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0년 06월 27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비 온뒤의 높은 습도...바람한 점 없는 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7.2km+들머리 0.3km / 7시간 1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저수령-해맞이 제단-분기점-헬기장-폐헬기장-안부-용두산-안부-934.7봉-안부
무명봉-무명봉-874.9봉-묘지-안부-묘지-안부 갈림길-암봉-777.2봉
월성이공 묘-해주최공 묘-귀내기재-649봉-유인안동권씨 묘-667.6봉
임도삼거리-770봉-806봉-폐헬기장-묘지-암봉-804.8봉-암봉-무명봉-무명봉
폐헬기장-매봉-폐헬기장-용문사 갈림길-삼면경계봉-안부-무명봉-768.5봉
안부-무명봉-고개-무명봉-784.6봉-암봉-암봉-암봉-811봉-813.7봉-826.2봉
무명봉-용문산-776봉-암봉-무명봉-656.7봉-사부령-555.3봉-602봉-632봉
636봉-안부-625.4봉-갈림길-무명봉-519.9봉-묘지-502.9봉-밀양박씨 묘
낙동강 홍수경보시설-성황당재
☞ 소 재 지: 충북 단양군 대강면 / 경북 문경시 동로면 / 예천군 효자면(구 지명:상리면), 용문면
대부분을 나홀로 지맥 산행을 하는 범여로서는 늘 접속구간이 어려운 들머리가 걱정이다
10여명 단위로 맥 산행을 하는 산악회가 있어서 가끔은 따라가 보지만 나하고는 컨셉이
잘 않맞는 같고, 혼자서 가자니 늘 접속구간과 귀경길의 교통이 문제로 一長一短이 있다.
1, 산악회로 따라서 가는 장점은 경비 절감과 귀경길의 걱정을 덜지만 단점은 수술후의
체력 저하로 인해 산행 속도가 현저하게 저하되어 동료산꾼들의 민폐인 것 같기도 하고
눈치도 보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맥꾼들이 그렇지만 이 분들은 잘 쉬지도 않고 먹지도
않으며 오직 몇 km를 몇 시간안에 걷는다는 그런 개념인 것 같아 내 스타일은 아니다.
난 볼 것 다보고 막을 것 먹어 가면서 예를들어 남들이 3구간 갈 때 난 4구간을 걷는 스타일이다
2, 나홀로 산행의 장점은 모든게 여유롭지만 단점은 경비가 많이 든다는 점이이지만
가급적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나홀로 다니는 편이다
집이나 친구들은 너무 무리하지 않느냐고 걱정이 태산이지만 내가 이 만큼이라도
살아있다는 것은 목숨을 걸만큼 죽기 살기로 걸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번 달에는 오랫만에 친구들과 골프 라운딩도 자주 나갔고, 산도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남원으로 귀촌한 젠틀맨님께서 이번주 토요 무박으로 한강기맥을 끝내기
위해 예전에 다녔던 산방의 기맥팀에 졸업하러 온다고 하니 안 가볼 수가 없어서
토욜 혼자 서울에서 그리 멀지않은 지맥 첫 구간을 끝내고 합류할 계획을 세우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대충 베낭을 꾸려서 단양을 가기위해 청량리역으로 향한다.
Gentlemen님! 말 그대로 멋쟁이며 신사의 품격을 가지신 분이다
나와 인연을 맺은것은 2010년도인가 낙동정맥길에서 시작하여 호남정맥, 진양,호미,
팔공, 금남기맥 등 둘이서 지맥길을 참으로 많이 걸어서 서로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아는
사이고 산행에 관한 한 나보다는 한참 고수이다
지금의 맥꾼들이야 스마트폰만 켜면 모든게 해결되었지만 10년전만 해도 오직 선답자들의
산행기와 지도, 나침판만 가지고 독도를 하면서 걸었으니 참으로 隔世之感이다.
연비지맥 첫 구간을 같이 걷고 안 걸었으니 한 3년전도 된 모양이라 보고싶다
금천(국사)지맥개요도
금천(국사)지맥은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저수령을 지난 934m봉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와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 및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의 경계점)에서 남서쪽으로 가지를 쳐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로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37.8km의 산줄기로, 분기점에서 시작하여 달지리에서 그 맥을
내성천과 금천의 합수점에 넘겨주고 있다.
이 산줄기를 따라가면 용두산(976m), 매봉(865.3m), 용문봉(771m), 국사봉(727.6m) 등을
만날 수가 있고, 이 산줄기의 서쪽에는 수진천, 금천, 기천 등이 내성천으로 흐르며, 이 산줄기의 동
쪽에는 한천, 금곡천, 중평천 등이 내성천으로 흘러가는데 예천군 용궁면 이안2리 마을앞 내성천과
금천이 만나는 도상거리 39.9km 실거리 43km의 산길로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금천지맥이라 부르고 있다
금천(국사)지맥 전체지도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청량리발 → 단양행 06:40분 열차표
이른 아침에 집을나서 버스를 타고 청량리역 앞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06시 10분이다
정류장앞 노점에서 이곳에 올 때 가끔 이용하는 김밥집에 들려 1줄에 1,500원짜리 김밥 2줄에
오뎅 한꼬치(합4.000원)로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열차를 타러 청량리역으로 향한다
청량리역(06:30)
06시 40분 정시에 출발한 열차는 양평과 양동을 거쳐 원주역은 들리지 않고 곧 바로
제천역으로 향하더니만 이곳에서 조금 버벅거리면서 예정시간보다 4분을 연착한 다음에
09시 정각에 단양역에 도착한다
열차에서 내려 역광장으로 향한다
단양역 버스 시간표
단양역(丹陽驛:09:00)
단양역은 난생 처음으로 와 본다
간간히 단양을 와보긴 했지만 우리집에서 기차역이 멀어 대부분을 버스로 이용했다.
단양(丹陽)은 연단조양(鍊丹調陽)의 가취(佳趣)에서 시작되었으며 『연단조양』의 연단은 신선이
먹는는 환약을 뜻하며 조양은 빛이 골고루 따뜻하게 비춘다는 의미로 신선이 다스리는 살기좋은
고장이란 뜻으로 해석하면 되겠다
단양역에서 남조천을 끼고 927번 도로를 따라서 대강면 지역을 지나간다
이곳 대강면은 참으로 맛있는 대강막걸리가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택시를 타고 좁은 길을 올라가는데 차가없어 호젓하게 저수령으로 향하는데 단양8경의 하나로 유명한
기암(奇巖)인 사인암(舍人巖)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보인다
사인암은 사선대 아래쪽에 있는 바위로, 기묘한 바위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고 그 밑에 깊은 소(沼)가 있다.
고려 때 역동선생으로 불린 우탁이 ‘사인’이라는 벼슬을 살 때 늘 이곳에서 노닐었던 곳이라 하여 군수
임제광이 명명하였다 한다
택시는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면서 소백산 농장을 지나 저수령으로 향한다
단양역에서 택시를 타고 30여분만에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저수령에 도착한다
택시기사님이 여자분이신데 백두대간을 오가는 등산객을 많이 태운 탓인지
손님을 다루는 솜씨가 범상치 않다...택시요금이 29.800원이 나왔는데 싹뚝 잘라서
25,000원만 달라고 하니 갑자기 양넘 지갑을 줏은 느낌이다
그러면서 행여 다음에 올 일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명암까지 주신다...복받을깁니다
인증샷
지난 현충일인 6월 6일에 백두대간 3차 땜방으로 이곳에 왔으니 정확하게 3주만에 다시 왔다
엊그제께부터 비가 온 이후라 그런지 흐린 날씨에 무척이나 습하고 해발 850m나 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바람한 점이 없으니 오늘 산행이 쉽지 않음을 예고한다
저수령(低首嶺:850m:09:40)
경북 예천군 상리면(현재지명:효자면) 용두리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를 잇는 고개로
경계로 한 도계(道界)로 927번 지방도가 지나며 옛부터 저수령이라고 불렸다.
지금의 도로를 개설하기 전에는 험한 산속 오솔길로 경사가 급하며 지나다니는
길손들이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하여 붙혀진 지명이라는 설과 저수령에서 은풍곡(殷豊谷)까지
피난길(避難路)로 많이 이용되어 왔는데 이 고개를 넘는 외적(外敵)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고려 태조 11년(928년)에 고려국의 남쪽 城인 고창군을 후백제의 견훤이 포위하자
왕건은 유 금필을 대장으로 삼고 이곳 저수령전투에서 크게 이겼다는 기록이 있다
산행을 준비하며 스마트폰 오룩스맵 트랙을 열어보니 얼마전에 복구한 트랙에 에러가 발생한다
요즘은 예전과는 달리 지도나 나침판을 가지고 다니지 않기에 참으로 난감하다
어쩌지...너무 믿고 공부도 거의 하지않고 왔는데...
어찌어찌 하여 다행히 트랙은 보이나 주변의 산봉우리나 지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 나홀로 걸은 산행 짬밥이 얼마인데...부딪혀보지 뭐...봉사 문고리잡는 기분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9:50)
능선에 올라서며 해맞이 제단석을 만난다
저수령에서 지맥 분기점까지 거리는 0.3km 밖에 안되나 아주 빡센 오르막이다
범여는 초반에 이런곳이 걸리면 쥐약이다...습도 탓인지는 몰라도 심장이 터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온다...수술후부터는 몸뚱아리가 날씨에 너무 민감한 듯 하다
이 고통도 어차피 내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그래 피할 수 없으면 고통도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저승의 문 턱까지 간 내가 이만큼 걸을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면 살아야제
급경사의 오르막길에는 산수국이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지맥길 갈림길에 서 있는 이정표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살짝 올라섰다가 좌측으로 들어선다
지맥 분기점(934m:10:00)
지맥 분기점을 확인하고 묘지 좌측으로 내려간다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걸려있다
헬기장(10:02)
헬기장의 좌측 숲속으로 들어간다
빛바랜 이정표가 숲 속에 숨어있다
곧이어 철쭉 군락지가 나오며 등로는 뚜렸하다
숲은 너무 우거져 있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은 전혀 없다
행여 길을 잃을까봐서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폐헬기장(10:10)
안부(10:12)
안부를 지나면서 암릉구간 정상에 있는 용두산이 보이고 우측으로 우회하는 등로도 보인다.
직등하여 정상으로 올라서니 암릉위에 예천군에서 烏石으로 설치한 정상석이 있다
용두산을 오르면서 바라본 예천군 효자면 용두리(龍頭里)의 모습
예천군 효자면에 있는 용두리는 단양군 대강면에서 저수령을 지나 927번 지방도를
따라서 내려가면 마을이 소백산맥 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안골, 저수골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내동, 야목, 음달, 원용두가 있으며 내동은 용두리에서 가장 안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교통이 불편하고 농사짓기가 곤란하여 현재는 전 가구가 타동리로 이주하여 잡초만 무성하다.
야목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가 ‘어조사 야(也)’자 모양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음달은 마을 뒷산이 높아서 해가 일찍 지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몹시 높고 실어서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는 저수령 앞에 있는 마을이다.
원용두는 분지지형의 마을로 마을 뒷산의 형상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두리 너머로는 저수령에서 묘적령으로 이어지는 배재 -싸리재 능선이 보이며 맞은편에는
지난해 묘적령에서 출발하여 옥녀봉, 자구산 능선을 걸었던 한천(자구) 지맥 능선이 보인다
용두산(龍頭山:976.8m:10:13)
경북 예천군 효자면 용두리와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은 암릉구간으로
되어 있으면 정상에 올라서면 북동쪽으로는 백두대간 능선이 시원스레 보이나 오늘은 비가 온 뒤라
그런지 모든게 흐릿하게만 보여서 아쉽기만 하다.
지명의 유래는 산세가 ‘용의 머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인증샷
정상이 너무 좁고 암릉구간이라 삼각대 펴기도 그렇고 베낭위에 카메라 놓고
찍기도 그렇고 하여 인증샷을 남기는데 너무 이상하게 나와 버렸다
용두산 정상에서 만난 돌양지꽃
높은 습도에다가 바람한 점 없는 날씨라 초반부터 상당히 지친다
용두산 정상...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산이라 10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용두산에서 내려서면서 독도에 아주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용두산을 내려서면 직진으로 용두리 음지마을로 내려가는 아주 좋은 길이 나오는데
지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 다음에 좌측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등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어차피 트랙은 무용지물이라 조심스럽게 感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
지맥길을 오래 다닌 경험에 의하면 선답자들의 띠지가 잘 보이지 않으면 일단
의심하고 주의해야 하며, 좋은 길이 계속되면 다시한번 길을 확인해야 한다
좋은 길로 지맥길이 이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곳에서 의심하지 않고 무심코 갔더라면 대형 알바를 할 뻔 했다
우측으로 내려서자마자 다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는데 등로는 보이지 않는다
등로는 보이지 않는데 선답자의 띠지 2개가 걸려있어 안심하고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급경사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좌측에 암릉구간이 나온다
미역줄기가 점령해 버린 등로에 잠깐 갇혀 버린다
간간히 만나는 시그널이 왜 이리도 반가운지...
안부(10:30)
안부에서 보이지 않는 등로를 헤치며 934.7봉에 올라선다
934.7봉(10:37)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0:40)
무명봉(10:42)
짙은 녹음으로 인해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조그만 암릉이 보이고...
꼬리 진달래가 하얀 꽃을 피우고 있다
다시 낙엽이 수북한 등로를 따라서 안부로 내려선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낙엽이 수북하여 알바를 하지 않기위해 바짝 신경을 쓰면서 능선에 올라선다
무명봉(10:50)
봉우리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등로에 쌓인 낙엽이 비에 젖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낙엽은 생각보다 많이 쌓여있어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좌측으로는 낙엽에 묻혀버린 희미한 사면길이 보이는데 이 길로 내려가면 효자면 용두리
명봉사와 경천선원 자적선사 능운탑비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명봉사(鳴鳳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로 875년(헌강왕 1)에
두운(杜雲) 선사가 창건하였으며, 1662년(현종 3) 화재로 전소된 뒤 여러 승려들이 힘을 모아 중건하였다.
1668년 다시 화재로 소실되자 신익(信益) 등이 중창의 뜻을 세우고 10여 년 동안 시주를 얻어 크게 중창하였다.
1807년(순조 7) 행선(幸善)이 중수하여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6·25전쟁 때 전란으로 소실된 것을
1955년 주지 만준(滿俊)스님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웅전과 요사채 뿐이며, 대웅전 안에는 6·25전쟁 때 유일하게 소실되지 않은
대세지보살상(大勢至菩薩像)이 봉안되어 있다.
문화재로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호인 명봉사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鳴鳳寺境淸禪院慈寂禪師凌雲塔碑)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7호인 명봉사문종대왕태실비(鳴鳳寺文宗大王胎室碑)가 있다.
이 중 자적선사탑비는 941년(태조 24) 자적의 인격과 공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현재 귀부의 머리는 떨어져 없어졌고, 비신(碑身)은 높이 1.9m, 두께 0.2m로 많이 마멸되었다.
이 비의 음명(陰銘)은 1976년에 판독되었는데, 신라에서 고려로 접어드는 당시의 과도기적 이두문자
연구에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그 내용은 당시 중앙 관서인 도평성(都評省)에서
승도(僧徒)들에게 내린 글로, 행정적인 양식을 갖춘 문서이다.
문종대왕태실비는 원래 명봉사 법당 뒤의 산봉우리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발굴하여
현재 비신만을 이 절 경내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명봉사의 부속 암자로는 고려 태조 때 자적이 창건한 내원암(內院庵)이 있다
나뭇가지를 피하면서 874.9봉으로 올라간다
등로 우측의 나뭇가지 사이로는 지난 겨울에 걸었던 영강(운달)지맥 능선이 희미하게 보인다
874.9봉(10:58)
직진의 암릉길로 내려가지 않고...
우측의 사면길로 내려가니...
묘지가 나온다
묘지에 피어있는 나리꽃 자매
묘지(11:02)
묘지 우측으로는 3주전에 걸었던 백두대간 황장산과 그 너머로 대미산과 운달산이 보인다
영강(운달)지맥을 걸을때는 동쪽에서 보이던 천주봉과 공덕산은 오늘은 서남쪽에 있다
천주봉(836m)은 하늘 높이 우뚝 솟아 기둥처럼 보인다 하여 하늘 받침대라는 뜻의 천주(天柱)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지형도에는 천주봉이라 표기되어 있고, 옛 기록에는 천주산이라고 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큰 붕어가 입을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모양이라 예천 사람들은 붕어산이라고도 부른다
우측에 보이는 공덕산(功德山:913m) 은 '공과 덕이 많은 산'이라는 뜻인데, 지형도에 표기되어 있는
산이름일 뿐 불교계에서는 이 산 기슭에 자리한 천강석조사불상과 관련지어 사불산으로 부른다.
사불산이라는 산이름을 낳게 한 사불암은 신라 진평왕 9년(587년) 하늘로부터 붉은 비단으로 싸여
산중턱의 커다란 암반 위에 내려 앉았다고 전해지며, 진평왕이 이 소식을 듣고 직접 가본 뒤 바위곁에
절을 세운 것이 대승사라는 전설도 전한다
묘지로 올라오는 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누가누가 더 크나
묘지를 지나면서 너무 길이 좋아서 선 채로 주위를 살피면서 맥길을 확인한다
계속되는 뚜렸한 길
암릉 사이에 핀 기린초
안부(11:08)
안부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사면길이 보이나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능선에 올라선 다음에 우측으로 내려간다
뒤돌아보니 묘지 뒷쪽에 암릉이 보인다
묘지(11:10)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안부 갈림길(11:11)
묘지 우측으로 동로면 석항리 군마마을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가 보인다
석항리에 있는 군마는 가장 오래된 마을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구마라고도 한다
안부에서 바라본 임도의 모습
안부에서 빡세게 오르막을 올라서는데 자꾸만 힘이 부친다
우회길이 있다마는 직진 능선의 암릉길로 올라간다
암릉 구간에는 꼬리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꼬리 진달래(꽃말:사랑의 기쁨)
지명의 유래는 가지 끝에 흰색의 꽃이 꼬리 모양으로 피어 있다 하여 진달래라는 이름에 꼬리라는
접두사가 붙었는데 다른 이름으로는 진달래를 뜻하는 참꽃나무에 겨울에도 상록의 잎이 지지 않는다
하여 겨우내 살아있는 '겨우살이'라는 식물 이름을 합하여 참꽃나무겨우살이라는 이명(異名)이 있다
여타 꽃에 비해 화려하지 않지만 강원도 및 경북 일원과 충북지역에 자라기에
자생지가 한정되어 있는 관계로 수수하지만 귀한 꽃 대접을 받는다
진달래와 철쭉에 이어 털진달래 마저 진 뒤 땡볕이 작열하는 유월에 나타나 칠월까지 피는 꽃이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니 시차를 두고 피는 꽃이 꼬리진달래다
암봉(11:17)
우측에서 올라오는 사면길을 다시 만나고...
777.2봉으로 향한다
777.2봉(11:22)
직진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등로는 아예없고 선답자의 흔적도 보이지 않으니 상당히 불안하다
주위의 능선을 확인하면서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출발전 트랙도 확인하지 않고 지도 한장 안 가지고 나선 산행이 후회스럽다
안 그래도 요즘 다음 블로그에서 본인의 동의도 없이 프로그램을 바꿔 버리는
바람에 10년 넘게 관리해 온 자료가 뒤죽박죽이 되어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계속 내려간다
조그만 암릉을 지나고...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등로 아랫쪽에 묘지가 보인다
월성이공 묘(11:32)
묘지 상석(床石)에는 通訓大夫行淑陵參奉月城李公 , 淑人達城西氏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참봉은 조선시대 문관 종구품의 최말단 관직으로 숙릉참봉(淑陵參奉)은 왕릉을 관리하는 직책이다.
품계(통훈대부)와 직책(릉참봉)이 일치하지 않을 때 行 또는 守를 쓰는데, 행수법을 떠나서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데 참봉의 품계는 장사랑(9품) 정도일텐데 통훈대부라니, 부인도 淑人으로 격상시켰다.
후손들이 조금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기록하지 않았나 싶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문·무 관료들에게 적용된 인사법규의 하나로 행수법(行守法)이란
제도가 있는데 품계가 높으면서 관직이 낮은 경우에는 “行”이라 하고 반대로 품계는 낮은데 관직이 높을
경우에는 “守”라 하여, 품계의 뒤 소속관청 명칭 앞에 行 또는 守를 붙여 구분하였다.
이를테면 종2품 가선대부의 품계를 가진 사람이 정3품직 도승지가 되면 嘉善大夫行承政院都承旨라
하였고, 반대로 정2품직인 대제학이 되면 嘉善大夫守弘文館大提學이라 쓴다
등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우측의 희미만 등로를 내려서 가니 선답자의 시그널이 보이는데 좌측 사면길로 가란다
되게 헷갈린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잡풀과 고사리가 무성한 묘지가 보인다
처사해주최공 묘(11:38)
묘지를 지나 숲속으로 들어간다
안부를 지나 올라서니 조그만 봉우리가 나온다
무명봉을 내려서니...
키작은 소나무가 빽빽한 소나무가 틈을 주지 않는 동물이동통로가 나오는데
이곳이 귀내기재이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아 정말 개고생을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동물이동통로가 아닌가 싶다
귀내기재(11:42)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와 예천군 효자면 명봉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901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고개 위로는 동물이동통로가 있는데 어찌나 잡목이 빽빽하던지 아래로 지나는 도로는 보이지도 않는다
지명은 고개 우측인 문경 석항리에도 귀내기 마을이 있고, 예천 명봉리에도 귀내기 마을이 있다
귀내기 마을의 석항리 자료에는 구낙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구낙이는 어느해 여름 홍수가 심할 때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천둥번개가 치더니 큰 거북이 한 마리가 빗줄기를 타고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리고 한다
천신만고 끝에 통과하여 뒤돌아 본 귀내기재의 동물이동통로 모습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안부를 지나 오름길로 올라간다
숲이 우거진 등로를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으니 자꾸만 불안다
649봉(11:54)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 좌측 아랫쪽으로는 임도가 보인다
무명봉을 넘어서 내려서니...
등로 아래로 묘지가 보인다
유인안동권씨 묘(12:02)
안동권씨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667.6봉(12:05)
667.6봉 삼각점(△단양455 / 483재설,1978건설부)
667.6봉 정상에서 삼각점을 끼고 우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내려간다
이곳에서도 독도에 조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직진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정상에서 1분정도 내려오니 무명묘지가 보이고 안부를 지난다
베낭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를 들어면서 걸어가는데 갑자기 후다닥하는 소리가 들려서
앞을보니 등로에서 잠을 자고있는 뫳돼지 한마리가 혼비백산을 하면서 도망을 간다
무명봉을 지나고....
좌측 아래로 보이는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를 따라서 3분 정도를 걸어가니 Y자 임도 삼거리가 나온다
임도에서 만난 뱀딸기...어렸을 때 많이 따먹었제
임도 삼거리(12:20)
임도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이정표에 하늘자락공원이란 팻말이 보이는데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에 조성한
하늘자락공원은 해발 800미터라는 지리적 위치로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휴양지란다
갈 길 바쁜 맥산꾼이야 그런데는 관심조차 없다
임도 안내문 간판 뒷쪽 절개지로 올라간다
제대로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계속되는 오르막길
가느다란 금강송도 간간히 보인다
능선을 한번 꺽어...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성한 잡목구간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770봉(12:35)
770봉 정상은 폐헬기장인데 키작은 소나무와 보도블럭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소나무를 헤치고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770봉 정상인 폐헬기장에서 우측 아래로 내려서는데 길을 찾는데 애를 먹는다
급경사로 내려서니...
희미한 등로가 나오고...
우측에는 나무에 걸려있는 낡은 철조망이 보인다
철조망을 끼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806봉(12:45)
806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가니 등로는 보이지도 않는다
조금을 더 걸어가니 또 다시 폐헬기장을 만난다
폐헬기장(12:47)
좌측으로 내려가니 잡풀이 무성한 묘지가 나온다
오늘은 나리꽃을 자주 만난다
묘지(12:48)
묘지를 지나서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노루발도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구나
암봉(12:52)
또다시 등로에서 잠을 자는 뫳돼지와 조우를 한다
그런데 야들은 착해서 그런지...라디오 음악소리 36계 줄행랑을 친다
804.8봉(12:54)
안부를 지나서 ...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등로는 아예없고...
좌측으로 살짝 우회를 한다
암봉(12:58)
물기가 약간있는 암릉구간을 조심스럽게 통과한다
정상적인 등로가 나오고...
이곳 암릉구간을 오를수가 없어서 우측으로 우회를 한다
다시 마루금으로 복귀를 한다
무명봉(13:05)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니 맥길을 제대로 가고있는 셈이다
등로 우측 아래에는 뭘 개발하려는지 산을 다 까뭉개고 있다
이른 아침에 밥을 먹은 탓인지 배가 고프다.
오늘은 베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 점심은 크림빵 하나와 두유로 점심을 해결한다
높은 습도와 바람한 점 없는 날씨로 인해 목이 마르지만 물을 조절하면서 마신다
암릉구간을 지나고...바람이나 불어주면 훨씬 산행이 편하련만...
무명봉(13:25)
우측으로 내려간다
폐헬기장(13:28)
폐헬기장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니...
매봉 정상에 도착한다
매봉(鷹峰:866.6m:13:35)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와 예천군 효자면 명봉리, 용문면 지내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영양남공 묘지가 자리를 잡고 있고, 묘지 맨 위에 3등 삼각점이 박혀있으며 예천군에 설치한
정상목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응봉(鷹峰)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매봉 우측 아래에는 870년(신라 48대 경문왕 10년)에
예천 출신 두운선사(杜雲禪師)가 창건한 천년고찰 용문사(龍門寺)가 있다.
용문사에는 용문사 대장전(보물 145)과 용문사 윤장대(보물 제684)가 있으며
매봉 좌측 아랫쪽에는 정감록에 기록되어 있는 우리나라 십승지의 하나인 금당실 마을이 있다
매봉 정상에 있는 삼각점(△302재설/1998.6건설부)
매봉 아래에는 영양남공의 묘지가 자리잡고 있다
산으로님의 고향이 예천이랬던가?
그러고보니 내가 아는 知人들 중에는 예천출신이 참으로 많다
대한산경표의 저자 박흥섭(산으로님). 산에 관한한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 온누리님도 이곳 출신이다
매봉 아래로 내려서니 폐헬기장이 나온다
폐헬기장(13:43)
헬기장을 통과한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용문사 갈림길(13:45)
예천 용문사
예천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 10년(870) 두운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오며 고려태조 왕건이 삼한을
통일할시 이곳에 이르르 운무로 인하여 앞을 분간 못하고 길을 헤맸는데,두마리의 용 이 나타나
왕건을 인도하여 후 에 용문사라 칭하고 불사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용문사 주 불전인 "보광명전"이건물은 화재로 인하여 소실된것을 1984년 복원을 하였는데 현판 글씨는
해인사 주석하였던 송월 스님 글씨며,.보광명전 안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아미타불,약사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세 불상중 아미타 불상에서 1515년에 중수한 발원문이 발견되어 이아미타 불상이 보물1637호로 지정 되었다
우리나라에 3대 용문사가 있다고 하는데, 용의 머리 부분인 양평 용문사,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남해 용문사,
그리고 용의 심장에 해당하는 예천 용문사가 그것이라는데, 예천 용문사는 신라시대(870년) 두운(杜雲)선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로, 보물이 많기로 유명하다(보물 9점). 특히 윤장대(輪藏臺 보물 684호)로 유명한데
윤장대는 보물 145호인 대장전(大藏殿) 안에 설치되어 있고, 팔각형의 원통 모양으로 대장경을 그 속에 넣어
돌리며 예불을 보는 도구로. 다른 절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불교 공예품이다.
용문사 대장전(大藏殿)...사진 펌
대장전과 윤장대는 고려 명종 3년(1173년) 국난(김보당의 난) 극복을 위해 조응대선사(祖膺大禪師)가
발원하고 조성한 것으로, 고대 건축물로는 매우 드물게 발원자와 건립시기, 건립목적이 분명하게
(重修龍門寺記/1185년) 드러나 있다.
대장전과 윤장대는 초창 이래 여러 차례 수리된 것으로 확인되는데, 최근 동(오른쪽)* 윤장대에서
확인된 천계오년(天啓午年, 1625) 묵서명과 건축의 양식으로 미뤄볼 때 17세기에 수리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용문사 윤장대(輪藏臺:국보제328호)...사진 펌
윤장대는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회전식 경장(經藏)으로 전륜장, 전륜경장, 전륜대장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다는 공덕신앙이 더해져 불경을 가까이
할 시간이 없는 대중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윤장대는 고려 초 중국 송대(宋代)의 전륜장 형식을 받아들여 제작한 것으로 생각되며, 영동 영국사와
금강산 장안사 등에도 윤장대 설치 흔적과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현재는 예천 용문사 윤장대만이
유일하게 같은 자리에서 846년 동안 그 형태와 기능을 이어오며 불교 경장신앙을 대변하고 있다.
대장전 내부 양쪽 옆면 칸에 좌우 대칭적으로 1좌씩 설치되어 있으며, 8각형의 불전 형태로 제작되어
중앙의 목재기둥이 회전축 역할을 하여 돌릴 수 있다. 8각 면의 창호 안쪽에 경전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용문사 주차장 갈림길을 지나 능선에 올라선다
삼면 경계봉(13:46)
용문사 주차장가는 갈림길에서 1분정도 지나니 3면 경계봉이 나온다
문경시 동로면과 예천군 효자면, 용문면이 만나는 꼭지점 봉우리로 좌측은 저수령에서
이곳까지 걸어온 예천군 효자면과 작별은 하고 예천군 용문면으로 면계가 바뀐다
이곳은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직진의 뚜렸한 등로는 어림호로 가는
길이고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졌다가 곧바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야한다.
나는 오늘 봉사 문고리 잡는 식으로 산행을 하다가 보니 등로가 좋으면 무조건 의심한다
뚜렸한 직진 등로에서 유심히 살피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측 땅바닥에 선답자의 띠지 하나가
떨어져 있어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맥길이 우측으로 이어지는게 아닌가
우측으로 꺽어졌다가 좌측 내리막으로 가는데 등로는 아예없다
안부(13:48)
등로가 안 보이는곳을 2분정도 내려오니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안부에 도착한다
안부에서 낙엽이 푹신한 능선으로 오르는데 좌측으로 낙엽에 묻힌 사면길이 보인다
이곳으로 가면 용문면 내지리 내동마을 가는 길인데 이 지역 사람들의 샛길인 모양이다
용문면에 있는 내지리(內地里)는 남쪽에 금당지라는 저수지가 있고 신라시대 창건된 용문사가 있다
그리고 용문사 경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예천 폐비윤씨 태실이 있는데 이 태실은 1478년(성종 9)에
조성된 성종의 妃이자 연산군의 生母인 폐비윤씨의 태실이다.
우측으로 사면길이 있다마는 직진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3:53)
안부에 내려섰다가 다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을 지나고...
사면길을 따라서 768.5봉 정상으로 올라간다
768.5봉(14:00)
산꾼도 아니여
능선에서 내려오니 나무가지에 막걸리통 너댓개가 걸려있다.
여기가 재활용 분리수거장인줄 착각하진 않았을테고...
막걸리통은 부산에서 생산되는 생탁 막걸리이니 그쪽 확률이 높다
이런 자는 맥 산꾼의 자격도 없는 자이다
자존심 강하고 멋쟁이가 가장많은 부산 맥산꾼들 쪽팔리게 하지마소
펑퍼짐한 봉우리를 지나...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4:03)
무명봉(14:05)
무명봉을 내려오니 조금전에 헤어진 우회길을 다시 만난다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가니 움푹파인 고개같은 곳이 나온다
고개(14:09)
우측으로는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 솔토매기 방향이고 좌측은 예천군 용문사쪽이다
고개 좌측으로 살짝 돌아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4:16)
희미한 등로로 내려서는데 간간히 나뭇가지에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안부에 내려섰다가 올라서니 784.6봉이 보인다
784.6봉(14:19)
784.6봉을 내려와 조그만 봉우리를 넘은 다음에...
암릉구간의 날등으로 올라간다
길은 없고 암릉이 젖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암봉(14:25)
암봉에서 바라본 영강(운달)지맥 능선의 모습
맞은편에는 예천 양수발전소 상부댐이 있는 어림호 뒷산이 보인다
양수발전소란 잉여 전력을 이용하여 펌프로 고지대의 저수지에 양수하여 물을 저장한 다음에
필요한 시기에 이 물을 이용하여 발전하는 방식의 발전소를 말하는데, 2012년에 개통된
예천 양수발전소는 국내 최고 단일용량(40만KW)을 자랑하며 상부댐(어림호)의 물이 하부댐(송월호)으로
떨어지면서 낙차의 힘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고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님의 풀꽃
계속해서 암릉구간을 곡예하듯 걷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귀경길 버스 시간이 걱정된다...편안한 사면길을 따라갈 걸...
암릉구간에는 귀한 꼬리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암봉(14:28)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암봉(14:33)
조금전에 헤어진 우회 사면길을 다시 만난다
811봉(14:37)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조그만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등로 우측은 약초재배지인 듯 하얀 노끈으로 경계 표시를 해놨다
무명봉에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老松 한 그루를 지나...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암릉구간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힘들게 암릉구간 능선으로 올라선다
813.7봉(14:50)
813.7봉에서 바라본 예천군 용문면에 있는 금당지와 금곡리(金谷里)의 모습
흑천이 마을을 따라 흐르며 금곡리는 '쇠일'이라고도 불리는데, 예전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사금(沙金)을 일던 곳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하북면 하광리
일부를 합쳐 금곡리라 하고 용문면에 편입되었다
예천 용문면에 있는 금당실 마을은 많은 인재를 배출한 경상도의 대표적인 양반마을이다.
마을의 유래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이곳에 도읍을 정하려다 큰 내(川)가 없어 무산됐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금당맛질 반서울’이라고 부르며, 정감록에는 이곳을 천재나 전쟁에도 마음 놓고 살 수 있다는
십승지의 한 곳으로 지목하고 있으며 조선 최고의 예언가이자 풍수지리가인 남사고는 금당실과 맛질을
하나로 보면 한양과 유사하나 강이 없어 아쉬워 했다고 한다
암릉구간을 지나고...
약초재배지 표시 비닐끈을 만난다
오르막길에 멋쟁이 소나무도 만난다
826.2봉(14:53)
좌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에 내려섰다가 다시 무명봉에 올라 좌측으로 향하는데
고만고만한 봉우리는 계속되고 비온 뒤의 날씨라 높은 습도에
바람 한 점이 없다보니 생각보다 피로가 엄청 심하다
무명봉(14:58)
안부를 지나 용문산으로 향한다
펑퍼짐한 사면길 같은 곳에서 ...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올라가니 홀대받는 용문산 정상이 나온다
용문산(龍門山:770.6m:15:08)
문경시 동로면 간송리와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와 사부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고려 건국후
태조가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에 용이 나타나 반겼다는 전설에서 유래해 용문산이라 명명하였다
하며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성인 어림성이 750m 높이에 있으며, 산록에는
870년(신라 경문왕 10년) 두운 선사(杜雲禪師)가 창건한 용문사(龍門寺)에는 용문사 대장전(大藏殿:보물 145)과
건물 안에 소장했던 국내 유일의 회전식 윤장대(輪藏臺)가 문화재로서 유명하다.
명성에 비해 홀대받는 용문산
정상에는 비실이부부님의 흔적 하나만 달랑 보이고 아무런 표식도 없어 그냥 지나친다
트랙과 지도도 없이 걸었던 나 역시 집에와서 자료를 정리하면서 이곳이 용문산인 줄 알았다.
예천군은 산에 대한 애정이 별로없는 듯 하다
지난 5월 10일에 나홀로 걸었던 내성(문수)지맥길의 보문산도 초라하기
그지없더니만 이곳의 용문산도 그 흔한 무명봉보다도 홀대받는 느낌이다
보문산이나 용문산은 두군데 모두가 산 아래에 있는 절집 이름에 가려져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너무나 홀대받는데 면소재지 지명까지 보문면, 용문면 하면서
산은 왜이리도 홀대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네...
용문산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넓은 공터를 지나는데 약초재배지 노끈은 계속 따라서 온다
안부를 지나서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776봉(15:15)
좌측으로 내려간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내려간다
등로는 희미하나 길은 좋다
암봉(15:18)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낙엽길이 상당히 미끄럽다
멋진 여인의 각선미처럼...
뚜렸한 등로는 계속되고...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무명봉(15:27)
깜깜이 산행에서는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들의 흔적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656.7봉(15:40)
656.7봉 아래에는 숙부인 밀양박씨 묘가 있는데 후손들이 돌보지 않는지
짐승들의 놀이터가 된 느낌이다...숙부인(淑夫人)이면 조선 시대에 정삼품 당상관의
아내에게 주던 봉작(封爵)인데 후손들은 관심조차 없는 모양이다
숙부인 밀양박씨 묘지를 지나서 좌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나뭇가지 사이에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의 흔적을 바라보며 좌측으로 내려간다
내리막길 등로 가운데 잘 생긴(?) 소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움푹파진 고개가 나오는데 사부령이다
사부령(沙夫嶺:545m:15:53)
문경시 동로면 간송리에서 예천군 용문면 사부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예전에 민초들이 다녔는지 등로가 뚜렸하게 보이고 간간히 산꾼들의 시그널이
보이는 걸로 봐서 이곳에서 날머리나 탈출로도 이용하는 모양이다
지명의 유래는 사부리(沙夫里)에서 따온듯 한데 용문면의 사부리는 자연마을로는 오망, 새마,
사부랭이, 지도곡이 있는데 오망은 마을에 안총각이 최처녀와 결혼한 이튿날 의병으로 가서 소식이 없자
최처녀가 기다림에 지쳐 죽으니, 그녀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이제는 근심을 잊으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고 지도곡은 이 마을뒤에 불당골에 지도암이라는 암자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부령에는 예전에 서낭당이 있었는지 돌무더기가 보인다
이곳 아래에서 금곡천(金谷川)이 발원하는데 금곡천은 예천군 용문면 사부리에서
발원하여 운암지와 금당지를 지나 예천읍 생천리에서 한천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이다
사부령을 지나면서 급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아! 힘이든다
多福한 소나무도 만난다
555,3봉(16:06)
555.3봉에서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 좌측 아래로는 잣나무 군락지가 보인다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길
계곡처럼 파인 등로로 올라가는데 낙엽이 무릎까지 차오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602봉(16:13)
다시 내리막길
632봉(16:08)
홈처럼 파진 등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636봉(16:13)
암릉구간을 지나 안부로 내려선다
암릉구간을 통과하여 뒤돌아 본 모습
안부(16:15)
안부를 지나 능선에 오른 다음에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625.4봉(16:19)
직진을 하니 등로 좌측 아랫쪽은 키는 크나 가느다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낙엽이 푹신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는 고속도로(?)같은 임도가 보이고
좌측 아랫쪽으로 뚜렸한 능선이 보이나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이곳에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주위를 살펴본다
갈림길(16:22)
이곳은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고속도로같은 뚜렸한 임도는 내리막길로 내려가다가 우측으로 가버리고
소나무로 막아논 좌측 내리막 능선이 아주 실하여 맥길로 착각하기 딱 좋다
오늘같이 트랙이 없이 다닐때는 무조건 주의를 살피는게 최우선이다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길이없는 숲에 백두사랑 산악회 본듯한 대장의 흔적이 보인다
등로가 없는 길로 내려서면서 좌측 능선을 보는데 자꾸만 저쪽이 맥길처럼 보인다
일단은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한참을 내려오니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무명봉(16:32)
무명봉을 지나면서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안부를 지나 오르막길로 오르는데 또 다시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홈이 파인 등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519.9봉(16:37)
519.9봉에서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사면길로 내려서니 잡풀이 무성한 묘지가 나온다
묘지(16:43)
묘지 아래로 내려가니...
맥산꾼의 전설이신 준.희 선생의 흔적이 보이는데 무척이나 반갑다
능선으로 올라가니 502.9봉이 나온다
502.9봉(16:48)
송이가 나올법한 소나무밭을 지나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임도에서 다시 좌측 능선으로 들어간다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묘지가 보인다
숙부인 밀양박씨 묘(16:54)
묘지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임도를 만나고 다시 좌측 능선으로 향한다
다시 임도로 나왔다가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면서 예천 택시를 호출한다
그런데 용문면에 있는 성황당재를 모르겠단다...하는 수 없이 주소를 알려주고
성황당재로 향한다
임도에서 다시 좌측 능선으로 들어간다
낙동강 홍수경보시설(17:00)
낙동강 홍수조절을 위한 경보시설이다
낙동강 홍수경보시설 휀스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흔적
낙동강 홍수경보시설을 내려서니 인공수로가 나온다
낙동강 홍수경보시설 아래 수로로 내려서니 오늘의 날머리인 성황당재가 보인다
성황당재(城隍堂峙:370m:17:05)
경북 문경시 동로면 인곡리와 예천군 용문면 두천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동로에서 예천으로
이어지는 928번 지방도 지나가는 고개인데 예전에 성황당이 있어서 붙혀진 지명이나 도로를
개설하면서 성황당은 사라졌는지 지금은 성황당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고개 우측 아래에는 은은한 일몰이 아름답고 꾼들에게는 빙어 낚시로 유명하며 경관이 수려하여
문경팔경중 하나인 경천호가 있고, 좌측의 예천쪽에는 조선시대에 사회의 난리를 피하여 몸을
보전할 수 있고 거주 환경이 좋은 10여 곳의 피난처로 『정감록(鄭鑑錄)』에서 이상향(유토피아)이라
했던 예천의 십승지 (十勝地) 마을인 금당실 마을이 있다
성황당재 예천쪽의 모습
택시는 아직도 성황당재를 찾지 못하는지 오질않고 전화도 안 받는다
아무래도 17시 40분 차는 틀린 모양이다...베낭을 정리하는데 또 비가 살짝 내린다
17시 20분경이 되어서야 70이 다 된듯한 택시기사가 도착하고 예천 터미널로
빠르게 왔지만 경부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출발한 지 5분이 지나버렸다.
강남으로 가는 버스를 꼭 탔어야 집에가서 옷을 갈아입고 밤 11시 오대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젠틀맨님의 한강기맥 졸업식에 참석할 수 있는데...
어쩌겠나 순리대로 살아야지...
예천버스 터미널(17:45)
개인적으로 예천을 찾아오기는 처음이다
예천(醴泉)이 예부터 물이 좋다는 것은 지명이 말해주는데 한자로 단술 예(醴), 샘 천(泉)자를 쓴다
예천은 한국을 대표하는 활의 고장으로 상무(尙武)정신이 깃들어 있으며 한국 국궁(國弓)의 절반을
생산하며, 1979년 세계 양궁선수권에서 5관왕으로 세계를 제패한 김진호 선수가 예천출신이다
예천발 → 동서울행 버스표
예천시외버스 터미널 버스시간표
아직 서울을 출발하려면 1시간도 더 남았고 하여 근처 식당으로 가서 선지해장국에 맥주 한병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터미널로 되돌아와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데 28인승 버스에 손님이라곤 달랑 나혼자다
결국 버스기사와 단둘이서 서울로 향하는데 귀경길 도로는 생각보다 그리 밀리지 않는다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니 21시 30분...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갑질(?)하여 친구차로 집에
도착하여 샤워를 하고 베낭을 챙긴 다음에 오대산을 가기위해 양재역으로 향한다
'금천(국사)지맥(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천(국사)지맥 제3구간 - 밤고개 노인회관에서 금천/내성천 합수점까지 (0) | 2020.07.19 |
---|---|
금천(국사)지맥 제2구간 - 성황당재에서 밤고개 노인회관까지 (0) | 2020.07.13 |
금천(국사) 지맥 개요도와 지도 (0) | 2020.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