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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태화 북(삼태)지맥(終)

태화 북(삼태)지맥 제3구간 -무룡산 신당 임도에서 화암추 등대까지

by 범여(梵如) 2022. 2. 21.

☞ 산행일시: 2022년 02월 20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차가운 바람

 산행거리: 도상거리 20.7km / 7시간 1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무룡산 신당임도 갈림길-무명봉-NO29송전탑-아랫율동 갈림길-찬물내기 약수터

                  쉼터(진달래 군락지)-329.8m봉-공군부대 정문-마골산 헬기장-마골산 갈림길

                  마골산-다시 마골산갈림길-쉼터-마골산 숲속쉼터-현대자동차 예비군부대-돈문재

                  동축사 갈림길-289.1m봉-동축산 염포정-y자 갈림길-251.1m봉-남목고등학교 갈림길

                  NO22/NO8 송전탑-NO1송전탑-당고개-산신각-121.1m봉-쉼터-쉼터봉-현대고등학교 갈림길

                  염포산-갈림길-원각사 갈림길-안부-174.2m봉-전망대-쉼터-구장태고개-131.6m봉

                  성골삼거리 갈림길-폐초소봉-화정산 삼거리-조망대-화정산-울산대교 전망대

                  방어진 체육공원 삼거리-방어진 체육공원 입구-화정 천내봉수대-월봉사 갈림길

                  봉화재-방어진 순환도로-현대미포조선 기술교육원-망계산 공원입구-망계산

                  송전탑-58.9m봉-현대중공업 주차장-현대중공업 해상플랜트 사업부 입구

                  화암고등학교-현대중공업 입구-현대중공업 후문-화암추등대

 소 재 지: 울산광역시 북구 효문동, 어물동, 강동동, 양정동, 염포동 / 동구 동부동,

                 서부동, 화정동, 방어동

 

어제(19일)가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雨水)이건만 요즘 사바세계에 사는 인간들이 제 정신이

아니다보니 절기(節氣)마져도 중생들을 헷갈리게 만든다...소한, 대한 다 지나고 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춘마져 지났건만 요즘의 날씨는 한 겨울보다도 더 추운 느낌이다

오늘 아침 서울의 기온이 영하 11도란다...추워도 너무 춥다...그렇다고 산행을 안 할수도 없고...

 

그래도 산에는 가야겠기에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가 지난주에 가기로 했다가 비가 온다는

예보로 인해 취소한 울산에 있는 태화 북(삼태)지맥 마지막 구간을 하기로 하고 주중에

열차표를 미리 예매한다...아무래도 울산이야 윗쪽보다는 덜 춥겠지?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04:55)

이른 새벽에 일어나 간단하게 베낭을 챙겨서 가족들 몰래 도둑고양이(?)처럼 집을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새벽에 불어대는 차가운 바람에 귀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04:55분... 대합실에 잠깐 머물다가 플렛홈으로 향한다

서울발 → 울산행 ktx열차표

열차에 오르자마자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깬 탓인지 늘 습관처럼 차에 오르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가

잠에서 깨어나니 열차는 울산의 전역인 경주역을 통과하고 있다...정신을 차린 다음에 07시28분에

울산역에 도착한다

울산역(07:30)

5003번 리무진 버스 시간표

울산역 앞에서 무룡고개 아래에 있는 울산 북구청까지 가려면 울산역에서 대안입구까지 가는

5003번 리무진 버스를 타야하는데 08시에 출발하는 버스라서 차 문이 굳게 잠겨있다.

30여분간을 개 떨듯이 떨다가 버스에 올라 울산 북구청 방향으로 향하는데 오늘의

울산 날씨도 생각보다 상당히 춥다...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손가락이 빠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날씨가 춥다...한참을 달려 울산시 북구청 남문앞에서 내린다

무룡산 신당 임도(08:58)

울산 북구청 남문에 내려니 택시가 잘 없다...5분정도 기다린 다음에 택시를 타고 무룡고개로 향한다.

무룡고개에 도착한 다음 기사에게 사정하여 500m를 더 간 다음에 무룡산 신당 입구 내린다(택시비 6,000원)

지난달 1월 16일에 2구간을 마치고 왔으니 벌써 한달이 넘었구나.

택시에서 내리니 울산의 추위도 장난이 아니다...거기다가 바닷가라서

그런지 바람이 엄청나게 드세다...사진 몇 컷 찍는 손이 굳어버리는 느낌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9:05)

오르막 시멘트 도로에서 도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09:08)

무명봉 정상에는 벙커처럼 보이는 웅덩이가 있고 봉우리 주위에는 두릅나무가 지천이다.

4월에 왔더라면 손맛을 좀 볼뻔했겠네...

좌측으로 내려간다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로 내려선 다음에 임도가 아닌 우측 샛길이 맥길이다.

편하려고 임도를 따라서 가면 한참을 돌아야 하기에 샛길(맥길)이 훨씬 가깝다

임도 우측의 골짜기 샛길로 내려간다

계곡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주 차갑다

가야할 329.8m봉이 보이는데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NO29 송전탑(09:15)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오늘은 울산 시내를 통과하는 맥길이라 초반부터 꽃길(?)이다

이정표를 지나고...

계속되는 꽃길

등로에서 바라본 울산시 북구 효문동(孝門洞)의 모습

 

‘효문(孝門)’은 조선 전기 울산 출신의 소문난 효자인 송도(宋滔)로 말미암아 생긴 이름이다

효문동(孝門洞)은  조선 전기 예종() 때 백련암리()에 속하였으며 조선 후기 정조() 때는 죽전,

효문, 산성, 율동으로 나뉘었고, 1894년(고종 31)에는 효문, 율동, 산성이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효문과 산성에 율동과 연암의 일부를 합하여 효문리로 하고 울산군 하상면의 관할에 두었다.

 

1962년 6월 울산시에 편입되어 병영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72년 10월 행정동을 개편할 때 진장동과 명촌동을 합하여

진장동을 설치하고, 효문동과 연암동을 합하여 효문동을 설치하였다. 1976년 4월 병영출장소가 폐지되었다.

1985년 7월 구제()가 실시되어 울산시 중구 효문동이 되었고, 행정동인 진장동을 통합하여 진장·효문동을 설치하였다.

1997년 7월 울산광역시 출범과 함께 신설된 북구에 편입되어 울산광역시 북구 효문동이 되었다. 1998년 10월 과소

행정동의 통·폐합에 따라 진장·효문동을 효문동으로 하였다.

약천사 안내판이 보이고...

개발제한구역 팻말을 보면서 직진으로 향한다

넓은 공터가 나오고 뒤돌아 보니 지난달에 걸었던 무룡산이 보인다

아랫율동 갈림길(09:30)

울산시 북구 효문동 아랫율동 마을로 내려가는 도로가 보이고 이정표(←약천사 1.4km,↑성불사 1.5km,

↓무룡임도2.4km, ↘아래율동2.5km)와 여러종류의 안내판과 플랑카드가 어지럽게 서 있고, 도로 우측에는

잘 관리된 묘지가 있다.

아랫율동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와 안내판

성불사쪽의 오르막길로 올라가니 공군부대 안내판과 좌측에 부대 관리동이 보인다

오르막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찬물내기 약수터가 나온다

찬물내기 약수터(09:33)

2개의 파이프에서 물은 졸졸 흐르나 음용금지라는 플랑카드가 있어 마시지는 않했다

이 약수터는 울산에서 성행했던 물당기기 노래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란다.

 

찬물내기란 냉천(冷泉)의 순수한 우리말로 울산의 물당기기 놀이는 새로파는 마을의

공동 우물에서 물이 순조롭게 나와 주기를 기원하는 놀이로, 이 놀이는 생명의 원천인

물을 중요시 하고, 마을의 풍요를 비는 용신신앙(龍神信仰) 발로이다.

 

찬물내기에서 기원했던 물당기기 놀이 

울산의 진산(鎭山)은 무룡산(舞龍山)으로 산신에 무우제(舞雩祭)를 지내는 주룡산(主龍山)이란 것이다.

진산이 남으로 쫓는 지맥에는 신성천(神聖泉)이라하는 찬물내기(冷水泉)가 있는가 하면, 산정 너머에는

물청청(水淸淸)이 있어 생수의 흔한 성지를 이루고 있다.

 

물당기기 놀이는 무룡산 줄기가 이어지는 달골(달곡)마을에서 1950년대 이전까지 행해지던 민속놀이다.

달골 마을에서는 윗마을의 공동우물에서 정월 대보름날을 기해 동제(洞祭)를 마치고, 지역민들이 모두

모여 물당기기를 실시했다.

 

지역민들은 물병과 솔잎을 단 물줄을 엮어 남녀노소 함께 물줄을 어깨에 메고 무룡산 줄기의 계곡,

복해용소(龍所) 등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전통사회에서 신성한 물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자

깨끗한 물은 주민들에게 생명수였다. 이에 물을 성수로서의 개념으로 신성시 해왔으며, 정갈한 물을

얻기 위한 공동의식이 이어졌다.

 

울산의 곳곳에는 이러한 성천(聖泉)에서 물을 당겨오는 제의와 놀이가 있었으나, 상수도와 간이상수도가

생기면서 이제는 한낱 옛이야기로만 남았을 뿐인데, 효문동(孝問洞)에서 행해졌던 물당기기를 놀이로

재현하여 즐기는 것이 울산물당기기 놀이인 것이다. 공동우물을 팠을 때나 가뭄으로 물이 마를 때는

무룡산 찬물내기를 찾아가서 제의를 행하며 이곳에 천지 곳곳의 물을 집수하는 축원을 하며 이 성수를

다시 효문정(孝門井)으로 잇는 모의주술(模擬呪術)에 이어 효문정에 와서는 샘물의 풍요와 청려를 축원하며

한마당 오신(娛神)의 놀이가 벌어졌다.

찬물내기 약수터에 붙어있는 ‘울산의 물당기기 노랫말’

“여루여루 들건산 무룡산신을 울리자.

동천물을 당기고 서천물을 당기자.
여루여루 이 새미 용왕님을 울리자.

용왕소 물을 당기고 물청치물을 당기자.
은하수를 당기고 천지수를 당기자.

백룡담 물을 당기고 용금소 물을 당기자.
동해수를 당기고 황해수를 당기자.

진산의 산신님, 무룡산 산신님!
천년수를 당기고 만년수를 당기자.

이어주소, 이어주소. 이 새미 물을 이어주소.
회야강 물을 당기고 형산강 물을 당기자.”

찬물내기 약수터에서 공군부대와 양떼목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진달래 군락지 방향으로 올라간다

오늘 처음으로 빡센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니 우측으로 시야가 확보되면서 울산시내를 가로지르는 태화강이 보이기 시작한다

능선을 지나 조금을 더 진행하니 쉼터가 있는 사각정자가 보인다

쉼터(09:45)

쉼터가 있는 이곳이 이정표에서 가리키는 진달래 군락지이다

사각정자 뒷쪽으로 올라선다

등로는 완만하다

조금전에 걸었던 등로 뒷쪽으로는 무룡산이 자꾸만 멀어지기 시작한다

다복한 소나무

329.8m봉(09:48)

판독이 불가능한 329.8m봉 정상 삼각점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울산 460이라고 한다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공군부대 정문이 나온다

공군부대 정문(09:53)

조금전 찬물내기 약수터에서 헤어진 도로를 다시 만난다.

지맥길은 공군부대 정문으로 이어지지만 갈 수가 없다

양떼목장 팻말을 바라보면서...

군부대의 좌측 사면길로 내려간다

비포장 도로를 따라서 간다

지뢰매설 팻말과 안내문을 보면서 임도를 따라서 간다

공군부대 정문에서 1.2km를 우회하여 마골산 헬기장에 도착한다

철조망이 처져있는 군부대에서 내려오는... 

마루금에 복귀를 한 다음에 마골산 헬기장으로 올라간다

마골산 헬기장(10:08)

헬기장에서 바라본 무룡산과 양떼목장 뒷쪽에 있는 새바지산(260.9m)의 모습

새바지산(260.9m)은 울산광역시 북구 어물동에 있는 산으로 새바지산에서 ‘새바’는 ‘새밝[曉]’의

뜻이 변한 것으로 새벽을 의미하며 북쪽으로는 작은무룡산이 자리하고 있는데 두 산 사이의

계곡부에서 방방천이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금천(琴川)에 합류한 후 당사항 부근의 동해로 유입한다.

마루금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어 1.2km나 우회하게 만든 공군부대의 모습

부대가 있는 저 곳이 마골산 정상이 아닐까?(범여의 생각 中에서)

지금은 양떼목장의 사정으로 인해서 문은 굳게 닫혀있어 새바지산 가는 걸 포기한다

맥길은 직진 능선으로 이어지나 좌측의 임도와 나란히 하기에 그냥 임도로 내려간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바리게이트를 지나고...

임도 좌측으로 갈림길이 나오는데 울산시 북구 어물동(於勿洞) 생골마을로 가는 길이다.

 

‘어물(於勿)’은 마을 서편의 산세가 완만하고 길게 늘어진 모양을 형용한 데서 온 이름이다.

어물리란 이름의 성질로 미루어 이두로 쓴 것이 분명하다. 어(於)는 늘어진 형태를 뜻하는 말이고,

물(勿)은 산을 뜻하는 말로 쓴 것으로 본다. 물(勿)은 수(水)이고, 수(水)는 매(買)와 같다.

매(買)는 ‘뫼’와 같아 산(山)이 되어 미(彌), 마(馬)로도 전사(轉寫)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어물동에는 금천·보골(洑谷)·황토전(黃土田)·산두곡(山頭谷) 등의 옛마을과 방바우골·성골(城谷)·산막

등의 골짜기가 있으며 금천은 산세가 거문고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보골은 마을에 보(洑)가

있다고 해서, 황토전은 흙의 빛깔이 황색이라고 해서, 산두곡은 산 위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적으로는 강릉유씨 정려각이 전하고, 문화재로는 방바우골에 어물동마애여래좌상(울산광역시유형문화재 6)

이 있으며 휴식처로는 산하동과 정자동·어물동·신명동에 걸쳐 20,000㎡ 규모의 강동해변이 있으며 해마다

이곳에서 강동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능선에서 내려오는 마루금과 합류하여 임도를 따라서 간다

조금을 더 진행하니...마골산으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마골산 갈림길(10:20)

이정표(←섬골 해변가, ↑돈문재1.8 km,↓무룡고개5.5km)와 태양광으로 된 전광판,

구조이정판이 있는데 좌측의 섬골 해변가 방향으로 맥길에서 0.2km 정도 떨어진 곳에

마골산이 있다

맥길에서 200여m정도 떨어진 마골산으로 향한다

섬골해변가 방향으로 가는 길에는 벚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가니...

정상석과 돌탑, 쉼터의자가 있는 마골산 정상이 나온다

마골산(麻骨山:297.4m:10:24)

울산광역시 동구 동부동에 있는 산으로 산이라기 보다는 그저 밋밋한 봉우리처럼 보이는데

엄연한 지명을 부여받은 족보있는 산으로 정상석과 돌탑...쉼터의자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마골(麻骨)’은 삼[麻] 껍질을 벗겨낸 흰색의 삼대를 뜻하는 한자어로 산에 줄지어 있는 많은

바위들이 마골처럼 보여 이름을 ‘마골산(麻骨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조전령산(鳥田嶺山)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동축사가 있는 산을 

마골산(麻骨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마골산의 소망길에는 해골바위·장적암·휘양바위·공부암·송곳바위·촛대바위 등의 기암들이

즐비한데 바위 하나하나마다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를 품고 있어 더욱 아름다운 산이다.

특히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인 동축사(東竺寺) 뒤편에 있는

관일대는 두꺼비 모양의 바위들이 모여 있으며 방어진 12경에 해맞이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인증샷

정상석 옆에 달려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강한 바람탓에 심하게 흔들린다

마골산 등산안내도도 보이고...

임도에 내려서니 바로 아래로 남목 감나무골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임도에 서 있는 옥류천 이야기길 안내판

옥류천 이야기 길은 울산광역시 동구 마골산 옥류천 일대에 조성된 산길로, 옥류천 일대에 총 길이 14.9㎞

길을 조성하면서 역사·문화·관광 자원과 지역 커뮤니티를 연결해 길 속에 이야기가 스며들도록 조성되었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옥류천 이야기 길은 총 4개 구간으로 정비하였는데, 3개의 개별 구간과 전체를 아우르는 1개 구간으로 나뉜다.

'사색과 소통의 길'인 「동축사 길」은 신라 천년의 부처님 설화가 간직되어 있으며 은혜와 치유의 길인

소나무 숲길은 소나무가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많이 있고 남목마성의 이야기에는 울산 목장의 감목관이었던

홍세태의 아름다운 시가 스며들어 있다.

 

기기묘묘한 바위 탐방 길인 소망길[4.6㎞]은 기기묘묘한 바위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걷는 재미를 더해 준다.

옥류천 이야기 길은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완만한 신길과 울창한 숲, 그리고 일 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 옥류천 계곡이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스토리텔링 작업의 일환으로 2011년 장세련·장세동 작가는 『옥류천 이야기길』을 출간하였다

다시 마골산 갈림길(10:26)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길이 편하니 슬슬 몽유병(걸어가면서 조는 버릇)이 도지기 시작한다

쉼터(10:35)

편안한 길을 계속 따라서 간다

화장실을 지나면서 마골산 숲속 쉼터가 나온다

마골산 숲속쉼터(10:39)

마골산 숲속 쉼터에는팔각정과 각종 체육시설이 많이 보이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체육시설과...

옥류천 이야기길 안내판을 따라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추운 날씨에 고생이 많소

계속되는 내리막길

도로 주변에는 예비군 훈련장이 있는 모양이다

현대자동차(주) 예비군 부대(10:45)

현대자동차 예비군 부대 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계속되는 편안한 길

우측으로 시야가 열리면서 태화강이 보인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사각정자가 있는 돈문재에 도착한다.

돈문재(10:49)

울산시 북구 양정동과 동구 동부동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고

고개 위에는 이정표(무룡임도6.9km, 마골산 헬기장 2.3km, 심청저수지 1,2km)와 쉼터의자,

사각정자가 있으며 우측 아랫쪽으로는 심청저수지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사각정자 지붕에는 조선 후기에 울산 감목관을 지낸 유하 홍세태가 쓴 儺鼓(나고)라는 시가 적혀있다. 

儺鼓(나고) 나레 굿 - 작가 유하 홍세태, 역자 김송태

儺鼓雷轟舞袖翩(나고뇌굉무수편):넓은 뜰 술자리엔 등불 높이 매달아놓고

廣庭燈燭晃初筵(광정등촉황초연):춤 소매 너울너울 나레북소리 요란하다

春旗揷地招搖影(춘기삽지초요영):춘기를 땅에 꼽고 역귀를 불러모아

神語慿巫怳惚傳(신어빙무황홀전):무당이 신 내린 말로 황홀하게 전달한다

未害客居親異俗(미해객거친이속):타향살이 낯선 풍속 친숙한들 어떠랴만

獨僯衰齒得新年(독린쇠치득신년):노년에 새해 맞이 이 홀로 서글프다

鳴雞腷膊游塵散(명치핍박유진산):새벽 닭 홰를 치니 굿판은 흩어지고

牢落星何滿曉天(뇌락성하만효천):은하수 널찍히 새벽 하늘에 가득 찼네

홍세태(洪世泰:1653-1725)는 조선 후기 울산 감목관(蔚山監牧官)을 지낸 중인 신분의 시인으로,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유하(柳下)이며,1675년(숙종 1) 을묘식년시에 잡과인 역과(譯科)에서 한학관(漢學官)으로

뽑혀 이문학관(吏文學官)에 제수되었고, 1682년 통신사 윤지완(尹趾完)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1705년에 둔전장(屯田長)을 거쳐 1715년 제술관, 1716년에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가 되었으나 이후

파직되었다가, 뒤에 재능을 인정한 이광좌(李光佐)의 도움으로 1719년에 울산 감목관(蔚山監牧官)이 되었다.

홍세태는 문장의 재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제술관(製述官: 조선 시대에, 전례문(典禮文)을 지어 바치던

임시 벼슬)특히 많이 역임하였으나, 평생 가난하게 살았으며, 8남 2녀의 자녀가 모두 앞서 죽어

불행한 생애를 보냈다. 이러한 궁핍과 불행은 그의 시풍에도 영향을 끼쳐 암울한 분위기의 시를 많이 남기고 있다.

특히, 중인 신분으로서의 좌절과 사회 부조리에 대한 갈등이 시 속에 우수와 감분(感憤)을 담게 하였다.

 

죽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시문집을 엮어 자서(自序)를 써서 부인에게 맡겼다.

죽은 지 6년 만인 1731년(영조 7)에 사위와 문인에 의하여 『유하집(柳下集)』 14권이 간행되었는데,

이 문집에 울산의 경승을 노래한 시가 많이 담겼다.

 

* 감목관(監牧官)은 조선시대에 국영 목장을 관할하며 말의 번식·개량·관리·조달 등을 수행한 관직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408년(태종 8)에 제주도에 감목관을 두어 고려시대의 말 관리 제도를 개선하라고 한 기사가 있다

돈문재 정상의 이정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비포장 도로로 올라간다

완만한 오르막길

좌측으로는 남목마을 감나무골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남목마을(南木-)에는 옛날부터 ‘감나무골[柿木谷]’과 ‘남목천’이라는 두 지명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하나는 순우리말 이름인 ‘감나무골’로, 또 하나는 이두로 된 ‘남목천’으로 따로 존재하여 왔지만

어원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지명이다. 즉, ‘감나무골’이 오랜 세월 음운이 변하면서 ‘암나골’이 되고,

이것을 이두로 쓴 것이 ‘남목천’이다

급한 오르막길을 오르자 좌측으로 2번째 만나는 감나무골 갈림길을 만난다.

잠시후에 좌측으로 동축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팔각정과 헬기장이 있는 넓은 공터에 오른다

동축사 갈림길(10:58)

동축사(東竺寺)는 울산광역시 동구 동부동 마골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로 『삼국유사(三國遺事)』 황룡사장육조(皇龍寺丈六條)에 따르면 동축사(東竺寺)는 573년(진흥왕 34)

인도의 아육왕(阿育王)이 보낸 불상과 보살상 모형을 모시기 위해 진흥왕(眞興王)의 명령으로 창건되었다.

 

‘동축’은 ‘동쪽에 있는 부처의 나라’라는 의미이다. 장육상을 주조하기 위해 황철을 보내온 인도가

서축(西竺)이라면, 신라는 동쪽에 있는 부처의 나라라는 신라 불국토사상(佛國土思想)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찰로 929년(경순왕 3)에 중창이 이루어졌고 고려 정종(靖宗)[1035~1046] 대에 옥인(玉仁)이 중건하였다.

 

1664년과 1684년에 중수하였으며 1834년 가선기공(嘉善琪公)이 중수하였다.

이후의 내력은 알 수 없으나 『범우고(梵宇攷)』[1799년] 및 『가람고(伽藍考)』에 현존 사찰로 등장한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완성(翫性)이 중수하였고 1975년에는 도암(道庵)이 정주영(鄭周永)의 시주로 다시 중수하였다. 1994년 4월 21일 울산광역시 전통 사찰 제1호로 지정되었다.

동축사 갈림길 앞에 있는 팔각정과 헬기장

헬기장을 지나자마자 도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289.1m봉(11:02)

도로에서 비켜난 능선에 족보가 있는 289.1m봉과 삼각점이 있다

봉우리에는 군부대의 폐막사가 있고 삼각점이 있는 곳이지만 찿을수가 없다.

삼각점 수색에 실패를 하고 내려서니...

폐막사 옆으로 남목고등학교로 내려가는 등로가 보인다

다시 도로로 내려서서 염포정의 이정표를 따라서 동축산 염포정으로 향한다

염포정으로 오르는 길의 좌우로는 체육시설들이 많이 보이고

염포개항기념공원비가 있는 동축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동축산 염포정(鹽浦亭:289.7m:11:05)

울산시 북구 염포동과 동구 서부동의 경계에 있으며 넓은 공터로 조성된 정상에는 멋진

팔각정인 염포정과 울산 장생포항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테라스와 염포개항기념공원비,

뭘 의미하는지 모를 울산북구 ‘일곱만디 동축산’이란 팻말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삼포가 있었는데 동래(현재의 부산) 부산포(富山浦), 웅천 내이포(乃而浦:지금의 경상남도 진해),

울산 염포(鹽浦) 등 세 곳의 포구를 지정해 일본인이 들어와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삼포 개항(三浦開港)은 1426년(세종 8년) 대마도주 소 사다모리(宗貞盛 종정성)의 청에 따라 기존에

개방하였던, 웅천(진해)의 내이포(乃而浦), 부산포 이외에도 울산의 염포(鹽浦)를 추가로 개항하고

일본인에게 교역을 허락한 일이다.

 

1418년(세종 초년)제3차 대마도(對馬島) 정벌 이후 대마도주 사다모리(종정성)는 단절된 조선과의

정상적 교역을 누차 청하여 왔기 때문에 조정에서도 그들에 대한 유화책의 하나로 3포를 세종 8년 개항했다. 

 

이는 이종무의 쓰시마 정벌이후 살길이 막힌 쓰시마 사람들의 간청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쓰시마 사람들에게 조선의 관직을 주어 조선과 일본의 무역을 중개하고 삼포를 관장하도록 했다.

 

삼포에는 각각 왜관을 두어 무역을 관장하고 일본인을 접대하는 장소로 썼으나, 일본인이 눌러앉아 살 수는 없도록 했다. 따라서 일본인은 무역과 고기잡이 등이 끝나면 바로 귀국해야 했다. 그러나 이 규정을 어기는 일본인이 갈수록

늘어나 세종 말기에는 부산포에 약 350명, 내이포에 약 1500명, 염포에 약 120명이 살기에 이른다.

 

* 이종무의 쓰시마(對馬島) 정벌이란?

쓰시마 왜구가 비인현(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과 황해도 해주를 노략질하자 군사권을 쥐고 있던 세종은

이종무 장군에게 227척 1만 7000여 명의 군사를 주어 쓰시마를 정벌하게 했다. 이종무는 쓰시마를

완전히 굴복시키지는 못했으나 129척을 불태우거나 빼앗고 약 2000호의 집을 불태우는 타격을 입히고 귀국했다.

이듬해 세종은 쓰시마를 경상도의 속주로 편입시키지만 일본의 요청으로 되돌려 주고, 대신 쓰시마

사람들에게 조선 벼슬을 주어 평화로운 교역에 종사하도록 한다

염포개항 기념공원비에 적혀있는 鹽浦(염포)의 연혁

염포는 三韓(삼한) 시대의 苒海國(염해국)이라는 설이 있으며 옛날부터 염밭이 많아 鹽浦(염포)라 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삼포 개항지의 하나로 倭人(왜인)들과 교역(交易)이 활발했던 곳이기도 하다.

1962년 방어진 출장소 관활에 있었고 1985년 중구로 1997년 동구로 1998년 3월 1일 북구 염포동으로

행정관활이 변경되었으며, 신전· 중리· 성내· 애전 마을이 있다.

 

新田(신전)은 양정동과 경계지점을 이루며, 深淸谷(심청골)· 佛無谷(불무골) 등의 큰 골이 있다.

심청골 안에는 應善谷(응선골)· 딸발골· 가장 높은 산인 진재봉이 있으며, 불무골 안에는 문디이집골·

칼등골· 잡친골· 배나무골· 곧은골이 평풍처럼 둘러싸여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또한 祭堂(제당)과 장터가 있어 새 장터라고도 부른다.

 

中里(중리)에는 鹽浦營城(염포영성)의 중심지인 범탑멀리산이 있고, 사방지골 안에는 잡친골· 큰골·

중산골이 자리 잡고 있다. 중리와 신전 중간에 푸진내다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하였다.

城內(성내)에는 馬城(마성)· 대문골· 정자지골· 지개골· 약수탕이 있다. 동구와 경계선인 염포산 壇(단)고개는

남목으로 넘어가는 작은 재로 오른쪽 길가에 갑옷 바위가 있다.

艾田(애전)에는 약숙이 많다고 해서 쑥밭이라고 불렸으며, 대구머리· 망바위· 원바위· 홈개바다가 있었다.

지금은 동구에 편입되어 산업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이 비와 팔각정은 동구의 경계선인 東竺山(동축산) 305m 정상에 위치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고등바위산이 바라보이며, 산 중턱에는 논골과 칼등골· 약수터가 있었으나 지금은 논골· 약수터만 남아 있다.

西紀 2004년 (檀紀 4337년) 12월 7일

울산시 북구에서는 이곳을 동축산이라 표기를 해놨다.

지난 2구간에 지나온 동대산과 무룡산에도 일곱만디라고 해놨는데 뭘 으미하는지 모르겠다

인증샷

배가 산으로 간다?...요즘 정치판의 대선주자들이 생각나는구나

염포정 전망대...울산12경중에 하나란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태화강(太和江)의 모습

태화강의 유래는 신라시대 자장율사(慈裝律師)가 당나라의 수도할 때 중국의 태화강변에서 신인을

만난 후 사포(絲浦 ; 지금의 태화지방)로 귀국하여 절을 지어 나라의 복을 빌었다 하며 그 절이 태화사가

되었고, 태화강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울산광역시를 서에서 동으로 관통하면서 동해로 흘러가는 강으로 한 줄기는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백운산(白雲山) 탑골샘에서 발원해 구량천(九良川)·반곡천(盤谷川) 등을 합류하고 대곡천(大谷川)이라고

불리며 사연호(泗淵湖)를 이룬다.

 

다른 한 줄기는 상북면 덕현리에서 동류하는 물줄기가 언양을 지나면서 범서읍 사연리에서 합류한 뒤,

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시내를 관통하여,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에서 발원한 동천(東川)을 합하면서

울산만에 유입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울산)에는 "성 서남쪽에 강이 있으니 이것이 대화강(大和江)이며, 길이가 6·7리나 된다.

강물이 넘실넘실하여 만경이 한결 같이 푸르고 붉은 언덕과 푸른 벽의 그림자는 마치 거울 속에 거꾸러지는

것이 고호두(顧虎頭)의 감자(甘蔗) 먹는 것과 같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지도서』(울산)에는 "태화강(太和江)은 태화루 아래에 있다."라고 읍지에 빠지지 않고 모두 수록하고 있다.

언양을 비롯한 서부 지역에서는 이 강을 남천이라고 일컫고, 범서면 일대에서는 굴화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언양)에는 "남천(南川) 현의 남쪽으로 1리에 있으며, 물의 근원은 석남산에서 나와서

울산군(蔚山郡) 대화진(大和津)으로 흘러 들어간다."라고 되어 있다.

오룩스맵 지도와 산행지도에는 이곳이 새밭재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믿음이 안 간다.

네이버 지식백과의 황토문화대전에 수록된 자료를 보면 지나온 마골산 헬기장이 새밭재로 나온다.

여러가지 기록을 보니 이곳이 아닌 마골산 헬기장이 새밭재가 맞는 듯 하다

 

새밭재는 울산광역시 동구 동부동 동축사에서 북구 염포동으로 넘어가는 높은 고개로,

「숲속에 온갖 새들이 둥지를 틀고 산다」고 하여 유래한 지명이다.

 

북쪽으로 새바지산·무룡산(舞龍山)·동대산(東大山) 산자락과 줄기를 이어 가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울산광역시 동구 남목동의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남쪽으로는 방어진항이, 서쪽으로는 태화강(太和江)이

흘러 울산항으로 흘러들고 있다.

 

새밭재는 예로부터 사이 고개라는 뜻과 지릅고개의 뜻으로 기록한 것이며, ‘곧장 넘어가는 고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고갯마루에 산불 감시 초소와 헬기장이 구성되어 있고 새밭재 부근에 해골을 닮은 바위가 유명하다.

새밭재 주변으로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완만한 등산로가 이어져 초보 등산객이라도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또한 고개를 넘어 걷다 보면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등산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나오는데 수정이 필요한 듯...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이정표를 따라서...

염포삼거리 방향으로 내려간다

체육시설을 지나고...

이정표를 지나니...잠시후에 갈림길이 나온다

y자 갈림길(11:15)

이정표(←염포정0.57km, →염포삼거리 1.8km,  ↖남목고등학교 1.88km)가 나오고 이곳에서

염포삼거리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남목고등학교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y자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

이정표를 지나자마자 등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251.1m봉(11:17)

251.1m봉 정상에는 울산박씨 가족묘와...

송전탑이 보인다

251.1m봉에서 내려와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남목고등학교 갈림길(11:20)

이곳에서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뚜렸한 임도로 내려간다

잠시후에 가야할 염포산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끄러운 내리막길

NO22/NO8 송전탑(11:26)

네리막 등로 주위에는 재선충이 심했는지 소나무 무덤들이 많이 보인다

NO1송전탑(11:28)

급경사의 내리막길...오늘 처음으로 맥길같은(?) 곳을 걸어본다

오랫만에 만나는 선답자들의 시그널...강한 바람으로 인해서 심하게 흔들린다

숲을 빠져 나오니...

당고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당고개(11:38)

울산시 북구 염포동과 동구 서부동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6차선의 방어진 순환도로가 지나는데

차량 통행이 상당히 많은 곳으로 또다른 지명으로 남목고개라고 부르며, 울산 동구의 관문 역할을

하는 고개로 좌측의 주유소가 있는 고개 꼭대기에는 성황당이 있었으며 오래된 고목나무와 성황당의

흔적인 돌무더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으며 지명의 유래는 여기에서 따온듯 하다

당고개의 정류장 이름은 정수장이라고 표기가 되어있고 버스 노선이 상당히 많다

도로를 건너야 하는데 차량들의 통행은 많고 차량들은 멈추지를 않는다.

한참을 기다려도 신호가 멈추지 않아서 신호등 기둥옆을 보니 도로를 건너려면 

버턴을 눌러라고 되어 있는게 아닌가...버턴을 누르니 금방 적색 신호로 바뀐다

초소에서 휴식(11 :42~12:00)

오늘 산행을 하면서 울산 시내를 통과하기에 점심은 매식을 하기로 하여 준비를 하지 않았고

간단하게 초코파이 하나와 두유, 육포밖에 베낭에 없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와서 아침을

안 먹었더니만 허기가 진다...중간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간식으로 허기를 면하려 했지만

너무 춥고 바람이 심한데다 바람이 피할곳이 마땅찮아서 여기까지 왔다

 

도로를 건너니 멋진 초소가 하나 보인다...가서 문을 당겨보니 문이 열린다.

초소안으로 들어가니 좀 지저분 하긴 하지만 휴식을 취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초코파이와 두유로 허기를 면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나선다

마당에 택시가 서 있는 민가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물탱크가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니 좌측으로 가정집처럼 생긴 정각사라는 절집이 보인다

텃밭이 보이고 좌측의 숲으로 올라간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백두사랑의 이대장의 흔적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린다

대나무숲을 지나고...

넓은 공터를 지나고...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바람이 드세니 하늘한번 참 맑고 곱다

조금전에 당고개로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

등로에서 바라본 울산시 동구 서부동의 모습

서부동(西部洞)은 조선시대에 남목마을(南牧-)의 중앙을 흐르던 옥류천(玉流川)을 경계로

동서로 나뉘어 서쪽은 서부동, 동쪽은 동부동으로 분리한 데서 지명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산신각(山神閣:12:08)

산신각이란 산신을 모시는 전각으로 사찰에 따라서는 산령각(山靈閣)이라고도 부른다.

또 삼성각(三聖閣)을 두어 칠성신ㆍ독성(獨星)과 함께 모시는 경우도 흔한데 본래 산신은 도교에서

유래한 신으로, 불교가 전래되기 전에 많이 믿던 토착신이다.

 

특히 산지가 70%나 되는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에 이르기까지 산신신앙이 널리 유행하였다.

이 산신이 불교에 수용되면서 호법신중(護法神衆)의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불교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부터 이므로 산신도 비교적 일찍 불교에 수용되었을 것을 여겨지나, 산신각이 세워진 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이다. 대개 전각의 뒤쪽에 세우며, 크기는 정면1칸, 측면 1칸이 보통이다.

 

산신각 내에는 산신을 그린 탱화를 모시는데 대개 흰수염, 대머리, 긴 눈썹이 휘날리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손에는 하얀 깃털부채나 파초선ㆍ불로초 등을 들고 있고 주로 봉래산ㆍ영주산ㆍ방장산 등의 삼신산을 배경으로 한다.

커다란 바위 아래에 샷시로 만든 박스안에 산신탱이 모셔져 있고 그 안에는 생수와 과자,

소주병과 천냥짜리 지폐들도 여러장 보이고 문짝에는 산왕대신 정근(正勤)이 적혀있다.

날씨가 춥지 않았으면 산신에게 예를 올리고 소주한병을 얻어 마시겠건만 지금은 추워도

너무 추워서 그냥 길을 떠난다.

 

* 정근(正勤)이란 불교에서 선법을 더욱 자라게 하고 악법을 멀리하려고 부지런히 닦는 수행법이다

산신각에서 우회하여 능선으로 올라선다

우측으로 꺽어지니...

소나무숲 사이로 길은 좋다.

121.1m봉(12:11)

우측 안부로 내려서니 묘지가 보이고...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향한다

곧바로 염포산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같은 제도권 등로가 나온다

쉼터(12:15)

꽃길을 걸어간다

레드카펫이 아닌 멍석길로 올라간다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쉼터봉(12:25)

다시 도로로 내려선다

돌탑이 보이는 도로를 지나간다

현대고등학교 갈림길(12:30)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제...지맥 산꾼이 좋은 길을 걸으니 흥이 나질 않는다

염포약수터 갈림길을 지나니  염포산 정상 0.3k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넓은 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올라서니 오승정이란 팔각정이 니오면서 염포산 정상에 도착한다

염포산 정상에서 만난 오승정의 모습

오승정(五勝亭)의 '五'는 산, 바다, 강, 고을, 산업단지가 한눈에 보인다는 의미를 가지며,

'勝'은 한자의 뜻이 '이길 승', '뛰어날 승'으로 동구의 번영과 발전을 기원한다는 뜻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오승정 계단 아래에 있는 유래판

오승정으로 올라간다

오승정에서 바라본 동해바다와 현대중공업의 모습

옛날에는 울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목장이었는데 지금은 울산하면 현대를 떠올린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미포조선소, 모비스, KCC 등 현대그룹과 관련된 기업들이

울산하면 현대를 떠올리겠끔 만들어 놨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님을 비롯해서 삼성의 이병철회장, L.G그룹 구인회 회장, 대우 김우중 회장 등

헐벗고 굶주린 민초들을 이만큼이라도 잘살고 해준 것은 이 분들의 피나는 사업보국 때문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세대들은 저 분들을 폄하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치하는 인간들의 방조로 노조라는 세력이 자기들이 재벌들에 작취당하는 무리라고

주장하지만 지금은 거대한 공룡으로 변해버린 기득권 세력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지금 집권하고 있는 운동권 세력과 노조 지도자들...

제발 민초들 괴롭히지 마소.

자꾸만 침몰해가는 듯한 이 나라를 아산 정주영 회장이 살아 계셨다면

이런 자들에게 어떤 호통을 칠까?

 

생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하면서 부하들을 호통쳤던 유명한 일화

 

왜 안 된다는 거야?

이봐 해봤어?

염포산(鹽浦山:203.4m:12:34)

울산시 동구 전하동과 북구 염포동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염포산은 소금을 생산하는 포구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울산시 동구의 서부, 북구의 남부의 경계를 이루며, 동쪽으로 동구와 접하고 서쪽은 울산만을 따라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하이스코 등의 업체가 임해공업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서쪽으로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이 흐르고 남쪽으로 술바위산과 방어진항, 대왕암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북쪽으로 새바지산·작은무룡산·무룡산·동화산·동대산에 이어 경주의 토함산까지 산맥이 이어져 있다.

인증샷

염포산 정상에 있는 지적삼각점

염포산 정상에는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조금은 찜찜하고 불안하여 마스크를 착용한다

염포산 정상에서 우측 방향으로 내려간다

방어진 공원 안내도

방어진 공원 안내도에는 염포산 정상에서 좌측 화정산 삼거리를 거쳐 문현 삼거리 방향으로

걷는 길로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 지맥길과 해파랑길은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서야 한다.

처음오는 등산객과 맥꾼들은 안내도만 보면 상당히 헷갈릴 듯 하다...오룩스맵에서는

우측으로 표기가 되어 있으며 지맥길과 해파랑길이 겹쳐지는 등로이다

방어진 공원 안내도를 바라보면서 좌측의 시멘트 도로가 아닌 쉼터가 보이는 직진으로 향한다

등로는 뚜렸하다

갈림길(12:41)

직진의 내리막길로는 염포산산악자전거 대회코스 길이고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오룩스 트랙을 따라서 걸었더니만 잡목이 심하고 등로는 없다

조금을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면서 조금전에 헤어진 도로가 나오는데 사서 개고생을 했다

도로를 따라서 화정산 삼거리 방향으로 향한다

울산 시내에 위치한 산이라 그런지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요즘같은 시국에는 사람이 많은 곳에는 왠지 찜찜하다

조금을 더 걸어가니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 보인다

원각사 갈림길(12:48)

이정표(↓염포산0.4km, ←화정산 삼거리2.4km, ↗원각사0.5km, 성내0.7km)가 있고

주위에는 겨울에도 푸른잎을 자랑하는 홍가시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넓은 임도를 버리고 원각사 방향으로 향한다

갈림길을 들어서자마자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올라간다

수목장을 한 유인안동권씨 묘지도 보인다

능선으로 올라서서...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묘지들이 보인다

이런 말뚝들도 많이 보이고...

안부(12:52)

안부를 지나서 잡목을 헤치면서 나오니 잔차도로가 나온다

174.2m봉(12:54)

이곳에서도 삼각점 찿기를 실패한다

계속 이어지는 잔차도로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잔차도로인 호젓한 길을 나홀로 걸어간다

조금을 더 가니...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13:00)

전망대에서 바라본 현대미포조선소의 모습

전망대 아래에는 KCC공장과 울산대교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다시 길을 나선다

원각사 갈림길에서 헤어진 도로를 다시 만나고...

계곡 아랫쪽으로 보이는 울산대교

쉼터(13:08)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구장태고개(13:12)

이 고개 아래로는 울산시 동구 일산동과 화정동에서 북구 염포동을 잇는 대교터널이 지나고 있다

구장태 고개에서 오르막을 오르면서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미포조선소를 가리키는 이정표쪽으로 오른다

우측으로는 미포조선소로 향하고...

직진 능선으로 올라간다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잡목이 무성한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131.6m봉(13:17)

잡목을 헤치면서 조금전에 헤어진 도로로 내려선다

등로 우측으로 태화강을 가로지르는 울산대교가 보인다

성골삼거리 갈림길(13:20)

화정산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지맥길은 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돌탑 뒷쪽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길도 없고 금방 도로로 내려와야 하기에 그냥 편안한 도로를 따라서 간다

능선에서 내려오는 마루금과 합류를 한 다음에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에는 야왜나무 조림지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성골삼거리로 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직진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호젓한 등로를 따라서 간다

폐초소봉(13:30)

다시 도로를 따라서 간다

화정산 삼거리(13:34)

울산대교 전망대가 보이는 화정산 삼거리에서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앙꼬없는 찐방같은 등산 안내도

염포산에서부터 계속 안내해온 화정산삼거리 표시는 있으나 정작 화정산 표시는 없다

조망대(13:36)

조망대에서 바라본 울산대교

전망대에서 바라본 현대미포조선소

현대미포조선소 건너편 장생포항 사이의 석유화학 단지 옆으로 여천천 위에

조그만한 돋질산이 보이는데 2018년 1월6일에 태화 남(남암)지맥을 끝냈던 합수점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장생포항의 모습

전망대에서 화정산으로 올라간다

화정산(146.7m:13:38)
울산대교 전망대가 있는 곳이 화정산 정상인데 삼각점(△울산456/1998재설)만 있고

울산대교 전망대를 건설하면서 정상 절반은 날아가 버렸고, 잡목만 무성하다

화정산에 대한 실망만 하고 울산대교 전망대로 내려간다...지도상에는 그냥 146.7m봉이다

울산대고 전망대로 내려간다

울산대교 전망대(13:40)

울산대교 전망대는 높이 63m로 화정산 정상에 위치해 있으며 전망대에 올라서면 2015년 5월

개통한 국내 최장이자 동양에서 3번째로 긴 단경간 현수교인 울산대교와 울산의 3대 산업인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산업 단지 및 울산 7대 명산을 조망할 수 있다.

주간에 바라보는 울산의 전경과, 야간에 바라보는 공단과 도심의 야경은 색다른 즐거움을 제공한다.

전망대에는 동구 관광기념품 기프트샵과 카페 등을 운영하고 있어 볼거리·머물거리 모두 제공하고 있다.

 

울산대교 전망대에 오르려니 입장료는 없으나 스틱을 보관하라, QR코드를 찍으라, 체온을

체크하라는 등 규제가 너무 많아서 그냥 포기를 하고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서 옆에있는 카페로 향한다.

하늘숲 카페(13:41~14:15)

점심을 해결하기 위하여 카페에 들어서니 다행히 손님의 거의 없어서 안심이다.

메뉴판을 전부 마시는 종류인데 유일하게 빵 형태로 제품이 있어서 이걸 시킨다(이름은 모름)

이걸 시켰더니만 10분이 넘어서 빵이 나오는 바람에 추위에 굳은 몸을 녹이고 여유롭게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울산대교 전망대를 빠져 나와서... 

도로를 따라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대나무숲을 지나고...

문패(NO)가 없는 송전탑을 지나니 방어진체육공원 삼거리가 나온다

방어진 체육공원 삼거리(14:20)

우측의 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방어진체육공원 안에 축구장이 있는데 울산현대축구장의 연습장인 모양이다

천내봉수 안내판을 지난다

방어진 체육공원 입구(14:24)

울산현대축구단이 사용하는 운동장이 2002 월드컵 때 브라질 훈련장이었던 모양이다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가서...

화정천내 봉수대 방향으로 향한다

화정천내 봉수대 가는길

울산 화정 천내봉수대(蔚山華亭川內烽燧臺:117.7m:14:33)

울산광역시 동구 화정동에 있는 봉수대로, 1998년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해발 120m 봉화산 정상에 위치한 천내봉수대는 울산만의 관문을 지키는 봉수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가리산(加里山)에서 봉수를 받아 남목(南木 : 현재 주전봉수)으로 전해주는 연변봉수이다.

흙으로 쌓은 지름 25m의 둥근 둑 안에 돌로 된 대(臺)를 쌓았는데, 그 대의 지름이 8m, 높이가 7.5m에 이른다.

지형도상에는 117.7m봉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선답자의 산행기에 나오는 울산20 지적 삼각점

표식은 보이지 않는다...울산의 자료에는 이곳이 봉화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화정 천내봉수대는 경상좌도 지역의 방어를 책임진 육군 최고사령부인 경상좌도 병영성과 지역

행정을 담당했던 울산도호부 관아에서 한눈에 조망이 가능한 요지에 설치된 곳으로, 조선시대

봉수의 역사와 전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군사통신유적이다.


과거 남쪽 가리산에서 봉수를 받아 남목(현재 주전봉수)으로 전해주는 연변봉수로 동해안 대외 관방의

거점지역으로 기능했으며, 주변 해상의 후망과 대응봉수(가리봉수, 남목봉수)간 신호전달이라는

고유 임무를 수행했다.


천내봉수대는 연대의 기저부가 남아 있는 상태였으나 2016년 '화정 천내봉수대 복원정비 종합정비계획'

수립 후 2017년 발굴조사를 실시해 연대, 호, 방호벽, 구, 건물지 등의 유구가 확인되면서 봉수대의

전체 구조가 파악됐다.
발굴 조사를 통해 조선후기 유적뿐 아니라 조선전기의 초축 유구도 확인돼 시대적인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천내봉수대에 배치된 봉수군의 근무 여건과 생활상 등을 추정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

관방통신시설로서의 역사적·군사적·학술적으로 가치도 담고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현대중공업 골리앗 크레인 보인다

봉수대 정상에서 내려선다

봉수는 과거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시대의 군사통신제도이다.

조망이 양호한 산정에서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국경과 해안의 안위를 중앙에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봉수제가 성립된 것은 1149년(고려 의종 3)으로, 1급에서 4급의 봉수 거화수(炬火數)를 규정하고,

봉수군의 생활대책을 마련해 주었다. 조선 세종대에 이르러 그 체제가 정비되었다.

5거 거화수 등 관계 규식 마련, 각 도 연변의 연대(烟臺) 축조, 봉수선로 획정 등을 통해 그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각 봉수에는 오장(伍長)과 봉수군(烽燧軍)이 교대로 근무하면서, 평상시에는 한 홰[烽], 적이 나타나면 두 홰,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세 홰, 적이 국경을 넘어오면 네 홰, 적과 접전하면 다섯 홰의 봉수를 올리도록 하였다.

1894년(고종 31)에 전보통신이 보급되면서 폐지가 결정되었고, 다음해 각처 봉대와 봉수군을 폐지함으로서

모든 봉수제는 폐지되었다.

 

봉수는 성격에 따라 경봉수(京烽燧)․내지봉수(內地烽燧)․연변봉수(沿邊烽燧)로 구분된다.

경봉수는 전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하였던 중앙봉수로서 서울 목멱산(木覓山)에 위치하여 목멱산봉수

또는 남산봉수라고 불렀다. 연변봉수는 해륙 변경(海陸邊境)의 제1선에 설치하여 연대라 하였으며,

내지봉수는 연변봉수와 경봉수를 연결하는 중간봉수로서 수적으로 다수였다.

 

해발 120m 봉화산 정상에 위치한 천내봉수대는 울산만의 관문을 지키는 봉수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가리산(加里山)에서 봉수를 받아 남목(南木 : 현재 주전봉수)으로 전해주는 연변봉수이다.

대응봉수의 거리는 남서쪽의 가리봉수와 3.64㎞, 북쪽의 남목봉수(주전봉수)와는 6.54㎞ 거리에 있다.

잔존하고 있는 연대의 규모는 상부의 경우 직경이 약 5m정도이며, 하단의 둘레는 55m 가량이다.

높이는 약 2m정도이다. 천내봉수의 호(濠)는 연대를 중심으로 동쪽을 제외하고 서,남,북 3면에

마련되어 있으며, 그 자체가 방호벽 역할을 하기도 하며, 인근의 서생 이길봉수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천내 봉수대가 있었던 곳의 모습

천내봉수대의 각종 자료들이 많이 보인다

봉수대 아래로 내려간다

월봉사 갈림길(14:36)

능선으로 올라간다

봉화재(14:37)

지도상에는 이곳이 봉화재라고 나오는데 확신이 서질 않는다

쉼터에서 내려서니 텃밭들이 보인다

텃밭 사이의 샛길이 마루금이다

갈림길(14:39)

이곳이 이번 산행에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마루금은 우측으로 가야하나 등로는 아예없고 개고생을 하기에 후답자들은 직진길로 가시길...

직진길을 버리고 오룩스 맵 트랙을 따라서 우측으로 향한다

등로는 전혀 보이지 않고 남양주 금곡님의 시그널이 걸려있다. 

텃밭들은 그물망으로 이중삼중으로 막혀있다.

수확이 끝난 텃밭에서 잠시후에 가야할 망개산을 바라본다

우측으로 가보니 급경사의 절개지라 도저히 내려갈 수가 없어 다시 되돌아 나온다

아랫쪽으로 내려가봐도 가야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아! 미치겠다

오는 봄 / 김소월

 

봄날이 오리라고 생각하면서
쓸쓸한 긴 겨울을 지나보내라.
오늘 보니 백양(白楊)의 뻗은 가지에
전(前)에 없이 흰새가 앉아 울어라.

그러나 눈이 깔린 두던 밑에는
그늘이냐 안개냐 아지랑이냐.
마을들은 곳곳이 움직임 없이
저편(便) 하늘 아래서 평화(平和)롭건만.

새들께 지껄이는 까치의 무리.
바다를 바라보며 우는 가마귀.

어디로써 오는지 종경 소리는
젊은 아기 나가는 조곡(吊曲)일러라.

보라 때에 길손도 머뭇거리며
지향없이 갈 발이 곳을 몰라라.
사무치는 눈물은 끝이 없어도
하늘을 쳐다보는 살음의 기쁨.

저마다 외로움의 깊은 근심이
오도가도 못하는 망상거림에
오늘은 사람마다 님을 여이고
곳을 잡지 못하는 설움일러라.

오기를 기다리는 봄의 소리는
때로 여윈 손끝을 울릴지라도
수풀 밑에 서리운 머릿결들은
걸음 걸음 괴로이 발에 감겨라.

그물망을 찢어버리고 내려선다

양철판넬 사이의 개구멍으로 내려선다.

밭으로 내려선 다음에...

길이 없는 곳으로 내려서니...

방어진 고물상 마당으로 내려서는데 고물상집의 개쉬키들이 지랄발광하면서 짖어댄다

고물상 입구의 철대문은 굳게 잠겨있고 옆으로 우회해서 겨우 고물상을 빠져 나온다

방어진 순환도로(15:00)

고물상을 빠져 나오니 울산시 동구 방어동 문현삼거리에서 미포조선소쪽으로

이어지는 4차선의 방어진 순환도로가 지나간다...미포조선소쪽으로 향한다

도로 건너에는 오일뱅크 셀프주유소가 보인다

텃밭에서 내려오는 절개지 능선인데 이곳이 지맥 마루금이다

방어진 순환도로를 무단횡단하여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골목으로 향한다

현대미포조선 기술교육원(15:03)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맞은편에는 현대미포조선 기술교육원이 자리잡고 있다

정림아파트를 바라보면서 도로를 따라간다

도로 우측 능선으로 맥길이 이어지나 휀스가 막혀있어 오를수가 없다

도로를 따라서 가니 현대중공업 골리앗 크레인이 보인다

망개산 공원입구(15:08)

도로를 버리고 망개산 공원으로 올라간다

공원을 지나서 지맥 마루금으로 복귀를 한다

망개산 오르는 길

망개산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현대미포조선소의 모습

미포조선소가 있는 저곳에는 옛날 대구머리라는 마을이 있었던 곳이었는데 조선소가

생기면서 마을이 없어지고 대구머리란 지명은 그 모양이 마치 대구의 머리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망개산(83.9m:15:21)

울산시 동구 방어동에 있는 산으로 북쪽에는 미포조선소 남쪽에는 현대중공업이 있다

산 아래에는 망개산 공원이 있으며 지명의 유래는 오래전에 미포조선이 들어서기 전 까지만

하여도 소나무와 잡목이 어우려져 있었고, 망개(청미래덩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서 붙어진 지명이란다.

준.희 선생의 산패와 산행 지도에는 망계산으로 되어 있는데 망개산의 정확한 표기이며

망개란 청미래의 경상도 방언이다.

망계산을 지나면서 쉼터가 나온다

쉼터의자에서 골리앗 크레인

골리앗 크레인은 스웨덴 코컴스(Kockums) 조선소에서 수입한 세계 최대 규모의 1천5백톤급

겐트리 크레인(Gantry Crane, 일명: 골리앗크레인)으로  이 크레인이 유럽 조선업체의 번영기를

상징하던 것으로, 이 크레인이 유럽에서 우리 나라로 옮겨졌다는 것은 지난 1백여년간 세계 조선산업의

중심으로 군림하던 유럽 조선업체들과 최근 20여년 사이에 높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급성장한 동북아시아 조선업체의 ‘바톤 터치’ 를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2002년 9월 스웨덴 제 3의 도시 말뫼(MalmӦ)에서 이 크레인을 한국행 선박에 선적하던 당시, 크레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기 위한 시민들로 부두 근처가 인산인해를 이뤘으며, 스웨덴 국영방송은

장송곡(葬送曲)과 함께 크레인의 선적을 보도했고 다른 언론들도 ‘말뫼가 울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대서특필한 바 있다.

 

스웨덴의 코컴스 조선소는 약 1백여년 전에 설립되어 세계 최초로 LNG선을 건조하는 등 북유럽 최대의

규모와 기술력을 자랑하던 회사로, 이 회사에서 건조한 선박이 세계 해운시장에서 ‘명품’이라고 불릴만큼

우수한 조선업체였으나 90년대 초반 도산해 결국 이 크레인을 現代重工業에 인계하게 됐다.

 

이 크레인은 상징성만큼 규모면에서도 세계 최대로, 자체 총 중량 7천5백60톤에 폭이 165미터에 이르며

높이는 45층 빌딩과 맞먹는 128미터. 상판 부분만도 버스 4대가 동시에 지나갈 수 있는 13미터의 폭과

14.5미터의 높이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번에 들어올릴 수 있는 무게는 무려 1천 5백톤으로 역시 세계 최고.

지금까지 골리앗크레인은 선박 건조 도크에서 블록을 조립할 때만 사용되던 것으로 재미있는 사실은

세계 최대의 골리앗크레인 인수가격이 딸랑 ‘1달러’였다는 점이다.

 

현대중공업은 해체·운반비용을 부담할 능력이 없는 코컴스사의 형편을 감안, 이를 전부 부담하는

조건으로 단 1달러에 ‘말뫼의 눈물’을 인수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해체·운반·재설치에 소요된

비용은 3000만달러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망개산에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송전탑(15:24)

갈림길이 나오고...

텃밭이 보이는 우측으로 내려간다

텃밭 아래로 내려서니...

도로로 이어지는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미포조선소에서 휀스로 막아 버렸다

휀스가 너무 높아서 넘어갈 수가 없다

窮하면 通한다고 했던가... 문 아래로 틈새가 보인다

베낭을 밀어넣고 낮은 포복으로 휀스를 빠져 나온다

휀스를 빠져 나와서 뒤돌아 본 모습

지도상에는 이곳을 화잠이라고 표기를 하고 있다

 

화잠마을은 화암지구 북쪽에 장생포와 매암동을 마주 보고 있던 마을인데, 인천제철소(현재 미포조선소)의

건설로 지금은 없어지고 말았는데 이 마을의 선착장이 있던 곳을 ‘버틈’이라 하였다

울산시 동구에 있는 방어동(方魚洞)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조선 정조 때인 18세기부터였다.

그 후 1894년(고종 31년)에는 방어동과 화잠동으로 갈라졌고,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는 방어리로

다시 통합되었으며 방어동이 급속히 발전하게 된 것은 일제 시대 일본인들의 집단 이주와 함께 어업

전진기지가 되면서부터였다. 그

 

리하여 방어동은 청어, 정어리, 고래 등의 풍부한 수산 자원을 바탕으로 크게 번성하게 되었다.

이때 이곳에는 읍사무소를 비롯하여 학교, 우체국, 금융, 조합, 전화국, 발전소, 냉동공장 등과 함께

청루 거리(유흥가)가 따로 형성될 만큼 흥청거렸다. 방어동의 자연 마을로는 동진·서진·북진·내진·중진·

상진·남진·문재·화암 등이 있는데, 지금은 마을과 마을이 모두 이어져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도로를 따라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꽃바위 아파트를 지나간다

58.9m봉(15:35)

우측에 있는 봉우리가 태화 북(삼태)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58.9m봉이나

막혀있어 오를수가 없어서 도로에서 눈팅이만 하고 합수점으로 향한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도로 건너편에 미니스톱 울산꽃바위점이 보인다

현대중공업 주차장(15:59)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서 간다

현대중공업 해상플랜트 사업부 입구(15:45)

화암고등학교(15:46)

현대중공업 입구(15:48)

현대중공업 조립동 건물 뒷쪽으로 화암추 등대가 보이고 오룩수 맵 트랙은 공장 안으로 되어있다.

트랙만 보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다가 경비원에게 쫒겨난다

현대중공업 담벼락을 끼고 한없이 걸어간다

현대중공업 후문(16:00)

현대중공업 후문을 끼고 해변가인 화잠로를 따라서 합수점인 화암추 등대로 향한다

데크목 길을 따라서 가니 방어진항과 슬도 등대가 보인다.

슬도는 방어진 항구 입구에 있는 섬으로 파도가 칠 때 거문고 타는 소리가 난다 하여 ‘슬도’라 하였다.

또한 이 섬은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 하여‘시루섬’이라 하기도 하고, 거북이 모양 같다 하여

구룡도(龜龍島)라고도 한다

동해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쉼터도 지난다

데크목 도로에서 화잠로로 내려선다

화암추등대(16:17)

방어진 서쪽 해안마을의 바다에 돌출된 검회색 바위 위에는 이상하리 만큼 하얗게 꽃문양을 연상시키는

무늬가 박혀 있다고 하여 “꽃바위(花岩)”라 불렀고, 주변 마을을 “꽃방마을”이라 불렀다.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바닷물이 만조를 이루었을 때, 출렁이는 물결에 드리워진 꽃무늬는 더할 나위없이

절경을 이루었고, 저녁 무렵 바닷물이 썰물로 빠져나가면서 바닷속에 잠겨 있던 온갖 바위 형상들이

만물상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는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시인 묵객들은 “화암만조”(花岩晩潮)라 부르며 방어진 12경 중 제1경으로 꼽기도

하였으나, 1989년 항만 축조 및 매립사업으로 모두 사라져 버렸다.

 

1961년 이후 울산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부터 산업의 대동맥인 석유화학제품들이 쏟아졌고, 울산항에는

이를 실어 나르는 배들의 왕래가 잦아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해양오염사고 방지 및 선박의 안전항해를

위한 항로표지 설치가 절실히 요구됐고, 울산항 관문에 위치한 꽃방마을 끝단에는 천 년 동안 안전하게

항해하기를 기원하는 거북이 모양의 등대가 세워졌다.

 

이후 조선산업의 발달로 항만 축조 및 매립이 이루어져 바다 쪽으로 등대를 옮겨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낮아진 등고를 보완하고 울산항을 출입하는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높은

등대 설치가 요구되었다.

 

마침내 1994년 12월 동양 최대 규모의 등대가 건립되어, 머나먼 여정을 헤쳐온 선박들을 안전하게

울산항으로 인도하게 되었다. 특히, 해상 교통의 요충지인 이곳 화암추등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전망대에 오르면 생동감 넘치는 울산항과 24시간 불빛을 내뿜는 산업단지의 역동성을 한 몸에 느낄 수

있으며, 등대 앞 방파제의 강태공들이 계절에 따라 색다른 손맛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화암추 등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등대이며, 등탑 내에는 해양수산 홍보관과 울산항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태화강과 동해바다가 만나는 합수점으로는 철문이 굳게 닫혀있어 접근이 불가능하다

하는 수 없이 화암추 등대 체험공간 안으로 들어간다

저 안으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트를 타고 전망대를 가려 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폐쇄됐다

합수점을 접근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현대중공업 도크를 바라보면서 맥길을 마무리하는 스틱을 접는다

합수점쪽에는 해군 함정이 정박하고 있다.

이곳 화암지구 바닷가에는 매화꽃 무늬가 선명한 바위들이 널리 분포해 있는데, 여기서 비롯된

이름이‘꽃바위’이고 이것을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이‘화암(花岩)’이다. 그리고 이곳으로부터 바다

건너 마을을‘매암동’이라 하는데, 매화꽃 무늬의 바위가 많다는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태화 북(삼태)지맥을 마무리하는 인증샷

오늘 산행길은 좋았으나 날씨가 너무 춥고 바람이 너무 심해서 참으로 힘들었다.

쥔장 잘못만난 두 다리에 감사함을 표하면 서 지맥 하나를 마무리 한다.

태화 북(삼태)지맥을 끝내면서 부산, 양산, 울산, 경주 지역에 있는 지맥은 전부 마무리하여

맥길을 걷기 위해서 내 생애에 이곳에 다시 올 일은 없을 듯 하다

화암추 등대를 빠져 나오는데 자동차 한 대가 시동을 걸고있다.

재빨리 쫒아가서 서울을 가야하는데 버스타는데 까지만 태워 달라고 하니 타라고 한다

貴人의 도움으로 현대중공업 후문 입구까지 편하게 왔다...세세생생 복받을깁니다

방어진항과 슬도 등대를 바라보면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화암 버스정류장(16:30)

이곳에서 태화강국가정원(동강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간다

태화강국가정원버스 정류장(17:30)

화암버스 정류장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1시간이 걸렸다

이곳에서 ktx 울산역으로 가는 버스를 찾고 있는데 리무진 버스 노선은 보이지 않는다.

버스 노선표를 보고 있는데 마침 울산역으로 가는 5003번 버스가 정류장앞 신호에 걸리면서 선다

손을 들어서 태워 달라고 하니 문을 열어주더니 리무진 버스 정류장은 이곳이 아니라고

하면서 특별히 태워 준다고 한다...덕분에 편하게 울산역에 도착한다

울산역(17:58)

화암버스정류장에서 ktx울산역까지 오는 시간이 1시간 30분...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서울가는 열차를 미리 예약을 해놔서 느긋하다고 생각하고 여유를 부렸는데 화암추 등대에서

귀인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열차를 못 탈뻔했다.

내가 왜 이러나?

울산역 대합실에서 내가 미리 예매한 열차표 시간을 기다리는데 시간이 다되어 가는데도

전광판에 뜨질 않아서 매표소로 갔더니만 매표소 직원이 하는 말 “어르신 서울에서 울산으로

내려오는 표이시잖아요” 하는게 아닌가...자세히 보니 울산에서 서울가는 표를 예매한다는 걸

올라가는 표도 서울에서 울산으로 내려오는 걸 예매를 해 버렸네...

그러면서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서둘러 울산에서 서울로 가는 표를 바꿔준다.

새로 바꾼 울산발 → 서울행 열차표

표를 바꾸자마자 플렛홈으로 가서 서울가는 열차에 오른다.

정시에 서울역에 도착하여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데 요즘 날씨 추워도 너무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