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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양산(영축)지맥(終)

영축지맥 제3구간 - MTB 도로에서 낙동강교(합수점)까지

by 범여(梵如) 2021. 5. 3.

☞ 산행일자: 2021년 05월 02일

☞ 산행날씨: 비 온후 오전 흐림...오후에 맑음

산행거리: 도상거리 19.7km / 10시간 0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MTB도로-561.7m봉-갈림길-당고개-무명봉-안부-안부-일직손공 묘-구천산 갈림길

                   묘지-갈림길-안부-갈림길-527m봉-감물고개-무명봉-선우사 입구-안부-안부

                   608.8m봉 갈림길-608.8m봉-다시 608.8m봉-점골고개-519.4m봉-무명봉-암봉-임도

                   만어산-이동통신탑-만어현-523.6m봉-묘지-암봉-안부-547.0m봉-묘지-밀양박씨 가족묘

                   안동권씨 묘-광주안공 묘-조망바위-솔태고개-258.0m봉-활공장-폐헬기장-묘지

                   338.8m봉-청용산-안부-354m봉-323.2m봉 갈림길-323.2m봉-다시 323.2m갈림길

                   경주김공 묘-수원백씨 가족묘-새나루고개-248m봉-헬기장-안부-317.4m봉-326.9m봉

                   260m봉-미전고개-무흘산터널 위-170.6m봉-안부-196.1m봉-205.8m봉-안부-202m봉

                   암봉-198m봉-거족고개-매봉산 갈림길-226m봉-갈림길-2번째 갈림길-연안이씨 묘

                   NO2 송전탑-성황당-낙동강 합수점

소 재 지: 밀양시 단장면, 삼랑진읍

 

지난해 겨울 영축지맥 2구간을 끝내면서 해가 짧아서 어중간하게 거리가 남아서 고민이 많다.

한번에 가자니 거리가 부담되고, 2번에 가자니 너무 짧아서 시간과 경비가 아깝다

요즘에 해가 길고하니 일단 당일에 가서 부딪혀보기로 하고 만약 다 못할 경우에 그쪽에

가는 길이 있으면 땜방할 요량으로 밀양역으로 가는 KTX 첫 차를 주중에 예매한다.

 

일요일 새벽 4시에 집을 나서 집앞에서 서울역가는 버스를 타려고하니 첫 차가 04시 25분이라

이 버스를 타면 아무래도 열차타는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거금(?)을 들여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발 → 밀양행 열차표

서울역(04:45)

택시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니 04시 45분이다

버스를 탔으면 한참을 버벅거릴 뻔 했다.

05시 05분에 밀양으로 가는 KTX열차를 타고 밀양으로 향한다.

열차를 타자마자 잠깐 잠에 빠졌었나...광명역에서 탄 40대 후반쯤 된 남자 둘이서

내 뒷좌석에 탔는데 뭔 얘기가 많은지 계집애처럼 종알거리는 바람에 잠을 이룰수가 없고,

대화 때이 침에서 튀어 나오는 비말로 인해 코로나의 불안 때문에 다른 칸으로 옮겨가서 잠을 청한다

 

이 열차는 서울에서 동대구까지는 포항행과 진주행이 한 몸으로 오다가 동대구에서 분리한다

열차는 예정된 시간보다 4분이나 늦게 밀양역에 도착한다

밀양역(07:25)

밀양역은 지난해에 혼자서 단장(운문) 지맥 2, 3구간과 영축지맥 2구간을 할 때 와봐서 그런지

그리 낯설지는 않다...밀양역을 빠져나와 역사(驛舍)내에 있는 ‘카페 이순신’이란 곳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려고 했는데 장사가 안되는지 문이 굳게 닫혀있다

지난 3번을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했는데 뭔 일이여...난감하네.

역 광장을 빠져나와서 주변을 살펴보지만 문을 연 식당으로 보이지 않는다.

밀양역은 밀양시내에서 와곽에 있는지 주변 지역이 상당히 낙후되어 있고,

불편하다...하는 수 없이 근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하나사서 전자렌지에

돌려 아침을 해결하고 예약해 둔 택시로 들머리로 향한다

MTB도로(08:30)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에서 금오산 약수암쪽으로 이어지는 산악자전거용 도로이다

밀양시에서는 산악자전거(MTB) 도로를 많이 만들어 놨다

택시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한다...택시기사는 혼자 다니는게 불안해 보이는지

조심해서 다녀 가시라고 하면서 나에게 인사를 하고는 밀양역으로 향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8:35)

좌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보이고 맥길은 직진길로 이어진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하여 등로는 촉촉히 젖어있다

등로 주위에는 소나무들이 많이 보이고, 제선충으로 죽은 소나무 무덤들이 보인다

묘지를 옮긴듯한 공터를 지난 후....

뚜렸한 사면 등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561.7m(08:40)

다시 조금전에 헤어진 등로로 내려선다

갈림길(08:42)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뚜렸한 내리막길이 나오나 GPS는 좌측으로 가라고 한다

등로 좌측에는 묘지가 보이고...

등로가 희미하다

직진 등로는 사라지고 우측의 사면길로 향한다

괜스레 헛짓거리를 했다...직진으로 향한 길로 내려왔어야 했는데...

등로 아래는 절집처럼 보이는 건물이 보이고 그 아래 보이는 용소소류지이다

잡풀을 헤치고 내려서니...

당고개가 나오는데 밀양시내로 가는 버스 한 대가 서 있다.

당고개의 모습

당고개(堂嶺:388m; 08:55)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 당개마을에서 삼랑진읍 우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커다란 노거수 한 그루가 있고

예전에 서낭당이 있어 당고개라 부르는 모양인데 지금은 서낭당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고개 우측 아래의 감물리에는 당개마을이 있는데 지명은 이 마을에서 따온 듯 하다

고개 아래에는 앙증맞은 용소소류지가 보이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용소(龍沼)라는 지명에 대하여는 옛날 마을 앞에 깊은 늪이 있었는데, 그곳에 살고 있던 용(龍)이 물가로 나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 또 용이 날아갔다는 마을 동쪽 산봉우리에는 해마다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며 지금도 이 마을 앞에는 작은 못이 남아 있는데 아무리 큰물이지거나 가물어도 수량이

일정하다하여 용소(龍沼)큰샘이라는 이름이 전해지고있다.

당고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니 묘지가 나온다

묘지에서 뒤돌아 본 당고개의 모습

묘지에서 만난 솜방망이꽃(꽃말:안전합니다)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로 종류는 산솜방방이, 민솜방망이 등이 있으며, 전국의 햇볕이 드는 곳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으며, 풀 전체가 은색 털로 덮여 있고 긴 꽃대 끝에 피어있는 꽃 전체의 형태가 

둥근 모양새를 띠고 있어서 솜방망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 같다... 꽃대가 위로 곧추 서 쓰러질 것 같지만

대가 튼튼해 꽃말처럼 쓰러지지 않으며 하얀 솜털로 덮인 잎과 밝은 노란색 꽃이 조경용, 관상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꽃이 지고나면 잎이 크게 자란다. 어린순은 식용을 쓰이고 꽃은 약용으로도 쓰인다.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가 나오는데 최근에 공사를 한 모양이다

의문이 풀린다..등로 좌측 아래에 절집 공사를 하면서 만든 도로인 모양이다

무명봉(09:02)

안부(09:03)

좌측의 사면길로 올라간다

삼각관계?

사면길을 따라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이장(移葬)을 한듯한 묘지의 흔적이 보이고...

안부(09:07)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오르막길에 묘지가 보인다

일직손공 묘(09:09)

일직 손씨(一直 孫氏) 또는 안동 손씨는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 있는 손홍량 유허비에 의하면 시조 손응(孫凝)의

원래 이름은 순응(荀凝)으로(荀)씨였는데 고려 8대 현종의 이름과 음이 같다하여 손(孫)씨로 사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손응 이후의 계대(繼代)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상의직장동정(尙衣直長同正)을 지낸 손세향(孫世鄕)을

1세조로 하고 있으며, 장군을 지낸 손간(孫幹)을 중시조로 하여 일직(一直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리)에

자리잡아 살면서 본관을 일직(一直)으로 삼게 되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臥碑로 된 또다른 일직손공 묘비가 나온다

일직손공 묘지를 지나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등로는 비 온후의 상쾌함에 머리가 상당히 맑아지는 느낌이다

안부같은 곳을 지나 좌측으로 갔다가 능선으로 올라선다

선답자의 흔적이 뭉치째로 걸려있다

빡세게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구천산 갈림길이 나온다

구천산 갈림길(09:23)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구천산까지 왕복 30분이상 걸린다고 한다

느림보 범여에겐 언감생심이다

구천산쪽을 바라보며 입맛만 다시고 우측 능선으로 내려간다

비맞은 철쭉이 淸楚하게 보인다

묘지(09:30)

묘지를 지나면서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멋진 소나무 한그루를 만나고...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갈림길(09:32)

좌측으로 내려서니...

소나무와 편백나무들이 보이고...

두릅나무들이 보이고 오늘 처음으로 한끼 먹을만큼의 두릅을 채취한다

안부 갈림길(09:34)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를 지나서...

소나무가 빽빽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527m봉(09:38)

살짝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묘지를 지나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편백나무 조림지를 통과한다

올해 처음으로 비에 젖은 벌깨덩굴을 만난다

벌깨덩굴(꽃말:메기)

꿀풀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일본과 한국, 중국이 원산지이며, 산지의 그늘진 곳에서 서식한다.

크기는 약 15~30cm 정도이며 꽃말에 맞게 꽃 속에서 메기가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형상이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옆으로 뻗는 네모진 원줄기의 각 마디에서 뿌리가 나와 다음해 꽃줄기가 되는데, 이 꽃줄기에서 약 5장의 잎이 마주난다.

5월에 피는 자주색의 꽃은 입을 벌려 혀를 내민 모습과 비슷하고, 화관의 통부는 길고 갑자기 부풀어 오르며, 아래쪽 꽃잎의 가운뎃조각은 아주 크며 꽃이 피는 방향이 모두 같고, 가운뎃조각과 옆조각에는 진한 자주색 반점과 희고 긴 털이 있다.

잎에서 깻잎과 비슷한 향기가 난다.잎 모양이 깻잎을 닮았다고 해서 벌깨덩굴이라 불리며, 속명 Meehania은 미국의

식물학자 토마스 미핸(Thomas Meehan, 1826~1902)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벌깨덩굴류는 대부분 높은 산지에서 자라는데, 해발고도 1,500m 되는 곳에서도 자라며 깊은 숲 속의

그늘진 곳을 좋아하며 붉은 꽃이 피는 붉은벌깨덩굴과 흰 꽃이 피는 흰벌깨덩굴도 있다.

꿀이 많아 양봉 농가에서 밀원식물로 이용하며, 어린순과 연한 잎은 나물로 식용한다.

한방에서는 미한화(美漢花)라고 하여 약용하는데, 잎과 줄기를 신진대사의 기능을 회복하거나

대하증을 치료하는 데에 다른 약재와 함께 처방한다

편백나무 조림지를 통과하는데 비에젖은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편백나무 조림지를 벗어나 좌측으로 내려간다

시멘트 도로가 보이는데 지형도상의 감물고개이다

감물고개(甘勿峴:09:48)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와 삼랑진읍 우곡리의 경계에 있는 삼거리 고개로 각종 팻말들이 어지럽게 서 있다

감물리 마을위에 있는 고개라고 해서 감물고개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지난 2구간을 이곳까지 끊었어야 했었는데 오늘 합수점까지 갈랑가 모르겠네...

감물고개 감물리 용소마으로 내려가는 길의 모습

밀양시 단장면에 있는 감물리(甘物里)의 지명유래는 이곳의 샘물이 차고 달았다고 하여

감물(甘物)로 부르다가 일제강점기에 감물(甘勿)로 바뀌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등로는 MTB도로쪽의 시멘트 도로로 가다가...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옹벽위로 올라간다

누군가가 만어산 가는길의 표시를 해놨다

소나무 무덤을 지난다

무명봉(09:53)

조금전에 헤어진 도로로 내려선다

선우사 입구(09:55)

우측으로 MTB도로 있고 좌측으로는 별장 느낌이 드는 선우사라는 절집이 보인다

좌측으로 올라간다

최근에 조성한 듯한 묘지가 보인다

묘지를 지나서 숲속으로 들어간다

묘지에서 뒤돌아 본 구천산의 모습

바로 아래 주택처럼 보이는 곳이 선우사라는 절집이다

 

밀양시 삼랑진읍에 위치한 구천산(九天山:640m)은 9개의 봉우리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고도 하고,

예전에 아홉 마리의 호랑이가 살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북쪽 단장면 너머 영남알프스

연봉과 김해지역의 산군들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이 일품이다.

정상 아래에는 망바위가 있고 망바위에 올라서면 남쪽으로 원동의 토곡산과 천태산, 금오산이

동북쪽으로 가지산, 천황산, 운문산 등 영남 알프스의 준봉들이 눈에 쏙 들어온다

안부(09:58)

안부를 지나서 암릉구간으로 오르는데 초지같은 안부 능선에 옥녀꽃대가 많이 보인다

옥녀꽃대(꽃말:외로운 사랑)

옥녀꽃대라는 이름은 이 야생화가 처음 발견된 장소가 거제도 옥녀봉이라서 붙여진 것이다.

예전에 남부 지방에서는 홀아비꽃대라고도 하고, 꽃이 작고 잎이 크다고 해서 과부꽃대라고도 했다.

하지만 홀아비꽃대는 별도로 구분이 되므로 현재는 옥녀꽃대라고만 하며 종자가 익는 시기가 6월경인데,

종자가 결실되면 홀아비꽃대는 위로 솟구치지만 옥녀꽃대는 약 45~60도 정도 비스듬히 누워 있어 구분이 된다.

또 홀아비꽃대는 잎 끝에 자줏빛이 있지만 옥녀꽃대는 전부 녹색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꽃대라는 이름이다. 꽃이 아니라 꽃대라고 부르는 것은 꽃이 보잘 것 없어서 그렇게 부른다.

오죽하면 꽃대라고 했을까. 실제로 꽃을 보면 아주 작은 털 같은 것들이 달려 있을 뿐, 꽃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하다.

 

옥녀꽃대는 제주도와 남부 지방 숲에 사는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반그늘이나 양지에서 자라며

토양 비옥도가 좋은 곳에서 잘 자란다. 키는 15~40㎝ 정도이며,  잎은 줄기 끝에 타원형으로 4장이 뭉쳐난다.

잎의 색은 녹색이며 끝이 날카롭지 않으며 꽃은 4~5월에 흰색으로 핀다.

4장의 잎 사이에서 꽃대가 올라오는데, 꽃대의 길이는 20~25㎝이며 전체에 털이 없고 가지는 갈라지지 않는다.

열매는 6~7월경에 노란색이 도는 녹색으로 둥글게 달린다.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한달음을 숨한번을 크게 내쉬고...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은방울꽃도 피기 시작한다

간간히 산괴불주머니도 보인다

안부(10:08)

우측으로 우회하여 묘지의 흔적같은 곳에서 빡세게 치고 오른다

상상은 자유

능선에 올라서서 숨한번 크게 내쉬고...

다시 빡세게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608.0m봉 갈림길(10:20)

맥길은 ↘ 방향으로 내려가지만 ...

베낭을 벗어놓고 좌측으로 608.0m봉이 있어 거기로 간다

608.0m봉 가는길

608,0m봉(10:22)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준.희 선생의 산패가 있었는데 찾을길이 없다

조금전에 통과한 감물고개에도 선생님의 산패는 보이지 않았다.

혹 내가 못봤나하고 몇번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다시 608.0m봉 갈림길(10:24)

베낭을 메고 다시 길을 나선다

비에젖은 급경사의 내리막길...상당히 미끄럽다

맥길은 우측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나 선답자들의 시그널은 좌측 뚜렸한 등로로 걸려있다

나 역시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이곳에서도 약간의 두릅을 수확한다

숲길이 되어 버린 임도로 내려서서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저 윗쪽이 마루금인데...

사면길로 올라와서 마루금에 복귀를 한다

반갑습니다...김해 백두산악회 홍길동 아우는 잘있는지 모르겠네

좌측으로 내려간다

묘지가 나오고...

묘지 좌측 아래로 내려가니 차량이 다닐수 있는 넓은 임도가 있는 점골고개에 도착한다

점골고개(店谷峴:10:35)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 점골마을 위에 있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점골마을에서 따온 듯 하다

점골마을은 점골(店谷) 또는 정골(鼎谷) 이라고도 하며 감물리 들머리의 첫번째 땀(마을) 이름으로

근처에 골짜기가 있어 땀과 함께 점골이라 부르는데 옛날 이 곳에 옹기점이 있었다고 한다.

용소 마을에 속하는 작은 마을로 또 솥골(鼎谷)이라는 별명이 있어 옛날에 거창(居昌) 신씨(愼 氏)가

살면서 솥을 남겼다고 한다

고개를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간다

완만한 오르막길이 나오고...

Y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오르막으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창자가 끊어질 듯 배가 아파온다.

등로를 벗어나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했지만 배는 계속 아프다

그렇다고 안 갈수가 없다...천천히 쉼호흡을 하면서 만어산으로 향한다

힘들게 능선에 올라서서 등로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519.4m봉으로 향한다

519.4m봉(10:44)

519.4m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조금전에 헤어진 뚜렸한 등로로 복귀한다

묘지가 있었던 자리인듯한 넓은 공터를 지난다

조그만 봉우리에 올랐다가 내려서니...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점골고개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보인다

돌무더기를 지나...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만어산으로 향하는 등로는 뚜렸하다

다둥이 소나무

무명봉(11:00)

배가 계속 아파온다...2번째 볼일을 봤지만 시원치가 않다

혹...아침에 먹은 도시락이 문제가 있나?

등로에는 비에젖은 단풍마가 간간히 보인다

단풍마는 뿌리를 천산룡(穿山龍)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어혈이 생겨 뭉친 증세에 술에 담가서 복용하고,

어혈에 의해 생긴 관상동맥 장애에 사용하며, 폐의 열 때문에 생긴 기침과 천식을 가라 앉히고, 피의 열을

내리므로 종기와 피부병에도 좋다고 합니다.

'단풍마'는 아주 오래 전 부터 동양 한방에서 약초로 쓰여오던 마과에 속한 여러해살이 덩굴풀이며, 잎자리가 길고

잎모양이 단풍잎을 닮았다고 하여 '단풍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며 맛이 다소 쓰고 차가운 성질을 지닌 단풍마는

섭취했을 경우 건강에 좋은 효능을 발휘한다

암봉(11:04)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배가 아파도 챙길것은 챙겨야제...

숲을 헤치고 내려서니 임도가 나온다

임도(11:06)

점골고개에서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임도 주변에는 병꽃들이 많이 피어있다

만어산으로 가는 등로 우측으로는 벌목지이다

북쪽으로는 지난해에 걸었던 가지산~운문산으로 이어지는 단장(운문)지맥이 보인다

벌목지 아래로는 밀양시 단장면 법흥리 너머로 산성산이 보인다

능선 북쪽으로는 영남 알프스 능선이 멋진 모습으로 산꾼의 시야에 들어온다

가지산, 운문산과 천황산, 재약산이 실루엣처럼 보인다

등로에서 내려다 본 밀양시 단장면 법흥리(法興里)의 모습

법흥리는 동으로 안법천을 두고 안법리와 이웃하였고, 서쪽으로는 자씨산(慈氏山)을 배경으로 하여 밀양시

구서원동(舊書院洞)과 시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비교적 험준한 만어산을 사이에 두고 삼랑진읍 우곡리와

면계를 지었고, 북쪽으로 산을 넘어 미촌리와 이웃해 있는 산중의 동리로 전반적으로 산이 에워싸고 있는 만큼

그 지대도 비교적 높은 편이며 골짜기 사이에 전개된 경지를 중심으로 띄엄띄엄 자연 부락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다.

이 동리는 법산(法山)을 정점으로 하여 상봉(上峯) 두 자연 부락이 북, 동, 서로 솥발처럼 배치되어 있는데, 옛날부터

은자(隱者)의 동학(洞壑)이라는 아름다운 칭호가 붙은 곳이다.

법흥리에서 탄생한 '법흥상원놀이'에서 '상원'은 정월 대보름을 일컫는 그래서 '정월 대보름에 행해졌던 놀이'를

상원놀이라고 하는데 옛날에 당산나무에서 곡소리가 들려오고, 마을에 나쁜 일이 자주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이

당집을 세우고 대보름날 제를 지내게 됐고 그 이후 평안해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제도권 등로에 접어들었나 보다

만어산 가는 길

멋진 소나무를 만나고...

암릉구간을 지나니 사람 소리가 들리면서 만어산 정상에 도착한다

만어산(萬魚山:669.5m:11:14)

경남 밀양시 단장면 법흥리와 삼랑진읍 우곡리, 용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여지도서』에 만어산과 관련된

전설을 소개하고 있는데 가락국을 세운 수로왕 때 이 나라의 옥지라는 연못에 살던 독룡과 만어산에 살던

나찰녀(불교에서 말하는 사람 잡아 먹는 귀신)가 서로 사귀면서 번개와 우박을 내려 4년 동안 농사를 망쳤다.

수로왕이 주술로써 이들의 악행을 막고자 하였으나 여의치 못하자, 부처에게 설법을 청하여 이들에게 오계를

받게 하였다... 이때 동해의 수많은 고기와 용들이 불법에 감동을 받아 만어산으로 모여들어 돌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지금의 만어사 앞의 어산불영(漁山佛影)인데 이 바위는 두드리면 맑은 쇳소리를 내었다고 하며,

특히 서북쪽의 큰 바위는 용왕의 아들이 변해서 된 것이라고 전하는데, 멀리서 보면 부처의 모습이 나타나고

가까이서 보면 그 모습이 사라진다고 한다.

서쪽 기슭에 삼층석탑(보물 제466호)이 있는 만어사가 있다

인증샷

울산에서 왔다는 산객에게 부탁하여 가야할 삼랑진 철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부탁했는데 좀 흐리다

이 바위 아래로 만어산의 지명 유래가 된 만어사와 돌을 두드리면 쇠소리가 난다는 경석(磬石)이

있는 너덜이 있는데 만어산 정상에서는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만어산은 자성산이라고도 불리우며 여름에 얼음이 어는 얼음골, 사명대사 비석에 흐르는 땀인 표충비각과 밀양의

3대 신비에 속하는 곳으로 작은 절이 이토록 유명한 이유는 미륵전에 부처님 대신 신기한 돌(미륵바위)을 모시는

사찰이기도 하고, 만어사 주변 산자락에 무리지어 널려 있는 수 만개의 돌 때문이다.

즉 만어석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장관이기 때문인데 ‘만어산 어산불영’, ‘만어산 암괴류’로 불리는 이 돌들은 암석

덩어리를 물고기로 인식한 불교적 믿음이 반영된 지명으로, 전설상으로는 동해에서 온 물고기와 용이 불법에 감동받아

만어산으로 모여들어 돌이 된 것이라 하며, 이 돌들은 두드리면 종처럼 맑은 소리가 나는데, ‘종석’ 또는 ‘경석’이라고도

불리며 일반 돌처럼 둔탁한 소리가 나는 것도 있지만 제법 울림이 있는 맑은 소리가 나는 것 등 종소리와 유사한 소리가

나는 돌들이 많이 있다.

한반도 빙하기가 끝난 후 많은 비가 내려 이곳의 암석들이 양파가 벗겨지듯 침식·풍화되어 생성된 암괴류는 700m이상

길게 펼쳐지며 독특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는 등 학술적, 경관적 가치가 커서, 1996년 3월 11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52호로 지정될 때는 ‘만어산 어산불영’이란 이름으로, 2011년 1월 13일 천연기념물 제528호로 지정될 때는

‘만어산 암괴류’로 등록되었으며 현재는 암괴류가 더 이상 형성되지 않는 화석화 단계이며, 주변의 식생이 서서히 암괴류를 잠식해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만어산 정상에 있는 2등 삼각점

만어산 정상 삼각점(△밀양 21 / 1992재설)

만어산 정상에서 바라본 영남알프스의 산그리메

만어산 정상에 있는 昇天松의 모습

만어산에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암봉을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만어산 정상을 내려오니 망가진 이동통신탑이 보인다

내리막길의 벌목지 너머로 지난해 걸었던 단장(운문)지맥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동통신탑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로 내려간다

시멘트 도로 우측 아래는 법흥리의 뒷골 소류지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단장면 안법리가 보인다

 

안법리(安法里)는 북쪽으로는 가래봉을 분수령으로 하여 미촌리, 단장리, 태용리 등 세 동리와 경계를

이루었으며, 동쪽으로 만어산의 지맥이 뻗어 내린 산줄기를 사이에 두고 무릉리와 이웃해 있다.

남쪽으로도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자락 위로 감물리의 고지와 대치해 있고, 다만 서쪽 한 방향으로만 비

교적 뻔한 분지를 바라보면서 법흥리와 경계를 짓고 있는 아늑한 산중 마을로 동리 한가운데로는 법흥,

감물의 여러 골짜기에서 발원한 안법천이 서북으로 흐르면서 법흥, 안법, 미촌리 등 이른 바 삼동(三洞)의

젖줄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이 곳에 방리(坊里)가 형성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이웃 마을인 사촌리와 함께

대개 조선조 초기이래 선비들의 복거지(卜居地)로서 알려져 왔다

이동통신탑(11:25)

만어산 턱밑까지 차량이 올라올 수 있어 걷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좋겠다

주차장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만어사로 가는 등로이다

지맥길은 만어사로 내려가는 곳을 조금 지난 다음에 시멘트 도로에서 좌측 숲속으로 들어간다

숲속으로 들어가니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조금전에 헤어진 시멘트 도로를 만나고 다시 숲속으로 내려간다

지맥길은 생각보다 좋다

삶이 왜 이리 힘드노

우측으로 벌목지가 잠깐 보였다가...

이내 숲속으로 들어간다

둥글레가 만발한 묘지를 지나 내려서니...

넓은 임도 삼거리가 나온다

만어현(萬漁峴:520m:11:38)

자전거 도로가 지나는 삼거리이다

임도삼거리인 만어현을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묘지를 지나고...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가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조그만 봉우리를 지나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넓은 공터를 지나고...

등로 좌측 아래쪽으로는 만어현에서 헤어진 MTB도로가 보인다

완만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523.6m봉(11:44)

Y자 갈림길인 523.6m봉 정상의 우측으로는 산성산으로 가는 길인데 시그널이 많이 걸려있고

좌측의 지맥길은 희미하고, 시그널이 별로 안보여 약간의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밀양시 가곡동과 활성동의 경계에 있는 산성산(山城山:387m)의 지명유래는 자씨산성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산성산(山城山)을 일자봉(一字峰), 반팅이산(함지를 엎어놓은 형상의 산)으로 잘못 부르고 있으며

원래는 자씨산(慈氏山, 부처님의 산)으로 풍수가들이 명당을 논할 때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를

를 꼽을 때, 밀양에 있는 산성산이 꼭 그러한 경우라고 한다.

범과 용의 꼬리가 서로 엉킨 곳이라는 금씨당에서 산성산을 바라보면 우측 봉우리는 용두산(龍頭山:73.6m:

밀양시 가곡동 소재)이고 좌측 봉우리가 호두산(虎頭山:109m)이다

범머리봉이라고 불리는 호두산은 동천과 다원을 바라보며 범이 머리를 들고 있다면, 용두산은

용이 엎드려 잠을 자는 형국인데 용을 깨우려고 자시산(376m)에 영원사를 세웠다고 한다

523.6m봉 정상에 있는 구조 안내목

산성산 가는길에 걸려있는 등산객들의 시그널

좌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묘지(11:48)

살짝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암봉(11:50)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만어사와 쇳소리가 난다는 어산불영(漁山佛影)으로 불리는 너덜지대가

살짝 보이나 숲으로 인해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저곳의 암괴류는 천연기념물이기도 하지만 

크고 작은 바위를 드리면 쇠소리 종소리 옥소리같은 소리가 나기에 표충비, 얼음골과 함께

밀양의 3대 신비로 지정되있다.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하고 키작은 소나무로 인해 길이 안보인다

이른 아침에는 어제 내린 비로인해 괜찮았는데 햇빛이 나면서 松花가루가 날리면서 목이 상당히 아프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철쭉 군락지를 통과한다

이장한 묘터의 흔적이 있는 넓은 공터를 지난다

안부(11:57)

노루발도 꽃을 틔울 준비를 한다

조그만 봉우리를 넘어서고...

안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ㅜ자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547.0m봉(12:05)

조금옆에 만어봉이라는 산패도 보인다

우측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등로는 안보이고 못생긴(?) 소나무만 보인다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의 흔적이 반갑기만 하다

묘지(12:18)

희미한 등로로 내려간다

좌측 아랫쪽으로 잘 관리된 묘지들이 보인다

밀양박씨 충헌공파 가족묘(12:20)

묘지 아랫쪽으로 시멘트 도로가 보이나...

묘지가 보이는 옆쪽으로 내려간다

순창설씨 참의공파 묘지를 지난다

안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니 배도 고프고 졸음이 몰려와서 베낭을 내린다

점심식사(12:25~40)

휴식겸 점심식사를 끝내고 다시 길을 나선다

산딸기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등로 좌측 아랫쪽으로는 시멘트 도로가 보인다

무명봉(12:47)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묘지가 보인다

안동권씨 묘(12:49)

산은 구름을 탓하지 않는다.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는 발걸음으로 걸어가라.

닥치는 모든 일에 대해 어느 것 하나라도 마다하지 않고

긍정하는 대장부(大丈夫)가 되어라 .

무엇을 구(求)한다, 버린다 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는 인연 막지 않고 가는 인연 붙잡지 않는

대수용(大收容)의 대장부가 되어라.

일체(一切)의 경계에 물들거나

집착(執着)하지 않는 대장부가 되어라.

놓아 버린 자는 살고 붙든 자는 죽는다.

놓으면 자유(自由)요, 집착함은 노예(奴隸)다.

왜 노예로 살려는가?

살아가면서 때로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고

설상가상(雪上加霜)인 경우도 있다.

그런다고 흔들린다면 끝내는 자유인이 될 수 없다.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데

무엇에 집착할 것인가? 짐을 내려놓고 쉬어라.

쉼이 곧 수행(修行)이요, 대장부다운 살림살이 이다.

짐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수고로움을 면할 수 없다.

먼 길을 가기도 어렵고 홀가분하게 나아가기도 어렵다.

자유를 맛 볼 수도 없다.

쉼은 곧 삶의 활력소(活力素)이다.

쉼을 통해 우리는 삶의 에너지를 충전(充塡)한다.

쉼이 없는 삶이란 불가능할 뿐더러 비정상적이다.

비정상적인 것은 지속(持續)될 수 없다.

아무리 붙잡고 애를 써도 쉬지 않고서 등짐을 진채로는 살 수 없다.

거문고 줄을 늘 팽팽한 상태로 조여 놓으면

마침내는 늘어져서 제 소리를 잃게 되듯이

쉼을 거부한 삶도 마침내는 실패(失敗)로 끝나게 된다.

쉼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삶의 정지가 아니라 삶의 훌륭한 일부분이다.

쉼이 없는 삶을 가정(假定)해 보라.

그것은 삶이 아니라 고역(苦役)일 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선율(旋律)이라도

거기서 쉼표를 없애버린다면 그건 소음(騷音)에 불과하게 된다.

따라서 쉼은 그 자체가

멜로디의 한 부분이지 별개(別個)의 것이 아니다.

저 그릇을 보라.

그릇은 가운데 빈 공간(空間)이 있음으로써

그릇이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단지 덩어리에 불과하다.

우리가 지친 몸을 쉬는 방(房)도

빈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지 벽을 이용하는 게 아니다.

고로 텅 빈 것은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유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삶의 빈 공간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쉼은 더욱 소중하다.

붙잡고 있으면 짐 진 자요, 내려놓으면 해방된 사람이다.

내려놓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자유와 해방을 쫓아내는 사람이요.

스스로 노예(奴隸)이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하필이면 노예로 살 건 뭔가?

‘산은 날보고 산 같이 살라하고

물은 날보고 말없이 물처럼 살라하네.‘ 하는 말이 있다.

산은 거기 우뚝 서 있으면서도 쉰다.

물은 부지런히 흐르고 있으면서도 쉰다.

뚜벅뚜벅 걸어가면서도 마음으로 놓고 가는 이는 쉬는 사람이다.

그는 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욱 살찌게 한다.

그는 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한다.

풍요(豊饒)와 자유를 함께 누린다.

쉼이란 놓음이다.

마음이 대상(對象)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마음으로 짓고 마음으로 되받는

관념(觀念)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몸이 벗어나는 게 아니고 몸이 쉬는 게 아니다.

마음으로 지어 놓고 그 지어놓은 것에 얽매여 옴치고

뛰지 못하는 마음의 쇠고랑을 끊는 것,

마음으로 벗어나고 마음이 쉬는 것이다.

고로 쉼에는 어떤 대상이 없다.

고정된 생각이 없고 고정된 모양이 없다.

다만 흐름이 있을 뿐이다.

대상과 하나 되는 흐름, 저 물 같은 흐름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쉼은 대긍정(大肯定)이다.

오는 인연(因緣) 막지 않는 긍정이요.

가는 인연 잡지 않는 긍정이다.

산이 구름을 탓하지 않고

물이 굴곡을 탓하지 않는 것과 같은 그것이 곧 긍정이다.

시비(是非)가 끊어진 자리

마음으로 탓할 게 없고 마음으로

낯을 가릴 게 없는 그런 자리의 쉼이다.

자유(自由)와 해방(解放)

누구나 내 것이기를 바라고 원하는 것

그 길은 쉼에 있다 물들지 않고 매달리지 않는 쉼에 있다.

밀양박공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이 분은 생전에 약주를 좋아하신 모양이다

묘지 아래로 내려간다

처사 광주안공 묘(12:55)

낙동강 너머로 무척산이 보인다

희미한 등로로 내려간다

조망바위(:58)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밀양(비슬)지맥 능선의 모습

좌측으로부터 팔봉산, 덕대산, 종남산, 우령산이 뚜렸하게 보인다

조망바위에서 내려서니 원두막과 평상이 나오고 곧이어 시멘트 도로가 나오는데 솔태고개이다

솔태고개(13:02)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와 청학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밀양시에서 개설한 MTB도로 지나간다

솔태고개에 대한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용전리로 내려가는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258.0m봉(13:03)

258.0m봉 삼각점(△밀양 409 / 1998재설)

활공장으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땅비싸리(꽃말:사색, 생각)

콩과식물로 숲 가장자리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군집을 이루고 자라는 낙엽활엽 반관목으로
꽃은 4월~6월에 자홍색(紫紅色)으로 피고, 10월에 열매가 달리며, 뿌리를 산암황기(山岩黃芪)라 하며

止汗(지한:땀을 멈추게 함)하는 효능이 있다.
어떤 책에는 산두근(山豆根)이라 하는데.산두근(山豆根)은 중국의
廣豆根(Sophore Tonkinensis Radix et Rhizoma)이고 우리나라는 없다.

능선에 올라섰다가...

안부 사거리로 내려선다

송화가루를 뒤집어 쓴 범여의 몰골

활공장 가는 길

차량이 회전할 만큼 넓은 임도를 만난다

임도 끄트머리에 있는 활공장에 도착한다

활공장(320.5m:13:20)

활공장에서 바라본 밀양(비슬)지맥 능선의 모습

밀양강 너머로 팔공산, 덕대산, 종남산, 우령산 우측으로 밀양시내가 보인다

활공장에서 바라본 밀양시 삼랑진읍 용성리의 모습

용성리(龍星里)는 삼랑진읍(三浪津邑)의 서쪽 응천강(凝川江) 하류 연안에 위치한 동리(洞里)이다.

동쪽으로 청룡(靑龍) 뒷산 줄기를 따라 용전리(龍田里)와 이웃하였고, 서쪽으로는 응천강(凝川江)

흐름을 끼고 상남면(上南面)과 경계를 이루었다. 북쪽으로 광활한 들판을 사이에 두고 청학리(靑鶴里),

임천리(林川里)와 인접해 있고, 남쪽에는 현랑산(玄浪山)을 넘어 미전리(美田里)와 경계를 지었다.

용성(龍星)이라는 지명은 옛날 마을 앞 늪 속에 한 마리 용(龍)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옥황상제

(玉皇上帝)에게 죄를 지어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고 매양 밤마다 별무리를 쳐다보며 울다가 죽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가장 큰 부락인 청룡(靑龍)과 칠성(七星)에서 한 자(字)씩을 취하여 법정리(法定里)의

이름을 용성리(龍星里)라 하였고, 새터(新基), 솔배기(松栢), 인구리(印轉) 등 다른 자연 부락도 이에 편입시켰다.

이 동리(洞里)도 중세 시대(中世 時代)에 금음물부곡(今音勿部曲)의 판도 안에 들어 있었는데, 마을 앞

응천강(凝川江) 하류의 하구에는 상선(商船)이 많이 드나들었고 광탱이나루, 인구리나루, 미전(美田)나루 등

옛 나루터의 유적이 이웃하여 당시 강좌(江左)로 내왕하는 수운(水運) 교통의 요지임을 말해 주고 있다.

활공장을 지나서 숲속으로 들어선다

등로는 생각보다 뚜렸하다

가야할 청룡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능선은 고도차 별로없이 완만하다

안부를 지나서...

밋밋한 봉우리를 지난다

송화가루로 인해 목이 많이 아프다

폐헬기장(13:32)

안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가는데 자연보호라고 쓰여있는 역삼각형 표식 옆에 무명묘가 보인다

뚜렸한 등로를 지나니...

소나무 무덤을 지나고 묘지가 나온다

묘지(13:40)

묘지를 지나 안부에서...

무명봉으로 올라선다

​고비나물도 간간히 보인다

338.8m봉(13:44)

선답자들의 시그널을 따라서 직진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완만하게 맥길을 이어간다

청룡산(靑龍山:362.8m:13:48)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와 용성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그저 밋밋한 갈림길이다

지도상에는 이곳이 청룡산으로 되어 있으나 잠시후에 청룡산 산패가 다시 나온다

지명의 유래는 이 산아래에 청룡마을에서 유래된 듯 싶다(범여의 생각中에서)

청룡산에서 직진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안부(13:55)

안부에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마치 골프장 필드같은 느낌이다...이럴줄 알았으며 7번 아이언이라도 가져올 걸...ㅋㅋㅋ

능선에 올라서니 피어버려 먹을 수 없는 두릅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354m봉(14:04)

준.희 선생께서 이곳에다가 청룡산이란 산패를 붙혀놨는데 내 카메라가 놓쳐 버렸다

갑자기 엄청나게 배가 아파서 통증을 참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식은 땀은 계속 흐른다

청룡산 산패 아래에 있는 묘지...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정로환 2알을 먹는다

다시 베낭을 메고 좌측으로 향하는데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다

323.2m봉 갈림길(14:10)

지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는데 이곳에서 직진으로 4~50m정도 가면

삼각점이 있는 323.2m봉이 있어 거기를 갔다오기로 한다

323.2m봉(14:12)

준희 선생의 산패에는 324.2m봉이라고 적혀있다

이곳에서 직진으로 가면 음달산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323.2m봉 삼각점(△밀양303/1998재설)

다시 323.2m봉으로 되돌아 와서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등로 나무가지 사이로 바라본 삿갓봉(229.9m)의 모습

오전에 지나온 감물고개 위에서 갈라진 능선으로 이어진 구천산(九天山:640.1m)의 모습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묘지가 있는 능선으로 내려간다

경주김공 묘(14:20)

내리막 능선 건너편에는 용전리 일반산업단지가 보인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수원백씨 가족묘(14:21)

계속되는 내리막길

가묘(假墓)인가?...문패가 없다

계속되는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2차선 도로가 나타나는데 새나루 고개이다

새나루고개(14:27)

밀양시 삼랑진읍 용성리와 미전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밀양과 삼랑진을 잇는 2차선의 58번 도로가

지나가고 도로 주위에는 ‘ 밀양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지’ 팻말과 쓰레기 버리지 말라는 경고판이 있다

지금은 한적하게 잊혀진 곳이지만 2차선의 58번 도로는 예전엔 서울과 부산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는데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대구~부산간 고속도로 삼랑진 터널이 지나는 바람에 옛 영화를 잊어버린 듯 하다

지명의 유래는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미전리에 있는 대미마을에서 따온 듯 하다

밀양 보도연맹 사건 희생지 표시판

한국전쟁 발발 이후 1950년 7월부터 8월까지 밀양지역 국민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자들은 밀양경찰서 및

관할지서 경찰과 경남지구 CIC에 의해 연행되거나 소집 통보를 받고 자진 출두한 이후 밀양경찰서 유치장과

밀양읍 나카노공장, 삼랑진지서, 삼랑진역 강생회 지하창고 등에 구금되었다가, 1950년 8월 중하순경 청도군

매전면 곰티재, 밀양군 삼랑진면 안태리 뒷산, 검세리 깐촌 낙동강변, 미전리 미전고개 일대에서 집단

사살되었는데 당시 희생자는 55명이라고 한다

도로를 건너 보도연맹 표시판 뒷쪽으로 올라가 숲속으로 들어선다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빡세게 올라간다

빡센 오르막에서 체력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아침에 먹은 도시락 탓인지 볼일을 4번이나

봤더니만 이제는 물 먹는 것 조차도 겁이날 정도이다

힘들게 능선으로 올라선다

248m봉(14:40)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헬기장(14:50)

비교적 등로는 뚜렸하고 가늘고 키가 큰 소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소나무 무덤들이 많이 보인다

안부(14:53)

안부를 지나고 다시 빡센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힘들게 능선으로 올라선다

317.4m봉(14:58)

오늘따라서 준.희 선생의 산패와 국립지리원의 지도가 불일치한 곳이 많이 보인다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가는데 등로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326.9m봉(15:02)

지도상의 족보있는 봉우리이건만 그냥 밋밋하고 선답자의 시그널 2개만 보인다

326.9m봉 아래에는 고사리밭이 되어 버린 묘지가 보이고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정글같은 숲을 헤치고 내려서니...

등로는 뚜렸하고...

등로가 열리면서 밀양강과 삼랑진 들녘이 보인다

260m봉(15:10)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간간히 선답자들의 시그널은 보이나 등로는 사라져버렸다

갑자기 배가 아프면서 통증이 오는데 미치겠다

베낭을 내려놓고 정로환 2알을 먹고 베낭을 베개삼아 잠깐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나니 조금 나은 느낌이다

다시 길을 떠난다...급경사를 내려서니 좌측에서 내려오는 희미한 임도로 내려선다

희미한 등로로 내려오니...

우측에서 내려오는 시멘트 임도가 나온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내려오니 감나무밭이 나오고 삼랑진읍 미전리 미전논공단지가 보인다

논공단지 뒷쪽으로 잠시후에 가야할 170.6m봉과 그 뒷쪽으로 무흘산(無屹山)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지맥길은 감나무밭 가운데로 가로 지르나 그냥 시멘트 도로로 내려간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좌측엔 최근에 조성한 듯한 신세계푸드 밀양물류센터가 보인다

우측으로 내려서 미전고개에 도착한다

미전고개(美田峴:15:37)

밀양시 삼랑진읍 미전리에 있는 고개로 고개 좌측에 미전논공공단이 있고 우측에는 화성마을이 보인다

이곳이 예전엔 무흘역이 있었던 자리로 옛날에 역은 역마(驛馬)를 갈아타는 곳이었다.

사람과 말이 머무르는 여관과 차고의 구실도 하였으며, 통신을 전달하는 수단으로도 이용되었다.

미전리(美田里)는 응천강(凝川江) 하류 강변을 타고 내려온 경부선철도가 동남쪽으로 꺾어 들면서

무흘산(無屹山) 터널을 빠져나와 삼랑진역(三浪津驛)에 이르는 큰 마을로 이곳은 중세(中世) 이래

부산(釜山)에서 서울에 이르는 교통의 요지로서 황산도(黃山道)에 소속된 무월이역(無月伊驛)의 소재지였다.

무월이(無月伊)는 응천강(凝川江)과 낙동강 합류(洛東江 合流) 지점의 질편한 물(水)을 상징한 이두식(吏頭式)

지명으로 무흘(無屹) 또는 무흘(無屹)이라고도 표기했는데, 고려시대 이래(高麗時代 以來) 10여 필(匹)의

역마(驛馬)와 수백 명의 역리 역졸(驛吏 驛卒)을 거느린 역관(驛館)과 파발참(把撥참)을 겸한 큰 역마을이었다.

동북쪽으로 사기점 골짜기를 따라 용전리(龍田里)와 이웃했으며, 북쪽에는 음달산을 사이에 두고

용성리(龍星里)와 경계를 지었으며, 서쪽으로 응천강(凝川江) 하류를 따라 상남면(上南面)과 면계를 이루었고,

동남쪽에는 매봉산 너머로 송지리(松旨里), 삼랑리(三浪里)와 이웃하였다.

이 동리(洞里)의 중심부는 지금의 미전(美田)고개 부근인데 동.서.남 세 구역으로 부락이 형성되었다.

동쪽은 대미(大美), 중촌(中村), 대천(大川)등의 마을이 북에서 남으로 이어져 하나의 행정 부락을 이루었고,

서쪽에는 강변 마을인 입성(立城)과 화성(火城)이 한 구역을 형성했으며, 남쪽에 대신(大新), 새태 등 여러 땀이

어울려 한 부락이 되어 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대미(大美), 중촌(中村), 무흘(無屹), 입성(立城),

화성(火城)과 삼랑리(三浪里)에 속했던 대신(大新)을 병합하여 미전리(美田里)로서 법정리를 삼았으며

미촌(美村)이라고도 했다.

고개 좌측으로 가서 과수원으로 올라간다

과수원에서 길을 막아놨다...산꾼이 그런다고 안가는거 봤소.

아랫쪽 과수원을 통과하니 또다른 과수원이 길을 막는다

매실나무의 도열을 받으며 가야할 170.6m봉을 바라본다

과수원 우측 아랫쪽으로 미전리 화성동 마을이 보이고 밀양강 앞으로는 비닐하우스가 많이 보인다

 

대천(大川)에서 미전(美田)고개를 넘어가면 바로 화성동이 나오는데 무흘역관(無屹驛館)에 묵어가는

관인(官人), 역졸(驛卒)과 길손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살던 마을로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기

전까지 이 곳에는 여인숙(旅人宿)과 주막(酒幕)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점포가 있었다.

철도가 생긴 이후 철로연변 정비사업에 따라 이웃 입성(立城)과 화성(火城) 두 땀에 살던 사람들을

매봉산 북쪽에다 새터를 정하여 주거를 옮기게 했으며, 화성이란 지명은 무월(無月)터널이 설치된

이후에 생긴 것으로 화통차가 소리를 지르며 달리는 잿마루라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또 이 마을 뒷산을 봉오재만댕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파발참의 연락 수단으로 봉화불을 올렸으므로

불재(火城)라는 뜻으로 생긴 지명이라고도 하며 정상에는 석축(石築)의 원장(垣墻)이 지금도 남아있다

강가쪽이 가까워서 그런지 바람이 드세다

조금전에 지나온 길을 한번 뒤돌아 본다

매실농장을 통과하니...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우측으로 돌아서 올라서니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보인다

살짝 빡세게 올라서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무월산 터널 위(16:00)

이 능선아래로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는 무월산 터널과 대구~부산간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삼랑진 터널 위이다... 서북쪽엔 2개의 터널이 지나간다고 해서 이름

붙혀진 트윈터널이 있다

오르막으로올라간다

170.6m봉(16:03)

정상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폐가 한채가 있다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6:05)

안부에서 빡세게 올라간다

196.1m봉(16:09)

196.1m봉 정상 삼각점(△밀양443/1998재설)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205.8m봉(16:13)

완만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6:15)

등로 좌측으로는 금오산과 구천산, 만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맥길은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좌측으로 이어진다

202m봉(16:21)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예전에 묘지인듯한 공터의 흔적도 보인다

소나무의 숲길 사이로 맥길을 이어간다

암봉(16:27)

암봉을 우회한 다음에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뭔 나비인지?

198m봉(16:32)

등로에는 망가지고 녹슨 TV 안테나가 보인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지난해12월에 걸었던 금오산이 까칠하게만 보인다

등로옆 소나무에서 올해 처음으로 소나무 한입버섯을 만난다.

 

소나무 한입버섯은 버섯의 크기는 2-4×1-2.5㎝이고 두께는 1-2.5㎜로 황갈색 또는 갈색인데 

광택이 있고 표면은 매끄러우며 전체가 밤 모양이거나 조개 모양이고 표면은 둥근 산 모양이며 

하면은 편평한 모양이며 살은 백색인데 가죽질이나 코르크질이다. 아랫면은 가줄질의 피막으로 

덮이며 구멍은 노출하지 않는다. 아랫면 자루의 기부 근처에 타원형의 입과 같은 구멍이 열려 있다. 

 

구멍의 지름은 3-6㎜이고 관공의 길이는 2-5㎜로 백색에서 나중에 탁한 황색이고 구멍은 원형이며 

가늘고 1㎜ 사이에 3-4개 있다. 포자의 크기는 10-13×4-6㎛는 무색의 긴 타원형이며 표면은 매끄럽다. 

발생은 1년 내내 침엽수의 고목 또는 산나무의 껍질에 나며 특히 소나무에 많이 군생한다.

 

소나무 한입버섯은 향암작용과 세균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으며 기관지염의 염증과 마른 기침을

자주하는 천식에 뛰어난 효능을 가지고 있는 버섯으로 향염, 향순환기 장애, 향종양제에 효과가 있다.

버섯 채취시기는 말랑말랑한 4~5월이 적기이며 여름철이 가까워지면 버섯이 딱딱해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마사토 지역이라 그런지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급경사로 내려오니 묘지가 나오고...

내려가야 할 거족고개의 모습

우측으로는 밀양강이 보이고 비닐하우스 너머로 밀양시 하남읍이 희미하게 보인다

넓은 들녘에는 유난히도 비닐하우스가 많이 보이는데 이곳이 딸기가 많이 나오는 곳이란다

밀양시 삼랑진읍 일대는 대한민국 최초의 딸기 시배지(始培地)라고 한다

1943년 밀양 삼랑진 금융조합 이사로 있던 故송준생(1976년 작고)씨가 일본에서

딸기 모종 10여포기를 가져와서 처음 심었고, 그 이후 같은 마을에서 사는 주민이

송씨로부터 딸기 모종 5포기를 받아 노지재배에 성공하면서 딸기농사가 퍼졌다.

밀양 딸기는 삼랑진읍을 중심으로 하남읍, 상남면에서 집중적으로 재배되고 있으며

딸기 재배 수확량은 경남지역이 전국의 38%를 차지하며, 밀양지역은 경남지역의

딸기 생산 26%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잡목의 저항이 너무 심해서 좌측으로 향한다

뚜렸한 임도로 내려와서...

거족고개로 내려선다

거족고개(居族峴:16:50)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 거족마을 위에 있는 고개로 정상에는 버스정류장이 있고 지금 도로 공사중이다

거족마을은 삼랑리의 북쪽 응천강가에 있는 저습지대 마을로 지금과 같이 강변제방이 견고하지 못했을때는

해마다 강물이 범람하여 마을전체가 침수되는 일이 잦았다. 거족, 또는 거연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큰제비

수십마리가 祭上위를 날아다닌 이후로 마을에는 별다른 수해를 당하지 않고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으며, 큰제비, 거제비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거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도로를 가로질러 철대문이 있는 과수원 가운데로 맥길이 이어지나...

앞에 보이는 매봉산을 바라보면서 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도로너머 저 멀리 구천산이 아련히 보인다

도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뭘 하려는지 능선을 다 까뭉게 놓았다

지나온 거족고개를 내려다 본다

과수원 때문에 약간 우회를 하여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마구 파헤쳐진 등로에서 바라본 거족마을의 모습

거족마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어느 해에 마을 사람들이 제물(祭物)을 차려 놓고 수해(水害)가 없도록 동신(洞神)에게 제(祭)를

올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큰 제비 수십 마리가 제상(祭上) 위를 빙빙 날아다니면서 구슬프게 우는

통에 참제한 동민들도 서러움에 겨워 함께 울었다.

 

그러한 일이 있고 난 뒤부터는 별다른 수해(水害)를 당하지 않고 농사를 잘 지으며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마을로 큰 제비(巨燕)가 지켜 주는 마을이라고 하여 동네 이름을 "큰제비"라고

한 것이 "거제비"가 되었고,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거젭" 또는 "거족"으로 바뀌어 거족으로 표기하고 있다.

절개지 능선으로 올라가는데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어서 더 걸을수가 없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떠난다

그물망을 지난다

빡센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암릉구간을 지나 다시 힘든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매봉산 갈림길(17:25)

좌측으로 가면 매봉산으로 이어지고 맥길은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좌측으로 조금만 가면 맥길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229.0m봉을 놓치는 憂를 범한다

매봉산(妹峰山:283.5m)은 밀양시 삼랑진읍 송지리 신천마을과 삼랑리(낙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만어산, 구천산, 금오산, 천태산 등 삼랑진을 에워싸고 있는 다른 산에 비하면 나지막하지만

삼랑진 관내 학교 교가에 빠지지 않고 들어갈 만큼 삼랑진을 상징하는 산이라 할 수 있다.

 

매가 날개를 펴고 앉아 있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매봉산이라 하였는데 한자 표기시 '매'에

해당하는 마땅한 한자가 없어 차음하여 '妹'로 나타내기도 하고, 뜻을 따라 '鷹'자로 표기하기도 한다.

옛날에 푸른 소나무가 울창하여 삼랑진 팔경 가운데 하나로 매봉창송을 들었다고 하며,

달리 '뫼봉산'으로도 부른다.

내리막 능선으로 내려간다

내리막길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이는데 누군가가 이곳을 무흘산이라 적어놨다

안부를 지나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226m봉(17:30)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갈림길(17:33)

직진으로 등로가 보이고 좌측의 사면길이 있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기에

무심코 갔더니만 자꾸만 트랙을 벗어나서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직진으로 내려간다

2번째 갈림길(17:38)

이곳에서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뚜렸한 직진의 급경사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자세히 보니 지나가신지가 얼마 않된듯한 비실이 부부님의 시그널이 보인다

희미한 등로를 가다가...

갑자기 등로가 사라진다

반갑습니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아! 힘들다

내려온 곳을 뒤돌아 본다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과수원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오우진 나루의 모습

오우진 나루 끄트머리가 밀양(비슬)지맥 합수점인데 2구간을 끝내고 아직 시작도 못한 밀양(비슬)지맥길

올해안에 끝내야 할 터인데...오우진 나루터 건너(여기서는 보이지 않음)에 뒷기미 나루가 있었던 자리이다

뒷기미는 뒤쪽 갯가에 위치해 있고, 산 아래쪽에 있다고 하여 생긴 지명으로 뒷개뫼(後浦山)에서 온 말이고

오우진나루라고도 불렀다는데 오우진은 아까 조창나루 앞의 여흥 민씨 五友선생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요산 김정한 선생의 단편소설 '뒷기미나루'의 현장으로 강 건너 밀양 상남면 사람들이 삼랑진장에

갈 때 이용하던 나루였으며 소설 뒷기미나루는 1983년 KBS의 TV문학관에서 극본으로 방영이 되었고

대입수능 국어문제에도 출제가 되었다고 한다

 

'뒷기미 사공아 뱃머리 돌려라

우리님 오시는 데 마중 갈까나

아이고 데고 성화가 났네

뒷기미 나리는 눈물의 나리

임올랑 보내고 난 어찌 살라노 

아이고 데고 성화가 났네.' 

김해의 진산이라는 무척산이 멋진 모습으로 산꾼의 눈을 호강하게 한다

2주에 저 산에 오를 계획인데 어찌될 지 모르겠다

과수원 너머 보이는 붉은 송전탑을 포스트 삼아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 우측으로는 밀양(비슬)지맥의 끝자락인 오우진 나루터가 시야에 들어온다

우측의 좁은 강줄기가 밀양강이고 넓은 강줄기가 낙동강이다

 

저곳이 밀양강이 왼쪽의 낙동강과 합수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낙동강 하류에서 바다물이

밀려오고, 진주 쪽의 낙동강 상류의 강물과 밀양강의 세(三) 물결(浪)이 만난다고 하여

삼랑진(三浪津)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삼랑(三浪)이라는 이름도 밀양강이 낙동강과 합류하면서 세 갈래 큰 물줄기가 부딪혀 물결이 일렁인다는 뜻이다.

조선 후기에는 인근 여섯 고을에서 조세로 거둔 곡식이 모두 이 나루에 모였다가 물길을 따라 한양으로 갔다.

자연히 이 일대는 숱한 사람과 물자가 들고 나며 번성했고 그 중심지가 지금의 삼랑리다.

 

세월이 흘러 조창이 없어지고 수운도 쇠퇴했지만, 이미 교통과 물류의 요지가 된 이 고장에 이번엔

철길이 놓였고 1905년에 삼랑진역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역이 놓인 곳은 송지리였고, 삼랑리는

이때부터 뒷전으로 밀려났다

농장에서 쓰는 가건물인 모양이다

낙동강 너머로 창원시 대산면 지역이 보인다

저 너머 어디쯤에 철새도래지인 주남저수지가 있을 것이고 좌측은 노통의 고향인 봉하마을쯤 되겠다

과수원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오다가 우측의 묘지쪽으로 향한다

유인연안이씨 순금지묘(17:55)

묘지를 지나서 감나무밭으로 내려간다

감나무밭 안 쪽으로 들어간다

감나무밭 윗쪽 하얀건물 우측 능선이 맥길이다.

지금 감나무밭에는 농약 뿌리는 작업을 하고있고 농약 냄새가 진동을 한다

아무리 맥길도 중요하지만 농약을 마시면서 맥길을 걷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감나무밭 가운데로 곤도라가 설치되어 있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이이쿠 깜짝이야!... 감나무밭을 빠져나오는데 동물 퇴치용 전선이 높게 처져있다

숏다리인 범여가 넘어려다 전선줄에 닿았는데 찌릿하고 전기가 흐른다.

하마터면 연고도 없는 곳에서 비명객사할 뻔 했네...옆에있는 블록을 놓고 조심스럽게 넘는다

농장 도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조금전에 통과한 229m봉을 뒤돌아 본다

삼랑진의 옛 지명에는 뒷개뫼(後浦山)이라고 한다

농장 가운데 도로로 올라가는데 오늘 산행을 하면서 먹은게 없다보니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어 편안길인데도 다리가 풀려 버린다

저 송전탑까지만 가면 되는데... 너무 힘이들고 마지막에 걸음이 느려서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19시 53분 밀양에서 서울가는 KTX표를

예매해 놓긴 해서도 차시간을 맞출까 불안하다.

갑자기 지난해 단장(운문)지맥을 하면서 신세를 진 후배에게 전화를 한다.

후배가 전화를 받으면서 ‘형님! 늦은 시간에 왠일이요’ 하면서 반가워 한다

아우님!...지금 어디신가? 하고 물은니 오늘 오랫만에 와이프랑 밀양에 있는

노벨C.C에서 골프치고 울산으로 출발하려는 중이란다

아우야...그럼 잘됐다... 내가 지금 삼랑진에 있는데 차시간이 애매하니

니가 삼랑진와서 밀양역까지 태워주라 하니까...알겠습니다 하는게 아닌가.

이 친구는 고향 후배로 태어난 동네는 다르지만 나를 잘 따르는 후배이다.

울산에서 인테리어업을 꽤나 크게하는데 예전에 울산에서 구입이 힘든 제품을

내가 서울에서 구입하여 고속버스로 보내주곤 했는데 그걸 지금도 꽤 고마워 하면서

나를 잘 따르는 친구라...가끔은 내가 아랫녘으로 내려오면 종종 신세를 진다

NO2 송전탑(18:10)

송전탑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성황당으로 향하는데 송전탑 와이어줄에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인다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마구 파헤쳐져 절반만 남아있는 성황당으로 향한다

안부(18:13)

언제 없어질 지 모르는 성황당으로 올라간다

우측으로는 영남의 젖줄 역할을 하는 낙동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성황당(18:15)

예전의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나오는 성황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노거수만 정상을 지키고 있다

성황당에서 바라본 작약산과 경전선 철교의 모습

낙동강 너머로 화포 동(무척)지맥 능선이 보인다

저 곳도 한 구간만 걸으면 졸업인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삼랑진에서 낙동강 너머

김해시 생림면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줄잡아 너댓개가 보인다

낙동강 너머로 조만간 걸어야 할 무척산의 모습

성황당에서 내려간다

성황당을 내려와서 잡목을 헤치고 급경사로 내려선다

등로는 보이지도 않는다

철교를 바라보면서 찔레꽃 넝쿨을 헤치면서 내려간다

급경사로 내려서서 대나무숲속으로 들어간다

길은 보이지 않고 개고생을 하면서 대나무숲을 빠져 나온다

민가가 보이고 민가 마당을 통과하는데 맞은편에는 KTX 밀양에서 진주로

연결되는 신낙동철교가 보인다

입구로 빠져 나온다

민가를 빠져 나오면서 바라본 삼랑진교의 모습

삼랑진에서 진주로 연결되는신 낙동철교 철길의 모습

철길 아래로 내려간다

영축지맥 합수점(18:30)

이곳이 옛날 조창나루가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민가도 인적도 드문 산자락의 강변일 뿐이지만 이 부근의 내부마을에

후조창이 있었고 이 위의 산 꼭대기를 지금도 조창만댕이라고 부르고 있다.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리 2km의 강변에는 삼랑나루, 조창나루, 뒷기미나루가 있는데

구 낙동철교와 콰이강의 다리 사이에 삼랑나루가 있었던 곳이다

삼랑리에는 영조41년인 1765년에 후조창이 세워졌는데 후조창은 밀양, 양산, 현풍,

창녕, 영산, 울산, 동래의 7개 군현의 세곡(稅穀)을 징수하여 보관하던 국가물류창고다

 

수납된 세곡은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으로 보내졌고 삼랑리에는 후조창의 관원들이 공무를

보았던 차소(差所)와 선주들이 근무하던 선청(船廳), 관비들의 숙소, 창고, 주막, 여인숙, 점포,

저자거리로 번잡하였던 곳이다

인증샷

삼랑진 철교 아래에 있는 쪽배가 있는 옛 조창나루에서 영축지맥을 마무리한다.

대개 합수점이라면 강이 바다에 입수하던지, 천(川)이 강(江)에 입수하면서

지맥이 마무리되는게 정석(定石)인데 이곳은 정석의 아무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속된말로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그저 그러니...찝찝하다.

 

참으로 어렵게 지맥 하나를 접수한다

당일 산행으로 10시간 가까이 걸어야 한다는 건 그리 쉬운일은 아니다

그러기에 더 큰 감동과 희열을 느낀다

영축지맥이라 곳을 마치면서 뒷맛은 개운하지 않다.

도로로 올라서는데 후배한테서 전화가 온다

후배의 차를 얻어 타려면 땀냄새가 나면 안될것 같아서 강가로 내려가서

수건에 물을 적셔서 간단하게 씻고 도로로 올라간다

도로에 올라서니 향어마을이라는 횟집이 있는데 콰이강의 다리란다

쌩뚱맞은 간판 반대쪽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06호인 삼강사비(三江祠碑)가

있는 삼강서원에 들리고 싶었는데 마지막 체력저하로 시간을 허비한 바람에

들리지 못한게 두고두고 아쉽기만 하다

 

삼강사 비(삼강사 비(三江祠 碑: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06호)...사진 펌

밀양강과 합포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지점, 이곳 삼랑리 나루터에 옛 조창이 있어 김해와 부산 밀양의 

세금을 모아 한양으로 보내는 역할을 한 곳으로 세 개의 강이 만난다하여 “삼강사(三江祠)”라 이름하고

 ‘삼강루’가 있던 이곳에 삼강사 비(三江祠 碑)를 세워 민씨 5형제의 효행과 우애를 기리고 있다. 

 

이 비는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문인(門人) 이었던 여흥민씨(驪興閔氏) 5형제의 두터웠던 효성과

우애, 학문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민씨 5형제는 욱재(勖齋) 구령(九齡), 경재(敬齋) 구소(九韶),

우우정(友于亭) 구연(九淵), 무명당(無名堂) 구주(九疇), 삼매당(三梅堂) 구서(九敍)를 말한다.

 

형제들은 1510년 (중종5년)에 옛 삼강루가 옛 삼강루(三江樓)가 있던 이곳에 정자를 짓고 함께 살면서,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기며 두터운 우애와 고결한 행동으로 이름을 남겼다. 형제들의 우애와 효성이

알려져, 조정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천거하였으나 끝내 사양하였는데 그 정신을 기려 정자를 “오우정(五友亭)

이라 이름하고 그 정자를 기리는 시[亭贊四韻]를 지어 후세에 남기도록 하였다.

 

그 후 1563년(명종 18)에 이 지역의 선비들은 정자 내에 “오우사(五友祠)라는 사당을 지어 봄. 가을로

제례를 지냈으며, 따로 비석을 세워 형제들의 효행과 우애를 귀감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정자와 사당 및 비석뿐만 아니라 형제들이 남긴 문장과 저서 등도 대부분 불타버려 그들의 삶을 되새길

만한 자료가 그의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가 1702년(숙종 28)에 다시 서원(書院)을 짓고, 1775년(영조 51)에는 현재의 비석(三江祠 碑)을

세움으로써 형제들의 효행과 우애를 후세에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비문은 정암(貞庵) 민우수(閔遇洙)가 짓고,

글씨는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가 썼다. 고 적혀있다.

늘 갑질만 일삼는 선배를 기다리는 후배

밀양으로 골프치러 온 후배는 내가 배가 고플까봐서 오늘길에

빵과 쥬스, 우유를 한봉지를 사서 가져왔다...그저 고맙기만 하다

그러면서 하는 말...형님은 귀신처럼 내 위치를 다 아는가벼

내가 밀양으로 라운딩 온 걸 어떻게 알았어요 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후배 와이프가 파안대소를 한다

밀양역(19:05)

낙동강 곡창지대 교통의 중심에 있는 밀양역은 1905년 1월 1일 경부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했으며 낙동강이 흐르는 손꼽히는 곡창지대로 일찍히 철도가 들어섰으며

일제 강점기에 한차례 역사를 옮겼다고 전해진다

후배와 작별하고 밀양역에 내리면서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쉰다

역내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가서 다시 깔끔하게 씻고 역 광장으로

나와서 후배가 사준 빵과 우유, 쥬스로 허기를 면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열차를 타러 풀렛홈으로 향한다

밀양발 → 서울행 열차표

힘들게 어려운 지맥 하나를 끝내고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다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