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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달천(계명)지맥(終)

달천(계명)지맥 제2구간 - 솔고개에서 마즈막재까지

by 범여(梵如) 2021. 9. 6.

☞ 산행일시: 2021년 09월 04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13.8km / 7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솔고개-무명봉-경주이씨 가족묘-여주이씨 가족묘-220m봉-진말(점말?)고개

                 223m봉-안부-남원양공 묘-261.5m봉-안부-252m봉-갈림길-255.7m봉-274m봉

                 이동통신탑-무명봉-갈림길-신매고개-전주이공 묘-282.8m봉-339.7m봉

                 369.3m봉-안부-378.4m봉-안부-387m봉-안부-무명봉-무명봉-415.7m봉

                 발치봉 갈림길-발치-434m봉-폐묘터-465.3m봉-유인김해김씨 묘

                 밀양박공 묘-460.2m봉-재오개재-448.3m봉-429m봉-성재-604.8m봉

                 613.3m봉-남문터-헬기장-쉼터-남산-서문터-북문터-임도-쉼터-484.3m봉

                 임도-너럭바위-임도-409.3m봉-안부-마즈막재

☞ 소 재 지: 충북 충주시 살미면, 직동, 목벌동, 안림동

 

지난주 일요일(5일)에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하여 일기예보를 검색하는데 유독

안동지역만 비가 오지 않는다는 예보에 송야(용암)지맥 마무리하러 갔다가 구라청의

사기로 인해 산행도 하지 못하고 서울로 되돌아오는 바람에 산행을 하지 못했더니만

1주일내내 생체리듬이 깨져버려 엄청나게 힘이 들었다

 

다행히 이번주는 주말에 비가오지 않는다고 한다.

어디를 갈까하고 생각중인데 독립군(나홀로 산행) 이전에 예전에 간간히 따라다녔던

산악회에서 충주에 있는 악어봉과 대미산을 간다는 산행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이 산악회를 따라서 지난해 5월에 첫구간을 끝내고 미뤄났던 달천(계명)지맥

2구간을 하면 되겠구나 하고 산행 신청을 한다.

 

토요일 아침 잠실역에서 버스를 타려고 나갔는데 아시는 분들이 간간히 보인다.

버스를 타자마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나에게는 영 어색하다

여기저기 많은 대화를 해되는데 엊그제께 코로나 2차 예방주사를 맞았지만 영 찜찜하다.

대장님께서 마이크로 대화금지.음식물 섭취금지라고 하셨건만 잘 안통하는 느낌이다

고속버스타고 갈껄...괜히왔나 싶은 후회도 들지만 이미 엎지르진 물...그냥 가는 수 밖에...

 

버스는 영동고속도로를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접어드는데 교통사고가 났는지

고속도로는 주차장이다...한참을 버벅거린 뒤에야 충주휴게소에 도착한다

다른 차를 타고오신 총무님께서 엄청 반겨주는데 고맙기만 하다.

그러면서 아침 대용으로 주는 떡과 음료수를 주시면서 점심때 먹을 떡과 생수를

하나 더 주시는데...감사...감사...이것믿고 오늘 점심도 준비해 오지 않았는데...ㅋㅋㅋ

잠시후 버스는 출발하고 괴산I.C를 빠져나와 솔고개에 도착하니 10시이다.

 

오랫만에 만났는데 환대해주신 대장님, 총무님, 그리고 지난해까지 맥길을 같이 걸었던

산마루님 반가웠습니다...늘 健安하셔요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솔고개(10:00)

충주시 살미면 용천리 윗가르내 마을에서 내사리 넘어가는 고개로 충주에서

수안보로 이어지는 3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수안보 휴게소에서 갈라지는 36번 도로 바꿔

제천시 수산면으로 이어지는 36번 국도상에 있는 고개인데 근처에는 충주호가 있으며

고개 좌측의 용천리 지명을 따서 이 지역 사람들은 솔고개보다는 용천고개로 알려져 있다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는데 예전에 소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불렀나?

산악회의 환송을 받으면서 중간에 내려 산행을 준비하는데 서울에서 고속버스 첫 차를

타고오면 이곳에서 아침 8시 30분이면 산행을 시작할 수 있는데 예상보다 1시간 30분이

걸렸지만 버스를 몇번 갈아타지 않은 것을 위안을 삼으면서 산행을 준비한다

산행을 시작하다(10:10)

원래는 솔고개 너머 내사리쪽으로 가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 가려고 했는데 잡풀과

잡목의 저항이 어찌나 심한지 도저히 틈이 보이지 않는다...하는 수 없이 용천리쪽으로 내려와

우측의 민가쪽으로 올라간다

민가쪽으로 오르니 개쉬키 2마리가 독립군을 보고 지랄발광을 한다

사과 수확을 준비하고 있는 쥔장이 있어 사정을 이야기하고 사과밭을 통과한다

사과밭을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사과밭 윗쪽에서 뒤돌아 본 충주시 살미면 용천리 윗가리내 마을의 모습

살미면에 있는 용천리(龍川里)는 언덕에 자리잡은 농촌마을로 한두골 소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가리내, 방아목이, 용당골, 웃가리내가 있으며, 가리내는 용천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개울이 두 갈래로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용당골은 마을 뒷산 모양이 용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웃가리내는 가리내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화재로는 최함월고가가 있다. 특산물로는 대학찰옥수수, 고추, 사과, 담배 등이 있다.

무명봉(10:14)

한참을 돌아서 마루금에 복귀를 한다

북동쪽으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초반부터 개고생을 한다

힘들게 잡목지대를 빠져 나오니 민가가 보인다

민가는 사람이 살지 않는지 폐가로 흉물처럼 변해 버렸다.

L.P.G개스통 옆으로 빠져 나간다

전원주택 사이의 도로로 내려간다

도로를 빠져나와 맞은편의 능선으로 올라가야 한다

절개지 윗쪽으로 올라간다

내가 타고온 산악회 일행들이 간다는 대미산에서 악어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모습

능선에 올라서서 좌측으로 향한다

갑자기 등로는 사라지고...

도저히 뚫고나갈 틈이 안 보인다...이곳에서 한참을 버벅거린다

잡풀지대에서 바라본 살미면 내사리(乃沙里)의 모습

대미산 아래 자리잡은 농촌마을로 두루봉저수지가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동막골, 보사골,

절터골, 진말이 있는데 절터골은 마을이 옛날에 절터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진말은 내사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땅이 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월악산으로 이어지는 36번 국도가 보이고 두루봉, 악어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절개지에서 밭으로 내려서는데 토종 벌통들이 보이나 벌은 없다.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맥길을 이어간다

충주호가 살짝 보이고 월악산 능선들이 충주호(忠州湖)로 뻗어있다.

충주호는 면적 67.5㎢, 높이 97.5m, 길이 464m, 저수량 27억 5000t으로, 1985년 충주시 종민동· 동량면

사이의 계곡을 막아서 만든 충주댐으로 인해 조성되었으며, 육지 속의 바다로 불릴 만큼 소양호(29억t)

다음으로 담수량이 큰 호수이다. 주변 경관이 뛰어나고, 풍부한 수량과 넓은 수면, 심한 굴곡과 경사도로

인해 붕어·잉어·향어·백연·떡붕어 송어· 등의 어종이 풍부해 사철 낚시꾼으로 붐빈다.

주변에 월악산국립공원·청풍문화재단지·단양팔경·고수동굴·구인사· 수안보온천·노동동굴·충주호리조트 등

관광명소가 많으며 충주댐나루터에서 신단양(장회)나루까지 52㎞에 걸쳐 쾌속 관광선과 유람선이

운항하여 단양팔경을 돌아볼 수 있다. 충주호리조트에는 각종 놀이기구와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충주시내에서 선착장까지 시내버스가 운행된다.

밭 가장자리를 지나간다

간식거리로 먹으려고 떨어진 사과를 몇개를 줏는다

사과밭을 지나고...

두릅나무 숲을 헤치면 나가니 묘지가 나온다

경주이씨 묘(10:30)

이곳은 지금 한창 벌초중...

여주이씨 가족묘(10:32)

묘지에서 바라본 적보산( 山:699m)의 모습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 온천리, 고운리, 중산리에 걸쳐 있는예전에 이 산 자락에 금광()이

있었기 때문에 적보산()이라 불렀다고 하며 일명 직포산, 적포산(), 첩보산, 첩푸산,

구봉산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산 중턱에 약 100m 간격으로 아홉 개의 소봉이 등고선을 따라

솟아 있어 구봉산()이라고도 하는데 구봉 아래에는 갈마음수형()의

활만인지지()의 명당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까지 찾지 못했다고 한다.

여주이씨 묘지를 지나니 잡풀이 길을 막는다

잡풀도 모잘라 철조망까지 처져 있다.

철제 울타리를 넘어서 숲속으로 들어간다

220m봉(10:34)

고사목까지 태클을 걸어댄다

잠시후에 편안한 등로가 나온다

진말(점말?)고개(10:38)

충주시 살미면 내사리에서 용천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진말 윗쪽에 있는 고개라 붙혀진 지명으로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살미면 설운리 점말고개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지도상의 점말마을은

여기서 멀어도 한참 멀고, 우측 아랫쪽은 내사리 진말마을이 있는데 아마도 진말마을을 점말마을로

착각한 듯 싶다(범여의 생각中에서)...진말은 내사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땅이 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등로는 거칠어 진다

오늘 산행중에 처음으로 선답자들의 흔적을 발견한다

아침에 산악회 대장이 내 베낭에 묶고 다니라면서 시그널을 한 장 줬는데

독립군 뭔 표식이 필요한가...이곳에다 이 산악회의 흔적을 남긴다

갑자기 등로는 사라지고...

거미줄이 심한 태클을 걸어댄다

근데 푸드덕하는 소리에 놀라 앞을보니 뫳돼지 한마리가 베낭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소리에 놀라 도망을 간다...나도 머리끝이 쭈빗하게 선다

잡목의 저항이 너무심해 앞을 헤쳐 나갈수가 없다

일보전진을 위한 이보후퇴

우측의 벌목지로 빠져 나간다

벌목지 급경사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절개지 오름길에서 만난 고추나물꽃

물레나물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아시아가 원산지이고, 들판에 서식하며 열매의 모양이 고추와

같다고 해서 ‘고추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추측되며 크기는 20~60cm 정도이다.

은 한여름에서 늦여름 사이에 노란색으로 피며, 꽃말은 ‘친절’, ‘쾌유’이다. 어린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다

223m봉(10:45)

세속에서 벗어나 산속으로 들어서면 늘 맘이 편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저 세속에서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벌이는 인간들이 왠지 측은지심(惻隱之心) 드는지...

나는 TV를 안 본지가 오래되어 세상이 어케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다.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남을 짓밟고 내가 사는 추한 모습은 보이기 싫다

평생 좋은 일만 하고 살아도 모자랄 시간인데...왜 인간들은 남을 미워하면서 살까  

맥길 옆에는 자두밭이 보인다

떨어진 자두와 수박 몇통이 보인다

자두밭 철조망과 작별을 하고 직진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는 좋다

뭣에 쓰는 물건인고?

음악소리에 취해 무심코 걸어가는 커다란 뱀 한마리가 미동도 않은채 등로 가운데 있다.

그래 내가 피해서 가마...

흰털깔때기 버섯

여름부터 가을까지 주로 활엽수 숲 아래에 낙엽이 많은 곳에서 균환(菌環)을 이루며

다량으로 군락을 이루어 발생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균환은 들이나 목장, 숲속에서

버섯이 둥굴게 줄지어 바퀴모양으로 돋아나는 현상이다

무리우산버섯

봄~가을에 활엽수의 고사목 그루터기에서 다발로 자생하며 조직은 중앙부를 제외하고는

앏으며 상당히 부드럽고 엷은 황색을 띠고 있다

맥길은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초반에 개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등로는 비교적 걸을만 하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

안부(10:58)

안부에서 아직 벌초를 안한 묘지 위로 올라간다

남원양공 묘(11:00)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니 좌측의 용천리에서 올라오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뚜렸한 능선에서 좌측으로 살짝 떨어져 있는 261.5m봉으로 향한다

261.5m봉(11:04)

독도님과 함께 내불알 친구(행운목) 흔적도 보이는구나.

반갑다 친구야! ...다리를 빨리 고쳐서 남은 지맥길 걸어야제

3년후쯤에 계획하고 있는 내 지맥 졸업식에 같이 걸어줄꺼지

261.5m봉에서 되돌아 나와서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무명봉을 끼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땡땡이 벌초꾼?

등로 좌측 아래에서 서너명이 열심히 벌초를 하는데 이 분은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졌다.

벌초를 왔으면 벌초를 해야지...뭔 짓거리여...그러면서 이곳을 왜다니냐 뭔 산에가냐

꼬치꼬치 캐묻는다...갈켜줘도 모를텐데...대꾸도 않은채 맥길을 걸어간다

안부(11:10)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서 우측으로 간다

252m봉(11:13)

정상에는 묘지가 있고 ‘밑에 길로 가세요’라는 팻말이 있다

갈림길(11:14)

뚜렸한 직진 등로을 버리고 희미한 좌측길로 꺽어진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서...

완만한 오르막길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등로 주위에는 개복숭아들이 간간히 보인다

살색 깔때기버섯

버섯갓은 어릴 때에는 만두 모양이나다가 점차 편평하게 펴지고 가운데가 오므라들며 직경은 5㎝이다.

변두리는 물결 모양을 이루며 부채살 모양의 줄이 있거나 없고, 겉면의 색은 물기가 있을 때에는

붉은 밤색(또는 분홍색)을 띠나 마르면 노란 밤색으로 되며 완전히 마르면 더 연한색으로 된다.

 

겉면에는 비단실 모양의 섬유 또는 가는 비늘이 덮여 있다. 살은 얇고 버섯갓과 같은 색을 띤다.

버섯 주름은 성기고 좀 넓고 두꺼우며 대에 올린 주름으로 붙으며 처음에는 살색이다가 후에

흰 가루 모양이고, 버섯대는 길이 3~5㎝, 직경 0.2~0.3㎝이고 한쪽으로 탈린다. 색은 갓과 거의 같고

아래쪽에는 흰색의 짧은 보드라운 털이 덮여있다.

 

질은 섬유질이고 질기며 속은 빈다. 포자는 둥글고 직경 7~10㎛이며 겉면에는 가시 모양의

도드라기가 있고 포자무늬는 흰색이다. 버섯 전체의 살이 적은 여윈 버섯이다.

여름부터 가을기간에 나무숲, 풀판에 무리로 나거나 한 개씩 널려난다.

255.7m봉(11:20)

인증샷

판독이 불가능한 255.7m봉 정상 삼각점

정상에서 직진을 하니 좌측으로 약초재배지가 나온다

검은 차양막이 처져있는 약초재배지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274m봉(11:25)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고...

우측에 있는 약초재배지가 나오고...

등로 가운데 차돌바위들이 있고 좌.우의 약초재배지 사이로 걸어간다

좌측으로 이동통신탑이 보인다

이동통신탑(11:34)

계속되는 약초재배지 차양막

약초재배지와 작별을 한다

능선으로 올라선 다음에...

무명봉(11:37)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많아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

잠시후에 우측에서 내려오는 뚜렸한 임도를 만난다.

갈림길(11:40)

좌측으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버리고 직진으로 내려간다

등로 좌측으로는 잣나무 조림지가 보인다

능선을 따라서 걸어간다

무명봉이 나오고...

등로는 엄청 지저분하다...길은 안보이고...

좌측으로 내려가니...

2차선 도로가 나오는데 지도상의 신매고개이다

신매고개(新梅峴:198m:11:45)

충주시 살미면 설운리와 신매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충주시내에서 충주호로

연결되는 2차선 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지명의 유래는 신매리에서 가져온 듯 하다

 

신매리(新梅里)는 충주호와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농촌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매내미, 뭉골,

선돌배기가 있는데 매내미는 신매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옛날에 매화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뭉골은 마을에 진씨들이 많이 살아서 묵은골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뭉골이라 불린다.

선돌배기는 마을에 선돌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등장하는 신매고개 표시석은 보이지 않는다.

신매리쪽으로 한참을 내려가도 보이지 않기에 다시 설운리쪽으로 되돌아 간다

조금전에 내려왔던 길로 되돌아 와서... 설운리쪽 도로로 향한다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빡센 오르막길

지난번 6월에 코로나 1차 예방주사를 맞았을 때는 한참을 고생했다.

1주일전에 2차 주사를 맞고나서 고생을 할 줄 알았는데 한 이틀 고생하고

나서는 별 특이 증상은 없다...착한 후배한테서 톡이 온다.

선배님!...무리하지 마시고 힘드시면 쉬셔요 한다.

정 가시려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으면서 평소보다 물을 자주 먹으라고 한다

느린 것이야...처음부터 늦으니까 걱정할 것 없고...후배의 말에 충실하고자

물을 아주 많이 먹는다

전주이공 묘를 지나서 마루금으로 올라간다

신매고개의 절개지로 인해서 한참을 돌아서 마루금에 도착한다

등로 가운데 묘지가 있다

전주이공 묘(12:05)

묘지를 지나서 희미한 능선을 따라서 올라간다

진갈색 주름버섯

균모는 지름 7-20㎝로 호빵형을 거쳐 편평하게 되며 표면은 자갈색의 섬유로 덮여 있다가

인편이 생기고, 담홍백색의 섬유로 덮여 있다가 인편이 생기고, 담홍백색의 바탕이 나타나며

중앙부는 암갈색이다.

살은 백색에서 자갈색으로 되고, 주름살은 홍색에서 흑갈색으로 되며 떨어진 주름살이다.

자루는 높이 9-20㎝로 하부는 굵고 백색이니 상부는 담홍색인데, 하부에는 솜털 인편이 있다.

고리는 중-상부에 붙으며 백색이고, 하면에는 솜털 인편이 있다.

포자는 암갈색의 타원형이며 5.5-6.5×3-3.5㎛이다.

잔나비 걸상인인것 같은데...幼生이라 아리까리 하다

버섯의 크기는 폭이 50㎝가 넘는 것도 있으며 다년생의 구멍장이버섯이다.

균모는 반원형 또는 낮은 산 모양이며 높이 30-40㎝로 말굽이나 종 모양으로 된다.

표면은 각피로 덮이고 회백색 또는 회갈색이며 표면에 코코아 가루 같은 포자가 싸여

코코아색을 나타내며 살은 초콜렛 색이고 두께는 1-5㎝이며 모피 같은 코르크질이다.

균모의 아랫면은 황백색 또는 백색인데 만지면 암갈색으로 된다. 관공은 다층이며

각층은 두께 0.5-2㎝이다. 포자의 크기는 8-9×5-6㎛이고 불로초형이다.

발생은 1년 내내 활엽수의 고목 또는 산나무에 군생하는 목재부후균으로 백색부후를 일으킨다

282.8m봉(12:12)

우측으로 내려가는데 반가운 산으로님의 시그널을 만난다.

오늘은 어디가서 헤매실꼬?

우측으로 벌목지가 나타나면서 월악산이 시원스레 보인다

당겨본 월악산 영봉(靈峯)의 모습

요염한 여인이 누워서 뭇 남성들의 애간장을 다 녹이는 듯 하다

 

월악영봉은 월악산의 주봉으로 웅혼하고 장대한 기암괴석의 신령스러운 석봉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월악산 영봉으로도 불리며, 영봉이란 말을 쓰는 산은 백두산과 월악산이 유일한데,

고려 시대에 몽고군이 침입했다가 덕주골 입구 수경대의 월악신사에서 천우신조로 물러나게

되었다는 일화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추측된다.

또한 조선 시대에는 월악산의 최고봉을 국사봉과 서왕대(西王臺)로 칭했다.

이외에도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에서 연원한 ‘관음봉(觀音峰)’, 석봉의 형상이 왕관을 쓴 것

같다 하여 ‘왕관봉’, 맨 꼭대기에 위치하기 때문에 ‘상봉(上峰)’이라 부르기도 한다.

월악산의 모습

월악산(月岳山)의 월(月)은 신라시대에 ‘산’을 달(達)이라 한 것에서 기원한 것이며, 악(岳)이라는 글자

또한 ‘산’이니, 결국 월악산은 산산산(山山山)이라는 뜻이며, 신라는 월형산(月兄山)이라 하여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월악산이란 명칭의 유래는 고려를 건국하고 도읍을 정하려 할 때 개성의 송악산과 중원의 월형산이

다투다 개성으로 도읍이 확정되는 바람에 꿈이 무너져 와락산이 되었고 후에 와락이 월악으로

바뀌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세월아 내 뒤를 따라오렴

먼길을 돌아와 얼마쯤일까.

산 모퉁이 자갈길에 다리가 무거워서

가던 길을 쉬어갈까 두리번거리지만

내 쉴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아

바위 위에 걸터 앉아 노을진 석양을 바라보며

가쁜 숨을 몰아 쉬니

지나온 한평생 너무 허무하다.

젊음에 시절엔 그 세월이 더디 가기에

어서 가자 세월아 재촉도 했었는데

속절없이 변해가는 내 모습에

살아온 지난 일들이

후회와 아쉬움만 더덕 더덕 쌓이고

남은 길은 저만치 눈에 어린다.

걸어온 그 험난한 길 위에

내 흔적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뒤 돌아보니 보잘것 없는 삶이었기에

작은 마음만 미여 지는 것 같다.

줄어드는 꿈이라 이 길을 멈춰 설수 없다 해도

육신에 허약함을 어이 감당해야 하나

가는 세월아

너도 쉬엄 쉬엄 쉬었다 내 뒤를

따라 오렴...

세월아 세월아

야속한 세월아

이제 따라 가기도

힘이 드는구나.

우리좀 쉬엄 쉬엄

갈터이니 우린 두고

너만 가거라.

미워할 수도

뿌리칠 수도 없는 세월아

한평생 너 따라

숨 가쁘게 달려오며

미운정 고운정

뒤섞인 너와 우리

이젠 우리 두고

너만 가거라.

우리 이모습 이대로

살아온 세상 뒤돌아보며

너털웃음 깔깔대며

여기 머물러

오래 오래 살고 싶구나

이젠 우린 두고

너만 가거라...(좋은글 중에서)

 

대미산~두루봉~악어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모습

악어봉은 충주호를 내려다 보면 호수에 맞닿고 있는 산자락의 모습이 마치 악어떼가 물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형상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악어봉은 작은 악어봉(448m)과 큰 악어봉(559m)으로

나누어지 는데 이 곳에서내려다보는 충주호 경관이 장관이다. 실제로는 육지 속 호수라 섬은

아니지만 악어떼 형상의 뭍을 악어섬이라 부르기도 한다

저 멀리 광천(등곡)지맥의 능선도 보인다

좌측으로 휘어져 간다

첩푸산 너머로 백두대간상의 마패봉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벌목지 끄트머리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숲속으로 들어간다

339.8m봉(12:22)

안부로 내려섰다가...

능선으로 올라가는데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힘들게 사는구나

369.3m봉(12:30)

좌측으로 내려간다

안부(12:35)

등로는 희미하고...

암릉길이 시작되고

우측으로 우회길이 보이지만...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묵은 영지버섯 옆에 새로운 영지버섯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우회를 한 다음에...

암릉사이로 올라간다

나뭇가지로 보이는 산이 얼마전에 다녀온 금수산인 듯 하다

계속되는 빡센 오르막길

힘들게 능선에 올라서니...378.4m봉이 나온다

378.4m봉(12:40)

378.4m봉 정상 삼각점(△427 재설 / 78. 8 건설부)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이 쉬끼 엄청나게 쌌네

누리장꽃의 향이 진하다

안부로 내려간다

흰가시광대버섯

균모의 지름은 9-20cm로 둥근 산 모양을 거쳐 가장자리에 턱받이의 파편이 부착한다.

표면은 백색이고 미세한 가루가 분포하며 높이 3mm의 원추상 사마귀가 많이 붙어 있다.

살은 백색이고 마르면 고약한 냄새가 나며, 주름살은 백색 또는 크림색의 끝 붙은 주름살이다.

자루의 길이는 12-22cm이고 굵기는 1.5-2.5cm로 아래는 부풀고 백색이며 속은 비었고 표면은

솜털 같은 인편이 덮여 있으며 기부에 사마귀가 고리 모양으로 많이 부착한다.

턱받이는 크고 막질이며 윗면에 선이 있으며, 포자의 크기는 8-10.5×6-7.5㎛이고 는 타원형이고

아미로이드 반응이다. 

안부(12:45)

안부에 올라서니 능선이 나오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기에 베낭을 내린다

점심겸 휴식(12:55~13:15)

착한 후배의 충언에 따라서 물을 평소보다 2배이상 먹었고, 산악회 총무님이

주신 떡과 과일로 원기를 보충하고 평소보다 더 많이 휴식을 취한 다음 길을 떠난다

안부로 내려오니 관리가 전혀 안되어 있는 송전탑이 보인다

송전탑을 지나서...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간다

초반에 비해서 자꾸만 고도가 높아진다

387m봉(13:19)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의좋은 사이?

안부(13:20)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간다

地.水.火.風

오르막길은 계속되고 체력이 저하되기 시작한다

무명봉(13:28)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무명봉(13:34)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가니 415.7m봉이 나온다

415.7m봉(13:38)

하도 높은곳에 매달아놔서 방심하면 놓치기 쉬울듯 싶다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등로는 뚜렸하고 좌측으로는 잣나무 조림지가 보인다

묵은 표터의 흔적처럼 보이는 축대위로 올라간다

좌측의 우회길을 버리고...

 직진으로 올라간다

암봉이 보이고...

 우측으로 우회하는데 갑자기 근처에서 산악오토바이의 굉음이 들린다

이 험한곳에 왠 산악오토바이...

발치봉 갈림길(13:50)

직진의 좋은길로 가면 발치봉 가는 길인데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맥길은 직진의 뚜렸한 길을 버리고 <형태의 길로 내려가야 한다

발치로 향하는 등로는 뚜렸하다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이고...

조금전에 산악오토바이가 지나갔나 보다

흙이 많이 패여있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좌측으로 벌목지가 보인다

벌목지를 지나서...

내려서니 발치가 나온다

발치(發峙:322m:14:05)

충주시 직동 발치골에서 살미면 재오개리 도선동 사이에 있는 고개로 재오개리 발티 마을 뒤에 있는

고개로서, 옛날 삼남대로로 통하는 대로의 첫 고개였다고 한다. 지명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충주의 진산인 남산과 대림산 사이에 위치하며, 남·북 산줄기가 동·서로 자르는 구조선을 따라 풍화,

침식되면서 낮아진 능선부가 고개로 활용된 곳으로 주변 산지와 함께 흑운모석영편마암(계명산층)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인접한 마즈막재와는 달리 비교적 고도도 높고 험한 편이다

 

동쪽에는 다리재·느릅재·마즈막재·발티·지릅재(수안보면 미륵리) 등을 통해 제천-단양-영남

지방으로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이문고개·솔고개·못고개 등을 넘어 여주~진천으로 통한다. 

예전의 화려했던 영화를 잊어버리고 지금은 잡풀만 무성한 잊혀진 고개이다

발치에서 급경사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재오개리쪽으로는 충주호가 아련히 보이고 전봇대가 서 있다.

힘들게 능선으로 올라간다

돌로 쌓은 축대가 나오고 살짝 좌측으로 우회하여 올라간다

먼지버섯

434m봉(14:25)

발치에서 434m쯤 되는 무명봉에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폐묘터(14:27)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오는데 갑자기 습지같은 웅덩이가 나온다

고인물은 썩었는지 시커멓게 보인고 예전에 묘지가 있었던 곳인지 석물과

상석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지만 봉분은 보이질 않는다

폐허가 되다시피한 묘지의 흔적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가니 465.3m봉이 나온다

465.3m봉(14:32)

잡목 사이로 이어지는 맥길을 이어간다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유인김해김씨 묘지가 나온다

유인김해김씨 묘(14:32)

김해김씨 묘지를 지나니...

고사리가 묘지를 뒤덮어 버렸다

밀양박공 묘(14:36)

묘지를 가로질러 내려가는데 갑자기 개 서너마리가 나타나는 바람에 행여 들개인 줄 알고

엄청 긴장을 하면서 경계 태세를 갖추는데 자세히 보니 목줄을 하고있어 들개는 아닌 듯 보인다

잠시후에 공기총을 맨 포수가 나타나는데 나보고 뫳돼지를 못봤느냐고 묻는다.

이곳에 뫳돼지가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뫳돼지를 쫒는 중이란다 

포수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능선으로 올라가는데 주위에는 광산터의 흔적같은 함몰지역이 보인다

넓은  공터를 지나고 좌측으로는 임도가 보이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삼각점이 있는 460.2m봉이 나온다

460.2m봉(14:45)

460.2m봉 삼각점(△424재설 / 76.9건설부)

산으로님의 흔적을 바라보며 좌측으로 내려간다

등로는 잘 안보이고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니...

잔디가 하나도 없는 대머리(?) 묘지가 나온다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을 지나...

등로가 보이지 않는 직진길로 내려가는데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등로가 없는 곳을 조금 더 내려가니...

우측에서 내려오는 넓은 임도를 만난다

안부를 지나고...

계속되는 내리막길

채석장이 있는 재오개재가 보인다

재오개재가 있는 채석장을 내려가는 곳도 잡풀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돌배나무가 보인다

배를 하나 따먹는데 보기보다는 맛이 괜찮아서 서너개를 따 먹는다

채석장 아래로 내려간다

요즘 작업을 안하는지 돌을 부수는 기계가 녹이 슬었다

오랫만에 화창한 날씨에 산행을 하니 기분이 쿨하다

재오개재(才五介峙:14:55)

충주시 직동에서 살미면 재오개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정상에는 채석장이 있다.

이 고개로 인해 재오개리라는 마을이 생겼으며, 재오개는 상재오개와 하재오개 두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고개는 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재주 있는 아기장사가 다섯 살이 되던 해 고개 혈을 끊겨

요절했다고 하여 마을이름을 재오개로 불러 오늘에 이른다

재오개재 채석장에 있는 장비들

직진 능선으로는 절개지라 갈 수가 없어서 웅덩이 좌측으로 올라간다

재오개재에 전해오는 전설

조선 태종 때 노선비가 재고개 밑 외딴집을 찾아들었다.

노선비는 그 집 부인이 건네주는 냉수를 받아들며 부인이 잉태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산월을 물었다.

잠시 후 노선비가 그 집을 떠나면서, “재고개 정기와 금봉산 영기를 타고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니

잘 길러서 나라의 기둥이 되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런 후 노선비가 고개를 넘으면서 지세를 살피고

“애석한지고 요절기가 있으니…….”라며 탄식하였다.

그런 후 얼마 안가 부인이 해산을 했는데 재고개에서 무지개가 그 산실로 이어졌다.

태어난 아기는 생후 석 달 만에 말을 했고 3살 되던 해 쌀 한가마니를 들 수 있는 장사가 되었다.

그리고 5살이 되면서 재주가 비상해 글을 지을 수가 있고 병법을 논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문무에 신기를 가진 어린애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관가에서 조정에 알리자

조정에서 풍수에 능한 술자를 보내 그 주변을 살피게 하였다.

술자가 이곳 지세를 보고 충주 땅에 왕기가 있고 어린애가 왕위를 찬탈할 인물이 될 것이라 했다.

조정에서 방액법을 물으니 재고개의 정기를 타고 태어났으니 산혈을 끊어야 한다고 했다.

군사를 보내어 재고개 혈에다 철장을 박고 맥을 끊으니 산이 진동을 하고 초목이 떨며 잎이 마르고

아이가 별안간 죽고 말았다. 그 후 재주 있는 아기장사가 다섯 살이 되던 해 고개 혈을 끊겨

요절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재오개로 불러 오늘에 이른다.

지나온 재오개재를 내려다 본다

조금전에 지나온 능선의 모습

채석장 절개지를 지나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오금이 저려올 정도로 아찔한 절개지이다...상당히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힘들게 능선으로 올라선다

채석장에서 올라와서 이어지는 등로는 완만하다

철쭉 군락지를 지나고...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들의 흔적이 그저 고맙고 반갑기만 하다---

448.3m봉(15:20)

노란갓비늘버섯

균모의 지름은 2-5cm로 둥근산 모양이며 표면 가운데는 황갈색이고 가장자리는 황색이며 습기가

있을 때는 심한 끈적기가 있다. 균모의 하면에는 섬유상의 내피막이 있다가 나중에 가장자리에 부착한다.

주름살은 바른 주름살로 연한 황색에서 갈색으로 되며 자루의 길이는 3-7cm이고 굵기는 5-10mm로 상부는

황백색의 가루 같은 것이 부착하며 하부는 갈색 섬유상이다. 포자의 6.5-7.5×4-5㎛이고 타원형이다.

식용 가능하며 발생 시기는 가을에 산과 들의 땅에 반쯤 묻혀 있는 침엽수 고목에 속생하며 나무를 부후시킨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429m봉(15:23)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잠시후에 오를 613.8m봉이 까칠하게만 보인다

성재로 내려서니 서낭당이 보인다

문이 굳게 잠긴 서낭당

궁금하면 못 견디는 범여...나무꼬챙이로 잠가논 서낭당의 문을 열어본다

 

이곳 서낭당은 매년 정월 보름 무렵과 7월 보름 무렵에 적당한 날을 선정하여 자시에 지낸다.

제관은 도선마을 네 집 중 생기·복덕을 가려서 한 집 내외가 맡으며, 제관으로 선정된 집에서는

제일 3일 전에 대문 밖 좌우에 황토를 세 무더기씩 부려 놓고 금줄을 치며, 서낭당 주변의 풀을 깎고

깨끗이 청소한 다음 역시 금줄을 친다.

 

서낭제에 필요한 제비는 마을이 충주호에 수몰될 때 받은 이주비에서 남겨 둔 기금의 이자로 마련하는데

모자라면 네 집에서 추렴한다. 제물은 생메, 돼지고기, 삼색 실과, 백설기, 통포, 술(약주)을 준비한다.

제일(祭日) 당일 오후부터 제관 내외가 제물을 준비하여 자시경 서낭당에 올라가 제물을 진설한다.

제의는 유교식 절차에 따라 헌작하고 재배한 후 축을 읽는데, 대동 소지는 올리지 않고 네 집

세대주와 자손의 소지를 올린다. 다음 날 아침 제관 집에 모두 모여 제물을 나누어 먹는다.

서낭당 내부의 모습

 서낭당 안에는 ‘성황지신(城隍之神)’ 위패를 모셔져 있고 최근에도 제(祭)를 지냈는지

각종 술과 과자, 생수 등이 보인다... 아침에 산악회 총무이신 옥희씨가 준 떡하나로

여기까지 왔더니만 허기도 지고, 후배의 苦言에 평소보다 물을 많이 마셨더니만

식수도 좀 모자랄 듯 하여, 성황신에 禮를 올리고 과자 몇개와 생수 한병을 실례한다

서낭당 문을 잠그고 나오니 재오개리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가

나오는데 이곳이 지형도상의 성재이다

성재에서 바라본 충주시 살미면 재오개리(才五介里)쪽의 모습

재오개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초기 재오개 전설에서 유래하며, 재오개라는 한자말은 다섯 살짜리 왕자라는 뜻이다. 

충주시 직동에서 발티고개를 넘어 제천시 청풍면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에 위치한다.

그러나 1929년 청풍으로 이어지는 길이 세성리로 나면서 살미면의 오지가 되었는데,북쪽에 목벌동이 있고

서북쪽에 남산[636m] 등 높은 산이 있다. 동쪽에는 충주호가 있고 남쪽으로는 신매리와 설운리가 있다.

 

산지 아래자락에 자리잡은 농촌마을로 충주호와 가까우며, 자연마을로는 동막골, 아랫재오개, 웃재오개,

흑석이 있는데 동막골은 구한국 때 이곳에서 동을 캤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아랫재오개는 재오개의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웃재오개는 재오개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흑석은 마을 근처에 검은 돌이 많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특산물로는 대학찰옥수수, 고추, 사과, 담배 등이 있다.

성재(15:30~40)

충주시 살미면 재오개리에서 직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고개 정상에는

서낭당이 있고 재오개리에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시멘트 도로가 있다.

서낭당이 있어서 성재라 부르는 모양이다...범여의 생각中에서

 

배도 고프고 목이 말라 조금전에 성황신에게 실례한(?) 과자와 생수로 허기를 달래고

도로에 퍼질러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며 한참동안 휴식을 취한다

시멘트 도로가 아닌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선답자의 시그널이 보이나...

곧 등로는 사라지고 개고생을 한다

천신만고 끝에...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다시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뭔 지랄인지...

힘들게 올라선 다음에 2번째 임도를 만난다.

다시 임도를 가로질러 올라가야 하나 그냥 임도로 향한다

임도를 한구비 돌아서 오니...

좌측으로 로프가 있는 절개지가 보인다

로프에 몸뚱아리를 의지한 채 능선으로 올라선다

곧추선 듯한 빡센 오르막...숨이 끊어질 듯한 통증이 시작된다

아!...힘이 드는구나

암릉구간을 지나고...

빡센 오르막길

지맥을 완주한 사람이 부럽기만 하는구나...지금은 뭔 재미로 사는지 궁금하다

임도에서 힘들게 능선에 오른 다음에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604.8m봉(16:23)

604.8m봉에서 우측으로 향한다

안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가니 613.4m봉이 나온다

613.4m봉(16:27)

좌측으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산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충주산성이라 부르는 남산성터 벽이 맥길을 가로 막는다

좌측으로 간 다음에 가장 낮은 곳에서 성으로 올라간다

쓰러질듯한 성곽벽을 올라서니 남산성 남문터가 나온다

남산성(충북지방기념물 제31호(남문터(16:35)

충주산성은 충주시 안림동 산56-1과 직동 산 24-1 및 목벌동 산54에 걸쳐 있으며 남산성 또는

금봉산성으로 불리워 지기도 하며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여지는 이 성은 외축 내착형이며

산 정상을 이어 쌓아진 퇴뫼식 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축성 재료는 석재를 고루 쌓아 전형적인 고식을 보이며 성 둘레는 83년 충주시 조사에 의하면

1,145m이며 중간 중간이 무너지고 5개소에 775m의 성곽이 남아 있으며 성안의 넓이는 46,524㎡이고

성벽의 높이는 7 ~ 8m에 이르고 있다. 성안에는 우물자리가 2개소 있는데 현재 물은 나지 않으며

동서의 산능선상에 문지가 있고 동쪽으로 수구가 있다.

 

또 성안에서는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편 및 기와쪽이 발견되고 있다.

충주산성은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몽고병을 물리친 곳으로 추정되며 고종 40년(1253) 9월 몽고가

제4차 침입을 감행하여 충주산성을 공격하자 충주 창정, 최수가 금당협에 매복하여 몽고군을

공격하여 승리하였고 같은 해 12월에는 포위당한지 70여일에 군량이 다하고 사기가 저하되자

방호별감, 승장 김윤후가 전군과 관노까지 격려하여 사력을 다해 싸워 적을 격퇴하였다.

 

다음 해 2월에 김윤후를 감문위섭상장군으로 삼았고 4월에는 충주를 승격하여 국원경으로 하였다.

1254년 9월에는 차라대가 충주산성을 공격하였으나 갑자기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뿐 아니라 성안의

고려인이 열심히 싸우자 자랄타이(차라대:車羅大) 물러갔다.

몽고의 침입을 받아 전 국토가 유린되었으나 충주산성은 끝내 수호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마고선녀가 7일만에 축성하였다고 하며 백제 개로왕 21년(475)에 축성하여

적을 방어하였다고도 하며, 개로왕이 바로 이 성 북쪽에 있는 안림동에 도읍을 옮기려 하였다는 설과

일치하고 있음에 주목된다. 1977년에 무너진 곳의 일부를 보수하였고 1986년도에 지방비 예산을

투입 충주공업전문대학 박물관 팀에 의하여 발굴 조사한 바 있다.

남문터에서 바라본 월악산의 주봉인 영봉의 모습

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시멘트 광산으로 인해 산의 절반이 날아가 버린 갑산과

그 너머로 영월지맥 능선상에 있는 누에머리산과 가창산이 아련히 보인다 

동남쪽으로는 월악산에서 이어지는 문수봉, 대미산...앞으로는 광천(등곡)지맥 능선과

그 뒷쪽으로는 한 구간만 남겨둔 매포서(금수)지맥 능선도 아련히 보인다

성곽이 아닌 쉼터가 있는 가운데 능선으로 걸어간다

저멀리 속리산군도 아련히 보인다

헬기장(16:38)

헬기장에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쉼터(16:38)

쉼터를 지나자마자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남산에 도착한다

남산(南山:635.6m:16:39)

충주시 살미면, 안림동과 직동및 목벌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금봉산(錦鳳山) 불리워 지기도 하는

아담한 육산으로 산 정상에는 일명 남산성이라고 부르는 성터 및 성벽이 있으며 금봉산성,

마고산성, 혹은 충주산성이라고도 부르는데, 금봉산이라 부르는 연유는 산 모양이 봉황이

날개를 드리운 것과 같아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고려 대항몽지로 유명한 충주산성을 두고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보통 이 남산성을 일컫는다.

이 산성은 최초에 백제 구이신왕 시대(420~426년)에 쌓은 것으로 전해지며 국성으로

불리우다가, 백제 개로왕 21년(475년)에는 백제의 도읍지 후보로 충주가 증장되어,

이 성의 바로 아래인 충주시 안림동 어림 마을에 궁궐지가 있을 정도까지 되었다가

신라 진흥왕(540~575)에 난장성으로 바뀌어 불렸다고 한다.

 

또한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천상에서 쫓겨난 마고선녀가 7일만에 쌓았다고 하여

마고성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산으로 정상에는 1등 삼각점과 정상석이 있고 마즈막재를

사이에 두고 북쪽에 있는 계명산과 있으며 마주보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신라시대에

원효성사가 창건했다는 고찰 창룡사가 있고, 인근에는 신라시대에 죽정사로 창건됐던

석종사가 있고 주위로는 충주 사람들이 자주 찿는지 각종 운동기구와 벤취들이 많이 보인다 

남산 정상 1등 삼각점(△충주11/1979재설)

인증샷

충주산성 안내판

 

충주 남산성을 마고성이라고도 부르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금단산 수정봉에 은거하고 있던 마고할미(늙은 신선할미)는 천율을 어기고 마구 살생을

하였으므로 천제의 노여움을 사서 하천산 누독봉으로 쫓겨나서 험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후 마고할미는 천제에 대해서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면서 금단산으로

되돌아가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탄원을 했다. 이에 천제도 그의 개과천선을 인저하고 충주 금봉산에

들어가 성채를 쌓고 처소로 삼도록 명하되 성은 반드시 북두칠성을 따라 하루에 한별씩 7일 동안에

쌓도록 하라고 하였다. 마고할미가 명을 받고 금봉산에 이르러 보니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전망이

수려해서 속으로 몹시 흡족하게 생각하고 그날부터 성을 쌓기 시작해서 꼭 7일만에 완성했다.

 

천제가 축성을 끝냈다는 말을 듣고 도감을 보내어 성을 살펴보도록 하였는데 수구가 서쪽을 향하여 뚫려 있었다.

그것을 보고받은 천제는 크게 노하여 마고할미를 꾸짖어 처소성주로 삼지 않고 성직이로 삼게 되었다.

그 이유는 천제가 위치하고 있는 곳이 서쪽하늘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마고가 금봉산으로 내쫓긴

보복으로 천제에 욕을 하는 뜻으로써 수구를 그쪽으로 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 마고할미는 그런 뜻이 아니라 지형을 이용해서 편리한 대로 한 것 뿐이었다.

자고로 축성의 법칙을 보면 큰 문을 남향으로 내고 암문은 동향으로 수구문은 동남으로 설치해야 하며

서문은 다락을 세워 위엄과 화려함을 표해야 한다는 전통이 있었다.

 

이와 같은 것은 천제 숭배의 사상에서 기인된 것이다. 마고는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고 고의가

아니었음을 진정했으나 천제는 끝내 노여움 을 풀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마고할미는 이곳

성직이 노롯을 하다가 천명을 다하고 만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이 성의 이름을「마고성」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또 남산에 있으므로

「남산성」이라고도 속칭하게 되었는데 성중에서 유일하게 서향 수구문을 가진 성이라고 한다.

남산 정상에서 내려오니 충주산성 안내판과  이정표가 나오고 마즈막재로 맥길을 이어간다

서문터(16:41)

서문터를 지나 나무 계단으로 내려간다

서문터를 지나 성곽으로 내려서는데 계명산 아래로 안림동(安林洞)쪽이 보인다

안림동은 안심리(安心里)·범의동(凡衣洞)·어림리(御林里)·교동(校洞)의 일부를 병합하여 생겨난

마을로 그 이름도 안심리와 어림리의 지명을 따서 안림동이라 했다. 안심리는 안림리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로 예부터 피난지로 안전한 곳이라 하여 안심이라 불리었다.

어림리는 백제 문주왕이 가행궁을 짓고 있던 솔밭이란 뜻으로 지은 마을 이름이다.

성곽길을 따라서 걸어간다

성곽길에는 무릇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충주산성에서 바라본 충주시내의 모습

충주는 백제시대 낭자곡성(娘子谷城)·낭자성(娘子城)·미을성(未乙省)으로 불렸고, 서기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할 때 고구려의 땅이 되어

국원성(國原城)이라 이름하고 약 70년간 고구려 남진 정책의 중요한 전진 기지가 되었으니

국보 제205호인 충주 고구려비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국원이란 근원이 되는 땅, 나라의

근본이 되는 땅이라 풀이할 수 있다.

551년(신라 진흥왕 12) 신라는 한강 상류 유역을 차지하여 553년 신주를 설치하고 557년(진흥왕 18)

국원소경이 되었고, 558년 귀척의 자제와 6부의 호민을 국원에 이주시켜 부도(副都)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통일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 각 지방의 주·군·현의 이름을 바꿀 때 국원소경을 중원경(中原京)으로

개칭하였다. 중원이란 나라의 중심지 또는 중앙 지대로서의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고려 태조는 민족을 재통일하고 940년(태조 23) 주·부·군·현의 이름을 바꿀 때 중원경을 충주로 바꾸어

현재의 공식 명칭이 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중원(中原)·중주(中州) 등의 명칭이 쓰였으며, 별호로

대원(大原)과 예성(蘂城)이 있다. 충주는 중심주 또는 중주로 고려 초에 있어 국토의 중앙임을

나타냈으며, 충성스러운 고을이란 의미도 담겨 있다.

다음 구간에 걸어야 할 계명산의 모습

충주산성 북문터(충청북도 기념물 제31호:16:44)

지정면적 1,165㎡. 둘레 1,120m, 성벽 높이 6.5m, 너비 5∼6.5m.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마고성(麻姑城)’이라고도 하며,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마고선녀(麻姑仙女)가 7일 만에 축성하였다고도

하고, 또는 백제 개로왕 21년(475) 성 아래 북쪽의 안림동(安林洞)에 이궁(離宮)을 짓고 남산에 성을

쌓았다고 한다.

 

남산 또는 금봉산(錦鳳山)이라 부르는 산의 정상부에서 동쪽으로 두 개의 작은 계곡 8부능선을

에워싼 석축산성으로 안쪽 벽은 계곡 부분만 2m쯤 협축(夾築:중간에 흙을 넣고 돌이나 흙으로 쌓음)

하였고, 성벽 위에 여장(女墻: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너비 1.2m, 높이 60㎝쯤 남은 곳이 있는데,

바깥 성벽에서 곧바로 쌓아올리고 미석(眉石:여장 맨 아래에 성벽 바깥으로 내밀게 얕은 돌로 깐것)을

사용하지 않은 평여장(平女墻)이다.

문터가 사방에 모두 있으며, 바깥쪽에서의 입면(立面)이 凹꼴로 된 것으로 보아 모두 현문(懸門:평상시 문을

닫았다가 사용할 때는 문을 바깥으로 드리워 사다리처럼 걸쳐놓고 통행하는 문 모양)이 시설되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성안 동쪽 계곡 쪽으로 세 군데의 집수처(集水處)가 확인되었고, 동문터의 남쪽에는 수구(水口)가

원형대로 남아 있다.

 

수구는 물이 성벽의 중간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고, 출수구(出水口)는 성벽 바깥바닥에서 약 60㎝쯤 올라온

벽의 중간에 미석이 있으며, 높이 65㎝, 아랫너비 60㎝, 윗너비 26㎝여서 마치 궁륭모양 돌방무덤의

단면처럼 생긴 특이한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성 북쪽의 마즈막재[心項峴]에는 관애(關阨)가 시설되어

있어서 삼국시대의 국원성(國原城) 혹은 중원경(中原京)의 외곽을 형성한 것으로 보이며, 일종의

나성(羅城) 구실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북문터 앞에 있는 멋쟁이 소나무를 바라보며...

충주산성을 빠져 나간다

내리막길은 계속되고...

계단을 내려서니 임도가 보인다

계단에서 바라보니 몇년전에 진권아우와 같이 걸었던 제천 서(천등)지맥 끝지점이 보인다

임도(16:48)

임도를 가로질러 숲속의 길로 들어 간다

쉼터(16:50)

484.3m봉(16:54)

암릉위에 멋쟁이 소나무 한그루가 산꾼을 반긴다

나무가지 사이로 바라본 충주호의 모습

갈림길이 나오고 좌.우측의 어디로 가던 금방 만난다

반갑습니다

우측으로 내려서니 아랫쪽에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가 보인다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16:58)

임도 좌측에는 신립장군의 전투장면 안내판이 보인다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패장이 되어 버린 신립장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삼도도순변사가 되어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싸우다 순국하였다.

임진왜란 당시의 전투지도

이곳에서 임도를 가로질러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너럭바위(16:59)

쉼터를 지나고...

등로는 고속도로이다.

임도(17:02)

마즈막재에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임도인데 빙빙 돌아가기에 질러가는게 빠를듯 하다

임도 맞은편에는 폐허가 되다시피한 대전교통방송국(TBN:FM93.5MHZ) 충주중계소가 있다

대전방송국 중계기지 철조망 옆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뭣에 쓰는 물건인고?

409.9m봉(17:05)

임도로 내려간다

잠시 임도를 따르다가...

임도를 버리고 벤취가 있는 샛길로 들어간다

임도 옆에는 중앙탑 안내판이 있다.

길은 무쟈게 좋다

안부(17:15)

안부에서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사면길을 따라서 좌측으로 간다

반갑습니다

능선에서 내려오는 길을 만나 좌측으로 내려간다

급경사의 절개지로 내려서니 임도가 나온다

임도 갈림길마다 충주의 역사적 기록 안내판이 서 있다

임도로 내려선 다음에...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다시 임도와 작별을 하고 좌측의 길로 향한다

등로 사이로 바라본 충주시내의 모습

마즈막재가 가까워졌나보다...차량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등로 우측 아랫쪽에는 송전탑이 보인다

철조망을 끼고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마즈막재가 보이기 시작한다

내리막을 내려오니 ‘동구밖 과수원길’ 식당이 등로를 막고 있다.

식당 좌측의 샛길로 내려간다

데크목 계단을 내려서 마즈막재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 앞에는 잘 관리된 무공수훈자 공적비가 있다

마즈막재(心項峴:260m:17:30)

충주시 안림동과 목벌동, 종민동을 연결하는 고개로 계명산과 남산이 연결되는 지점에 있으며

이 고개를 일러 ‘마즈막재’라고 하는데 신라시대에는 나무벌(木伐)과 같은 깊은나무고개(心木峙)라

하였다고 하며, 계명산의 옛 지명인 심항산(心項山)에서 따와 심항현(心項峴)이라 불렀으며

심항현을 한자로 해석하여 마수막재라 하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마즈막재로 바뀌었다고 한다.

 

마즈막재는 계명산과 남산으로 이어지는 남북 산줄기에서 동서 구조선을 따라 낮아지는

산줄기가 마즈막재인데 삼국시대부터 지금은 수몰된 남한강을 통하여 청풍, 단양, 죽령을

넘나들거나 송계리, 미륵리 하늘재를 넘어 영남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고 한다

 

옛날 한양에서 배를 타고 충주시 종민동 나루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대개

충주 포도청으로 가든가 아니면 사형장으로 가게 되므로, ‘가기만 하면 살아오지 못한다’는

관례에 따라 마지막으로 넘는 고개라는 뜻에서 ‘마즈막재’라고 했다고 한다.

다른 한 설에는 “옛날 이 부근에 호랑이가 많아 충주 성안 사람들이 그 고개를 넘어 가기만 하면

살아오지 못했다”는 데서 유래한 명칭이라고도 한다

무공수훈자 공적비 아래 도로가에 있는 마즈막재 표시석

마즈막재에서 안림동 방향으로 내려간다

이곳은 도로가 넓고 차량들이 많이 다녀서 애초부터 히치가 힘들것 같아 시도도 안했다.

도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마즈막재 버스 정류장(17:33)

정류장에 붙어있는 버스시간표를 보는데 외지인들은 도통 알아보기가 힘이 든다

이곳은 충주 시내와 가까워서 다음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다음 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하고...

도로를 따라서 계속 내려가니 길건너에 순두부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보인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씻어야 하기에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17:45~18:30)

식당에 들려 콩비지에 맥주한잔 시켜놓고 화장실에 가서 깔끔하게 씻고

의관정제를 한 다음에 먹는 콩비지에 같이 먹는 맥주맛...정말 꿀맛이다

쥔장이 즉석에서 해주는 돌솥밥이라 먹을만 하다

식사를 끝낸 다음에 쥔장이 호출해 준 택시를 타고 10분도 안되어 터미널에 도착한다

(택시비 6.700원)

충주공용 버스 터미널(18:30)

터미널에 도착하여 표를 예매한 다음에 30여분간 대합실에서 멍때리기를 하다가

버스에 올라 잠이 들었는데 벌초시즌이라 그런지 귀경하는 차가 엄청 밀린다.

예상시간보다 40여분 늦게 서울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