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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회천(칠봉)지맥(終)

회천(칠봉)지맥 제4구간 - 물한령에서 기산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24. 12. 23.

☞ 산행일시: 2024년 12월 15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 날씨에 간간히 내리는 싸락눈

☞ 산행거리: 도상거리 11.7km+들머리 1.1km / 4시간 4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무란마을-물한령- 유인진양강씨 묘- 안부- 이봉산- 449.3m봉

                      상용임도 갈림길- 임도- 안부- 안부- 의봉산 갈림길-의봉산

                      다시 의봉산 갈림길- 안부- 무명봉- 안부- 안부- 유인전주이씨 묘

                      독점마을 갈림길- 갈림길- 갈림길- 290.2m봉- 청주한공 묘

                      일월정 갈림길- 일월정-다시 일월정 갈림길- 갈림길-  235m봉

                      301.6m봉- 임도삼거리- 갈림길- 광산이씨 가족묘원- 임도합류점

                      283.9m봉- 송전탑- 안부- 275m봉- 무명봉- 묘지- 달성서공 수목장

                      담밑재- 241.7m봉- 송전탑- 안부사거리- 안부 삼거리- 무명봉

                  258.6m봉- 안부- 248.3m봉- 묘지- 갈림길- 안부- 167.9m봉

                  묘지- 기산고개

☞ 소 재 지: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 고령군 운수면, 성산면

 

벌써 한 해가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는구나.

아직도 30개가 넘게 남은 지맥길을 부지런히 하려고 발버둥을 쳐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뿐...몸이 안 따라주고 방법이 없으니 우짜겠노

순리대로 살아야지... 원래 계획은 2년전에 끝내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걸

다 잊어버리고, 짧게 다니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다보니 남들이 서너번에 가면

끝내는 지맥길을 그 분들보다 시간이 배로 걸리지만 그래도 저승 문턱까지 갔다오고

나서도 이렇게 다닐 수 있다는걸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주말마다 산행을 준비한다

 

이번주도 남도지방 지맥길을 계획하고, 해남지역의 날씨를 검색하니 일기가

불순하다고 하여, 12월 들어 계속 걸었던 회천(칠봉)지맥 4번째 구간을 하기로

마음먹고 간단하게 베낭을 챙긴 다음에 잠자리에 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04:55)

서울역발  동대구행 열차표

내가 요즘 어디다 정신을 팔고 다니는지?

어제 낮에 동대구가는 열차표를 예매한다고 렛츠코레일 홈피에 들어가서

예약을 하고 결재하는 버턴을 눌러지 않은 모양이다...코레일 멤버쉽

회원이라 10%이상 할인이 되는데, 매표소에 와서 예매한 표를 달라고 하니

예매는 해놓고, 결재를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할인 혜택이 없다고 하는구나

하는 수 없이 정상적인 요금을 지불하고 열차에 오른다

동대구역(07:00)

오늘의 산행 들머리는 성주가 아닌 고령땅이라 고령으로 가려면 대구로 가서

고령가는 버스로 가야하기에 대구로 향한다...밤이 가장 길다는 冬至가 며칠

안 남아서 그런지, 7시가 되어 동대구역 광장을 빠져 나왔는데도 아직도

어둠이 걷히지 않고 있다

고령을 가기 위해서 대구지하철 1호선을 타고 30분

조금 넘게 걸려서 대구 서부주차장으로 향한다

대구 서부정류장(07:35)

참으로 오랫만에 오는 서부정류장... 몇십년전이 지났건만

이곳에 옛날 그대의 모습이 남아있다...50년도 훨씬 지난 세월에

고향에서 이곳으로 와서 서울로 간 곳이기에 아련한 추억이 남아있다

대구발 고령행 버스표

08시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예매 해놓고 대합실 내에 있는 분식집에서

김밥 한줄에다 따끈한 오뎅 2꼬치로 아침을 해결하고, 해후소에 들려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는 고령가는 버스에 오른다

 

이 버스는 고령과 해인사를 거쳐 거창으로 향하는 버스로 버스에 올라타자

시동을 걸지 않았는지, 상당히 춥다...손님이라고는 해인사 간다는

노보살 2분과 젊은 학생 3명...나를 포함해서 6명이 타고 가다가

고령에 도착하여 나를 내려주고는 쏜쌀같이 거창으로 향한다

고령버스터미널(08:35)

고령터미널에 도착하여 미리 저녁에 서울가는 버스표를 예매하는데

이곳은 성주가 아니라 고령이라 그런지 표가 4장이나 남아있다.

1주일전에 내가 난리부르스를 친 탓인지 표를 파는 여인이 유리창

너머로 나를  보고는  ‘또 오셨네요 하면서 살갑게 인사를 건네는데

괜시리 미안하다...나 역시 인사를 하고는 택시타는 곳으로 향한다

택시 타는 곳으로 가니 택시는 없다.

전화를 하니 지금 운행이라 하면서 금방 갈테니 조금 기다리란다

잠시후에 택시를 타고 의봉산 아래에 있는 무란마을로 향한다 

무란마을(09:25)

고령군 운수면 신간리에 속해있는 물한이는 물한리(勿閑里) 또는

무란이라고도 불리며 의봉산 중턱에 위치한 마을로 골이 좁고

산세가 험하여 한가롭게 지낸다 는 뜻과 난(亂)이 없다

뜻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9:35)

택시기사에게 골짜기에 있는 무란마을을 기가 막히게 잘찾아 오시냐고 하니까

이 마을 바로 아래에 있는 신간리에 자기가 사는 집이 있다고 한다

신간리에 살면서 고령에 가서 택시 영업을 한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택시기사와 작별을 하고 장비를 챙겨서 산행을 시작한다 

아침부터 날씨는 잔뜩 흐리고 얼마전에 싸락눈이 왔는지 등로에

싸락눈이 있긴 하지만 카메라 앵글에도 잘 잡히지 않으니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폭신한 낙엽으로 덮혀있는 물한령으로 올라가는 임도

1주일만에 다시 걷는 길이라 그런지 더욱 더 情感이 간다.

세월이 흘러 시시각각으로 변덕을 부리는 인간이란 동물과는

달리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변하지 않은 산줄기가 범여의

가슴을 뿌듯하게 하는구나

시누대가 있는 청룡사 갈림길의 포근한 곳에 자리잡은

담양전씨 할머니의 포근한 천년주택(묘지)은 을씨년스런

날씨와는 달리 홀로걷는 산꾼의 가슴을 포근하게 해주는구나 

오룩스맵의 트랙을 안내멘트하는 여인이 경로를 벗어났다고

난리부르스인데, 이건 지맥에 근접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한령(勿閑嶺:385m:09:57)

경북 성주군 용암면 선송리와 고령군 운수면 신간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정상에는 고령군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있는데

고개의 지명은 고령군 운수면 신간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 곳인 물한리(勿閑里)마을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지난주에 보지 못했던 반바지님의 흔적이 보인다...언제 지나 가셨나?

한번도 뵙지못한 반바지님!...이 분의 특징은 맥길의 고개마다 만날 수 있다는

점인데 맥길에 관한한 대단한 내공을 가지신 분인 듯 하다

인증샷을 남기고 오늘 본격적인 맥산행을 시작한다

유인진양강씨 묘(10:00)

등로 가운데를 점령하고 있는 강씨 할머니의 천년주택은

후손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지 폐가(?)처럼 느껴진다

하늘엔 먹구름이 끼어있고, 눈에 잘보이지도 않은 미세한 싸락눈이

조금씩 내리지만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앞에 보이는 의봉산만

지나면 마을로 이어지는 임도가 많기 때문에 악천후를 만나면 중탈을

하면되지 않고 천전히 오르막길을 향한다

고도를 높히려는지 오르막길에 나무 계단이 산꾼을 반긴다.

마치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처럼 정상으로 이어지는 나무 계단을

밟고, 천천히 올라간다...날씨 탓이련가...오늘은 초반부터 숨이 차는구나

안부(10:04)

라마 7561 5617 국가지점번호 안내판이 있는 안부에서

암봉으로 올라선 후, 준.희 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이봉산에

도착한다

이봉산(伊鳳山:451.2m:10:06)

고령군 운수면 신간리와 성산면 상용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꾼들의 지도에는 이봉산이라는 지명도 보인다마는 지도에는

이봉산이라는 지명은 보이지 않고, 그냥 451.2m봉이라고만

표기가 되어있다

 

이봉산이란 지명을 잘 찾을수가 없으나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의 

법산마을의 영천 최씨에 대한 대구매일신문기록에는 이런 기사가 나온다

 

남은 마을 남쪽을 가로 흐르는 대가천 냇물 건너 성주와 고령을 잇는

33번 국도가 나있고 오암서원 앞 제방이 성주와 고령을 경계로 하고 있다.

동쪽 멀리 이봉산(伊鳳山)이 노적가리 모습을 하고 별뫼산(星山)은 호랑이가

파수 보듯이 엎드려 있다... 서쪽 멀리는 가야산이 병풍을 쳐놓은 듯 우람한데

남쪽 자라산은 덕은산성에서 완만히 내려 기암절경에 오암서원이 우뚝서고

북에서 감토봉이 내려 뻗은 끝자락인 진수봉이 나래를 펴 홀로 법산마을

아늑하게 감싸 안고 있다.

 

‘저 이(伊)’자는 어조사(語助辭)‘저 산도 봉황을 닮았네(?)’라는 뜻이란다

 

* 어조사(語助辭)란

  한문에서실질적인 뜻은 없으면서 다른 글자의 보조로만 쓰이는 

  토씨( 체언이나 부사어미 등의 아래에 붙어서 말과 다른 말과의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거나 또는  말의 뜻을 도와주는 품사)로

   ‘’, ‘’, ‘’, ‘’ 따위가 있다

이봉산을 지나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면서 의봉산으로 향하는 길

산 아래에서 1주일간을 살면서 온갖 喜怒哀樂에 젖어있다 주말에

이렇게 호젓하게 산길을 걷는다는 건 어쩌면 난 복받은 사람이 아닐까...

이봉산에서 2분정도 등로가 보이지 않는 낙엽길을 걷는데

등로 가운데 우뚝솟은 삼각점을 만나는데 449.3m봉이다

449.3m봉(10:08)

국토지리원에 등장하는 족보있는 봉우리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걸 처음본다

449.3m봉 3등 삼각점(△왜관322 / 1981재설)

초반에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길

몸뚱아리의 예열을 위한 워밍업을 하라는 배려인가 보다

늘 산은 이렇게 인간들을 배려하는데, 그걸 고마워할 줄

모르는 인간들의 무심함...그래서 늘 산은 인간들의 스승인가보다

라마 7570 5589 국가지점번호 안내판을

따라서 의봉산으로 향하는 맥길을 이어간다

알랑 드 샤뗄리우스라는 사람은  등산은 길이 끝나는데서 

시작된다고 하였는데, 난 길이 어디서 끝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산이 좋아서 홀로 이 길을 걷고 있다

앙증맞은 돌탑 하나가 산꾼을 반긴다.

나도 오늘 무사산행을 기원하면서

돌하나를 올려놓고 길을 떠난다

상용임도 갈림길(10:13)

망가진 이정표가 갈참나무에 매달려 있고, 좌측으로 내려서는

상용임도로 내려가는 등로는 보이지 않는데, 이정표는 그쪽을 가리킨다.

상용임도로 함은 고령군 성산면 상용리로 향한는 임도를 말하는 듯 하다

니가 왜 거기기 나와...

임도(10:15)

새로 임도가 개설되고 있는데 좌측의 고령군 성산면 상용리에서

우측의 운수면 신간리로 이어지는 임도인데 임산물 채취용인지,

산불에 대비하기 위한 방화도로인지 모르겠다.

 

고령군 성산면에 있는 상용리(上龍里)는 용소(龍沼) 위에 있는 마을이어서

상용(上龍)이라 하였으며, 마을 뒷산 밑의 지형이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어서 용기라고도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용기동, 운교, 점촌이 있는데, 용기동은 마을 뒷산 밑이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운교는 용기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도씨가 이 마을을 개척하면서 앞내에 구름다리를 놓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용기에서 놀던 용이 구름을 타고 이곳으로 날아왔다 하여 운교라고

불린다는 설도 있으며, 점촌은 용기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곳에 옹기점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례재에서 의봉산으로 향하는 길은 제도권

등로라서 그런지 국가지점번호가 자주 눈에 띤다

안부(10:17)

의봉산을 향하는 오르막길

오르막 좌측으로 돌담처럼 보이는데 의봉산성의 흔적인가?

천천히 오르면서 산내음을 맡으려 코를 흠흠거린다.

나무 계단도 산꾼의 마음을 알아챈듯 하면서도

모른체 한다...우리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가?

안부(10:31)

명색이 이름있는 의봉산 오름길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잡풀과 잡목과

함께 여름철에 시원하게 먹을수 있는 으름나무들이 정글을 이루고 있다

여름철에 이 길을 걸을때는 많은 고생할 수 있겠구나.

그나마 겨울철이라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서 오르막으로 향한다

의봉산 갈림길(10:37)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우측으로 200여m 떨어진 지점에

의봉산이 있다고 하는데, 망가진 이정표가 꼴사납게 보인다

갈림길에다 베낭을 벗어놓고 몸뚱아리만 의봉산으로 향한다

의봉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성곽이 무너져 내린 대가야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의봉산성의 흔적들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테뫼식 석성인 의봉산성은 대가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성벽은 대부분

무너져 있는 이곳에 있는 봉수대는 『세종실록지리지』에 "가리현(加利縣) 북쪽에 있다.

동쪽으로 말응덕산(末應德山)에 응하고 남쪽으로 고령 망산(望所)에 응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이부로산(伊夫老山) 봉수로 보이는데, 조선시대 이부로산 봉수는

성주목에 속하였으며, 『여지도서』에는 관아의 남쪽 40리에 있으며, 망산 봉수와

성산(星山) 봉수를 연결한다고 쓰여 있고, 『대동여지도』에도 이부로산 봉수가

표기되어 있으며, 조곡산(祖谷山)과 이어진 산줄기로 표현되어 있다. 

먹구름 드리우니

맞바람 불어오고

 

땅거미 쫒아오는

모퉁이 돌아서니

 

발걸음 줄행낭이요

머리카락 휘감네

의봉산 정상에 올라서니 잡풀과 돌탑들이 산꾼을 반기는데,

대가야의 本鄕이라고 대대적인 홍보를 해대는 고령군이

역사적인 의봉산성을 품고있는 의봉산을 왜이리도 홀대를 하는지...

의봉산(儀鳳山:551.5m:10:42)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상용리와 운수면 신간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북쪽으로 물한령과 이례재와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담밑재와 이어지는 산으로

비봉산(飛鳳山)·유복산(有福山)·이부산(尼夫山)이라고도 하며 옛날의 봉수대 터가

지금도 남아 있지만 관리가 되지않아 성곽이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고, 산의 서쪽

사면에서는 금성천이 발원하며 동쪽으로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는

의봉산은 인근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어 사방을 조망할 수 있어 산성과 봉수대가 있었다.

 

대동여지도에도 이부로산 봉수가 표기되어 있으며 조곡산(祖谷山)과 이어진 산줄기로

표현되어 있으며 한편 의봉산이라는 이름은 봉우리가 봉황처럼 수려해서 붙여진 것이라는

설과 봉황이 내려앉은 것 같은 모양이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산행 시작때부터 조금씩 내리던 싸락눈이 그치고나니

마음이 한결 여유로운 모습이다...12월에 내가 지나왔던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동쪽으로 바라보니 대가야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의봉산성은 의봉산 정상에 있어

산정에서 달성군 일대까지 한눈에 들어오는데 북서쪽과 남서쪽은 자연 절벽이다.

성내에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봉수대가 있는데, 현재 봉수대 석축은 거의

허물어지고 주마대(走馬臺:말이 달렸던 곳)의 흔적이 남아 있다

 

볼품없는 의봉산에 대한 실망감만 가슴에 안고, 갈림길로 되돌아 간다

잡풀에 숨어버린 대가야의 흔적인 의봉산성

가야 위치도...다음백과에서 캡쳐

 

대가야(大加耶)는 가야연맹체(加耶聯盟體)의 한 나라로서 후기 가야연맹체의 맹주국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가락국기(駕洛國記)』에는

금관가야(金官加耶)를 대가야(大加耶)라고 하였는데, 이는 가야연맹 전기에는 금관가야가

맹주국이었기 때문이며, 금관가야를 본가야(本加耶)라고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런데『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에는, 고령군은 본디 대가야국으로

존속 기간이 시조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김수로왕의 둘째왕자)부터

도설지왕(道說智王)까지 16세(世) 520년인데, 신라진흥왕(眞興王)이 쳐서

멸망시키고 그 땅을 대가야군(大加耶郡)으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아마 금관가야의 세력이 약해진 뒤, 또는 금관가야가 멸망한 뒤

고령을 중심으로 한 가야국이 대신 맹주국이 되어 대가야라고 불렸기 때문인 듯하다.

다시 의봉산 갈림길(10:45)

다시 돌아온 의봉산 갈림길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는데...

갑자기 사라진 맥길...이곳에서 한참을 버벅거린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맥길은 보이지 않고, 이리저리 헤맨다

제발 범여를 시험에 들지말게 하소서...

직진길에는 산줄기가 보이지 않아 우측 방향으로 내려가보니...

반가운 선답자의 시그널이 산길을 안내한다

아침부터 편하게 걸었으니 고생 좀 해보라는 뜻인지

맥길을 찾아서 내려가는 길은 가관이 아니다.

그래도 칠흙같은 어두운 밤바다를 비춰주는 등대처럼

홀로걷는 범여가 길을 잃을까봐 나무가지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사면길을 가로질러 내려간 다음에...

범여가 맥길에 대한 野性을 잃을까봐 아직도 시험에 들게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뚜렸한 등로

험한 내리막길에 바짝 긴장하며, 아직까지 편안한 길을

걷기위한 마음의 준비조차 안되어 있는 범여를 놀리는 듯 하다

안부(10:55)

무명봉(10:57)

계속되는 내리막길

낙엽이 수북히 쌓인 급경사의 내리막길...어찌나 미끄러운지

스틱에 바짝 힘을 주면서 내려서는데 넘어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너무 힘을 주었나...쥐가 나면서 통증이 시작된다.

천천히 내려가는데, 범여에겐 쥐약인 오르막길보다 더

힘들게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폼나게 이정표만 만들지 만들고 정상과 산성 관리나 잘하셔...

안부(11:12)

의봉산의 힘든 코스를 내려오고 나니 마치 오늘 산행을

다한듯한 편안함을 느끼지만 아직까지 남은 未知의 길을

걸어야 범여로서는 모를 일이다...까이꺼 걸어보지도 않고

쫄면서 걱정할 일이야 있겠는가.

 

현대그룹의 故 정주영 회장님의 生前의 있었던  일화가 생각난다

건설 현장을 순시중에 공사가 난관에 부딪혀 직원이 회장님께

보고하길...이 공정은 힘들것 같습니다 하니까 정 회장님께서

하신 말씀 해봤어? ...하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래!...일단 부딪혀 보는거야...그게 홀로걷는 맥산꾼의 氣槪가 아닌가. 

등로에서 오랫만에 맥산행에 관한한 거의 legend급에 속하는

山.山.山님의 시그널의 나뭇가지가 높은 곳에 걸려 있구나

안부(11:18)

안부를 지나면서 뚜렸한 임도는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가고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는데 갑자기 등로가 사라져 버린다

스마트폰에 깔려있는 트랙을 확인하니 맥길은 길이 없는 곳으로

이어진다...무대포로 치고가니 이씨 할머니 묘지가 나온다

유인전주이씨 묘(11:23)

묘지를 지나면서 등로는 다시 五里霧中이다

조금을 내려서니 등로가 없는 곳에서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독립군 범여를 인도한다

17년동안을 대간과 정맥, 기.지맥을 걸어면서 이런 곳을 수도없이

지났는데 이런 길을 지나는거야 식은죽 먹기 아닌가...

감사합니다

옴팍한 골짜기를 치고 내려오니 묘지와 포장임도가 보인다

묘지를 가로질러 Y자 임도로 내려선다

독점마을 갈림길(11:28)

Y자 임도로 내려서는데, 묘지 좌측의 임도는 의봉산(의봉산성)으로

향하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운수면 봉평리 독점마을로 이어지는

임도인데 비포장도로이긴 해도 차량들이 다니는지 등로는 반질반질하다

 

고령군 운수면에 속해있는 봉평리는(鳳坪里)는 의봉산(儀鳳山) 남서 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칠령재와 희봉재에서 발원한 계류가 대평리를 휘감으며

합류하여 봉평리에서 대가천(大加川)으로 흘러든다.

 

하천 주변에 펼쳐진 충적지는 물이 많고 토질이 비옥하여 토지 생산성이 높으며,

고랫들·고자바웃들·새들·서달개울들·순평앞들·원징이들·큰들과 같은 넓은들이

펼쳐져 있고, 뒤로는 연봉산(延鳳山)앞 골짜기인 농골 뒤에는 이망산이 있다.

봉평1리·봉평2리로 이루어졌으며, 자연마을로는 한다리·금성리(錦城里)·

순평(順坪, 舜坪)·연봉(延鳳)·배골·논골·원전(院前) 등이 있다.

봉평리 마을 사이로 흐르는 대가천 주위에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수박과

참외를 주로 생산하고 있다...한다리는 운수면 소재지로 옛날 사람들이

대가야읍으로 내왕하기 위해 나무로 다리를 길게 만들었는데, 한없이

긴 다리라 하여 한다리 마을이라 했는데, 이를 한문으로 표기하니

대교리가 되었고, 금성리는 조선시대의 운라면 소재지로, 옛날 이 마을에 사는

비단 장수들이 비단을 성 같이 많이 쌓아두고 팔았다 하여 붙은 지명이다.

 

순평은 들 중앙에 위치한 마을로 평평하고 순한 들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순평이라 하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순임금처럼 어질고 착하다 하여

순평이라 하기도 하는 마을이며, 연봉은 의봉산(儀鳳山)에서 봉황이 내려와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배골은 배아골, 이곡(梨谷)이라고도 부르며 옛날 이곳에 배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인데, 한문표기로는 배나무 리(梨) 자를 따서 이곡이라 하였으며, 또 이곳에

학이 많이 날아와 살았으므로 백학곡이라고도 하며, 논골은 순평 위의 조그마한

마을인데, 주위가 온통 논으로 둘러싸여 있어 논골 또는 답곡(沓谷)이라 한다.

원전은 조그마한 마을로, 조선시대에 이곳에 국가에서 원(院)을 세웠으므로

원 앞의 마을이라 하여 원전이라 부른다

의봉산 숲길 등산로란다

갈림길(11:42)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한참을 걷다가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숲 속으로 맥길은 이어진다

숲으로 들어서니 걸어서 하늘까지님의 시그널만

보이고, 길은 조금 험하긴 해도 그런대로 걸을만 하다

숲길로 들어서 5분정도 걸었나...다시 맥길은 편안한 임도로

안내하여 임도로 내려서는데, 이 추운 날씨에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인간들이 미쳐 날뛰니 꽃들도

미치년 널뛰듯이 다들 제정신이 아니구나

임도로 내려선 다음에...

금산재 방향으로 향하는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가던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햇살을 가득 머금은 의봉산이

잘가라고 손을 흔드니, 내가 어디 그냥 갈 수가 있겠는가.

나 역시 잘 있으라고 손을 흔들며 작별의 情을 나눈다

찬기운 오르내려

솜털이 가린얼굴

 

청명한 하늘속을

유유히 떠나고

 

건넌산 베개삼으니

베짱하나 좋구나

임도 우측으로는 잘 꾸며진 묘지가 보인다.

어느 집안의 묘인지 확인하러 가기에는 시간이 아까워 그냥 패스한다

갈림길(11:51)

호화 묘지를 바라보면서 잠깐동안 편한하게 걸어온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숲 속으로 오르면서 마루금을 이어간다

잡목이 우거진 숲길은 생각보다 등로가 뚜렸하다.

곧이어 족보있는 290.2m봉에 올라선다

290.2m봉(11:56)

당연히 있어야 할(?) 준희쌤의 산패는

보이지 않고, 선답자의 시그널 몇개가

이곳이 290.2m봉 정상임을 알려준다

코끝을 자극하는 알싸한 겨울 냄새가 범여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언제부터인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번잡한 제도권 등로보다는

이런길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는 걸 느낀다

살짝 좌측으로 갔다가 다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니...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길을 안내한다...복받을깁니다

청주한공 묘(11:59)

뫳돼지가 봉분을 파헤친듯 한 청주한공 묘지가 볼썽 사납다.

묘지를 내려와서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와 조우를 한 다음에...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맥길을 이어간다

때때로 당신의 길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길을 잃는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당신의 길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 길을 잃는 것일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걷고 있는 이 길은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는듯 하다

앞쪽에는 일월정으로 가는 삼거리가 보이고 호젓하게

의자하나가 산꾼을 기다린다...그냥 지나치기에는

조금 미안할 것 같아서 잠깐 베낭을 진 채 앉았다가 일어난다

不寐夜長(불매야장)

잠 못 이루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疲倦道長(피권도장)

피곤한 사람에게 길은 멀다

 

愚生死長(우생사장)

바른 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莫知正法(막지정법)

생사의 밤길은 길고도 멀다

 

법구경 (法句經) 중에서

벤치에서 서북쪽을 바라보니 주위의 다른 산들이 전부

벌거벗은듯한 황량한 겨울산이건만, 유독 가야산만이

은백색의 눈을 뒤집어 쓴 채 群鷄一鶴처럼 보이는데

5년전 티벳을 갔을 때 산 아래에서 바라본 메리설산처럼

환상적이다.

일월정 갈림길(12:02)

다시 발걸음을 돌려 임도로 걸어가니  일월정이란 표시석이 있다.

어차피 홀로걷는 이 길...맥길을 조금 더가면 어떻고, 덜가면 어떠랴...

조금 덜 가더라도 보고 싶은건 보고 가야제...맥길에서 벗어난

일월정으로 향한다

꽃피고 지고나니

후회도 소용없고

 

아득한 저편너머

보고픈 얼굴들은

 

시간이 흘러도

그리움을 쌓았네

일월정 주차장에 도착하니 코딱지만 티코지동차 한대가 서 있고,

나를 보더니 창문을 열고, 기분나쁜 눈치로 째려본다.

자세히보니 산불감시 요원이다...니야 째려보던지 말던지

나는 일월봉 정상으로 올라간다

해돋이장군과 달순이 장군이란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은 많이 봐서 익히 알고 있으나

생전듣도 보도못한 해돋이장군과 달순이 장군이라니...

하기야 이름을 붙이는건 엿장수 맘이 아니던가...

쉼터의자와 일월정이란 정자가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일월정(日月亭:286.6m:12:05)

일월정은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와 팔산리 경계에 있으며, 정상에는 팔각정과

쉼터의자가 있고, 동남쪽으로 시야가 확트여 저 멀리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선사(一然禪師:1206~1289)가 한동안 주석(駐錫)했던 유가사를 품고있는

비슬산과 금계산과 청룡산등이 보이는 곳인데, 오늘은 흐린 날씨라 모든게 흐릿하다

 

고령군 성산면에서 2001년부터 이어져 온 일월정 달맞이 행사는 성산의 대표적인

지역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현재 개발 중인 고탄리 온천과 더불어 일월정 확장·

개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일월정 정자에 걸려있는 현판

일월정에서 바라본 성산면 일원과 그 뒷쪽으로 병풍처럼 보이는

밀양(신산경표상:비슬)지맥 능선은 구름을 뒤집어 쓴 채로 아무것도 안보인다

일월정에서 바라보니 낙동강이 아련히 보이고

낙동강 윗쪽으로 지나가는 달성보는 보일락말락 한다

남쪽으로는 회천(칠봉)지맥 능선에서 살짝 벗어나 고령군 개진면

오사리에 있는 제석산(385.3m)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산그리메가 

멋있게 보인다

일월정 갈림길(12:09)

다시 마루금으로 복귀하여 좌측의 임도를 따라가는데

저 멀리 우뚝솟은 가야산이 나와 작별이 아쉬운 듯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다

임도 옆에는 의봉산과 금산재 위주로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으나 맥길을 걷는 산꾼들에게는 씨잘데 없는 이정표다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삶의 길을 물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라. 그렇게 하면 당신은 당신의 길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길을 가게 될 것이고 그 길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의 내면을 통해 당신의 길을 찾아라.

- Nanette Mathews -

임도에서 바라본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와 낙동강을 가르지르는 달성보의 모습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高呑里)는 높은 산과 여울이 에워싼[呑]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므로 고탄(高呑)이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고탄, 쟁골, 봉곡이 있다.

고탄은 조선초 하씨가 개척한 마을로 의봉산 남쪽으로 높은 산여울에 에워싸여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쟁골은 조선 선조 때 광산이씨 문중을 모신 경목당이 있었는데

재실이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으로 쟁골이라고 불렀으며, 봉곡은 마을 뒷산 봉우리가

봉과 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갈림길(12:13)

편안한 임도를 걷다가 임도를 버리고 다시 숲속으로 올라간다

임도 옆 능선으로 올라서니 낙엽이 수북하고 직진 능선을 

따라서 걷는데 잔뜩 날씨가 흐린 탓인지 정오가 지났는데도

범여의 몸뚱아리 기준으로는 꽤나 추운 날씨이다

누워있는 고사목들이 꼬라지가 났는지 슬슬 산꾼에게 태클을 걸어온다.

너무 그러지 말거라. 체력이 떨어지니...나를 따르던 후배들이 하나 둘

내곁을 떠나버리고 홀로 걷는 범여에게 惻隱之心도 안드는가...

지나온 세월의 悔恨을 꼽씹으며, 걷는 범여에게 눈꼽만큼한 동정심이라도

있으면, 그냥 보내주랴...

 235m봉(12:20)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잡목 사이로 이어진 희미한 등로로 올라서니 산꾼들에게

팔산(八山)으로 알려진 301.6m봉 정상에 도착한다

301.6m봉(12:25)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와 운수면 팔산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맥산꾼들에게는 팔산(八山)으로 알려져 있지만,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그냥 301.6m봉으로 표기가 되었고, 정상에는 준.희 쌤의 산패와

선답자들 시그널, 3등 삼각점이 있지만, 잡목에 휩싸여 있어 볼품없는 산이다  

팔산이라는 지명은 산 우측 아래에 있는 고령군 운수면 팔산리의 지명을 따왔는데

팔산(八山)이라는 지명은 마을을 둘러싼 산봉우리가 여덟 개가 있어 팔뫼라 하였는데

팔산은 팔뫼의 한자 표기이며, 팔산리는 운수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의봉산(儀鳳山) 끝자락에 자리 잡은 구릉성 산지에 있는 팔산리는 담밑지와 팔미지에서

발원한 작은 계류가 합류하는 지점으로, 계류 연변에 경작지가 형성되어 있다.

용마등·호설(虎說)·창설 등의 산이 있고, 각골·꽁개울골·눌부실골·늑디골·당산골·앙골·

약장골·진개울골 등의 골짜기가 있으며, 팔미 앞으로 독전들·바깥독전들·앞들·웃들·

큰들 등의 들이 펼쳐져 있고, 기산재·담밑재·승기재 등의 고개, 담밑지·도장지·약샘

등의 못이 있다.

301.6m봉 삼각점(왜관321 / 1981재설)

오늘의 날씨는 을씨년스럽다...정오경의 대낮인데도 컴컴하다고나 할까...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니...임도 삼거리가 나온다

임도삼거리(12:29)

임도를 자주 만나니 앞으로 남은 맥길은 왠지 편하게

걸을수만 있을것 같은 느낌이랄까...산이 오늘도 이렇게

범여를 배려해준다...컨디션 조절을 잘하라고...

갈림길(12:30)

광산이씨 가족묘원(12:31)

묘지에 현판이 달린 건 처음보네...

임도로 내려간다

임도합류점(12:33)

2분전에 헤어진 갈림길에서 광산이씨 묘지로

안 거치고 곧바로 내려오는게 훨씬 나을뻔 했다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임도로 향하지 않고...

우측의 숲 속으로 향한다

부뜰이님...방가방가...잘 계시죠?

아카시아 나무 군락지이지만 태클은 그리 심하지 않다.

그러나 여름철에 이 길을 지나는 맥꾼들은 조금 고생을 할 것만 같다

하기사 이 정도의 산길이 힘들다고 투정을 하면 맥산꾼이 아니제...

그러는 사이에 완만한 정상이 나오는데 지도상에 등장하는 족보있는

283.9m봉이다

283.9m봉(12:45)

산패는 보이지 않고 꽤나 많은 시그널들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사는거 참 아무것도 아닌데 허무하게 生을 마감했구나

다음 생에는 좀 좋은곳에 태어나 편안한 여생을 보내거라... 

잘 보이지 않는 맥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는데 오후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바람이 불어대니 훨씬 추워지는 느낌이다

송전탑(12:51)

돌아선 송접탑의 NO를 확인하기 싫어서 그냥 내려간다

지가 보기 싫어서 돌아 앉았는데, 내가 일부러 찾아갈 순 없잖은가.

안부(12:54)

희미한 길에 잡목의 저항은 계속되고...

275m봉(12:57)

갑자기 길은 사라지고...

조그만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맥길은 이어지는데

백두사랑 이대장의 흔적이 범여 선배에게 길을 안내한다

무명봉(13:00)

올바른 길을 찾으려면 잘못된 많은 길을 가 봐야 한다고 했던가...

내가 등로를 만들면서 내려가니 문패없는 묘지가 맥길을 지키고 있다.

묘지(13:04)

묘지에 오르는 뚜렸한 길을 따라서 내려간다

달성서공 수목장(13:06)

수목장 아래로 내려서니...

또다른 묘지를 만나고 뚝 떨어져 내려서니...

2차선 도로가 통과하는 담밑재로 내려선다

담밑재(205m:13:08)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팔산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 곳인 담밑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운수면 팔산리와 성산면 기족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8번군도가 지나간다.

 

담밑마을은 옛날 순천박씨(順天朴氏) 아무개가 이 마을을 개척하던 당시 담장 아래에

박을 심었는데, 이를 생활 수단으로 여길 정도로 박이 잘 자랐다고 하며, 담밑의 박이란

의미에서 마을의 이름도 담밑이 되었으며, 덤밑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래서 담밑재

또는 담밀재로 부르기도 한다.

 

전해 내려오는 얘기로는 옛부터 산세가 험하기로 소문난 담밑재는 고갯마루에 공동묘지가 있어

여름밤에는 인불(人不:사람이 사람답지 않음또는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다.

 

이와 관련된 도깨비설화가 있는데, 옛날 팔산마을의 한 장정이 밤늦게 담밑재를 넘다가

도깨비를 만났다고 한다... 도깨비가 장정에게 씨름을 제안하며, 이기면 살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하여 장정과 도깨비는 씨름을 하게 되었다.

 

장정은 도깨비의 왼쪽 다리가 약하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왼쪽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후,

힘껏 내리쳐 도깨비를 사로 잡아서 집에 돌아온 장정이 어머니에게 도깨비를 내놓았는데,

도깨비는 몽당 빗자루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담밑재에서 금산재로 표시가 이정표를 따라서 임도로 올라간다

갑자기 길이 좋아지니 범여의 못된 버릇(?)인 夢遊病이 도지는지

슬슬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오랜 산행 경험상으로 졸면서

걷는데는 상당한 노하우가 있으니...졸면서 오르막길로 향한다

241.7m봉(13:15)

임도 가운데에 있는 이곳이 족보있는 241.7m봉이건만 맥꾼들이

무심코 지나갔는지 그 흔한 시그널 하나도 안 걸려 있는 홀대받는 봉우리다

졸면서 걷기에는 더 없이 좋은 길이다

송전탑(13:17)

이곳의 송전탑은 거의다가 NO가 보이지 않게 돌아 앉았다.

일제시대에 만해선사(卍海禪師) 한용운(韓龍雲)이 조선총독부와

마주하기 싫어 북향으로 지은 집 심우장(尋牛莊) 처럼 말이다

 

* 만해선사 거처했던  심우장(尋牛莊)

승려이자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였던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 선사께서는 

1910년에 불교의 변혁을 주장하는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하였고, 1926년에는 근대

한국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님의침묵》을 펴낸 뒤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에 가담하였으며,

1931년에는 조선불교청년동맹을 결성하였다.

 

그는 3·1만세운동 선언자 33명 가운데서 변절하지 않은 지사로 알려져 있으며,

만해에 관한 일화는 참으로 많은데 그를 회유하려고 조선총독부가 성북동 일대

나라숲 20만 평을 넘겨주겠다는 것을 한마디로 거절하고, 총독부의 지시를 받은

청년이 돈보따리를 들고 오자 뺨을 때려 쫓아 보냈다고 한다

 

또 최린과 3·1운동을 주도했던 그는 감옥에서 일부 민족대표들이 사형당할 것을 두려워하자

"목숨이 그토록 아까우냐?"라며 똥통을 뒤엎기도 했고, 그토록 가까웠던 최린, 최남선,

이광수가 변절하자 얼굴조차 보지 않았다고 한다.

 

벽초 홍명희는 "만해 한 사람 아는 것이 다른 사람 만 명을 아는 것보다 낫다"고 했으며,

만공선사는 "이 나라에 사람이 하나 반밖에 없는데 그 하나가 만해"라고 했다.

 

그 만해가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살았던 집 심우장(尋牛莊)이 서울 성북동에 있다.

서울기념물 7호로 지정되었는데 심우장이란 이름은 선종(禪宗)의 '깨달음'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가운데 하나인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다.

 

보통 집들은 남향으로 짓는데 이 심우장은 북향으로 지었는데,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 보게 되므로 이를 마다하고 반대편 산비탈의 북향터를 선택했다고 한다

추운 날씨만 아니라면 오늘 산행하기에 錦上添花인데

그러나 산길을 걸으면서 너무 많을 걸 요구하지 말자.

그냥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걸 감사하자.

안부사거리(13:19)

이 분의 시그널 문구가 예술이다.

혹시 시인이신가?

이 송전탑도 뭔 심사가 뒤틀렸는지 돌아 앉았다.

하기사 인간들이 보수니 진보니...좌파니 우파니 하면서

죽기 살기로 치고 박으면서, 자기 이익에 몰두하는 

저 꼬라지를 보고 싶을리가 없제...참으로 개판에다 가관이

아닌 저 꼴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겠는가.

안부 삼거리(13:23)

세상에는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옳은 길이란 것도 없다.

단지, 당신만의 길이 있을 뿐이다.

무명봉(13:27)

고도차가 별로없는 넓은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맥길은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가고 나는 임도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258.6m봉을 만나러 올라간다 

258.6m봉(13:33)

마루금으로 복귀하자마자

넓은 임도는 직진의 내리막길로 향하고...

 우측의 길이 없는 곳으로...

선답자의 시그널이 걸려있는 숲으로 잡목의 저항을 헤치며 들어간다

잡목의 강력한 태클을 이겨내면서 내려서니...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난다.

그냥 편안한 길로 내려와도 되는데

사서 개고생을 한 꼴이 되었다

안부(13:38)

완만한 임도를 따라서 올라오니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248.3m봉에 도착한다

248.3m봉(13:41)

고령군 성산면 기산리 윗쪽에 있는 봉우리라고 해서

기 (箕山) 이라고 부르는 산꾼들도 있으나 지도상에 등장하는

공식 지명은 아니며, 봉우리 정상에는 4등 삼각점이 있다

 

248.3m봉 정상 4등 삼각점(△창녕409 / 1981재설)

편안한 등로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묘지(13:43)

묘지를 지나 약간의 오르막길을 오르자마자 

선답자들의 흔적이 좌측으로 걸려있다

갈림길(13:44)

담밑재부터 여태껏 같이해온 뚜렸한 임도는 직진길로 향하고,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져 잡목이 강력하게 저항하는 길로

들어서는데, 무심코 걷다보면 대형 알바하기 딱 좋은 곳이다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희미한 등로에서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의 흔적이

홀로걷는 범여에겐 그저 고마울뿐이다

꼬라지를 부리는 지맥길...그냥 보내주는 법이 없구먼...

안부(13:52)

뫳돼지의 체력 단련장을 지나서...

완만한 능선을 지나는데...

2번째 뫳돼지 체력 단련장을 만난다.

167.9m봉(13:59)

족보있는 봉우리인데 산패는 보이지 않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만 보인다

맥길은 좌측으로 휘어지고...

묘지(14:02)

묘지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를 따라서 내려가는데

동네가 가까웠는지 차량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지맥길은 이곳에서 우측의 숲속으로 이어지나 그쪽으로

가봐야 광주~대구간 고속도로가 길을 막고 있어서

갈 수가 없다...그냥 편안한 길을 내려서니 마을로 내려가는

임도 좌측에는 기계유씨 묘지들이 보이고 기산리 마을로 내려선다

마을로 내려서서 우측으로 내려가는데 캠핑카를

제작하는 O&C모터스가 보이고 기산고개로 향한다

기산고개에는 도로가 3개나 지나가는데, 맨 앞에 보이는 도로가

예전에 88고속도로라 불리웠던 광주대구 고속도로이고. 가운데가

905번 지방도인 성산로라 불리는 2차선 도로, 맨 뒷쪽이 동고령로라

불리는 26번 국도이다 

기산고개의 북동쪽 산지 곡부에 위치한 기산리 기산마을에는 철종 때 심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수령 500년 된 능수버들이 있는데, 고속국도 12호선을 건설하면서 마을

앞으로 옮겨 심었다고 하는데, 버드나무는 매년 추석과 설에 동제를 지내고 있는

당산나무라고 하며, 마을유래비와 여물통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팔각정을 만난다

 

기산고개를 이루고 있는 낮은 산지인 기산리 기산마을 뒷산의 남서쪽 자락에는

조선시대인 15~16세기에 분청사기 및 백자를 구웠던 가마터가 있다고 한다.

기산마을 유래비

팔각정 이름이 특이하다...소의 밥그릇인 여물통이라니 뭔 사연이 있겠지.

기산고개(箕山峴:53m:14:20)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기산리에 있는 고개로 깃대봉(311m)과 성산면 기산리

기산마을 뒷산(248.2m) 사이에 있는 안부이며 해발고도가 높지 않아 거의

평지에 가까운 고개로 이 고개에서 멀지않는 곳에 있는 금산재와 더불어 고령과

대구를 왕래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중요한 교통로로 여겨지고

있는데 지도상의 실제 기산고개는 이곳에서 고령방향으로 더 가서 있는데, 이곳은

맥산꾼들이 편의상 기산마을 입구에 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인 듯 하다 

 

이 고개의 명칭유래를 보면 기산고개의 서쪽에 위치한 성산면 기산리 기산마을의 

이름을 따 부르게 되었으며 기산마을은 마을 뒷산 모양이 키와 같이 생겼다 하여 

기싯 또는 기산이라고 불린다. 

 

기산고개의 북쪽에는 성산면 기산리 기산마을 뒷산과 기산마을 앞산이자 제석산(帝釈山, 387.1m)의

한 줄기인 깃대봉이 있고 기산고개의 해발고도는 60m로 주변 산지보다 상당히 낮은 안부이며

거의 평지에 가까울 정도로 높지 않은 고개로 기산고개 동쪽의 용소천과 서쪽의 신안천 사이의

분수계에 해당되는데 두 하천 중 용소천은 동류하여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하천이고 신안천은

서류하다가 금산 동쪽에 위치한 틀무실마을에서 유로를 변경하여 다시 남쪽으로 흐르다가

고령군 개진면 신안리에서 회천으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인증샷...혼자놀기

기산리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지금 시간이 14시 20분.

원래 계획은 열미재까지를 잡았는데, 날씨도 춥고 산에서 너무 여유를

부리다보니 예상했던 시간보다 너무 많이 지체가 되어 많은 고민을 한다.

조금 힘이 들더라도 열미재까지 가야할까, 아니면 여기서 접고

한구간을 더 걸어야 할까 생각을 하다가 날씨도 춥고 산에서 먹은것이

별로 없어서 체력에 문제가 생길것 같아서 여기서 산행을 종료하고

대구에서 오는 버스를 기다리기로 한다 

버스가 기다리는데 땀에 젖은 옷 때문인지 추위가 엄습해오기에

베낭에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버스가 오기를 눈이 빠지도록

대구쪽을 바라봐도 버스가 오지 않아서 택시를 부를까 생각을 하는

중인데, 30여분이 지날 즈음에 대구쪽에서 버스가 온다.

얼른 베낭을 둘러메고 버스에 오른후에 15분정도만에 고령터미널에

도착한다

고령터미널(15:10)

버스표야 아침에 예매해놨겠다...합천에서 버스가 오려면 

2시간도 더 남았기에 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중국집에

들려서 간짜장 한그릇에다 소주 한병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화장실에 들려 간단하게 씻고는 쥔장의 양해를

얻어 난로옆에 앉아 있으니 졸음이 쏟아진다

의자에 앉아 얼마나 잤을까...쥔장이 깨우는 바람에

눈을 떠보니 17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이다.

쥔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터미널로 향한다

고령발 → 서울행 버스표

합천에서 출발하여 서울로 가는 버스는 예상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하여 손님을 실고 성주를 거쳐 서울로 향하는데

나는 이 버스를 좋아하는 이유로는 서울 남부터미널이 우리집에서

너무 가까워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