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0년 07월 12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비 온뒤의 높은 습도...바람한 점 없는 없다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7.2km / 6시간 45분 소요
☞ 참석인원: 백두사랑 산악회 지맥팀과 함께
☞ 산행코스: 성황당재-영월신공 묘-임도-묘지-548봉-685봉-705봉-안부-무명봉-안부
국사봉-안부-국사봉-무명봉-공수골재-554.3봉-무명봉-꽃재-묘지-557봉
안부-574.8봉-무명봉-무명봉-540.3봉-유인경주김씨 묘-NO47송전탑
사곡고개-한양조씨 묘-안부-무명봉-왕의산 갈림길-508.3봉-갈림길-고개
안부-467.5봉-무명봉-안부-묘지-289.8봉-십자임도-서낭당재-276.3봉
237봉-십자임도-231봉-안부-203봉-무명봉-239.9봉-안부-묘지-고림고개
안부-갈림길-농로삼거리-장흥임공 묘-무명봉-밤고개-경북선 철로-축사
예천비행장 철조망-밤고개 노인회관
☞ 소 재 지: 경북 문경시 동로면, 산북면, 산양면 / 예천군 용문면, 유천면
코로난가 지랄인가하는 역병 때문에 한참을 쉬었던 백두사랑 산악회 일요지맥팀을
따라서 금천(국사)지맥 제2구간을 따라서 나서는데 이른 아침부터 날씨 때문에 고민이 많다
일기예보는 오늘 내가가는 경북 예천 지방의 날씨는 흐림이고 오후 6시이후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버스를 타러 양재역으로 향하는데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것만 같을건만 같아서
갈까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버스를 탄다
양재역을 출발한 버스는 영동고속도로 용인 휴게소에 잠깐 들렸다가 다시 출발하여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I.C를 빠져나와 3번 국도를 타고 가는데 경북 제1경이라 부르는
진남교반을 지나 34번 국도를 갈아타고 문경시 호계면, 산양면 소재지를 지나 59번 국도를
갈아타고 가다가 또 다시 958번 지방도를 따라서 문경팔경중에 제6경인 경천호 주변의
꼬불꼬불한 도로를 따라서 문경시 동로면 인곡리와 예천군 용문면 두천리의 경계에 있는
성황당재에 도착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범여는 요즘 이 나라 집권세력의 형태를 알고 싶어서 윤흥길님의 소설 ‘완장’이란 소설을 열독중이다
1983년에 발표된 소설가 윤흥길의 ‘완장’이란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최사장은 이리시의 시골 마을에 있는 저수지를 양어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정부로부터 사들였다.
그리고 양어장에서 물고기를 불법으로 잡아가지 못하도록 월급 5만원에 감시원을 두게 되면서 일이 벌어진다.
월급이 5만원이라 아무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이 책의 주인공 임종술이도 처음에는 ‘나를 뭘로 보냐’며 야단법석을 떨다가 "완장"을 채워 주겠다는
말에 흔쾌히 수락하는데 월급 5만원에 저수지 감시 "완장"이라는 말에 혹해서
그 일을 하겠다고 달려든 것이다.
감시원이라고 새겨다 준 흰색 바탕에 검정 글씨의 완장이 있었지만 굳이 자기 돈을 들여서
이리시 시내까지 나가서 노랑색 바탕에 빨강색 글씨로 "감독"이라 새기고 3개의 줄을 그어
위엄 있고 잘 보이도록 만들어 1년 내내 어딜 가나 완장을 달고 다닌다.
그는 완장을 팔에 차고 나서 저수지를 바라보면서 혼자서 중얼거린다.
“오늘부터 이게 다 내 저수지여, 내 손안에 있단 말이여.
누구도 넘보지 못할 내 땅이란 말이여.”
그리고 그는 완장을 차고 중얼거렸던 말을 그대로 실행해 간다.
완장,
그것은 그에게 대단한 벼슬이 되어 어딜 가나 완장을 차고 다니면서 저수지가 자기 것이라도
되는 양 콧대 높은 행세를 한다. 그런데 저수지는 국가재산의 농업용 저수지이며, 최사장은
저수지 자체를 사들인 게 아니라 농사철이 아닌 때 저수지를 활용해서 고기를 키우는
그런 권한을 사들인 것이고, 가뭄이 들어 농사철에 물이 부족하면 당연히 국가 재산이므로
물을 빼서 농사를 짓게 해야 하는 저수지이다.
그러나 그러건 말건 임종술은 저수지를 조금만이라도 건드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어렸을 적 친구든, 한 동네 어르신이든, 심지어 자기를 고용한 최사장까지도 가만 놔두질 않는다.
낚시를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두들겨 패서 병원신세까지 지게 한다.
보다 못한 최사장이 그에게 그만 두라고 해도 그만두지 않고 막무가내로 달라붙어 권력 아닌
권력을 행사하니 골칫거리가 되어 그를 채용한 걸 후회하게 된다.
그가 시골에서 상경하여 이런 저런 일을 할 적에 시장 골목마다 경비 완장 차고 다니는
사람들이나 경찰 완장 찬 사람들에게 이리 저리 수도 없이 당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자신이 그 완장을 찼다 이거다.
그게 한낱 저수지 감시원 완장이라도 말이다.
사람들이 말을 걸어 와도 "내가 누군지 알고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는가?
내가 네 친구여 뭐여?"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도 같이 말 트고 하던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고자세로 돌변하니
그 꼴이 참으로 우습기도 하다.
저수지 감시원이 되기 전 실업자로 뒹굴 뒹굴 밥 벌레처럼 살던 사람이 저수지
감시원 완장 하나 찼다고 완전히 딴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년 퇴임한 초등학교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선생님은
“우리나라 전통에는 완장이라는 게 없었다. 완장은 일제 시대 일본 놈들 유물이다.
그게 뭔 벼슬이라도 된다고 그 난리를 피고 다니고 친구고 뭐고 없이 두들겨 패고 하냐”고 야단을 친다.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완장이 목숨보다도 중요하다.
그것이 있으면 권위가 서고, 그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되고, 그것이 있으면 권리와 힘을 앞세워
다른 사람을 제압할 수 있으니 그에게는 무엇보다 완장이 중요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아 저수지 물을 모두 빼라는 관가의 통지를 받게 되자
최사장은 물을 빼야 했고 물을 빼고 나서 고기를 잡아 어느 정도 수입을 챙겨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렇게 되니 더 이상 저수지를 지킬 이유가 없어졌다.
물도 없거니와 물을 다 빼고 고기까지 다 잡아 빈 저수지인데 굳이 저수지 감시원을 둘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임종술은 이런 상황임에도 그 잘난 완장을 차고 저수지 담당 공무원, 경찰관 등과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이고 다리에 부상을 입게 되어 도망 다니는 입장이 된다.
그러자 보다 못한 임종술의 어머니는 동네에서 술집 하는 김부월에게
"아가, 우리 아들 좀 살려줘, 우리 아들 살릴 사람은 너 밖에 없어" 하면서
자기 아들과 어디 멀리 떠나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결국 임종술과 김부월은 그렇게 야밤에 어디론가 떠났다는 내용이다
양재역을 출발한 버스는 2시간 30분만에 들머리인 성황당재에 도착한다
성황당재(城隍堂峙:370m:09:20)
경북 문경시 동로면 인곡리와 예천군 용문면 두천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동로에서 예천으로
이어지는 928번 지방도 지나가는 고개인데 예전에 성황당이 있어서 붙혀진 지명이나 도로를
개설하면서 성황당은 사라졌는지 지금은 성황당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고개 우측 아래에는 은은한 일몰이 아름답고 꾼들에게는 빙어 낚시로 유명하며 경관이 수려하여
문경팔경중 하나인 경천호가 있고, 좌측의 예천쪽에는 조선시대에 사회의 난리를 피하여 몸을
보전할 수 있고 거주 환경이 좋은 10여 곳의 피난처로 『정감록(鄭鑑錄)』에서 이상향(유토피아)이라
했던 예천의 십승지 (十勝地) 마을인 금당실 마을이 있다.
오늘은 예전과 달리 인원이 많은 14명이다
오랫만에 만난 동료들 이외에 모르시는 분들로 보인다.
단체사진을 찍고 잠깐 스틱을 펴는 사이에 동료산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늘 꼬바리를 도맡아 하는 조여사님과 나만 뒤에서 버벅거린다
산행을 시작하다(09:25)
철계단을 올라서니 처사 영월신공과 유인 안동권씨 묘지가 나온다
영월신공 묘지에서 바라본 가야할 국사봉쪽의 모습
묘지를 지나니 또 다른 영월신공 묘지가 나온다
영월신공 묘(09:30)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서 숲속으로 들어선다
이곳부터 국사봉까지 2km의 거리를 고도 400m를 높혀야 한다
거야말로 魔의 구간이다...이런데는 범여에겐 쥐약같은 곳이다
날씨는 비가 온 뒤라서 그러지 높은 습도에 바람한 점이 없다
그런데 등로옆에 더덕 한뿌리가 보인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제... 베낭을 내리고 스틱으로 더덕을 캐서 그 자리에서 씹어 먹는다
조그만 봉우리가 나오고...
안부로 내려서는데 간벌목이 갈길 바쁜 산꾼의 발길을 붙잡는다
임도(09:35)
시멘트 임도를 가로질러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등로는 상당히 지저분하다
도저히 치고 나갈수가 없어서 살짝 우회를 한다
묘지(09:40)
계속되는 오르막길
격려 감사합니다
급경사의 오르막길
숨은 턱밑까지 차오르고...높은 습도에 고도를 400m를 치고 오르려니 죽을 맛이다
산행을 신작한 지 얼마도 되지 않았는데 몸뚱아리는 땀으로 범벅이 되버렸다
참으로 이쁘게 피려고 준비하는 노루귀
이제 산에는 야생화를 구경하기가 힘들어지는구나
급경사의 끝은 보이지 않고 낙엽으로 인해 미끄러워 산행 속도는 점점 떨어지고
수술 부위의 통증은 숨을 쉬기조차 힘이든다
암릉 구간을 지나고...
오르막 등로는 낙엽으로 인해 상당히 미끄럽다
548m봉(09:55)
약간의 완만한 능선을 만나 철쭉 군락지 터널을 지난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조 지훈 시인의 落花 중에서
안부를 지나고...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묵은 묘지도 보인다
아직도 오르막을 끝나지 않고...
조그만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올라간다
편안한 능선을 지나니...
앞이 보이지 않고 등로는 지맥스러움을 나타낸다
간벌지역이 나오고...
좌측으로 올라서니 편안한 등로가 나오면서 성황당재에서의 오르막은 끝난듯 하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국사봉으로 향한다
편안한 등로를 걷는다
685m봉(10:18)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조금전에 지나가신 양호님의 흔적이 보인다
성황당재에서 힘들게 올라온 것을 보상을 받은듯 편안한 길이 계속된다
705m봉(10:20)
안부(10:21)
암릉 구간이 나오고...
국사봉 가는길
무명봉(10:25)
안부(10:27)
나무 계단을 따라서 국사봉 정상으로 올라간다
근데 국사봉이 2군데나 있어서 처음온 맥꾼으로서는 약간 헷갈린다
국사봉(國師峰:727.6m:10:28~40)
정상에는 대충산사에서 산퍠를 걸어놨고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한 삼각점 안내판과
판독을 할 수 었을 정도로 마모된 삼각점(△예천303)이 있으나 전망을 전혀없다.
지도상에는 이곳을 국사봉이라고 앱에서는 알려준다
이곳은 금당실 십승지로 범여가 풍기 십승지를 끝내고 멈춰버린 십승지를
위해 언젠가 꼭 한번 더와야 하는 산이기도 한다
마을 지명의 유래는 마을앞의 금당천에서 사금((砂金)이 생산이 되어 ‘금곡’, ‘금당실’이라
불리웠다는 설과, 임진왜란 때 중국의 장수가 이곳을 지나면서 중국의 양양 금곡과 지형이
닮았다고 해서 ‘금곡’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정상 북동쪽에는 예천 십승지로 꼽히는 금당실 마을이 있다
금당실[金堂谷]은 '물에 떠있는 연꽃'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마을의 주산인 오미봉에 오르면
북쪽의 매봉, 서쪽의 국사봉, 동쪽의 옥녀봉, 남쪽의 백마산으로 둘러싸인 명당입니다. 남사고(南師古)는
<정감록(鄭鑑錄)>에서 금당실을 “금당과 맛질을 합하면 서울과 흡사하나 큰 냇물이 없어 아쉽다”고
하면서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병화(兵禍)가 들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임진왜란 때도
온전했다고 하며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신하에게 닭을 주면서 “이 닭이 울기 전에 용문에 도착하면
도읍을 정하겠노라”고 했는데 닭이 먼저 울었기 때문에 도읍지를 취소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금당실은 약 600년 전인 15세기 초 감천문씨가 처음 터를 잡았고 그 뒤로 사위인 함양박씨 ‘박종린’과
원주변씨 ‘변응녕’의 후손이 대대로 마을을 일궜는데 지금 이곳에는 함양박씨 3인을 모신 금곡서원,
함양박씨 압향조 박종린을 모신 추원재 및 사당, 조선 숙종 때 도승지 김빈을 모신 반송재 고택,
원주 변씨 입향조 변응녕을 모신 사괴당 고택, 구한말 세도가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저택 터가 남아 있다
먼저간 산꾼들은 삼각점에 대한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범여가 청소한 삼각점((△예천303)의 모습
국사봉 정상의 모습
예천 금당실 십승지지(十勝之地 )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국사봉의 모습
한국인의 전통적 이상향의 하나로 『정감록(鄭鑑錄)』에 근거한 역사적 용어이며, 십승지라고도 한다.
십승지지에 관한 기록은 『정감록』 중에 감결(鑑訣), 징비록(懲毖錄), 유산록(遊山錄), 운기귀책(運奇龜策),
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 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 도선비결(道詵秘訣), 토정가장결(土亭家藏訣)
등에 나타나는데 대체적으로 공통된 장소는
영월의 정동(正東)쪽 상류, 풍기의 금계촌(金鷄村), 합천 가야산의 만수동(萬壽洞) 동북쪽,
부안 호암(壺巖) 아래, 보은 속리산 아래의 증항(甑項) 근처, 남원 운봉 지리산 아래의 동점촌(銅店村),
안동의 화곡(華谷), 단양의 영춘, 무주의 무풍 북동쪽 등이다.
십승지지는 조선 후기의 이상향에 관한 민간인들의 사회적 담론이었다.
십승지 관념은 조선 중․후기에 민간계층에 깊숙이 전파되어 거주지의 선택 및 인구이동,
그리고 공간인식에 큰 영향력을 주었다. 십승지지는 조선후기의 정치․사회적 혼란과 민간인들의
경제적 피폐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생겨났다. 십승지의 입지조건은 자연환경이 좋고, 외침이나
정치적인 침해가 없으며, 자족적인 경제생활이 충족되는 곳이었다
성황당재에서 국사봉 정상까지 2km의 거리에 1시간이 넘게 걸렸다.
높은 습도에 바람한 점이 있고 옷은 땀으로 다 젖어 버렸다
동료산꾼은 진작에 다 가버렸고 뒤처진 조여사님... 내라도 같이 가야제
10분 정도를 기다리는데 땀 냄새 탓인지 산모기가 떼거지로 달라 들어
몸뚱아리를 물어 뜯는데 미칠 지경이다...10분을 넘게 기다리니 조여사님이
오시고 물 한모금 마신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국사봉에서 내려서 정상석이 있는 국사봉으로 향한다
안부(10:43)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이정표가 보이고...
국사봉 정상석이 보인다
국사봉((國師峰 :727.6m:10:45)
문경시 동로면 인곡리와 예천군 용문면 두천리, 유천면 마천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헬기장과 이정표 2개, 정상석이 있으며 제도권의 산이라 그런지 등로는 좋다.
지도상에는 이곳을 무명봉이라고 표기를 한다
국가에서 봉화대를 세웠던 곳으로 산 정상에는 제단이 있어 가뭄이 심하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며 이러한 연유로 국사봉에 산불이 나면 하늘에서 비가 내려 불을 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국사봉에는 명당의 묘터가 있었는데 이곳에 묘를 쓰면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여 비가 오지 않았으며
극심한 한해(旱害)때는 기우제를 지냈으며, 산불이 나서 국사봉에 불이 붙으면 하늘에서 비가 내려
불을 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주변 마을에서 선비가 많이 배출되었다는 국사봉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산 이름중의 하나인 듯하다.
이 곳 국사봉(國師峰)은 백두대간 죽령을 거쳐 저수재를 지나 남쪽으로 문경시와 예천군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기우단으로 유명하며 고려시대의 국사였던 두운대사(杜雲大師)가 이 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국사봉 정상의 이정표
국사봉 정상의 이정표
맥길은 꽃재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곳부터는 좌측은 예천군 용문면에서 유천면으로 面界가 바뀌나 우측은
계속해서 문경시 동로면과 같이 간다
내리막 등로는 아주좋다
국사봉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꽃재로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꽃길이다
소나무숲 가운데 등로로 내려간다
무명봉(10:50)
암릉 구간을 지난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등로 주위에는 뫳돼지의 횡포가 엄청나게 심하다
한참을 내려가니 고개가 나오는데...
공수골재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공수골재(11:00)
문경시 동로면 마광리와 예천군 유천면 마천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인데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고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서니 등로 좌우는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잡목의 거친 저항을 받으면 554.3m봉을 올라간다
등로 좌측으로는 예천군 유천면 마천리의 계곡
마천리(麻川里)는 마을이 산자락 밑에 자리잡고 있으며 남쪽으로 마천저수지가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마천, 새마가 있다. 마천은 국사봉 아래에 있는 마을로 마아래라고 부르다가
변형되어 생긴 이름이다. 새마는 마천 서쪽 옆에 새로 이루어진 마을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554.3m봉(11:05)
잠시 후 가야할 574.8m봉의 모습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경천호댐 수문이 어렴풋이 보인다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마광리에 있는 댐으로 높이 63.5m, 제방길이 368m, 최대수심 57m,
만수면적 156ha, 총저수량 2,822만t이다. 낙동강 지류인 금천을 막아서 만든 댐으로, 1983년
6월에 착공하여 602억 원을 들여 1986년 12월에 준공하였다.
문경시 동로면·산양면·산북면·영순면과 예천군 예천읍을 비롯해 개포면·유천면·용문면·용궁면 등
2개 시군의 9개 읍면, 75개 동리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댐이 축조되기 전부터 메기, 피라미, 꺽지 등 담수어의 1급 낚시터였던 곳으로 댐이 완공되면서
생긴 경천호 역시 맑은 물과 주변의 수려한 경관으로 피서를 겸한 낚시터로 유명하다
문경지방의 고산지대에 있어 주변 경관이 아름다우며 봄이면 댐 주위에 진달래가 피고
여름이면 수상스키 등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문경 8경중에 제6경에 속한다
무명봉(11:10)
내리막으로 내려가는데 등로가 잘 안보인다
내리막길에는 버섯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땅느타리 버섯같은데 확신이 안선다
야생화와는 달리 버섯은 공부를 할수록 더 힘이든다
버섯은 식용이라해도 확신이 안서면 수확을 포기한다
소나무 숲을 내려가는데 조금을 더가서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있는 고개가 나온다
꽃재(花嶺:480m:11:13)
문경시 동로면 마광리와 예천군 유천면 사곡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마광리 화령마을에서 따온듯 하다...산세가 좋고 사계절 꽃으로 뒤덮인 고개 라 하여
붙혀졌으며 고개 양 연변에 꽃이 많았다.
꽃재 너머에는 나무가 많아 연료 개량 전에는 북부 지방의 연료 공급지였다.
나무꾼들은 도시락을 지참하여 나무를 지러왔다고 한다
고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묘지(11:17)
묘지를 지나 올라서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등로는 생각보다 뚜렸하다
557m봉(11:27)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무명봉을 지나서 우측으로 내려서니...
예천이 고향인 산으로님의 흔적이 보인다
고삼(苦蔘:꽃말:보물, 밀향)
넓은잎 너삼, 쓴너삼, 지삼, 산두근, 도둑놈 지팡이, 뱀의 정자나무라는 여러가지 이름을 가졌다.
고삼이란 이름은 맛이 몹시 쓰기 때문에 붙혀졌고, 도둑놈 지팡이는 뿌리 모양이 흥측하게
구부려 있어, 붙혀진 이름이다.
줄기는 곧게 서는데 색깔은 녹색이지만 어릴때는 검은빛이 돌고 노란색 잔털이 있다.
뿌리는 굵고 황색이며 주로 약용으로 이용하며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사용하지 않고,
환재나 산재로 사용하며, 빈번한 소변 마려움, 혈노 통증 등에 효능이 있다
고삼은 장미목 콩과의 여러해살이 초본식물로 키는 1m에 안팍의 높이로 자라며 뿌리는
비대하며 노란색이다. 잎은 깃털 모양이며 줄기와 가지위에 서로 어긋나게 자리한다.
잎을 구성하는 잎 조각은 10여쌍이고 길쭉한 계란처럼 생겼으며 밑동은 둥글고 끝은 뾰족하며
가장자리는 톱니가 전혀없이 밋밋하고, 줄기와 가지 끝에 나비처럼생긴꽃이 이삭모양으로 뭉쳐서 핀다.
꽃의 길이는 15 ~ 18 mm이고 색깔은 연한 노랑빛을 띤다. 꼬투리는 선형이며 끝에
긴 부리가 있고 종자는 검은색 구형입이다
고삼은 회화나무와 족제비싸리 , 아카시아 어린잎 , 황기 ( 단너삼 )과 유사하여 잎만으로는
구분하기가 어려우나 줄기에서 가지가 나오는 부분이 보라색을 띠고 있고 맛을 보면 쓰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가 있으며 , 한약 가운데서 맛이 가장 쓰기 때문에 " 고삼 " 이라고 부른다
안부(11:33)
등로 근처에는 꼬리진달래가 많이 보인다
철쭉 군락지를 지나니...
폐헬기장이 나오고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574.8m봉(11:35)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574.8m봉을 조금 지나니 묵묘가 보인다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下心이란 단어를 배운다
열아홉의 어린나이에 장원급제를 하여 스무살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孟思誠)은 자만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어느날, 그가 무명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대답했다. “그건 어렵지 않아요.”
"나쁜 일은 하지말고, 착한 일은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아 아니.. 선사~
그런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 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오?" 라며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녹차나 한잔 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찻물이 넘치도록 그의 찻잔에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맹사성이 소리쳤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나 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
스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에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
지저분한 등로를 지나 ...
오르막으로 오른다
무명봉(11:42)
멋쟁이 소나무 2그루를 만나고...
철쭉으로 인해 등로가 보이지 않는다
무명봉(11:46)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암릉구간을 지나고...
철쭉구간을 지나는데 바람한 점 없고 땀냄새 때문인지
산모기들이 얼마나 물어되는지 가려워서 미치겠다
노란끈적버섯(식용가능)
갓의 지름이 4~9cm 정도로 납작한 반원 모양에서 가운데가 볼록한 편형한 모양이다.
갓 표면은 연한 오렌지 빛을 띠는 연한 황토색으로 가운데는 짙은 색이며 습할때는
끈적거리고, 처음에는 백색, 비단같은 피막으로 덮혀 있다가 점차 없어지며 살(조직)은 백색이다
주름살은 어릴 때 백색에서 점차 적갈색으로 변해가고, 자루에서 바르게 붙은 주름살에서 끝에
붙은 주름살 모양으로 되며, 주름살 간격은 매우 촘촘하고 주름살 폭은 보통이다
자루 길이는 6~10cm 정도로 아래로 가늘어지고 자루 표면은 처음에는 백색이나 점차 옅은
진흙색을 띠며, 턱받이는 거미집막 모양 또는 솜털 모양이며 자루 윗쪽에 흔적이 남아있다.
포자는 크기 7~9.5×3.5~5㎛, 타원형이며 미세한 돌기가 있으며 포자 무늬는 적갈색이다
540.3m봉(11:49)
급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유인 경주김씨 묘(11:53)
소나무들이 많은 내리막길
등로에서 바라본 예천군 유천면 사곡리, 죽안리, 화전리의 모습
급경사의 내리막길...등로는 비에 젖어 상당히 미끄럽다
내리막길에는 송전탑이 나오고 잠시후에 올라야 할 508.3m봉이 보인다
잡풀이 등로를 가로막아 도저히 틈이 보이질 않는다
NO47 송전탑(12:00)
잡풀의 엄청난 저항을 받으면서 시멘트 도로인 사곡고개로 내려선다
사곡고개(寺谷峙:360m:12:05)
예천군 유천면 사곡리에서 문경시 산북면 가곡리로 이어지는 고개로
지명은 좌측 고개 아래에 있는 사곡마을에서 따온듯 하다
사곡리(寺谷里) 마을은 국사봉 아래에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의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자연마을로는 사곡, 들앞이 있는데 사곡은 마을에 절이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들앞은 마을 앞에 동막들, 동산들 등 들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점심식사(12:05~30)
동행한 조여사님이 배가 너무 고프시다고 하여 이곳에서 밥상을 펼친다
어차피 선두로 간 산꾼들은 만날일도 없고하여 여유롭게 식사를 하는데
어찌나 산모기의 횡포(?)가 심하던지 가려워서 미칠 지경이다.
여유롭게 커피까지 한잔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선다
뭣에 쓰는 물건인고?
지적 도근점이 보이고 ‘山’이란 글짜가 이채롭다
우측 가곡리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보이고 직진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宣人 漢陽趙氏之墓(12:35)
묘비가 특이하다...골동품상들이 봤으면 침을 흘릴만한 묘비이다
선인(宣人)이란 고려와 조선시대 왕의 처첩이나 내관 외에 작위를 받은 부인을 일컫는 말로
다른 뜻으로는 외명부(外命婦)라고 하는데 특수층의 여인은 왕실의 정1품인 빈(嬪)부터 종9품
주변궁(奏變宮)까지의 내명부를 제외한 왕의 유모, 왕비의 모(母), 왕녀·왕세자녀를 지칭하며,
일반 사대부 여인은 종친의 처와 문무백관의 처 등을 말한다.
관리가 안된 묵은 묘지를 지난다
안부(12:37)
뫳돼지 체력단련장(?)
508.3m봉으로 향하는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무명봉(12:50)
이곳부터는 편안한 등로가 나온다
잠시 편안길을 걷다가 또 다시 등로가 거칠어진다
등로 좌측 아래에는 영월엄공 묘지가 보인다
왕의산(王衣山) 갈림길(12:55)
이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왕의산으로 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왕의산(王衣山:342m)은 문경시 산북면과 산양면, 예천군 용궁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고려 31대
공민왕이 몽고의 침입으로 안동에서 피난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옷을 벗어 나무에 걸어 놓고
쉬었다 하여 왕의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붙혀진 지명으로 산봉우리가 왕의산에서 시작하여
산양면 현리 금천까지 이어져 있다.
주변 고도가 높고, 높은 산지가 많으며 운달산, 단산, 조항령, 공덕산 등이 면 주위에 있어서
분수계를 이루며 이들 산간에는 금천의 지류인 아천이 남류하여 작은 분지를 형성한다.
남쪽은 산지가 낮아 왕의산, 오봉산 등으로 곡간에 좁은 평지가 형성되어 경작지로 활용된다.
경지율은 적으며 면의 남부에 많이 분포한다. 전통적인 농촌지역으로 주곡작물 이외에 사과,
호산춘, 송이버섯, 영지버섯, 인삼 등과 분재, 도자장신구 등의 특산품이 생산된다.
508.3m 봉(12:58)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는 희미하나 그런대로 걸을만 하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맥길은 좌측으로 살짝 꺽어지고...
내리막길로 내려서는데 보슬비가 조금씩 내리니 왠지 불안하다
수술 이후에 우중산행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감기 걱정 때문에...
이곳의 오늘 날씨는 저녁 6시 이후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기상청이란
기관은 당체 믿을수가 없으니... 그래서 산꾼들이 구라청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갈림길(13:02)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조그만 바위 구간을 지나고...
잡풀을 헤치고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지나는 고개가 나온다
등골나물꽃(꽃말:망설임, 주저)
등골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는 잎 가운데가 등골처럼 고랑이 있는 것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하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등골나물은 쌍떡잎 식물로서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식물로서 전반적으로 가는 털이 있으며
높이는 약 70~150cm 정도 되며 가지를 많이 치지 않으며 곧게 서는 특징이 있으며, 잎은 길이가
약 10~17cm정도이며 폭은 약 3~8cm 정도 되며 서로 마주나며 약간은 긴 타원형을 닮았고
잎의 끝이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꽃은 7~10월에 약 4mm정도의 아주 작은 흰색의 꽃이 피는데 어린 순은 식용을 하며 뿌리를 포함한
전초는 약용으로도 사용하며, 등골나물은 민간이나 한방에서도 많이 사용하며 등골나물의 효능으로는
황달, 고혈압, 산후복통, 폐렴 등에 좋다고 한다
고개(13:05)
문경시 산북면 월천리에서 예천군 유천면 죽안리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잡풀이 너무 무성해 고개인지도 모르겠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죽안저수지가 나오는데 죽안리(竹岸里)는 자연마을로는 죽안, 새터, 장평동이 있다.
죽안은 마을 뒤에 비봉산이 있는데 봉황은 대나무 열매를 먹어야한다 하여 대나무를 많이 심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새터는 장평동 남서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평동은 마을이 긴 들 옆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르막길이 나오고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안부(13:10)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467.5m봉(13:12)
467.5m봉에서 내려서니 移葬한 듯한 破墓의 묘터의 흔적이 보인다
다시 등로는 좋아지고....
무명봉(13:13)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묘터의 흔적인지?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잘 가고 있다는 얘기이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3:20)
안부에서 올라서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등로에는 黑土가 보이나 석턴가루는 아닌듯 싶다
좌측으로 내리막길이 보이나 직진으로 가본다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묘지(13:25)
묘지에서 만난 패랭이꽃(꽃말:순결한 사랑)
꽃 모양이 조선시대 장돌뱅이들이 쓰고 다니던 모자(패랭이)를 닮았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석죽과 패랭이 꽃속의 여러해살이 식물로 원산지는 한국과 중국이며, 낮은 지대의 건조지나
모래땅에서 자생하며, 키는 30cm 정도이고, 6~8월에 연한 붉은색의 꽃이 가지 끝에서 피며
꽃잎과 꽃받침잎은 모두 5장이며, 7~8월에 꽃과 열매가 달린 전체를 그늘에서 말린 것을
한방에서 치습제, 시습제, 소염제, 이뇨제 등의 치료에 사용한다
묘지에서 좌측으로 내려선 다음에 우측 아래로 간다
이노무 쉬끼들...체력단련 엄청 열심히 하는구먼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가는데...
등로 우측 아래에는 묘지들이 보인다
오늘은 모든게 흐릿하다
묘지 너머로 예천 공군비행장이 보인다
등로는 뚜렸하고...
289.8m봉(13:42)
봉우리 같지도 않는 그저 밋밋한 봉우리라 그냥 지나치기 딱 좋다
289.8m봉을 내려서는데 약간은 헷갈리는 곳이다
등로가 3갈레로 보이는데 좌, 우측 능선이 훨씬 실해보여 맥길처럼
보이나 실제는 등로가 희미하고 가장 능선이 빈약한게 맥길이다
희미한 능선을 따라서 내려가니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이 구간은 산초나무 군락지로 산꾼을 엄청 괴롭힌다
간간히 개복숭아도 보인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묘지를 지나 잡풀이 무성한 묵은 임도로 내려간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능선으로 들어선다
十字 임도(13:48)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잡풀이 무성한 임도를 따른다
서낭당재(232m:13:49)
지도상에 표기가 되지않은 곳 안부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서낭당이 나온다
나무 아래는 민초들이 넘나들며 소원을 빌었던 잔잔한 돌들이 있고 우측으로
유천면 고림리로 이어지는 임도는 뚜렸하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안부를 지나 276.3m봉으로 오르는 등로에 아카시아가 엄청 괴롭힌다
등로 주위에는 군 교통호가 보인다
276.3m봉(13:58)
정상은 폐헬기장이다
이곳부터는 우측은 문경시에서 예천군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어 온전히 예천군으로 들어선다
좌측으로 내려간다
잡목이 성가시게는 하나 여름철 맥길은 이정도는 감수해야제
등로는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고도차가 없는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237m봉(14:05)
넓은 공터가 나오고...
공터 우측 아래에는 최근에 조성한듯한 묘지가 보인다
등로는 무쟈게 좋다
십자임도(14:10)
십자임도에서 직진으로 올라선다
능선에서 우측으로 꺽어지고...
231m봉(14:12)
안부(14:14)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203m봉(14:17~22)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할 곳이다...정상에서 좌측으로 휘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 아래로 가야 하는데 지맥길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이곳에서 아직 오지 않는 조여사님을 기다리면서 5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우측으로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다시 오르막길
무명봉(14:27)
소나무 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오름길 능선에는 군교통호가 보인다
239.9m봉(14:30)
정상은 폐헬기장으로 잡목이 무성하다
우측으로 약간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4:35)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묘지(14:45)
묘지 좌측이 맥길이나 틈이 보이지 않고 앞서간 동료산꾼도 직진으로 갔다
도로가 나온다
도로에서 좌측으로 향한다
고림고개(高林峴:14:47)
예천군 유천면 고림리에 있는 고개인데, 고림리는 마을이 언덕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북동쪽으로 중평천이 흐르고 자연마을로는 고림, 바깥마, 새터가 있다.
고림은 고려 때 고을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깥마는 고림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새터는 고림 동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도로에서 우측의 농로를 따라서 간다
계속해서 직진
시멘트 도로 좌측에는 축사가 보이고...
우측 밭으로 향한다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선다
남양주 금곡님의 흔적이 보인다
고도가 낮은 곳이라 그런지 산모기, 날파리들의 공격이 엄청나게 심하다
이 넘들이 오랫만에 범여의 몸뚱아리를 재물로 영양 보충을 하려는 모양이다
안부(14:56)
잡풀이 양탄자처럼 깔린 곳을 지나고...
묵은 임도 가운데로 곡예하듯 걸어간다
야트막한 야산을 빠져 나온다
등로 좌측에는 묘지가 보이고...
등로에서 바라본 바깥 고림마을의 모습
논두렁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수로도 보인다
갈림길(15:02)
소나무가 보이고...
과연 수지타산이 맞을까?
잘 생겼다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계속되는 시멘트 도로
저긴 어디쯤인지 모르겠고...아마 백마산쯤 되겠다
산꾼이 산을 걸어야지 도로를 걸으니 불편하다
요즘 산이나 들에서 가장 흔하게 만나는 꽃이 개망초이다
개망초(꽃말:화해)
망초, 망초대라고도 하며 계란 프라이같이 생겼다고 하여 속칭 계란꽃이라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개망초인데, 워낙 번식력이 좋아 농촌에서는 가장 골치아픈 잡초이다
한문으로는 亡草라고 하는데 을사조약 이후 일본에서 우리나라의 자본 수탈을 위해 철도를
건설할 때, 침목에 묻어 들어와 철로변부터 번지기 시작한 꽃이 전 국토에 뿌리를 내려
백성들은 나라를 망하게 한 꽃이라 하여, 망국초(亡國草)로 부르다가 그 뒤에 망초가 되었다고
하며, 나중에 더 비하가 되어 ‘개’자가 붙어 개망초가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다른 야생화보다 월등하게 자생력이 강해, 시골에서는 밭을 한 해만 비워두면
온 밭에 가장 먼저 자라는 것이 망초인데, 어지간한 제초제를 뿌려도 듣지 않아, 농사를 망치는
지겨운 잡초라고 해서 망초라고 불렀다고 한다
도로에서 바라본 예천군 유천면 손기리쪽 들녘
손기리(蓀基里)는 마을이 중평천 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농촌마을인데. 자연마을로는
건너마, 골마, 강아지골, 서당촌, 손동이 있다. 건너마는 손동 건너편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골마는 골짜기에 마을이 위치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강아지골은 마을 뒤 골짜기에 강아지를 묻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당촌은 유천서당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손동은 손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마을에 쏘(소)가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농로 삼거리(15:10)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비포장 도로로 올라선다
등로 우측에는 물탱크가 보인다
계속해서 농로를 따라서 걷는다
늦둥이
우측에서 오는 농로를 만나고...
농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장흥임공 묘(15:14)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묘지 좌측 숲속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5:15)
우측으로 내려간다
조립식 주택이 있는 밤고개로 내려선다
밤고개(栗峴:15:20)
예천군 유천면 율현리에 있는 고개로 밤고개는 마을에 밤나무가 많았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맥길은 직진의 사과밭으로 이어지나 정면에 예천 공군비행장이 맥길을 막고 있다
원 트랙대로 하면 1.6km이나 좌측으로 빙 둘러가면 4km의 거리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1주일내내 하는 일 없이 바빠서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지 못했고 어제도 밤 12시가 넘어서
현장에서 돌아와 늦게 잠자리에 들어서 산행기를 볼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오늘 따라온 산악회는 다들 고수라서 등로에 대한 설명은 전혀없고
각자도생을 해야 하는 곳이다...산행 속도가 늦어 늘 꼴찌인데 조여사님까지 있으니
더 늦을수 밖에 없다.
거기다가 성격상 원칙을 고집하다가 보니 더 늦을수 밖에...
빗줄기는 조금씩 굵어지는데 여기서 산행을 접을수는 없는 노릇이다
베낭 커버만 씌우고 우의는 입지 않았다...비에 젖으나 땀에 젖으나 똑같으니까
행여 감기나 걸릴까봐 노심초사하지만 현재는 방법이 없다
트랙을 따라서 밤고개를 가로질러 사과밭으로 들어가니 경북선 철길이 길을 막는다
하는 수 없이 사과밭 우측으로 빠져 나간다
철길이 막혀 다시 도로로 나와 좌측으로 내려가니 정기화물 집하장이 나온다
경북선 철길(15:30)
경북선(慶北線)은 일제강점기 조선철도주식회사의 사설 철도로서 1931년 10월 18일 김천에서
점촌-예천-안동까지 구간이 개통되었었다. 그러나 1944년 당시 일본이 군수물자 확보를 위해
점촌-안동 구간의 궤도를 철거해 버려 노선이 방치되자 해방 이후 경제개발기에 다시 복구되었다.
당시 태백산 지구의 자원 수송 강화를 위한 산업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경북선의 노선을 기존의
안동이 아닌 영주로 바꾸었다.
경북선은 김천시 김천역에서 시작하여 상주시, 문경시, 예천군을 통과한 후 영주시에 이르는
비전철화 단선철도로 김천에서 경부선, 문경[점촌]에서 문경선, 영주에서 중앙선 및 영동선과 연결된다.
영주시 구간은 예천군 감천면에서 영주시의 남서부에 있는 영주시 장수면으로 진입한 후 문정동,
조암동을 지나 휴천동의 영주역에 당도한다.
경북선 전체 구간에는 총 12개의 역이 있으며, 영주시 내에 있는 경북선의 역으로는 영주역이 유일하다.
영주역은 관리역으로서 중앙선과 영동선의 역이기도 하다.
영주역 이전 역으로는 예천군 보문면의 어등역이 있는데, 현재 여객취급이 중지된 무인역으로
영주역과 거리는 13.6㎞에 이른다.
철길을 건너 농로를 따라서 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진다
축사(15:32)
뒤돌아 본 율현리의 모습
예천군 유천면에 있는 율현리(栗峴里)는 자연마을로는 밤고개, 교동, 동산, 섶밭이 있다.
밤고개는 마을에 밤나무가 많았으므로 붙여진 이름이고 교동은 마을에 향교가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동산은 낮은 산이 마을 가운데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섶밭은 마을에 섶이 많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축사를 지나 오르막 도로로 향한 다음 좌측으로 올라간다
수목 조림지가 나오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쑥밭(?)을 지나 좌측으로 향한다
아카시아 너머 공군부대 초소가 보인다
예천 공군비행장 철조망(15:38)
이곳에서 좌측으로 철조망을 따라서 걸어간다
철조망은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우측은 공군비행장 철조망, 좌측은 경북선 철길 철조망... 그 사이에 갇혀 버렸다
철조망 안쪽에 군부대 골프장인데 비가 오는데도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페어웨이와 철조망 가운데는 아스팔트 도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OB난 골프공이 지천이다
백돌이들만 골프치나?...10분정도면 공 100개는 줍겠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야하는데 비행장 철조망과 철도 철조망이 합쳐지면서 갈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시멘트 농로를 따라서 밤고개로 되돌아 간다
농로를 따라서 가면 끝이 없을 것 같아 개구멍을 통과하여 철길로 올라선다
철길 철조망을 넘어려는데 너무 높다
나혼자면 어떻게 해서라도 넘어 보겠지만 70이 다되신 조여사님은 어찌하고...
철길을 따라서 밤고개로 향한다
窮하면 通한다고 했던가.
철길 우측에 개구멍이 보인다
아마도 주민들이 밭으로 가는 길인 모양이다...부처님 감사합니다
율현리 밤고개 노인회관(16:10)
밤고개에서 이곳까지 도로를 따라서 오면 200m 정도 밖에 안되는 거리를 50분에 거쳐
3.4km를 걸었으니 얼마나 개고생을 했단 말인가
집에와서 산행기를 보니 대부분의 산꾼들이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공군 비행장으로 인해
끊어진 구간을 생략하거나 공군 비행장 정문까지 자동차로 이동을 했다
공부를 하지 않은 결과를 혹독하게 치른 셈이다...나 땜에 개고생한 조여사님 미안합니다
이곳에서 대장에게 연락하여 버스를 오게하고 조여사님이 수돗가에서 씻는 사이에
노인회관 뒷쪽에 있는 물체당 고택을 보러간다
물체당에는 현재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물체당 고택(勿替堂 古宅:국가민속문화재 제174호)
이 집은 현소유자 임재원(林在原)에 따르면 그의 8대조가 매입한 건물로 그 이전의 사실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하며, 7대조 노운(魯運)의 호가 물체당(勿替堂)이라고 한다.
수목이 우거진 낮은 언덕을 배경으로 하여 전면의 높은 잡석 축대 위에 건물을 남향으로 배치하였다.
전방에는 비교적 넓은 논이 펼쳐져 있어 시야가 적절히 열려져 있다.
한 변이 5칸인 □자집의 전면에 1칸씩 양쪽 날개집이 돌출하여 정면이 7칸으로 늘었다.
안방과 상방의 뒤쪽에도 각각 1칸씩 도장방이 돌출되어 전체평면이 {{#189}}형을 이루고 있다.
정면 7칸의 왼쪽에서 셋째 칸에 안마당으로 출입하는 대문간을 설치하고, 그 좌측 정면 2칸을
사랑채로 꾸몄으며 왼쪽 끝칸에는 전면이 개방된 사랑마루를 드렸고, 뒷벽에는 처마 밑으로
받침처럼 달아내어 감실을 설치하였다
사랑마루와 대문간 사이의 1칸은 전면을 툇마루처럼 꾸며서 사랑마루와 연결하고 그 뒷편에
칸 반 크기의 온돌방을 두었으며 앞쪽의 1칸 크기 사랑방과 뒤쪽의 반 칸 크기 책방 사이에는
미세기문을 설치하였다.
책방의 서쪽 벽에는 책장이 설치되어 있고, 동쪽 벽에는 안마당으로 출입할 수 있게 외여닫이 세살문을
내었으며, 대문간의 오른편에는 마구간 1칸, 고방 2칸 및 모방 1칸이 배열되어 있다. 안채의 가운데에는
대청이 위치하는데, 안마당의 너비와 같은 정면 3칸 정도이지만 보간이 1칸으로 가늘고 긴 편이다.
대청 오른쪽에는 2칸의 안방이, 왼쪽에는 2개의 상방이 각각 자리잡고 있다.
사랑채의 기둥은 자연석 초석 위에 방주(方柱)를 세웠고, 마루 앞 기둥 전면에는 헌함을 돌렸다.
안채의 기둥도 방주로 자연석 초석 위에 세웠으며, 상부 가구(架構)는 삼량가(三樑架)로 판재에
가까운 각대공을 세운 위에 아주 짧은 단장여로 보이는 부재를 얹어서 마루도리를 받쳤다.
처마도리에도 장여를 시설하지 않은 간결한 구조로 되어 있다.
율현리 물체당 표시석
대청의 뒷벽은 흙벽을 치고 각 칸의 중앙에 외여닫이 널문을 달아놓았다.
대청 좌협간의 전면 기둥에는 중방을 걸치고 상부에 흙벽을 쳤다. 중방의 밑면에는 뒷벽의
외여닫이 널문과 비슷한 너비로 문설주를 세웠던 것으로 추측되는 장부구멍이 2개소 남아 있다.
그리고 또 기둥의 중방 아래 양쪽 측면에는 가시새를 끼웠던 흔적도 남아 있어 아마도 건축 당시에는
중방 아래에 외여닫이 널문을 설치한 뒷벽과 유사한 구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대청의 어간(御間)과 우협간에도 기둥 사이에 중방을 걸쳤던 흔적 및 중깃과 가시새를
설치하였던 구멍들이 남아 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좌협간의 전면벽과 같은 구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체당을 둘러보는 사이에 버스는 도착했고 버스를 타고 문경시 산양면 소재지에 있는
오리탕집에 들려서 몸보신을 한 다음에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는데 빗줄기는 점점 굵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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