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2년 12월 04일
☞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추운 날씨에 차가운바람(낙엽이 엄청 미끄러움)
☞ 산행거리: 도상거리 12.5km+날머리 3.8km / 7시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압재-484m봉-507.9m봉-명산 갈림봉-칠봉산-조망처-묘지-안부
갈림길-십자안부-안압재-경주이씨 가족묘-삼거리-농로 삼거리
361.4m봉-335m봉-무명봉-안부-395m봉-무명봉-안부-삼도봉
526m봉-피래기재-606.8m-610m봉-무명봉-561m봉-안부
뚜꺼비 바위?-조망바위-돌탑봉-산불감시초소봉-안부-무명봉
성주산-안부-무명봉-안부-568m봉-암봉-무명봉-무명봉-무명봉
안부-돌탑봉-안부-무명봉-무명봉-안부-446.4m봉-안부
450m봉 아래 갈림길-묘지-성황당터 안부-구라리산-무명봉
기웃재-개울가-다리-광평저수지-통제구역-광평마을
☞ 소 재 지: 충북 영동군 학산면 / 전북 무주읍 / 충남 금산군 부리면, 제원면
요즘들어서 이상하리만큼 피로가 너무 많이 밀려온다.
물론 년말이 가까워져 미리 송년회를 땡겨서 하는 모임도 많지만 근본적으로는
체력저하가 예년에 비해서 심하다는 점이다...나이 탓인가?
모임을 줄이고 줄였지만 사회 생활을 하면서 안 나갈수도 없는 모임도 있다보니
지난주에도 주중에만 모임을 3개나 갔다왔고, 거기다가 토요일 새벽에 16강을
결정짓는 우리나라와 포르투칼 월드컵 경기를 새벽에 시청하는 바람에 그 여파가
큰 듯하다.
지구상에서 조그만 우리나라가 나라가 이렇게 대단하다는 걸 축구경기를 보면서
몸소 체험했다...2차전까지만 해도 4개국중 최하위였는데 우리보다 한참
랭킹이 높고, 이전에 예선에서 2승을 한 포르투칼을 맞이하여 경기 시작하자마자
실점을 하였지만 절대로 쫄지않고 기어이 역전승으로 16강의 기적을 이룰어 낸
우리 축구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대들이 진정한 애국자여!
오늘은 2주전에 이어 백하지맥 3구간을 나선다...이 백하지맥은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2번이나 악연(?)을 맺은 곳이다...지난 여름의 1구간에는 급체로
인해 중간 탈출을 했고, 2구간은 체력저하로 인하여 목적했던 거리까지
가지 못하여 남은 구간 거리가 내 체력으로는 당일 산행으로는 무리리일 듯
싶어서 고민이 많다...5년전만 하더라도 이 정도 남은 거리라면 신경도
안썼을 구간이지만 흘러가는 세월앞에는 어쩔수가 없구나.
그래!...가다가 못가면 한 구간 더가면 되지 뭘 그리 집착할 일이 있겠나.
안 그래도 요즘 산에는 등로의 낙엽이 산행거리를 줄이지 못하게 하는
주범이라 가다가 못가면 다음에 한 구간을 더 가기로 하고 이른 새벽에
집에서 그리 멀지않는 경부고속 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대전행 버스표
06시 서울에서 대전으로 향하는 고속버스 첫 차를 타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는데
얼마나 피곤했던지 잠에서 깨어나니 버스가 대전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고,
그래도 계속 잠을 잤는지 옆에 있던 젊은 친구가 ‘어르신! 다 왔습니다’하고
나를 깨우는 바람에 非夢似夢간에 차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서 버스 매표소로 향한다
대전복합터미널(07:40)
대전발 → 무주행 버스표
대전에서 무주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고나서 시계를 보니 07시 45분이다.
이 버스가 08시에 출발하니 아침 식사를 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라
근처 분식점에서 김밥 한 줄에 따듯한 캔 커피 하나를 사서 대합실 의자에서
아침으로 해결하고 버스 승차장으로 향한다.
08시에 대전을 출발하는 버스는 출발한 지 42분만에 무주공용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무주공용버스 터미널(08:42)
무주공용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무주에서 영동역으로 가는 버스 시간표를 보니
08시 50분에 출발하고 저 버스를 타고 압치고개 조금 못간 마을에서 내려가지고
700여m만 올라가면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압치고개에 도착할 수 있다.
무주에서 출발하는 직행버스 시간표와 요금표
무주군내버스 시간표와 요금표
화장실에 갔다올 시간은 되겠다싶어 화장실을 갔다오니 시간은 08시 48분.
버스를 타러가니 08시 50분에 출발해야 할 버스는 시간도 되기전에
가버리고 없다...영동역으로 가는 영동버스는 자비라곤 전혀없다.
하는 수 없이 터미널 밖으로 나와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70대 중반쯤
되시는 분이다...별로 믿음이 안 가지만 순서대로 가니 어쩔수가 없다.
압재를 잘 아느냐고 하니 잘 안다고 하는데 못 미더워 터널이 아닌 구도로를
타고 터널 윗쪽으로 가야한다고 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는 출발을 하는데 이 분은 무주읍내를 빠져나오자 마자 무주에서 영동으로
가는 4차선의 19번 국도로 들어선다.
내가 못미더워 기사님 이 길로 가도 고개위로 올라갈 수가 있나요 하니까.
그때서야 착각했다고 한다...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이곳에서는 U턴 할 수도 없이 영동군 학산면 압재마을까지 갔다가 다시
구도로로 따라서 압치고개에 도착하니 요금이 15,000원이나 나왔다.
실수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택시요금을 절반만 달라고 한다.
무주터미널에서 이곳까지 택시요금은 7,000원이면 되는데 기분 같아서는
그것도 안주고 싶지만, 나도 늙어가는 처지인데 그럴수는 없을 것
같아서 만원짜리 한 장을 주면서 수고하셨다고 하니 연신 미안해하면서
무주쪽으로 사라진다...산꾼이 아닌 택시가 알바를 하는 바람에 15분정도
산행이 늦어진 셈이다
압재고개(鴨峙:309.8m:09:12)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를 연결하는 고갯길로,
동쪽의 백하산과 서쪽의 칠봉산을 동서로 연결하는 산줄기의 낮은 부분에 있는 고개로
동서로 놓여 있기 때문에 남쪽의 물은 남대천(南大川)으로, 북쪽의 물은 학산천으로 흐르게
되지만 같은 금강 수계에 속한다.
무주군과 영동군을 연결하는 국도 제19호선이 지나며, 정상에는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19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나 이 고개 아래로 2007년에 개통된 압치 터널로 인해 옛 영화를
터널에 빼앗기고, 지금은 한적한 고개로 변해 버렸다...전북과 충북의 경계 지점이면서
무주군과 영동군의 경계 지점이 되는 곳으로 구도로가 신도로의 서쪽으로 지나고 있다.
지명의 유래는 오리들이 떼를지어 고개를 넘나드니 선현들은 이곳을 길지(吉地)라 하여
압치(鴨峙:오리가 넘나드는 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학산재라 부르기도 한다.
택시에서 내리니 날씨가 상당히 춥다...음지라 그런가 생각했는데 그렇치는 않고,
잔뜩 흐린 날씨에 금방 눈이 내릴것만한 분위기에 바람이 불어서 손가락이 빠지는
느낌이다...압재 주위는 지난번 둘러본 것으로 가름하고 서둘러 산행 준비를 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9:15)
초반에 거친 잡목이 강력한 태클을 걸어대면서 산꾼을 위협하지만,
내가 다닌 지맥길 짠밥이 얼마인데 이런 사소한 것에 쫄일은 없다.
거친 잡목지대를 헤치고 올라서니 거의 직각으로 서 있는듯한 급경사의 오르막이다.
압치에서 능선 오르막까지 0.5km도 안되는 거리에 200여m의 고도를 치고 오르려니
눈 앞이 캄캄하다...날씨가 추운데다 바람까지 살짝 불고, 낙엽이 태클까지 걸어대니
자연히 범여의 걸음은 더 느려질 수 밖에 없다.
조선조 문신(文臣)인 양사언(楊士彦:1517~1584)은 시조 태산가(泰山歌)에서 이렇게 노래했제
泰山雖高是亦山(태산수고시역산)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登登不已有何難(등등불이유하난)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
世人不肯勞身力(세인불긍노신력)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只道山高不可攀(지도산고불가반)
뫼만 높다 하더라.
느릿느릿 愚公移山의 심정으로 초반에 심장에 무리를 주지않기 위해서
미끄러운 낙엽의 저항을 받으면서 천천히 오르다보니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벗어난다
200여m 정도의 오르막길에 18분이란 시간이 걸렸다
남동쪽을 바라보니 무주 설천면 지역이 흐릿하게 보이고
그 뒷쪽으로 펼쳐지는 덕유산 방향의 산그리메가 산꾼을 유혹한다
484m봉(09:50)
잡목이 태클을 걸어대지만 그리 걷지못할 정도는 아니다.
느릿느릿 걷다보니 484m의 무명봉에 도착하여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진다.
무명봉에서 칠봉산 방향으로 가는 길은 초반에 게거품을 내면서
빡세게 올라온 이후의 휴식을 취하라는 것인지 등로는 아주 편하다
나뭇가지 사이로 칠봉산이 뾰족하게 보이는데 멀리서봐도 까칠해 보인다
507.9m봉(09:55)
칠봉산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독립군을 격하게 환영한다.
우리도 조금전에 올라온 능선은 힘들게 올라왔다고 하는 느낌이다
안부를 지나서 무명봉에 올라온 다음에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서 칠봉산으로 향한다
명산 갈림봉(496m:09:55)
이곳에서 좌측으로는 무주읍 방향으로 이어지는 명산(明山:491m)과
향로봉(420m) 쪽으로 가서 남대천(南大川)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압치에서 올라온 힘듬을 보상받는 느낌이랄까...칠봉산가는 길은 레드카페트 밟는 기분이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성터의 흔적같은 돌무더기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칠봉산 정상에 도착한다.
칠봉산(七峰山:519.9m:10:05)
전북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와 충북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준.희선생의 산패와 3등 삼각점이 있고 돌무더기에 있는 산이다.
칠봉산에 대한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주변의 봉우리가 7개라서 불려진 지명일까?
등산객들에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맥꾼들에겐 꼭 거쳐가야만 하는 산이다.
최근에는 월영봉, 성주산, 칠봉산, 백하산으로 연결되는 전북과 충북의 도계종주와
더 나아가 천만산, 삼봉산을 거쳐 황간면에 위치한 월류봉까지 잇는 종주산행지로서
각광받고 있는 산이다
인증샷
칠봉산 정상에 있는 삼각점
칠봉산 정상 삼각점(△이원313 / 1986재설)
칠봉산에 안압치(재)로 내려가는 등로도 상당히 급경사에 낙엽으로 인해 미끄럽고 까칠하다
중등산화 발목까지 묻히는 낙엽길은 생각보다 상당히 미끄럽다.
우측에는 약초재배지인지 출입금지 노끈이 처져있다.
조망처(10:10)
조망처에서 만난 멋진 노거수
육신과 심신에 지쳐서 산을 찾는 이들에겐 늘 위안이 되는 나무이다.
지친 육신과 심신을 이 나무에게 위로받고 氣를 받아서 또 한 주를 버티어봐야지
금강변에 있는 노고산(421.7m)과 양각산(568.8m)이 보이고 옴팍하게 자리를
잡고있는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 마을들이 참으로 평온하여 보인다.
전북 무주군 무주읍 북쪽에 위치한 내도리(內島里)는 내륙(內陸) 속의 섬이라는
뜻으로, 금강이 마을을 휘감고 돌아 나가 섬같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전도(前島)[앞섬] 마을은 조선 시대에는 금산군 부동면(富東面)에 속하였던 금회(錦回)
마을이고, 후도(後島)[뒷섬] 마을과 산의(山義) 마을은 무주부 북면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무주군 무주면에 편입되면서 내도리(內島里)라고 하였다.
1972년 산의[산의실·방죽안], 내동(內洞)[안골], 굴천(屈川), 후도[뒷섬], 전도[앞섬]
등의 5개 마을로 조정되었으며,1979년 무주면이 무주읍으로 승격하였다.
산의 마을, 지내[방죽안] 마을, 내동[안골] 마을, 거래대 마을, 굴천 마을, 아랫담 마을,
웃담 마을, 전도 마을 등 8개의 자연 마을이 있다.
내도리 너머로 걸쳐있는 금강 주변에 있는 갈선산(477.9m:좌측 앞쪽)과 후양산(402m),
노고산(421.7m),양각산(561.8m) 그 뒷쪽으로는 금산의 진산이라는 진악산(732m)과
2020년 12월에 걸었던 봉황(성치)지맥 능선은 성애가 낀 안경처럼 흐릿하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2주전에 걸었던 백하산이 대머리처럼 암릉구간이 되어 있고,
그 뒷쪽으로는 백두대간상의 대덕산~초점산~삼도봉에서 민주지산으로 이어는
산그리메가 흐릿하다.
조망처에 잠시 머물다가 내리막길로 내려간 간 다음에...
직진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사면길로 내려간다
약초재배지인 모양이다...저런 문구를 하도 많이봐서 그냥 개무시한다
한참을 내려오니 나뭇가지에 걸린 선답자들의 흔적이 반갑기만 하다.
아마도 예전에 산불이 났던 곳인가보다...등로가 열리고 잡목이 무성하다
2주전에 걸었던 백하산에서 내려오는 510m봉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백하지맥은 백하산에서 압치까지 왔다가 남쪽의 꼭지점을 찍고
∪자 형태로 기수를 돌려서 북쪽의 산줄기를 따라서 합수점으로
향하는 형태이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편안한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묘지가 보인다.
묘지(10:25)
묘지에 아무런 표식이 없으니 가묘(假墓)인듯하다
묘지가 있어서 그런지 등로는 완전히 고속도로이다
안부(10:27)
반갑습니다
갈림길(10:28)
시멘트 농로가 나오고 우측으로 꺽어진다...등로는 애매하지만
본분에 충실하고 싶어서 직진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우회길을
버리고 철조망을 끼고 우측으로 가니 잡풀의 강력한 태클에 직면한다
초반부터 개고생이다
후답자들은 여름 산행을 피해야 할 듯 싶다...아니면 편안한 시멘트길로
돌아가는 것도 한 방법일듯 싶다...가야할 606.8m봉(뾰족 봉우리) 너머로
성주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대단들 하십니다
서리를 맞은 잡풀이지만 아직도 성질머리가 살아 있는지 꼬라지를 부린다.
묘지 사이로 이어지는 등로로 향하는데 그야말로 非山非野 구간이다
인삼밭을 지나니 십자안부가 나온다
십자안부(10:35)
우측으로 내려가면 편안한 우회길이지만 그냥 직진으로 향한다
보은의 정이품송 후손쯤 되는듯한 멋진 소나무가 壓卷이다.
잠시나마 묘지 뒷쪽의 편안한 길을 걷는데 맥산꾼들은 ‘적당히’라는
날라리 산꾼은 없다...목적 산행을 하는 산꾼들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걸
용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그런면에서 보면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과
어쩌면 일맥상통하는 점도 있긴 하다... 맥산꾼들에겐 산에 대한 불같은 열정이
없으면 내가 원하는 목적산행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묘지 위에서 뒤돌아 본 칠봉산의 모습
뭔 지랄인지?
잡목 아래로 내려다보니 안압재(치)에서 학산면 봉소리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묘지를 지나고...
앞쪽에는 무주읍 내도리 방축안 마을이 보인다
편안한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직진의 과수원 철조망 사이로 내려서니 안압재가 나온다
안압재(치):(안앞재:10:40)
전북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 방축안 마을과 충북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 압재마을
경계에 있는 고개로 도 경계 표지판과 반사경 전봇대가 있는 1차선 도로이다
압재 안에 있는 고개라 해서 안압재 또는 안앞재라 부르며 우측의 봉소리에는
압재라는 마을이 있다.
무주읍 향로봉 뒤편의 밤숲골(방축동)에서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로 넘어가는 재로
현재는 19번 국도가 개설되면서 압치터널이 뚫려 있으며, 조선지형도(무주)에서 압재는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밤숲골 바로 위에 해당하여 그 위치를 추정할 수 있고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마치 오리 머리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반사경을 배경으로 혼자놀기
도 경계판 뒷쪽 밭두둑 윗쪽으로 올라간다
과수원 옆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가니 경주이씨 가족묘가 나온다.
경주이씨 가족묘(10:43)
등로가 難解하다...경주이씨 가족묘 우측 뒷쪽으로 올라서니
서리를 맞은 죽은 잡초들이 무성한 곳에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이리저리 잡풀을 피해서 맥길을 이어간다
방축안 마을 뒷쪽으로 펼쳐지는 양각산(兩角山:568.3m) 능선이 뚜렸하다.
양각산(兩角山:568.3m)은 전북 무주군 무주읍 굴천리와 충남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 · 수통리와 전북 무주군 무주읍 굴천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양쪽으로
각을 이루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또 양쪽으로 뿔이 솟은 듯
봉우리가 솟아 있어 '뿔뿔이산'이라고도 불린다 하는데, 예전에 세상이 모두
물에 잠겼을 때 이 산만 잠기지 않아 배를 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산이다.
악명(?)높은 잡풀 지대를 벗어나니...
흐릿한 농로로 이어지는 맥길을 따라서 성주산으로 향한다.
멍든 農心
삼거리(10:48)
조금전에 지나온 칠봉산을 뒤돌아 본다
가건물로 된 농기구 보관소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시멘트 농로를 따라서 가야할 361.4m봉을 바라보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방축안 마을 너머로 명찰 안국사를 품고있는 적상산이 보이고 그 뒤로
덕유산 능선이 아련하다.
농로 삼거리(10:53)
농로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꺽이자마자 좌측으로 올라가는데 두릅나무들이 지천이다.
능선에 오르자마자 등산화가 묻힐정도 낙엽이 수북히 쌓였으나
다행히도 아직까지 고도차 높지 않아서 그리 미끄럽지는 않다.
우째 사는지 궁금하요.
등로는 지독한 잡목지대가 길을 막지만 살짝 뒤돌아서 맥길을 이어간다.
뫳돼지들의 식흔이 뚜렸하다...이노무 쉬키들이 어찌나 지랄발광을
해됐는지 소나무 서너그루가 반질반질하고 그 옆에는 사우나(?) 시설도 있다
뫳돼지 식흔지대를 지나니 약초재배지가 나오고 서서히 고도를 높혀야 하는 곳이다.
고도차가 높지는 않고 갑자기 시작되는 오르막이지만
다행히도 낙엽이 아닌 솔갈비가 등로에 깔려있어 그리 미끄럽지는 않다
능선에 올라서서 숨 한번을 크게 쉰 다음에...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가니 족보있는 361.4m봉이 나온다.
361.4m봉(11:10)
361.4m봉을 지나서 능선은 완만하게 진행되는데, 이런 등로를
만나면 조금은 겁이난다...언제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몸뚱아리에 칼을 대기전에는 정말 산을 겁없이 다녔는데 이젠 맥꾼
답지않게 자꾸만 겁쟁이로 바뀌니 베낭을 내려놓을 싯점에 도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왠지 겁이나고 두렵다.
뫳돼지 체력 단련장이 보이고...
잠깐 만나는 잡목 사이로 잠시후에 올라야 할 능선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335m봉(11:15)
335m 무명봉에서 밋밋한 안부로 내려왔다가...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무명봉(11:18)
안부(11:20)
성주산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쭉쭉빵빵한 소나무 사이로 등로는 비교적 뚜렸하다
갑자기 나타난 급경사의 오르막에 안전로프가 처져있고, 바닥은 마사토라 미끄럽다
395m봉(11:32)
395m 무명봉에서 가느다란 소나무 사이 숲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나뭇가지 사이 우측 아래로는 영동군 학산면 봉산리가 보인다
등로는 흐릿하나 길을 잃어버릴 정도는 아니다
잣나무 조림지인듯한 등로사이의 낙엽은 미끄러우나
고도차가 없어서 그리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무명봉(11:36)
무명봉에서 직진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내리막길에는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많아서 알바할 일은 없겠다.
이노무 쉬끼들
안부(11:40)
본격적인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숨이 멎을듯한 이 고통...내가 정녕 극복할 수 없는 넘사벽일까.
급경사만 만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겪으려면 최소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
급경사의 능선에는 어김없이 미끄러운 낙엽이 꼬라지를 부리면서 태클을 건다
힘들어하는 범여를 격려하는듯한 멋진 암릉
그래 고맙구나...나홀로 걸어면서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제...
계속되는 빡센 오르막길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는 606.8m봉과 617m봉...성주산이 톱날 능선을 이루고 있다.
삼도봉(560m:12:05)
전북 무주군 무주읍과 충북 영동군 학산면, 충남 금산군 부리면이 만나는
삼도봉으로 지도상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는 그냥 무명봉일 뿐이다
좌측으로는 양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뚜렸하나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아침에 출발한 압치에서 이곳까지는 좌측은 전북, 우측은 충북의 도 경계선을
따라서 이곳까지 왔었다...전북과 잠깐 조우했던 백하지맥 능선은 이곳에서
북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면서 전북 도 경계선과 작별을 하고 좌측은 충남,
우측은 충북의 도 경계선을 따라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양호님! 부시장이라는 공직에서
퇴임하고, 지맥길도 졸업하고 뭔 재미로 사시는지?...늘 건강하소.
삼도봉에서 급경사로 한참을 내려왔다가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526m봉(12:10)
다시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빨래판 구간...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낙엽속에 묻힌 노루발...사시사철 늘 푸르름을 자랑하는 저 비결은 뭘까?
너무 추울것 같아서 내가 낙엽으로 덮어주고 간다...오늘은 구름이 잔뜩끼고
지푸린 날씨에다 바람까지 조금씩 불어대니 체감 온도는 훨씬 더 추운 느낌이다
내리막길의 낙엽은 엄청나게 미끄럽다.
스틱을 잘못 짚어 한번 꼬꾸라지니 정신이 없다.
피래기재(12:13)
영동군 학산면 황산리와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로 넘나드는 고개로 좌.우로
넘나드는 등로가 뚜렸하며, 금산인삼대장님의 자료에는 피래기재라 표기가
되어 있는데 그 유래는 알 길이 없다.
독립군의 점심밥상(12:15~30)
바람이 불지않는 옴팍한 자리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
성주산 전위봉으로 오르는 우측 능선 아래로는 학산면 봉소리가 보인다
조금 빡세게 올라서니 성터의 흔적인듯한 돌담같은 곳이 나온다.
이곳은 삼국시대 당시에 백두대간 산줄기를 따라서 금산지역으로 넘어오는
전략적 요충지라 그런지 성터같은 보루가 많은데, 삼국시대 당시에 백제가
신라를 경계할 목적으로 산성을 쌓아서 신라군사들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거점으로 무주군지에는 백제의 성왕이 방우리 뒷편 318.6m봉에 진을
치고 내도리에 있는 노고성에서 신라군과 싸웠다는 기록이 있고, 후백제의
견훤이 수통리앞 작은 갈선산 쇠주봉에다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성터같은 곳에서 바라본 충북 영동군 학산면 봉소리의 모습
앞에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가 용소봉이고, 봉소리 우측이 2주전에 걸었던
백하산 너머로 각호산과 백하지맥의 분기점이기도 한 천만산...그 이후로
영동읍쪽으로 뻗어가는 초강(각호)지맥 능선은 흐릿하다
영동군 학산면에 있는 봉소리(鳳韶里)는 마을 뒤로는 산이 둘러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학산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꾀꼬리, 독순징이, 무가(사락호),
바깥삼정(외삼정), 삼정골(삼정,안티), 새터(신기,새말), 안삼정골(내삼,내삼정),
안앞재(내압티), 앞재(앞티) 등이 있다.
꾀꼬리는 근처에 ‘앵소유지형’의 명당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삼정은 마을에
세그루의 느티나무 정자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새터는 새로 생긴 마을이며,
앞재는 앞재 밑에 있는 마을이고 바깥삼정은 삼정골 바깥쪽에, 안삼정골은 삼정골
안쪽 백화산 밑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동남쪽으로 바라보니 영동에서 무주로 이어지는 19번 국도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백두대간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다
606.8m(12:45)
준.희 선생의 산패가 있는 곳에서 북쪽으로 향한다
이곳에서는 금산군에 걸쳐있는 지맥 능선에서 자주만난 인삼대장 산패를 만난다.
606.8m봉 능선에서 급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급내리막길에서 바라본 학산면 봉산리의 모습
610m봉(12:48)
우측으로는 계속해서 영동군 학산면 지역이 백하지맥 능선과 遊戱를 즐긴다.
사람이 사는 마을도 산이 그리운 모양이다...그래서 서로 의지하면서 사는지도
모르겠다...뾰족봉인 용소봉 뒷쪽으로 학산면소재지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 있는
영동읍내의 아파트는 육안으로는 식별이 가능한데 똑닥이 렌즈로는 식별이 안된다.
용소봉(龍沼峰:461.1m)은
영동군 학산면 학산리와 지내리 경계에 위치한 봉우리 전설에 의하면 '용소봉 산봉우리에
용이 올라간 자리가 움푹 패여있는데 이곳을 용수봉(龍水峰)이라 부른다.'는 내용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 해 여름 장맛비가 퍼붓는 날,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는데 그때부터 마을사람들이 용소봉으로 불렀다고 하며,
가뭄이 들 때 용소봉에 올라 용신에게 기우제를 지내면 비를 뿌려준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무명봉(12:50)
앞을 바라보니 잠시후에 오를 산불감시초소봉과 성주산이 까칠하게 보인다
아주 급경사의 내리막길 우측의 무명봉 아래에는 부처손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암릉 우측 아래로는 천길 낭떠러지라 삐끗하면 황천길행이다.
조심 또 조심하면서 내려오니 안부가 나오고..
안부같은 옴팍한 곳에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사랑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連理枝를 닮고 싶은 소나무, 아니 닮아가는 소나무
어쩌면 전생에 戀人이었는지 모르지...
사랑은 좋지...맘껏 하시게나
561m봉(13:00)
까칠한 암릉구간을 지나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3:02)
뚜꺼비 바위?(13:04)
뚜꺼비처럼 생긴 바위 윗쪽 능선으로 올라와서...
뚜꺼비 바위를 바라보니 강심장의 산꾼들은 올라가도 되겠다.
예전엔 저런델 올라가는 건 식은죽 먹기였고, 꼭 올라 가봐야 직성이 풀렸는데
범여는 이제는 심장이 약해진 탓인지, 자신이 없는 나약한 산꾼으로 변해 버렸다.
더군더나 나홀로 산행을 하는 처지라 행여 어찌될 지 모르겠다는 조바심도 있고...
편안한 능선을 잠시 걷다가...
본격적인 빡센 오르막길의 암릉구간이 산꾼을 기다린다
오늘 산행중에 가장 위험한 곳이다...굉장히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조망바위(13:12)
조망바위에서 오늘 내가 걸었던 길을 뒤돌아 본다.
산과 여인은 멀리서봐야 예쁜 모양이다...그곳을 지날때는
몰랐는데 지나와서 뒤돌아보니 뒷태가 정말 환상적이다.
바로 앞에는 조금전에 지나온 606.8m봉과 삼도봉...양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고 그 너머에는 칠봉산과 19번 도로가
지나가는 오늘 산행 들머리도 뚜렸이 보이고 맨 뒷쪽으로는
민주지산에서 삼도봉을 지나 덕유능선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무주군을 외호하는 듯 병풍처럼 둘러 처져있다
겨울산 / 김태정
한시절 붉고 노란 단풍으로
내 마음 끝없이 일렁이게 하더니
내 마음 일렁여 솔미치광이버섯처럼
내가 네 속을 헤매며
네가 내 속을 할퀴며 피
흘리게 하더니
이제 산은 겨울산이다
너는 먼빛으로도 겨울산이다
어느결에 소스라치게 단풍 들어
네 피에 내가 취해 가을이 가고
풍성했던 열애가 가고
이제 우린 겨울산이다
마침내 헐벗은 사랑이다
추운 애인아
누더기라도 벗어주랴
목도리라도 둘러주랴
쌀 한줌 두부 한모 사들고 돌아오는 저녁
내 야트막한 골목길에 멈춰서서 바라보면
배고픈 애인아
따뜻한 저녁 한끼 지어주랴
너도 삶이 만만치 않았으리니
내 슬픔에 네가 기대어
네 고독에 내가 기대어
겨울을 살자
이 겨울을 살자
삼도봉에서 양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뚜렸이 보인다
조망바위 아래로는 새로 개설한듯한 임도와 이동통신탑도 보인다
돌탑봉(13:14)
바로앞에 보이는 산불감시초소봉으로 향한다
등로에서 서쪽으로 바라보니 바로 앞에는 曲流하면서 흐르는 금강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한국타이어 금산공장과 그 뒷쪽으로는 진악산이 뚜렸이 보인다.
산불감시초소봉(617m:13:16)
잠시후에 오를 성주산이 손에 잡힐듯 가깝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음지라서 그런지 낙엽속의 등로는 살짝 얼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스틱에 용을 쓰면서 힘을 가했던지 스틱이 쑥 들어가면서
중심을 잃고 쳐박히는데 10여m 넘게 굴러서 아래로 내려오니 안부이다.
다행히 낙엽이 푹신하여 다치지는 않았다...휴!...十年減壽했네
안부(13:19)
암릉 사이를 이리저리 곡예하듯 성주산 정상으로 향한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가 치열하게 영토분쟁을 하면서
땅따먹기 했던 곳이라서 그런지 성주산 주변에는 성터의 흔적이 많이 보인다
동쪽으로 바라보니 2주전에 걸었던 백하산에서 압재로 내려오는 능선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우측의 덕유능선에서 삼봉산, 초점산, 대덕산, 삼도봉, 석기봉,
민주지산, 각호봉, 천만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장쾌하다
무명봉(13:25)
조금을 걸어서 북쪽으로 향하니
성주산이 나온다.
성주산(聖主山:623.9m:13:27)
충북 영동군 학산면 학산리 · 지내리 · 봉산리와 충남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성주산악회창립기념비(慕鄕碑)와, 3등 삼각점이 있고
봉우리 근처에는 신라시대에 축성되었다고 하는 산성터의 흔적이 군데군데 보인다
지명의 유래는 산기슭에 영험한 바위가 있어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는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신라 시대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산성이 있다고 한다.
인증샷
정상석 뒷쪽엔 출향한 이 지역 출신들이 고향이 그리면서 정상석을 세웠는지
모향비(慕鄕碑)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성주산 정상 삼각점(△이원312 / 78.9 복구)
성주산성터의 흔적인듯한 돌무기가 있는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성주산인 이곳은 성주산성지(聖主山城地)로 신라의 성지로 전해지며, 당시
양산하에 위치하였고, 백제와의 접경지대였는데, 성을 구축할 때 왕이 머무른
곳이라하여 성주산성(聖主山城)이라 전해져 내려온다.
등로는 낙엽에 묻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아서 내가 길을 찾아서 가야한다
안부(13:32)
금새 오르막길로 이어지는 계속되는 빨래판 구간...의외로 체력소모가 많다
무명봉(13:35)
봉우리 정상에는 관리가 되지 않는 묘지가 있다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이곳도 음지라서 그런지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13:40)
안부에서 올라와 잠깐동안 편안한 능선을 걷는다
빨래판 구간의 등로는 늘 답이 정해져 있다.
밑바닥까지 내려왔으면 빡세게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
이 원리를 주식 투자에 응용하면 대박이 날텐데 말이야.
근데 개미들은 주식 시세판에 빨간불이 도배를 하고 있을때 매수를
했다가 안부까지 떨어지는 파란불에 투매를 하여 돈이 많이 잃어
버리는데, 반대로 하면 재미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인간의 심리란 그렇지 않으니 문제란 말이야...
568m봉(13:45)
무명봉을 내려서니 예전에 산불이 났는지 벌목한 곳이 나온다
등로가 열리면서 아무래도 오늘은 저기까지 못 갈것 같은 갈기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잠시 거추장스런 지맥길이지만 그런대로 걸을만 하다.
맥길은 맥길다워야지 너무 길이 좋으면 왠지 어색하고
다음에 까칠하고 힘든 구간이 나올까봐 두려운게 지맥길이다.
참새부리처럼 생긴 멋진 암릉을 만나며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암봉(13:49)
암릉을 내려서는 구간은 칼바위 능선이라서 좌측 사면으로 우회하면서 걷는다.
힘든 구간을 내려서면서 잠시 편안한 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13:53)
무명봉에서 직진 능선이 아닌 좌측의 등로가 보이지 않은 곳으로 내려간다
조금을 내려오니 비실이부부님의 시그널을 비롯한 선답자의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잠시 잡목의 저항에 직면하지만 곧바로 끝이나는 능선을 통과한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완만하게 걸으면서 방전되는 체력을
충전하기 위하여 호주머니에 있는 육포를 꺼내 씹으면서 걷는다
무명봉(14:00)
계속되는 희미한 등로
등로 우측으로는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지내리(池內里)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는 오래된 마을로 지내, 광평(넘벌)
마을의 지웃골은 신라와 백제의 전쟁터로 유명했으며, 성주산 노고산성의 성곽 흔적이
지금도 약 320m 가량 남아 있고, 전쟁 중에 백제의 성왕이 머물기도 하였다고 하며,
넘벌이라는 명칭은 삼국시대 흔히 쓰던 지명인 것으로 보아서 그 때부터 생긴 마을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지내리는 1800년경 모리 입구에 큰 저수지를 만들면서 못 안쪽마을이라하여 행정구역
개편 시에 명칭을 정하였고, 250여년 전에는 구수골(광평에서 모리로 넘어가는 골짜기가 있었음)에
동네를 이루고 살았는데 그곳에는 도둑이 많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살았다고 한다.
양남일소면 당시에는 근방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고 하며, 지내, 광평은 1914년 3월 말까지
양남일소면의 면소재지로 1917년 면제가 공포되어 정식 업무를 보기까지 면 의장이 군수의
보조 기관장 역할까지 했던 곳으로 집무장소는 581-1번지의 여씨 서당이었다고 한다.
세종 때 종일품 숭정대부 판중추부사를 지낸 문절공 정수충 선생의 영정을 모신 서당이
광평 동에 있으며, 군수를 비롯한 인근 마을 지역 유림(추현계원 150여명)들이 기일(음력 9월 6일)을
택하여 기제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무명봉(14:04)
등로는 보이지 않고 가뭄에 콩나듯이 보이는 선답자들의 흔적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안부(14:09)
억새를 헤치면서 보이지 않는 등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돌탑봉(446.4m:14:15)
이곳에서 돌탑 뒷쪽의 능선을 따라서 가면 광평저수지 방향이고
지맥길은 좌측으로 90도 꺽어져서 내리막길로 향한다
돌탑봉에서 키가 큰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4:20)
안부에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오르는데 오늘은 유난히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많이 만나는데, 마치 권투경기에서 잔펀치를 많이 맞으면
나중에 damage가 많이오는 것처럼 오늘 산행은 잔봉우리를 오르
내리면서 체력 소모가 많은 편이다
무명봉(14:23)
등로가 조금씩 지저분해지는 느낌이다
무명봉(14:31)
무명봉에서 등로가 거의 안 보이는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내리막길 나뭇가지 사이로는 금산군 제원면 용화나루가 있는 금강 曲流지대가 보인다
완만한 내리막길에 등로는 좋고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간간히 보인다
안부(14:36)
안부를 지나니 후손들이 돌보지 않아 방치된 묘지가 있고 오르막길이다
체력이 방전됐는지 완만한 오르막길인데도 힘이 드는구나
446.4m봉(14:44)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표기조차 없는 봉우리인데 준.희 선생의 산패가 있다.
안부(14:50)
소나무 숲사이로 이어지는 맥길
오르막길에서 윗쪽으로 바라보니 성터처럼 보이는 돌담이 보이는데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이곳에서 알바를 많이 했다고들 하는데
지금은 450m봉 7부 능선에서 좌측으로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많이
있어서 알바할 일은 없을 것 같다.
450m봉 아래 갈림길(14:50)
낙엽이 푹신한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곳에는 선답자들의 흔적이 많다.
전생에 오누이였었나?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을 무조건 치고 내려간다
묘지(14:53)
또다시 이어지는 급경사의 길
성황당터 안부(14:58)
옴팍 파인 안부에 낙엽속에 묻힌 돌무더기가 예전에 성황당인듯 하며,
우측으로는 광평저수지 방향이고 좌측으로는 용화리 나루터로 이어지는
안부이다
완만한 오르막길
맞은편에는 선답자를 알바를 많이 했다는 능선들이 보인다
구라리산(395.5m:15:06)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지명 표기없이 395.5m봉으로만 표기가 되어 있는데,
트랭글 앱에서는 구라리산이라고 알려 주는 곳으로 능선에 있는 밋밋한 봉우리로
준.희 선생의 산패만 없으면 그저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구라리산(口羅里山)산은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용강 건너편의 지윗골로 넘어가는
골짜기에 구라리(口羅里)라는 지명이 있어서 붙여진 산이름으로 국립지리원
지도에는 없는 명칭이며, 여기서 백하지맥은 좌틀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독도에
유의해야 할 지점이다.
기웃재로 가는 길
무명봉(15:10)
무명봉에서 직진 능선을 버리고 등로가 보이지 않는 우측으로 내려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간벌을 한 나무들이 쓰러져 있다
기웃재(15:13)
충북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 광평저수지에서 충남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임진왜란 당시 지내리에서 용화리 화상동의 금강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고개로 맨발님과 인삼대장님의 산패가 걸려있고
금산과 영동쪽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며 기웃재 또는 지웃재라고도
하는데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40여 년 전까지는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개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화상동에 아무도
살고있지 않지만 예전 영동으로 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주막도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삼남대로의 하나인 충북 영동군 학산면과 충남 금산군 제원면을 잇는
교통 요충지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왜놈이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에서 지웃재를 넘어
금산군 용화리 화상동에서 금강을 건너 금산 읍내로 침투해 들어간 뼈아픈 역사도
전하고 있는 고개였지만 1930년대 지금의 금산과 영동을 잇는 도로가 생기면서
기웃재(지웃재)의 기능이 쇠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용화리 동북쪽 금강 건너에 있는 마을이 화상동(和尙洞)인데 화상동 옆에 있는
동묏날의 형국이 노승이 예불을 드리는 듯한 노승예불형(老僧禮佛形)이며
마을 앞에는 용화나루터가 있었는데 옛날 영동군 양산방면에서 기웃재를 넘어
5일마다 서는 금산장을 보러가기 위해서 붐볐던 나루터였다고 하며, 마을앞의
금강 물줄기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물굽이를 바꾸는 지점에 마달피라 부르는 강변이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여기에서 황토로 흙탕물을 일으켜 금강하류로 흘러 보내서
강을 건너려는 왜군들이 물의 깊이를 모르게 하였다고 한다.
지금 시간이 오후 3시가 넘었고, 합수점까지 남은 거리가 6km 남짓하다.
산행을 하면서 먹은것이 별로없어 체력이 방전된 상태라 현재의 내 컨디션으로는
부지런히 가도 3시간은 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해가 긴 여름철이라면 무조건 가겠지만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서
이곳에서 산행을 접으려고 생각하니 맘이 편하다
그래...過猶不及이라 하지 않았던가...산은 늘 거기에 있는데 뭘 그리
집착하면서 욕심낼 필요가 없잖은가...맘을 비우고 광평저수지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왜 그리도 편한지...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하나를 배운다
비움(空)의 美學이라는 것을...
기웃재에서 광평저수지 내려가는 길은 의외로 등로가 뚜렸하다
개울가(15:24)
광평저수지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문 탓인지 잡초와 억새로 인해서 도저히 갈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임도를 버리고 계곡을 따라서 광평 저수지로 내려간다
계곡으로 계속 갈수가 없어서 다시 임도로 올라와 걷는데 얼굴에 상처가 많이 난다
저수지에 거의 다왔는 모양이다...갑자기 임도가 좋아진다
광평저수지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저수지 우측 임도를 따라서 걸어간다
다리(15:55)
저수지 뒷쪽으로 다음구간에 걸어야 할 백하지맥 능선이 보인다
광평저수지(15:58)
광평저수지에서 내려가는 길은 좋다
시간이 애매하여 이곳에서 학산면 택시(010-5422-5052)를 호출하려는데
이게 뭐여!...이곳이 통화 불능 지역이라서 전화가 터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무작정 걷는다
우측으로 보이는 저 곳이 돌탑봉에서 선답자들이 알바를
많이 했다는 능선에서 내려오는 계곡인 모양이다
통제구역(16:13)
광평마을(16:15)
통제구역을 지나니 민가 한 채가 보이고 차량이 있는데 출타를
할 모양인지 시동을 건다...얼른 마스크를 쓰고 차로가서 서울을
가야 하는데 버스타는 데까지 태워줄 수 없는냐고 하니 무주로
가는 길이라며 태워 주겠단다...그러면서 이곳에서 등산 베낭을
맨 사람을 처음 본다고 하면서 혼자 다니지 말고 여럿이 다니라고 한다.
貴人의 도움으로 편하게 무주터미널까지 온다
무주공용터미널(16:50)
무주군(茂朱郡)은 전라북도 동북쪽 끝에 위치한 내륙 속에 땅으로 4개의 도와
인접하고 있는데 경상북도, 경상남도, 충청북도, 충청남도를 경계로 하고 있다.
나름 다섯 개 도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고 자부하는 곳으로 무주군 동쪽에는
해발 1,000m 이상의 산들이 있고, 이 산들에서 시작해서 흐르는 무풍면의 남대천,
설천면과 구천동의 원당천, 적상면의 상곡천·적상천·삼유천이 금강의 상류를 이룬다.
이 하천들은 무주읍에서 모여 흐르는데 무주 주민들에게 무주의 자랑을 말씀해 주세요
질문하면 서슴없이 '깨끗한 공기'라고 이구동성 답변하는 곳으로 군의 대부분이 산악
지역으로 형성되어 있고 하천 주변에 형성된 곳에 약간에 평지가 있으며 특별히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산업단지도 없어서 깨끗한 공기는 인정해야 하는 지역이다.
무주(茂朱)라는 지명은 “무성할 무(茂), 붉을 주(朱)” 뜻을 지니고 있어 오랫동안 붉다는
뜻을 지닌 지명이 사용되어 왔으며, 조선 초기 무풍현과 주계현의 두 지역의 앞 글자를
따와 무주라는 이름을 가지고 지금의 무주가 탄생하게 되었으며,무주 땅은 과거 삼한시대에
마한(馬韓)과 감문국(甘文國)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무주의 시작을 말해 주고 있다.
현재는 1979년 무주면이 무주읍으로 승격되면서 1개의 읍과 5개의 면으로 하는
행정구역을 가지고 있으며, 무주군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무주읍, 설천면, 안성면,
적상면, 무풍면, 부남면으로 통폐합되어 남게 되었다.
* 마한(馬韓)은 진한, 변한과 함께 삼한(三韓)중에 하나로 기원전부터 AD 4세기
무렵까지 지금의 경기도·충청도·전라도 지역에 분포했던 여러 정치집단을
통칭하는 말인데 3세기 후반의 중국측 사서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마한에는 54개의 소국들이 분립하고 있었다.
* 감문국(甘文國)은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231년(조분이사금 2)에 이찬(伊飡) 석우로(昔于老)를 대장군으로
삼아 감문국을 토벌하고 그 지방을 군으로 삼았다고 하며 『삼국사기』지리지 개령군조에
본래 감문소국이었던 것을 557년(진흥왕 18)에 군주(軍主)를 두고 청주(靑州)라 하였으며,
진평왕 때는 주를 폐하고 661년(문무왕 1)에 감문군을 설치했다고 한다.
또, 『동국여지승람』권29 개령현의 고적조에 감문국 때의 궁궐유지가 있다고 하며, 감문현
북쪽 20리에 감문국왕인 ‘김효왕릉(金孝王陵)’이 있고, 현의 서쪽 웅현리에 감문국 때
장부인(獐夫人)의 묘로 전하는 ‘장릉(獐陵)’이 있다고 한다.
개령은 낙동강 지류인 감문천 중류에 있으며, 감문천의 하류에는 선산(善山)이 있어 30리
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선산일대의 토성 및 많은 대형고분군과 개령의 토성 및 고분은 당시
감문국의 배경을 짐작하게 해주는 유적이라 생각된다
무주발 → 서울행 버스표
귀인의 도움으로 무주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표를 예매하고 나니 50분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저녁을 해결할 요량으로 터미널 주변의 식당을
다녀봐도 영업을 하는 곳이 없어서 터미널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대합실내에 있는 구멍가게에 들려서 우유하나에
빵을 사서 허기를 면하고 차가운 대합실 의자에서 한동안 멍때리기를
하다가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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