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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회천(칠봉)지맥(終)

회천(칠봉)지맥 제5구간 - 기산고개에서 부례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24. 12. 27.

☞ 산행일시: 2024년 12월 22일

☞ 산행날씨: 맑은날씨에 상당히 추운 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12.7km / 5시간 4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기산고개-26번 국도 암거-KT 이동통신탑-133.1m봉-안부

                    221m봉-239m봉-안부-286.6m봉-NO29 송전탑-제석산 갈림길

                    357.1m봉-안부-332.8m봉-갈림길-폐비닐하우스-무명봉-묵묘

                    안부-215.4m봉-임도-포산곽씨문중묘-송전탑-갈림길-앞산

                    안부-207.4m봉-갈림길-갈림길-안부 계곡-성주이씨 묘

                김해김씨 가족묘-열뫼(미)재-파란 물탱크-우곡배수지-갈림길

                NO135송전탑-무명봉-갈림길-뫳돼지 사우나-안부-무명봉

                묘지-226.7m봉-안부-무명봉-안부-무명묘지-247.3m봉

                279.4m봉-안부-287.0m봉-웅덩이봉?-산불감시초소-안부

                305m봉-무명봉-302.3m봉-293.4m봉-갈림길-NO130송전탑

                안부-안부 삼거리-무명봉-NO129송전탑-안부-203.9m봉

                갈림길-초소봉-갈림길-고령박씨 묘-부례고개

☞ 소 재 지: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개진면, 우곡면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라지만, 부실한 몸뚱아리 탓에 엄청나게 추위를 타는

범여로서는 겨울 산행이 제일 겁이난다...일단 갈아입을 옷이 뚜꺼우니

배낭 무게가 늘어나고, 예전에 후반들과 다닐때는 버너, 코펠을 다니고

다니면서, 찌게나 라면을 끓여 따뜻하게 먹으니,  속도 편하고 잘 체하지도

않았는데, 홀로 다니면서 그렇게 장비를 지고 다닐 체력이 안되다 보니,

맨날 빵조가리에다, 두유나 쥬스, 초콜렛과 육포 등으로 점심을 해결하니

오후에는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지는게 문제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는 북쪽의 맥길은 나에게는 언감생심이다.

거기다가 강원도의 맥길은 겨울철에는 산불을 방지하기 위해서

통제하는 구역이 많다...하는 수 없이 그 대안으로 남쪽의 산을 택한다.

 

11월부터 4월까지는 해남, 영암, 강진, 장흥쪽의 맥길을 끝내고 봄부터

북쪽에 있는 지맥길을 걸으려고 했는데, 주말만 되면 남도지방의 일기가

불순하여, 하는 수 없이 오늘도 고령지방에 있는 회천(칠봉)지맥을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04:55)

허허~~~이런 횡재가...하기사 제 닭 잡아먹는 꼴이 되긴 했지만...

코레일 멤버쉽을 가지고 있는데 올 한해동안 열차를 많이 이용했다고

얼마전에 메일로 10만원 상당의 마일리지를 보내 왔는데, 어제 예매한

표를 창구로 찾으러 가니, 어르신!...마일리지로 재구매하면 열차표가

공짜로 동대구까지 갈 수 있다고 하기에 그러라고 했더니...정말 공짜다.

공짜를 좋아하면 안되는데 그래도 기분은 좋다

동대구역(07:00)

동대구역 광장을 빠져나와 대구 도시철 1호선을 타고

고령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대구 서부정류장으로 향한다

대구 서부 버스정류장(07:42)

대구발  → 고령행 버스표

08시에 출발하는 고령행 버스표를 예매하고, 대합실 내에 있는

분식집에서 감밥한줄에다 오뎅 2꼬치로 아침을 해결하고

버스타는 곳으로 향한다

08시에 대구를 출발한 버스는 남대구I.C를 빠져나와 30분만에

고령터미널에 도착하여 나를 내려주고, 거창으로 쏜살같이 달아난다

고령터미널(08:35)

오늘의 들머리인 기산고개로 가기 위해서는 대구로 가는 완행버스를

타야 하는데, 고령에서 대구 서문시장까지 가는 완행버스는 의외로

많은 듯 하다...구태여 택시를 타고 갈 필요가 없다.

 

20분 이상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질 않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온다.

하는 수 없이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오는데 그 사이에 버스는

가버렸고, 30분 가량을 더 기다렸다가 다음 버스를 타고 기산고개로

향한다

고령터미널을 출발한 지 15분만에 기산고개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린다

기산고개(箕山峴:56m:09:45)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기산리에 있는 고개로 깃대봉(311m)과

성산면 기산리 기산마을 뒷산(248.2m) 사이에 있는 안부이며

해발고도가 높지 않아 거의 평지에 가까운 고개로 이 고개에서

멀지않는 곳에 있는 금산재와 더불어 고령과 대구를 왕래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중요한 교통로로 여겨지고 있는데

지도상의 실제 기산고개는 이곳에서 고령방향으로 더 가서 있는데, 이곳은

맥산꾼들이 편의상 기산마을 입구에 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인 듯 하다 

 

이 고개의 명칭유래를 보면 기산고개의 서쪽에 위치한 성산면 기산리 기산마을의 

이름을 따 부르게 되었으며 기산마을은 마을 뒷산 모양이 키와 같이 생겼다 하여 

기싯 또는 기산이라고 불린다. 

 

기산고개의 북쪽에는 성산면 기산리 기산마을 뒷산과 기산마을 앞산이자

제석산(帝釈山, 387.1m)의 한 줄기인 깃대봉이 있고 기산고개의 해발고도는

60m로 주변 산지보다 상당히 낮은 안부이며 거의 평지에 가까울 정도로 높지 않은

고개로 기산고개 동쪽의 용소천과 서쪽의 신안천 사이의 분수계에 해당되는데

두 하천 중 용소천은 동류하여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하천이고 신안천은

서류하다가 금산 동쪽에 위치한 틀무실마을에서 유로를 변경하여 다시 남쪽으로

흐르다가 고령군 개진면 신안리에서 회천으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지난주와는 달리 이곳도 이번주에는 상당히 추운 느낌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산행 준비를 하는데 잠깐 사이에 손가락이

빠져 나가는 느낌이다...스마트폰과 똑닥이 카메라, 핫팩을 장착하고 스틱과

방한모로 무장한 채 산행 준비를 마친다

인증샷

산행을 시작하다(09:55)

기산리 버스 정류장에서 고령의 성산면 사부리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면서 오늘의 맥길을 시작한다

성산로라 불리는 905번 지방도를 따라서 올라오니 고개가 나오는데

이곳이 지도상의 기산고개로 한참을 돌아서 마루금에 복귀한 셈이다

고개 앞에는 성산면 사부리의 마을이 한가롭게 보이며,

우측의 맨 끄트머리에 우뚝솟은 가야산이 얼굴을 내민다

 

고령군 성산면에 속해있는 사부리(沙鳧里)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도요지(陶窯地)에서 사기를 구워 냈다고 하여 사기골이라 하였고,

1914년 사부동으로 바뀌었으며, 사부1리·사부2리로 이루어졌으며,

자연마을로는 사부곡·도룡곡·싯질·대밭마·주막동 등이 있다.

 

사부골은 이 마을을 개척할 때 도자기를 많이 구워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도룡곡은 옛날 용이 다니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싯질은 사부골 서남쪽

마을로서 긴 돌이 많아서 싯질이라 하였으며, 대밭마는 사부골 남서쪽의 조그마한

마을로 대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은 대나무를 찾아볼 수 없다.

주막은 사부골 남쪽 국도변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 마을에 주막이 많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현재 주막은 없고 주민들은 농업에만 종사하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풍곡산성(風谷山城),

사적 제71호인 성산 사부동 도요지 등이 있는데, 성산 사부동 도요지는 사부곡 한 곳과

남쪽 골짜기 일대로 나누어져 있다... 마을 안의 가마터는 집들이 들어서서 훼손이

심하지만, 밭으로 이용되는 곳은 아직 흔적이 남아 있고 부근에서 도자기 조각들이

많이 발견되며, 가야요는 인근의 성산 사부동 도요지와 연계하여 지역 문화의 전통을

이어 가고 있으며, 싯질에는 수령 300년가량 된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고개 아래로 내려서니 카라반이라는 캠핑카를 제작하는 업체가 보이고...

기산고개에서부터 걸어왔던 905번 지방도를 버리고,

캠핑카 제작업체를 끼고 좌측으로 향하니 26번 국도를

통과하는 암거가 나온다 

26번 국도 암거(10:03)

26번 국도 암거를 통과하자마자 좌측의 절개지로 올라서야 하는데, 

서리를 맞아 숨을 죽인 잡초더미에는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보인다

산을 오르기 위한 워밍업을 끝내기도 전에 잡목의

강력한 태클이 시작되는데, 그렇다고 안 갈수도 없잖은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올라서니 26번 국도가 보이고

나뭇가지 사이로 군계일학처럼 보이는 미숭산(美崇山:755m)이

주변에 있는 꼬맹이산들의 맹주 노릇을 하고 있구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구지명:고령읍) 신리와 쌍림면 용리,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에 걸쳐있는 삼면 경계에 걸쳐있는 산으로, 정상부에는  

미숭산성(美崇山城)이 있었는데, 현재는 성터와 성문의 잔해가 남아 있다.

 

미숭산성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처음 등장한다. "현 서쪽에 있다.

높고 험하며, 둘레가 397보인데, 안에 샘이 6곳, 못이 1곳이 있고 군창(軍倉)이 있다."

라고 쓰여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미숭산이 "현의 서쪽 2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대동여지도』에는 미숭산에 봉수대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미숭산은 고려의 장군이었던 이미숭(李美崇)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에 대항해 군사를

모으고, 이곳에 성을 쌓아 고려를 되찾고자 싸움을 벌였던 곳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당시 대세는 조선과 이씨 왕조 쪽으로 기운 상태였기 때문에 이미숭은 결국 고려 회복

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절했다고 하는데,  본래 산의 이름은 상원산이었으나, 뒤에

사람들이 이미숭 장군의 이름을 따서 미숭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절개지 오르는 인공수로의 시멘트길은 살짝 얼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산행을 시작도 하기전에 다치면 곤란하제

조심, 또 조심하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KT 이동통신탑(10:09)

초반부터 이어지는 빡센 오르막길

추운 날씨 탓인지 땀은 흐르지 않고, 거친 숨소리만

범여를 힘듬을 대변하고, 꽤나 뚜꺼운 장갑을 끼었는데도

손가락이 빠져 나가는 느낌이다

빡센 오르막을 올라서니 펑퍼지만 능선이 나오는데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준.희 쌤의 시그널이 산꾼을 반긴다

뚜렸한 미숭산 우측으로 있는 가야산은 수줍은 색시처럼 숨어 버렸다

길다랗게 펼쳐지는 광대고속도로(구 88고속도로)는 생각보다

달리는 차량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면서 산과의 交感을 하면서

걷다보니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133.1m봉에 도착한다

133.1m봉(10:16)

아주 낮은 꼬맹이 봉우리를 오르는데 초반부터 체력이 방전되는 느낌이다.

그래 너무 초반부터 너무 힘을 뺏구나 하면서 편안한 등로로

내려가라고 맥길이 배려해주는 듯 하다...그래 고맙다.

내리막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10:18)

좌측의 기산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맥길은 우측의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맑은 날씨라 그런가...소나무 사이로 빛내림이 시작되는데

환상적인 장면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221m봉(10:30)

무명봉인 221m봉 정상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억새에 묻혀버린 무명묘지가 보인다

너를 만나러 가는 길 / 용혜원

 

나의 삶에서

너를 만남이 행복하다.

 

내 가슴에 새겨진

너의 흔적들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나의 삶의 길은

언제나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리움으로 수놓는 길

이 길은 내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도

내가 사랑해야 할 길이다.

 

이 지상에서

내가 만난 가장 행복한 길

늘 가고 싶은 길은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안부에서 올라서니 벌거벗고 나체춤을 추는듯한 갈참나무와 푸르름을

잃지않고 있는 소나무가 함께 어울려 共生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가 좋다.

 

산 아래서 맨날 치고박고 싸우는 인간들 보다 너희들이 훨씬 낫구나.

내가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인간들의 추한 모습을...

239m봉(10:38)

좌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성산면 기족리 마을이 보이고 낙동강이

보이고,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광대고속도로가 교차하는 고령J.C

너머로 달성군 논공읍의 아파트들이 흐릿하게 보인다

북쪽으로는 지난주에 걸었던 의봉산과 이봉산(뒷쪽)이 아침 햇살을

쬐면서 추위를 이겨내고 있고, 좌측의 가야산은 흐릿하기만 하다

안부(10:43)

잡풀에 묻혀버린  무명묘지를 지나 올라서

준.희 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286.6m봉 정상에 도착한다 

286.6m봉(10:49)

286.6m봉 정상에는 안면이 많은 시그널이 산꾼 범여를 반긴다

다들 대단한 내공을 가지신 분들이신듯 하다

초반과는 달리 등로는  좋아지고, 편안한 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비록 평범한 듯 보이는 고도차가 없는 등로일지라도 

오르락 내리락을 거듭하면서 무명봉을 자주 만난다

이 등로는 주변에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만든 임도인 듯 하다

NO29 송전탑(10:57)

행복이란 목적지를 설정해두면 결국 그 길에 다다를때까지

지치기 마련이다...게다가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보장도 없다.

결국 그 길을 간다는 자체가 행복이 아닐까

제석산 갈림길(11:02)

좌측으로는 제석산(帝釈山:387.1m)으로 향하는 길이고 맥길은 송전탑 우측의

숲속으로 이어지는데 제석산은 이곳에서 약2여km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라

내가 언제 이곳에 올 일이 있나 싶어 가고 싶기는 하지만, 멀어도 너무 멀어서

입맛만 다신다...그래 지맥길에만 충실하자꾸나. 

제석산으로 향하는 좌측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들어서니 등로가 거칠다...그렇다고 가야할 길을 멈출수는 없잖은가...

357.1m봉(11:07)

우측 아랫쪽에는 산의 절반쯤 파먹은 듯한 (주)성윤골재라는 회사가

운영하는 채석장을 바라보면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급경사로 내려서니 말라 비틀어진 잡풀속에 도깨비 풀의

씨앗이 바지와 자켓에 들러붙어 온 몸이 가렵고 쓰리다

안부(11:11)

안부에서 바라본 제석산(帝釈山:387.1m)의 모습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와 성산면 어곡리에 걸쳐 있는 제석산에 관련된 설화는

고령군 성산면 어곡리에 위치한 어실마을의 유래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조선 중기에 어느 정승이 황제의 명을 받고 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 한데서

제석산이 유래되었다고 하며, 그리고 어명(御命)을 받고 정승이 다녀간 마을이라

하여 어실마을이라고 한다

제석산은 주변 산지들과 연계하여 등산로가 발달되어 있으며, 제석산에서 1km 정도

남쪽에는 해발고도 210.4m 정도의 앞산이 있다. 제석산 북쪽에는 성산면 어곡리가

위치하는데, 어곡리는 성산면 소재지이고 이곳에서 고령으로 통하는 국도와 일반도로 및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어 고령의 주요 교통의 요지라 할 수 있다.

제석산에는 왕건과 관련된 설화가 있다. 936년(태조 19)에 왕건이 군대를 거느리고

이곳에서 후백제 견훤의 아들인 신검을 크게 무찌른 뒤, 기념으로 주석(朱錫)으로

만든 쇠말(鉄馬) 2필을 제석산 정상에 안치하였다. 그러나 1915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 그 쇠말을 가져갔다고 한다.

佛家에서도 제석(帝釋)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수미산의 꼭대기 도리천(忉利天) 

임금도 제석천왕( 帝釋天王)이라고 하며, 십이천(十二天) 하나로 동방을 지키는데

희견성(喜見城) 살며  사천왕(四天王) 통솔하면서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을 

보호하며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는 하늘의 임금으로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데바남

 인드라akra-devānām Indra)이다...보이는 저 제석산의 한문 표기는  불가에서 말하는

 제석(帝釋)가 똑같은데, 뜻은 전혀 다르구나

갑자기 나타난 넓은 임도는 좌측의 개진면 오사리 광도지(廣道池)

방향으로 내려가고, 맥길은 직진의 숲속으로 향한다

1분도 안되어 숲을 통과하니 느티나무 조림지가 나오고...

송전탑 아랫쪽에 있는 개진면 오사리는 숨어 버렸고, 강가에 조성된 개경포

기념공원은 흐릿하다...그 앞으로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 너머로 구지에

있는 대니산(407.3m)은 꽤나 높아 보이고, 낙동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도동나루는 옛 영화는 잊어버렸지만, 도도함을 잃지 않았구나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는 김굉필을 모신 도동서원(道東書院) 과

송담서원 그리고 조선 전기의 유학자인 김굉필(金宏弼:1454~1504)의 묘지가

있는 마을로, 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에는 “현풍(玄風)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의 고향이다... 강을 끼었고 또 바다와 가까워서 생선, 소금과 배로 통상하는

이익이 있으니 또한 번화한 좋은 곳이다. 한양 역관들이 여기에 많이 머물면서 많은

재물로 왜인과 서로 장사를 통하여 많은 이익을 얻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김굉필(金宏弼:1454~1504)은 조선 전기의 유학자로 본관은 서흥. 자는

   대유(大猷), 호는 한훤당(寒暄堂), 사옹(蓑翁), 한훤(寒暄), 말곡(末谷)으로

   김종직의 제자이자 조광조의 스승이었고, 남효온의 친구였다.

   

  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과 함께 조선 성리학의 초기 계보에

  해당되는 동방 4현이라 불리웠고, 『소학(小學)』에 심취해 ‘소학동자(小學童子)’로 불리었다.

 

 〈소학〉에 제시된 생활규범을 실천하기에 진력했으며, 그의 도학 실천 의지는

  지치주의에 입각해 개혁정치를 주도한 기호사림파의 주축을 형성하게 했으며,

  1480년(성종 11)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했고, 이때 유학은 제가치국평천하의

  도(道)이며 불교는 일신의 청정적멸만을 위하는 것이라고 하여, 척불과 유교진흥에 관한

  긴 상소를 올렸다.


  1486년 당시 이조참판으로 있던 스승 김종직에게 시를 지어올려 그가 국사에 대해

  별다른 건의를 하지 않는 것을 비판, 사제지간에 사이가 벌어졌으며,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무오당인(戊午黨人) 이라는 죄목으로 죽음을 당했다.

중장비로 마구 땅이 파헤쳐진 느티나무 조림지를

지나자마자 332.8m봉이 범여를 반가이 맞아준다

332.8m봉(11:18)

332.8m봉을 지나자마자 마루금은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가고

직진 방향은 깃대봉(311.1m)으로 향하는 길인데, 어느 산꾼들은

깃대봉을 갔다왔는지 등로가 보이지 않는 깃대봉 방향으로

시그널 몇장이 걸려있다.

넓은 임도 아래의 양지바른 곳에는 기계유씨와 배부인 광산김씨 묘지가

자리를 잡고있고, 묘지 너머로는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좌)과 우측의

나뭇가지 사이로는 회천이 흐르는데, 내가 걷고있는 이 지맥길이

최종 목적지가 회천이 母江인 낙동강에 입수하는 합수점이다

갈림길(11:24)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만든듯한 넓은 임도는 우측으로

내려가버리고, 이곳에서 맥길은 잡목이 지독한 숲속으로 향한다

지독한 잡목의 강력한 저항을 뚫고 비스듬히 사면길을 따라서

동남쪽으로 향하는데, 간간히 보이는 시그널을 나침판 삼아서

조심스레 내려간다

참으로 힘이드는구나...그래도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게 살자구나

산속에 왠 쇠파이프?

준.희 쌤...감사합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별이 더 빛난다고 했던가...

험하디 험한 이 길...70평생을 살면서 이 정도의

힘든 시련을 이겨내는거야... 아무것도 아니지

고사목과 사투를 벌이면서 내려서니...

갑자기 폐움막이 나타나면서 산꾼을 놀라게 만든다

폐비닐하우스(11:35)

폐비닐하우스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서

내려가다가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숲속으로 향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오사리 마을의 모습

고령군 개진면에 있는 오사리(吾士里)는 낙동강이 흐르는 농촌지역으로,

자연마을로는 오사(吾士), 광도(廣道), 나룻가가 있는데,  오사는 마을 뒷산에 있던

절에서 다섯명의 도사가 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은 절에서 사용하던 우물의

흔적만 남아있다고 하며, 광도는 옛날 낙동강 수운을 이용하던 행인들의 왕래가

많아 넓은 길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나룻가는 도동나루로 건너가는 길목에

생긴 마을이라는 뜻으로 이름 지어졌다

계속되는 강력한 잡목의  저항 

무명봉(11:37)

무명봉에서 7시 방향으로 내려서니...

부뜰이님 부부님의 시그널이 범여를 반긴다

묵묘(11:40)

안부(11:42)

홀로걷는 이 산길...지맥을 알지 않았으면 내가 이곳에 올 일이

있었겠나?...이곳도 인연이라고, 죽어서도 산을 지키고 있는

枯死木과 조우를 한 다음에 맥길을 이어간다

좌측 아래로 시멘트길이 맥길과 나란히 가지만

그냥 숲속의 맥길을 따라서 뚜버기 걸음으로 이어간다

등로 우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맥길에서 벗어나 있는 

깃대봉(311.1m)이 얼굴을 내민다

 

고령군 개진면 직리와 성산면 기산리에 걸쳐 있는깃대봉은 동쪽의

제석산(帝釈山:387.1m)· 수만산(342.4m)과 능선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들 산지의 남쪽에서 발원하는 신안천은 깃대봉 남쪽 산지 일원에서

발원하여 남동류하다가 고령군 개진면 신안리에서 회천과 합류한다.

깃대봉 북동쪽 산지는 용소천의 발원지이며, 용소천은 고령교 부근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천이다.

215.4m봉(11:48)

무명봉인 215.4m봉에서 내려서자마자 넓은 임도가 나오고

임도 너머로는 호화롭게 꾸며져 있는 포산곽씨 세장지(世葬地)가 나온다

임도(11:50)

고령군 개진면 오사리에서 직리로 넘어가는 임도이다

묘지 너머로 현풍에 있는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3년전에 걸었던 밀양(신산경표상:비슬) 지맥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워낙 遠景이라 산을 구별하기가 힘이든다

포산곽씨(苞山 郭氏) 구거당공파(九居堂公派) 세장지의 표석은

역광으로 그림을 잡은 탓일까 흐릿하여 사진속의 글씨는 잘 안보인다

맥길은 묘지 옆 우측의 임도로 올라가야 하는데, 바람을

피하면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묘지 사이로 올라간다.

윗대로 올라갈수록 능력이 있으신 할배들인지 할매를

두분씩이나 데리고 살았던 할배들이 많다... 女福들이 많으셔...

포산곽씨(苞山 郭氏) 문중묘(11:52~12:10)

흔히들 곽씨하면 현풍곽씨를 말함인데, 포산곽씨라네...

현풍 곽씨(玄風 )의 별칭으로 포산 곽씨라고 부르는데

포산은 현풍의 옛 지명이니 포산과 현풍을 같이보면 될듯 하다

 

현풍 곽씨 집안은 중국 송나라 홍농군(弘農郡) 출신으로 고려 인종 11년(1133년)에

귀화한 곽경(郭鏡, 1117~1179)이 시조로 모시는데, 곽경은 1138년 고려에서 과거에

 급제하여 금자광록대부 문하시중 평장사라는 벼슬을 하고 포산군(苞山君)에 봉해졌다. 

곽경이 태어난 홍농군은 현재 하남성 서부에 해당하며, 중국의 장안과 낙양 사이,

황허(黃河)의 남쪽 기슭이다

 

내고향 의령출신으로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졌으며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1552~1617)도 현풍곽씨 출신이다 

포산곽씨 뎃빵 할아버지와 할머니 묘지 사이에서 바람을 피하며

집에서 가져온 전복죽으로 점심을 대신하며,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임도로 복귀하여 다시 길을 떠난다

송전탑(12:12)

송전탑이 돌아 누워 있어서 NO를 확인하지 않았다

갈림길(12:14)

앞산(236.7m:12:16)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숲으로 들어서니 족보있는 236.7m봉이

나오는데,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있고 오룩스의 맵에는 그냥 236.7m라고

표기가 되어 있으나 영진 50,000지도에는 앞산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앞산이란 보통명사가 산 이름일 경우 어느 마을의 앞산이라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의 앞산은 어느 마을의 앞산인지 알 길이 없다...대표적으로 가장

유명한 앞산은 대구의 앞산이 아닌가 싶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갈림길이

나오고 맥길은 우측의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앞산에 들렸다가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2:20)

계속되는 밋밋한 넓은 임도...행여 홀로걷는 범여가

지루할까봐서 갈참나무 노거수가 늘씬한 몸매로

눈호강을 시켜준다

207.4m봉(12:24)

지도상에 있는 엄연한 족보있는 봉우리인데, 산패는 안보인다.

207.4m봉을 지나면서 포산곽씨 묘지에서부터 같이온 

넓은 임도는 우측으로 내려가고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갈림길(12:26)

송전탑이 나오고...

송전탑 뒷쪽으로는 10년도 훨씬 넘은 2013년도에 걸었던

황강(신산경표상) 지맥 능선과, 우측에 있는 가야산이 

멋진 모습으로 범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저 능선을 걸을때만 해도 겁없이 산길을 헤집고 다녔는데

이제는 이빨빠진 호랑이가 되어 버렸으니...가는 세월을 어찌할꼬...

남쪽에 있는 오도산과 비계산도 범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갈림길(12:28)

송전탑을 지나 갈림길에서 비스듬한 사면길로 내려간다

안부 계곡(12:31)

절개지의 능선 너머로 고령군 개진면 직리(直里)마을이 어렴풋이 보인다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해있는 직리(直里)는 고려시대 강화도에서 가져온

팔만대장경판을 개포에서 해인사로 옮길 때 이 마을로 바로 갔다고 하여 직통(直通)이라

하였는데 후에 직동(直洞)이 되었는데, 마을에 양조장이 있어 직동도가라고도 하였다.

 

열뫼 또는 열미는 마을 북쪽 산 모양이 칼로 잘라 벌려 놓은 듯하여 붙인 이름이으로

개산(開山)은 열뫼의 한자 표기이다...교통의 요로였으므로 상인들의 출입이 잦아

많은 주막이 들어서기도 하였다

사면길로 내서니 갑자기 묘지로 이어지는 넓은

임도가 나오고 성주이씨의 호화묘지가 보인다

성주이씨 묘(12:33)

가선대부홍문관을 지냈다는 성주이공 묘비가 서 있다.

 

가선대부(嘉善大夫)란 조선시대 종2품의 하계(下階) 문관의 품계에 해당되며,

고려시대의 자덕대부(資德大夫)와 같은 품계이며, 1392년(태조 1) 7월 새로이

관제를 제정할 때 설치되었으며,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 때 칙임관(勅任官)의

하한(下限)인 종2품을 가선대부라 하고, 의정부도헌(議政府都憲), 각 아문

협판(協辦), 경무사(警務使) 중 초임자가 이에 해당하였다

 

홍문관(弘文館)이란 벼슬은 조선시대 궁중의 경서(經書)·사적(史籍)의 관리와

문한(文翰)의 처리 및 왕의 각종 자문에 응하는 일을 관장하던 관서로 사헌부·

사간원과 더불어 삼사(三司)라 하였으며, 옥당(玉堂)·옥서(玉署)·영각(瀛閣)·

서서원(瑞書院)·청연각(淸燕閣)이라고도 하였다.

 

세조가 혁파한 집현전의 직제와 기능을 회복하여 1478년 학술·언론기관으로서

성립되었는데, 연산군이 진독청(進讀廳)으로 개칭하였으나 1506년에 복구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홍문관과 예문관을 합해 경연청(經筵廳)이라 하였다고 한다.

성주이씨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김해김씨 묘지가 보인다

김해김씨 가족묘(12:34)

억새꽃 / 조병기

 

어쩌자는 게야 이 사람아

달 맑은 이 한밤을

그리움도 죄가 된다던가요

 

어느 바람에 견디다 못해

예까지 와서 흐느끼나

 

살아서도 죽어 있는 목숨

죽어서도 살아 있을 영혼

 

적막한 땅 끝에 와서 흐느끼는 사람아

어쩌자는 게야

열뫼재로 내려가는 길

묘지로 올라오는 길을 따라서 내려서니 개진면 개포리

마을이 나오는데, 민가는 보이지 않고, 대구가 가까워서

그런지 온통 공장 건물들만 보인다

도선산이 어디메냐?...열뫼재로 내려선다

열뫼(미)재(55m:12:40)

고령군 개진면 직리와 개포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고개 우측 아래에는 있는 직리마을에 속해있는 열뫼에 유래된 듯 하며,

67번, 79번 국지도의 2차선 도로가 지나가며, 도로명 주소는개경포로이고,

지명은 열뫼재가 맞은듯 한데 산꾼들의 지도에는 열미재로 표기가 되어 있구나

 

열뫼란 지명은  열려있는 산” 이란 뜻으로 열뫼마을  북쪽에 있는  깃대봉의

산자락 모양이 칼로 잘라 벌려 놓은 것과 같아 산이 열려 있다” 하여 열뫼 또는

열미라고 하고, 한자로는. “열 개(開)” , “뫼 산(山) ”으로 개산(開山)이라고도 부른다

마루금은 열뫼재 고개의 절개지로 올라가야 하나 너무 가팔라

도저히 올라갈 틈이 보이지 않아 좌측으로 내려와 공장 뒷쪽의

묘지가 있는 축대 위로 올라간다

파란 물탱크(12:43)

급경사의 능선을 치고 올라서니  자기 본분을 다하고 잡풀에 갇혀 용도 폐기된

FRP 물탱크가 산꾼을 반기는 듯 하다...그 동안 고생했다...그래!..좀 쉬어라.

FRP 물탱크 윗쪽으로 올라가는 길...내가 뭔 지랄하는지 모르겠다.

코가 땅에 닿을정도의 힘든 절개지로 올라선 후, 좌측에서 올라오는

시멘트 임도를 만나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대형 물탱크가 자리잡고

있는 우곡배수지가 나온다

우곡배수지(12:46)

우곡배수지는 고령군 개진면과 우면의

마을에 상수도물을 공급하는 곳이란다

너무 힘들었나?...팔만대장경 이운 순례길 이정표가

누워서 이운길을 안내하고 있다...그래, 힘들면 쉬어야지...

팔만대장경이 지나간 길이라 그랬나?

갈림길(12:50)

팔만대장경 이운길을 버리고 좌측의 오르막 임도를 향해 맥길을 이어간다

임도에 올라서자 우측의 등로가 보이지 않은 곳으로 팔만대장경

이운 순례길 안내판에 해인사까지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대장경』은 불교 경전 전부를 가리키는 말인데, 그 내용은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의 삼장(三藏)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삼장이란 '세 개의 광주리'라는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 트리피타카(Tripitaka)를 한문으로 번역한 말로 삼장 중에서

경장이란 부처가 제자와 중생을 상대로 설파한 내용을 기록한 '경(經)'을 담아 놓은

광주리란 뜻이고, 율장은 제자들이 지켜야 할 조항과 그 밖에 공동생활에 필요한 규범을

적어 놓은 율을 담아 놓은 광주리란 뜻이며, 논장은 위의 경과 율에 관해 해설을 달아

놓은 것으로 논을 담은 광주리란 뜻이 된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은 '대장경'에 '팔만'을 덧붙인 이름으로, 대장경 경판의

수효가 8만 1천 매가 넘고, 8만 4천 번뇌에 대치되는 8만 4천 법문을 수록했기 때문에

'팔만대장경'이라고 한다.

 

『팔만대장경』은 석가모니 부처의 삶과 가르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그 구성은

첫째, 대승삼장 둘째, 소승삼장 셋째, 보유잡장(補遺雜藏)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팔만대장경 이운순례길 안내도

'팔만대장경 이운순례길'조성은 고령 개경포에서 해인사까지 대장경의

육상 이운경로를 따라 '순례의 길', '치유의 길', '성찰의 길', '신화의 길' 등 4개의

테마를 가진 탐방로 조성하고, 각 탐방로마다 테마에 맞는 체험프로그램 도입해

팔만대장경 이운순례길 걷기 축제 개최 등 각종 사업 위주로 구성되었으며,

'팔만대장경 이운 순례길' 조성을 위해 경남 합천군, 경북 고령군, 성주군 등 3개

지자체와 해인사, 가야산국립공원사무소가 업무 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그리움(나태주)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보기와는 달리 깨나 가파른 오르막 임도이다.

그래도 길이 좋으니, 이정도의 수고로움은 감내해도

그리 손해보는 장사는 아닌듯 싶다...꾸역꾸역 오르다보니

잡풀에 포위를 당한듯한 송전탑 하나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NO135송전탑(13:03)

송전탑 사이로 오늘 내가 걸었던 길을 뒤돌아 본다

우측에는 제석산, 좌측에는 깃대봉이 보이고 그 가운데로

이어지는 야트막한 능선이 지맥길인데, 맥길을 기준으로

보면 깃대봉과 제석산의 outside가 쥔장 노릇을 하고 있다

송전탑 뒷쪽의 절개로 올라선다

무명봉(13:06)

볼거리가 많은 여름의 산길과는 달리 무미건조하게

보이는 겨울 산길일지라도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벗삼아 호젓하게 홀로걷는 이 맛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갈림길(13:08)

송전탑을 건설한 넓은 임도는 직진 방향으로 줄행랑을 쳐버리고,

맥길은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는데, 

후답자들의 길을 안내하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산꾼을 반긴다

내리막길에서 만나는 송전탑도 요즘 돌아가는

꼬라지가 보고 싶지 않은지 돌아 앉아버려

no를 확인할 수가 없구나...그래...보기 싫으면 보지마라

뫳돼지 사우나(13:11)

가뭄이라 그런지 사우나의 물은 말라 버렸고...

그 옆에는 이 쉬키들의 체력단련장이 있는데, 니 건강하자고

에먼 나무들을 못살게 하는건 아주 못된 버릇이야...이 쉬키야

相生이란 단어도 모르냐...

안부(13:14)

가늘고 기럭지가 긴 소나무와 지난 세월을 아쉬워 하며

등로를 지키는 활엽수의 도열을 받으면 무명봉으로 향한다

무명봉(13:17)

강가 근처라서 그랬던지 추위를 느낄정도로 불어대던 바람은

잦아들고, 따스한 햇볕 덕분에 움추렸던 몸뚱아리가 기지개를 켠다

묘지(13:21)

봉분이 땅바닥에 바짝 붙은 무명묘지를 지나면서 

직진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버리고 좌측위에 있는

226.7m봉을 만나기 위해서 올라간다

226.7m봉(13:22)

226.7m봉 정상을 찍고 다시 뚜렸한 등로로 원대복귀한다

안부(13:26)

무명봉(13:29)

고도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무명봉, 안부, 다시 무명봉으로

이어지는 지맥길...생각보다 엄청 지루하게 느껴진다

안부(13:32)

조금 까칠한 오르막으로 올라서는데...

 '독도는 우리땅' 이라는 닉을 가지신 이경일님의 격려문구가

망가진 채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데  코팅지가 다 찢어져서

복구할 방법이 없구나...오랫만에 착하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기회를 안주니 우짜겠노...

평평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등로 좌측 아래에는 산의 절반을 파먹고도

아직도 배가 고픈지 산을 먹으려고 으르렁대는 광명산업이라는 골재

채취장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 파랗게 보이는 낙동강변에 있는개경포

(開經浦)라 불리는 개포나루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개경포(開經浦)라는 이름은 합천 해인사에 보관된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을

개포나루를 통해 옮긴 것에서 유래됐는데, S 자 모양으로 흐르는 낙동강 곡류

구간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해 해인사와 가까운 지점으로, 조선시대 한창 번창했을

무렵 개경포에는 세곡을 저장하는 창고와 함께 200여 채의 집과 30여 개의 객주가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무명묘지(13:40)

잠시동안 같이 걸어온 커다란 임도는 갑자기 사라지고, 우측 사면으로

향하는 임도를 버리고 직진의 오르막길만 보이는데 귀신 곳할 노릇이다

봉우리에 올라서니 정상이 나오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또 넓은 임도가 보이는데, 마루금이 범여를 놀리는 듯 하다

247.3m봉(13:52)

또다시 나타난 넓은 임도가 나타나고 앞에 보이는 폐헬기장이

있는 279.4m봉을 바라보면서 여유로운 걸음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휴식(13:55~14:10)

지금 시간이 13:55분...아무래도 합수점까지 가기에는 애시당초에

틀려 버렸고, 처음 목표로 했던 연동고개까지는 아직도 8km나 남아있다.

17시 25분 고령에서 출발하는 버스표만 안 끊어 놨다면 무리해서라도

갈 수는 있겠다마는 고령에서 서울가는 막차를 놓친다면 대구로 나가서

서울가는 열차나 고속버스를 알아봐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이곳에서

1시간정도만 더 가면 만나는 부례고개에서 산행을 마쳐야 할 것 같다.

 

다음주에 한번 더 내려오면 되지하고 마음을 먹으니, 한결 맘이 편하다.

279.4m봉 정상 오르기 전에 바람이 불지않은 서사면 능선에 베낭을

내려놓고 여유로운 휴식을 취한다

낙엽이 수북한 서사면 등로에 베낭을 베개삼아 누워서 하늘을 본다.

이렇게 모든걸 내려놓으니 맘이 편한데, 인간들은 왜 그리도 비우는

즐거움을 모른체 아둥바둥 살아가는 걸까?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한번 참 곱다

여유로운 휴식을 즐긴후에 다시 베낭을 메고 길을 떠난다

279.4m봉으로 오르는 길

279.4m봉(14:15)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고, 강이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바람이 드세다.

준.희쌤의 산패는 보이지 않고, 나무가지 높이 걸려있는

시그널만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데, 오래 머무를 이유도 없기에

서둘러 길을 떠난다

잠시후에 오를 287.0m봉을 바라보면서 내려서는데...

낙엽에 묻힌채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있는 벙커를 지나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4:17)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가장 사랑받는 사람은

​칭찬하는 사람이다.

가장 강한 사람은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다.

-탈무드-

287.0m봉(14:20)

287.0m봉 정상은 잡목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빛바랜 삼각점 안내판과 4등 삼각점이 287.0m봉 정상을 지키고 있다

287.0m봉 정상 삼각점(△창녕410 / 2000이설)

忍苦를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너에 비하면

난 참으로 편안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미안하구나.

그래~~~! 너의 굳센 용기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당신 자신의 길을 선택하라.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원하는

길이 아닌 당신 자신의 길을 말이다.

웅덩이봉?(14:24)

앞으로 당면할 길이 우째될지 몰라도 지금 걷는 이 길은 너무좋다.

다가올 길이 험할지라도 우선 편하니...이렇게 좋은 걸...

등로 우측으로는 고령군 우곡면사무소가

있는 도진리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두릅밭 사이로 이어지는 지맥길

에공 이런곳을 있을 줄 알았으면 봄에 올걸...

그래...내것이 아니니 욕심내지 말아야지

 

불교경전의 하나인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나오는 구절로 

알고 있고, 고려시대 대선사인 야운스님의 ≪자경문≫에도

나오는 경구(警句)에 이런 글귀가 있제...

 

三日修心千載寶(삼일수심천재보)
삼일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百年貪物一朝塵(백년탐물일조진)
백년 탐낸 재물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라

산불감시초소(292.5m:14:28)

두릅밭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니 망루처럼 보이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산불을 감시하는 아저씨는

뭘 하시는지 산꾼이 올라오는 것도 모르고 있다

두릅밭 너머의 북동쪽으로는 제석산과 수만산이 얼굴을 내밀고 있고

그 아래의 낙동강변에는 팔만대장경의 이운길의 시점의 개경포(開經浦)가

아련히 보인다

 

개경포(開經浦)란 대가야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있던

포구로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 앞 낙동강 변의 포구로 옛날에는 소금을 비롯한

곡식을 실어  나를 정도로 번창하였는데, 개경포라는 지명은 현재 해인사에

보관된 ‘강화경판 고려대장경’[일명 팔만대장경]을 강화도에서 낙동강을 거쳐

개포나루를 통해 이운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다른 지명으로는 개포나루,

개포진(開浦津), 개산강(開山江), 개산포(開山浦), 개산진(開山津), 가혜진(加兮津),

가시혜진(加尸兮津) 등으로도 불렀다.

과거 낙동강 수로를 이용하여 대가야읍으로 들어올 때 가장 빠르고 쉬운 경로가 바로

개경포를 이용했는데, 개경포가 고령에서 낙동강과 가장 가까운 포구이기 때문이다.

낙동강은 대구와 현풍, 고령 지역을 흐르면서 S자형을 이루며 곡류하는데, 개경포는

낙동강의 곡류 구간 가운데 가장 서쪽에 있으며, 이러한 입지 조건 때문에 개경포는

고령과 외부를 연결하는 중요한 나루터로 활용되었다.

고대 이래 가장 좋은 교통과 운송 수단이 수로(水路)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고령

지역에서 외부로 통하는 수로로 낙동강이 이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특히,

낙동강 수로(水路)의 중심지였던 개경포는 선사시대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낙동강 연안에서 내륙으로 들어오는 중요한 물산의 집산지로, 수로 교통의 중계지이자

교역장이었으며 고령 지역에서 생산된 특산품인 고령 도자기와 기와의 반출지로 유명하였다.

산불감시초소로 이어지는 뚜렸한 임도는 좌측으로 내려가고...

직진의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 좌측의 낙동강 너머로 대구 달성군 구지면 오설리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내고향으로 가는 길에 거쳐가는

논공읍의 아파트 단지가 뿌연 미센먼지 탓인지 흐릿하게 보인다

 

오설리(烏舌里)의 지명유래는 지형이 까마귀가 혀를 내민 것과 같다고 하여

까마귀 오(烏)와 혀 설(舌) 자를 써서 지었으며, 오리라고도 한다.

 

남동쪽으로 달성군 구지면 징리, 북동쪽으로 현풍읍 자모리, 북서쪽으로 구지면

도동리와 접하고 있으며, 남서쪽으로 낙동강 너머 고령군 우곡면과 마주 보고 있다.

자연 마을인 오설·오리·내동 외에도 마을 뒷산에 밤나무가 많아 이름 붙여진 밤마가

있는데, 이 마을은 오리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외동(外洞)이라고도 한다.

오설리 남서쪽으로 낙동강(洛東江)이 흐르며, 대니산(戴尼山:408m) 정상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려 온 산줄기의 구릉성 산지 사이로 계곡이 형성되어 계곡의 농경지가 낙동강까지

이어져 있으며,  오설리 북서쪽 경계부에 대니산 산줄기의 석문산(石門山:243m)이 솟아 있다.

계곡 동쪽은 저수지인 오설지(烏舌池)가 축조되어 있으며, 산지의 산기슭에 자연 마을들이

들어서 있는데, 낙동강 연안에 좁고 길게 펼쳐진 충적 평야를 오설들, 일명 갯들이라 부른다.

 

안부(14:35)

1년중에 해가 가장 짧다는 동지가 어제라서 그런가?

벌써 산마루에 걸려있는 해는 서쪽으로 기우는 느낌이다

305m봉(14:40)

고만고만한 봉우리 몇개를 넘은 다음에 편안한 길을 걸어간다

무명봉(14:44)

무명봉을 지나 움푹파인 능선으로 올라서니 302.3m봉이 나온다

302.3m봉(14:45)

갑자기 넓은 임도는 사라지고...

지맥길에 관한한 레전드 반열에 오르신 비실이부부님이

늦은 시간에 홀로걷는 후답자가 길을 잃을까봐 길을 안내한다.

高手님...복받을깁니다

293.4m봉(14:49)

예전에 산성터였나?

갈림길(14:50)

갑자기 송전탑아래로 이어지는 거친 지맥길...

NO130송전탑(14:51)

송전탑 아래로 지나가는데 잡풀의 거친 태클은 시작되지만

이 또한 맥길을 걷기위한 숙명이라 생각하며 미끄러운 길을 내려간다

송전탑 너머로 보이는 청룡산.

오늘 저 산을 넘어 연동고개까지 가려고 했다가

포기한 산이다...그래 다음주에 너를 만나러 갈테니

조그만 기다려라...

회천 너머로 보이는 소학산(巢鶴山:488.8m)의 모습

송전탑을 끼고 내려서니...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4:55)

기럭지가 긴 소나무의 도열을 받으면 길을 걷는다

안부 삼거리(14:58)

안부 삼거리를 지나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칡넝쿨에 잡목에 갇혀버린 무명봉이 산꾼을 반긴다

무명봉(15:00)

무명봉을 지나 직진의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NO129송전탑이 나온다

NO129송전탑(15:02)

조금전에 지나온 NO130송전탑이 있는곳 못지않게 잡풀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지만 비슬산의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장관은 가히 일품이다...아쉽다면 모든게 흐릿하게 보이는 것...

예전에 비슬산의 주봉 노릇을 하다가 지금은 천왕봉에게 정상을 빼앗긴(?)

대견봉과 비슬산 강우레이더 관측소가 있는 조화봉이 보이고, 우측으로

여인의 젖꼭지처럼 볼록하게 솟아있는 비둘까지...2021년 10월에

홀로 걸었던 밀양(신산경표상:비슬)지맥의 아련한 추억이 밀려온다

여름철에 왔더라면 엄청나게 개고생 할뻔 했는데

겨울에 이 길을 왔다는건 신의 한수인듯 하다

회천 너머로 보이는 소학산(巢鶴山 488.1m)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와 경상남도 합천군 덕곡면 포두리에

걸쳐 있는 소학산은 옛날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살던 학암공이라 불리던

이가 뒷산에 조상을 모셨다...선산을 잘 모셔서인지 우곡면 도진리에는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는데, 이러한 소문이 나자 한 고관이 자기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이들의 묘소를 빼앗으려 하였다.

 

풍수지리를 잘 아는 지관을 매수하여 “이 산에 묘를 계속 쓰게 되면 역적이

탄생한다”고 속이고 산을 빼앗아 자기 조상의 묘를 쓰기 위해 비석을 파내는데,

그 순간 비석 밑에서 학 세 마리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 중 가장 작은 한 마리가 우곡면 대곡리 뒷산으로 날아왔다고 하여 소학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묘소를 빼앗으려던 고관은 학이 날아간 곳을 찾아 묘를 썼는데

그 후손들은 모두 망해 버렸다고 하며, 현재 소학산 정상 옆에 이름 없는 큰 무덤이

있는데,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지독한 잡풀의 저항을 받으면서 내려서니...

갑자기 뚜렸한 등로가 나오는데 처음에 NO129송전탑쪽이

아닌 좌측 능선으로 내려오면 이 등로로 올 수 있었는데 “사서

개고생을 한 꼴” 이 되어 버렸다

안부(15:08)

안부에서 고도를 낮추면서 내려서니 또 다시 등로는 사라지고,

지독한 잡풀의 저항이 시작되지만, 겨울철에 말라 비틀어진

잡풀의 저항은 크게 염려 안해도 될 듯 싶다

잡풀사이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서 걷다보니

203.9m봉의 산패가 걸려있는 커다란 나무를 만난다

203.9m봉(15:11)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보니 갈림길을 만난다

갈림길(15:18)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족보있는 220.5m봉 정상에 도착한다

초소봉(220.5m:15:25)

초소봉에 올라서자 조금전에 지나온 초소봉과는 달리 초소를 지키시는

분이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고 나를 보더니 혼자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하니, 환한 웃음을 지어면서 대단하다고 엄지손을 치켜 세운다.

나는 행여 차를 좀 얻어타 볼 요량으로 퇴근을 안하시냐고 물으니 

오후 4시반이 되어야 퇴근을 한다기에 헛물만 켜고 부례고개로 향한다

초소봉을 지나면서 지난주에 무란마을까지 이용했던 택시기사에게

부례고개까지 와달라고 하고는 부지런히 맥길을 이어간다

갈림길(15:33)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부례고개 위에 있는 봉분은 없고

와석(臥石)으로 만든 고령박씨 묘지가 나온다

고령박씨 묘(15:34)

고령박씨 묘를 내려서니 삼거리 도로가 나오고 산불감시요원

차량이 서 있는 부례고개로 내려서면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부례고개(扶禮峴:145m:15:35)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예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삼거리로 된

고개에는 MTB코스 안내판과 부례관광지 이정표가 있는데 지명의 유래는

부례고개의 남동쪽에는 우곡면 도진리 부례마을이 있는데, 옛날 이곳에서 보기

드문 열녀가 있어 그 예의가 돋보여 사람들에게 모범이 된다 하여 “도울 부(扶) ” ,

“예도 예(禮) ” 를 써서 부례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하며, 마을과 가까이 있는

고개를 부례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부례고개는 청룡산(青龍山:300.2m)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직선거리 약 750m 정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례고개의 동쪽에는 낙동강이 남류하여 흐르며, 낙동강 서변에는

부례나루터가 있고 부례고개의 서쪽에는 회천이 남류하는데,  회천은 우곡면 객기리에서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고령군 우곡면 예곡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 곳인 부례마을은 부례산밑에

자리잡은 마을이며 낙동강 맑은 물에 잉어떼가 펄쩍 펄쩍 뛴다고 하여

부리라고도 하고 이곳에 달성군 구지면 징동으로 건너는 나루터가 있다.

 

예로부터 부례마을에는 부례나루터가 있었으며, 부례고개와 낙동강은 대구와

우곡면 소재지를 연결하는 교통로로, 우곡면 동쪽 경계를 이루는 낙동강을 따라

형성된 마을인 부례마을·들꽃마을·관솔마을·아치동마을과 우곡면 답곡리·봉산리,

청룡산과 용머리산이 남북 방향으로 길게 이어져 있어 고령군으로 이동하려면

산을 넘어가는 고개를 이용해야 하는데, 부례고개가 그 역할을 한다.


특히 이 지역에서 산을 넘어 서쪽으로 연결되는 군도 10호선의 도로가 통과하는

곳은 부례고개밖에 없으므로 부례고개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중요한 교통로이다.

군도 10호선은 우곡면 예곡리에서 부례고개를 넘어 도진리로 이어지며, 도진리에서는

도진교를 지나 군도 6호선 및 북쪽의 개진면에서 군도 4호선과 연결되어 대구 및

다른 지역과 연결된다.

고개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올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오질 않아

택시기사에 전화를 하니, 기사는 부례고개가 아닌 부례마을에서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단다...부례마을은 이곳에서 남쪽으로 한참을

가야 있는데, 다시 돌아오라고 해놓고는  바람이 불고 추운 고개에서

20분이상 개 떨듯이 떨다가 택시를 만나서  고령터미널로 향한다

고령터미널(16:05)

터미널에 도착하니 아직까지 서울가는 버스가 오려면 1시간

20분을 더 기다려야 하기에 지난주에 들렸던 부산반점이라는

중국집에 들려, 간짜장에다, 소주한병으로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버스가 오기

10분전에 터미널로 향한다

고령발  → 서울행 버스표

정확한 시간에 버스는 도착하고, 술기운 때문인지 버스를 타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 비몽사몽을 헤매다가 버스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경부고속도로 옥천휴게소에 도착하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난다

다시 잠에 빠졌다가 서울 남부터미널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