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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白頭大幹 4次(진행중)

제49구간 - 오목골 갈림길에서 대관령까지(역산행)

by 범여(梵如) 2023. 1. 24.

雪 山行에서 無識과 무대포의 차이를 배우다

☞산행일자:  2023년 01월23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강한 바람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7.2km + 들머리0.6km + 날머리 4.2km / 4시간5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대관령-이동통신 공용 기지국-영동고속도로 준공기념비-갈림길-새버댕이

                    제왕산 갈림길-쉼터-헬기장-능경봉-행운의 돌탑-안부-1,036.5m봉-안부

                     970m봉-안부-942m봉-안부-943m봉-횡계치(대관령 제1터널 위)-샘터-

                    985m봉(쉼터)-왕산골 갈림길-무명봉-쉼터-연리지-전망대-1,171.7m봉

                   오목골 갈림길-폐묘-안부 골짜기-임도-임도 삼거리-평창 라마다호텔 입구

  소 재 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구 도암면) / 강릉시 성산면, 왕산면

 

집에서 하루종일 있어본 적이 없는 범여로서는 명절후 이틀동안 집에

머문다는 건 상상이 잘 안된다...섣달 그믐날  옛 생각을 떠올리며 불알

친구 2명과 함께 시내에서 만나 인왕산과 안산의 등산을 하고 술 한잔

할 생각이었는데, 동행한 친구 넘들이 산을 그리 좋아하지 않은 스타일이라

경복궁과 청와대를 대충 구경하고는 종로 2가 익선동에서 냉동 삼겹살에다

소주 몇병을 나눠 마시고, 다시 걸어서 종묘를 대충 구경하고, 광장시장을

지나 종로5가에 있는 닭한마리집에 가서 소주 몇병을 마셨더니만 오랫만에

술을 한 탓인지 속이 상당히 부대낀다...설날 아침에 절에가서 부모님 제사를

지내고 집에 돌아오니 출가한 딸 내외가 세배를 하러 온단다.

 

오랫만에 가족들과 집에 오래 있으려니 힘이 든다.

애들이 저녁 늦게 자기 집으로 가고 산행 준비를 하는데 그믐날 마신

술 탓인지 자꾸만 설사가 나고 힘이 들어서 산행을 포기할까 생각을

했지만 산에가면 나아지겠지 하고 조금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산악회 버스가 출발하는 신사역으로 향한다

 

이 산악회에는 차비만 받고 운행하는 곳으로 대관령까지가 18,000원도

안 한다...몇번을 이용한 산악회라 그리 낯설지는 않다...오늘은 선자령과

능경봉으로 가는 버스인데 대다수의 등산객들은 100대 명산으로

불리는 선자령으로 향하지만, 난 이 버스를 타고가서 대관령에서 닭목령

구간의 백두대간의 한 구간을 할 예정으로 버스에 오른다.

 

신사역에 도착하니 명절후에 갈 곳없는 등산객들이 많은지 45인승

버스가 거의 滿車 수준이다...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횡계 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한 다음 대관령에 도착하니 다른 산악회에서 온 차량들도

많이 보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대관령 주차장(10:20)

싼게 비지떡이라더니 낡은 산악회 버스가 고속도로 횡성휴게소 오르기 직전에

버벅거리면서 심한 소리가 나더니만 제대로 속력을 못내면서 저속으로 달리는

바람에 고속도로에 차가 밀리지 않은데도 예상시간보다 늦게 대관령에 도착한다.

산행을 시작하다(10:30)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등산객들은 선자령으로 사라져 버린다.

산을 타는 사람은 조급함이란 대간꾼, 맥꾼이나 100대 명산을 걷는

일반 등산객들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듯 하다.

 

나야 어차피 저 사람들과 같이 갈 일도없고, 산행 대장이라는 자가

오후 4시20분에 이곳에서 출발한다지만 이곳으로 올 일이 없으니

신경을 쓸 일도 없다...느긋하게 산행 준비를 하고 대관령 정상으로

향하는데 날씨는 무쟈게 좋으나 대관령의 칼바람은 변함이 없다.

산행이 시작되는 대관령이란 옛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쪽의 휴게소이다.

지금은 영동고속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되면서 노선이 변경되어 옛 왕복 2차선

영동고속도로는 지방도(456번)로 전락하고, 대관령 휴게소는 폐기된 상태라서

드넓은 주차장이 한적하다 못해 황량하다고 해야할 만큼 분위기가 스산하다.

그런데 워낙 바람이 센 곳이라서 휴게소 주차장 한쪽에 거대한 풍력발전들이

덩그렇게 세워져 있는 곳을 지나 대관령 주차장에서 10여분 걸려서 대관령정상에

도착한다 

대관령(大關嶺::832m:10:40)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대관령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영서지방과

영동지방을 잇는 5개의 고개(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구룡령,대관령)중에

가장 남쪽에 있는 고개이다.

 

아흔아홉 험준한 고개를 오르내리며 대굴대굴 굴러 대굴령이라 하였으나

음절 되어 대관령이라, 또한 영서-영동 영동-영서를 넘나드는 큰관문이라

대관령이라 불리게 된 이곳은 삼국시대 부터 지명이 史書에 기록 된 곳으로

오래 전부터 영동과 영서을 잇는 교역로이자 교통로써 관문이였다

 

삼국유사에는 대령(大嶺)이라 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굴령(堀嶺), 조선 중기

이후부터 대관령(大關嶺)이라 칭했다고 하며,총 길이가 13km나 되는 고개로

원읍현(員泣峴:원울이재), 반정(半程:반쟁이) 등 많은 유래가 전해지며 강릉

출신인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허균 등의 여러 詩文이 지어진  고개이기도 하다.

 

대관령을 넘는 대관령 옛길을 예전부터 아흔아홉구비라 부르는데, 여기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고개로 율곡 이이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면서 출출할 때 먹을

심산으로 곳감 100개를 바랑에 지고 길을 나섰는데 그 옛날 고을원이 강릉부사로 발령을

받고 길을 나선 후 쉬면서 울었다고해서 이름 붙여진 "원울이재(員泣峴)"에서 부터 대관령

옛길을 따라 한 구비를 돌때마다 곳감을 하나씩 먹었는데 정상에 다다르니 곳감이 한개 밖에

남지않았다 한다.

뒤돌아 본 대관령 고개

얼마전에 눈이 많이 온 모양이다...제설작업 이후 도로변에 밀어낸 눈이 장난이 아니다

대관령 정상석에서 사진 한컷 찍고 이동통신탑 윗쪽으로 올라가는데

이곳은 눈이 허리까지 차오르는데 최근엔 아무도 다니지 않은 모양이다.

초반부터 우회할 수는 없어서 능선을 치고 오르니 이동통신탑이 나온다.

이동통신 공용기지국(10:43)

아무도 가지않은 길을 초반부터 힘들게 올라서서

조금을 진행하니 영동, 동해 고속도로비가 나온다

영동, 동해 고속도로비(10:45)

영동고속도로는1975년10월1일 개통 되면서 기념비로 세운"민족의 대동맥 영동 고속도로

준공비"하고 새겨져 있고 100톤 무게에 100m 높이에 거대하고 웅장하게 서 있다

 

준공비 비석 뒷면에는 “박정희 대통령 영단으로 경인, 경부, 호남, 남해노선을 완공하였고

오늘로서 영동및 동해노선을 완공하여...” 라는 長文의 문구가 적혀있는데 1975년 10월 1일

개통한 이 고속도로는 지금 이 아래로 지나가는 대관령 터널에 옛 영화를 빼앗기고 지금은

나같은 대간산꾼이나 양떼목장을 찾는 탐방객이나 들리는 잊혀진 고개가 되버렸다.

고속도로비 뒷면에는 강릉출신의 신사임당이 한양으로 가면서 친정인 강릉을 뒤돌아 보면서

지었다는 신사임당의 思親詩가 한글로 적혀 있는데 50여년간의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탓인지 많이 마모되어 있다.

영동, 동해 고속도로비 뒷면의 신사임당 사친시비(申師任堂 思親詩碑)

신사임당이 38세 때 친정에 갔다가 시댁인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대관령을 넘으면서 쓴 詩로

바로 위에서 귀(歸)의 본 뜻은 시집가는 것이라고 했는데, 시댁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제는 결혼해 시댁으로 돌아가며, 친정의 부모를 그리는 애뜻하고 아픈 마음이 진하게

와닿는 느낌이다

 

踰大關嶺望親庭(유대관령망친정) 

대관령 넘으며 친정을 바라보고

 

  慈親鶴髮在臨瀛 (자친학발재임영)

학 머리 어머님 임영 계시고

 

身向長安獨去情 (신향장안독거정)

이 몸 서울 향해 홀로 가는 맘 

 

回首北村時一望 (회수북촌시일망)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白雲飛下暮山靑 (백운비하모산청)

흰구름 저문산을 날아 내리네 

 

영동, 동해 고속도로비 뒷면의

신사임당 역문의 詩는 다음과 같다

 

늙으신 어머님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 길을 가는 이 마음

돌아오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영동, 동해 고속도로비가 있는 곳을 머물다가 다시 길을 떠나는데

생각보다 그리 바람은 심하지 않고 초반에는 적설량은 많으나 눈이

다져져 있어서 산행을 하는데는 큰 어려움은 없을듯 하다

기분좋게 능경봉을 향하는 발걸음을 옮긴다

섣달 그믐날에 마신 술이 과했는지 아직도 술을 먹은 이후의 후휴증은

남아 있는지 완만한 능선이지만 은근히 힘이 든다... 그래도 명색이

산꾼이 이런것에 휘둘리면 안되겠지...

집에서는 산에 가지 말라고 난리지만 가지 않을 내가 아닌던가...

산꾼은 산으로 들어설 때가 확실히 마음이 편한 듯 하다

대간꾼들이 길을 잃을까봐 안전 로프를 설치해놨고 등로는 반질반질하다.

흔히 맥꾼들이 말하는 고속도로같은 길이 산꾼을 기다린다

고도를 조금씩 높이는데...

높이에 비례하여 적설량도 많아지기 시작한다.

올해 처음으로 눈다운 눈길을 걸어본다

완만한 등로 주위에는 예전에 없었던 시를 적어논 팻말들이 보인다

갈림길(10:53)

우측의 횡계리에서 올라오는 넓은 임도가 제왕산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용천수는 눈 속에 묻혀 버렸다.

2012년 7월 15일 제왕산 산행때 찍은 용천수의 모습

새버댕이(10:55)

횡계리 갈림길을 지나 올라서면  초소가 나오면서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이 새버댕이라는 곳인데  지명의 연유를 알지 못하겠다.

 이 길은 동쪽의 제왕산 아래에 만들어진 도암수조 작업장 가는 길이다

이 길은 백두대간 서쪽의 도암천 물을 고루포기산, 능경봉, 제왕산 아래로 15.6km의

구멍을 뚫어 640여m의 낙차를 이용하여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 강동수력발전소

(1991년 준공) 건설 때 만든 것으로, 횡계에서 중웨이(제왕산·840.7m) 정상 동쪽

헬기장 아래 도암 수조작업장까지 이어진다... 이로 인해 자연을 거슬러 물길을 바꿔 놓아

예기치 못한 기현상이 일어나고, 강릉의 남대천 물을 강릉시민의 식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제왕산 갈림길(10:56)

새버댕이에는 산불감시 초소가 있고 좌측으로는 소형 트럭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로는 제왕산으로 이어지는 강릉 바우길이 있고 초소 뒷쪽으로

올라서면서...

본격적인 대간길로 접어든다

국립공원도 아닌곳에 예전에 없었던 등산객을 체크하는 계수기가 설치되어 있다.

속세에는 CCTV가 인간을 감시하고 산에는 계수기가 산꾼을

감시하고 있으니 마치 조지오엘의 소설 “1984년”에 사는 느낌이다.

 

*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 1903~1950)의 소설 ‘1984’는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가상의 나라)에서 당이 허구적 인물인 빅브라더를 내세워 체제를 유지하고

   통제하려는 모습을 다루고 있는 소설로 전체주의적인 체제하에서 자행되는 역사와 기억의

   집단적 왜곡, 개인의 존엄성과 자의식의 파괴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보여 주고 있다.

  1949년 발표된 이 작품은 당시 공산주의와 나치즘을 풍자하고 있는데, 현대인에게는 현대

  사회의 전체주의적 정신 풍토에 대한 경고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소설의 줄거리는 극단적인 전체주의 국가인 오세아니아. 이곳의 정치 통제 기구인 당은 허구적

인물인 빅 브라더를 내세워 독재 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한편, 당원들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그리고 당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동시에 당원들을 사상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과거를 거짓으로

끊임없이 꾸미는데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당의 통제에 반발을 느끼고 지하 단체인 ‘형제단’에

가입해 당을 무너뜨리려 하지만 함정에 빠져 사상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결국 윈스턴은 모진 고문과 세뇌를 받은 끝에 당이 원하는 것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게 

되고, 그리고 조용히 총살형을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白雪로 뒤덮인 등로...하지만 능경봉으로 향하는 등산객이 많았던 탓인지

눈은 단단하게 다져져 있고, 아이젠에 붙지않은 눈이라서 걸을만하다.

올 겨울에 처음으로 밟아보는 눈이라 그런지 기분이 좋아도 너무 좋다.

고도를 높일수록 불어오는 바람의 강도를 조금씩 심해지지만 그런대로

걸을만하고, 사람 한명 보이지 않은 餘白의 텅 빈 공간이지만, 산에서는

비어있는 채로 넉넉함을 채워가는 空의 여유를 즐기면서 걷는다

이런 호젓함을 즐기려고 지맥길에서 친구삼아서 틀어대는 라디오 

켜지않고 나홀로의 호젓함을 만끽하며 능경봉으로 향한다

능경봉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 본 제왕산(帝王山:839.5m)의 모습

강릉시 왕산면과 성산면 경계에 있는 제왕산(帝王山:839.5m)은 고려말

32대 임금 우왕(禑王:1365~1389)쫓겨온 곳이라 하여 붙혀진 지명이다.

 

고려 말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는 정권을 장악한 후 고려 32대 왕인 우왕을 강릉으로

귀양 보낸다...공민왕이 신돈의 시녀 반야(般若) 로 부터 얻은 아들인 우왕은 공민왕이 세상을 뜨자

10세 나이로 즉위 하였으나 공민왕의 자식이 아니고 신돈(辛旽)의 자식 이라는 이성계 주장에 왕위에

쫓겨 나고 강화도에 피했다가 강릉 으로 옮겨온 후 이성계의 군사들에게 피살 되고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에 폐왕이 살았던 곳이라 하여 왕산이란 이름과 제왕산 유래 이다.

 

공민왕의 뒤를 이어 10살의 어린 나이로 우왕이 즉위한 이후, 처음에는 학문 닦기에 힘썼고,

할머니 명덕태후의 가르침을 받아 몸가짐을 바로하여 기대를 모았으나,태후가 죽은 후 음주가무에

엽색 등 방탕하게 노닐면서 백성들의 신망을 잃어갔다... 여기에다 왕을 믿고 까불던 측근들이
이성계 일파로 부터 왕따당해 유배되자, 우왕의 정치적 기반은 흔들렸다.
 
이때부터 우왕의 생모, 반야가 신돈의 첩이라는 사실 때문에
우왕이 신돈의 아들이라는

'우왕신씨설'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왕족의 혈통이 아니고

신돈의 자식이 맞다'고 이성계도 거들었다.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 이후, 꿍짝이 맞는 몇몇의 도움을 받아 어의(御衣)를 벗겼다.   
강화도로, 여주로, 다시 강릉으로 유배지를 옮겨가며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유배만으로는 성이 안찼던지 이성계 일파는 강릉 인근으로 찾아가 무참하게

살해했는데, 그렇게 24세 꽃다운 나이에 비운의 삶을 허무하게 마감한 우왕.
그의 서러운 눈물이 마르지 않는 곳이 강릉 제왕산이다.

능경봉으로 오르는 빡센 오르막길이 시작된다...아이젠을 착용하였는데도 미끄럽다

능경봉오르는 길에 앞서가던 비박족인듯한 산꾼을 만난다.

베낭이 무거웠던지 牛步걸음으로 능경봉으로 오르는 저 산꾼이 부럽기만 하다.

나도 한때는 저 베낭보다도 더 큰 10L짜리 그레고리 데날드 프로 베낭에다 각종

장비를 지고도 너끈히 다녔는데 이제는 30L짜리 베낭하나를 메고 다니면서도

버벅거리니...아무래도 비박의 꿈은 다음 生에나 생각해 봐야할 듯 싶다

추월하여 앞에서 보니 남성이 아닌 여인이다...부럽기만 하다

멋있는 상고대를 즐기면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쉼터가 나온다

쉼터(11:15)

다시 오르막길

이곳부터는 사람이 다닌 흔적이 적었는지 조금씩 산행이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헬기장(11:20)

갑자기 등로에 눈이 많아지기 시작하지만 다행히 사람들이 많이 다닌 탓인지

러셀을 하지 않고도 걸을 정도라서 큰 어려움없이 능경봉 정상으로 향한다

빡세게 올라서니 능경봉 정상이 나온다

능경봉에서 바라본 강릉 시내의 모습

강릉의 지명유래를 보면 강릉(江陵)의 순우리말 이름은 “아스라”라고 하는데

“까마득한 넓은 땅”을 가리키는 순수 우리말이란다...현대 한국어에 “아스라하다”라는

말의 어원(語源)에 해당되며 삼국시대에는 아스라, 하슬라, 아슬라는 발음만 약간 다를 뿐

뜻이 같은 이름으로 그 소리나는 것을 그대로 한자에 빌려 표기한 음차한 표기인데

그 뜻을 빌려서 표기한 방식으로 훈차표기가 있다.

 

아주 넓은 땅을 의미하는 아스라를 훈차 표기한 이름으로는 강릉(江陵)과

명주(溟州)가 있는데 강릉과 명주는 “높은곳에 위치한 평평하고 넓은 땅”을 의미한다

능경봉(陵京峰:1,121.9m:11:23)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와 성산면 오봉리,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사이에 있는 

삼면 경계 봉우리로  백두대간이 동해를 끼고  설악산과 오대산, 병산 일으키고, 

선자령을 지나 대관령에서 몸을 낮췄다가  다시 솟구친 으로  대관령 남쪽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며, 제왕산의 모산(母山)이기도 하다.  

 

정상에 천(靈泉)이 있어 기우제를 지냈고 맑은 날엔 이 봉우리에서 울릉도가

조망된다 하며 대관령이나 강릉에서 바라보면 산세가 큰 왕릉이나 활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능정봉(陵頂峰) 또는 소궁음산(所弓音山)이라고도 한다.

 

여지도서(與地圖書)강릉부 산천조에는 소우음산(所于音山)부의 서쪽 팔십리에

있는데 산중에 샘이 있어 가물면 비를 빌어 영험이 있다고 기록이 되어있다

능정(凌頂)이 능경(凌頃)으로 변음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인증샷

능경봉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강릉부 서쪽 80리에 있다고 표기되어 있고,

산속에 샘이 있고 날씨가 가물어서 비를 빌면 영험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산으로 산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세 가지 속설이 있다.

 

첫째, 대관령 능선 아래 있다고 해서 능정봉(凌頂峰)이라 한다.

둘째, 산의 모양이 둥그스름하여 마치 큰 왕릉처럼 생겨서 능정봉이라 한다.

셋째, 활시위처럼 생겨서 소궁음산(所弓音山)이라 한다.

 

그런데 이 속설은 능정봉 이름의 해석으로는 신빙성이 약해 보인다.

능선(稜線)과 왕릉(王陵)의 한자가 각기 다르고, 소궁음산은 소우음산(所亏音山)의

잘못된 표기로 여겨지는데 『관동읍지』와 『증수임영지』에서는 "소우음산은 위에 영험한

샘이 나는 곳이 있으며 가뭄이 들어 비가 오기를 빌면 신통하게도 비가 온다고 하여

능정산(凌頂山)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관동읍지』, 『증수임영지』에는 산 이름이

소우음산(所토音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현대지도나 산꼭대기의 표석에는

능경봉(凌京峰)으로 표기되어 있다

오룩스맵 지도에는 능경봉 정상 삼각점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폐기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맑은날에는 울릉도까지 보인다고 했는데 울릉도는 고사하고 강릉 앞바다도

안 보이니, 옛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뻥을 친 것인지 아니면 예전에 비해 공기의 質이

나빠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능경봉은 능정산(能政山)으로도 불리고 옛 문헌에는 횡계팔경(橫溪八景) 중의

하나로 소개되는 절경을 이루는 산이라는데 오늘은 그런 감흥이 별로인 듯 하다.

 

* 횡계팔경(橫溪八景)은

  1,도산광풍(刀山狂風 : 칼산에 휘몰아치는 매운바람)

  2, 황병백운(黃炳白雲 : 황병산의 높이 뜬구름)

  3, 령로행인(嶺路行人 : 대관령 아흔아홉 구비 돌아 오가는 행인)

  4, 횡계수약(橫溪垂約 : 횡계리 삼정평의 고기 낚는 것)

  5, 고루청월(高樓晴月 : 고루산에 맑게 갠 달)

  6, 효성제월(曉星霽月 : 효성산의 밝은 달)

  7, 상봉영조(祥鳳領照 : 상봉령의 해가 지는 광경)

  8, 능정출일(能政出日 : 능정산에 해가 솟는 광경)이다.

능경봉에는 관동팔경(關東八景)에 횡계팔경(橫溪八景)이 옛 문헌에 전해져 내려온다.

 

* 관동팔경(關東八景)은 관동지방의 특히 이름난 여덟 곳의 경승지를 말한다.


 1, 통천의 총석정
 2, 고성의 삼일포
 3, 평해의 월송정 또는 흡곡의 시중대(이상은 북한에 위치)

 4, 간성의 청간정
 5, 양양의 낙산사
 6, 강릉의 경포대
 7, 삼척의 죽서루
 8, 울진의 망양정

능경봉에서 내려서는데 등로에 쌓인 눈이 심상치 않다.

대관령에서 능경봉까지는 사람들이 많이 다녔는지 다져진 눈길을 걷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으나 이곳부터 고루포기산으로 가는 길은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적은 탓인지 어떤곳인 숏다리인 무릎까지 빠질 정도의 눈이 쌓여있다.

러셀을 하면서 걸어야 할 듯 싶다. 

폭설 / 오탁번

 

삼동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 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 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의 미아가 된 듯 울부짖었다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내려갈수록 눈의 깊이는 심해지고 등산객들은 보이지 않아 불안하긴 하지만

예전에 3번이나 걸었던 대관령에서 닭목령까지 평균 시간대가 5시간이었는데

오늘은 그 시간의 1.5배인 7시간 반에 닭목령에만 도착하면 18시 40분에 강릉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는 탈 수 있을 것 같다...1차적으로 고루포기산까지 13시에 도착을

목표로 부지런히 걷기로 한다

행운의 돌탑(11:30)

능경봉에서 200여m 정도를 내려오니 커다란 돌탑이 있고 예전에 있었던

데크목 전망대는 사라지고, 돌무더기와 안내판이 산꾼을 반긴다

 

“험한 산길을 지나던 우리 선조들이 길에 흩어진 돌탑을 줍고 쌓아 길도 닦고

 자연스레 돌탑을 만들어 여행길의 안녕과 복을 빌며 마음으로 위안을 받던

풍습을 되살리고자 백두대간 상에 만든 것”이란 설명이 붙어 있다

복희언니!  반가워요

행운의 돌탑을 지나면서 내 앞에서 산행을 하시는 분의  뒷모습을 본다.

스타일로 봐서는 悠悠自適 산행을 즐기는 100대 명산 등산객은 아닌 듯 하다.

그러면 답은 나와 있다...아마도 나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닭목령까지 가시는

대간 산꾼인 듯 하다...예전 같으면 오지랖 넓게, 목적지를 묻고, 같이 가자고

했을만도 하지만 지금은 누가 가자고 해도, 체력이 되지 않아서 거절했을 것이다.

눈길을 아무렀지도 않게 사뿐사뿐 걷는 모습이 內工이 보통이 아닌듯 하다

안부(11:34)

1,036.5m봉(11:39)

행운의 돌탑에서 내려와 안부를 지나고 야트막한 봉우리에 올라서는데

이곳이 국토정보지리원의 표기된 족보있는 1,036.5m봉인데 대부분의

대간꾼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봉우리이다...맥길을 걷다보면 맥꾼과

대간꾼들의 차이점은 족보있는 봉우리를 두고 뚜렸한 차이점을 보인다.

 

대간꾼들은 족보있는 봉우리가 있더라도 우회길이 있으면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지만 지맥꾼들은 악착같이 그 봉우리를 올라야만 직성이 풀리는게

차이인 듯한데 나 역시 똑같이 행동하는 편이다

1,036.5m봉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는데 자세히 보니 넘어진 나뭇가지에

봉따먹기 大家(?)이신 문정남 선생의 시그널 한장이 족보있는 봉우리임을 알려준다

갑자기 나타난 좋은 길...이런 등로가 나오면 가급적 빠른 속도로 걸어야 하는데

섣달 그믐날 마신 술 탓인지, 아니면 컨디션이 따라주지 않는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발걸음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으니 자꾸만 불안하고 조급증이 밀려온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안전로프를 따라서 내려가는데 그나마 다행인 게 추운 날씨 탓인지 등로에

쌓인 눈이 사람들의 발길로 다져져 있어 아이젠에 눈이 떡처럼 붙지 않아서 걸을만 하다.

금방 눈길은 바뀌어져 러셀을 해야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안부(11:46)

나무가지 사이로 가야할 고루포기산이 얼굴을 내민다.

능경봉에서 고루포기산까지 거리가 4.8km이고, 지나온 거리가 약 1km이다.

예상했던 시간안에 고루포기산까지 갈 수 있을라나?

970m봉(11:48)

이곳이 강릉바우길인 모양이다...전국에 하도 이런 길들이 많아서

이젠 감흥도 오질 않는다...하기사 나와 목적이 다르니 感興이 있을 턱이 없제...

정오가 다되어 가는데 산에는 조금씩 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한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올림픽(평창)+ 아리랑(정선)+ 바우(강릉 바우길)라는

의미가 합쳐진 말로 올림픽의 성공 개최와 강원도의 아름다운 문화 자원을

표현했다고 하는 둘레길로 시작 지점인 정선 5일장부터 마지막 지점인

강릉 경포해변까지 9개 코스로 총 길이 132km이라고 한다.

13년전 백두대간을 처음 걸었을 때 만났던 소나무는 예전 그대로이다

이 소나무는 변함이 없건만 나만 변하는 것인가...그 당시의 氣槪는

전당포에 맡기고, 자꾸만 나날이 떨어지는 氣力에 노인네로

변해가는 듯한 내 처지가 대간길을 묵묵히 지키는 저 소나무에겐

볼 면목이 없구나

오늘 하루를 살았다고 하는 것은 오늘 하루가 죽은 것이며
현재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죽고 있는 것임을 알면 삶이

무엇인지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나 세상살이가 다 諸行無常이 아니던가.

앞서가던 山客은 시야에 사라진 지 오래이고, 나홀로 뚜벅이 대장처럼 묵묵히 걷고 또 걷는다

안부로 내려보면서 지나온 능경봉을 뒤돌아 본다

산에서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다시 오르기를 반복하는 단순함이긴 하지만

그래도 산길을 걸을때가 내 삶에 대한 활력소가 되고, 희망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산과 여인은 멀리서 봐야 예쁘다고 했던가.

지나온 능경봉의 뒷태를 보면서 첫사랑의 옛추억을 떠올린다

안부(12:03)

앞서간 산꾼이 러셀을 해 준 수고로움에 뒤따르는 범여는 덕을 보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자꾸만 발걸음은 느려지니...그래!...가는데까지 가보자

942m봉(12:08)

고루포기산을 향하는 苦行의 길로 접어든다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대간길을 이어가는데 전망대봉이 까칠한

모습으로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고, 좌측의 고루포기산은 멀게만 느껴진다

안부(12:18)

나홀로 산행을 하면서 터득한 것이 하나 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많이 공부하지 말고 산행을 하려한다.

쓸데없이 많은 것을 준비해봐야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듯 하다.

큰 줄기만 잡고 나머지는 산에 들어서면서 해결하는게 훨씬 편하더라.

이 생각을 하니 떠오르는 것이 故 정주영 회장님의 일화이다

 

정주영하면 떠올리는 상징적인 대화가 있는데 바로 “이봐 해봤어?”이다.

서산 간척사업같이 해본 적 없는 사업이 있을 때 임원이 반대해도 정주영은

늘 “이봐 해봤어?” 하며 다시 검토하라고 했고 그것은 그의 철학이자

오늘날 현대 기업문화가 됐는데, 산도 마찬가지이더라

 

산행도 걸으면서 답을 찾는게 최고인듯 하다

943m봉(12:21)

눈이 많이 쌓인 등로는 숏다리인 범여로서는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고, 시간이 지체가 되는구나...간간히 역방향에서 오는

산꾼들을 몇 명 만나기는 했지만 서로 인사없이 무심코 지나친다

오르막길 좌측 아랫쪽에는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1터널을 빠져나와

강릉으로 향하는 도로가 보이는데 교통량은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구나

횡계치(橫溪峙:12:30)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왕산골과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 큰골을  넘는 고개로

횡계리쪽은  용평스키장과 대관령 목장있고 겨울에는 마을마다 즐비한 황태덕장

그리고 여름에는 고랭지채소 덕분에  잘사는 동네가 되어버린 횡계리가 있고

반대편 강릉시 왕산면쪽은 희미한 옛고개이지만 民草들이 넘나든 흔적이 남아있다.

 

동쪽 경사면 아래에는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제1터널의 멀리로는 닭목재에서

왕산천으로 연결되는 137번 지방도와 왕산리 농가가 보이는데, 이곳 농가들은

버섯재배로 유명한 곳이며 지금 내가 서있는 아래로는 대관령 1터널이 지나간다.

횡계치에 있는 대관령 1터널 안내판

샘터(12:45)

예전에는 이곳에 돌 사이로 스텐레스 파이프를 박아놓은 샘터가

있었는데 지금은 쌓인 눈 속에 묻혀 버렸는지 보이지가 않는구나

우측으로 내려가면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쪽으로 왕산골 표식이

되어 있다 

샘터에 서 있는 이정표

샘터 표지판을 지나면서 예전의 대간 등로는 안전로프로 막아놓고

새롭게 우회등로를 만들어 놨다.

우회길로 올라서니 산꾼이 다닌 흔적으로 인해 조금 편하게

걷기는 하지만 눈길이라 힘이 부치고 시간은 자꾸만 지체된다

걷다보면 오르지 못할 산이 어디 있겠는가.

걷고 또 걷다보면 목적지에 도착하겠지.

愚公移山의 심정으로 체력 안배를 하면서 올라가니 쉼터가 나온다

985m봉(13:00~08)

이정표와 쉼터의자가 있고, 전망대까지 1.2km라...그라먼 고루포기산까지

2.2km나 남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닭목령까지 간다는 건 쉽지가 않겠구나...

이곳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하면서 점심으로 먹을 앙꼬빵 하나와 보온병에

따뜻한 생강차를 가져 왔는데 날씨가 그리 춥지 않은 것 같은데도 베낭속의

앙꼬빵은 꽁꽁 얼어서 먹을수가 없다...하는 수 없이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다니는 초콜렛과 육포에다 생강차 한잔을 마시고 길을 나선다.

나뭇가지 사이로 고루포기산을 바라보면서 전망대로 향한다

왕산골 갈림길(13:20)

우측으로 왕산골 2.0km로 표식이 있는데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왕산골로 가는 길이다

이곳의 우측 능선은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이고, 좌측은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이다

좌.우 모두가 왕산이란 지명을 사용하고 있어서 조금은 햇갈리는 곳이다

반갑습니다...지맥길이 아닌 대간길에서도 만나네요

오늘 산행중에 가장 힘이 드는 구간에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무명봉(13:35)

다시 오르막길...범여에겐 쥐약같은 코스이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 牛步 걸음으로 오르막을 향한다

쉼터(13:45)

쉼터를 지나면서 오름길 우측에 연리지 안내판이 보인다

연리지(連理枝)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묘한 삶을

살아가는 걸 말하는데, 오랜 시간 미움과 사랑이 교차 하면서 서로에게

동화되고 겉모습까지 닮아가게 되는걸 말하며, 그렇게 둘이지만 한 몸처럼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연리지의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고루포기 전망대 직전에서 만난 연리지(蓮理枝)

부부간의 사랑을 비유하는 말에 '비익연리(比翼連理)'라는 말이 있는
비익조(比翼鳥)라는 새와 연리지(連理枝)라는 나무를 합친 말이다.

당나라 현종은 양귀비를 사랑했으나 안록산의 난으로 양귀비를 잃게되자.
시인 백낙천에게 양귀비를 위한 시를 부탁하는데, 백낙천은 "장한가(長恨歌)"라는

시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 땅에서는 연리지"라고 노래한다.
비익조(比翼鳥)는 날개와 눈이 하나뿐인 전설속의 새를 말한다.
금슬좋은 부부처럼 암수가 붙어야 좌우 양쪽을 다 보며 날 수 있다고 한다.

빡센 오르막길에 우측으로 쓰러진 이정표에는 버들길 2.1km라는

팻말이 보이건만, 등로는 전혀 보이지가 않는구나.

눈길을 걷는다는게 확실하게 힘들다는 걸 뼈져리게 느끼며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수술부위의 통증을 감내하며 능선으로 올라선다

아!...자꾸만 체력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저 만치에 전망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전망대 이정표를 바라보면서 가쁜 숨을 몰아쉰다.

아무도 없는 전망대에 올라선다

전망대(1,174m:14:00)

전망대에서 바라본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의 일대의 모습은 눈 속에 파묻혀 있다.

맨 뒤의 좌측으로는 특전사의 동계훈련지로 유명한 황병산이 보이고, 가운데는

동양 최대를 자랑하는 삼양목장, 우측으로는 동계 산행지로 유명한 선저령도 보인다

 

‘해피 700m’임을 내세우는 강원도 평창은 대관령면을 포함한 전체 평균고도가

700m인 이곳 횡계리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말하며, 평창읍내의 고도는 300m

밖에 안된다고 한다...횡계리는 거래지(車來地)에서 흘러오는 냇물이 앞으로

가로질러 흐르므로 '엇개'라고 불렀고, 조선시대에 횡계역이 있었던 곳이다.

전망대에 잠깐 머물다가 고루포기산으로 향하는데 눈이 장난이 아니다

잠깐 내리막으로 내려 갔다가...올라서니 1171.7m봉이 나온다

1171.7m봉(14:10)

그냥 밋밋한 무명봉인데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1171.7m봉이라 표기되어 있다

오목골 갈림길(14:20)

아침에 너무 늦게 산행을 시작한 탓도 있지만 雪산행으로 인하여

예상했던 산행이 1시간 이상이 늦어져서 해가 저물기 전에 현재의

체력과 닭목령까지 가는 길의 눈의 상태가 어떨지 몰라서 이곳에서

산행을 접어야 할 듯 싶다...남은 구간의 거리가 애매하긴 하지만

방법이 없다...무턱대고 겨울의 눈길 산행을 나섰다가 개고생을 한다.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雪 山行에서 無識과 무대포의 차이를 배운다

 

조금을 더가서  고루포기산에서 독가촌 방향으로 내려갈까 생각했지만

이곳에서 내려가나 고루포기산에서 내려가나는 중탈하는 입장에서

별 의미가 없을 듯 하고, 여기서 고루포기산까지도 아직 0.5km라는 거리가

남았다...평소같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눈길에서는 굉장히 많은 차이가 있다.

 

고루포기산에서 독가촌으로 가는 능선은 예전에 한번 가본 길이긴 하지만

대관령면소재지가 있는 횡계까지는 걸어가기도 택시를 부르기도 애매한

곳이지만 오목골로 내려가면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일 듯 하다

오목골 가는길...등로는 잘 안보이고 내가 길을 만들어서 가야한다.

 

천당 극락 세계

어디냐

묻지를 말게
찾아갈일 없는데

물어서 무엇하리

내가 걷는 이 길이 천당이고 극락인데

모든건 마음먹기 달려 있는 一切唯心造가 아니던가

白雪로 뒤덮인 보이지 않는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서산대사께서 눈길을 걸으면서 이런 詩를 남기셨지

 

눈 내린 들판위 걸을 때에는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걷지마라

오늘 걸어가는 나의 발자욱이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뒤돌아보면서 서산대사가 읊은 시의 의미를 되새긴다

폐묘(14:45)

산의 허리를 휘감는 임도를 지나서 직진으로 내려간다

끄트머리에 내려서니 직벽에 가까운 절개지같은 급경사가 나온다

전진하기도 후퇴하기도 쉽지않은 급경사의 내리막길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조심스레 내려서다가 꽁꽁얼은

나무가지가 뿌러지면서 내리막길로 미끄러지면서

보기좋게 꼬꾸라진다...다행히 다친데는 없으나 아찔했다

10여m를 굴러서 내려서니 제도권 임도인지 이정표가

나온다

안부 골짜기(15:10)

제도권 등로를 따라서 오목골로 향한다

임도(15:20)

임도 입구에 있는 능경봉 등산 안내도

이제는 산행 위험지대를 벗어나서 마을로 향한다

임도 삼거리(15:22)

올림픽 트레일 코스 갈림길을 지나니 평창 라마다호텔이 나온다

평창 라마다호텔(15:25)

평창 라마다호텔은 개관한 지가 얼마되지 않은 모양이다

횡계 버스정류장 가는 길에서 바라본 황병산의 모습

도로 우측으로는 이곳에서 유명한 황태덕장들이 보인다

오목골(15:38)

오목골 도로에서 우측으로 꺽어져서 다리를 건너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뒤돌아 본 능경봉(좌)과 고루포기산의 모습

버스 정류장가는 길에서 좌측으로 보니 황태요리로 유명한 황태회관이 보인다.

예전에 용평리조트와 알펜시아C.C, 700C.C로 골프치러 다니면서 자주 들렸던 식당이다.

배가 너무 고파서 점심을 먹으려고 하다가 강릉가는 버스 시간을 몰라 그냥간다

이곳 횡계 지역은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원지대로

그래서 이 지역은 한랭한 기후에 적합하게 씨감자의 원산지가 되었고,

고랭지 채소의 주산지가 되었으며, 겨울철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와

청정한 바람으로 명태를 말리는 황태 덕장이 많기로도 유명한가 하면,

대관령을 중심으로 한 이 일대는 우리 나라 최초의 목장 지대가 형성된

곳이기도 하며, 이 지역의 평균 고도가 해발 700m로 용평스키장과 알펜시아 등

스키장이 많아서 한국의 알프스라 불리며, 스키어들의 천국인 곳이기도 하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기도 한 곳이다

횡계시외버스 터미널(15:55)

횡계발 → 강릉행 버스 시간표

16시 23분발 강릉행 버스표를 예매하고 배가 고파서 주위의 식당을 둘러보니

마땅히 식사할 곳이 없고, 다시 황태회관으로 가서 밥을 먹으려니

버스 시간을 놓칠것 같아서 베낭에 있는 두유 하나로 허기를 달래는 중에

강릉가는 버스가 터미널로 들어와서 버스에 오른다

강릉시외버스 터미널(16:55)

터미널에 도착하니 너무 춥고 배도 고파서 식당에 들어가서

따끈한 국물이 그리워서 칼국수를 한 그릇을 시켰다.

예전 같으면 쐬주 한병도 당연히 시켰을텐데 섣달 그믐날의 술 탓인지

술은 당분간 자제해야 할 듯 싶어서 포기를 한다...너무 배가 고팠던

탓인지 小食家인 범여가 칼국수 한그릇을 다 먹었는데도 양이 차지

않아서 쥔장에게 밥 반그릇만 팔라고 하니까...한동안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공기밥 한그릇을 주고는 밥값은 받질 않는구나.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베풀고 살면 집안이 번창하고

자식대에도 복을 받는다 )이라 했잖소...배고픈 산꾼에게 밥한그릇 적선한

이 공덕 세세생생 복받을깁니다

 

쥔장 아지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버스를 타고 강릉역으로 향한다 

강릉역 광장에 서 있는 “태양을 품은 강릉”이라는 조형물

“태양을 품은 강릉”이라는 조형물이라는 설명이 가관이다

아직도 백두대간을 태백산맥이라니...먹물을 많이 먹었다는

배운자(지식인)들의 지리 인식의 오만함은 언제쯤 개선되려는지...

강릉역(17:55)

매표 창구에 가서 한달전에 예매한 열차표를 받은 다음에 30분 이상을 

강릉역 대합실에서 조금 졸면서 멍때리기를 하다가 열차에 오른다

18시 40분 강릉발 열차를 탔는데 출발한 지 얼마되지 않아 진부역에서

열차가 고장나서 10여분간 연착이 되고...다시 출발하여 예정 시간보다

12분 늦은 다음에 청량리역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하는데 날씨가 엄청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