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꺽여버린 범여의 산행 의지
☞ 산행일시: 2023년 08월 06일
☞ 산행날씨: 낡은 날씨에 높은 습도...폭염경보
☞ 산행거리: 도상거리 7.8km + 날머리 1.4km / 4시간 15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빼재-갈림길-안부-수령봉-안부-무명봉-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갈림길
된새미기재-갈림길-1,076m봉-무명봉-무명봉-1,090m봉 갈림길
호절골재-금봉암 갈림길-조망바위-암봉-삼봉산-무명봉-1,263.4m봉
안부-암봉-조망바위-데크목 조망대-데크목 조망대-쉼터-암봉
902m봉-무명봉-안부-794m봉-안부-갈림길-임도-소사고개
탑선수퍼-지경마을버스 정류장-지경마을 입구-부흥마을버스 정류장
☞ 소 재 지: 경남 거창군 고제면 / 전북 무주군 무풍면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다...아니 지구가 펄펄 끓고있는 느낌이다.
매일, 매일 내려지는 폭염 경보에다가 37~8도를 오르내리는 기온,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다...이틀후면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立秋이고, 10일은 막바지 더위라는 末伏인데도 더위가 멈출줄을 모른다.
산에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해봤다.
더우나, 추우나 매 주말이면 습관처럼 베낭을 메고 집을 나간 버릇을 고칠수가 없구나...
좀 시원한 곳이 강원도 지역이긴 하지만, 휴가철이라 그런지 歸京 차표가 전부
매진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남쪽에 몇구간 안 남은 대간길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전라북도 무주쪽을 가보기로 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대전가는
열차를 타기위해 서울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04:50)
집 앞에서 출발하는 첫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니 04시 50분...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화장실에 들렸다고 플렛홈에 정차해 있는 열차에 오른다
서울발 → 대전행 열차표
오늘 내가 가야할 곳은 무주 구천동쪽인데 서울에서 무주로 가는 버스편은
상당히 불편하다...서울 남부터미널에 무주가는 버스는 하루 4편에 불과하고,
그것도 첫 차가 09시 20분에 출발하니 하는 수 없이 대전으로 가서 무주로
가는게 가장 빠르다.
대전역(06:40)
대전역을 빠져 나오니 역 광장에 새벽시장이 생겼는지 농산물을 파는
아낙네의 풍경이 정겹기만 하다...집에가는 길이었으면 팔아주고
싶었는데 산에가는 길이라 베낭의 무게 때문에 포기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대전복합터미널(07:00)
05시 27분에 출발하는 ktx열차를 타고 대전역으로 가서 대전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501번 버스를 타고 12분만에 대전터미널에 도착하여 무주구천동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고 아침을 해결해야 하는데 시간이 빠듯하다.
된장찌게를 하나 시켜서 시계를 보면서 급하게 밥을 먹는데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먹고는 버스타는곳을 향한다
대전발 → 무주구천동행 버스표
07시 20분에 구천동가는 버스를 타는데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내리쬐는 햇빛의 강도는 장난이 아니다...대전을 출발한 버스는
50분 가랑을 달려 무주터미널에 도착한 다음에 10분정도 정차했다가
다시 무주구천동을 향하는데 난 구천동까지 안가고 설천버스 정류장을
지나서 무주리조트 입구의 하나로마트 앞에서 내려 예약한 택시로
오늘 산행 들머리인 빼재로 향한다
37번 국도 빼재터널을 빠져나온 택시는 좌측의 구도로를 올라가는데 일반
차량들은 출입하지 못하게 바리게이트가 처져있고, 택시는 출입이 가능한지
자동으로 바리게이트가 열리면서 빼재에 도착한다
빼재는 옛날 빼재가 아니라 바뀌어도 너무 바뀌어 버렸다.
예전에 산꾼들의 쉼터 역할을 했던 빼재정이란 멋진 팔각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빼재 정상에 있었던 수준점도 찾을
길이 없고, 출입을 하지 못하게 도로 한가운데 바리게이트까지 있다
빼재(934.6m:09:10)
경남 거창군 고제면과 전북 무주군 무풍면을 잇는 37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거창쪽으로 이어지는 고개 아래의 도로는 구절양장이나 지금은 옛 휴게소와
주유소가 있는 자리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공사중이고, 무풍으로 넘어가는
쪽으로는 바리게이트를 쳐놓아서 차량 출입이 아예 되질 않는다.
.빼재의 지명을 수령(秀嶺) 또는 신풍령(新風嶺)이라고도 부르며 거창군에서
등로에 세운 이정목에는 뼈재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참으로 혼란스럽다.
빼재는 삼국시대부터 신라와 백제의 접경 지역이었기에 전략적 요충지로서
수많은 민.관군이 이곳에 뼈를 묻어야만 했고 임진왜란 당시 이곳의 토착민들은
산짐승들을 잡아 먹어가며 싸움에 임했다.
그 산짐승들의 뼈가 이곳저곳에 널리게 됐다고 해서 “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며 뼈재가 경상도 방언으로 빼재가 되었다고 한다.
험준한 산길을 넘나들던 시절 고개를 넘던 사람들의 재물과 목숨을 빼앗아
죽은 사람의 뼈가 산을 이루어 뼈재요,이 고개를 넘나들던 주민, 사냥꾼 혹은
산적들이 동물 및 가축들을 잡거나 약탈하곤 하면서 뼈를 버려 둔 곳이라 하여
이름 붙혀진 ‘빼재’는 ‘추풍령’을 본뜬 ‘신풍령’이라는 휴게소가 고개 아래쪽에
들어서면서 ‘신풍령’이라고도 불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이 고개 아래로 새로운
37번 국도가 지나가는 빼재터널이 개통되면서 신풍령 휴게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일제강점기에 고개 이름을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빼’를 ‘빼어나다’로 해석하는
바람에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 수령(秀嶺), 즉 빼어난 고개라는 뜻의 표지석이
세워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거창군에서 세운 빼재라는 지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정상석은
멀쩡히 그대로 두고 지친 산꾼들의 쉼터역할을 했던 멋진 팔각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어서 안타깝기만 하다...하였던간에 어느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지는 몰라도 멋진 “빼재정”을 철거한 이유...
아둔한 범여의 머리로는 도데체 이해가 안된다
2017년 9월 9일...백두대간 3차때의 사진
秀嶺이라는 정상석이 있는 빼재 정상에서 다시 들머리가 있는 곳으로 내려간다
빼재 정상에 들렸다가 들머리로 내려와서 산행을 준비하는데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아스팔트 도로에서 올라오는 地熱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산행 시작도 전에 물 한모금 마시면서 정신을 차린다
들머리 입구에 있는 빼재 정상 안내판
산행을 시작하다(09:20)
초반에 나무계단을 따라서 올라가는데...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땀은 비오듯 쏟아진다
갈림길(09:27)
좌측은 빼봉 1.0km, 우측은 삼봉산 3.9km 팻말이 붙은 이정표가 나오는데
지도상에는 ‘빼봉’이라는 지명은 없고, 934.6m봉을 말하는데 좌측으로는
절개지로 이어지는 대간길을 갈 수가 없어서 우회해서 이곳을 왔다.
마루금으로 복귀하여 본격적인 대간길을 이어간다
기상청의 예보로는 올해들어서 가장 더운날이라면서 폭염 경보가
내렸다고 하는데 오랫만에 구라청(기상청)의 예보가 맞는지 산행
시작 10분밖에 안 되었는데도 비온후의 습도 탓인지 등로에서
올라오는 습기로 인하여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래!...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제.
컨디션이 어찌될지는 모르지만 가는데까지 가보는거지 뭐...
산악회를 따라서 단체로 오지 않았으니 남한테 민폐끼칠일도 없고,
컨디션이 좋으면 더가면 되고, 컨디션이 안 좋으면 덜가면 되지
뭘 꺽정이람...대간길 한 구간 늘어났다고 해서 누구한테 혼날일도
없고, 더 일찍 끝낸다고 해서 상 줄 사람도 없잖은가...
이렇게 두 다리로 산을 걸을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즐거운데...
안부(09:32)
4번째 이 길을 걷지만은 예전길은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나무 계단을 따라서 철쭉 군락지로 올라서니...
밋밋한 봉우리가 나오는데 산행 지도에 수령봉 또는 수정봉으로 표기된 봉우리이다
산행 들머리에서 올라와 첫번째 만나는 봉우리가 수령봉이라는데 이정표(←빼재0.4km,
삼봉산3.5km→)가 있는 그저 밋밋한 봉우리다...오룩스앱이나 트랭글앱이 활용되기
이전에 대간꾼들이 이용했던 “고산자들의 후예들”이라는 곳에서 만든 지도에는 수정봉,
“진혁진님의 대간 지도”에는 수령봉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지금의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와 트랭글앱에서는 아무런 표식이 없는 무명봉에도 못드는(?) 봉우리이다
수령봉의 유래는 일제강점기에 고개 이름을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빼’를 ‘빼어나다’로
해석하는 바람에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 수령(秀嶺)...즉 빼어난 고개위에 있는 봉우리는 뜻이렸다
수령봉(?) 정상의 이정표
빼재에서 갑자기 고도를 확 높이면서 능선에 오른 다음에 수령봉을
지나면서부터 잠시이지만 고도차가 없는 편안한 대간 마루금을 걷는다.
근데 갑자기 배가 바늘을 찌르듯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대전에서 구천동으로 오는 버스시간이 촉박하여
급하게 먹었던 된장찌게가 문제가 된 모양이다.
베낭을 내려놓고 숲속으로 들어가서 비우고 나면 괜찮을까
싶어서 볼 일을 보러 들어갔는데 나와야 할 넘은 나오지 않고,
억지로 볼일을 본 다음에 소화제 한알을 먹고는 다시 길을 나선다
완만한 능선을 지나서 나무 계단을 따라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예전에 한번 이용해봤던 무풍 개인택시 전번이 걸려있다.
저 분은 대간 산꾼을 많이 상대하신 분인지 산꾼들의 맘을 잘 이해하시는 분 같더라...
안부(09:49)
시작할 때는 이런 더위쯤이야 하고 豪氣를 부리면서 산 속으로
들어섰지만 滯氣라는 복병을 만나니 갑자기 겁이난다.
출가한 딸이 맨날 아빠에게 전화를 하면 하는 말, 아빠!...음식은 천천히
그리고 꼭꼭 씹어서 먹으라고 하는 부탁을 내가 잠시 잃어버렸나보다.
무명봉(09:52)
오늘도 바람한 점 없는 날씨이다...더워도 너무 덥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갈림길(09:56)
마루금 좌측의 0.2km지점에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 있다는데 갈 일이 없다
대간길은 우측으로 살짝 휘돌아서 오르막으로 향한다
된새미기재는 된비알이 심하여 새도 쉬어간다는 ‘큰(된) 새목 고개’
된새목이재>된새모기재> 된새미기재로 변화했다고 하며,
된비알/된비탈/된-깔막(된비알의 방언)으로, 북쪽의 전북 무주는 지대가 높고
남쪽의 경남 거창은 지대가 훨씬 낮은 것이 확연하게 관찰되는 곳이다
구렁 마을은 구룡쟁주(九龍爭珠)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둥그정이 마을은 둥그나무
(정자나무)가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용호동 마을은 생초 서쪽에 있는 마을로 용쏘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간간히 대간꾼들의 흔적을 만난다.
갈림길(10:07)
좌측의 무주군 무풍면 삼거리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나오나 대간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들어서니...
헐!...처음에 길을 잘못 들어선 줄 알았다.
아마도 대간길에서 가장 野性美를 갖춘 길이 아닐까 싶다.
미역줄기가 마루금을 완벽하게 접수한 느낌이다...그래도
대간길인데, 기.지맥길에 비하면 양반이 아닌가 싶다.
千辛萬苦 끝에 미역줄기 군락지를 벗어나나 싶었는데...
또 다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다음에야...
뚜렸한 능선을 벗어날 수 있었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 ↑삼봉산2.0km:봉산갈림길2:해발 1,076m↓빼재 1.0km)
1,076m봉(10:15)
미역줄기 능선을 지난 다음에 능선을 촬영하려는데 갑자기 뭔가 허전하다
카메라가 미니가방에서 빠져 나가버렸다...이걸 어쩌나 다시 되돌아가서
미역줄기 능선을 헤매는데 다행히 조금 일찍 카메라를 되찾았다
붉은창싸리버섯
창싸리버섯과의 창싸리버섯속의 버섯으로 자실체의 높이는 5-14cm이고 굵기는 3-10mm로
조금 편평한 원추형 또는 긴 방추형이며, 구부러졌거나 구불구불하고 가운데에 얕은
세로의 줄무늬 홈을 갖고 있는 것이 많으며, 선주홍색 또는 비색이나 근부는 백색이다.
포자의 지름은 6-8㎛이고 구형이며 표면은 매끄럽고 포자문은 백색이며, 발생은 가을에
숲속의 땅 위에 몇 개씩 또는 10여개씩이 다발로 난다
카메라를 되찾은 후에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에 암릉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한다
등로에 있는 흰여로가 범여에게 훈계를 한다.
정신줄을 놓지 마시게나...
무명봉(10:20)
무명봉 정상의 이정표
무명봉 정상에서 삼봉산을 오르기 위한 워밍업으로 내리막길을
향하는데 암릉구간이 나오는데 이곳에 서면 삼봉산 능선이 멋지게
조망되는 곳이지만 산을 뒤덮은 綠陰으로 인해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게
아쉽기만 하다
綠陰 사이로 빼꼼히 내밀고 있는 공간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이
살갗을 태우는 듯한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듯한 한 날씨...
정말 올 여름은 참으로 힘이드는구나...
철쭉군락지 노거수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내리막길로 향한다
힘듬 삶일지라도
살면서 천당 극락이 어디냐
묻지를 말게
찾아갈 일 없는데
물어서 무엇하리...
찾아든 이곳이 武陵인데...
애주름버섯
버섯갓은 처음에는 종 모양이나 후에 다소 펴져서 만두 모양 혹은 편평하게 되며
때로는 가운데 부분이 둥실하다... 직경은 2~5㎝이고 육질이고 갓 면은 물기가 있다.
색깔은 분홍색, 보라빛 분홍색 등이며 변두리에 줄무늬가 있으며 살은 얇고 분홍색을 띤다.
버섯 주름은 대에 바른 주름 혹은 홈파진 주름으로 붙고 빽빽하거나 약간 성기게 붙고
폭은 넓으며, 주름 사이에 가로난 맥이 있으며 흰색 분홍색 혹은 보라색을 띤다.
주름 모서리는 물결 모양 혹은 톱니모양이고, 버섯대는 길이 3~8㎝, 직경 0.2~0.6㎝이며,
아래 우의 굵기는 같으며 매끈하고 빛이 나며 색깔은 갓과 같거나 좀 연하다.
밑부분에 흰색의 보드러운털이 있고 속은 비어 있으며, 포자는 긴타원형이고 매끈하고 무색이다.
크기는 5.5~7.5×3~3.5㎛이고 포자 무늬는 흰색이고, 낭상체는 곤봉 모양 혹은 큰 실북 모양이고
무색인데 여름부터 가을기간에 상수라나무 졸참나무 등 넓은잎나무, 썩은 줄기, 가지, 구루터기에
무리로 나거나 뭉쳐난다.
조금 참을만 했던 배가 또 아파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더운날 집에서 쉴걸 괜히 산에왔나 후회가
들지만 지금와서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걷는것 이외는
다른 방법이 없다...默言修行하듯 걷고 또 걷는데
등로 옆에 있는 참취꽃도 더위를 참기가 힘이드는 모양이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삼봉산1.5km:봉산갈림길3:해발 1,119m↓빼재 1.5km)
완만한 오르막길로 향하는데 더위로 인한 땀이 아니라
체기로 인한 식은 땀이 흘러내리면서 자꾸만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무명봉(10:35)
사람의 맘은 쉬이 변하지만 산은 늘 한결같은 맘이란걸 느끼며
대간길을 걷는다...오늘도 변치않은 그 숲길을 걷는데 사람들은
조금만 덥거나, 조금만 추워도 그걸 이겨내지 못하고 호들갑을
떨지만 산은 늘 한결같다...
1,090m봉 갈림길(10:37)
좌측으로 지도상의 1,090m봉으로 향하는 등로는 뚜렸하나
대간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1,090m봉을 “고산자들의 후예들”이라는
지도에는 수령봉으로 표기가 되어있고, 대간길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다.
아이구야!...또 만나는 미역줄기 정글...조금전에 무대포로 치고 나오다가
카메라를 잃어버린 학습효과(?) 때문에 카메라를 꼭잡고 치고 나간다
앞문에 들어오는 범을 피하려다 뒷문의 승냥이를 만난꼴이 되었다.
미역줄기 정글을 빠져 나오니 조릿대가
군락을 이루면서 태클을 걸어대기 시작한다
천신만고 끝에 미역줄기와 조릿대 정글을 빠져 나오니...
잠시후에 오를 삼봉산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조릿대의 강력한 저항을 이겨내고...
겨우 빠져 나오니 비로소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삼봉산1.0km:봉산갈림길3:해발 1,075m↓빼재 2.0km)
등로에서 만난 분홍색 꿩의다리
나무계단으로 이어지는 등로 좌우로는 자작나무 군락지가 보인다
호절골재(浩絶谷:10:46)
경남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와 전북 무주군 무풍면 삼거리 독가촌을
넘나드는 고개로 민초들의 인적이 드문 탓인지 뚜렸한 대간길과는
달리 길이 잘 보이지 않는 고개로 삼봉산과 1090m봉(수령봉)이의
움푹 들어간 허리목의 삼거리에서 금봉암으로 넘어가는 소로가
교차하는 곳인데 누군가가 “성수목이”라고 메직으로 적어놨는데
잘못된 표기이다
남동쪽으로 45°에 가까운 경사면이고, 북서쪽으로는 완만한 경사의
계곡인데, 채소밭이 펼쳐져 있고 여러개의 지류가 모여 무풍면 삼거리
독가촌 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에는 예전에는 공터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인적이 드문 탓인지 공터는 흔적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지명의 유래는 ‘막힌(絶) 계곡(谷)의 안쪽이 매우 넓다(浩)’는 뜻으로
호절곡재라 부른다고 한다
호절곡재에 오르는 길...예전에 3번이나 걸을때는
그렇지 않았었는데 조릿대가 완전히 등로를 점령해버려서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 급경사는 아니건만 몸뚱아리가 말을 듣지 않으니
자꾸만 발걸음이 느려지는데 갑자기 뒤에서 대간꾼
서너명이 후다닥 나를 추월해서 가버린다
또 다시 2번째 대간꾼들이 나를 추월해가는 사이에
우측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나오는데 금봉암으로 가는 길이다
금봉암 갈림길(11:12)
금봉암(金鳳庵)은 절과 산 모두가 나한도량(羅漢道場)이라 하여 기도처로 이름나 있는
삼봉산 기슭에 있는 절집으로, 이 삼봉산은 불심(佛心), 산심(産心), 무심(無心)의 三心이
깃들고 금봉암을 둘러쳐진 바위무리들은 병풍의 형태로 봉황의 산세를 이룬다.
세 개의 영험스런 바위 샘물이 솟아나 목을 축일만한 데 모두 신령스럽고 영험스런
샘물이라고 하며 천지인(天地人)을 우러른 삼신사상(三神思想)과 인연이 깊다
덕유산으로 달리는 큰 줄기에서 동쪽으로 내린 가지에는 시루봉이 솟아 있으며
남쪽 골짜기는 금(金)이 난다고 알려져 있는 곳이다
거창군 고제면 봉산리 삼봉산 기슭에 있는 절집인 금봉암(金鳳庵)은 본디 봉황새만이
깃드는 곳을 일컫는데 절이 황금빛 봉황의 이름을 갖고 자리 한다... 금봉암은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절 터에 1905년 주상면 거기리에 살던 불심 깊은 해인사 신도였던
청송 심씨 정화 보살이 세운 절집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청송 심씨가 풍수지리가 잡아준 지금의 절 자리에서 원(願)을
세우고 당시 심보살은 현재의 금봉암 자리에 토굴을 짓고 서원을 세웠다.
용바위 용굴샘 물을 마시며 백일 단식기도 중 황금빛 새가 나타났는데
심보살은 영험을 느껴 그 자리에 절을 짓고 ‘금봉암 ’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 절에는 이름난 세 개의 바위, 세 개의 용머리, 세 개의 바위샘이 있는데,
요사체 뒤에 용바위, 용굴에서 내려와 얼굴을 쑥 내민 세 개의 용머리가
있는데 맨 윗쪽 용머리가 옛날 거창 부사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금봉암을 나한도량으로 영험 있는 기도처로 알려져 있으며 무엇보다 세 개의
샘이 자랑거리로 이름나 있는데, 석불바위 뒤에 숨어 있는 샘을 피부병에 좋다 하며,
칼바위 위 바위굴 샘은 기도 샘이고, 용 바위 용굴 샘은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 한다.
금봉암 대웅전
대웅전의 지붕에는 약사여래 입상이 모셔져 있어 눈길을끄는데,
대웅전의 내부에는 중앙에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이 봉안되어
있고 그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으며,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오백 나한전, 삼성각, 용왕전 그리고 석조 아미타 삼존 불상 등이 있으며,
삼성각이 제일 높은 위치에 있고 그 아래 대웅전이 있다
조망바위(11:14)
조망바위에 올라서니 시어미한테 지독하게 구박만 받다가
恨많은 生을 마감한 며느리밥풀꽃이 범여에게 할 말이 있는
모양인지, 더운 날씨에 고개를 숙인채 머뭇거린다
세상살이에 怨恨은 이제 잊어버리셔요...지금은 세상이 바뀌어
며느리에게 구박받으며 사는 시어머니가 많아도 너무 많은 세상이오...
조망바위에 올라서니 바로 밑에 옴팍파인 곳에 있는 금봉암은
綠陰芳草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분지형을 이루고 있는 거창군
고제면 봉산리 너머로 웅양면 뒷쪽으로 이어지는 황강(수도)지맥
능선이 아련하게 보인다...2013년 1월에 저 능선을 걸었으니
벌써 10년하고도 6개월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조망바위를 지나 암봉으로 올라간다
암봉(11:17)
이 암봉이 삼봉산중에서 제1봉에 해당되는 봉우다
삼봉산가는 길
암봉에서 내려서니 움푹 파인곳이 나오는데 우측 아래의 계곡 아래에서
올라오는 바람이 참으로 시원하다...오늘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션한 바람을 만난다
신라 의상대사의 ‘화엄일승법계도’에 관한 해석을 모은
‘법계도기총수록' 券上에는 아래의 글이 실려있다
行行本處(행행본처:가는 데마다 본래 자리요)
至至發處(지지발처: 이르는 데마다 출발지며)
三界皆苦(삼계개고: 욕계·색계·무색계가 괴로움에 빠져 있더라도)
隨處作主(수처작주: 어떤 곳에 처하든 주인공이 되라)라 하지 않았던가
오늘 산행이 초반부터 체기와 무더위로 인해 힘이 들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걸어라는 뜻이겠지...걷는동안 최선을 다하자
*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는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義湘大師)가 화엄(華嚴)의
요지를 밝힌 글로 1권 1책으로 되어 있으며, 의상의 저서 중에서 유일하게 전하는
책으로 670년 7월 중국 지상사에서 저술한 것이다... 의상대사는 그냥 〈법계도〉라고
했으나 〈화엄일승법계도장〉·〈화엄법계도〉·〈일승법계도〉·〈법도장〉·〈법성도〉·〈해인도〉
등으로도 불린다.
책은 총 210자의 법계도와 이를 해석한 내용으로 구성되는데,이 책을 지은 목적은 ‘이름에만
집착하는 무리들에게 무명의 참된 원천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법계도는 7언 30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글은 〈화엄경〉의 근본정신과 깨달음의 과정을
설명한 것으로 〈화엄경〉의 정신을 가장 간결하게 요약한 명저로 손꼽힌다.
주석서로는 의상의 제자들이 편찬한 〈화엄일승법계도기총수록〉, 균여의 〈일승법계도원통기〉 등
여러 권이 전한다.
삼봉산 정상이 거의 다온듯 싶다
삼봉산(三峰山:1,255.0m:11:22)
경남 거창군 고제면과 전북 무주군 무풍면의 경계에 있는 거창의 진산으로
거창 고읍지 및 조선환여승람 거창군 산천조에도 ‘삼봉산은 거창 북쪽 오십리에
있으며 무주로부터 대덕산 서쪽가지라 적혀 있으며, 해발 1,255.0m의 거봉(巨峰)
으로 봉우리가 셋이라서 삼봉(三峰)이란 이름을 얻었으며, 덕유산 향적봉에서 바라
봤을 때 이 봉우리가 뚜렷한 ‘山’자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 가운데 어느 한 봉우리를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산세를 지니고 있어
소금강이라 부르기도 하는 삼봉산은, 정상의 주봉을 중심으로 투구봉 노적봉 칠성봉 신선봉
석불바위 장군바위 칼바위 등으로 이름 붙은 자연산경과 금봉암(金鳳庵)이 어우러져,
소금강의 신비경을 연상케 하며, 정상부가 석불 바위와 장군바위, 칼 바위의
세 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멀리서 보면 그 모습이 마치 연꽃
봉우리같이 보인다고 한다.
거창과 무주를 경계 짓는 삼봉산은 이 같은 덕유연봉(德裕連峰)이 시작되는 첫 머리봉.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삼봉산을 ‘덕유원봉’이라 부르며 자긍심을 내보이기도 한다.
금봉암의 바위 샘물과 관련하여 천지인(天地人)을 우러른 삼신사상(三神思想)과 인연이 깊다.
삼봉산의 안내판에 의하면 삼봉산은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
졌다고 하여 삼봉산이라고 하며, 산경표 등 예전에는 이곳부터 덕유산이라고 하여
덕유 삼봉산, 덕유산 삼봉, 덕유 원봉 등으로 불렀는데, 이는 소백산국립공원에
위치한 부석사의 입구에 태백산 부석사라고 쓴 것과 같이 덕유산의 범위를
매우 넓게 본 것을 알 수 있다.
인증샷
舊 정상석은 덕유 삼봉산(德裕三峰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멀리 덕유산에서 보면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정상에는 3등 삼각점(무풍 311)이 있다
덕유산에는 4개의 덕유산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있는 셈인데
삼봉 덕유산(1255m)과 향적봉이라고 부르는 북덕유산(1614.2m),
가장 터프한 모습으로 덕유의 남쪽을 맡고있는 남덕유산(1507.4m),
서봉이라고도 불리는 장수 덕유산(1496.5m)이다
삼봉산 정상 삼각점(△무풍 311)
삼봉산 정상에 도착하니 조금전 나를 추월해간 대간꾼들이
나에게 방(자리)을 빼주고 소사고개으로 향한다...그늘이 없는
삼봉산 정상에 잠깐 머무는 사이에 얼마나 더운지 숨이
막힐 지경이다...사진 몇 컷을 찍고는 나역시 서둘러 길을 나선다
삼봉산 정상의 등로에도 예전에 3번이나 걸어면서 못 본듯한 산죽길이 펼쳐진다
무명봉(11:30)
삼봉산은 산 아래에서 보면 정말 멋진 암릉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보이는데 정상의 등로에서 만나는 삼봉산 능선으로 그저 밋밋한 陸山이다
무명봉을 지나니 등로로 안 보일 정도의 산죽길이 펼쳐지고...
예전에 까칠하게 걸었던 험했던 암릉구간에는 이렇게 고속도로(?)를 만들어 놨다.
최악의 컨디션으로 길을 걷는 산꾼에게는 더없이 고마울뿐이다
등로 주변의 암릉구간 사이에는 산오이풀꽃이 서서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데 걸으면서 사진을 찍다보니 많이 흔들렸는데
마치 Out focusing 기법으로 촬영한 것처럼 보인다
서북쪽을 바라보니 남쪽의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에서 뻗어내린
골짜기 사이 사이로 펼쳐지는 무풍 십승지가 한 눈에 보인다.
내가 지맥길을 마무리하고 꼭 걸어보고 싶은 곳이 십승지인데
2015년 11월에 풍기 금계촌 십승지를 끝내고 못 걸었는데 그때까지
체력이 우째될 지 모르겠다.
* 십승지(十勝地)란 천지 대개벽이 일어날 때 재앙을 피하기에 좋은 10군데의
지역을 말하는데 정감록이나 격암유록에따르면 가까운 미래에 엄청난 천재지변이
일어나 인간은 끔찍한 질병과 굶주림, 추위와 더위, 공포에 시달리게 되고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함으로서 인류는 절멸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십승지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러한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목숨을 보전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으며 자손이 끊기지 않고 후세에까지 보존될 것이라고 하여 재난을
피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십승지의 정확한 위치는 책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십승지를 언급한 책은 <정감록>, <남서고 비결>, <남격암 산수 십승보길지지>, <감결>, <징비록>,
<운기구책>, <유산록> 등 60여종이 있는데, 이 예언서들은 파자(破字)등으로 기록하여 이해하기
어렵고 표현 또한 직설법이 아닌 우회적으로 하여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또한 책을 쓴 저자와 시기가 불분명한데 당시에는 이러한 책들이 나라와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라하여 소지하거나 배포하는 것을 금한 금서(禁書)였기 때문이다.
또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기에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쓴 필사본이기 때문에 쓰는 사람에 따라
실수든 의도적이든 내용을 누락 삭제하거나 첨가하여보충하였기 때문에 똑같은 책이라도 내용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십승지에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는데, 십승지를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라 하여
흉년, 전염병, 전쟁이 들어 올 수 없는 곳이라고 하며, 십승지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등 명산에 자리잡고 있으며, 산이 높고 험하여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되어 있는 곳이다.
이러한 십승지가 있다고 하는 곳은 다음 열 곳이다.
1. 영월 정동 상류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연하리 일대)
2. 봉화 춘양 일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일대)
3. 보은 속리 난증항 일대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 화남리 일대)
4. 공주 유구 마곡 두 강 사이 (충남 공주시 유구읍 사곡면 일대)
5. 풍기 차암 금계촌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대)
6. 예천 금당동 북쪽 (경북 예천군 용궁면 일대)
7. 합천 가야산 남쪽 만수동 일대 (경북 합천군 가야면 일대)
8. 무주 무풍 북쪽 덕유산 아래 방음 (전북 무주군 무풍면 일대)
9. 부안 변산 동쪽 호암 아래 (전북 부안군 변산면 일대)
10. 남원 운봉 두류산 아래 동점촌 (전북 남원시 운봉읍 일대)
데크목 계단을 따라서 걷다가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가니...
1,263.4m봉 아래에 있는 구조이정목이 보인다
1,263.4m봉(11:37)
삼봉산중에 한 봉우리인 1,263.4m봉에 올라선다.
이곳이 조금전에 지나온 삼봉산의 主峰보다도 더 높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대간꾼의 띠지 하나도 없는 홀대받는 봉우리다
예전에는 직진으로 이어지는 암릉구간으로 향했는데 길이 없어서
왔던 길로 되돌아 내려간다
조금전에 지나온 삼봉산의 주봉을 바라본다
데크목 계단을 따라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이곳은 봄에오면 야생화가 지천으로 널려있고 종류도 많은 대간길인데
우찌 우찌하다보니 시기를 놓쳐 버렸는데, 여름철인데도 꽤많은 종류의
야생화들이 눈에 띤다...며느리밥풀, 참취꽃, 산수국, 동자꽃, 긴산꼬리풀 등등
산수국...생존을 위한 벌들을 유인하기 위해 헛꽃(무성화)과 참꽃(유성화)의
완벽한 하모니는 가히 환상적이다...식물도 이럴진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은
남을 비방하고 약점을 들춰네 온갖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추악한 형태가
역겹기만 하다...세속의 지저분한 잊어버리기에는 산만큼 좋은곳이 없는듯 하다.
예전에는 1,263.4m봉에서 직진하여 저 암봉으로 로프를 타고 내려왔는데
지금은 사면 등로로 안전 계단을 설치하는 바람에, 지금은 대부분의 대간꾼들은
1,263.4m봉도 오르지 않고 계단으로 통과하는 모양새다.
범여는 그래도 1,263.4m봉을 올라갔다 되돌아 내려오긴 했다.
이젠 범여도 점점 산꾼이 아닌 野性을 잃어버린 등산객이 되어가는 모양새다.
그러나 어쩌랴!...세월앞에 장사없다고 했듯이 가는 세월앞에 체력은
바닥나니...이제는 맘만 있을 뿐, 몸이 안 따라주니 방법이 없구나...
암릉구간의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에서 만난 암릉...浮石인가?...아님 通天門인가?
안부(11:42)
안부를 지나서...
암릉구간으로 올라간다
암봉(11:47)
여름철 綠陰으로 인해서 그렇지 주위 조망은 기가 막힌 곳이다.
왜 이곳을 소금강이라 부르는지 이해가 된다
여름 산에 오르다 / 정심 김덕성
곁에만 있어도
흐뭇하고 시원한
볼수록 다정다감한
그대 품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고
하늘에게 포근히 감싸여
땅을 품은 채
우거진 숲을 이루어 놓으며
산사람들을 포근히
넓은 가슴으로 품고
사랑해 주는
사랑하는 그대
아름답고 강인한 마음으로
늠름한 자태로
무언의 사랑을 베푸는
온정어린 넓고 장엄한 그대
사랑과 소망을 주는
그대가 좋아
그대 앞에 섰노라
조망바위(11:48)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무주 구천동(九千洞) 계곡
구천동의 지명은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인 삼한시대 때부터 9,000명의 호국무사들이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주둔했던 곳 즉, 구천인(九千人)의 둔지(屯地)라는 의미의
‘구천둔(九千屯)’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변해 ‘구천동(九千洞)’이 됐다고 한다.
조선시대 임훈(林薰:1500~1584:조선 중기의 문신·주자학자)이 1552년 덕유산을 오르고 쓴
‘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峰記등덕유산향적봉기)'에 따르면, ‘구천동은 삼한시대부터
9,000명의 호국무사가 수련을 하며 살았다’ 고 해서 그들의 ‘둔지’라는 뜻에서 ‘구천둔(九千屯)’
이라는 기록이 있다.
구천둔(九千屯)’에서 둔(屯)이라는 글자의 ‘진칠 둔’은 이곳에 주둔했던 군대가 사병이 아닌
국가가 인정한 군대였다는 증거로, 무주군 설천면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의 원래 지명이었다고
하는데, 9,000명의 호국무사가 아침에 밥을 짓기 위해서 쌀을 씻은 물이 눈같이 하얀 내(川)를
이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설천면(雪川面)이다.
등로 우측 아래로는 거창군 고제면 봉산리 마을이 한 눈에 보이고
그 뒷쪽은 초점산에서 이어지는 황강(신산경표상:수도)지맥 능선이
이어지고, 맨 뒷쪽에 보이는 산이 10여년전 걸었던 수도산이다
암릉구간의 숲으로 들어섰다가 빠져 나오니 데크목 조망대가 나오고
예전의 암릉구간을 힘들게 지났던 곳에는 데크목 조망대를 설치해놔서
오늘은 양넘 지갑줏듯이 편하게 대간길을 통과한다
데크목 조망대(11:50)
조망대에서 바라본 거창군 고제면(高梯面)의 산그리메
고제면(高梯面)은 경상남도 거창군의 북쪽에 위치한 면으로, 북서쪽은 전라북도
무주군, 북동쪽은 경상북도 김천시와 닿아 있으며,동쪽은 웅양면, 서쪽은 북상면,
남쪽은 주상면 등에 접한 면에 속한 농산리(農山里)의 입석마을 서쪽에는 개명천이
흘렀는데, 어느 도승이 큰 돌다리를 놓아 건너게 하였다는 데서 '높은 다리[高梯]'라는
지명이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거창)에 "북쪽으로 처음이 35리, 끝이 60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군 북쪽 30리에 역원인 고제원(高梯院), 군 북쪽 40리에 읍창인 고제창(高梯倉),
그리고 고제원의 북쪽에 고제교(高梯橋)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해동지도』(거창)에는
북서쪽으로 안음·무주 등과의 경계에 고제면이 묘사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거창 읍치 북쪽으로 이어지는 도로에 고제가 창고로 나타난다.
『호구총수』에는 북면 고제(北面 高梯)에 성초리·와룡리 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신구대조』의 거창군 고제면에는 농산리·궁항리·개명리·봉산리·봉계리의 5개 리가 있다.
『구한국행정구역일람』에는 농산·온곡·산양 등 16개 리가 나타난다.
데크목 조망대에서 맞은편을 바라보니 가야할 초점산(우)과 대덕산(좌)은
멀게만 느껴지고, 아랫쪽 좌측은 전북 무주군 무풍면과 경남 거창군 고제면
봉산리를 경계로 道界를 이루는 소사고개가 평화롭게만 보인다.
난 지금 滯氣로 인한 최악의 컨디션으로 무더위와 死鬪를 벌이고 있는데
저렇게 한가로운 모습을 보니, 한결 맘이 편해지는 느낌이다
초점산 능선에서 우측으로 눈을 돌리니 구름을 이고있는 수도산
뒷쪽으로 구름속에 묻혀있는 법보종찰 해인사를 품고있는 가야산은
이 산꾼에겐 夢幻的인 분위기로 다가오고 있는데, 육안으로는 흐릿하나
耳目口鼻를 갖춘채로 가야산이 보이나 똑닥이 카메라의 렌즈로는 볼 수
없어서 많이 아쉽기만 하다
데크목 조망대에서 잠시 멈추었던 발걸음을 재촉하며 소사고개로 향한다
삼봉산의 마지막 봉우리를 지나서 급경사로 한없이 내려간다
오두재 갈림길(11:55)
좌측으로는 무풍 십승지로 이어지는 무풍면 삼거리 오두재로 이어지는
능선이고 대간길은 우측으로 꺽어져 급경사로 한없이 내려간다
우측으로 꺽어져 급경사로 내려서니 모싯대가 산꾼을 반긴다
산수국도 이제 슬슬 개화를 시작하고...
분홍색 꿩의다리, 산수국, 참나물 사이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동자꽃이 오늘따라 애처롭고 애잔하게만 보이는구나.
모싯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내리막길에는 암릉구간이라
미끄럽긴하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행여!...다칠까봐 누군가
손가락보다 가는 안전로프를 매어놓아 편하게 내려간다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기름나물꽃(꽃말:행복한 삶)
휴식(12:00~12:10)
내리막길 아래에서 간간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도 있건만
자꾸만 배가 아파도 너무 아프고, 식은땀이 나는데 미칠것만 같다.
하는 수 없이 베낭을 내려놓고, 소화제 2알을 입에 털어넣고 휴식을
취하는데 안내산악회에서 오신듯한 대간팀의 산꾼들이 나를 지나간다.
10분정도 등로에 주저 앉았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여성산꾼 2명이 뭔 얘기가 그리도 많은지 조잘대면서 내려가는데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나도 5년전만 해도 저렇게 다녔는데...
모싯대(꽃말:영원한 사랑)
초롱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에 분포하며,
한국에서는 전국의 산기슭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높이는 40~100cm 정도이며 잎은
어긋나 자라며, 잎은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이고, 꽃은 자주색으로
8~9월에 피며, 연한 부분과 뿌리는 봄가을에 캐어 삶아먹고, 뿌리와 꽃대, 잎은 약용한다
앵초꽃은 지고 씨방으로 변하면서 내년을 기약할 모양이다
소사고개를 향해서 한없이 내려간다
쉼터(12:25)
쉼터에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또다시 시작되는 급경사의 내리막길
정신없이 내려오니 멋진 암봉이 나오고 ...
암봉(12:28)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내려선다
쉬어가기 좋은 펑퍼짐한 바위가 나오건만 조금전에 쉬었기에 그냥 지나친다
902m봉(12:34)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삼봉산1.5km:소사고개 1:해발902m↓빼재 0.5km)
이정표상에 소사고개 0.5km라 표기가 되어 있는데 실제는 1.5km정도 남았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통나무 계단으로 오르는데 이제는
삼봉산에서 내려오는 급경사의 내리막길은 다 끝난듯하다
무명봉(12:40)
내리막길에서 만난 누리장풀(꽃말: 깨끗한 사랑)
누리장나무속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대만과 중국, 한국 등이 원산지이다.
산기슭이나 골짜기의 기름진 땅에 서식하며, 크기는 약 2~5m이고, 식재료로
사용할 때에는 어린잎을 나물로 먹는 것이 보편적이다.
짐승의 고기에서 나는 기름기 냄새를 누린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냄새를 싫어하여 고기를 요리할 때는 누린내를 줄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는데 누리장나무는 이런 누린내가 난다... 물론 동물의 누린내처럼
메스껍고 역겨운 것이 아니라 누린내 비슷한 냄새가 나기는 해도 사람들이 싫어할
정도는 아니며, 누리장나무가 한창 자라는 봄에서 여름까지는 이 나무 근처에만 가도
금방 누린내를 맡을 수 인데, 잎을 찢어보면 냄새가 더 강하지만 꽃이 필 때는
향긋한 백합 향을 풍긴다.
어린잎은 나물로 먹으며, 냄새 성분은 휘발성이 강하여 금방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잔가지와 뿌리는 말려서 민간약으로 기침이나 피부병에 이용하기도 하는데, 근래에는
꽃과 열매를 보기 위하여 흔히 정원수로 심는다.
또 누리장나무 과일에서 추출한 푸른색 색소는 한때 식품첨가물로 쓰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생산량이 거의 없어서 승인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멋진 소나무가 보이고 내려서니 우측에 가건물이 있는 과수원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2:45)
우측의 거창군 고제면쪽은 과수원으로 인해 길이 막혀 버렸으나
좌측의 무주군 무풍면 삼거리 송촌마을로 이어지는길은 뚜렸하다
안부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오르는 철조망에는 대간꾼들의
시그널들이 잔뜩 걸려있다
794m봉(12:47)
가문비나무 조림지 사이의 대간길을 잠시 걷다보니 넓디 넓은 밭이 나온다
이곳부터 밭이 시작되고 소사고개 직전까지 밭으로 가야한다
大幹길은 산 꼭대기만 가는게 아니고 완전히 바닥까지 온 다음에
다시 올라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곳을 지난다...삼봉산에서 한없이
내려왔다가 잠시후에 지날 소사고개를 통과한 디음에 초점산을 향한
오르막으로 올라야 하는 구간이다
가야할 초점산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지금 컨디션으로는 소사고개를 지나 초점산~대덕산~덕산재로
가는 길은 좀 무리일 듯 싶다...그래 무리하면서 걸을 일이 있나...
안되면 다음에 한번 더 오면 되제...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다’
바로 ‘우주의 법칙’인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인데, 이는 직계 혹은
방계(傍系(?:어떤 분야에서 주류를 벗어나 있는 것)를 통해 유사한 말들을
수없이 만들어 내고 있다.
‘좋은 일 뒤에는 항상 나쁜 일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집안을 들여다보아도 밝은 면이 있고 어두운 면이 있다’,
‘삶에 곤란이 없으면 자만심이 넘쳐 남의 사정을 잘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등등의 고상한 말이 있는가 하면, ‘잘 나갈 때 방방 뜨지 말고 추락할 것으로 조심해라’,
‘있을 때 잘해’와 같은 속된 표현도 있는데, 다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삶의 법칙’이라 하겠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은 바로 ‘계실 때 잘해’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대간길 밭에서 바라본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鳳溪里)의 모습
봉계리는 거창군 고제면의 최북단에 있는 법정리로, 북서쪽으로는 전라북도
무주군에 접해 있고, 북동쪽으로는 경상북도 김천시에 접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거창군 웅양면에, 남쪽으로는 거창군 고제면 봉산리에 접해 있으며, 봉계리에는
원봉계(元鳳溪) 마을, 원기(院基) 마을, 탑선(塔仙) 마을, 소사 마을, 지경(地境)
마을 등 자연 마을이 있다.
봉계리의 지명은 원봉계 마을에서 따온 것으로 원봉계 마을은 본래 마을 근처
골짜기마다 불당이 많아서 당골로 불렸는데, 구한말 동학 혁명 당시 이곳에 살던
하종호(河宗浩)가 치안 유지에 공을 세웠다 하여 하종호의 호 봉서(鳳棲)에서
‘봉’ 자를 따서 ‘봉계(鳳溪)’라 고쳤다고 한다.
힘들면 쉬어가요 / 조미하
내 몸이 내 마음이
언제나 건강할 수는 없잖아요
삐걱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잠시 쉬어가면 될 것을
그냥 방치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모든 게 귀찮아지고
삶의 의욕도 잃게 되어
정신마저 황폐해져 가는 걸 느끼지요
많은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지 말고
신호가 오면 쉬어가세요
몸과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곳을 찾아
그냥 좀 쉬세요
시간과 상황이
안된다고 하지말고
내가 건강해야
세상도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밭 가장자리로 이어지는 대간길은...
밭을 버리고 숲속으로 들어선다
숲으로 들어서니 대간꾼들이 걸어둔 시그널들이 보이고...
소나무숲 사이를 걷지만 워낙 더운 날씨 탓인지 숲에 들어와도 시원한줄 모르겠다
안부(12:58)
갈림길(13:01)
직진으로 가면 소사고개에 설치된 생태통로로 연결되는데
등로는 막혀있고, 대간꾼들의 시그널들이 우측 아래로 걸려있다
임도(13:02)
임도를 따라서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가야할 초점산(삼도봉)과
대덕산이 보아는데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올 여름에 가장
더운 날씨에 폭염경보까지 내려진 상태에서 체기로 인한 컨디션
저하로 인해 저 곳을 오를 자신이 없다...산에만 오면 눈빛이 달라지는
범여는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이제 자꾸만 자신감이 떨어지는 산꾼으로
변해간다...過猶不及(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음)이라 하잖는가...
1089번 도로에 서 있는 백두대간 안내판
처음 계획했던 덕산재까지의 산행을 포기하고 소사고개에서
산행을 종료하기로 맘을 먹으니 편하다...그래 담에 한번 더오면 되제...
소사고개(少砂峴:690m:13:04)
경남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 소사동에 있는 고개로 1089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예전엔 없었던 생태통로가 새로 생겨서 도로로 끊어졌던 대간길은 이어졌지만
정작 대간꾼들은 통과할 수 없게 막아놔 버려 도로로 내려와서 우회를 해야한다.
옛 지명은 도마재(都麻峙), 도마현(都麻峴)으로 불렸으며, 또 다른 기록으로는
호랑이에 죽은 귀신(창귀:倀鬼)에 제사를 올리는 호식총(虎食塚)이 있어, '산맥이'라
불리우는 산제의 한 형태로 행사를 이어오고 있으며, 대간 산꾼들에게는
소사고개로 알려져 있다.
소사고개는 소사마을에서 유래되었으며, 고갯마루가 항상 바람에 씻기어 모래가
희고 깨끗하다고 해서 “소사”라 불렀다고 하며, 충청도를 아우러는 삼남대로에서
소사고개는 문헌이나 지도에서 중요한 고개로 등장하였지만, 현재는 도로가
시설되고, 옛길은 사라져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현재는 소사고개가 전북과 경남의 경계가 아니지만, 과거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를 이루던 이루던 지역으로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기도 한 곳이다
소사고개 생태통로를 지나서 탑선수퍼로 향한다
탑선수퍼 가기 직전에 만난 소사마을 표시석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에 있는 소사마을은 집집마다 마루바닥에 가는(細) 모래가
깔리는데 일년내내 미풍이 불어 쌓여있는 모래가 모두 날아가 기쁜 마음으로
소사현(笑沙縣)이라 불렀다고 한다
탑선수퍼 맞은편에 있는 소사고개 안내판
현재는 마을 이름을 따서 소사 고개로 부르지만
원래의 이름은 경계선 이라는 의미의 '지경령(地境嶺)'이다.
다음 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하고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고
션한 맥주 한잔을 하려고 탑선수퍼로 향한다
탑선수퍼(13:06~13:25)
탑선수퍼로 들어가니 나를 추월했던 안내산악회의 대간팀의
마지막 산꾼들이 이곳에서 휴식을 끝냈는지 초점산을 향한
길을 나서면서 나에게 자리를 비워준다.
나야 산행을 끝냈으니 이제 급할것도 없겠다...여유로운 마음으로
마당에 있는 수도가에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사실 산에서
아무것을 먹지 않아 배가 엄청 고파서 라면이라도 한 그릇 사먹을까
생각했지만 체기로 인한 엄청난 고통이 겁이나서 포기를 하고 맥주 한잔을
하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후에 무주로 가기 위해서 좌측의 부흥마을로 향한다
탑선수퍼를 나서면서 뒤돌아 본 삼봉산의 모습
소사마을에 있는 수퍼이름이 왜 하필이면 탑선이란 지명일까?
아마도 이 집 쥔장이 탑선마을 출신인가 보다..탑선마을은
생태통로 우측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에 있는 탑선(塔仙)마을은 옛날 죽산전씨(竹山全氏)가
마을을 열었다 하며, 마을앞에 높이 1m의 2층 석탑이 있어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동쪽 원탑선을 “탑서이˝라 하고, 서쪽에 소사, 북쪽에 지경이
있는데 이 세 마을을 통털어서 “탑서이˝라 부르며 대덕산과 삼봉산 사이에
있는 해발 700여m에 고냉지대 마을이다
부흥마을로 가는 길 주위에는 사과밭들이 많이 보인다.
지대가 높은 이곳은 거창사과로 유명한 곳이다
산 아래 펜션이 보이고, 좌측으로 살짝 휘어져 1,089지방도를 따라 내려간다
지경마을버스 정류장(13:28)
지경((地境)마을 입구(13:31)
경남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에 속해 있는 마을로 전북 무주군 무풍면 덕지리
부흥마을과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전북과 경남의 道界에 걸쳐있는 마을로
거창군의 최북단에 있는 지경 마을은 서쪽 산지의 골짜기 쪽에 있으며 옛날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고, 현재는 영호남의 경계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경상도 땅 안에 있으므로 "지경내"라고 하며 장포 (長浦)라고도 썼다.
옛 기록에는 이곳이 생초령(省草嶺) 이라는 지명으로 되어있는 자료도 보인다
우측으로 올라가면 초점산으로 올라가는 대간길로 이어지는 농로로 연결되어
있는데, “황강(黃江)발원지 가는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황강은 거창군 고제면 삼도봉(초점산) 남사면에서 발원하여 합천군을 중심으로
흐르는 하천으로, 거창읍을 거쳐,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거창 위천과 합류하여
합천호를 이룬후, 합천읍을 지나 합천군 청덕면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황강 지명은 '黃'의 의미가 크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설이 있으며, 옛 삼가현
(합천군 삼가면 일대)의 황산(黃山)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조선시대 초계에서는 황둔진 또는 황둔강이라고도 하였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합천)에 "남강이 동쪽으로 흘러 초계군 경계에 들어가서 황둔진이 된다."라는 관련 기록이 있다.
합천에서는 예전에 남강-앞강으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서쪽에서 흘러온 황강이 고을
남쪽을 휘돌아 흐른다는 것에서 지명이 비롯되었으며, 황강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에서는 감물창진이라 하였고 문헌상 '영호수'라는 이름도 보인다.
황강 일대는 고대에 가야와 신라 사이의 국경지역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세종 때 황산강 상류에서 황룡(黃龍)이 물속에 나타났으며,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또 합천 고을 동쪽 13리에 견천(犬遷) 또는 개비리
(개벼리)라는 황강변의 벼랑이 있는데 위는 절벽이고 아래는 깊은 못으로서 꼬불꼬불한
잔도(棧道)였다고 하며, 이곳에 길이 생긴 것은 합천과 초계 고을에 사는 암수 두 마리의
개가 서로 만나기 위하여 다니다가 벼랑에 길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지경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대덕산의 모습
지경마을에서 한발짝만 내려가면 경남(거창)에서 전북(무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소사 고개를 지붕 삼아 고개 양편에서 두런두런 한데 어울려 살아온 소사동,
지경내, 부흥동 등 세 마을은 전라도와 경상도로 두 동강난 상태다.
마을 사람들은 도경계로 삼은 도랑물도 나눠. 마시고 경조사에 서로
부르는 것은 물론 친목계함께 할 만큼 내내 가까이 지내왔는데도,
경계선의 봉계리(거창군 고제면) 이장 박봉록(71) 씨는 "부흥동에는
재 넘어 소사동(거창)에 땅을 갖고 있어 농사지으며 세금을 거창군에
내는 출입 경작민도 여러 사람 된다"라고 말했다
도 경계선이 지나는 부흥동(무주군 무풍면) 의 버스 정류장을 보면 더 답답하다.
거창과 무주의 시내버스가 각각 예까지만 운행하고 모두 차를 돌려 돌아간다.
삼도 화합을 기원하는 기념탑을 세운 삼도봉이 그리 멀지 않고 매년 10월이면
삼도 화합 행사까지 열지만 행정은 이렇듯 거창과 무주를 단절시킨다
출처: 백두대간 즈려밟기 ...동아일보(2005.03.17)
유일한 인증샷
무풍땅에 들어서면서 바라본 삼봉산의 모습
부흥버스 정류장(13:35~45)
무주를 가기 위해서는 탑선수퍼에서 이곳까지 1.4km를 걸어서 무주군 무풍면
덕지리에 있는 부흥마을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오면서 아스팔트 도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인해 얼굴이 다 익는듯한 느낌이고, 조금전에 깔끔하게
씻고, 갈아 입었던 옷은 다시 땀으로 범벅이 되어 버렸다
부흥마을 버스 정류장의 시간표
이 버스 시간표는 외지인들에게는 알아볼 수가 없다
더위에 지쳐서 버스정류장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부흥마을쪽에
트럭 한대가 내려오고 있어서 염치불구하고 손을 들었더니만 삼거리
내리막길로 내려가다 말고, 차를 세운다.
죽기살기 쫒아가서 산행을 하다가 급체로 인하여 컨디션이 무쟈게
않좋다고 사정을 하면서 무주가는 버스타는데까지만 태워 달라고
사정을 했더니만 자기가 지금 읍내에 농자재를 사러가는 중이라
하면서 타라고 한다...貴人의 덕분에 터미널까지 편하게 왔다
이 공덕 生生世世 복받을깁니다
무주공용버스 터미널(14:45)
무주터미널에 도착하여 무주에서 서울 남부터미널로 가는 15시 35분
버스표를 구입하려니 매진이라서 표가 없다고 한다...꿩대신 닭이라고
15시 30분에 대전으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고는 화장실에 가서 다시
한번 씻고는 터미널 안에 있는 편의점에 들려서 가스활명수 하나를
사서 마시고, 아이스크림을 하나서서 매표원에게 주면서 서울가는
취소표가 나오면 달라고 하면서 대합실에서 멍때리기를 하고 있는데
15시 25분이 되어도 서울가는 취소표가 나오지 않아서 포기를 하고
대전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무주발 → 대전복합터미널행 버스표
서울가는 버스표가 매진되어 대전가는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졌다가
버스가 대전터미널에 도착하여 정차하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난다
대전복합터미널(16:25)
무주에서 가스활명수를 사먹고 50여분간 버스에서 잠을 푹 잔 탓인지
속이 한결 편한데, 갑자기 배가 엄청 고파온다...시간적 여유도 있고하여
근처의 죽집에서 죽 한그릇을 사먹고는 서울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플렛홈으로 향한다
대전복합터미널발 → 서울 경부행 버스표
폭염과 급체로 인해 개고생을 하면서 치욕(?)스런 중탈을 했지만 후회는 없다.
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인생의 지혜 하나를 배운다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過猶不及의 의미를...
'♣ 백두 대간및 9정맥 후기♣ > 白頭大幹 4차 북진(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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