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0년 05월 23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아침에 쌀쌀하나 오후엔 상당히 더움
☞ 산행거리: 도상거리 16.4km+접속구간 3.8km / 11시간 3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사문리 탐방지원 센터-갈림길-마패봉-다시 갈림길-북암문-스타소나무
달천(계명)지맥 분기봉-안부-안부-714.2m봉-무명봉-652.7m봉-576m봉-서낭당
지릅재-풍양조공 묘-박쥐봉 갈림길-무명봉-기암-715m봉-뫼악재-이정표
북바위산 갈림길-북바위산-다시 갈림길-안부-714.0m봉-안부-705m봉-741m봉
석문봉 갈림길-안부-무명봉-꼬부랑재-망대봉-무명봉-안부-무명봉-시어골재
519m봉-안부-518.2m봉-전주이공 묘-무명봉-갑둥이재-유인평택임씨 묘-667.5m봉
안부-대미산-안부-무명봉-안부-552.5m봉-512m봉-428m봉-임도-421m봉-묘지-안부
솔고개
☞ 소 재 지: 경북 문경시 문경읍 /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살미면 / 제천시 한수면
이번주는 좀 바빴다...거기다가 토요일에는 코로나 땜에 한달 연기된 제등행렬에
참가해야 하는데 서울 이태원 나이트클럽에 번져버린 코로나 땜에 제등행렬이 취소되었다.
불교 행사중 가장 큰 행사의 하나인데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이번주에는 오랫만에 지맥길을 걷는 불알친구(초딩이 동창)과 일요일날 광천(등곡)지맥
마지막 구간을 같이 걷기로 했는데 일요일날 비가 온다고 하니 걱정이다
나처럼 기저환자는 감기로 인한 합병증의 폐렴이 가장 치명적이다
집에서는 비 오는날 산에 가려면 가족들이 엄청난 태클과 견제를 하는 바람에 꼼짝을
할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친구한테 양해를 구하고 일요 산행을 포기하고 대신
토요일 충주지역의 날씨가 좋다고 하여 새벽 4시에 일어나 차를 가지고 길을 나선다
오늘가는 달천(계명)지맥의 첫 구간은 산도 높지도 V자 형태로 이어지는 등로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 좀 걱정이긴 하지만 가는데 까지 가볼 생각이다
근데 집에서 출발하여 성남시청 근처를 지나는데 뭔가 허전하여 주머니를 뒤져보니
잠자는 식구들 몰래 도둑고양이처럼 집을 나오느라 식탁위에 스마트폰과 산행 친구인
노래방 라디오를 놓고 왔다...다시 집으로 가서 가져오는 바람에 30분정도 허비한다
제2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중부내륙고속도로 북여주 I.C에서 여주J.C까지는
차량이 한 대도 없어 오랫만에 시속 180km이상 시원하게 달려본다
충주I.C를 빠져나와 월악산 국립공원 사문리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니 06시 30분이 좀 지났다
달천(계명)지맥 (鷄鳴枝脈)개념도
달천(계명)지맥은 백두대간 마역봉(마패봉) 동쪽 1.2km지점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지릅재, 북바위산(779m),
망대봉(730m), 대미산(680.8m), 발치, 남산(636.1m), 마즈막재, 계명산(775m)을 지나 달천이 남한강에
합수하는 충주시 탄금대교 앞에서 청미(부용)지맥을 마주보며 끝나는 실거리 41.4km의 산줄기로
달천의 좌측 분수령이 되는데 수계의 기준이 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달천지맥이라 부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월악산 국립공원 사문리 탐방지원센터(06:32)
사문리는 충주시 수안보면에 있는 마을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대사리(大寺里)와
석문동(石門洞)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사문리(寺門里)라 하였으며 ‘대사’는 큰 절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한절’의 한자 표기로, 예전에 큰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석문은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왜군을 막으려고 이곳에 성을 쌓고 돌로 문을 만든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사문(寺門)이란 지명은 ‘절로 들어가는 문턱’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신선봉~주흘산,
만수봉~포엄산으로 덩어리가 된 산지 사이에 자리한 것이 미륵(彌勒)이다.
절에는 땅 이름이 상징하듯, 5층 석탑과 미륵불 등 문화재로 지정된 불교 유적이 많다.
과거에 번영했던 불교 사원의 자리임을 실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안보(觀音)리가
있는데, 이 또한 불교를 상징하는 관세음보살에 연유하므로, 불상을 모시는 절터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산행을 시작한다(06:40)
데크목 계단을 올라가자 마자 좌측 등로로 올라간다
오르막이 시작되고...
산양이 살고 있는 모양이다
산에서는 뫳돼지보다 사람들이 더 무서워요
마패봉으로 오르는 길은 초반이라 그런지 상당히 완만하다
500m 단위로 이정표가 달려 있어서 길을 잊어버릴 염려는 없다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올라가니...
좌측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나오는데 출입금지지역인 모양이다
이정표와 함께 주탐방로 지도도 있다
오르막이 나오면서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이정표(597m:06:51)
낙엽이 수북한 계곡을 건너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집터의 흔적인가?
사랑놀음?
철계단을 따라서 갑자기 고도를 높인다
철계단 좌측에 흐르는 조그만 폭포
쇠사슬에 몸뚱아리를 의지한 체 고도를 높이는데 상당히 힘이든다
기암은 살짝 우회를 하고...
이정표(721m:07:20)
암릉 사이를 통과한다
공터가 나오고 등로는 좌측으로 꺽어져 올라간다
이곳의 철쭉은 끝물이다
1주일전 이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대간길... 하늘재에서 차갓재까지 걸었는데
그곳은 지금 철쭉이 만발하였던데 고도 차이때문인가?
암릉사이에 살아가고 있는 철쭉은 민초들의 삶만큼이나 힘들게 보인다
거북바위?
통나무 계단으로 올라가니...
이정표가 나오고 계곡 아래 능선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손이 시릴만큼 춥다
落花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등로 우측으로는 신선봉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백두대간 마패봉에서 1.3km, 수안보 온천에서 5km 정도 떨어져 있는
산으로 괴산 35명산에 들만큼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고 있는 곳이란다
산세가 아름답고 암릉으로 이루어져 산행의 묘미를 더해주는 곳으로 신선봉의
옛 지명은 할미봉이라고 하며 지금도 이 지역 주민들은 할미봉으로 부르고 있다.
할미를 닮은 할미바위가 있어서 붙혀진 지명인데 지도상에는 신선봉으로 기록되어 있다
갈림길(07:48)
지맥길 분기점은 좌측이나 우측 100m 지점에 있는 마패봉으로 향한다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
1960년대의 국유림 표시석도 보인다
마패봉(馬牌峰:925.1m:07:50)
문경시 문경읍과 충주시 수안보면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암행어사
박 문수가 조령 제3관문 위에 쉬면서 마패를 관문 위의 봉우리에 걸어 놓았다하여
붙혀진 지명으로 지도상에는 마역봉(馬驛峰)으로 표기가 되어있다.
경북 문경지역에서는 마패봉으로 부르고 충북 괴산지역에서는 마역봉으로 부른다
* 박문수(朴文秀:1691~1758)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사색당파중에 소론 계열의
인물이나 당색을 초월하여 인재를 등용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당시 군정과 세제 개혁의
논의에 참여 했으며 부정한 관리를 적발한 암행어사로 명성을 날렸다
2017년 11월12일 북진길에 나홀로 걸었던 마패봉... 어언 3여년이 되어가는구나
이제 모든걸 내려놔야 할 나이인데도 아직도 뭔 미련이 남아서 이렇게 산을
헤매고 다니는지...이것도 집착이고 아집이겠지
인증샷
작금의 이 나라꼴 돌아가는 걸 보면 왜 이 難世에 박문수같은 관리는 없는걸까...걱정스럽다.
정치판은 물론이고, 공무원, 시민단체까지 심지어 정치판 아닌 개판이 되어가고 있어 실망스럽다
엊그제인가...전형적인 貪官汚吏인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을 법원에서 전에 죄가 없다고
집행유예로 풀어주는데 참으로 어이가 없다...민초들은 10만원만 먹어도 구속인데 말이다
재판장 나리의 판결 이유는 전과가 없다고 집행유예라는데 공무원이 전과가 있으면
파면감인데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판사의 상징인 수평저울은 한쪽으로 기울어진지
오래라 이제 놀라지도 않는다...제발 정권이 아닌 백성들을 위한 명판결을 보고 싶다
조만간 다시오마...
범여의 德이 부족함이던가...갑자기 몰려오는 짙은 안개로 인해 모든게 오리무중이다
마패봉 돌탑에 돌 하나를 올려놓고 오늘의 무사산행을 기원한다
다시 사문리 갈림길(07:57)
망가진 나무계단은 아직도 예전 그대로이다
북암문에서 문경새재로 이어지는 동화원 계곡이 뚜렸하게 보이고 그너머 부봉 6봉은 안개에 갇혀 버렸다
철계단으로 내려간다
이정표(784m:08:07)
이정표 월악04-05(←하늘재 8km, 부봉 삼거리 3.4km, →마패봉 3.4km)가 서있다
철계단에서 안개 때문에 시원한 대간길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가슴에 담고 급경사로 내려간다
우애가 깊은 형제 소나무를 만난다
성터의 흔적을 지나 북암문으로 내려간다
북암문(北暗門:13:09)
넓은 안부로 내려서는데 북암문 우측으로 동화원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뚜렸히 보인다
이곳은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지역이었던 1,500여년 역사가 흐르는 곳으로 북쪽에 있는
암문이라고 해서 곳이기도 하다.
암문(暗門)은 일종의 비밀통로로서 평상시에는 성벽과 같이 막아 두었다가
필요시에 사용하는 것으로 고구려의 산성에서 많이 나타나는 특징이다
성(城)을 에워싸 적에게 기습 공격을 가할 때 유용하게 사용했다고 한다
동화원(桐華院)은 지금부터 약 500여년前 密陽朴氏가 처음 정착한
이래 30여戶의 民家가 형성되었으며 5~6戶의 客主와 院이 있던 곳으로
옛 선비들과 보부상들이 한잔의 술과 음식으로 즐겨 쉬어가던 곳으로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동학 봉기 이후 산적들의 출몰에 여러 길손은
이곳 동화원에서 며칠을 쉬면서 큰무리를 이뤄 安全하게 지나다녔던 곳이기도 였다고 한다.
옛 院은 통상 하루 보행길 參拾里 간격으로 있었으나(新東國與地勝覽),
이곳 문경새재는 조령원(3.5Km)ㅡ>동화원(3.5Km)ㅡ>신혜원(3.5Km)으로 십리(拾里)마다
院이 있었는데, 이는 이곳 문경새재가 운송및 지리적 여건이 힘들 뿐만 아니라
산적들의 횡포에도 그 영향이 있었다 한다.
또한 동화원은 교통취락 成立에 경제적인 배경에 依한, 驛, 院, 渡, 中의 一部로서
시장 취락형태의 店, 幕, 酒家, 客主, 旅閣을 형성하고 있었던 곳이다
북암문에서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계속해서 성터의 흔적이 따라온다
깃대봉에서부터 조령(조령3관문)을 지나 부봉 삼거리 아래까지는
삼국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까지 군사적 요충지였던 곳이다
756봉에 올랐다가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스타 소나무(08:20)
대간 산꾼들의 산행기에 어김없이 등장하고 인증샷을 남기는 소나무이다
이정표(734m:08:21)
뒤돌아 본 마패봉의 모습
달천(계명)지맥 분기봉(753m:08:25)
사문리 탐방지원센터에서 3.8km를 1시간 45분 걸려서 분기봉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 등로가 너무 급경사라 조금 내려가서 사면길로 향한다
달천(계명)지맥 분기점(08:26)
오늘 지맥길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사면길의 급경사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다들 반갑습니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넓은 등로가 보인다
안부(08:33)
우측으로는 미륵리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암릉구간이 나오고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올라간다
철쭉 군락지가 나오고 등로는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요즘의 민초들만큼이나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등로가 서서히 맥길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안부(08:38)
안부를 올라서자마자 등로 가운데 삼각점이 나온다
714.2m봉(08:39)
714.2m봉 삼각점(△404재설 / 1978.7건설부)
다시 안부로 내려섰다가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08:45)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을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서는데 일제시대 송진 재취를 당한
슬픔을 간직한 소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일제시대의 아픈 과거가 그대로 남아있는 맥 산길
80년이 다 되어 가는 일제 강점기의 대동아 전쟁 무렵 일본은 전쟁 물자가 모자라자
우리나라 산하의 소나무에 흉터를 내면서 송진을 채취하였다고 한다.
그 아픔을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맥길...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6년동안 온갖 만행을 저질렀던 일본은 어떠한가
주변국들에 사죄는 커녕 갖은 망발을 일삼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라는
자는 반성은 커녕 또 다시 군국주의 부활은 꿈꾸고 있으니...그런데도 이 나라의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정치인들은 아직도 자기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평화란 국가가 힘이 있을때만 지키는 것인데 요즘 세태는 여든 야든 국가의 안위는
眼中에도 없고 오직 자기 조직들을 위한 진영 논리에만 빠져있는 느낌이라 답답하다
괜스레 저 소나무에게 미안한 感이 드는구나
652.7m봉(08:53)
652.7m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지맥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박쥐봉이 보인다
박쥐봉(782m)은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월악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산으로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어며 정상부근의 자연 동굴안에 박쥐가 많이 살았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며, 월악산 국립공원은 송계계곡을 중심으로 크게 두갈래로 나누어지는데
동쪽은 월악산 영봉에서 만수봉으로 이어지는 주릉인 반면에 서쪽은 용마산과 북바위산,
그리고 박쥐봉이 서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철쭉 군락지 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낙엽이 수북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아픔을 간직한 소나무와의 조우는 계속되고...
희미한 등로를 지나니...
곧이어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성터의 흔적같은 커다란 돌무더기 나온다
576m봉(09:05)
성터의 흔적인가?
무너진 돌무더기를 지나...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넓은 공터같은 것을 지나간다
박쥐봉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서낭당(09:08)
무너진 서낭당을 지나 우측으로 내려간다
지릅재 내려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모습
지릅재로 내려가는 급경사의 내리막길은 등로가 보이지 않는다
힘들게 내려서니 지릅재를 통과하는 597번 지방도가 보인다
지릅재(540m:09:14)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에서 미륵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597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1891년에 편찬된 『연풍현읍지(延豊縣邑誌)』에서는 마골산[640m]의 마골점 봉수(麻骨岾 烽燧)
[일명 마골봉수]는 연풍현 북쪽 40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지릅재
남쪽에 마골산 봉수가 있어 마골점(麻骨岾)이라고도 불렸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계립령(鷄立嶺)의
별칭으로 지릅재라는 명칭이 등장하게 되었다.
지릅재는 지름재, 제름재 등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지름재는 일설에 ‘지른길’이라고도
보고 있는데 이는 우리말로 질러서 가까운 거리로 간다는 뜻이다
이곳 지릅재에서 뫼악재까지는 출입을 하지 말라는 비법정 탐방로이다
다행히 철문은 잠겨있지 않아 가지 말라는 禁斷의 등로로 들어선다
복주머니 자생지가 있어서 출입금지란다
‘탐방로 아님‘ 표지판 뒷쪽으로 감시카메라가 산꾼을 째려보고 있다.
카메라를 피해서 우측으로 꺽어져 올라간다
우측으로 올라가는데 이곳에도 카메라가 있어 낮은 포복으로 올라간다
카메라를 피해서 올라서니 전기 철조망이 처져있는 안쪽에 복주머니 난 한그루가 피어있다
철조망 안에는 복주머니란 한 그루가 피어있고 난 바로위에 또 한대의 감시카메라가 있어
들어가서 접사로 찍을 자신이 없다...광릉 수목원 정원에서만 볼 수 있는 복주머니란을
보았다는것 만으로도 큰 영광이 아닌가
복주머니란...사진 펌(꽃말:튀는 아름다움)
복주머니란은 꽃이 개의 불알을 닮아 개불알란으로도 불리는 꽃이다
핏줄같은 맥이 그물 형태를 이루고 있는 입술꽃잎 모양이 개의 불알처럼 생겨서 그렇게 불렀고,
영어의 명칭도 불알이란 뜻이며 속명 ‘시프리페디움’은 ‘비너스의 샌들’ 이란 뜻으로 1753년
스웨던의 식물학자 린네가 설판 모양을 보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산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숲 속의 반그늘이나 양지쪽의 낙엽수 아래서 자란다
키는 30~50cm 정도이며, 잎은 3~4장이고 길이는 15~27cm 정도, 폭은 11~17cm 정도이다
꽃은 5~6월에 붉은 색으로 피는데 백두산에서 피는 흰색 복주머니란도 있다
꽃은 항아리 항아리와 같은 모양으로 달리고 윗쪽으로 1개의 잎과, 옆에는 2개의 잎이 있고
열매는 7~8월에 열린다
자생지 근처에 가면 소변냄새와 같은 악취가 진동하기 때문에 까마귀 오줌통이라고도 하고
둥굴고 가운데 구멍이 뚫려있어 요강꽃이리고도 부르며, 이밖에도 복주머니꽃, 개불알꽃,
작란화, 포대작란화, 복주머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복주머니란은 몇가지 종류가 있는데 전체적으로 털이 많은 털복주머니란이 대표적이다
이 종은 본래 백두산 등 북한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데, 남한에서는 설악산과 태백, 정선
고산지대에서만 분포하며 그 개체수도 몇 십개에 지나지 않는 희귀종이다
전기 철조망을 피해서 우측으로 올라간다
미안합니다...조용히 빠져 나갈께요
묘지를 옮긴듯한 넓은 공터를 지난다
춤추는 소나무(댄싱송)
물푸레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암릉을 만나고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고도를 높인다
뒤돌아보니 아침에 올랐던 마패봉과 우측의 신선봉도 보인다
급하게 고도를 높혀야 한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귀한 꼬리진달래가 보이는데 아직 꽃을 피울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생각보다 등로는 뚜렸하다
암릉구간을 우회하면서 올라간다
화산석처럼 보이는 암릉 안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다
암릉을 지나니 입석(立石:서 있는 바위)이 나오고 묘지가 보인다
구멍을 숭숭한 입석 옆에는 풍양조공과 배부인 밀양박씨 묘지가 있다
풍양조공 묘(09:44~54)
이른 아침에 집을 나와 아무것도 먹지않고 이곳까지 걸었더니만
배도 고프고 상당히 피곤하여 빵과 우유로 허기를 면하고 휴식을 취한다
기이하게 생긴 바위를 지나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묘지 뒷쪽의 빡센 오르막을 오른 다음에...
희미한 사면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의 등로로 올라간다
박쥐봉 갈림길(733m:10:00)
우측으로 1km 정도가면 박쥐봉이 있는데 지도상에는 772.7봉으로만 표기되어 있다
가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가야할 길이 멀어 입맛만 다시고 좌측으로 향한다
월악산국립공원에 있는 바위산인 박쥐봉은 산세가 아름다우나, 경사가 급한 절벽 지대로
동쪽으로 만수봉(983m), 서쪽으로 북바위산(772m)이 있고, 이외에도 월악산에 속한 많은
봉우리들이 주변에 많다...때론 연내골의 이름을 따 연내봉이라 불리기도 하며, 송계계곡에서
바라본 모습은 박쥐가 날개를 펴고 나는 듯하며 이 때문에 주민들은 박쥐봉이라 부르고 있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뫼악재로 향한다
무명봉(10:03)
맥길은 비교적 뚜렸하다
뚜렸한 등로를 따르는데 소나무에서 뿜어나오는 피톤치드향이 참으로 머리를 맑게한다.
건너편에는 마패봉에서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나무에 가려 제대로 볼 수가 없구나
기암(1:08)
기암 아랫쪽의 모습
715m봉(10:11)
급경사의 내리막길...좌측으로 내려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급경사로 내려서니 우측에 묘지가 보인다
또 다시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오랫만입니다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묵묘를 지나서 내려간다
조금을 더 내려가니 임도가 보이는데 갑자기 경고방송이 들려온다
비탐구간에 들어와 산림법 위법을 위반했으니 빨리 나가란다
얼른 휀스 대문 밖으로 나온다
뫼악재(531m:10:30)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 뫼악동에서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사시리 계곡으로
이어지는 고개로 고개 우측에는 휀스로 된 문이 보이고 농장이 있다
뫼악재 이정표
북바위산 가는길
우측에는 넓은 농장같은 곳이 보인다
북바위산으로 가는 길
낮이 되자 햋빛은 상당히 따갑고 덥다
옷을 벗어 베낭에 넣고 휴식을 취하는데 맞은편 비닐하우스에서 공사인부 두사람이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다...더운 날씨라 아무래도 물이 모자랄 것 같아 물을
좀 달라고 하니 밭 옆에 샘이 있다고 한다
지하수를 파 놓았다...이곳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뱃속에도 500ml를 넣었다
다시 북바위산으로 향한다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서니 묘지를 이장한 듯한 넓은 공터가 나오고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제도권 등로라 그런지 등로는 무쟈게 좋다
등로 가운데는 관리가 되지 않는 묵묘도 보인다
이정표(654m)도 지난다
노린재 나무(꽃말:동의)
노린재나무과의 낙엽활엽관목으로서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으며, 화회목, 황회목이라고도 한다.
영명인 'Sweet leaf'는 직역하면 '달콤한 잎사귀'라는 뜻이 되는데,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위키피디아
글로벌판에 실린 설명에 의하면 오래된 잎사귀에서 옅은 단 맛이 난다고 한다.
노린재 나무의 지명은 황회목(黃灰木:누르스름한 잿빛으로 물들인 무명)에서 유래되었으며, 자초나
치자 등 식물성 물감을 천연 섬유에 물들이려면 매염재(媒染劑:옷감에 염료를 결합시켜 발색하도록
매개역할을 하는 약제)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 노린재 나무는 전통 염색의 매염재로 널리 쓰이는
황회를 만들던 나무로 잿빛이 약간 누런빛을 띠어서 붙혀진 이름이다.
요즘은 숲속의 수많은 이름없는 나무에 불과하지만 100여년전만 해도 천에 물감을 들일 떄
꼭 필요한 귀중한 식물 자원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중종 8년(1514)에 ‘죽청’이란 스님이 “지금 황회목으로 돈버는 일
때문에 곽산에 와있다”라는 내용이 실려있고 〈상방정례(尙方定例:1750년(영조 26) 상의원에서 편찬한
궁중의복에 관한 책〉에는 “명주를 보라색으로 염색할 때에는 한 필에 지초 8근, 황회 20근, 매실 1근”
으로 염색한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 〈규합총서(閨閤叢書:1809년(순조9년) 빙허각 이씨가 가정살림에 관해 저술한 조리서〉에는 “자초를
염색할 때는 노란 잿물을 받아서 사용한다”라고 하여 조선조 때는 황회가 염색에 빠져서는 안되는
매염재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황회를 이용한 염색 기술은 일본에 수출을 하였으며, 〈대화본초((大和本草)〉 라는 일본의
옛 문헌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노린재나무 잎을 끓인 즙으로 찹쌀을 물들여 떡을 만들고
사각형으로 만들어 팔았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제주도에서 나는 섬노린재 나무를 일본 사람들은
탐라단(耽羅檀이라 불렀다고 한다
등로 가운데 삼각점이 있어 자세히 보니 삼각점이 아닌 토지 측량으로 박아논 지적도근점같다
잘생긴 소나무 2그루를 만난다
나뭇가지 사이로 맞은편 신선봉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입맞춤 바위
철계단으로 올라 북바위산으로 향한다
암릉 구간위로 올라가니...
멋쟁이 소나무 한 그루가 홀로걷는 산꾼을 반긴다
북바위산 갈림길(758m:11:12)
맥길에서 우측으로 200m 정도 떨어져 있는 북바위산으로 향한다
북바위산 가는 길에도 나라가 힘이없어 고통을 대신받은 소나무들을 만난다
능선 우측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라서 조심해야 할 듯 싶다
멋진 암릉구간으로 이루어진 북바위산 정상에 올라선다
북바위산(772.1m:11:17)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와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충청북도에서
선정한 충청북도의 명산 30곳 중의 하나로서 월악산국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북바위산은 월악산[1,093m]에서 남쪽으로 만수봉[983m]까지 이어지는 암릉 서쪽에서 남에서 북으로
패어져 내린 송계계곡의 중간 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지명의 유래는 지릅재에서 북쪽에 위치한
바위산이라는 뜻도 있지만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산자락에 타악기인 북[鼓]을 닮은 기암이 있어
북바위산 또는 고산(鼓山)이라고 한다.
인증샷
북바위산 정상에서 오늘 처음 용인에서 오셨다는 山客을 만나 사진 한 컷을 부탁했다
북바위산은 높이 772.1m이며, 서북쪽의 꼬부랑재 북쪽에는 석문산[735m]이 있고, 북쪽에는
수리봉[761m]이 있으며 남쪽에는 신선봉[968m]과 마폐봉[940m] 등이 있고 동남쪽에는
박쥐봉[782m: 일명 연내봉]이 있다. 북바위산 동쪽으로 송계계곡이 남북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다.
송계계곡의 동쪽에는 월악산[1,094m], 마애봉[960m], 수문봉[896m], 덕주봉[890m], 만수봉[983m],
용암봉[892m] 등의 고봉들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연이어 솟아 있다.
송계계곡의 중간 지점의 팔랑소 서쪽에 솟아있는 북바위산은 비록 높지는 않으나 기암절벽을
거느리고 있으며 북바위산 동사면에 사시리계곡이 펼쳐져 있고, 송계계곡에 이른다.
북바위산의 옆면은 마치 북의 몸통처럼 둥근 원형을 이루고 있고 전면은 절벽인데 북바위산 정상에는
수십 그루의 소나무가 서 있다. 북바위산의 북바위는 전면에 폭 40m, 높이 80여m에 달하는 단애를
이루고 있고, 쇠가죽 색깔이어서 실제의 북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만한 바위이다.
전설에 의하면 부근의 용마봉은 월악영봉(일명 월악산)이 타고 다니는 용마이고 북바위산의 북바위는
월악영봉의 호령을 천하에 알리는 하늘의 북이었다 한다. 북바위산의 동사면에는 동달천이
송계계곡으로 북류하고 있고, 남사면에는 지릅재에서 발원하는 석문천이 서류하고 있다
직진으로 내려가면 송계계곡이 있는 물레방아 휴게소 쪽이다
북바위산 조망대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의 모습
북바위산에서 바라본 주흘산(主屹山)의 모습
주흘산 이라는 뜻은 우뚝선 우두머리산 이라는 말로 주변에 대미산과 조령산등
천미터가 넘는 고봉들이 즐비하지만 그중에서도 산세가 힘차게 뻗어있어 주변 산들을
호령하는 산으로 예로부터 나라의 기둥이 되는 큰 산인 중악(中嶽)으로 우러러 매년
조정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를 올리던 신령스런 영산(靈山)으로 받들어 왔던 곳으로
문경읍을 감싸고 있는 문경의 진산으로 주흘산 최고봉은 1106m의 영봉 이다.
하지만 주봉은 영봉보다 낮은 1,076m인데 이곳이 주봉(主峰)이 된것은 산세가 막 비상하려는
학의 모양인데 이곳 주봉이 학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 이라고 한다.
또한 주흘산에서 이곳의 조망이 가장 좋은데 그래서 높이에 상관없이
이곳을 주봉으로 삼았다고 한다
문경의 진산 주흘산(主屹山)을 보면 문경의 지명은
이 주흘산으로부터 지어진 이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주흘산은 영남에서 서울 가는 방향으로 달리다가 영남의
제일비경지인 진남교반의 고모산성을 돌아서면 우뚝하게 솟아나있다.
1,000m 정도의 아름다운 산이다. 맵시 있는 여자 같기도 하고,
절세미인이 단장을 하고 앉은 듯 단정한 산이다.
좌우대칭이 어우러져 있고, 내리 뻗은 품세가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기도 하다
산 모양이 정자관(程子冠)처럼 생긴 것도 문경의 지명생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자관은 모자인데, 모자를 옛 우리말로는 ‘고깔’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라시대에는 ‘고사갈이성(高思曷伊城)’이라고 했다.
우리 말 ‘고깔’의 이두 식 표현이라고 보여 진다. 관현(冠縣), 관문현(冠文縣)이라고도 했는데,
이 역시 주흘산의 생긴 모습이 정자관처럼 생긴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아침에 지나온 마패봉쪽의 능선도 시원스레 보인다
신선봉 너머로 이어지는 방아다리봉과 연어봉으로 석문동(신선) 지맥 능선이 시원스레 보인다
북바위산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남겨두고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 간다
아이! 깜짝이야...손가락보다 가는 뱀 한마리가 등로에 있는 바람에 하마터면 밟을뻔 했다.
그러면서 겁도없이 째려보기에 스틱에 둘둘말아 집어 던져 버렸다
다시 갈림길(11:28)
출임금지구역선을 넘어 맥길을 이어간다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우측으로 살짝 꺽어지니 반가운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낙엽이 수북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안부(11:34)
바위 사이에 박혀있는 소나무를 지난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가니...
암릉을 우측으로 우회면서 걷는다
맞은편 석문동(신선)지맥 능선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약간의 오르막으로 올라가니...
714.0m봉이 나온다...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714.0m봉(11:45)
점심 식사(11:45~12:00)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집채만 바위도 지나간다
등로는 좁으나 비교적 뚜렸한 편이다
안부(12:05)
반갑습니다
이 쉬끼 엄청나게 쌌구먼
노루발(꽃말:소녀의 기도)
사슴의 발굽과도 닮았다하여 노루발이라 불려지는 풀이며 긴 줄기 끝에 방울방울 달려있는
꽃도 운치를 더하는 상록 다년생 초본으로 높이 26cm내외이고, 잎은 1-8개가 밑부분에서
모여나기하고 원형 또는 넓은 타원형이며 길이 4-7cm, 넓이 2.5-4.5cm이고 둔두 둔저이며 흔히
엽병과 더불어 자줏빛이 돌고 표면은 엽맥부가 연한 녹색이며 가장자리에는 낮은 톱니가 약간 있고
엽병은 길이 3-8cm이다.
꽃대는 길이 10-25cm로서 능선이 있고 1-2개의 인엽이 있으며 7월에 꽃대는 길이 15-30cm로서
능선이 있으며 1-2개의 인엽이 달리고 윗부분에 2-12개의 꽃이 총상으로 달리며 꽃은 지름 12-15mm로서
백색이다. 포는 선상 피침형이고 끝이 뾰족하며 길이 5-8mm로서 꽃자루보다 길거나 같다.
꽃받침조각은 5개로서 넓은 피침형 또는 좁은 달걀모양이고 길이가 나비보다 2.5-3배 길며 꽃잎은 5개,
수술은 10개이고 암술이 길게 나와 끝이 위로 굽는다
주로 비뇨기·순환계·운동계 질환을 다스리며, 해독에 효험이 있다
은난초(꽃말:청초한 아름다움)
약간의 너덜길 같은 곳을 지난다
안부를 지나 705m봉으로 올라간다
705m봉(12:15)
넓은 등로를 지난다
오늘 구간은 참취가 대세이다...먹을만큼 조금씩 나물을 따면서 걸어간다
암릉구간을 통과하면서 올라간다
741m봉(12:22)
다시 내리막길
안부를 지나고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이름없는 봉우리를 계속해서 오르 내린다
다시 오르막
석문봉 갈림길(732m:12:43)
석문봉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0.3km 정도 벗어나 있는데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가야할 맥길이 아직 많이 남았고 점점 맥길은 거칠어지기에 본업(지맥길)에 충실하고자
석문봉 가는 길을 포기하고 꼬부랑재로 향한다
석문봉(石門峰:741m)은 충주시 수안보면과 살미면, 제천시 한수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동쪽 한수면 송계리 방면은 월악산국립공원 구역에 해당되며, 송계계곡을 둘러싼 서부
능선에는 북쪽부터 수리봉[761.3m], 석문봉, 북바위산[772.1m]이 뻗어 있다.
석문봉은 경사가 매우 가파른 편으로 동쪽 비탈면에는 고생대 석회규산염이 분포하고, 서쪽 비탈면은
대석회암통에 속하는 고운리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상에서 서쪽으로 노송이 어우러진 원한봉 바위가
내려다보이고, 동쪽으로 골미계곡 건너로 월악산 주능선을 이루는 봉우리들이 이어진다.
수안보면과 제천시 한수면을 이어주는 꼬부랑재가 바로 남쪽에 있다
잠시나마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들의 흔적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다
편안한 등로는 계속 이어진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가...아직까지 각시붓꽃이 간간히 보인다
안부(12:50)
비짜루(꽃말:온순)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키는 1m 정도이며 줄기는 둥글지만 모가 나고, 많은 가지가 나온다.
잎은 조그만 바늘처럼 생기거나 가시로 되어 있으며 5~6월에 노란색 꽃이 잎겨드랑이에 2~6송이씩
무리지어 피며, 꽃자루는 3㎜ 정도로 짧으며 열매는 둥근 꽃자루는 3㎜ 정도로 짧다.
열매는 둥근 모양의 장과로 붉게 익는다.
원산지는 한국이며 용수채(龍須菜)라고도 부르기도 하며, 포기 전체가 빗자루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며 강원도에서는 바닥을 청소하는 ‘비’를 ‘비짜루’라고 부른다
경상도에는 말풀이라 하는 흡사 식용 아스파라거스처럼 연하고 단맛이 나는 맛있는 산나물로,
비짜루의 어린순은 용수채이라 하여 나물로 먹기도 하며 민간에서는 근경을 가장, 천식, 이뇨,
진해, 진정, 양기,보로에 약으로 쓰이며 윤폐진해, 지혈, 이뇨, 호흡기를 보호하므로 기간지염에
쓰이고 지혈작용과 가벼운 이뇨작용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무명봉에 올랐다가...
넓은 등로로 내려선다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2:57)
날등 능선을 걷다가 낙엽이 수북한 곳으로 내려서니 꼬부랑재가 나온다
꼬부랑재(13:00)
충주시 수안보면 고운리에서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정상에는
낙엽이 수북하고 꼬부랑재 표지판과 중앙경찰학교 산악훈련 안내판이 있다.
예전에 민초들이 다녔던 애환이 서린 고개였으나 지금은 충주호 감싸고 있는
36번 국도가 생기면서 잊혀진 고개로 지맥 산꾼이나 간간이 지나가는 곳이다
꼬부랑재에 있는 중앙경찰학교 산악훈련안내도
꼬부랑재를 지나 암릉 구간을 올라간다
가파른 능선을 올라서니 망대봉 정상에 도착한다
망대봉(望臺峰730.6m:13:14)
충주시 수안보면과 살미면, 제천시 한수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4등 삼각점과
백두사랑산악회에서 걸어논 산패,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걸려 있으나 조망은 전혀
없고 직진의 뚜렸한 내리막길은 비지재로 내려가는 등로가 보인다
망대봉이란 뜻은 조망대 구실을 하는 산이라는 뜻인데 이곳은 전혀 아니올씨다
이 지역 주민들은 까치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망대봉을 지나면서 좌측은 수안보면이고 우측은 제천시 한수면에서 충주시 살미면으로
바뀌면서 좌.우가 온전히 충주땅으로 들어선다
인증샷
망대봉 정상 삼각점(△덕산443 / 2003 복구)
이곳에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정상에서 뚜렸한 직진길로 내려서면 비지재로 내려가는 길인데 대형 알바를 할 소지가 있다
지맥길은 정상 산패가 붙어있는 뒷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정상 표지판 뒷쪽으로 내려가니 선답자들의 흔적은 보이나 등로는 전혀 안보인다
아주 고약한 급경사로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막 등로를 200여m 정도 내려오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무명봉의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내려간다
뚜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무명봉(13:28)
암릉구간이라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내려가는데 푹신한 낙엽이 물을 먹어 엄청나게 미끄럽다
조심...또 조심
사면길로 이어지는 계속되는 내리막길
이제 급경사 내리막길은 다 내려왔다
안부(13:38)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3:49)
또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는 희미하고...
소나무와 잡목사이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뫳돼지 목욕탕이 있는 시어골재로 내려선다
시어골재(14:00)
충주시 수안보면 고운리 시어골 마을에서 살미면 공이리 한여골 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고개 안부에는 뫳돼지 목욕탕이 있고 등로는 희미한데 전호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519m봉(14:19)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14:20)
이곳에도 전호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전호꽃(꽃말:고백)
남쪽의 섬들과 깊은 산, 산기슭, 구릉지대, 들판, 강기슭등 습한 곳에 군락을 이루어 자생하며
일본과 중국, 사할린,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동부 유럽에도 분포하는 근생엽과 밑부분의 잎은
엽병이 길고 삼각형이며 2-3회 3출하며 열편은 달걀모양으로 다시 우상 중렬하고 길이 20-50cm로서
중렬편은 긴타원모양으로 예두 또는 예첨두이며 톱니가 있고 뒷면 맥위에 퍼진 털이 있다. 줄기잎은
어긋나기하며 근생엽과 비슷하지만 점점 작아져서 엽초만으로 된다
꽃은 백색이고 5~6월에 피며 겹우산모양꽃차례로 가장자리의 것이 가장 크고 소산화서는
5-12개이며 털이 없고 길이 3-4cm로서 끝에 10여개의 꽃이 달리며 총포가 없다.
소총포는 5-12개이고 길이 3-8mm로서 뒤로 젖혀지며 가장자리에 털이 있고 꽃자루 윗부분에
짧은 털이 있고 꽃부리는 소형이고 꽃잎은 5개이며 거꿀달걀모양이고 바깥 것 1개가 특히 크며
수술은 5개이고 짧으며 암술대가 2개로 갈라져서 밖으로 굽는다
높이가 1m에 달하고 곧게 자라며 녹색으로 듬성듬성하게 가지를 치며 뿌리는 굵고, 전호(前胡)라 한다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 우측으로 꺽어진다
철쭉나무를 헤치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518.2m봉(14:23)
직진으로 가다가 좌측으로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반가운 산으로님의 흔적을 만난다
홀아비꽃대 군락지를 지나는데 아직 꽃이 피지도 않았다
묵묘를 지나니...
전주이공&배 광주이씨 묘(14:31)
묘지가 있는 안부에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가는데 체력 저하현상이 나오면서 힘이 부치기 시작한다
무명봉(14:37)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둥굴레가 뒤덮인 묘지가 나온다
전봇대가 있는 곳을 지나 내려서니 갑둥이재가 나온다
갑둥이재(419m:14:43)
충주시 수안보면 고운리와 살미면 공이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명칭의 유래가 분명하지 않지만
「갑돌이와 갑순이」 노랫말에서 나오는 갑돌이 총각이 연상되는 고개로 일명 갑둥이고개,
갑동재, 갑티재 또는 갑돌이재, 갑돌리재 등으로도 부르고 있으며, 북쪽에는 대미산[688m],
남서쪽에는 적보산(689m, 일명 첩푸산), 남쪽에는 망대봉[519m] 등이 있다
대미산과 적보산 간의 심산계곡을 흐르는 고운천이 북서류 하여 중산천으로 유입되고 있다.
갑둥이재 서쪽의 대미산과 동쪽의 500고지가 이어지는 능선의 서쪽 심산유곡에서는 상공이곡에서
발원하는 개울이 동북류하여 공이리를 거쳐 한수면 상노리 부근에서 숫갈천으로 유입되어
충주호로 흘러들며, 동쪽의 공이리의 고니골(일명 공이곡)마을에는 공잇굴(일명 공이굴)이라는
소규모의 석회동굴이 있다
갑동이재를 가로질러 올라선다
이른 아침에 시작하여 산행을 한 지가 8시간이 지나다보니 체력적 한계에 부딪힌다
배도 고프고 졸리기도 하고 하여 빵과 쥬스 하나로 허기를 면하고 베낭을 베개삼아
10분 이상을 자고나니 훨씬 몸이 개운한 느낌이다
급경사의 오르막은 시작되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묵묘가 나오고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아직까지 등로는 좋다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뱀을 자주 만난다
고사목이 있는 능선 아래로 내려서니...
우측에서 올라오는 묵은 넓은 임도를 만난다
유인평택임씨 묘(15:10)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이곳부터는 2016년 4월에 농가에서 난 불로 인해
나무 대신 잡목이 무성한 지역으로 고난의 산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급경사의 오르막...체력은 점점 다운되기 시작한다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자꾸만 산행속도는 떨어지기 시작하고...
산불피해를 입고 쓰러진 고사목을 피해서 맥길을 이어간다
날씨는 덥고 정상은 가도가도 보이지 않는다
등로에서 뒤돌아 본 충주시 수안보면 고운리
고운리(古云里)는 마을에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중산리 상촌에 속하는 마을인 법수와 경계를 이루는
마을 뒷산 중턱에 고운사(古云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며, 그 부근에는 지금도 옛날 기와 조각이 많이
나오고 있어 이 마을을 고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본래 연풍군(延豊郡) 수회면(水回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고른과 사여골을
합하여 고운리라 하여 괴산군 상모면에 편입되었고, 1963년 중원군에 편입되었다.
마을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연풍읍지(延豊邑誌)』 방리(方里) 수회면조에
‘현북거오십리고운리(縣北距五十里古云里)’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720년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산불이 난 지역에는 기존 樹木 대신에 잡목이 무성하여 걷는데 참으로 힘이든다
뒤돌아 보니 우측 멀리 주흘산과 부봉이 보이고 좌측으로 지난주 백두대간 하늘재에서
차갓재까지 걸으면서 올랐던 포암산, 그 좌측으로는 만수봉이 아련히 보인다
우측의 맨 끄트머리로는 속리산군이 아련히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적보산( 積寶山:699m)의 모습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 온천리, 고운리, 중산리에 걸쳐 있는예전에 이 산 자락에 금광(金鑛)이
있었기 때문에 적보산(積寶山)이라 불렀다고 하며 일명 직포산, 적포산(積抱山), 첩보산, 첩푸산,
구봉산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산 중턱에 약 100m 간격으로 아홉 개의 소봉이 등고선을 따라
솟아 있어 구봉산(九峰山)이라고도 하는데 구봉 아래에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활만인지지(活萬人之地)의 명당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까지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마당바위가 바로 갈마음수형의 말의 목 또는 머리에 해당된다고 한다.
구봉 아래의 무두리(일명 수회, 원수회 또는 무돌이)마을은 적보산의 가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이 늘 평온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여 적보산에 대한 자부심과 의존심이 크다.
힘이들어 하늘을 쳐다보니 오랫만에 맑은 하늘...참으로 곱다
오르막길에 등로는 보이지 않고 체력은 저하되고 힘은 배로드는 느낌이다
등로에서 바라본 충주시 수안보면의 모습
충주시의 남동단에 위치한 수안보면은 고구려식의 상모(上芼)라는 지역 명을 쓰다가 2005년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진 수안보라는 명칭으로 개편하였으며 수안보온천으로 유명한 고장이며, 월악산국립공원과
사조스키장, 충주호와 중원 문화를 살필 수 있는 문화재 등이 주변에 산재한 천혜의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으로 지형적으로 소백산맥의 험준한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이다.
수안보(水安堡)라는 지명은 ‘보(洑) 안쪽의 물탕거리’라는 순수한 우리말이 한자로 변천된 것으로
18세기 초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최초로 지명이 거론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온천 지역은 모두 행정 지명을 붙여 온천명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수안보 지역의 온천은
2005년 이전 행정 명칭인 상모보다는 수안보로 불렸다.
『세종실록(世宗實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에 안부(安富), 안보온정(安保溫井),
연풍온천(延豊溫泉)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교통의 중심지였던 안부역의 규모가
더 컸기 때문에 또는 연풍현에 속하였기 때문에 영향을 받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온천 이용객이 증가하면서 온천리의 규모가 커지자 온천리를 물안보[水安保], 안부역 지역을
큰안보[大安保]라 구분하였던 것이고,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계립령의 경비 명목으로 석문동에
다수의 일본군 헌병대가 주둔하면서 군사적 보루의 의미로 변화되어 수안보가 된 것으로 보인다.
산불피해지역이라 등로는 보이지 않고 올라야 할 667.4m봉은 멀기만 하다
등로 우측에 있는 월악산 정상인 영봉을 당겨본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긴 해도 여인이 누워있는 요염한 모습처럼 보인다
지나온 망대봉을 뒤돌아 본다
천신만고끝에 667.5m봉 정상에 올라선다
667.5m봉 삼각점(△덕산25 / 2003복구)
667.5m봉(16:00)
칼날 능선을 따라서 대미산으로 향한다
능선 끄트머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낙엽이 무릎까지 차오른다
안부(590m:16:10)
다시 칼날 능선을 따라서 충주 대미산으로 향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충주시 수안보면 중산리(中山里)의 모습
중산은 남쪽으로 적보산, 동쪽으로 대미산, 북쪽으로 대미산 줄기가 뻗어내려 살미면과 경계를 이루는
사이에 형성된 마을로 산 가운데 마을을 뜻하며 상촌(上村)은 마을 들어오는 입구에 새로운 동네가
생기자 윗동네란 의미로 쓰였고 신대(新垈)는 새로이 형성된 마을이라는 의미이며, 상촌에 속한
마을인 법수(法守)는 글자을 풀어 보면 ‘氵+去+守’로 ‘물이 흘러가는 것을 막는다.’라는 뜻으로
풀이되는데 저수지가 만들어진다는 예언이 들어맞은 것이라고 한다
칼날 능선 등로에서 바라본 중산저수지의 모습
넓은 등로를 따라서 간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칼날 능선을 조심스럽게 올라가니 대미산이 나온다
대미산(大眉山:680.8m:16:28)
충주시 수안보면 중산리와 살미면 신당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지난주에 걸었던 백두대간상에 있는 대미산의 유명세 탓인지 이곳에
있는 대미산에 대한 자료를 찾을 길이 없어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충주 대미산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대미산 내리막길에는 선답자들의 흔적이 많이 보인다
내리막길로 내려와 마지막 솔고개로 내려가는데 등로는 ⊃ 형태로 내려간다
암릉구간을 지나는데...
이런 형태의 돌들이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 좌측 아래는 아찔할 정도의 절개지이다
계속되는 암릉구간 능선을 걸어간다
대미산에서 두루봉을 거쳐 악어봉을 지나 충주호로 입수하는 능선이 보인다
보이는 저 능선이 악어봉인데 마치 산줄기가 악어 이빨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안부(16:42)
사면 등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가 본다
무명봉에서 바라본 월악산 영봉의 모습
무명봉(16:44)
무명봉에서 다시 사면길로 되돌아 내려간다
사면길 등로로 내려와서 솔고개로 향한다
안부(16:49)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대각선쪽 나뭇가지 사이로 정말 힘들었던 667.5봉 얼굴을 내밀고 있다
552.5m봉(16:53)
정상에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조금전에 지나온 대미산도 한번 뒤돌아 본다
충주댐이 보이고 그 너머로 지난해 지난해 진권아우와 끝냈던 등곡지맥 끄트머리가 살짝 보인다
노루발 군락지
512m봉(17:03)
까칠한 급경사로 내려오니 이내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편안한 등로가 나온다
428m봉(17:13)
앙증맞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고 맥길은 우측으로 90도로 꺽어지는데
등로 좌측 아랫쪽에는 몽선암이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다
우측으로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인다
임도(17:15)
넓은 공터에 통나무 의자가 있고 충주시 살미면 내사리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보인다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지레 겁부터 난다
우측으로는 살미면 내사리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보인다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421m봉으로 올라가는데 먹은게 없어 체력이 완전히 바닥이 났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올라서니...
편안한 등로가 나온다
편안 등로를 내려서니 삼각점이 있는 421m봉이 나오는데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421m봉 삼각점(△덕산445/2003재설)
421m봉(17:25)
421m봉 정상에서 바라본 월악산 정상 영봉의 모습
산과 여인은 자고로 멀리서 봐야 이쁘게 보이는구나
421m봉에서는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조그만 방심하면 대형 알바하기 딱 좋은 곳이다
삼각점이 있는 정상에서 직진을 하면 등로는 아주좋다
그러나 맥길은 정상에서 5m 뒷쪽으로 후퇴하여 좌측으로 내려가야 한다
421m봉 정상에서 되돌아 나오니...
좌측 내리막길 쪽에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잡목에다 산초나무가 엄청나게 태클을 걸어댄다
길도 없는 곳에 그래도 가는 산꾼이 있는 모양이다
급경사의 내리막길...길은 없고 땅은 젖어있고 2번이나 꼬꾸라지면서 좌측의 사면으로 치고 나간다
잣나무 숲이 나오고 우측의 급경사로 내려간다
잣나무숲을 지나 낙엽길을 내려가니...
평지가 나오고...
등로 좌측으로는 복숭아밭이 보인다
평지길로 내려선다
묘지(17:50)
안부를 지나니...
뫳돼지 체력단련장이 보인다
평지이긴 하지만 이곳도 그리만만한 곳은 아니다
안부(17:56)
다시 오르막길
능선에 올라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잡목의 저항을 받으며 숲을 빠져 나오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간다
갑자기 넓은 밭이 나온다
녹슨 포크레인도 보이고...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내려간다
폐냉장고와 우물이 보이는 곳을 내려서니 오늘의 날머리인 솔고개가 보인다
솔고개(18:10)
충주시 살미면 용천리 윗가르내 마을에서 내사리 넘어가는 고개로 충주에서
수안보로 이어지는 3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수안보 휴게소에서 갈라지는 36번 도로
제천시 수산면으로 이어지는 36번 국도상에 있는 고개인데 근처에는 충주호가
있으며 이 지역 사람들은 솔고개라기 보다는 용천고개라고 부린다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는데 예전에 소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불렀나?
오늘 산행은 참으로 힘이 들었다...난이도도 상당히 높았고 마지막에 산불지역과
길이 없는 잡목지대를 헤쳐 나오면서 개고생하는 바람에 11시간 30분이란 시간이 소요됐다
그래도 해냈다는 희열감에 밀려오는 이 짜릿함...산꾼이 아니면 모르제
솔고개에서 베낭을 정리하고 히치를 생각했는데 이곳은 2차선 도로이지만 교통량이
상당히 많아 앵벌이(히치)는 꿈도 못 꾸겠다...하는 수 없이 용천 버스정류장 쪽으로 간다
용천 버스정류장(18:20)
버스정류장에는 시간표가 있지만 알아 먹을수가 없다
용천 버스정류장 시간표
버스정류장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스타렉스 승합차 한대가 신호등을 무시하고
불법으로 유턴하여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아줌마를 태우고 수안보로
가려고 하기에 수안보까지 태워 달라고 사정을 하니 타라고 한다
일단 수안보만 가면 택시비가 상당히 절약이 된다
수안보에서 내려 고맙다는 인사를 건내고 택시를 타고 愛馬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사문리 탐방지원센터(19:00)
택시에서 내려니 다들 퇴근하고 내 愛馬만 쥔장을 기다리고 있다
화장실에 가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귀경 준비를 한다
충주시 외곽도로에 있는 국밥집에서 국밥 한그릇 말아먹고 고속도로를 타려고
하니 길이 막힌다고 하여 3번 국도를 타고 장호원을 지나 이천 들어서기 직전에
새로 생긴 3번 우회도로를 타고 광주, 성남시청을 거쳐 집에오니 저녁 9시 반이다
고속도로같은 국도를 타는 바람에 시간도 절약하고 톨비도 안들고 두마리 토끼를 잡은 느낌이다
'달천(계명)지맥(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천(계명)지맥 제3구간 - 마즈막재에서 달천/남한강 합수점까지 (0) | 2022.01.30 |
---|---|
달천(계명)지맥 제2구간 - 솔고개에서 마즈막재까지 (0) | 2021.09.06 |
달천(계명)지맥 (鷄鳴枝脈)개념도와 지도, 고도표 (0) | 2020.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