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20년 11월 08일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차가운 바람
☞산행거리: 16.4km / 8시간 10분 소요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오치령-임도-ㅜ자 갈림길-535.4m봉-무명봉-안부-신곡고개-무명봉-475m봉
545.6m봉-무명봉-조망바위-582m봉-통천문-용암봉-십자안부-683.2m봉
조망바위-너럭바위-조망바위-백암봉-디실재-558.2m봉-갈림길-천지습지
안부-중산-희곡리갈림길-용암산갈림길-안부-중산2봉(석이바위봉)
유인김해김씨 묘-안부-545.7m봉-안부-꾀꼬리봉-묘지-안부-487m봉
폐헬기장-갈림길-안부-유인경주최씨묘-안부-무명봉-안부-화지산-안부
무명봉-24번국도 암거-찬우레미콘-살내교차로-단장천/밀양강 합수점
☞소 재 지: 경북 청도군 매전면 / 경남 밀양시 산내면, 산외면, 상동면
10월에는 여러가지 문제로 운동도 못하고 매주에 집을 나섰던 맥산행도 절반밖에 못했다.
그리고 평소에 잘잤던 잠을 이루지 못했더니만 신체 리듬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그러던 중 2주전에 받았던 종합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대체적으로 괜찮은 편이었으나
지난해에 비해 체중이 많이 줄었으나 키에비해 양호한 편이며 상체 근육이 너무 부실하니
근력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라는 소견이 나왔다.
하기사 요즘에 하는 운동이라고는 매주하는 산행과 가끔 지인들과 간간히 나가는 골프이외는
하는 운동이 없는 편이다...예전에 다녔던 헬스클럽도 코로난지 뭔지하는 지랄같은 역병이
극성일 때인 3월부터 나가지 못하고 있으니 상체 근육이 줄어든 것은 당연한 것이다.
미뤄났던 단장(운문)지맥의 마지막 구간을 나선다.
사실 지난주에 안내 산악회를 따라서 이 구간을 나서서 들머리인 오치령까지 갔다가
비가오고, 날씨가 추웠던 탓에 컨디션 저하로 인해 산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왔었는데
오늘 다시 가는 셈이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이른 새벽에 집을나와 04시 20분 첫차를 타고 서울역 버스환승센터에 도착하니 04시 55분...
지체할 시간도 없이 서둘러 서울역 프렛홈으로 가서 밀양으로 가는 첫 차에 몸을 싣는다
서울발 → 밀양행 버스표
서울을 출발한 열차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시간(2시간 16분 소요)에 밀양역에 도착하여
밀양역 광장으로 향한다
밀양역(07:30)
대합실을 빠져나와 옆에있는 이순신 카페라는 분식집에서 라면에다 공기밥 하나를 시켜서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08시 05분에 택시를 타고 들머리인 오치령으로 향한다
오치령으로 가는길에는 사과밭이 많이 보이는데 서리를 맞은 사과들이 나무에 많이 달려있다
기사에게 물어보니 사과는 약간의 서리가 맞아야 맛이 있다고 한다
이 기사분의 고향이 오치령으로 가는 산내면 출신이라 이 지역에 대한 설명을 상세하게 해주신다
이곳 산내면은 영남 알프스의 천황산과 운문산, 억산, 구만산등에 둘러쌓여 지대가 높고 날씨가
추워 대체적으로 농사가 잘되지 않아 고민하던차에 어느 농민이 사과를 심었는데 당도가 높고
맛이 좋아 너도 나도 사과나무를 심다보니 사과밭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곳은 얼음골이 가까워 얼음골 사과가 브랜드가 되었다고 한다
밀양역 광장에 밀양아리랑 碑
지금으로 부터 500여년전 조선조 초기에 밀양의 부사 윤씨가 아랑이란 미모의 딸을 두었는데
유달리 아름다운 얼굴에 재주 또한 많아서 시, 서화는 물론 침선에도 백공이어서 동리에 칭찬이 자자했다.
그런데 그때 관아에 거행하는 허씨라는 통인이 있었는데 아랑의 자태에 반하여 가슴을 태우며
나날을 보내던중에 어느날 아랑의 유모에게 뇌물을 주고 아랑을 꾀어 내는데 성공을 했다
아랑의 성은 윤, 이름은 정옥이었으며, 그는 부친이 영남 밀양태수로 부임하였을 때에 수행하여 밀양에 갔다.
그 고을 통인(관리명)과 그의 유모 음모에 빠져서 아랑은 어떤 날 밤 영남루의 밤 경치를 보러 갔다가
통인 백가에게 욕을 당하였다. 그것은 아랑이 달 구경을 하고 영남루 위에 있을 때, 별안간 유모는
없어지고 기둥 뒤에 숨어있던 백가가 뛰어 나와서 아랑에게 연모의 정을 말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랑은 그것을 거절하였다. 백가는 아랑을 죽여 강가 대숲 속에 던져 버렸다.
다음 날 태수는 여러 조사를 하여 보았으나 아랑을 찾지 못하고 마침내는 자기 딸이 야간 도주한 것이라
믿고 양반 가문에 그런 불상사가 일어난 이상 근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여 벼슬을 하직하고 한양 본가로 갔다.
그 뒤로 신관 사또가 부임할 때마다 그 날 밤에 처녀귀신이 나타나서 신관은 비명횡사하고 만다.
이 때문에 밀양태수를 원하는 사람이 없어 지원자를 구하게 되었는데 이상사(지난날, 생원이나 진사를 가리키던 말)
라는 사람이 지원하여 그 날 밤에 촛불을 키고 독서를 하고 있을 때 별안간 머리를 풀어헤치고 목에 칼을 꽂은
여귀가 나타났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앉아 있었는데 여귀는 그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애원하였다. 날이 밝자
그는 통인 백가를 잡아 족쳐 자백을 받아내고 아랑의 원혼을 달래 주었다. 그 때부터 사또의 객사에는 원혼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지금도 밀양에는 아랑의 혼백을 모신 ‘아랑사’가 있다.
'아랑'을 추모하면서 아낙네들이 부른 노래 ‘아랑가’가 밀양아리랑으로 변했다고 한다
밀양 아리랑은 영남(경상도) 지방의 대표적인 민요로서 경남의 밀양지방을 중심으로 아랑의 고귀한
절개를 미화시켜서 부른 노래로 근 500여년 동안이나 애창되고 있는 전통적이면서 대중적인 민요이다.
아리랑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발생설이 많이 있는데 이 밀양 아리랑에는 영남루에 얽힌 아랑의 애화가 전해지고 있다.
밀양 아리랑은 그때 밀양의 부녀자들이 아랑의 정렬을 사모하여 아랑 아랑 하며 그의 절개를 찬미한
아랑노래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지금의 밀양 아리랑으로 변해 졌다고 한다.
장단은 3박자(4분의3박자)로 맞추어 부른다.
서울 경기의 보조 아리랑이나 정선 지방의 정선아리랑, 경상도 지방의 밀양 아리랑 등 수많은 아리랑이
기원이나 유래며 어원에 대한 정확한 발생설에 앞서 아리랑하면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민요로서
현재 1백86종으로 2천2백70연련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지역별로는 강원도의 1천74련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전라도, 경상도, 서울 경기 충청도 기타지역 순으로 되어 있으며 그 중에 밀양 아리랑도
경상도 지방을 대표로 하는 우리 고유의 민요인 아리랑 중의 하나이다.
오치령(烏峙嶺:435m:08:35)
경남 밀양시 산내면 용전리에서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내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육화산과 용암봉을 이어주는 고개로 『조선지지자료』에는 '오치령(烏峙嶺)'으로 되어 있다.
주변에는 오곡리(烏谷里), 오두산(烏頭山), 오례산성(烏禮山城) 등과 같이 지명이 까마귀와
연관된 것이 많은데, 오치고개의 산봉우리 모양이 까마귀가 앉아 있는 형상이라고 하여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특히 까마귀가 시체를 쪼아먹는 형상은 명당이라고 하여 예전부터 이곳에 부자가 많이
나왔다고 하며, 고개 아래에 있는 오치리에는 달성 서씨(達城徐氏)의 세거지가 있다.
1주일만에 다시 이 구간을 도전하는 셈이다
요즘에 계속되는 체력저하로 인해 고민이 많다
가야할 산은 많은데 체력은 따라주질 않지만 그래도 가야지 어쩌겠나
택시기사와 작별을 하고 산행채비를 갖춘다
산행을 시작하다(8:40)
오치령을 올라서니 조금만 무명봉이 나오고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조금전 오치령에서 헤어진 임도를 만난다
임도(08:47)
???
빡센 오르막으로 올라가는데 아침을 급하게 먹었는지 약간의 체기를 느낀다
요즘 이상하리만큼 잘 체하는 느낌이다...지난주에 받은 검강검진중 위 내시경
검사에서는 모든게 정상으로 나왔는데 기분탓인가?
오르막 좌측에는 막혀버린 임도가 보인다
ㅜ자 갈림길(08:55)
ㅜ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분기점인 가지산에서 이곳까지 경북(청도군)과 경남(밀양시)의 도계가 이곳에서
청도군과 완전히 작별하고 좌(산내면). 우(상동면)가 온전히 경남 밀양시로 들어선다
좌측으로 가는데 부뜰이님의 시그널이 보인다...먼저 지나가셨나보다
맥꾼의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고 낙엽만 잔뜩 쌓여있으나 등로는 뚜렸하다
535.4m봉(09:00)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암릉구간이 간간히 보인다
가느다란 소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무명봉(09:00)
다시 내리막길
안부(09:15)
능선에 올랐다가 내리서니 오치령에서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신곡고개(新谷峴:460m:09:18)
밀양시 상동면 신곡리 새마에서 산내면 용전리 오치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지도상에는 이 임도가 1077번 지방도로 표기가 되어 있는데 좌측의 신곡리쪽은
내리막길이다
신곡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오곡을 비롯한 곡내의 여러 땀과 합하여 신곡리에 편입된 후
1930년에 오곡과 신지의 두 동네로 나누어졌고 현재 신지는 안정, 뜬골, 절터, 새마등 4개의 땀으로
구성되었고, 처음 최씨가 입촌 조선후 월성이씨의 세거지가 되었고 파평윤씨, 함안조씨가 입촌하여 살고있다
본래 오례산 아래에 있다하여 오실촌이라 했다고 하지만 오실은 오곡으로 신곡리 전체의 지명을 적용한 것이다.
마을 형성시기는 임진왜란 이후로 추정하고 있으며 신지라는 지명도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에서 표기된 것이다.
고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는 뚜렸하나 잡목이 상당히 성가시다
무명봉(09:23)
등로는 생각보다 뚜렸하다
대머리 묘지(?) 2기가 있는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475m봉(09:30)
등로는 뚜렸하나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상당히 차갑다
오르막길로 올라서고...
晩秋를 즐기며 호젓하게 나홀로 산행을 하는 이 맛...독립군이 아니면 모르제
저 산악회의 홍길동 아우님은 아직도 산을 타는지 모르겠다.
빛바랜 길동아우님의 흔적을 보면서 올라서니 지도상에 오치고개로
표기가 되어있는 545.6m 정상에 올라선다
545.6m봉(09:42)
545.6m봉에 올라서니 소나무에 준.희선생의 산패가 걸려있고 지도상에는
오치고개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지나온 오치령은 뭐고 오치고개는 뭐란 말인가?
아마도 오류인듯 싶다(범여의 생각 中에서)...그저 밋밋한 봉우리인데 좌측 밀양시 산내면
용전리 저전마을로 내려가는 길에도 시그널 몇장이 펄럭인다
저전(楮田)마을은 용암과 오치마을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부터 이 마을에 닥나무가 많았다하여
생긴 지명으로 임진왜란때 피난지로 취락이 형성된 이후 가선 양진원과 오위장 양수근이
입촌하여 청주 양씨의 터전이 되었으며 조선조후기 순조 임진년에 안동권씨가 입촌하여
세거하고 있으며 고려 명조때 대표적인 초적의 괴수 효심의 마지막 항전지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자연마을으로는 골안과 터실마을이 있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나는데 반갑기도하고 두렵기도 하다.
나홀로 산행을 할 때 가장 겁이나는 건 사람인 듯 싶다.
밀양에 사신다는 이 분은 지맥꾼이 아니고 예전에 영남 알프스 실크길을 종주했는데
옛날 생각이 나서 와봤다고 한다... 이 분을 앞에 보내고 홀로 여유롭게 걸어간다
편안하게 걸어가다가...
안부를 지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09:55)
본격적인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암릉구간은 생각보다 까칠하다
집채보다도 더 큰 암릉이 길을 막아서는 바람에 살짝 우회를 한다
암릉구간에서 만난 이정표
또 길을 막는다
계속되는 암릉구간
조망바위(10:02)
조망바위에 올라서니 생각보다 미세먼지가 심하다
아침에 지나온 용전리 마을이 보이고 그 너머로 이어지는 천황산과 재약산은 희미하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582m봉(10:05)
안부를 지나...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등로 우측으로는 밀양시 상동면 신곡리의 모습이 보인다
암릉사이의 좁은 계곡으로 올라간다
암릉구간을 좌측으로 우회하여...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통천문(10:18)
통천문을 지나 3분정도 걸어가니 용암봉 정상이 나온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나요?
용암봉(龍岩峰:684.7m:10:21)
밀양시 산내면 용전리와 상동면 도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울산미봉산악회에서
세운 정상석과 3등 삼각점이 있지만 주위의 전망은 없는 곳이다
지명의 유래는 예전에 신선(神仙)이 용마(龍馬)를 타고 내려와서 놀았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용암봉에서 우측 능선을 따라서 가면 밀양시 상동면 도곡리에 소천봉이 있고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소천봉(小天峰:634m)까지 왕복으로 1시간 반이상 걸린다고하니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소천봉 남쪽 기슭 상동면 도곡리 솔방(松坊)마을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이웃마을들은 다
왜적의 피해를 입었는데 이 마을은 송림이 우거져 사람들이 살지 않는 줄 알고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이 지역 사투리에 모두를 ‘솔방’이라고 하며 소천봉에는 임진왜란 때
축성한 뒤말리성의 성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용암봉 정상석의 뒷모습
용암봉 정상 삼각점(△동곡334)
용암봉 정상에서 내려가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암봉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서낭당터같은 돌무더기가 보인다
서낭당터?
십자안부(10:32)
산내면 용전리 지평마을에서 상동면 도곡리 상도곡 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옛날 민초들이 넘었던 고개인지 아직도 길이 살아있다
많은 산꾼들이 안전한 좌측의 우회길을 택했지만 힘들지만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십자안부를 지나 다시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구멍바위를 만나...
우측으로 올라가 힘들게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가 좌측으로 내려다보니 천길 낭떠러지이다
암릉사이의 앙증맞은 나무다리를 건난다
더 늦기전에
이제는 늦기전에 인생을 즐겨라
되게 오래 살것처럼 행동하면 어리석다
걷지 못할 때 까지 기다리다가
인생을 후회하지 말고
몸이 허락하는 한
가고싶은 곳 여행하라
질병을 기쁨으로 대하라
가난하건 부자건 권력이 있건 없건
모든 사람은 생로병사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혹시 병들더라도
겁먹거나 걱정하지마라
늙고 병들고 죽는것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 아닌가
몸은 의사에게 맡기고
목숨은 하늘에 맡기고
마음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기회 있을때 마다
옛 동창, 옛 동료
옛 친구를 만나라
그 회동의 관심은
단지 모여서 먹는데 있는게 아니라
인생의 남은 날이
얼마되지 않다는데 있다
돈!
은행에 있는 돈은 내 돈이 아니다
돈을 쓸때 비로소 내 돈이며
죽기전에 쓸수 있는 돈만이 내 돈이다
늙어 가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잘 대접하는 것이다
사고 싶은거 있으면 꼭사고
즐길거리 있으면 꼭 즐겨라
미세먼지가 조금씩 걷히는 느낌이나 아직도 흐릿하다
683.2m봉(10:40)
오늘 등로는 소나무들이 많다...그만큼 재선충의 피해도 많은 모양이다
소나무 무덤들이 많이 보인다
다시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조망바위(10:48)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밀양시 상동면 도곡리(道谷里)의 모습
도곡리는 비교적 표고가 높은 지대에 자리잡은 산간동리(山間洞里)이다.
동쪽으로 용암봉을 사이에 두고 산내면(山內面) 용전리와 경계를 이루었고 서쪽으로는
고정리와 이웃하고 있으며 사방으로 산에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이다.
동리의 이름은 본래 뒷실이라 했는데 이는 신라시대때 도악 현에 딸렸던 도곡이라는
지명에서 유래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래 도곡리(道谷里)로서 법정리가 되었으며,
현재는 상도곡, 하도곡, 솔방등 세 자연마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암릉구간을 올라서니...너럭바위가 나온다
너럭바위(10:49)
암릉에서 아래로 내려간다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아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
등로에서 만나는 암릉들
암릉위로 맥길을 이어가다가...
다시 내려온다
시루바위?
다시 암릉구간 위로 올라간다
편안한 등로를 만났다가...
또 다시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조망바위(11:12)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밀양시 산내면의 모습
지난구간에 걸었던 산들도 아련하게 보인다
고도가 없는 편안한 능선을 걷는다
백암봉(白岩峰:681.2m:11:15)
경남 밀양시 상동면 도곡리와 산내면 용전리 , 산외면 희곡리의 경계에 있는 3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흰덤(하얀바위의 경상도 방언)산이라고도 하며 이 산의 흙 색깔이 뿌옇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인데 전망도 없고 그저 밋밋하다...지형도상에는 그냥 681.2m봉이라고 한다
이곳부터는 남쪽으로 시작부터 같이해온 산내면과 작별하고 산외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인증샷
백암봉에 잠깐 서 있는 사이에 차가운 바람이 상당히 드세다
체온이 뺏기지 않으려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백암봉에서 7시 방향으로 내려서니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숏다리 범여는 이런곳에선 상당히 애를 먹는다
로프지대를 내려오니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고 좌측의 너덜지대를 지난다
희미한 등로를 지나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도곡리의 저수지
계속되는 내리막길...쌓인 낙엽으로 인해 2번이나 미끄러진다
무명봉을 지나...
내리막을 내려서니 넓은 안부가 나오는데 디실재란다
디실재(510m:11:35)
밀양시 상동면 도곡리 상도곡 마을에서 산외면 희곡리 골안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디실재라는 뜻은 ‘뒤에 있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뒷골(後谷)이라 부르다가 변음이 된듯 하다
도곡령(道谷嶺)이라 부르기도 하고 디실재 혹은 뒤실재라고도 하는데 옛날에는 산내, 단장면
사람들이 이 재를 넘어 청도로 갔다고 한다
디실재에서 다시 고도를 높이기 시작하는데 주위에는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디실재에서 조금 힘들게 올라와서 능선길을 따라서 중산으로 향한다
558.2m봉(11:52)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갈림길(11:54)
등로는 좌측으로 활처럼 휘어져 내려간다
등로가 좀 난해하다...좌측으로 가야하는데 등로가 보이지 않는다
1주일전에 지나간 송백산악회 황대장님의 흔적이 보인다
힘들게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니 안부가 나오고 좌측에는 습지가 보인다
천지 습지(天池濕地:500m:12:00)
밀양시 상동면 도곡리와 산외면 희곡리를 잇는 고개같은 안부에 그리크지 않은 습지가 보인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을 천지라고 부르는데 자료에 의하면 고려 19대 임금이었던
명종((재위:1170~1197) 때 이의방과 정중부가 일으킨 무신정변 이후 의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추대되었으나 재위 기간동안 왕의 권위는 떨어지고 무인들의 지위가 크게 상승하여 사회가
혼란하고 농민들의 반란이 자주 일어났다
그 당시 조정의 핍팍에 항거하여 청도와 밀양을 중심으로 농민봉기가 일어났는데 운문출신
김사미(金沙彌)와 초전출신 효심(孝心)이 주동이 되어 전국에서 몰려온 망명자들을 모아
농민 봉기를 일으켰다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에 의하면 명종24년(1194)에 개경에서 파견한 관군 토벌대가
밀성군(밀양의 옛지명) 저전촌(楮田村: 현 산내면 용전리 저전마을)에서 효심의 농민군
7,000여명을 죽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고려시대의 가장 큰 농민봉기였다고 한다
효심 농민군의 웅거지(雄據地)가 중산 7부능선에 위치한 천지(天池)였다고 한다
그 당시 지금의 군 단위 인구가 1~2천명이라 생각할 때 엄청난 사상자라고 할 수 있다
지맥 마루금은 습지 너머의 능선인데 등로가 아예없고 대부분의 산꾼들이 우회길을 택한다
마루금에 복귀하다
능선에 오르니 우측으로 송전탑이 보인다
중산으로 향한다
안부(12:15)
너덜겅으로 올라간다
등로는 희미하다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철쭉 군락지를 헤치고 올라가는데 참으로 힘이든다
중산 정상이 나온다
중산(中山:649.1m:12:35)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와 엄광리 상동면 도곡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넓은 공터에
준.희 선생의 산패만 덩그러니 산 정상을 지키고 있다
중산
보기에는 그저 밋밋한 산이나 맥산꾼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중요한 산이다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가면 낙화산, 보두(담)산, 비학산으로 가서 밀양시 상동면 남기리
정문 마을로 떨어진다...예전에 j3를 중심으로 대부분 이 등로를 따랐고 박성태 선생이
저술한 신산경표에서도 이곳으로 갔었는데 이곳으로 가면 밀양강과 단장천이 만나는
합수점이 아닌 정문마을 우측에서 내려오는 엄남천이란 조그만 냇가가 꼽사리를 낀다
이때부터 맥산꾼들의 의심이 시작됐다...그래서 수계를 기준으로 삼는 대한산경표를 중심으로
이곳에서 남쪽으로 향하여 중산2봉(석이바위봉), 꾀꼬리봉, 화지산으로 향해 단장천과 밀양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가자는 쪽이 있어 지금은 많은 산꾼들이 남쪽으로 많이 향한다
맥산행을 하다가 보면 가끔씩 오류가 보인다
예를들어 낙남정맥이 예전에는 용지봉에서 금음산, 신어산으로 해서 매리2교로 갔지만
지금의 깨어있는 산꾼들은 용지봉에서 불모산, 화산으로 해서 낙동강 하구언으로 가는 것처럼....
북서쪽으로 바라보니 송전탑 너머로 낙화산이 보인다
나중에 여건이 허락되면 저 곳으로도 한번 걸어 보리라...
꽤꼬리봉으로 향한다...아직도 낙화산으로쪽으로는 시그널이 많이 보이나 이쪽은 별로 없다
철없는 넘들...요즘에 인간이나 꽃이나 다들 제 정신이 아닌것 같다
법대로 좋지요...근데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나 법을 집행하는 법무장관은
법을 지 기분대로 할때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그 사람들 제발 TV에 안 나오게 해주셔요
능선으로 올라간다
아!...대단하십니다
희곡리 갈림길(12:45)
밀양시 산외면에 있는 희곡리(希谷里)는 뒤로는 백암산(白岩山)과 중산(中山)이 둘러쳐져 있으며,
동쪽으로는 백암산의 정상인 백암봉에서 한 줄기가 동쪽으로 뻗어 내려와 용암산(龍岩山)에 이른다.
마을 앞쪽으로는 동천이 흐른다. 동천 건너편에는 정각산(正覺山)에서 한 줄기가 뻗어 내려와
장자산(長子山)과 승학산(乘鶴山)에 이른다.
용암산의 동쪽 기슭에 박산(博山) 마을이 있고, 백암산의 아래쪽에 괴목(槐木) 마을이 있다.
박산과 괴목 사이에 골안 마을이 있다. 동천 건너편 승학산 아래에 보라(甫羅) 마을이 있으며
동천을 중심으로 양쪽에 들판이 형성되어 있고, 동천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트여 있는 마을인데
마을 앞으로 국도 24호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교통도 편리한 곳이다
이 마을은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밀주지에는 조선 후기에 와서 희곡리 라는 지명이 중동면(산내, 산외, 단장면)의 한 방리로 기록되어 있다.
희곡리라 한 것은 옛날부터 이 마을 주위에 회화나무가 많이 있엇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는
일설도 있다. 또 마을의 주산이 백암산(白岩山) 혹은 흰덤산 인데 이 것을 흰‘白’ 자와 뜻이
서로 통한다고 해서 희실이라고 했다는 일설도 있다.
또한 백씨(白氏)들이 이 곳에 오기 전에 이 마을 주위의 산이 새꽃으로 하얗게 덮혔다고 해서
희실이라 했다고도 한다. 희실이 한자음으로 표기되면서 희곡(希谷)으로 바뀐 것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박산, 보라, 골안, 괴곡 드을 합하여 희곡이라는 법정리를 이루었다.
1965년 행저이를 조정할 때도 희곡리엿다. 자연 마을은 박산과 보라, 웃마, 아랫마, 괴목정,
대방우(大岩, 臺岩), 불당, 골안, 음지마, 양지마, 박촌, 등 9개 땀으로 구성되어 있다
법대로님이 알바 조심하란다
편안한 능선을 걸어가는데 새벽 일찍 집을 나온 탓인지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臥松도 만나고...
용암산 갈림길(12:55)
지나온 용암봉과는 다른 산으로 산외면 희곡리에 있는 산이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유난히 바위과 관련된 산 이름을 많이 만난다.
맨 처음 지나온 용암봉, 백암봉, 용암산, 석이바위봉 등등...
이곳부터는 구조이정목에는 보두산(보담산)으로 표시가 되어 있다
등로는 뚜렸하고 좋다
등로에는 발이 빠질정도로 낙엽이 많이 쌓여있다
안부(13:04)
중산2봉(642.5m:13:07)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와 상동면 엄광리의 경계에 있는 중산2봉에 도착한다
지나온 중산에는 정상석 하나 없으나 이곳에는 앙증맞은 정상석과 삼각점도 있다.
오늘 산행에는 같은 이름이 많아 상당히 헷갈린다
지나온 용암봉과 조금전에 갈라진 용암산, 그리고 중산도 지나왔는데 이곳에도
중산이 있는데 이정표에는 이곳을 중산2봉이라고 해놨는데 또 다른 자료에는
석이바위봉이라고 기록된 것도 있지만 지형도에는 642.5m봉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중산2봉 삼각점(△동곡333 / 1982재설)
엉터리 이정표
다촌마을로 표시한 곳에 중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단장지맥길은 직진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북서쪽으로 바라보니 밀양(비슬)지맥 능선은 미세먼지 갇혀 버렸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구조이정목이 있는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계속되는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짐승들의 횡포로 봉분에 구멍이 나있는 묘지가 나온다
유인 김해김씨 묘(13:20)
조금을 더 내려가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3:24)
다시 오르막...짧은구간에 V형의 급경사 오르막이다.
점심식사(13:30~40)
수술후 체력 저하로 인해 베낭 무게를 줄이려다보니 늘 먹거리가 부실하다
오늘은 아침에 먹었던 라면으로 인해 체기가 있어 늦은 시간에 점심을 먹는다
곧추선 급경사의 오르막 능선...숨이 멈춰버릴 것 같은 통증이 시작된다
섰다 올랐다를 계속하며 545.7m봉으로 향한다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뒤돌아 본 모습
545.7m봉 오름길에서 바라본 신산경표 운문지맥 능선의 모습
정말 힘들게 545.7m봉 정상에 올라선더
545.7m봉(13:55)
우측으로는 상동면 엄광리 방향으로 가는 능선이 보이나 맥길은 좌측으로 향한다
낙엽이 수북한 능선을 지나니...
능선에서 암릉구간으로 향한다
암릉구간의 능선이 시작된다...암릉구간을 우회하면서 내려간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내려가는데 잠시후에 가야할 꾀꼬리봉은 곧추 서있다
등로는 아주 희미하고 급경사라 엄청 미끄럽다
내가 길을 만들면서 내려간다
암릉구간에 낙엽이 쌓여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지저분한 등로로 내려서니 비로소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안부(14:20)
다시 V형태의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빡세게 올라서니 완만한 능선이 나온다
능선에 올라서서 곡(哭)소리가 날 정도로 힘들었던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
완만한 능선을 가다가...
다시 급경사의 능선을 치고 오르니...
꾀꼬리봉이 나온다
꾀꼬리봉(538.1m:14:40)
밀양시 산외면 엄광리와 금곡리, 희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세가 풍수리리학상으로
꾀꼬리가 노래하는 형국이라 하여 붙혀진 지명이라고 한다
꾀꼬리봉을 지나니 성황당터같은 돌무더기가 보인다
묘지(14:42)
묘지를 지나자마자 지맥길은 우측으로 가야하는데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묘지 좌측 내리막길로는 평전산으로 가는 길인데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 있으나
우측의 지맥길은 아무것도 없고 1주일전에 지나간 송백의 황대장님 흔적인 빨간 노끈만 보인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안부(14:50)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지맥은 합수점에 도착해야 끝난다고 했던가?
체력은 방전되고 다리는 무거운데 해는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니 너무 힘이 드는구나
암릉구간을 올라서니 487m봉이 나온다
487m봉(14:57)
내리막길에는 가느다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장한듯한 묘지터가 보이고...
폐헬기장(15:02)
뫳돼지의 못간통을 지나 우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갈림길(15:04)
이곳에서 산외면 엄광리로 이어지는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지맥길은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져야 하는데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급경사의 내리막길
얼마나 미끄러운지 이곳에서도 된통 한번 넘어진다
가야할 지맥 능선의 모습
합수점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얼마나 미끄러운지 급경사의 오르막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느낌이다
쭉 내려오니 너덜겅이 길을 가로 막는다...우측 사면길로 향한다
우측으로 나가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좌측으로는 시누대가 보인다
안부(15:25)
안부로 올라서니 묘지가 나온다
유인경주최씨 묘(15:27)
조금전 내가 내려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
보기보다는 상당히 까칠하고 급경사 능선이었다
시누대 사이로 내려간다
함양~언양간 고속도로 위(15:35)
이 능선 아래로는 아직 개통되지 않은 함양~언양(울산)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안부(15:36)
무명봉(15:38)
무명봉을 내려서니 대머리(?) 묘지가 나온다
계속되는 완만한 내리막길
안부를 지나니면서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니 ㅜ자 갈림길이 나오고 또 다시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5:48)
안부를 지나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재선충으로 죽은 소나무 무덤들이 많이 보인다
화지산(花枝山:177.3m:15:50)
밀양시 산외면 금천리와 엄광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에는 밀성박씨 가족묘가 조성되어 있다
금천리 대촌 뒷쪽에 있는 산으로 화지산(花枝山) 또는 와우산( 臥牛山)이라고 하는데
화지산이라고 한 것은 이 산의 서쪽에 있는 회말리에 옛날 화짓대가 서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고 와우산이라고 한 것은 화지산의 산세가 ,마치 소가 왼쪽으로 누워 있는
모습을 하여 생긴 지명인데 왜우산이라고 한다
화지산 정상에는 밀성박씨 가족묘가 자리를 잡고있고 맥길은 우측 아래로 이어진다
내려가는 길은 아주좋다
등로 옆에는 밀성박씨 제단이 보인다
등로옆에 있는 밀성박씨 제단
안부(15:55)
무명봉(16:00)
단장(운문)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통훈대부중추사를 지내신 분의 묘지를 지난다
등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감각적으로 길을 찾아서 간다
늦둥이 과남풀도 보인다
절개지같은 내리막으로 뚝 떨어진다
등로 우측으로 부산~대구간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예전에 공동묘지였나...관리가 안된 묘지들이 많이 보인다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수로옆으로 내려가니 밀양~언양간 이어지는 24번 국도가 보인다
도로로 내려간다
24번국도 암거(16:18)
뒤돌아본 모습
24번 국도를 빠져나오니 단장천 너머로 추화산이 보인다
밀양I.C 아래로 지나간다...원래 맥길은 밀양 I.C 윗쪽 고속도로 길이다
밀양I.C 아래의 도로를 따라서 간다
도로에서 바라본 지맥 능선...뚜렸하게 대비가 된다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전원주택이 있고 잠시후 인공수로가 있는 곳에서 꺽어진다
수로를 끼고 밀양I.C 아래를 통과한다
밀양I.C 지하를 통과하니 비닐하우스가 나오고 농로를 따라서 가니 레미콘공장이
길을 막는 바람에 다시 되돌아와서 좌측의 포장도로를 따라서 간다
농로길을 따라서 간다
포장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윗쪽에 밀양인터체인지가 보인다
저 곳이 원 지맥길이다
갑자기 길이 막히고 보리를 심어논 논이 나온다... 논 가운데를 질러서 간다
논에서 올라서니 칡넝쿨이 엄청난 태클을 걸어댄다
수로 윗쪽으로 올라간다
도둑놈풀이 옷에 엄청나게 풀어서 하는 수 없이 베낭에 있는 스카치 테프를
꺼내어 도둑놈을 떼내느라 시간이 좀 걸린다...그 넘땜에 몸뚱아리가 엄청나게 쓰라리다
고속도로 아래로 들어서 레미콘 도로를 따라서 우측으로 향한다
이곳이 지형도상 마루금인데 고속도로땜에 한참을 돌아서 왔다
찬우레미콘(16:35)
살내교차로(16:37)
살내교 입구에서 리더스C.C 방향으로 향한다
가드레일을 넘어 합수점으로 향한다
합수점 가는길
단장천/밀양강 합수점(16:45)
드디어 단장천이 밀양강에 入水하면서 나 역시 맥길을 종료하며 스틱을 접는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와 지맥하나를 끝냈다는 짜릿한 희열감을 느끼며 늘 쥔장
잘못만나 고생하는 내 두 다리에게 감사함을 표한다...고생했다.
합수점에서 바라본 신산경상의 운문지맥 능선의 모습
밀양강(密陽江)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 고헌산에서 발원하여 밀양시를 통과한 뒤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대한민국의 지방하천으로 경상북도 경주시와 청도군에서 합류하고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에서 동창천(밀양강 본류)이 청도천과 합류되어 본격적으로 밀양강으로 불린다.
지류로는청도천,단장천, 감존천, 직현천 등이 있으며 밀양시민들은 남천강이라고 부른다
길이 99㎞로 이 강은 유로에 비하여 유역면적이 넓어 낙동강과의 합류지점에는 너비 4㎞에 이르는
넓은 충적평야(밀양평야)가 발달했다.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어 쌀 생산량이 많고, 시설채소와
사과·감·복숭아 등의 과수재배도 활발하다. 강유역의 중심도시인 밀양시에는 밀양강의 용수를
이용한 섬유·양조 등의 각종 공업이 발달했다.
단장천(丹墻川) 의 모습
경상남도 밀양시의 단장면을 흐르는 하천으로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능등산에서
발원해 양산시 원동면을 거쳐 밀양시 단장면으로 흘러들어 온다. 단장면 고례리에서 밀양댐을
이루고, 범도리에서 구천을 합류하고 동쪽으로 흐르다가 태용리에서 밀양강에 유입한다.
단장천은 단장면, 단장리 일대를 흐르는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단장 지명은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단장리로 기록되어 조선 초기부터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단봉정(丹鳳亭)에서 유래한 단정(丹亭)이라는 다른 이름도 전해온다.
단장(丹墻) 또는 단전(丹田)이란 지명 표기도 있으나 이는 단장(丹場), 단정(丹亭)에서
음을 빌어온 것이라고 한다.
고생했다
인증샷
합수점에서 살내교로 올라오니 이곳은 교통량이 거의 없다
간간히 지나가는 자동차를 상대로 앵벌이(히치)를 해보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
인정머리 하고는...하는 수 없이 아침에 이용했던 택시를 호출하니 10분만에 도착한다
밀양역에 도착하니 17시 25분이다...표를 예매하려니 표가 매진이란다...참으로 난감하다
이곳 밀양은 철도 교통이 발달한 탓인지 버스로 이용하는 교통편은 아주 불편하다.
밀양은 군도 아니고 시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직접가는 고속버스도 운행 안한다
서울은 고사하고 가까은 대구로 가는 고속버스도 없다고 한다
무궁화호 열차로 동대구가서 서울가는 열차를 갈아탈까 생각중인데 표를 파는 여인이
‘어르신! 서울가는 특실 표가 한장 있네요’ 하는게 아닌가...이보소 돈이없어 걸어다니는
산꾼이 뭔 돈이 있다고 특실 열차(차비:67.900원)를 타요 하니까 ...어이가 없는지 아무말도 안한다
밀양발 → 서울행 열차표
난감한 표정으로 베낭을 메고 매표소앞에 있으니 여인이 나를 부른다
갑자기 취소된 표가 나왔다고 하기에 얼른 예약을 했는데 그것도 2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
느긋하게 베낭을 정리하고 화장실에서 깔금하게 씻고 남은 간식으로 허기를 면하고
열차를 기다리는데 허허벌판같은 밀양역 플렛홈은 생각보다 바람이 세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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