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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白頭大幹 4次(진행중)

제41구간- 곰넘이재에서 화방재까지(역산행)

by 범여(梵如) 2023. 6. 5.

 

弘益人間의 의미를 새기면서 태백산길을 걷는다

 

☞ 산행일자: 2023년 06월 04일

☞ 산행날씨: 맑은날씨에 산행하기 좋음

☞ 산행거리: 도상거리 16.5km +날머리 2.8km / 8시간 4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화방재-사길령- 산령각-사길치-안부-무명봉-안부-안부-갈림길-쉼터

                    조망바위-1,273.3m봉-유일사 쉼터-유일사-다시 유일사 쉼터-쉼터

                    쉼터-장군봉 쉼터-만경사 갈림길-주목군락지-이동통신탑-장군봉

                    천왕단-하단-갈림길-문수봉 갈림길-헬기장-부쇠봉-부쇠봉 전망대

                    현불사 갈림길-청옥산 갈림길-안부-1,458.4m봉-안부-1.353.2m봉

                    깃대배기봉-두리봉 갈림길-쉼터-1,274.5m봉-장고개재-안부-1,175.2m봉

                    무명봉-안부-1,202.3m봉-운곡(각화)지맥 분기점-차돌배기 삼거리

                    암봉-무명봉-안부-1,156.7m봉-무명봉-안부-1,174.1m봉-안부-무명봉

                    무명봉-안부-무명봉-신선봉-안부-묘지-안부-쉼터-1.081.1m봉

                   곰넘이재-사방댐-민가-정수장-참새골 팬션

☞ 소 재 지: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 태백시 혈동,소도동/경북 봉화군 석포면, 소천면, 춘양면 

 

지난달 2주간은 태백과 정선의 오지의 지맥길에서 정말 개고생을 했고, 마지막주는

김제로 갔다가 하루종일 비를 맞는 바람에 心身의 지쳐있는 상태라서 이번주는

좀 편안한 길을 걷고 싶다...구라청(기상청)의 예보로는 전국적으로 맑은 날씨라고

하니 일단 믿어보기로 하고, 이런날은 전망이 좋은 곳으로 가고 싶다.

 

전국적으로 벌려놓은 곳이 많아서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때는 천지 삐깔이다

이곳 저곳을 검색하다가 갑자기 태백산이 가고파진다...지난 4월말에 도래기재에서

출발하여 차돌배기 구간을 하려다가 컨디션 난조로 인하여 중간의 곰넘이재에서

중탈을 하는 바람에 남은 태백산 구간은 현재의 내 체력으로 당일 산행으로는

조금 무리일 것 같아서 토요일 저녁에 태백으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 여유롭게

산행을 하고 싶다.

 

토요일에 사무실의 잔무를 조금 일찍 마무리하고 베낭을 동서울터미널로 향한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포장마차에서 김밥한줄과 잔치국수로 든든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19시에 출발하는 태백행 버스에 오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태백행 버스표

19시에 버스가 출발하는데 아직도 주위는 환하다...차는 출발하고 차를 타자마자

평소의 습관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가 차창밖을 바라보니 오늘이 음력으로 4월

보름날이라 그런지 中天에 떠있는 둥근달이 잠에서 깨어난 범여를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버스는 제천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38번 국도를 타고 영월쪽으로 향하고 있다.

 

버스는 영월터미널에 도착하여 손님을 내린후에 다시 어둠속을 달려 잠시후에

도착한 고한터미널에서 승객들이 거의 다 내리고 태백으로 향하는데

손님이라고는 나를 포함해서 4명이다.

태백시외버스 터미널(22:10)

모텔(22:15~04:00)

터미널 맞은편에 모텔에 들려서 잠을 청하려는데 버스에서 잠을 많이

잔 탓인지 아니면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좀처럼 잠이 오질 않는다

왠지 모르게 숙박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예전에는 터미널 근처에 찜질방이

있어서 거기서 몇번을 잤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찜질방은 폐업했고, 설사 있다해도

기저환자인 나로서는 찜찜해서 찜질방을 가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식당(04:15)

새벽에 여관을 나와서 10여분을 걸어서 3주전에 들렸던 황지연못 근처의 식당에

들려서 해장국을 시켰더니만 혼자냐고 묻더니만 식사가 안된다고 한다...헐~...

참으로 난감하다...나홀로 산행에서는 베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는 

아침을 해결하고 나면 그만큼 베낭이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잠깐 생각을 한 다음에 식당 쥔장인 할머니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밥 한그릇에

김치라도 좋으니 밥만을 달라고 하면서 선불로 10,000원짜리 한 장을 줬더니만

금새 생각이 바뀌었는지 밥상을 제대로 차려준다...내 돈주고 밥먹는데 이렇게

푸대접을 받아야 하나?...집 나오면 개고생한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아침을 해결하고 택시를 타고 화방재로 향한다.

태백산 주변을 나타낸 대동여지도

천년병화 불입지지(千年兵禍 不入之地)라는 이상향, 태백 160리. 태백(太白)은

정감록에 '이상향'으로 지목될만큼 첩첩산중의 고원에 자리잡은 곳으로, 사실

내륙지방에서 백두대간을 넘지 않고서는 그곳을 갈 수가 없는 고장이다

 

태백은 자타가 공인하는 전국 제1의 광도(鑛都)로 일제 무렵, 삼척개발주식회사가

조선총독부 보유 탄전의 광업권을 인수하여 장성의 석탄을 캐낸 것이 탄광의 시작이다.

태백의 연감을 들추어보니 1981년의 광부 수가 무려 19,375명에 달했다 하며, 집계되지

않은 숫자까지 합치면 2만 명을 훨씬 웃돌았다고 하며, 1987년 태백의 석탄 생산량은

640만 톤이나 되어 전국 생산량의 30%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스개 소리로 ‘지나는 개도 입에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호황을 누렸던 태백에 시가지가 형성되고 1981년 장성·황지읍이 삼척군에서 갈라져 나와

태백시로 승격된 것은 오로지 탄광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이제 흉물스럽게 버려진 탄광과 빈집을 뒤로 한 채 저마다 진폐를 쿨룩이며

대처로 떠난 광부들의 비극으로 막을 내렸으며, 또한 시내 중심부의 연화산 자락에 세워진

산업전사위령탑에는, 광산에서 일하다가 죽어간 수많은 광산노동자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화방재(花房嶺:933.9m:04:50)

강원도 태백시 혈동과 영월군 상동읍으로 이어지는 31번 국도가 지나가고, 만항재

함백산으로 이어지는 414번 지방도로가 있는 고개로 '꽃방석 고개'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화방재(花房嶺)는 일명 '어평재(御平嶺)'라고도 하는데,영월에서 태백으로 통하는 태백의

중요한 관문으로 고갯마루에는 어평주유소와 작은 식당 등이 한 건물에 연이어 있고,

2층엔 민박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대간꾼을 위한 휴게소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 있는데 

옛 이름은 어평재로 영월에서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단종의 영혼이 태백산으로

가는 길에 태백산 서쪽 기슭의 어평에 이르러 ‘이곳부터 내 땅(어평:御坪)’이라 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지명이이란다.

 

고개 마루에 진달래, 철쭉이 무성하기에 화방재(花房嶺)라고 하였으며, 태백문화원에서

발간한 태백의 지명유래에서는 화방재 또는 정거리재라고 하며,이 지역 사람들은

어평재라고 하다... 아침에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화방재를 가자고 하니 잘 모른다고

하여 어평재로 가자고 하니 금방 알아듣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어평(禦坪)은 영월군 상동읍 있는 마을로 화방재에서 약3km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로 단종의 혼령이 백마를 타고 태백산으로 와서 태백산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이(현 태백산 능선에 단종비각 건립) 전해 내려오는 마을로 단종의 혼령이

어평마을에 다다라 잠시 쉬면서 “여기서부터는 내땅(禦坪)”이라 하여 “어평”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현 어평마을에 단종대와 당이라는 성황당이 있다고 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5:00)

산행을 시작하는데 맞은편의 수리봉 방향에서 들려오는 처량한 뫳돼지의 울음소리...

싸움에서 패한 패자의 울음소리인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을 위한

울음소리인지 모르겠다...그것이야 니네들의 사정이고...

시원하게 그리고 그리 춥지않게 불어오는 바람에 묻어오는 꽃향기가 상쾌하다.

찔레꽃인지, 밤꽃인지 모를 향기지만 맑은 공기에 묻어오는 이 향기가 너무 좋다.

등로를 걷는데 이곳이 산소의 도시를 표방하는 태백답게 공기는 너무좋다.

 

등로 좌측의 위에 보이는 봉우리가 1,021.4m봉인데 명색이 족보있는 봉우리에다

엄연히 대간길에 속해있는 곳이지만 아무도 저곳으로 올라가는 대간꾼은 없고

그냥 편안한 사면길로 걷는데 오룩스맵에서만 경로 이탈을 했다고 지랄발광을 한다

이른 새벽에 걷는 이 길...공기도 상쾌하지만 주위에 피어있는 산괘불주머니,

쥐손이풀꽃, 졸방제비꽃과 흡사하게 보이는 태백제비꽃이 산꾼을 반기고

사길령으로 가는 길옆의 밭에는 산나물이라 불리는 눈개승마 재배지가 보인다

예전에는 이 밭은 고랭지 배추밭이었는데 지금은 눈개승마밭으로 바뀌었다.

이른 아침에 맑은 공기에다 이름모를 산새들의 지저귐에 천제단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다...예전에 사길치(四吉峙),새길령(鳥道嶺), 사길령(士吉嶺)으로도

불렸던 이 길은 穴里(지금의 태백시 혈동)와 天坪(지금의 영월군 상동면 구례리)을

오가던 옛 보부상들이 도적과, 범이라는 맹수들에게 목숨을 담보로 걸었던 고단한

길을 범여는 편하게 걸어가니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드는구나.

사길령(四吉嶺:980m:05:10)

강원도 태백시 혈동과 영월군 상동읍 구례리를 넘는 태백산 북쪽 백두대간

등로에 위치한 옛날 경상도로 통하던 고갯길로 삼국시대에는 태백산 꼭대기로

나있는 천령(天嶺)길을 통해 왕래하였으나 길이 높고 험하여 고려시대에 와서는

지금의 사길령으로 새로이 길을 내면서 새길령이라 했다.

 

사길령은 교통의 요지로 이곳을 지나는 상인들이 무사안전을 위해 고갯마루에

산령각을 짓고 태백산령께 제례를 올렸으며, 지금까지 매년 음력 4월15일이

되면 산령제를 통해 마을의 안녕을 빌며 제사하고 있다.

 

사길령은 새로 길을 뚫었기 때문에 ‘새길’이라고 하는데 하며, 샛길재에서 강원도와

경상도를 오가며 장사하던 보부상들에 의하여 건립된 산령각에서 매년 제사를

지낸 것에서 유래됐다.

 

사길령 산령제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옛날 고갯마루에 도적이 성행, 범이 나타나 사람을 해치는 것도 비일비재하여

고갯마루에 산령각을 짓고 안전을 기원했던 곳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사길령 표시석 뒷면에는 사길령의 유래가 적혀있다

사길령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교통의 요충으로 중요한 고갯길이었다

신라시대에 태백산 꼭대기로 통하는 고갯길이 있어 천령(天嶺)이라 했는데

높고 험하여 고려 시대에 새로이 길을 낸 것이 사길령이다.

'새로 낸 고개`, 즉 새길령의 향찰식(鄕札式) 표기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향찰(鄕札)은 한자의 음과 뜻을 활용하여 한국어를 표기하는 방법의 하나로

주로 신라시대 향가(鄕歌)에 사용되었으며, 한자를 차용(借用)하였지만 그 당시

쓰였던 말을 정교하게 적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삼국시대 때부터 쓰였다.

 

향찰은 어디까지나 신라 고유의 시가 갈래였던 향가 전용 표기법이었기에 신라 멸망을

기점으로 쇠퇴기에 접어들기 시작하여 고려 중기부터 사용자가 급속히 줄었고 고려 말기

들어와서는 완전히 사장되었다

사길령의 좌측으로는 태백시 혈동으로 이어지는 계곡 아래는 민가 한채가 보인다

한반도 지도를 보면 백두산부터 남으로 뻗어 내려온 백두대간은 태백에서 둥지를

틀 듯하면서 서쪽으로 꺾이는데, 풍수지리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이다.

 

들머리인 화방재(花房峙)는 태백시 혈동(穴洞)에 속하는데 바로 백두대간의 혈(穴)에

속하는 곳이 태백산으로 태백과 소백은 양백(兩白)이라 하여 신성한 순백색으로

표상되는 정신적인 정기의 합류처로 경북 북부지방의 유교적 토양과 태백산 천제단으로

상징되는 도교의 융합이라고 할지... 

 

사길령을 지나면서 태백산 정상인 장군봉을 향한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매주 걷는 산이지만 늘 새롭고 가슴이 설레는 첫사랑의 느낌이 다가오는 듯한

이 짜릿한 快感을 홀로 느끼기에는 너무 아깝다...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를

따라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고,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묻어와 내 코끝을

자극하는 이름모를 꽃향기가 너무 좋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유일사:태백 20- 01:해발 996m↓화방재)

대간 능선에서 바라본 태백시 혈동(穴洞) 계곡의 모습

태백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혈동은 마을에 있는 길이 약 1,000m에 이르는 거대한

석회동굴(혈리굴)로부터 혈동(穴洞)이라는 지명이 지어졌는데 우리말로는‘굴어구’라 하였고,

한자로 표기하여 ‘혈구(穴口)’ 또는‘혈동(穴洞)’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굴어구(혈구, 혈동)· 살래골(沙來谷)·정거리(程巨里 또는 停車里)·어평(御坪 또는 於坪)·

당골(塘谷)·천평(川坪)의 6개 촌락을 합하여 혈리(穴里)라 하였다.

혈동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인 살래골마을은 석회암지대로 곳곳에 건천(乾川)이 있고 골짜기

안쪽은 함백산 기슭인데, 옛날 골짜기 안쪽에서 장마 때 큰 사태가 일어나 사태골(沙汰谷)이라

하다가 사천동(沙川洞)·살래골로 부르게 되었다 하며 일설에 의하면 선비들을 모셔 자식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하여 사래동(士來洞)이라 했다고도 하며, 한국에서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중 가장

높은 지점(1,330m)에 있는 고갯길인 만항재(어평재, 화방재)가 혈동에 걸쳐 있다.

태백산이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지 전인 도립공원 시절에 1인당 2,000원씩

징수하던 사길령 매표소...국립공원으로 승격되면서 돈을 받아 챙기던

그 좋았던 시절을 뒤로하고 흉물(?)처럼 변해 버린채로 방치되어 있다.

그 대신에 사람들이 지나가면 자동으로 체크되는 계수기와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느냐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더 나은 곳에 서게 될 거라는 믿음 하나로 오늘도 산길을 걷고있다

지금이 새벽 5시 20여분...일출이 시작되어 나무가지 사이로 한참을 올라왔다.

아침해를 오랜만에 산에서 바라보니 오늘은 왠지 모르게 좋은 일이 있을건만

같은 豫感이 든다

사길령에서 빡센 오르막길을 뚜벅이처럼 걷다보니 산령각이 보이기 시작한다

태백산 산령각(太白山 山靈閣:05:30) 

산령각(山靈閣)의 문이 굳게 잠겨있어 오늘은 내부를 볼 수 없는게 아쉽다.

 

영월 땅에서 사약을 받고 죽은 조선 제6대 임금 단종대왕이 사후 그 혼령이 되어 태백산의 

산령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새길재(또는 사길령) 산령각의 신위는다른 산령각의 신위와 

다르게 단종대왕이라고 하여 산령각 내부에는 백마를 어린 임금이 그려진 탱화가 안치돼

있는 것이 특징이라  했지만, 2017년 5월 14일 3차 대간길에서 내부를 본 적이 있었는데

백마를 타고 있다는 단종의 탱화는 보이지 않았었다.

 

현재 태백산 사길령 산령각 계회에 보관 중인 천금록(千金錄)은 200여 년 전부터

보부상들이 이곳 태백산 산령각에서 제사를 지낸 기록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유례가 없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산령각 현판

삼촌(세조)에게 영월로 유배 당한뒤 사약을 받고 死後에 태백산의 魂靈이 되었다는

단종의 원혼(寃魂)인지 산령제를 지내면서 친 새끼줄 아래로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열한살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올랐다가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이 일으킨

반란(계유정란)으로 권력을 빼았겨 17세의 아까운 나이에 生을 마감한 단종이

이 산꾼이 할 말이 있는듯 한 느낌이다...예나 지금이나 권력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었던 건 똑같은 모양이다...원한은 다 잊어버리고 그냥 편히 지내셔요

태백산 산령각 유래 안내판

계유정란(癸酉靖難)은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단종의 보좌 세력이자 원로대신인

황보인·김종서 등 수십 인을 살해,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사건으로 어린 나이에 즉위한

단종은 수렴청정을 할 대왕대비도 없어서 문종의 고명을 받은 황보인, 김종서 등 대신들이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단종 즉위 후부터 거사를 계획한 수양대군은 이러한 상황이

굳어져 가기 전인 1453년 김종서 등에게 모반죄를 씌워 제거하고 정권과 병권을 장악했으며,

자신을 포함하여 정난(靖難)에 협력한 43인을 정난공신(靖難功臣)으로 책봉했다.

이로써 2년 뒤 강제로 단종의 선위를 받고 즉위할 기반을 마련한 사건을 말한다

사길치(四吉峙:05:31)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유일사:태백 20- 02:해발 1,171m↓화방재)

 

산령각을 지나자마자 우측의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 천평마을로 이어지는 방향에

입산금지 팻말과 함께 하얀줄이 처져 있는데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이곳에 있는 산령각은 표기가 안되어 있고 사길치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상당히 헷갈리는 곳이다.

지나온 사길령(四吉嶺)은 뭐고, 이곳의 사길치(四吉峙)는 뭐란 말이냐?

천평(川坪)마을로 이어지는 등로는 뚜렸하고 민초들이 만든듯한 돌탑도 보이나

이곳이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면서 하지 말라는 제약이 많이

따르는 모양이다...국공파들의 갑질을 안보려면 산을 다니지 말아야 할 듯 싶다

 

영월군 상동읍에 있는 천평리는 원래 ‘냇들’, ‘내뜨리’라고 불렀는데 한자화되었다.

고직령에서 흐르는 물이 마을 가운데를 가로질러 농거리에서 어평천과 합류하는데,

냇물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넓은 들이 펼쳐져 있어서 냇들이라 부르게 된 마을로

원래는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 춘양면(春陽面)에 속하였으나 1963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강원도 울진군(蔚珍郡)이 경상북도로 이속(移屬)되고 천평리가 강원도 영월군 상동면으로

편입되었으며, 1973년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로 개편되었다.

산은 금새 산꾼의 마음을 알아챈 듯 사길령에서 산령각까지 임도지만

급경사의 오르막을 치고 오르느라 힘들어 함을 보상하려는지 산령각부터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유일사 방향으로 향하는데 산은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은 늘 어머니의 포근한 품안같은 느낌이다

나보고 힘든곳은 오르지 말고 몸도 안좋으니 편안하고 좋은 길로만 가라고 한다

저 위로 보이는 봉우리가 대간 마루금상에 있는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 표기가 되어있는 1,192.5m봉인데 사면길에서 눈팅이만 하고

통과한다.

조그만 골짜기를 지나니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산괴불주머니도 보이고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05:43)

조금씩 태백산 정상을 향한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이곳은

음지라 그런지 아직까지 나뭇잎이 완전체를 이루지 못한체로

서서히 여름을 향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산죽의 엄청난 확산세(?)를 방지하기 위해 제초제를 뿌렸는지 땟깔이 영 거시기하다

무명봉(05:46)

대간길은 호젓한 산죽길로 이어진다

무명봉을 지나니 좌측으로는 유일사주차장으로 이어지는듯한 샛길이 보이고

직진의 대간 능선은 내리막길로 이어지고, 유일사가 가까워졌는지 전생에

은사스님의 수행 정진하라는 신신당부를 무시하고 게으름을 피우다가 生을

마감한 스님이 새로 환생하여 홀딱벗고 새(검은등 뻐꾸기)가 되어 울어대는

소리가 너무나 처량하게 들린다.

 

에공!...생전에 열심히 수행정진하여 天上세계로 태어나시지 뭔 개고생이라요.

급한 내리막길 우측 아랫쪽에는 생전에 벼슬한 한 분의 묘인지

옥계석(屋蓋石)을 이고 있는 묘지가 보이는데 예전의 대간길에서는

무심코 지나친 모양인지 저 묘지를 본 기억이 없다

안부(05:48)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유일사:태백 20- 03:해발 1,170m↓화방재)

안부를 지나는  좌측 아랫쪽은 우리나라 한계령풀꽃 자생지로는 가장 큰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인데 계절을 놓친 탓이련가...꽃은 지고 숲으로

변해 버렸다...3년전에 이곳으로 出寫를 와서 한계령풀꽃과 족도리풀,

얼레지를 원없이 보고간 아련한 추억이 아직도 생생한 곳이다

한계령풀꽃(꽃말:보석)...2020년 5월 5일 이곳 출사때의 사진

한계령풀은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매자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모단초(牡丹草)·메감자라고도 하며, 깊은 산의 양지바른 풀밭에서 자란다.

뿌리는 땅속 깊이 곧게 들어가며 높이 30∼40cm이고 털이 없고 턱잎은 잎처럼

생기고 반원형 또는 원형이며 원줄기를 완전히 둘러싼다.

잎은 1개이며 1cm 정도의 잎자루 끝에서 3개로 갈라진 다음 다시 3개씩 갈라지며,

작은잎자루는 길이 4∼5cm이며, 갈래조각은 중앙의 것은 타원형이며 길이 6∼7cm, 

나비 2∼3cm로 끝이 둥글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5월에 피고 노란색이며 줄기 끝에 총상꽃차례로 달리며, 작은꽃자루는 길이 3cm

 정도로 자라지만 위로 갈수록 점차 짧아지고 포는 잎같이 생기고 길이와 나비가 1cm

 정도이고, 열매는 삭과로서 둥글고 7월에 익는다.

 

설악산 오색계곡의 한계령 능선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므로 한계령풀이라고 하며

그 밖에도 중북부 지방의 오대산과 태백산, 홍천의 대학산 등지에서 분포하며,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2급 식물의 희귀종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주위에는 그때 보았던 족도리풀도 내년을 기약하며 꽃은 지고 씨방을 만들고 있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고 그 길에 확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린 매일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맞는 길을 가면서도

이 길이 아닌가 하는 의문과 두려움에 빠지게 되지만

 모든  길을 다 가볼 수 없어서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나 미련도 생긴다.

 

노래 가사처럼 운명에 이끌리듯 눈을 감고

걸어도 옳은 길이 아닌 나에게 맞는 길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해도 틀리지 않은 길,

그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기근이 들던 봄에 절에서 스님들이 풀솜대를 넣고

죽을 쑤어 배곯는 이들을 구제하여 "지장보살"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佛家에서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원(願)을 세우신 보살이 지장보살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혀진

풀솜대(꽃말:나는 당신을 믿습니다)도 태백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안부(05:58)

조그만 봉우리를 넘어서니 이정표와 구조이정목이 서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06:00)

좌측의 1.2km 지점에 있다는 유일사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다고 했는데 이곳의 좌측 등로는 모두 유일사 주차장으로 통한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화방재:태백 20- 04:해발 1,192m↓유일사)

앙증맞은 꽃은 지고 그저 밋밋한 풀로 변해버린 괭이눈의 모습

순백색의 꽃을 피우고 있는 미나리냉이(꽃말:당신에게 모든 것을 맡깁니다)도 보인다

 

잎이 미나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혀진 냉이... 꽃 중에 꽃잎 네 개가 십자 모양으로

피는 종류를 십자화(十字花)라고 하며, 꽃다지와 냉이류, 갈래꽃이 십자과에 속하는

식물들이며 미나리냉이도 이에 속한다.

 

미나리도, 냉이도 모두 나물로 먹는 것인데, 두 가지 이름이 함께 붙었으니

당연히 이 식물도 식용이며, 이른 봄에 새순을 따서 나물로 무쳐 먹는다.

냉이라는 이름이 뒤에 붙은 것을 보면 확실히 냉이 쪽에 더 가깝다.

 

말냉이, 다닥냉이, 콩다닥냉이, 싸리냉이, 황새냉이, 좁쌀냉이, 는쟁이냉이, 나도냉이,

개갓냉이 등처럼 냉이가 뒤에 붙은 것들은 대부분 나물로 먹을 수 있으며, 미나리냉이는

잎이 미나리와 비슷하지만 꽃은 냉이를 닮아서 미나리냉이라고 부른다.

 

미나리와 달리 속이 차 있고 줄기도 그렇게 연약하지 않으며 키도 어른 무릎까지

올라오고, 하얀 꽃들이 무리지어 핀 것이 나물이 아니라 감상하는 꽃으로도 충분하다.

노란 꽃이 피었는지 졌는지 구분이 안된 피나물꽃의 모습

忍苦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등이 굽어버린 노거수

내 인생도 조만간 저런 절차가 오겠지.

세상사는거 참 아무것도 아닌데 왜이리 아둥바둥 사는지 모르겠다

나의 소망 / 황금찬

 

정결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리라

그렇게 맞이한 이 해에는

남을 미워하지 않고

하늘같이 신뢰하며

욕심 없이 사랑하리라

소망은

갖는 사람에겐 복이 되고

버리는 사람에겐

화가 오느니

우리 모두 소망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후회로운 삶을 살지 않고

언제나 광명 안에서

남을 섬기는 이치를

배우며 살아간다.

선한 도덕과

착한 윤리를 위하여

이 해에는 최선을 다하리라.

밝음과 맑음을

항상 생활 속에 두라

이것을 새해의 지표로 하리라.

우측의 유일사 境內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이는데 고사목으로 길을 막아놨다.

정확하게 사길령과 천제단의 정중앙 지점의 위치이고, 조금씩 고도를 높혀가기 시작한다

쉼터(06:10)

화방재에서 이곳까지의 편안한 陸山을 벗어나서 암릉구간의 대간길을 이어간다

우측의 멋진 조망이 있는 곳에는 안전 로프를 쳐놓고 가지 말라고 하는구나

그렇다고 볼것은 꼭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상 안 갈수는 없잖은가

안전로프를 넘어간다

조망바위(06:17)

태백산 정상인 장군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만약 몸뚱아리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니

나를 볼 수 없으리라

 

金剛經에서 발췌...

다시 원위치로 돌아온 다음에...

또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족보가 있는 1,273.3m봉을 만나기 위해서...

1,273.3m봉(06:20)

예전에는 없었는지 안 올라와서 못 봤는지는 몰라도 천길 낭떠러지 위에

유일사를 바라보고 있는 멋진 3층석탑이 1,273.3m봉을 外護하고 있다.

무심코 지나치면 놓치기 쉬운 멋진 봉우리이다

1,273.3m봉을 들렸다가 내려서니 유일사 쉼터가 나온다

유일사 쉼터(06:22)

오늘은 나홀로 산행이라서 아무런 부담이 없다.

쉼터에다 베낭을 벗어놓고 100m 지점 아래에 있는 유일사로 향한다

절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는갑다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바라본 유일사의 모습

 

주전인 무량수전은 맞배지붕을 하고있고 지붕 옆에는

절 만(卍)가 아닌 옴마니반메홈을 새겨놨다.

 

“옴 마 니 반 메 훔”은 현재 한국의 불교 전체 종단에서 염송하는 천수경에 나오는 진언으로

“옴 마 니 반 메 훔”은 연꽃 속의 보석이라는 뜻으로 관세음보살의 법력을 찬탄하는

관세음보살육자대명왕진언(眞言)이며 이 육자 진언을 항상 일념으로 염송하면 수승한

공덕을 짓는 것다 라고 경전에는 풀이하고 있다.

절집으로 내려가는 계단 주위에는 매발톱꽃이 많이 보인다

매발톱꽃(꽃말:우둔)

아래로 핀 꽃에서 위로 뻗은 긴 꽃뿔이 매의 발톱을 닮았다 해서 매발톱이다.

잎에는 털이 없으며, 뒷면은 분을 바른 듯 흰빛이 도는  높은 곳에서 자라고

하늘빛이 많이 도는 하늘매발톱도 있다.

 

산골짜기 양지쪽에서 자라며, 높이 50∼100cm이고, 줄기 윗부분이 조금 갈라진다.

뿌리에 달린 잎은 잎자루가 길며 2회 3장의 작은잎이 나온 잎이며 작은잎은 넓은

쐐기꼴이고 2∼3개씩 2번 갈라지며 뒷면은 흰색이고 줄기에 달린 잎은 위로 올라갈수록

잎자루가 짧아진다.

꽃은 6∼7월에 피는데, 지름 3cm 정도이며 자줏빛을 띤 갈색이고 가지 끝에서 아래를

향하여 달리며, 꽃받침은 꽃잎 같고 꽃받침조각은 5개이며 길이 2cm 정도이다.

꽃잎은 5장이고 누른빛을 띠며 길이 12∼15mm이며, 꽃잎 밑동에 자줏빛을 띤 꿀주머니가 있다.

열매는 골돌과로서 5개이고 8∼9월에 익으며 털이 나며, 꽃이 연한 노란색인 것을

노랑매발톱(for. pallidiflora)이라고 하며 관상용으로 쓰며 한국, 중국, 시베리아 동부에 분포한다.

유일사(唯一寺:06:25)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오대산 월정사의 말사로서 태백산의 백두대간 길

유일사 쉼터 아래에 있는 사찰로서 창건 유래를 보면 태백산 장군봉 아래 해발 1300m에

위치에 처음으로 1935년경 순일비구니가 수행처로 시작되어 지내다가 빈터만

남아있었던것을 1959년에 법보장  이소선(李 小仙)이라는 불자 여인이 삼성암

기도를 하던중 꿈에 원효대사와 의상스님이 바위밑에 앉아 수도하던 모습을 보고

현몽을받아 다시 불사를 일으켜 1963년에 유일사라 이름하고 이곳에서 정진했다

 

4여년에걸쳐 인법당과 산신각 칠성각 독성각등을 안치하였으며 세월이 흘러

1967년 무렵 법륜 비구니스님이  주지를 맡아 지내면서 대선스님과 함께 여러

전각들을  불사하여 최근에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잡았으며 태백지역의 유일한

비구니 사찰이라고  하는데 주전인 무량수전 뒷쪽으로 삼성각이 보인다

유일사 무량수전 삼존불

무량수전 법당에 들려서 오늘의 무사산행을 간절히 원하는 예를 

올리고 법당을 나와서 이곳 저곳을 둘러본다

유일사의 주전(主殿)인 무량수전(無量壽殿)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의 서방 극락정토를 축소시켜 묘사한 곳으로, 아미타전(阿彌陀殿) ·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하며,  극락이 서쪽에 있으므로 극락전(極樂殿)은 주로

동쪽을 향하고 있어 예배하는 이들은 서쪽을 향하게 된다.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고,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시며, 아미타불의 인계에는 9품(品)이 있다... 이는 극락에 태어나는

자들의 수준에 따라 상품(上品) · 중품(中品) · 하품(下品)으로 나누고, 다시 각각

상생(上生) · 중생(中生) · 하생(下生)으로 나눈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하품의 자세를 하고 있는데 즉, 오른손을 가슴 앞까지 들어서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왼손을 무릎 근처에 놓은 모양이다... 그러나 석가모니불의 인계를

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아미타불이 그 예이다.

후불탱화로 극락의 법회를 묘사한 극락회상도(極樂會上圖)나 극락구품탱화(極樂九品幀畵)를

걸어 극락의 정경을 보여준다.

무량수전을 참배하고 나서 지장전을 참배하려고 하는데 문이 굳게 잠겨 있다.

지장전(地藏殿)은 명부전(冥府殿) 또는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하는데 명부는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저승의 세계로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해서 시왕을 모시는데 지장보살은

삭발하고 이마에 띠를 두른 형상을 하고 있으며, 석가모니불이 입멸하고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까지, 즉 부처가 없는 시대에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살이다.

 

그는 모든 중생이 구원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이기

때문에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라 하고, 특히 가장 고통이 심한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는 데 중점을 둔다고 한다.

시왕은 저승에서 죽은 사람이 생전에 저지른 죄를 심판한다는 열명의 왕으로 사람이 죽어서

명복을 빌기 위해 지내는 재는, 죽은 날로부터 7일마다 7회에 걸쳐 지내는 49재, 또 죽은 지

100일에 지내는 백재(百齋)와 1주년과 2주년에 지내는 소상(小祥)과 대상(大祥)까지 모두 열번이다.

 

이 열 번의 근거는 사람이 죽으면 저승의 시왕 각각에게 심판을 받게 되는데, 심판을 받을 때마다

재를 올린다는 명부시왕신앙에 의한 것이다. 명부전은 지장신앙과 명부시왕신앙이 결합되어

생긴 건물이다.

유일사 지장전에는 1889년(고종 26) 제작된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 초본(; 밑그림)으로,

비구니 사찰인 태백산 유일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림에는 지옥에 떨어진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시는 도명존자·무독귀왕, 관음보살 등의

육보살(여섯 보살), 사천왕이 배치되어 있다.

 

지장보살은 연꽃 대좌 위에 앉은 모습으로 화면 중앙()에 큼직하게 묘사되어 있고,

민머리의 지장보살은 원형 두광()과 신광()을 갖추었다. 오른손은 가슴 높이로

올렸고, 왼손은 무릎 쪽에 두고 손바닥 위에 수정을 올려놓았다. 가슴에는 화려한

영락(; 구슬 장신구)을 늘어뜨렸다. 

 

지장보살 앞쪽 좌우에는 원형 두광을 갖춘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서있는데 도명존자는

민머리의 젊은 승려가 합장한 모습으로, 무독귀왕은 원유관을 쓰고 홀(笏:조선시대에

임금을 만날때 손에 쥐던 물건)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으며 지장보살 뒤쪽으로는

원형 두광을 갖춘 육보살이 좌측에 3존, 우측에 3존씩 배치되었다.

 

육보살은 보관에 화불(; 부처의 화신)을 장식한 관음보살과 경책(; 대나무 등으로 만든

납작하고 긴 막대기)을 든 대세지보살을 비롯하여 연꽃·금강저 등을 든 보살들로 구성되어 있다.

육보살 아래와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좌우로는 비파·검·용과 여의주·당(깃발)과 탑을 든 사천왕과

천자, 선인들이 자리 잡고 있고 짜임새 있는 구성과 유려한 필선이 돋보이는 불화로, 2014년

3월 7일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 초본(草本) 안내판

유일사 무이선원(無二禪院)의 모습

조그만 절집에 禪房까지 있고...비구니 사찰이라서 그런가

깔끔한 절집이 참으로 맘에 든다

법보장  이소선(李 小仙) 공덕비

유일사에 머물면서 이곳 저곳을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가야할 길이 너무 멀어서 走馬看山격으로 대충 보고는

다시 베낭을 벗어둔 쉼터로 향한다

계단에서 만난 천남성(天南星)

다시 유일사 쉼터(06:40)

베낭을 벗어둔 쉼터로 되돌아와서 물한금 마시고 다시 길을 떠난다

유일사주차장에서 이곳까지 차량이 올라오는지 트럭이 한대가 보인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유일사입구주차장:태백 05- 04:해발 1,285m↓제당골갈림길)

뫳돼지를 만나면 어쩌라고요...걍~ 그냥 가만히 있으면 지가 도망가요...

이제서야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하는 조팝나무꽃(꽃말:숙성된 사랑)

친환경적이 아닌 인공적인 냄새가 물씬나는 데크목 계단이

신령스런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에 玉에 티처럼 보이는건

나만의 생각일까

데크목 계단으로 올라서는데 짙은 정향나무의 꽃향기가 코 끝을 강하게 자극한다

등로 주위에는 붉은병꽃들이 많이 보이고, 야생화들이 자꾸만 산꾼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구나

데크목 계단보다는 훨씬 친환경적이다...등로 주위에는 앵초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올해 들어서 처음보는 앵초꽃...너무나 반갑구나

앵초(꽃말:행운의 열쇠, 가련)

꽃이 마치 앵두나무 꽃처럼 생겼다고 해서 앵초라고 하며, 오랜 옛날부터 약초와 향신료로

다양하게 사용되어 별칭도 많다... 영국에서는 ‘베드로의 꽃’, 스웨덴에서는 ‘오월의 열쇠’,

프랑스에서는 ‘첫 장미’, 독일에서는 ‘열쇠 꽃’, 이탈리아에서는 ‘봄에 피우는 첫 꽃’이라고 한다.

또 영어로는 ‘카우스립’으로 소똥이란 뜻인데, 이는 소가 똥을 눈 곳에서 잘 피기 때문에 붙여졌다.

 

앵초는 산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배수가 잘되고 비옥한 토양의 반그늘에서

잘 자라며, 키는 10~25㎝ 정도이고, 잎은 타원형이며 길이는 4~10㎝, 폭은 3~6㎝이다.

잎에는 가는 섬모가 있고 표면에 주름이 많이 지고 가장자리가 얕게 갈라지며 뿌리에 모여

있고 꽃은 홍자색으로 4월에 피며 줄기 끝에 7~20개의 꽃이 옆으로 펼쳐지듯 달린다.

열매는 8월경에 둥글게 맺는데, 지름은 5㎜ 정도이다.

 

앵초과에 속하며, 우취란화, 깨풀, 연앵초라고도 한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어린순은 식용,

뿌리를 포함한 전초는 약용으로 쓰이는데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동북부, 시베리아 동부에

분포하고, 일본에서는 앵초의 자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품종이다

예전에는 사길령에서 천제단에 祭를 지내기 위해 제물을 지고갔던 이 길

범여는 제물이 아닌 베낭을 메고 느릿느릿 뚜벅이 걸음으로 정상을 향한다

쉼터(06:53)

태백산도립공원이었때는 없었던 하지말라고하는 많은 문구가 눈에 거슬린다.

늘공들은 민초들에게 가르쳐 들려하는 저 자세가 참으로 못마땅하다.

이 나라의 민초들은 어공이나 늘공...정치하는 나부랭이들보다 훨씬

법을 잘 지키고, 질서 의식이 높다는걸 알기나 하요 

온탕과...

냉탕을 지나 천천히 천제단으로 향하는 길

날씨도 좋고, 꿀맛같은 맑은 공기...

오늘의 산행지 선택은 신의 한수같은 느낌이다

근데 이게 누구신가...새색시처럼 다소곳이 피어있는 연영초를 만난다

연영초(꽃말:그윽한 마음)

수명을 연장해 준다고 해서 이름 붙혀진 연영초...학명 트릴리움(trillium)은 꽃잎과 잎이

모두 세 장인 데에서 유래되었으며, 경상북도 특히 울릉도와 강원, 경기 이북의 산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그러나 최근 지리산에서도 군락지가 발견되어 서식지가

남부 지방까지 확대되었다.

 

주변습도가 높거나 개울가 반그늘 혹은 음지의 부엽질이 풍부한 곳에서 잘 자라며, 키는 20~40㎝

정도이고 굵고 짧은 뿌리줄기에서 원주상의 대가 자라나서 끝에 잎자루가 없는 잎이 나온다.

잎 끝은 짧게 뾰족하고 밑은 약간 둥글다. 또 잎의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뒷면에 작은 돌기가

있으며 잎의 길이와 폭은 각 7~17㎝이고, 줄기 끝에 3개 잎이 돌아가며 나며, 잎이 아주 커다란

것이 특징이다.

 

꽃은 5~6월에 꽃줄기 끝에 1개가 비스듬히 위를 향해 피며, 길이는 4~6㎝이고 꽃받침조각은

3개이며 긴 타원형으로 길이는 2.5~3.5㎝...꽃잎도 3개이며 타원형으로 끝이 둔하고 길이는

3~4㎝이고 열매는 7~8월경에 둥글게 달린다.

 

백합과에 속하며, 연령초, 왕삿갓나물, 큰꽃삿갓풀, 큰연영초, 큰연령초, 연령초라고도

하며 관상용으로 쓰이며, 식용, 약용으로도 사용되고 우리나라와 중국 북동부,

시베리아 동부, 일본, 캄차카에 분포한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제당골갈림길:태백 05- 04:해발 1,285m↓유일사입구주차장)

쉼터(07:05)

박새도 슬슬 꽃을 피우기 위해 워밍업을 시작하는구나.

토사유출을 막기 위함인가..예전에 없었던 돌길들이 많이 보인다

메기처럼 주둥이를 내민 너

너 이름이 벌깨덩굴이라 했제

 

꽃입술이 짙어지며

속삭이는 蜜語들은

 

저 만치에 그리움만 두고

무심코 나만 바라보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태백산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朱木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장군봉 쉼터(07:12)

정상이 가까워지는지 간간히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객을 만난다

천제단을 가면서 만나는 朱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나는 왜이리 자꾸만 쪼그라드는지...가는 세월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철쭉들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만경사 갈림길(07:18)

만경사로 가는 길인데 이정표에는 만경대라 표기를 해놨다.

만경사는 태백산 정상인 장군봉 아래에 있는 산으로 태백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일(一)자형으로 지어진 산사가 독특하며 신라 진덕여왕 6년(652)에

태백산 정암사에서 말년을 보내던 자장율사가 문수보살 석상을 모시기 위해 지은 암자로서

찰 앞에는 물맛 좋기로 유명한 용정(龍井)과 그 옆에는 단종비각(端宗碑閣)이 있다.

만경사 주변 지도

만경사(사진 - 펌)

만경사는 태백산 정상인 장군봉 아래에 있는 산으로 태백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절집으로, 일자형으로 지어진 산사(山寺)가 독특하며 신라 진덕여왕 6년 태백산

정암사에서 말년을 보내던 자장율사가 문수보살 석상을 모시기 위해 지은 암자로서

사찰 앞에는 물맛 좋기로 유명한 용정과 그 옆에는 단종비각이 있다.

용정(龍井: 사진 펌) 

하늘아래 첫 샘물 "태백산 용정(太白山 龍井)"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 태백산 망경사 입구에는 용정(龍井)이란 우물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샘물이자 가장 맛있는 물로 명성이 나있는 명수다.

땅속에서 쉬고 있던 용이 하늘로 오른 자리에 물이 솟았다하여 용정이라 하고

이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태백산 천제단 바로 밑 9부 능선인 해발 1470m에서 솟는 용정은 가뭄, 홍수 등

기상여건이나 계절 변화에도 수량이 변하지 않는 신비한 샘물로 알려지고 있는데,

특히 동해  바닷물과 연결된 성스러운 물길로 용왕국과 연결돼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용정의 물은 매년 10월 3일 개천절이면 천제단(天祭壇)에서 지내는 천제(天祭)의

제수(祭水)로 이 물을 올리고 있으며, 샘에다 용각(龍閣)을 짓고 용신(龍神)에 제(祭)를

올리어 용정(龍井)이라 부른다

단종비각(端宗碑閣)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지에서 열일곱살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은

조선 6대왕 단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비각 안 비석에는 ‘조선국태백산

단종대왕지비’(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라고 적혀 있으며, 단종이 죽어서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 옆에는 ‘단종애사(端宗哀史)’를 기억하게 하는 ‘단종비각’이 세워져 있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은 조선 6대왕 단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비각 안 비석에는 조선국태백산단종대왕지비

(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라고 적혀 있다.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이 영월에 유배오자 호장(戶長:예전에 고을 아전(衙前)

맨 윗자리레맀는 사람)이 태백산의 머루, 다래를 따서 자주 진상(進上)하였는데 어느 날

진상차 영월로 가는 도중 곤룡포차림으로 백마를 타고 태백산으로 오는 단종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묻자 나는 태백산으로 가느니라 하고 사라져 버렸다.

호장이 영월 땅에 도착해 보니 단종이 그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로부터 단종이 승하한 뒤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다고 전해지게 되었고 그 후 주민들이 의논하여

단종의 영혼을 위로하고 산신령으로 모시기로 하여 매년 음력 9월3일 제를 지내고 있다. 

비각 내에 안치된 비석의 전면에는 조선국태백산단종대왕지비(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라

각자(刻字)하였으며, 비각의 전면에는 “단종비각”(端宗碑閣)이라 쓴 현판이 걸렸으며 탄허스님의

친필로 알려지고 있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유일사입구주차장:태백 05- 06:해발 1,520m↓제당골갈림길)

완만한 등로를 따라서 올라서니 주위에는 군락을 이루고 있는 눈개승마가 많이 보인다

눈개승마꽃(꽃말:여인의 독설, 산양의 수염)

장군봉 아래 주목군락지(07:21)

어느 산이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여름 태백이 주는 느낌은 겨울의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데,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色感이 아닐까.

겨울 태백이 고결한 순백(純白)의 옷을 입고 성자(聖者)처럼 서 있다면, 여름의 태백은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화사한 차림의 미인이 등산객들을 유혹하는 모습이다.

 

태백산이 저마다의 색을 다투어 드러내는 야생화의 천국이라는 의미, 알고 보았더니

태백산은 각희귀식물의 남방한계선 그리고 많은 야생화의 북방한계선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정상부 능선은 물봉선, 이질풀, 동자꽃 등이 저마다의 색을 다투어

드러내는 야생화의 천국이라는 의미... 알고 보았더니 태백산은 각종

희귀식물의 寶庫로 여름 태백의 또 다른 역할을 발견한 셈이다.

빈마음,

그것을

무심(無心)이라고 한다.


빈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법정스님의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

박새(꽃말:진실, 명랑)

봄철에 경북 북부지역과 강원도의 높은 산에 잎이 큰 식물이 간혹 보이는데

이름하여 박새이다...박새 잎은 유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절대 식용해서는

안되며, 해마다 매스컴에서 유독식물을 구분할 때 제일 많이 나오는

식물이 박새이다.

 

박새는 우리나라 각처의 깊은 산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반그늘이 지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며, 키는 약 1.5m가량까지 크며, 잎은 어긋나며 모양은

타원형으로 잎의 가장자리에 털이 많이 나 있고, 세로로 주름이 진다.

잎이 큰 것은 길이 30㎝, 폭 20㎝이상 자라는데, 잎맥이 많으며 주름이 져있고,

뒷면에 짧은 털이 있다.

 

백합과에 속하며 같은 백합과에 속하는 여로의 잎과 세로로 주름이 진 것, 밑둥에서

올라오는 것이 비슷하긴 하나 박새의 잎이 좀 더 넓으며, 박새 꽃은 연한 황백색인데 반해

여로는 꽃이 자줏빛이 도는 갈색이다.

 

꽃은 6~7월에 피며, 지름이 2.5㎝ 정도 되고 안쪽은 연한 황백색, 뒤쪽은 황록색이고,

9~10월경에 타원형 열매가 달리며, 열매의 길이는 2㎝ 정도이고 윗부분이 3개로

갈라지며, 묏박새, 넓은잎박새, 꽃박새라고도 한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흐드러지게 핀 철쭉을 자주 만난다.

우리나라의 산에서 가장 철쭉이 늦게 피는곳이 태백산인듯 싶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 했던가 정상가는 길에는

죽어서도 도도함을 잃지않고 있는 주목이 산길을 지키고 있다.

뒤돌아보니 태백산의 명성에 가려져 있는 함백산(右)과 운탄고도(左)로 

이어지는 좌측 능선에는 풍력발전기가 보이는데, 맑은 날씨이긴 하지만

遠景으로 보이는 산줄기는 흐릿하여 아쉽기만 하다.

 

함백산(1.572.1m)이 태백산(1,566.7m)이 훨씬 높지만 태백산이 국립공원으로

편입되면서 함백산이 아닌 태백산국립공원으로 편입되어 버렸다.

태백산이 민족의 靈山이라는 신령스런 산 때문이긴 하지만 늘 동생에게

양보만 하는 형님처럼 보이는 함백산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이 밀려오는구나.

이동통신탑(07:33)

이동통신탑을 지나자마자...

태백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장군봉(1,566.7m)에 도착한다

태백산 장군봉(將軍峰:1,566.7m:07:07:35)

천제단 중 가장 위에 있는 장군봉의 장군단은 남쪽에 계단이 있는 석단으로

천왕단과 거의 비슷한데 천왕단 상부에 있는 4각 제단이나 비석 등은 없다.

 

천왕단 남쪽의 숲 속에 위치한 단은 특별히 지칭하는 이름이 없고 소박한 인상을

풍기는 단아한 제단으로 제단을 세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부족국가시대부터

이곳에서 천제(天祭)를 지냈다고 전해지는 것을 보면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고려, 조선을 거쳐 일제시대까지 이곳에서 천제를 지내고 그 의식이 아직도 이어져

매년 개천절에 하늘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국가의 태평과 안정, 번영을 기원하는 동제의

장소로 이어지고 있으며, 나라를 지키다 순절한 장군(사람)들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태백산은 신라의 삼산오악(三山五嶽) 중 북악에 속하는 산으로 신령시 하여 주산(主山)으로

삼고 왕들이 이 곳에 올라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  신라의 삼산오악(三山五嶽)은 이름난 산을 말하는데, 삼산은 나력산(奈歷山, 국가의

   대소사(大小事)를 신령께 고하던 곳), 혈례산(穴禮山, 왕이 묻혔던 고분의 산), 

   골화산(骨火山, 왕족들의 무덤을 모신 산)으로 현재의 지명이 일부 불분명하나 오례산이

  있는 청도 오례산이 혈례산으로 추정되고, 혈례산을 경주 건천읍 단석산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신라시대 오악은 토함산(동악), 계룡산(서악), 지리산(남악), 태백산(북악), 팔공산(중악)을

  지칭하고, 참고로 우리나라 오악은 금강산, 묘향산, 지리산, 백두산, 삼각산(북한산)이다

태백산(太白山 天祭壇)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제단으로

태백산 정상에 있는 천왕단(天王壇)을 중심으로 한 줄로 놓여 있으며, 북쪽에는

장군단, 남쪽에는 하단(下壇)이 있고, 제단을 세운 시기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장군단(將軍壇)은 천왕단에 북쪽으로 300m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제단으로

태백산에서 가장 높은 장군봉에 있으며 천왕단보다는 규모가 작은 편이며,

3m 남짓한 높이로 자연석을 쌓아 남쪽으로 직사각형으로 단(壇)을 조성하였으며

내부에는 자연석을 쌓아 만든 사각 제단이 있고, 제단 위에 자연석이 비석처럼

세워져 있는데, 장군단은 어떤 장군을 지칭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인증샷

천제단 가는길

민족의 靈山인 태백산 우측 천평리 계곡에 있는 공군 폭격기 훈련장.

민족의 영산 아래에 있는 공군 폭격기 훈련장이 눈에 조금 거슬리기는

해도, 저 곳에 훈련장을 만든 건 국가의 安危를 위한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저곳은 6.25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 빨치산과 토벌대의

유격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곳이 아닌가.

 

선조들이 흘린 피땀으로 인해 우리는 이렇게 잘먹고 잘사는데

작금에는 그걸 망각하고 이 나라의 根幹을 부정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늘도 서울시내의  노동단체들의 집회에서 외쳐대는 구호들도

그렇고, 최근에 전라도의 모지역에서 국회의원 보권선거에

당선된 진보단체의 국회의원이 쏟아낸 국가를 부정하는 듯한

망언들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이 나라를 지켜낸  분들은

저승에서 어케 생각할까...

 

사람들은 뿌리를 모르고 살면 인간이 아니다.

그러기에 집안에는 족보가 있고, 나라에는 건국의 역사가 있다

예전에 기독교의 모 단체에서 전국의 초등학교 교정에 세운 단군상을우상숭배라고 하면서 홰손한 사례들이 많았는데, 신화이건 뭐건간에나라에서는 건국 신화를 개천절이라는 기념일을 만들어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내기 지금 걷고있는 이곳 태백산이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이 있는 곳이고

단군이 세웠다는 고조선(古朝鮮)의 건국 신화를 기리는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오늘은 건국 신화의 根幹인 弘益人間의 의미를 생각하며 길을 걷는다

태백산의 역할로 치면 물(水)과 불(火)을 빼 놓을 수 없다.

태백산(영역 개념 : 여기서의 영역이라 함은 함백산을 지나 매봉산까지를 포함한다)은

한강의 발원지,낙동강의 발원지 그리고 동해로 흘러가는 오십천의 발원지를 품고 있으며,

한 때 이 땅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불(석탄)로서 산업역군의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상호 극단적으로 모순된 두 객체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곳이 바로 태백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태백산 천제단에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물론 민족의 화합을 기원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태백제비꽃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올 즈음에 핀다고 해서 이름 붙혀진 제비꽃

우리나라 전역에서 60여종의 제비꽃이 자생하고 있는데 이 제비꽃은

태백산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해서 태백제비꽃이라 부르는데

얼핏보면 졸방제비꽃과 비슷하게 보인다

태백산은 철쭉이 가장 늦게 피는 곳으로, 정상 부근에 철쭉군락지가 많다.

태백산 철쭉제는 6월 초순에서 중순 사이에 개최된다고 한다

장군봉을 출발한 지 5분만에 태백산의 주봉 역할을 하는 천제단에 도착한다

태백산은 일찌기 신라 삼산오악(三山五岳) 중 진산인 북악(北岳)으로 여겨 나라에서

제사한 기록이 『삼국사기』 제사조에 전하며, 『고려사』에도 무녀(巫女)가 참여하여

제의를 행한 기록을 전하고 있다.

천왕단에서 바라본 낙동정맥(맨 뒷쪽)과 육백지맥(앞쪽) 능선의 모습

좌측으로는 고랭지 배추로 유명한 백두대간상의 비단봉과 매봉산(천의봉)이

보이고, 맞은편의 태백시 너머로 연화산, 백병산...우측의 높은

봉우리로는 부쇠봉의 좌측에 있는 문수봉인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흐릿한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천제단 천왕단(天祭壇 天王壇:1,561.7m:07:42)

천제단(天祭壇)은 태백산 정상에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3기의 제단 가운데 하나로,

장군단과 하단의 중간에 있는 해발 1,561.7m의 봉우리에 위치한 중심 제단으로

천제단은 규모 면에서 여느 단과 달리 월등히 크며, 아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 태백천왕당(太伯天王堂)· 신사(神祠)·태백산사(太白山祠)·

천왕당(天王堂)·태백신사(太白神祠)· 태백사(太白祠)·천왕사(天王祠)·태백당(太白堂)·

구령탑등으로 일컫기도 하였다.

 

태백천왕당·천왕당·천왕사·구령탑이라는 명칭은 모시는 신령(神靈)을 모두 천신(天神)·

천왕(天王)으로 보는 호칭이며,구령탑은 천(天)의 9개 분야(分野)인 구천(九天)에서 유래한다.

 

신사(神祠)·태백산사(太白山祠)·태백신사(太白神祠)·태백사(太白祠)는 태백산의 신령을

위하는 사당이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후대에 일부에서 부르는 마고탑은 태초(太初)에

천지를 이룩한 거인 할머니가 쌓은 탑이라는 의미로서 천지가 시작된 공간임을 암시하며

1736년에 쓴 이인상(李麟祥)의 「유태백산기(遊太白山記)」에 당시 태백산 천왕당(天王堂)에

대하여 소개되어 있다.

태백산 정상 천제단 천왕단에 한배검은 대종교에서, ‘단군’을 높여 부르는

말로서 태백산 천제단에 붉은 글씨로 씌어있는 한배검은 단군의 다른 말이다

 

삼국사기》에 왕이 직접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신라 때 오악(五嶽) 중 북악인 태백산에서 봄,가을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와 조선시대 때 백성들이 천제를 지냈고, 일제강점기 때는 독립군들이 제사를 지낸

역사적인 장소로, 1991년 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된 천제단은 태백시에서는 매년

개천절에 태백제를 개최하고, 천제를 올리고 있다.

 

태백산은『삼국사기』를 비롯한 여러 기록에서 신산(神山)으로 섬겨져 제천의식의

장소가 되었음을 밝히고 있는데, 천제단 역시 이런 제를 올리기 위해 만든 제단이다.

 

 천왕단은 2m 남짓한 높이로 자연석을 쌓아 남쪽으로 계단을 조성한 원형제단으로

그 위에 4각 시멘트제단과 대종교에서 단군을 모신 장소로 성역화하는 과정에서

 세운 것으로 알려진 비석이 있다.

 

1949년 조사기록에 의하면 당시에는 석단이 9층을 이루었기 때문에 ‘구단탑’이라고

하였으며 중앙에 태극기를 꽂고, 그 주위에 무속신들을 상징하는 각종 기를 세웠다고 한다.


이 세 개의 단이 삼제사상에 기초해 있으며 즉 하늘의 뜻을 받들고 땅(자연)을 

경외하며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의 고백이 담겨 있는 것으로

다시 말하면 태백산은 백두대간이 상징하고 있는 생명사상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상생과 조화로운 삶을 향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산이다 

실제 태백산의 정상부에 서면 주변 조망을 통해서도 신성함을 느낄 수 있다.

 

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다)! 사방에 막힘이 없으니 민초들이 충

분히 신성시할 만한 地德을 품고 있는 자태인데 이중환은 자신이 저술한

택리지(擇里志)에서 태백산을 일러“...기이한 곳…가끔 선인들의 이상한 유적이

전해온다”라고 하여 태백산의 신성함을 언급한 적이 있으며, 고려 시대 유명한

문신 안축(安軸:1282~1348)은 ‘태백산에 올라(登太白山)’를 통해 “…몸이 구름을

쫓아가니 내가 학을 탄 것인가(身逐飛雲疑駕鶴)” 라고 노래하면서 태백산의

신비함을 힘주어 강조한 적이 있다.

이름에서도 신성함을 감지할 수 있는데, 태백산이란 크게 밝다는 뜻이다.

‘한밝달’이라는 의미로 이는 ‘한박달’→'한백달을 거쳐 '한배달'로 변화되어 결국

 한민족, 한겨레라는 말로 변화되며, 크게 밝다는 태백산이 곧 우리 겨레를

나타내는 말이다.

 

천제단의 유래, 정상부에서의 조망 그리고 태백의 뜻 등 모두는

우리가 태백산을 신성시해야 하는 이유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유들은 여름 태백이라고 해서 겨울 태백과 달라질 특별한 근거도 없다.

 

* 안축(安軸:1282~1348)은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밀직사지사 ·첨의찬성사 ·

  정치도감판사 등을 지냈으며,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3조(朝)의 실록(實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경기체가(景幾體歌)인 《관동별곡(關東別曲)》

 《죽계별곡(竹溪別曲)》을 남겨 문명(文名)을 날렸던 인물이다

태백산(太白山:1,561.7m)은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과 영월군 상동읍

걸쳐있는 산으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장군봉(1,566.7m)이지만

실질적인 주봉은 천제단이 있는 천왕단(1,561.7m)이 하고 있는데

태백산이란 커다란 표시석도 이곳에 있어 이곳 천왕단이 주봉임을 느끼게 한다

 

태백산에 대한 기록은 여러 고문헌과 고지도에서 볼 수 있는

『삼국유사』에는 "태초에 하늘나라 환인의 아들인 환웅천황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를 열어 우리 민족의 터전을 잡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삼척부 서쪽 120리에 있다고 했고

신라 때는 북악(北岳)이라 하여 중사(中祀)에 기재되어 있다."고 기록되었다.

 

그 부드러움과 조화로움이 흐르는 영봉 정상의 한 가운데 천제단(天際檀)이

있으며 이곳에서 우리 민족은 예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했으며,

<동국여지승람>은 "태백산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태백산은 백두산으로부터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그리고 청옥산과 두타산을

지나며 뻗어 내려온 백두대간의 맥이 크게 용트림한 산으로 다른 산들과 달리

태백산의 주능선 일대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평평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부드러운 능선으로 마치 하늘과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움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태백산은 우리 민족의 이름이 된 산으로 태백산(太白山)은 '크게 밝은 산'이라는

의미로  '크게 밝은 산'의 순우리말은 '한밝뫼' 또는 '한밝달'로 '한밝달'이 '한백달',

'한배달'로 전음되어 '한민족' '배달민족' 같이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이름이 된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제사 지내던 산을 '밝은 산'(白山)이라고

부르며 숭앙했는데. '밝은 산' 중에서 '가장 크게 밝은 산'이 바로 '태백산'이다.

천제단의 좌측으로 내려서면 단종비각과 물맛이 좋다고 소문난 용샘(龍井)과

망경사를 거쳐서 당골로 내려가는 곳이다.

 

登太白山  / 安 軸

直過長空入紫煙(직과장공입자연)     

허공에 곧추올라 안개속을 돌아드니

 

始知登了最高(시지등료최고전)

이제 더 오를 곳 없는 산마루임을 깨닫네

 

一丸白日低頭上(일환백일저두상)

둥근 해는 머리위에 나직하고

 

四面群山落眼前(사면군산락안전)     

주위 뭇 산봉우리가 눈아래 내려 앉네

 

身逐飛雲疑駕鶴(신축비운의가학)     

구름따라 몸이나르니 학의등에 올라탄듯

 

路懸危磴似梯天(로현위등사제천)       

돌층계 허공에 걸렸으니 하늘사다리인가

 

雨餘萬壑奔流張(우여만학분류창)      

비개인 골짜기에 시냇물 내달리고

 

愁度榮回五十川(수도영회오십천)     

구비치는 오십천에 수심을 띄우나니

 

안축의 근재집(謹齋集) 제1券에서 발췌

태백산 정상은 지리산 천왕봉과 함께 산의 氣가 가장 쎈곳으로 한의사들이 氣를

받기위해 즐겨 찾는 곳으로 태백산의 역할로 치면 물(水)과 불(火)을 빼 놓을 수 없다.

태백산(영역 개념 : 여기서의 영역이라 함은 함백산을 지나 매봉산까지를 포함한다)은

한강의 발원지, 낙동강의 발원지 그리고 동해로 흘러가는 오십천의 발원지를 품고 있으며,

한 때 이 땅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불(석탄)로서 산업역군의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상호 극단적으로 모순된 두 객체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곳이 바로 태백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태백산 천제단에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물론 민족의 화합을 기원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천제단에 선다.

고치령에서 출발한 후 갈곶산에서 이 땅의 형성 원리를 이야기한 것도,

선달산에서 우리 민족의 DNA를 강변한 것도, 박달령에서 국가명 및 이념

등을 풀어논 것도 모두 여기 천제단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룡산에서 하늘 길을 본 것도, 곰넘이재에서 祭官을 불러낸 것도,

신선봉에서 神官을 찾아낸 것도 이곳의 천제단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높은 산을 보면서 지고신을

감지해 왔는데 이러한 지고신을 만날 수 있는 곳, 우리민족의 지도자가

태어난 곳 또한 여기 태백산 천제단 즉 신성한 곳이다.

천제단에 맑은 기운을 받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철쭉꽃의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잠시후에 오를 부쇠봉 좌측으로는 20여년쯤에 걸었던 문수봉이 여인의 乳頭처럼

볼록하게 솟아있다.

 

문수봉(文秀峰:1,514.9m)은 

강원도 태백시와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에 걸쳐 있는 태백산의 한 봉우리로

문수봉은 천제단 ,주목군락, 일출, 황지, 검룡소, 구문소, 용연동굴과 함께 태백 8승이라

불리며, 천제단에서 문수봉으로 가는 길에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오늘 내가 걸어가야 할 대간 능선이 나를 부른다

신선봉과 구룡산, 옥돌봉과 선달산 너머의 양백지간인

소백산은 遠京이라 잘 보이지가 않는구나.

천제단을 내려서니 완만한 능선 끄트머리에 부쇠봉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대간길에서 벗어나 있는 문수봉이 보인다

천제단 하단(下壇:07:48)

천제단의 중심인 천왕단에서 300m 정도 아래에 있으며 땅(地神)에게 제사를 지낸

곳이라는데 장군단, 천왕단, 하단 세 개의 제단을 통틀어 “천제단”이라 한다

 

천제단의 하단은 옛 사람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설치한 3개의 천제단중에 하나로

천왕단으로부터 남쪽 300m 지점에 위치하는데, 천왕단과 장군단에 비해 규모가 훨씬 적다

정확한 이름을 알 수가 없어서 하단이라고 부르는데, 하단은 산간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적석단보다 약간 큰 제단이지만 현재는 그 기능을 잃어 버렸다고 한다 

천제단 하단 안내판

하단이란 명칭은 아마도 사찰에서 따온듯 한데 대웅전에는 상단, 중단, 하단이

있는데 중앙에 삼존불을 모셔논 곳을 상단이라 하고, 좌측의 신중님을 모신 곳을 중단,

우측에 영가의 위패가 봉안된 곳을 하단이라 한다

하단 바로 아래에는 통훈대부겸 병조참판을 지낸 밀양박공의 묘지가 있고

그 위에 하단의 제단이 있는데 병조참판이면 조선시대 종이품 벼슬이었으니

요즘의 직제로는 국방부 차관쯤에 해당한다 

태백산의 하단 옆에는 이제서야 야광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산에서 등산객을 만날 수 없는 호젓한 길을 홀로 걸어간다

올해 처음으로 이곳에서 꽃쥐손이를 만난다

 

꽃쥐손이(꽃말:새색시)

꽃쥐손이는 쥐손이풀의 한 종류로 잎 모양이 쥐 발바닥처럼 갈라져 이런 이름이 붙었지만,

꽃은 모양이 아주 예쁘구나... 쥐손이 종류는 아주 많은데, 그중 꽃쥐손이가 가장 예쁜 꽃을

피우므로 꽃쥐손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생각되며 털쥐손이라고도 부른다

 

꽃쥐손이는 고산지역의 산 중턱 이상에서 나는 여러해살이풀로, 햇볕이 잘 드는 곳이나

반그늘의 토양에 유기질 함유량이 높고 물 빠짐이 좋은 곳에서 잘 자라며, 키는 30~50㎝이다.

태백산은 특히 우리 생활과 문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단군신화에 대한 시원이 된 영산(靈山)이 바로 태백산이고 정상의

천제단은 고대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지금도 매년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장소적으로도 낙동강과 한강의 발원지가 있으며,

생활공간을 구분하는 정신·문화사적으로 나뉘는 권역이기 때문이다.

설악산 권역의 고산 위력을 일정 부분 이어받은 태백산 권역은 북방계

식물 가운데 특별히 귀한 종들이 이곳까지 내려와 서식하는 특징도 보인다. 

 

금대봉까지 내려와 자라는 대성쓴풀과 개병풍, 함백산까지 내려와서 자라는

분홍바늘꽃과 노랑투구꽃, 태백산까지 내려와 자라는 좀미역고사리, 찝빵나무,

숲바람꽃, 한계령풀 등이 태백산 권역을 중심으로 분포의 남방한계를 이루는 식물들이다.

태백산에는 천연기념물 주목 외에도 분비나무, 잣나무 등 고산성 침엽수가 분포하고 있다.

이런 침엽수들은 해발 1,400m 이상의 고지대에 주로 자란다. 군데군데 자라는 이런 침엽수

사이에 사스래나무, 신갈나무, 마가목, 함박꽃나무 같은 큰키나무들이 섞여 있다.

갈림길(07:56)

이정표(↖문수봉 2.1km ↗백두대간 ↓천제단 0.5km, 백두대간)와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제당골갈림:태백 20- 03:해발 1,497m↓유일사입구주차장)이

 있는 갈림길...트랙상의 대간 능선은 직진이나 길이 전혀없고, 우측의 대간길로 가면

부쇠봉을 거치지않고 깃대배기봉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는 문수봉 가는 길인데

중간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부쇠봉으로 가는 길인데 좌측으로 향한다

고사목 뒷쪽으로 트랙상의 대간길이나 등로가 전혀없다.

태백상에서 가장 멋진 朱木...뷰포인트로는 최고이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문수봉 갈림길(08:04)

문수봉이 좌측으로 1.8km라...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어 포기하고 부쇠봉으로 향한다

화방재에서 이곳까지 좌,우가 온전히 강원도였는데  여기서부터는 좌측은 태백시 소도동에서

경북 봉화군 석포면으로 바뀌지만, 우측은 영월군 상동읍과 계속 같이간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제당골갈림길:태백 05- 09:해발 1,534m↓유일사입구주차장)

문수봉 가는 길과 헤어져 0.1km 지점에 있는 부쇠봉으로 향한다

헬기장(08:06)

헬기장에서 바라본 천제단과 장군봉의 모습

부쇠봉에서 태백산을 바라보니 태백산의 정상부의  모습에 신성함을 느낄 수 있다.

천제단과 장군봉은 영락없는 어머니의 두 가슴이었고,두 봉우리에 쌓은 제단은 영락없는

젖꼭지였다...태백산은 두 가슴으로 배달민족을 길러냈던 것이다.

헬기장에서 잡목을 헤치면서 부쇠봉으로 향한다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헬기장에서 迷路처럼 걷다보니 부쇠봉에 도착한다

부쇠봉(扶蘇峰:1546.5m:08:08)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과 경북 봉화군 석포면 경계에 있으며 천재단이 있는

태백산 정상과 문수봉사이의 가운데 있는 산으로 정상석은 부쇠봉으로 되어 있는데

봉우리 근처에 차돌이 많이 있어 부싯돌(부쇳돌)을 사용한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고, 단군의 둘째 아들인 부소왕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천제단이 단군을 제를

지내는 장소라면 그 아래 산봉우리가 아들의 것일 것이고  전하는 말에는

부소왕(扶蘇王)이 구령탑을 쌓은 곳이라고 한다

 

우리 민족에게 불을 가져다주었다는 부소. 부싯돌의 어원이 扶蘇石이니 火(석탄)山인

태백산에 부소봉이 있는 것은 참으로 절묘한 이치이긴 하지만 부소 또한 단군의 둘째

아들이라는 점에 더욱 관심이 간다...부소는 천제단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인증샷

단군 신화에 의하면 시조 단군(壇君)에게는 부루(扶루), 부소(扶蘇), 부우(扶우),

부여(扶餘)등 4명의 아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중에 둘째 아들의 이름을 따서

(扶蘇峰)이라고 하였다고 한다...부소는 태백산의 신기(神氣)의 중심에 있는 

신화속의 인물로 특히 불을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단군(壇君)은 단군왕검(壇君王儉)·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고도 하며,

천제(天帝)인 환인(桓因)의 손자이며, 환웅(桓雄)의 아들로 서기전 2333년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하였다.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위서(魏書)』와 우리 나라의

『고기(古記)』를 인용한『삼국유사』기이편(紀異篇)을 들 수 있다.

반면에 정사인『삼국사기』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 대비된다.

 

한편, 고려시대의 기록으로 이승휴(李承休)의『제왕운기(帝王韻紀)』가 있으며,

이와 비슷한 내용이 조선 초기의 기록인 권람(權擥)의『응제시주(應製詩註)』와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나타나고 있다.

부쇠봉 정상의 삼각점 표지판

부쇠봉 정상 2등 삼각점(△태백 24 / 2004 복구)

철쭉 터널을 지나서 깃대배기봉으로 향하는데...

산함박꽃도 꽃몽우리를 드러내고 있다.

부쇠봉 전망대(08:11)

부쇠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백천계곡의 모습

좌측으로는 문수봉이 시원스레 보이고 그 아래의 깊은 계곡이 백천계곡이다.

좌측으로는 봉화군의 오지중에 오지인 석포면에 있는 조록바위봉과 달바위봉,

그 앞이 진대봉, 우측에 높은 산이 유명한 봉화의 청옥산이고 깊은 계곡이 

백천계곡이다

 

백천계곡(白泉溪谷)은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에 낙동강 최상류에 있는

계곡으로 태백산에서 발원하는 병오천에 있는 계곡물이 맑기로 유명해 백천(白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태백산을 비롯하여 연화봉(1,052m), 청옥산(1,276m), 조록바위봉(1,087m)

등의 높은 산에 폭 감싸여 있어 계곡의 물이 맑고 수온이 낮고 물이 맑으며 수온이 낮아 같은

위도상에 있는 다른 지역에서는 서식하지 않는 열목어가 산다.

 

열목어가 사는 세계 최남단 지역으로, 열목어의 남방한계선인 셈이다.

열목어는 빙하시대에 살던 어족으로 눈이 붉고 몸통은 은빛이며 눈사이, 옆구리,

지느러미 등에 붉은색의 작은 무늬가 있는 세계적인 희귀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공해에 민감한 어족으로 물 속에 산소가 충분히 녹아 있어야(산소함량 10ppm)

살 수 있는 어종으로 이렇게 까다로운 환경에서만 서식하는 열목어가 백천계곡에 있다.

우측의 앞에 보이는 능선이 지난해 5월에 걸었던 운곡(신산경표상:각화)지맥인데

왕두산과 각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그리 멀지도 않은데 흐릿하기만 하다

부쇠봉 전망대에서 잠시 머물다가 출발하자마자 천제단 하단에서 갈라진 길을 다시 만난다

현불사 갈림길(08:13)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 위치한 현불사는 불승종의 총본산으로 1980년에 조성되었으며,

생소하지만 불승종은 설송이라는 승려가 1965년 창종했다고 한다...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는 약수가 나오는 호국정을 비롯해 산식각, 불광전, 설법전, 불광루 등이 갖춰져 있다.

불승종 신도가 아니면 출입이 불가능할 수 있으니 사전에 방문이 가능한지 여부를 문의해야

하며 현불사를 끼고 있는 백천계곡은 단풍이 유명하다고 한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부쇠봉:태백 24- 01:해발 1,524m↓깃대배기봉)

이곳부터 곰넘이재 까지는 나홀로 호젓하게 걸어야 할 듯 싶다.

초록색 카펫을 깔아논 듯 한 등로에서 나오는 맑고 상쾌한 공기가 너무 좋다.

고도차가 크게 없는 대간길 능선을 오랫만에 발이 호강하면서 편하게 걷는다

우측의 천평계곡 공군 폭격기장의 경고판이 보인다

청옥산 갈림길(08:17)

청옥산(靑玉山 1,276.5m)은 백두대간의 태백산에서 내려온 깃대배기봉에서 동남으로

분기한 능선상에 높게 치솟아 있는 산으로 청옥산은 국유림 시범지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청옥산 자연휴양림단지가 있어 가족 산행지로 좋은 곳이며, 또한 겨울철에는 적설량이

많아 늦은 봄까지 눈을 볼 수 있고, 임도가 넓어 산악스키를 즐기기에 적당하다고 한다.

안부(08:21)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깃대배기봉:태백 24- 02:해발 1,436m↓부쇠봉)

뚜렸한 대간길 사면 등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1,458.4m봉(08:26)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엄연한 족보있는 봉우리건만

대간꾼들의 아무런 흔적도 없고, 봉산행의 大家들의 흔적도 없다.

내려가는 등로는 의외로 뚜렸하다

좌측으로 내려와서 제도권의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갔던 등로에는 무명 묘지를 만난다.

6월인가보다...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정겹게만 느껴진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깃대배기봉:태백 24- 03:해발 1,405m↓부쇠봉)

안부(08:34)

綠陰芳草가 우거진 호젓한 길...언제 또다시 여길 오겠는가

다리에 힘 떨어지기 전에 맘껏 즐기고 부지런히 걸어보자.

미나리냉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이렇게 큰 군락지는 처음본다

고도차가 없어서 심장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걸으니 너무 좋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깃대배기봉:태백 24- 04:해발 1,342m↓부쇠봉)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 마시고 잠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나서 2~300여m 가는데 뭔가 허전하다...베낭에 달려있는

핸드폰 집을 보니 핸드폰을 빠져버린 모양이다

다시 휴식을 취했던 곳으로 되돌아와서 핸드폰을 찾아 헤매는데

보이지가 않는데 당황스럽다...한참을 헤매다가 낙엽속에 숨어있는

핸드폰을 다시 찾아서 다시 길을 떠난다

깃대배기봉으로 향하는 호젓한 등로 주위에는 고비나물들이 군락을 이루면서

살고 있다...저 넘들도 어렸을 때 먹으면 참으로 맛있는 나물인데...

1.353.2m봉(08:55)

이곳 역시 지도상에 표기된 엄연한 족보있는 봉우리이건만

그 흔한 대간꾼의 시그널 하나도 없는 무명봉으로 전략해 버렸다

깃대배기봉을 향하는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깃대배기봉:태백 24- 05:해발 1,361m↓부쇠봉)

등로에서 만난 태백제비꽃

길 위에서의 생각 /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이정표가 나오고...

펑퍼짐한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이 깃대배기봉 숲이란다

이 지역은 해발 1,368m 산죽(일명: 조릿대)과 여러 식생들이

어우러진 고지대 생태학습장이다...상충에는 신갈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중충에는 돌배나무, 노린재나무, 국수나무, 다래나무,

당단풍류 등이 분포하고, 초본류로는 얼레지, 개별꽃, 산당귀, 우산나물,

넓은 잎의 잎 쑥, 쪽도리풀 등 수십 종의 식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영주 국유림관리소)

깃대배기봉 숲 안내판

고비나물과 앵초가 군락을 이루고...

이곳에서도 엄청난 미나리냉이 군락지를 만난다

호젓한 길을 걷다보니  산림청에서 설치한 깃대배기봉 정상이 나온다

깃대배기봉(1,368m:09:20)

경북 봉화군 석포면과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에 걸쳐있는 봉우리로 산림청에서

설치한 멋진 정상석이 있는 산이나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는 표기조차도

안 되어 있는 무명봉으로 나오는데 원래의 깃대배기봉의 지명은 산이 높아서 항상

산허리에 안개가 끼어 있어 연기처럼 보여 백연봉(白煙峰)이라 하였으나, 일제 때

측량 깃발이 꽂혀 있었다 하여 깃대배기봉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산길을 걷다보면 ‘깃대봉’이란 봉우리를 참으로 많이 만난다.

 

이것이 어쩌면 일제의 잔재인지도 모르겠다...대부분의 깃대봉은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의 자본을 수탈하기 위해 측량을 하면서 깃대를 꽂아논 봉우리를 의미한다.

인증샷

조금을 더 내려오니 태백시 한얼뫼오름회에서 설치한 또다른 깃대봉 정상석이 나온다

얼밀히 말하면 짝뚱 깃대배기봉이랄까...

두리봉 갈림길(09:23)

깃대배기봉 정상에서 3분정도 내려오니 두리봉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두리봉과 백천탐방지원센터(현불사)가는 표시가 되어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0.5km만 가면 두리봉이 있고 봉화군 석포면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뚜렸히 보이는 곳에 태백 한얼뫼오름 산악회에서 깃대배기봉이라는 표시석을

세워놨는데 이곳은 깃대배기봉이 아니고 조금전에 지나온 산림청에서 설치한

정상석이 있는 곳이 깃대배기봉이지만 이곳이나 지나온 곳이나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상에는 아무런 표시조차 없는 무명봉이며, 이곳부터는 태백산 국립공원을 벗어나

영주국유림관리소에서 관리하는 국유림 지역으로 구조이정목도 다르다

두리봉 갈림길에는 이정표(↑두리봉0.5km, ↙천제단, 3.8km, 부쇠봉3.1km 백두대간 ↘백두대간)와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깃대배기봉:태백 24- 06:해발 1,352m↓부쇠봉), 그리고

백천탐방지원센터(현불사)  표식이 있는데, 이곳을 화채능선이라고도 부르며

청옥산과 각화산 사이에 있는 두리봉은 현동천(縣洞川)의 발원지이기도 한 산이다

 

500m 떨어져 있는 두리봉을 갈까말까 생각을 하다가 本業(대간길)에

충실하기 위해 두리봉가는 길을 포기하고 우측 아래로 내려선다

우측의 숲에는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다

대간길의 관리 주체가 바뀌었다...들머리부터 두리봉 갈림길까지는

태백산국립공원이 관리하고, 그 다음부터는 영주국유림관리소에서

관리하는 탓에 긴급구조 이정목(5-8:부쇠봉 - 구룡산)도 다르다.

계곡처럼 파인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등로 주위에는 눈개승마가 지천이다

봄철에 왔더라면 간단하게 베낭하나를 채울 것 같은데 에공!...아까운거...

쉼터(09:28)

낙엽속에 묻혀버린 쉼터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생각을 모두 떨쳐내니

어떤 마음이든 거칠께 없구나.

붉은색은 모두 붉게 보일 뿐,

 

며칠전에는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구름이 사라지고

다시 햋빛이 드는구나

편안한 길을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1,274.5m봉(09:38)

족보있는 봉우리이건만 아무도 찾지않는 모양이다

지맥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을 대간길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1,274.5m봉을 찍지않고 통과하여 버린다

다시 등로로 내려와서 대간길 마루금을 이어간다

???

계속되는 내리막길

우거진 녹음으로 인하여 주위의 사물들을 볼 수가 없으니 가는 길만

집중할 수가 있어서 너무 좋다...이곳은 태백산 정상과는 달리 고도가

낮은 탓인지 철쭉의 꽃 이파리는 흔적도 보이지 않고 철쭉 터널길을

따라서 무작정 내려간다...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던가.

하기사 이 말은 산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주식 투자에도 이 말이

적용되지...

긴급구조 이정목(5-10:부쇠봉 - 구룡산)

태백산국립공원 구역을 벗어나니 산꾼들의 흔적들이 간간히 보인다

늘 산에서 만나는 정겨운 분들의 흔적들...오늘도 나처럼 어디선가

산 속을 헤매고 있겠지...

능선 정상이 아닌 움푹파인 임도를 따라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사면길을 에둘러 돌아서 가니 나무의자가 있는 쉼터가 나온다

장고개재(09:55)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 장바위골 계곡과 왼쪽 영월 상동읍 천평리 춘시리골을 잇는

고개로 지명은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에 있는 장바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좌측의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 장바위 마을쪽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인지 생각보다

등로가 뚜렸하나 우측의 상동읍 춘시리골 방향은 길이 전혀없다

 

장바위골로 내려서는 계곡은 가을철에 단풍으로 유명한 구마동 계곡으로

이어지고, 두리봉 사면에서 발원한 현동천이 60리가 이어지는 곳이다

 

고선리(高仙里)는 두리봉 사면에서 발원한 현동천(縣洞川)이 마을 앞으로 흐르며,

자연마을로는 황정뜰, 백병, 벌바위골, 백담, 도화동, 마방 등이 있다.

황정뜰은 조선시대에 궁궐을 지을 때 이곳에서 생산되는 황장목을 베어다가 재목으로

사용했는데, 황장목의 자생지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도화동은 봄이 되면 이곳에

복숭아 꽃이 만발하여 아름답기가 무릉도원과 같다 하여 생긴 지명이다.

벌바위골은 바위에서 벌을 받아 번식시켰다 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약초와 잡곡 재배에

적합한 마을이라고 한다

쉼터 우측의 산죽길을 따라서 신선봉으로 향하는 대간 마루금을 이어간다

긴급구조 이정목(5-11:부쇠봉 - 구룡산)

안부(10:00)

안부에서 올라서니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이어지는 대간 사면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나 트랙상의 original 대간길은 우측으로 올라서야

지도상에 표기가 되어있는 1,175.2m봉에 오를수가 있기에 능선으로 올라간다

1,175.2m봉(10:07)

정상에는 안양의 사슴과 구름님의 시그널 하나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다시 제도권 등로로 내려간다...아무도 찾지않는 길을 나홀로 

걸을 수 있다는건 어찌보면 행운인지도 모르겠다

긴급구조 이정목(5-12:부쇠봉 - 구룡산)

무명봉(10:12)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우측으로 우회하여 올라서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0:22)

안부에 서 는 철제 이정표에 글씨는 보이지 않고, 세월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말없이 대간꾼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구나

긴급구조 이정목(5-12:부쇠봉 - 구룡산)

차돌배기로 가는 길은 좋아도 너무 좋다

 1,202.3m봉(10:28)

긴급구조 이정목(5-14:부쇠봉 - 구룡산)

등로 주위에는 눈개승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무작정 걷다보니 운곡(신산경표상:각화)지맥 분기점에 도착한다

운곡(각화)지맥 분기점(10:43)

이곳에서측으로 올라서면 각화지맥의 주봉인 각화산(覺華山:1176m)이 있는데

지난해 5월 1일에 나홀로 석문에서 이곳으로 와서 왕두산까지 걸어 1구간을

했던 기억이 엊그제만 같은데 벌써 13개월이란 세월이 흘러 버렸구나.

 

각화산 기슭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태백산사고지(史庫址)가 있는데 

조선 사고(史庫)는 초기에는 서울, 충주, 성주, 전주에 있다가 임진왜란 후에 태백산,

오대산, 정족산, 적상산 네 군데로 바뀌었다...1940년 일제강점기에 실록을

서울로 옮긴후에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는 폐허가 된 채로 방치되었고, 사고(史庫)를

관리했던 각화사는 신라 신문왕때 원효성사가 창건했다고 하며, 한때 신라의

3대 사찰에 들 정도의 大刹이었다고 한다

운곡(각화)지맥 (覺華枝脈) 개념도

백두대간 태백산에서 구룡산으로 가면서 깃대배기봉(1350)에서 동쪽으로 백두청옥지맥을

분기하고 남진하여 차돌배기(1210)에서 대간은 서북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한줄기를

남쪽으로 분기하여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의 경계를 따라 봉화군 명호면 도천리 도천교

바로 동측 백두대간 구룡산이 발원지인 운곡천이 낙동강을 만나는 곳에서 끝이나는 

약35.7km의 산줄기에 이름이 없다

 

 그래서 그 산줄기에서 이름있는 산중 제일 높고 각화사라는 명찰을 품고 있으며 특히 예전의

우리나라 4대서고가 있었던 각화산의 이름을 빌어 30km 이상 100km 미만의 산줄기이며

백두대간에서 직접 분기하였으므로 백두각화지맥이라고 부르기로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운곡지맥이라고 부른다

운곡(각화)지맥 분기봉에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오니 차돌배기 삼거리가 나온다 

차돌배기 삼거리(10:48~55)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애당리 석문마을 경계에

있는 곳으로 쉼터의자와 이정표, 빛바랜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예전에 이곳에는

차돌이 많이 박혀 있어서 차돌배기라 불렀다고 하는데 지금은 주위에 차돌이

잘 보이지 않지만 등로에서 차돌을 가끔씩 만나고 지나온 부쇠봉이라 불리우는

부싯돌도 불을 일으키는 차돌이고 보면 이해가 된다

좌측으로 석문동으로 가는 길은 뚜렸한 이정표가 보인다

지난해 5월 운곡(각화)  첫구간을 할 때,  석문에서 이곳까지

약 2시간을 빡세게 올라왔던 기억이 엊그제만 같은데...

 

봄철의 이곳에는 “바람난 여인”이라는 꽃말을 가진 얼레지가

지천(至賤)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인데 오늘을 씨방만

있는 얼레지만 보인다

 

봉화군 춘양면은 조선 정감록에 나오는 우리나라 십승지(十勝地) 중 하나로

봉화군 관계자는 "봉화 춘양면 십승지는 좁게는 애당리 석문동을 일컫지만,

서벽권역 입구 쪽에 '석문동천'이란 글귀가 적힌 바위가 있는 점으로

미뤄볼 때 춘양면 십승지는 아마도 서벽권역 전체를 지칭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대는 의자에 앉아서 잠깐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

신선봉을 향하는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암봉(10:58)

긴급구조 이정목(5-15:부쇠봉 - 구룡산)

들머리인 화방재에서부터 줄곧 陸山을 걸어오다가 간간히 만나는 암릉이 반갑기만 하다

무명봉(11:00)

등로는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서 내려간다

안부(11:02)

정향나무(丁香木:꽃말:위엄)

물푸레과의 정향나무는 우리나라 전 지역과 만주지역에서 자생하고

있으며 산 깊은 곳(麓) 에서도 잘 보이는 나무로  크기는 2m~3m 정도 하며 잎은

대생하고 장원형(長圓形)모양이면서 달걀을 거꾸로 메달아놓은 모양이다.

 

꽃은 5월에 피는데 생김새와 향기가 좋아 사람들이 관상용으로도 많이 심으며,

꽃 모양이 길쭉한 대롱 끝으로 넓게 퍼지는 모양인지라 앞에서 보면 열십자나

별 모양을 연상시키고, 옆에서 보면 한자 “고무레 정(丁)”자와 닮았으면서

좋은 향기가 나기 때문에 정향나무(丁香木)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반가운 대간꾼들의 흔적들이 독립군을 응원하는데 갑자기 후다닥하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추린다...앞을보니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산꾼이 스틱도 없이, 쥐불알만한 베낭 하나를 메고 쏜살같이 지나간다.

산은 늘 거기에 있는데 왜 급하게 가시는지...

안부를 지나면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사면길을 버리고 직진으로 올라간다

1,156.7m봉(11:07)

1,156.7m봉 정상을 찍고 다시 뚜렸한 등로로 내려선다

능선 우측은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 춘시리골로 내려가는 계곡이다

무명봉(11:12)

긴급구조 이정목(5-16:부쇠봉 - 구룡산)

안부(11:16)

사면길로 올라가다가 ...

다시 등로를 벗어나서 족보있는 1,174.1m봉으로 향한다

1,174.1m봉(11:25)

북쪽으로 걸어 가다가...

조금전에 헤어진 등로로 내려선다

이 넘들은 갈길 바쁜 산꾼에게 태클을 건다...그렇다고 안 갈 산꾼은 아니지만...

안부(11:31)

쉬크석 영감탱이의 흔적인가?

긴급구조 이정목(5-17:부쇠봉 - 구룡산)

무명봉(11:38)

신선봉을 향하는 본격적인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바람한 점 없는 날씨이긴 하지만 워낙 오지라서 그런지 

그리 더운줄은 모르겠다...힘이 들어서 서다 가다를 반복하면서

쉬엄쉬엄 오른다...神仙이 사람이 발길닿기 쉬운곳에 살지야 않겠지

무명봉(11:40)

안부(11:42)

또다시 오름길은 시작되고...

서서히 체력 저하가 오기 시작하면서 힘이 들고 그 와중에도 잠이 쏟아진다

무명봉(11:46)

긴급구조 이정목(5-18:부쇠봉 - 구룡산)

힘들게 능선으로 올라서니, 목계단이 나오면서... 

 處士 慶州 孫公 묘지가 있는 신선봉 정상에 도착한다

신선봉(神仙峰:1,295.3m:12:00)

경북 봉화군 춘양면 애당리와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직진을 하면 상천평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대간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신선봉은 그저 평범한 봉우리이건만 그냥 풀숲에 무덤 하나가 정상을 지키고 다

處士 慶州 孫公 永虎之墓란 비석이 있는 무덤...벼슬 없는 ‘處士’라서 친숙한 느낌이 온다.

 

神仙이란 깊은 산속에 들어가 자연과 벗하며 사는 상상의 사람이라고 하지만, 

원래 降神을 잘하는 무당이 산에서 수행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신선이란

능력있는 神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산을

신성(神聖)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산은 하늘을 맞닿아 있는 곳이자 속세와 가장 떨어져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높이에 초월적인 신성을 느끼고 하늘에 절대적인 신을 감지했는데 이러한

신이 지고신(至高神)으로 지고신의 아들이 인간세계를 다스리기 위해 인격화되어

땅으로 내려온다.


땅으로 내려온 지점이 바로 태백산 천제단이다.
신성한 동물(용)은 산줄기를 타고 천제단으로 모이고, 제관(祭官)들은 곰넘이재를

통해 천제단으로 모이며, 신관(神官:신선)들은 접신(接神:신맞이) 준비에 분주하다.

그래서 이곳을 신선봉이라고 칭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곳이 정감록에 나오는 난세에 최적의 피난처인 십승지

중에 하나로 정감록 비결은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 성행하게 되었던 국가운명과

살아있는 백성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예언서로 그 당시 이심(李沁)이라는 사람이

대흥자(大興者)가 될 정씨(鄭氏)의 조상인 정감(鄭鑑)이란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라고 전하며,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 펴낸 것이라 한다.

 이 책은 조선 5백년을 통하여 현재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가장 큰 지배를

했던 문헌으로 알려져 오고 있으며, 이 문헌과 이중환의 택리지에 술가(術家:음양, 복서,

점술에 정통한 사람)들이 말하는 굶주림과 싸움 등의 염려가 없어 난세를 피할 수 있는

조선의 십승지는 풍기의 금계촌에 이어 봉화의 춘양면, 보은의 속리산, 운봉의 두류산(지리산),

예천의 금당동, 공주의 유구와 마곡, 영월의 정동 상류, 무주의 무풍동, 부안의 변산, 성주의

만수동 순으로 가리킨다. 

십승지란, 원래 산이 깊고 물이 풍부하여 세상을 등지고 숨어 살기에 좋은 곳이다.

 

* 정감록(鄭鑑錄)은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 널리 유포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언서로

   전쟁 등으로 인한 사회 혼란의 극심한 정세가 반영되어역성혁명 사상과 현실 부정적 

  사상을 담고 있으며, 정감(鄭鑑) 이심(李沁)이라는 인물의 대화를 통해 미래의 변화를 

  예언했다고 하나 이본(異本) 많아서 확실한 것은   없다

 

  참위설풍수지리설도교 사상의 영향을 받았고조정에서는 금서(禁書) 취급했으나 

  새로운 사회 변혁을 갈망하는 사회 심리가 반영되어 민간에서 은밀히 전승되어 왔다.

인증샷

신선봉 정상에 處士 慶州 孫公 永虎之墓란 비석이 있는 무덤이 하나 있다.

짐승도 다니기 어려운 이 곳에 묘지를 쓴 자손들이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아마 생전에 백두대간을 타는 산꾼이 아니였을까. (범여의 생각 中에서)

묘지 뒷쪽으로 직진을 하면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 상천평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10분정도 신선봉 정상에서 머물다가 다시 길을 떠난다

곰넘이재로 향하는 급경사의 내리막길

신선봉 반대편에서 빡세게 올라온 것을 보상받는 느낌이다.

내리막길에서는 내 몸뚱아리도 산꾼들을 충분히 따라갈 수가 있다

긴급구조 이정목(5-19:부쇠봉 - 구룡산)

안전로프가 처져있는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2:16)

안부를 지나니 내리막길에 지루할까봐서 호젓한 산죽길이

나와서 홀로걷는 산꾼 범여를 배려한다...산은 늘 이렇게

배려를 하는데 난 아무것도 해줄것이 없으니, 어케해야 하나

물으니 “산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듯 하다...내 걱정은 하지말고

 니 몸뚬아리나 잘 간수하라고...”

묘지(12:20)

묘지를 지나서 급경사로 내려서니 자동차가 다닐만큼

넓은 임도가 펼쳐진다

안부(12:21)

이곳부터 곰넘이재까지는 산불을 대비하여 소방차가 다닐 수 있을만큼

넓은 방화선 임도로 되어있어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편하게 걸을 수는

있지만 대간길을 걷는 느낌은 反感이 된다

긴급구조 이정목(5-20:부쇠봉 - 구룡산)

지친 산꾼에 대한 배려인지 계속되는 방화선 임도, 길이 좋으니 

늘상 반복되는 범여의 못된 버릇이 슬슬 나온다.

다름아닌 쏟아지는 졸음...자꾸만 눈꺼풀은 무거워지고 힘이든다

스님들께서 布行하듯... 나도 졸면서 곰넘이재로 향하는데 졸면서 걷기에는

더 없이 좋은 길이다.

쉼터(12:35)

쉼터 의자가 있는 곳을 지나니 좌측에 조그만 봉우리가 보이고

그곳으로 올라가보니 峰산행 大家들의 시그널 서너개가 걸려있다

1.081.1m봉(12:37)

지도상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는 무명봉이지만  

이곳을 구룡산 부쇠봉이라고 표기한 자료도 보인다

다시 넓은 도로로 내려서서 조금을 더 진행하니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곰넘이재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곰넘이재(熊峴:12:50)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천평리 상천평에서 경북 봉화군 춘양면 애당리

참새골로 넘던 고개로 먼 옛날 천제를 지내기 위해 태백산으로 향하던

사람들이 넘던 고개요, 영남에서 강원도를 오고 가던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개이다.

 

"곰"은 "검"에서 온 말로 "신"을 의미하고 태백산으로 천제를 지내려 가는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가며 행렬을 이루니 "신"이 있는 곳으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곰(검신)님이"이라 불렀다... 즉, 웅현(熊峴)은 우리말로 "곰재" 혹은 '검재"이니

다른말로 "신령(神嶺)이다. 일설에는 "곰"을 "고개"로 해석하고 "님이"를 "넘이"로

봐서 "곰님이"는 "고개넘이"로 본다.

지난 4월 30일날 이곳을 왔으니 한달 조금 늦은 싯점에 이곳을 다시 왔다.

아직 오후 1시도 안 되었으니 참으로 여유롭고 마음이 참 편하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물 한모금을 마시려고 베낭에서 물통을

빼내려는데, 근데 이게 뭐여!...베낭옆 주머니에 꽂혀있는 수통이 없네...

10년 넘게 사용한 날진 수통이 어딘가 모르는 곳에서 빠져 버렸구나.

정이 참으로 많이 든 수통이었는데 이렇게 작별을 하다니...

하는 수 없이 꿩 대신에 닭이라고 했던가...베낭속에 남겨둔 두유로

목을 축이고 참새골로 내려간다

참새골로 내려가는 길은 한달전에도 걸었던 길이라 그리 낯설지는 않다.

수국도 슬슬 꽃을 피우려고 준비를 모양이다

청초한 너의 모습이 보고 싶었는데 

타이밍이 맞질 않아 아쉽구나.

등로 우측에는 구룡령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시루봉이 참새골로 내려가는 범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지도상에는 실루동, 진조등이라는 마을이 있다고 표기가

되어 있지만 지금은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는구나.

한달 전에는 야생화들이 많이 보여서 시간이 걸렸는데

오늘은 볼 것이 많지 않아서 발걸음이 조금 빠른 느낌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수 많은 미련이 남습니다.

 

내가 좀 깊이 생각했더라면,

내가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입니다.

 

지금부터라도 후회 없는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한 일이 내일 후회가 되더라도

그것이 인생입니다

 

월호 스님의 “아무도 너를 묶지 않았다” 중에서

이정표가 있는 사방댐에 도착한다

사방댐(砂防:13:25)

사방댐이란 토사의 유실이 심한 하천에 토사가 하류로 흘러내려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설치하는 댐을 말하는데, 하상자갈의 이동이 심한 곳에 주로 설치되며,

상류 쪽에 자갈을 퇴적시켜서 하상을 완만한 경사로 안정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사방댐을 지나서 넓은 임도를 따라서 참새골로 향한다

민가(13:28)

사방댐에서 3분정도 내려오니 녹슨 차단기가 보이고 민가가 나오는데

가건물처럼 보이는 민가앞 임도에 승용차 한대가 시동이 걸려있다.

혹시 내려가면 좀 태워 달라고 하려는데 자동차 안을 바라보니 시동은

걸려 있으나 사람은 보이지가 않는구나...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만 마신 꼴이 되었다 

조금전에 그 가건물이 수룡산 숲속 갤러리였던 모양이다

참새골은,동이정, 장부골, 석문동, 참새골 등 4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진 

애당2리를 통칭하여 "참새골"이라 하는데, 참새가 날아가는 형세를

갖춘 산이 북쪽에 있다고 하여 "참새골", 또는 약수가 나오는 "참샘"이 있다고 하여

"참새골"로 불리는데 "정감록"에 의하면 십승지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배수장(13:33)

배수장을 지나니 새로운 민가가 나오고 조금을 더 내려가니 

또다른 민가가 나오는데 잠시후에 곰넘이재 이정표에 있는

참새골펜션이 보인다 

참새골과 석문동을 이 고장 사람들은 열두 도심이라 한다.

열 두골짜기로 이루어진 참새골과 석문동은 시루봉 능선을 따라 구룡산에서

고직령. 신선봉. 차돌배기의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라 각화산으로 가지를

내리는 산줄기의 내경에 속하는 계곡으로 행정상 애당리로 표현 하지만

다른 이름으로 열두 도심이라 이르고 그 뜻은 골이 깊어 들어 갈 때와

나올 때의 길이 다르다 하여 이른 말이라 한다.

참새골 펜션(13:40~14:25)

참새골 펜션에 도착하여 시간적 여유도 있고해서 도로 우측의 골짜기에

내려가서 아주 깨끗하게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여유로운 휴식을

취한 다음에 옷을 갈아입고 펜션 마당으로 와서 베낭털이를 하고 있는데

저 위에서 차량 한대가 내려오는게 아닌가...

재빨리 손을드니 차를 세워준다...서울을 가야하는데 버스가 서는데

까지만 좀 태워 달라고하니 춘양장에 가는 길이라면서 태워준다.

춘양장(14:50)

오늘이 장날이라 시장에 장을 보러 오신분이 태워주시는 바람에 편하게

춘양장까지 오는 호사를 누린다...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유쾌한 작별을 한다

 

춘양 전통장은  ‘억지춘양시장’이라는 이름을 내걸려 있고,  시장 주변 담장에는

억지춘양의 유래를 알리는 타일 벽화로 깔끔하게 장식해 놓았는데, 전통시장을

개량한 듯 한데 어렸을적의 많이 봐왔던 5일만에 섰던 옛날의 흔적은 찾아볼 길이없다.

 

천장은 높고 통로는 차가 다닐 정도로 넓어, 왁자지껄해야 할 시장이 장날(4ㆍ9일)이

아니면 지나치게 한산하여 정겨운 재래시장의 멋은 찾아볼 길이 없다고 하는데

오늘이 춘양 장날인데도 손님보다 장사꾼들이 훨씬 많아 보인다

 

‘억지로라도 한번 가보시더! 희안(喜安)하니더!’ 시장에 붙은 사투리만 정겹게 보인다

예전에 하루 200~300마리가 거래되는 대규모 우(牛)시장이 섰다는 명성의 영향일까.

시장안에는 시장의 규모에 바해 한우 정육점 유난히 많은 것이 그나마 특이한 점이다.

13시 50분에 동서울로 출발하는 버스는 진작에 가버렸고,

다음 버스가 16시 10분에 출발하니 시간이 남아도 한참 남아 있어서

예전에 내성(문수)지맥과 운곡(각화)지맥을 하면서 몇번 들려서

민생고를 해결했던 식당으로 가서 시원한 잔치국수 한그릇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커피까지 한잔 얻어먹은 다음에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춘양 임시 버스 정류장(15:25)

시장을 나와서 버스정류장으로 가니 공사를 하려는지 정류장은

폐쇄되었고, 춘양면사무소 마당에 임시 버스정류장이 생겼다

춘양발 → 동서울행 버스표

춘양버스정류장 버스 시간표

춘양면사무소 그늘막 의자에 앉아서 1시간 가까이 멍때리기를 

하다가 서울가는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