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9년 08월 11일
☞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간간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 산행거리: 도상거리16.5km / 7시간 26분(휴식시간 1시간 30분 포함) 소요
☞ 참석인원: 백두사랑 일요지맥팀 14명과 함께
☞ 산행코스: 한티재-595.4봉-원주변공 묘-590봉-안부 임도-652봉-663봉-안부-부용봉
연화사-안동김공 묘-시항치-안부-은진송씨 묘-560.8봉-안부-517.2봉-무명묘지
520봉-489.4봉-묘지-묘지-놋점이 고개-405봉-459.1봉-묘지-묘지-370봉
민트리재-418.2봉-415봉-411.9봉-안부-396봉-391봉-안부-370봉
매봉산 갈림봉-안동김공 묘-귀밑고개-시멘트 도로-갈머리재-갈구1리 마을회관
28번 구도로-28번 신도로-돌꽂이재-장수황공 묘-218봉-담태재-240봉-246봉
안동김공 묘-무명봉-반남박공 묘-묘지-195봉-182봉-고개-함양박씨 묘-갈부재
☞ 소 재 지: 경북 영주시 봉현면 / 예천군 은풍면(舊 하리면),감천면,용문면,보문면
요즘엔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다...어제 토요일 서울의 기온이 37도였다고 한다.
토요일날 조그만 현장이 하나 있어서 일을 하는데 내가 직접 일을 하지않고 인부들에게 시키기만
하는데도 잠깐 사이에 옷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마치 물에 빠진 느낌이다.
인부들에게도 미안하기만 한데 그렇다고 목구멍이 포도청이인데다 고객과의 약속이라 하지 않을수도 없고,
덕분에(?) 인부들에게 인건비를 후하게 주다보니 나는 남는게 거의 없지만 그래도 마음은 펀한 느낌이다
이런때는 맥길을 멈춰야 하는데 몸뚱아리 속에 꿈틀거리는 역마살이 그냥 두질 않으니 어쩌랴...
그리고 2.4주에 같이 다니는 맥꾼들이 올해는 여름 휴가도 없이 계속 간다고 하니 안 갈수도 없다.
더군더나 오늘 구간은 워낙 오지라 혼자서 오기에는 경비가 너무 많이 깨지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날머리가 예천읍내라 담 구간은 접근성과 경비 문제에 별 부담이 없는 곳이다
거기다가 이 지맥의 마지막 구간인 4주에는 논산 훈련소 내에 있는 호국연무사에서 1박 2일동안
조계종 포교사 팔재계및 연수교육이 있어서 참석이 불가능하기에 부득히 맥길에 나선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아침에 일어나 집에서 밥 한술 뜨고 06시 50분에 양재역에서 맥길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오늘 역시 이른 아침부터 후덥지근한 날씨에 버스에 에어컨이 켜져 있지만 시원한 지를 모르겠다.
버스는 중앙고속도로 풍기I.C를 빠져나와 예전에 혼자서 풍기 금계촌 십승지길에 걸어면서
지났던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에서 예천쪽으로 넘어가는 931번 지방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노좌리에서 좁은 시멘트 도로인 농로를 따라서 하촌리, 수한리를 지나 오늘의 들머리인
한티재까지 25인승 버스로 곡예 운전하듯 태워주신 기사님께 고맙기만 하다.
까칠한 성격 소유자이신 분 같으면 절대 올라오지 않을 곳인데 너무 고맙기만 하다...복받을거요
한티재(寒峙:510m:09:30)
예천군 은풍면 동사리와 감천면 수한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은풍면쪽은 시멘트로 만든 굴다리가 있고
이정표옆에 커다란 노거수 한 그루가 고개를 지키고 있다...연화사란 절로 향하는 이정표도 보인다
지명의 유래는 고개밑에 있는 예천과 영주(풍기)와 접경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부용봉의 바람이
시원하고 차서 한티(寒峙)라고 했다고 전해지며, 약 300여년전 박한수라는 사람이 살던 곳으로
한이 살던 터라 하여 한기(韓基)라고도 했다고 한다
한티재에 도착하니 잔뜩 흐린 날씨이기는 하지만 오랜 산행 경험상 비가 올것 같지는 않고
한티(寒峙)라는 지명 탓인지 고도가 510m나 되는 높은 고개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 대기에 얼마나 고마운 지 모르겠다.
이곳에서 산행을 준비한 다음에 단체 사진을 한 장 찍고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9:38)
초반부터 급경사의 오르막에다가 잡목의 태클이 심하다
산행을 시작하자 마자 선두들은 도망을 가버리고(?) 초반부터 처지기 시작한다.
수술이후에는 초반에 오르막을 만나면 숨이 멎추는 듯한 통증...이제는 숙명처럼 받아 들이며 산행을 한다.
오늘은 늘 꼴찌를 맡아놓고 동행하는 조여사님이 불참을 하여 불안하다.
근데 예전에 기맥길을 같이 걸었던 ‘보라’라는 닉을 가진 여인이 산행대장의 밀명을 받았는지
자발적인지는 몰라도 나와 같이 걸어 주겠다고 하는데 영 믿음이 안 간다.
이 여인은 주력(走力)이 맥꾼 체질이라 느림보와 가기엔 얼마나 불편한 지를 알기에...
한티재에서 계속되는 오르막길...10분을 계속 치고 올랐지만 강하게 불어대는 바람 탓인지 힘든줄 몰랐다.
595.4봉(09:48)
595.4봉에서 맥길은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595.4봉 아래에 잡풀에 묻혀버린 묘지
소나무들이 즐비한 내리막길
예천이 고향인 산으로님의 시그널을 만나고...
시원한 바람은 계속 불어대고... 그저 고맙기만 한 바람...
계속되는 내리막길
등로 가운데 묘지가 보이고...
원주변공 묘(09:54)
소나무가 많이 보이고 나무에다 못을 박아 철조망을 만들어 놨다.
안부에 내려선 다음에 다시 오르막길
능선에 올라서니...
함양박씨 묘지가 있는 590봉 정상이 나온다
590봉(09:58)
내리막길에 시야가 트이면서 가야할 부용봉이 보인다
안부(10:00)
문패없는 묘지를 지나고...
잡목의 거센 저항을 받으며 내려서니...
등로 우측 아래에 한티재에서 헤어진 임도가 보이고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10:04)
임도를 따르다가...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 좌측 아랫쪽엔 임도가 보이고...
억새를 비롯한 잡풀의 저항이 심하다
3분만에 다시 임도로 내려선다.
계속해서 임도를 따르다가...
다시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오른다.
경고판 붙혀놨다고 맥꾼이 안 가는거 봤어...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길
능선에 올라서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부용봉 가는 능선길에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등로는 생각보다 비교적 뚜렸하다
남부지방을 지나가는 태풍 레끼마의 영향인지 바람이 심하게 분다
산행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이다
능선에 올라선 다음에...
잡목의 저항이 심하고...
예전에 헬기장이었나?...넓은 공터에 소나무가 빽빽히 심어져 있다
다시 약간의 오르막길로 오른다
묘지가 나오고...
부용봉으로 향하는 오르막은 시작되고...
좌측으로 우회하여 652봉으로 올라간다
652봉(10:24)
안부에 내려섰다가...
다시 암봉으로 올라간다
계속되는 암릉구간
암릉구간이지만 생각보다 험하지는 않다.
龍爭虎鬪가 아닌 松爭巖鬪
663봉(10:27)
안부(10:29)
묘지를 지나 부용봉으로 오르는데 갑자기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우리 동료산꾼들은 아닐테고...여태껏 산행을 시작하면서 헤어지고
그 후부터는 산행이 끝난 후 동료산꾼들을 봐온터라 의리있게 기다려 주진 않을테고...
부용봉((芙蓉峰:689m:10:30)
경북 예천군 은풍면(옛 지명:하리면) 시항리와 탑리, 감천면 진평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부용산 팻말 2개와 산불감시초소와 산불감시 카메라, 3등 삼각점이 있으며, 북서쪽으로는
백두대간 능선에 있는 도솔봉에서 묘적령, 솔봉, 촛대봉, 저수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과 그 얖쪽엔
저수령 아래에서 시작되는 국사(금천)지맥 능선이 시원스레 보이고, 남쪽으로는 안동의 학가산과 보문산도 보인다
예천 지역의 자료에는 부용봉에 대한 유래를 찾을 길이 없다.
부용(芙蓉)이란 연꽃의 다른 이름으로 불교에서 정토세계를 상징하는 연꽃을 부용이라 부른다
불교에서는 정토(淨土)를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라고 하며 거기엔 연꽃 위에 부처가 앉아 광명을
비추는데 정토에 관한 경전은『 아미타경(阿彌陀經)』,『무량수경(無量壽經)』·『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을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라고 하며, 일반 불교 신도들 사이에 가장 많이 유포되어 독송되던 경전 가운데
하나이며 “극락정토에는 연꽃이 피어 있는 큰 연못이 있는데 물은 맑고 깨끗하고, 꽃들은 황금빛으로 빛난다.
극락정토의 사람들은 연지에 둘러앉아 설법을 듣는다.” 그래서 연꽃은 만다라의 상징체다.
만다라는 깨달음의 진리를 구상화한 아이콘으로 연화산은 그 연화장세계가 장소로 구현된 현장이다.
산에 절이 들어서고 토착화되면서 여러 산들은 연꽃으로 상징되는 불국정토의 표상이 됐다.
연화산, 부용산, 연화봉, 부용봉 등이 그러하며 조선시대 지도에 표기된 연화산 지명만도 전국
각지에 21개나 보이는데 아마 이 부용봉도 그 범주에 드는 건 아닐런지?
인증샷
동행한 여성산꾼들과도 한 컷
부용봉에 선두로 도망만 가던(?) 동료산꾼들이 모여있는 이유를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오늘 처음으로 맥산행에 동참한 산꾼 한명이 초반부터 길을 잃고 알바를 하는 바람에
잃어버린 그 산꾼을 찾느라 野壇法席을 한 모양이다...그러면 그렇지 내를 기다릴 턱이 있나...
결국 그 분은 길을 잃고 중간에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간 모양이다.
덕분에 내가 선두가 같이 어울리는 호사를 누리긴 했지만 ...ㅋㅋㅋ
부용봉 정상 3등 삼각점(△단양316 / 2003복구)
도솔봉에서 저수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의 모습
부용봉에서 바라본 국사(금천)지맥 능선의 모습
부용산 정상 선답자들의 흔적
산불감시 카메라 너머로는 안동의 학가산과 보문산도 아련히 보인다
부용봉 정상에는 유인감시초소와 무인산불감시 카메라가 동시에 서 있다..
2009년 2월에 이곳에서 커다란 산불이 발생한 이후에 그렇게 한 모양이다
이곳에서 한참동안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을 나선다
부용봉 아래 급경사로 내려서니 문패없는 묘지가 나오고...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죽고 못사는 사이?...아님 웬쑤
연화사로 내려서는데 수령 500년이 넘어 보이는 느티나무 가 산꾼을 반긴다
느티나무 밑에 사각뿔모양의 사리부도(舍利浮屠), 7층 석탑, 심한 가뭄에도 물이
나오는 감로수 샘이 있으며, 등산객 및 내방객들이 쉬어 갈 수 있는 요사채 2동이 있다
舍利浮屠(사리부도)에는 "通政大夫 黃之坤, 舍利佛"(통정대부 황지곤 사리불) 이라고 刻字(각자)되어 있다
연화사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항리(矢姮里) 계곡
예천군 은풍면에 있는 시항리(矢姮里)는 마을이 은풍면의 중심에 있으며 한천과 은계천이 합해지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원래 살목이로 불리었는데 우곡리로 넘어가는 고개가 바로 활모양을 하고 있어서 시항리라 하였다.
전에는 12살목이로 불리었는데 지금은 상, 중, 하살목이로 부른다. 자연마을로는 사동이 있다.
연대를 알 수 없는 때래 연화사라는 큰 절이 있었음을 짐작하는 기와장이 나와서 불리워진 이름이다.
연화사 대웅전(蓮華寺 大雄殿:10:43)
예천군 은풍면 시항리 부용봉 8부 능선에 있는 부용봉에 연꽃이 피었다는 연화사(蓮華寺)는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 수 없으나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지장보살 석불의 조각양식을 볼 때 신라 말에서 고려 초로
추정되며, 전두환 정권시절 전통사찰 일제 정비계획으로 철거 위기속에서 200여년이 넘은 기왓장이 출토되어
철거 대상에서 살아 남았다고 전해져 온다
연화사 대웅전은 2009년 화재로 전소된 것을 부용스님이 중창하였으며 원래 석조삼존불상이 있었으나 2기가
30여년전에 도난당하고 지장보살석불만 남아 있는 것을 연화사를 중창하면서 2기를 새로 제작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연화사 대웅전 내부의 모습
2009년도 가람이 전소된 후라서 그런지 명성에 비해서 사찰은 왜소하다
불탱 앞에 석조삼존불상 3기가 모셔져 있는데 맨 좌측의 검정색 지장보살 석불만 예전 것이고
나머지 2기는 30여년 전에 도난을 당한 이후에 새로 조성하여 모셔진 것이라고 한다
오늘 내가 걸어가야 능선으로 바라보는데 학가산이 아련히 보인다
연화사를 빠져 나오자마자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급하게 우측으로 내려간다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등로는 잘 보이지 않고...
묘지를 지난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온다
안동김공 묘(10:55)
묘지를 지나 내려서니 연화사에서 내려오는 시멘트 도로를 다시 만난다.
시항치(矢姮峙:10:56)
예천군 은풍면 시항리와 감천면 진평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시항리에서 연화사로 올라가는
임도가 있고, 임도 옆에는 임도개설준공 표시석, 서낭당의 흔적이 보이는데 지명의 유래는
시항리 마을 윗쪽에 있어서 붙혀진 지명인 듯 한데 고개가 바로 활모양을 하고 있어서 시항리라 하였다
어느 시인은 시항리를 '시간을 담는 항아리'로 표현했다
임도개설 표시석
서낭당쪽으로 간 다음에...
안부에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는 뚜렸하다
안부(10:59)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유인 은진송씨 묘(11:02)
은진 송씨(恩津 宋氏)의 시조 송대원(宋大源)이 고려때 판원사(判院事)를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은진군(恩津君)에 봉해졌다고 하며 은진(恩津)은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일대의 지명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충청도 공주목 은진현 시진(市津)의 성으로 송(宋)씨가 기록되어 있다
소나무 숲사이로 걷는데 머리가 개운한 느낌이다
힘겨루기
고도 편차가 별로없는 능선으로 올라간다
560.8봉(11:08)
560.8봉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 아래로 내려선다
좌측으로 가면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로 이어지는 길이다
진평리(眞坪里)는자연마을로는 광암, 섬두들, 아산, 금성골, 주막거리, 용잿마, 진작 등이 있다.
광암은 마을 입구에 넓고 큰 바위가 깔려있다하여 생긴 이름이고, 섬두들은 마을 앞의 석곳천이
들을 안고 감도는 모양이 마치 섬처럼 생겼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금성골은 산수가 비단같이
아름답게 둘러있고 금성폭포가 있어 그 경치가 아름답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주막거리는 주막이 있었고 오고가던 나그네가 쉬어가던 마을이라하여 생긴 이름이다.
용잿마는 산과 골의 지형이 용을 낚는 형국이라하여 생긴 이름이다.
진작은 진평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마을 지형이 마치 작자 형국이라하여 생긴 이름이다.
우측의 능선으로 향한다
예천군 감천면 지역이 한 눈에 보이고, 요즘 내가 걷고있는 문수(내성)지맥 능선과 학가산 보문산이 보인다
감천(甘泉)의 명칭 유래는 고려시대부터 감천 현청이 있던 곳에 명천이란 샘물이 잘 솟고 수량이 많아
한해(旱害)가 들면 영농(營農)에 급수하였으며, 또한 그 샘 물맛이 좋아서 甘泉(단샘)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묘지를 지나고...
뫳돼지가 등로를 작살을 내놓았다
안부를 지나고...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잡목과 넘어진 고사목의 저항이 심하다
안부(11:16)
암봉인 517.2봉으로 올라선다
517.2봉(11:18)
죽어서도 도도함을 잃지 않고...
무명묘지(11:22)
안부를 지나...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서 내려간다
같이 걷기로 한 저 여인은 조급증 증세가 있는지 자꾸만 도망(?)을 간다
암릉 구간이 시작되고...
낙동정맥길에 있었던 경주 단석산의 斷石보다 더 멋있어 보인다
520봉(11:28)
양파광대버섯은 비교적 크며 전체가 백색이고, 갓 표면에 피라미드상 돌기가 산재해
있으며 기부는 팽대하여 양파 모양의 구근상을 이루며 맹독성인 광대버섯류에 속한다
앙증맞은 바위가 있는 489.4봉에 오른다
489.4봉(11:32)
암릉구간을 우회하면서 걷는다
浮石
암릉구간이 끝나면서 묘지가 나온다
묘지(11:34)
조금을 더 진행하니...
좌측으로 약초재배지인 철조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철조망을 따라서 간다
한동안 철조망과 맥길은 계속 같이 간다
지독한 잡목의 저항도 받고...
내리막길도 만난다.
말징버섯인가...아리까리하네
철조망 안쪽의 길은 아주좋다...넘어 가고픈 맘이 굴뚝같지만 틈이 안 보인다
고사목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기도 하고...
철조망 안쪽에 있는 개쉬키 2마리가 지랄발광을 한다
아주 길이 좋은 철조망 안쪽의 모습
묘지(11:45)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놋점이 고개(11:48)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놋점이 마을 위에 있는 고개로 임도에 있는 고개인데 철문이 굳게 잠겨있다.
한티재에서 시작된 임도는 이곳까지 이어지고,약초재배지를 만나면서 끊어진다
지명의 유래는 고개 아래에 있는 놋점이 마을에서 유래가 되었는데 놋점이 마을은 옛날 지하에서
녹물이 흘러나와 그 녹물로 놋그릇을 만들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천향리는 세금내는 나무로 유명한 석송령(천연기념물 제294호)이 있는 마을이다
토지를 보유하고 있어 세금을 내는 예천 석송령 |
예천 천향리 석송령(醴泉 泉香里 石松靈:천연기념물 제294호)...사진 펌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에 있는 추정수령 600년으로 나무 높이 10m, 가슴높이
줄기둘레 1.9m, 가지퍼짐은 동서쪽 23.3m, 남북쪽 30m로 석평마을의 길가 평평한 넓은 터에 서 있다.
굵은 가지가 옆으로 뻗어 넓게 수관을 발달시키고 있다. 지금은 여러 개의 기둥을 세워서 곁가지를 받쳐주고 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약 600년 전 풍기 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석간천을 따라 떠내려오던 소나무 1그루를
지나가던 과객이 건져 이 곳에 심었고, 그 뒤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李秀睦)이란 사람이 이 나무를 영험이
깃들인 나무라는 뜻의 석송령(石松靈)으로 이름짓게 되었다.
그는 그의 소유토지 6,600m2를 이 나무 이름으로 상속 등기해 주어 이때부터 이 나무는 토지 등 재산을
소유하는 나무가 되었다. 따라서 석송령은 재산세와 방위세 등을 해마다 납부하고 있다.
석송령의 소유토지를 경작하는 사람은 소작료를 내야 한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이 이 석송령에게 500만 원을 하사하여 그 기금으로 해마다 우수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으며 마을사람들은 석송계(石松契)를 조직하여 이 나무를 보호하고 있으며 정월
보름이면 새벽제사를 석송령 아래에서 올리고 있다. 나무 자체가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일은 세계에서도
찾기 힘든 일로 우리 민족의 나무 사랑에 대한 각별한 정을 엿볼 수 있다.
놋점이 고개를 지나 다시 철조망을 끼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오늘 등로에는 이상하리만큼 묘지들이 많이 보인다
철조망 안쪽 약초재배단지의 모습
배가 고파 미치겠는데 동료산꾼들은 계속 가기만 한다.
하는 수 없이 조금 넓은 곳에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는다
점심시간(12:05~30)
바람이 생각보다 많이 불긴하나 높은 습도 때문인지 옷에 땀이 줄줄 흐른다.
밥을 먹으면서 웃도리를 벗어서 말린다... 이 산악회 일요 지맥팀에서 작년
11월부터 산행을 같이 했는데 느림보 짝꿍인 조여사님 이외 다른 산꾼과
밥을 먹어본 지는 정말 오랫만이다...기분이 너무 좋아 산행대장인 산동네님이
건네준 복분자 술을 2잔이나 연거푸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선다
철조망을 계속 따라 가기만 하니 길잃어 버릴 염려는 없겠다
405봉(12:38)
묘지가 나오고 점심을 먹고 같이 출발한 동료산꾼 4명은 459.1봉을 올라가지도 않고
좌측 사면길로 벌써 도망을 가버리는데 그러면 안되지...무명봉은 몰라도 족보가 있는 봉우리인데...
459.1봉(12:45)
예천군 은풍면과 용문면, 감천면이 만나는 삼면 경계봉 정상이다
이곳부터 우측은 한티재에서부터 같이해 온 은풍면과 작별을 하고 용문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지만 좌측은 계속해서 감천면과 같이 가는데 봉우리 아래에는 무명묘지가 있다.
이곳에서 90도 좌측으로 꺽어져서 맥길을 이어간다
459.1봉 아래에 있는 무명묘지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을 다시 만난다.
또 다시 철조망을 만나고...
묘지(12:48)
문이 달려있는 철조망을 만나고...우측으로 내려간다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버섯들이 많이 보인다
내리막길에서 만난 산으로님의 흔적
묘지(12:55)
이곳은 철조망도 모잘라 원형철조망까지 처져있는데 다칠까봐서 겁이난다
370봉(12:58)
놋점이재 윗쪽에서 부터 같이 걸었던 철조망과 작별을 하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잡목이 무성한 곳으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포장을 한 지 얼마되지 않은듯한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 좌측 윗쪽에는 동물이동 통로가 보이는데 감천면 천향리 놋점이 마을 가는 길이다
민트리재(文峙:13:05)
예천군 용문면 대제리에서 감천면 천향리 놋점이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최근에 도로 포장을
했는지 아주 깔끔하고 좌측의 고개 위에는 동물이동통로가 있고, 도로 우측엔 서낭당이 보인다
지명의 유래는 옛날에 과거보러 한양으로 가는 선비들이 미트리(짚신)를 많이 가지고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유래가 있는데 현재는 문치(文峙)고개로 불린다.
결국 미트리(짚신)가 세월이 흐르면서 變音이 되어 민트리가 된 셈이다
옛날에는 이 민트리골 안에 또 골 이름이 언골, 무자나무골 이래가지고 골 안에 또 골이
50여개가 있다고 하는데 이곳은 금을 채취하는 금광이 많아서 굴이 많다고 한다
민트리재 우측에 있는 서낭당의 모습
감천면 천향리 일대는 물과 관련된 지명이 많고 예부터 온천수가 있었다는 유래가 있다.
특히 샘밭은 1775년경 온양(溫陽) 정씨(鄭氏)가 개척한 마을로 마을 어귀에 가물어도 물이 줄
지 않고 추워도 얼지 않는 샘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천전(泉田), 온수골(溫水谷)이라고 한다.
조선왕조 실록 1599년(선조 32) 9월 22일 편에 보면 임금이 몸이 좋지 않아 평산(平山)에
갈 것을 희망하면서 조종조(祖宗朝)에도 온양이나 예천에 간 일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조종조(祖宗朝)란 태조~세조조까지로 추측할 수 있다.
"나의 병은 백약(百藥)이 무효라는 것을 의관들이 다 알고 있다.
이제 그 증세가 갈수록 더 깊어져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남들이 온천수로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평산(平山)에 신효한 물이 있다고 하니 겨울이 더 깊어지기 전에 지금 혼자 갔다 오려고 하는데
열흘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의당 내신(內臣) 한두 명과 함께 양식을 싸가지고 갈 것이니 어떻게
감히 백성에게 폐를 끼치겠는가? 옛날에도 임금이 목욕하여 병을 치료한 일이 있고 더구나
조종조에는 온양(溫陽)과 예천(醴泉)에 간 일이 있었는데 어찌 경들은 억지로 막는가? 며칠 내에 떠나려 한다.
" 원문-조종조유 온양예천지행 하경등지강위거야 욕어수일내발행(祖宗朝有 溫陽醴泉之行
何卿等之强爲拒也 欲於數日內發行)
민트리재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오르는데 오후의 햇빛이 얼마나 따가운 지 금방이라도 얼굴이 익을것만 같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418.2봉(13:23)
고개에 오르니 좌측의 관현리로 내려가는 등로가 뚜렸하게 보이고 정상에는
예천에서 왔다는 등산객 한 분이 밥상을 펼쳐놓게 우아하게 점심을 먹고 있다.
관현리(官峴里)에는 물이 좋다는 예천온천이 있는 마을이다
고도를 낮추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를 지나 약간의 오르막길
등로에서 바라본 예천군 감천면 관현리(官峴里)의 모습
마을에 과거에 급제한 인물이 많이 나왔다하여 관현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나래쟁이, 구름뫼,
화곡, 옹기골이 있는데 래쟁이는 마을 산세가 마치 새의 날개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름뫼는 구름처럼 아름다운 산 밑에 자리잡은 마을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화곡은 마을이 부용봉 남쪽에 위치하여 지형이 꽃봉오리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옹기골은 마을에서 옹기를 구웠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415봉(13:40)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들의 표지기
412.7봉(13:45)
완만한 내리막길
우측으로 살짝 꺽어지고...
411.9봉(13:48)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안부(13:51)
또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396봉(13:57)
등로는 비교적 뚜렸한 편이나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묘지(14:01)
391봉(14:05)
다시 내리막길
안부(14:07)
숲속이라 해도 오후라 그런지 상당히 덥다.
더군더나 아침과는 달리 바람 한 점이 없다
370봉(14:16)
아카시아 숲을 헤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사람 소리가 들린다
매봉산 갈림봉(360m:14:18~45)
예천군 용문면과 예천읍, 감천면이 만나는 삼면 경계봉인데 직진으로 가면 예천 매봉산과
한산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있으며, 지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가야 한다.
선두조들은 이곳에다가 베낭을 벗어놓고, 0.9km 떨어진 매봉산으로 간 모양인데 나같은
꼴찌야 焉敢生心이지... 전국에 가장 흔한 산 이름이 백운산, 국사봉, 깃대봉, 매봉산인데
맥길에서 많이 떨어진 곳에 갈 이유가 없잖은가, 그리고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오늘인데...
매봉산 갈림봉에 도착하니 평소 같으면 진작에 도망(?)을 갔을 산동네 대장, 산중 회장,
산들바람과 최학주님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처음에는 山氏 종친회 하는줄 알았네.
그리고 나를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매봉산 간 선두조를 기다리고 있었네
그러면 그렇지 나를 기다릴 턱이야 있었겠나...어쨌던 간에 오늘은 같이가는 것 만으로도 좋구나
이곳에서 매봉산으로 간 선두조를 기다리면서 22분간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길을 나선다
손이 커도 베풀 줄 모른다면
미덕의 수치요
발이 넓어도 머무를 곳이 없다면
부덕의 소치라는 것을...
매봉산 갈림봉에서 내려오니 과거에 산불이 난 지역이라 등로가 잘 보이질 않는다
숲속으로 들어간다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이 무더운 날씨에 시원한 집 놔두고 뭔 개고생을 하는지...
칡넝쿨과 한참을 싸우다가 묘지로 내려선다
내려온 길을 뒤돌아 본 모습
안동김공 묘(14:58)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좌측에 사과밭을 바라 보면서 귀밑고개로 내려선다
귀밑고개(龜峴:15:02)
예천군 예천읍 갈구리 귀밑 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이다
예천읍 갈머리 서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로서 정확한 연대를 알수 없으나 옛날에 명당터를 전국을
유람하던 풍수가 이 마을에 도착하여 이 지역이 거북이 형상을 한 명당터(금구몰니형:金龜沒泥形,금거북이
알을 낳으러 진흙에 꼬리를 넣은 형세)이며 누군가가 금거북이를 묻어 두었을 것이라고 생각을하여 여러 날
주변을 찾아 헤메었는데, 이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을 형성한 부락으로서 원지명은 구산(龜山)
이었으나 귀밑으로 잘못 전래되어 오늘날까지 불러오고 있다.
현재에도 마을 어딘가에 금거북이가 뭍혀 있을것이라고 주민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동네 뒷산 걷듯이 편안하게 걸어 가는데 커다란 영지 버섯들이 간간이 보인다
좌측의 능선이 맥길이나 그냥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걸어간다
같이 가신분이 수확한 대물 영지버섯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조금을 더 가다가 잠깐동안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나서자마자 시멘트 도로가 있는 곳이 나온다
시멘트 도로(15:20~25)
예천군 예천읍 갈구리에서 감천면 덕율리 수용골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감천면쪽은 아직 공사중이다...이곳에서 5분정도 또다시 휴식을 취한다
수용골쪽으로 가다가 우측 시멘트 도로로 올라선다
시멘트 도로에서 바라본 감천면 덕율리(德栗里)의 모습
마을에 크고 탐스러운 밤이 난다고하여 덕율리라 하였으며 예천임씨가 조선 세조때 이곳으로
옮겨와 살면서 밤을 심어 밤송이처럼 세상과 인연을 끊고 덕을 심는다하여 덕밤이라고도 한다.
자연마을로는 막곡, 개거리, 신기, 호복골, 만촌 등이 있으며 막곡은 여름이면 수목이 우거져 시원한
마을로 산이 서방을 막아서 움막을 친 방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개거리는 마을 앞산 모양이
개가 앉아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신기는 약 200년전에 상주김씨가 정착하여 새로
마을을 이루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호복골은 마을 뒷산 모양이 마치 범이 엎드려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만촌은 강광윤이란 선비가 이 마을을 해가 저물무렵에 들어와서 개척하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화재로는 옥천서원이 있다
시멘트 도로로 올라간다
우측에 보이는 봉우리가 지형도상 지맥길에 있는 215봉이다
나혼자 같으면 당연히 올라갈터인데 단체로 가는데다 맨꼴찌가 올라가는 주제에
눈치가 보일 것 같아서 찍소리도 못하고 그냥 동료 산꾼들 꽁무니만 따라서 간다
지나온 부용봉과 연화사는 멀게만 느껴진다
문수지맥 능선에 있는 안동 학가산도 보인다
지난 구간에 걸었던 자구산은 봉우리만 겨우 보이고 우측의 주마산만 멋지게 다가온다
오르지 못한 215봉을 뒤돌아 보면서 진한 아쉬움을 달랜다
갈머리재(15:32)
예천군 예천읍 갈구리 마을 뒷쪽에 있는 고개로 갈멀(갈머리)는
갈구리에서 가장 일찍 생기고 큰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맥길은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나 선두는 우측의 갈머리 마을로 가버린다
나 역시 마을로 내려가는데 시멘트 도로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인해 얼굴이 익는 느낌이다
마을 가운데를 지나고...
좌측으로 꺽어져...
마을회관으로 향하는데 좌측으로 보이는 능선이 맥길이다
갈구1리 마을회관(15:37)
예천군 예천읍 갈구리(葛九里)는 자연마을로 갈머리, 거서리, 구산이 있다.
갈멀는 갈구리에서 가장 일찍 생기고 큰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거서리는 집이 띄엄띄엄 있는 산촌이어서 아주 큰 동네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산은 마을 앞의 산이 아홉골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지세가 거북의 꼬리처럼 생겼다하여 구미라고도 부른다.
28번 구 국도(15:38)
갈구리 마을 앞에는 예천에서 영주, 봉화로 이어지는 28번 옛날 국도와 신국도가 나란히 있다
28번 구 국도에서 SR전기 간판을 보면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신 국도 지하로 향한다
28번 신 국도(15:40)
28번 신국도 지하를 통과한 다음에...
좌측으로 꺽어진다
원지맥길은 좌측으로 가야 하는데 갈림길에서 다시 우측으로 향한다
다시 좌측으로...
농로를 따라서 가다가...
밭고랑 끝자락에서 좌측으로 올라간다
잠시후에 시멘트 임도가 나오고 시멘트 도로를 우측으로 꺽어져서 간다
돌꽂이재(15:47)
예천군 감천면 덕율리와 보문면 승본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지명 유래에 대해 알 길이 없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예천군 보문면 승본리의 산 속에 서 있는 문화재 자료 제351호인
높이 160cm의 예천승본동석불입상 (醴泉繩本洞石佛立像)이 있다
28번 구도로에서 이곳까지는 맥길이 아닌 우회길로 걸어왔다
돌꽂이재 아래에서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묘지로 올라서니...
묘지로 오르는 길에 무릇꽃이 많이 보인다
무릇꽃(꽃말:인내, 강한 자제력)은 구황식물로, 타박상이나 종기, 젖앓이 등에 쓰여 왔다.
식용, 약용으로 쓰이는 무릇은 연보라색 꽃도 보기 좋다.
우측 능선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좌측으로 내려간다
또 다시 잡목의 저항은 시작되고...
안부에 올라섰다가 내려서니 호화 묘지(?)가 보인다
장수황공 묘(15:53)
월남참전 용사 장수 황공의 묘비가 서 있는데 묘비의 형태가 처음으로 봐서 그런지 이해가 안 간다
처사장수황공(흥연, 을연)이라 써놨는데 생전에 이름이 2개였는지 형제간인지 모르겠고, 배부인은
공란이다...아직까지 돌아 가시지 않아서 공란인지 아니면 남자 둘에 부인이 하나란 말인지?
아둔한 범여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른다
예전에 산불이 난 지역인지 아직도 화재의 흔적이 보인다
넓은 공터가 나오고 등로는 잘 보이질 않는다
218봉으로 올라간다
218봉(15:58)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나뭇가지 아래로 시멘트 도로가 보인다
담태재(16:02~16:12)
예천군 보문면 승본리와 예천읍 갈구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시멘트 도로가 나있다
갈구리쪽으론 탐태저수지가 승본리쪽으론 대야저수지가 보인다
담태재에서 바라본 갈구리의 모습
지나온 매봉산 갈림봉에서 내려온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문을 열고 철조망 안쪽으로 향한다
참깨밭을 가로 지르고...
철조망 아래 개구멍을 통과한다
묘지가 나오고 좌측으로 오른다
무명봉을 넘고...
우측 아랫쪽으론 임도가 보인다
240봉(16:25)
낮은 산이긴 해도 비교적 등로는 뚜렸한 편이다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
246봉(16:27)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안동김공 묘(16:28)
246봉에서 내려서니 안동김공 창근묘가 나오고 묘지 아랫쪽으로 묘지로 올라오는
뚜렸한 직진길이 보이나 맥길은 희미한 우측의 능선으로 향한다(알바주의)
또다시 묘지를 만나고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16:37)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는데 내 키보다 더 큰 자리공이 묘지를 뒤덮고 있다
반남박공 묘(16:38)
묘지로 내려서니...
안부가 나오고...다시 오르막길
묘지(16:40)
독도 이경일님이 걸어둔 격려 문구를 만난다.
195봉(16:46)
녹색 휀스가 나오고...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182봉(16:57)
녹색 휀스는 좌측으로...나는 직진으로 향한다
등로 우측 아래로는 28번 신 국도가 지나간다
하늘이 참으로 곱구나
능선 아래에는 예천에서 영주, 봉화로 가는 28번 신국도도 보인다
고개(17:02)
고개로 올라서니 능선 아랫쪽으로 묘지들이 보인다
애기똥풀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 안도현 시인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 라는 시로 유명한 시인 안도현이 이곳 예천 사람이다
유인 함양박씨(17:05)
좌측 아래쪽에 내가 타고온 노란 버스가 보이고 동료산꾼들의 목소리로 들린다
내려가는 등로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이리저리 헤치고 내려가다 보니 주택이 나온다
동료 산꾼들은 이곳으로 오르지 않고 조금전 고개로 내려가 버린 모양이다
등로에서 조금 벗어난 지역이라 마당을 지나 갈부재로 가려고 하는데...
마당으로 내려서니 집주인이라는 자가 개지랄을 떠는게 아닌가
처음에는 미안하다고 했는데 계속 개지랄이다
집 주인 曰: 허락도 없이 남의 집 마당으로 들어오면 어떡합니까?
범여 曰: 그러면 선생님은 남의 땅 안밟고 사요.
저 마당앞 도로만 나가면 남의 땅인데 남의 땅 안밟고 살 수 있소
그 이후론 마당을 빠져 나올 때 까지 찍소리도 안 한다
마당을 빠져나와 우측의 28번 국도 고가를 바라보면 좌측으로 올라간다
갈부재(140m :17:12)
예천군 예천읍 통명리에 있는 고개로 고개 정상에는 예천군의 도로 관리 창고가 있다.
이곳에서 오늘의 산행을 종료하고 스틱을 접는다
아침에는 흐린 날씨에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많이 불어줘서 산행하기가 수월했고,
처음에 오신 한 분이 초반에 대형 알바를 해 준 바람에 찬밥(?) 신세가 아닌 여유롭게
산행을 했다...오늘이 말복이라 오후에는 상당히 덥고 힘이 들었지만 고도를 계속 낮추면서
산행을 했기에 그리 힘들줄은 몰랐다...동행한 동료 산꾼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내가 꼴찌로 내려왔고 내가 내려오자마자 버스는 예천 읍내에서 유명한 삼계탕집으로 가서
구지뽕 삼계탕으로 뒷풀이를 하고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오르는데 송주봉 선생께서 아이스크림까지 사 주신다
다들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오늘 산행중 전리품인 영지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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