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태화 북(삼태)지맥(終)

태화 북(삼태)지맥 제2구간 -기령삼거리에서 무룡산 신당 임도까지

by 범여(梵如) 2022. 1. 17.

☞ 산행일시: 2022년 01월 16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미세먼지...차가운 바람

 산행거리: 도상거리 15.8km / 5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기령삼거리-신흥사 입구-신흥재-525.4m봉-학성이씨 봉안당-마동재

                 NO6/ NO5 송전탑-416.4m봉-431.0m봉-우음재-동대산-444.8m봉-사각정자

                 돌탑삼거리-무제등-431.0m봉-다시 무제등-저승재-안부-무명봉-대안임도삼거리

                안부삼거리-402.8m봉-422.4m봉 갈림길-422.4봉-임도-350m봉-370m 봉-안부-367m봉

                안부-쉼터-371.6m봉-갈림길-347.9m봉-달현재-임도 쉼터-묘지-337.9m봉-296m봉-임도-쉼터

                무룡산 숲속쉼터-무룡산 헬기장-KBS/울산(UBC)방송국 송신탑-무룡산-갈림길-kt무룡산 중계소

                mbc송신소-안부-342m봉-무룡(정자)고개 갈림길-무룡고개-260.4m봉-무룡산 신당임도 갈림길

 소 재 지: 울산광역시 북구 매곡동, 대안동, 무룡동, 호계동, 창평동, 효문동, 어물동, 강동동

 

2주만에 산행을 나섰다... 10년을 넘게 맥산행을 하면서 3년전 수술을 하면서

6개월을 쉰것과, 외국 여행을 가면서 빠진거 제외하고는 아마도 처음인 듯 싶다.

지난주는 과로로 인한 체력 저하와 함께 날씨가 너무 추워서 한 주를 쉬었다.

이제는 갈수록 체력은 떨어지고, 몸뚱아리는 추위에 취약한 체질로 바뀌어 버리니

자꾸만 자신감이 떨어지는 느낌이다...이러다가 생전에 맥길을 다 끝낼수 있을려나 하는

조바심이 앞서지만 이걸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여기서 멈춰야 하나 생각을 했지만

아직까지 내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으니...이번주도 많이 춥고, 눈이 온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추위를 피해서 아랫녘으로 갔던 태화 북(삼태)지맥 2구간인 울산은 일기 예보로는

날씨도 그리 춥지않고 맑은 날씨라고 하니 그쪽으로 산행 일정을 잡아야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04:55)

아랫녘으로 갈때 늘상 이용하는 집앞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첫 버스를 탔다.

그런데 내가 첫 버스의 첫 손님이다보니 버스 기사가 이제는 나를 알아본다.

어르신!...이 추운 날씨에 오늘도 산에 가시냐고 인사를 건넨다...졸지 유명 인사가 되어 버렸네...ㅋㅋㅋ

서울발 → 울산행 열차표

05시 15분 서울역을 출발하여 늘 습관처럼 정신없이 자다가 일어나니 울산역에 도착한다

울산역(07:28)

울산역에 도착하여 대합실로 나오니 2주전 신경주역과는 달리 이곳은 분식집과 편의점,

빵집, 커피점이 있는데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점빵문이 열려있어 분식점에서 김밥 한줄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버스정류장으로 나와 울산국가정원이 있는 태화루까지 가는

357번 버스에 오른다(07:55)

357번 버스 노선표

태화루 버스 정류장(08:40)

태화루쪽에는 버스 노선이 많으나 내가 가야하는 기령(기백이재)을 가려면 매곡동이나

달천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 노선이 보이지 않아서 할 수 없이 택시를 탄다.

 

울산의 대표적인 지명이 태화(太和)인듯 싶다...울산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이 태화강이고

이곳 태화루가 울산을 대표하는 듯 싶다...태화(太和)라는 지명은 천하가 태평하고 화목하다는 뜻으로

중구에 있는 태화동(太和洞)은 울주군 상부면의 지역으로서 이곳에 태화루(太和樓)가 있었기 때문이며,

울산의 태화강이나 태화교, 태화루 등의 이름은 신라때 이곳에 태화사(寺)라는 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태화사는 신라 10대 사찰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慈藏律師)는 소판(蘇判) 무림(茂林)의

아들 김선종(金善宗)의 법명(法名)인데, 그의 어머니가 하늘에서 별이 떨어져 가슴에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석가모니 탄신일인 4월 초파일에 낳았다 한다.

 

태화루(太和樓)는 옛 태화사의 남쪽 종루각을 중수하여 명명하였는데, 누각은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리고

서거정(徐居正)의 현액(懸額)은 이휴정(二休亭)에 걸려 있다.

 

기령(旗嶺)삼거리(09:05)

태화루에서 택시를 타고 기령삼거리에 도착한다(택시요금 18,000원)

기령삼거리 맞은편에는 선답자의 산행기 등장하는 공명선거공원인데 지금은 기박산성

의병 테마파크라는 이름으로 한참 공사중이다

기박산성 의병테마파크 공사현장에 기령 표시석의 모습

지도상에는 이곳에 수준점이 있다는데 찾을수가 없어서 삼거리로 내려간다

기령(旗嶺:기백이재)는 이곳에서 북쪽으로 약 300여m 떨어져 있는 기박산성(旗朴山城)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기박산성은 관문성과는 별도로 성의 동쪽으로는 산세가 완만하여 왜구의

방어에 적절한 곳이며, 남쪽의 동해 일원및 서쪽으로는 울산광역시 농소지역 일대를 동시에

관망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갖춘 곳이다.

 

신라 33대 성덕왕(聖德王 21년:722년) 10월에 쌓은 성으로 삼태봉 산마루를 둘러싼

포곡식(包谷式)으로 길이가 1.8km나 되며, 이 성의 특이한 점을 살펴본다면 홍수를

대비하여 배수구 3곳및 성돌 하단석에 명문석(銘文石)이 10여개나 발견되어 학계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기박산성은 성을 쌓은 그 둘레에 붉은 기를 꽂아 방향및 거리를 표시하여 쌓은 것이므로

기(旗)의 명칭이 붙혀진 것으로 보인다...기박산성은 임진왜란 때 울산 선비 18人이 나라의

위란(危亂)에 몸과 마음을 하늘에 바칠것을 명세하며 처음 결진편대(結陣編隊)를 하였던 곳이다.

이와같은 공신의사(攻臣義士)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하여 울산광역시 문화원 병설 북구 황토문화

연구회에서 주최하여 매년 4월 23일에 이곳에서 의병추모제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기령삼거리에 있는 동대산 등산 안내도

산행을 시작하다(09:15)

좌측 능선이 맥길인데 그냥 편안한 도로를 따라서 간다.

신흥사 입구(09:17)

좌측으로 신흥사로 가는 길이고 맥길은 우측의 동대산쪽으로 향한다.

 

함월산 신흥사(含月山 新興寺)는 울산광역시 북구 대안동 739변지에 소재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通度寺)의 말사로 푸르른 녹음 따라 함월(含月)의 골짜기로 들어서면, 신라의

선덕여왕 당시에 설립된 고찰 신흥사가 자리하고 있다.

신흥사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후 당나라의 공격을 받을 때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명랑조사(明朗祖師)가 세운 사찰이다.

건흥사의 창건주가 신라 호국불교를 지표로 삼은 명랑조사였다는 사실은 호국도량으로서 신흥사의

면모를 짐작케 하는데 문무왕 당시 신라가 만리성을 쌓는 동안 신흥사에는 승병 백여 명이 머물면서

무술을 닦았다고 하니, 이 절이 초기부터 승병과 관련된 호국도량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양란 때는 승병들을 모아 전투에 참가하여 호국의 의지를 불태우고 군량미를 제공하는 등

울산지역 승병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함으로써 명랑조사의 굳건한 뜻을 이어왔다.

이후 6.25사변 당시에는 남부군 활동지로서, 지리산 자락의 여러 사찰들처럼 수많은 경전과 판각이

사라지고 폐허가 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고목 아래에 앉아 고찰의 방문을 물을 때 낯선 객의

모습에 하늘은 금새 흑색으로 바뀌고 동쪽에서 소용돌이가 불어와, 마치 명랑스님이 부린 조화와 같다.

울산의 호국도량 신흥사를 찾아가는 길은 조사가 쳐놓은 문두루비법이 펼쳐져 있는 듯, 미로를 헤매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산불감시초를 지나...

동대산 테마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테마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가는데 오늘은 꽃길만 걸을려나?

도로 주변에는 유명한 詩들이 많이 보인다

임도 우측으로 샛길들이 보인다

도로를 따라서 가니 사각정자가 나오고 신흥재라는 표시석이 보인다

신흥재(新興峙:444m:09:28)

울산광역시 북구 매곡동과 대안동을 이어 주는 고개로 대안동 신흥사 위 낙서암에서 동대산맥을 넘어

매곡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신흥재 서쪽 매곡동 너머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太和江)의 제1지류인

동천강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신명천이 대안천(大安川)과 합류하여 동해(東海)로 흘러들고 있다.

지명의 유래는 신라시대인 673년(문무왕 13) 명랑조사(ㅊ明朗祖師))이 창건한 신흥사(新興寺)가 대안동에 있어서

붙은 것으로 보인다

신흥재에 있는 이정표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오름길에서 뒤돌아 본다...2주전에 걸었던 삼태봉이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 신흥사로 가는 샛길이 보인다

마동재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능선에 올라선 다음에 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525.4m봉(09:38)

우측으로 내려간다

조금전에 헤어진 도로로 되돌아 온다

꾸불꾸불한 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울산시 북구 매곡동의 모습

도로를 버리고 샛길로 내려간다

다시 도로를 만나고 도로 우측에는 호화로운 묘지가 보인다

학성이씨 월진파 봉안당(09:45)

학성이씨(鶴城李氏) 월진파(越津派) 문중 봉안당이 화려하게 조성되어 있다

다시 편안한 도로를 따라서 간다

도로 좌측 20m지점에 보리수나무가 있다는데 그냥 통과한다

도로는 비포장도로로 바뀐다

마동재(麻洞峙:444m?:09:52)

울산광역시 북구 대안동과 매곡동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사각정자 쉼터와 표시석,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장승이 있는 매곡동 쪽으로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는데 지나온

신흥재와 이곳 마동재의 표시석에 기록된 높이가 똑같이 444m이다

 

마동이란 지명은 예전에 삼을 재배하였기 때문에 삼밭(麻田)이라 하던 것이 삼밭으로 변하여

삼[麻]은 마[麻]이니 마동[麻洞]이라는 이름으로 변했다고 한다.

마동재 우측으로는 매곡동으로 내려가는 샛길이 보인다

도로 좌측으로는 대안동으로 내려가는 샛길이 보인다

NO6/NO5 송전탑(09:53)

계속되는 꽃길(?)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서니 2003 임도시설 매곡~대안지구 표시석이 보인다

도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416.4m봉(10:01)

우측 능선으로 내려간다

다시 도로로 복귀한 다음에...

비포장 도로를 따라서 간다

우음산장 코팅지가 있는 곳에서....

 도로를 버리고 우측 샛길로 올라간다

431.0m봉(10:10)

431.0m봉을 내려와서...

 조금전에 헤어진 도로로 내려선다

우음재(10:15)

음재는 동대산(東大山, 446.7m)의 북쪽 산기슭에 자리 잡은 고개로, 동대산의 정상으로 오르는 고갯길로

동대산을 끼고 울산광역시 북구의 매곡동, 호계동, 대안동이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으로는 동대산 산줄기가

바다 끝으로 이어져 있으며 울산의 동해(東海) 앞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고, 서쪽으로는 울산광역시

북구 호계동 시가지가 자리 잡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동화산(東華山), 무룡산(舞龍山) 산자락과 산맥을

이어 가고 있는데 동대산과 삼태봉 사이의 해발 400~500m 지점에 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동대산으로 올라간다

오르막길로 올라서니 우측에 동악정이란 팔각정이 보이고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동대산(東大山:446.7m:10:21)

울산광역시 북구 매곡동·호계동·대안동·창평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산줄기가 바로 바다로 내리치는

전형적인 바다를 낀 산맥으로서 높이는 낮지만 바다의 지면으로부터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마치 바다의

해풍을 막아 주는 방패 같은 산으로 ‘동대산(東大山)’이라는 명칭은 울산광역시의 동쪽에 있는 큰 산이라는데서

불리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전형적인 노년 산지로 산세는 남북 사면이 완만하고 동서 사면은 급한 편이며 북쪽과 남쪽에는 주로 산지가

발달되어 있으며, 서쪽과 동쪽은 낮은 지대가 형성되어 있고 특히 동쪽에 바로 동해(東海)가 펼쳐진다.

북쪽으로 삼태봉을 시작으로 관문산, 조양산, 경주의 토암산까지 줄기를 이어 가고 있고 남쪽으로는

무룡산(舞龍山)과 새바지산의 해발 500m 이내의 낮은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동대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곳곳에 소류지를 이루고 동쪽으로는 대안천을 만들어 동해로 유입하며,

서쪽으로는 호계천을 만들어 태화강(太和江)의 제1지류인 동천(東川)으로 흘러든다.

동대산 정상석 뒷면에는 큰재 정상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울산)에 "동대산(東大山)은 고을 동쪽 25리에 있다.

효성점(曉星岾)은 동대산의 남쪽 지류이다. 남목천(南木川)은 고을 동쪽 30리에 있으며 물 근원은

동대산(東大山)에서 나왔고, 파련암포(波連巖浦)와 합해서 바다로 유입한다. 열암사(裂巖寺)는 동대산 남쪽에 있다.

백련암(白蓮菴)은 동대산 서쪽에 있다."라는 기록에서 계속 지명이 등장한다. 『해동지도』(울산) 등 군현지도에도

빠짐없이 수록하고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무리롱산(無里籠山)에서 남쪽으로 뻗은 줄기가 남목천(南木川)과

어풍대(御風坮) 사이에 4개의 봉우리로 묘사하고 있다.

 

동대산과 삼태봉 사이 해발 400~500m 지역에는 약 2,500~6,0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습지가

여럿 분포하고 있는데, 단일 지역으로는 한국에서 면적이 가장 넓고, 습지 수도 가장 많은 곳이다.

산재한 습지 가운데 뻔지늪은 면적이 6만 2574㎡[가로 652m, 세로 559m]로 가장 큰 규모이며,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정족산 무제치늪의 5.5배에 달한다.

이러한 습지 환경은 각종 희귀 동식물의 서식처로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 생태계 보호 지역으로 지정된

바 없이 계속해서 환경 훼손이 우려되는 상황이라 습지 보전과 복원 등의 조치가 필요한 실정이다

인증샷

동대산 정상에서 바라본 울산시 북구 매곡동(梅谷洞)과 그 뒷쪽으로는 10년전에 걸었던 호미지맥 능선이 흐릿하다.

울산광역시 북구에 있는 매곡동(梅谷洞)은 조선 후기 광해군(光海君) 때 승려이자 풍수지리의 대가였던

성지(性智)의 비설 ‘매화락지(梅花落地)’의 혈(穴)을 가린 곳이라 하여 ‘매곡(梅谷)’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뫼골’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도 있는데, 산의 뜻인 뫼가 매로 전사(轉寫)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동대산 정상에 있는 지적삼각점

동악정과 동대산 정상석이 있는 넓은 공터를 지나...

화장실과 돌탑이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동대산 해맞이 정자와 돌탑이 있고 울산시내에 있는 산이라 그런지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동대산 해맞이 정자 앞에는 소구부리재(장재, 큰재) 안내판이 보인다

 

소구부리재(큰재ㆍ장재) 호계동 수성마을 홈골에서 강동동 우음, 대안으로 넘어가는 재인데,

재가 너무 험하여 옛날 소 등에 나무와 풀을 베어 싣고 오르내릴 때 소가 구른다 하여 소구부리재

또는 큰산(동대산)이라 하여 큰재, 장재라고도 부른다는 안내판이 있다

팔각정이 있는 동탑을 지나 내리막 도로로 향한다

그런데 갑자기 스마트폰의 오룩스앱이 작동이 안되고 이런 메시지가 뜬다.

내가 원래 기계치인데다가 머리 쓰는게 싫어서 선답자의 산행기를 대충 읽고 온

경험으로 걷는다...나중에 집에와서 다음날 핸드폰 가계에 갔더니만 수락만 누르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을 멍청하게 끝날때까지 그냥 진행했다...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제

이정표를 지나니...

등로 좌측 능선에 항공무선 유도탑 안테나 보인다

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항공무선유도탑이 있는 444.8m봉 정상에 도착한다

 444.8m봉(10:31)

이곳에 삼각점이 있다고 해서 사방을 둘러 보아도 찾을길이 없어 포기를 한다

 444.8m봉에서 직진으로 내려간다

묘지가 나오고...  

조금전에 헤어진 도로로 내려선다

사각정자(10:34)

다시 도로를 버리고 사각정자옆 샛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정자에다 누군가가 ‘테스형! 말 좀해줘 우측 통행하라고’라는 낙서를 해놨다

도로가 아닌 호젓한 등산로를 따라간다

곧바로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돌탑이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돌탑 삼거리(10:38)

돌탑삼거리 갈림길 이정표에는 무룡산과 무룡고개를 좌측 아래쪽으로 가리키나

맥길은 우측의 비포장 임도로 이어진다...좌측으로 가면 나중에 저승재에서 다시 만난다.

완만한 오르막길로 올라서니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산꾼을 반긴다

野性(?)을 잃어버린 지맥길...참으로 지루하다

무제등(舞祭嶝:10:45)

사각평상과 무제등,무제산 안내판, 이정표(→동대산 1.3이정표(↑홈골못 1.3km, ←대안임도 삼거리 0.9km)가

있고 지맥길은 좌측 내리막으로 내려가나 울산시 북구 호계동으로 이어지는 직진의 뚜렸한 등로로 조금만

가면 족보가 있는 431.0m봉이 있어 거기를 가보기로 한다

무제등에 있는 안내판과...

이정표의 모습

무제등에서 호계동 방향으로 200여m 정도 가다가 우측 숲으로 들어간다 

431.0m(10:48)

명색이 족보있는 봉우리인데 버림받은 庶子의 봉우리이다.

그나마 다행인게 독도는 우리땅님의 시그널 하나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다시 무제등(10:50)

급경사의 내리막길

내리막으로 내려가다 좌측으로 맥길이 이어지는데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잠시후에 가야할 402.8m봉이 보인다...미끄러운 등로를 지그재그로 내려간다

새로 신고온 등산화가 발이 많이 아프고 미끄럽다...이곳에서 한번 미끄러진다

돌탑삼거리에서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저승재(10:58)

울산광역시 북구 호계동과 대안동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저승재 안내판과 사각정자가 있다.

저승재의 다른 지명으로는 밸방재, 배비랑재, 배배랑재라고도 부르며, 무룡산의 한 날개라 하여

날개뱅이에서 북쪽으로 진입, 강동동(江東洞)의 우음, 아홉사리로 넘어가는 재로 비탈길이

험난하고 벼름빡같고 떨어지면 저승간다하여 저승재라고 부른다

저승재 유래 안내판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苦行

우측은 천길 낭떠러지이다...이곳에서 떨어지면 곧 바로 저승길이다

감사합니다

안부(11:03)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335m봉(11:05)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連理枝?

조금전 저승재에서 헤어졌던 임도를 다시 만난다.

임도에서 만난 이정표

 대안임도 삼거리(11:10)

좌측에 커다란 돌탑 2개와 쉼터가 있고  이정표엔 대안임도 삼거리 →무룡(정자)고개 8.9km ↗ 대안마을 7.1km

←동대산1.3km 적혀있고 지맥길은 좌측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대안마을 방향으로 향한다

대안마을 방향의 좌측의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울산시 북구에 있는 대안동(大安洞)은 조선 전기 대안동(大安洞) 지역에는 숙박 시설이었던 대한원(大閑院)이

있었다고 하며 ‘대(大)’는 산을 뜻하며, ‘한(閑)’은 크다는 뜻이 있어 ‘대한’은 큰 산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후 ‘대한’이 ‘대안’으로 음이 변하였다고 한다

북쪽은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남쪽은 창평동·무룡동·산하동, 서쪽은 호계동·매곡동, 동쪽은 신명동과 접한다.

대부분 지역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남쪽에 동대산이 자리하며 신명천과 대안천이 흐른다. 파군산,

달기미산, 아홉사리, 저승재, 신흥재, 우음밭골, 다음골 등이 있다.

쉼터 평상이 있는 곳을 지나서...

대안동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등로는 비교적 뚜렸하다

묵묘도 보인다

반갑습니다

무명봉을 넘어서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 사거리(11:17)

좌측 아래로는 조금전에 헤어진 대안동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임도가 보인다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무명봉 능선에 올라서서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402.8m 봉(11:25)

402.8m봉에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묵묘가 있는 안부로 내려선다...묘지 상석에 적힌 내용을 알아볼 수가 없다

안부(11:31)

안부를 지나고...

다시 완만하게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422.4m봉 갈림길(11:37)

맥길은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고 맥길에서 좌측 능선으로 100여m 정도 올라가면

맥길에서 약간 떨어진 422.4m봉이 있어서 거기를 가보기로 한다

422.4m봉(11:38)

맥꾼들이 찿지않는 봉우리인 모양이다...정상에는 남양주 금곡님의 시그널 하나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왔던길을 되돌아 내려간다

마루금에 복귀하여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이장한듯한 묘터를 지나 내려서니...

시멘트 임도가 나온다

임도(11:46)

조금전 돌탑 2개가 있었던 대안 삼거리 임도에서 우측으로 왔던 도로를 다시 만난다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길을 걸어간다

임도를 건너니 경주최공&배부인 월성이씨 묘지가 보인다

묘지 사이의 小路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350m봉(11:50)

350m봉에서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진 도로를 다시 만난다.

계속되는 임도길

임도는 휘어지고...

임도 아랫쪽은 울산의 농소지구 아파트들이 보이고 그 뒷쪽의 호미지맥 치술령은 미세먼지에 갇혀 버렸다

다시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선다

서울쪽과는 달리 날씨는 그리 춥지 않으나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은 상당히 차갑다

우측 아래의 계곡에서 올라오는 찬바람은 추위를 느끼게 한다

370m봉(12:02)

370m봉 능선에서 내려오니 바람이 불지 않는 옴팍한 곳을 자리잡아 점심상을 펼친다

점심밥상(12:03~12:13)

서울역 페스트푸드점에서 산 새우버거와 콜라로 점심을 대신한 다음 다시 길을 나선다

안부(12:14)

좌측으로는 계속 임도가 따라오고...

안부에서 임도가 아닌 능선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367m봉(12:15)

367m봉 등로 우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송정저수지가 아련히 보인다

안부(12:16)

좌측에 묘지가 있고 그 옆으로 임도가 따라가며 달령 진달래 군락지 안내판이 있다

안부 좌측에 있는 진달래군락지 팻말과 묘지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쉼터(12:21)

우측의 사면길을 버리고 등로가 없는 직진 능선으로 올라간다

371.6m봉(12:23)

371.6m봉에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조금전에 헤어진 사면길로 내려온다

갈림길(12:26)

y자 갈림길이 나오고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우측의 송정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에 시그널이 몇개 걸려 있으나

맥꾼들의 흔적이 아닌 일반 등산객들의 시그널이다...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신갈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완만한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347.9m봉(12:29)

정상에는 4등삼각점이 있고 해오름봉이란 산패가 있는데 조망은 영 아니다

347.9m봉 정상 삼각점(△울산429/1992재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달현재((達峴:12:35)

지도상의 달현재이다...울산광역시 북구 송정동에서 무룡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무룡산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지나간다...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만나고...임도와 숨바꼭질하는 기분이다

 

송정저수지 위쪽에서 울산 강동면 달곡으로 넘어가는 재를 達峴 또는 達嶺 이라 한다.

조선조에는 창평리 원지에서 달령으로 돌아 우음이 다음밝골을 지나 대안에서 양남 양북으로 북상하는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이기도 하다. 달령재를 오르다보면 돌을 쌓아둔 곳들이 많이 보이며 정상에는

큰 돌무덤이 있다. 돌무덤을 분석해 본다면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산짐승들의 울음소리와 험란한 재를

넘다보면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고 식은땀을 흘리게 된다. 그런 무서움을 없애기 위해 한사람 두사람

돌을 하나씩 쌓으면서 신의 믿음으로 그 힘을 빌려 마음의 편안을 하기 위해 쌓은 돌무덤을 신당이라 하였다.

다시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무명묘지를 지나니 다시 임도를 만나고 쉼터의자와 사각정자가 있는 임도에 쉼터가 나온다

임도 쉼터(12:42)

우측의 무룡고개로 이어지는 임도를 버리고 무룡산 방향으로 올라간다

오르막을 올라서니...

편안한 능선이 나온다

묘지(12:49)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간다

337.9m봉(12:52)

337.9m봉 정상 숲속에는 녹슨 국기봉같은 철제물이 보인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임도를 만나서 좌측의 무룡산 방향으로 향한다

임도에 있는 이정표

임도를 따라서 가다가...

임도에서 무룡산 방향의 능선으로 향한다

296m봉(13:02)

우측에 있는 묘지를 바라보면서 편안한 길을 내려간다

임도(13:05)

맥길은 무룡산으로 이어지고...

쉼터(13:10)

무룡산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샛길로 향한다

이곳을 지나서...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사각평상이 있는 임도를 만나는 길에서 임도가 아닌 우측 능선으로 향한다 

곧바로 임도로 내려온다...계속 임도를 따라올 걸...헛짓거리한 기분이다

임도를 지나서 이정표에 무룡산 정상 표시의 우측이 아닌 무룡산 숲길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능선에 올라서니...

우측에서 오는 임도와 합류를 한 다음에...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만나는 곳에 이정표가 있다

우측으로는 커다란 돌탑이 보이고...

현대자동차에서 조성했다는 단풍산길 표시석이 서있다

무룡산숲속 쉼터(13:18)

단풍산길 표시석 좌측에는 넓은 광장의 무룡산숲속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무룡산 숲속 쉼터를 지나서 매봉재로 이어지는 임도를 버리고 좌측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이곳에 병영초등학교 학습림인 모양이다

무룡산 가는 길

데크목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룡산 진달래 군락지 팻말이 나오고...

직진의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억새길을 지나니 무룡산 헬기장이 나온다

무룡산 헬기장(440m:13:38)

울산시내에 근접해 있는 산이라서 그런지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헬기장 좌측 아랫쪽으로는 강동농산물 주말직거래장터 안내 이정표가 있다

헬기장에서 무룡산 정상쪽을 바라보니 KBS와 울산(UBC)방송국 중계탑이 보인다

헬기장 우측에는 보병 제53사단에서 세운 전투 진지 구축 기념비에는 ‘이곳을 거친者 祖國을

지키리’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백번 지당한 말씀인데 요즘의 군 지휘관들은 정치권이나 기웃거리는 한심한 자들이 너무 많다.

당나라 군대라는 비아냥이 두렵지도 않은가...제발 선배들의 명성에 먹칠을 하지 마시게나...

무룡산 정상으로 향한다...맥길 가운데에 송신소가 자리를 잡고 있어 좌.우쪽으로 가야한다

좌우 어디를 가던간에 무룡산으로 향한다

KBS/울산(UBC)방송국 송신탑(13:43)

무룡산 정상으로 향한다

人生命若水泡空(인생명약수포공): 사람의 한평생은 무럭품처럼 허무해

八十餘年春夢中(팔십여년춘몽중): 팔십여 년 세월이 일장춘몽이라네

臨終如今放皮帒(임종여금방피대): 오늘 죽으면 가죽 자루를 벗어던지니

一輪紅日下西峰(일륜홍일하서봉): 또 하루 붉은 해가 서산에 저문다

 

태고(太古)보우선사(普愚禪師 1301~1382)의  임종게(臨終揭)

 

* 임종게는 승가의 장례문화 중 하나로 노승(老僧)들이 세상을 하직할 즈음에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학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나 글을 말한다.

절집에서는 세속과 달리 죽음에 이르러 남기는 말이 있는데 세속에서는 ‘유언(遺言)’으로

통하지만, 승가에서는 임종게(臨終偈)로 통한다.

무룡산(舞龍山:450.7m:13:47)

울산광역시 북구의 화봉동과 연암동, 신현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넓은 공터에 정상석과 전망대,

울산69라고 표시된 지적 삼각점이 있고, 산 아래 양쪽으로는 KBS, MBC, 울산방송국의 송신탑과 군부대,

 kt중계소들이 즐비하며, 동해안 가까이 자리 잡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동대산(東大山) 산자락과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새바지산과 마골산으로, 동쪽으로는 우가산(牛家山)으로 산줄기를 이어 가다가 동해안으로 떨어진다.

무룡산을 이 지역 주민들은 매봉산(買峰山)으로 부르고 있으며, 울산의 진산으로 산에서 바라본 울산공단

야경은 울산 12경에 지정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울산)에 "무리용산(無里龍山) 고을 동쪽 24리에 있는데,

진산(鎭山)이다."라는 기록에서 처음 등장한다.

 

『광여도』(울산) 등의 군현지도에는 무리룡산(無里龍山)으로, 『조선지도』(울산)에는 두무룡산(豆無龍山),

『청구도』에는 두무룡산(頭無龍山)으로 각각 기록하고 있다.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에는

무리롱산(無里籠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울산읍치의 북서쪽 방향으로 어련천 동쪽에

위치하며, 경주에서 동해안을 따라 이어진 줄기가 봉서산을 지나 무리롱산으로 이어져 5개의 봉우리로

묘사되어 있다.

무룡산에서 '무리(無里)'는 '물[水]'을 의미하는데, 무리룡산은 물룡산으로 이는 주룡산(主龍山)에 물을

빌던 산이라는 뜻이라고 하며 또 무룡산은 기우제의 옛말인 무우제(舞雩祭)의 '무(舞)자'와 '용(龍)자'가

합쳐진 이름으로 주룡산의 무제를 지내는 산이라는 의미로 근대에 와서 부르게 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과거 무룡산은 '무릉(武陵)산'으로, 동화산은 '도화산(桃花山)'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이는 중국 동진(東晉) 때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이상향인 무릉도원을

원용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이 두 산 사이의 계곡에 도원서당이라는 서당이 있었다고 해 계곡을

서당골로 부르게 된 것. 서당은 1800년대 중반 이후 사라졌지만, 지역주민에게는 무릉산 일대가 살기

좋은 길지로 여겨졌던 것이다.

인증샷

예전에 트롯트 가수 오은정이 불렀던 울산 아리랑에도 등장하는 울산의 진산이다.

 

운무를 품에 안고
사랑 찾는 무룡산아
산딸기 머루 다래
따다주던 그 손길
앵두같은 내 입술에
그 이름 새겨 놓고
꿈을 찾아
떠난 사람아

 

---중략---

무룡산 정상석 앞에있는 지적 삼각점(울산69)

룡산은 선녀들과 용들이 함께 춤 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옛날 무룡산 꼭대기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그곳에 일곱 선녀들이 비단옷을 입고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목욕을 하곤 했다. 이 연못에는 일곱 용들이 살았는데 각각 착을 이뤄 목욕을 하곤 했다. 그런데 에는 일곱 마리의 용이 살았다.

 

어느 날 선녀 일곱이 내려와 용들과 어울려 목욕을 하면서 놀다가 시간이 되면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곤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용들 중 앞을 못 보는 용 한 마리가 있었는데 아무도 그와 짝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결국 마음이 가장 착한 맏이 선녀와 짝을 이루었다. 그후 선녀들이 하늘에 오르내리는 것이 번거로워

옥황상제에게 청을 하여 장님 용만 빼고 하늘에서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맏이 선녀는 장님 용이 불쌍해서 연못에서 그대로 살았다.

옥황상제는 큰 딸의 아름다운 마음씨에 감동하여 그 용의 눈을 뜨게 하여 큰 딸과 함께 승천하여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었고, 그 후로 무룡산에는 연못이 없어졌다.

 

산 정상에 묘를 쓰면 울산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고 하지만, 자손들이 발복한다는 풍수설이 있어

종종 산에 몰래 묘를 쓰기도 했는데, 가뭄이 크게 들면 주민들이 무룡산 정상에서 암장을 찾아내어 파묘하였다고 한다. 《울산 읍지》에 따르면, 1924년 여름 큰 가뭄이 계속돼 농작물이 말라죽고 먹을 게 없게 되자,

주민들이 무룡산에서 몰래 쓴 묘를 파헤쳤는데, 이 때문에 묘 주인과 주민 간에 싸움이 발생해 20여 명이

경찰에게 붙잡혀 갔다고 한다.

무룡산 정상 전망대

아랫쪽에는 울산시 북구 송정동과 화봉동의 아파트들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호미(형남)기맥 묵장산 치술령의 능선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도 불구하고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무룡산 동남쪽 아래에는 kt무룡산 중계소가 있는데 이쪽이 지맥길이나 갈수가 없다.

 

무룡산 정상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통화 시설인 무룡산 중계소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 중계소는 근대적인 국제통화 방식인 지름 19m의 스캐터 통신용 안테나가 설치된 곳이다.

스캐터 통신은 대류권 산란파 통신 방식으로, 1968년 6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무룡산에 중계소를

설치하여, 270km 떨어져 있는 일본 하마다(濱田)를 향해 첫 전파를 발사함으로써 통신 역사의 새 장을

연 후, 1980년 11월 한·일 간 해저 동축 광케이블이 개통돼 국제통화가 이원화될 때까지 우리나라

유일의 국제통화 관문이었다.

 

1991년 3월 해저 광케이블을 통한 국제통화가 일반화되면서 스케트 통신 운영이 중단됐고, 같은 해

11월 한국통신 사적 제5호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 12월 시민들에게 무료 개방됐다.

이 스캐터 통신 시설은 19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한·일 프로레슬링 경기를 TV로 볼 수 있게 해준

시설로, 당시 우리 국민들은 일본에서 열린 박치기 왕 김일 선수와 안토니오 이노키 간의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면서 열광했었다.

무룡산에서 KBS와 울산방송국 중계기지를 바라보면서 되돌아 내려온다

갈림길(13:52)

 KBS와 울산방송국 중계기지 직전에서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화장실이 보이고...

kt  무룡산 중계소(13:54)

2층으로된 팔각정을 지나서 시멘트 도로로 따라서 간다

잡목이 무성한 우측 능선이 오리지널 마루금이다

울산 mbc 송신소(13:58)

울산 mbc 송신소 정문에서 좌측의 내리막 등로로 향한다

무룡고개로 향하는 계속되는 내리막길

안부(14:03)

우측으로는 울산광역시 북구 화봉동으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화봉동(華峰洞)은 지명에 들어가는 ‘화(華)’ 자는 산줄기가 평야로 겹겹이 뻗어 내린 곳을 뜻하므로

‘화봉(華峰)’은 산봉우리가 겹겹이 뻗어 내린 곳에 자리한 마을을 의미한다.

한편으로 ‘화봉’의 화를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비롯된 도화산에서 유래된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342m봉(14:03)

좋은길을 걸으면 간간히 도지는 夢遊病이 시작되는지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시야가 트이고...

잠시후에 가야할 지맥길의 마루금이 미세먼지로 인해 흐릿하다.

아주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울산시 북구 화봉동에서 강동동으로 이어지는

31번 국도에 있는 무룡터널을 지나가는  차량소리가 심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무룡(정자) 갈림길(14:17)

좌측으로는 정자가 있는 무룡고개로 내려가는 길이고 마루금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구 31번 국도가 지나가는 무룡고개로 내려선다

무룡고개(14:20)

울산광역시 북구 연암동, 어물동, 신현동으로 이어지는 고개로, '가분데고개'· '왕거령(王去嶺)'이라 부르기도 한다

울산광역시 북구 화봉동과 강동동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정자고개 또는 가운데(가분데)고개, 왕거령(王去嶺)

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예전에는 31번 국도가 지나갔으나 지금은 이 고개 아래로 무룡터널이 뚫리는 바람에

지금은 한적한 고개가 되어 버렸으며 옛날 하상면과 강동면의 가운데 위치한 고개라 하여 '가운데고개'’로,

신라시대 임금이 이 재를 넘어갔다고 하여 '왕거령'이라고도 부른다고 전해진다.

 

가운데고개는 강동 지역과 울산 읍내를 연결하는 주요 고개 중 하나로,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에서 울산으로

이어지는 무룡로라는 신작로가 1930년대 가운데고개를 넘어 개설되었는데, 이때 원래의 선형(線形)이 많이

바뀌었지만 지금도 그 잔형(殘形)이 일정 구간에 많이 남아 있다. 지방도에서 국도로 승격한 무룡로는 무룡산

자락을 돌아 굽이가 많아서 초기에는 사고도 많았다.

 

흔히 아흔아홉 구비길이라 하였고 무룡로 구간의 정상 부근이다.

현재 가운데고개 정상에는 ‘무룡고개’라는 이정표가 걸려 있으며 2006년에 새로운 국도제31호선이 생기면서

정상부에 무룡터널이 건설되고 많은 차량들이 국도 제31호선을 이용하게 되어 무룡로 고갯길은 차량 통행이

줄어들었고 더불어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 사이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다.

이곳에는 가분데고개에서 사람 살린 호랑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흔히 정자고개 또는 무룡고개라고 부르고 있는 이 고개는 연암과 정자 중간에 있다고 하여 가분데고개라고 한다. 

광복 후에 신작로가 생겨 버스가 다니게 되었다. 어느 날 이 고개에서 연암에서 정자로 향하는 버스 앞에

호랑이 한 마리가 가로 막았다. 버스를 움직여 보기도 하고 소리를 질러도 꼼짝하지 않았다. 

 

승객들이 대책을 의논했는데, 호랑이가 사람 한 명 목숨을 거두어야 해결될 것 같으니 승객마다

양말을 던져서 호랑이가 그것을 가지는 사람들 내려놓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호랑이는 다른 사람 양말은 거들떠보지 않고 어린애의 양말을 깔고 앉았다. 

한 할아버지가 어떻게 어린애를 혼자 두고 갈 수 없다면서 함께 내렸다. 

버스가 떠나자 두 사람을 남겨 둔 채 호랑이는 홀연히 가라졌다. 

 

얼마 후 그 버스가 이 고개 안떠러지에 떨어져 승객 모두 죽은 끔찍한 교통사고가 났다. 

그 호랑이는 날렵한 어느 포수에게 쫓겨 물고 있던 새끼를 놓쳤을 때 그 어린애의 어머니가

숨겨주어 새끼가 살았다고 한다.

 

고개 좌측에는 좌측 '아래율동 4.9km/ 성불사 3.9km/ 약천사 2.2km가 있고, 양떼목장

목장 휴장을 알리는 플랑카드가 걸려있는 도로명 주소가 무룡로인 무룡고개를 도로를 가로 지른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곧바로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대다수의 맥꾼들이 도로를 따라서 갔는지 등로의 흔적은 없고 잡목과 가시들의 저항이 엄청나다.

천신만고 끝에 능선에 올라서니 NO 26송전탑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206.4m봉 정상에 도착한다 

206.4m봉(14:32)

엄연한 지맥길 가운데에 자리잡은 국립지리원에 등록된 족보있는 봉우리이건만

우측 아래에 편안한 임도가 있어 맥꾼들에게 버림받은 庶者(?)의 봉우리가 된 느낌이다.

그 흔한 선답자들의 시그널 하나도 안 보인다

206.4m봉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니 처사연안차공 부부묘가 보이고 주위에 묘지들이 많이 보인다

무룡산 신당 갈림길(14:35)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조금전 무룡고개에서 헤어진 임도를 만나는 삼거리가 나온다.

직진으로 가면 맥길로 이어지는 이정표(↑작은 무룡산 2.5km/ 성불사 3.5km ↗무룡(정자)고개)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지도상에 무룡산 신당으로 가는 임도가 보인다

이곳에서 갑자기 산행이 하기 싫어진다...왠지 나도 모르겠다.

오룩스맵도 작동이 안되고...원래 계획은 오늘 당고개까지 걷고 다음에는

서울에서 좀 느긋하게 내려와 간단하게 끝내려고 계획을 잡았을는데...

이곳에서 맥산행을 종료하고 임도를 따라서 무룡고개로 향한다

다시 무룡고개(14:45)

이곳에서 울산광역시 북구 연암동쪽으로 연결되는 구31번 국도를 따라서 내려간다.

이 고개 아래로 생긴 무룡터널로 인해 잊혀진 고개가 되어 버렸지만 구절양장의 길에

교통량은 많은 편이다...거기다가 멋지게 폼을 잡으면서 지나가는 라이더족과, 잔차족들도

많이 보이는데 걸어 댕기는 사람은 나혼자 뿐이다

영일정씨 세장지(15:00)

꼬불꼬불한 구절양장의 길을 15분정도 걸어내려오니 도로 우측에 영일정씨 세장지가 보인다.

아직도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20여분을 더 내려가야 한다.

꼬불꼬불한 길을 내려가는데 횟집수조를 실은 트럭 한 대가 내려오기에 염치불구하고

손을 드니 비상 깜박이를 켜면서 세워 주신다 

이 분은 대구 비산동에서 횟집을 하시는 분이신데 31번 신도로가 막혀서 우회해서

경주i.c로 가시는 길이라면서 상연암 버스정류장에 내려주시고 가신다...복받을깁니다.

상연암 버스 정류장(15:10)

상연암 버스정류장에서 30분을 기다린 끝에 421번 버스를 타고 병영삼거리에 내려서

울산역으로 향하는 5003번 급행 버스를 갈아타고 울산역으로 향한다

울산역(16:45)

울산역에 도착하니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일단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궈고

깔끔하게 씻는다...따듯한 온수가 나와서 금상첨화이다...이곳 시설은 울산터미널과는 비교가 안된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아예 저녁까지 해결하고 식당에서 한참을 멍때리기를 하다가 플렛홈으로 향한다.

울주, 울산(蔚山)의 '울(蔚)'자는 울산지방에 있었던 옛 나라 우시산국(于尸山國)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고어(古語) 표기에 있어서 '우시산'은 우(于)+시(尸)+산(山)인데 '시(尸)'는 'ㄹ' 발음을 적기위한 표기이므로

'우+ㄹ=울'이 되기 때문인데 여기에 고을의 장래가 울흥(蔚興)하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서 울산, 울주

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서울로 올라오는 열차는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승객들이 많아서 조금은 불안하다.

마스크를 단단히 착용하고 숨한번 제대로 안쉬고 있는 사이에 서울역에 도착한다.

울산과는 달리 서울이 춥기는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