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0년 06월 07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한 여름을 방불케하는 무더위
☞ 산행거리: 도상거리 12.1km+접속구간 들머리 3.2km / 6시간 35분 소요
☞ 참석인원: 송백산악회 지맥팀 따라서
☞ 산행코스: 서항목재(배목고개)-경주최공 묘-607봉-안부-안부-무명묘지-826.2봉 갈림길
835봉-안부-지맥 분기점-안부-649.1봉-임도-500.1봉-서항목재-수안김씨 묘
월성김씨 묘-문화류공 묘-포대산-평산신공 묘-갈림길-485봉-안부-무명봉
525.8봉-안부-월성김씨 묘-안부-갈림길-571.0봉-575.4봉-갈림길-545.6봉
경주이씨 묘-내류동 고개-산불감시초소-안부-490봉-갈림길-480봉-490.4봉
무명봉-무명봉-갈림길-446봉-임도-갈림길-국사당산-화천리 임도
☞ 소 재 지: 경북 영양군 석보면 / 영덕군 지품면, 영해면, 축산면
어제(6일) 백두대간 저수령에서 차갓재까지 금요 무박으로 땜방 갔다가 급체로 인해 개고생을 했다.
다행히 무박산행으로는 거리가 짧아 집에오니 해가 아직도 중천에 뜨있다
집에와서 매실차로 몸을 좀 다스리고 나니 몸뚱아리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아들은 어디 갔는지?...안방 마님은 1박2일로 여행을 간 모양이다
어차피 담주는 골프모임에서 1박2일로 골프투어를 가아해 산행을 못하기에 송백산악회 황대장님한테
전화를 하여 영덕 북(화림)지맥 첫 구간을 따라 나서려는데 첫 구간은 접속구간이 만만찮은 곳이다
황대장님의 설명으로는 낙동정맥 박점고개에서 국유림 임도를 따라서 화물차를 타고 가며
공동경비 50,000원 들어가는데 들머리에서 분기점까지 1km 남짓이란다
낙동정맥에서 가지를 친 지맥들은 일단 교통이 상당히 불편하여 접근하기가 쉽지않고
시간과 경비 지출이 만만찮아 고민이 많은 곳이다...그러나 장점도 많은 곳이다
대체적으로 분기점이 가장 높고 분기점만 찍으면 고도를 확 낮추기에 첫 구간만 끝내면
나머지 구간은 훨씬 쉽기에 산악회를 따라서 나선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서서 탑승장소인 잠실역 1번출구에 도착하니
황대장님이 먼저와서 반갑게 맞아준다...잠시후에 백두사랑산악회에서 같이 산행했던
조여사님이 오셨고, 버스는 천호, 복정, 죽전을 거쳐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리는데
황대장이 박점고개 아래에 있는 식당에 전화를 하니 6월1일부터 개방한다는 바리게이트가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갑자기 난감하다.
산꾼들 사이에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하다...역산행을 하자는 분도 계시고, 서항목재에
차를 세우고 빈 몸으로 분기점을 찍고 오자는 분들도 계셨는데 토론끝에 후자를 택한다
괴산 휴게소에서 두부찌게로 아침을 해결하고 당진~영덕간 고속도로 동청송I.C를
빠져나와 34번 국도를 따라서 낙동정맥이 지나는 황장재를 거쳐 지품면사무소에서
좌회전하여 69번도로 끄트머리에 있는 서항목재에 도착한다
서울에서 출발한 지 4시간 20분만에 들머리에 도착하는데 그나마도몇 년전에 개통된
당진~영덕간 고속도로 덕분(?)에 많이 단축된 시간이다...그만큼 오지라는 얘기다
영덕 북(화림)지맥 개요도
영덕 북(화림)지맥 (華林枝脈)은 낙동정맥 명동산(明童山.813.1m) 남쪽 700m지점인 805m봉에서
동남쪽으로 분기하여 서항목재(배목고개),용당산(182.6m)갈림봉.국사당산(國祠堂山.국사봉. 512m),
독점고개,화림산(華林山.348.4m),삼거리재, 자부터고개(7번국도),고불봉(233m).봉화산(150.1m)를
지나 강구항에서 그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2.7km의 산줄기를 말하며 유역면적 374.5㎢,길이 55.2km인
영덕 오십천의 우측 분수령이 되는 맥길인데 산으로(박흥섭)님이 저술한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
에서는 영덕 북 지맥이라고 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항목재(船項目峙:365m:10:55)
경북 영덕군 지품면 도계리와 영해면 대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69번 도로라고 지형도에는
표기가 되어 있으나 시멘트 도로가 마치 조그만 마을로 이어지는 무명도로처럼 보인다
주위에는 복숭아밭이 많이 보이며 산림청에서 설치한 낙동정맥 트레일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엄격히 말하면 서항목재는 이곳에서 100여m 전방에 있는데 이곳에서 들머리 접근이 쉬워
편의상 서항목재라고 부른다
지명의 유래는 우측 아래에 있는 영덕군 지품면 도계리 배목(船項)마을에서 따온 듯 하다
배목(船項)마을은 지형이 배를 매어둔 나루터와 같다 하여 배목이라 칭하였다 하는데
배의 목덜미처럼 생겼다는 ‘배 선(船), 목덜미 항(項)의 선항(船項)이 서항으로 변해 서항목재가
된 듯 하며 순수한 우리말인 배목고개를 두고 국적불명의 서항목재가 왠말인가
산행을 시작하다(10:55)
이 산악회에서 오신 산꾼들은 준비고 뭐고 할 것도 없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없다
오직 지맥길을 걷겠다는 일념 하나뿐인 듯 하다...버스에서 내려
사진 몇커트 찍는 사이 동료 산꾼들은 벌써 저만치 올라가 버리고 없다.
날씨는 한 여름을 방불케할 정도 무덥다.
베낭은 차에다가 내려두고 500ml 물 한병을 갖고 3.5km나 되는 분기점으로 향한다
들머리에 올라서니 잘 관리된 안동권공과 배부인 무안박씨 묘지가 나온다
묘지를 지나니 등로는 뚜렸하나 급경사의 오르막이다
좌측 능선으로 올라가면 삼각점이 있는 500.1봉이 있는 곳인데
내려올 때 들리기로 하고 편안한 사면길을 따라서 분기점으로 향한다
경주최공 묘(11:10)
경주최공 묘지를 지나자마자 서항목재에서 올라오는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도로공사옆의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까칠한 능선을 힘들게 올라간다
마루금으로 복귀하여 우측 능선이 아닌 좌측 사면길로 올라간다
607봉(11:22)
안부로 내려선 다음에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가는데...
등로가 잘 보이지 않고 상당히 難解하다
안부(11:30)
갈림길이 나오고 뚜렸한 직진길이 아닌 우측으로 맥길은 이어진다
안부(11:35)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고...
무명묘지(11:40)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암릉구간을 내려서니 안부가 나오는데 좌측에는 골이 깊은 계곡이 보인다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생각보다 경사가 급한 철쭉 군락지를 통과한다
826.2봉 갈림길(819m:11:55)
미역줄기나무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좌측으로 우회를 한 다음에 능선으로 올라간다
홀아비꽃대는 언제쯤 꽃을을 언제 피우려나?
등로가 보이지 않는 능선에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선다
835봉(12:08)
영덕 북(화림) 지맥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등로에 있는 낙엽이 무릎까지 차오른다
우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명동산明童山(812.4m) 풍력발전기는 미세먼지로 잘 보이지 않는다
명동산明童山(812.4m)은 영양군 석보면 삼의리 연잣골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 뒷산으로
주위의 다른 산보다 높고 특히 바람이 세어서 나무들은 잘 자라지 못하고 풀들만 자란다고 하여
맹동산(민둥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산 아랫마을 역시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니까 민둥-맨둥으로 소리가 바뀌었다가 마침내 맹동산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아울러 이 마을에는
농바위가 널리 알려져 있으며 농바위는 마치 농을 포개 놓은 것같이 두 개의 바위가 겹쳐 있다.
예부터 석보에서는 큰 산 주령(珠嶺)의 상징으로 잘 보호하여 온 바위이다
또다른 설은 예전에, 이 산아래 두뇌가 아주 명석한 어린 아이가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이라고 전해 온다.
안부(12:13)
선두는 벌써 분기점을 찍고 되돌아 가는 중인데 느림보 범여로선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능선으로 올라가니...분기점이 나온다
영덕 북(화림)지맥 분기점(800.5m:12:20)
들머리에서 출발한 지 3.2km 거리를 1시간 20분 걸려서 분기점에 도착한다
낙동정맥상의 분기점은 영양군 석보면과의 경계이지만 분기점 출발 이후 오롯이
영덕군에 속하고 끝점인 강구항에서 오십천 건너로 영덕 남(내연)지맥을 마주보는데
화림지맥은 내연지맥과 함께 낙동정맥 주왕산에서 흘러내린 영덕오십천을 오롯이
감싸며 강구항에서 바다로 내 보낸다
2010년 5월 20일 낙동정맥길에 이곳을 혼자 걸었으니 만 10년이 지났구나
참 세월한번 빠르구나...같이온 젊은 친구 하식씨는 베낭을 두고 명동산을 간 모양이다
인증샷
분기점을 아쉬운 마음으로 뒤돌아보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미역줄기 구간은 우회를 하고...
미역줄기 능선으로 올라간다
다시 미역줄기 능선에 도착하고...
지독한 미역줄기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826.2봉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선다
일부 산꾼들은 826.2봉을 찍고 오는 산꾼들도 보인다
철쭉 군락지를 지나 내리막 급경사로 내려간다
우측에 계곡이 있는 안부를 지나...
오르막으로 올랐다가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안부가 나오고...
무명묘지를 통과한다
좁은 등로가 이어지나 등로는 뚜렸하다
안부를 통과한 다음에...
맥길은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안부(12:58)
뚜렸한 사면길을 버리고 등로가 아예없는 649.1봉으로 올라 가는데 대다수 산꾼들은 우측 사면길로 가버린다
649.1봉(13:00)
649.1봉 정상을 찍고 우측으로 내려선다
다시 지맥길로 이어간다
안부를 지나고...
좌측의 능선을 생략하고 사면길로 내려간다
사랑의 트위스트?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임도 공사장이 나온다
임도(13:14)
임도공사중인 좌측의 이어지는 도로로 내려가면 서항목재로 이어진다
어디로 연결할까?
임도 공사장을 지나 처사 경주최공 묘지를 지난다
뚜렸한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올라올 때 안 들렸던 500.1봉으로 올라간다
오르막으로 올라가니...
500.1봉으로 가는 능선이 나오는데 500.1봉을 찍고 되돌아와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500.1봉으로 향한다
500.1봉(13:20)
500.1봉 정상 삼각점(△435 재설 / 76.6 건설부)
다시 되돌아와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를 내려서니 안동권공 묘지가 나온다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우리를 태우고 온 애마가 베낭을 싣고 기다리고 있다
다시 서항목재(13:25~40)
서항목재에 도착하니 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이곳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는데 오늘 같이 오신 산꾼들은 밥을 싸오신 분들은
아무도 안 계시고 간단하게 과일이나 음료로 점심을 해결하고 난 다 먹지도
않았는데 다들 가버리고 없다...그러나 뒤에 처진 조여사님은 오지 않는다
혼자서 조여사님을 기다리다가 하는 수 없어 나도 길을 떠난다
여기가 실질적인 서항목재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배목(船項)고개라 부르는데 서항목재란 단어는 외지인들인
‘배의 목덜미를 의미하는 선항(船項)’을 잘못 이해하여 서항목재로 부른듯한데
배목고개라는 지명이 훨씬 정감이 간다
분기봉에서 서항목재(故조은산님 블로그 인용)
69번 도로에서 조금전 임도 공사장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보인다
69번 도로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이동통신탑이 보인다
능선에 올라 우측으로 살짝 꺽어지니...
유인수안김씨 묘(13:45)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니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금강송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금강송(金剛松)이란 소나무의 심재(心材)가 붉다고 하여 적송(赤松) 또는 소나무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하여 강송(剛松)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그 소나무로 대표적인 금강송으로 봉화군
춘양면의 춘양목(春陽木)이며, 그 이외에도 문경의 황장목(黃腸木), 울진 왕피천의 금강송,
이곳 영양과 영덕의 금강송이 유명하다
백두대간 줄기를 타고 금강산에서부터 경북 울진, 봉화를 거쳐 영덕, 청송 일부에 걸쳐 자라는 소나무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꼬불꼬불한 일반 소나무와는 달리 줄기가 곧바르며, 마디가 길고 껍질이
유별나게 붉어 금강산의 이름을 따서 학자들이 금강소나무(金剛松), 혹은 줄여서 ‘강송’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흔히 ‘춘양목(春陽木)’이라고 더 널리 알려진 금강소나무는 결이 곱고 단단하며 켠 뒤에도 크게 굽거나
트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잘 썩지도 않아 예부터 소나무 중에서 최고로 쳤다
소나무의 '솔'은 '으뜸'을 의미하여, 소나무는 나무중에 으뜸인 나무라는 뜻을 가진다.
나무 줄기가 붉어서 ‘적송(赤松)’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주로 내륙 지방에서 자란다고 ‘육송(陸松)’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여인의 자태처럼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고 ‘여송(女松)’이라 부르기도 한다
갈림길에서 직진한다
잠사후 숙부인 월성김씨묘가 맥길 가운데 자리를 잡고있다
숙부인 월성김씨 묘(13:49)
숙부인(淑夫人)이란 조선시대 외명부(外命婦)인 문무관 정3품의 당상관(堂上官)인
통정대부(通政大夫)·절충장군(折衝將軍)의 적처(嫡妻)에게 내린 작호(爵號)이다
숙부인 월성김씨 묘지를 지나자마자 문화류공 묘지가 나온다
문화류공 묘(13:53)
문화류공 묘지에서 직진길로 올라가면 포대산 정상이 나온다
그러나 묘지 우측으로 나있는 사면길로 가버리면 포대산을 놓치는
憂를 범할수 있는 독도에 아주 주의할 구간이다...대다수 산꾼들이 사면길로 간다
포대산(440.9m:14:05)
경북 영덕군 지품면 도계리와 영해면 대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우측으로 내려가니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을 만난다
다시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이곳에서도 금강송들이 많이 보인다
맥길은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등로 좌측 아래에는 평산신공 묘지가 보인다
평산신공 묘(14:10)
寓溪處士 평산 신공 묘지를 지난다
처사(處士)란 중국에서 생겨난 호칭으로, 도덕과 학문이 뛰어나면서도 벼슬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황제나 왕이 내리는 시호였는데 佛家에서는 출가하지 않고 불교를 공부하는
남자를 처사라 부르기도 하는데, 거사(居士)라고도 한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갈림길(14:12)
좌측으로 영해면 대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등로가 보이나 완만한 직진길로 올라간다
오름길은 뚜렸하다
나라가 힘이 없을때 나무들도 수난을 참으로 많이 당했다
저 상처를 보면서 걷는데 참으로 가슴이 많이 아프다
485봉(14:15)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넘어진 고사목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4:20~30)
안부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면서 뒤처진 조여사님을 10분이나 기다려도
오질않아 하는 수 없이 다시 길을 나선다
우측 능선이 맥길이나 이곳도 사면길을 따른다
무명봉(14:34)
안부로 내려선다
니네들에게 한없이 미안하구나.
그런데 요즘 이 나라 지도층들은 정신을 못차리고 있구나
북측의 귀때기 새파란 넘이 총뿌리를 남쪽으로 겨누면서 시도때도 없이
겁박하는데도 맨날 짝사랑을 하면서 민초들한테는 편가르기로 이념논쟁만
벌이고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 없구나...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승군(僧軍)을 이끌어 왜적을 무찌르고
다시 가야산 해인사로 돌아오면서 쓴 귀거래사(歸去來辭)
절집에서 수행하던 스님도 國難때는 기어이 칼을 들고 왜적을 무찔렀는데
작금의 국방부는 국가를 지킬 생각은 없고 파란집의 눈치나 보고
비위를 맞추면서 국가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하여 참으로 불안하다
三日公行(삼일공행):사흘동안 영의정 벼슬살이 한것은
不逆君命(불역군명):임금의 명을 어길수가 없는 까닭이요,
夜半歸山(야반귀산):한밤중에 산으로 들어온것은
不負師訓(불부사훈)스승의 가르침을 저버릴수 없기 때문이다
사명대사가 쓴 귀거래사(歸去來辭)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들의 흔적이 반갑기만 하다
갑자기 등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525.8봉(14:44)
우측으로 내려서니 등로는 희미하다
희미한 능선을 내려와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갈참나무숲이 무성하다
한참을 내려가니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우측 능선을 버리고 좌측 사면길로 내려간다
안부(14:47)
키작은 금강송 군락지가 나오고 완만하게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묘지를 지나 ...
무명봉에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진다
유인월성김씨 묘(14:52)
묘지 아래로 넓은 임도가 나온다
관리안 된 묘지가 보인다
안부(14:53)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가다보니 좌측으로는 한가닥 철조망이 보인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숲으로 내려서니...
좌측 농장으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자동차가 다닐정도의 넓은 임도를 따라간다
임도 좌우에는 가느다란 금강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갈림길(14:59)
넓은 임도를 따라서 5분정도 걸린 다음에 직진의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입산금지 플랑카드가 보이고...
등로 우측 아래에는 제산처사 김녕김공 묘지가 보인다
묘지를 지나 숲으로 들어가니 등로는 희미하다
이내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좌측으로 철사로 된 철조망이 보인다
철사줄이 나무속에 박혀 버렸다...손톱밑에 가시만 박혀도 아픈데...저건 얼마나 아플까
다시 등로가 보이지 않고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푹파인 계곡이 나온다
계곡을 지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오르막에 오르니 좌측으로 낙엽이 수북한 사면길이 나오고 맥길은 직진의 희미한 등로로 올라간다
오르막길은 낙엽으로 인해 상당히 미끄럽다
571.0봉(15:10~20)
정상에는 움푹 파인 웅덩이같은 것이 보이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만 펄럭인다
이곳에서 뒤처진 조여사님을 기다리며 베낭을 내려놓고 10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오늘 조여사 컨디션이 안 좋은가...처음부터 같이올 걸...괜스레 미안하네
10분을 기다려도 오질않아 다시 길을 나선다
571.0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니 잡풀이 무성한 무명묘지가 나온다
묘지를 지나 숲으로 접어드는데 등로는 아주 희미하다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삼각점이 있는 575.4봉에 도착한다
575.4봉(15:24)
2등 삼각점이 있고 영덕군 영해면, 축산면, 지품면이 만나는 삼면 경계봉이다
정상은 숲으로 가려 아무 볼품도 없고 이곳부터 좌측은 영해면에서 축산면으로 面界가 바뀐다
575.4봉 정상 삼각점(△영덕21 / 79.8 재설)
좌측으로 내려간다
575.4봉으로 내려서니 등로가 흐릿하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트랙을 확인하면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좌측의 희미한 등로를 바라보면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오늘 산행중에 가장 難解한 등로이다.
바짝 신경을 쓰면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소나무 군락지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좌측에 있는 목장으로 이어지는 넓은 도로가 나오고 맥길은 우측으로 향한다
묘지를 지나고...
넓은 공터를 지나 계속해서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노루발도 꽃을 틔울 준비를 한다
갈림길(15:35)
넓은 임도를 따라서 4분정도 걸어오다 직진의 넓은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올라간다
좁은 임도를 따라서 올라가다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오르막의 등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546.5봉(15:37)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희미한 등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길찾기 참으로 힘이든다
내리막길은 잡목의 저항이 너무 심해 좌측으로 꺽어지니 묘지가 보인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오니...
유인경주이씨 묘(15:44)
가시 엉퀑퀴(꽃말:엄격)
줄기는 곧게서고 높이는 50~100cm 정도이며, 전체는 흰 털과 더불어 거미줄처럼
보이는 털이 있으며 뿌리는 꽃 필때까지 남아있고, 줄기 잎보다 크다
줄기는 바소꼴(잎이나 꽃잎 따위의 모양을 나타내는 말의 하나로 대의 잎처럼 가늘고
길며 끝이 뾰족한 모양) 모양의 타원형으로 깃처럼 갈라지고 밑은 원대를 감싸며
갈라진 가장자리가 다시 갈라지고 깊이 패여 들어간 모양의 톱니와 더불어 가시가 있다
꽃은 6~8월에 피며 자주색과 적색을 띠고 있는데 가지와 줄기끝에 두화(頭花:많은 꽃이
꽃대의 끝에 뭉쳐 붙어서 머리 모양을 이룬 꽃가 달린다
총포의 포 조각은 7~8열로 배열하고 안쪽일수록 길어진다
관모는 6~19cm이며 어린 새순은 나물로 먹기도 하고 뿌리는 약용으로 사용하며
열매는 수과(瘦果:씨를 방출하기 위해 쪼개지는 틈이 없고, 한 개의 씨로만 이루어져 있는 마른 열매)로
3.5~4mm이고, 잎은 좁고 녹색이며 가시가 다소 많은 것을 좁은잎 엉퀑퀴, 잎이 다닥다닥 많고
가시가 많은 것을 가시엉퀑퀴, 백색 꽃이 피는 것을 흰가시 엉퀑퀴라고 부른다
묘지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니 시멘트 임도가 나오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내류동(內柳洞) 고개(15:46)
영덕군 지품면 옥류리 내류동에서 축산면 조항리를 넘어가는 고개이다
내류동의 지명유래는 옥류리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붙혀진 지명이다.
영덕군 지품면에 있는 옥류리는 옥류리는 동으로는 축산면 대곡리, 칠성리, 서는 도계리,
남은 율전리, 북은 축산면 조항이며 마을 뒤에는 옥녀봉(玉女峰, 400m)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내류동(內柳洞), 외류동(外柳洞), 음지몰 등이 있는데 음지몰은 옥류리의
동쪽 산 아래에 있어서 산 그늘 때문에 햇볕이 오래 머물지 않는 모서리 마을이라고 하여
음지몰이라 불린다. 공기가 맑고 물이 깨끗하며 젖소를 많이 길러서 살기에 넉넉한 마을이 되었다.
옥류리는 옥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새목산이 있는 축산면 조항리(鳥項里)로 내려가는 길이다
해발 400m나 되는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자연용수가 풍부해서 1960년대에는
70여호 가까이 살았으며 자연마을로는 배끝말, 샛모치, 안새말 등이 있다. 조항리는 새의 목처럼
된 고개가 있다 해서 새목산, 새목, 또는 조항산, 조항이라 하였다. 일
설에는 새가 날개를 펴고 산정(山頂)을 날아가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에 오니 우리를 태우고 온 버스가 왜 서 있다?
낙오자를 태우기 위함인가...동료산꾼들은 진작에 가버렸고 뒤에는 조여사 밖에 없다.
조여사님만 믿고 부지런히 날머리까지 걸어간다
골무꽃(꽃말:의협심)
옛날 여인들이 바느질을 할 때 손가락에 끼고 바늘을 꾹꾹 누르던 것이 골무다.
골무꽃에는 그렇게 우리 아낙네들의 삶이 담겨 있는데 골무라는 이름은 꽃이 진 다음 열매를
감싸고 있는 꽃받침통의 모양이 골무를 닮아서 붙여진 으름으로. 학명은 라틴어로 ‘작은 접시’를
뜻하는데, 꽃받침통에 둥근 접시 모양이 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가 아니라도 이 꽃을 비교적 쉽게 구분할 수가 있다.
골무꽃은 키가 20~30㎝로 작은 편이라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박하고 은은한 멋으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는 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남의 산과 들에 자라는데, 거의 전 세계에서 자라고 있는 들꽃이다.
전체에 긴 퍼진 털이 많으며, 줄기는 높이 20-40cm이며 원줄기는 둔한 사각형으로 비스듬히 자라다가 곧추선다.
잎은 마주나고 넓은 심장 모양 또는 둥근 모양으로 길이 1.0-2.5cm, 폭 1.0-2.5cm이며, 가장자리에 부드러운
톱니가 있으며, 잎자루는 길이 5-20mm다. 꽃은 자주색으로 총상꽃차례로 줄기 끝에 한쪽으로 치우쳐서 2줄로 달린다. 꽃받침잎은 입술모양, 꽃부리는 긴 통 모양의 입술모양으로 끝이 꼬부라져서 곧추서며 길이 18-22cm다.
윗입술꽃잎은 투구모양, 아랫입술꽃잎은 넓으며 자주색 반점이 있다. 수술은 4개 중 2개가 길다.
열매는 분과로 검은색이며 꽃은 6~8월 핀다
임도를 따라서 가는데 따가운 햋빛이 장난이 아니다
임도를 4분정도 걸어서 가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이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가니 산불감시초소가 나온다
산불감시초소(515m:15:53)
산불감시초소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동해바다가 시원스레 보인다
산북감시초소에서 동북쪽으로 영해면소재지가 보인다
영덕군 영해면(寧海面)은 영덕의 옛 지명으로 본래 조선시대 영해부(寧海府) 읍내면(邑內面)과
남면(南面) 관할이었으며 대체로 벌영리 동쪽은 읍내면 관할이었고 그 서쪽은 남면 관할이었다.
1914년 영해군을 영덕군에 폐합하면서 읍내면과 남면 일부를 합쳐 영해면으로 하였다.
이때 면 이름은 영해군 명칭을 따랐는데 영해의 명칭은 고구려 때 우시(于尸), 신라 때
유린(有隣)이었다가, 고려시대에 와서 예주(禮州)·덕원(德原)·단양(丹陽)·태제(汰諸)를 거쳐
충선왕 때 지금의 이름이 비로소 만들어졌다. 『안동도회좌통지도』(영해)를 보면, 읍치는
2개의 성문을 가진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동쪽으로 관어정(즉 관어대)과 망일봉도 보인다.
지명 유래는 이곳의 바다가 파도 없이 잔잔한 때가 많으므로 ‘바다가 편한 곳’이라는 뜻에서 영해라
한 것으로 추측되며 이곳은 고려 말기에 왜구가 여러 번 침입하여 전투가 있었는데, 특히 영해
앞바다의 축산도(丑山島)에서는 공민왕 때 왜선을 크게 쳐부수기도 하였다
감시초소 우측으로 내려간다
가야할 국사당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급경사의 내리막길에는 폐초소가 쳐박혀 있다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인다
급경사를 내려오니...소나무 군락지들이 보인다
다시 490봉으로 올라간다
490봉(16:01)
490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다시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로 내려서고
또 다시 임도를 따라서 간다
임도 옆에는 금계국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계곡같은 등로로 올라간다
갈림길(16:10)
480봉(16:15)
우측으로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보인다
우측으로 등로가 트이고 분기점에서 뻗어나가는 낙동정맥 능선이 보인다
등로는 아주 뚜렸하다
490.4봉(16:18)
좌측으로 내려서니 무명묘지가 나온다
안부를 지나니...
무명봉이 나오고...
다시 등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뚜렸한 등로를 만난다
아주 편안한 길을 걸어간다
잠시 후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6:25)
다시 등로로 내려온다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좌측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내리막길에서 또다시 좌측으로 한번 더 꺽어져 내려간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16:44)
무명봉을 내려서니 묵은 묘지가 보인다
낙엽이 수북한 임도에서 좌측 능선으로 내려간다
다시 등로는 희미해지고...
금새 뚜렸한 등로를 다시 만난다
갈림길(16:40)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446봉(16:45)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내려서니 금강송의 군락지가 나오고 뚜렸한 등로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 우측에는 망가진 송이막터가 보인다
좌측 등로가 맥길이나 사면길로 걸어간다
기린초(麒麟草:꽃말:소녀의 사랑)
다년생 초본으로 근경이나 종자로 번식하며 중북부지방에 분포하며 산지의 바위틈에서 자란다.
군생으로 나오는 원줄기는 높이 15~30cm 정도이고 뿌리가 굵으며 어긋나는 잎은 길이 2~4cm,
너비 1~2cm 정도의 도란형 또는 넓은 도피침형으로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고 양면에 털이 없다.
6~7월에 개화하며 산방상 취산꽃차례에 많이 달리는 꽃은 황색 ‘가는기린초’와 달리 줄기가
총생하며 때로는 가지가 갈라지고 잎은 도란상 또는 도란상타원형이다.
어릴 때에는 식용하고 봄에 어린순을 삶아 나물로 먹거나 데쳐서 초고추장이나 된장에 무쳐 먹는다.
데친 나물을 김밥에 넣어 먹기도 한다.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16:50)
임도에서 능선으로 올라가면서 황대장님한테서 전화를 하는데
이곳에서는 전화가 터지질 않아 통화가 되지 않으니 난감하다
망가진 송이막터도 보인다
국사당산으로 올라간다
갈림길(16:55)
능선으로 올라서니 좌측에서 올라오는 등로가 보인다
국사당산(國祠堂山:516.4m:17:15)
정상에는 산불무인감시 카메라와 3등 삼각점이 있고 동쪽으로는 동해바다가 시원스레 보인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 화천리와 지품면 옥류리·삼화리 그리고 축산면 대곡리·조항리 등지에 걸쳐 있다.
신라시대에 나라에서 이 산에 사당을 짓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였다고 전해져 국사봉(國祠峰)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하며 산 밑으로는 축산면 도곡리와 영덕읍 화수리를 연결하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지금의 국사당산을나타낸 것이 분명하다. 『조선지지자료』에 남면 대곡리 국사단(國祠壇)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보아 산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어 산 명칭을 '국사당산' 혹은 '국사봉'이라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국사당산 정상에서 바라본 영덕앞 바다
국사당산 정상 삼각점(△영덕302 / 2004재설)
국사당산 정상의 모습
직진의 능선으로 내려간다
능선으로 내려가는데 황대장님께 전화가 온다...빨리 오라고...
무명묘지를 지나서 계속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가 없는곳을 잡목을 헤치며 내려서니 동료산꾼들이 기다리는 화천리 임도가 나온다
화천리 임도(17:30)
기다리던 조여사는 먼저 와있다...내용인즉 알바해서 중탈을 했단다
졸지에 맨 꼴찌로 와서 상당히 미안하다...영덕에서 출발하여 서울에 오니
밤 10시 30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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