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5년 01월 26일
☞ 산행날씨: 잔뜩 찌푸린 흐린 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12.1km + 날머리 2.2km/ 5시간 0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부례고개-유인 청주한씨 묘-NO 125송전탑-296.4m봉-안부 갈림길
NO123 송전탑-안부-무명봉-무명봉-쳥룡산-갈림길-부곡동 갈림길
무명봉-246.1m봉-안부-210.5m봉-임도-고개-203.8m봉-임도
용머리산-145m봉-안부-김녕김씨 가족묘지-연동고개-107.0m봉
112m봉-대봉산 갈림길-안부-대봉산-다시 대봉산 갈림길
갈림길-67번 도로-무명봉-경주최공 묘-근사골지 안부-무명묘지
무명봉-통훈대부 영산신공묘-무명봉-김녕김공&유인전주이씨 묘
안부-107.7m봉-안부-밀양박공 묘-59.9m봉-고개-45.6m봉
객기리 새터마을-42.9m봉-무명봉-객기나루길-회천/낙동강 합수점
객기리 회관
☞ 소 재 지: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원래 산행 계획은 토요일 저녁에 해남으로 내려가서 화원지맥을 이어가려 했으나
토요일부터 시작되는 장장 9일간의 구정 연휴라 귀경길의 교통편이 어쩔지 몰라
포기를 하고 그 대신에 지난해 12월에 하다가 남은 회천(신산경표상:칠봉)지맥
마지막 구간을 하기로 결정하고 토요일밤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 집 앞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첫 버스에 오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04:53)
서울역발 → 동대구행 열차표
05시 13분에 출발하는 ktx 열차에 올라 동대구역으로 향하는데
이 열차는 다른 열차와는 달리 중간 기착역이 별로 없다...광명.
대전역만 정차하고 곧바로 동대구역이기에 다른 열차보다는 조금 빠르다는
느낌이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온 탓인지 열차에 올라 평소의 습관처럼
非夢似夢간을 헤매다가 잠시후에 열차가 동대구역에 도착
한다는 멘트에 잠에서 깨어나 열차에서 내린다
동대구역(07:02)
동대구역 대합실을 빠져나와 서부주차장을 가기위에
지하철역으로 향하는데, 광장에는 가는 눈이 내리고 있다.
어~~~랴...일기예보에는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없었는데...
조금은 불안하다
동대구역 광장의 故 박정희 대통령 동상
閣下께서 富國强兵으로 일궈놓은 이 나라는 지금 風前燈火 앞에
놓여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당신께서 일궈놓은 이 나라에는 나라와 민초들을 생각하는
지도자라는 인간들은 한놈도 안 보이고, 오직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왼편, 오른편으로 나눠 쌈박질만 일삼는 저 인간들에 각하께서는
할 말이 없으신가요?...갈수록 살아가기 힘든 민초들의 속은
타들어만 가네요...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빙그레 웃으시기만 하는
각하께 예를 표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서부주차장(07:35)
서부주차장에 도착하여 대합실내에 있는 분식집에서
1,000원짜리 오뎅 2꼬치로 아침을 대신하고 고령가는
버스표를 예매한다
대구서부발→ 고령행 버스표
버스표를 예매한 다음에 화장실에 들려서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는 바스 승차장으로 향한다
대구에서 출발한 버스는 30분만에 고령터미널에 도착한다
고령터미널(08:30)
터미널에 도착한 다음에 서울가는 막차 버스표를 예매하고
고령의 산을 타면서 몇번 이용했던 택시를 호출하여 오늘의
들머리인 부례고개로 향한다
부례고개(扶禮峙:145m:09:10)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와 예곡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우곡면소재지가 있는 도진리에서 구절양장의 도로를 따라서
올라오면 10번 군도가 이어지는 삼거리가 나오는 이곳이
부례고개인데 MTB 자전거 도로 표지판이 있고, 지도를 보면,
예곡리쪽으로 조그만 내려가면 성황당이 있다고 하는데 이 고개에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지명의 유래는 부례마을에서 따온 것으 낙동강변에 있는 부례마을은
낙동강 맑은 물에 잉어떼가 펄쩍 펄쩍 뛴다고 하여 “부리” 라고도 하고
이곳에 달성군 구지면 징동으로 건너는 나루터가 있다.
부례마을에는 옛날 이곳에서 보기 드문 열녀가 있어 그 예의가 돋보여 사람들에게
모범이 된다 하여 도울 부(扶), 예도 예(禮)를 써서 부례라고 마을 이름을 지었다고 하며,
마을과 가까이 있는 고개를 부례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
부례고개는 우곡면 도진리와 예곡리 사이에 위치하는 고개로, 예로부터 부례마을에는
부례나루터가 있었으며, 부례고개와 낙동강은 대구와 우곡면 소재지를 연결하는 교통로로
우곡면 동쪽 경계를 이루는 낙동강을 따라 형성된 마을인 부례마을·들꽃마을·관솔마을·
아치동마을과 우곡면 답곡리·봉산리, 청룡산과 용머리산이 남북 방향으로 길게 이어져
있어 고령군으로 이동하려면 산을 넘어가는 고개를 이용해야 하는데, 부례고개가
그 역할을 한다.
특히 이 지역에서 산을 넘어 서쪽으로 연결되는 군도 10호선의 도로가 통과하는
곳은 부례고개밖에 없으므로 부례고개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중요한 교통로이다.
군도 10호선은 우곡면 예곡리에서 부례고개를 넘어 도진리로 이어지며, 도진리에서는
도진교를 지나 군도 6호선 및 북쪽의 개진면에서 군도 4호선과 연결되어 대구 및
다른 지역과 연결된다.
산행을 시작하다(09:20)
도로옆 절개지 능선으로 맥길이 이어지지만, 도로와 맥길이 나란히
가기에 그냥 편안한 포장도로를 따라서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저 앞에 송전탑이 서 있는 능선이 삼각점이 있는 296.4m봉이다
회천(신상경표상:칠봉)지맥의 마지막 구간을 시작하면서 아쉬움과
悔恨이 가슴속에 다가와 먹먹함을 느끼게 했던 지맥길이라서 그랬던가...
무더웠던 지난해 여름에 첫 구간을 시작하면서 다른 지맥길에 비해서
등로는 그리 힘들지 않았으나 갑자기 산에서의 급체와 컨디션 저하로
많은 고생을 했던 지맥길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유난히 기억속에
많이 남았던 이 길의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진한 아쉬움이 남는구나.
도로에서 내려다 본 부례마을
도로에서 내려다보니 낙동강변에 예곡리 부례관광지와 그 뒤로 구지면 아파트단지,
국가산단 그리고 저 멀리 희미하게 비슬산 줄기가 좌우측으로 길게 펼쳐지는데,
겨울이면 극성을 부리는 미세먼지 탓인지 아니면, 잔뜩 흐린 날씨 탓인지는 몰라도
모든게 흐릿하여 기분이 꾸리하다
겨울 그리움 /오보영
그리운 이여
혹시나 당신
겨울이 오는 길목에
혼자 움츠리고 앉아
시린 맘 달래고 있는 건 아닌지...
언뜻 스쳐가는 당신위에
내리쪼이는 이 햇살이 더 환하게 비추어
따사하게
얼어있는 당신 몸과 맘을 좀
녹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오
보고픈 이여
부디 다가오는 긴 겨울
포근히 잘 지내다가
우리
내년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봄날
활짝 펴진 얼굴로
더 반갑게 만날 것을 기약하며
찬 기운에
아련히 밀려오는 이 그리움을
삭이기로 해요
최근에 포장을 한듯한 부례마을로 내려가는 도로를 따르다가
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옹벽으로 방향을 바꾸어 능선으로
오르면서 본격적인 회천지맥의 마지막 산행을 시작한다
유인 청주한씨가 있는 묘지로 오르는데 후손들이
묘지에 오르기 위해 설치한 앙증맞은 사다리가
산꾼을 반겨주는구나...복받을깁니다.
유인 청주한씨 묘(09:24)
묘지에서 낙동강 동쪽을 바라보니 조만간 걸어볼 예정인
토평(신산경표상:왕령)지맥의 마지막 산인 구지읍 화산리에
있는 석문산과 진등산. 대니산이 보이는데 그 아래가 합수점인 도동나루이다
청주한씨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지맥 마루금에서
자주 만나는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마지막 산행을 축하해
주려는 모양이다...축하할 것 까지야 없소이다.
남들이야 3~4번에 끝낸 지맥길을 나는 7번에 끝내는걸요
NO 125송전탑(09:26)
마지막 구간의 초반길은 아마도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다녔던 길이라서 그랬는지 등로는 뚜렸다고 지나가신지
얼마되지 않으신 분(걸어서 하늘까지)의 시그널이 반긴다.
잘생긴 소나무와 잡목사이로 이어지는 오솔길같은 마루금...
296.4m봉을 오르기 위한 급경사로 향한 워밍업을 시작한다
갑자기 나타나는 급경사의 오르막길...
아직 몸뚱아리가 예열도 되기전에 시작되는 이런 길이
범여에게 아주 쥐약같은 코스이지만 지맥길을 마치기
위해서는 이 또한 극복의 대상이라 생각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직진으로 이어지는 사면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지면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고, 잔뜩 찌푸린 흐린 날씨탓인지
초반부터 몸뚱아리에서 통증이 시작된다
가쁜숨을 몰라 쉬면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정상에서 NO124 송전탑이
올라오는데 고생을 했다고 하면서 초반에는 다 그런 것이라고
위로를 해주는듯 하다
돌아앉아 있는 NO124 송전탑을 만나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능선으로
올라서니 잡목속에 갇혀있는 4등 삼각점이 있는 296.4m봉에 도착한다
296.4m봉(09:47)
1/50,000의 영진지도에는 이곳을 청룡산이라 표기되어 있고,
고도도 300.2m로 표기가 되어있어 헷갈리는 곳이지만
실제로 청룡산은 이곳에서 한참을 더가야 있다.
296.4m봉 정상 삼각점(△창녕411/ 1981재설)
296.4m봉 정상에서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우측으로
약간 휘어지면서 합수점으로 향하는 맥길을 이어간다
예전에 묘지였는데 후손들이 조상의 묘를 돌보지 않는지
아니면 代가 끊긴건지 봉분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자란다.
갈수록 조상들에 대한 禮敬心이 사라지는 것을 보는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안부 갈림길(09:50)
안부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의 도진리로 가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지맥길은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는데...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나 선답자의 시그널이
걸려 있어서 큰 걱정을 안하고 통과하니...
뚜렸한 안부가 나오고 곧이어 송전탑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NO123 송전탑(09:52)
뚜렸한 등로로 이어지는 회천(칠봉) 지맥의 마지막길
동대구역에 내릴때 뿌리는 눈발로 조금은 긴장을 했었는데
산길에 들어서니 등로에 먼지가 풀풀 날정도의 건조한 날씨다.
날씨도 그리 춥지않고, 바람도 불지않아 산행하기는 더 없이
좋은 날씨이나, 잔뜩 하늘이 언제, 눈.비가 내리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안부(09:54)
소나무의 무덤을 지나니 지도상에는 나타나지 않는 무명봉이 나온다
무명봉(09:56)
무명봉에서 내려서자마자 y자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의 부례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아닌 직진의
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09:58)
이름없는 봉우리에서 내려서니 뫳돼지 쉬키들이 등로를
마구 파헤쳐놔서 등로의 구분이 잘 안되는구나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트랙을 확인하니 정상적으로
맥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데, 잠시후에 선답자의
시그널을 만나 편안한 맥길을 이어간다
편편한 안부를 지나서 우측의 도진리로 이어지는 사면길을 버리고...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청룡산 정상으로 향한다
청룡산 정상에 올라서니 커다란 소나무의 높은곳에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있고, 정상 아래에는 묘비가 있는 묘지가 보이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조망은 전혀없다
쳥룡산(靑龍山:311.3m:10:01)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와 월오리, 예곡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북쪽으로는
부례고개가 있고 남쪽으로는 화산덤(310.8m)과 용머리산(179m)과 연결되어
있으며, 부례고개로는 10번 지방도가 통과하고 청룡산은 두 하천 사이에
끼어 있으며 청룡산을 경계로 동쪽에는낙동강이 크게 곡류하므로 규모가
큰 하식애(河蝕崖)가 발달되어 있으며, 서쪽에는 회천(會川)이 흐르는데,
두 개의 하천은 우곡면 객기리 개목나루터에서 합류한다.
청룡산 북쪽에는 우곡면의 소재지인 도진리가 자리 잡고 있고 도진리는
고령 박씨 동족마을로 죽연정(竹淵亭), 낙락당(樂樂堂) 등이 있으며 청룡산에서는
심마니들이 매년 산신제를 지낸다고 하며, 조선시대의 지리지와 지도에는
청룡산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조선지지자료에 하미면 도진동 북쪽에 있다고
쓰여 있고 청룡산은 조선지형도(창녕)에도 표기되어 있다.
1/50,000의 영진지도에는 이곳을 화산덤이라는 지명으로 표기가 되어 있으나
실제 화산덤은 남쪽으로 더 가야 한다는데 처음 이곳에 오는 산꾼 범여는 알 길이 없다
청룡산 정상 아래에 있는 청주한공의 묘
청주한공의 묘지 아래로 내려서면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잔뜩 흐린 날씨이기는 하나 산행하기는 더 없이 좋다.
늘 나홀로 걷는 산행에 濕이 베였는지 이렇게 걷는 길에
베낭속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가는데 갑자기 후두둑 하는 소리에 놀라서
앞을 보니 고라니 한마리가 36계 줄행랑을 치는구나
갈림길(10:03)
우측의 월오리 마을회관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좌측으로 들어서니 등로가 조금 희미하다
갈림길을 지나니 나뭇가지 사이의 낙동강 너머로 달성군 구지읍
국가산업단지가 흐릿하게 보이니 반갑구나... 내 고향을 가려면
저곳을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곳인데...
등로 주위로는 뫳돼지들이 먹이를 찾아서 땅을 마구 파헤쳐진
식흔(食痕:먹이 활동으로 인해 생긴, 파먹은 흔적)들이 많이
보이는 희미한 길을 따라서 내려간다
이곳에서는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뚜렸하게 이어지는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려선다
부곡동 갈림길(10:08)
청룡산을 지나면서 갈림길이 자주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좌측의
우곡면 예곡리 부곡동 방향으로 내려가면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부곡(釜谷)마을의 지명은 마을의 골짜기 모양이 가마솥과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등로가 없는 희미한 곳으로 내려선다.
세상사를 살아가면서 인간들이 부리는 욕심들.
다 부질없는 짓거리라는 것을, 세월이 지나면
다 알게 될터인데,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니 말이다
얼마전에 가수생활을 접은 歌皇 나훈아 형이 서울의 라스트 공연에서
한 말이 두고두고 귓전을 두들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청춘이란
결혼을 하고 애 낳기전까지가 청춘이란다.
애를 낳고나서 부터는 애 키우랴, 시집 장가 보내랴, 하다보면
팍삭 늙어버리니 얼마나 허무한가.
또 내가 번 돈은 자식에게 물려주지 말고, 내가 다 쓰고 가라는 말이
왜 그리도 가슴속에 와 닿는지...자식에게 10억을 물려주나, 20억을
물려줘도 새끼들은 1도 고마워하지 않으니 무조건 다 쓰고 가라는 그 말...
참 진리인 듯 하다
무명봉(10:12)
246.1m봉을 향한 오르막길
조금전에 한 나훈아 형아가 한 얘기...백번 천번 지당하신 말씀...
나도 이제부터는 내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볼 생각이다
246.1m봉(10:17)
246.1m봉 아래로 내려서니 移葬을 한 듯한 무명묘지
한 기가 보이고 완만한 내리막길로 향한다
부산 mtr님의 빛바랜 시그널...
가슴속에 피는 솜다리꽃, “주능선 思母曲따라” 라는
멋진 글귀...저 분은 시인이었나 보다.
* 사모곡(思母曲)이란 고려 가요의 하나로 아버지의 사랑보다 어머니의
사랑이 더 크고 지극함을 낫과 호미에 비유하여 읊은 노래로, 《악장가사》와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에 전하며, 일명 <엇노리>라고 한다.
≪금합자보(琴合字譜)≫에 사설 및 악보가, ≪악장가사≫에는 그 가사만 전한다.
이와 같은 악보의 기록으로 미루어 <사모곡>은 조선 초기까지 전승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사설은 어머니의 사랑을 기린 내용이다
등로가 조금씩 희미해지나 길을 찾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안부(10:21)
가뭄 탓이었나...뫳돼지의 못간통은 물이 바짝 말라있다
완만한 봉우리에 올라서는데...옛날의 산행지도에는
210.5m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으나 오룩스맵상의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는 무명봉이다
210.5m봉(10:23)
210.5m봉 정상에는 내려가는 길의 마루금은 사면길로
이어지는데 속된말로 양넘 지갑줏듯 편안한 발걸음으로
내려서는데 지도상에도 없는 갑자기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10:25)
고령군 우곡면 월오리 방개골에서 예곡리 아치실로 이어지는 능선에 새롭게
임도를 개설중인데, 예곡리에 있는 아치실은 아치산 밑에 있는 고려 초기에
형성된 마을로 지형이 “꿩이 알을 품고 있는 모양” 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령군 우곡면 월호리(月塢里) 방개골의 모습
월호리(月塢里)는 임진왜란 때 월오(月塢) 윤규(尹奎)가 이곳에 피난 와서
시를 짓고 책을 읽으며 거문고를 타면서 울분을 달래다가 왜적에게 붙들려
순절하자 마을 사람들이 윤규의 호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 달리 달오라고도 한다
방개골는 모듬내 물이 불어 나면 뻘이 많이 모인다고 하여 지어진 명칭이다.
새로 개설되는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향한다
오랜 세월동안 산을 지키느라 허리까지 꾸부정한 저 나무
이 나무처럼 자기 본분에 충실하면, 세상이 참으로 편할텐데,
민초들을 하늘처럼 섬기겼다고 선거철만 되면, 알랑방귀를
끼는 바람에 국회의원이라 감투를 쒸워 놨더니만, 그 약속을
헌 신 버리듯 내팽개치고는 쪽수를 앞세워 나라 살림을 거들내고
있으니 속에서 천불이 난다...하기사 누구를 탓하랴...못된 넘
뽑아준 내 손가락이 문제인데...
이런저럼 잡념속에 걷다보니 편안한 능선에 올라선다
빛바랜 이대장의 흔적
고개(10:32)
우측의 월오리와 좌측의 예곡리로 잇는 뚜렸한
등로가 이어지는 고개를 가로질러 맥길을 이어간다
203.8m봉(10:34)
준.희쌤의 산패와 이경일님의 코팅지 표식이 있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정상에는 3등 삼각점이 있는데,
선답자들의 시그널과 코팅지에 아치산이란 표식이 있으나
공식적인 지명은 아니다.
“아치” 란 지명은 우곡면 예곡리에 있는 아치실이란 마을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자연마을인 아치실은 고려 초기 아치산(207m) 밑에 형성된 마을로, 지형이 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어서 붙인 이름으로 마을 사람들은 꿩 혈의 정기를 받는다는
믿음으로 꿩을 보호해 오고 있다는 설이 전해지며. 달리 아치리·아곡이라고도 한다.
203.8m봉 정상 삼각점(△창녕327/ 1981재설)
203.8m봉 정상에서 내려서 조금을 지나니...
갑자기 등로가 難解해지는데, 그래 지맥길이 이 정도는
되야 걷는 맛이 있지, 너무 쉬우면 맥꾼들이 自慢에
빠지기 쉽지...바짝 긴장을 하면서 걷는데 오늘 산에서
자주 만나는 분의 시그널이 선답자답게 친절하게 길을 안내한다
다시 뚜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조금을 내려서니
갑자기 우측에서 내려오는 뚜렸한 임도가 보인다
임도(10:38)
임도를 따라서 좌측으로 향하는데...
주변에는 관리가 안된 亡者의 보금자리들이 많이 보이는 걸로봐서
예전에 이곳이 공동묘지일 개연성도 보이긴 하다마는 섣불리
예단을 할 정도는 아닌듯 하다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삶의 길을 물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라.
그렇게 하면 당신은 당신의 길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길을 가게 될 것이고
그 길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의 내면을 통해 당신의 길을 찾아라.
우측으로 살짝 등로가 열리면서 온 들판이 비닐하우스로
뒤덮힌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들판이 펼쳐지고, 회천 너머로
鶴과 관련된 勸善懲惡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소학산이
잔뜩 찌푸린 먹구름에 가려진 채 홀로걷는 산꾼을 내려다 본다
갈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길을 걸어가는데...
아무런 전망도 없는 지저분한 곳에서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잔뜩 보이는데 어느 산꾼이 시그널에다 용머리산이라
적어놔서 트랙을 확인하니 이곳을 용머리산이라고 확인
시켜준다
주위에 준.희쌤의 산패가 있나없나를 확인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아 그냥 가는데 20여m
지난 지점에 쌤의 용머리산 산패가 보인다
용머리산(178.7m:10:46)
고령군 우곡면 연리와 월오리,답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이라기 보다는
그저 밋밋한 구릉성 산지로 주변에는 잡목이 무성하여 정말 지명의 명성에 비해
볼품없는 산으로 좌측의 낙동강과 우측의 회천을 접하고 있는 산인데, 어디로
보나, 용의 머리처럼 보이지 않아 실망이다...그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고령군의
어느 자료에도 용머리산에 대한 기록은 찾을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곳이 용머리산이면, 몸통과 꼬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 역시
이곳에서는 알 수가 없다...범여의 짐작컨데, 이 산 아래의 어느
마을에서 이 산을 바라봤을때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 아닐까 하는게 범여의 추측이다
용머리산에 대한 실망감만 안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맥길은 좌측으로 살짝 꺽어서 내려간다
갑자기 무지막지한 잡풀지대...여름에 왔으면 개고생할 뻔 했다
나무를 휘감고 있는 으름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을 통과하는데 겨울이라 큰 고생을 안하고 지나간다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어쩌면 그 길이 당신이 지금까지 찾고자 했던 것을
발견하게 해 주는 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145m봉(10:55)
무명봉인 145m봉 지나자마자 직진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져 내리막으로 향하는데 알바할 걱정은 별로없다
희미한 좌측 능선으로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후답자를 안내한다
안부(10:58)
맥길은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4시 방향으로 이어진다
등로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고령군 우곡면 답곡리 논실마을이 얼굴을 내민다.
논실마을은 약 500여년 전 창녕에서 온 성원(成元)이라는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에 논이 많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길을 찾았다면,
그 길을 가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충분한 용기를 가져라.
왜냐하면 실망, 패배, 절망은 신이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논실마을 갈림길에서 내려서니 김녕김씨 가족묘가 보인다
김녕김씨 가족묘지(11:02~10)
산행을 출발한 후에 처음으로 이곳에서 망자의 밥상을
빌려 가지고 온 두유와 초코파이로 점심을 대신하며
8분간의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포산곽씨 종중묘가 보이고...
포산곽씨 종중묘의 좌측으로 트랙을 확인하면서 내려가니...
2차선도로가 나오고 앞쪽으로 논실마을이 보이면서 나타나는 절개지...
처음에는 난감하지만 정신을 차려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혼자놀기
연동고개(蓮洞峙:45m:11:15)
고령군 우곡면 답곡리(좌)와 연리(우)를 이어주는 고개로 도로명 주소는
답곡로로 지명의 유래는 연동마을 지명에서 따온것으로 보인다.
고려 말기에 형성된 마을로, 마을 앞을 흐르는 회천변 늪에 연꽃이
만발할 때면 그 경치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 연화동(蓮花洞)
이라고 부르다가 연동(蓮洞)이 되었다고 하며, 마을 뒷산이 얼음 등처럼 생겨
빙등산이라 하였고, 그 산 밑에 있는 마을이므로 빙등 또는 빈등이라고도 한다.
포산곽씨 문중묘쪽으로 가지않고, 김녕김씨 묘지 아랫쪽으로
내려왔으면 개고생을 하지 않았을텐데 트랙을 따라서 가다가
개고생을 하면서 연동고개로 내려온 셈이다
연동고개를 가로질러 절개지쪽의 급경사로 올라간다
급경사의 오르막길
지맥길을 걷는 산꾼이 편안한 산길을 걸은지가
얼마나 됐는가?...코는 땅에 닿고, 수술부위에서 터져
나오는(?) 통증에 숨을 끊어질 것 같지만 그래도 30여개
남은 맥길을 마치기 위해서는 거쳐가야 할 과정이라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올라간다
숨이 끊어질 것만 같은 통증을 이겨내며 올라서니
좌측으로 답곡리(畓谷里)가 나뭇가지 사이로 펼쳐진다
고령군 우곡면에 있는 답곡리는낙동강이 흐르는 농촌지역으로 자연마을로는
논실, 희정골이 있는데, 논실은 약 500여년 전 창녕 성원이라는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에 논이 많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고, 희정골은 강 건너편에 있는
곽씨 문중의 효자, 효부, 열녀 정각들을 이곳 후손들이 바라보고 조상들의
가르침을 본받게 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가뿐 숨을 한번 몰아쉬고 올라서니 선답자의
시그널이 나뭇가지에 많이 걸려 있는데 지도상의
족보있는 107.0m봉이다
107.0m봉(11:26)
연동고개에서 급경사의 오름길에 개고생을 보상받는
느낌인가...늘 산은 인간에게 조건없이 베푸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자기 잇속만 챙기는 속물이라 편안한 길을
걸으면서도 미안한 생각이구나
겨울 길섶에서 / 은파 오애숙
그대 떠난 그자리에
외로움이 맘 저리게
밀려오는 겨울 초입
소슬바람 사이사이
휩쓸리어 울는 소리
요란하다 밤 깊은데
못떠났던 낙엽들이
몰아치는 바람속에
겨울 물밀듯 오려나
난데없는 창문밖에
후두두득 떨어지는
빗방울의 메아리속
낙엽들을 잠재우고
왔던길로 되돌리려
밤새토록 비내릴 때
길 잃은
기러기처럼
외로움이 흐르누
112m봉(11:32)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상에는 표시가 안되어 있는
무명봉인데, 좌측으로는 논실로 내려가는 흐릿한
등로가 보인다
등로는 살짝 우측으로 꺽어지는 낙엽이 푹신한 지맥길
여유로움으로 길을 걷는데, 하늘은 자꾸만 먹구름으로
덮히기 시작하니 조금은 불안함이 엄습해온다
등로 우측으로는 우곡면 연리의 들판이 보이는데,
이곳의 비닐하우스는 대부분이 양파재배지이다
등로에는 판석처럼 보이는 암릉위를 걷는데
잠시후에 대봉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대봉산 갈림길(11:35)
y자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마루금에서 좌측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대봉산으로 향한다
안부(11:36)
대봉산(大鳳山:120.9m:11:38)
고령군 우곡면 봉산리와 답곡리, 연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준.희쌤의
산패와 서울청수산악회에서 설치한 산패,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마을
주민들이 올라와서 운동하는지 운동시설과 묘지 1기가 있고, 좌측으로는 봉산리
샛가지마을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지명의 유래는 산 좌측 아래에 있는 봉산리 샛가지에서 따온듯 하다
고령군 우곡면에 있는 봉산리(鳳山里)는 샛가지, 봉양마을이 있으며
경주최씨들이 집성촌으로 이루고 있는 마을로서 조선 말기 현풍군
답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조지동이라 하고 우곡면에 편입하였다가
1983년 2월 15일 우곡면 봉산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1일 우곡면 봉산리가
되었다.
샛가지 마을 뒤에 대봉산이 솟아 있고 마을 앞으로는 넓은 늪이 있었는데,
이 늪의 형태가 마치 새가 날아가는 모습과 같고 울창한 숲과 넓은 늪에 많은
새 떼들이 서식하여 샛가지라 하였는데, 일제강점기에 샛가지를 한자 표기인
조지동(鳥枝洞)으로 바꾸었고, 1983년 조지동의 어감(語感)이 좋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대봉산의 이름을 따서 봉산(鳳山)으로 바꾸었다.
대봉산 정상의 모습
샛가지 마을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
글씨가 마모되어 판독이 잘 안되는 묘비
다시 대봉산 갈림길(11:43)
대봉산 정상에서 잠깐 머물다가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다시 합수점을 향한 맥길로 걸어간다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잔뜩 걸려있는 대봉산 갈림길에서 내려서니
관리가 안된 무명묘지가 있고, 묘지를 지나니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11:46)
3갈래의 등로가 보인다...직진으로는 철계단 방향이고,
우측은 빙등마을 방향이고, 좌측은 봉양마을 방향이다
그런데 좌측으로 백두사랑의 이대장의 흔적이 보이기에
처음 이곳을 온 범여로서는 당연히 선답자의 흔적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좌측으로 향한다
낙엽이 수북한 급경사의 내리막길...상당히 미끄럽다.
누군가가 쳐놓은 안전로프에 몸뚱이를 의지한 체,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묘지가 보이고...
조심 또 조심...
급경사를 내려서니 67번 도로(도로명 주소:우곡로) 너머로
고령군 우곡면 봉산리 봉양마을이 흐릿하게 보인다.
대봉산 밑의 양지 바른 곳에 있는 마을이라서 봉양마을이라 부른다
가슴을 조이면서 도로로 내려선다
67번 도로(11:54)
고령군 우곡면 연리의 빙등마을에 봉산리 봉양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이지만
고개의 이름은 없고, 고령에서 구지로 향하는 도로로 우측의 빙등마을의
이름을 빌려 선답자의 산행기중에는 빙등고개라 표기된 기록도 보인다
봉산리 방향으로 가다가...
우측으로 꺽어져 수로를 따라서 절개지로 올라간다
힘들게 능선에 올라선다
차라리 저 철계단으로 내려왔으면 훨씬 수월한 뻔 했다
능선에 올라선 다음에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12:03)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낙엽으로 인해 등로는 잘 안보이고
마치 스펀지 위를 걷는 것처럼 폭신한 길을 걷는다.
나뭇가지와 억새에 묻혀있는 망자들의 천년주택이 많이 보인다
경주최공 묘(12:06)
사골지 안부(12:07)
좌측으로는 우곡면 봉산리 봉양마을로 가는 길이고
우측은 연리 곤사골지라는 저수지로 내려서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산에 오르는 모든 행위를 등산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산에 가는 모든 이를 산악인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산에 가는 목적은 분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님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광부는 광물을 채취하기 위해
산에 가기 때문에 이들을 산악인이라 칭하지 않는다.
순수하게 산을 오르기 위한 목적으로 산에 오르는 것을
'등산'이라고 한다고 한다.
무명묘지(12:10)
봉우리 아래 풀섶에 묻힌 무명묘지 너머로 구지읍내의 아파트 단지가
흐릿하게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밀양(신산경표상:비슬)지맥의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무명봉(12:12)
무명봉에서 맥길은 동남쪽으로 향하고...
아무런 생각없이 편안하게 내려서니 낙엽속에 묻힌 묘지를 만난다
통훈대부 영산신공(通訓大夫 靈山辛公)묘(12:14)
* 통훈대부(通訓大夫)는 조선시대 문신 정3품 하계(下階)의 품계명으로
문산계에서는 정3품 상계인 통정대부 이상을 당상관(堂上官)이라 하고,
하계인 통훈대부 이하를 당하관(堂下官)이라 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가 제정될 때 정3품 상계는
통정대부, 하계는 통훈대부로 정하여져 『경국대전』에 그대로 법제화되었다.
당하관에 해당되는 관직으로는 정(正)·직제학·편수관·좌유선(左諭善)·우유선·
판교(判校)·좌통례(左通禮)·우통례·제거(提擧)·찬선(贊善)·상호군(上護軍)·목사·
대도호부사 등이 있다.
1438년(세종 20)에 정비된 녹과(祿科)에 의거하여 실직(實職)에 따라 1년에 네 차례에
걸쳐 당하관은 중미(中米 : 중질의 쌀) 10석, 조미(糙米 : 벼를 매갈아서 만든 쌀) 30석,
전미(田米 : 좁쌀) 2석, 황두(黃豆 : 누런 콩) 15석, 소맥(小麥 : 참밀) 7석, 주(紬) 4필,
정포(正布) 13필, 저화 8장을 지급받았다.
영산신공 묘지를 지나면서 우측의 하미마을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이고 맥길은 직진의 능선으로 향한다
무명봉(12:17)
선답자의 흔적을 바라보면서 내려서는 길 또다시
묘지가 보이는데, 마치 망자의 천년주택을 순례하는
느낌이다
김녕김공&유인전주이씨 묘(12:22)
안부(12:23)
107.7m봉으로 오르는 길...등로가 살짝 미끄럽다
등로 우측으로 비닐하우스 너머로 덤밑산(106.1m:합천군 덕곡면 포두리)이 보인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니 다남산(402m:합천군 청덕면 운봉리)이
보이는데 저 산너머 어딘가에 내 고향인데...설날이 가까워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그립다.
107.7m봉(12:29)
107.7m봉 정상에 있는 유인진주강씨 할매묘
진주강씨 할매묘 우측 아래로 내려서는데...
급경사의 내리막길인데 등로가 상당히 미끄럽다.
산이나 인생길이나 정상길이나 내려갈 때 조심해야 하는게
만고 불변의 진리인데...여의도에 지체높은(?)자들만이
그걸 모르는 것 같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걸 잊지마셔...
안부(12:36)
안부에 자리잡고 있는 포산곽씨 묘
고도가 낮아질수록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묘비가 보이는 안부로 내려선다
밀양박공 묘(12:41)
밀양박공 묘를 지나니 쥔장이 관리를 하지 않은듯한
매실밭이 나오고 다시 등로는 조금씩 지저분해지기
시작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고령군 우곡면 포리 후동마을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비슬산의 능선들이 흐릿하게 보이면서
지난해 봄에 걸었던 아련한 추억들이 밀려온다
포리(浦里)는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동쪽으로 낙동강이 흐르는
농촌이고 자연마을로는 개밭골, 대바우, 후동이 있는데 개밭골은 낙동강변에 위치한
큰 마을로 강물의 물길에 따라 갯벌이 많이 모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대바우는
포동에서 달성군 구지면으로 건너가는 나루터인데 낙동강 건너 구지면쪽에큰 바위가 있어
대바우라고 불리며, 후동은 옛날 한 노승이 지나다가 마을 뒷산을 보고 제성산이라
이름짓고 이 땅에서 왕비가 날 것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좌측의 후동마을로 내려가는 임도를 가로질러 직진으로 이어간다
등로 우측으로는 우곡면 객기리 들녘 너머로 회천이 흐르고 있고,
그 뒷쪽으로는 다남산이 보이니 합수점이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경남 합천군 청덕면 운봉리와 덕곡면 장리의 경계에 있는 다남산(多南山:402m)은
산 줄기가 남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많다는데서 유래된 지명으로 소학산과 마주보고
있으며, 기암절벽이 수려한 산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옛날 이곳에 무효대사라는 노승이 살았다는 절터가 아직도 남아 있는데, 다남산 정상에 있는
이 절에는 아주 힘이 센 장사스님이 있었는데 이 장사 스님이 가끔 힘을 과시하여 마을 사람들을
위협 내지는 협박 등 불안감을 주는 행동을 하였다.
그래서 이를 근절, 예방하기 위한 묘책으로 스님이 하산 후 돌아갈 때 쉬어가는 능선 하단 부근에
큰 구덩이를 파서 퇴비를 많이 넣고 피마자 한 포기를 심어 정성껏 가꾸어 가을 수확기 시기에
김교원이라는 아주 힘이 센 경주김씨 후손에게 스님과 이 피마자 나물을 한 손으로 뽑는 힘겨루기
내기를 하도록 하였다.... 먼저 스님이 뽑도록 하였는데 스님이 전력을 다해도 뽑지 못하자 김장사가
한손으로 뽑아 올리고는 평소 스님의 횡포에 대한 보복으로 뽑은 피마자 나무로 심한 구타를 하여
혼쭐을 내고 난 후로부터는 스님의 횡포가 근절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등로에서 바라본 고령군 우곡면 포리 후동마을의 모습
후동마을은 옛날 한 노승(老僧)이 지나다가 마을 뒷산을 보고
제성산이라 이름짓고 이 땅에서 왕비가 날 것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후동마을을 지나면서 등로는 애매하다.
오룩스맵상의 트랙은 능선 살짝 아래로 이어지는데,
그쪽으로 내려가니 길은 보이지 않고 등로로 올라서니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보이기에 그냥 편한 길로 향한다
트랙을 벗어나 능선으로 향하는데...
아이쿠야...늑대를 피하려다 범을 만난 꼴이 되어 버렸네...
기존의 마루금을 포기하고 마루금에 한참
벗어나 있는 59.9m봉으로 향한다
등로 우측의 비닐하우스 사이로 합수점으로 향하는
회천이 유유히 흐르니 범여도 스틱을 내려놓을
준비를 해야겠다
59.9m봉(13:02)
59.9m봉을 찍고 좌측으로 향한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후동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로 내려선다
고개(13:08)
고령군 우곡면 포리의 후동마을에서 객기리 객기나루로
향하는 길인데 차량 통행은 아주 뜸한 편이다
한참을 돌아서 마루금에 복귀를 한 다음에
합수점으로 향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는 갑자기 사라지고...
가시밭길을 헤치고 올라서니 숲속에 배수장의 물탱크가 보인다.
숲속에 묻혀있는 배수장을 우회하니...
묘지 2기가 보이고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니 45.6m봉 정상이다
45.6m봉(13:17)
45.6m봉 정상의 4등 삼각점(△창녕477 / 1981재설)
45.6m봉 정상에서 지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고...
우곡면 객기리 새터마을을 바라보면서 내리막길로 향한다
지맥길을 걷다 걷다 남의 건물 지붕으로 맥길을 이어가기는 처음이다.
묘지 아래로 내려서 민가의 옥상 슬라브 지붕으로 내려선 다음에...
슬라브로 연결되는 계단을 내려서니 민가의 대문은 열려있다.
마당으로 내려서니 다행히 집안에는 쥔장이 없는지 인기척이 없어서
재빨리 마당을 빠져 나온다...종복씨, 분자씨...미안해요.
객기리 새터마을(13:24)
새터(新基)마을은 손터마을이 생긴 뒤 새로 개척한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으로
객기마을이 생긴 뒤 새터마을에 최왕이 마을을 개척하면서 경주최씨 집성촌이
형성되었으며, 객기리는 조선 말기 현풍군 왕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6년
(고종 32)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터·새터, 하미면
사등동을 병합하여 객기동이라 하고 우곡면에 편입되었으며,1988년 5월 1일 우곡면
객기리가 되었다.
새터마을 표시석이 있는 도로를 가로질러 민가앞
비닐하우스를 끼고 뒷쪽의 숲으로 향한다
마을 뒷쪽으로 올라서니 선답자의 흔적이 보이나 등로는 지저분하다
고령군 우곡면에 있는 객기리(客基里)는 마을 앞쪽으로 회천과 낙동강이 흐르는
농촌마을로 손터, 정터 등의 자연마을이 있는데, 손터는 대가야시대부터 손터나루터
[일명 객기나루터]로 불리던 곳으로, 낙동강을 이용하여 김해(金海)·구포(龜浦), 멀리는
외국과도 통하던 수상 교통의 요지였고, 창녕·마산·합천·성주 지방과 육로 교통을 연결하는
요지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고령 방면으로 침공하던 왜군이 이곳을 통과하기도 하였으며, 이처럼 많은
행인들을 보내고 맞는 나루터가 있었으므로 손터라 하였고, 한자로는 객기(客基)로 표기
하였는데, 많은 행인들이 묵고 가거나 지나간 곳이라는 뜻으로 이름 지어졌고 우리말로는
손터라고 하며 한문으로는 객기(客基)라고 부르며, 정터는 손터나루와 함께 형성된 마을이며
손터가 객인이 잘되는 곳이라면 정터는 주인이 잘되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 『택리지』[회상사, 1978]에는 객기리의 지명 유래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남양홍씨 28세손 홍용원(洪龍源)이 김해에서 고향인 한성으로 가던 도중 지인의
만류로 연고가 없는 객기리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이로인해 정착지 지명을
객기(客基), 즉 객지 터라 정했다고 전해진다.
복분자 나무들이 극성을 부리는 지저분한 등로에 올라선 다음에...
맥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족보있는 42.9m봉 정상으로 향한다
42.9m봉(13:35)
객기리 사람들은 이 봉우리를 마을 뒷에 있다고 해서 뒷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42.9m봉 정상에서 맥길로 되돌아 와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42.9m봉에서 내려서니 묘지들이 나오고 오늘 지맥길의
마지막 봉우리인 무명봉을 바라보면서 내려선다
트랙상으로는 틀림없는 마루금인데 길이 사라졌다.
이저저리 헤매지만 등로는 보이지 않고 좌측으로
어렵사리 내려서니 대밭이다
대밭으로 들어서도 등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밭으로 들어섰다가 길이 보이지 않아 되돌아 나와서
쇠파이프로 막아놓은 철조망을 월담하여 밭으로
들어선다
밭 가운데를 가로 지른 다음에...
회천(신산경표상:칠봉)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무명봉으로 향한다
무명봉(13:48)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90도 꺽어져 합수점으로 가는 길에
합수점 너머로 황강(신산경표상:수도)지맥의 마지막 구간에
걸었던 성산(250.1m:합천군 청덕면 성태리 소재)이 뚜렸하게
보이는데 저 길을 2013년 6월에 걸었으니 벌써 10년이란
세월을 훨씬 넘어 버렸구나...저 너머가 내 고향인데...
고향이란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때 고향이랬던가...
고향을 떠난지가 50년이 넘었으니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비닐하우스 뒷쪽에 객기배수장이 보이고 뚝방 뒷쪽으로는
합수점 앞을 가로막고 있는 율지교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합수점 가는 길에서 바라본 다남산의 모습
합수점 가는 길에서 만난 멋진 노거수.
힘들게 회천지맥을 마무리하러 온 범여에게 격려한다.
대단한 의지의 산꾼이리고...격려 고맙습니다
민가로 내려서니 농기계 창고가 나오고 좌측으로 내려서니
가정집처럼 보이는 정산사라는 절집을 지나 도로명 주소가
객기나루길인 포장도로로 내려선다
객기나루길(13:56)
오룩스맵상에는 이곳이 회천(신산셩표상:칠봉)지맥의 끝이다
우측의 객기배수장을 바라보면서 농로를 따라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이곳은 온통 양파밭이다...강 건너가 양파로 유명한
창녕이라 그런지 이곳도 온통 양파밭인듯 하다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눈이나 비가 내릴것 같은
먹구름이 밀려오지만, 산 속이 아니라서 큰 걱정은 없다
농로가 끝나고 낙동강 제방으로 올라선다
합수점으로 가는 낙동강 제방에서 바라본 무심사(창녕군 이방면 손곡리 소재)
무심사에서 무슨 재를 지내는지 지장보살....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지장정근
염불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오는구나
고향 /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운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하늘만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한점꽃이 인정스러 웃고
어린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이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합수점이 코앞에 보이는 지맥길의 끝자락에 왔다.
반바지님께서 이곳을 지맥길의 분기점이라는 코팅지를 나무에
걸어놨는데 약간 착각하신 모양이다...이곳은 지맥의 분기점이
아닌 합수점이 맞은 것 같네요.
이곳이 예전에 객기나루가 있었던 곳이라고 하는데, 경북 고령군 우곡면
객기리와 경남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 창녕군 이방면 송곡리와 만나는 곳으로
대가야시대부터 손터나루터(일명:객기나루터)로 불리던 곳으로, 객기리에서
창녕군 이방면으로 가는 나루로, 5일장인 이방장이 크게 번성하면서 나루터도
번성하였다... 1985년까지 두 척의 나룻배를 운행하였으나 낙동강 제방 축조와
물길의 변화로 지금은 마을 건너편에 나루터 흔적만 남아 있을 뿐 대부분 사라졌다.
회천이 낙동강에 입수하는 합수점을 바라보면서...
억새밭을 헤치며 합수점으로 향한다
회천(우) / 낙동강 합수점(14:05)
회천이 낙동강에 흡수되면서 더 이상 갈수가 없기에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고 베낭을 내려서 인증샷을 남기며 지맥길
하나를 마치는 인증샷을 남긴다...성치않은 몸뚱아리에게 늘 미안하다
조금만 기다려 주구려...
낙동강은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긴 강이며 길이 513.5㎞, 유역면적은 2만 3,860㎢이다.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 천의봉(1,442m) 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경상북도 봉화군와
안동시, 예천군, 상주시, 구미시, 칠곡군, 고령군 그리고 경상남도 밀양시와 김해시 등을
지난후에 김해시 남동쪽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서 서쪽은 서낙동강이 되고 본류는 낙동강
하구둑 갑문을 지나서 남해로 흘러든다.
이 강에 합류하는 지류는 반변천과 내성천, 금호강, 밀양강 등 742개에 이르고 주요
평야로는 상류부의 안동분지, 중류부의 대구분지, 하류부의 경남평야 등이 있으며,
강 유역은 전체적으로 내륙분지형 기후의 특성을 나타내고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는
철새도래지(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유명하다.
삼국시대에는 황산하나 황산강 및 황산진으로 불렸고 고려와 조선시대에 와서
낙동강, 낙수, 가야진 등으로 불렸는데, 본래 낙동이란 가락국의 땅이었던 상주의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란 뜻에서 유래되었고 또한 낙동강은 영남지방의 대동맥으로서
삼한시대부터 이 지역의 문화를 발달시킨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회천은 경상남도 합천군의 덕곡면을 흐르는 하천으로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와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 경계에서 발원하여 남류하여 고령읍 동쪽을 지나면서 안림천 등을
합하고 다시 남류하여 덕곡면과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의 경계를 이루면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회천은 ‘냇물이 모인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으로 일명 ‘모듬내’라고도 부르는데 회천의 상류인
대가천의 경우 성주군 대가면(大家面)에서 비롯되어 대가천(大家川)으로도 표기하고 있고
이외에도 회천을 문헌상 가천(伽川)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고, 가천은 조선시대 경상북도
고령지방에서 부르던 부분칭이고 신증동국여지승람(고령)에는 성주 가천(伽川)의 하류인데
남쪽으로 흘러서 용담천과 합류한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인증샷
오랫만에 합수점에서 인물 사진으로 인증샷을 남긴다
합수점에서 고향쪽을 바라보며, 진한
아쉬움을 남기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억새가 무성한 숲을 헤치며 낙동강 제방으로 향하는데,
여름철에는 합수점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운 듯 하다
고령으로 가기 위해서 객기리 마을회관으로 향한다
회천(칠봉)지맥을 마치고 가는 길은 정말 힘들었지만
종주를 했다는 뿌듯한 마음을 안고 객기마을회관으로
향한다
고령에서 봉산마을로 향하는 버스...언제 올지도 고령으로 가는 시간도 알 수 없다
객기리 마을 회관 앞에서 있는 정터 마을 표시석
정터는 그릇점이 있던 곳이어서 점터 또는 점기(店基), 마을 지형이
밥솥처럼 생겼다 하여 정터 또는 정기(鼎基)라고도 부르며, 정터는
손터나루와 함께 형성된 마을이며 손터가 ‘객인이 잘되는 곳이라면 정
터는 주인이 잘되라‘ 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객기리 회관(14:25)
객기리 회관에 도착하니 날씨는 춥기 시작하고 고령으로 가는 차량 시간을
알 수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어서 하는 수 없어서 아침에 이용했던
택시를 호출하고는 베낭을 정리하고, 베낭에 있는 초콜렛과 두유로
허기를 면하고 있는데 택시는 도착하고 고령으로 향한다
대가야(구 고령)읍내(14:55)
고령(高靈)이란 지명은 지대가 높으면서도 양지 바른 곳’이란 뜻으로, 신라 경덕왕 때부터
고양(高陽)으로 통용해 왔으며, 고려 고종때에는 옛 대가야의 중심지임을 내세워
‘영험하리만큼 차가운 냇물이 흐르는 곳’이란 뜻으로, 영천(靈川)이라 했다.
조선조(태종)에 다시 이름을 고치는 과정에서, 기존의 이름인 고양과 영천에서 하나씩 따
합성어로서 고령이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고령은 ‘지대가 높은 신령스러운 땅’이란 의미를
포함하게 되었다.
신장은 시에서
‘산세는 천 겹으로 빼어났고, 시냇물은 한 줄기로 길도다.
땅은 신령스러워 옛 흔적이 남아 있고,
동산은 고요하여 쓸쓸한 연못이 있네.
발을 걸으니 대숲이 푸르고,
담장이 낮으니 보리밭이 누렇도다’고 읊었다.
이것은 첩첩산중으로 표현되는 지대 높은 산세, 산고수장(山高水長)으로 표현되는
차가운 물줄기, 대가야의 역사적인 흔적을 신령스런 땅으로 규정한 것이다.
지금도 산지의 능선과 산기슭을 따라, 가야시대의 고분군(高墳群)과 암각화(岩刻畫)가
실재함으로써 신비의 땅임을 알리고 있는 고장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령[高靈] - 높고 신령스러운 땅
(땅 이름 점의 미학, 2008. 5. 15., 오홍석)...펌
버스표는 아침에 예약을 해놔서 걱정은 사라졌고, 배는 고프기에
이곳에 오면서 2번정도 들렸던 부산반점이란 중국집에 들려서
짬봉 한그릇 맥주 한병으로 지맥 완주를 자축하고 화장실에 가서
따뜻한 물로 깔끔하게 씻고는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도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난로옆에 앉아서 미적거리다가 잠깐 사이에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니 17시가 거의 다 되어간다.
쥔장에게 미안하다고 했더니, 너무 곤하게 주무시는 것 같아서
버스 올 시간에 깨우려고 했다고 한다...고맙고 미안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고령버스터미널(16:55)
고령발 → 서울행 버스표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합천에서 오는 버스는 도착하고
버스에 오른다...버스는 성주를 들린 다음에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는데 나는 늘 습관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서 차창밖을
바라보니 버스는 안성I.C를 지나고 있는데 명절 직전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차량의 더 빠른듯 하다...예정된 시간보다 5분정도 일찍
남부터미널에 내려서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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