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태화 북(삼태)지맥(終)

태화 북(삼태)지맥 제1구간 -분기점에서 기령삼거리까지

by 범여(梵如) 2022. 1. 3.

☞ 산행일시: 2022년 01월 02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약간의 미세먼지...차가운 바람

 산행거리: 도상거리 15.2km + 들머리 0.6 km / 6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토함산 솔밭가든-이동통신탑-경주이공 묘-분기점-폐산불감시초소-경풍루

                 갈림길-이동통신탑-조양산-568.9m봉-무명봉-NO42송전탑-안부사거리-김해김공 묘

                 NO31/106송전탑-안부-갈림길-개곡리 갈림길-562.2m봉-묘지-무명봉-362.2m봉

                 NO33송전탑-무명봉-506.6m봉-청안이공 묘-갈림길-외동고개-안동권공 묘-고개

                 안부-밀양박공 묘-무명봉-522.6m봉-526.1m봉-NO39/32송전탑-650.2m봉

                 용암마을 갈림길-갈림길-산불감시초소-안부-질매재-쉼터-646.8m봉-쉼터

                 갈림길-삼태봉?-양암면갈림길-원원사갈림길-쉼터-삼태봉-안부-리조트갈림길

                 청주한공 묘-무명봉-608.1m봉-갈림길-조망봉-무명봉-조망처-갈림길-안부-갈림길

                 583.5m봉-무명봉-관문성-기령-제주고공 묘-기령삼거리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구 지명:양북면), 양남면, 외동읍 / 울산광역시 북구 매곡동

 

또 한해가 지나가는구나...가야할 지맥길이 아직도 많이 세월만 무심히 흘러간다.

가는 세월 막을수가 있나 순리대로 살아야제...辛丑年이 지나고 壬寅年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코로난가 오미크론인가 하는 역병에서 벗어나 마스크 벗고 편하게 살면서

보고싶은 형제들과 지인,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하면서 만날 날이 있을라나...

 

각설하고 지난주에 너무 추워서 산엘 가지 못했더니만 1주일내내 몸뚱아리가 말을 안듣는다.

수술후 예전과는 달리 몸뚱아리는 추위에 너무나 취약한 느낌이고 자꾸만 겁이난다.

그렇다고 산에 가지 않으면 삶이 무력해지는 느낌이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 지 모르겠다.

이번주에는 덕유산쪽의 설경이 눈에 아른거려 12년전 맨처음 백두대간에 발을 들여 놓았던

무령고개에서 육십령 구간을 걸어보려 했는데 이번주 토.일요일에는 장수지역에는

한파 특보가 예보되어 영 자신이 없다...하는 수 없이 추위가 덜한 태화 북(삼태)지맥 첫 구간을

가기로 하고 스마트폰에 지도를 다운 받아놓고,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훓어본 다음에 일찍

잠자리에 든다

 

태화 북(삼태)지맥 개념도

태화 북(삼태)지맥은 호미기맥의 토함산 남쪽 5.9km 지점의 토함산목장 부근의 456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해서 경주의 삼태봉(630.5m), 울산의 동대산(444.8m), 무룡산(450.7m) 지나,

31번 국도가 지나가는 정자고개로 내려 앉았다가  다시 마골산(297m), 염포산(203m),

망계산(85m)을 지나 울산의 현대중공업 제2공장 화암문 안쪽에 위치한 화암추 등대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0.5 km인데, 박성태 선생이 저술한 신산경표에서는 이 산줄기 중에서

가장 높은 삼태봉의 이름을 따 삼태지맥(三台枝脈)으로 명명되었다.

그러나 산줄기를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태화강의 우측 산줄기라 태화 북지맥이라 부른다

 

호미기맥과 더불어 태화강의 북동쪽 울타리를 치면서 태화강의 하류에서, 역시 낙동정맥

정족산에서 갈래친 남암(태화 남)지맥의 끝과 마주한다. 호미기맥에서 분기해서 큰 굴곡없이 곧장

남쪽으로 내리 뻗는데 대부분의 마루금 따라 임도가 함께간다.

염포산을 전후한 구간은 울산시민들과 함께하는 공원길을 걷게되고, 마지막 방어진의

봉화재 아스팔트 도로 이후 꽃바위길은 도심지를 통과하게 되나 불과 1시간 이내의 짧은 거리다.

애석한 일은 산줄기가 물과 만나는 끝점이 현대중공업 회사 영역내라 물가에 내려설 수 없다는 점이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04:50)

어제 신정이라고 딸내외가 집으로 인사를 와서 같이 밥 을먹고 하루종일 집에 있다가

아이들 가는거 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잠에서 깨어나 새벽 3시쯤이다.

가족들 몰래 살금살금 일어나서 베낭을 챙겨놓고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에 새벽 03시 50분에

집을 나와 04시 05분에 서울역으로 향하는 첫 버스를 타러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새벽이라서 그런지 날씨는 엄청나게 춥다...손님이 없는 탓인지 조금 일찍 서울역에 도착한다 

서울발 → 신경주행 열차표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바람에 15% 할인을 받았다

서울역 대합실도 이른 새벽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춥다.

조금을 기다렸다가 신경주로 가는 열차를 타러간다

16호 열차의 객실에는 나혼자 밖에 없다.

열차가 출발하자마자 늘 습관처럼 깊은잠에 빠졌다가 동대구역을 지날 즈음에 잠에서 깨어난다

경주역에 도착하여 대합실을 빠져 나온다

신경주역 열차 시간표

신경주역(07:15)

ktx와 srt 고속 열차가 정차하는 신경주역은 허허벌판에 있다.

그런 관계로 이른 아침에 음료수 한잔도 먹을 수 있는 편의시설 하나 없으니

불편하기가 그지없다...역을 빠져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경주도 춥기는 마찬가지이다

이곳에서 07시 30분에 처음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경주시내로 향한다

경주역 앞에 있는 경주성동시장(07:58~08:30)

구 경주역앞에 내리니 도로 맞은편에 경주성동시장이 있다.

시장안으로 들어가니 국밥집이 있어서 이곳에서  국밥 한그릇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택시를 타고 태화 북(삼태)지맥의 분기점 아래에 있는 토함산솔밭가든 입구로 향한다 

토함산솔밭가든 입구(09:00)

구 경주역 앞에서 이곳까지 택시로 30분 가량 걸렸으며 요금은 26,000원이 나왔다.

2012년 10월 7일 호미(형남)기맥 3구간때 이곳을 걸었으니 10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산행을 시작하다(09:10)

앞에 보이는 저 집이 토함산솔밭가든이고, 좌측 아랫쪽이 토함산 목장인데 소는 보이지 않는구나.

솔밭가든 우측의 묘지쪽으로 올라간다

이동통신탑(09:12)

폐건물처럼 보이는 이동신탑 좌측으로 향한다

철없는 넘...춥겠다.

좌측 아랫쪽에 있는 토함산솔밭가든을 바라보면서 내리막 안부로 내려간다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묘지가 나온다

처사경주이공 묘(09:15)

안부를 지나서...

태화 북(삼태)지맥 분기점인 능선으로 올라간다

태화 북(삼태)지맥 분기봉(462m:09:18)

분기봉 정상에 올라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 서너개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이곳에서 준.희선생의 분기점 산패를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분기점 산패 찿기를 포기하고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그 아래로 토함산목장이 보인다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토함산솔밭가든 좌측에서 올라오는 도로를 만난다

도로로 내려서니 도로 우측의 소나무에 분기점 산패가 이곳에 걸려있다.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도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잡목을 헤치고 올라선다.

능선에 올라서서 만난 이동통신탑과 풍력발전기...폐허처럼 생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가 나온다.

폐산불감시초소(487m:09:30)

이곳에서 반가운 비실이부부님의 시그널을 만난다

폐초소를 지나 절개지의 능선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도로 아래의 계곡 아래의 하얀 건물이 이 정권 들어서 홀대(?)를 받고있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가 보인다...이 정권은 국익이 뭔지를 잘모르는 듯 하다

절개지에서 도로로 내려선다

잠시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옛도로로 들어간다

능선으로 올라간다.

조림지로 올라서면서 뒤돌아보니 바로 아래에 토함산 목장이 보이고

그 너머로 10여년 전에 걸었던 석굴암을 품고있는 토함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조림지를 지나서 임도로 내려간다

조금전에 헤어진 도로로 복귀한다...경주풍력 발전단지로 이어지는 이 도로명의 주소가 불국로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지 풍력발전기들이 열심히 돌아간다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니 넓은 주차장과 팔각정이 있는 광장이 나온다

경풍루(慶風樓:09:52)

넓은 광장에 올라서니 경풍루란 팔각정이 있고 조망은 뛰어나다

경풍루에서 바라본 토함산(吐含山)과 우측으로는 10년전에 걸었던 호미기맥 능선이 보인다.

토함산(吐含山:745.8m)은 경주시 보덕동과 불국동 문무대왕면(구 지명:양북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불국사와 석굴암을 품고 있으며 경주지역에서는 단석산(斷石山:827m)에 이어 2번째로 높은 

경주의 진산이다.

 

토함산은 신라 고찰의 대명사인 불국사와 불교문화의 정수라 일컫는 석굴암이 있는 경주국립공원의

대표적인 곳으로 학창 시절 수학여행이던 어떤 경로로 한 번 정도는 가본 곳 중의 하나이다.

토함산은 신라 때 5악의 하나인 동악(東岳)이라 하였으며 산중에 금 · 은 · 진주 등 일곱 가지 보배로운

것이 묻혀있다고 하여 칠보산(七寶山)이라고도 하였다. 이 산은 특히 신라 제4대 임금인 석탈해(昔脫解)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삼국유사>에서는 토함산을 토해(吐解)로 쓰고 있으며 태종무열왕의 꿈에 탈해왕이 나타나 "내 형상을

조각하여 동악에 세우고 산신으로 모시라"라고 하여 사당을 세워 지성으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토함산의 정상을 나타내는 표지석 옆에 삼국유사에도 기록이 있는 석탈해 사당 유적지가 있다.

이런 사실들은 토함산이 탈해왕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토함산은 신라 4대 왕인 석탈해와 관련이 많은 산이고 지명 또한 그와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또 한편 토함산이라는 지명은 다소 현대적인 해석으로 자연현상에서 찾는다.

토함산은 바다 가까이에 위치하기 때문에 안개가 자주 낀다.

산이 바다 쪽에서 밀려오는 안개를 들이마시고 토해내는 모습을 표현하여 토함산(吐含山)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정말로 동해의 습기와 바람은 변화무쌍하여 지척을 분별 못할 안개가 눈앞을 가리는가 하면 어느 사이에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여 잇단 봉우리와 소나무 숲이 한 폭의 동양화를 이룬다. 동해의 잔잔한 수평선 위로

해가 가득 떠오르고 붉은 태양이 토함산을 넘어갈 때 우리는 문득 '토함'의 진의를 깨닫는다.

 

*신라오악(新羅五嶽)이란 신라시대 국가의 제사(祭祀) 대상이 되었던 다섯 산악(山嶽)으로

동악(東岳)-토함산, 서악(西岳)-계룡산, 남악(南岳)-지리산, 북악(北岳)-태백산, 중악(中岳)-팔공산이다

경풍루에서 바라본 조항산과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모습

경주풍력발전 안내도

넓은 광장에 서 있으니 이곳이 남쪽이라 날씨는 그리 춥지 않으나 바람이 드세다

카메라 셋트 누르는 잠깐 사이에 손이 너무 시려서 서둘러 길을 떠난다.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좌측에는 경주풍력발전 관리동이 있다.

도로 아래에 있는 경주풍력발전 시설물

갈림길(09:55)

지맥길은 도로 우측의 입실방향으로 이어진다

지맥길 좌측에 있는 풍력발전 시설물의 모습

갈림길에서 올라서니 다시 갈림길이 있고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도로에서 바라본 지맥길에서 떨어져 있는 조항산의 모습

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이동통신탑(10:03)

계속해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등로 좌측에는 한전 TRS 이동중계국이 보인다

넓은 공터에 Y자 갈림길이 나오고 가운데 조양산 정상석이 나온다.

좌측으로는 조항산과 형제봉으로 가는 길이고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조양산(562.2m:10:05)

경주시 양남면 효동리와 외동읍 개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도상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는

곳에서 경주 개곡산악회에서 설치한 조양산 표시석이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는 경주시 문무대왕면(구 지명:양북면) 죽전리에 비슷한 지명인 조항산(鳥項山:596.2m)이

있어 약간은 헷갈린다...조항산은 죽전리 새목(鳥項:새의 목덜미)마을의 지명에서 따왔다고 할 수 있으나

조양산은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조양산 정상석 뒷쪽으로 올라간 다음에...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뚜렸한 등로로 내려서니 최근에 포장한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자마자 약간 휘어지는 도로에서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잡목의 저항이 심하다

잡목의 저항을 피해서 우측 임도로 올라간다

송전탑을 설치하면서 만든 임도인 듯 하다

능선으로 올라서서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568.9m봉(10:12)

등로는 뚜렸하다

전봇대를 따라서 가는데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무명봉(10:15)

송전탑을 바라보면서 내려간다

NO42 송전탑(10:17)

안부사거리(10:18)

안부 사거리에서 직진의 임도로 따라간다

김해김공 묘(10:19)

김해김공 묘를 지나고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NO31/NO106 송전탑(10:20)

좌측의 묘지를 바라보면서...

 우측의 임도로 내려간다

안부(10:24)

안부에서 우측으로 바라보니 지나온 풍력발전기 너머로 토함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갈림길(10:26)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주위에는 송전탑이 많이 보이고 임도는 거미줄처럼  이어진다

개곡리 갈림길(10:28)

우측으로는 경주시 외동읍 개곡리로 내려가는 임도가 보인다

완만한 임도에 걸려있는 준.희 선생의 격려문...감사합니다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가는데 묘비명이 없는 묘지 2기가 나온다.

묘지 뒷쪽으로 가니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어지럽게 바람에 휘날리고 있고

삼각점이 있는 562.2m보이 보인다

562.2m봉(10:30)

준.희선생의 산패가 있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예전의 산행기를 보면 “삼각점봉”이라고 했는데 산패가 바뀐 모양이다.

진달래 군락지에 갇혀버린 삼각점

562.2m봉 정상 삼각점(△울산303/1995재설)

묘지 아래로 되돌아와서... 

직진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잠깐 동안에 맥길은 거칠어진다

안부를 지나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묘지(10:38)

등로에서 바라본 경주시 외동읍 개곡리의 모습

개곡리(開谷里)는 조양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로 고도가 낮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는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동쪽에 성지, 북쪽에 사곡지가 분포해 있어 수원은 풍부한 지역으로 자연마을로는 개곡 마을 등이 있다.

개곡 마을은 오절이라는 이와 견천지라는 이가 약 660년 전에 개척한 마을로 처음에 개국(開局)이라

부르다가, 마을에 깊은 골짜기가 있어 개곡이라 개칭되어 불린다.

희미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0:40)

묘지가 보이는 완만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넓은 공터를 지나고...

362.2m봉(10:43)

말라버린 잡풀사이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예전에 공동묘지였나?...관리가 안된 묘지들이 많이 보인다

묘지 사이로 내려간다

내려온 길을 뒤돌아 본다...넓은 길을 따라서 오르막길로 올라선다

NO33 송전탑(10:48)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다

무명봉(10:51)

무명봉에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고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

506.6m봉(10:55)

고사목의 저항(?)이 심하다

맥길은 좌측의 내리막으로 향한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안부를 지나고 묘지로 올라간다

처사청안이공 묘(11:02)

묘지를 지나서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갈림길(11:06)

트랙상의 지맥길은 직진이나 선답자들의 띠지들은 모조리 우측 내리막길로 향하고 있다.

사연이 있겠지...나 역시 우측으로 내려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상당히 미끄럽다.

이스트힐 골프장으로 향하는 도로로 내려선다.

이 도로는 경주시 외동읍사무소가 있는 외동읍 입실리에서 양남면 효동리를 잇는

14번 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외동고개 위에 있는 이스트힐C.C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입실리로 내려가는 차량들이 많이 보인다

맥길에서 벗어난 이스트힐 골프장으로 향하는 도로로 향하면서 가야할 지맥 능선을 바라본다

선답자들이 왜 우회를 했는지 알 것만 같다...반사경이 보이는 저 곳이 맥길이다

외동고개(外東峴:404.7m:11:13)

경주시 외동읍 입실리와 양남면 효동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 우측에는 쉼터와 수준점이 있고

직진을 하면 양남리 효동리로 넘어가는 길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이스트힐C.C로 들어가는 도로이다.

지명의 유래는 고개 우측 아래에 입실리에 있는 외동읍사무소가 있어서 부르는 모양이다.

 

경주시에 속해있는 외동읍(外東邑)은 조선시대 말기 경주부(慶州府)의 남쪽지방 남산(南山) 및 마석산을

중앙으로 양분하여 서쪽은 내남면(內南面), 동쪽은 외남면(外南面)이라 칭하고 190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외남면(外南面)의 북부(北部) 일부를 제외하고 불국사(佛國寺)에서 경상남도 경계까지를 외동(外東)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외동고개 우측에 있는 수준점

이스트힐 C.C 입구에서 도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들어선다

반가운 선답자들의 흔적

능선으로 향한다

오르막길 능선에 오르면서 뒤돌아 본 우회하면서 걸어온 맥길의 모습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안동권공 묘(11:18)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고개가 나온다

고개(11:20)

고개를 지나자마자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음지에다 등로가 살짝 얼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우측으로 사면길이 나있으나 원칙대로 직진의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힘들게 능선에 올라서니 이스트힐C.C 철조망이 나오고 맥길은 우측의 직진으로 이어진다

무명봉을 지나서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골프장 철조망은 좌측으로 내려가고...

맥길은 직진의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등로에서 바라본 이스트힐C.C의 모습

안부(11:29)

안부 우측으로 사면길이 나있으나 맥길은 직진의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뚜렸한 오르막 등로로 올라간다

처사밀양박공 묘(11:32)

생전에 애주가이셨던 모양이다...대선소주, 참소주, 태화루 막걸리 등 종류도 다양하다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우측의 사면길이 아닌 직진의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무명봉(11:40)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안부를 지나서...

다시 오름막길로 올라간다

522.6m봉(11:43)

가야할 지맥길 능선에는 풍력발전기들이 도열해 있다

능선에서 내리막길 등로로 내려간다

내리막 능선 좌측에는 풍력발전기의 시설물이 보인다

와~~~! 크다

도로로 내려선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도로 우측의 뒷쪽을 바라보니 아침에 지나온 풍력발전기들이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이스트힐 C.C의 모습

바닷가와 가까워지는지 바람이 드세게 불어온다.

갑자기 들리는 카톡의 소리...난 산행을 하면서는 카톡이나 메시지 확인을 잘 안하는 편이다.

편한 길을 걷다보니 카톡을 확인하는데 대학원 원우가 生을 마감했다는 카톡이 뜬다.

정초부터 뭐여!...1999년 모대학 경영대학원을 같이 다녔던 친구로 우리 모임에서 가장 막내이고

지난해 총무로 맡은 친구로 중소 건설사를 운영하는데 스트레스가 많았던 모양이다.

사는게 참 아무것도 아닌데...아우님!...부디 편하게 영면하소서...

나도 5일날 병원가서 종합검사를 받는 날인데 남의 일 같지않아 기분이 썩 좋지않다

526.1m봉(12:10)

좌측 능선이 526.1m봉인데 풍력발전기를 건설하면서 봉우리 절반을 날아가 버렸다.

기분도 영 찝찝하고 하여 그냥 도로를 따라서 간다

NO39/NO32 송전탑(12:12)

 너 없음으로

너 없음으로
나 있음이 아니어라

너로 하여 이 세상 밝아오듯
너로 하여 이 세상 차오르듯

홀로 있음은 이미
있음이 아니어라

이승의 강변 바람도 많고
풀꽃은 어우러져 피었더라만
흐르는 것 어이 바람과 꽃뿐이랴

흘러 흘러 남는 것은 그리움
아, 살아있음의 이 막막함이여

홀로 있음으로 이미
있음이 아니어라


(오세영·시인, 1942-)

등로에서 바라본 입실저수지(송전탑 뒷쪽)와 외동읍 사무소가있는 입실리의 모습

경주시 외동읍에 있는 입실리(入室里)는 신라 때 불국사와 모화리의 원원사 사이에 작은 절 78개가 있어

절과 절 사이의 통로로 마치 복도와 같이 만들었다. 불국사에 들어간 사람은 미리 이곳의 작은 절로 들어와

삭발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는데 불도(佛道)를 닦으러 오는 사람들이 실내로 들어오는 문이라 하여

입곡(入谷, 立谷), 입실(入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구라청의 예보로는 오늘은 날씨가 맑다고 했는데...

맥길과 시멘트 도르는 계속 같이간다

시멘트 도로가 끝나고 비포장 도로로 맥길을 이어간다

갑자기 몰려오는 잔차족들...

재밋겠다

산꾼이 가지 말라고 해서 안 가는거 봤어...무시하고 맥길을 이어간다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수로쪽으로 올라간다

나무 뿌리도 예술처럼 보인다

간벌목 사이를 헤집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650.2m봉(12:38)

태화 북(삼태)지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좌측으로 내려간다

데크목 전망대가 보이고...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본다...아침에 보였던 토함산은 자꾸만 멀어지고 그너머로 함열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전망대 좌측 너머로 동해바다가 아련히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를 지나고...직진을 해야하지만...

조금전에 헤어졌던 좌측의 도로로 내려선다

비포장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용암마을 갈림길(12:44)

비포장 도로 좌측으로는 경주시 양남면 석촌리 용암마을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용암(龍岩)마을은 마을 뒷쪽 산의 모양이 용바위 같아서 용암 또는 용골이라 하였다.

 

양남면에 위치한 석촌리(石村里)는 백일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로

비교적 고도가 높은 지대에 자리해 있으며, 마을 동쪽에 석촌 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학전, 새, 명대 마을 등이 있다. 학전 마을은 임진왜란때 수백마리의 백학이 이곳 밭에

와서 피란하였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새 마을은 학전 남쪽에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명명되었다.

명대 마을은 마을을 개척할 당시 앞산 무덤에서 밤에 불이 비쳐 마을을 밝게 하였다 해서 명대 마을이라 불린다.  

계속 도로를 따라간다

잠시후에 도로옆에 커다란 물탱크가 보이고 이곳에서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간다

갈림길(12:45)

물탱크 우측 도로로 올라간다

삼태봉 이정표가 보이고...

마우나오션리조트 등산로 안내판도 보인다

우측의 등로로 올라가다가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산불감시초소(12:48)

직진의 능선으로 내려선다

조금전에 헤어졌던 등로로 다시 내려선다

묘지가 나오고...

좌측 아랫쪽으로는 마우나오션리조트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인다

안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진달래 군락지 팻말이 보인다

안부(12:52)

새총나무?

완만한 등로는 계속되고...

질매재(12:55)

우측 아래로는 원원사 3.8km라는 이정표가 표시되어 있다.

이 지역의 산행지도에는 이곳을 질매재라고 표기가 되어 있으나 지맥길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고,경주시 외동읍 모화리에 있는 원원사로 내려가는 표식이 되어 있다

원원사(遠願寺) 갈림길 이정표

봉서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원원사는 지금의 원원사보다는 원원사지(遠願寺址)로 유명한 곳이다.

 

원원사지(遠願寺址:사적 제46호)는 봉서산(鳳棲山) 기슭에 있는 경주시 외동읍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로 신라 신인종(神印宗)의 개조(開祖) 명랑(明郎)이 세운 사천왕사(四天王寺)·금광사(金光寺)와

함께 통일신라시대에 있어서 문두루비법(文豆婁祕法 : 神印宗)의 중심 도량(道場)이었던 유서깊은 절이다.

원원사는 밀교의 후계자들인 안혜(安惠)·낭융(朗融) 등과 김유신(金庾信)·김의원(金義元)·김술종(金述宗) 등이

함께 뜻을 모아 국가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하며,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축대를 비롯하여

금당지(金堂址) 등의 건물터, 석등·부도 등 많은 석조유물이 남아 있다.

특히,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과 사천왕(四天王)이 새겨진 동·서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높은 조각수준을 알려주는 수작이며, 아울러 원원사의 당시 품격을 알게 한다. 이 동·서 삼층석탑은 1931년에 복원된 것으로 보아, 원원사는 조선 말기까지도 법등(法燈)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의 나무 계단쪽으로 올라간다

조금전 갈림길에서 헤어졌던 등로를 다시 만난다.

쉼터(12:59)

마우나오션리조트가 있어서 그런지 쉼터 의자들이 자주 보인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올라가다가...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길이 전혀없는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646.8m봉(13:05)

뚜렸한 사면길을 버리고 등로가 전혀없는 진달래 군락지를 치고 올라서니 646.8m봉 산패가 있다.

선답자의 일부 산행기에는 이곳을 옛 삼태봉 또는 삼태봉 중에 제1태라는 기록도 보인다

직진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본 마우나오션리조트 골프장의 모습

우측으로는 외동읍 너머로 호미기맥 치술령이 보이고 저 멀리 우측의 높은산이 마석산 인듯 싶다 

조금전에 헤어진 등로를 다시 만난다.

쉼터(13:09)

갈림길(13:10)

등로 좌측으로 정상석 표지 이정표가 보인다

삼태봉?(655.4m:13:10)

삼태봉중에 제2태라고 부르는 곳인데 나무말뚝으로 표시된 정상목이 있고 629m라고

표기가 되어 있으나 오룩스맵상에는 655.4m라고 나온다.

지도상의 삼태봉은 이곳에서 조금을 더가야 한다 

인증샷

이곳에서는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직진의 내리막길로 내려갔더니만 맥길에서 벗어난다

지맥길은 정상에서 등로가 전혀없는 우측으로 내려가거나 왔던길을 

되돌아 나가서 갈림길 좌측으로 가야 편하다.

나뭇가지 사이로 잠시후에 가야할 삼태봉 정상이 보인다

조금전 갈림길에서 헤어진 등로를 다시 만난다.

양남면 갈림길(13:24)

좌측의 양남면 표시판쪽으로 내려가면 마우나오션 리조트가 있는 양남면 신대리쪽이다

오늘은 꽃길만 걷는다

원원사지 갈림길(13:25)

우측의 원원사지 방향으로 내려가면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쪽으로 가는 길이다.

모화리는신라시대 불가(佛家)에 귀의하는 사람이 모벌군성 성문에 이르러 삭발(毛我)하고

머리털을 불태운(毛火) 다음에 불국사 안으로 들어 갔다고 하여 모아(毛我) 또는 모화(毛火)라고 했다.  

쉼터(13:28)

좌측의 마우나오션 리조트 골프장을 바라보며...

삼태봉 정상으로 올라선다

삼태봉(三台峰:630.0m:13:33)

경북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와 양남면 신대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2개의 정상석과 2등 삼각점,

마우나오션 리조트를 표시해논 이정표, 등산객들의 발에 뭉개진 묘지가 보인다.

산 정상에서부터 중턱까지 신대리성()이 조성되어 있고, 산 아래쪽에는 관문성(:사적 제48호)이 있다.

북쪽 산기슭에는 원원사지(:사적 제46호)가 있으며 신대리성 동쪽에 마우나오션리조트가 있다.

조선시대 경주 대점봉수대(大岾烽燧臺)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수가 없다.

삼태봉 정상 이정표

삼태봉 정상 2등 삼각점(△울산21/1989재설)

인증샷

이곳부터는 가끔 등산객을 만날수가 있었다...등산객에게 부탁하여 인증샷을 남긴다

정상에서 3분정도 머무는 사이에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서둘러 길을 떠난다

안부(13:37)

우측으로 허브캐슬 이정표가 보이고 맥길은 관문성 방향으로 이어진다

진달래 군락지 사면길을 따라서 걸어간다

무명봉을 지나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리조트 갈림길(13:42)

폐헬기장처럼 보이는 공터도 보인다

편안한 등로로 내려서니 등로 우측에 묘지들이 보인다

청주한공 묘(13:45)

마우나오션 리조트가 있어서 그런지 등로는 반질반질하고 간간히 산책객들이 보인다

무명봉(13:50)

안부에서 완만한 등로로 올라서니...

폐헬기장이 나오는데 이곳이 지도상으로 608.1m봉이다

608.1m봉(13:52)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여인의 엉덩이처럼 생긴 암릉구간을 지나...

살짝으로 우측으로 꺽어진다

거시기처럼 생긴 바위도 만난다

갈림길(14:01)

좌측으로 마우나오션 리조트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조망봉(14:02)

조망바위에서 바라보니 바로 아래는 경주시 외동읍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10년전에

걸었던 호미(형남)기맥 능선의 묵장산과 치술령이 미세먼지로 인해 흐릿하게 보인다

조망바위에서 다시 길을 떠난다

무명봉(14:04)

등로 우측으로는 성터의 흔적인지 숲에 묻혀버린 무너진 돌탑들이 보인다

지도상에는 만리성(萬里城)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우측 아랫쪽은 천길 낭떠러지이다

조망처(14:08)

외동읍 들녘 너머로 10년전에 걸었던 치술령(鷲述嶺:765m)이 아련하게 보인다

치술령은 이 호미기맥이 지나면서 솟구친 한 봉우리로 치(鷲)는 솔개를 뜻하며,

 술(述)은 수리로 소(蘇), 근(近), 술(戌), 취(鷲)와 마찬가지로 높은 산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치술령은 치를 새로 보아 새수리재가 되며, 이는 솔개가 사는 높은

산이라는 뜻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치술령이 산(山)이나 봉(峯)이 아닌 영(嶺)인 까닭은 울산 두동쪽

사람들이 경주로 갈 때 이 산을 넘었기 때문이란다.

 

치술령 산자락에는 신라 충신 박재상과 그의 가족들에 얽힌 슬픈 이야기가 많다.

 박재상은 신라 19대 눌지왕 때 왜국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왕제(王弟)

미해(美海·삼국사기에는 미사흔 未斯欣으로 기록)를 구하고 탈출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정작 본인은 붙잡혀 갖은 고초를 당하다가 발가죽을 벗기고 화형당한다.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로는 왜국에서 사망한 박재상을 기다리다가 죽은 부인과

두 딸은 치술령의 망부석(望夫石)이 되어 동해를 굽어보고, 그 넋은 새가 되어

치술령 남쪽 국수봉 중턱의 바위굴에 숨었다고 한다.

저 멀리 아련하게 보이는 치술령을 바라보면서 작금(昨今)의 정치인들의 하는 짓거리를

보면서 민초로서 작찹함이 앞선다...민초들의 안위와 국가를 위하기 보다는 자기들의 안위와

자기 패거리들의 이익이 우선이고, 나라의 곳간이야 우찌 하던가에 포플리즘으로 표를

얻으려는 작태...민초들의 수준이 개, 돼지정도 밖에 안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삼성그룹 故 이건희 회장이 1995년 베이징에서 언론사 특파원들과의 오찬에서 남긴 수많은

절절한 명언들 중에서 그 분이 정치권에 던진 말 한마디를 새긴다.

"우리나라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했다가 호된 곤욕을 치른적이 있었는데

이 나라의 정치인들은 내가 보기에는 4류가 아니라 낙제점인 F 학점보다 더낮은 같다.

요즘 이 나라에는 박제상같은 국가만을 생각하는 충신은 정녕 없단 말인가

치술령을 바라보면서 착잡함이 앞서는 것은 아둔한 이 범여만의 생각일까?

암릉이 나오고 우측으로 우회를 한다

좁은 소로를 따라서 간다

치술령과 묵장산은 계속 따라오고 산 중턱에는 서라벌C.C가 흐릿하게 보인다

갈림길(14:12)

등로 우측으로는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로 내려가는 등로가 보이고 맥길은 직진 내리막길이다

급경사를 내려와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안부(14:15)

안부에서 능선으로 올라선다...원 지맥길은 안부 좌측 능선이나 그냥 편안 길을 걷는다

관문성이 시작되는지 성터의 흔적들이 보인다

삼태봉 표지판이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14:19)

좌측 능선에 있는 583.5m봉으로 향한다

583.5m봉(14:22)

583.5m봉을 찍고 좌측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등로가 희미하여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간다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좌측의 등로로 내려간다

좌측의 저 능선이 오리지널 맥길인데...

마루금에 복귀한다

편안한 등로를 걷는데 약간의 졸음이 밀려온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지 샛길도 많이 보인다

무명봉(14:31)

무명봉을 찍고 되돌아와서 좌측으로 향한다

편안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우측의 모화리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합류한다

여기서부터 관문성이 시작되는 곳이다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은 경주시 양남면 신대리로 가는 길이고...

사적 48호로 지정된 관문성의 관리는 제대로 안되어 있는 편이다.

 

관문성은 산지의 경우 성벽은 산 능선에서 약간 아래쪽 경사면에 외벽만 쌓는 내탁법으로 쌓았으며

평지나 골짜기에서는 내벽과 외벽을 모두 쌓는 협축법으로 쌓았다.

성벽은 20cm×40cm, 30cm×50cm 정도 크기의 가공석과 자연석의 평평한 면을 별다른 손질 없이

성돌로 이용하여 상단으로 올라가면서 1cm~2cm씩 안쪽으로 들여쌓아 올리는 물림쌓기 방식을 쓰고 있다.

 

남산성(南山城)의 경우와 같이 잘 다듬은 직사각형의 돌을 자연석과 함께 성 안쪽으로 1단씩 들여서 쌓았다.

현존하고 있는 남산성의 석축 성벽을 비교해 볼 때 관문성을 축조한 축성술이 훨씬 발달된 축성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맥길은 무너진 관문성을 넘는다

관문성(關門城:사적제48호:14:38)

신라 성덕왕 21년(722년) 10월 일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했던 산성으로 〈삼국유사〉에 따르면

각간(角干:신라시대 경위인 17관등 가운데 최고 관직)을 지낸 원진(元眞)의 감독 아래 3만 9,262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축성했는데 둘레가 6,792보(12㎞)였다.

이 성은 산과 산을 연결하여 길게 뻗어 있으며 우박천을 사이에 두고 양쪽 높은 산에 동해를 향해서

쌓았는데, 이것은 동해쪽에서 침입해오는 일본군을 감시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관문성이라는 지명은 경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한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으로, 원래의 지명은

모벌군성(毛伐郡城)·모벌관문(毛伐關門)이었는데, 조선시대에 관문성으로 부르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울산만에 상륙하는 일본군들을 이곳 관문성에서 저지하면 월성까지 쳐들어오지 못하므로 경주평야의

동북쪽, 즉 영일만 방면에서 상륙하는 일본군에 대비한 북형산성과 함께 일본군 방어에 전초적인 구실을

담당했던 것이다.

 

성벽은 가로 40~50㎝, 세로 20~30㎝의 잘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이용해 정연하게 쌓아 매우 발달된

축성술을 보여준다. 반월성의 둘레가 1,023보인 데 비해 관문성은 그 규모가 매우 커서

〈동경잡기 東京雜記〉에 따르면 후세 사람들이 만리성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지금은 성문터로 보이는 석축과 창고터, 병사지 등이 남아 있을 뿐이다.

관문성 안내판

관문성을 지나서 편안한 길을 내려서니... 

좌측으로 넓은 주차장과 코오롱몰이라는 건물이 보인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샛길로 내려서니 좁은 포장도로가 나오고 좌측에는 삼봉사라는 절집 표시석이 있다.

기령으로 올라서니 마우나오션리조트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온다

기령 좌측으로는 마우나오션리조트 눈썰매장이 있고 그너머로 동해바다가 보인다.

기령(旗嶺:14:48)

경북 경주시 외동읍과 양남면, 울산광역시 북구 매곡동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정상에는

마우나오션 리조트가 있고, 포장마차처럼 가건물로 된 식당들이 많이 보인다.

또다른 지명으로는 기박산성에 깃발을 꽂았다고 해서 기백이재라고 부르는데 기박산성은

관문성의 또다른 이름으로 관문성은 만리성, 기박산성, 함월산성으로도 불리며 이곳부터는

경주시를 벗어나 온전히 울산광역시 북구 매곡동으로 들어선다

 

기령의 유래는 다음과 같이 전해져 내려온다

기령(기백이재)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令:조선시대 각 도(道)의 군사적인 지휘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설치한 종2품 서반(西班) 관직)은 원래 경주 동남쪽 20리 떨어진

토을마리(吐乙磨里)에 있었다...절도사령을 옮기기로 결정하고 마땅한 곳을 찾았는데 기박산성

자리가 제일 적합했다...그래서 이곳에 성터를 잡고 성을 쌓은 자리에는 그 둘레에 붉은 기를

꽂아 표시했다.

 

그래서 거느리고 있던 군졸들과 가까운 고을에 영을 내려 장정들을 동원하여 성을 쌓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동해쪽에서 거센 회오리 바람이 불어왔다...성 둘레를 표시하는 기들이 모두 넘어지고

그 중에 한 깃발이 바람을 타고 남쪽으로 날아갔다.

 

이때 이 광경을 지켜보던 축성도감(築城都監:축성이 필요할 때면 도성이나 변방에 관계없이 그때마다

설치하여 운영하던 임시기구 감독)은 이상하게 생각한 나머지 한 군졸을 시켜 말을 타고 그 깃발을

뒤쫓게 했는데 군졸이 깃발이 떨어진 곳을 살펴보니 소쿠리처럼 생긴 분지에 남쪽만 열려있는 지형이었다.

도감(都監)은 그 지형을 살펴보니 성을 쌓을만한 자리이고, 깃발이 그곳에 떨어진 곳에 신이 성을 쌓으라는

가르침이라 생각했고 이러한 내용을 조정에 보고하여 결국 지금의 울산시 중구 병영동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기령에는 가건물의 식당들이 많이 보인다.

이른 아침을 먹고는 중간에 아무것도 먹지않은 탓에 시장기가 몰려온다.

이곳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고 가건물 식당으로 향한다

늦은 점심시간(14:50~15:20)

배가 몹씨 고팠던 모양이다...뜨끈한 떡국 한그릇에 막걸리 한병을 게눈 감추듯이

해치우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도로를 무단횡단하여 건너편으로 향한다

뒤돌아본 기령(기백이재)의 모습

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임도로 향한다

사유지이니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판과 그물망이 있으나 무시하고 그물망 안으로 들어간다

사유지 안쪽의 등로는 뚜렸하다

처사제주고공 묘(15:28)

이곳에서 오늘 산행을 종료하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신흥사 입구 표시석이 보이는 기령 삼거리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이곳에 설치한 에어건으로

옷의 먼지를 털어내고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기령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기령삼거리(15:30)

이곳에서 교통편이 어쩔지 몰라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는데 포장마차같은 식당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차량에 시동을 걸면서 떠날 채비를 한다...재빨리 달려가서 서울을

가려고 울산고속버스 터미널을 가야하는데 교통편을 모르겠으니 터미널가는 버스가

정차하는데까지만 태워 달라고 하니 타라고 한다.

 

차를 타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보니 허름한 차림의 내가 안쓰러워 보였던지

고속버스 터미널 입구까지 태워 주시는 바람에 편하게 왔다...감사합니다

울산고속버스 터미널(16:05)

貴人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표를 예매하려니 저녁 7시 이후의 표밖에

없다고 하면서 바로 옆에있는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보라고 한다...옆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동서울터미널로 가니 이곳 역시 저녁 7시 10분 버스표 밖에 없다고 하여 다시 고속버스

터미널로 되돌아와서 저녁 7시 버스표를 예매해놓고 3시간동안 대합실에서 멍때리기를 한다

 

명색이 우리나라 6대 광역시중에 하나인 울산고속버스 터미널은 여느 읍소재지 버스터미널만큼의

외소하고 초라한 느낌이 들 정로로 활력을 잃어가는 터미널이다...우리나라 중공업의 메카라고

하는 울산만 그런건 아니겠지만 지방의 도시들이 점점 쇠퇴하는 모습이 안타갑기만 하다

터미널 대합실에서 3시간을 지루하게 멍때리기를 한 다음에 버스에 올라서 서울에 도착하니

시간은 또 하루를 넘기는 자정이 다 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