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4년 12월 01일
☞ 산행날씨: 약간 흐린 날씨에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11.km / 5시간 소요
☞ 참석인원: 나 홀로 산행
☞ 산행코스: 호령고개- 고개- ㅜ자 갈림길- 안부- 갈림길- 칠봉산- 갈림길- 하미기재
삶愛터田 농장입구- 506.6m봉- 안부- 묵은 임도- 피낭봉?- 농장- 묘지
갈림길- 임도- 고개- 안부- 갈림길- 갈림길- 조망바위- 거산- 안부
539m봉- 525m봉- 무명봉- 509.0m봉- 무명봉- 안부- 모방골 갈림길
추산- 안부- 470.8m봉- 안부- 무명봉- 신반재- 무명봉- 안부- 455.1m봉
배티재
☞ 소 재 지: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수륜면, 용암면
지난주에 양양 남(신산경표상:만월)지맥을 걸으면서 산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씩
붙어가는 느낌이다...원래 계획은 토요일 저녁에 해남으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
지난 2월에 중지한 화원지맥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토요일 오전에 끝내기로 한
작업이 끝나지 않아서 부득히 포기를 하고 어디를 갈까하고 가지않은 지맥길을
검색하던 차에 지난 7월에 급체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포기했던 회천(칠봉)지맥
2구간의 남은 구간을 하기로 하고 간단하게 베낭을 챙겨놓고 잠자리에 든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서울역(04:55)
서울역발 → 김천구미역행 ktx 열차표
조금 이른 시간에 서울역에 도착하여 예매한 표를 찾은 다음에 대합실에
잠시 않아 있다가 김천(구미)역가는 열차에 올라 정확한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여 해우소에 들려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역 대합실을 빠져 나온다
김찬(구미)역 ktx,srt 열차 시간표
이곳은 itx와 무궁화 열차는 정차하지 않는다
김천(구미)역(07:00)
오늘이 이곳을 2번째 방문이라 처음처럼 버벅거리지 않고 성주로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김천에서 출발하는 14번 버스가 도착한다는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였고, 버스를 타고 성주로 향하는데 지난
7월처럼 오늘도 성주까지 버스를 혼자서 타고 가는데, 버스 요금은 지난 7월에
비해서 절반도 안되어 괜스레 미안하기만 하다...사연인즉, 경북과 대구가
광역권으로 묶기위해 요금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
지난 7월에는 성주까지 버스요금이 4,300원이었는데, 오늘은 1,500원이다
돈을 적게내는 나야 좋지만, 결국 부담은 민초들에게 세금으로 돌아올테니,
결국에는 자기 닭 잡아먹는 꼴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씁쓰레하다
성주버스터미널(08:20)
김천구미역을 출발한 버스는 45분만에 성주터미널에 도착한다.
이 버스 정류장은 성주를 기점으로 김천, 구미, 대구와 성주 군내로
운행하는 완행버스 정류장이고, 직행과 고속버스 정류장은 외곽에
따로 있다...이곳에 내려 택시를 타고 호령고개로 향한다
호령고개(狐峴:08:35)
성주군 대가면 금산리와 수륜면 송계리를 잇는 고개로 913번의 지방도가 지나가며,
칠봉산의 서쪽에 위치하고, 개화대천과 대가천의 분수계 역할을 하는 고개로 정상에는
버스정류장과 수륜면 안내판이 보이고 삼거리 좌측으로는 용암면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있다.
호령고개가 처음 기록된 사료는 「조선지도」로 호현(狐峴)이라 기재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에는 호령(狐嶺)이라 기재되어 있으며,대리면에 있다고 되어 있는데
지명유래를 보면 호령고개는 ‘고개가 여우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난 7월에 급체로 인해 땅고개에서 이곳 호령고개까지 왔다가 통증 때문에
산행을 포기 호령고개를 6개여월만에 다시 왔다...버스정류장 옆에있는
애기똥풀이 산행 시작도 전에 충심어린 충고를 하는 듯 하다.
제발!... 몸뚱아리 좀 아끼시라고...
산행을 시작하다(08:45)
절개지 뒷쪽으로 마루금이 이어지나 그냥 편안한
도로를 따라서 칠봉산으로 향하는 산행을 시작한다
지난 여름에 개고생을 하면서 지나왔던 374.4m봉을 뒤돌아 본다.
한없이 유순하게만 보이는 저 봉우리가 그날따라 왜 나에게
까칠하게 굴었는지 모르겠구나
회연서원을 비롯한 이정표를 바라보면서 가니 조금전에 절개지로
인해서 오르지 못했던 마루금에 복귀하는데 민가한 채가 보인다
* 회연서원(檜淵書院: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51호)은 성주군 수륜면에 있는 서원으로
1622년(광해군 14)에 지방유림의 공의(公議)로 정구(鄭逑)와 이윤우(李潤雨)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 위패를 모셔져 있으며, 1690년(숙종 16)에 ‘회연(檜淵)’이라 사액을 받아
선현배향(先賢配享)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74년에 정부의 보조와
지방유림의 협력으로 복원하였으며,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6칸의 강당,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신문(神門), 외문(外門), 4칸의 숙야재(夙夜齋),
고사(庫舍), 별사(別祠), 비각, 신도비등이 있다.
사우에는 정구와 이윤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강당은 중앙의 마루,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토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동재·서재는 수학하는 유생들이 거처하는 곳이며, 신도비의 비문은 신흠(申欽)이
정구와 이윤우의 학문·덕행 및 공적을 찬양한 글이다.
고개(273m:08:50)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에서 수륜면 송계리 황새봉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민가 한채가 보이고, 카카오의 지도에는 이곳을 호령고개라고 해놨는데
예전에 민초들이 넘었던 곳은 조금전에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이 아닌
이곳이었던 모양이다.
2차선 도로를 버리고 칠봉산 등산로 표지판이 있는 임도로 올라선다
칠봉산으로 오르는 길은 제도권 등로(?)인지 길은 무쟈게 좋다
회천(신산경표상(칠봉)지맥의 분기봉인 염송봉산과 빌무산, 백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햋빛으로 인한 영향인지 아니면 짙은 박무탓인지
능선의 분간이 잘 안되어 아쉽기만 하다
초겨울 편지 / 김용택
앞산에
고운 잎
다 졌답니다
빈 산을 그리며
저 강에
흰눈
내리겠지요
눈 내리기 전에
한번 보고 싶습니다.
등로에 깔려있는 낙엽은 상당히 미끄럽다
ㅜ자 갈림길(09:05)
좌측으로 대가면 칠봉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칠봉산으로 이어지는
맥길은 우측으로 향하는데, 뜬금없는 성주7경 한개마을 돌담길 팻말이 나온다
한개마을 돌담길은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데 이곳에서 멀어도 한참
먼 곳에 있는데, 이곳에 표지판을 세워둔 이유를 모르겠다
등로 가운데에 성주7경 한개마을 돌담길 팻말과
이정표가 있고 그 뒷쪽으로 칠봉산이 얼굴을 내민다
제7경은 조선 시대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李友)가 입향하여 개척한
한개 마을과 옛 담장으로 성산 이씨 집성 마을인 한개 마을은 전통 가옥과 함께
그 가옥을 둘러싼 담장이 아름답게 어우려져 있다.
경사진 사면에 조성된 마을의 집을 보호하기 위해 비교적 높게 쌓은 외곽담과
주거 건물의 처마보다 낮게 조성되어 시각적 차단과 연속성을 내포하는 내곽담이
한개 마을 옛 담장의 주요 특징이다
성주십경중에 제7경인 한개마을 돌담길
성주십경이란 성주군을 대표하는 상징성과 문화적 우수성,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선정된 명승지를 말하는데, 팔경(八景)은 중국의 소상 팔경(瀟湘八景)에서
유래한 것으로 시대와 지역에 따라 8경, 12경 등으로 선정하기도 한다.
여기서 성주10경은 눈으로 보는 풍광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심미(心美),
역사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제1경: 가야산 만물상, 제2경: 독용산성과 성주호, 제3경: 회연서원과 봉비암
제4경: 포천계곡과 옥계, 제5경: 성밖숲, 제6경 세종대왕 자 태실
제7경: 한개마을 옛 담장, 제8경: 성주역사테마공원, 제9경 성산동 고분
제10경: 성주 참외하우스 들녁
이정표에 적혀있는 칠봉산 정상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09:06)
사부작 사부작 낙엽길을 밟으면서 칠봉산으로 향하는 맛깔나는 길.
홀로걷기에는 너무나 심심하다...범여는 세상살이를 잘못했는지
같이 걸을 동반자가 없기는 하지만, 그리 우려하거나 슬퍼할 일도 아니다.
내 業報이자 運命이려니 생각하고 맥길을 이어간다
조금씩 고도를 높혀간다...며칠전 서울지역에는 기상 관측사상 가장많은
첫 눈이 내렸다고, 매스컴에서 호들갑을 떨면서 난리부르스를 치는데
이곳은 눈은커녕, 서리조차도 않내렸는지, 발걸음을 옮길적마다 먼지가 자욱하다
갈림길(09:14)
우측의 성주군 수륜면 송계리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합류하여
좌측의 칠봉산으로 향하는 길로 향하는데 초반임에도 아직까지
컨디션이 괜찮다...이대로 산행이 끝날때까지 갔으면 하는 바램인데
부실한 범여의 몸뚱아리가 우찌될지는 모르겠다
칠봉산으로 오르기 전에 넓은 공터가 펼쳐지는데, 예전에
밭이였던 느낌이 들지만, 진짜 밭이였는지 알 길이 없다.
썩어 문드러진 나무 계단으로 올라서니...
칠봉산의 정상이 얼굴을 내밀면서 빨리오라고 손짓을 한다
소나무의 도열을 받으면서...
칠봉산 정상에 도착한다
칠봉산(七峯山, 517.0m:09:25~30)
경북 성주군의 대가면 칠봉리와 수륜면 송계리 용암면 죽전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멋진 정상석과 팔각정, 쉼터의자, 3등삼각점이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으로 대성산, 남쪽으로 추산과 이어지며, 대가천과 대조천, 개화대천 등의
분수계 역할을 하는 산으로 서쪽에는 호령고개, 남쪽에는 하미기재가 있다.
조선시대의 사료(史料 )에는 칠봉산이 기록되어 있지 않고, 『조선지지자료』에는
대가면의 전신인 사천면(沙川面)에 있는 산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칠봉산은 봉우리가 7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정상에 서면 멀리는 대구와 왜관 ,가까이는 성주읍을 비롯해 대가면,벽진면,
초전면 등이 한눈에 조망되고 추산을 비롯하여, 김천 염속봉산 , 합천 가야산
등이 조망되는 산줄기는 금오지맥이 염속봉산으로 흐르는 회천(칠봉)지맥이
칠봉산 어깨에서 두 갈래로 나누어 지는데, 한 줄기는 대황산 대성산으로 흐르고,
한 줄기는 성암산으로 흐르는데, 이 두 줄기는 모두 10km~30km에 달하는
대황단맥과 성암단맥이다
칠봉산 북측 아래인 대가면 칠봉리 사도실마을은 독립 운동가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1879~1962)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 김창숙은 임시정부의 주요인물로 8·15해방 후에는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으며, 성균관대학교의 설립자로 1910년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뒤 칩거하며
유학(儒學) 연구에 몰두했는데, 그의 유학적 소양과 한학의 조예는 주로 이 시기에 기반이 다져졌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전국의 유림을 규합하여 '제1차유림단사건'과 제2차유림단사건'을
이끌었으며,이후 활발한 항일운동을 벌였으며, 해방 이후 난립한 유림단체의 통합에 힘썼고,
친일파 유림이 득세했던 성균관을 정비하여 성균관대학을 설립했다.
1953년에는 종합대학으로 승격하고 초대 총장이 되었다.
칠봉산 정상 3등 삼각점(△가야305 / 2001재설)
인증샷
칠봉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성주읍내의 풍경은 웃자란 나무로 인하여
생각보다 뚜렸하게 보이지 않아서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다.
성주10경으로 불리는 성주 비닐하우스 들판 너머로 보이는 금오산과 영암산,
선석산은 멀게만 느껴지는구나...참외하면 성주라 연상할만큼, 전국의 참외
생산량이 절대적이라고 한다
성주의 참외 생산량은 전국의 80% 이상이라고 하니 참으로 대단하다
칠봉산 정상에서 5분정도를 머물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죽전리(하미기)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갈림길(09:35)
직진으로 가면 성암산으로 가는 방향이고, 맥길은 우측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지저분한 임도길을 내려오니 잠시후에 내가 걸어야 할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데, 산이란 곳은 참으로 묘한 매력을 느끼게 만든다
우측으로 눈을 돌리니 갑자기 범여의 입이 쩍 벌어질만큼 멋진
산이 눈 앞에 떡 나타나는데, 5년전에 중국 티베트에 가서 만난
메리 설산을 연상케 할 만큼 멋진 산이 이름하여 가야산이다
가야산은 산이 높아서 그런지 주변의 산들은 눈이 하나도 보이지 않은데
유독 가야산만이 마치 群鷄一鶴처럼 雪景의 멋진 풍광은 갈 길 바쁜 산꾼의 발길을 잡는구나.
가야산에서 가장 높은 칠불봉(1,433m)과 주봉 노릇을 하고있는 상왕봉(1,430m)을
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오늘 산행에 대한 본전을 뽑은 셈이니 더 이상 뭘 바래...
경북 성주군 수륜면과 가천면, 경남 합천군 가야면에 걸쳐있는 가야산(伽倻山)의 최고봉은
칠불봉(七佛峰:1,433m)이고 주봉은 우두봉(牛頭峰:1,430m)이라 불리는 상왕봉(上王峰)이다
가야산의 칠불봉에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가야건국 설화를 간직한 해동팔경 또는
영남의 영산(靈山)으로 예부터 正見母主(정견모주)라는 山神(산신)이 머무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야산 산신 正見母主는 천신 ‘夷毗訶(이비하)’에 감응되어 두 아들을
낳았는데 惱窒朱日(뇌질주일)은 대가야 시조 이진아시왕, 惱窒靑裔(뇌질청예)는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고 전하여 오고 있다.
칠불봉은 가야국 김수로왕이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 許黃玉(허황옥)과 결혼하여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큰 아들 居登(거등)은 왕위를 계승하고 金氏의 시조, 둘째 셋째는 어머니의 성을
따라 許氏의 시조가 되었다... 나머지 7왕자는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야산에서 가장 힘차고, 높게 솟은 칠불봉 밑에서 3년간 수도 후 도를 깨달아 生佛(생불)이
되었다 하며 그 밑에 칠불암 터가 있다는 전설이 유래되고 있다.
예부터 산신이 머무는 가야산은 그 골이 깊고 수려하며 삼재(旱災, 水災, 兵禍)가 들지 않는
해동영지로 일컬어 온 영산이다.
출처 : 신증동국여지승람.한국불교전설 및 불교설화대사전(안내문 전문)
칠불봉 우측에 있는 상왕봉(上王峰:1.430m)은 산의 생김새가 소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오랜 옛날부터 산 정상에 산신제의 공물을 소에 바치고 신성시
해 왔다고 하여 이름을 우두봉(牛頭峰)이라고 하였으며 상왕봉의 '상왕(上王) '은
불교경전인 열반경(涅槃經)에서 모든 부처를 말하는 것으로 불교에서 유래되었다.
국립공원 가야산은 조선 8경의 하나로 주봉인 상왕봉(우두봉)을 중심으로 톱날같은
암봉인 두리봉 남산 비계산 북두산 등 1,000m가 넘는 고봉들이 마치 병풍을 쳐 놓은 듯
산줄기가 이어져 있으며 주봉은 상왕봉으로 경남 합천군에 소재하고 최고봉인 칠불봉은
경북 성주군에 소재하면서 가야산은 동과 서로 이어져 남북으로
경북 성주군과 경남 합천군의 경계를 이루며 합천쪽으로 드리운 산 자락은 부드러운
육산 형태를 이루고 성주군쪽은 험하고 가파른 지형으로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가히 일품으로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가을 단풍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면서 겨울철 눈 덮인 가야산 설경은 그야말로
표현하자면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 아름답다.
법보종찰 해인사를 품고있는 가야산은 내년에는 꼭한번 가보리라
다짐을 하면서 하미기재로 내려서는 발걸음은 아쉽기만 하다
갑자기 하미기재로 내려서는 길은 막히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고개로 내려선다
하미기재(382m:09:45)
성주군 수륜면 송계리와 용암면 죽전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대송로와 좌측의 남작로가
지나는 삼거리로 칠봉산 남단의 죽전리에 속해있는 하미기 마을 아래에서 발원하는
두의천은 용암면의 젖줄이 되어 중심부를 약20km 정도를 관류하여 낙동강에 유입된다.
하미기(하목:霞鶩)마을은 용암면의 서쪽 칠봉산 남쪽 산마루에 있는 고산 마을로
지명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마을 모양이 마치 아침 햇살이 비칠 때 안개가
바다처럼 넓게 피어 있는 속을 오리가 날아오르는 것 같다.”라고 하여 하목이라하였다고 한다
예전에 교통이 좋지않은 시절에는 성주에서 지사, 법산, 덕곡, 인곡의 각 방면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길목이었던 고개라고 한다
맥길은 삼거리에서 용암면 작은리로 표기된 오르막으로 이어지는데
고개 아래에 있는 하미기 마을 뒷쪽으로 칠봉산에서 갈라져 나와
대황산(486.5m)과 대성산(425.4m)으로 이어지는 대황단맥이 보인다
작은리 마을로 이어지는 2차선의 오르막 도로로 맥길을 이어간다
수륜면에 속해있는 작은리(鵲隱里)의 ‘작은(鵲隱)’이란 지명은 마을
동쪽에 있는 까치산(鵲山:571.6m)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작은리의 자연 마을로 거뫼[거산(巨山)]와 산거리(山巨里), 덕골[덕곡(德谷)],
모방골[방동(方洞)], 개티[개고개·개현(介峴)], 배티[배고개]가 있으며, 동쪽
성주군 용암면과 경계인 산마루를 개고개[개현(介峴)]라 하였는데 개티는
여기에서 나온 지명이고, 배티는 개티에서 동남쪽 약 2㎞ 거리의 계곡에
자리 잡은 마을인데 배고개[이현(梨峴)]의 아랫골이라 배티라고 하였다.
맥길은 도로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나 그냥 2차선 도로로 따라간다
선답자들도 그냥 도로로 간 모양이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편안한 길이 많이 이어져 肉身은 좀 편할지
모르겠으나 맥산꾼 특유의 野性을 잃어 버릴까 조금은 걱정이 된다
하미기재 오르면서 헤어진 마루금과 3분만에 다시 조우를 하고...
마루금은 도로를 건너서 다시 산 속으로 올라가지만...
도로를 따라서 가는 편안함을 맛본(?) 범여는 또다시 길을
따라서 가는데, 習이 바뀐다는 건 참으로 무서운 모양이다
산으로 올라간 마루금과 또다시 조우를 하는데
'삶愛터田' 표지판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 삶愛터田' 농장입구(09:53)
명진염소농장과 ' 삶愛터田' 표시석이 있는
전봇대 뒷쪽으로 맥길은 이어진다
도로명 주소가 남작로인 2차선 도로를 버리고 전봇대 뒷쪽의
좌측의 슾속으로 들어간다
산 속으로 들어서자마자 지독한 잡목의 저항은 시작되고,
'걸어서 하늘까지'님의 시그널이 후답자를 격려한다.
지맥길이란 이런건 각오하고 걸어가는 건 기본이라고...
그래 이런 까칠한 잡목의 저항이 있어야 맥길의 진수를
맛볼수 있는거 아닌감 하는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올라서니
준.희 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506.6m봉에 도착한다
506.6m봉(10:06)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은 곳에서 마루금으로 좌측으로 이어지고...
조금을 내려서니 곧바로 또렸한 등로가 맥길로 이어진다
조금전까지는 참으로 편하게 걸었으나 이제는 맥길에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하라는 뜻인가?...맥 산꾼이 언제 이런 길에 쫄았던 적이 있었나.
그래...부딪혀 보는거야...
아침 햇살이 좁은 등로를 비춰주고, 선답자의 시그널이
이렇게 도와주는데 뭘 걱정이람...조심스레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0:09)
아마 이곳 아래에 농장이 있는 모양이나 농장은 보이지 않고
안부 사이로 내려가는 P.VC 파이프만 보이고, 갑자기 여러 마리의
개쉬키들이 떼창으로 짖어대는데 정작 개쉬키들은 보이지 않는다
묵은 임도(10:11)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왔던 길을 뒤돌아 보는데 조금전에 지나온 칠봉산은 손에 잡힐듯
가깝게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회천(칠봉)지맥의 분기봉인 염속봉산을
깃점으로 빌무산, 백마산으로 이어지는 감천 남(신산경표상:금오)지맥
능선이 실루엣처럼 이어지는데, 저 길을 같이 걸었던 진권아우는 이제
너무 커버려 맨날 해외 원정산행만 다니면서 범여행님은 잊어 버린 모양이다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니 발디딜 틈도 없는 좁은
봉우리에 땅바닥에 떨어진 시그널 2장이 보인다
피낭봉?(518.1m:10:16)
우측 아래에 있는 수륜면 송개리에 피낭재가 있는데 그 윗쪽에
있는 봉우리라서 산여울이라는 분은 피낭봉이라 붙인 모양인데
지도에는 고도 표식조차 없는 무명봉이다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농장이 보이고 여러 마리의 개쉬키들이 지랄발광을 한다
잠시후에 농장 쥔장인 듯한 남자가 나오더니 등산로가 아닌데
왜 다니냐고 하면서 이곳은 사유지이니 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니 넘이야 지랄을 하던지 말던지 나는 내 갈 길은 가야겠다...그러면서
길을 잘못들어 이곳을 내려오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하니, 그때서야 조용하다
농장(10:22)
지랄발광을 하는 개쉬키들...니 넘들도 쥔넘 닮았나?
잠깐이면 지나갈텐데 너무 지랄하지 말거라
농장 아래 임도로 내려와서 잠시후에 오를 거산을 바라본다.
저 산이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산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까칠하게 보인다
묘지(10:25~40)
농장 윗쪽에 문패없는 천년주택(묘지)의 양지바른 곳에서
아침 만찬(?)을 즐긴다...그래봐야 단감 몇쪼가리에다
커피 한잔이다... 貧寒한 산꾼이 이 정도면 괜찮지 뭐...
갈림길(10:45)
15분간의 여유로운 만찬을 끝내고 다시 길을 나선다
능선에 올라서니 등로가 보이지 않아 트랙을 확인하니
직진이 아닌 우측의 내리막길로 맥길이 이어지는데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거산을 바라보며 지저분한 길을 내려서니...
우측에서 내려오는 편안한 길을 만난다
임도(10:50)
갑자기 나타나는 고속도로같은 임도...
오늘 산행은 왠지 양넘 지갑을 줏은듯한 기분이랄까.
편안한 길을 따라서 내리막길로 향한다
고개(10:55)
등로 가운데 자라잡고 있는 뫳돼지 사우나도 만나고...
안부(10:57)
용암면 죽전리 곰죽골에서 수륜면 작은리 덕골로 넘어가는 곳인데
예전에 민초들이 왕래를 했는지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2번째 뫳돼지 사우나...그래 돼지라고 지저분해서야 되겠니.
깨끗하게 씻고 다녀야제...
갈림길(10:59)
우측으로 휘어져 올라가는 넓은 임도를 버리고 직진길의 숲속으로 들어선다
지금부터 오늘 산행중에 처음으로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되지만
그리 겁이 나지 않는구나...사실 급경사의 이런곳을 만나면
겁부터 먼저 나면서 심장이 터질듯한 고통이 먼저 찾아 오는데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건지, 오르막에 대한 자신감인지는 모르겠다
천천히 천천히 급경사의 오름길을 오르는데
오늘따라 신기할 정도로 수술 부위의 통증이 없다.
늘 이런날은 있으면 울매나 좋겠노...
몸만 깨끗이 씻는게 아니라 운동도 열심히 하는구먼.
그래 살아가면서 최고는 건강이여...근데 니 건강을
지키려고 나무는 못살게 굴지마라.
갈림길(11:10)
방금 사우나를 끝냈는지...
몸뚱아리를 틀고 간 흔적이 뚜렸하다
빡센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잠시 숨을 돌리라는 배려인지
낙엽이 푹신한 완만한 능선에서 쉼호흡을 크게 한번 한다
다시 시작되는 빡센 오르막길
등로 좌측의 천길 낭떠러지 너머로 보이는 멋진 기암(奇巖)이 얼굴을 내민다
다시 시작되는 빡센 오르막길...아직까지는 걸을만하다
곧바로 완만한 등로가 나오면서 편안한 길을 걷는데
맞은편으로 등로가 시원하게 열린다
북서쪽을 바라보니 아침에 지나온 칠봉산이 잘가라고 이별을 고하고
그 뒷쪽으로 실루엣처럼 펼쳐지는 염속산~염속봉산~빌무산~백마산으로
이어지는 감천 남(신산경표상:금오)지맥 능선이 큰 형님처럼 뒷배를 봐주는
형국이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조망바위쪽으로 향한다
조망바위(11:35)
조망바위에 올라서니 박무로 인해 약간 흐릿하게는
보이지만 북쪽으로 보이는 산그리메는 시원하게 보인다
회천(칠봉)지맥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감천 남(금오)지맥을
당겨본다...서쪽으로는 아침에 나에게 게거품을 물면서
사유지에 들어왔다고 지랄하던 쥔넘의 농장과 칠봉산도 보인다
예전 같으면, 니는 남의 땅을 안밟고 댕기나 하면서 싸움판이라도
벌렸겠지만, 이제 古稀의 나이에 그런 사람과 싸워서 뭐 하겠는가...
지나고보면 다 부질없는 짓거린데...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성암산과 용암면 죽전리 곰짓골 마을의 모습
곰지골은 하목 남동쪽으로 1㎞ 떨어진 계곡에 자리한 마을로 오래전 이곳에 절을 지은
주지가 절 이름을 짓기 위해 고민하던 중, 어느 날 밤 곰이 절에 들어오는 꿈을 꾸다 잠을
깨어 밖을 내다보니 정말로 곰이 어슬렁어슬렁 절 안으로 들어오므로 절 이름을 웅곡사
(熊谷寺)라 하였고, 이 절 이름을 본떠 마을 이름을 곰지골 또는 웅곡(熊谷)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성암산(聖岩山:556.1m)
성주군 용암면 마월리와 죽전리·중거리·계상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북쪽의
대성산과 마주보고 있으며, 이 산의 동쪽에서 발원한 계류들은 신천으로,
서쪽에서 발원한 계류들은 대조천으로 흘러가는데, 성암산의 동쪽에는
성암사라는 절이 있으며, 서쪽에는 성산청소년수련장이 조성되어 있다.
성암산은 조선시대의 사료에 기록이 없으며, 『조선지지자료』에 초곡면(草谷面)에
위치한 산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1914년에 초곡면에 조곡면(租谷面) 등을 합쳐서
성암면(聖岩面)을 만들었는데, 이때 이 산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보인다.
성암산은 이 산에 ‘성스러운 바위’ 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동쪽 아랫쪽으로는 세목저수지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영남의 젖줄기 역할을 하면서 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과
대구시내의 아파트들이 육안으로는 보이나 똑닥이 카메라는
잘 잡히지 않아서 아쉽구나
조망바위에 잠시 머물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거산(巨山:553.2m:11:37)
성주군 용암면 죽전리와 상신리, 수륜면 작은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멋진 조망바위와 2등 삼가점이 있다...북쪽의 죽전리쪽으로는
까칠한 암릉으로 되어 있으나, 동남쪽으로 한없이 유순한 陸山이다.
산꾼들이 사용하는 맥 지도와 카카오맵에서는 거산으로 표기가 되어 있지만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거산이라는 지명은 없고, 그냥 553.2m 라고만
표기가 되어있어 조금은 혼란스럽다....거산에 대한 자료는 검색해도 찾을길이
없고 우측 아래에 있는 수륜면 작은리에 거산(巨山)마을이 있는데, 아마도
이 마을의 지명을 차용해서 산이름을 지은듯 하나 그건 오직 범여만의 생각일 뿐이다
거산 정상 2등 삼각점(△가야 24 /1988재설)
거산 정상에도 멋진 조망 바위가 있다.
바위에 올라 멋진 산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사람한테서
하늘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만이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이런 경험은 없는가?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앉은
애 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따서
보내주고 싶은 그런 생각 말이다.
거산을 내려서니 등로 가운데에 후손들이 돌보지 않은 묵묘를 만난다
제도권 등로인가?...이곳부터는 구조안내목이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안부(446m:11:42)
용암면에서 설치한 등산안내도에는 거산이란 지명은 보이지 않구나,
이곳에서 기록되어 있는 추산과 성암산보다도 훨씬 높은 산인데도
행정기관조차도 홀대하는 느낌이다
컨디션이 좋으니 범여의 발걸음은 점점 산 속으로
빠져드는 몰입감을 느끼면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향한다
539m봉(11:45)
좌측으로 확 꺽어지면서 내리막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완만한 내리막길 좌.우로 키는 크나 굵기가 가는 소나무들이 도열하여
산꾼을 반기는데 마치 마라토너가 42.195km를 뛰고, 골인 지점에 들어서
운동장을 돌면서 관중들에게 박수를 받는 기분이다
이곳을 걸으려고 열차를 타고 오면서 오늘은 얼마나 개고생을 할까하는
두려움 속에서 산길을 들었지만, 생각보다, 길도 좋고, 컨디션이 좋아서
정말 기분이 좋다...매주 걷는 산길이 오늘처럼만 되었면 하는 바램이다
525m봉(11:48)
고도차가 거의없는 편안한 길을 따라서 룰루랄라...
무명봉(11:55)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오르다가...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은 우측으로 향한다
능선에 올라서서 성주군에서 설치한 구조이정목을 끼고
맥길은 급하게 5시 방향의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꺽어지는
곳에서 몇발자국 앞에 족보있는 509.0m봉이 있다
509.0m봉(11:58)
다시 몇발자국 되돌아가서 우측 내리막으로 향하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509.0m봉을 놓치는 愚를 범할 수 있는 곳이다
묵은 묘지를 지나고...
고사목이 태클을 걸어오지만 오늘 산행에 이런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명봉(12:02)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오니 묘지가 나오고...
맥길은 계속해서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안부(12:05)
안부로 내려서면서 넓은 임도를 만나 추산으로 향한다
모방골 갈림길(12:09)
이정표(죽전리(곰짓골), 추산분기점0.38km) 직진이고 임도는 우측으로
가지를 쳐서 모방골로 향하고 맥길은 직진방향의 추산분기점 방향으로 향한다
수륜면 작은리에 속해있는 모방골(방동:方洞)에 대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임도를 따라서 추산 분기점 방향으로 향하다가...
우측으로 향하는 임도를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선다
서울은 117년만이라나 우째다나 하면서 폭설이 내렸는데
이곳은 눈은커녕 등로가 너무 메말라 먼지가 풀풀나는구나.
코딱지만한 나라에 지역마다 날씨가 변화무쌍하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는구나
그리 힘들지 않게 능선으로 올라서니 등로 가운데에
성주소방서에서 설치한 구조 이정목과 말뚝형 삼각점이
서 있는 추산 정상에 도착한다
지도상에는 표시가 안되어 있는데 윗면에 “+”표시가 있고 옆면 위쪽에 “大三角點”이라
새겨져 있는데 아마도 일제시대 때 설치된게 아직 남아 있는게 아닐까?...
추산(楸山:524.1m:12:22)
성주군 용암면 상신리와 수륜면 작은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성주소방서에서 설치한 구조 이정목과 말뚝형 삼각점, 최근에 설치한 듯한
준.희 쌤의 산패가 산꾼을 반긴다.
조상의 묘가 있는 산을 옛부터 추산이라 하는데, 남평문씨(南平文氏) 의
묘가 있다 하여 추산이라 부른다고 하며.산 주위에 가래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산 지명이라고 한다,
추산 좌측 아래에 용암면 상신리 웃티마을의 서북쪽에 자리잡은 당 안(唐案, 新反)
마을이 있는데 당안은 1700년(숙종 26)쯤 조그마한 연못을 메우고 마을을 만들었기
때문에 못 안이라는 뜻의 당안(溏案)이라 불렀다.
북쪽에 큰 당산나무가 있어 이곳에서 음력 정월 초이튿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위하여
행해졌던 마을 공동 제사인 산제( 山祭)와 동제(洞祭)가 전승되고 있는 마을이다
인증샷
조금씩 고도를 낮추면서 내려가는데 잡목의 저항이 시작되지만
적어도 맥산행을 한다는 산꾼들은 이런 곳에서 투정을 부리면 안되지...
낙엽이 푹신한 내리막길에 직진의 뚜렸한
길을 버리고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추산을 지나면서 다시 등로는 조금씩 까칠해지기 시작하지만
까칠하면 까칠한대로, 편하면 편하대로 걸어야만 해야할 운명의 길...
어차피 내가 선택한 길을 원망하면 걷는다고 해서 누구 대신 걸어줄
길도 아닌데 뭘...
보물찾기라도 하듯 이어지는 지맥길을 걷는 맛도 솔솔하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러 가는 배우는 red carpet을 밟고 시상대로 향했지만,
범여은 오늘 red carpet 못지 않은 푹신한 낙엽을 밟으면서 앞에 보이는
멋진 활엽수들의 도열을 받으며, 470.8m봉 정상을 향해서 걸어간다
안부(12:34)
잡목의 저항을 받으면서 걸어가는 완만한 오름길,
저 분은 걸어서 하는까지 가려면은 꽤많은 시간이
걸릴텐데 괜스레 걱정이 되는구나
470.8m봉(12:38)
선답자의 산행기에 등장하는 준.희 쌤의 산패는 보이지 않고,
지저분한 정상에는 선답자의 시그널 몇장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470.8m봉...어느 맥꾼이 시그널에다 상신봉이라 적어놨지만
공식적인 지명은 아니다...예전에는 서00라는 산꾼이 전국의
맥길에다 자기 맘대로 山名을 붙여놔서 맥꾼들의 원성을 많이
들었는데, 이 분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470.8m봉 정상에서 산패 수색(?)에 실패를 하고
우측으로 방향 전환하여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희미한 임도를 만나면서 계속해서 이어지는 내리막길...
안부(12:41)
무명봉(12:43)
지저분한 무명봉에서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더니
갑자기 나타나는 뚜렸한 등로...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맥길은 변신술을 부리면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구나
또다시 맥길은 우측의 내리막길로 이어지고...
등로 가운데에 자리잡은 묵묘를 따라서 내려서는데...
널부러진 고사목이 갈길 바쁜 산꾼의 발목을
잡으면서 꼬라지를 부리기 시작하는데...그러던지
말던지 나는 내 갈길을 가야겠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옴팍파인 고개가 나오는데
우측에는 예전에 묘지가 있었다가 다른 곳으로 옮긴듯한 파묘의
흔적같은 곳이 있는 이곳이 지도상의 신반재라는데 내 고향의
지명과 똑같아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情感이 간다
신반재(新反峙: 354m:12:49))
성주군 용암면 상신리(左 )와, 수륜면 작은리(右)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옴팍 파인
고개 옆에는 묘지가 있었던 자리같은 흐릿한 흔적이 보이나, 지맥 산꾼들 이외는
다니지 않은 잊혀진 고개인 듯 하다.
지명의 유래는 좌측 아래에 있는 용암면 상신리에 신반마을에서 따온듯 한데
상신리는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상현(上峴)과 신반(新反)에서
한 자씩 따와 ‘상신(上新)’이라 이름하였으며, 자연 마을로 당안(溏案·堂案)[신반],
새목[조항(鳥項)·초항(草項)], 웃터[웃티·상현·우현(禹峴)] 등이 있다.
신반이란 지명은 내 고향인 경남 의령군 부림면소재지가 있는 신반(新反)이란
지명과 똑같아서 그저 반갑기만 하다
신반재에서 용암면 상신리 신반마을로 내려가는 골짜기의 모습
신반재에서 올라서는 능선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초코파이에다
보온병에 남은 따뜻한 물로 커피한잔을 타서 마시면서 10분 정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
겨울이라 볼거리가 별로없어 조금은 무미건조한 산길에서
간간히 양념 역할을 해주는 앙증맞은 돌 하나가 홀로걷는
산꾼에게 말동무를 자처하고 나서는구나...그래 고맙다.
무명봉(13:08)
맥길은 살짝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요염한 자세로 陰凶하게
생긴 갈참나무가 산꾼을 유혹하지만, 이제는 그런것에
넘어갈 나이는 아닌듯 하네그려...하기사 늙은 말도
콩을 먹을 줄 알며, 짜그러진 냄비에도 고구마를 삶을 수
있다는 걸, 나만 모를까...
안부(13:20)
조금씩 체력이 방전되는지 힘이 부치기 시작하는구나.
오름길에 나뭇가지 사이로 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저 멀리 거산과 추산이 흐릿하게 보이는데, 조그만 범여의
두 발로 많이도 걸어 왔구나
배티재로 향하는 길은 은근히 산꾼을 힘들게 하는구나
조그만 봉우리에 올라섰다, 안부로 내려서고는 여러번
반복하는게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맥길이 이어진다
안부에서 느릿느릿 능선으로 올라서니 멋진 노거수
한그루가 두 팔을 벌려서 범여를 격하게 환영하는
455.1m봉 정상에 도착한다
455.1m봉(13:24)
455.1m봉 정상에서 동쪽으로 향하다가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 다음에 배티재로 향하는 내림길로 향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용암면 상신리 당안마을이 흐릿하게 보인다
오늘 산행은 예전에 비해서 컨디션도 좋은 편이며, 등로도
생각보다 편한것 같아서 오랫만에 맥길을 힐링산행 하듯 걷는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못난이 소나무 한그루가 힘이 드는지 반쯤은
누운채로 산꾼을 반기는 듯 하는데, 그래 반겨줘서 고맙구나
편안길을 내려서다보니...
동물의 이동을 돕기 위해서 만든 생태통로가 나오는데 지도를
보니 트랙에 배티재라고 표기가 되어있는 고개이다
시계를 보니 13시 45분이다...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내 체력으로 이레재까지 가기는 억지로 가면 갈수야
있겠지만, 어둠속에 산행이 끝날 것 같고, 서울로 가는
교통편이 어찌될 지 몰라서 이곳에서 산행을 접기로 하고
도로로 내려간다
배티재(13:45)
성주군 수륜면 작은리의 동남쪽 가장자리, 즉 보월리와 접한 산간 협곡에
형성된 마을로 마을 주민들은 배티 고개를 통해 북동쪽 용암면 상신리와
대봉리, 그리고 산간 협곡을 따라 흐르는 대가천의 지류를 따라 수륜면 보월리와
남은리로 출입할 수 있었는데, 이로 인해 배티 마을은 작은리의 관문 역할을 하였던
고개로 정상에는 동물생태통로가 설치되어 있으나 차량통행은 워낙 오지라
그런지 거의 없는 편이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행여 지나가는 차가 있으면 앵벌이(히치)를 해볼
생각으로 베낭을 정리한 다음에 30여분 정도를 생태통로 옆 양지
바른 곳에서 쪼그려 앉아 눈이 빠지게 차를 기다려도 차는커녕, 개미
새키 한마리도 구경할 수가 없다...하는 수 없이 수륜면 택시를 호출하여
성주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자고 한다...지도를 보니 상신리로 내려가서
아침에 지나온 하미기재와 호령고개로 가면 거리가 훨씬 짧을 것 같아서
기사에게 그리로 가자고 하니까...그쪽은 길이 나쁘기도 하거니와 한번도
가보지 않아서 자신이 없다고 하면서, 수륜으로 가서 33번 국도를 따라서
땅고개를 거쳐서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택시비가 무려 43,000원이
나온다...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되는 것이 아니다...터미널에 도착하니 14시에 서울로
출발하는 버스는15분 사이에 놓쳐 버렸고, 18시에 성주에서 서울 남부터미널로
가는 버스표는 매진이라 표를 구할수가 없다
성주버스 정류장(14:40)
하는 수 없이 아침에 내렸던 성주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ktx김천(구미)역으로
가야겠다...이곳은 대구와, 김천, 구미, 왜관으로 가는 버스와 성주군내 버스만
서는 정류장이다.
성주군내 버스 시간표
성주버스정류장에서 14시 50분에 출발하는 14번 버스를 타고 ktx김천(구미)역으로
향하는데, 아침에 타고온 똑같은 버스인데, 올라갈 때는 동네 구석구석까지
쑤시면서 가다보니 김천(구미)역에 도착한 시간이 1시간 가까이 걸렸다.
김천(구미)역(15:50)
역에 도착하여 열차표를 예매하려니 ktx와 srt의 모든 열차표가
매진이고, 남은 차표는 밤 10시 40분 열차표 밖에 없다고 하니
참으로 난감하다...매표소 입구에서 행여 취소표가 나올까 싶어
10분정도를 기다렸지만 취소표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김천으로 향한다.
이 역은 김천과 구미 사이의 애매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교통이
불편할 뿐더러, ktx와 srt 열차만 정차하고, 새마을이나 무궁화
열차는 이곳에는 서지 않고 김천역에만 선다...근데 이곳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김천역으로는 가지않고, 김천시외버스정류장으로만 간다
김천시외버스 정류장(16:40)
참으로 오랫만에 오는 김천시외버스 정류장이다.
10여년전에 진권아우와 감천 남(신산경표상:금오)지맥을 할 때
몇번 왔던 곳인데 그때에 비해서 훨씬 낙후된 모습이다.
근데 웃기는 것은 김천이라는 도시는 명색이 경북에서 알아주는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다이렉트로 가는 버스 노선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예전에는 서울 경부와 동서울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있었는데
코로나라는 역병이 발병한 이후부터는 아예 버스 노선 자체가
없어졌다고 하는 슬픈 흑역사를 가진 터미널이다
김천역(16:50)
하는 수 없이 택시로 기본요금 밖에 안 나오는 김천역으로 향한다
김천역발 → 서울행 itx열차표
표를 파는 아주머니에게 서울가는 열차표를 달라고 하니
좌석표는 밤 늦게까지 매진이고, 입석표밖에 없다고 한다.
그 표를 예매하려는데, 아줌마가 김천에서 대전까지는 좌석이고
대전에서 서울까지는 입석인 표가 나왔다고 하면서 그 표를 준다.
지금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땐가...표를 끊어서 플렛홈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은 생각보다 편하게 했으나 교통편이 불편하여 개고생을 했다
표는 서울역까지 끊었지만, 영등포에 내려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길...맥길이란 어느곳 하나 쉬운것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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