의 성격 중 세속화된 친근한 이미지가 강하다.
이들 나한상은 때로는 희로애락(喜怒
장인(匠
위해 대부분 결가부좌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
이러한 나한의 자세는 이목구비가 개성있게 표현된 얼굴 등 상체를 부각한 조각 기법과 어우러져
과장되지 않고 절제된 모습이다
의복의 넓은 포(袍)인 장삼((長衫)과 가사(袈裟)를 입은 옷차림을 하고 있는데
모든 욕심을 버리고 누더기 천을 걸쳐입은 수행자의 형상을 나타낸 듯 하다.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표정의 얼굴과 함께 머리 위까지
가사를 뒤집어 쓰거나 두건을 쓴 나한상이 많다는 점이다
이는 고요히 선정(禪定)에 들어 구도(求道(의 길을 치열하게 걸었던 나한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으로 생각된다
복두위 나한상(復頭衣 羅漢像)
가사를 덮어쓴 복두의 도상(圖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 가사(袈
문 닫자 온 방에 기운하나 가득
까아만 서안(書案)에는 조촐한 경전 한 권
초승달 숲에 들어 그림자 이우는데
외로운 등불 하나 밤새껏 밝아라
변계랑(卞季良:1369~1430)의 초승달 숲에 들어
정운래무처(淨雲來無處): 뜬 구름 본래 오는 곳이 없으며
거야역무종(去也亦無蹤): 가는 곳 또한 자취를 남기지 않네
세간운거래(細看雲去來): 고요히 바라보니 구름만 오고 가고
지시일허공(只是一虛空): 이제 단지 허공만 남네
회정 설봉((懷淨 雪峰)종사(1678-1738)의 동사열전(東師列典)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이 작을지라도
쌓이고 쌓여 큰 그릇을 채우나니
무릇 이 세상에 가득한 福도
조그만 善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라네
법구경 제22장 악행품(惡行品)
머리는 덥수룩하고 눈은 툭 불거진
그 모습 이 늙은이의 진면목(眞面目)일세
위로는 하늘 아래로는 땅을 버티고 선 그것은
부처도 조사도 원래 찾아내지 못했지
우습도다 그것이 무엇일까
남북동서에 오직 나뿐이로다
백파 긍선(白坡 亘璇(1767~1852) 선사의 동사열전에서
三日修心千載寶(삼일수심천재보) :삼일을 딱은 마음은 천가지 보물을 가진 것과 같고
百年貪物一朝塵(백년탐물일조진): 백년을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에 티끌과 같다
사랑하고 기쁘하는 데서 근심이 생기고
사랑하고 기쁘하는 데서 두려움이 생긴다
사랑하거나 기쁘할 것 없다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
법구경 제12장 호희품(好喜品)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지키듯이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해 한량 없는 자비심을 발하라
숫타니파다 149에서
마음에 악이 생기면
도리어 제 몸을 부수나니
마치 저 쇠에 녹이 쓸어
도리어 그 쇠를 먹는 것 같네
법구경 19장 진구품(塵垢品)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리켜 주듯이
어둠속에 등불을 비추어주듯이
당신 고타마께서는 여러가지 방편으로 진리를 가리켜 주셨습니다
숫타니파타 315장 중에서
우거진 풀밭을 거치지 않고
꽃 지는 마을에 도달하기 어려우이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 선사의 선가귀감(禪家龜鑑)
모든 것은 덧없어서
생겨났다 없어지는 법
생겼다 없어지는 것이 없어져야
적멸의 즐거움이 된다
대열반경(大涅槃經) 券3
땅과 같아서 성내지 않고
산과 같아서 움직이지 않네
아라한은 번뇌가 없어
세상에 나고 죽음이 끊어지네
법구경 제19장 나한품(羅漢品)
모든 집착이 일어나는 곳을 알아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탐욕을 떠나 욕심이 없는 성인은
무엇을 하려고 따로 구하지도 않는다.
그는 이미 절대 평화의 세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숫타니파타 제 210
그는 고요한 곳에 머물기를 즐긴다
세상 사람들이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그 곳에서
더 이상 바라는 것 없이 즐거워라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욕망을 일으키지 않네
법구경 제10장 나한품(羅漢品)
춘원 이광수 / 육바라밀
남에게는 아까운 것이 없이
무엇이나 바치고 싶은 이 마음
거기서 나는 보시를 배웠노라
님께 보이고자 애써 깨끗이
단장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지계를 배웠노라
님이 주시는 것이면 때림이나 꾸지람이나
기쁘게 받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인욕을 배웠노라
자나깨나 쉴 사이 없이
임을 그리워하고 임 곁으로만 도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정진을 배웠노라
천한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오직 임만을 사모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선정을 배웠노라
내가 임의 품에 안길 때에
기쁨도 슬픔도 임과 나의 존재도 잊을 때에
거기서 나는 지혜를 배웠노라
인제 알았노라 임은 이 몸에
짐짓 애인의 몸을 나투신 부처님이시라고..
하늘 덮고 산을 베고 땅 위에 누웠다가
구름 병풍에 달빛 등불 삼아 바닷술을 마신다.
맘껏 취하여 비틀비틀 춤추려더
어허! 소매 길어 곤륜산에 걸리겠네
진묵일옥(震默一玉:1562~1633)스님의 동사열전 중에서
달빛에 이끌려 호계(虎溪)를 넘어가니
눈(雪)을 인 솔가지엔 덩쿨풀이 얽혀 있네
끝없는 청산(靑山)이 다하는 자리
흰 구름 깊은 곳에 노승(老僧)들도 많아라
唐나라 스님 영일(靈一:728~762)의 절(僧院)
태어날 때는 어디서 왔으며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가?
태어나는 것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어가는 것은 한 조각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다
백파 긍선(白坡 亘璇(1767~1852) 선사의 작법귀감(作法龜鑑) 券下
물거품 같은 대지(大地)에 먼지가 일고
봄꽃처럼 허망한 육신에서 허망한 생각이 이네
해운 경열(海運 敬悅:1580~1646) 스님의 동사열전
활 만드는 사람은 뿔을 다루고
뱃사공은 배를 다루며
목수는 나무를 다루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다루네
법구경 제17장 명철품(明哲品)
마치 허공을 나는 새가
걸림없이 멀리 가는 것처럼
법구경 제19장 나한품
물의 본성 고요하고
돌도 본디 소리 없건만
어찌하여 둘이 마주 부딪히면
뵌 산이 놀라도록 우래 소리 구르는가?
唐나라 시인 위응물(韋應物 :737~804?)의 강물소리 듣다가
내가 이제 대중에게 말하노라
큰 제자 아난은 법을 받들어서 오는
세상 여러 부처님 공양하고
그 일을 마친 뒤 정각을 이루리니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券4 수학무학인기품(授學無學人記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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