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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계성(화왕)지맥(終)

개성(화왕)지맥 제2구간 - 분두골 삼거리에서 가림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25. 12. 19.

☞ 산행일시: 2025년 12월 14일

☞ 산행날씨: 오전에 흐림..오후에 말음 ...차가운 바람

☞ 산행거리: 도상거리 15,2km / 6시간 5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분두골 입구- 제이드골프클럽- 파평윤공&남평문씨 묘- 98m봉

                    무명봉- 101.4m봉 갈림길- 무명봉- 148.2m봉- 안부- 무명봉

                    129m봉- 묵묘- 임도- 경주이공&인동장씨 묘- 무명봉

                    파평윤공& 달성서씨 묘- 돌고개- 안부- 65.2m봉- 안부- 109.1m봉

                    묘지- 월명고개- 무명봉- 120.2m봉 갈림길- 안부- 136.4m봉

                    등산 갈림길- 등산- 다시 등산 갈림길- 등산고개- 156m봉- 안부

                    201.5m봉- 무명봉- 206.7m봉- 122m봉- 묘지- 118m봉- 무명봉

                    농로 사거리- 65m봉- 창녕고개- 진주하공&김해김씨 묘- 안부

                    물탱크봉- 큰갓실산- 145m봉- 묵묘- 임도사거리- 임도 삼거리

                    청단고개- 105m봉- 안부- 무명봉- 무명봉- 묘지- 무명봉

                    안부- 167.6m봉- 안부- 165m봉- 임도 삼거리- 110m

                    고성이공&합천이씨 묘- 가림고개-두곡버스정류장

☞ 소 재 지: 경남 창녕군 창녕읍, 장마면, 유어면, 남지읍

 

주말만 되면 남도지방의 눈, 비 소식...남도지방의 맥길은 또 늦어진다.

이번주에 영암에서 나주로 이어지는 삼포(신산경표상:옥룡)지맥을

시작하려 했는데 주말에 비가 온다고 한다...내가 겨울철에 이곳의

지맥길에 집착하는 이유는 산도 낮지만 잡목의 저항이 너무 심하고

길이 없어서 여름철에는 산행이 거의 불가능한 곳이 많아 겨울철에

끝내려고 하는데, 자꾸만 산행일정이 꼬인다...전국의 일기예보를 점검

하는데 경남지역에 비가 오지 않는다는 예보가 있어서 꿩 대신 닭이라고

택한곳이 창녕지역에 있는 계성(신산경표상:화왕)지맥이다.

 

저녁에 베낭을 대충 챙겨놓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이른 새벽에 일어나

집앞에서 출발하는 첫 버스를 타고 서울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서울역(04:58)

버스에서 내리니 날씨가 포근한 탓인지 눈 대신에 비가 내린다.

조금은 불안하지만 아랫쪽에는 비가 오지 않겠지 하는 믿음으로

대합실로 들어선다

서울역발 → 동대구행 열차표

동대구로 갈 때마다 자주 이용하는 05시13분 열차

여느때처럼 열차에 올라 차창밖을 내다보니 아직도 세상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칠흑같은 어둠속인데다가

간간히 뿌려되는 눈발이 조금은 불안하게 만든다.

 

열차가 추풍령을 지나 구미를 통과했지만 아직까지 어둠속...

일기가 불순한 탓인지 예상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동대구역에

도착한다

동대구역(07:05)

곧바로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다행히 지하철역에 들어서자마자

열차가 도착하는 바람에 편하게 서부주차장역으로 향한다.

서부버스 정류장(07:35)

서부주차장에서 바라본 대구 앞산의 모습

어제 대구에 비가 많이 왔다고 하는데 그 영향인지

앞산의 정상에는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있다

대구서부발 → 창녕행 버스표

창녕행 버스표를 예매하고는 대합실내 분식집에는

김밥한줄에다 오댕 2꼬치로 아침을 해결하고

창녕행 버스에 오르면서 평소 이용하는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한다

창녕터미널(08:45)

터미널에 도착하여 서울가는 버스를 미리 예매를 한다.

오늘 상행길의 날머리가 남지쪽이 가까워서 남지에서

서울가는 버스표를 예매하려는데 이곳에서는 남지에서

서울가는 버스표 예매가 안된다고 한다...같은 회사 버스이고

남지에서 창녕을 거쳐서 서울로 가는 같은 차인데 왜 안되냐고

물으니 규정상 그렀단다...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우짜겠노... 

분두골 입구(09:10)

터미널에서 10분여만에 오늘 산행 들머리인 분두골 입구에 도착한다

11월 2일에 이곳을 왔으니 벌써 한달반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분두골 입구에서 바라본 쌍교산과 화왕산(좌측) 능선의 모습

화왕산은 산이 높아서 그런지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산행을 시작하다(09:20)

택시기사의 말로는 어제 창녕에는 꽤많은 비가 내렸다고 하는데

오늘 하늘을 보니 흐리기는 하지만 비가 올 것같은 느낌은 안든다

인도어 골프장쪽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분두골의 모습

창녕읍 초곡리 분두골은 초곡리의 제일 윗쪽에 자리잡은 동쪽 끝마을로

톳골에서 나누어졌다하여 분(分)톳골, 분두골로 부르는 마을이다.

제이드골프클럽(09:22)

제이드골프클럽이라는 인도어 골프장 좌측으로 올라가니

골프장 소유인 넓은 공터가 나오고, 로스트볼들이 많이

보이는데 연습하는 골퍼들이 많을 경우에 위험해 보인다

파평윤공&남평문씨 묘(09:30)

파평윤공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니 등로가 아주 지저분하다

98m봉(09:33)

정상에는 진주하공 묘지가 관리가 안된채로 방치되어 있고,

이곳에서 마루금은 좌측으로 꺽어져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에는 枯死木을 벌목하고 뒷정리를 안한

탓인지 초반부터 걷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무명봉(09:35)

밋밋한 봉우리에서 맥길은 살짝 우측으로 향한다

오늘 산에서 처음으로 선답자의 흔적을 만난다.

내가 맥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는 표시다

어제 내린 비 탓인지 비에젖은 낙엽을 밟는데도 바스락거리는

소리 대신에 등산화가 살짝 빠지는 둔탁한 소리만이 내가

지금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알리는걸까...

101.4m봉 갈림길(09:43)

맥길에서 살짝 좌측으로 벗어난 곳에 족보있는 101.4m봉이

있지만 초반부터 그런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그저 맥길에 충실하고 싶어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맥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주위에는 재선충이라는 불치병을 앓아서 세상을 하직한

소나무 무덤들이 즐비하다...재선충은 소나무만 유독

괴롭히는 모양이다

아직까지 구름속에 갇혀버린 해는 보이지 않고

날씨는 흐릿하지만, 비가 오지 않는 것에 감사하며

완만한 능선을 따라서 편하게 길을 걸어간다

먹기좋게 건조된 산수유 열매가 쥔을 못찾고 방황을 하는구나

고사목의 태클은 시작되고...

맥산행에 관한한 legend 반열에 오르신 비실이부부님...

이런것도 극복해야만이 진정한 산꾼이라고 훈계를 하시는 듯 하다.

늑대를 피하려다가 호랑이 만난 꼴이랄까...

계속되는 고사목들의 강한 저항을 그저

운명이라 생각하며 정공법으로 치고 나간다

욕심이나
시기나 질투같은 말은
심장 뒤에 정지시켜버린
그냥 묵묵하고
정겨운 사람...

인연이 깊을수록
마음이 아름다워 지듯이
오래 될 수록 향기롭고
묵을수록
빛나는게 사랑입니다

말라 비틀어진 소나무 한입버섯이 산꾼을 반긴다

등로는 지저분하지만 고도차가 별로 없어서

길을 걷는데는 큰 어려움은 없다...오늘도

나홀로 호젓하게 산길을 독점하여 걸어간다

무명봉(10:05)

아무런 생각없이 걸어가는데 갑자기 고라니 한마리가

나를 봤는지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다...미안하다.

일요일이라 휴식을 취하는데 말이다

완만한 오르막에 올라서니 정상 풀섶에 갇혀버린

봉우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오늘 산행을 하면서

첫번째 만나는 족보있는 봉우리인 148.2m봉이다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쌤의 산패는 보이지 않는구나

148.2m봉(10:10)

꿩대신 닭이라 했던가...최돈민, 홀산아라는 코팅지만 보인다

비온 뒤라 낙엽이 젖어 있으니 먼지도 나질않고,

공기도 신선하여 맥길을 걷는데 최적의 환경이다

안부(10:13)

무명봉(10:15)

살짝 내리막 등로의 나뭇가지 사이로 창녕읍 신촌리

들녘이 보이는데 온 들판이 비닐하우스로 뒤덮혀 있다.

이곳 창녕지방은 양파로 유명한 곳이다

 

신촌리(新村里)는 새말이라 불리운 마을로 본래 창락면 지역으로 

새말이라 함은  새로 된 마을 이란 뜻으로 1914년 고리실(環谷), 

지픈골, 회산 등을 포함하여 신촌리가 되었다... 그 이전에는

회산과 고리실로 나누어져 있다가 합해져 새로운 마을이 되니

신촌리라 하였으며, 『호구총수』에는 회산촌(回山村)과 고리곡촌

(古里谷村)으로 기록되어 있다... 회산이나 환곡은 모두 골짜기나

산의 생김이 둥글어 원처럼 생긴대 서 붙여진 지명이다.

129m봉(10:18)

맥길은 우측의 10시 방향으로 이어지고 춥지도 덮지도

않은 날씨에 바람까지 불지 않으니 추위에 지독히 약한

범여로서는 정말 최적의 날씨이다

계속되는 완만한 내리막길

묵묘(10:23)

낙엽이 푹신한 비에젖은 등로는 계속 이어지고...

移葬한 듯한 묘터를 지나면서...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서니 움푹인 임도가 나온다

임도(10:28)

우측으로는 임도를 가로막고 왕겨를 잔뜩 쌓아 놓았는데

퇴비공장인 듯 하고 좌측으로는 묘지로 통하는 삼거리이다,

임도를 가로질러 묘지로 이어지는 오르막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경주이공&인동장씨 묘(10:30)

무명봉(10:34)

묘지에서 올라서니 펑퍼짐한 무명봉이 나오고...

살짝 우측으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돌고개가 가까워졌는지 간간히 차량소리가 들린다

파평윤공& 달성서씨 묘(10:36)

묘지 아래 왠 선인장...생전에 망자가 선인장을 좋아하셨나?

묘지를 지나 우측으로 향하는데...

이곳에 무연고 묘지들이 많은지 창녕추모공원에서

무연고 묘지 봉분에다 편히 잠드소서 란 팻말을 세워놨다

돌고개(石縣:35m:10:38)

창녕읍 외부리와 장마면 초곡리를 잇는 고개로 1080번 지방도로가 통과하며,

카카오 지도에는 들고개라 표기되어 있고 대부분의 맥산꾼들도 들고개라

부르는 듯 하다...그러나 옛 지도에는 돌고개라 부르는데 지명은 우측 아래에

있는 석현(石縣) 마을에서 유래된 듯 하다

 

창락면(지금은 창녕읍)에서 장마면으로 가는 도로에 있는 고개로 예전에는

행인을 위한 주막이 있었으나 지금은 인가가 많이 들어서 있으며 이 고개는

청석 석돌 등으로 이루어진 돌이 많은 고개여서 돌고개라 부르며 이 고개로

난 도로는 마구선(馬邱線:5번국도)이 생기기 전에는 마산에서 서울로 가는

큰 한길(大路)로 인마(人馬)의 내왕(來往)이 많았다고 한다.

돌고개에서 바라본 창녕군 창녕읍 외부리쪽의 모습

반바지님께서는 도로옆 소나무에다 들고개라 해놨다

지맥길은 도로에서 장마면쪽으로 간 다음에...

우측으로 꺽어져 과수원의 샛길로 올라간다

묘지들이 나오고...

묘지 뒷쪽으로 올라간 다음에 우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0:44)

65.2m봉(10:47)

시간이 지나면서 구름 사이로 해가 조금씩 얼굴을 내민다.

행여 비가 올까봐서 잔뜩 긴장을 했는데 기후 변화에

민감한 범여의 몸뚱아리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안부(10:50)

사람들은 드러내는 말보다는
밝은 미소로, 침묵으로
조용한 물이 깊은 것처럼

깊이 있는 말로
사랑과 감동을 전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요.

 

작가 박완서님의 글 중에서

대구 의산님의 시그널을 만나고 곧바로 족보있는 109.1m봉에 오른다

109.1m봉(10:58)

등로는 완만하다...그렇다고 해서 이런 곳에서

시간을 줄이려고 죽기 살기로 속력을 내지는 않는다.

빠르게 걷다보면 놓치는게 많으니까...천천히 걸으면서

남의 눈치 안보고, 볼 것 다보고, 즐길 것 다 즐기면서

가는게 홀로걷는 독립군의 特權아닌감...

편안한 내림길로 내려서니 비에젖은 표지가 나온다

묘지(11:01)

상석에는 망자의 기록이 있으나 흙속에 묻히고

글씨가 마모되어 판독이 쉽지 않아서 포기한다

묘지를 내려서자마자 안부가 나오는데 월명고개이다

월명고개(月明峴:75m:11:02)

경남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와 창녕읍 외부리를 잇는 고개로 

반바지님의 코팅지 표시만 없으면 그냥 지나가기 딱 좋은 곳으로

오룩스맵상의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고, 지명은 좌측의 장가리

월명촌이란 마을에서 유래된 듯 하며 월미고개라고도 한다

 

이곳 장가리(丈加里)는 예전에 서울시장을 역임하면서 부하직원과의

성추문으로 인해 목숨을 끊은 박00시장의 고향이기도 한 곳이다.

 

장가리의 제일 북쪽에 있는 월명마을은 마을 뒷산이 반달형으로 생겼고,

달이뜨면 환하게 보인다 고 해서 붙혀진 지명으로 월미라고도 하는데

월미는 달 월(月)  이며, 미는 뫼(山) 으로 곧 달산이란 뜻이다.

 

월은 고어 달(達)의 차자(借字)로 산을 뜻하는데 산을 둘씩이나

겹치니 곧 산골 마을을 뜻하며, 그러나 명(明)은 이곳 지방에서

밍이, 미이 등으로 발음되므로 월미가 월명으로 와음(訛音)된 듯 하다.

월명고개에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길

등로 주위에는 야생 두릅나무들이 참으로 많이 보인다.

봄에 이곳을 산행지를 잡았다면 제대로 손맛을 볼 수

있을것만 같은데 많이 아쉽구나

무명봉(11:10)

완만하고 밋밋한 능선을 이어가니 참으로 지루하다

120.2m봉 갈림길(11:14)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창녕읍 외부리 안가마실마을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120.2m봉이란 족보있는

봉우리가 있지만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가매실 마을 중에서

동편 골짜기 안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안가매실(內釜谷) 이라

부르며, 바깥가매실 안가매실 등을 총칭하여 부를 때 가매실(釜谷)

이라 부르며, 지형이 가마처럼 생겨서 가매실이라 부른다고 한다

 

가매실 남쪽 1km쯤 떨어진 토오골 산등성이에 말무덤으로 알려진

고분이 있는데 이것은 가매실에 오래전에 살았다 하는 백씨(白氏)와 관련이 있다

 

창녕의 구성(舊姓)을 흔히 조(曺), 장(張), 황(黃), 백(白),이라 하는데 그때 이곳은

백씨촌이었다 한다... 그러나 전설에 의하면 아기와 백마가 죽자 그 집안도 망하여

이사를 가니 지금은 성씨(成氏)촌이 되었으니 창녕의 신성(新姓)은 성(成), 하(河), 

노(盧), 라고 한다

산행 초반과는 달리 등로는 유순하고 밋밋하다.

길이 좋아서 그런지 살짝 졸음이 몰려오는 느낌이다

안부(11:18)

완만한 오르막으로 향한다

136.4m봉(11:22)

136.4m봉을 지나면서 고도를 조금씩 높혀가며 맥길을 이어간다

오룩스맵상의 지도에는 이곳을 등산고개라고 해놨다

등산 갈림길(11:27)

이곳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고 좌측으로 등산이 있다.

족보있는 산이라서 등산을 갔다 오기로 하고 좌측으로 향한다

안부를 지나서 좌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산 사면을 치고 오르니 등산 정상이 나온다

등산(燈山:147.3m:11:35)

창녕군 창녕읍 외부리와 장마면 신구리와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 산에

옛날 절이 있어서 환히 밝혀 등불이 있는 산이라 하여 등잔 ‘燈’을 써

등산(燈山)이라고 하며, 등불 등(燈)과 비탈진 등(嶝)이 그 음이 같으므로

'비탈진 산' 이란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인증샷

등산을 내려와서 왔던 길로 되돌아 간다

다시 등산 갈림길(11:41)

등산고개(11:42)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이곳이 등산고개란다

예전에는 이곳에  민가가 있었다고 하는데 행인을 노리는 도적이 출몰하는

바람에 한국전쟁 이후 없어졌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고개이다

등산고개를 지나면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서 가는데...

좌측으로 시야가 열리면서 가야할 지맥길이 반원형으로

이어지고 골짜기에는 창녕군생활쓰레기처리장이 보인다

등로는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하면서 지맥길의 本色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후손들이 찾지 않은 묵묘의 봉분에는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우측으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맥길은 

창녕군생활쓰레기처리장을 만들면서 생긴 절개지를

따라서 곡예하면서 걸어가야 한다

지맥길의 本色을 드러내면서 꼬라지를 부리기 시작한다

正攻法으로 치고 나가려니 잡목과 가시들로 인해 몸뚱아리에

체채기가 일어난다...그래 佛家에서는 사바세계에 사는 중생들은

늘 고통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삶의 자체가 고통의 근본원인이기에 순응하면서 살자구나

우리 삶의 찰나적 기쁨과 욕망을 쫓아 살아가는 한 영원히 고통의

원인을 만들어 내는 삶속의 윤회를 빠져나올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힘들게 절개지를 빠져 나오니 갑자기 편안한

등로가 나오는데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넓은 임도같은 곳으로 올라서니 펑퍼짐한 무명봉을 만난다

156m봉(11:49)

무명봉에서 내려서는 양지바른 곳에 있는 천년주택...

참으로 여유로워 보이는구나

안부(11:51)

또 한번 곤혹을 치른 다음에 201.5m봉 정상에 도착한다 

 201.5m봉(11:58)

 201.5m봉 정상에서 맥길은 서쪽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 간 다음에 내리막으로 향한다.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가니 또다시 고행은 시작되고...

무명봉(12:06)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동남쪽으로 향하는데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고 오늘 산행길에서 고도가 가장높은 

206.7m봉으로 향한다

 잡목의 강력한 저항을 받으면 올라서니 206.7m봉

정상에 있는 산불감시초소가 얼굴을 내민다.

미치겠구먼...

정말 힘들게 잡목의 태클을 이겨내고 올라서니 산불감시초소에서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오더니 나를 보고는 누구냐고 묻는다...이보소

보면 모르요...등산객이지 하니까, 좋은 길 놔두고 길이 없는 곳을

올라 오냐고 하면서 처음에는 고라니인줄 알았다고 한다

206.7m봉(12:17)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온 사방이 다 보이는 그야말로 一望無際이다.

동쪽으로는 오늘 내가 지나온 있는 계성(신산경표상:화왕)지맥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그 뒷쪽으로는 청도(신산경표상:열왕)지맥 능선,

동북쪽으로는 화왕산, 그 뒷쪽으로는 비슬산 능선도 뚜렸하다.

 

서쪽으로는 내고향 의령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창녕군 유어면에 있는

성지산도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법보종찰 해인사를 품고있는 가야산도

아스라히 보이니 기분이 상쾌하다

분두골 입구에서 이곳까지 걸었는데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였으나

이곳 정상에 올라서니 살짝 바람이 불어와서 춥다는 생각이 든다.

초소를 지키고 있는 산불감시요원이 얼굴이 내밀기에 이보소... 따뜻한

커피 한잔만 얻어 먹읍시다 하니까...이곳은 火器를 사용할 수 없어서

차가운 커피밖에 없다고 하면서 시중에서 꽤나 비싼 커피 한병을 통채로

주면서 어디서 왔나 묻기에 서울에서 새벽에 왔다고 하니까...깜짝 놀란다

 

그러면서 고향이 어디냐고 묻으면서 신상털이를 하는데 의령이라고

하니까, 자기도 고향이 의령이라고 한다...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내가 아는 동창의 집안 동생쯤 되기에 더이상 신상을 공개하진 않았다 

창녕읍내 아파트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은

어제 눈이 내렸는지 눈을 뒤집어 쓰고 있고, 능선 남쪽으로는 한달전에

걸었던 구현산은 마치 여인의 젖꼭지마냥 봉긋하다...그 앞으로는

석대산, 쌍교산이 보이고 아침에 산행을 시작했던 제이드골프클럽

이라는 인도어 골프장도 선명하게 보인다

동남쪽으로는 창녕군 영산면과 온천으로 유명한 부곡의 아파트들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지난 봄에 걸었던 청도(신산경표상:열왕)지맥의

영취산과 병봉, 그리고 종남산 능선들이 근육질을 자랑하며 위압적인 모습이다

서북쪽으로는 창녕군 유어면의 마을들과 성지산(聖智山:202.5m)이

보이고 좌측의 낙동강 너머로는 내 고향 의령군 신반땅이 아련하다.

 

그 뒷쪽 능선이 국사봉과 미타산인데 저 미타산은 내가 다녔던

중학교 교가에도 등장하는 산이다

206.7m봉 정상에서 산불감시요원과 잠시 환담을 나눈 후에 

남서쪽으로 내려서는데 칡넝쿨같은 잡목들의 태클로 한참을

버벅거린 후에 급경사로 내려선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길은 상당히 미끄럽다

조심 또 조심하면서 내려서지만 그리만만한

길은 아니다

급경사로 내려선 다음에 살짝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급경사의 힘든 길은 다 내려온 모양이다

편안한 길을 내려서는데 우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남아골 저수지가 흐릿하게 보인다

122m봉(12:42)

묘지(12:43~12:55)

산불감시초소를 내려오면서 불어대는 바람 때문에

약간의 추위를 느꼈는데 무명봉에서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바람은 잦아들고 양지바른 곳이라 햇볕이

따스하다...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면서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한다

送友人(송우인:친구를 보내며) / 이백

 

靑山橫北郭(청산횡북곽)

푸른 산은 북쪽 성곽에 가로 놓이고

 

白水遶東城(백수요동성)

맑은 강물은 동쪽 성을 감돌아 흐르네.

 

此地一爲別(차지일위별)

이곳에서 한번 이별하게 되면

 

孤篷萬里征(고봉만리정)

외로운 쑥이 되어 만 리를 떠돌겠지.

 

浮雲游子意(부운유자의)

떠가는 구름은 그대 나그네의 마음이요

 

落日故人情(낙일고인정)

지는 해는 너의 친구 내 우정이라네.

 

揮手自茲去(휘수자자거)

그대 손 흔들며 이제 이곳을 떠나가니

 

蕭蕭斑馬鳴(소소반마명)

히힝히힝 헤어지는 말들도 슬피 우네.

 

* 이백(李白:701~762)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으로 자는 태백(太白).

  청련거사(靑蓮居士)라고도 하며  우리에게는 이태백으로 잘 알려진 시인이다.

 

  방랑생활을 하며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겨 두보 (杜甫) 와 함께

  중국 최고의  고전시인으로 꼽히며, 그가 지은 1,000여 수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

 시의 소재로는 주로 여행, 이별, 음주, 달빛, 신선 등이 있으며, 시의 형식으로는

 칠언절구(七言絶句: 한 () 일곱 글자씩으로   줄의 한시(漢詩)의 비중이 높다.

118m봉(12:57)

맥길에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향한다

지저분한 등로를 내려서니...

눈앞에 펼쳐지는 감나무밭...

타산이 맞지않아 수확을 포기했는지 쥔을 잃은

감나무밭은 관리가 되지 않은채로 방치되어 있다

방치된 감나무밭 시멘트 농로를 따라서 오르막으로 향한다

오름길에 북서쪽을 바라보니 과수원 아래로 남아골저수지가

보이고, 태양광 단지 뒷쪽으로는 성지산, 좌측으로는 창녕군

유어면 광산리의 마을들이 보인다

 

광산리(光山里)는 유어면의 남부로 남지읍 시남, 장마면 신구, 창녕읍 외부리와

경계하고 있는 마을로 옛 어촌면의 구역으로 본어촌(本漁村)과 대동촌(大洞村)으로

나뉘어져 있다가 1914년 유장면과 어촌면이 합하여져 유어면이 될 때 광산리가 되었다.

 

본어촌을 ‘어울’이라 불리었다 하는데, 어울은 ‘어울리다(交)’라는 뜻으로 보이며

광산은 광정이, 광정 등으로 불린 동네로 ‘빛나는 산’의 뜻인 광산(光山)으로 표기한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 군사를 격퇴하기 위해 창녕 일대의 의병을 모아

종군한 양훤의 충의를 기리고자 후손들이 세운 광산서당이 있으며 경상남도문화유산자료로

관리되고 있으며, 행정리로는 광산과 대동이 있다

옛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을 모른다 고 했는데

산길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지나온 201.5m봉과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206.7m봉이 여기서 보니 한없이 유순해 보이지만 저 곳을

지나오면서 개고생을 했으니 말이다

망해버린 듯한 감나무밭을 지난다...직진 능선 윗쪽에 맥길에서

살짝 벗어난 족보있는102.4m봉이 있지만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감나무밭 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데 도둑넘 풀씨가 옷에 새카맣게 붙는다

감나무밭을 탈출하여 무명봉에 올라선다

무명봉(13:08)

완만한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또 다시 감나무밭이 펼쳐지는데 이곳 역시

타산이 맞질않아 감 수확을 포기한 듯 하다

감나무밭을 내려서면서 바라본 유어면 광산리의 광정마을이 보인다

광징이라고도 불리는 마을로 앞산의 꼬장뱅이가 꽃처럼 생겨 화형

(花形)이므로 광존(光存)이라 하였는데, 광존은  꽃받침이란 뜻 이란다

 

꼬장뱅이산을 한자로 광정산(光頂山)으로 기사한 것으로 보아

꼬장뱅이는 꽃장뱅이 로 변한것을 알 수 있는데 장백이 이마 정(頂) ,

즉 머리꼭대기라는 이 지역의 방언으로  꽃꼭대기, 꽃송이 위를 뜻한다

 

따라서 꽃이 광(光) 으로 음차되었으며, 광정이란 마을 지명에서 유래된

것으로 光頂 - 光存 - 光山으로 바뀌었고, 빛뫼, 꽃뫼라고도 해석한다

4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광정마을은 창녕 성씨의 세거지이며, 양훤장군을

모신 광산서원이 있다

 

* 양휜(楊晅:1597~1650) 은 조선 중기의 의병장으로, 자는 이정(以貞),

  호는 어촌(漁村)이며, 본관은 밀양이며, 경남 창녕 출신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군의 침입으로 인조가 남한산성에 포위당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의령일대에서 의병을 모아 싸움에 나아갔으나, 죽령에 이르러

 청나라군과 그는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와 화친하자는 조정의 결정에 반대하며

 끝까지 저항을 했으나, 인조가 청에 항복을 하자 은거하며 세상에 나가지 않고

 이 곳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농로 사거리(13:15)

다인농원이란 팻말을 바라보면서...

좌측으로 갔다가 우측의 오름길에서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숲속으로 들어선다

65m봉(13:25)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니...

주변에 묘지들이 보이고 차량소리가 들리는데

지도상의 창녕고개가 가까워 온 모양이다

묘지로 내려서면서 바라본 창녕군 장마면 신구리 문암동(文岩洞)의 모습

문암동은 무나물 문남울 등으로 불리는 마을로 상문암동과 하문암동이 있다.

 

유어면과 장마면의 경계에 있는 마을로 비가오면 물이 면의 경계를 나누어

이쪽 저쪽으로 분명히 떨어진다는 물넘기로 물이 나누어진다 는 뜻으로

이 근처의 논은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으로 저수지를 만들곳이 마땅찮아

지금도 저수지가 없으며, 무나물에 모심기를 다하면 창녕군에 모내기가

끝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마을이다

 

무나물은 물나물인  分水의 뜻인데 음이 비슷한 文岩, 文南으로 표기하였다

창녕고개(昌寧峴:35m:13:32)

창녕군 장마면 신구리와 창녕군 유어면 광산리를 잇는

79번도로인  2차선 도로 2차선 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고개 정상에는 민가 한 채가 있고, 유어면과 장마면의 경계

표지판이 있으며, 창녕군을 지나가는 고개라는 뜻으로

큰 의미는 없는듯 하다

장마면 안내판을 보면서...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 가려니 도저히 자신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장마면쪽으로 간 다음에 묘지 위쪽으로 올라간다

진주하공&김해김씨 묘(13:37)

묘지에서 바라본 장마면 신구리의 모습

장마면 신구리의 지명유래는 새애불이라 불리던 신촌(新村)과 미이실이라

불리던 미구(尾龜)가 합하여져서 신구리가 되었으며, 새애불은 골짜기 사이의

들이라는 의미이나 ‘사이 간(間)’의 뜻이 별로 좋이 않아 ‘새 신(新)’이 대신 쓰여

‘신촌(新村)’이라 쓰였고 미이실은 뒷산의 형태가 거북이라 거북의 꼬리라는

뜻으로 ‘미구(尾龜)’라 쓰인 것이며, 신구리는 유어면 광산리, 남지읍 시남리와

서북쪽으로 맞닿아 있는 산지마을로 행정리로는 신구, 미구 2개로 나뉜다.

묘지 뒷쪽으로 오르는 길은 급경사에다 빡센 오르막에다

낙엽으로 상당히 미끄럽다...오르면 미끄러지고 다시

오르기를 반복하면서 다리에 힘을 줬더니만 다리에

통증이 오면서 쥐가 나기 시작하는데 정말로 미칠것만 같다

 천신만고 끝에 능선에 올라 마루금에 복귀하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힘든 산꾼을 반겨준다

서쪽으로 향하는데 잠시후에...

엄청나게 큰 규모의 단감밭이 산꾼을 격하게 환영한다

창녕은 양파만 유명한 게 아니라 단감도 유명한 모양이다

안부(13:48)

감나무 농장 사이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직진으로 올라간다

물탱크봉(13:55)

단감나무밭 최상단에 있는 물탱크봉에 도착하여 뒤돌아보니

내가 오늘 걸었던 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바로 아랫쪽에는

79번 도로가 지나가는 창녕고개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힘들게 걸었던 201.5m봉과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206.7m봉...

그 뒷쪽의 화왕산 능선은 멀게만 느껴진다...잠시후에 큰갓실산에 도착한다

큰갓실산(121.7m:13:59)

창녕군 유어면 광산리와 남지읍 시남리, 장마면 신구리 등 3개 면이

만나는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준.희 쌤의 산패와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홀로걷는 산꾼을 반긴다...이곳부터 북측은 유어면에서

남지읍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지만 남쪽은 계속해서 장마면과 함께 한다

 

큰갓실산의 유래는 ‘큰 갓’처럼 넓은 들과 산이 어우러진 지형적 특징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갓실’은 ‘갓처럼 넓은 들’ 또는 ‘갓처럼 큰 산’이란 뜻으로

 ‘갓’은 옛말로 ‘넓다’는 의미이며, ‘실’ 은 ‘골짜기’ 또는 ‘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실제로 산 능선이 넓고 길게 펼쳐진 형태에서 붙여진 것으로 해석된다. 

큰갓실산에서 만난 산으로 아우님의 흔적

큰갓실산 정상에서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서 내리막으로 향한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잡목의 저항이 만만찮다

꽃은 피어도 소리가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사랑은 불타도 불꽃이 없다.

장미가 좋아 꺾었더니 가시가 있고

친구가 좋아 사귀었더니 이별이 있고

상이 좋아 태어났더니 죽음이 있더라

좋은사람 찾지 말고
좋은사람이 되어 주어라.
무엇인가를 바라지 말고

먼저 베풀어라.

 

길은 잃어도 사람은 잃지말라.

145m봉(14:07)

삭막한 겨울 산행이지만 마음만은 넉넉하다.

아무리 험하고 삭막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세상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건 아직까지 나쁜넘보다 착한 사람이

더 많다는 얘기라는 뜻이겠지

고도를 낮추면서 내리막으로 향한다

묵묘(14:15)

늦으막한 오후에 나뭇가지로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면서 내려가니...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도로를 따라서 남쪽으로 향한다

임도사거리(14:22)

임도 사거리에는 멋진 사각정자와 민가...그리고 개인 골프연습장까지

완비해놨으니 산꾼의 눈에서 보면 그야말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구나

맥길은 임도에서 정자 뒷쪽의 숲속으로 올라가야 하나

떡본김에 제사 지낸다고, 그냥 편안한 길을 따라서 걷는다

무릉도원을 연상케하는 민가...안쪽으로 들여다보니

인기척은 없으나 세콤에서 설치한 CCTV가 눈을

부라리며 쬐려보기에 괜한 오해를 받기 싫어서

얼굴을 돌린다...그 와중에 눈에 보이는 것이

軟風山房이란 현판이다

 

연풍산방을 直譯하면 약하게 솔솔 부는 바람에

산속에 있는 절집에서, 스님이 거처하는 방이란

뜻인데 이 집 쥔장이 스님이란 말인가...궁금하다

우측 능선인 마루금과 도로가 평행선을 달린다.

길을 따라서 몸뚱아리는 편하게 가지만, 자칭

정통산꾼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산길을 걷는

범여의 맘은 그리 편치가 않구나.

도로 좌측 아래에는 창녕군 장마면 신구리 마구 마을이 보이고

산 속으로 지나가는 교각이 함양~울산간 고속도로인데 밀양에서

울산은 개통되었지만 함양~창녕구간은 미개통지역이다.

 미이실이라 부르는 ‘미구(尾龜)’마을은 뒷산의 형태가 거북이라

거북의 꼬리라는 뜻이란다.

연풍산방에서 헤어진 마루금에 복귀를 한다

임도  좌측 아래는 벌목을 하고 편백나무를 심어놨다

트랙상 맥길은 좌측 능선이 아닌 도로로 이어진다

임도 삼거리(14:30)

좌측으로는 창녕군 장마면 신구리 미구마을로 향하고

우측으로는 남지읍 시남리 청단마을로 이어지는

삼거리인데 맥길은 도로를 따라서 시남리 방향으로

향한다

도롯가에는 경상도 내륙지역에서는 그리 보기

쉽지않 동백나무를 식재해 놓은 것이 이채롭다

청단고개(115m:14:38)

또한번 임도에서 삼거리를 만난다...우측으로는

남지읍 시남리 청단마을로 향하고 마루금은

숲으로 이어지는 사잇길로 이어지지만 달콤하고

편안 임도길에 맛을 들인 산꾼은 野性을 잃어

버린채 편안한 도로를 따라서 간다

 

시남리(詩南里)는 남지읍의 북단에 위치한 법정리로 시남리의

북쪽에는 유어면에서 남으로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가 서쪽으로 꺾여 흐른다.

시남은 곧 ‘신남(新南)’ 즉 ‘새남’으로 보기도 하는데, 새남은  ‘새벽이 열리는

남쪽 마을 이라는 뜻으로 행정리는 시남, 청단 2개로 나뉜다.

시남리 갈림길에 서 있는 안내판... 빛이 바래서 잘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보니 2015년 임도시설공사(신구, 시남지구)라고

적혀있다

도로를 따라서 윗쪽을 바라보니 텃밭이 보이고  저 능선

윗쪽에 족보있는 150.7m봉이 있지만 마루금에서

살짝 벗어나 있기에 저 능선을 오르지 않고 그냥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는 치졸한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범여...

자꾸만 맥길에 대한 야성을 잃어가는 느낌이다

움막을 지나고...

능선에서 내려오는 마루금을 만난 다음에

도로를 버리고 맥길에 복귀한다(14:42)

등로가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하나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멧선생의 체력단련장 및 사우나...물이 하나도 없다

105m봉(14:48)

안부(14:50)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길...우측에는 묘지가 있다

무명봉(14:53)

갑자기 넓은 임도가 나오다가...

느닷없이 고사목이 튀어나와 태클을 걸어대니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그러면서 무명봉에 도착한다

무명봉(15:05)

무명봉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고...

묘지(15:07)

동지가 가까워지는 시기의 날씨라

벌써부터 해가 조금씩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는구나

넓은 임도를 따라서 완만한 오르막으로 향하는데 좌측 아래는

창녕군 장마면 산지리의 마을들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

보이는 산줄기가 청도(신산경표상:열왕)지맥 능선인 영취산,

병봉, 종암산, 덕암산 능선이고, 그 아랫쪽은 온천으로 유명한

부곡온천이 아련하게 보인다

창녕군 장마면 산지리(山旨里)의 모습

산지리는 1914년 장가면과 마고면이 통합되어 장마면이 될 때 화영(華榮)과

마고면의 도동(道洞) 등이 합하여 졌으며, 산지는 예전 ‘상지(上旨)’라 하였으니

‘山’과 ‘上’이 음이 비슷하고 그 뜻도 높은 곳이 곧 산이므로 서로 통한다.

즉 산지는 ‘웃쪽마을’, ‘산마을’의 뜻으로 불리어진 것으로 행정리로는 산지,

화영, 도동 3개로 나뉜다.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의 숲속으로 향한다

무명봉(15:15)

무명봉에서 아무런 생각없이 우측으로 내려서는데

갑자기 앞에서 우두둑하는 소리에 깜짝 놀란다

멧선생께서 사우나를 즐기다가 내 베낭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놀라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는데 정작 놀란 건

뫳선생이 아니라 내가 더 놀란다

안부(15:25)

따스한 햇살을 만끽하며 능선으로 올라서니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167.6m봉이 나온다

167.6m봉(15:32)

안부(15:39)

다시 시작되는 완만한 오르막길

멧선생의 사우나...오늘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고 도둑넘 풀씨를 비롯한

잡초의 풀씨들이 온 몸에 달라 붙는데 끈적끈적하니

기분이 영 찝찝하다...

165m봉(15:50)

내리막길로 향하는데 야생 두릅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텃밭이 보이고 물은 담아논 팻트병을 보면서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 삼거리(15:58)

좌측으로는 장마면 동정리로 향하고 우측은 남지읍

수계리로 이어지는 임도 삼거리로 맥길은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고사리와 두릅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태클을

걸어오는데 여름철이었다면 개고생 할뻔 했다

오르막으로 향하는데 이곳도 잡풀들의 씨앗이

옷에 잔뜩 붙는 바람에 그걸 떼느라 고생을 한다

110m봉(16:05)

가림고개로 내려가는 길

문패없는 묘지가 나오고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고성이공&합천이씨 묘(16:08)

누가 말했던가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그 세월의 가치는 자신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얼굴의 주름은 성형으로 숨길수 있어도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하지 않았던가..
세월은 경험이고 지혜라고 했지...
세월은 쓰는 사람의 몫이라고.

시간이 많아도 쓸 줄 모르면 무용지물이며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으

굴곡 없이 가는 삶은 없다하지 않았던가

가림고개 내려서면서 바라본 장마면 대봉리(大鳳里)의 모습

대봉리(大鳳里)는 1914년 대야리(大也里)와 어봉리(魚鳳里)가 합하여

대봉리가 되었으며, 서쪽으로 산을 등지고 동쪽으로는 계성천과 저습지와

들판을 앞둔 마을로 계성천을 건너 농사를 지으러 다니는 불편이 있으나

모두 대농가로 부자마을이 되었으며 6.25 한국전쟁 때 창녕군 내 최초의

격전지로 유명하다... 행정리로는 대봉, 대야 2개로 나뉜다.

석양에 물든 묘지를 바라보면서... 

가림고개로 내려선다

가림고개(75m:16:15)

경남 창녕군 장마면 대봉리와 창녕군 남지읍 고곡리를 잇는

1008번 지방도 2차선 도로가 지나며 우측에는 두곡버스정류장과

남지읍과 장마면의 경계 안내판과 반사경이 있다...가림고개 또는

가람고개라도 불리면 지명은 좌측의 대봉리에 있는 가림마을에서

따온 듯 하다...가림마을의 유래는 알려진게 없다

느릿느릿 걸어면서 온 탓인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지금 시간이 오후 4시가 넘어서 오늘은 이곳에서 산행을

접기로 하고 우측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인증샷

두곡버스 정류장(16:20~17:05)

이곳에서는 남지터미널이 가까우나 창녕에서 서울가는

버스표를 예매해 놨기에 아침에 이용했던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하니 오후 5시쯤 되야 도착할 것 같다고 한다.

 

아침에 서울가는 표를 예매해놨으니 큰 걱정이 없다.

천천히 오시라고 하고는 수통에 있는 물로 간단하게

몸을 딱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음료수 한병을 마시면서

정류장 안에서 휴식을 취한다

창녕시외버스 터미널(17:55)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에 택시를 타고 20분쯤 후에 창녕터미널 근처에

도착하여 터미널이 아닌 중국집으로 가서 해물잡탕밥에 소주한병을

느긋하게 마신 후, 알딸딸한 기분으로 터미널로 향한다

창녕발 → 서울남부행 버스표

오늘은 산행 일정이 바뀌긴 했어도 어차피 와야 할 길이니

그리 손해보는 장사는 아닌 듯 싶다...대합실에서

버스가 올 동안에 잠깐동안 멍때리기를 하다가

서울가는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