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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계성(화왕)지맥(終)

계성(화왕)지맥 제1-1구간 - 분기봉에서 옥천삼거리까지

by 범여(梵如) 2025. 11. 14.

가다가 힘들면 쉬었다 가지뭐!

 

 

☞ 산행일시: 2025년 11월 02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에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차가운 바람

☞ 산행거리: 도상거리 4.8km+들머리2.1km+날머리 4,3km / 4시간 4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노단이 마을-세종정- 진양하공&전주이씨 묘- 무명묘지- 묘지- 묘지

                    무명봉-안부- 663.3m봉(분기봉)-무명봉- 청간마을 갈림길- 안부

                    칠매기재- 575.5m봉- 안부- 쉼터1-무명봉-쉼터2- 구룡산- 공터

                    폐헬기장- 갈림길- 조망바위- 돌탑- 암봉- 관룡사 갈림길- 암봉

                    안부- 안부- 관룡산- 무명봉-안부- 690.7m봉- 옥천삼거리- 일야봉 산장

                    화왕산 제1등산로- sk화왕산 기지국- 쉼터- 농장....창녕터미널

☞ 소 재 지:  경남 창녕군 고암면, 창녕읍

 

이번주는 주말마다 내리는 비 때문에 미뤄놨던 삼척북(신산경표상:육백)지맥을

계획을 세웠는데 이번주에도 어김없이 강원 남부와 경북 북부의 동해안 지역에비가

내린다는 구라청의 예보로 인해 그쪽으로 생각했던 발걸음을 멈추고오랫만에

창녕지역의 계성(신산경표상:화왕)지맥의 첫 구간을 걸어보기로하고, 간단하게

베낭을 챙긴 다음에 잠자리에 든다

 

계성(화왕)지맥 개념도

 

계성(화왕)지맥은

밀양(비슬지맥)맥의 천왕산에서 분기한 청도(열왕)지맥의 663m봉(감리봉)에서

서쪽으로 다시 분기해서 구룡산(740.7m), 관룡산(754m), 화왕산(火旺山 758m),

구현산(579m), 쌍교산(486m), 큰갓실산(122m), 도초산(166m)을 거쳐 창녕군

남지읍 남지리 낙동강 남지체육공원 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6.8km인

산줄기이다.

 

화왕지맥의 북쪽과 서쪽에는 토평천, 칠곡천 등이 낙동강으로 흐르며,

동쪽에는 계성천이 낙동강으로 흘러가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계성천의 우측 산줄기라 계성지맥이라 부른다

 

당초 신상경표에서 우봉지맥이 끝을 맺는 의령군 지정면 기강나루

맞은편으로 이었다가, 신산경표 개정판에서 도초산을 포함하여

남지리로 수정하면서 도상거리가 조금 길어진 지맥길이다.

 

계성천(桂城川)

계성천은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에서 발원하여 도천면에서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으로, 창녕읍 옥천리 화왕산 관룡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남쪽에서 발원해 화왕산

군립공원 일대의 물을 합류한 후 옥천댐을 이루고 계성면·장마면·남지읍을 지나 도천면

우강리에서 낙동강에 유입한 다음에 장가천, 관곡천, 동정천 등을 합류한다.

 

계성천 지명은 하천이 흐르는 계성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

화왕군의 영현 지명으로 계성현이 등장한다... 조선시대 영산현이 되었다가 1914년 계성면이

되었으며, 지방 향토 자료에는 남방골[桂南]의 앞산이 게[蟹]형상으로 생겼고 신당의

목마산성이 있어 게성[蟹城]이→계성(桂城)으로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 구간거리

(열왕산~2.0km)~분기봉(663)~2.4~관룡산~3.0~화왕산~1.6~구현~2.0~

비들재~0.6~구현산~3.6~남통고개~5.4~등산(-0.2)~3.0~창령고개~0.5~

큰갓실산~4.3~가림고개~2.8~성사고개~1.2~우실등~3.9~도초산~2.5~

낙동강 / 36.8km

 

◆ 주요 봉우리

지맥분기봉(x663m), 구룡산(△740.7m), 관룡산(x754m), 화왕산(△755.8m),

구현산(x579m), 석대산(x566m), 쌍교산(x486m), 등산(x147.3m), 큰갓실산(x121.7m),

우실등(x220m), 도초산(x166m)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04:55)

아침에 집앞에서 출발하는 첫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니

새벽 5시가 채 안되었고, 아직도 날이 밝으려면 멀었는지

환한 가로등 불빛이 서울역을 감싸고 있다

서울역발 → 동대구행 열차표

동대구역(07:15)

서울역을 출발한 열차는 광명과 대전역만 거치고 동대구로 향하는데

동대구 근처에 와서는 뭔 일인지는 몰라도 10분이상 연착을 하는데

괜스레 마음이 급해진다...동대구역 광장을 빠져나와 광장을 지키고

계시는 각하에게 예를 올리고 부지런히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평생 머리띠만 두르고 데모만 했던 자들이 정권을 잡고는

民草들이 죽어라 힘들게 일해서 낸 세금으로 호의호식하면서

각하를 독재자라고 손가락질 한 자들은 각하보다 열배는 더

독재자처럼 군림하며 거시기 꼴리는데로 저거들 밥그릇만 챙기니... 

 

저 꼬라지 보기 싫어서 신문끊고, 방송을 보지 않은지 꽤나

오래되었소이다...이 나라도 남미 국가들 닮아가지나 않을까

걱정이오...

다행히 동대구지하철역을 들어서자마자 열차는

들어오고 열차를 타고 서부주차장역에서 내린다

대구 서부주차장(07:48)

평소보다 15분 늦게 이곳에 도착하는 바람에 늘 이곳

대합실 분식점에서 김밥에다 오뎅으로 해결하는 아침은

먹지 못하고 김밥한줄만 사서 창녕가는 버스에 오른다

대구서부발 → 창녕행 버스표

08시에 창녕으로 출발하는 버스에 오른 다음에 분식집에서 산

김밥한줄과 생수로 아침을 해결하고 캔 커피한잔을 마신 후에

평소 창녕에 오면 이용하는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한다.

창녕시외버스터미널(08:38)

노단이(露丹)마을(09:10)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에 있는 노단이마을... 지난 3월 2일에

청도(신산경표상:열왕)지맥 2구간을 할 때 이곳을 왔으니

정확하게 8개월만에 다시 온 셈이다

 

창녕군 창녕읍에 속해있는 옥천리(玉泉里)는 산이 수려하고 고찰(古刹)

관룡사가 있으며 계곡에 옥수가 흘러내리는 마을로 흔히 이 곳은 산옥정

(山玉亭)이라 하였으며, 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밖으로의 교통이 불편한

천옥(天獄)과도 같은 뜻으로 불린 것이 옥천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옥천리에 속해있는 노단이 마을은 놋다이(魯洞)와 노다이 또는 놋단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마을로 한자어로 노단(露丹)으로도 쓰이는데,

옥천리의 가장 깊은 골짜기 안의 마을로 토질이 붉다하여 초목까지 붉었다고

하는데, 이에따라  '붉은 단(丹) '자를 써서 노단이라고 하였다고 하나 '단(丹)' 

땀이고 '' 의 음차(音借)이다...이곳은 지대가 아주 높은 마을이고 골짜기이니

높은 땀, 담, 뜸, 높다랐다는 등의 말이 높은 담, 놋단, 놋다이 등으로 변했다고 보여진다 

내 고 향 / 박태원

떠나 살면 설웁더라.
못 가면 그립더라

생각하면 아련하고
마음만 찡하더라

세월을 뒤로하고
살아온 지난날이

십 년을 몇 번 세어
주마등 되어 떠오르네

내 놀던 뒷동산을
꿈속에 달려갔네

초가집 지붕에
박 익는 내 고향

산행을 시작하다(09:20)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마을 골목에서 村老부부가 나오다가

커다란 베낭을 맨 나를 보더니,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아이구야!... 무한다꼬(뭣한다고의

경상도 사투리) 이 먼데까지 왔는교 하며서 집에 들어와서

커피나 한잔 잡숫고 가이소하는데, 말씀은 고마우나 가야할

길이 멀어서 죄송하다고 하면서 마음만 받겠다고 정중히

사양을 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하늘은 푸르고 오랫만에 맑은 날씨속에 산행을 시작하는데

마을에는 8개월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집 한채가 보인다.

계성지맥 들머리로 가는 길에 들어서 조금을 걷다가 계성천이

지나가는 다리를 통과한다.

 

계성천(桂城川)은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화왕산과 관룡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남쪽에서 발원해 화왕산군립공원 일대의 물을 합류한 후 옥천댐을

이루고계성면·장마면·남지읍을 지나 도천면 우강리에서 낙동강에 유입하며,

장가천,관곡천, 동정천 등을 합류한다.

 

계성천 지명은 하천이 흐르는 계성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757년

(신라 경덕왕 16) 화왕군의 영현 지명으로 계성현이 등장하는데, 조선시대

영산현이 되었다가 1914년 계성면이 되었으며, 지방 향토 자료에는 남방골

[桂南]의 앞산이 게[蟹]형상으로 생겼고 신당의 목마산성이 있어 게성

[蟹城]이→계성(桂城)으로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계성천을 따라 계성면 평성 들판, 광계 들판, 영남 수리 들판 등 넉넉하고 넓은

들판은 곡식을 키우기에 알맞았으며, 계성면 사리의 사은암과 하문암, 일미마을 고인돌,

계성과 계남리 고인돌, 그리고 장마면 유리 고인돌, 계성면 관동 고인돌 등 수많은

청동기시대의 무덤을 남겨놓았다...이 청동기문화를 이룩한 세력들이 이웃 마을을

정복하며 성장하여 기원 전후에 나라를 세운다...이런 나라들이 원삼국시대이다.

 

즉 마한 54국, 진한 12국, 변한 12국 모두 78국이 탄생한 것이다.

창녕 최초의 왕국인 불사국은 계성천 중상류 지역의 장마면 거대한 유리 고인돌에서

탄생했음이 분명해 보이는데, 불사국은 기원전 57년 삼한시대(원삼국시대) 진한 12국 중

하나로 후에 비화가야로 발전하여 진흥왕 16년(555년) 신라에 멸망하기까지 600여 년의

찬란한 역사를 이 땅에 꽃피웠다...그 흔적은 20곳 고분군으로 수천 기의 고분군이

비화가야의 역사를 증명한다.(비사벌 뉴스에서 발췌)

계성천의 발원지에서 옥천저수지로 흘러가는 물길위를 통과하니 축대위에

폐가가 되어버린 世鐘學院이란 노란색 건물이 보인다...이곳에서 좌측으로

뚜렸한 등로가 이어지는데 8개월전에 청도(신산경표상:열왕)지맥 2구간을

걸을때 저 곳으로 올라가 칠매기재를 거쳐서 감리봉으로 올라간 적이 있다.

 

좌측으로 가면 등로는 완만하고 편하지만 칠매기재에서 빡센 등로를 따라서

분기봉(감리봉)까지 갔다가 되돌아 와야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우측의 세종학원 건물쪽으로 올라가면 등로가 거칠고, 빡센 오르막이라

초반에 개고생을 하지만 접속구간의 거리가 짧기도 하지만 처음 접해보는

길이라 오늘은 우측으로 분기점을 향한다

창문이 다 날아간 아랫쪽 나무 판대기에 世鐘學院이란 팻말이

보이는데 추측건데 예전에 고시생들이 공부했던 고시원처럼

보이나 지금은 폐허가 된 채로 家처럼 방치되어 있다

世鍾亭(09:28)

축대를 휘돌아서 올라오니 가정집처럼 생긴 대문위에 世鍾亭이란

현판이 보이고 문은 굳게 잠겨 있으며, 도로명 주소까지 부여받은 

건물이 있다

 

세종정 우측으로 올라서니...

돌계단이 보이고...

생각보다 뚜렸한 등로가 우측으로 이어진다

높은 축대를 따라서 올라가니...

문인석까지 세워져 있는 호화로운(?) 묘지가 나오는데

아마도 세종학원이란 연관이 있는 묘지인 듯 하다

진양하공&전주이씨 묘(09:34)

진주하공 부부 묘지를 지나서 본격적인 오름이

시작되는데, 구미 옹달샘이란 닉을 가지신 분의

시그널이 보이는데, 이 길로 지맥꾼들이 다니시는

모양이다

본격적인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고...

살짝 우측으로 휘어져서 가니 봉분이 훼손된 묘지가 나온다

무명묘지(09:47)

무명묘지를 지나면서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는

빡센 오르막길로 오르고 너무 급경사라 숨이

끊어질 듯한 고통이 수반된다

묘지(09:53)

급경사를 치고 올라서니 상석이 있는 묘지가 나오는데

상석에 새겨진 글귀들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마모가 되어 판독이 불가능 하다

거의 직벽에 가까운 등로를 치고 오르는데...

등로는 아예없고 잡목의 태클이 엄청나게 심하다

그래!~~~ 어치피 가야할 길...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잖은가...

묘지(10:10)

이 묘지 역시 글귀의 판독이 불가능하다.

이곳에서도 구미 옹달샘님의 시그널을 만난다

하기사 이곳이야 지맥길도 아니니 어디로 가던

분기봉까지만 가면되니 꺽정할 건 없다

또다시 시작되는 빡센 오르막길.

본격적인 지맥길 시작도 전에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힘들게 봉우리에 올라 이곳이 분기봉인 줄 알았는데

트랙을 보니 한번은 더 치고 올라가야 하는구나

무명봉(10:24)

무명봉에서 잡목들의 강력한

태클과 맞서면서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10:29)

안부에서는 비교적 쉽게 능선으로 올라서니 분기봉이 나오고

노단마을에서 이곳까지 2.1km 거리에 1시간 18분이 소요되었는데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다리에 힘을 너무 주었던 탓인지

근육이 뭉쳐서 통증이 오고, 지맥길 시작도 전에 그로기 상태이다.

663.3m봉(10:38)

경남 밀양시 청도면과 창녕군 창녕읍, 고암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비슬지맥에서 가지를 친 청도(열왕)지맥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향하고

이곳에서 가지를 친 계성(화왕)지맥은 구룡산, 관룡산, 화왕산으로

향하는 분기봉이다.

인증샷

지도상에는 표식이 없는데 반바지님께서 감리봉이라 표기를 해놨다

 

감리봉(甘里峰)은 동북쪽 아래에 있는 고암면 감리마을의 지명을

차용한 듯한데, 감리의 유래는 감나무가 무성했던 골짜기에서 유래되었으며,

한자로는 ‘달 감(甘)’ 자를 사용해 ‘감골(甘洞)’ 또는 ‘감동(甘洞)’이라 불린다. 

 

감리는 고암면의 동부에 위치하며, 북쪽은 성산면, 남쪽은 창녕읍, 동쪽은

밀양군 청도면과 인접해 있으며, 신라 시대에는 밀양으로 가는 큰길(대도)로

알려져 있으며, 전쟁 후 의병장 문국선이 이곳에서 우거하며 ‘달 감(甘)’ 자를

써 ‘감골’이라 칭했다고 전해지며 감골이 와전되어 ‘강골’로도 불리며, 감리의

본동은 ‘감나무 골’이 원래의 뜻이다

감골이라 불리게 된 것은 선조 때 사람 문국선(文菊宣)이 임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나주에서 의병을 모아 창녕으로 달려와 망우당 곽재우 장군과 합류하여 왜적을

막았는데 전쟁이 끝난 후에 이 골짜기에서 우거(遇居)하면서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로 연명하였으며, 그 물이 감로수와 같이 달디단 물이라 하여 이곳을 달 감(甘)을

서서 감골, 감동(甘洞)이라 하였다고 하는데, 문국선은 조선 선조때 사람으로

자는 덕아(德兒), 호는 석우(石禹)이며, 통훈대부 군자감정(通訓大夫 軍資監正) 을

지냈고 나주에서 의병을 모아 곽재우 휘하에서 창녕싸움에 참여한 의병장이다.

 

* 군자감정(軍資監正)은 조선시대 군량미 등 군수품의 저장·관리·출납을 맡아본

  군자감(軍資監)에 두었던 정삼품(正三品) 관직으로 정원은 1원이다  

본격적인 계성(신산경표상:화왕)지맥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뚜렸한 등로는 보이지 않고, 한참을 버벅거리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폐헬기장의 흔적같은 펑퍼지만 넓은 공터를 지난후에

고사목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무명봉에 도착한다

무명봉(10:44)

8개월전에 올라왔던 길인데도 전혀 感이 오질 않는다.

같은 길인데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이렇게 다를수가 있나?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대구의 산꾼 비실이님의 흔적을

만나고, 우측의 숲속으로 희미한 길이 보이는데, 청간

마을로 가는 길이다.

청간(淸澗)마을 갈림길(10:50)

창녕군 고암면 감리에 속해있는 마을로 풋가지에서 남동쪽 골짜기

제일안에 있는 마을로 이 마을 주위에 맑은 시냇물이 사철 흐르므로

맑은 '산골내'라는 뜻으로 청간이라 하였으며, 청동(淸洞)이라 하기도

하였는데 서흥 김씨의 세거지(世居地:대대로 살고 있는 고장)이다. 

안부로 내려서는데, 산행을 시작하면서 부터 지친 상태인데

등로 사이로 보이는 구룡산이 산꾼 범여를 협박한다

안부(10:57)

건강한 소나무들이 많이 보인다...이곳 창녕읍 옥천리는

송이가 많이 나는 곳이라는데, 다행히 통제구간은 보이지 않는다

편안한 등로를 걷다보니 노단이

마을로 내려가는 칠매기재에 도착한다

칠매기재(505m:11:00)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노단이 마을에서 고암면 감리 청간마을

넘어가는 고개로 정상에는 이정표와 영취산~구룡산 등산안내도,

국가지점번호와 반바지님께서 칠매기재 란 코팅지를 걸어놨다.

 

노단이마을 가장 북쪽에 있는 고개로 자료에는 칠밍이재라고 부르는데

칠밍이란 칠목의 와전된 것으로 일곱군데의 높고 낮은 목이 있다고 하여

칠목재라 한 것이 칠미, 칠명등으로 변하였으며,  '' 의 발음을 이곳에서는

미, 밍이 등으로 부른다

이곳은 8개월전에 청도(신산경표상:열왕)지맥

2구간을 걸었기에 그리 낯설지는 않구나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사면길을 버리고

우측의 등산 안내도 뒷쪽의 희미한 길로 향한다

갑자기 희미한 등로는 사라지고...

잡목을 헤치면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선답자의 흔적이 보인다

다시 등로는 사라지고...

감사합니다

능선에 올라 좌측으로 향하니 575.5m봉 정상이 나온다

575.5m봉(11:18)

575.5m봉 정상에서 만난 선답자들의 흔적들...

575.5m봉을 조금 지나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안부(11:21)

조금전 칠매기재에서 헤어진 사면길이 만나는

안부가 나오고 구조이정목이 안부를 지키고 있다

구룡산으로 올라가는 본격적인 苦行이 시작된다

쉼터1(11:24)

안부에서 올라서니 아무도 찾지않은 쉼터의자가 홀로걷는

범여를 무척이나 반기면서 정상까지 오르려면 고생 좀 하겠네요

하면서 범여의 저질 체력을 은근히 걱정하는구나

곧추선 구룡산으로 향하는 오름길의 첫번째 관문격인

빨간 기둥에 안전로프가 처져있는 등로로 오르는데,

썩어 문드러진 나무계단에 물기를 머금은 낙엽이 미끄럽다

능선에 올라 잠깐 숨한번 돌린 다음에...

2번째 관문을 통과하는데 맥길의 우측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약간 쌀쌀하기는 하나 춥지도 덥지도 않는 날씨에다

오랫만에 맑은 날씨에 산행을 하니, 아직까지는 힘드는 줄

모르고 걷는다...빡센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무명봉이 나온다

무명봉(11:33)

무명봉을 지나자마자 2번째 쉼터의자를 만난다

쉼터2(11:35)

세상을 살면서 삼세번이란 말을 참으로 자주 듣는다.

살다보면 항상 기회는 3번 분명히 오는데 그걸 잡으란

얘기인지?...급경사의 구룡산 오르막도 3번은 빡세게

올라야 하는가 보다...

빡센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바람이

드세지고 등산객의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데...

구룡산 표시석이 있는 정상에 올라서니 남.녀 4명이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고있고, 나무에는

산지킴이님의 산패가 걸려있다 

구룡산(九龍山:740.0m:11:52)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와 고암면 감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멋진 정상석과 3등 삼각점이 있지만 주위에는 잡목에

둘러쌓여 있어서 조망은 별로인 산이다.

 

전설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산 아래에 있는 관룡사에서 제자 송파(松坡)스님과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오색채운이 영롱한 하늘을 향해서

화왕산 마루의 월영삼지(月影三池)로부터 아홉 마리의 용이 등천하는 것을 보고

절 이름을 관룡사라 하고, 산 이름을 구룡산이라 하였다고 하였으며, 해동지도에서는

구룡산(九龍山)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잠시후에 오를 관룡산을 구룡산이라 불렀던 모양이다

 

* 채운(彩雲)이란   태양으로부터 30°또는 그 이상 떨어진 곳에서 볼 수 있는 적색 또는

  녹색의 아름다운 담색으로 빛나는 권층운, 권적 운, 고적운 등의 부분을 말한다.
  채운은 구름이 수평선 위 30도 이상의 높이에 있을 때 구름 조각의 크기가 시각 1도 이하다.


 이때 높은 구름이 끼어 있는 상태에서 작은 얼음 알갱이나 물방울에 의하여 태양광선

 파동으로 산란에 의해 발생한다고 하며, 얼음 결정체들로 이루어져 있어 태양과 가까운

 각도에 있으 면 아름다운 빛깔을 띠는데 이것을 채운현상이라고 하며' 구름 무지개'라고도 부른다.
 

 보통 채운현상은 30~60분 가량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며 예로부터 하늘에 오색의 영롱한 채운이

 나타나면 상서로운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그 아름다움 때문에 서운.경운.자운

 이라고도 불리며 옛 선 조들은 큰 경사가 있을 징조라고 알려져 왔으며 오색의 구름 무지개

 채운은 고전소설 구운몽(九雲夢)에도 언급이 되 었던 적이 있다.

구룡산 정상 삼각점(▲청도335 / 1982재설)

구룡산을 지나자마자 등산로 통행금지구간 안내판이

나오지만 솔직히 말해서 맥산꾼들은 이런 문구에

一喜一悲하지않고, 오직 맥길에 집중하는 편이다.

나 역시 저런것에 구애받지 않고 맥길에 집중하는 편이다

해발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바람이 상당히 차갑다.

벗었던 바람막이 자켓을 꺼내입고 맥길을 이어간다

공터(11:54)

당연히 화왕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공터를 지나면서 맥길은 우측으로 향하고...

폐헬기장(11:55)

폐헬기장(?)처럼 보이는 넓은 공터에는 화왕산~부곡온천간

등산안내도가 있고 좌측으로 옥천리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는데 맥길은 우측으로 향한다

화왕산~부곡온천간 등산안내도

초반에 놋단이 마을에서 분기점으로 오르는 곳에서

에너지를 너무 소모했는지 자꾸만 발걸음이 느려진다

갈림길(11:57)

이곳에서 우측으로는 화왕산으로 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는데, 프랑카드에 이곳은

등산로가 아니라 위험하니 우측으로 가라는 표시가 있지만

그냥 무시하고 직진으로 향한다

우측으로는 아주 뚜렸한 내리막길이 보이는데 화왕산으로

가는 우회등로인 모양인데, 우측 아랫쪽에 맥산꾼들의

시그널이 걸려있어  나 역시 처음에는 아랫쪽으로 내려갔는데

오룩스맵을 안내하는 여인이 앙칼진 목소리로 경로를 이탈했다고

경고 멘트를 날린다.

트랙을 확인하니 맥길에서 너무나 많이 벗어나 있어서...

다시 올라와서 좌측으로 향한다

초반에는 생각보다 등로가 뚜렸하고 갑자기 등로가 열리면서

온 사방이 한 눈에 보이는 그야말로 一望無際의 멋진 조망이

눈 앞에 펼쳐진다

조망바위(12:04)

조망바위에 도착하니 온 사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이 그야말로 一望無際이다.

발 아래로는 고즈늑히 자리잡고 있는 통도사의 말사(末寺)인 관룡사(觀龍寺)가

있고 좌측은 아침에 지나온 놋단이 마을 너머로  지난 봄에 걸었던

청도(신산경표상:열왕)지맥길의 영취산과 병봉이 늠름한 모습으로 범여의 눈을

즐겁게 하고 우측으로는 계성(신산경표상:화왕) 능선인 구현산과 석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며, 북쪽으로 눈을 돌리니 비슬산 능선이 흐릿하게 보인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관룡사(觀龍寺)의 모습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관룡산(觀龍山)에 있는 삼국시대인 신라의

사찰인 관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로 신라시대 8대 사찰 중의 하나로서 많은 국가유산과 경치 좋은 사찰로

널리 알려졌지만 절의 역사에 관한 뚜렷한 기록은 없고, 사기(寺記)에 의하면

349년에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은 지리산

칠불암(七佛庵)의 창건설화에 나타난 것과 같이 불교가 인도에서 바다를 건너

가야에 전해졌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예증이 되기도 한다.

그 뒤 583년(진평왕 5) 증법(證法)이 중창하였는데, 보통 이를 창건으로 삼기도 한다.

삼국통일 뒤에는 원효(元曉)대사가 1,000명의 중국 승려에게 『화엄경』을 설법하고

대도량을 이룩하였다고 하며, 전설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제자 송파(松坡)스님과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오색채운이 영롱한 하늘을 향해서 화왕산(火旺山) 마루의

월영삼지(月影三池)로부터 아홉 마리의 용이 등천하는 것을 보고 절 이름을 관룡사라 하고,

산 이름을 구룡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관룡사의 문화유산으로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창녕 관룡사 대웅전,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약사전, 1970년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약사전삼층석탑, 1979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관룡사 사적기,

1983년 경상남도 민속자료로 지정된 관룡사 석장승,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관룡사 부도, 1985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원음각 등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비로자나삼존불이 봉안되어 있고, 약사전은 임진왜란 때 전화를

면한 관룡사 유일의 건물로서, 부석사조사당 · 송광사국사전과 함께 건축사

연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또한, 이 약사전 안에 봉안된 약사여래좌상은

고려시대의 작품이며, 약사전 앞에 있는 높이 2m의 삼층석탑은 기단부의 4면에

각각 2개씩의 안상(眼象)이 조각된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작품이다.

관룡사의 서남쪽 능선으로는 내가 걸어야 할 구현산과

석대산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

지는데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이다

바로 아래에는 창녕읍 옥천리가 한 눈에 보이고 그 아랫쪽으로는

아침에 내가 지나온 꽤나 큰 규모의 옥천저수지가 보인다

주변의 멋진 전망을 바라보면서 올망졸망한

암릉구간을 걷는 재미도 참으로 솔솔하다

조금전에 지나온 구룡산 남쪽에 있는 병풍바위도 정말 멋있다.

그 너머로 보이는 창녕의 명산중에 하나인 영취산(鷲山:738.8m)과

병봉(屏峰:673.7m)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한폭의 그림같다.

돌탑(12:06)

돌탑을 지나면서 관룡산으로 이어지는 암릉구간이 까칠하다.

왜 지자체에서 가지 말라고 하는지를 알겠구나...관룡산은

손에 잡힐듯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

내 걸어야 할 계성(화왕)지맥 능선을 당겨본다...좌측의 남쪽에 있는

뾰족한 봉우리가 구현산이고 중앙에 보이는 능선이 관룡산에서

도성암, 관룡사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암봉(12:08)

북쪽으로는 고암면 감리로 이어지는 계곡이고 계곡 맨 뒷쪽의

흐릿한 능선이 몇년전에 걸었던 밀양(신산경표상:비슬)지맥이다

손에 잡힐듯한 관룡산을 바라보면서 암릉으로 내려서니...

내려갈 틈이 보이지 않는구나...그렇다고 조금전의

우회길로 되돌아 가기에는 너무 많이 와 버렸다.

갑자기 오도가도 못하고 암릉 사이에 갇혀서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겨우 탈출한다.

어렵게 암릉 남쪽으로 내려서니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보인다

조심...아주 조심스럽게 내려가면서 나무가지를 잡았는데

그 가지가 뿌러지면서 아랫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다가

돌멩이에 무릎을 부딪히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 버린다

 

이곳에서 주저앉아 무릎을 주무르면서 통증이 가시길 기다리다가

다시 빡센 오르막으로 향한다

올라오니 등산로 아님 이라는 표식이 있다.

가지말라면 가지 말아야지 고집을 피우다가 몸도

망가지고 개고생을 하면서 마루금에 복귀한다

관룡사 갈림길(12:30)

마루금에 복귀하니 관룡사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고...

내가 내려온 암릉방향으로는 등산로가 아님이라는

팻말이 있다...이곳에서 숨한번 돌리고 조금을 쉰다

암릉에서 이곳까지 50m도 안되는 거리를 20분이상 소요됐다

관룡산으로 가는데 암릉에 부딪힌 무릎에 통증이 심하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관룡산으로 올라간다

이곳은 제도권 등로인지 암릉구간인데도 안전로프가

처져있어서 아픈 무릎의 통증을 참아가며 천천히 걷는다.

관룡산은 천천히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계성(신산경표상: 화왕)지맥은 창녕읍 옥천리를 가운데 두고

빙 돌아서 반원형 형태를 그리면서 합수점으로 향하는 형태이다

다리의 통증은 점점 심해지는데 비례하여

안 그래도 느린 발걸음은 더 느려지지만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가는데까지 가보는 수 밖에...

암봉(12:37)

바로앞에 멋진 암봉이 보이고, 그 뒷쪽에 있는 관룡산이 물끄러미

내다보면서 하는 말...ㅉㅉㅉ 가지 말라는 곳에서 가지 말아야지

왜 그리 사서 개고생을 하노 하면서 訓戒를 한다

안부(12:39)

암봉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멋진 암봉으로는 오를수가 있지만 포기하고 우회길로 향한다

북쪽을 바라보니 지난봄에 1구간을 걸었던 토평(신산경표상:왕령)지맥

능선이 뚜렸하게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비슬산 능선에 있는 조화봉의

비슬산 강우레이더 관측소의 하얀 건물이 肉眼으로는 뚜렸하게 보이나

똑닥이 카메라로는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아쉽구나.

멋진 암봉을 오르지 않고, 우측길을 따라서 관룡산으로 향한다

 閨 情 (규정:규방 여인의 정)  /  이옥봉

 

深 情 容 易 寄 (심정용이기) 

깊은 마음은 부치기(전하기)는 쉬워도

 

欲 說 更 含 羞 (욕설갱함수) :

말로 하려니 도리어 부끄러움이 가득하여 말을 못하네.

(말하려고 하니 다시 부끄러워지네)

 

若 問 香 閨 信 (약문향규신) 

(이런한) 규방 여인의 소식(마음)을 묻는다면

(혹시라도 규방(여인의 방)의 소식(마음)을 묻는다면)

 

殘 粧 燭 倚 樓 (진장촉의루) 

(대답은)초롱불 아래 다 못한 화장 그대로

난간에 기대어 있다고 전해주세요.

오르지 않고 우회한 암봉을 아쉬운 마음으로 한번 뒤돌아보고...

안부(12:45)

Y자 갈림길이 나오고...

등산객들의 흔적들이 보이는 우측 등로로 올라간다

갑자기 나타나는 급경사의 오르막길

아!...힘들다...119를 부를까 하다가

민폐일 것 같아서 천천히 오르막길로 향한다

험한 길이 끝나고 살짝 좌측으로 오르는데 관룡산이

가까워졌는지 등산객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각종 안내판과 구조안내판이 보이는 곳에 좌측으로 올라간다

통행금지 안내도를 보면서 지맥길에서

좌측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관룡산으로 향한다

관룡산(觀龍山:753.6m:12:58)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와 고암리 감리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정상에는 정상석과 헬기장이 있는데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먹고 마시면서 떠들어 대는데, 홀로다니는 산꾼 범여는 왠지 어색하다

 

동남쪽으로는 구룡산이 있고, 북쪽으로는 화왕산으로 이어지면

정상석 좌측으로는 관룡사 용선대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있다.

 

지명의 유래는 산 아래 소재한 관룡사를 지을 때, 용이 등천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데서

사찰은 관룡사, 산은 관룡산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또는 정상 남쪽이 병풍을 치듯 절벽을

이루고 있어 구룡산 혹은 평풍덤이라고도 한다. 『해동지도』에서는 '구룡산(九龍山)', 

『여지도서』에서는 '필봉(㻶峯)', 『1872년지방지도』에서는 대이산(大耳山)으로

수록하고 있으며, 지도에서 구룡산 아래에 골짜기로 둘러싸여 있는 황룡암, 청룡암, 관룡사가

그려져 있다.

 

화왕산이 구룡산과 이어져 있고, 그 아래 관주산 능선을 따라서 자연암, 도성암, 용연삼이

기재되어 있는데, 이 지명들은 모두 불교와 관련된 것으로 당시 이 지역에 불교가 상당히

융성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인증샷

좌측의 헬기장이 보이는 쪽은 관룡사 용선대로 향하는 곳이다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모셔온 사진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은 용선대라는 거대한 자연 암반을 지대석(地臺石)으로

하여 그 위에 봉안되어 있으며, 석조여래좌상은 통견(通肩) 형식으로 법의(法衣)를

입고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손등을 위로 한 채 무릎 위에 올려

놓았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한 채 오른쪽 발바닥 위에 놓여 있는데, 이로 보아

수인(手印)은 통일신라시대 8세기에 유행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모델로

하였으나, 손 자세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한 듯하다.

 

불상은 머리가 몸에 비해 큰 편이며, 하체도 상당히 볼륨감 있게 표현되어 안정감을

주며, 낮고 편평한 육계(肉髻), 큼직큼직한 나발(螺髮), 커다란 이목구비(耳目口鼻) 등

원만한 상호(相好)를 갖추고 있고, 큰 귀는 어깨까지 닿았으며, 짧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으며, 법의(法衣) 주름은 형식화되고 간략화되어 있다.

 

대좌는 상대(上臺)와 중대, 하대를 갖추고 있는 팔각연화대좌(八角蓮華臺座)이다.

앙련(仰蓮) 형식의 상대는 연잎 중앙에 화려한 꽃무늬가 장엄되어 있는 중판연화문

(重瓣蓮華文)으로서 화려하고 힘찬 모습이며, 중대는 비교적 높게 조성되었으며,

각 면마다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다... 복련(覆蓮)의 하대는 방형(方形)의 받침 위에

복판연화문(複瓣蓮華文)으로 장엄되어 있다.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8세기에 유행했던 항마촉지인 불좌상을 모델로 하여 조성되었으나,

불상의 양식이나 수인(手印), 중대가 길어진 대좌 형식 등을 통하여 볼 때, 통일신라시대

9세기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관룡산 정상은 바람이 드세다...특별히 볼 것도 없을 뿐더러

많은 등산객들이 떠드는 소리가 어색하여 서둘러 길을 떠난다

무명봉(13:04)

안부(13:05)

화왕산으로 향하는 길은 좋다.

다친 다리의 통증은 계속되고  느릿느릿 걷다보니 690.7m봉에 도착한다 

690.7m봉(13:10)

계속되는 내리막길이라 그래서 그런지 

조금씩 산행 속도가 빨라지는 느낌이다

나무 계단을 내려서니 팔각정의 쉼터와 각종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내려서는데, 이곳이 지도상으로 옥천삼거리이다

옥천삼거리(13:15)

다리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아무래도 화왕산을 넘어가는

길은 쉽지않을 것 같아서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기로

하고 베낭을 정리한다.

화왕산으로 향하는 입구를 바라보면서...

옥천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로 향한다

일야봉 산장(13:25)

막걸리 한잔이 생각나지만 입만만 다시고 그냥 통과한다

화왕산 제1등산로(13:30)

이곳으로 화왕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보인다

옥천리로 향하는 길은 낙엽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나 역시 서서히 가을의 산길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하는 수 없이 아침에 놋단이 마을로 갈 때 

이용했던 택시기사에게 와달라고  전화를 하곤

계속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sk화왕산 기지국(13:38)

사방댐도 지나간다

쉼터(13:49)

쉼터 맞은편 계곡에 있는 저 바위가 큰바위란다

큰바위 얼굴 안내판

걸을 때 숲이 햇빛을 가리고
비가 내리면 비를 감소하는
숲과 비의 세심함을 배운다고 했던가.

 

그래서 산은 늘 인간의 스승이라 하지 않았던가...

농장(13:55)

늦둥이 애기똥풀

옥천계곡을 따라서 계속 내려가니  '숲속에'라는

카페가 나오고 잠시후에 택시가 올라온다.

왜 그리 늦었냐고 하니까. 입구에 바리게이트가

막혀 있어서 통제하는 바람에 환자가 있어서

간다고 사정하느라 조금 늦었다고 하면서 미안하다고 한다.

 

정말로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바리게이트가 처져있고,

카페나 일야봉 산장을 이용하는 사람에게만 통과시켜

준다고 하는데 왠지 씁쓰름하다...서둘러 창녕 터미널로

향한다(14:05)

창녕터미널(14:35)

터미널에 도착하니 15시 정각에 서울로 출발하는 버스표는 매진이 되어서

구할수가 없고, 다음차는 막차인데 18시 30분이다...이곳에서 멍하니

기다릴 수가 없어서 대구로 가기로 하고 15시 20분에 출발하는

대구행 버스표를 예매하고 화장실에 가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에 대구가는 버스에 오른다

창녕발 → 대구서부주차장행 버스표

창녕터미널에서 바라본 화왕산의 모습

창녕터미널에서 1시간 가까이를 멍때리기를 한

다음에 대구서부주차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창녕에서 대구 주차장까지 버스로 약 40분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대구 서부주차장(15:55)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동대구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동대구역에 도착하여 버스표를 예매하려니  헐~~~이게 뭐여!

19시까지 버스표가 매진이란다...이럴 줄 알았으면 창녕에서

3시간 개기다가 서울가는 버스를 탈껄...참으로 난감하다

발권기에 붙어서 1분 단위로 예매 현황판을 두드리는데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갑자기 18시 20분의 취소표가 나온다

쨉싸게 예매하고는 30분 이상 대합실에서 멍때리기를

한 다음에 서울가는 버스에 오른다

동대구발 → 서울경부행 버스표

짧은 구간을 걸으려고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니...

오늘은 참으로 가성비 낮은 산행을 하고 서울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