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20년 02월 15일
☞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강한바람...지독한 미세먼지...오후 늦게 가는 비
☞ 산행거리: 도상거리 13.2km + 어프로치 1.7km / 6시간 48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백운사-갈림길-591.4m봉-봉황산(보청(팔음)지맥 분기봉)-헬기장-폐헬기장-암봉-다시 591.4m봉
묘지-암봉-무동고개-무명봉-안부-435.4m봉-갈림길-마을도로-25번 국도-삼표P&C상주공장
고속도로 암거-달천정미소-물탱크-지등산 갈림길-임도오거리-323.3m봉-삼각점봉?-금산2리 마을회관
남원양공 묘-사산1리 마을표시석-황산마을-도림사-물탱크-무명봉-451m봉-536m봉-천택산-607m봉
무명봉-안부-587m봉-사래실 고개-484.8m봉-410m봉-개티재
☞ 소 재 지: 경북 상주시 화서면, 화북면, 화남면
이번주에 낙동정맥길을 걷는 큰바위 대장팀에 빌붙어서 성법령에서 시작되는 비학지맥 첫 구간을
따라서 가려 했는데 산행 시작 시간이 새벽 2시반에서 3시라고 해서 미련없이 꼬랑지를 내렸다
낙동정맥길의 지맥 첫 구간은 대다수가 접속구간 교통이 불편하여 정맥팀에 꼬랑지 잡는것이
가장 현실적인데 4시간 가까이 눈을 감고 산을 걷는 자체가 내 컵셉과는 전혀 맞지를 않는구나.
새벽 4시쯤 출발할 줄 알았는데...그런데 병원에서 갑자기 카톡이 오는데 이번주 금요일에 종양내과,
폐식도과, 호흡기 내과 검사가 있으니 금식을 하고 와서, 채혈을 하고, 엑스레이와 CT를 촬영해놓고
담주에 결과를 보자고 하는데 난감하다...그렇다고 정기적인 검사를 안 할수도 없고...
아침 10시경에 병원가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검사와 주치의 면담을 끝내니 오후 4시쯤 됐다
우리가 산경표를 얘기할 때 그 근본은 산자분수령이라고 했다.
한 줄기에서 다른 한 줄기를 가지쳐 나갈 때, 그 줄기들 사이에서는 반드시 물줄기 하나가
발원되는데, 그 가지 줄기는 반드시 그 발원된 물줄기와 그 보다 상위 등급의 물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게 된다.
이게 바로 산자분령의 제2법칙이다.
여기에 대입해 보면 백두대간의 봉황산에서 한 줄기의 가지를 쳐 나갈 때, 그 사이에서 보청천이 있다
그러면 당연히 이 봉황산에서 가지를 친 줄기는 보청천과 그보다 상위 등급의 강인 금강과의
합수점으로 가면 된다
보시다시피 위 참고도를 보면 신상경표와 대한산경표의 차이점은 명백해진다
즉 신산경표는 산경(山經)에 충실하여 산줄기가 긴 쪽으로 가는 반면, 대한산경표는 산줄기의
길이와는 상관없이 산자분수령의 제2법칙에 충실하여 합수점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니 지맥을 그으려면 모(母)줄기에서 가지쳐 나오는 지맥을 그리는 것보다 합수점에서
잠기는 지맥의 끝에서 母줄기 분기점을 쫒아 올라 가는편이 더 쉽다
이게 바로 수체계(樹體係)이론이다 (현오 권태화 작가님 자료 인용)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06시발 동서울발 → 상주시외행 버스표
이른 아침에 개포동에서 동서울 터미널까지 가서 06시 출발하는 상주가는 첫 차 타기는 불가능하다.
선릉역에서 지하철 첫 차가 5시 46분이고 강변역에 도착하면 05시 59분이라 내려서 0알에 요령소리
나도록 뛰어도 신호등에 막히고하여 2~3번 정도 버스를 놓친 아픈 추억 때문에 오늘은 거금(?)을 써서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니 아주 여유롭다
터미널 밖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가락국수와 김밥 한줄로 아침을 해결하고 승강장으로 향한다
짱깨넘들이 퍼트린 코로나 바이러스인가 뭔가하는 병 때문에 터미널은 한적한 느낌이다.
이곳에 오면 늘 한 두명정도 나처럼 독립군(나홀로 산행) 활동을 하는 안면있는 맥 산꾼을
만나는데 오늘은 그 맥꾼들마저도 한 사람도 보이질 않는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손님이라곤 달랑 5명인데 점촌에서 3명이 내리고 2명만 상주로 향한다
상주터미널(08:30)
09시 05분 화령가는 버스표
30여분정도 상주터미널을 배회하다가 버스를 타고 30분만에 화령 터미널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화령터미널 도착하기 직전에 이곳의 산줄기를 탈 때 가끔 이용하는 이진석
택시기사님에게 전화(010-4858-2595)를 하여 택시를 대기시켜 놓는다
화령터미널(09:35)
터미널에서 출발한 택시는 10여분만에 오늘 산행 들머리인 백운사 입구에 도착한다
택시요금 7,000원을 지불하니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조심하시라며 포도쥬스 2개를 주신다.
이 분은 이 지역을 거치는 백두대간과 지맥 산꾼들을 많이 상대하시는 분이라 웬만한 산은
산꾼들보다 더 해박하게 산에 대한 지식과 맥길을 꿰뚫고 있는 분이라 말이 통한다
택시에서 내려 산행 채비를 갖추고 백운사쪽으로 올라서니 송원당대종사 사리탑이 나온다
봉황산 백운사
상주시 화서면 상현리 백두대간 봉황산 아래에 자리잡은 조금한 절집이다
최근에 지었는지 아니면 개금불사는 했는지는 몰라도 깔끔한 대웅전과
산신각이 보이고 산신각 앞에는 동자승인 듯한 석불이 자리잡고 있다
갈 길이 멀어 대웅전 참배는 하지않고, 마당에서 선 채로 대웅전을 향해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선 채로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는데 주지스님께서 나오시더니만 차 한잔 하고 가라신다.
스님의 요청을 가는길이 너무 멀어 마음만 받겠다고 하면서 예를 올리니 홀로 다니는
산꾼이 진정한 산꾼이라고 하면서 조심해서 다녀 가라고 하면서 덕담을 해주신다
스님과 작별하고 산신각으로 오른다
백운사 산신각
오늘의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산신님께 예를 올린다
길을 나서다(09:55)
오름길에서 뒤돌아보니 백운사 절집의 뒷태가 멋있고, 소나무숲이 일품이다
갈림길(10:00)
좌측으로 올라가도 봉황산을 갈 수는 있으나 우측길이 편할 듯 싶다.
우측길 조금 올라서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갈림길(10:03)
우측으로 가면 화령재로 이어지는 산불감시초소봉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의 급경사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심장이 터질듯한 고통이 밀려오는 급경사의 오르막이다
암릉(10:12)
또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오늘도 미세먼지가 엄청나게 심해
좌측의 폐가 없는 범여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암봉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본 조금전에 지나온 상주시 화서면 상현리(上縣里)의 모습
상주시 화서면에 있는 상현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고개와 골짜기가 발달한 곳이다.
화령현의 위쪽이 되므로 상현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상현, 창안, 당두, 사재골, 대밭골마을 등이 있다.
상현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상현리의 그것과 같다. 창안마을은 상현리에서 중심되는
마을로, 창터가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당두마을은 창안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당대(堂臺)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재골마을은 절이 있던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며, 대밭골마을은
대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 기구한 인생이련가?
591.4m봉(10:15)
백운사에서 500m를 치고 올라오는데 20분정도 걸려 보청(팔음)지맥 능선에 올라섰다
이곳에서 봉황산 분기점까지 1km정도를 갔다가 다시와야 한다
봉황산으로 향한다
봉황산(鳳凰山:740.6m:10:50)
경북 상주시 화서면과 화북면, 화남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 표지석엔 '白頭大幹 鳳凰山 740.8m'라 적혀 있고
삼각점과 백두대간 안내 표지판, 원형의자,준.희 선생님의 팔음지맥 분기봉 표지판 보이는데 오늘 시작하는
보청(팔음)지맥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삼각점(관기303, 1980 재설)이 있으나 워낙 오래된 것이어서 글자가 희미하여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영주 부석사 뒷산인 봉황산(819.9m)이 하도 유명하여 이곳의 봉황산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으나 현지에서는
꽤 알려진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1300여년 전 이 산에 봉황새가 찾아들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하여 봉황산이
됐다고 하는데, 산의 생김새가 정상을 봉황새의 머리라 하고, 양쪽으로 뻗은 봉우리들을 날개에 해당된다고
한다면 그런대로 봉황 같다고 할 수 있어서 그런 전설이 배태된 것이라고 본다.
또한 중종의 태(胎)를 묻었다는 전설에 힘입어 마을에서는 태봉산(胎封山)이라 불어기도 한다는데
그러나 태봉산은 이 산 아래에 있는 무동정수지 옆에 있는 산을 말한다
윤지미산에서 피앗재 구간은 상주시 화서면에 위치한 화령(火嶺), 봉황산 고개의 생김새가 나는 새의
형국이어서 비조령(飛鳥嶺)이라 불렀다는 비재, 형제의 우의를 다지면서 정답게 산을 지키고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형제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이다
인증샷
2017년 8월 8일에 나홀로 화령재에서 갈령삼거리까지 걸어간 지가 엊그제 같은데...세월 참 빠르다
봉황산 정상 삼각점(△관기 303 / 1980재설)
봉황산 정상 신.구 안내판
봉황산 정상에서 바라본 이안(작약)지맥 능선
오늘의 미세먼지는 아주 나쁨 단계이다...지난해 여름 나홀로 걸었던 이안지맥 능선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북서쪽의 충북알프스 능선도 미세먼지에 갇혀 버렸기는 마찬가지이다
좌측 능선 아래로 내려서면서 보청(팔음)지맥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와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멋진 암릉구간을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헬기장(11:00)
암릉구간을 지나고...
무명봉우리도 지난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오는 맥길이라 그런지 등로는 비교적 뚜렸하다
폐헬기장(11:06)
암릉구간을 지나고...
안부에서 다시 살짝 오르막으로 오른다
암봉(11:10)
다시 안부로 내려섰다가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좌측으로는 조금전에 올라왔던 백운사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고...591.4봉 정상에 도착한다
591.4m봉(11:14)
함몰된 591.4m봉 정상에는 관리가 안되는 통덕랑을 지내신 분의 묘지가 있다
통덕랑은 조선시대 문신 정5품 상계(上階)의 품계명으로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가 제정될 때 정5품 상계는 통덕랑, 하계는 통선랑으로 정하여져『경국대전』에 그대로 법제화되었다.
통덕랑(通德郎)은 지금의 중앙정부 과장급인 4급 서기관 정도로 보면 되겠다
우측의 내리막길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뒤돌아 본 봉황산의 모습
넓은 공터가 나온다
넓은 공터에는 예전에 절집이 있었는지 성터였는지 모르겠으나 바닥에 기와 와편들이 보인다
묘지(11:16)
우측으로 내려간다
봉우리에서 내려선 다음에...안부를 지나...
암봉으로 올라간다
암봉(556m:11:19)
암봉에서 내려서면서 좌측으로 향한다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바람에 강하게 흔들린다
오늘은 바람이 생각보다 상당히 강하고 날씨도 꽤나 춥다
급경사의 내리막길
내리막 능선에도 瓦片이 많이 보인다
절개지 내리막길은 상당히 미끄럽다
절개지 좌측 구간의 암릉 모습
절개지를 좌측으로 돌아서 내려왔다
한참을 우회하여 마루금으로 향한다
우회하면서 뒤돌아 본 절개지 암릉구간
무동고개(378m:11:28)
등로 좌측으로 화서면 상현리 무동마을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1:30)
무명봉으로 내려간다
잡목지대로 내려간다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우측으로 내려선 다음에...희미한 좌측 능선으로 내려간다
능선으로 간 다음에...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상주시 화서면의 모습
저 곳에 있는 화령장은 70년전 일어난 6.25동란 때 풍전등화에 놓인 조국을 구한 화령장 전투가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남침을 시작한 북한군이 6월 28일 서울마저 점령하자 미국은 일본에 주둔하던
미 제8군에 소속된 제24보병사단을 우선 한국으로 파병했다. 한국군과 미군은 ‘평택-충주-울진’을 잇는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막으려 했는데, ‘안성-평택’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미군은 금강 남쪽 지역으로 후퇴했다.
국군도 소백산맥의 ‘이화령-조령-죽령’ 지역으로 물러났는데 그러자 육군본부는 ‘문경-함창-상주’로 이어지는
지역에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7월 12일 함창(咸昌)에서 제6사단과 제8사단 병력을 중심으로 제2군단을 창설했다.
제1군단에 소속되어 청주에서 북한군과 싸우고 있던 국군 제17연대도 제2군단으로 소속이 바뀌었으며, 제6사단을
부상을 당해 후송된 백인엽(白仁燁) 대령을 대신해 부대를 이끌고 함창으로 향하던 국군 제17연대의
부연대장 김희준(金熙濬) 중령은 7월 17일 북한군이 괴산에서 상주로 향하는 도로가 지나는 갈령(葛嶺)을
넘어 화령 방면으로 진격해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는 곧 선두로 화령장 지역에 도착해 있던 1개 대대
병력으로 공격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갈령 아래 하송리와 상곡리 일대에 주둔지를
편성하고 있던 북한군 제15사단 제48연대 병력에 기습공격을 가해 250여 명을 사살하고 30여 명을 생포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상주 북부에 위치한 화령장은 보은과 괴산에서 상주 방면으로 향하는 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홍천과 여주 방면으로 남하해 7월 10일 음성을 점령한 북한군 제15사단은 이 지역을 통해 상주를 향해
진격해왔다지원하는 임무를 맡기 위해 함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국군 제17연대는 전투과정에서 북한군 후속부대가 곧 이동해온다는 정보도 입수했다.
그래서 김희준 중령은 뒤이어 도착한 2개 대대 병력을 봉황산(741m) 너머 상주시 화남면 동관리(東觀里)의
갈령과 장자동(長者洞) 일대에 진지를 구축하고 매복시켰다. 그리고 7월 20일 갈령을 넘어오는 북한군
제45연대 병력에 공격을 가해 350여 명을 사살하고 26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북한군 제15사단은 제48연대와 제45연대 병력이 잇달아 큰 피해를 입자 갈령을 향해 대대적인 공격을 가해왔다.
그러자 국군 제17연대는 음성에서 상주로 철수해 있던 제1사단과 7월 23일 오후에 임무를 교대하고 상주로 물러났다.
국군 제1사단은 7월 23일부터 7월 25일까지 갈령과 장자동 일대에서 격전을 벌이며 북한군의 진출을 막아냈다
등로는 잘 보이질 않고...
잠시후에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가야할 435.4m봉이 보인다
안부(11:40)
좌측으로 무동마을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435.4m봉으로 오르는데 예전에 산불이 난 모양이다
등로는 아주 지저분하다
부처손도 간간히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상주시 화서면 상현리 무동마을의 모습
상현리 무동(舞洞, 武洞)마을은 은 당두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뒤으 봉황산(鳳凰山)에서
봉황새가 대밭골의 죽실(竹實)을 배부르게 먹고 춤을 추었다는 데서 무동(舞洞)이라 하였다.
또 일설에는 옛날에 무인이 살았다고 무동(武洞)이라고도 하며 무동마을은 나주정씨(羅州丁氏)가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하는데. 당시 식재하였다고 전하는 느티나무가 현재 면목(面木)으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마을 뒤편 봉황산 기슭에 백운사(白雲寺)와 해룡암(海龍庵)이 잇고 마을 앞에는 무동지(武洞池)가 있다.
조금전에 내가 오늘 걸었던 길을 뒤돌아 본다
火魔가 할키고 간 435.4m봉으로 올라간다
435.4m봉(11:50)
능선을 따라서 간다
우측으로는 잠시후에 가야할 화서논공단지가 보인다
편안한 능선을 따라서 내려간다
갈림길(12:07)
좌측의 뚜렸한 내리막길로 가면 무동저수지와 태봉산으로 가는 길이다.
좌측으로 내려가서 태봉산으로 갔다오고 싶지만 느림보 걸음으로 자신이 없다
우측 아래로 내려서니 묘지를 옮긴듯한 넓은 공터가 보인다
망가진 철조망을 끼고 내려간다
마을도로(12:10)
마을 도로를 따라서 좌측으로 가서 태봉산을 바라본다.
태봉산을 갔다 오기에는 시간적으로 무리일 것 같아서 입맛만 다시고 돌아선다
상주시 화서면 상현리 무동저수지 옆에 있는 태봉산(胎峰山:343.1m)은 정상에 팔각정과
연산군의 아들 태실이 있다...이 태실은 조선조 연산군(燕山君:1494~1506)의 왕자 태(胎)를
봉안한 것으로서 일제 때(1930) 일본인들이 뚜껑을 열고 태를 넣어둔 백자를 꺼내 마차에 싣고
간 뒤로는 뚜껑이 열린 이 태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나딩굴고 있었으나 1994년에 복원되었다.
금표비(禁標碑)는 태봉산 남쪽 산록의 9부 능선 정남향에 세워져 있으며 비문(碑文) 전면에
홍치14년 7월2일(弘治十四年七月.七月初二日立店), 뒷면에는 글씨의 마모가 심하지만
왕자태실(王子胎室)이라 새겨 놓았다...지금부터 500여년 전에 새워져 상주시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이라고 한다
도로를 따라서 간다
저 멀리 당진~영덕간 고속도로가 보인다
마을 도로옆에 묘지가 보이는데 이른 아침에 가락국수로 아침을 해결한 탓인지 배가 고프다
묘지에서 바람을 피해 점심식사를 해야겠다
점심식사(12:12~32)
바람이 심한 탓인지 생각보다 상당히 춥다
다시 길을 떠난다
25번 국도(12:33)
상주에서 보은으로 이어지는 25번 국도를 지나는데 교통량이 생각보다 많다
건너편에는 화서논공공단으로 가는데 교통 흐름을 확인하고 무단횡단한다
화서논공공단 안으로 들어간다
셀카놀이
삼표 P&C 상주공장(12:35)
레미콘 공장 너머로 보이는 지나온 봉황산의 모습
공장 끄트머리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삼표 P&C 상주 공장안으로 들어간다
공장에서 빠져 나가는데 통나무 하나가 있는데 이걸 다리삼아 걷는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앞은 철조망이라 오도가도 못하고 갇혀 버렸다
원칙대로 맥길 고집하다가 개고생을 한다...편하게 도로로 따라갈 것, 후회가 막심하다
窮하면 通한다고 했던가, 아니면 하늘의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나말고도 지나간 선답자가 있었는지 철조망 사이에 개구멍이 보인다
베낭을 먼저 밀어넣고 겨우 몸뚱아리가 빠져 나간다
뒤돌아 본 삼표 P&C 상주공장의 모습
공장옆 공터옆으로 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진다
고속도로옆 시멘트 도로로 내려간다
고속도로 암거(12:53)
당진~영덕간 고속도로 아래로 통과한다
고속도로를 지나자마자 편안한 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고속도로 옆으로 붙는다
맥길에 충실하기 위해 고속도로옆 좁은 곳을 통과한다
포도밭이 나오고...
우측으로 당진~영덕간 고속도로가 보이는데 오룩스 트랙상의 맥길이다
시멘트 농로에서 밭으로 올라간다
호두밭이 나오고...
사과밭도 지난다
농가 마당을 지나니...
조금전에 고속도로 암거에서 헤어진 도로를 다시 만난다
터골 800m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좌측으로 굽어진 도로를 따라서 간다
달천정미소(13:08)
화서면에 있는 달천리(達川里)는 본래 화령현 지역이었고 후에 화서면의 지역으로
1914년 봉천리, 봉성리, 신경리, 금성리, 달성리, 임정리를 합하여 달성과 봉천의 이름을
따서 달천리라 했으며, 1948년 달천1리와 2리로 분리되었다
달천 정미소를 지나자마자 전봇대를 끼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밭 가운데의 농로를 따라서 간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사람만큼 듬직한 사람이 없음이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말이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쉬 변할 수 있는게 사람일진대 말이다
앓고나면 그때서야 뒤돌아보게 된다
건강한 몸으로 자유로운 걸음이 얼마나 행복했던지를...
생각 언저리에 늘 머물던 사람은 또 얼마나 그리워했던지를...
며칠 앓고나면 개운한 몸짓으로 일어나 그때 느낄것이다
보이는 모든것이 얼마나 얼마나 아름다웠던가를
밭 가운데를 지나 오르막으로 올라가는데...
우측에 있는 배나무 농장은 망해 버렸는지 관리가 안된 채 방치되어 있다
사면길을 통과하여 봉우리로 올라서니 스텐레스 물탱크가 있다
물탱크(13:20)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좌측에 묘지가 보이고 도로에서 좌측 달성마을로 향한다
도로로 내려서기 바로전에 유인 김녕김씨를 비롯한 묘지 3기가 보인다
달성 마을로 내려간다
마을안에는 폐가들이 많이 보이는데 우리네 슬픈 농촌의 자화상을 보는 듯 하다
대밭이 있는 갈림길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측백나무 조림지가 보이고...
지등산 갈림길(13:30)
벼 건조장에서 우측의 시멘트 도로로 향한다
이곳도 우측에 측백나무 조림지가 보인다
뒤돌아 본 상주시 화서면 달천리 달성(達城)마을의 모습
달천리 티미 서쪽에 있는 마을로《달(산)+성=달성. ‘달’은 ‘산’을 뜻하는 말이고, ‘성’은 ‘고개’의 뜻을 가지는 말이다
시멘트 도로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 임도로 올라간다
높은 잣나무 가지에 현오님의 빨간 시그널이 산꾼을 반긴다
묘지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 우측으로는 부여서씨 가족묘가 보인다
임도 오거리(13:38)
좌측으로 잣나무 조림지가 있는 능선으로 올라간다
넓은 밭이 나오는데 인삼을 재배한 다음에 遊休하는 방치된 밭이다
밭을 지나 잡풀을 헤치면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323.3m봉(13:42)
만산동우회 표지기에는 임봉이라고 써놨다.
넓은 공터를 따라서 직진한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는지 묵은 밭이 많이 보인다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능선에는 지도상에도 없는 정체불명의 삼각점이 보인다
삼각점봉?(13:45)
지적도근점인지 삼각점인지 정체불명이라 헷갈린다
좌측의 들판 너머로 백두대간 능선에 있는 윤지미산이 아련히 보인다
저 윤지미산을 보면서 언젠가 후배 산꾼과 저 능선을 걸으면서 있었던 얘기에 웃음이 난다.
예전에 나훈아와 김지미가 같이 살던때가 있었던 에피소드라는데 침대에서 김지미가 나훈아 다리에
발을 올려 놓으면서 ‘누구 발이게’ 하니까 나훈아 왈 ‘지미씨발’ 하였다고 해서 박장대소를 한 적이 있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윤지미산 우측으로는 개티재, 천택산으로 이어지는 원통산 능선이 펼쳐진다
농로 끄트머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화서면 금산리 산수동 마을로 내려간다
산수동 마을 너머로 가야할 천택산이 보인다
화서면 금산2리에 속한 산수동 마을은 봉산 마을 북쪽에 있는 마을로 한 때 옹기를 굽기도
하였다고 하는데《자연의 경치를 일컫는 ‘산과 물’이라는 뜻의 ‘산수(山水)’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마을 도로로 따라서 간다
금산2리 마을회관(13:55)
마을회관을 지나 마을 표시석을 보면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느티나무를 바라보면서 걷는다
금산리 보호수로 지정된 350년된 느티나무 사이 좌측 민가로 오른다
민가 가운데로 올라간다
마지막 집은 폐가(廢家)인데 감나무 뒷쪽으로 올라간다
황토밭을 지나고...
철지난 왕탱이(말벌)집도 보인다
남원양공 묘(14:00)
남원양공 묘를 가로질러 나오니...
반사경이 있는 도로가 나오고 이곳부터는 도로가 마루금이다
천택산을 바라보면서 우측 능선이 마루금이지만 그냥 도로를 따라서 간다
천택산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도로옆 밭에는 봄맛에 입맛을 돋구는 냉이가 지천이다
사산1리 마을 표시석(14:18)
본래는 화령현 지역 이었으며 후에 상주군 화서면 지역으로 1914년 사곡리, 용강리, 우산리, 황산리,
마암리를 합하여 사곡과 황산의 이름을 따서 사산리라 했으며 소재 노수신 선생이 이곳에서 살았다.
1948년 사산1리, 2리로 분리 되었다. 누르미(黃山)는 사래실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는 웃 마을을
우산이라 부르고, 아랫마을을 황산이라 불렀는데, 아랫마을이 더 컷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허씨와 노씨들만 살았다고 하나 지금은 여러 성씨의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동네 뒷산은
청대산(靑臺山) 연결되어 있으나 산에 나무가 없어 누르미로 구전된 것이라 한다.
사래실, 사곡(沙谷)은 옥연 북서쪽 마을로 사산에서 가장 크며 마을의 흙이 모래땅 이어서 사곡아라고
칭하게 되었고, 옛날에는 이씨와 허씨가 살았다고 하나 현재는 노씨가 많이 살고 있으며,
신라때부터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안으로 들어간다
도로 좌측 아랫쪽에는 사당인 듯한 건물이 보인다
황산마을(14:22)
상주시 화서면 사산1리에 속한 황산(黃山)은 사래실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는 웃마을을 우산이라고
부르고 아랫마을을 황산이라고 불렀는데, 아랫마을이 더 컸었다고 한다. 누르미라고도 한다.
마을 뒷산이 청대산(靑臺山)으로 이어지고, 서쪽에는 천택산(天澤山)이 드높이 솟아 있으나 이 곳 야산은
황토가 많은 구릉이 있어 황산, 또는 누루미라 한다.
《누르+미(山)=누르 미. ‘누르’는 ‘늘어난, 긴’의 뜻을 지닌 말인데, ‘누런’과 음이 비슷하여 한자로
표기하면서 ‘황(黃)’을 취한 글자다. ‘낮은 산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죽은 노거수 옆에는 사산도로확장 기념비가 있다
사산1리 마을 버스 정류장도 보인다
고향하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하면
고향이 생각난다
딸 자식은 다
출가시키고
아들 자식은 다
객지에 나가서살고
붙박이 별처럼
홀로 고향을 지키시는
우리 어머니
어릴 때 살았던
고향집이 생각날 때면
선영들이 잠들어 있는
고향 산천이 그리울 때면
어머니가 곧 고향이다
고향이 곧 어머니이다
허동인 시인의 ‘어머니가 고향이다’
마을 끄트머리 집에서 좁은 도로로 올라간다
도림사 너머로 가야할 천택산이 곧추 서있다
도림사(14:32)
절집이라기보다 전원주택 같은 느낌이 든다
물탱크(14:35)
시멘트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묘지 뒷쪽 능선으로 올라간다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무명봉(14:55)
철쭉 군락지를 지나고...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등로 좌측으로 보이는 천택산이 멀게만 느껴진다
숨이 멈춰버릴것만 같은 통증을 느끼며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능선에 올라 좌측으로 향한다
완만한 능선을 걷다가...
안부를 지나...
또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451m봉(15:15)
안부를 지나는데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산행 속도가 점점 떨어진다
536m봉(15:30)
안부에서 천택산으로 오르는 마지막 안부를 지나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헐~~~ 오늘 상주지역의 날씨는 맑음이라 했는데 이게 뭐여!...난감하네
오늘도 구라청(기상청)한테 뒷통수를 맞는 느낌이다
베낭을 내리고 레인커버를 쒸우고 가지고 다니는 1회용 우의를 입는다
힘들게 능선을 치고 오르니...
헬기장이 있는 천택산 정상에 오른다
천택산(川澤山:683.7m:15:38)
상주시 화서면 사산리와 화남면 입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2등 삼각점과 헬기장이 있다.
산 이름은 한문으로 쓸때 대체적으로 ‘천’자를 ‘하늘 천(天)으로 쓰는데 이곳의 천택산의 ‘천’자는 ‘내(川)’자로
표기한 것이 특이하다...물론 ‘하늘 천(天)’자를 써서 ‘천택산(天澤山)’으로 기록된 자료도 보인다마는...
지형도에는 내(川)이고 상주시 지명유래에는 하늘(天)을 쓰는데 산봉우리에 내(川)자는 어울리지 않는다
예전에 산꼭대기에 연못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없고, 국사당 봉수대(國師堂烽燧臺)가 있었지만 그마저
헬리콥터 착륙장을 만들면서 흔적이 없어졌다. 봉수대 서쪽 임곡리에서 중눌리로 넘어 가는 고개를
봉우재라고 부른다...천택산 또는 천탁산이라고도 부르는데 ‘가릴 택(澤)을 ‘흐릴 탁(濁)’을 잘못 읽어
천탁산으로 부르는 모양인데 천택산으로 부르는게 맞는 듯 싶다 (범여의 생각中에서)
천택산(川澤山)은 속리산 국립공원 남쪽 구병산과 봉황산 남쪽으로 흘러내린 산으로 이들 산과
확실하게 연결된 부분이 없으며 이 산 밑에는 지금도 우복길지의 비결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임실 안골에서 보는 구병산은 사람(男) 얼굴 형상으로 태조산이라고 하며, 임실 안골의 앞산은 여인이
누워있는 형상으로 대모산이라 하여 숭상을 하고 있다.
용굴은 석회암 동굴로 동학농민 항쟁시 지도부 은신처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굴 입구에서 20m정도는
진입이 가능하나 그 이후는 구멍이 협소하여 들어갈 수 없고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면 그 길이가 상당히
길고 깊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천택산은 석회암으로 되어 있어 경북자원개발에서 석회를 채굴하고 있으며
과거에 석탄을 캔 흔적도 남아 있는 특이지형이다.
산 밑에는 지금도 우복길지의 비결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조선 후기때 대선사로 알려진 이량박(李輛舶)이 임실 안골을 우복동이라 칭하고 그의 우복가 유서에
"天地合德三皇舍 天鼓任實五常舟 善錄君子道通庭 無量靈廻萬仙京 地德 雨復四時源 五合化運得好時"
글을 남겼으며 또한 우복동과 관련된 태조산.대모산.용굴.시루봉 적바위 등의 지명들이 있다
인증샷
삼각점은 정상 끄트머리에 있다
천택산 정상 2등 삼각점(△관기 22 / 1983재설)
바람도 드세고 빗줄기도 굵어지니 괜스레 맘이 급해져 서둘러 길을 떠난다
천택산 아래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화서면 사산리의 모습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전망은 꽝이다
천택산을 내려가는 길은 낙엽이 비에 젖어 상당히 미끄럽다
이곳부터는 좌측 능선은 상주시 화서면이고 우측은 화남면이다
편안한 능선을 따라서 개티재로 향한다
부드러운 陸山 능선에 간간히 만나는 암릉은 앙증맞다
좌측 능선 아래쪽은 조금전에 지나온 황산마을에 있는 도림사가 희미하게 보인다
황산마을에서 천택산을 지나 개티재로 내려가는 등로는 ⊂형태이다
607m봉(15:50)
계속되는 내리막길
무명봉(15:54)
가야할 587m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안부(15:55)
587m봉으로 올라간다
587m봉(16:03)
다시 좌측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우측으로 살짝 꺽어지고...
완만한 능선을 걷는데 빗줄기는 조금씩 가늘어진다
大物?
사래실 고개(16:15)
상주시 화서면 사산리 사래실마을에서 화남면 중눌리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넓은 임도가 보인다.
사래실 마을은 옥연으 북서쪽 마을로 사산에서 가장 크며 마을의 흙이 모래땅 이어서 사곡아라고 칭하게 되었고,화남면 중눌리쪽의 모습
화서면 사산리쪽의 모습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에 올라...
편안한 능선을 따라서 걷는다
등로에는 간간히 규암(차돌)이 보인다
484.8m봉(14:25)
苦行
비는 완전히 그쳤다
사면길로 인해 우측으로 꺽어진다
410m봉(15:35)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묘지쪽으로 내려간다
오늘의 날머리인 개티재로 내려선다
개티재(街峙:347m:16:33)
상주시 화남면 소곡리 먼내마을과 중눌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새로 포장된 듯한 20번 군도가
지나며 예전에는 서낭당이 있었으나 새로 도로를 확장하면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개티재의 ‘거리 개(街)’는 ‘길(街)’의 뜻으로 쓰이는데 상주시의 지명중에 많이 보인다.
『삼국사기』 지리지나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치(峙)’가 나타나지 않다가,
『신증유합(新增類合)』에 비로소 ‘치(峙)’가 나타나고 있어 ‘치(峙)’는 ‘현(峴)’이나
‘령(嶺)’보다 사용이 늦은 것으로 보인다.
‘개 티’는 ‘우뚝 솟은 산에 있는 길’ 이란 뜻이다
상주시 모동면과 공성면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 상에 있는
개터재와 전혀 다른 고개이며 지명의 유래도 전혀 다른 고개이다
개티재 먼내 마을쪽의 모습(화남면 소곡리 소재)
먼내 마을은 맹골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갯티재 밑에 있어서 시내가 멀어 마을 앞에
저수지를 만들어 이용하고 있다.《‘머흘-’은 ‘험하다’의 고어(古語)다. 지형이 험하거나
산골에 붙는 지명이다. ‘머흘에→머흔에→머 내’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자로는
‘마흘(馬屹), 말흘(末屹)’로 음차(音借)되기도 한다.》
도로에서 베낭을 정리하고 있는데 화령쪽으로 가는 트럭 한대가 지나가는게 아닌가.
밑져봐야 본전이라고 손을드니 차를 세우면서 타라고 한다
덕분에 화령터미널까지 편하게 도착한다...태워주신 분 세세생생 복받을깁니다
화령발 → 상주행 버스표
貴人의 도움으로 화령터미널에 도착하니 16시 55분 경이다
화령에서 상주로 가는 버스는 17시 20분 차는 완행이고, 25분 차는 직행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화장실로 옷을 갈아 입으려고 들어 갔더니만 수도꼭지에 샤워기가
달려있고 세면기에는 비누까지 있어서 문을 잠그고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화령터미널 버스 시간표
화령터미널에서 17시 25분 직행버스를 타고 30분만에 상주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상주터미널에 도착하니 17시 55분이다
서울가는 버스는 강남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18시 40분이고, 동서울 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18시 30분이라 집이 가까운 강남터미널 가는 표를 예매하고 터미널
안에 있는 가게에서 라면 한 그릇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여유롭게 커피 한잔까지 마신다
18시 40분 정시에 버스는 출발하고 서울에 도착하니 21시 05분이다
미세먼지에 강한 바람, 거기다가 중간에 비를 맞으며,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고전 했지만 그래도 한 구간을 마쳤다는 성취감을 품에 안고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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