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20년 08월 16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가시거리 좋음...폭염 경보
☞ 산행거리: 도상거리 9.4km + 들머리 3.4km+날머리 3.2km / 7시간 35분 소요
☞ 참석인원: 안내 산악회 따라서
☞ 산행코스: 석남터널-공터-낙동저맥 마루금-석남고개-조망바위-석남사주차장 갈림길-석남대피소
갈림길-가지산 중봉-안부-가지산-가지산장-헬기장-암봉-조망봉-암봉-암봉-갈림길
1,088.4m봉-1,080m봉-백운산 갈림길-안부-아랫재-공터-쉼터-쉼터 조망봉-운문산
헬기장-상운암 갈림길-전망대-안부-923.8m봉-안부-딱밭재-안부-무명봉-범봉
호거대갈림길-무명봉-합류길-삼지봉?-조망바위-조망봉-안부-석골사갈림길-팔풍재
대비사
☞ 소 재 지: 울산광역시 상북면 / 경남 밀양시 산내면 / 경북 청도군 운문면, 금천면
이틀전 화포동(무척)지맥 첫 구간을 하면서 폭염으로 인해 넘 힘들어서 이번주는 쉴까 했는데
가끔씩 다녔던 안내산악회에서 단장(운문)지맥 첫 구간을 간다고 하여 망설이다가 따라 나서지만
걱정이 앞선다...지맥을 하는 이 안내 산악회는 12~3명이 가지만 한.두명을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도 없고
오직 산에 대한 열정이야 다들 대단하신 분이다...빠른 主力에다 대단한 체력을 가지신 분들이라
난 이곳에 가면 늘 꼴찌이다...말이 산악회를 따라서 왔지, 늘 나홀로 산행이다
나야 가면서 볼 것 다보고 쉴 것 다 쉬고, 야생화나 버섯 등을 관찰하면서 걷다보니
산행 시작전에 이 분들 얼굴을 보고 난 이후에는 산행이 끝나고 내려와서야 볼 수 있는 분들이라
늘 이 산악회만 오면 긴장을 하여, 별로 오고 싶지 않으나 오늘 오는 곳은 서울에서 너무
멀고, 접속구간이 들. 날머리가 길어서 나홀로 산행이 부담스러워 따라 나선다
운문지맥 전체개념도
단장(운문)지맥(雲門枝脈)은 ?
단장(운문)지맥(雲門枝脈)은 낙동정맥의 가지산(1241m)에서 서쪽으로 분기 해서
운문산(1195m), 범봉(962m), 억산(954m), 흰덤봉(690m), 육화산(674.9m), 용암봉(686.0m),
백암봉(679m), 중산(649m), 낙화산(626m), 보담산(562m), 비학산(317m)을 지나 단장천이 밀양강에
합수하는 밀양시 산외면 남기리 정문마을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4 km의 산줄기인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단장천 좌측 산줄기라 하여 단장지맥이라 부른다
운문지맥의 남쪽에는 동천, 원서천, 단장천이 흐르고,
북쪽과 서쪽에는 신원천, 운문천, 동창천, 밀양강이 각각 흐른다.
전체의 2/3가량(21km)이 경북도계와 겹치고 영남알프스의 최고봉인 가지산(1241m)과
운문산(1195m)이 위치하여 여느 유명산의 일반등산로와 다를 바 없이 길은 확실한 편이다.
◆ 도상거리
가지산~2.5~백운산갈림~1.1~아랫재~1.4~운문산~3.9~억산~3.0~인재~1.5~구만산(-0.8)
~5.2~육화산(-0.8)~2.1~오치고개~3.2~용암봉~2.3~디실재~1.3~중산~1.9~낙화산~0.6~
보담산~3.7~비학산~1.0~정문마을 / 34.7km
◆ 주요 산
가지산(1241m), 운문산(1195m), 억산(954m), 구만산(785m), 육화산(674.9m). 용암봉(686m)
중산(649m), 낙화산(626m), 보담산(562m), 비학산(317m)
◆ 종주에 필요한 지도
1/25000 : 상북,남명,동곡,유천
1/50000 : 동곡,언양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석남터널 앞 주차장(10:55)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중부내륙고속도로 타고 내려오다가 낙동J.C에서
상주~영천간 고속도로를 갈아타고 다시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언양I.C를
빠져 나오니 휴가철이라 그런지 석남사 계곡과, 배내고개. 밀양 얼음골로 가는
도로는 황금 연휴에 피서가는 인파들로 인해 완전 주차장이 된 듯한 느낌이다
힘들게 도로를 빠져나와 언양에서 밀양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석남사쪽으로 빠져나와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서 가는데 창밖의 햇빛이 상당히 따갑다
서울을 출발한 지 5시간만에 오늘 산행 들머리인 석남터널 상가 앞 주차장에 도착한다
산행을 시작하다(11:00)
버스 안에서 산행 대장이 오늘 이곳에 폭염 경보가 내렸고 초반에 고도차가 상당히 심하니
같이 모여서 중봉까지 천천히 간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마음급한 산꾼들은 버스에
내리자마자 산 속으로 도망(?)을 가버린다...하긴 난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초반부터 빡센 오르막이긴 하지만 급경사의 데크목 계단이라 조금은 나은 느낌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동료산꾼은 사라지고 늘 꼴찌 동기(?)인 조여사님과 나 둘뿐이다
내가 보기엔 조여사님은 의지의 한국 여인같다...70대이신데도 줄기차게 맥길을 이어가시는 걸 보면...
공터(11:08)
공터에서 바라본 석남터널 주차장의 모습
그 뒷쪽으로는 낙동정맥 배네봉에서 문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뚜렸하게 보인다
다시 빡세게 올라서니..낙동정맥 마루금에 도착한다
낙동정맥 마루금(11:18)
20분도 채 안 걸었는데 옷은 벌써 땀으로 범벅이 되어 버렸다.
가야할 중봉과 가지산이 보인다
숨고르기를 하면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빡세게 저 능선을 올라갈 생각을 하니 氣가 질리는 느낌이다
석남고개(石南嶺:770m:23)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과 경남 밀양시 산내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이정표와
민초들의 애환이 서림 돌무더기가 보이고 석남터널과 살티마을로 내려설 수 있다.
우측으로 내려서면 살티로 해서 석남사로 내려가는 길이고, 좌측은 쇠점골로
석남터널 밀양방향으로 내려설 수 있으며, 석남사에서 가지산으로 오르는 길이기도 하다
재악산군과 가지산군의 분수령을 이루는 곳으로 옛날부터 밀양, 언양간의 교통의 요지이다.
시례고개, 실혜령(實惠嶺)이라고도 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밀양)에 천화령(穿火嶺)으로,
그 위치는 부의 동쪽 93리에 있다고 되어 있다. 천화령이라고 되어 있는 것은 산내면의
예전의 명칭이 천화면이기 때문이다.
천화라는 것은 지세가 너무 깊고 험하여 불로 수목을 태워 뚫고 길을 내어 지나간다는 뜻이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서는 석남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초반부터 조여사님이 뒤쳐지기 시작하신다
조망바위(11:26)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고헌산의 모습
2010년 8월 15일에 낙동정맥 저 구간을 걸었으니 딱 10년만이다
고헌산(高獻山:1033m)은 예로부터 "고언산", "고언뫼"로 불리던 고헌산은, 언양현의
진산(鎭山)으로 '큰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주변 사람들은 숭산, 성스러운 산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고을 이름인 언양(彦陽)도 그 옛 이름인 헌양(?陽) 또는 헌산(?山)에서 나온 것으로,
한문표기 지명에서 "양"(陽)은 산의 남쪽, 또는 강의 북쪽(한양=한강의 북쪽)을 뜻한다.
언양의 옛 이름 "헌양"은 고헌산 남쪽을 뜻하는 것으로 모두 고헌산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며 고헌산은 주봉과 동봉,서봉으로 나누어지는데 서봉은 경주시와
울주군의 경계에 솟아있다
언양팔경중 하나인 서광모설고헌산(瑞光暮雪高窟山)은 진산인 이 고헌산의 늦봄 상서로운
잔설(殘雪)의 풍광(風光)을 묘사한 말. 마치 떡시루를 엎어놓은 듯 장엄하고 우람하게
고을의 지붕처럼 우뚝 솟아 있는 고헌산은 '고함산' 또는 '고디기'란 별칭도 있다고 한다
가지산 가는 길에서 바라본 울주군 상북면의 모습
상북면(上北面)의 길천리 지화는 변진 24국의 하나인 기저국(己柢國)이 있었던 곳이라는 학설이 있다
상북면은 상남면의 ‘상(上)’과 하북면의 ‘북(北)’을 합한 절충식 합성 지명으로
신라 초 상북면 지역에 거지화현(居知火縣)을 두고 지화에 치소를 두었다가, 757년(경덕왕 16)
헌양현(巘陽縣)으로 개칭되고 지금의 언양 읍내로 현치를 옮기면서 양주에 속하게 되었다.
995년(성종 14) 헌양은 경주·금주 관할의 영동도에 속하였다가 1018년(현종 9년) 경상도 울주군에
속했으며 1143년(인종 21) 울주에서 분리시켜 감무를 두었다가 고려 후기 언양현(彦陽縣)으로 고쳤다.
1407년(태종 7) 이후 경상좌도의 경주진관에 속하여 현감을 두었고, 1413년(태종 13) 언양현에
속하였던 현 두동면 두서 지역이 경주부로 이관되어 내남면과 함께 남면으로 개편되었다.
1599년(선조 32) 5월 폐현되어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에 합속되었다가 1612년(광해군 4) 언양현으로
분리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6월 동래부에 속하면서 언양군이 되었는데 상남면과 하북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듬해인 1896년(고종 33) 8월 경상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언양군이 울산군에 병합되었으며, 1928년 4월 상남면과 하북면을
합쳐 상북면이 되었으며 1962년 6월 울산군이 울산시와 울주군으로 분리될 때 울주군에 속하였다.
1673년 7월 두서면의 소호리가 상북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시군 통합에 따라 경상남도 울산시
울주구 상북면이 되었다가, 1997년 7월 15일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됨에 따라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으로 편제되어 현재에 이른다.
가지산 가는길
석남주차장 갈림길(11:30)
등로에서 바라본 가지산 쌀바위의 모습
쌀바위에 대한 전설
가지산 정상에서 동북쪽으로 약 1㎞ 떨어진 능선에 쌀바위[米岩], 또는 살바위[矢岩]로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이 쌀바위는 언양현과 청도의 경계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청도와
언양의 의병들이 이곳에 주둔하면서 화살을 쏘았다고 하여 ‘살바위’라고도 한다.
옛날에 수도승 한 사람이 쌀바위 아래 작은 암자를 짓고 수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며칠마다 한 번씩 마을로 내려가 동냥을 하여 오는 고행을 계속하였다.
이렇게 고행하는 수도승을 가엾게 여긴 것인지 기적이 일어났다.
수도승이 염불을 외우다 바위틈을 문득 보니 쌀이 소복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상하게도 이날부터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쌀이 매일 바위틈에서 물방울처럼 흘러나왔다.
그 후부터 그 중은 먼 산길을 내려가 목탁을 치며 동냥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얼마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수도승의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쌀이 저렇게 답답하게 조금씩 나오는 것을 갑갑하게 여긴 수도승은 많은 양의 쌀이 나오게
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수도승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쇠꼬챙이를 넣어 그 바위틈을 크게 뚫었다.
그는 많은 쌀로 큰 암자를 짓고 출세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 그 후부터 쌀은 나오지 않고 물만 똑똑 흘러나왔다.
이후 세상 사람들은 쌀이 나오지 않는 이 바위를 ‘쌀바위’라 하였다.
숲속이긴 해도 생각보다 상당히 덥다
석남대피소(11:48~53)
이곳 매점에서 아이스케키 하나를 사먹으면서 조여사님을 기다리는데
오질않아 하는 수 없이 다시 길을 나선다
석남사 대피소 매점의 모습
데크목 계단이 나오는데 257계단이란다
계단 사이에 다소곳이 피어있는 물봉선
빡센 오르막을 올라서니...
갈림길(12:03)
좌측으로는 밀양 얼음골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갈림길에 서 있는 가지산 안내판
원추리(꽃말:기다리는 마음)
원추리는 지난해 나온 잎이 마른 채로 새순이 나올 때까지 남아 있어 마치 어린 자식을
보호하는 어미와 같다 하여 모예초라고도 하며, 임신한 부인이 몸에 지니고 있으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의남초, 사슴이 먹는 해독초라 하여 녹총, 근심을 잊게 한다 하여
망우초라고도 한다.
또한 예전에 어머니를 높여 부를 때 훤당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훤'은 원추리를 뜻하며
당시 풍습에 어머니가 거처하는 집의 뜰에 원추리를 심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잎이 넓어 넘나물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7~8월에 잎 사이에서 나온 긴 꽃줄기 끝에서 가지가 갈라져 백합 비슷하게 생긴 6~8개의
등황색 꽃이 총상 꽃차례를 이루며 달려 피며 꽃의 길이는 10~13cm, 통 부분의 길이는 1~2cm이다.
꽃턱잎은 선 모양의 댓잎피침형이고 길이 2~8cm, 작은 꽃자루는 길이 1~2cm이다.
꽃잎인 안쪽 꽃덮이 조각은 긴 타원형이고 가장자리가 막질이며 위쪽에서 뒤로 젖혀진다.
6개인 수술은 통 부분 끝에 달리고 꽃잎보다 짧으며 꽃밥은 노란빛을 띠는 선형이다.
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며 계속 다른 꽃이 달린다
뿌리가 깊이 박힌 나무는
베어도 움이 다시 돋는다.
욕심을 뿌리채 뽑지 않으면
다시 자라 괴로움을 받게 된다.
탐욕에서 근심이 생기고
탐욕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탐욕에서 벗어나면
무엇이 근심되고 무엇이 두려우랴.
-법구경에서-
간식시간(12:30~40)
새벽에 집에서 밥을 먹고 나온 탓인지 배가 고프다.
어치피 도시락은 가져오지 않았고 과일과 마실물만 있다
조여사님도 기다릴 겸, 가져온 과일로 허기를 달랜다
햋빛을 피할 수 없는 곳은 상당히 괴롭다..뒤돌아 보니 석남사가 아련히 보인다
석남사(石南寺)란 이름은 가지산(迦智山)을 석면산(石眼山)이라고 하는데
이 산의 남쪽에 있다해서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헌덕왕(신라제41대:憲德王:809-826)에 한국에 최초로 禪을 도입한 도의국사 (道義國師)가
일찌기 영산 명지를 찾다가 이 곳 가지산의 법운지를 발견하고 터를 정한 뒤, 신라의 호국을
염원기도하기 위해 창건한 이 사찰은 울산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에 위치한 절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석남사는 영남인들에게는 사찰보다 유원지로 더 많이 알려져 있을 정도로 계곡 등 주변 경관이
수려하며, 가지산의 남쪽에 위치해 석남사로 불렸다는 이 사찰은 임진왜란때 모두 소실되는 등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중건 및 증축됐다.
석남사는 지난 1957년 비구니 인홍 스님이 주지로 오면서 침계루, 종각, 심검당, 무진료, 상락료 등을
신축해 현재는 건물동수가 23동에 이르는 국내·외 가장 큰 규모의 비구니 종립 특별 선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청도 운문사, 수덕사 견성암(見成庵), 화성 봉녕사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 비구니 도량이다
가지산 중봉(1.167.4m:12:42)
좌측으로는 호박소와 얼음골로 내려가는 등로가 보인다
뒤돌아 보니 영남알프스가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가야할 가지산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중봉 정상에 잠깐 서 있는 사이에 얼굴이 익는 느낌이다
안부(12:52)
다시 가지산을 향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수줍게 풀섶에 숨어있는 꿩의다리
암릉지대를 통과한다
우측으로는 10년전에 걸었던 고헌산과 백운산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때가 봄날이었는데 이제는 몸과 마음이 늙어가니...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는데 아프고 난 이유로는 이젠 뭣이던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지나온 중봉도 한번 뒤돌아 보고...
석남사와 아침에 지나온 상북면도 내려다본다
가지산으로 오르는 암릉구간의 오름길
잠시후에 가야할 지맥 능선도 한번 바라본다
엄청난 더위와 맞서면서 가지산 정상에 올라선다
가지산(加智山:1,240.9m:13:02)
울산 광역시 울주군 상북면과 경북 청도군 운문면과 경남 밀양시 산내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해발1,000m 이상의 고산으로 이어져 영남 알프스의 산 중에서 가장높다.
석남산(石南山)이라고 부르며, 봄에 진달래, 여름에 녹음, 가을 단풍, 겨울 설경을
연출하며 울산 12경중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석남사와, 쌀바위, 귀바위 등 기암괴석과
억새밭이 어우러져 산꾼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
가지산은 울산의 석남사쪽보다는 청도의 운문사쪽이 더 깊다. 청도쪽에서 유서깊은
비구니 사찰인 운문사를 비롯해 사리암, 학소대, 삼계리 계곡 등이 있다.
기반암은 화강암이며, 쌀바위에서 산 위를 잇는 능선은 기암괴봉과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쪽을 제외한 전사면이 비교적 완경사이며, 남·북서 사면에서는
산내천·무적천이 각각 발원한다.
가지산의 원래 이름은 석남산(石南山)라 하다가 그 기슭에 있는
석남사(石南寺)가 중건되면서 가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밖에도 이 산이 화산의 분화구 지대라 해서 천화산(天火山)이라 하였고,
이 산에 실혜촌 또는 부요(富饒)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실혜산(實惠山),
돌이 어지럽게 많다 해서 석면산(石眠山)이라고도 하였다.
가지산의 옛 이름은 ‘까치산’이었다.
그래서 이 산을 한자어로는 작갑산(鵲岬山)이라 한다.
이 ‘작갑산(鵲岬山)’이 가지산(加智山)이라는 지명으로
바뀌게 된 것은 이두식 표기에서 왔다는 것이다.
이두식 풀이로는 ’가(加)‘는 까치의 ‘까‘, ’지(智)‘는 ’치‘의 음차(音借)에서 왔다는 것이다.
이두(吏讀)란 신라와 고려 시대에 한자의 음(音)과 뜻(訓)을 따서우리말의 ‘소리’를 적던
문자이기에 위와 같은 설이 가능한 것이다.
가지산(加智山)의 옛 이름이 ‘가치메’인 것은 까치의 옛말이 「가치」였기 때문이다.
-‘해동고승전’, ‘삼국유사’ 등 참고
가지산은 영남알프스 山群인 가지산, 운문산, 천왕산, 신불산, 간월산, 영축산, 재약산,
천왕산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산림청이 선정한 남한 100대 명산에 속하며 1979년
자연 공원법에 따라 가지산 도립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가지산은 석안산, 실혜산(實惠山), 시례산(詩禮山), 혹은 천화산(穿火山)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밀양 얼음골의 자연 마을을 통칭하는 실혜, 시례에서 실혜산과 시례산이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지금의 석남 고개가 천화현(穿火峴)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천화산(穿火山)이라는 지명이 유래한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인증샷
가지산 정상에서 바라본 쌀바위
북동쪽에는 세 개의 큰 바위로 이루어진 쌀바위와 부처의 귀를 닮은 귀바위, 운문재가 있다
가지산 정상에서 오늘 내가가야 할 봉우리를 조망해 본다
가지산 정상 1등 삼각점(△ 언양11 / 1998복구)
지맥길은 운문산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곳은 10여년전 한참 혈기왕성한 시기에 110L짜리 그레고리 데날드 프로 베낭에 텐트, 침낭과
버너,코펠을 짊어지고 영남알프스 종주를 2번이나 했는데 이젠 모든게 추억으로만 기억되니...
인증샷을 남기고 단장(운문)지맥의 첫 발걸음은 내디는다
가야할 운문산을 바라보며 가지산장 아래로 내려선다
바위틈새의 분홍노루귀도 폭염에는 힘이드는 모양이다
이 높은 산에 오늘은 바람한 점이 없다
가지산장 아래로 내려선다
가지산장(13:05~20)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할 요량으로 점심을 준비하지 않아 베낭에는 마실것과 과일밖에 베낭에 없다
동료산꾼들이야 가던말던 내 뒤에 조여사님이 계시니 걱정이 없다
이곳에서 라면에다 두부김치에 막걸리 한잔으로 점심을 해결하니
천하를 다 얻은 기분이다...산이란 山川景槪를 두루 즐기면서 걸어야지
오직 시간과 거리를 단축하는데만 관심을 두는듯한 맥산꾼들이 이해가 잘 안된다
나야 물론 느리기도 하지만 남들이 3구간 갈껄, 4구간으로 가면서 즐기는게 내 스타일이다
그런면에서는 산에 관한한 나의 師父이기도 한 수헌아우님이 내 컨셉과 딱 맞다
요즘은 우째 사시는지 궁금하네...
등따시고 배부르니...세상사 뭔 꺽정이람
날씨가 너무 더워 아무래도 식수가 부족할 것 같아 물 2개를 더 산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헬기장(13:21)
헬기장 능선에서 바라본 영남알프스 山群들
영남알프스 전체지도
영남 알프스는 영남 동부지역에 위치한 해발 1,000m 이상의 산악군을 유럽의
알프스 산맥에 빗대어 이르는 말로서 고헌산(1,032m), 가지산(1,240m), 능동산(983m)
운문산(1,188m) 천황산(1,189m), 재약산(1,108m), 영축산(1,059m) 신불산(1,208m)
간월산(1,083m) 등으로 그 중에서 가장 높은 가지산의 이름을 따서 가지산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낙동 정맥의 남쪽 끝자락인 경북 경주와 청도, 울산광역시, 경남 밀양과
양산에 걸쳐서 5개 시.군에 걸쳐있는 山群이다.
영축산에 있는 불보종찰 통도사를 비롯하여, 가지산에 있는 석남사와 운문산 아래에
있는 운문사 등등 이곳이 불교의 성지라 할 만큼 골짜기 곳곳에 사찰들이 많다.
이곳을 영남 알프스라고 부르게 된 연유는 일제시대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자국에 있는
북 알프스를 닮았다고 해서 불렀다는 설과, 1971~72년에 일본의 북알프스를 등반한
부산의 원로 산악인인 성산씨와 곽수웅씨가처음 불렀다는 설도 있고, 영남산악연맹
회장을 역임하신 김동인 회장이 1978년에 처음 언급하였다는 설도 있다.
알프스(Alps)는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걸쳐있는 산군으로서
평균 2,500m이며 최고봉인 몽블랑(4,807m)은 이다
Alp, Alb라는 겔트어는 산이란 의미이며 빙설로 뒤덮인 희고 높은 산이라는 의미이다.
2차 포에니 전쟁때에 한니발 장군이 넘고 1786년 몽블랑을 정복한 것이
근대 산행의 효시라고 한다
암봉(13:23)
암봉에서 바라본 1,087.4m봉의 모습
가지산부터 오늘 내가 가야할 억산까지는 영남알프스 종주구간과 겹치는 등로라 길은 좋다
영남알프스 하면 억새가 가장 장관이제
조망봉(13:26)
조망봉에서 바라본 구룡소폭포쪽의 모습
암봉(13:33)
암봉을 지나면서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등로는 직진으로 나 있으나 시그널은 우측으로 잔뜩 걸려있다
우측에 걸려있는 시그널들...필히 지도를 확인해야 할 구간이다
직진으로 내려가니 등로가 뚜렸하고...
암봉(13:38)
암봉을 넘어 서면서...우측 사면길로 내려간다
좌측 능선이 맥길이나...
사면길로 걸어간다
갈림길(13:50)
이곳에서 제도권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간다
1,088.4m봉(13:52)
오룩스 맵에서는 1.087.4m 봉으로 나온다
잡목을 헤치면서...
다시 제도권 등로로 내려선다
뚜렸한 길을 가다가 뒤돌아 보니...
지나온 중봉과 가지산이 아쉬운 듯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등로앞에 멋진 조망봉이 눈길을 사로잡는데 지형도상에는 1,080m봉이다
저 바위에 올라서면 뛰어내리고 싶다고 하여 흔히들 자살바위라고 부른다
그늘이 없는 등로는 햋볕이 상당히 따갑다
1,080m봉(14:05)
1,080m봉에서 바라본 백운산쪽의 모습
뒤돌아보니 지나온 가지산과 청도쪽으로 산줄기를 뻗은 북봉의 모습도 보인다
남서쪽으로는 천왕산과 밀양시 산내면의 모습도 시원스레 보인다
1,080m봉으로 내려가니...
조그만 쉼터가 나오고 앞서가던 왕언니라는 분이 휴식을 취하고 계신다
맥산꾼들 사이에는 꽤 유명하신 여성 산꾼이시다
70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왕성하게 산행을 하고 계시는 분이신데
요즘 내 실력으로는 따라갈 수 없어 산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드신 분이신데
여기서 쉬고 계신다...나도 이곳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나선다
백운산 갈림길(1,060m:14:15)
능동산과 밀양 얼음골 케이블카장도 보인다
참취꽃 ...나도 참 이쁘구나
안부(14:20)
안부에 있는 안내판에는 이곳이 담비와 운문산 반딧불이, 꼬리 말발도리 보호구역이란다
아랫재로 향하는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프를 부여잡고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암릉구간이 나오고...
좌측 사면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호젓한 산죽길이 나오고...
계속되는 내리막길
거의 다 내려온 모양이다...아랫재가 보인다
아랫재(720m:14:45)
밀양시 산내면 삼양리에서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고개에는
환경감시초소와 각종 안내판 이정표가 어지럽게 서 있다
우측으로는 운문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아랫재에 어지럽게 서 있는 이정표와 안내판
환경감시초소의 모습
지나온 가지산을 바라보며...
운문산으로 향하는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공터(14:55~15:10)
평소에는 산행 시작후 보지도 못했던 왕언니님이 자꾸만 발걸음이 느려진다
이곳에서 같이 휴식을 취하고 같이 가려고 했는데 나보고 먼저 가라고 하신다
암릉구간을 우회하면서 올라간다
운문산은 산이 높고 골이 깊은만큼 희귀한 동.식물이 많다
까막딱다구리, 삵, 하늘 다람쥐, 담비, 반딧불이,벌매 원앙, 소쩍새 등 멸종 위기의
야생동물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이 때문에 2010년 9월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일대
2만6395㎡의 산지가 생태경관보전 지역으로 지정됐다.
특히 이 가운데 담비와 반딧불이 꼬리말발도리는 깃대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깃대종이란 특정 지역의 생태, 지리,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야생
동식물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종(種)을 말한다
이 개념은 1993년 국제환경연합계획(UNEP)이 발표한 ‘생물다양성 국가 연구에 관한
가이드라인’에서 제시됐다
암릉 좌측 사면길로 올라가니...
나무 계단이 나오고...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쉼터 조망봉(15:25~35)
뒤처진 왕언니를 기다리면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한다
쉼터 조망봉에서 바라본 백운산(891m)의 모습
밀양시 산내면 삼양리에 위치한 백운산은 인근의 영남 알프스의 가지산과 운문산에 가려져
명성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돌산(石山)으로 매우 산세가 가파르며 정상은 돌탑을 쌓은 것 같고,
6부에서 9부 능선까지는 화강암 한덩어리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나산(裸山)이다.
백운산의 이름은 산 전체가 한 조각 흰 구름처럼 보이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형상에서 온 것이다.
산의 동쪽에는 임진왜란 때 해주 오씨 일족이 이곳에서 난을 피하고, 이 바위에서 베를 짰다고
하는 베틀바위가 있고, 서쪽 아래에 시례호박소가 있으며, 산허리에 구연폭포(臼淵瀑布)가 있다.
왕언니께서 컨디션이 안 좋은지 10분을 기다려도 오질않아 다시 길을 나선다
오르막길에서 만난 산죽
설음많은 삶을 살고있는 며느리밥풀꽃
등로는 좌측으로 이어지고...
운문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운문사로 내려가는 계곡이 보인다
우측으로 꺽어져 올라서니...
나무 계단이 나오고...
뒤돌아보니 가지산은 자꾸만 멀어진다
억새밭과 가야할 운문산이 보인다
억새밭 아래로는 얼음골로 유명한 밀양시 산내면이 한 눈에 보인다
밀양시 산내면은 동쪽으로 울산광역시, 서쪽으로 상동면(上東面 )산외면·(山外面), 남쪽으로는
밀양시 산외면(山外面)·단장면(丹場面), 북쪽으로는 경북 청도군 남서부의 일부가 개방되어 있을 뿐
동부는 백운산(白雲山), 서부는 용암봉(龍岩峰), 남부는 정각산(正覺山), 억산(億山)·, 운문산(雲門山) 등의
산지로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다.
이들 산지로부터 발원한 소지류에 의해서 형성된 산내천(山內川)이 면의 중앙부를 관류하면서
하곡을 형성하고 있으며 산지가 많기 때문에 경지가 적고 농산물은 주로 맥류·두류·서류 등의 밭작물을
생산하며 사과가 유명하며, 양잠업이 성하며 소와 닭의 사육도 성하다.
면의 중심부를 밀양 방면의 도로가 달리고 있다.
문화재로는 밀양 남명리(南明里)의 얼음골(천연기념물 224), 탁삼재소장유물(卓三齊所藏遺物:
경남유형문화재 289), 탁삼재(卓三齋:경남문화재자료 257), 효자 김유부 비(孝子金有富碑),
송백리(松栢里) 고인돌, 봉의리(鳳儀里) 고분, 빙곡 석조여래좌상(氷谷石造如來坐像) 등이 있다.
급경사의 데크목 계단으로 올라간다
데크목 계단을 지나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울산~밀양을 이어주는 24번 국도 너머로 천황산이 병풍처럼 보인다
천황산( (天皇山1,189m) ...2013년 10월 18일 영알 종주때의 사진
경남 밀양시 단장면과 산내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영남알프스의 중앙에 위치하여 산 정상에 서면 영남알프스의
거대한 산줄기와 사자평 억새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세가 아름다워 한반도의 영산, 또는 삼남의 금강산으로 불린다.
천황산의 주봉은 사자봉으로 정상에 있는 서쪽 바위 부분이 사자의 머리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사자봉 아래의 사자평에는 사자암이라고 하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신라 화랑들과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이끈 승병들이 훈련하던 곳으로 우리 민족의
씩씩한 기상이 넘치던 곳이다. 해발 700~800m의 고도에 펼쳐진 고산평원은 습기를 많이 머금은
지형적인 요인과오랜 벌목, 화전,방목 등 인위적인 요인이 겹쳐 국내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경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사자봉 아래 북쪽 산비탈에 있는 밀양 얼음골은 여름날 피서객들이
즐겨 찾으며, 3월에 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삼복더위가 지나 처서가 되면
바위 틈새의 냉기가 점차 줄어드는 신비한 곳이라고 한다.
천황산 아래는 나라가 風前燈火의 위기에 있을 때 승려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사명대사의 표충비가 있는 곳이 아닌가.
사명대사의 공적을 기리는 표충비는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면 땀을 흘려 미리
알려주고 있다고 하며 갑오경장을 비롯 한일합방, 3.1운동, 8.15해방, 6.25전쟁, 4.19혁명,
5.16군사쿠데타 전에 땀을 흘려 어려움을 예고하였다고 한다.
작금의 이 나라는 외침(外侵)은 아니지만 진영 논리로 인해 그때보다도 더 난리이건만
누구하나 제어할 수 있는 지도자는 눈에 보이질 않으니 민초들의 삶은 더 팍팍하기만 하다
오죽하면 ‘나라가 니끼가’ 하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올까...스님! 이 難世 어케 극복해야 하나요
정상 아래에 있는 조그만 정상석을 지나 정상에 오른다
운문산(雲門山 1,188m:16:05)
밀양시 산내면과 청도군 운문의 경계에 솟아 있는 산으로 운문산은 영남알프스에서 가
지산(迦智山 1,240m)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이라는 점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기암과 암릉, 계곡 등 비경을 품고 있는 명산이다.
특히 원시림이 우거진 상운암계곡 딱밭골, 천문지골 등 여러 개의 계곡과 아름다운 폭포 등,
비경을 품고 있으며 사방 거칠 것 없는 정상부의 조망은 영남알프스 산군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히기도 한다.
운문산은 예로부터 호거산이라 부르며 명산으로서 조건을 모두 갖추어진 산이다.
천문지골, 심심이골, 복숭아골, 상운암 계곡등 깊은 골짜기를 품고 대 사찰 운문사와 천상에 걸린
상운암 및 부속 암자를 두고 있고 동의 보감의 허준이 반위에 걸린 스승의 시신을 해부 한곳이
운문산의 얼음굴이라는 설이 전해오며 심산 유곡의 깊은 골짜기에는 약초와 나물이 천지이고
기암과 산세가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운문산이라는 이름은 '운문사'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불가에서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공부하는 수도승에 비유해 '백운(白雲·흰 구름)'이라 부르고,
어느 절이나 암자에 머무르며 수도하는 승려를 '청산(靑山)'에 비유했다고 한다. 그래서
운문사는 수도하는 승려들이 불현듯 왔다가 소리 없이 가기도 하는 '구도자의 문'과 같은
절이라는 의미도 내포돼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운문산은 단순히 '구름의 문'이라는
의미 이상의 '그 무엇'을 담고 있다고 할 만하다.
佛家에서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구름과 같이 떠돌아 다니는 수행승을 “백운(白雲)”이나
“운수납자(雲水衲子:돌아다니는 승려를 무상한 구름과 물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라고 하는
것은 구름의 자유로운 속성 때문이다
중국 선종(禪宗)오가중에 하나인 운문종의 종풍(宗風)은 얽매임 없는 수행을 심화했다.
개조(開祖)인 운문 문언(雲門 文偃:864~949)은 고정 관념을 깨는 간결한 말로써 禪의
핵심을 드러냈는데 한 글자로 관문을 통과한다는 일자관(一字觀)으로 유명하다
“운문(雲門)”의 뜻은 구름처럼 유유히 흐르고 소리는 향기처럼 혀끝을 맴돈다
우리나라 산의 지명 가운데 불교의 영향을 받은 산 이름은 수도 없이 많지만 이곳
운문산만큼 그윽한 여운을 담기는 산도 드물것이다
경북 청도군 운문면과 경남 밀양시 산내면의 경계에 위치한 운문산에 올라서면
유명한 영남알프스의 山群이 한 눈에 보이는 그야말로 일망무제인 곳이다
지명의 유래는 운문산 아래 청도쪽 계곡에 둥지를 튼 운문사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21년(560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는데 창건 당시의 이름은
대작갑사(大鵲岬寺)였는데. 왕건의 후삼국 통일을 도운 보양(寶壤)스님이 중창하면서
작갑사(鵲岬寺)로 개칭되었다가 왕건이 보양스님에 대한 보답으로 ‘‘운문선사(雲門禪寺)”
라고 사액(賜額:임금이 사당,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서 그것을 새긴 액자를 내리는 일을
이르던 말)을 한 뒤에 운문사로 개칭 되었다
운문산 정상석 뒷면의 모습
정상석 뒷면에에는 ‘虎距山’이라 표기해놨다...직역을 하면 ‘호랑이가 떨어진 산’인데
청도 운문사에 일주문을 겸한 범종루 현판에도 “虎距山 雲門寺”라고 적혀있다
인증샷
이곳에서 5분정 기다렸는데도 왕언니와 조여사님이 오시지 않아 지금부터는
내 산행을 해야겠다 싶어 부지런히 억산방향으로 향하는데 이정표가 헷갈린다
아랫재 이정표에는 억산 3.8km라 써있는데 2km 가까이 지나왔는데 4.1km라니...
헬기장(16:11)
헬기장에서 등로로 내려서니 돌탑이 있는 상운암 갈림길이 나온다
상운암 갈림길(16:18)
운문산 아래에 있는 상운암은 1735년(조선 영조 11)에 함화당(含花堂)
의청(儀淸) 스님이 석굴사를 중건할 때 상운암(上雲庵)도 함께 중수했다고 한다.
운문산 정상 서쪽의 산을 함화산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연유다.
구름위의 암자라 하여 상운암라 하였다하며 상운암은 또한 함화암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전망대(16:19)
전망대에 올라서니 운문사를 품고있는 청도쪽 산그리메가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20여년전에 운문사를 가봤으니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운문사(雲門寺)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인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21년(560)
신승스님이 북대암 옆 금수동에 암자를 만들어 3 년간 수도한 끝에 득도하여
7년간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 남쪽에 천문갑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하고 진평왕 30년(608) 원광국사가 중창한 후 보양이 중창하면서
오갑사로 부르다 943년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위해 도왔던 보양의 공에 보답하기위해
운문선사라 사액하고 전지 50결을 하사하면서 오갑사는 중 천문갑사를 운문사라 불렀다
고려 숙종 10년(1105) 원응국사가 중창하면서 전국 제2의 선찰로 자리 잡고
화랑도인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오계를 내려 화랑정신의 발원지가 된 후 임진왜란 당시
일부 건물이 소실되고 숙종 16년(1960) 설송대사가 중창을 하였다.
그 후 중창은 1835년 운악대사를 거쳐 1912년 긍파대사, 1913년 고전선사를 이어
지금의 모습은 1977년 명성스님이 대웅보전과 범종루 및 각 전각을 신축 중수하였다.
.
운문사는 비구승이 있는 곳으로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되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된 후 많은 수도승을 배출하고 있다. 1277년 일연선사가 운문사 주
지로 있을 당시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운문사 대웅보전
운문사 비로전
운문사쪽 위에는 우리나라 사찰중에 기도발이 잘받는 사리암이 있다.
사리암(邪離庵)
경북 청도군 운문산 내에 있는 아담한 사찰로서 영남지방에서 많은 불교신도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고려초에 보량국사가 930년에 창건하였고 1845년(조선 헌종 11년)
에 정암당 효원대사가 중창하였다.
운문사 사리암은 나반존자를 모시는 기도처로서 기도발 잘받는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도발이 잘받는 5대 기도성지
* 남해 보리암
* 팔공산 갓바위
* 강화 보문사
* 양양 낙산사의 홍련암
* 청도 운문사 사리암
이곳은 특히 ‘홀로 깨친 이’라는 나반존자(那畔尊者) 가도처로 널리 알려졌는데
나반존자는 부처님이 입멸 후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동안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력을 세우고 천태산 위에서 홀로 선정을 닦았다고 한다.
나반존자는 법당의 바깥쪽 높은 계단위에 있는 천태각에 봉안 되었다.
천태각(天台閣) 밑에 있는 사리굴은 운문산 4굴의 하나로서 이곳에 머무는
사람의 수만큼 쌀이 나왔다고 한다. 어느날 더많은 쌀을 나오게 하려고
구멍을 넓히자 그 뒤부터는 쌀대신 물이 나왔다고 한다.
가야할 억산은 아직도 멀기만 하는데 뒤처진 분을 기다리다가 너무 늦어 버렸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가는데...
예전에 없었던 데크목 계단이 있어 좀 편하게 내려온다
산죽길로 계속 내려간다
안부(16:25)
안부에 우측으로 올라가면 암릉구간의 대슬립지대가 나오는 곳인데
선두로 가신 분들은 좌측의 편안한 사면길로 내려간 모양이다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암릉구간이 나오는데 이곳으로 가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한 암릉구간이지만
운문사와 상운암이 한 눈에 보이는 곳이다...이곳을 지나면 우회길보다 최소한
10분이상 시간이 더 지체되기에 8년전 영알구간 지나간 걸로 대신하고 되돌아
나와서 좌측의 우회길로 내려간다
내리막 산죽길로 내려간다
슬립구간을 지나간다
암릉구간에서 내려오는 길을 만나고...
영남알프스 구간과 겹치는 등로라 맥길은 뚜렸하다
등산로 폐쇄구간인 923.8m봉으로 올라간다
923.8m봉(16:40)
다시 되돌아와서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에도 산패가 하나 더 붙어있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좌측으로 내려간다
안부(16:40)
딱밭재(楮田峴:820m:16:50)
경북 청도군 운문면과 경남 밀양시 산내면으로 연결되는 고개로이정표에 ← 운문사 4.5km,
석골사 2.5km → 라는 표기가 있다...‘딱밭’은 닥나무가 많은 곳으로 한자로는 ‘楮田’(저전)이라 표기된다.
‘삼밭’과 더불어 전국 곳곳서 지명으로 쓰이는데 닥나무는 한지, 삼은 삼베 원료다.
한데 그 재의 이름을 두고도 혼란이 생겨 있다. ‘딱발재’라는 명칭이 뒤섞인 것이다.
“재가 딱 버티고 서서 행인의 발길을 묶는다고 해서 딱발재라 한다”는 장난 같은 설명이
청도 ‘마을지명유래지’에 실려 있다.
그러나 재 남쪽 밀양 석골마을이나 북편 청도 신원리·박곡리에서는 모두 ‘딱밭재’라 했다.
남쪽 넓은 계곡에 ‘딱밭’이라 부르는 땅이 있다는 얘기다.
닥나무가 없는 지금도 여전히 ‘안딱밭’ ‘바깥딱밭’으로 세분해 부르기까지 한다고 했다.
딱발재 정상의 모습
좌측으로는 석골사로 갈 수 있는 등로가 보인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8년전 영남알프스 종주때는 저 암릉구간으로 내려온 기억 같은데 사면길이 많아졌다
직진의 암릉 구간이 아닌 좌측의 사면길로 향한다
능선 우측으로는 암릉구간이다
안부(17:08)
안부에서 바라본 청도쪽의 마루금
단장(운문)지맥 첫구간은 경남.북의 경계선이 지맥길이다
완만하게 고도를 높혀간다
무명봉(17:15)
멋진 소나무숲으로 올라가니 범봉이 나온다
범봉(962.0m:17:20)
경북 청도군 운문면 박곡리과 경남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지형도에는 이곳을 억산이라 표기를 해놔서 조금은 혼란스럽다
좌측으로는 석골사쪽의 석골폭포로 가는 등로가 뚜렸하고 지맥길은 북서쪽으로 이어진다
범봉의 이름도 호랑이(虎)에서 따온 듯하다. 잠시후에 가면 작은 범봉도 나오는데
작은 범봉에서 가까운 장군봉을 한때 호거대라고 불렸는데 '호거(虎踞)'는 호랑이가
무릎을 구부려 웅크리고 앉아있는 형국을 말하며 범봉 우측 아래에 있는 운문사 입구
석주와 현판에 '호거산(虎踞山) 운문사'라고 적혔는데 이 봉우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선생도 범봉을 중심으로 운문사를 둘러싼 산릉을 호거산으로 표시했다
범봉에서 사진 한 컷 찍고 부지런히 길을 나선다
범봉 정상의 이정표
이 지역의 이정표는 참고만 할 뿐 거리는 믿지마소...誤記 투성이다
다시 완만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호거대(장군봉) 갈림길(16:25)
이곳에서의 맥길은 우측 능선인 작은 장군봉과 호거대 능선이라는 곳으로 이어지나
황대장은 좌측으로 내려간 모양이다...이곳을 다 가려면 날이 어두워질 것 같은 느낌이다
거기다가 베낭을 바꿔오면서 헤드렌턴을 가져오질 않았네...맥꾼은 헤드렌턴과 보조 베터리,
우의는 필수품인데, 범여도 이젠 날나리 산꾼이 다되어 가는 느낌이다
작은 범봉은 8년전 영남 알프스 종주때 걸은 걸로 대신하고 사면길로 내려간다
장군봉을 한때 호거대라고 불렸는데 '호거(虎踞)'는 호랑이가
무릎을 구부려 웅크리고 앉아있는 형국을 말한다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7:30)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호거대에서 내려오는 갈림길을 만난다
합류길(17:30)
사면길과 호거대에서 내려오는 길을 만나자마자 예전엔 없었던 삼지봉 정상석이 보인다
삼지봉(904m:17:32)
예전엔 작은범봉이라 불렀으며 정상석도 없었는데 정체불명의 삼지봉이라니...
정상에는 정상석과 운문산 생태경관 보전지역 안내판이 서 있다
유래도 모르겠고 시간도 촉박하여 서둘러 길을 떠난다
운문산 생태경관 보전지역 안내판
조망바위(17:35)
팔풍재로 향한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조망봉(17:38)
조망봉에 서니 억산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역광이라 똑닥이 카메라의 한계를 실감한다
오늘 저 곳을 넘어야 하는데 자꾸만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다...그런 상황에서 선두로 가는
황대장님한테서 전화가 온다...후미에 처진 여자분들이 중탈을 했고 내가 꼴찌니
빨리 오라고 한다...오늘도 졸지에 동료산꾼들에게 밉상이 되어 버렸구먼...맘이 급해진다
조망봉에서 바라본 억산의 모습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17:42)
안부를 지나니 갈림길이 나오고...
석골사 갈림길(17:46)
팔풍재(770m:17:47)
경남 밀양시 산내면 송백리와 경북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 바로 위에는 억산이 있고 좌측으로는 밀양 석골사, 우측으로는 청도 대비사가 있다
청도군 금천면 사람들이 밀양 산내면 송백리 팔풍 장에 갈 때 넘었던 고개였다.
청도 사람들은 '억산 아랫재'로 부른다.
고개의 지명은 송백리 팔풍마을에서 따온 듯 한데 팔풍마을은 산내면의 교통.행정.교육.경제의
중심지로써 면 사무소가 소재하고 있으며, 옛부터 팔도의 풍각장이가 장판을 찾아 모여들고
팔도물산의 교류를 염원한다는 뜻으로 현재 지명이 되었으며, 5일, 10일에는 팔풍 장이 서고 있다.
여기서 대비사, 운문산, 상운암 계곡으로 길이 갈린다.
그러나 재 북쪽 박곡리나 남쪽 석골마을 어디서도 그걸 ‘팔풍재’라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양쪽 공히 ‘억산재’ ‘억산고개’라 했다
억산재는 특별한 경우에나 넘어 다닌 고개라고 했다.
청도 박곡리 어르신에겐 흉년에 양식 구하러 넘어 다녔던 기억이 가장 강한 듯했다.
물이 풍부한 밀양 산내에 상대적으로 곡식이 흔했다는 것이다.
반면 물이 귀한 청도에선 자주 흉년을 만났고, 그럴 때면 벼 대신 씨 뿌린 메밀꽃이
온 들을 하얗게 수놓았었다는 얘기가 가슴 아프게 들렸다.
밀양 쪽에서 ‘대비재’라고 부르는 경우는 있다고 했다.
팔풍재의 이정표와 안내판
선두들이 우측의 대비사로 빠진 모양이다
행여나 싶어 황대장에게 전화를 했더니만 짜증썩인 말투로 빨리 오라고만 한다
베낭을 들쳐메고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길이 상당히 미끄럽다
너덜길은 시작되고...
대비사로 내려가는 계곡은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계속되는 너덜길...마음은 급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미치겠다
팔풍재에서 20분 가까이 급경사 너덜길을 내려오니 임도 공사장을 만난다
임도 공사장을 따라서 내려간다
공사 인부들이 먹으려고 갖다논 생수들이 보인다
물도 떨어졌는데 잘됐다 싶어 생수 한병을 실례...한번에 다 마신다
길을 좋아졌으나 가도가도 끝이 안 보인다
이제는 달리기하다시피 내려가는데 내가 뭔 지랄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 산악회를 그만와야 될듯싶다...난 볼것 다보고 즐기면서
산행을 하는 스타일인데 여기에 오는 산꾼들은 나하고는 켄셉이 다르다
내 돈주고 다니면서 눈치보고 남한테 민폐 끼치고 싶지는 않다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팔풍재에서 이정표에는 2.6km라고 했는데
3km가 되었는데도 버스가 안 보이니...
날머리가 다 되었는 모양이다...우측 바위에 석불좌상과 대비사와 관련있는 22분의 스님 부도군이 보인다
대비사 일주문 역할을 하는 용소루(18:35)
대비사(大悲寺)는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9 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로
신라 시대 6세기경에 청도 호거산 운문사를 중심으로 한 다섯 갑사 중 하나로 세워진 소작갑사(小鵲岬寺)가
전신이며 대비사는 대비갑사(大悲岬寺)로도 불리는데, 고려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라 시대로 추정되는 청도군의 호거산을 중심으로 한 다섯 갑사(오갑사) 창건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동쪽에 가슬갑사(嘉瑟岬寺-폐사), 남쪽에 천문갑사(天門岬寺-폐사), 서쪽에 대비갑사(大悲岬寺-대비사),
북쪽에 소보갑사(폐사)를, 중앙에 대작갑사(大鵲岬寺-현 운문사)를 창건하였는데 이때 왕이 승지에 절이
창건되었다는 말을 듣고 원찰로 삼았다고 한다.
5개 사찰(오갑사: 대작갑사, 가슬갑사, 천문갑사, 소작갑사, 소보갑사)을 지은 것 중
지금의 운문사인 대작갑사와 대비사인 소작갑사만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여러 기록들에 따르면
566년(진흥왕 27)에 한 신승(神僧)이 세우고 600년(진평왕 22)에 원광 법사(圓光法師)가
보수하였다고 전한다
사찰의 경내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삼성각, 향로전, 요사 등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안에는 석가모니불상을 봉안하고,
뒷면 후불벽에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를 걸었다.
부지런히 왔는데도 선두들은 나를 기다리며 짜증스런 눈치를 주는 느낌이다.
기분같아서는 대비사를 참배하고 싶지만 꾹참고 다리 아래 냇가로 내려가서
시원하게 알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버스로 오니 중간에 탈출하신
연세드신 두 여자분이 연락이 안 되는 모양이다
한참끝에 연락이 되어 버스는 청도에서 다시 밀양으로 내려가 밀양I.C에서
분을 모시고 서울로 향하는데 가지산장에서 두부에다가 막걸리 한잔 먹은것 이외는
없어서 배가 고파서 미치겠는데 황대장은 휴게소에 들어갈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한참을 달려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휴게소에서 차를 세우는데 휴게소는 저녁 10시정도
되다보니 식당은 크로스되어 버렸고 하는 수 없이 햄버거 하나에 콜라로 저녁을 때운다
그것도 자기 부담으로...그리고 잠실역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은 시간이다
택시를 타고 집에와서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너무 힘들었던지 잠이 오질 않는다
두번 다시 이런 산행 안하고 싶다
'단장(운문)지맥(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장(운문)지맥 제3구간 - 오치령에서 단장천 / 밀양강 합수점까지 (0) | 2020.11.10 |
---|---|
단장(운문)지맥 제2구간 - 팔풍재에서 오치령까지 (0) | 2020.09.21 |
단장(운문)지맥 개념도와 지도 (0) | 2020.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