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 된 독립군의 겨울산행...무식한 건지, 용감한 건지(?)
☞ 산행일시: 2021년 12월 18일
☞ 산행날씨: 혹한의 맑은 날씨...오후 늦게 흐리고 약간의 눈
☞ 산행거리: 도상거리 7.5km +들머리 0.65km+날머리 2,1km / 6시간 5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배티재-조망터-암봉-지맥 분기점-659.1m봉-조망바위-조망바위-안부-쉼터
오대산-y자 갈림길-안부-무명봉-안부-418.1m봉-395m봉-안부-무명봉
410m봉-무명봉-무명봉-무명봉-415m봉-갈림길-420.3m봉-395m봉-무명봉
322m봉-갈림길-안부-갈림길-태고사 삼거리-무명봉-333.0m봉-안부-무명봉
272m봉-안부-297m봉-안부-298m봉-묘지-무명봉-시멘트 임도-256m봉-고개
287m봉-안부-무명봉-293m봉-윗만복 마을-두지리 버스 정류장
☞ 소 재 지: 전북 완주군 운주면 / 충남 금산군 진산면, 논산시 벌곡면
이번주는 다음주부터 한달간 작업에 들어갈 자재를 confirm하고 고개과의 샘플을 고르느라
정신없이 한 주를 보내니 어떻게 지나간 지를 모르겠다...그러다 보니 산행 준비를 하지 못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토요일 오전에 업무를 마감하고 밀양으로 가서 1박을 하고 이른 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하여 밀양(비슬)지맥을 마치려고 했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런데 소비자가 갑자기 일정을 바꾸어 버린다...토요일 약속을 일요일로 하자는 것이다
체력적으로 엄청나게 피곤하기도 했고, 갑자기 닥쳐온 한파로 인해 날씨가 너무 추워서
이번주는 지맥길을 멈출까 하고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어나니 새벽 3시반이
조금 늦었다...멍하니 앉아 있다가 안되겠다싶어서 컴에 앉아서 이리저리 자료를 검색하다보니
서울에서 그리 멀지않은 유등(안평)지맥이 눈에 들어온다
금남정맥에서 가지를 친 6개의 정맥 가운데 하나로 이 지맥만 마치면 금강을 수계로 하는
18개의 지맥을 다 마무리하는 셈이니 이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선답자의 산행기를
대충보고, 교통편을 확인하고는 아무런 준비없이 4시 반쯤에 집을 나선다
유등(안평)지맥 개념도
신산경표상의 안평지맥(安平枝脈)은 충남 금산군과 전북 완주군의 경계를 이룬 금남정맥
배티재에서 대둔산 방향의 0.7 km 지점의 650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해서 금산군의 661봉,
오대산(643.8m), 390봉에 이르러 대광역시 서구 장안동과 금산군 복수면의 경계를 짓으면서
안평산(470.2m), 조중봉(330.8m), 명막산(330.5m), 해철이산(266m)을 지나 대전광역시 서구를
동서로 가르면서 장안봉(177m), 도솔산(207.2m), 대둔산의 끝자락인 둔지미를 지나 갑천과
유등천이 합수되는 대전광역시 서구 만년동 둔산대교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0.5 km인
산줄기를 말하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유등천의 우측 산줄기라 하여
유등지맥이라 부른다
유등(안평)지맥 서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갑천을 이루고, 동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유등천이
이루다가 대전천과 함께 대전광역시 둔산대교 부근에서 대전의 3대 하천이 갑천으로 합류되어
북쪽으로 12 km쯤 흐른후 금강에 합수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05:05)
무작정 서울역에 도착하니 05시 05분이다...날씨는 생각보다도 엄청나게 춥다.
이른 새벽의 열차라서 그런지 열차표는 많이 남아 있다
서울발 → 대전행 열차표
서울에서 출발하여 1시간도 안되어 열차는 대전역에 도착한다
대전역(06:15)
대전역사를 빠져 나오는데 아직도 주위는 어둠속이다.
역앞에 있는 김밥천국이란 집에 들려서 라면과 김밥 한줄로 아침을 해결하고
길 건너로 가서 대전서남부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탄다.
대전서남부 터미널 버스 기점(06:58)
대둔산 배티재로 가는 버스는 터미널 안에 있는것이 아니고 옆으로 돌아서 가면 버드내 아파트를
지나서 유등천 뚝방길 도로변에 일렬로 버스가 서 있다
대전서남부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 노선번호
서남부 터미널 → 대둔산 휴게소 버스 노선
이곳에서 30분 이상을 기다렸다가 대둔산 휴게소로 가는 34번 버스를 타는데
오늘이 올해 들어서 가장 추위라고 했는데 뚝방길에 서 있는데 발가락이 빠져 나갈정도로 춥다.
이곳에서 대둔산 휴게소(배티재)로 출발하는 버스는 45분마다 1대가 있는데 첫 차가 06시45분이고
2번째 차가 07시 30분, 3번째 차가 08시 15분인데 난 07시 30분 버스를 탔는데 버스에 오르니
완전히 냉동창고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춥다.
대둔산 휴게소(08:25)
서남부터미널 분기점에서 출발한 버스는 55분만에 대둔산 휴게소라고 부르는 배티재 정상에 도착한다
처음 출발할 때는 5~6명이 버스를 탔는데 이곳에서는 나혼자 내렸다.
2011년 10월 08일에 금남정맥을 하면서 이곳에 왔으니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버렸구나.
세월이 유수같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구나...버스에서 내리니 올 겨울 들어서 가장 추운 날이란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잠깐 사이에 손가락이 빠질정도의 추위지만 추운 날씨 탓인지
공기는 참으로 맑다
10년전에 있었던 무민공 황박장군 대첩비는 없어지고 새로이 조성한 모양인지 낯설기만 하다
황진장군 이치(梨峙) 대첩비
이치는 순우리말 '배티재'의 한자 이름이다.
이 배티재는 대둔산 중허리를 넘어 전북 완주군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며 전략상 중요한 곳이었다.
임진년(1592년) 7월 경상도와 충청도를 휩쓴 왜군이 군량미의 현지 보급을 위해 이 배티재를 넘어
호남평야로 진출하려 하였다. 이때 왜장 고바야가와가는 2만 병력을 이끌고 재를 넘으려 했다.
한편, 이보다 앞서 권율장군은 동복현감 황진과 1,500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이 재를 지켜 왜군의
호남진출을 막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왜군은 수의 우세함과 승승장구의 힘을 믿고 단숨에
이 재를 넘으려고 공격했지만, 장군은 전병력을 독려, 결사전을 벌여서 적을 섬멸하여 승리를 거두니,
이를 일컬어 이치대첩이라 하고, 이후 왜군의 호남 진출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이치대첩(梨峙大捷)은 행주대첩, 진주대첩보다 앞서는 임진왜란 최초의 육지에서 승리한 싸움으로
기록, 고종 3년(1866) 도원수 권공이 비와 함께 사당을 세웠으나 1944년 일제에 의해 폭파되어
1963년 이 대첩에 참여한 사람들의 후손과 지역 유지들이 지금 장소에 다시 건립하였다.
배티재(349m:08:25)
전북 완주군 운주면과 충남 금산군 진산면을 잇는 17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정상에는 이치대첩비와 금산군과 완주군의 경계를 나타내는 조형물, 주유소와 휴게소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 고개 주변에는 돌배나무가 많았는데 배나무가 많은 골짜기라는
뜻에서 이치(梨峙) 또는 이현(梨峴), 배티재라고 불리고 있으며, 이곳 배티재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장수인 고바야가와(小早川隆景)가 2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금산을
점령하고 난 다음에 전라도를 침략하려던 차에 당시 광주목사를 지냈던 권율장군의
1만5천의 향군(鄕軍)에게 야밤에 기습을 당해 대패를 하면서 그 기세가 꺽였는데
이 전공(戰功)으로 권율장군은 그 후 전라감사로 승진했다가 다시 도원수가 되었다.
배티재에는 권율장군과 황진현감의 대첩비와 전승비가 있다.
배티재에서 이곳 저곳의 사진 몇 컷을 촬영하는데 손가락이 빠져나갈 정도로 날씨가 춥다,
올 겨울 들어서 가장 춥다는 일기예보가 빈 말을 아닌듯 하다...서둘러 산행을 준비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8:35)
초반부터 빡센 오르막이다...범여에겐 이런 곳이 쥐약이다.
분기점의 정상까지는 0.6km밖에 안되는 거리이지만 300m이상의 고도를 높혀야 한다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황소걸음으로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대둔산 안내도가 나온다
데크목 계단에는 잔설이 살짝 보이는데 상당히 미끄럽다
급경사의 오르막
조망터(08:57)
등로에서 바라본 천등산(天燈山:707m)
전북 완주군 운주면의 장선리와 신북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서
대둔산의 암봉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리면서 유구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지각변동과 풍화작용으로 바위가 떨어져나가고 골이 파이고 계곡을 만들어
옥계천이 흐르게 되었고, 이 옥계천과 나란히 운주면에서 신북리와 배티재를
넘어 금산으로 빠지는 국도를 가운데 두고 북쪽이 대둔산, 남쪽이 천등산이다,
옥계천과 남쪽의 용계천으로 휘어감긴 천등산은 견훤(甄萱)이 후백제를 세우려고
천등산 기슭에 용계산성을 쌓고 적군과 싸우고 있는데, 대둔산 용굴의 용이 닭이
우는 소리를 내고, 천등산의 신이 훤한 빛을 내비쳐서 견훤이 승리한 뒤부터
하늘 천(天), 등불 등(燈)을 썼다는 설화가 있다
빡세게 올라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금남정맥 능선에 있는 인대산 너머로 지난 겨울에 걸었던 서화(장령)지맥과 갑천(식장)지맥
주위에 있었던 진악산, 월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보인다
대둔산의 암릉구간 능선이 산꾼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동쪽으로는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西臺山:904.1m)이 아련하게 보인디
지나온 배티재를 뒤돌아 본다
암봉(09:03)
암봉에 올라선 다음에 다시 안부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에는 아무도 없어서 나홀로 산행길에 늘 나의 동반자인 라디오의 음악을 들으려고
베낭에서 라디오를 찾는데 이게 뭐여...라디오와 스마트폰 보조 베터리를 집에 두고 왔구나.
안부(09:04)
대둔산 능선의 멋진 모습이 산꾼의 눈을 호강시킨다.
대둔산(大屯山:878.9m)은 전북과 충남에서 각각 1977년과 1980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케이블카와 구름다리, 삼선계단 등 시설물이 몰려있는 완주쪽 개발이 두드러져 교통이 편리하고
숙박시설이 다양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는데 완주쪽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케이블카에서 내려 구름다리와 삼선계단을 거쳐 마천대까지는 30분소요된다.
호남의 금강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대둔산은 충남 논산군과 금산군,전북 완주군 등 3개군에
걸쳐 있으며, 최고봉인 마천대를 중심으로 기암괴석들이 제각기 위용을 자랑하며 늘어서 있다.
또한 능선상으로 바랑산,월성산이 대둔산과 이어져 있으며 산행 출발지에서 왼쪽편으로 바랑산과
월성산을 이어서 산행할수 있다. 대둔산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기경의 절벽을 이루는 전북 완주쪽과 순후한 시골아낙 같은 충남 논산,금산쪽이 바로 그것이다.
등산로 역시 양쪽 지형이 상반되는 것 만큼이나 특성이 뚜렷이 구분된다.
괴목 동천 남쪽에 있는 천등산이나 마천대에서 마냥 아득하게 보이는 바랑산과 월성봉도
대둔산의 그늘에 가려서 그렇지 여유있게 산행을 즐길수 있는 산이다.
개척탑 밑의 구름다리는 두려움을 느낄때는 다리를 건너지 않고 다리 밑으로 바로 밑으로 산행을 해도 된다
빡세게 올라온 다음에 마지막 데크목 계단으로 올라가니 10년전에는 없었던 전망 쉼터가
새로 설치되어 있고, 맞은편의 대둔산은 거야말로 환상 그 자체이다
유등(안평)지맥 분기점 쉼터에서 바라본 대둔산의 모습
대둔산은 우리나라 8대 명산 중의 하나이고, 등산객들이 찾는 빈도는 100대 명산 중 6위를 점할
정도로 인기가 있는 산이다.
대둔산은 옛이름을 '한듬산'이라 했다는데, 이는 계룡산의 지세와 겨루다 패해 한이 맺힌 것이라는 뜻.
또, 순 우리말로 '크다'는 뜻의 '한'과 '덩이'라는 뜻의 '듬'을 한자화 하다보니 대둔산이 되었다고 한다.
'한이 맺힌 산'이라는 이름처럼 역사가 순탄치 않은 대둔산은 임진왜란때 대둔산 일대에서 김제군수
정담이 이끄는 의병대와 권율장군의 군대가 일본군과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조선 말기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농민군도 대둔산을 찾아 일본군에 대항하며 마지막 결사항전을 벌이다 바위벼랑에
모두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고 하는데 대둔산 마루 삼선계단 직전에 있는 '대둔산동학군최후항전지'
표지가 그 역사를 전하고 있다.
분기점에 있는 이정표
배티재에서 급경사의 능선을 올라오는데 0.6km밖에 안되는 거리를
심장에 무리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걷다가 보니 43분이나 걸렸다.
유등(안평)지맥 분기점(634m:09:18)
대둔산을 바라보면서 반대편에 있는 오대산 방향으로 향해 지맥길의 첫 발을 내딛는다
잔설이 살짝 있기는 하나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분기점에서 4분정도 걸으니 넓은 공터처럼 보이는 봉우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유등(안평)지맥에서 가장 높은 659.9m봉에 도착한다
659.9m봉(09:23)
잔설이 살짝있는 아무도 걷지 않은 이 길...내가 걷는 기분...참 좋다.
날씨는 엄청 춥지만 바람이 불지않아 조금을 걷다보니 시작때 보다는 춥다는 생각은 안든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을때는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걷지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걸어가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려니...
입석의 암릉구간을 지난다
조그만 봉우리를 지나니...조망바위가 나온다
조망바위(09:30)
조망바위를 지키고 있는 멋진 소나무
지난 2월과 3월에 걸었던 서화(장령)지맥과 갑천(식장)지맥 능선이 아련하다
맥길 좌측으로는 에딘버러C.C와 청림저수지 위로는 청림골과 우측으로 가야할 지맥 능선이 보이고
저 멀리 대전의 아파트 단지들이(하얗게 생긴 곳) 아련하게 보인다
가야할 오대산(뒷쪽 봉우리)이 보인다
서대산을 zoom in 해본다
능선 아래의 깊은 계곡에 있는 마을은 아침에 지나온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墨山里)이다.
자연마을로는 먹미, 접바우, 당디, 신촌, 을음실, 태봉골이 있으며, 서북쪽으로는 대둔산을 주봉으로
하는 산이 연이었으며 그 위쪽으로 산 높이 582m의 오대산이 한쪽을 가리는 지점에서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과 경계를 나누는 서북쪽으로 묵산리는 자리한다.
묵산리 노루골에서 발원하여 동북쪽으로 흐르는 묵산천과 또한 묵산리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감산천 그 주변에는 들이 조성되었다. 여기 들은 옛부터 인류가 정착하는 적지로 손꼽혀 왔다.
서쪽으로는 깊은 산 아래 자리한 행정저수지와 경계를 이루는가 하면 남쪽의 저지대에는 옛부터 곡
창지대로도 알려져 있다.
백제 때는 진동현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황산군에 딸린 영현에 속했었다. 그리고 이어 진례군의 영현에 속했었다.
고려 때에도 진례군의 영현 고을을 지속해 오다가 고려말기 공양왕 2년(1390)에는 전라도 고산현감이 겸직해서
다스리는 고을이 속했었다. 조선시대 초기 태조 때에는 지진주사(智珍州事)의 고을로 옥계부(玉溪府)에 속했으며
그 후 태종 12년(1412)부터는 진산군에 속했었다.
조선시대 선조 때 일어난 임진왜란 대는 묵산리에서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로 넘어가는 고개
배티재에서 권율장군이 왜군을 무찌른 이티대첩의 현장이 바로 묵산리에 있으며 수많은 의병들을
이끌고 금산 눈벌로 달려와서 왜군과 싸우다가 순국한 고경명 의병장이 넘던 고개가 바로 묵산리 배티재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진산군 서면의 지역으로서 조선시대에 이곳에서 먹을 만들었으므로 먹미 또는 멍미,
묵산이라 부르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상갑암리, 을음곡리와 신촌, 하갑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묵산리라 하고 금산군 진산면에 편입되었다.
등로가 생각보다 미끄럽다
약간의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멋진 조망처인 2번째 조망바위가 나온다
조망바위(09:38)
배티재 너머로 펼쳐지는 금남정맥 능선의 산그리메
조망바위 옆에는 국가지정번호가 표시되어 있는 이정목이 있다
미끄러운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잠시후에 오를 오대산을 바라보면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09:48)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쉼터(09:57)
쉼터 우측 아래로는 이치대첩비 가는 표시가 되어 있으나 길은 보이지 않는다
오대산 0.16km의 거리 표시가 있다...일종의 오대산 전위봉인 셈이다
좌측으로는 대둔산 능선 아래 우측 9부 능선에 태고사가 보인다
2011년 10월 8일에 금남정맥 걸을 때 태고사에 들렸던 기억이 아련하다
태고사(太古寺)태고사는 신라 신문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원효대사가 12승지의 하나로
꼽은 명당으로 한때는 대웅전만 72칸에 이르는 웅장한 규모의 사찰이었고, 인도산(印度産) 향근목으로
만든 불상이 봉안되었으나, 6.25때 소실되었고 최근에 복원한 대웅전, 무량수전, 관음전 등의 여러
전각들이 있으며 이 태고사를 끼고 낙조대를 오르면 대둔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금강산의 마하연사와 동렬의 명찰(名刹)로 서산대사의 법손인 진묵대사가 오랫동안 수도하다가
입적하였으며 많은 고승 대덕을 배출한 사찰로 우암 송 시열이 이곳에서 도를 닦으며 쓴 석문이
절 앞 암벽에 아직도 남아있다
태고사는 원효대사가 이 절터를 발견하고 좋아서 3일 밤낮을 춤췄다는 명당이다.
만해 한용운도 태고사를 보지 않고 천하의 승지(勝地: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곳)를 논하지 말라고
했다는 곳이다...2011년 10월 8일 금남정맥 4구간 때의 사진
태고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태고사에 묵고 있던 원효대사가 하루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니,
중국의 한 절에 불상사가 날 것이라는 괘가 나와서 널판지에 '척판구중'
즉 널판을 던져 사람들을 구한다라고 적어서 중국을 바라보고 던졌다고 한다.
중국의 한 절에는 나이 어린 동승 한 명이 화장실에 앉아 변을 보다가 하늘을 보니,
커다란 황금덩어리가 하늘에서 절 쪽을 향해서 날아오는 것을 보고 소리를 쳤다.
동승의 소리에 놀 란 사람들이 밖으로 모두 뛰어 나오자
절 뒤에 있는 산이 무너져내려 절을 덮쳐버렸다.
놀 란 사람들이 황금이 떨어진 곳으로 달려가 보니 황금은 없고,
널빤지에는 동방의 원효가 널 을 던져서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고 적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오대산에 도착하니 대둔산도립공원 안내판이 있으나 빛이 바래서 아무것도 안보인다
오대산 정상에 도착한다
오대산(五臺山:643.8m:10:00)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와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조그만한 돌탑과 등산 안내도, 구조이정표와 이정표가 있는데 정상석은 없고 이정표에다가
오대산이라는 표시를 해놨다.
『여지도서』(진산)에 "오대산은 인대봉(仁大峯)에서 온 줄기인데 군 서쪽 10리에 있다."고 하여 관련
기록을 확인할 수 있으며,산봉우리가 마치 다섯 개의 루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는1757년(영조33년)~1765년 전국 각 군현(郡縣)에서 편찬한 읍(邑誌)를 모아
엮은 전국 지리지(地理誌)로 한국교회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55책. 295개 읍지(邑誌)와 17개 영지(營誌), 1개 진지(鎭誌)로 구성되어 있으며, 39개 군현 읍지와
6개 영지가 누락되어 있다.
오대산에서 내려다 본 금산군 진산면(珍山面)의 모습...앞에 보이는 높은산이 충남제1봉인 서대산이다
진산면(珍山面)은 동쪽으로 월봉산(月峰山)· 월봉재· 소라니재· 숯고개에 의하여 금성면(錦城面)·
복수면(福壽面), 남쪽으로 열두봉재와 구릉에 의하여 남이면(南二面), 서쪽으로 대둔산·배티재[梨峙]로
전북 완주군, 북쪽으로 안평산(安平山)·숯고개로 복수면과 접한다.
유등천(柳等川)의 상류부에 있어 평야가 거의 없으며, 주요산물은 보리·호박·누에고치·감 등이며,
석회석광산이 있으며 면의 중부를 국도가 동서로 가로질러 대전·전주와 연결된다. 면의 서부에 있는
대둔산은 한국 8경의 하나로 꼽혀 온 명산으로 경치가 아름답다.
문화재로는 진산향교(충남기념물 122), 금산 이치대첩지(梨峙大捷址:충남기념물 154),
태고사 대웅전(太古寺大雄殿:충남문화재자료 27), 만악리(晩樂里) 지석묘, 묵산리(墨山里) 성터 등이 있다.
진산이란 명칭은 『세종실록지리지』(진산)에 "본래 백제의 진동현(珍同縣)이었는데 신라 때 황산군의
영현(領縣:고려시대 지방제도에서 속현을 거느리는 군현 일반을 가리키는 용어)으로 삼았다.
고려에서는 진례현의 임내로 하였다가 공양왕 2년 경오(1390)에 고산 감무로써 겸임하게 하였다.
본조 태조 2년(1393) 계유에 태조의 태실(胎室)을 봉안하였으므로 지진주사(知珍州事)로 승격하였으며,
태종 13년 계사(1413)에 예에 의하여 진산군으로 고쳤다. 별호를 옥계(玉溪)라고도 한다."고 하여
처음으로 확인된다.
맥길은 행정주차장 방향으로 향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 음지에다 잔설, 등로가 얼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아주 천천히 한발한발 천천히 내려간다...엄청나게 추운 날씨이나 공기는 상쾌하다
좌측을 바라보니 태고사 뒷쪽으로 대둔산 낙조대가 보인다
낙조대(落照臺:859m)는 정상에서 해질 무렵 서해 수평선상으로 지는 해를 볼 수 있다하여
낙조대(落照臺)라 하였다.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일출일몰의 경관은 일대장관이다.
또한 신라 신문왕 원년(681)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태고사의 위치를 정했다고 한다.
대둔산 낙조대 아래에 있는 태고사는 신라 신문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고,
고려시대 태고화상이 중창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진묵대사가 재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유일하게 만난 등산객...아마 대둔산쪽으로 가시는 모양이다
미끄러운 등로를 힘들게 내려오니 묘지를 이장한 듯한 공터가 나온다
능선으로 내려선다
이정표가 나오고 좌측으로는 행정주차장으로 가는 길이다
조금 내려오니 y자 갈림길이 나오고...
y자 갈림길(10:15)
좌측의 행정주차장 방향은 길이 좋으나 우측의 맥길은 등로는 뚜렸하나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알바할 일은 없겠다...우측으로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많이 보인다
등로가 엄청 미끄러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안부(10:30)
무명봉(10:32)
안부(10:35)
조금전에 지나온 오대산을 뒤돌아 본다...북사면은 음지에 급경사에 등로가 얼어있어 애를 먹었다
안부를 지나서 곧바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418.1m봉(10:40)
완만한 능선을 지나서 무명봉으로 올라간다
395m봉(10:44)
다시 내리막길... 오대산을 지나면서 계속되는 오르내림...빨래판 구간을 연상케 한다
안부(10:48)
안부에는 마구 파헤쳐 있는 묘지가 있다
안부를 지나면서 키가 큰 소나무를 만나고...
또다시 완만한 능선으로 내려선다
무명봉(10:50)
다시 오르막길
410m봉(10:55)
이곳은 양지라서 잔설은 없으나 낙엽이 무릎까지 차오를 정도로 푹신하게 쌓여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대둔산의 끝자락이 보이고 그 아래는 에딘버러C.C가 보이는데
이 추운 날씨에도 라운딩을 하는 골퍼들이 간간히 보인다
등로 우측으로는 금산군 진산면 읍내리 심방골이 보인다
읍내 서북쪽으로 자리한 마을을 심방골이라고 부르는데 오대산을 서북쪽에 두고 있는 산골마을이다.
진산면에 있는 읍내리(邑內里)는 자연부락으로 방축리, 다리골, 심방골, 장터, 읍내가 있다
진산면의 행정적 중심지로 사면을 산으로 가렸으나 그 산 안쪽으로 넓게 펼쳐진 진산분지의 남동쪽
한편에 읍내리는 위치하며 돌로 쌓은 산성이 오랜 고적으로 손꼽힌다. 구전에 따르면 백제시대 초기
근초고왕 때 쌓은 산성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나 확실치 않다.
인류의 정착은 백제 이전부터 이며, 백제 때는 진동현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황산군에 딸린 영현에 속했었다.
그리고 이어 진례군의 영현에 속했었다.
현재 읍내리의 풍속에 따르면 매년 정월달에 거리제를 지낸다.
그 거리제의 전통적 유래로 보아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 지역을 지나는 길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유숙하고 지나갔다는 지역임을 알 수 있으며, 일찍부터 이 지역에 장터가 개장되었던 것도 알 수가 있다.
무명봉(10:59)
반갑습니다
무명봉(11:03)
지나온 분기점과 오대산에 빛내림이 시작된다
무명봉(11:06)
우측으로 내려가는데 아침에 조용하던 바람이 강하게 불어대기 시작한다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에디버러 C.C 뒷쪽으로 보이는 대둔산 낙조대의 모습
415m봉(11:10)
에디버러C.C의 모습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갈림길(11:12)
좌측으로 청림저수지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금산군 진산면 행정리의 모습
앞에 보이는 저수지가 청림저수지인데 지도상에는 행정저수지라 표기가 되어있다
고도차가 없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걷는다
넓어진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간다
조금전에 걸었던 능선을 뒤돌아 본다
맨 좌측이 오대산이고 가운데가 분기점...우측이 대둔산 능선이다
뭔 공사를 하는 모양이다
420.3m봉(11:20)
선다자의 산행기에 등장하지 않는 이정표가 보이고, 준희선생의 산패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울음실 이정표가 있는 뒷쪽으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에 있는 울음실 마을은 먹미 북쪽에 있는 마을을 을음실 또는 을음곡이라고 부른다.
마을 양편으로 산을 끼고 중심부를 흐르는 냇물과 들을 안은 채 양편으로 마을이 자리했었다.
김해김씨(金海金氏)들이 많이 세거하던 마을로 마을에 얼음같이 찬 물이 나오는 샘이 있으므로
어름실이라고 부르다가 변하여 을음실, 을음곡이라고 부른다.
바람은 점점 강해지고...
음지에다 낙엽 아래의 땅이 얼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능선을 따라서 내려가는데 음지쪽의 내리막길은 등로가 많이 얼어있다.
다시 약간의 오르막길
395m봉(11:25)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살짝 좌측으로...
안부를 지나서...
다시 오르막길
무명봉(11:35)
간간히 갈길 바쁜 고사목이 시비(?)를 걸기도 한다
322m봉(11:42)
갈림길(11:50)
안부(11:52)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갈림길(11:55)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우측의 등로가 없는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갈림길에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는 곳으로 무심코 내려서다 얼어있는 등로에서 된통 넘어진다
안부로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걸려있으나 등로는 희미하다
대둔산도립공원 노란말뚝이 보이는데 오룩스맵에서 경로이탈 경고음이 울린다.
좌측 능선으로 가야하는데 선답자의 띠지가 있어서 무심코 내려왔더니만
등로를 살짝 벗어났다... 그냥 내려간다
묘지가 보이고 아래로 내려서니 버스정류장이 있는 태고사 삼거리가 나온다.
태고사 삼거리(12:00)
청림골 가는길 표시쪽으로 내려왔어야 했는데...
청림골(靑林谷)마을은 마을 주변에 푸른 숲이 많이 우거져 있다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태고사 삼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
배티재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등로가 얼어있어 엄청나게 미끄러웠고, 무수한 잔봉들이
많은 빨래판의 등로라 체력소모도 많고, 컨디션 난조로 인해 예상 시간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렸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니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해서 베낭 무게를
줄이려고 점심을 준비하지 않아서 안평가든이라는 곳으로 가서 식사를 들어하니
이곳은 주변의 공장 직원들의 식사를 전문적으로 하는지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식사를 하고있고,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도 어느 누구 아는척도 안한다.
메뉴판을 보고 마땅하게 먹을게 없어 서빙하는 여인에게 잔치국수 한그릇만 달라고 하니
1인분은 안된다고 한다...이런...내가 돼지냐?...2인분을 어떻게 다 먹느냐?
결국은 팔지 않겠다는 뜻이겠지...그냥 식당을 나온다
간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가는데까지 가보기로 한다
전원주택 도로로 올라 가는데 주차장이 나온다.
추위도 피할겸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가져온 초코파이 2개와 두유로 점심을 대신하고
넉넉한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12:05~35)
잠시후에 오를 333.0m봉을 바라보면서 다시 길을 떠난다
전원주택 도로가 끝나고...좌측의 절개지로 올라간다
등로는 전혀없고 잡목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으면서 올라간다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니 태양광 시설이 보인다
태양광 시설이 있는 좌측의 급경사 능선으로 올라간다
조금전에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
코가 땅에 닿을만큼 급경사...양지라 등로는 얼지 않았으나 낙엽으로 인해 상당히 미끄럽다
무명봉(12:52)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안부로 내려서면서 우측을 보니 분기점에서 오대산과 지나온 능선이 한 눈에 보이고
태고사로 이어지는 도로 위에는 청림골에는 청림저수지가 자리를 잡고 있고 그 윗쪽으로는
에디버러C.C가 보이는데 청림저수지를 지도상에는 행정저수지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금산군 진산면에 있는 행정리(杏亭里)는 대부분의 지대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남쪽으로 도산천이 흐르고 있는데 그 주변에 살구정들, 장승백이들이 펼쳐져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행정, 청림골, 도롱골 마을 등이 있다. 행정 마을은 살구나무 정자가 있어 살구정이, 살구쟁이라 불리다
후에 행정 마을이라 개칭되었으며, 청림골 마을은 마을 주변에 푸른 숲이 많이 우거져 있다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도롱골 마을은 도릉곡 골짜기 아래에 마을이 위치한다 해서 도롱골 마을이라 불린다.
전원주택지를 만들고 난 후 원상복구한답시고 심어논 소나무들이 보인다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오후가 되었는데도 추위가 풀릴 기미가 안보인다.
추운 날씨 탓인지 카메라 베터리가 방전이 되어 버려서 새로운 베터리로 교체한다
333.0m봉(13:00)
333.0m봉을 내려서면 직진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맥길은 등로가 잘 안 보이는
좌측의 급경사로 내려서야 한다...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지니 선답자의 시그널 몇개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등로 나뭇가지로 바라본 금산군 진산면 두지리의 모습
급경사의 내리막 등로는 음지라 얼어있고 낙엽이 쌓여서 상당히 미끄럽다.
스틱으로 몸의 중심을 잡으면서 내려가다가 미끄러지면서 급한김에 나뭇가지를
잡았는데 나뭇가지가 얼었는지 뿌러지면서 20여m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다행히 베낭으로 인해 크게 다치지는 않았고, 일어서려니 허리에 통증이 심하다.
안부의 양지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안부(13:20)
무명봉(13:25)
완만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에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272m봉(13:30)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갑자기 나타난 벌목지
올라가야 할 봉우리가 까칠하게 보인다
안부(13:35)
코가 땅에 닿을만큼 급경사의 오르막길...낙엽으로 인해 한발 올면 두발 미끄러지고 미치겠다.
이곳에서 체력이 엄청나게 소진되는 느낌이다
급경사의 오르막길에 숨한번 쉬면서 바라본 서대산의 모습
아주 힘들게 능선으로 올라서서 좌측의 봉우리로 올라간다
297m봉(13:48)
이곳에서도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우측으로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고 넓은 등로가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금산군 진산면 행정리 도롱골 마을의 모습
도릉곡이라고 부르는 골짜기 아리에 마을이 있으므로 그 골짜기에 연유하여 도롱골,
도릉동이라고 부르며, 옥천전씨(沃川全氏)가 일찍부터 정착하여 뒤에 집성촌을 이룩했던 마을이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등로가 잘 안보인다
안부(13:53)
298m봉(13:55)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묘지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에디버러C.C가 보이고 그 윗쪽으로는 대둔산 줄기의 낙조대인듯 한데
미세먼지에 갇혀 버렸다...아침에 추워서 깨끗하던 날씨가 오후부터는 미세먼지가 생긴다
묘지(13:57)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자작나무 조림지가 보인다
안부를 지나고...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4:00)
무명봉에서 좌측의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갑자기 좋아진 등로
등로 아래로는 시멘트 도로가 보인다
시멘트 도로(14:05)
금산군 진산면 행정리 도롱골에서 두지리 진밭들로 넘어가는 도로이다
저 앞에 보이는 능선이 지맥길이다.
시멘트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니 묘지가 나오고...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256m봉(14:12)
희미한 등로로 내려서니...
이내 뚜렸한 등로가 나타난다
고개(14:17)
계속되는 빨래판 구간...오르막으로 올라간다
287m봉(14:20)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 가운데 묘지가 보이고...
안부(14:28)
안부에서 오르막길로 오르는데 우측으로 사면길이 보인다
무명봉(14:33)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에는 마구 파헤쳐져 있는 묘지가 보인다
다시 빡센 오르막길...이제는 배가 고파서 걷기가 힘이든다.
베낭을 내려놓고 캔 콜라하나에 육포, 초코파이 하나로 허기를 면하고
베낭을 베개삼아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한참동안 휴식을 취한다.
길 위에서의 생각 /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빡센 오르막길
293m봉(14:50)
아주 급경사의 내리막길...조금전에 된통 넘어진 학습효과(?)로 인해 조심스레 내려간다
위험 구간(?)을 통과해서 내려서니...
윗만복 마을이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논산시 벌곡면 만복리 윗만복 마을의 모습
만복리(晩木里)는 높은 산 좁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만목골 또는 만목이라 하였다.
마을이 하천 사이에 골짜기에 껴있는 지형에 자리잡았는데 자연마을은 독뱅이, 만목, 망월, 바랑골,
위만목, 아랫만목 등이 있다. 독뱅이는 바랑골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윗만복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선다
윗만복 마을의 감나무...까치밥으로 남겨둔 감이 몇개가 보이는데 정겹다
윗만복 마을(15:00)
추운 날씨에 핸드폰 보조 베터리를 가져오지 않아서 베터리 잔량이 18%밖에 남지
않았고, 추운 날씨에 컨디션 난조로 인하여 더 이상 산행이 불가능할 것 같아 이곳에서
산행을 접기로 한다...여기서 접으니 다음 구간의 산행이 길어질 것 같아서 문제가
될 것 같다...원래 계획은 질울재까지 가려고 했는데 모든게 어긋나 버렸다.
산이야 늘 거기 있는데 안되면 한 구간 더 하지 뭐...過猶不及은 하지 말자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有備無患이 뭔가를 배운다.
준비없이 무작정 떠난 산행의 혹독한 댓가를 치른 하루였다
다음 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하고...
맥길은 황토색 기와집 뒷쪽으로 올라가야 한 다음에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논산으로 가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니 이곳에서 17시 25분에 출발하여
18시 15분에 논산에 도착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금산쪽으로 가야겠다
윗만복 마을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금산군 진산면 두지리 쪽으로 내려간다
진밭들 마을 쪽으로 내려간다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면서 금방이라도 눈이 올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두지리 진밭들 마을 가운데로 통과한다.
금산군 진산면 두지리 두지골 서북쪽으로 남쪽에 들을 안고 자리한 마을을 진밭들이라고 부른다.
마을 서쪽과 서남쪽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가는 냇물의 주변에 들이 조성되어 있으며 북쪽으로
산을 안고 자리해 있는 마을로 마을과 그 주변에 긴 밭이 많이 있으므로 긴밭들이라고 부르다가
변하여 진밭들이라고 부르며 장전(長田), 장전리라고도 부른다.
헐~~~버스가 다니는 도로까지 내려 가려면 아직도 1.2km나 남았다
인증샷?
금산군 진산면 두지리(斗芝里)의 모습
두지는 맑은 냇물과 들새가 요동을 하는 지역이므로 옛날부터 신선객이 산수를 즐기기 위해 많이
모였던 지역이기도 한 곳으로 인류의 정착은 백제 건국 전후로 보며, 이곳에 정착한 세거인 들은
대개가 조선시대 초기부터 그 후에 사화나 정변에 따라 부득이 은거해야 했던 처지의 사람들로서
그들이 조상임을 지금도 역력히 자랑하는 피난의 완충지대이다.
백제 때는 진동현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처음에 황산군에 딸린 영현에 속했으나 행정적 영향은
당시 까지도 그리 받지 않았던 지역으로 사료되며 고려 때에도 진례군의 영현 고을을 지속해 오다가
고려말기 공양왕 2년(1390)에는 전라도 고산현감이 겸직하는 진동고을에 속했었다.
조선시대 초기 태조 2년(1393)에는 태조의 태를 만인산에 봉안함에 따라 지진주사(智珍州事)의 고을로
옥계부(玉溪府)에 속했으며 그 후 조선시대 제3대의 왕인 태종 12년(1412)부터는 진산군에 속했었다.
동북쪽으로 논산군과 경계를 하고 있는 두지리는 서두에서 밝힌대로 조선시대 초기부터 명문들의 후예가
안착하여 차츰 부락이 형성해간 것으로 전해온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진산군 서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에 마치 두지처럼 생긴 마을이 있으므로 두지골,
두지동이라고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방현리, 장전리, 우동과 하갑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두지리라 하고 금산군 진산면에 편입되었다.
목헌고건축 창호를 지나서 버스가 다니는 도로명 주소 실학로에 도착한다
두지리 버스 정류장(15:35)
버스 정류장에서 베낭을 정리하고 지나가는 차량들을 상대로 앵벌이를 한다.
이곳은 2차선의 도로이나 교통량이 상당히 많은 곳으로 도로가 굽은 곳이다 보니
아무도 차를 세워주질 않는다...1시간 가량을 히치를 했으나 실패하고 버스가 오길 기다린다
저 멀리 대둔산에서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이곳은 간간이 눈발이 날리지만 큰 눈은 아니다.
윗만복 마을에서 산행을 종료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1시간 25분을 기다린 끝인 17시에 대전서남부 터미널로 향하는 81번 버스가
도착하여 버스를 탔는데 너무 추워 발가락이 얼었는지 감각이 없다
대전 서남부터미널(17:40)
터미널 뚝방길에 도착하여 지나가는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좀처럼 택시가 잡히질 않는다.
행여 빈 택시라 불이 켜있는 택시들도 세우지 않고 다들 그냥 지나가 버린다
대전 지역을 산행하면서 대전 택시에 대한 추억은 이래저래 좋지 않은 감정만 가지고 간다.
걸어가면서 택시를 잡으려고 하다보니 버스 정류장까지 왔다.
이곳에서 서대전역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냐고 하니까...3정거장만 가면 된다고 한다
곧이어 오는 버스를 타고 서대전역으로 향한다
서대전역(18:12)
요즘 열차 안에서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하게 하여 배에서 쪼르록 소리가 난다
영등포역에 도착하여 편의점에서 도시락 하나를 사먹고 집으로 향하는데
오늘 낮에 서울은 눈이 많이 온 모양이다...거리가 온통 하얗게 눈이 덮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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