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0년 07월 18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오후에 맑고 엄청 더움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4.2km(고종산 왕복 1.9km) 포함 / 8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밤고개 노인회관-물체당 고택입구-율현리 입구-매산리 삼거리-매산2리 노인회관
고개-유천삼거리-경북선 철길 위-매산리 버스 정류장-초석마을 버스 정류장-공군부대 정문
개성고씨 가족묘-밀양박공 묘-농로삼거리-176봉-안부-169봉-농막-924번 지방도-삼거리
124봉-시멘트 고개-127.7봉-갈림길-화산권공 묘-34번 국도 암거-이동통신탑-도미마을 삼거리
무명봉-무명봉-고공수로-무명봉-장송고개-농산물 창고-139.2봉-김해김공 묘-갈림길-안부
무명봉-월오리 사거리-무명봉-순흥안공 묘-고종산 갈림길-131.1봉-34번 국도-산택마을 입구
산택교차로-고종산-산택 버스정류장-용궁원천탕 입구-용궁원천탕 앞-목장입구-무명봉
인공수로-무명봉-고개-119봉-134봉-안부-삼거리-119봉-원당버스 정류장-이동통신탑
무명봉-농로삼거리-무명봉-여주이공 묘-묵밭-대추밭-내무이 고개-안부-100.8봉
외무이 고개-무명봉-금천1교 암거-금천/내성천 합수점
☞ 소 재 지: 경북 예천군 유천면, 개포면, 용궁면
이번주 일요일 송백산악회 황대장을 따라서 왕피남(금장)지맥을 끝낼까, 아니면 낙동정맥을 하는
후배들을 따라서 배내고개에 가서 운문지맥 첫 구간을 하고올까 생각을 했는데 일욜날 비온단다
2년전 수술 이후는 절대 우중산행을 안하는 걸 철칙으로 한다
폐가 약하여 감기가 오면 폐렴으로 넘어갈 확률이 많다는 주치의의 경고 때문이다
그렇다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지맥길을 안 갈 수가 없다
그러다가 고민한 것이 지난주에 걸었던 금천(국사)지맥 마지막 구간을 하기로 한다
지난주 원칙을 고집하다가 늦어 버리는 바람에 동료산꾼들보다 4km 가량 늦은 구간도 있어서...
이 구간은 90%이상 대다수의 산꾼들이 밤고개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예천 공군 비행장이 있는
구간은 생략하고 공군부대 정문에서 3구간을 시작하는데 왠지 모르게 찝찝한 느낌도 있고 하여
밤고개 노인회관에서 출발하려면 아무래도 혼자가야 할 듯 싶어서 토요일 이른 아침에
집을 나와서 예천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동서울 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예천행 버스표
06시 40분 동서울터미널에서 예천으로 향하는 버스 터미널에 오른다
버스는 올림픽 대로를 벗어나 중부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차가 많이 막힌다
코로난가 지랄인가하는 역병 때문에 잔뜩 움추렸던 지난 봄과는 달리 사람들이
이젠 많이 무뎌지고 느슨한 모양이다..사실 이럴때가 가장 겁이 난다
예천가는 버스에는 다행히(?)도 승객들이 별로 없다
여주휴게소를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에 접어드니 차량이 별로없고 나는 깊은 잠에 빠진다
얼마나 잤을까 잠에서 깨어나니 버스는 점촌I.C를 빠져나와 예천으로 향하고 있다
예천 터미널(09:25)
터미널에서 밤고개 노인회관까지 택시를 타고 간다
택시요금이 11.800원이 나왔고 지갑에 잔돈이 11.000원밖에 없어서
5만원권 지폐를 주니..바꿔줄 돈이 없다고 한다
잔돈이 11.000원밖에 없다고 하니 그것만 달라고 한다
본의 아니게 800원을 할인받은 셈이다
밤고개 노인회관(09:40)
6일만에 다시 온 셈이다
이곳에서 산행 채비를 하고 물 한모금을 마시는데 오늘 날씨도 그리 만만치는 않을 듯 싶다
산행을 시작하다(09:45)
도로 좌측에는 지난주에 둘러 보았던 물체당 고택이 보인다
물체당 고택입구(09:47)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우측으로는 경북선 철길 철조망이 보인다
율현리(栗峴里) 입구(09:49)
예천군 유천면 율현리는 마을이 언덕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전형적인 농촌마을인데 자연마을로는
밤고개, 교동, 동산, 섶밭이 있다. 밤고개는 마을에 밤나무가 많았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교동은 마을에 향교가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동산은 낮은 산이 마을 가운데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섶밭은 마을에 섶이 많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경북선 철길 너머로는 공군부대 건물들이 보인다
공군부대 저 안쪽이 지맥길이다
6일전 저기에서 개고생을 했다
공군부대 철조망과 경북선 철길 철조망이 붙어있어 오도가도 못하고 후퇴한
쓰라린 아픔(?)을 간직한 곳을 바라보니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매산리 삼거리(09:54)
논 너머로 공군 비행장이 보이고 비행기 너머로 보이는 능선이 맥길이다
가정집 주택처럼 보이는 절집도 지난다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서 간다
도로 옆에는 텅빈 폐가들이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 농촌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것 같아 맘이 편치않다
매산2리 노인회관(0:00)
노인회관 건너에는 점쟁이집이 보인다
점집은 하나같이 절 ‘卍’에다가 연등을 달아놓아 사찰을 흉내낸다
부처님께서는 늘 正法을 강조하셨는데 私法으로 우매한 民草들을
惑世誣民한 죄값을 어케 치를려고 하는지...
예산군 유천면에 있는 매산리(梅山里)는 자연마을로는 건너마, 버드내, 아릇마, 웃마, 토치가 있다.
건너마는 토치 건너편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버드내는 마을 앞 내에 버들이 많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아릇마는 토치 아래쪽에, 웃마는 토치 위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토치는 마을 지형이 토끼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유천 초등학교가 있다.
고개(10:02)
유천 삼거리(10:03)
공군16전투비행단 방향으로 걸어간다
뒤돌아 본 유천 삼거리의 모습
경북선 철길 위(10:05)
철길위 다리에서 내려다 본 경북선 철로
이곳부터 비행장 정문까지 계속해서 공군부대 담벼락과 같이 걸어간다
매산리 버스 정류장(10:12)
공군부대로 이어지는 지하통로를 지난다
쥔장은 출타중인 모양이다
참나무(꽃말:순결, 깨끗한 마음)
‘참나리’란 이름은 백합과의 나리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으로 ‘참’이라는 접두어가 붙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나리류를 분류해 보면, 줄기에 잎이 어긋나있는 것과 둘려난 것으로 구분하고,
어긋난 것은 다시 꽃이 위를 행해 피는 ‘하늘나리’와 아래를 향해 피는 ‘참나리’, ‘중나리’, ‘땅나리’,
‘털중나리’로 구분할 수 있는데 잎이 줄기에 둘려난 것들 중에는 한 층으로 둘려난 것을 ‘말나리’
여러 층으로 둘려난 것은 ‘섬말나리’로 분류한다
다년생 초본으로 주아 및 인경으로 번식하며,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이나 들에서 자란다.
인경은 지름 4~8cm 정도로서 둥글고 줄기는 높이 100~200cm 정도까지 자라며 다닥다닥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길이 5~18cm, 너비 5~15mm 정도의 피침형이며 짙은 갈색의 주아가
잎겨드랑이에 달리는데 7~8월에 개화하며 4~20개의 꽃이 밑을 향해 달린다.
꽃잎은 길이 7~10cm 정도의 피침형으로 황적색 바탕에 흑자색 반점이 많고 뒤로 말린다.
‘중나리’와 달리 전체가 대형이고 잎겨드랑이에 살눈이 있으며 화피의 길이는 7~10cm 정도로
짙은 황적색 바탕에 흑자색 점이 있으며 봄에 연한 새싹을 삶아 나물 또는 볶음으로 먹으며
땅속의 비늘줄기를 밥에 넣거나 구워 먹으며 시루떡에 넣기도 한다.
밀원용이나 관상용으로 심기도 하며 한방에서는 참나리의 알뿌리(비늘줄기)를 열병, 해수, 폐결핵
등을 치료하는 약재로 사용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어느 마을에 아주 예쁜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행실이 나쁜 이 고을의 원님
아들이 이 처녀를 강제로 희롱하려고 했다. 그러나 처녀는 완강히 거절하고 자결로서 순결을 지켰다.
처녀가 죽은 뒤에야 원님 아들은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처녀를 양지 바른 곳에 잘 묻어주었다.
얼마 후 그 무덤 위에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피었는데, 사람들은 이 꽃을 ‘참나리’라고 불렀다.
도로에서 바라본 예천군 유천면 초적리(草笛里)의 모습
예천군 유천면에 있는 초적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가운데에 초적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풋적골, 초적이 있는데. 풋적골은 마을에 작은 절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초적은 마을 앞에 초당암이라는 넓은 바위가 있고 초적못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가는데 날씨는 생각보다 상당히 덥다
초적마을 버스 정류장(10:22)
하늘은 참 맑으나 시야는 그리 좋은편은 아니다
군부대 정문이 다 되어가나 보다
드디어 공군부대 정문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간단한 간식을 사먹으려 했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P.X는 문이 굳게 닫혀있다
공군부대 정문(10:33)
예천비행장은 1975년 군용비행장으로 설치된 뒤 공군에서 운용하다가, 1989년 12월 개항하면서
민간항공기가 취항했는데 그 당시 아시아나 항공과 대한항공이 예천에서 서울과 제주 노선을
운항하면서 경북 북부지역 주민들의 교통편의를 제공해 왔으나, 중앙고속도로 개통과 도로교통망
확충의 영향으로 항공 이용객이 급격히 줄어 1997년을 정점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다가 2003년 11월
민간항공이 운항을 중단했고, 2005.12. 개항 16년 만에 문을 닫고 국방부에 이양되면서 종전대로
군용비행장이 되었다.
밤고개 노인회관에 삥 둘러 도로를 따라서 약 4km를 걸어서 마루금으로 복귀하여
본격적인 제3구간 마루금을 이어간다
부대정문 맞은편에 있는 P.X인 예성면회실과 공군부대 관사인 충효마을 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관사 골목으로 올라간 다음에 우측으로 꺽어진다
군부대 관사를 지나자마자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예천출신인 산으로님의 시그널이 자기 고향에 왔다고 반갑게 맞아준다
초반부터 아카시아가 태클을 걸어대고...
개성고씨 묘지들이 보인다
개성고씨 묘지위로 올라선 다음에 내려서니...
또 다른 개성고씨 묘지가 나온다
개성고씨 가족묘(10:40)
개성고씨 가족묘를 지나니 안삼밭이 보이고...
넓은 농로를 따라서 가다가 농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서니 묵밭이 나온다
요즘은 꽃이나 인간이나 다들 제 정신이 아니다
봄철에 피어야 할 애기똥풀이 지금 피고 있으니...
하기사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라는 것들이 인간같잖게 행동하는 넘이 얼마나
많은데 어찌 니들을 탓하겠냐...
며칠전 성추행 혐의로 자살한 서을시장이라는 자...참으로 역겹다.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등을 만들었고 지자체 최초로 젠더 보좌관을
만들어 여성 우대 정책을 펼쳤고 변호사 시절에 최초로 여제자를 성추행한 교수를 소송하여
여성 인권을 지키며 여성들에게 인기있던 자가 자기는 4년을 넘게 자기 비서를 추행하고...툇툇툇
개만도 못한 자들...충남지사. 부산시장 등이 아랫도리 함부로 놀리면서
여성들을 희롱하는데도 예전에 개거품 물면서 여성 인권을 외치던 진보진영의
여성 단체들은 다들 이민을 가셨나... 아니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나...
요즘 인간사 세상살이는 갈수록 가관이다
묵밭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선다
넓은 임도가 나오고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묘지를 지나면서...
맥길은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용암리(龍岩里)의 모습
예천군 유천면에 있는 용암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용바우, 절골, 어룡이 있다.
용바우는 마을 앞에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절골은 마을에 절이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룡은 어룡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암마을을 지나자마자 넓은 임도가 갑자기 사라졌다
잡목의 엄청난 저항을 받으면 우측으로 내려간다
조금을 더 내려오니 묘지가 보이고...
밀양박공 묘(10:50)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아카시아 숲으로 인해 길은 보이지 않는다
숲을 헤치고 내려서니...참깨밭이 나오고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농로 삼거리(10:51)
용암마을에서 올라오는 농로이다
농로를 따라서 올라가다가 우측의 밭으로 올라간다
넓은 임도 나오고...
이 임도는 최근에 조성한듯한 묘지로 이어지는 임도이다
직진으로 올라간다
의좋은 사형제 바위(?)
176m봉(10:57)
오늘 산행구간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이곳부터는 오늘 산행을 시작한 밤고개에서부터 같이 걸어온 유천면과 작별하고
좌.우과 온전히 예천군 개포면으로 접어든다...우리 동네 이름과 같네
예천군의 지명은 꺼꾸 읽어면 희한한 지명이 많다.
풍양면은 양푼이고, 개포면은 포개, 지보면은 보?이니 ㅋㅋㅋ
176m봉 정상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등로는 좋다
안부(10:59)
고속도로(?)같은 넓은 임도를 따라서 걷는다
완만하게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고도차가 없는 오르막으로 오른다
갑자기 넓은 등로에 키큰 아카시아 나무를 비롯한 잡목들이 길을 막는다
다시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좁은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맥산꾼의 전설중에 한 분이신 부산의 맨발님의 빛바랜 시그널이 보인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능선 좌측 아랫쪽에는 묘지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개망초가 엄청나게 태클을 걸어댄다
169m봉(11:7)
169m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는데 간벌하여 마구 버려진 나무사이로 내려가며 한 동안 개고생을 한다
우측으로 내려서니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잠시 후 벙커도 보인다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선다
등로 좌측에는 묘지가 보이고...
잠시 후 뚜렸한 등로를 만난다
안부를 지나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다시 뚜렸한 능선을 만나 맥길을 걸어 가다가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잡풀의 저항을 받으면서 우측으로 올라선다
파란 물탱크와 그물망을 쳐놓은 밭이 나오고...
그물망을 따라서 내려간다
농막(11:15)
농막 좌측으로는 가오실과 상심헌으로 간다는 이정표가 있다
예천군 개포면 가곡리에 있는 가오실(佳五室)이라는 이름에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이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못의 오른쪽에는 와룡담이 있고 오른쪽에는 용린암이 있다.
지금은 없어졌으나 못가에 드러난 조그만 바위는 용귀라 하였다.
용이 누워 있고, 용의 목 비늘이 있으니 용머리 용귀가 있는 것이다.
이 못은 1549년(명종4년) 상심헌 이경백이 지보면 신풍리에서 이곳 가오실못 위
가오실마을로 이주하여 들어와 살면서 꾸민 못이다.
구전에 의하면 어느날 이경백이 마을앞에 연못을 파니 용모양의 바위가 나와 이를 용바위라
부르고 신성시 하여 왔으며 지금도 이곳 땅속에는 와룡담,용인암이 새겨진 바위가 있다고한다.
어느날 지나던 길손이 이 바위에서 쉬면서 시 한수를 새기려고 망치로 정을 치니
이 바위에서 피가 솟구쳐 연못이 온통 핏빝으로 변하였다.
그 이후 마을 젊은이들이 하나 둘 죽어가는 재앙이 끊이진 않아 초승달이 저무는 한밤중에
동네 어르신들이 재앙을 없애려고 망치로 큰 바위를 치니 맑은 하늘에 천둥번개가 치면서
바위가 넘어지고 재앙이 사라졌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 곳이란다.
가오실((佳五室)은 다섯가지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뜻에서 가오실로 불리어졌는데
그 다섯가지 아름다움이란
지중소도 (池中小島)- 연못안에 작은 섬이 있고
침하명천(沈下鳴泉)-땅속 깊은 곳에서 샘물소리 들려오니
용산명월(龍山明月)-용산위에는 밝은 달이 두둥실
봉강숙운(鳳崗宿雲)-봉강산에는 구름이 자는 듯 걸려있고
두수청풍(杜樹淸風)-팥배나무 푸르러 맑은 바람이 불어온다.
농막 옆에는 그네도 보인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직진으로 향하는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이곳에서 씨알이 굵은 도라지 5뿌리를 수확한다
무명봉(11:23)
무명봉을 지나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밭이 나오고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924번 지방도로 내려선다
924번 지방도(11:25)
도로 우측에는 참한 농원이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도로 옆에는 큰금계국을 많이 심어놨다
큰금계국(꽃말:상쾌한 기분)
다년생 초본으로 근경이나 종자로 번식하며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귀화식물로 길가에 재배하거나
야생으로 자라며 원줄기는 높이 40~100cm 정도이고 가지가 갈라진다. 근생엽은 모여 나고 경생엽은
마주나며 잎몸은 3개로 갈라지며 열편은 피침형으로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털이 다소 있다.
6~8월에 1개씩 달리는 두상화는 지름 4~6cm 정도이고 황색이며 수과는 길이 2~3mm 정도로 둥글고
얇은 날개와 관모가 있으며 ‘금계국’에 비해 소엽이 피침형 또는 장타원상 난형이고 꽃잎 하부에
적색부가 없다.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잎은 ‘금계국’이라 하여 약으로 쓰인다.
삼거리(11:32)
삼거리에서 도로를 버리고 좌측 밭 가운데를 가로 지른다
밭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등로는 보이지 않고...
힘들게 치고 오르니 묘지가 보이고 등로는 보이지 않고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날씨는 더운데 바람한 점 없고 모기는 계속 달려들고 초반부터 힘이 드는구나
잠시후에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등로를 따라서 좌측으로 꺽어서 올라간다
125m봉(11:38)
등로는 희미하고...
등로 좌측 아래에는 예천군 개포면 황산리가 보인다
황산리(黃山里)에는 황산저수지가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가산, 황전, 시누물, 갓마, 보수동이 있다.
가산은 마을 뒤에 높은 산이 있고 그 앞에도 낮은 산이 있는 곳에 마을이 생겼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황전은 흙빛이 누렇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시누물은 이 마을 식수로 쓰는 뒷산 중허리에서
맛좋은 물이 솟아나 사람키로 세길이나 되는 깊은 샘이 있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갓마는 시누물에서 바깥쪽에 있다하여 생긴 이름이고 보수동은 조선 말기에 파평 윤씨들이
동수목이 있는 곳에 터를 잡고 잘 보호하자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오늘 산행은 개망초의 태클이 유난히도 심하다
다시 우측으로 내려가니...
선답자의 흔적이 보이고...
등로 좌측 아래는 묘지가 보인다
묘지로 이어지는 임도인지 등로 아주좋다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랐다가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니...
조금전에 헤어진 넓은 임도가 나온다
우측에는 감나무밭이 보인다
등로 주위에는 딱지꽃이 많이 보인다
딱지꽃(꽃말:언제나 사랑해)
장미과에 속하는 다년생초.굵은 뿌리에서 여러 개의 줄기가 모여나고 60㎝ 가량 자란다.
뿌리에서 바로 나오는 잎은 땅위에 퍼져 자라며, 줄기에서 나오는 잎은 어긋난다.
잎은 날개깃처럼 갈라졌는데 15~30갈래로 나누어 졌으며,잎뒷면 에는 흰털들이 빽빽하게
나있어 하얗게 보이며 꽃은 노란색이며 6~7월에 줄기 끝에서 취산꽃 차례로 핀다.
꽃잎은 5장이고 수술은 많다. 열매는 수과로 맺힌다. 중국 에서는 위릉채라고 하며, 식물
전체를 말려 해열이나 지혈에 쓰고 봄에 어린 잎을 따서 나물로 먹거나 뿌리를 날것으로 먹기도 한다
꽃은 6~7월에 산방 모양의 취산 꽃차례로 노란색의 오판화가 줄기 끝과 가지 끝에 많이 달려
피는데, 지름은 1~2cm 이고 꽃자루는 가늘다. 꽃턱잎은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진다.
꽃잎은 5개인데 거꾸로 된 심장형이며 꽃받침보다 길다.꽃받침 조각은 5개이고 달걀꼴 또는
달걀 모양의 댓잎 피침형 으로서 끝이 날카롭다.
열매는 7~9월에 넓은 달걀꼴의 수과가 달려 익는데 세로로 주름살이 지고 윤기가 난다.
식용·약용으로 이용된다. 어린잎은 나물로 먹는다.
약으로 쓸때는 주로탕 으로 하여 사용한다.
효능주로 신경계·순환계 질환을 다스린다.
묘지를 지나고...
등로 좌측에는 아침에 버스를 타고 지나온 34번 국도가 보인다
고구마밭 가장 자리를 지나 시멘트 도로로 내려선다
시멘트 고개(11:55)
예천군 개포면 황산리에 있는고개이다
시멘트 고개 옆 복숭아밭 죄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등로 보이지도 않고 파란색 물탱크 옆으로 올라간다
힘들게 올라서서 지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져야 하나 우측 2~30m지점에 족보있는 봉우리가 있다
127.7m 봉을 오르는데 간벌하여 마구 버려진 나무로 2번이나 꼬꾸라지면서 정상에 오른다
127.7m봉(12:00)
127.7m봉을 개고생하면서 갔다가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갈림길(12:03)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에 이곳에서 베낭을 내리고 점심을 먹는다
점심식사(12:03:20)
점심이라봐야 두유 하나에 감자 다섯알이다
오늘 산행은 야트막한 산이고 제일 높은 산이 176m봉이다.
거기다가 도로와 마을을 지나기에 식당이 있겠지하고 베낭 무게를 줄이려고 간단하게 싸왔다
다시 길을 나선다
보이지 않는 등로를 헤치고 내려서니 관리가 안된 화산권공 묘지가 나온다
화산권공 묘(12:22)
여태껏 화산권씨 묘지는 처음본다
묵묘를 내려서니 뚜렸한 임도 나오고...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내려선 다음에...
시멘트 농로로 내려선다
농로 좌측으로 가니 34번 국도가 보인다
34번 국도암거(12:25)
34번 국도 암거를 지나 우측으로 올라간다
밭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우측에 34번 국도가 보인다
이동통신탑(12:30)
반갑습니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조금 뚜렸한 직진이 아닌 우측으로 내려간다
오늘은 아카시아, 개망초와 악연은 계속된다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나고...
도미마을 삼거리(12:35)
마을 도로를 따르다가 좌측으로 꺽어진다
황산리 도미마을 우측으로 올라간다
개포면 황산리에 있는 도마마을은 뒷미, 도산(道山), 도미(道味), 가산(加山) 이라고도 하며
마을 뒤에 높은 산이 있고 그 앞에도 낮은산이 있는 곳에 마을이 생겨 가산(加山)이라 부르게 되었고
마을을 순천박씨(順天朴氏)와 송씨(宋氏)들이 개척(開拓) 한 터에 용궁면(龍宮面) 무이리에서 옮겨 온
백씨(白氏)들이 살고 있으며 도미(道味)의 마을명은 중간마을(山井) 뒷편에 있다하여 뒷미(뒷마을)라
하였으며 행정구역 리동 설치시 도미라고 이름하였다
마을이장의 공지를 알리는 스피커...정겨워 보인다
농기구 창고 옆으로 올라간다
도미마을을 벗어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길은 다시 거칠어지고...
무명봉(12:43)
잡목의 강력한 저항을 받으며 우측으로 내려가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생각보다 등로는 뚜렸하다
잣나무 조림지를 지난다
흐미 이쁜 넘...이곳에서 주위에 있는 10여개의 영지버섯을 수확한다
우측 능선이 맥길이나 너무 길이 험해 사면길로 걸어간다
무명봉(12:48)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아카시아나무의 저항을 받으면서 농로로 내려선다
농로 끄트머리에서 좌측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길을 잃지 말라고 선답자께서 전봇대에다 시그널을 매달아놨다
고공수로 아래를 통과한다
수로를 지나니 우측에 성주이공과 유인 의성김씨 합장묘가 보인다
시멘트 도로에서 바라본 예천군 개포면 장송리 침정마을의 모습
침정(針井) 마을은 뒷산의 끝이 뾰족하여 바늘산이라고 불렀고 그 정상에 우물이 있어 침전(針井)이라
하였는데 그 아래에 마을이 생겼다고 하여 마을 이름도 바느물 혹은 침전(針井)이라 불렀다.
도로에서 좌측으로 꺽어진다
고공수로(12:55)
고공수로를 통과하여 능선으로 올라간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 작자미상
작은 산이 큰 산 가리는 것은
살아갈수록 내가 작아져서
내 눈도 작은 것으로만 꽉 차기 때문이다
먼데서 보면 크높은 산줄기의 일렁임이
나를 부르는 은근한 손짓으로 보이더니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봉우리 제 모습을 감춘다
오르고 또 올라서 정수리에 서는데 아니다
저어기 저 더 높은 산 하나 버티고 있다
이렇게 오르는 길 몇번이나 속았는지
작은 산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나를 가두고
그때마다 나는 옥죄어 눈 바로 뜨지 못한다
수로를 지나고...
고구마밭도 통과하고...
숲속으로 들어선다
무명봉(13:00)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는데 잠시 아카시아 숲에 갇혀 오도가도 못한다
힘들게 빠져 나오니 개포면 장송마을이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예천군 개포면 장송마을의 모습
장송(長松)마을은 약 500년전 이사언이라는 선비가 개척(開拓)하였다는 마을이며 마을터를
잡을 때 노송(老松)이 많이 있었으므로 장송(長松)이라고 한다는 곳이고 마을 뒤 산이
성주(星州) 이씨(李氏) 집거(集居) 마을이다.
장송고개(13:02)
장송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라 내가 자의적으로 장송고개라 부른다
등로에서 바라본 예천군 개포면 장송리(長松里)의 모습
조선시대 중기에 이사언이라는 선비가 개척한 마을이라 전해지며 마을을 개척할 때 마을에
노송이 많아 장송(長松)이라 했다 하며 자연마을로는 솔골·붉은디기·바느물·던지미 마을이 있다.
솔숲이 우거진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는 솔골(송곡 松谷)은 장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마을 앞에 청룡산(淸龍山)이 있으며 붉은디기(적현 赤峴)는 마을 터와 뒷산의 흙이 모두 붉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바느물(침정 針井)은 바늘처럼 뾰족하게 생긴 마을 뒷산 정상에 우물이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던지미는 둔지미라고도 하고 한자로는 성조(盛鳥)라고 한다.
힘센 사람이 들어서 던질 만큼 마을 뒷산이 작다 하여 던지미, 그 산에 온갖 새들이 날아든다 하여
깃든다 하여 성조(盛鳥), 임진왜란 때 왜병이 이곳을 지나면서 둔(屯) 즉 진을 치지 않았다 하여
둔지미라 불렀다 한다
무명봉에 올랐다가 완만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장대냉이(꽃말: 당신께 모든걸 맡깁니다)
장대(長대)는 긴 막대기를 가리키는 단어로서 한자어와 우리말의 합성어로
길게 뻗은 줄기위에 꽃이 핀다고해서 장대냉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2년생 초본으로 종자로 번식하며,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 가장자리나 들에서 자란다.
원줄기는 높이 30~60cm 정도로 곧추 자라며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전체에 털이 있다.
어긋나는 잎은 잎자루가 없고 길이 2~3cm 정도의 긴 타원형이나 위로 갈수록 작아져서
좁아지고 털이 없어지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6~7월에 개화하며 총상꽃차례에 피는 꽃은 연한 자주색이며, 열매는 길이 1~2cm
정도로서 부리처럼 길며 ‘가는장대속’와 달리 과실은 끝이 점점 가늘어 진다.
어린순을 데쳐서 나물이나 국을 끓여 먹는다.
넓은 길에는 큰 아카시아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농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농산물 창고(13:10)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올라간다
낮은 산을 걷다보니 긴장이 풀린 탓일까...졸음이 쏟아진다
이곳에서 베낭을 베개삼아 잠을 청하려 했는데 산모기가
어찌나 지랄발광을 하면서 헌혈(?)을 강요하는지
참지 못하고 물한모금 마신 후 다시 길을 떠난다
가야할 139.2봉의 모습
뒤돌아보니 비조산과 오봉산 왕의산이 아련히 보인다
땅콩밭 가장자리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능선으로 올라선 다음에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갈색먹물 버섯
균모의 지름은 1-4cm로 난형에서 종모양 또는 원추형으로 되며, 더 펴지면 가장자리는 위로 말린다.
표면은 연한 황갈색이고 미세한 운모 상의 가루로 덮였으나 나중에 떨어져서 매끄러워지며
가장자리에 방사상의 줄무늬 홈선이 있으며 주름살은 백색에서 흑색으로 되어 액화하지만
두엄먹물버섯이나 먹물버섯처럼 심하지는 않다.
자루의 길이는 3-8cm이고 굵기는 2-4mm로 백색이며 속은 비어 있다.
포자의 크기는 7-10×4.5-6㎛이고 타원형인데 한끝이 뾰족하고 납작하며 어린것은 식용한다.
발생 시기는 여름에서 가을 사이에 활엽수의 그루터기나 땅에 묻힌 나무 위에 군생 또는 속생한다
무명봉에 올랐다가 우측으로 향한다
안부에 내려섰다가 다시 능선으로 올라선다
139.2m봉(13:22)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김해김공 묘(13:25)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갈림길(13:28)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우측으로 내려서니 뚜렸한 임도가 나온다
내리막이 나오고 귀화식물인 생태교란종으로 손가락질 받는 나래가막사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나래가막사리(꽃말:알알이 영근 사랑)
국화과 나래가막사리속 여러해살이 풀로 다년생 초본으로 근경이나 종자로 번식한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귀화식물로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도로변이나 산 가장자리에서
자라며 근경에서 나와 군생하는 원줄기는 높이 1.5~2.5m 정도이고 전체에 약간의 털이
있으며 좁은 날개가 달린다. 경생엽은 밑부분에서 마주나고 윗부분에서는 어긋난다.
잎자루는 짧고 잎몸은 길이 8~20cm, 너비 2~6cm 정도의 장타원상 피침형으로 가장자리에
예리한 톱니가 있으며 산방상 원추꽃차례로 달리는 지름 3~6cm 정도의 두상화는 8~10월에
피며 황색으로 수과는 넓은 날개가 있고 연모가 있으며 관모는 2개의 망으로 변한다
큰 키에 넓은 잎으로 인해 토종식물을 고사(故死)시키는 생태 교란종이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등로는 우측으로 꺽어지고...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안부(13:35)
무명봉(13:37)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능선으로 내려오니 월오리에서 산택리까지 이어지는 34번 국도를 확장중이다
월오리 사거리(13:45)
예천군 용궁면에 있는 월오리 사거리... 문경에서 예천으로 이어지는 34번 국도가 지나간다
월오리(月梧里) 마을 뒷쪽으로는 바람골이 있고 앞으로는 회천이 흐르며 마을의 모양이
반월형이고 마을 주의에 오동나무가 많이 있었다하여 월오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장평, 절골, 가래미, 안터, 별락, 등자바위가 있다. 장평은 글을 잘하는 선비가
많이 산다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오래도록 편안함을 기원하는 뜻으로 부르기도 한다.
자절골은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이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래미는 가래산 밑에 마을이 있고 뒷산이 담쟁이가 많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터는 마을의 뒷산 모양이 마치 소쿠리와 같이 생겼고 그 안에 마을이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지세 때문에 의식이 넉넉하다고 한다.
별락은 동네 앞 고개에 벼락이 떨어져서 산맥이 끊기고 그 자리로 길이 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특산물로는 곶감이 있다. 문화재로는 기천서원이 있다
낮은산을 걷다보니 아카시아와 산초나무를 비롯한 잡목들로 인해 다리가 상처투성이다
거기다가 여름 등산복 바지가 앏아서 그런지 상처부위가 엄청나게 아프고 쓰라리다
더불어 불청객인 산모기와 벌레의 등쌀도 만만찮다.
이곳 버스 정류장 옆에있는 정자나무 아래에서 5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나선다(13:50)
월오리 정미소를 끼고 좁은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원 지맥길은 주택으로 인해 막혀 버렸다
한 집을 건너니 공장같은 넓은 집이 보이고 마당으로 들어선다
마당을 가로 질러가니 할매가 나와서 그쪽은 길이 없다고 가지 말란다
길이 있고 없고는 모르겠고 가고 안가고는 내 맘이다...할매한테 양해를 구한다
참깨밭 가운데가 맥길이다
참깨밭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아카시아숲을 헤치면 올라서니 예상외로 등로는 뚜렸하다
뽕나무버섯 부치
주름버섯목 방울버섯과 뽕나무버섯속에 속하는 버섯으로 여름부터 가을까지 무리 지어 자생한다.
갓의 색깔은 노란 빛이 도는 것부터 밝은 흙색까지 다양한 편이며, 대는 상아색으로 쭉 뻗어 있다.
뽕나무버섯과 이름과 생김새가 비슷한데, 뽕나무버섯에는 턱받이가 있는 반면 뽕나무버섯부치에는
턱받이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며 식재료로 사용할 때에는 염장 등으로 먹는다
오름길에 직경 20cm가 넘는 大物 영지버섯을 수확하는 행운을 누린다
등로는 조금씩 거치어지고...
무명봉(14:00)
숲속은 생각보다 어두워 똑닥이 카메라 탓인지 그림이 흐리고 흔들린다
산이야 낮지만 그래도 정상인데 왜 인공수로가 이리 지나가지?...
수로를 건너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묘지 우측 능선이 맥길인데 잡목의 저항이 너무 심해 도저히 갈 수가 없다
묘지로 내려서니 처사김해김공과 부인 파평윤씨 묘지가 있다
우회를 해서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등로 아랫쪽에는 잘 관리된 가족묘가 보인다
순흥안공& 배부인 김해김씨 묘(14:06)
묘지 윗쪽으로 올라간다
우측으로 묵은 임도가 보이고 직진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또다른 순흥안공과 부인 개성고씨 묘지를 지난다
점점 지맥길은 거칠어지고...
하는 수 없이 마루금을 포기하고 묘지 아래로 내려선다
묘지에서 다시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대단혀요
이곳은 여름철에 올 곳이 못되는구나
넓은 공터를 지난다
고종산 갈림길(14:15)
131.2m 봉(14:16)
131.2m 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내리막길 등로는 아예없고 이곳도 나래가막살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엄청나게 개고생을 하면서 내려간다
이곳도 인공수로가 있고 조금을 더 내려서니 흑오미자밭이 나온다
흑오미자
우리나라의 오미자는 북오미자, 남오미자, 흑오미자로 3종이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 남오미자는
오미자속과 다른 식물이므로 우리의 토종 오미자는 북오미자(붉은열매)와 흑오미자로 분류 된다.
나무 이름의 끝 글자가 자(子)이면 열매나 씨앗을 약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구기자, 복분자와 함께 오미자(五味子)는 자 자 돌림의 대표 약나무다.
열매를 먹어보면 신맛, 단맛, 쓴맛, 짠맛, 매운맛의 다섯 가지 맛이 모두 섞여 있다 하여 오미자다.
실제로 미각이 얼마만큼 발달해야만 이 다섯 가지 맛을 다 구분할 수 있을까?
미각이 둔한 나는 기껏 찝찔한 맛을 느낄 따름이다. 오미자 화채나 차를 먹어보면 신맛이
강하여 그저 시금털털하다는 느낌이다.
《산림경제》에 보면 “육질은 달고도 시며 씨앗은 맵고도 써서, 합하면 짠맛(鹹味)이
나기 때문에 오미자라고 한다”라고 했다.
오미자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자라지만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을 최고로 친 것 같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전국 대부분 지역의 특산물로 기재되어 있으며, 세종 때는
50근에서 많게는 200근까지 중국에 보냈다는 기록들이 여러 번 나온다.
또 세종, 세조 때에는 일본에도 오미자를 특별히 보내준 기록들이 있다.
오늘날 오미자의 일본 이름을 ‘조선오미자’라고 쓰는 것도 우리의 오미자를 더 선호했다는 증거다.
오미자는 갈잎 덩굴나무로서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으며 산기슭이나 계곡 등 수분이 많고
비옥한 땅을 좋아하고,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서 자란다.
약용으로의 수요가 많아 적어도 조선왕조 이전부터 밭에 심어서 키워왔으며, 지금도 경상북도
문경을 비롯하여 대량으로 재배하는 곳이 많으며 잎은 넓은 타원형으로 손바닥 반만 한 크기에
잎자루는 붉은 기가 있다. 꽃은 여름에 잎겨드랑이에서 작은 동전 크기로 피는데, 연분홍이거나
거의 흰색이다. 꽃이 지고 나면 꽃턱(花托)이 길게 자라 앵두처럼 빨갛고 굵은 콩알 크기의 열매가
포도송이처럼 조롱조롱 열린다. 암수가 다른 나무이므로 같이 심어야 열매를 맺는다
오미자의 약효에 대해서는 여기에 다 옮겨 적을 수 없을 만큼 많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임금에게 오미자탕을 올린 기록이 여러 번 나온다.
오미자는 폐와 신장 보호에 특효가 있다고 하여 한방에서는 치료약과 보약 재료로
거의 빠지지 않으며 그 외에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여 혈압을 내리며, 당뇨에도 좋고
감기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며, 최근에는 오미자의 성분을 추출하여 여러 가지
임상실험을 거쳐 각종 질병의 치료 효과를 밝히고 있다
《동의보감》에는 “몸이 약하고 몹시 여윈 것을 보하며, 눈을 밝게 하고 신장을 덥히며,
양기를 세게 하며 남자의 정(精)을 돕고 음경을 커지게 한다. 소갈증(당뇨병)을 멈추게 하고,
열이 나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을 없애주며, 술독을 풀고 기침이 나면서 숨이 찬 것을 치료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미자는 인삼과 거의 같은 수준의 귀한 약재로서 널리 애용되었다.
오미자밭을 지나 내려서니 34번 국도가 보인다
34번 국도(14:28)
지맥길은 34번 국도를 건너서 용궁온천탕으로 올라가야 하나
이곳에 언제 올 일이 있겠나...오늘 산행중에 족보를 가진 산 이름이
없어서 이곳에서 약 2km정도 떨어진 고종산을 갔다 오기로 한다
산택마을 입구(14:33)
마을 뒷쪽 능선이 고종산으로 가는 길이다
대부분의 산꾼들이 조금전에 지나온 고종산 갈림길에서 저 능선으로 갔다가
갈림길로 돌아오지 않고 중간에 몇km를 띵가묵고 가는 모양이더라...
난 그게 싫어서 34번 국도를 택했다...어차피 고종산은 지맥길이 아니잖아...
34번 국도를 따라서 앞에 보이는 고종산으로 향한다
34번 국도에서 바라본 예천군 용궁면 산택리(山澤里) 마을
마을이 고종산 자락 마을이 산자락 밑에 자리잡고 있으며 샛골, 못밑골이 있으며 산택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호미, 기천, 원당, 등암이 있는데 호미는 마을 뒷산이 마치 포효하는 호랑이와 같고
그 호랑이 꼬리 부분에 취락을 이루고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기천은 마을 앞에 기천이 흐르고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원당은 조선시대때 나그네의
편의를 돕기 위한 원터가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등암은 말등자처럼 생긴 큰 등자바위앞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제 초 신작로를 닦을 때 바위가 부서졌다고 한다.
산택 교차로(14:37)
고종산 가는 길은 교차로를 지나 버스정류장 뒤로 올라간다
등로는 아카시아밭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잡풀에 점령당한 묘지를 지나 좌측으로 올라간다
말징버섯
말징버섯은 담자균류 말불버섯목 말불버섯과에 속하는 버섯이다.
버섯의 갓 지름은 약 10cm정도이며 가을에 숲속 땅에서 군생한다.
자실체는 머리와 자루부분으로 나뉘고, 머리부분은 사람머리를 닮았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천신만고 끝에...고종산 정상에 올라간다
정상에는 유인산불감시초소와 군자감 참봉을 지낸 울진장공과 선인평산신씨 묘지가 있다
군자감((軍資監) 참봉(參奉)이란 조선시대 있었던 종9품 벼슬로 최말단직의 품관이다
조선시대의 원(園) ·능전(陵殿) 및 사옹원(司饔院) ·내의원(內醫院) ·예빈시(禮賓寺) ·
군기시(軍器寺) ·군자감(軍資監) ·소격서(昭格署) 등 많은 관서에 속해 있었던 관직이다
고종산(鼓鐘山:150.7m:14:50)
예천군 용궁면 산택리와 가야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유인산불감시초소와
삼각점, 울진장공 묘지가 있으나 정상을 정글(?)을 방불케하는 숲으로 우거져 있다
지명의 유래도 알 길이 없고 삼각점도 찾을 길이 없다... 실망 그 자체이다
산 아래는 34번 국도가 지나가고 산택저수지에 조성된 연꽃공원이 있다.
이리저리 고종산에 대한 유래를 찾을길이 없어 고향이 예천이며 우리나라 맥 산행에
대한 이해도와 지식은 거의 神의 경지에 오른 대한산경표의 저자 산으로님에 자문을 구한다.
어렵게 구한 자료를 카톡으로 보내왔다...복받을깁니다
자료를 정리해 보면 고종산을 이 지역 사람들은 고살미산이라고 불렀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현(縣) 동쪽에 천덕산이 있고 천덕산(현 지형도에 백화산)에 백화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백화사에서 권사복이 지은 시에 “북과 종을 두드리네”라는 구절이 있는데
짐작컨데 1900년대(지형도 제작시?)에 천덕산에 관련된 “북과 종”이 고산(鼓山)과
결합되면서 고산이 고종산으로 표기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또 다른 설은 “고산(高山)”이 종(鐘)처럼 높았다고 하여 “고종산(高鐘山)”으로
불리다가 일제시대에 지도 제작자가 한자로 ‘높을 고(高)’자를 ‘북 고(鼓)’자
잘못 표기했다는 것이다
정글을 연상케하는 고종산 정상의 모습
고종산 정상에 있는 산불감시초소
이곳에서 삼각점을 찾으려고 5분동안 헤맸지만 갠지스강 항하사(恒河沙)에서 바늘찾기만큼 힘이든다
삼각점 찾기를 포기하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내려가는 길 역시 만만찮다
산택리 버스 정류장(15:05)
산책 교차로 신호등을 건너 산택 연꽃공원으로 향한다
산택연꽃공원
예천군 용궁면 산택리의 34번 국도변(예천읍→문경 방향)에 있는 산택저수지(산택지)를 중심으로
조성한 공원으로 부지면적 약 1만 6,528m²(저수지면적 1만 4,083㎡)로, 해마다 7~8월이면 산택지에
연꽃(홍련)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룬다.
농업용수를 공급하던 기능이 쇠퇴한 저수지 곳곳에 연꽃이 자생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약 3,900m²의
못을 추가로 준설하고, 4종의 연꽃 4,000여 본을 추가로 심어 공원을 조성하였다.
현재 저수지는 5,000여 본의 연꽃으로 뒤덮여 있다. 저수지 주변에 소나무와 산철쭉·야생화 등을
식재하고, 잔디광장·정자·벤치·산책로 등과 차량 50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근처에 회룡포마을(예천 회령포, 명승 제294호)·장안사·가오실지수변공원 등의 볼거리와
용궁향교(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10호)·초간정(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43호)·예천 천향리
석송령(천연기념물 제294호)·예천권씨 병암정 및 별묘(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453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산택저수지에 조성된 연꽃 공원의 모습
도로와 마을을 지나기에 점심때 먹은 감자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다
매식을 하려고 했는데 식당은 고사하고 구멍가게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행여 공원옆에 매점이라도 있을까 가봤지만 아무것도 없고 산택마을 입구에
있는 휴게소도 망해 버렸는지 점빵문이 굳게 닫혀있다
국도옆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마루금으로 향한다
용궁원천탕 입구(15:15)
고종산까지 약 2km, 47분에 걸쳐서 갔다가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용궁온천탕 영업합니다’라는 팻말이 보인다
배는 고프고 행여 매점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부지런히 걸어간다
용궁원천탕 앞(15:20)
혹 매점이 있을까 가보지만 코로나 땜에 온천탕은 휴업중
되돌아 나와서 맥길로 향한다
등로 아래는 도로확장 공사장이 보이고 조금전에 갖다온 고종산이 보인다
도로에서 좌측으로 간다
목장입구(15:25~30)
목장입구에는 도로공사 현장 사무소가 있다
배가 고프니 다리가 풀린다...임도 가운데에 주저앉아 베낭을 뒤져보니
초코파이 하나에 초콜렛 하나가 있다...그걸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도로공사 현장 사무실에서 사람이 나오더니만 힘이드는가 봐요
하면서 물을 드리까요 하면서 커다란 물한통을 주신다
등로 좌측에 있는 목장의 모습
다시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간다
넓은 임도를 가다가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니 등로는 좋다
무명봉(15:34)
좌측으로 내려간다
다시 조금전에 헤어졌던 임도를 다시 만난다
인공수로(15:36)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 좌측 아래는 인동장씨 묘지가 있다
이곳을 통과하면서 개고생을 한다
다시 등로가 나오고...
묵은 임도가 나오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5:40)
우측으로 내려간다
고개(15:45)
고개 우측에는 망해버린 축사가 있고...
고개에서 급경사의 오르막을 올라선다
묘지도 보이고....
119m봉(15:49)
좌측으로 내려간다
감나무밭이 나오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134m봉(15:55)
좌측으로 내려간다
간간히 바위도 보인다
희미한 등로에 있는 선답자의 흔적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능선에는 커다란 물탱크가 있다
좌측으로 내려간다
안부(15:58)
독도에서 상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참깨밭으로 내려간다
농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농로에서 바라본 예천군 용궁면 산택리 원당마을의 모습
원당마을은 조선시대때 나그네의 편의를 돕기 위한 원터가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거리(16:05)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감나무밭 위로 올라가다가 베낭을 내려놓고 5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에 개념도상에 또 다른 119m봉으로 올라간다
119m봉(16:15)
직진으로 내려가는데 등로는 까칠하다
곧이어 넓은 임도가 나온다
능선으로 내려오니...
원당 마을을 바라보면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마을로 내려간다
924번 지방도가 나오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원당버스정류장(16:25)
원당버스 정류장 앞에서 우측으로 올라간다
등로 우측으로는 용궁면 소재지가 있는 읍부리(邑部里)가 보인다
예천군 용궁면 소재지가 있는 읍부리는 북동쪽으로 기천이 흐르며 자연마을로는 기천, 유수,
북부, 복호가 있는데 기천은 마을옆으로 기천이 흐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유수는 마을 지대가 낮으 습지대이므로 이 곳에 버드나무가 무성하여 숲을 이루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북부는 읍부리의 북쪽에 위치한다하여 생긴 이름이고, 복호는 건너편 산이 호랑이 머리의 형상이며
그 산줄기의 호랑이 배부분이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국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동통신탑(16:28)
밭 가운데로 올라가서 무명봉으로 향한다
무명봉(16:30)
무명봉에서 급하게 90도 우측으로 꺽어져 밭으로 내려간다
묘지가 나오고...
밭 아래로 내려간다
농로 삼거리(16:35)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는데 햇볕이 상당히 따갑다
시멘트 도로를 따르다가 우측 묘지쪽으로 올라선다
이곳 역시 잡목의 저항이 심하다
무명봉(16:43)
좌측으로 내려간다
잡풀에 점령되어 버린 묘지가 나오고...
여주이공&영일정씨 묘(16:49)
묘지를 지나 밭으로 내려선다
묵밭(16:50)
묵밭의 검은 차양막 하우스에는 느타리버섯을 재배했던 모양이다
밭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 서는데 개망초의 저항이 엄청 심하다
능선에 올랐다가 좌측으로 내려선다
묘지가 있고 좌측으로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나온다
파란색 물탱크가 보이고 꽤 큰 규모의 대추밭이 나온다
대추밭 옆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우측으로 올라가니...
사각정자가 나오고 쉬어 갔으면 좋으련만 귀경 버스 시간 때문에 그냥간다
대추밭 끄트머리에서 우측 능선으로 들어선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내려서니...
도로명 주소가 무이서당길이란 고개가 나온다
내무이 고개(17:05)
무이리 안쪽에 있다고 해서 붙혀진 내무(內武)마을을 넘가는 고개이다
내무이 마을에는 무이서당이 있다고 한다
무이서당(武夷書堂: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31호)은 1656년에 창건되었으며
창암(滄菴)이윤수(李潤壽)를 배향하고 있다. 입교실(立敎室)과 시습실(時習室)을 마련하여
각각 장로(長老)들이 연식할 수 있는 공간과 후생(後生)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삼았다
.
이 건물은 여주이씨(驪州李氏) 시조(始祖)인 태사공(太師公)이인덕(李仁德)의 20세손인
이지섬(李之暹)과 21세손인 이식(李湜)이 1710년에 후손들에게 면학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세운 서당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중앙 2칸은 마루로 되어 있고 좌우 협간은 온돌방으로 꾸몄다.
자연석(自然石) 기단(基壇) 위에 주초(柱礎)를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기둥머리에는
초익공(初翼工)을 꾸몄다.
대청(大廳)상부는 오량가(五樑架)로, 동자(童子)기둥을 세워 이중량(二重樑)을 올리고,
사다리형 판대공(板臺工)으로 종도리를 받쳤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고, 사당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토석담장을 둘렀다.
서당 뒤편에는 여주이씨 무이입향조(武夷入鄕祖)이며 승사랑(承仕郞)으로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에 증직(贈職)된 이윤수를 봉향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 있다
도로 우측으로 올라간다
내무이 고개를 올라서자마자 잡목의 강력한 태클이 시작된다
이리저리 잡목을 피하여 올라간다
안부(17:10)
안부를 올라서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숲을 지나니...
지맥길을 그리 많이 탔어도 여기만큼 힘든곳은 처음이다
아카시아와 찔레꽃 산초나무...각종 가시나무의 백화점같다
100.8m봉(17:18)
100.8m봉의 우측으로 꺽어졌다가 다시 좌측으로 내려간다
몸뚱이는 쓰라리고, 배는 고프고...
천신만고 끝에 도로로 내려선다
외무이 고개(17:23)
무이리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외무(外武)마을이라 부르면 좌측 아래에는 소천서원이 있다
예천군 용궁면에 있는 무이리(武夷里)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여주인 창암 이윤수라는 사람이
마을을 개척하였고 마을에 오얏나무가 무성하다하여 음을 합쳐 무이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갯마, 누문동, 소천이 있으며 갯마는 양지바른 마을로 갯들이 광활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누문동은 마을앞에 누문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소천은 마을에 소천서원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문화재로는 소천서원이 있다
외무 마을로 이어지는 1차선 도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감나무밭이 나오고...
감나무밭을 지나 우측으로 꺽어진다
우측 묘지 너머로 금천이 보이기 시작하고 합수점이 점점 가까워진다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7:30)
금천(국사)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직진으로 내려간다
반갑습니다...능선을 내려서니 무이들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포장 길을 내려가니...
924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금천 1교가 나온다
금천1교 암거(17:35)
무이들녁 가운데를 걸어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금천/내성천 합수점(18:05)
무이 들녘을 가로질러 무이제방으로 올라서니 금천이 내성천에
합수되는 합수점에는 물은 보이지 않고 숲만 우거져 있다
금천(錦川)은 지방 2급 하천으로 낙동강 수계이며 낙동강의 제1지류인 내성천과 연결되는 제2지류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 황장산에서 발원하여 문경시 영순면에서 내성천에 합류한다.
강의 길이는 42.85㎞이며 유역면적은 285.97㎢이다.
합수점으로 내려가려는데 도저히 갈 수 있는 길이 안보인다
이곳으로 내려가는 곳을 포기하고 무이 배수장쪽으로 향한다
무이 배수장으로 가보는데 내려가는 계단이 있어 내려가 보지만
숲이 우거져 이곳 역시 도저히 진입할 수 없어 합수점으로 가는 걸 포기한다
무이 배수지에서 바라본 내성천(乃城川)의 모습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의 선달산(1,236m)에서 발원하여 남류 및 남서류하여 영주시,
예천군을 지나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에서 낙동강에 합류하는 낙동강 지류의 하나로, 본류 길이는
110.69㎞, 유역 면적은 1,815.28㎢이며, 한천(漢川)·남원천(南院川)·단산천(丹山川)·
낙화암천(落花巖川)과 같은 지류로 이루어져 있다
금천(국사)지맥을 종료하는 인증샷
합수점으로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접고 이곳에서 용궁 택시를 호출한다
10여분만에 택시가 도착하고 용궁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택시요금이 6,800원이 나왔는데 6,000원만 달라고 한다...복받을깁니다
용궁 버스정류장(18:30)
터미널에 도착하여 19시05분 버스표를 예매하고 화장실에 가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컵라면 하나에다 이 지역에서
나오는 영탁막걸리 한병을 마시고 허기를 면하니 살 것만 같다
예천군 용궁면(龍宮面)소재지의 모습
용궁발 → 동서울행 버스표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게 버스는 도착하고 정말 힘들게 지맥 하나를 끝내고 귀경 버스에 오른다
이곳 예천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영탁막걸리
미스트트롯에 출연한 영탁이가 광고하는 막걸리다
3병을 사서 한병은 먹고, 2병은 친구들 주려고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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