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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白頭大幹 4次(진행중)

제34구간- 저수령에서 작은차갓재까지(역산행)

by 범여(梵如) 2023. 2. 27.

同路異路...같은 길을 걸어도 목적지는 달랐다

 

 

 

☞ 산행일자: 2023년 02월 26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13.2km + 날머리 2.2km / 9시간 1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저수령-용두산 갈림길(국사지맥 분기점)-무명봉-장구재-무명봉-무명봉-옛고개길

                      안부-무명봉-옥녀봉-안부-문복대-암봉-안부-무명봉-암봉-안부-조망바위-안부

                      1,026.7m봉-안부-넓은 공터-무명봉-돌목재-822.1m봉-무명봉-옛벌재-벌재

                      생태통로 위-헬기장-무명봉-안부-무명봉-안부-무명봉-929m봉-암봉-무명봉

                      조망바위-안부-무명봉-폐백이재-무명봉-조망처-928m봉-조망바위-무명봉

                      안부-책바위-안부-안부-작성산성 터-암봉-조망바위-조망바위-치마바위봉

                      안부-조망바위-988m봉-안부-폐헬기장-황장재-안부-감투봉-안부-암봉-안부

                      안생달 갈림길-황장산-전망대-묏등바위-투구봉 갈림길-865m봉-전망대

                      헬기장-작은 차갓재-생달리 오미자 농장

  경북 예천군 효자면/ 문경시 동로면 / 충북 단양군 대강면 / 단성면

 

지난 1~2월에는 추위를 많이 타는 범여로서는 남녁지방의 만경남(신산경표상:모악)지맥과

여수지맥을 많이 걸었는데 이곳은 날씨도 춥지않고, 산의 고도가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날씨는 춥지 않으나 그에 반비례하여 미세먼지가 심하고, 특히 여수지맥의 광양,순천,

여수지역은 등로가 거의 없고,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이 차가워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산의 평균 고도는 2~300m정도에 불과하나 해수면에서 시작되는 산이라 높이만 생각했다가는

큰코 다치기가 십상이고, 거기다가 이 지역의 지맥길은 등로가 거의 없고, 잡목, 가시, 등이

태클을 거는 넘들이 너무나 많다...기저환자라 미세먼지에 대한 고통은 참기가 힘이든다.

 

여수지맥의 마지막 구간을 남겨놓고, 잠시 미세먼지를 피해서 이번주는 대간길을 걸어보고 싶다.

2월에는 대간길을 걸어보지 못했다... 구정 다음날 대관령에서 삽답령가는 길을 홀로 걸었으나

눈이 너무 많아서 러셀에 지쳐서 고루포기산 직전에서 중탈을 했고, 1월 마지막주에 안내 산악회를

따라가서 늘재~갓바위재 구간을 했으니 대간 길이 걷고 싶다.

 

원래 계획은 동해나 삼척 근처의 대간길을 짧게 걷고, 동해시청 근처에 있는

냉천(冷川)에 들려서 雪中복수초가 피었나 확인해보려고 했으나, 지난 금,토욜에

강원도 동해지역에 눈이 많이 내려서 대간길 접근이 불가능 하단다.

하는 수 없이 영주, 단양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그 지역에 있는 지인에게 대간길을

확인하니 고치령에서 도래기재쪽은 눈이 너무 많이 있어 산행이 불가능하지만

저수령에서 황장산 구간, 안생달쪽은 산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오늘 후배산꾼들이 이 구간을 가지만 너무 느려서 따라갈 엄두가 안 나고

오랫만에 후배들이 보고 십지만, 밉상이 되기 싫어서 반대방향으로 걸으면, 후배들에

눈치를 안봐도 되고, 반가운 후배들을 보고 있을 것 같아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06시 청량리역에서 단양으로 출발하는 KTX 열차를 타기위해서 5시에 집을 나선다

 

 

오늘 산행구간 지도

오늘 산행구간의 고도표

청량리역(05:45)

집에서 05시에 출발하여 청량리역에 도착하니 05시 45분 매표

창구에 가서 예매한 열차표를 받아서 플렛홈으로 향한다.

청량리발  → 단양행 열차표

청량리에서 안동까지 가는 중앙선 KTX 열차 시간표

청량리역에서 06시에 출발하는 KTX 열차를 타고 잠깐 조는 사이에 열차는 제천역에 도착한다

열차에서 단양쪽으로 오면 단골로 이용하는 택시 기사에게 전화로 20분후면 도착하니

택시를 준비해 달라고 전화를 한 다음에 채비를 하고나니 곧이어 열차는 단양역에 도착한다

단양역 버스 시간표

단양역에 도착하여 역내에 있는 해후소에 들려서 시원하게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역을 빠져 나오니 예약한 택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단양역(丹陽驛:07:30)

2016년에 새로 신축된 단양역은 바람을 형상화한 지붕이 참으로 멋져 보인다

도담삼봉(島潭三峯)을 형성화 했다는 단양역사(丹陽驛舍).

단양의 원래의 지명은 연단조양(鍊丹調陽)으로 연단은 신선들이 먹는 환약이고 조양은

골고루 비추는 볕이라는데 여기서 두 글자(丹陽)를 따왔다는 것이고, 다른 얘기로는

사인암 등이 붉은 빛을 띠는 것 등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해후소에 들렸다가 驛舍를 빠져 나오니 역시 단양이라서 그런지 날씨는 상당히 춥다.

5개월만에 만난 택시기사...단양쪽으로 오면서 10번 이상 이용한 탓인지 전혀 스스럼

없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보니 택시는 저수령에 도착하고...오늘도 안전 산행을

하라고 하면서 매번 하는 것처럼 기분좋게 요금을 5,000원이나 깍아준다.

택시기사와 유쾌한 작별을 하고 택시에서 내리니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저수령(低首嶺:850m:08:10)

경북 예천군 효자면(구 지명:상리면) 용두리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를 잇는 

경계로 한 도계(道界)로 927번 지방도가 지나며 옛부터 저수령이라고 불렸다.

지금의 도로를 개설하기 전에는 험한 산속 오솔길로 경사가 급하며 지나다니는

길손들이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하여 붙혀진 지명이라는 설과 저수령에서

은풍곡(殷豊谷)까지 피난길(避難路)로 많이 이용되어 왔는데 이 고개를 넘는 외적(外敵)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는데, 조선 후기의 지도엔 ‘회령(檜嶺)’이라

적혀 있기도 하다

 

고려 태조 11년(928년)에 고려국의 남쪽 城인 고창군(안동시의 옛지명)을 후백제의 견훤이

포위하자 왕건은 유금필을 대장으로 삼고 이곳 저수령전투에서 크게 이겼다는 기록이 있다

1~2월에 남도지방의 봄날씨를 방불케하는 따뜻한 지맥길을 걷다가 이곳에 오니

갑자기 북극의 툰드라 지방을 온 느낌이 들 정도로 춥다...산행을 준비하는 잠깐 사이에

추운 날씨에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탓인지 손가락은 굳어버리고, 얼굴이 마비되는 

느낌이다...스틱을 펴고 방한 목도리를 하고, 라디오를 켜는데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을 정도이다...하기사 이곳의 높이가 해발 850m이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충북지역의 단양쪽 저수령으로도  가보고 싶지만 너무 추워서 엄두가 나질 않는다.

저 앞에 보이는 폐업한 주유소와 휴게소...원래는 저수령 일대에는 골프장을 비롯한 레저시설이

들어서기로 하여 주유소를 비롯한 휴게소, 주위의 마을과 소백산 목장들은 매입했으나, 근처의

산(山) 주인들의 터무니없는 높은 가격을 요구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흐지부지 한 상태라고 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8:15)

해맞이 제단석(祭壇石:08:16)

저수령에서 산행 시작 1분만에 도착한 해맞이 제단석...상석 옆면에는 효자면

이장단이 기증을 했다는 기록이 있고, 앞에 보이는 예천군 효자면 용두리쪽은

미세먼지인지, 떠오르는 햇볕으로 인한 역광(逆光) 때문인지 모든게 흐릿하다.

해맞이 제단석에서 바라본 용두리(龍頭里)의 모습

龍頭란 말 그대로 ‘용머리’라는 뜻으로, 고개를 숙이는 고갯길(저수령)이 있고 용머리가

나오니 뭔가 심상치 않다...우리나라 전통 지리학에서는 산줄기를 용(龍) 또는 용맥(龍脈),

내용(來龍)이라고 표현하며, 용은 조종산(祖宗山)인 태조산(太祖山)에서 출발하여 각종 크고

작은 산줄기를 거친 다음 사람들이 살아가는 穴(혈)까지 달려온다.(우리나라 산들 가운데,

용산 혹은 용*산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태조산이라 함은 백두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금천(국사)지맥 갈림길(920m:08:20)

해맞이 제단석에서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서는데 땅은 얼어서 돌덩어리같고,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한 탓인지 엄청 미끄럽고 능선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한 겨울을 방불케하는데, 미세 먼지를 감수하고, 여수지맥 마지막 구간을

갈 껄, 괜히 추운데 와서 개고생을 하나하는 후회를 하는 사이에 금천지맥 갈림길에

도착한다

금천(국사)지맥 개요도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저수령을 지난 934m봉(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와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 및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의

경계점)에서 남서쪽으로 가지를 쳐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로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40km의 산줄기로, 분기점에서 시작하여 달지리에서 그 맥을 내성천과 금천의 합수점에

넘겨주고 있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금천지맥이라고 부른다

 

이 산줄기를 따라가면 용두산(976m), 매봉(865.3m), 용문봉(771m), 국사봉(727.6m) 등을

만날 수가 있고, 이 산줄기의 서쪽에는 수진천, 금천, 기천 등이 내성천으로 흐르며, 이 산줄기의

동쪽에는 한천, 금곡천, 중평천 등이 내성천으로 흘러간다.

금천(신산경표상:국사)지맥 분기점에 올라서니 묘지 한기가 있고, 예전에 있었던

국사지맥 분기점의 팻말은 보이지 않고, 지맥꾼들의 시그널만 보인다.

2020년 6월 27일 나홀로 금천지맥 1구간을 했으니 벌써 3여년이 다가 오는구나.

 

이곳부터는 경북 예천땅에서 남한쪽의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33개 시,군의 지자체로

통과하는  750여km 거리중에 116km가 문경땅을 통과하는 남진의 경우에 이곳부터

시작하여 늘재 윗쪽인 청화산까지 이어지니 길기는 길구나...참고로 예천땅을 통과하는

대간길은 이곳에서 고항치까지 아주 짧은 구간이다.

금천지맥(신산경표상:국사지맥) 분기점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니 촛대봉(1,080.6m)의 모습

금천(신산경표상:국사)지맥 분기점에서 내려서니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하는 수 없이 베낭에서 아이젠을 꺼내서 착용하고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무명봉(08:30)

무명봉에서 장구재로 내려가는 급한 내리막길은 상당히 미끄럽다.

조심스레 내려서니 소백산관광농원에서 올라오는 넓은 임도가 나오는데

지도상의 장구재인데 이곳이 옛날에 民草들의 哀歡이 서려있는 옛 저수령이다

장구재(890m:08:35)

충북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와 경북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를 연결하는

넓은 임도로 문경의 오미자길이란 안내판과 함께 아치형 철재로 터널을 만들어놨다

예전엔 예천과 문경에서 단양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고개였으나 지금은 잊혀진 고개로 변해 버렸다

 

장구재의 지명유래는 아쉽게도 문경시 동로면이나 단양군 대강면의 어느 자료에도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는데 우리나라 전통악기인 장구를 닮아서 그렇게 부르는 건

아닌지?(범여의 생각 中에서)

이곳은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인데 옛저수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구재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좌측의 예천쪽에는 한산사라는 사찰을 지나 석항리로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소백산 관광농원으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고개를 가로질러

대간 능선으로 올라가는데, 문경 오미자를 홍보하기 위함인지 아치형

터널을 만들어놨는데 오미자는 보이지 않는구나...전시행정의 전횡을

보는듯한 씁쓰레함을 느낀다.

장구재를 오르면서부터 북사면(음지)이라 그런지 잔설(殘雪)이 얼어있어 생각보다

상당히 미끄럽긴 하지만 해가 뜨고부터는 빠르게 기온이 오르는지 손이 시렵지는 않다

무명봉(08:42)

잠시후에 오를 옥녀봉을 올려다 본다...앞서 3번이나 걸었던 대간길의 이 구간은

3번을 모두 다 여름철에 통과했고, 이곳을 통과할 때 2번은 무박의 어둠속에

통과했기 때문에 어디가 어딘지 알지도 지나갔는데 오늘은 겨울의 벌거벗은 

산을 지나는 탓인지 옥녀봉이 뚜렸하게 보이는구나.

25여년전 범여가 한때 풍수지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강남구청과 중앙일보

문화센터에 풍수지리를 배우러 다닐 때 강사가 한 얘기가 생각이 나는구나.

명당 자리는 여름철에는 절대로 찾을수가 없기에 겨울철에 다니라고 했다.

그 얘기는 여름철엔 산에 숲이 우거져, 능선을 읽을수가 없지만, 겨울철엔 능선이

시원스레 산줄기가 다 보이기 때문에 그랬던 모양인데 이제서야 그 뜻을 알겠구나.

 

하기사 매장(埋葬)이 아닌 화장(火葬)이 대세를 이루는 장례식 탓인지 요즘의

명당 자리는 후손들이 접근하기 좋은 장소가 최고의 명당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단양군 대강면에 소백산 관광농원에서

단양읍내로 내려가는 927번 지방도가 보인다...아침에 택시로 올라왔던 길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에 속하는 지역이다

 

올산리(兀山里)는 올산(兀山)밑에 있으므로 올미 또는 올산이라 한데서 올산이라는

명칭이 생겼으며, 자연마을로는 내올산, 대수동, 새둑 등이 있는데, 내올산은 올산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대수동은 중올산리 남쪽에 있는 마을로

큰 나무가 많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새둑은 새로 생긴 마을이라하여 붙은 이름이다.

남조천으로 흘러가는 올산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는 마을이다.

무명봉(08:42)

잠시후에 오를 옥녀봉(우)과 문복대(좌)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보기는 그냥 밋밋해 보이지만 낙엽밑에 얼어있는 잔설 때문에 생각보다 상당히 미끄럽다

옛고개길(08:45)

충북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에서 경북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로 이어지는

뚜렸한 안부가 보이나 좌,우측 모두다 사람이 다닌듯한 흔적은 전혀없다

안부인 옛고개길을 지나면서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양지라 그런지 잔설은 전혀없고, 낙엽길을 지나는데 아이젠을 착용한 탓인지

먼지가 심하다...그렇다고 언제 얼어있는 음지가 나올지 몰라서 아이젠을

벗지않고 그냥 걷는다

안부(08:49)

고도를 조금씩 높혀가며 무명봉으로 올라서는데 고도가 높아질수록 

발걸음은 자꾸만 느려지기 시작하는 범여의 약점(?)이 나타난다.

무명봉(09:15)

북서쪽으로 보이는 능선 좌측의 봉우리가 단양쪽에 있는 시루봉(1,019m)이다.

운수봉이라는 또다른 지명을 가지고 있는 봉우리이지만 대간 능선에서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이라서 입맛만 다신다

무명봉에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오르막으로 치고 오르니 옥녀봉이 나온다

옥녀봉(玉女峰:1,077m:09:25)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와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예전에 옥녀라는 처녀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간 정혼자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돌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봉우리인데 예전에 이곳을 3번이나

지났건만 기억에 남는건 전혀없다... 2009년 1차 대간길에는 한 여름 2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겁없이 지나가는 바람에

몰랐고, 그 이후의 2번은 무박산행의 어둠속에 알지도 못하고 지났던 봉우리다.

 

지도에서도 홀대받기는 마찬가지이다...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고도 표시조차도

없는 무명봉으로 치부해 버렸고, 코딱지만한 산을 지나가더라도 지명만 붙어있는

산이면 어김없이 뺏지를 부여하는 트랭글앱에서도 이곳은 眼中에도 없는듯 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요즘처럼 산행앱이 출시되기 전에  대간꾼들에게 Bible처럼

애용했던 “고산자들의 후예”들이라는 지도회사에서 만든 백두대간의 지도첩과

그 당시 산꾼들이 대부분 애용했던 진혁진님의 지도에서만 옥녀봉으로 표기하고 있다

 

하기사 우리나라 산 이름중에서 지리원에 등록된 옥녀봉만 39개로, 봉화산(47개),

국사봉(43개), 매봉산(32개), 남산(31개) 중 3번째로 많은 지명이 옥녀봉이다.

옥녀봉은 대체적으로 풍수지리와 관련된 지명이라고 보면 된다

 

'옥녀'는 대개 옥황선녀, 다른 말로는 선녀를 가리키는 말로, 풍수에서 옥녀는 선인과

함께 지형에 가장 많이 비유되는 형상으로, ‘산 모양이 옥녀가 북을 치는 형상’이면

옥녀격고형(玉女擊鼓形),옥녀와 선인이 조화’를 이루면 와우적초형 이런 풍수의

영향으로 옥녀의 이름이 산에 많이 붙은 것으로 추측된다

옥녀봉 정상에 올라서니 옥녀라는 여인은 안 보이고 1,000m가 넘는 능선으로

올라와서 그런지 바람이 세차고 날씨가 너무 추워서  앞에 보이는 문복대를

향해서 서둘러 길을 나선다

옥녀봉에서 북사면으로 이어지는 음지에는 잔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는 능선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한 겨울을

방불할 정도로 너무 춥다...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춘이 지난지가

한달이 다되어 가고,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지난지가 1주일이

지났건만 이곳은 아직도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는 春來不似春이다

암릉으로 된 무명봉은 정상을 오르지 않고, 편하게 사면으로 가게 해놨구나

북사면길은 눈이 있으나 산행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다.

지난 2월 구정 다음날 어디 갈데도 없고하여 홀로 대관령에서

닭목재 구간을 갔다가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러셀하면서

걷다가 고루포기산 직전에서 횡계리 오목골로 중탈하면서 

개고생한 것에 비하면 양반이다.

예전에 무심코 지날때는 모르고 지났었는데 혼자서 사박사박

걷다보니 문복대가는 길의 암릉구간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산악회를 따라 나섰더라면 민폐를 안 끼치려고 죽기살기 걸으면서

못보고 갔을 구간인데 말이다.

안부(09:30)

오룩스앱의 지도에는 이곳을 문봉재라고 표기를 해놨는데

그 흔한 대간꾼들의 띠지 하나도 걸려있지 않는 밋밋한 고개이다

문봉재라 부르는 안부에서 암릉 구간을 치고 오른 다음에

15여분 가까이를  걸어가니...

대간꾼들의 시그널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문복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문복대(門福臺,1077.6m:09:42)

경북 문경시동로면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저수재와

벌재사이에 있는 백두대간상의 봉우리으로 백두대간이 죽령, 도솔봉, 향적봉,

저수령을 지나 문경시로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큰 산을 이뤘는데 이 산이 바로 문복대다.

 

백두대간 산줄기가 소백산을 거쳐 예천군을 지나 문경 땅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지켜서서 복(福)을 불러오는 문(門)과 같은 첫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운봉산이라고도 불리는 문복대는 한줄기가 북으로 뻗어 수리봉·신선봉과 도락산을

두고 있으며, 정상 표지석은 2001년 가을 문경의 산들모임산악회에서 이곳에 세워

지나는 산행객들에게 길잡이가 되도록 해놨고, 두산백과 사전에서는 문봉재라 표기했놨다

 

본래의 문복대는 북으로 더 올라가 수리봉, 황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시작되는 곳을

이르는 이름이었으며, 이 산 밑에 배나무골, 호박골, 세작골, 성골을 두고 있으며이 골짜기들이

모두 동로면 석항리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석항리(石項里)를 ‘돌목’이라고도 하는데 아직까지

남아있는 아름다운 우리의 이름이다.

문복대 표시석 뒷면의 모습
동로면 석항리 사람들은 문복대라 부르고 있으나 옛 지명은 운봉산 또는 운봉재라고
 불렀으며, 문복대의 벌재방향의 잘룩한 부분으로 산 너머 마을을 오갔다고 해서 그랬단다.

문복대를 지나면서부터 벌재까지는 대부분의 등로가 양지라서 잔설은 없으나

낙엽으로 인한 먼지 때문에 목이 아플 정도이다...그러고보면 자연은 참으로

공평한 듯 하다...한가지를 버려야만, 한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암봉(09:48)

암봉을 지나면서 나뭇가지 사이의 동남쪽 아래에는 동로면 석항리가 흐릿하고

그 뒷쪽 능선이 2020년 6월에 나홀로 저수령에서 시작한 금천(국사)지맥의

예천의 용문산인 듯 한데, 미세먼지 같지는 않은데 산봉우리가 제대로 안보인다

안부를 지나서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이곳도 지난해 걸었던 저수령에서 고항치까지 걸을때의 대간길 예천 구간의

모습처럼 저 무명봉으로 오르지 않고 사면길을 걸을 수 있게 편하게 해놨지만

자꾸만 대간길이 전국의 지자체들이 만들어 논 둘레길처럼 변하면서 野性을

잃어가는 것 같아서 아쉽지만, 범여의 몸뚱아리는 오랫만에 편하게 걷는다.

사면길을 지나서...

안부가 나온다

안부(09:53)

무명봉(09:56)

무명봉에서 북사면으로 내려가는 음지에는 어김없이 빙판이다.

그래...산행이나 權力을 가진자나 내려갈 때 조심하라고 했지...

조심스레 내려가서 안부에서 치고 오르니 마루금상에 있는 무명봉을 

오르는 대신에 편안한 사면길로 가라고 신림청에서 새로 길을 해놨다

예전에 올랐던 무명봉...지금은 눈팅이만 하고 사면길로 걸어간다

저질 체력으로 변해버린 범여를 배려함인가?

고맙기는 하지만 자꾸만 야성을 잃어버리고 둘레길로 변해가는

대간길에 대한 염려도 걱정된다...예전에는 백두대간을 종주했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요즘 그렇게 말하면 되돌아 오는 대답이

‘산 좀 타는 사람치고 백두대간 2~3번 안 타본 사람있어’ 라는 답한다

암봉(10:01)

바람의 영향으로 능선에 몰려있던 눈이 양지라 그런지 많이 녹아있어 다행이다

안부(10:03)

문복대를 지나서 벌재로 향하는 길에 이름없는 무명봉들이 생각보다 많다.

예전에는 아무런 생각없이 앞 사람의 등산화만 보고, 죽기살기로 갔거나,

어둠속에 가는 바람에 못보고 갔던 곳을 오늘은 하나 한 제대로 보고 지난다.

혜민스님께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고 책을 내용을 제대로 실천하는 셈이다

 

지금의 내 체력으로는 5번째 대간 도전은 힘들듯 하다...來生에는 몰라도...

4번째 대간길 도전도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후회스럽다...대간길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았으면 162지맥 마감을 상당히 당길수가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어쩌랴...어영부영 하다보니 65% 가량을 했으니 않할수도 없잖은가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 법정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 -

 

봄철에 지나가면 꽃구경은 실컷할 듯 싶다.

주변에 키작은 진달래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조망바위(10:08)

직진에 있는 1,026.7m봉에 올랐다가 좌측으로 꺽어져 벌재로 향하는 능선이 보인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석항리(里)의 모습

황정산 남쪽의 산간오지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구낙이, 군마, 눌기, 도애뱀이, 무진골,

물목이, 성골, 솥토목이, 음짓마, 잿골마, 중간마, 지통마 등이 있다.

 

구낙이는 어느해 여름 홍수가 심할 때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천둥번개가 치더니

큰 거북이 한 마리가 빗줄기를 타고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군마는 가장 오래된 마을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구마라고도 하며 눌기는 깃발이 넘어진

골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와기라고도 불렀고 도애뱀이는 산릉선 끝에 위치한 논배미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으며 무진골은 마을에 우물 하나가 있었는데 맑은 물이 골짜기에 넘쳐 흘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물목이는 자연적으로 물이 흐르는 목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물매기이라고도 하였다. 성골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성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솥토목이는 동쪽 산으로 통하는 길이 끝나는 지점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음짓마는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음지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란 뜻이며 잿골마는 마을 사람들이

이웃 마을을 다닐 때 넘나들던 고개 밑에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중간마는 도애뱀이와 상석동의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통마는 원래 황무지였으나 언젠가 이곳에 이주 정착한 사람들이 지통을 차리고 한지를

만들어 생계를 영위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지통동이라고도 하였다

남녘지방에 비해서는 공기는 상쾌하나 대한민국의 최오지중에 오지인

이곳에도 오전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미세먼지의 폐해(弊害)를 피할 수가

없는지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숫돌봉(좌), 천주산(중), 공덕산(우)의

산그리메는 흐릿하기만 하다.

잠시후에 오를 1,020m봉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음지 내리막길에는 눈이 약간 있으나 걷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등로에 쌓인 낙엽 아래가 얼어있어 생각보다 미끄럽다

안부(10:12)

암릉구간의 능선을 따라간 다음에...

미끄러운 오르막으로 올라 1,026.7m봉에 도착한다

1,026.7m봉(10:17)

안부(10:23)

1,026.7m봉을 지나서 돌목재까지는 계속되는 내리막길이다.

북진하는 하는 산꾼들은 힘들겠지만, 남진하는 산꾼들은

양넘 지갑줏듯 하면서 걷는 편안한 내리막길이다.

등로 북동쪽의 나무가지 사이로는 단양군 대강면에 있는 수리봉(1.019m)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 황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수리봉이란 지명도 전국에 참 많이 산재해 있는 흔한 이름의 산이다.

‘수리’란 지명은 ‘높은곳’ , ‘맨꼭대기’를 뜻하는 순우리말인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守理峰’으로 표기를 해논 것은 지나친 억지이며, 그래서 한문 교육이 

필요하다.

 

설날,  추석, 한식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명절로 꼽히는 단오(端午)날을 순우리말로

수리날이라 하는데, 단오를 태양의 축제라 불렀고, 추석을 달의 축제라 불렀는데

단오를 태양이 높은 하늘의 가운데 떠있는 날이라 맨꼭대기라 불렀는데 그 어원은

고구려에서부터 전해 내려 왔다고 한다..

 

흔히 취봉(鷲峰), 매봉(鷹峰)으로 불리는 독수리를 뜻하는 ‘수리’의 어원도 마찬가지이다

예로부터 높이 날아다닌 독수리에서 산봉우리가 유래된 것으로, ‘사라’ ,‘서리’ , ‘수레’ , ‘수락’ ,

‘싸리’ 등으로 변했으며, 서울에 있는 수락산도 결국 같은 의미의 높은 산이라고 보면된다 

베낭속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심취한 채 편안한 내리막길을 걷는다

길이 좋아도 너무 좋다.

마치 아카데미상 수상자인 주연배우가 시상식장에 오를 때 밟는 레드카펫처럼...

넓은 공터(10:30)

넓은 공터에서 살짝으로 꺽어진 다음에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향한다

등로 우측의 급경사 지역에는 리기다 소나무 조림지의 나무들이 보이고...

이곳은 여름철에 지나가면 애기나리꽃을 군락을 이루는 곳으로

자연적으로 자생하는 애기나리꽃 군락지로서는 아마도 전국에서 가장

큰 곳인데 冬眠에 든 애기나리꽃은 아직 잠에서 깰 생각조차 하지 않는구나

내리막을 내려가니 좌측으로는 잣나무 조림지가 나오고

등로 옆에는 흔적이 뚜렸하지 않는 무명묘지 1기가 있다

무명봉(10:34)

다시 내리막길

돌목재(石項峙:750m:10:37)

문경시 동로면 석항리 돌목마을에서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를 넘는 고개로

이 지역 사람들은 석항재라고도 불렀다고 하는데 ‘돌 석(石), 목덜미 항(項)’을

풀어쓴 순우리말로 지명유래는 아마도 고개 아래에 있는 돌목마을에서 유래한 듯 싶다

빡센 오르막길...범여로서는 이런곳이 쥐약이다.

쳐다만 봐도 氣가 질린다...베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  마신

다음에 천천히 아주 천천히 牛步걸음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빡센 구간을 다 올라온 듯 하다...822.1m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822.1m봉(10:52)

국토정보지리원에 등록된 족보있는 봉우리다.

저수령을 지나면서 처음 만나는 이정표가 반갑구나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석항리를 보면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822.1m봉에서 벌재로 가는 길은 지루하다

산의 경계를 표시하는 지적 말뚝도 간간히 보인다

무명봉(11:04)

지루한 등로를 따라가니 무명봉이 나오고...

무명봉에서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서 벌재로 향하는데 저 아래에서

벌초할 때 쓰는 예초기같은 기구를 들고 올라오는 사람을 만난다.

처음에는 산림을 측량하는 사람인가 하였는데 등로 주위에 기구를 

갖다대고 뭔가를 탐지를 하기에 뭘 하시냐고 물으니 금속을 탐지중이란다.

처음엔 뭔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이 분은 경북 구미에 사시는 분인데 이곳 문경시 동로면이 고향이란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으니 옛날 이곳을 넘나드는 민초들이 흘린 상평통보

같은 엽전...옛날 동전같은 것을 수집하는게 취미란다...이잉 뭔 소리여!

옛날에는 이곳에 보부상같은 사람들이 많이 다녔는데 그 분들이 가끔 흘린

동전들이 찾으면 그걸 수집해 가는 수집상들이 있다고 한다.

 

그라먼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네요’ 하니까, 생각보다 동전이 많다고 하면서

오늘도 6개나 되는 동전을 찾았다고 하면서 흙이 잔뜩 묻은 동전을 보여준다.

살다살다...별 희한한 취미를 다 보네...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서니 데크목 구름다리가 있는 옛벌재에 도착한다

백두대간은 데크목 구름다리를 지나 능선으로 가지만...

이정표 옆쪽의...

좌측으로 문경시의 전시행정(?)으로 만든듯한 오미자 터널로 내려간다

옛벌재(11:15)

이곳이 옛벌재로 단양쪽의 월악농장쪽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조금전 동전수집이 취미인 분은 나와같이 내려와서 월악농장쪽으로 향한다.

이곳부터는 북쪽은  영주국유림 사업소, 남쪽은 월악산군(月岳山群)이다.

이곳부터 황장산 아래에 있는 안부까지 비탐구간으로 출입금지구역이다.

저 안내판을 보니 2009년 7월 12일...그 당시의 episode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당시는 내 나이가 50대 중반이었고, 사업이고, 산이고, 골프고 간에 모든게

자신만만하고 겁없던 시절이었으니...그야말로  씨건방이 하늘을 찔렀다.

 

지금 생각하면 속된말로 꼴값을 떨었던 셈인데,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백두대간을

하던 산악회가 별로 없었고, 동대문시장 고속터미널(현재 JW메리어트동대문 스쿼어서울)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안내산악회를 따라서 다녔는데 매주 당일 산행으로 1년에

끝내는게 대체적인 추세였다...당시에도 황장재에서 벌재까지는 비탐구간이었고,

단속초소까지 설치해두고 단속이 심하던 시절이었다

 

그날은 안생달에서 저수령까지 가는 구간이었는데 생달리에서 출발할 때는

구름만 잔뜩 끼었다가 황장산을 지나면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산행대장이 벌재에 도착하기 전에 단속초소에 단속을 할 지 모르니 자기보다

먼저가지 말고, 동태를 살핀 다음에 벌재에 내려서라고 했는데, 그날 산행때

이 구간에 땜방을 온 산꾼 2명이 대장 말을 안듣고 내려가다가 단속요원한테

걸려서 도망가다가 붙잡혀 초소에 갇히는 사건을 생각하니 쓴 웃음이 나온다

 

 예나 지금이나 리딩대장을 말을 잘들어야 한다

옛 벌재에서 벌재로 향한다

벌재(伐峙:625m:11:16~30)

경북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와 충북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를 잇는 고개로 59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로, 과거 이곳을 지나는 도로를 33번 지방도라 하였으나 지금은 59번 국도로

승격돼 있고주변에는 벌재정상 표시석과  문경시 동로 오미권역 관광 안내도와 팔각정,

벌재 안내판 등이 있고, 10여전에는 없었던 하얀성을 방불케하는 생태통로가 약간은

눈에 거슬린다.

 

옛날 생태통로가 없을때는 벌재로 내려올 때, 문경쪽이 아닌 단양쪽으로 내려 왔었다.

그 당시 단양쪽으로 내려가면 대간 산꾼들에게는 저승사자와도 같은 단속요원이

빨간 모자를 쓰고, 눈을 부라리며 지키고 있었고, 단속초소와 백두대간 벌재라는

정상석이 있었고, 뒷면에는 백두대간(1대, 1정간, 13정맥) 지도도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가보지 안보아서 모르겠다.

벌재라는 지명유래는 붉은재(赤峙)라고도 하며, 벌재의 남쪽마을이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赤城里)인데 이 마을에서 고개이름을 따왔다고 하는데,

적성리의 적 자가 붉은적“ 赤”이어서 고개이름이 ‘붉은재‘ 가 된 것을

이 고장말로 벌재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은 조선시대에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황장목을 벌목해서

나르던 고개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확실한 근거는 없다

 

벌재는 『증보문헌비고』,「여지고」등의 옛 기록에 벌치(伐峙)로 기록되어 있다.

그 명칭은 편의상 벌목재, 버리기미재, 밀치, 밀재, 밀목치 밀항등과

마찬가지로 벌(伐)의 목을 형상화한 이름으로도 볼 수 있으나

본래는 이 지역의 지명으로 남아있는 적성(赤城)과 관련된 옛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충북 단양의 옛 지명이 적성(赤城)이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금도 백두대간

양쪽 지역인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와 단양군 적성면에 모두 그와 관련된 지명이 있다

지나온 저수령에서 벌재까지의 관리구간은 영주국유림 사업소이고 벌재부터는

월악산 국립공원 포함이 되는 구간이다.

인증샷

단양군 대강면에서 문경시 동로면을 잇는 59번 국도는 6.25사변 당시에 전략적

요충지로 1.4후퇴때 한국전에 개입한 중공군과 북한군이 제천과 단양지역을 점령한 후

죽령을 넘을 수가 없게되자 벌재로 이어지는 적성로(赤城路)를 따라 1951년 1월 13일

미명(未明)에 동로면 적성리에 침입해 왔다... 16일까지 4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은

단양 쪽으로 패주하였다...이 전투에서 적은 적성로가 협소하여 군수지원이 불가능하였고

적성리에서 노고성과 간송리를 통과할 수 없음을 알게되자 후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적성리에서 중공군의 남진을 최후로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적성리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험준한 백두대간의 지형에 있었다고 보여진다.

 

우리 선조들이 피흘리며 지킨 이 나라의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선조들이 흘린 피가

헛되지나 않을까 하는 현실에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국가란 힘이 없으면 늘 핍팍을

받는 건 민초들인데, 그걸 걱정하는 지도자는 보이지 않으니...

벌재에서 15분 가까이 양지에서 따사로운 햋빛 아래서 베낭을 베개삼아 누워서

휴식을 취한후에 다시 구름다리쪽으로 가서 백두대간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월악농장 가기 직전에 좌측의 오미자터널로 올라간다

마루금에 복귀하여 올라서니...

식생복원 시범사업지라는 팻말이 보이고 생태통로로 들어서는데

이곳부터 황장산 아래 안생달 갈림까지가 비탐구간이다

벌재 생태통로 위(11:38)

예전에는 이곳을 지나갈 때 감시카메라가 작동하여 경고방송이 나왔는데

오늘은 아무런 경고방송도 안 나오고, 나지막한 곳에 있는 카메라는

아예 땅바닥에 내동댕이친 채로 망가져 있다  

생태통로 끄트머리에 있는 출입금지 팻말...갈 사람은 다 갑니다

이곳은 세잎승마, 백작약, 꽃창포, 태백제비꽃, 참배암차즈기, 말나리 등

휘귀식물 보호구역이라 출입을 금지한다는데 잘 조정하면 자연과 대간꾼 사이에

마찰없이 지날 수 있을 터인데 무조건 막고 보자는 정책은 대간산꾼에 대한 엄청난

갑질인 듯 하다...더군더나 겨울철에는 얘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말이다.

헬기장 오름길에서 바라본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에 있는 수리봉의 모습

초반에 급경사의 빡센 길을 오르는데 비탐구간 치고는 등로는 너무나 뚜렸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천천히 쉬엄쉬엄 헬기장으로 향한다

枯葉

흔히 비탐구간이라는 곳은 시그널이 붙이지 않는 것이 불문률인데 대간꾼들의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타이어로 된 망가진 군 교통호를 지나서 헬기장으로 올라선다

헬기장(11:50)

이른 새벽에 집을 나와서 아침을 먹지 않은 탓이 그런지 허기가 몰려온다.

헬기장에는 바람도 불지않고 하여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려고 베낭에서

도시락을 꺼내려고 하는데...헐!...이게 뭐람...집에서 챙겨준 도시락을

식탁위에 두고 그냥 왔구먼...장가가는 넘이 00 안가지고 간다더니만...

하는 수 없이 베낭을 뒤져보니 지난주에 여수지맥을 하면서 남은 식혜

한병과 초코파이 2개, 초콜렛 2개가 남아있어 우선 식혜 절반과 초코파이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헬기장을 지나면서 등로 좌측으로는 약초재배지인지 하얀 노끈이 계속 보인다

벌재에서 황장산까지는 꾸준히 오르막이 계속되는 곳으로 은근과 끈기가 요구되는 곳이다

무명봉(12:02)

안부(12:07)

암릉 구간을 지나는데 북사면이긴 해도 양지라 그런지 길을 걷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무명봉(12:16)

안부를 지나서 능선으로 오르는데, 이곳 역시 마루금이 아닌 사면길의

편안함을 만끽하면서 황장산으로 향하는데 오늘은 마지막에 배고픔에

고생하지 않으려면 이런 등로를 최대한 이용해야 할 듯 싶다

무명봉에 올랐다가 완만한 능선으로 내려서는데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제철에 오면 멋진 철쭉의 모습을 볼 수 있을듯 하다

群木一松

안부(12:22)

비탐구간 치고는 등로가 좋아도 너무나 좋다

안부 우측으로는 대강면 방곡리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도 보인다

철쭉 군락지 사이의 등로를 따라서 걷는데...

마루금상의 암릉구간이 보이나 약간 우회하여 마루금을 이어간다

무명봉(12:27)

다시 내리막길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걷다보니 지도상의 929m봉이 나온다

929m봉(12:42)

929m봉에서 우측의 대강면 방곡리 황장약수 방향으로 내려가는 등로가 희미하다.

누군가 이곳으로 알바를 했는지 가지말라는 표시인지 고사목으로 막아놨다.

남진을 하는 산꾼들은 그럴일이 없겠지만 북진 대간꾼들은 방심하면 알바하기 좋은 곳이다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겁없는(?) 산꾼들이 비탐구간에 자기 영역을 표시해놨다

암봉(12:44)

고도차가 없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가면서 다가올 오르막길을 대비하여 체력을 비축한다

계속해서 만나는 철쭉 군락지

무명봉(12:47)

완만한 등로에다가 고도차가 별로 없어서 산행 속도를 좀 낸다

조망바위(12:50)

멋진 소나무 2그루가 서 있는 조망바위에 서니 남쪽으로는 문경시 동로면이

한 눈에 들어고 면소재지 서쪽으로는 천주봉과 공덕산이 보이나 미세먼지로

인하여 흐릿하고 북사면의 단양쪽 능선은 겨울잠을 깨어나 봄을 맞이하기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문경시 동로면(面)의 모습

 

북쪽 아랫쪽으로 보이는 능선은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로 이어지는 대강면은

대강막걸리로 유명한 곳이고, 좌측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봉우리는 만기봉인 듯

싶은데 미세먼지로 인해 흐릿하여 확신이 안선다

조망바위에서 안부로 내려간다

잠시후에 가야할 치마바위봉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안부로 내려가는 길은 암릉구간에다 얼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나홀로 산행을 하기에 이런 곳에서 사고나면 안되제...

조심 또 조심하면서 천천히 내려간다

빙판 구간을 지나 사면길로 내려서 안부로 향한다

안부(13:00)

안부에서 오르막길 주변의 높은 나무에는 겨우살이들이 간간히 보인다

무명봉(13:05~15)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아직까지 갈 길이 많이 남았는데 

먹은것이 없었던 탓인지 체력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10분정도의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알파산악회 4기 종주대의 시그널이 반갑다.

그 당시 3차 대간길에 쉬크석 영감탱이가 산행 대장을 맡고있어

겁없이 따라 나섰다가 급체로 인해서 개고생을 한 적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2020년 60월이었으니 벌써 2년반이란 세월이 지났구나.

끼많고 흥이 많은 쉬영감탱이...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폐백이재로 향한다

연리지를 닮고 싶은 갈참나무

폐백이재(13:20)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에서 문경시 동로면 노은리 도하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도하마을로 내려가는 문경쪽은 길이 뚜렸하나 단양쪽은 길이 잘 보이질 않으며

 폐백이재르 산밭구이골 또는 갈밭골이라고도 불리는 고개인데 그저 밋밋하다

 

황장산의 옛 지명이 ‘봉산(封山:벌채를 금지한 산)’으로 지정된 곳이고 이곳은 그 길목에

해당되어 허가받지 않은 사람의 벌목을 금지하는 ‘팻말이 박혀있던 고개’ ‘즉 패박이재’

변음되어 폐백이재로 불리었다는 설이 있으며

 

또다른 설은

곱게 차려입은 새색시가 시부모에게 폐백을 드리는 광경을 떠올려

폐백이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예전에 이 고개는 귀신이 나온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은 혼자서는 이 길을 지나지 않는다는 고개이다.

명성(?)에 비해서 그저 밋밋한 폐백이재를 지나서 오르막으로 향한다.

늘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어김없이 나오는게 마루금의 공식이다.

조금씩 조금씩 느린 발걸음을 능선으로 올라서니 이름없는 봉우리가 산꾼을 반긴다

무명봉(13:28)

좌측은 약초나 버섯이 나오는 곳인지 하얀 노끈이 보인다

조망처(13:31)

조망처에서 바라본 천주봉(좌)과 공덕산의 모습

2019년 11월 24일 영강지맥(신산경표상:운달지맥)을 걸으면서 가까이봤던 산들이다.

오늘은 북쪽인 단양쪽으로는 미세먼지가 덜한 탓에 비교적 등로가 뚜렸이 보이나

남쪽인 문경쪽은 미세먼지가 심한 탓인지비교적 뚜렸하게 보여야 할 거리에 있는

공덕산과 천주봉은 흐릿하기만 한데 폐백이재에서 급경사의 오르막길은 범여에겐

쥐약같은 코스이다...자꾸만 발걸음은 느려지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픈 부위의 통증,

숨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다.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방전된 체력탓인지 한참을 등로에서 쉬었다가

올라가는데 윗쪽에서 서너명의 산꾼들이 내려온다...자세히 보니 안생달에서

출발한 후배 산꾼들이다...빠른 走力으로 대간을 휘젓고 다니는 후배들이

부럽기만 하다...서로의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잠시후에 2번째 만나는 산꾼들...다들 반갑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다.

오랫만에 만나서 반갑고, 부러운 것은 호화준족이라 부럽고, 서러운 것은 예전엔

나도 저 산꾼들 못지 않았는데, 수술 이후에 망가진 내 몸뚱아리로는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는 이빨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린 초라한 내 모습이 서럽다.

 

그러나 우짜겠노...현실에 順應하면서 걸어야제.

미끄러운 겨울 산길 조심하소...산은 늘 거기에 있으니 무리하지 마시고...

갈수록 가팔라지는 오르막길...힘들게 올라서니 대강쪽의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의 삼거리가 있는 928m봉에 도착한다

928m봉(14:10)

이곳에서 남진하는 산꾼들은 걱정을 안해도 되지만 북진하는

산꾼들은 알바에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우측의 방곡리쪽으로는

넔놓고 걷다보면 우측의 급경사 내리막길이 아닌 직진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갈 수 있는 곳이다

 

3번째로 후배 산꾼들을 만나는데 이게 누구여!

산방 살림 똑소리나게 잘하고, 산행 잘하는 서나 총무님 아닌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갈 길이 달라 작별을 하는데

총무님이 호주머니에서 에너지바 하나 주는데, 배가 고프던 차에

어찌나 맛나게 먹었는지 모르겠다...젊은이!...복받을깁니다

조망바위 가는 길에서 바라본 천주봉(天柱峰:836m)의 모습

문경시 동로면과 산북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하늘 높이 우뚝 솟아 기둥처럼 보인다 하여

하늘 받침대라는 뜻의 천주(柱)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지형도에는 천주봉이라 표기되어 있고,

옛 기록에는 천주산이라고 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큰 붕어가 입을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모양이라 이 지역 사람들은 붕어산이라고도 부르는 산이다

조망바위(14:13)

조망바위 좌측 아랫쪽은 천길 낭떠러지로 발한번 삐껏하면 黃泉가는 지름길이다.

조망바위에서 내려가는데 또 한명의 貴人을 만나는데 닉이 ‘청구’라는 분이으로

나를 보더니 환한 미소로 반겨준다.

적지않은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산에서는 펄펄나시는 저 분 힘의 源泉은 어디서 나올까

저 분에 대한 부러움에 비례하여 나 자신의 초라함에 발걸음이 무겁다

무명봉(14:18)

황장산 가는 길의 남쪽 방향은 계속해서 천주봉과 공덕산이 함께 보인다.

문경시 동로면과 산북면의 경계에 있는 공덕산(功德山:913m) 지명은 "공로 공(功),

 덕(德)"자로서, '공과 덕이 많은 산'이라는 뜻인데, 지형도에 표기되어 있는 산이름일 뿐

불교계에서는 이 산 기슭에 자리한 천강석조사불상과 관련지어 사불산(四佛山)으로 부른다.

 

사불산이라는 산이름을 낳게 한 사불암은 신라 진평왕 9년(587년) 하늘로부터

붉은 비단(紅絲)으로 싸여 산중턱의 커다란 암반 위에 내려 앉았다고 전해지며,

진평왕이 이 소식을 듣고 직접 가본 뒤 바위곁에 절을 세운 것이 대승사라는 전설도 전한다.

 

공덕산은 대승사, 사불암 외에 나옹화상이 거처했다는 묘적암과 안장바위, 탑돌이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윤필암, 두 암자 사이에 있는 마애여래불상, 그리고 묘봉의 부부바위,

사불암 아래 유무유바위, 윤필암 아래 나도야바위 등 볼거리가 많은 산이다

잠시후에 가야할 치마바위가 나뭇가지로 보인다.

안부(14:23)

안부에서 오르막을 오르는데 하늘마음 회장, 날라리 총대장, 여인은 누군지 모르겠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한참을 얘기를 하다가 갈 길이 달라서 헤어져 황장산으로 향한다

경상북도 문경시 북동부에 있는 동로면은 북쪽은 충청북도 단양군·

제천시, 동쪽은 예천군, 서쪽은 산북면(面, )문경읍과 접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작성현()이었으나 조선시대에는 예천군 동로소면()으로

불렀으며, 소백산군의 남쪽 사면에 위치하며 해발고도가 높고 주위에 황정산(:1,077m)

대미산(:1,115m), 공덕산·(:913m) 등 높은 산이 솟아 있으며 이들 산간에서 발원하는

작은 하천들은 금천()에 합류하여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연평균기온 12℃이나 내륙에 위치하여 한서(寒暑)의 차가 심하며, 평균강우량은 1,100mm 

내외이고, 산지가 많아 경지율이 적고 일부에서 쌀을 재배하나, 특산품으로 영지 ·표고·

느타리 버섯 등을 재배하여 고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그 외에도 대부분 잎담배·고추 등 밭작물에

의존하는 편이다.

 

마광리에 2개시군 9개읍면에 물을 공급해 주는 경천호가 있고 도로는 북쪽의 벌재(625m)를

넘어 단양군에 이르고, 남쪽으로 점촌읍을 거쳐 상주·예천 등지로 통하며, 문화재로는 황장산

봉산표석(경북문화재자료 227), 명전리 성지(), 작성(), 노고성지() 등이 있다

잡목 사이를 헤치고 나가니... 

멋진 소나무 한그루와 돌들이 포개져 있고 조망이 뛰어난 책바위에 도착한다

책바위(14:30)

겹겹히 쌓인 바위들이 책처럼 보인다고해서 책바위라 부른다

책바위 남동쪽으로는 오전에 문복대를 지나면서부터 계속에서 시야에서

들어오는 천주봉, 공덕산...그 뒷쪽으로는 2019년 11월에 걸었던 대미산에서

시작되는 영강지맥(신산경표상:운달지맥) 능선이 아스라히 보인다

조금을 더 가다가 마지막으로 산꾼들을 만나는데 모두 다 반가운 얼굴이다.

약초에 관한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머루다래님, 한동안 몸이 아파서 산행을

제대로 못한 노루 아우님을 만난다...노루 아우님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핑도는

느낌이다...同病相憐이라서 그럴까...남의 일 같지 않아서 그럴까.

 

노루 아우님!...아프지 마소...아파보니 내만 서럽더이다.

그 이외에 요즘 이 산방을 휘젓고 있는 킴스라는 친구, 모자 살 돈이 없어서 그런지

늘 모자를 안쓰고 다니는 여옥이라는 여인, 그리고 11년전인가 이 산방에서 같이

호남정맥을 같이 걸었던 송영우라는 산꾼을 만난다...한참을 얘기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늦었다...그러면서 안생달까지 가야하는 나를 걱정한다

 

이보소, 내가 가야할 안생달까지는 5km도 채 안 남았는데, 자기들은 저수령까지

가려면 9km이상을 가야 할 터인데...뭔 여유를 부릴까.

내가 보기에는 마지막 팀은 지금 이 시간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수령까지

못 갈것 같아 보인다...그래도 부럽다...후배들과 같이가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지만

밉상으로 민폐를 끼칠것 같아서 용기가 나질 않는다.

 

작별을 하고 각자 가야할 길을 간다

너는 상행선(북진), 나는 하행선(남진)...갈 길이 달랐다. 

여러 그룹의 후배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된 느낌이다.

괜스레 맘이 급해진다...후배들이야 산악회 버스를 타고 왔으니 歸京길 걱정을

안해도 되지만, 나야 안생달에서 문경까지 가서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야하니 맘이 급할 수 밖에...반가운 맘에 얘기하다 헤어질 때, 간식거리라도

하나 얻을려고 하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내려가는데 갑자기 배가 고파온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죽으라는 법이야 있겠나...어찌 해결이 되겠지 하고

1/3정도 남은 식혜를 다 마시고도 배가 고파서 베낭을 뒤져보니 베낭

허리띠에 붙어있는 주머니에 육포 쪼가리 몇개와 알사탕 3개가 있다.

육포는 다 먹고, 알사탕은 어찌될 지 몰라서 아껴둔다

암릉 구간을 올라섰다가 내려서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4:40)

안부를 지나서 오늘 산행의 Mein highlight인 황장산을 향한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이다

암릉구간의 빡센 오르막을 오르는데 집채보다도 더 큰 암릉이 길을 막는다.

길이란 직진만 있는게 아니여...막히면 돌아가면 되지 뭐.

암릉 옆쪽으로 돌아서 가는데 우측 아랫쪽은 오금이 저릴 정도로

천길 낭떠러지이나 맞은편으로 보이는 단양쪽의 명산들+은 환상적이다.

남쪽의 문경쪽은 미세먼지로 인해 산들이 흐릿하나, 북쪽인 단양쪽은 아주 깨끗하다

앞에 보이는 멋진 산은 조선후기 기호학파의 거두(巨頭)인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熱)과

관련된 도락산이고, 우측으로는 잠시후에 가야할 황장산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황정산이다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熱 )

도락산 너머로는 신선봉과 수리봉이 아련하게 보인다

눈으로 인한 본격적인 결빙구간이 시작된다...후배들이 조심하라는 구간인 모양이다 

북쪽의 나뭇가지 사이로는 잠시후에 가야할 감투봉(좌)과 황장산(중),

그리고 대간길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투구봉(우)이 보인다

우매!...미치겠네...눈이 녹았다 얼었다하면서 마루금은 빙판이 되어 버렸다.

급경사의 오르막인데 스틱으로 안되겠다싶어 스틱을 접고, 옆에 있는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올라가는데 기럭지가 짧아서 애를 먹는다.

숏다리의 悲哀를 뼈져리게 느끼면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힘들게 한 구간을 통과하면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가야할 황장산이 가까이 보이나 가야할 산행이 그리 쉽지 않을것 예감이 든다

넓은 공터를 지나서 내려서 대슬랩지대가 나오고 잠시후에 오를 치마바위가 보인다.

치마바위는 멀리서 보면 화강암 절벽이 치마처럼 펼쳐 있어서 치마바위라 하는데

지도상에 족보있는 봉우리로 치마바위봉이라 부르지 않고,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1,004.5m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대슬랩지대로 내려가는데 경북 북부와 충북 지역에서 주로 자생하고 있는

멸종위기식물 2종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꼬리털진달래가 간간히 보인다

대슬랩지대에서 당겨본 운달산의 모습

대슬랩지대를 내려가면서도 숏다리의 비애를 뼈져리게 느낀다.

이런곳에 로프하나만 있었어도 편하게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비탐구간이란 이유로...아!...힘들다

대슬랩지대를 내려와서 조심스레 내려서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4:57)

치마바위봉을 향하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아쉬워도 많이 아쉬운가 보다.

공덕산과 천주봉은 아직도 내 시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암릉구간을 통과하는데 양지라서 개고생은 면한다

멋진 암릉구간을 지나니...

미끄러운 등로가 산꾼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두터운 옷이라도 입고 있지만 이 와중에 옷을 훌러덩 벗고 맨 몸으로 당당하게

추위와 바람을 대하는 별난 친구가 있는데 이름하여 겨울을 이겨내는 나무이다.

봄날 움을 틔워 초록빛을 발산하지만 나비와 벌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시샘하지

 않는 친구...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 빛을 시원한 그늘로 바꾸어  산꾼들을 쉬어 가게

하지만 생색을 내지 않는 친구... 가을에는 스스로 변화하여 주위에 볼거리를 제공해주지만

뽐내지 않는 친구... 겨울에는 눈보라 속에 가지가 꺽이기도 하지만 온갖 가식을 모조리

떨쳐버리고 본래의 면목만을 보여주는 친구...落木寒天(낙목한천)속의 나무이다.

나무는 무수한 사계절을 지내면서 이 같은 일을 반복하는 삶을 영위하다 그러다가 수명을 다한다.

나무는 죽었다고해서 곧 바로 쓰러지거나 썩지 않는다... 수명을 다한 나무는 참으로 긴 시간을

죽은 채로 지내게 되는데 죽은 채로 지내는 동안 숲의 온갖 생물들이 나무를 자원으로 그리고

집으로 이용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무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보살(菩薩)과도 같은 모습이다.

나무는, 이것 저것 복잡한 현대 생활에서 당당하고 그리고 무심히 살아가는 방법을 오늘

겨울 산(대간)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다.

잠시후에 오를 감투봉과 황장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작성산성(鵲城山城)터의 흔적(15:15)

문경시 동로면 황장산에서 충북 쪽으로 트인 험한 곡의 물길 하류인 문안골에

자연의 험준함을 이용해  성벽으로 누가 쌓았는지에 대해서는  기록 없다.

 

다만 고려 공민왕이 전란을 피해 대지국사 안내 받아 황장산 부근 머물렀을 ,

() 장군이 황장산에서  진지를 다듬고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올 뿐이다.

또한  보다 훨씬 앞서 927 견훤이  성을 지키다 고려 태조 왕건의 공격을 받은 

  지르고 달아났다는 이야기도 아울러 전해진다.

작성산성터를 우회하여 오르막으로 오르는 길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암봉(15:18)

조금전에 아그들과 遭遇했던 능선을 바라보면서 잘가는지 걱정이다.

내 계산으로는 그 시간대에 선두에 만났던 산행대장 그룹과 레전드

청구님까지는 저수령까지 가는게 가능하겠지만 그 이후의 그룹들은

일몰전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 왜들 그리 여유가 있는지?...

하기사 내가 아그들 걱정할 처지는 아닌데...ㅋㅋㅋ

천주봉은 조금씩 멀어지고 그 뒷쪽으로 문경시 산북면으로 펼쳐지는

영강(운달)지맥이 보인다...저 능선 걸을때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었는데...

조망바위(15:25)

백두대간 마루금이 가장 많이 지나가는 문경 구간은 대간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이유는 이 구간의 산 하나 하나가 모두 뛰어나고 눈부신 조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고 작은 산줄기가 모두 한 군데로 모이기도 하고 다시 나누어지기도 하는

원리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고, 작은 산줄기 모여서 굵어지는 곳(대간 마루금)

에서 물줄기는 가늘게 시작하며, 크고 작은 물줄기가 모여서 굵어지는 곳에서 산줄기는 

가늘어진다는 원리... ‘굵음과 가늘어짐의 조화’ ‘산줄기와 물이 휘둥그스름하게 굽이져 모양을

이루는 형세’ 즉 태극의 모양이다.

산경표를 저술한 여암 신경준은 「산수고(山水考) 」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하나의 근본에서 만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은 산(山)이요,

만 가지 다른 것이 모여서 하나로 합하는 것은 물(水)이다”

이는 우리 땅 전체인 대간이 하나로 어우러짐을 나타내는 말로서 곧 태극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전통지리에서는 우리 땅을 ‘山太極 水太極’이라고 불렀다.

태극은 음(陰 : 파랑)과 양 (陽 : 빨강)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러한 태극은 우리 국기에 까지 표시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물 잇기를 반대하는 무리들은 비단 환경단체들 뿐만이 아닌 것이다.

물구멍을 만들면 산태극 수태극이 망가질 수 밖에 없으며 이는 나아가 태극기를 훼손하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우려하는 전통 지리학자들 대부분도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 지방의 이름 聞慶은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聞慶이 아니라

듣기 거북한 소문을 듣게 되는 聞硬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산수고(山水考)는 영조 때 신경준이 최초를 우리나라의 산과 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지리서로

  1770년 영조의 명으로 신경준이 집필한 『東國輿地勝覽』「輿地考」와 선후 관계는 불명확 관찬서인

  동국여지승람 여지고『東國輿地勝覽』「輿地考」에서는 백두산을 조종산(祖宗山:주산(主山)위에

  있는 주산)으로 하여 팔도의 모든 산이 백두산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서술하여 산경표의 백두대간

 체계와 유사한 내용이다

소나무처럼 / 김완성

 

소나무처럼 저렇게 살고 싶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뛰어가지 않고

눈보라가 후려쳐도

쉬어 가지 않고

불볕이 쏟아져도

그늘에 숨지 않는

소나무처럼 저렇게 살고 싶다

앞에 뾰족하게 보이는 산이 황장산에서 살짝 벗어난 있는 투구봉이 그 뒷쪽이 도락산,

도락산 우측이 황장산과 지명이 비슷하여 헷갈리게 하는 황정산, 그 우측으로는

신선봉과 수리봉이 아련하게 보인다

살짝 당겨본 황정산(黃庭山:960m)의 모습

단양군 대강면 황정리에 있는 황정산은 도락산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산으로

단양군의 유명한 다른 산과 명승지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칠성암이 신단양팔경의

하나로 지정되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 산은 신라시대에 창건된 천년고찰인 대흥사와

원통암을 비롯하여 마당바위· 누에바위·괴물바위·돌탑바위·남근바위 등이 유명하다.

『해동지도』에는 단양군 남면에 현재의 도락산과 황정산으로 추정되는 산 사이에 축치(丑峙, 현재의 직치)가

표기되어 있으나 산 이름은 표기되어 있지 않으며 『1872년지방지도』에도 단양군 남면에 대흥사와

올산리만 표기되어 있다.

고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대흥사는 도가풍의 대사찰로 1907년 의병과 일본군의 교전 중에 불탔고,

현재의 사찰은 이후에 새로 지어진 것이라고 전하는데, 고문서나 고지도에 황정산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으며, 관련 지명인 '황정리'에 대한 기록도 『한국 충청북도일반』에서 남면의 관할

동리로 처음 나타난다... 따라서 황정산이란 이름은 1909년경에 붙여진 것으로 보이는데

'황정(黃庭)'이란 신선의 정원을 뜻한다고 하는데 황정산 아래의 황정리 일대는 물이 맑고

주변 풍광이 아름다우며 넓은 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전에는 조망바위에서 암릉을 타고 직진으로 올라갔는데 지금은 우회길을 해놨다

우회를 하여 암릉으로 올라가는 길에 새끼손가락보다 가는 로프를 설치해놨다.

이곳이 비탐구간이라 이곳을 관할하는 국공파에서 설치했을리는 만무할것이고

목마른 자가 우물판다고고 했잖은가...아마도 대간꾼들이 설치한 듯 한데...

고맙습니다

조망바위(15:33)

아그들과 조우했던 능선 뒷쪽으로 문복대가 보일락 말락한다

이곳이 저수령에서 출발하여 10km 지점에 해당되는 곳인데

배도 고프고, 길이 미끄러워서 그런지 예상시간보다 훨씬 많이 걸렸다

암릉구간을 올라서니 치마바위봉 정상이 나온다

치마바위봉(1,004.5m:15:37)

멀리서 보면 이 봉우리 아랫쪽의 화강암이 마치 치마를 두른릇 보인다고 해서

치마바위봉이 부르는데, 정작 정상에는 벌거벗은 나무 한그루가 온갖 苦難을

이겨내며 정상을 지켜내고 있는데 멋진 사진 남기기에는 뷰가 끝내주는 곳이다

치마바위봉 정상의 모습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나태주 / 그리움

안부(15:42)

습랩지대로 올라선다

가야할 감투봉과 황장산이 보이는데 너무 급경사라 우째 올라야 할 지 걱정이다.

조망바위(15:47)

백두대간 대미산에서 분기하여 여우목재, 국사봉, 운달산으로 이어지는

영강(신산경표상:운달)지맥이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미세먼지로 흐릿하게

보이고 골짜기에 겨우 보이는 901번 지방도는 산행후에 지나가야할 도로로

동로면에서 문경읍내 넘어가는 길로 옴팍한 곳이 여우목재인데 저 고개를

넘으면 박마을이다

계속되는 암릉구간

코 앞에 까지 다가온 감투봉과 황장산

988m봉(15:48)

암릉구간의 넓은 공터에 시멘트 블럭이 보이는데 예전에 헬기장이었나?

내려가는 등로는 양지라서 눈도 없고 등로도 완만하다

안부(15:51)

음지에서 간간히 잔설들이 보인다

폐헬기장(15:51)

폐헬기장을 지나자마자 황장재가 나온다

황장재(黃腸峙:15:52)

감투봉과 치마바위에 위치한 고개로 황장산 아래에 있어서 붙혀진 지명인 듯 하다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에서 명전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며 생달리의 동로초등학교

생달분교(폐교)와 명전리의 문안골로 이어지는 길로 등산로는 뚜렸하다

 

문안골쪽으로는 오르는 길에 고려시대에 자연석으로 쌓았다는 작성산성이 남아 있으며

생달리 토사골쪽은 수리봉이 있으며 리지가 형성돼 암벽훈련 코스로 인기를 얻고 있다

감투봉 오르는 길

먹은 것이 너무없어서 그런가...더 이상 걷지를 못하겠다

베낭을 뒤져보니 미니 초콜렛 2개와 알사탕 몇개가 더 나온다.

굶어 죽으란 법은 없는가 보다..초콜렛 1개와 알사탕 2개로

당분(糖分)을 보충하고, 선 채로 휴식을 취한다

오늘 산행길에 가장 힘이 들었던 魔의 구간.

千辛萬苦끝에...

 감투봉이 있는 능선에 올라선다

등로에서 바라본 감투봉의 모습

안부(16:10)

안부에서 올라서면 마루금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감투봉 갈림길이 나오는데

남진이던 북진이던 아무 생각없이 무심코 걷다보면 놓치기 쉬운 봉우리다

아무리 늦어도 감투봉을 안 갈수야 없잖은가?

감투봉(1,039.5m:16:13)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와 명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감투봉에 대한 지명의

유래 자료는 찾을 길이 없으나 감투에 대한 어학사전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직책’이나 ‘직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

2.예전에, 머리에 쓰던 관의 하나를 이르던 말

3.‘탕건’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오는데

 

탕건(宕巾)’은 예전에, 승려나 노인들이 추위를 막기 위해 쓰는 모자를 가리키는 말로,

 짐승의 털을 짓이겨 편평하게 만든 조각으로 바가지 모양으로 만들고 양옆은 접어 

올리거나 펴서 뺨을 가릴  있게 되어 있다...아무래도 이 봉우리는 탕건을 닮았다고

해서 감투봉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예전에서 감투봉에 대한 아무런 표식이 없고, 누군가가 돌에다 적색 스프레이로 

감투봉이라 해놨는데 지금은 분당의 해밀산악회 대간 7기의 한돌님께서

멋진 산패를 달아놨다

감투봉 남서쪽으로는 생달리가 흐릿하게 보인다

 

문경시 동로면 생달마을에 대한 재미있는 지명유래가 있다.

생달리(生達里) '산달' 또는 '산다리' 로 불리웠는데 '안산다리' '바깥산다'가 있다.

생달은 산과 달만 볼 수 있는 두메산골이라는 뜻으로 산()(), 산다리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고, 그 후 생달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마을 어귀에 다리가 있고 그 다리에서 사람이 떨어졌으나 죽지 않고 살았다 하여

()다리라 해서 산다리라는 마을 이름이 되었다는 속설도 있으며,

또한 마을 뒷산에 고불형(顧佛形)의 명당(名堂)이 있다는 풍수설(風水說)에서

안산다리 마을입구에 '고불목'이라는 자연부락이 위치하고 있다

북서쪽으로는 잠시후에 황장산을 지나서 차갓재로 내려가는 대간 능선이

뚜렸하게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2020년 3월에 대미산과 차갓재 사이에서

분기하여 충주호로 입수하는 광천(신산경표상:등곡)지맥에서 대장노릇(?)을

하는 문수봉이 우뚝 솟아있다.

안부(16:15)

안부로 올라서면서 까칠한 암릉구간이 시작되는 곳이다

선돌(立石)아!...잘있었냐?

2년반만에 너를 만나니 무척이나 반갑구나.

계속되는 칼날능선

황장산이 코 앞이건만...발걸음은 천근만근이다

암봉(16:18)

칼날 능선 아래로 내려선다

생각보다 상당히 미끄럽다

안부(16:26)

내가 지나온 능선...맨 끄트머리에 문복대와 저수령 너머 뒷쪽으로 촛대봉이 보인다.

가지말라는 비탐구간이긴 하지만 전망하나는 끝내준다

또다시 칼날 능선을 곡예하듯이 걸으면서 마루금을 이어간다

계속되는 고행길

비탐구간이라 그런지 대간꾼들의 안전에 관한 시설물은 전혀 없다

암릉 위로 오를수가 없어서 우회하면서 내려가는데...

비탐구간이 끝나는 지점의 안생달 갈림길 안부가 보인다

비탐구간 마지막을 통과하는데 출입금지 표지판과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훤스로 막아놓고는 산꾼들이 통과할 수 있도록 구멍을

친절(?)하게 만들어 놨다...다니라는거야...말라는거야

안생달 갈림길(1,037m:16:35)

안산다리(안생달) 생달리 중에서도 가장 안쪽에 있는 마을로

대미산과 황장산 사이 해발 500m 부근의 마을인데, 한 때 70

가구가 숯을 구워 팔며 살았다고 하는데 1970년대 초반부터 숯 생산이

금지되면서 가구수가 줄게 되었다고 하는 마을이다.

황장산을 거치지 않고 안생달 한백주 양조장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황장산 가는 길

황장산 오르는 저 끄트머리에 단양에서 저수령으로 오르는 927번 도로가 흐릿하게 보인다

배고픈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며 아그들과 헤어진 후 예상했던

시간보다 1시간이상 늦은 시간에 황장산 정상에 도착한다

황장산 정상에 있는 이정표

특이한 점은 이정표에 태양광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아래

스마트폰 충전기가 달려있는데 누군의 발상인지 굿아이디어다

황장산(黃腸山:1,078.9m:16:46)

경북 문경시 동로면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1/25,000지도에 황정산(黃庭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에는

작성산(鵲城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문경 군지(1982년)에는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명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정확한 이름은 황장산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

 

그것은 황장목이 많고 1925년 조선총독부 임시 토지조사국에서 발행한

『조선의 산악 명칭과 소재 높이』에 황장산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노인들이 황장산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작성(鵲城)과 봉산(封山) 표석이 있는 산이며,

울창한 계곡과 암릉에 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다.

 

황장산의 이름은 황장목이 많은 데서 유래했는데, 황장목은 왕실에서 대궐이나 임금의 관,

배 등을 만드는 데 쓰는 최고 품질의 소나무를 말하는데 송진이 꽉 차 속살은 누렇고,

목질이 단단하고 결도 곱다.

 

조선 숙종 때(1680년)는 나무 보호를 위해 벌목과 개간을 금지하는 봉산(封山)으로

정하고 관리를 파견, 감시했으며,당시 세워진 봉산 표석(지방문화재 제227호)이

명전리에 남아 있다...지금은 안타깝게도 과도한 벌채 등으로 황장목이 없다.

인증샷

본래 조선말기까지 작성산(鵲城山)이라 불리었는데 이는 인근의

고려때 축성된 것으 추정되는 작성산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동지지 예천군읍지등에 그 기록이 있다.

 

황장목(黃腸木)은 줄기의 고갱이 부분에 송진이 적절히 베어들어 속살이

누런 소나무를 말하는 것으로, 그 모양이 마치 누런 창자와 같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천황의 정원이라 하여 황정산이라고도 하였고,

지금도 이 산을 황정산(皇庭山)으로 부르거나 표기한 지도를 가끔 볼 수가 있는데,

이는 잘못 된 표기이며, 황정산은 단양 쪽 맞은편에 따로 있다.

골짜기가 깊어 원시림이 잘 보존되어 있고, 낙동강의 지루인 乃城川(내성천)

지류인 금천(錦川) 상류부가 산의 남쪽사면을 감돌아 흐른다.

황장산 정상의 2등 삼각점(△단양24)

오늘 산행은 짧은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예상했던

시간보다 너무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서둘러 길을 나선다.

설이 조금씩 보이긴 해도 차갓재로 가는 길은 양지의

등로라서 이곳에서 아이젠을 벗고 산행을 시작한다

잔설이 남아있는 구간을 지나니...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면서...

생달리 마을 뒷쪽 능선 너머로는 대미산(우)을 기준으로 국사봉, 운달산, 단산 등이

보이나 문경지역의 미세먼지는 너무 심해서 멋진 산그리메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전망대(16:54)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락산

단양군 단성면에 있는 도락산(道樂山:965.3m)의 지명은 조선 후기의 정통 성리학자이자

기호학파의 거두(巨頭)인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熱 )선생이 "깨달음을 얻는데는 나름대로

길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필수적으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산 이름을 지었다는

우암의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산이다.

 

* 송시열(宋時烈:1607~1689)은 조선 후기의 정통 성리학자로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 주자의 학설을 전적으로 신봉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평생의 업을 삼았으며, 17세기 중엽 이후 붕당정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서인노론의 

 영수이자 사상적 지주로서 활동했으며, 보수적인 서인, 특히 노론의 입장을 대변했으며,

  명을 존중하고 청을 경계하는 것이 국가정책의 기조가 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강상윤리를 강조하고 이를 통해서 국가·사회 기강을 철저히 확립하고자 했다

도락산 뒷쪽의 좌측으로는 채운봉(좌)과 제봉이 보인다

아주 험한 구간을 아주 편하게 걷는다

묏등바위(16:55)

무덤의 두두룩한 윗부분처럼 생겼다고 해서 묏등바위라 부른다

암릉구간 아래로 내려가는데 저 멀리 월악산 좌측으로

문경의 진산이라는 주흘산도 살짝 보일락 말락 한다

차갓재로 이어지는 능선 뒷쪽으로 문수봉(1,162m)

그 뒤로는 월악산의 주봉인 영봉(1,097m)이 얼굴을 내민다

급경사의 철계단 내리막길...오금이 저려온다.

백두대간 1차때는 이곳을 로프로 타고 올라온 아주 위험한 구간이었다

도락산 뒷쪽으로 보이는 채운봉의 모습

급경사의 철계단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안부 능선이 나오고 직진으로

가면 투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나오나 비탐구간인지 휀스로

막혀있고 좌측 사면길 데크목 등로가 나온다

투구봉 갈림길(996m:17:05)

차갓재로 향하는 등로의 바닥에는 板石처럼 생긴 돌들이 많이 보인다

계속되는 암릉구간

안전 철제가 있는 암릉구간...제도권 등로가 등로 정비는 잘되어 있다

걷기 힘든 암릉구간은 데크목 등로로 만들어 놨다

좌측으로 보이는 능선은 황장산에서 생달리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마지막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암릉구간이 거의 끝이난 모양이다

이곳부터 차갓재로 가는 길은 편하다.

배고픔을 참으면서 부지런히 내려간다

865m봉(17:20)

865m봉 이정표

다시 시작되는 데크목 계단길

전망대(17:28)

생달리가 한 눈에 보이는 곳이지만, 역광에다 미세먼지가 심해서 오리무중이다

대미산 너머로 해는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체력이 방전되어 차갓재까지 가기는 힘들겠지만, 작은

차갓재에서 안생달까지는 어둡기전에 도착할 것 같은 느낌이다

작은 차갓재로 가는 길

암릉구간에는 어김없이 편안하게 등로를 만들어 놨다

작은 차갓재가 거의 다와가는 느낌이다

잣나무 군락지 사이로 통과하니 헬기장이 보인다

헬기장(17:37)

작은 차갓재(769m:17:40)

이정표와 쉼터 의자가 있고 안생달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뚜렸하다.

차갓재와 작은 차갓재가 있는데 황장산으로 오르는 주 등로는

차갓재가 아닌 작은 차갓재로 형님격인 차갓재에 비해서 훨씬 길이 좋다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 안생달에서 차갓마을과 동로면 명전리를 거쳐 충북 단양군

단성면으로 이어지는 고개로, 안생달 마을에서 백두대간길에 올라서면 차갓재와

작은차갓재가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으며, 차갓재의 유래는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동로면 생달리 안생달 마을과 생달리 차갓마을을 이어주는 고개로서

차갓마을에서 유래된 고개이다.

 

일설에는 재 넘어 또 재가 있다는 차가(且加)재에서 유래했다는 고개다.

그런데 여기서 차갓재의 "갓"은 충청도나 전라.경상도에서는 "주변:이란 뜻의 사투리이며

"갓"은 "가치"로 발음되어 이를 한문으로 옮겨적을 때 "가치"에 가장 가까운 까치작(鵲)의

첫 글자를 쓰고 문안골에 있는 작성산성에서 재성(城)자를 빌려와 鵲城山으로 명명하였다.

‘차갓’은 ‘차가’의 본디말로 ‘막힌 집’ 즉 ‘산골의 마지막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차갓재까지는 20분을 더 가야 하기에 작은 차갓재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편안한 마음으로 생달리 차갓마을로 내려간다

산속이라 그런지 어둠이 빨리 찾아오는 느낌이다

카메라의 후레쉬를 작동시키지 않았더만 빛의 잔량(殘量)이

모자란지 카메라의 사진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내리막길이라서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오르막이 문제지...내리막길은 큰 문제가 없다

작은차갓재에서 안생달로 내려가는 계곡의 상류인 우만골을 지나간다

산에서 완전히 벗어나는데 황장산 등산객을 체크하기 위함인지

등로 출구에는 센서가 달린 계수기가 설치되어 있다

산을 벗어나니 황장산 알림판과 컨테이너로 만든 멋진 건물이 보이고...

그 아래 마당에는 CAVE라는 커피집인지 카페인지 모를 업소가

영업을 하고 있고, 마당에는 차량들이 서너대가 보인다

 CAVE라는 업소를 지나는데...

문경으로 나가는 차가 없나 하면서 택시를 부를까 고민하면서 

생달리로 내려간다

일몰 직전에 내려선 안생달리(17:55)

차갓재에서 내려오는 길을 만나서 생달리로 내려간다

생달리 오미자 농장(18:10)

생달리가 있는 문경시 동로면은 우리나라 오미자 생산의 45%가 생산되는 곳으로

오미자는 관목으로 목련과(Magnoliaceae)로 분류하기도 한다. 잎은 어긋나며 타원형이고

뒷면 맥 위에만 털이 있고 가장자리에는 잔톱니가 있으며, 꽃은 길이가 7~10㎝, 지름이 1.5㎝

정도이고 암꽃과 수꽃이 6~7월경에 다른 그루에서 피는데 연붉은빛이 도는 황백색이다.

 

꽃덮이조각[花被片]은 6~9장이고, 수술은 5개, 암술은 많으며, 꽃이 진 후 꽃받기[花托]가 5㎝

정도 길이로 길게 자라 열매가 수상(穗狀)형태로 내리 달린다.

공모양의 열매는 8~9월에 붉은색으로 익는다. 각지의 산골짝에 군락을 이룬다.

 

오미자(五味子)·남오미자(南五味子)·북오미자(北五味子)·북미(北味)·현급(玄及)·회급(會及)·

조선오미자(朝鮮五味子)·홍내소(紅內消) 등으로도 불리며, 한방과 민간에서는 신맛이 강한 

열매를 오미자라고 해 단독치료에 쓰이고, 해소제·자양제·강장제·수렴제 등으로 사용한다.

 

이외에도 가지의 껍질을 물에 담가서 그 물을 머리에 바르기도 하며, 가을에 포도송이처럼 

붉게 열매가 달리기 때문에 집 안에 관상용으로 심기도 하며, 오미자술은 예로부터 정력제로

알려져 있으며, 오미자를 물에 담가 놓고 차(茶)처럼 마시면 기침을 다스리는 데도 효능이 있다.

유기산·염류·타닌 등이 주요성분으로 열매의 맛이 5가지로 난다고 하여 오미자라 한다. 

비슷한 종(種)으로 제주도에서 자라는 흑오미자(S. nigra)가 있으며, 

학명은 Schizandra chinensis이고 아세아가 원산지이며 꽃말은 ‘다시 만납시다’란다

아무래도 문경 택시를 호출해야겠다고 전화기의 비번을 푸는데 

RV 차량이 한 대 내려오기에 염체 불구하고 손을 들었더니만

이 늦은 시간에 산행하면 위험하다가 하면서 차를 세운다.

 

문경으로 가서 서울로 가야한다고 하니 문경읍내를 나가는 중이라

하면서 18시 50분 차를 타려면 시간이 촉박하네요 하면서 자기 일처럼

자동차의 속력을 내더나만 18시 43분에 문경터미널에 도착하고는

고맙다는 인사도 건네기전에 어둠속에 사라져 버린다

고맙습니다...그리고 복받을깁니다 

문경터미널(18:45)

문경발 → 동서울행 버스표

버스표를 구매한 다음에 배가 너무 고파서 그러니 근처에 편의점이 없냐고

물으니 표를 파는 아줌마가 어르신 지금 곧 버스가 들어오는데 화장실 갈

시간도 없겠네요 하면서 커다란 사과 하나를 주면서 이거라도 드셔요 한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화장실에 갔다오니 버 스가 도착하여 버스에 오르는데

다행히 승객은 몇명 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없는 맨 뒷쪽에 간 다음에 사과 하나를

먹고, 씻지도 못한채 옷을 갈아입고 잠을 청하는데, 젊은 버스기사가 어찌나

난폭 운전을 하면서 브레이크를 밟아돼는지 잠을 한 숨도 못자고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여 예전에 간간히 이용했던 포장마차에서 잔치국수와 김밥한줄을

먹고나니 정신줄이 돌아온다...정신을 차린 다음에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