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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白頭大幹 4次(진행중)

제32구간- 하늘재에서 부리기재까지(역산행)

by 범여(梵如) 2023. 5. 8.

☞ 산행일자:  2023년 05월 07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 날씨에 오후부터는 비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2.1km + 들머리 1.8km / 7시간 2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박마을-수탱크-무명묘지-부리기재-안부-무명봉-무명봉-안부-무명봉

                    1,065.1m봉-1,034m봉-안부-1,034.3m봉-너덜겅-안부-무명봉-안부-845.6m봉

                    무명봉-안부-조망바위-무명봉-꼭두바위봉-무명봉-마당바위-무명봉-809m봉

                    마당바위 2-조망바위-관음리 갈림길-안부-무명봉-895.6m봉-안부-888m봉

                    안부-940.5m봉-941.0m봉-마골치-관음재-854.2m봉-무명봉-823m봉

                    831m봉-842.2m봉-쉼터?-암봉-만수골 갈림길-조망바위-875m봉-좌선바위?

                    963.1m봉-안부-포암산-이정표-789m봉-너럭바위-돌탑-665m봉-하늘샘

                    하늘재 산성-이동통신 중계탑-하늘재

☞ 소 재 지:  경북 문경시 문경읍 / 충북 제천시 덕산면, 한수면 /  연풍면 / 충주시 수안보면

 

3일간의 연휴이라는데 나처럼 노가다꾼(인테리어업)에게는 焉敢生心이다.

근데 연휴내내 계속 내리는 비 때문에 연휴에 대목을 노렸던 사람들은 힘들겠지만

나처럼 놀러갈 일이 없는 자에게는 비가 오던지 말던지 상관이 없다.

 

첫날은 사무실에 나와서 혼자서 놀다가 저녁에 딸내외가 어버이날이라고 미리오는

바람에 저녁을 먹고, 그 담날은 다음주에 있을 작업 일정을 준비하고, 오후에 인도어

연습장에 가서 90분간 골프 연습을 하고 집에와서 날씨를 검색해보니 일요일은

전국적으로 비는 오지 않으나 강풍이 심하다고 한다

 

지난주에 봉화지역에 갔다가 추운 날씨탓에 늦둥이 얼레지와 맘껏 遊戱를 즐겼는데

이번주는 혹시 문경쪽에 가면 족도리풀꽃을 만날 수 있을까하는 기대를

하며, 대간길도 한 구간하고 야생화도 구경할 겸 포암산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동서울터미널(06:30)

집에서 밍기적거리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집을 나와 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서

내려 신호등에 막히는 바람에 06시 30분에 출발하는 문경행 첫차를 놓치고,

다음차인 07시 버스표를 예약한다

동서울발 → 문경행 버스표

버스표를 예매하고나니 25분정도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터미널 밖에있는

포장마차에서 잔치국수와 김밥한줄로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터미널 대합실로 향한다

07시에 출발하는 버스는 문경으로 직통으로 가는 버스가 아니다.

이 버스는 충주I.C를 빠져나와 건대 충주캠프스를 거친 다음에

달래강(달천)과 나란히하는 3번 국도를 따라서 문경으로 향하는데

수안보를 지나면서 차창밖을 때리는 빗줄기가 산꾼을 혼란스럽게 한다.

비를 맞으면서 산행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지는데

연풍을 지나 3번 국도 이화령 터널을 빠져나오니 다행히 비는 그친다

문경터미널(09:00)

터미널에 도착하여 귀경길의 서울로 가는 버스표 시간을 알아둔 다음에

택시를 타고 하늘재를 들머리로 포암산으로 올라가서 부리기재로 내려올 것인가

아니면 박마을로 가서 부리기재를 거쳐서 마골치~포암산~하늘재로 역산행을

할 것인가 고민을 하다가 초반에 하늘재에서 포암산으로 오르는 길은 아주

급경사에다 암릉구간이라 아무래도 심장에 무리가 올것 같아서 역산행을

결정하고 택시를 타고 박마을로 향한다

박마을 맨 윗쪽(09:35)

택시를 타고 문경읍에서 동로면으로 이어지는 901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가

박마을 입구에 도착하여 신북천 다리를 건너서 좌측으로 꺽어져 박마을

맨 윗쪽의 비포장 농로까지 올라와서 택시가 나를 내려주는 바람에 초반에

20여분정도 산행 시간을 줄일 수 있을것 같은 느낌이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 중평리(中坪里)에 있는 박마을은 대미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 산촌으로,

신북천의 지류가 마을을 지는데 박마(박마을)는 1680년 경 밀양 박씨(密陽 朴氏)가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한 이후 박씨 가문의 30여 가구가 집단으로 거주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박마을이라고도 한다.

 

* 신북천(身北川)은 문경시 문경읍 중평리 여우목고개에서 발원하여 조령천을 이루는

   하천으로 유로연장 17.8㎞이며 유역면적은 103.22㎢이며, 낙동강의 제3지류로 제1지류인

  영강에 연결되는 조령천과 이어지며, 갈평교 앞에서 하늘재에서 발원한 물길을 합류하고 다시

문경교 인근에서 초곡천을 합한다.

 

'신북'이라는 명칭은 1932년 문경면에 편입된 관음·중평·평천 마을 등으로 구성된 신북면

일대를 지나는 하천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이며  '신북' 지명은 『여지도서』(문경)에

"신북방(身北坊)은 관문으로부터 35리 떨어져 있다."라는 기록에 등장한다.

 

『호구총수』(문경)에서도 신북면이 확인된다. 『청구도』에는 명칭 없이 신북천 물길이 표시되어

있는데, 새재 쪽에서 흘러나오는 초곡천 물길과 합류하여 소야천(所也川)을 이루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산행을 시작하다(09:40)

비가 그친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곧바로 산행을 시작하는데

인근의 동로면이 우리나라 오미자의 45%가 생산된 지역이라 그런지

이곳에서도 오미자밭들이 보이고 부리기재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서

산행을 시작한다

국공파들은 ‘출입금지’라는 저 말 이외는 할 줄 아는게 없는가 보다

내가 가지 말라고 한다고해서 안 간적이 있었던가...

출입금지라는 단어는 니네들 생각이고 나는 내 갈을 갈 뿐이다

내 나라 내 땅도 내 맘대로 걸을 수 없다는 건 말도 안되는 얘기가 아닌가

갈수록 가관도 아니구먼...아예 대간꾼들을 죄다 전과자로 만들 셈이냐...

배수탱크(09:42)

부리기재로 올라가는 길은 뚜렸한데 국공파는 가지 말라니 이런걸 두고

이율배반(二律背反:서로 모순되는  명제가 동등한 타당성을 가지고 

주장되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비가 내린후의 계곡물은 장관을 이룬다

백두대간을 4번째 걷고 있지만 박마을에서 부리기재로 올라가는 건 처음이다.

첫번째 때는 하늘재에서 벌재까지 장거리로 걸었고, 2.3번째는 하늘재에서 

차갓재까지 걸었기 때문에 이 능선을 다닐 이유가 없었다 

계곡 주위의 돌길을 따라서 고도를 높이기 시작하는데 비에젖은

민백이꽃이 산꾼 범여를 반기는데 계곡의 상쾌한 공기만큼이나

청순해 보이는 니가 좋다.

민백이꽃(그대곁에 있고 싶어요)

 박주가릿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높이 30~60센티미터로, 줄기를 자르면 

  같은 유액이 나오며, 잎은 마주나고, 5~7월에  꽃이 산형 꽃차례로 달리는데

뿌리는 한방에서 해열제나 거담제(祛痰劑) 쓰인다.

주말내내 내린 비의 영향인지 계곡에서 뿜어내는 상쾌한 공기가 

산꾼의 발걸음을 참으로 편하게 해주는데, 산은 이렇게 인간에게

무한대로 사랑을 베푸는데 난 산에게 아무것도 줄 것이 없으니

빛을 지고 사는 셈이다...계곡으로 올라서니 고광나무꽃이 요염한(?)

자태로 산꾼 범여의 발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고광나무(꽃말:추억, 기품, 품격)

장미목 범위귀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관목으로 학명은 Philadelphus schrenkii Rupr. var. schrenkii이다.

흰 꽃 모양이 매화를 닮았다 하여 한자로는 ‘산매화’라고 부르고, 어린순에서 오이 냄새가

난다고 하여 ‘오이순’이란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 산골짜기에 자생하며

쇠영꽃나무라고도 불린다.

 

가지가 많이 갈라지는 줄기는 높이 1~2m 정도이며, 수피가 종이처럼 얇게 벗겨지며,

잎은 마주나는데, 꽃이 피는 가지에 달리는 잎이 꽃이 피지 않는 가지에 달리는 잎보다

훨씬 작으며 잎가장자리는 거의 밋밋하거나 아주 작은 톱니가 있다.

 

꽃은 흔히 2송이씩 짝을 이루며 원추꽃차례와 비슷하게 무리져 피며,  꽃잎은 4장이며 암술머리는

4갈래로 갈라져있고, 개화시기는 4~6월이고, 갈색을 띠는 열매는 9월경에 길이 6~9mm의

타원형으로 달리는데, 우리나라에는 잎과 줄기에 털이 많이 달리고 봄에는 향기로운 하얀색 꽃을

피우는 서울고광나무가 흔하며, 고광나무는 북쪽 지방에서만 자라고 있다.

미국에서 들어온 미국고광나무는 뜰에 많이 심는다.

계곡이 나오고  느낌상 계곡을 건너 능선으로 올라서야 할 것 같은데

건너가서 보니 등로는 보이지 않고, 직진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여서 올라간다

경고판을 보면서 뚜렸한 등로로 올라간다

예전에 집터였던 흔적같은 곳을 지나는데...이 높은 곳에서도 사람이

살았다니 지금의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상상불가같은 느낌이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올라가다가...

갑자기 신기루처럼 등로가 사라지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마루금이었다면 알바인가 싶어서 트랙을 보거나, 지도, 나침판으로

확인, 또 확인을 하겠지만 이곳이야 접속구간이라는 소득(?)없는

곳이라 이리가면 어떻고, 저리가면 어떠냐 싶어 발길 닿는대로 올라간다

윗쪽으로 올라다보니 대간 능선이 보이지만 저만치 윗쪽에 있어서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이긴 하지만 급경사의 능선을 치고 오르는데

코가 땅에 닿을만큼의 급경사이다.

보이지 않는 급경사의 오르막을 치고 올라가는데,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겪어면서 올라서니 묘지가

보이는 펑퍼짐한 능선으로 올라선다

무명묘지(10:20)

꽤나 넓은 공터에 서너분의 망자들의 보금자리가 보이나 移葬을 했는지

아니면 후손들이 돌보지 않는 묘인지는 모를 관리가 안된 묘지가 보인다 

계속되는 오르막길...고도를 높이면서 올라가는데

비온뒤의 등로의 낙엽은 상당히 미끄럽다...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부리기재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는게 숨은 턱밑까지 차오르지만

능선까지 다 올라왔다는 喜悅을 느끼면서 마지막에 젖먹던 힘까지 보탠다.

급경사의 오르막길 곳곳에는 투구꽃이 잎을 틔우기 시작한다

박마을에서 부리기재까지 짧은 구간에 고도를 420여m를 치고 올라서니

부리기재를 지키고 있는 老松이 힘들게 오느라 고생했다고 격려를 보낸다

부리기재(879.1m:10:50)

경북 문경시 문경읍 중평리 박마을에서 충북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넘어가는 고개로

예전에 대미산을 넘어 덕산면 용하구곡을 연결하는 고개로 옛날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짊어진 짐을 내린후에 넘을 수 있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는 설과

새의 부리의 옛말인 ‘부리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새의 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리기재로 부른다고 하나 지금은 용하구곡과 대미산을 경유하는 등산로로 쓰이거나

현지인들의 약초 채취에 이용되고 있어 매우 양호한 등로가 유지되고 있다

부리기재 정상에 올라서니 계곡을 오를때는 불지않던 강한 바람이 불어대는데

寒氣를 느낄만큼 춥다...그러나 지난주 봉화구간에서 느꼈던 바람에 비할바는

아닌듯 하니 그런대로 걸을만하다...촉촉히 젖어있는 낙엽을 밟으며 하늘재로 향한다

부리기재를 지나자마자 무명봉을 오르는데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철쭉꽃이

두팔 벌려 환영을 하는듯 한데...얼마남지 않은 인생길도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

이곳도 추웠던 모양이다...이제사 나뭇잎들이 나면서 푸르름이 시작되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1,065.1m봉을 바라보면서 내리막으로 향한다

근래 대간길에서 자주 대면하는 시그널을 보면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안부(10:55)

좌측으로는 문경읍 중평리 큰마을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고 이제사 새순이

보이기 시작하는 비비추와 민백이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오늘 내가걷는 이곳은 시작부터 마골치까지는 흔히 말하는 비탐구간으로

지키는 국공파의 단속요원들의 제지가 없어서 조용히 걷는다...명분이야 이 구간에

자생하는 식물들과 동물들의 보호함이라지만 꼭 단속만이 능사일까.

무조건 단속만 하지말고 자연과 인간이 共存하는 방법은 없을까

능선에 올라서서 뒤돌아 보니 다음구간에 걸어야 할 대미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앵초도 긴 겨울잠을 끝내고 봄을 향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밋밋한 등로를 걷는 산꾼이 심심할까봐서 너덜길이 동반자 역할을 해준다.

그러기에 산이란 존재는 늘 주기만하는 어머니의 품안같은 느낌이다

완만한 오르막길에 풀솜대가 산꾼을 반기면서 수줍은 모습으로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오래는 처음이라 반갑기만 하다

 

풀솜대(꽃말: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봄에 꽃이 피고 열매는 여름에 맺으며

풀솜대, 또는 솜대, 솜죽대, 지장보살(地藏菩薩)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는 꽃으로 봄에 어린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기근이 들던 봄에 절에서 스님들이 풀솜대를 넣고

죽을 쑤어 배곯는 이들을 구제하여 "지장보살"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佛家에서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원(願)을

세우신 보살이다.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지의 그늘 밑에서 잘 자는데 옆으로 벋는 근경은

지름 4~8mm 정도이고 비스듬히 자라는 줄기는 길이 25~50cm 정도로 위로

갈수록 털이 많아지는게 특징이며, 어긋나는 잎은 5~7개가 2줄로 배열되고

길이 6~15cm, 너비 2~5cm 정도로 긴 타원형이다.

 

밑부분의 잎은 잎자루가 있으나 올라갈수록 없어지며 양면에 털이 있고 특히

뒷면에 많으며, 6~7월에 개화하며 복총상꽃차례로 피는 양성화는 백색이고

꽃잎은 길이 4mm, 너비 1.5mm 정도의 긴 타원형인데  ‘민솜대’와 달리 잎에 잎자루가 있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산죽길이 나오고 곧이어 무명봉을 만난다.

무명봉(11:10)

이곳이 이제서야 겨울잠을 끝내고 봄을 알리는 기지개를 켜고 있다.

무명봉(11:15)

철쭉들이 봄의 향연을 준비하고 있다...이 구간을 봄에는 처음 걸어봤는데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타이밍을 맞춰서 오면 철쭉들의 축제를 맘껏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병꽃도 뒤질세라 철쭉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지만 꽃피우기에 열심이다

오늘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이룰수가 있을까하는 바램으로 걷는다.

 이 길을 걷는 주목적은 족도리풀을 볼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으로 왔다

병꽃나무

병꽃나무는 우리나라 한반도 전역에서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식물로 대표적인 우리나무로 이름은 꽃 모양이 병 모양을 닮았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5개의 꽃잎이 나팔꽃과 같이 합쳐진 통꽃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꽃잎 쪽은

넓지만, 꽃받침 쪽으로 갈수록 가늘고 길게 발달한 깔때기 모양의 꽃이 매력적인 나무이다.

또 꽃이 필 때는 연한 노란색을 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연한 붉은색으로 변하는 게 특징이다.

 

병꽃나무 종류로는 병꽃나무와 비슷한 붉은병꽃나무와 일본삼색 병꽃나무가 있는데

붉은병꽃나무라는 이름은 병꽃나무와 비슷하지만, 붉은색 꽃이 핀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병꽃나무와 달리 붉은병꽃나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붉은병꽃나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꽃이 필 때부터

진한 자줏빛 꽃을 피우는 것으로 병꽃나무와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꽃이다.

 

일본삼색병꽃나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이 원산인 나무로 꽃 색깔이 3가지로 피는

것이 특징이며, 꽃 색깔이 3가지로 다양한 이유는 처음 피기 시작할 때는 흰색으로 피다가

연한 분홍빛으로 변하고, 시간이 더 지나면 진한 자줏빛을 띠기 때문이다.

 

일본삼색병꽃나무는 한 나무에서 꽃의 변하는 시기가 각기 다르게 나타나 전체적으로 3가지

색이 함께 있는 모습이라 언뜻 보면 삼색의 꽃이 함께 핀 것처럼 보이는 매력이 있다.

가느다란 깔때기 모양인 우리나라 병꽃나무와 달리 짧고 넓은 깔때기 모양이다.

등로 남쪽으로 조망이 열리면서 박마을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 거르목산(좌)과 중미산이 보이는구나

안부(11:20)

안부에서 오르막으로 올라서는데 좌측으로 멋진 암릉구간이 보인다.

예전에는 무심코 모르고 지나간 곳이건만 오늘은 자세히 보는데

능선에 올라서면 볼 수 없는 곳이다

무명봉(11:28)

암릉구간을 올라서서 1,065.1m봉 가는 등로에 족도리풀꽃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첫사랑의 그녀를 보는듯한 느낌일까...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내 너를 만나기 위해서 不順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내 너를 만나기 위해

不遠千里를 달려 왔는데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말이 안되제 ...

등로에서 만난 족도리풀(꽃말:모녀의 정)

족두리를 닮은 족두리는 옛날 여자들이 결혼할 때 머리에 쓰던 쓰개다.

작고 동그란 꽃 모양이 마치 족두리를 닮아서 족도리풀이라고 한다.

족도리는 족두리의 옛말인데, 옛말을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들풀이다

 

족도리풀은 산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반그늘 또는 양지의 토양이 비옥한 곳에서

잘 자라며, 키는 15~20㎝이다. 뿌리줄기는 마디가 많고 옆으로 비스듬히 기며 마디에서

뿌리가 내리며 잎은 폭이 5~10㎝이고 줄기 끝에서 2장이 나며 모양은 하트형이다.

잎의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잔털이 많으며 줄기는 자줏빛을 띠며 꽃은 5~6월에 자줏빛으로

피는데, 끝이 3갈래로 갈라지고 항아리 모양이고 잎 사이에서 올라오기 때문에 잎을 보고

쌓여 있는 낙엽을 들어내면 속에 꽃이 숨어 있다. 열매는 8~9월경에 두툼하고 둥글게 달린다.

쥐방울덩굴과에 속하며, 약재용 이름은 세신이라고도 하며 관상용으로 쓰이며, 뿌리는

약용으로 쓰이며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 분포한다

1,065.1m봉(11:33)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1,065.1m봉에 도착하니 넓은

공터에 3등 삼각점이 있으나 주위의 전망은 전혀 없는 곳이다.

1,065.1m봉 정상 삼각점(△덕산315 / 2003재설)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조금씩 고도를 낮추기 사작하는데

비탐구간임에도 불구하고 심심찮게 대간꾼들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나말고도 다니는 산꾼이 있다는 얘기다

이제사 새순들이 돋기 시작하는 능선을 편하게 걷는데 갑자기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난감한 상황이지만

지금으로서는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어 비를 맞으면서 그냥 걸어간다

1,034m봉(11:36)

세월의 무게

반갑습니다

등로 주위에는 두릅, 고개, 인삼의 세가지 맛이 난다고해서 삼나물이라 불리는

눈개승마가 간간히 보이지만 비도오고, 아직까지 幼生들이라 그냥 지나친다

지난주에 봉화구간을 걸어면서 눈개승마의 손맛을 봤기에 오늘은 그냥 가련다.

시집가는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피어있는 족도리풀의 꽃은

늘 이파리 아래에 숨어 있어서 무심코 지나치면 놓치기 싶다

가랑비에 옷젖는다고 했던가.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다가보니 옷이 많이 젖는 느낌이지만

산행을 하면서 입는 우의가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서 그냥

비를 맞으면서 걷는다

여인의 乳頭처럼 보이는 저 철쭉...1주일 뒤면 滿開할 것 같은 

느낌이지만 요즘의 날씨가 하도 변덕스러워 어찌될까 걱정이다

사초가 마치 골프장의 필드같은 느낌이다...개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만...ㅋㅋㅋ

안부(11:47)

조금씩 고도를 올리면서 걷다보니 1,034.3m봉에 도착한다

1,034.3m봉(11:52)

문경시 문경읍 중평리와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돌무더기와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잔뜩 걸려있고

대간꾼들의 산행기에는 벼락바위봉이라 부르는 곳인데 공식적인 자료에는

그 이름이 보이지 않고, 山頂 서쪽 사면에 꽤나 큰 너덜겅이 있다

 

우측으로는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 있는 꾀꼬리봉(656.6m)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이곳으로도 누군가가 갔는지 시그널이 보인다

 

제천시 덕산면 월악산국립공원 내에 있는 꾀꼬리봉은 예로부터 유난히 꾀꼬리가

많이 살고 있다 하여 유래된 지명으로 수석전시장인 듯 기암과 노송이 어울려 있고

용하구곡 물줄기는 잠시 속세와 적을 끊은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산이라고 한다

족보있는 산봉우리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문정남님의 흔적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조금씩 고도를 낮춰서

내려서니 너덜겅이 나오는데, 벼락바위의 유래가 된 곳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너덜겅(11:54)

너덜겅에서 북서쪽을 바라보니 월악산의 주봉인 영봉이 요염한 여인이 

누워서 뭇남성을 유혹하는듯한 모습을 취하고 있고, 나뭇가지 뒷쪽으로는

잠시후에 가야할 마골치에서 북서쪽의 능선으로 가는 길에 있는 만수봉(984.6m)과

용암봉이 흐릿한 모습으로 산꾼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잠시후에 내가 오늘 걸어야 할 스카이라인 끄트머리에 보이는 포암산이

까칠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북쪽으로는 용암봉과 만수봉이 보이고,월악산

국립공원에서 대장노릇(?)을 하고 있는 영봉 우측으로는 몇년전 광천(등곡)

지맥을 걸으면서 자주 눈맞춤을 했던 하설산과 메두막산이 아련하게 보인다

 

월악산(月岳山)의 주봉인 영봉(靈峯1,095.3m)은 오래전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산꼭대기 바위에 달이 걸리는 산'이라는 뜻으로 월악산으로 불리며,

한국의 5대 악산(嶽山) 중의 하나로 198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신라시대에는 월형산이라 불렸던 군대 주둔지로도 활용된 전략상의 요충지였으며,

문수봉, 하설산, 황장산, 만수봉 등의 높은 봉우리가 있고, 또한 산 능선 곳곳에는 덕주사,

중원 미륵리사지 등의 절과 절터, 사자빈신사지석탑과 중원미륵리 삼층석탑 등의 문화재가 있다.

너덜겅에서 다시 돌아와서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빗줄기는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한다

하는 수 없이 베낭을 내려놓고, 레인커버를 씌우고, 스마트폰의 짹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비닐로 봉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이미 옷은 다 젖어버린 상태라 땀에 젖으나, 비에 젖으나 똑같기에

거추장스런 우의는 입지않고 계속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2:02)

안부로 내려서니 고비나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이미 다피어 버려서 나물로 해먹기에는 너무 늦은 느낌이다

아픔이 없는 삶은 무미건조해서일까

꺽어져 땅바닥에 누운체 모진 삶을 영위하는

저 노거수는 나에게 뭘 가르쳐 주려는걸까?

비에젖은 낙엽길을 홀로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쉽다면 라디오에 물이 들어갈까봐서 베낭속에

넣는 바람에 음악을 듣지 못한다는 점이다.

무명봉(12:04)

계속해서 고도를 낮추면서 내려간다

안부(12:08)

한참을 내려온 다음에 안부에서 잠깐 올라서니 845.6m봉에 도착한다

845.6m봉(12:16)

족보있는 봉우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봉산행 大家들의 흔적

계속되는 내리막길

무명봉(12:18)

고도를 급격하게 낮추기 시작하는데 암릉으로 된 구간에다

비는 계속 주책없이 내리는데 일기보상의 흐림으로 발표한

구라청(기상청)의 예보가 원망스럽다...믿은 내가 잘못이지...

안 그래도 기저환자인 내가 요즘 컨디션까지 엉망인데 감기가

올까봐 걱정이다

빗줄기가 조금씩 가늘어지는 느낌이다

그나마 다행인건...모자를 중절모를 쓰고오니

안경에 빗물이 들여 치지는 않는다.

雨中산행에는 비에 젖은 나무뿌리가 가장 공포의 대상이지...

마지막 암릉구간을 지나니 오늘 산행중에 가장 조심해야 할

암릉구간이 나오는데 빗길에 아주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안부(12:25)

안부에서 내려서서 물한모금 마시고 쉼호흡을 한 후, 스틱을 접은 다음에

상당히 미끄럽고 가느다란 로프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면서 오르는데

생각보다 쉽게 로프 구간을 통과한다

바위 틈사이로 간간히 곤드레 나물들이 보인다

로프가 있는 위험지역을 벗어나서 다시 스틱을 펴고 올라간다

조망바위(12:35)

조망바위에서 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벼락바위봉이라 불리우는 1.034.3m봉과 조금전에 지나온 845.6m봉이

비를 맞으면서 걷고있는 산꾼에게 惻隱之心을 느끼는지 물끄러미 쳐다본다

무명봉(12:39)

무명봉에 올라서니 꼭두바위봉 아래의 암릉구간이 보인다

암릉구간을 낑낑대면서 통과하니 해밀산악회 7기인 춘다님께서

꼭두바위봉이라는 산패를 걸어놨는데 예전에는 없었다

꼭두바위 정상의 모습

꼭두바위봉(838m:12:42)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제천시 덕산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주변에 있는

대미산, 포암산, 만수봉에 비해 대간 산꾼들에게 홀대받는 듯한 그저 밋밋한 봉우리나

그래도 당당한 지명을 가진 봉우리로 날씨가 좋으면 맞은편에 있는 운달산과 문필봉이

한 눈에 보이고 능선 아랫쪽에는 문경도요로 유명한 관음리와 갈평리를 시원하게 볼 수

있으며 지명은 산 아래에 있는 문경읍 갈평리 꼭두바위 마을에서 유래된 듯 하다

꼭두바위봉을 지나면서부터는 경북 북부지방과 충북 북쪽에서만

볼 수 있는 멸종 위기 식물중에 하나인 꼬리털진달래가 자주 보이는구나

무명봉(12:42)

암릉 뒷쪽으로는 가야할 포암산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고

그 뒷쪽으로는 문경읍의 진산이라는 주흘산의 주봉과 영봉이

흐릿하게 보인다

斷石과 소나무의 힘겨루기

가늘게 내리는 비는 이제서야 그치기 시작하지만

옷이 다 젖어서 그런지 추위가 몰려오는 느낌이다

마당바위(12:48)

너럭바위에서 바라본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의 모습

관음리 뒷쪽으로는 우측으로 시작하여 오정산과 종지봉, 단산, 성주봉이

차례로 보이건만 똑닥이 카메라로는 실물이 잘 보이지도 않은 흐릿한 모습이다

무명봉(12:53)

무명봉에서 내려서자마자 우측으로 꺽어져 급경사로 내려서는데

마사토 지역이라 등로가 상당히 미끄러운 내리막길에 반가운

아그들의 흔적이 홀로걷는 선배를 응원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듯 하다

 

성치않은 몸뚱아리 너무 혹사시키지 마소

비에젖은 암릉구간이 상당히 미끄럽다

809m봉(12:56)

809m봉은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사면길로 향하는데 2번째 마당바위를 만난다.

마당바위 2(13:01)

마당바위 위에는 둥글레가 꽃을 피우면서 군락을 이루고 있다.

비에젖어 청순하게 보이는 둥글레(꽃말: 고귀한 봉사)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식물로 동아시아 지역의 산과 들에서 자라며

땅속줄기에서 줄기가 나와 자라며 크기는 약 30~60cm 정도이고 잎은 한쪽 줄기에

치우쳐서 어긋나고, 꽃은 6~7월 잎겨드랑이에서 긴 대롱 모양으로 피며 어린잎과

뿌리줄기를 식용으로 먹으며, 뿌리줄기는 가을에 캐서 그늘에 말린 뒤 차나 약으로 먹는다.

자양·강장·해열의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에젖은 철쭉은 청순한 모습으로 서서히 落花를 준비하는 듯 하다

조망바위(13:04)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주흘산은 비온 뒤의 안개탓인지

흐릿하게 보이는 모습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급한 내림길로 내려서니 돌무더기에 둘러 쌓인채

노거수 2그루가 고개를 지키고 있는 관음리 갈림길로 내려선다

관음리 갈림길(13:06)

대간꾼들이 만든듯한 돌탑이 보이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문경읍 관음리

사점마을이 나오는데 하늘재로 오르는 길 아래에 있는 이곳은 옛부터 사과와 찻사발(窯)의

고장답게 하늘재 가는 길은 온통 사과밭과 가마터로 하얀 사과꽃처럼 순백의 눈꽃을 활짝

피운 사과밭은 어김없이 대미산과 포암산 기슭을 오르다 가마터를 감싼다.

 

현암요 문경요 심천요 뇌암요 묵심요 조선요 중점요 포암요 금우요 등 문경을 대표하는

가마터가 이곳에 모인 까닭은 도자기의 원료로 이용되는 산토의 질이 우수하고 땔감이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경이 일찍이 찻사발의 고장으로 뿌리를 내린 것은 (魂)구운 도자기를

하늘재와 남한강 수로를 이용해 손쉽게 한양에 공급할 수 있었던 데서 기인한다

비는 그쳤지만 등산화에 물이 들어가서 그런지 영 걷기가 불편하다

푹신한 낙엽길을 지나자마자 비에 젖은 암릉구간이 시작되는데

이런 날에 홀로 걷는다는 건 상당히 신경을 쓰면서 걸어야 간다

다리한번 잘못 삐끗하면 헬기를 불러야하는데 이곳은 비탐구간이라

졸지에 범법자 신세가 될 수가 있다.

안부(13:15)

간간이 보이는 이곳의 눈개승만 너무 늙어버려 식용가치를 잃어버렸다

다시 오르막으로 향하는 여정은 어김없이 시작된다

무명봉(13:20)

희한하게 생겼구나...

봄맞이 / 박광호

 

어느새

눈에 뜨인 노랑나비

 

황망히 가는 곳은

여기 저기 멍울 잡힌

 

꽃눈에 입맞춤

얼었든 밤하늘 별빛은

 

봄비 타고 내려와

씨앗으로 뿌려지고

 

진홍의

꽃향기 설레는 꿈은

 

기다리는

임에게도 젖어드는가

 

산자락 음지엔

잔설은 남아있어

완연한 봄은 아직 이름인데

 

겨울과 봄 사이

물안개 피어 날 적

갯버들은 이미 꽃을 피었네

 

흐르는 물소리도

어제와 오늘 다르고

삼라만상 숨쉬는 것은 모두

 

강 건너

조용히 오는

봄을 지켜보고 있구나

 

누이야

우리도 이제

봄을 맞을 채비를 하자 !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너럭바위가 나오고 잠시후에 족보가 있는 895.6m봉 정상에 도착한다

895.6m봉(13:35)

올라 왔으니 다시 내려가야지...산행을 하면서 거를수 없는 不變의 원칙이다

잠시후에 오를 940.5m봉을 바라보면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3:43~55)

이곳에서 초코파이 2개와 쥬스 하나로 허기를 면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안부를 지나면서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비에젖은 오르막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암릉위에 핀 매화말발도리가 훈수를 둔다.

산은 빨리 가는게 능사는 아니라고...

가고 싶어도 빨리 못가는

이 심정을 그대는 아시는가?

계속되는 오르막길

이번에는 병꽃나무가 격려 댓글(?)로 응원한다

산행은 뭐니뭐니해도 안산(안전산행)이 최우선이라네...

빡세게 능선에 오른 다음에 조금전에 지나온 895.6m봉을 뒤돌아서 본다

888m봉(14:05)

888m봉 옆에는 멋진 조망처가 보이지만 안개 때문에 오늘은 영 아니다

칼날 능선을 곡예하면서 걷는데 이 맛도 나름 괜찮은 편이다

아직도 가야할 포암산(우측)은 멀게만 느껴지고 그 뒷쪽으로는 지난 7월에

걸었던 마패봉과 주흘산의 부봉, 영봉, 주봉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당겨본 주흘산의 모습..바로 아래의 관음리 계곡에 뾰족선 저 봉우리 이름은 뭘까?

암릉구간을 따라서 하늘재로 향한다

안부(14:08)

다시 능선으로 오르는데 철쭉이 하루종일 동무하자면서 계속 따라온다

산죽길을 지나면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갑자기 시작되는 급경사...코가 땅에 닿을만큼 힘든 구간을

치고 올라서니 대간꾼들의 시그널이 격하게 환영하는 940.5m봉에

도착한다

940.5m봉(14:23)

대간꾼들의 시그널이 잔뜩 걸려있고 비실이부부님의

시그널에는 응조봉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게 이채롭다

가야할 포암산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낙엽속에 묻혀있는 940.5m봉 정상 삼각점

940.5m봉 정상 삼각점(△덕산313 / 2003재설)

940.5m봉 정상에서 북쪽으로 기수를 돌려서 대간 마루금을 이어간다

대간길에 한검선사가 왠일이셔?...

941.0m봉(14:32)

이곳 정상에서 직진으로 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데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 소재하고 있는 메밀봉(839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고 대간길은

좌측으로 확 꺽어져 마골치로 내려가야 한다

941.0m봉 정상을 찍고 서쪽으로 90도 확 꺽어져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마사토 등로라서 상당히 미끄럽다

낙엽길이 미끄러워서 조심 또 조심하면서 마골치로 향한다

마골치(麻骨峙:847m:14:40)

충북 제천시 덕산면과 경북 문경시 문경읍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마골산(麻骨山)가는 고개라는

뜻으로 포암산을 마골산이라 부르기도 하니 포암산 가는 길이라고 부르면 될 것 같다

고개 정상에는 이정목과 출입금지 안내판이 있고 우측 11시 방향으로는 만수봉 가는 길이다

하늘재에서 이곳까지는 월악산국립공원지역이라 500m 단위로 이정목 설치가 잘 되어 있지만

이곳부터 황장산 아래 벌재까지는 같은 월악산국립공원임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없고 확실한 설명도 없이 비탐구간이라는 이유만으로 庶子 취급을 받는 등로이다

마골치 목책을 넘어서면서 죄인(?) 신분으로 걸어야 했던 비탐구간을 

넘어서서 본격적인 제도권 등로로 들어서니 구조이정목과 이정표가

보이면서 산꾼에 대한 대접이 달라진다

民草들의 祿을 먹고 사는 자들의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

한반도 등줄기인 백두대간 길...걸어라고 장려해도 모자랄 판에 가지 말라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산꾼들이 걷는 등로의 폭은 1m도 안 된다...거기다가 하루에 20km 이상을 걷는 자들이 다른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는데 무슨 생태 파괴를 한단 말인가...이런 곳은 오직 산에 열정 하나만으로

다니는 산꾼들이지, 꽃길만 걷는 등산객들과는 다르다

그리고 자연과 환경파괴 하는 자들과는 質的으로 다른 정말 영혼이 순수한 진정한 산꾼이다

 

 

그 뿐인가

당장 공무원 나리들의 산에 대한 역사 의식부터 바꿔시길 바란다

한반도의 등줄기는 분명 백두대간인데 아직도 공무원 나리들이나 방송국의 일기예보에는

백두대간을 태백산맥이라고 떠들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일제시대 쪽발이들이 한반도의 자본수탈을 위해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가

자원 표기 지도를 만들면서 부르기 시작한 태백산맥...언제 백두대간으로 바꿔 부르실 건가?

이곳에서 북쪽으로 가면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는 만수봉(984.6m)으로

이어지는데 그쪽으로 걷는 등산객이 있는지 시그널들이 간간히 보인다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와 덕산면 월악리에 걸쳐 있는 만수산(峰:984.6m)은

산 밑에 있는 만수계곡의 이름을 따서 만수봉이라 하였으며, 만수(萬壽)는

이름 그대로 산천에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며 자연의 혜택을 두루 입으며

천수(千壽)를 누린다는 뜻을 담고 있는 산이다.

목책이 설치되어 있는 편안한 길을 따라서 포암산으로 향한다

산죽이 나오고 좌측으로 내려서니 이정표가 있는 관음재가 나온다

관음재(觀音峙:811m:14:45)

문경읍 관음리에서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로 가는 옛고개로 불교의 佛性이

관음(觀音)세계에서 미륵(彌勒)세계로 현세(現世)에서 내세(來世)로 가는

희망의 상징적 고개였다고 하는데, 지명처럼 이곳 주변은 마애불 미륵불상과

문화재급이 다수가 있으며 佛家의 요람으로 되어있는 고개이다.

 

옛날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56대 경순왕 태자인 마의태자가 지금의 관음리에서

관음보살을 현몽하고 하늘재를 넘어 미륵리에 불상을 조성했다고 하며,

관음리에 사점이라는지명이 있는데 옛날에는 이곳에 신라사람들이 세운 절이

있었다고 한다.

관음재를 지나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854.2m봉 정상이 나온다

854.2m봉(14:53)

854.2m봉 정상에는 여느 족보있는 봉우리와는 달리 그 흔한

띠지 한장도 없으니 족보있는 봉우리 치고는 너무 홀대받는 느낌이다

854.2m봉 정상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오랫만에 편안한 길을 걸어간다

무명봉(14:57)

안부를 지나고 고도차가 거의없는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데

오랫만에 걸어가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꿀맛같은 등로이다

823m봉(15:00)

호젓한 등로를 걷다보니 이른 아침에 집을 나온 탓인지 졸음이 쏟아지지만

지금 이 시간에 휴식을 취하면서 잠을 잤다가는 귀경길에 낭패를 볼 것 같아서

바짝 긴장을 하면서 걷는다

완만하지만 조금씩 고도를 높혀가기 시작한다

831m봉(15:10)

이정표가 있는 831m봉을 지나자마자 오르막길이 나오고 842.2m봉에 도착한다

842.2m봉(15:12)

정상 5m 아래에서 우측의 사면길이 있어서 무심코

걷다보면 놓칠 수 있는 愚을 범할 수 있는 봉우리다

넓은 공터로 되어있는 842.2m봉 정상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잠시후에 오를 포암산을 바라보면서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등로 좌측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는데 광산터의 흔적인가?

한국동란때의 방공호같기도 한데 확신은 서질 않는다

쉼터?(15:14)

완만한 등로를 따라 가는데 갑자기 암릉구간이 길을 막는다

오를수가 없어서 좌측의 사면길을 따라서 걷는다

암봉(15:22)

오르지 못한 암봉을 뒤돌아 보면서 내려서니 만수골로 내려가는 안부가 나온다

만수골 갈림길(665m:15:24)

포암산을 오르기 위한 본격적인 까칠한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으로

우측으로는 제천시 한수면 만수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만수골로 이어지는 내리막 능선으로는 대간꾼이 아닌 포암산에

올랐다가 내려가는 등산객들의 시그널이 많이 걸려 있는데

그중에서 그랜드산악회의 옥희씨 시그널도 보인다.

닉이 원더우먼이라는 이 여인...산에 관한한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下心을 하라네요...자기를 낮추면 편하죠.

조망바위(15:30)

조망바위에 올라서니 전망은 끝내주는 곳이나 비가 이후의 안개 탓으로

멋진 조망을 제대로 볼 수 없는게 정말 아쉽기만 하다

관음리 너머로 우측부터 봉명산, 오정산, 성주봉, 운달산, 거르목산이

차례로 보이지만 흐릿한 탓에 기분은 반감되는 느낌이다.

 

문경읍 관음리에 있는 관음(觀音)마을은 북쪽으로는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신라시대에 가나문이라는 보살이 이곳에 관음사를 절을 짓고난 후 수도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모여살게 되었다고 하며, 이 절을 세운 사람의 이름을 따서 가나문 또는

절의 이름을 따서 관음이라 불렀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이곳이 북쪽에서 남쪽의 서울 계림

(지금의 경주)으로 가는 길목이었고 전략상 요충지였다고 한다.

 

문막(門幕) 마을은 경북과 충북의 접경 지역에 삼국시대부터 신라에서 고구려로 통하는

문이 있어 낮에는 문을 개방하고 밤에는 문을 닫아 통행인의 왕래를 막았던 곳이라 하여

문막이라 하였다고 하며 이곳을 처음 개척한 사람이 노씨(盧氏) 성(姓)을 가지 선비였다고 한다

이곳은 문경의 도요지로 유명하며 지금도 도자기를 굽는곳이 30여곳이나 있다고 한다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는 구간이다

875m봉(15:45)

산행을 하면서 먹은게 별로 없었던 탓인가,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오르막길에서

발걸음은 자꾸만 느려진다...그래도 걸어야지 우짜겠노...

 

암 수술이후 덤으로 사는 인생...좌측 폐를 절개한 이후부터는

폐활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오직 살 길은 걷는것 밖에 없었다.

산행이란 나에게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자 간절한 신앙과 같다

늙은 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올라서니 坐禪을 하기 딱 좋은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좌선바위?(坐禪巖:15:53)

코가 땅에 닿을만큼 빡센 오르막이라 그런지 수술부위의 통증이

수반되는데 미치겠다...이것 역시 내가 극복할 과정이겠지...

963.1m봉(16:01)

오룩스앱에서는 이곳을 포암산이라 표기를 해놨는데 誤記인 듯 싶다.

이곳은 포암산의 전위봉으로 포암산 정상까지는 조금을 더가야 할 듯 싶다

포암산을 가기위해 내려가는 길은 엄청 미끄럽다

스틱으로 중심을 잡으면서 내려가다가 결국 미끄러져

한참 아래로 쳐박히지만 다행히 다친곳이 없으니 천만다행이다.

맥산행에 관한한 레전드 반열에 속하신 비실이님도 대간을 새로 시작하셨나?

잠시후에 오를 포암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16:05)

안부에서 만난 산괴불주머니

포암산 오르는 길에서 진달래도 만나고...

철쭉도 만나면서 오르다 보니 포암산 정상에 도착한다

포암산(布岩山: 962.5m:16:13)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 주능선에 속해 대간꾼들이 종주를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산으로 베바우산, 마골산, 계립산 등 여러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포암산은 관음리에서 하늘재를 보고 오르면 마치 큰 베(布)를 펼쳐 놓은것 처럼

이기도 하고, 껍질을 벗겨 놓은 삼대처럼 보인다 하여 마골산(麻骨山)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하였지만 오늘날 포암산으로 불리우고 있다.

 

또한 산의 형세가 닭처럼 보인다고 하여 계립산(鷄立山)이라 하였다고 옛기록이

전해지기도 하는 산인데  만수계곡에서 들어가면 쌍봉의 육산처럼 보이지만 문경시

쪽에서 보면 암봉으로 보이는 이 산은 오래전부터 ‘베바우산’으로 불려왔는데 한겨울

눈발이 날려 바위에 붙은 모습이 마치 베옷을 입은 것처럼 질감이 거칠다는데서 유래했다

이는 반듯한 암벽이 크기 순서대로 늘어서 있어

거대한 베 조각을 이어 붙여놓은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희고 우뚝 솟은 바위가 삼대 즉, 지릅같이 보여서 마골산(痲骨山)으로

불렸다는 기록도 전해오고 있으며, 하늘재의 옛지명인 계립령에서 이름을

빌려 계립산(鷄立山)으로도 불리었다.

 

산 전체가 큰 바위 덩어리인 포암산은 멀리서 보면 부처가 손을 벌리고 중생을 맞이하는

형상으로 하늘재부터 시작되는 월악산 국립공원 지역으로 첫머리가 포암산이다

인증샷

오룩스맵 지도에는 삼각점이 있다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주위를 한참을 헤집고 다녀도 찾을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하늘재로 향한다

당겨본 주흘산(山)

대간 마루금이 마치 주흘산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주흘산을 이 고장 문경의 鎭山(진산 : 도읍지나 각 고을에서 그곳을

보호하는 주산〔主山〕으로 정하여 제사지내던 산)으로 고려 때 공민왕이

이 산에 피난했다하여 임금님이 머문 산이란 뜻으로 주흘산이라 칭하였다

 

주흘산(山) 문경의 진산이긴 하지만  주흘산체에서 최고봉은 주흘산(1,039.8m)이

아니라 주흘영봉(主屹靈峯1,108.4m)이다...주흘산이 더 낮음에도 주봉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문경읍내에서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문경읍내에서 영봉은 잘 보이지 않는 반면

주봉은 마을을 내려다보고 모습을 뚜렷이 볼 수 있는데, 문경에 무슨 일이라도

발생하면 도와줄 산이 바로 주봉이라고 보고 진산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신 1,108.4m 고지를 영봉(靈峯)이라는 이름을 붙여 대우를 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산은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인간과의 친밀도가 낮으면 제대로 대접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겠다.

주흘산이 문경의 진산이니 주흘산과 얽힌 이야기도 많은데 전설에 의하면 주흘산은 산 아래를

도읍으로 정하려 마음먹고 치솟았으나 솟구치고 보니 이미 삼각산이 우뚝 솟아 있어 실망한

나머지 되돌아 앉았다한다. 실제 주흘산은 한양을 향해 혹은 대간의 태조산인

백두산을 향해 돌아서서 등을 보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전설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한양 또는 백두산을 등지고 있으니 반역자가 나올 수 있는 마을이라는

전설 혹은 사기꾼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설들이 그것인데, 특히 등을 돌린

산에서는 사기꾼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은 풍수에서 통용되고 있다.

山背人欺(산배인기) 바로 그것이다.

문경 출신 가운데 사기꾼 이름을 들어본 적은 별로 없는 듯하다.

이 고장 출신 반역자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이 마을 출신 가운데 큰 뜻을 품은 자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다.

문경 가은 출신인 후백제 견훤왕이 그렇고 이 곳에서 약 3년 가까이

초등학교 교편을 잡았던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렇다.

더 멀리보니 우측으로부터 신선봉과 마패봉 그 뒷쪽으로는 박달산과 깃대봉

좌측으로는 탄항산과 부봉, 또 그 뒷쪽으로 신선암봉과 조령산까지 아련히 보인다

하늘재로 향하는 급경사의 내리막길

관음리로 이어지는 산줄기 너머로 성주봉과 단산, 운달산이 아련히 보인다

관음리는 예전에 꼭두머리라고도 불렸던 곳인데, 도자기로 유명했던 곳이다.

과거에는 17개의 가마터가 있었으나 현재는 2~3개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지명으로만 봐서는 불교적인 냄새가 진한 고장으로 관음사를

비롯한 절집들이 수없이 많으나, 그러나 현실과는 달리 관음리 땅의 대부분이

대순진리회라는 종교 단체가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너덜길로 내려서니...

아주 급경사의 내리막길에는 데크목 계단을 설치해놔서 편하게 내려간다

데크목 계단에서 바라본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계곡의 모습

계곡 너머로는 용마산, 박쥐봉과 북바위산도 아련히 보이는구나

날씨만 좋았다면 정말 좋을텐데 두고 두고 아쉬운 오늘 산행이다

미륵사지(彌勒寺址)...2017년 11월 12일 하늘재 하산길에서

충주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미륵사지는 사적 317호로 충북과 경북을 연결하고 있는

하늘재 사이의 분지에 남죽향으로 펼쳐져 있다.

미륵리사지(彌勒里寺址)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꿈에

관세음보살로부터 석불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고 하늘재를 넘자마자 지세를 확인하고는

지금의 미륵리에 석불을 세워 절을 만들었다고 하며 또한 미륵사지의 석불은 국내 유일의

북향 불상이다.

 

그러나 발굴 당시 미륵대원이라고 쓰인 기와가 발견되어 삼국유사에 미륵대원 등이 기록

된 것으로 보아 일연 스님이 살았던 그 이전에 지어진 사찰이라는 것이 확실히 고증되므로

고려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즉 관련 유물과 기록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사찰은 고려초기인

11세기경에 창건되었다가 고려후기인 고종때 몽고병의 침입으로 소실된 듯하며 사찰

이름은 미륵대원 이었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 56억7000만 년이 지나면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는 부처님으로, 이 세계는 이상적인 국토로 변하여 땅은 유리와 같이 평평하고

꽃과 향이 뒤덮여 있다고 한다.

또한 인간의 수명은 8만4000세나 되며, 지혜와 위덕이 갖추어져 있고 안온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 세계에 케투마티(Ketumati, 鷄頭末)라는 성이 있고 이곳에 상카(Sankha)라는

전륜성왕이 정법(正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데, 이 나라에는 수많은 보배들이 길거리에

즐비하지만, 사람들은 이 보배를 손에 들고 “옛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서로 싸웠지. 그러나

오늘날은 이것을 탐하거나 아끼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고 한다.

하늘재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최근에 조성된 듯한 주차장도 보인다

데크목 계단이 끝나고도 내리막길은 계속된다

이정표(16:28)

봄날 산에는 / 이국헌

 

봄날 산에는

꽃가지마다 물오른

초경의 고통처럼

탄성으로 피어오른

꽃들의 군무(群舞)

 

눈을 감았다

밀려오는 파도처럼

산허리를 때린다

산바람 꽃 보라

여인의 실오라기 끝에서

 

고통도 춤을 추듯

알알이 톡톡 틔우는 새싹

기다림 속에 희망이

깨달음도 침묵으로 꽃을 피운다

산성터의 흔적같은 느낌이 드는 너덜겅을 따라서 내려간다

예전에 안부였던 곳에는 데크목 구름다리가 설치되어 있어서

편하게 통과를 하는 편안함을 누린다

예전에는 구름다리 저 아래로 개고생하면서 올라왔던 기억이 아직도 뚜렸하게 기억난다

789m봉(16:36)

789m봉 아래로 내려오자 넓은 공터가 나오고 급경사로 내려간다

집채만한 암릉구간 아래로 통과하니...앙증맞은 돌탑이 있는 너럭바위가 나온다

너럭바위(16:40)

내리막길에 간간히 불어주는 바람으로 인해서 옷이 많이 말랐다

Luxury한 명품송

명품송 아래로 내려서니 암릉이 길을 막고있어 좌측으로 내려간다

돌탑(16:45)

등로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멋진 奇巖들이 산꾼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모래산 너머로 주흘산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665m봉(16:48)

마지막 계단으로 내려간다

하늘샘(16:55)

며칠 사이에 비가 많이 온 탓인지 수량은 풍부하다.

시원하게 물 한바가지 마신 다음에  굽힌 허리를 펴면서 일어서니...

헐~~~이게 뭐여!...옛날에 역모를 꾸민 사람들이나 죄인으로 몰렸던

사람들이 마시고 꼴까닥한 死藥의 원료로 쓰였다는 천남성이 하늘샘

파이프 위에서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데 조금전에 마신물이 괜찮을까?

천남성(天南星:꽃말:여인의 복수)

천남성을 먹으면 “낮에도 남쪽 하늘에 별이 보인다”는 뜻으로 古書에서

‘사두화(巳頭花)’라고 했는데 꽃의 특이한 모습이 마치 뱀이 머리를 들고 있는것

같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으로 봄에피는 천남성 꽃은 깔대기 모양의 꽃덮개와

가운데 곤봉 모양으로 된 꽃이삭이 좀 특이하며, 가을에 익는 열매는 마치 잘익은

옥수수 자루처럼 생긴 장과열매가 빨갛게 모여서 익어 아주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열매는 구토, 허탈 증세, 심장마비 등이 일어나는 독초이다.

 

조선조에 궁중에서  미약한 출신에서 승은(承恩)을 입고 지위를 얻은 여인들은

지위 유지를 꿈꾸던 중 권력다툼에 휘말리게 되고 끝내 악녀로 낙인찍혀 사약으로

운명을 달리했었는데 대표적으로 성종의 계비였던 폐비 윤씨, 숙종의 후궁 장희빈,

중종의 첫사랑이었던 경빈 박씨, 등등,  모두 권력 다툼의 희생양이 된 이 여인들이

받았던 사약의 원료가 천남성이었다고 한다

하늘재 산성터로 올라간다

하늘재 산성 (16:57)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포암산(布巖山:962.5m)과 월악산 부봉(釜峰:917.0m)사이의 안부(鞍部)인

 하늘재(525m) 막아 쌓은 행성(行城) 형태의 석축산성으로 사료의 기록은 없으나

죽령과 함께 신라의 북진로였던 이곳 계립령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되었던 산성으로

보는데, 계립령은 『삼국사기』에 신라 아달라왕 3년 4월에 개척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라측에서 북쪽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한편

북방 진출을 위한 통로로서 일찍부터 계립령을 중시하였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현존하는 석성이 계립령의 개척 시기인 2세기에 축성되었다고 할 수 는 없으나

이 성을 신라측에서 쌓았음은 하늘재 정상부에서 서쪽으로 250m정도 아래에

설축한 것으로 보아서 알 수 있다.

 

대략 신라의 북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6세기 이후에 축성되지 않았을까 추측되며,

훨씬 후대인 고려 후기  몽고의 침입 때 이 일대에서 공방전을 벌인것으로 볼 때

고려 후기에 축성하였거나 그 이전분터 있던 산성을 이용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늘재와 4km 정도 떨어진 미륵리 서쪽의 지릅재에서 신선봉(神仙峰)을 거쳐 조령 3관문

사이에 있는 석성과도 서로 연관되어 신라의 북변을 방어하도록 구축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하늘재 남쪽, 즉 부봉쪽 산기슭에 쌓은 성벽의 일부가 없어져서 전모를 알 수 없고

 오직 포암산의 암벽 아래에서 시작된 690m 정도의 성벽만이 확인되는데 협축(夾築)으로

높이 3.7m, 너비 2.4m 정도이다. 그 밖에 문터와 수구 등 성곽의 제반 시설은 확인할 수 없으며

유물은 성벽 주위에서 신라계의 토기편이 약간 수습될 뿐이다.

 

미륵리 마을 주변에는 고구려 온달(溫達) 장군의 공깃돌이라 전해지는 둥근 바위와 온달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고분 등이 있어 주목되는데, 이는 하늘재 산성이 신라 북진의 거점과

전초기지가 되는 동시에 죽령과 계립령 이북의 옛 영토 탈환을 위해 결사남진(決死南進)한

온달의 최후 목표가 되었던 최종 보루였음을 나타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동통신 중계탑(17:00)

이동통신 중계탑을 지나 데크목 계단으로 내려서니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하늘재에 도착한다...

3차 대간길에서는 북측의 미륵리로 내려가서 수안보로 간 다음에

귀경을 했는데, 내려가는 길에 김연아 소나무도 있고, 미륵사지도

구경했던 재미가 쏠쏠했었는데, 교통이 불편한 게 단점이었다.

 

아무래도 문경쪽으로 가는게 교통이 편할것 오늘은 미륵리쪽이

아닌 관음리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하늘재의 전설

고려에 의해 멸망한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麻衣太子)는 이 고개를

넘어 부활을 꿈꾸다가 고려의 호족들에 의해  마의태자는 미륵리에 있는

미륵사에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있는 덕주사에 머무른다.

나라가 망해 정처없이 떠돌이가 된 오누이의 생이별한 고통과 사무치는

그리움은 끝내 미륵리에 미륵불을 덕주사에 마애불을 세워 마주보게 했다고 한다

하늘재(525m:17:02)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觀音里)로 시작해서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彌勒里)로 연결되는 길로서 관음리쪽은 2차선 포장도로이지만

미륵리쪽은 비포장도로로 되어 있는 곳에 탐방 안내소가 있다

 

불교 용어로 관음은 현세불(現世佛)이고 미륵은 내세불(來世佛)이다

문경읍 관음리는 현세(現世)이고 상모면 미륵리는 내세(來世)이니 

하늘재는 미래와 현세를 넘나드는 고갯길이란 뜻인가?

아니면 그 그 중간쯤 되는 고개일까.

 

자료에 따르면, 신라 아달라 이사금 3년(156년)에 “여름 4월에 계립령

(鷄立嶺 :하늘재의 옛 이름) 길을 열었다”라는 <삼국사기> 제2권 ‘신라본기’에

최초의 기록이 있어서 문헌상 가장 오래된 옛길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증보문헌비고, 문헌비고, 만기유람, 동국여지승람 등

다수의 고문헌과 자료에 나타나고 있는 옛길이다

하지만 조선 초기에 문경새재가 개척되면서 하늘재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된다.

 

가장 오래된 옛길로 알려진 <하늘재>의 얽힌 역사적 사실(史實)을 살펴보면

고구려(高句麗) 온달(溫達) 장군이 “계립령(鷄立嶺)이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나도 돌아가지 않겠다

 

2000년 가까운 세월 만큼이나 고개가 품은 역사는 깊다.

계립현, 마목현, 마골산, 마골참, 대원령, 한훤령 등 시대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여럿인

하늘재는 삼국시대에는 정치·군사적 요충지였고, 민초들의 삶의 통로이자 불교문화의

전승로였고, 또 온달장군의 기백이 서려 있고, 궁예는 상주지방을 치러 갈 때 이 고개를 넘었다.

홍건적을 피해 내려온 고려 공민왕의 피란행렬도 이 땅을 밟았고,

마의태자와 누이 덕주공주의 한이 스며 있는 고개이기도 하다.

계립령 유허비에 세겨진 글

『청아(淸雅)한 기운을 가득 머금고 솔바람 들꽃 향기 그윽하게 피어내며 구름 한 점

머무는 고즈넉한 백두대간의 고갯마루. 태초(太初)에 하늘이 열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영남과 기호지방을 연결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장구(長久)한 세월

동안 역사의 온갖 풍상(風霜)과 애환(哀歡)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이 고개가

계립령(鷄立嶺)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청북도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이 고개는 속칭 하늘재, 지릅재, 겨릅재, 대원령(大院嶺)이라 부르기도

하며, 신라가 북진을 위해 아달라왕(阿達羅王) 3년(156) 4월에 죽령(竹嶺)과 조령(鳥嶺)

사이의 가장 낮은 곳에 길을 개척한 계립령은 신라의 대로(大路)로서 죽령보다 2년

먼저 길을 열렸다.

 

계립령을 넘어서면 곧바로 충주에 이르고, 그곳부터는 남한강의 수운(水運)을 이용하여

한강 하류까지 일사천리로 나갈 수 있는 길로서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신라는 물론

고구려, 백제가 함께 중요시한 지역으로 북진과 남진의 통로였으며, 신라는 문경지방을

교두보로 한강유역 진출이 가능하였고, 이곳 계립령을 경계로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시켰다.

 

계립령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 온달장군과 연개소문의 실지(失地)회복을 위한 노력이

시도되었고 왕건과 몽고의 차라대(車羅大)가 남하할 때, 또한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의

어가(御駕)가 남쪽으로 몽진(蒙塵)할 때도 이 고개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등 숱한

사연을 담고 있는 곳이다... 고려시대(高麗時代) 불교의 성지(聖地)인 충북과 문경지방에

이르는 계립령로 주변에는 많은 사찰이 있었으나 전란(戰亂)으로 소실되었고, 그 유적과

사지(寺址)만 전한다.

 

조선조(朝鮮朝) 태종 14년(1414) 조령로(지금의 문경새재)가 개척되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조령로가 험준한 지세로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시되자 계립령로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점차 떨어지게 되어 그 역할을 조령로에 넘겨주게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애환을 간직해 온 계립령로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보고 고개 넘는

길손들에게 지난 역사의 향취(香臭)를 전하고 그 뜻을 기리고자 이곳에 유허비를 세운다.』

하늘재 산신각

이곳은 월악산국립공원 정비사업(?)의 일환인지 모든게 많이 바뀌어 버렸다.

산신각도 새로 깔끔하고 조성되었고, 하늘재 표시석도 윗쪽에서 아래로 이사왔다.

그리고 예전에 산꾼들의 쉼터 역할을 했던 하늘재 산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주변에는 정원과 주차장이 새로 들어섰다...산신각은 문이 잠겨있어 참배를 포기한다

포암산 내려오는 길에 아침에 박마을까지 타고갔던 택시를 호출했더니 

나보다 미리와서 대기하고 있기에 서둘러 문경터미널로 향하는데

17시 50분에 동서울로 가는 버스는 충분히  탈 수 있을거라고 하면서도

나를 위해 과속을 하다시피 전 속력으로 달려서 터미널에 도착하니

차량 출발시간 15분 전이다

문경터미널(17:35)

버스표를 예매해놓고 화장실로 가니 씻고 옷을 갈아입을 곳이

마땅찮아서 타월에 물을 묻혀서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터미널로 나오니 점촌에서 온 버스가 대기를 하고 있다

문경터미널(17:35)

17시 50분에 출발한다는 버스는 조금 늦게 출발하고 난 이내 잠에 빠졌다가

일어서니 버스는 감곡I.C를 지나서 여주로 향하는데 고속도로가 주차장이다.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저녁 9시가 넘었는데 예상했던 시간보다 1시간이

더 걸린 셈이다...강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