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행일시: 2025년 11월 02일
☞ 산행날씨: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차가운 바람...날씨는 맑음
☞ 산행거리: 도상거리 14.7km / 6시간 3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옥천임도 삼거리- 674.6m봉 갈림길- 조망바위- 무명봉- 암봉
안부 삼거리- 폐헬기장- 무명봉- 폐헬기장- 무명봉- 안부- 조망처
암봉- 상월마을 갈림길- 안부- 749.6m봉- 걱정바위 안내판- 무명봉
화왕산- 갈림길- 미소바위- 쉼터- 소원바위- 화왕산성 서문- 갈림길1
갈림길2- 배바위- 곰바위- 갈림길3- 화왕산소방무선 중계소- 안부
암봉 전망대- 장군바위- 무명봉- 암봉- 안부- 암봉- 749.6m봉- 안부
구현고개- 암봉- 722.9m봉- 재련폭포 갈림길- 안부- 안부- 685.2m봉
폐헬기장- 무명봉- 무명봉- 암봉- 무명봉- 쉼터- 퇴천저수지 갈림길
무명봉- 비들재- 안부능선- 안부- 무명봉- 안부- 구현산- 안부- 갈림봉
안부- 550m봉- 안부- 석대산- 암봉-무명봉- 안부- 500.8m봉- 안부
암봉- 안부- 461.7m봉- 묵묘- 안부- 332.6m봉- 서흥김공&유인 밀성박씨 묘
여초리 입구-남통고개- 중부내륙고속도로 암거- 창생농장 입구- 분두골 입구
☞ 소 재 지: 경남 창녕군 고암면, 창녕읍, 계성면, 장마면
지난주에 계성(신산경표상:화왕)지맥 1구간을 시작하다가 암릉구간의 내리막길에서
고꾸라지면서 바위에 무릎을 부딪힌 통증으로 1주일내내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정형외과에서 X-ray 촬영을 했는데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어서 물리치료를
받고나니 조금은 나은것 같아서 1주일만에 다시 자투리 구간을 나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발 → 동대구행 열차표

서울역(05:03)
서울역에 도착하니 새벽 5시가 살짝 넘었다...매표소에서 어제
미리 예약한 열차표를 수령하여 평소에 자주 이용하는 05시 13분에
출발하는 동대구행 열차에 올라 늘 습관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가
잠에서 깨어나니 열차는 구미쯤을 지나고 있다...정신을 차린 다음에
동대구역에 도착한 열차에서 내려 역 광장으로 향한다

동대구역(07:02)

지하철역으로 향하면서 각하에게 예를 올린다

서부버스 정류장(07:35)
대구지하철을 타고 20분정도 걸려서 대구서부주차장역에서 내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창녕가는 버스표를 예매한 후 이곳에
올 때마다 아침을 해결하는 분식점에서 김밥한줄과 오뎅 2꼬치로
아침을 해결하고 창녕가는 버스에 오른다

대구서부발 → 창녕행 버스표

08시에 창녕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면서 창녕의 산으로 갈 때
자주 이용하는 택시기사에게 택시를 예약하고, 스마트폰으로
오늘 산행할 코스를 체크하는 사이에 버스는 창녕 터미널에
도착한다.

창녕터미널(08:35)
창녕 터미널에 도착하여 지난주에 서울가는 버스표가 없어서 개고생한
아픈 추억이 있기에 오늘은 18시 30분 서울가는 막차를 예약해 놓고 택시를
타고 오늘 산행 들머리인 옥천삼거리로 향한다...옥천매표소에 도착하니
바리게이트가 길을 막는다.
택시기사가 차에서 내려 매표소를 관리하는 분에게 사정을 하여
옥천삼거리까지 택시로 무사하게 올라간다

옥천삼거리(09:20)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에서 고암면 우천리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이곳은 구룡산~관룡산~화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있으며
정상에는 팔각정의 쉼터와 각종 안내판이 어지럽게 보인다

택시에서 내려 기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유쾌한
작별을 한다...만약에 택시로 오지 않았더라면 매표소에서
이곳까지 계속 오르막길이라 내 발걸음으로는 2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이니 그게 어디람...팔각정에서 산행을 준비한다

화왕산으로 향하는 길은 스텐레스 구조물로 막혀있고, 구조물을
통과하니 좌측으로 화왕산으로 오르는 포장도로가 보이는데
이곳으로 가면 화왕산 가기 직전에 드라마 ' 허준과 대장금' 등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촬영했던 세트장으로 향하는 길이고, 맥길은 이곳이
아닌 우측으로 올라가는 등로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9:30)
지맥길 마루금은 좌측의 화왕산 동봉으로 향하는 편안한 길이 아닌
박월산 6.4km를 가리키는 임도로 향하는데 길은 상당히 좋다

MTB 잔차도로를 조성중인 모양이다...낙엽이 푹신한 등로로 올라간다

674.6m봉 갈림길(09:40)
우측으로 박월산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는데 조금전에
옥천삼거리에 있는 박월산 이정표에는 박월산까지 6.4km라고
표기가 되어 있었는데 나의 느린 걸음으로 10분정도 올라왔는데
박월산 3.8km라는 팻말이 있는데 어느게 맞는지 햇갈린다

박월산 방향으로 가면 지맥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멋진 전망데크가 있는 674.6m봉이 있지만, 워낙
발걸음도 느리지만, 가다가 볼 걸 다봐야하는 범여는
지맥길이 아니라는 이유로 674.6m봉 가는 걸 과감하게
포기하고 지맥길에 집중하기로 한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좌측의 완만한 오르막으로 향한다

완만한 등로로 올라서니 멋진 조망바위가 나온다.

조망바위(09:43)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조망바위 좌측으로 가는길에
맥꾼들의 시그널 몇개를 바라보면서 내려서는데
등로에는 빗물을 머금은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조망바위 아래에는 꽤나 큰 감동(甘洞)저수지가 보이고 좌측으론
고암면소재지가 있는 중대리는 흐릿하고, 저수지 뒷쪽으로 보이는
산이 조금전에 이정목에 표시된 박월산(384.9m)이고, 그 뒷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지난 2월에 걸었던 토평(신산경표상:왕령)지맥 능선이다.
박월산(384.9m)은 창녕군 고암면 계상리와 중대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창녕군내에 소재한 ‘밝’이 붙은 지명(함박산, 백옥산, 박월산 등) 중 하나로
'밝’은 태양처럼 산을 신성시하고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가야 소읍국가
사람들의 신앙과 연결되어 있으며, 박월산 역시 ‘한밝산’처럼 하늘의
연장으로 여기는 산이라고 한다

안부(09:45)
창녕군에서 설치한 상수도보호구역 콘크리트 말뚝이 있고...

이곳에서 제도권의 희미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향한다

무명봉(09:47)
어느 누구도 오르지 않았는지 아무런 흔적도 없는
무명봉에 올랐다가 직각으로 꺽어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맥꾼들이 다닌 흔적(시그널)은 없으나 등로는 의외로 뚜렸하다

조금전에 헤어진 뚜렸한 등로를 만나서 다시 맥길을 이어간다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 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법정스님 -

암봉(09:57)

지맥꾼의 시그널이 보이니 내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안부 삼거리(10:02)
안부삼거리 좌측 아래에는 산행 시작점인 옥천삼거리에서
지맥길을 오르지 않고, 화왕산으로 향하는 임도가 보이고...

건물 한채가 있는데 지도상에서 보니 예전에 이곳에서 드라마
허준이라는 세트장이 있었던 곳이라 그와 관련된 건물인 듯 하다

1989년도에 '경북대 아마추어 천문회 홍이라' 는 친구가
이곳에서 生을 마감했는지 '그대여 하늘의 별이되소서' 하는
추모비가 산꾼의마음을 숙연케 하는구나...
그래도 생전에 세상을 잘 살았구료.
동료들이 추모비까지 세워 주었으니 말이요

안부 삼거리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향한다

폐헬기장(10:03)

이곳은 맥산꾼의 전용 등로(?)인지 화왕산으로
향하는 길인데도 등산객들은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무명봉(10:05)

못난이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오랫만의 맑은 날씨라 그런지 소나무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향이 머리를 맑게 해준다

폐헬기장(10:07)

무명봉(10:09)

화왕산이 가까워오는지 암릉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10:11)

비에 젖은 낙엽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가지버섯
예전에 한강기맥길을 걸으면서 채취하여 라면을 끓일때 참으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서 베낭을 내려놓고 깔끔하게 수확을
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가지버섯이란 이름은 가지와 같은 보라색을 띠는 버섯이라 부르며
정식명칭은 ‘민자자주방망이버섯’으로 씹을수록 느껴지는 쫄깃한
食感과 은은한 香이 일품이라 예로부터 귀한 식재료로 애용했다
식이섬유와 단백질이 풍부하여 활력증진과 피부미용에 좋으며,
특히 다이어트에 효능이 있으며, 폴리페놀이란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어, 우리 몸 속에 있는 활성산소를 제거하여, 세포손상과
노화방지, 혈액순환 개선에 좋다고 한다

조망처(10:16)

조망처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아침에 지나온 옥천삼거리 윗쪽에서
박월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지난 2월에
걸었던 토평(신산경표상:왕령)지맥 산줄기이며, 박월산으로
향하는 산줄기가 감싸고 있는 상월마을(창녕군 고암면 우천리 소재)이
산골마을의 고즈늑한 모습으로 산꾼의 눈에 들어온다.
창녕군 고암면에 속해있는 우천리(牛川里)는 마을 뒷산이 소처럼 생기고 앞에
내(川)가 흐르는 지형적 특징에서 유래되었으며, ‘상월’은 달미(월미) 위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의미로, 마을 이름에 ‘위 (상:上)’과 ‘달(월:月)’이 합쳐져
부르는 이름이며, 우천리의 자연마을로는 삼수정, 상월, 달미마을이 있다

화왕산으로 향하는 등로는 조금씩 고도를 높혀가지만 그리
힘드는 줄 모르겠고, 우려했던 무릎통증이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아서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암봉(10:20)

어느 누구의 아무런 간섭도 받지않고 홀로
호젓하게 걷는 이 길이 난 너무도 좋다.
아무런 생각없이 걷다보니 쉼터의자가 있는
상월마을 갈림길이 나온다

상월마을 갈림길(10:22)

상월마을 갈림길에서 완만하게 내려서 안부에 도착한다

안부(10:24)

안부에서 올라서 뒤돌아보니 조금전 내가 산행을 시작했던
옥천삼거리가 지척에 있고, 그 뒷쪽으로 지난주에 개고생하면서
걸었던 구룡산(맨 우측)은 나에게 미안했던지 짙은 미세먼지 속으로
숨어 버렸다.

749.6m봉으로 향하는 길에 화왕산성이 둘러싸고 있는
화왕산의 은빛 억새밭이 환상적인 모습으로 범여를
격하게 환영하고, 잠시후에 오를 배바위가 범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749.6m봉(10:27)
국토지리정보원에 등록된 족보있는 봉우리건만 맥산꾼들의
흔적들은 보이지 않고, 이곳부터는 화왕산성 동문에서 올라오는
일반 등산객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749.6m봉을 지나 화왕산으로 향하다가 지나온 길을
復棋하듯 뒤돌아 보니 지나온 길이 참으로 환상적이다.
그래~~~이 맛이야!

안부로 내려서면서 바라본 화왕산의 모습

걱정바위 안내판(10:35)

보이는 저 바위가 근심하는 사람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걱정바위라 부르다는데, 난 전혀 근심스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구나...하기사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까.

바위아래 물기를 머금은 채 다소곳이 피어있는 쑥부쟁이.

무명봉(10:36)

화왕산 정상가는 길

화왕산(火旺山:757.7m:10:39~10:43)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와 송현리 말흘리, 고암면 우천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멋진 정상석이 있고, 정상석 뒷쪽에는 2등 삼각점...
그리고 정상 남쪽으로는 엄청나게 큰 억새밭과 화왕산성이 있으며, 동서남북으로
확트인 조망이 그야말로 一望無際이다
관룡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서쪽과 남쪽에는 토평천과 계성천이 흘러 우포(牛浦)
등의 습지가 발달하였으며,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화왕산성이 있다.
화왕산(火王山 : 火旺山)을 예전에는 불을 뿜는 화산이었으므로 불이 크게 이는 산
「큰 불의 뫼」라 하는 뜻으로 화왕산(火王山)이라 하였고『동국여지승람』
산천(山川) 란에 화왕산(火王山)이 (창녕)「현의 동쪽 4리에 있는 진산이다.이라 기록하였다.
火王山 縣西五里鎭山(新增 東國與地勝覽 卷27 昌寧縣 山川)
『대동여지도』와 『해동여지도』에는 「火王山」이라 표기되어 있으나 『영남지도』와
『경상도현읍지』의 지도에는 「火旺山」으로 표시해 놓고 있다.
따라서 「王」과 「旺」이 흔동되어 쓰여 졌으나 그 본래의 뜻은 차이가 없다 할 것이다.
화왕산의 북쪽은 고암면이며, 동편은 관룡산,남쪽은 비들재(鳩峴山),서편은 관주산과
창녕읍 시가지가 펼쳐져 있어 창녕현의 진산답게 모든 산을 거느리고 있다
불사국(不斯國), 비화가야, 비사벌, 비자화군 등으로 불리던 것이 신라 경덕왕이
전국적으로 두(2)자 한자 지명으로 군명을 개칭할 때 이 화왕산의 이름을 따서 화왕군(火王郡)으로
개칭되었으며, 그 이후 고려조에 개칭된 「昌寧」이란 군명도 「火王」의 뜻과 다름이
없었다고 할 것이다.
산 정상에는 화산으로 불을 품었던 분화구가 있어 그곳에 물이 가득 차 큰 못이 되어
용지(龍池)라 불리었으니 이곳이 창녕 조씨(曺氏) 득성의 전설이 유래되는 곳이 되었다.
지금은 그 못의 규모가 줄어들었으나 옛 기록에 보면 화왕산 정상에 구천삼지(九泉三池)가
있다 하였으며, 또 가야시대의 축성으로 보이는 화왕산성이 있으며,조씨득성비와 배바우
등이 있고, 십리에 이르는 갈대밭이 가을이면 장관을 이루고 봄이면 참꽃,철쭉꽃이 피는 등
아름다운 경치에 이끌려 많은 등산객들이 일년 내내 찾고 있는 산이다.

정상석 후면에 새겨진 '창녕의 氣像'은 낯익은 글귀다.
마치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 정상석 後面에 새겨진 '한국인의 氣像'을
카피한 느낌이다

인증샷

화왕산 정상 2삼각점( ▲청도23 / 1989재설)

서북쪽으로는 지난 2월에 걸었던 토평(신산경표상:왕령)지맥 산줄기가
보이고 그너머 아침에 지나온 현풍읍, 바로앞에는 박월산이 손에 잡힐듯
가깝게 보인다

북쪽으로는 한때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선사가 주석했던 유가사(瑜伽寺)를
품고있는 비슬산은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흐릿하게 보이니 참으로 아쉽다

바로 아랫쪽에는 창녕읍내가 한 눈에 들어오고, 그 뒷쪽으로는
내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의령군 부림면이란 곳인데, 너무 멀어서
그런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구나...하기사 내가 고향을 떠난지가
50년이 넘었으니 내 마음속의 고향도 흐릿하기는 마찬가지다.

화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창녕읍내의 모습
경상남도 창녕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읍으로 서부는 낙동강과 인접하고 있어
저습 지대이며, 동부는 화왕산 ·영취산 등 비교적 험준한 산악지대와 인접하여
취락과 방어에 알맞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통설에서 삼한시대의 불사국을 창녕이라고 한다면, 그 중심지는 창녕읍이었을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믿고 있으며 그 이후의 신라의 비자화군(비사벌)·하주(下州)·
화왕군, 고려 때의 창녕군, 조선시대의 창녕현의 중심지 또한 그랬을 것으로 보고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 지금의 창녕읍 교상리에 읍치가 있었던 것으로 수록하고 있고,
1914년 창녕군 읍내면과 고암면의 도야리와 하리를 통합하여 읍내면이라 하였고,
1918년 창녕면으로 개칭하였으며, 1955년 창락면을 통합하였으며, 1960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화왕산은 화산활동이 활발하여 불뫼 또는 큰불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낙동강 하류지역에 솟아 실제보다 높게 보이며, 이 산은 억새밭과 진달래
군락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정상부에 5만여 평의 억새밭이 펼쳐저 있어 3년마다
정월대 보름이 되면 정상 일대의 억새밭에서 억새태우기 축제가 열렸으나 2009년
인명사고가 발생하여 폐지되었으며 매년 10월초에는 화왕산 갈대제가 열린다.
억새는 습지에 사는 갈대와 구분되는 것으로 이 산의 정상에 서식하는 식생은 억새이나
오래전부터 억새를 갈대로 불러왔던 지역의 전통에 따라 10월에 열리는 행사는 여전히
갈대제로 불리고 있다.

갈림길(10:45)

화왕산성 안내판이 있는 곳 옆에 아이스케키 파는 여인이 장사에는 眼中에도 없고
스마트 삼매경에 빠져있다...이 높은 곳에 왔으니 하나를 팔아줄까하고 얼마나
물어보니 메론바 하나에 2,500원을 달라고 한다...행여 잘못 들었나 하고 다시
물으니 대답은 똑같다...워낙 아이스케키를 좋아하여 산에가면 꼭 하나씩 사먹는데
여태껏 산에서 1,000원 이상 줘본적이 없다...좋은일 하려고 하다가 기분만 잡친다

미소바위(10:46)

미소바위쪽은 위험하다고 가지 말란다.
지난주에 가지말라고 하는 곳을 갔다고
1주일내내 엄청 고생을 했는데 오늘은 가지 말아야지

쉼터(10:47)

쉼터에서 서남쪽으로 여인의 젖꼭지처럼 봉긋하게 솟아오른 산이 쌍교산이다

이곳 쉼터에서 바라보니 미소바위가 제대로 보이는구나

소원바위(10:49)
화왕산과 화왕산성의 억새밭을 걸으면서 창녕군에서 스토리가있는 바위에
사연을 첨부하여 등산객과 관광객들에게 이야기거리를 주는데 참으로
신선한 발상인 듯 하다

소원바위 안내판

억새밭 너머로 조그만 연못이 보이는데 급하게 사진을 찍느라
카메라의 앵글이 뒤털려졌는지 억새밭만 보이는구나...그 연못이
구천삼지(九泉三池)로 보이며 조씨(曺氏) 득성지지비(得姓之地碑)와
관련이 있는 듯 하다
화왕산에는 언필칭 아홉 개의 샘과 세 개의 못이 있어 이를 구천삼지라 하였는데
이것은 이 산이 화산으로 분화구에 물이 고여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못과 샘으로 남은 것이다.
신라 때는 이 산 정상의 못이 물이 많고 맑아 용이 사는 못이라 하여 용지(龍池)라 하였으며,
이 용지와 연관 되어 창녕 조씨가 득성하게 되는 설화가 전해 오고 있는데 이 설화의 내력을
적은 비가 바로 “조씨 득성지지 비”인 것이다.
신라 때 한림학사였던 이광옥(李光玉)의 딸이 나면서부터 배가 아픈 증세가 있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창녕 화왕산 못은 영험하니 가서 목욕 재계하고 기도하면 병이 나으리라."
하는 말에 택일하여 화왕산 용지에 와서 목욕하고 기도하였는데, 이때 병도 낳고
아들을 낳게 되었으니 이 아이는 용지의 용의 아들이었는데, 아버지가 이 사실을 왕에게
알렸더니 「曺」씨로 사성(賜姓)하고 이름을 계룡(繼龍)이라 하였다.

화왕산성 성곽을 바라보면서 저 윗쪽으로 향하는데
억새밭이 장관이지만 미세먼지에다 역광이라 그림이
영 엉망이라 아쉽다

미소바위에서 화왕산성 서문으로 내려간다

화왕산성(사적제64호) 서문(10:51)
화왕산성은 화왕산 정상(756.6m)에 축조되어 있는 성(城에)으로, 성곽의
둘레가 약 2.7㎞에 달하는 석성으로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성벽을
쌓아 올렸고,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가야시대(5~6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화왕산성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태종실록’에서 찾을 수 있는데, 태종
10년 2월에 화왕산성을 비롯하여 경상도와 전라도의 주요 산성을 고쳐지었다고 하며,
‘동국여지승람’에는 성종 때에 그 기능을 상실하여 폐성된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창녕 뿐 아니라 영산, 현풍을 아우르는 군사적 요충지로 인식되어
곽재우 장군이 의병 활동의 본거지로 활용하면서 크게 고쳐지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도 한두 차례 중수해 지금까지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홍의장군 곽재우께서 화왕산성을 의병의 거점으로 하여 왜군이 진주를 통해 운봉으로
진출하려는 길을 차단하였고, 왜군의 경상남도 침입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 화왕산성의
지세에 힘입은 바가 컸다고 전함)...화왕산성 안쪽에는 큰 나무가 없는 평지로 약 18.5㏊의
억새평원이 사계절 장관을 이루며, 창녕조씨득성비와 용지(연못 명) 3기가 경상남도
기념물 제246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왕산성 안내판
화왕산성(火旺山城)은 화왕산 산정 일대에 있는 가야시대의 고성(古城)으로
자하골 좁고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산상직하(山上直下) 60도 경사의 사다리길을
오르면 넓은 분지에 펼쳐지는 성터로 이 성은 임진왜란 때 망우당 곽재우장군의
싸움으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 “화왕산 동고록”이 전해 온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火王山城 周一千百二十七步 內有泉九池三 又有軍倉 火王山古城
石築周五千九百八十三尺今廢中有泉九池三
위의 두 기록을 살펴보면 세종 때는 군창까지 있었던 성이었으니 당시 군사들도
주둔하여 사용되고 있는 성이었음을 알 수 있으나 조선 성종 조에는 폐성이 된 것이다.
임진란 때는 이 성을 수축하여 곽재우 장군이 수성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선조 29년
(1596년)에 창녕의병장이었던 성천희(成天禧)의 장계로 성을 수축하게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화왕산성 성곽에서 바라본 도성암(道成庵) 계곡의 모습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에 있는 도성암은 화왕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신라의 고승 지월선사가 현덕왕 2년(810)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것은 아니며 그 후의 연혁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 없고,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전소되어 터만 남아 있다가, 화왕산 자하골의 한 암자가
풍수지리가 나쁜 곳에 자리한 탓에 산 아래 주민들에게 각종 재난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여 이를 막기 위해 재건립되었다 한다.
종각을 겸하고 있는 보제루 누각 아래의 계단을 지나면 경내 중앙에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 오른쪽에 칠성각으로 쓰였던 요사채, 그 옆 축대 위에 삼성각이 있다.
도성암은 아미타부처님의 위신력에 기대어 창녕의 주산이자 절경으로 잘 알려진
화왕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어 현묘한 자성을 찾는 염불기도 영험도량으로 거듭나고
있으며 대웅전에 있는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창녕은 낙동강 중류에 넓게 펼쳐진 곡창지대의 중심지이며 서부 경남 지방에
대한 교통·군사상의 요충지로 화왕산성이 당시 매우 중요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현재는 동문·서문·연못이 남아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창녕을
보호하는 진산으로 기록된 사실과 영산·현풍을 포용하는 성이라는 점에서
군사적인 의미가 매우 큰 요충지였다고 한다

휴식(10:52~11:00)
성곽위를 호젓하게 걷는데 계곡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마침 성곽 아래에서 중년여인 둘이서 대낮부터 막걸리통을 들고
주거니 받거니 한잔을 하고 있기에, 나 역시 바람도 피할겸 이곳에서
초코파이와 두유 하나로 점심을 대신하며 잠시동안 휴식을 취한다

휴식을 취한 다음에 성곽 아래로 내려와서 다시 길을 나서는데
갈림길이 나온다...우측으로 이어지는 성곽을 버리고(?), 억새밭
가운데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서 배바위 방향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갈림길1(11:01)

억새 / 이재환
언덕배기에서
머리 곱게 빗고
누굴 기다리나
예쁘게 단장하고
찬바람에 흔들려도
꼿꼿하게 서 있네
외롭고 서러웠는지
은빛 손짓하며
나를 부르네!

갈림길2(11:07)
우측으로는 배바위로 오르지 않고 비들재로 향하는
샛길이 나오지만 맥길은 배바위 방향으로 향한다

천천히 나무 계단으로 올라가니...

배바위 앞에 동문과 서문으로 갈라지는 이정표가 나온다

배바위 동쪽으로는 지난주에 걸었던 구룡산과 관룡산이
까칠하게 보이고, 바로 아래의 골짜기는 아침에 올라왔던
옥천계곡이다...이곳 산들도 서서히 단풍으로 물들고 있다

배바위(756.8m:11:12)
이곳 배바위는 족보있는 바위로 지도상에는 756.8m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배바위 설화 안내판

배바위를 지나자마자 곰바위가 나오는구나

곰바위(11:13)

곰바위 안내판

곰바위에서 내려서니 오늘 내가 걸어야 할 암릉구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맨 뒷쪽에 뾰족하게 생긴
구현산이 상당히 까칠한 모습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갈림길3(11:14)

갈림길에 서 있는 화왕산스토리길 안내판을
지나니 화왕산소방무선 중계소가 산꾼을 반긴다

화왕산소방무선 중계소(11:15)

화왕산소방무선 중계소를 지나면서 화왕산 아래에
펼쳐지는 억새밭이 끝나고 본격적인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안부(11:17)

암봉인 너럭바위 윗쪽으로 올라간다

너럭바위로 오르면서 조금전에 내가 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
억새밭 뒷쪽에 솟은 봉우리가 749.6m봉이고, 좌측끝이 화왕산.
앞에 멋있는 봉우리가 배바위와 곰바위... 화왕산소방무선 중계소는
손에 잡힐듯 가깝게만 보이는구나

너럭바위에 올라섰다 내려서니 암봉 전망대가 나온다

암봉 전망대(11:20)

秋風辭(추풍사) / 漢武帝(한무제)
秋風起兮白雲飛(추풍기혜백운비)
가을바람 일어나니 흰 구름 날고
草木黃落兮鷹南歸(초목황락혜응남귀)
초목에 낙엽 지니 기러기 남으로 돌아가네.
蘭有秀兮菊有芳(란유수혜국유방)
난초는 빼어남이 있고, 국화는 향기롭다.
.
.
.
(중략中略)
.
.
.
簫鼓鳴兮發棹歌(소고명혜발도가)
퉁소 북 울리니 뱃노래를 불러본다
歡樂極兮哀情多(환락극혜애정다)
즐거움이 다하니 슬픈 정도 깊어지네
少壯幾時兮奈老何(소장기시혜내로하)
내 젊은 날이 어느 땐가, 속절없이 늙어감을 어이하리
* 한무제(漢武帝)의 성명은 유철(劉徹) 시호는 세종(世宗), 효무황제(孝武皇帝:기원전156~87)
전한의 제7대 황제(재위 기원전 141년 ~기원전 87년) 아명은 체(彘), 자는 통(通)이다.
경제(景帝)의 11번째 아들이며 효경왕후 왕씨(孝景皇后 王氏)의 소생이다.
그는 유학(儒學)을 바탕으로 국가를 다스렸으며, 해외 원정을 통해 흉노를 크게 무찌르고 남월,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설치했으며, 한족 역사상 두 번째로 넓은 영토를 확보해
전한의 전성기를 열었던 황제로 진 시황제, 당 태종, 영락제, 강희제와 더불어 중국의 가장
위대한 황제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장군바위(11:21)
지도상에는 장군바위의 지명은 없으나 창녕군에서 설치한 화왕산
스토리길 안내판과 구조 이정목에는 장군바위로 표기가 되어있다.
우측 아랫쪽으로는 도성암에서 올라오는 등로가 있으며, 이 등로가
화왕산의 주 등로인지 올라오는 등산객도 많고, 휴식을 취하는 등산객도 많다

장군바위의 구조이정표시목

우측 아랫쪽은 도성암으로 향하는 길이고 맥길은 이곳에서 남쪽으로
향하는데,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도성암에서 올라오는지 이곳은
등산객들이 북적거리고, 난 맥길을 따라서 남쪽으로 향하는데
이곳을 지나면서부터는 산에서 사람을 한명도 보지 못했다.

본격적인 암릉구간이 시작되고 간간히 만나는 멋진 기암들이 많다

위험한 암릉길에는 중간중간 우회길을 만들어놔서
편하게 맥길을 이어가는데, 창녕군의 산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그저 고맙기만 하다

조금전에 지나온 장군바위의 모습

우회길을 따라서 통나무 계단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1:25)

잠시후에 오를 구현산(鳩峴山:579.0m)이
까칠한 모습으로 범여를 겁박하기 시작한다

일반 등산객이 전혀없는 호젓한 길...너무 좋다

영주 부석사에 있는 浮石만큼이나 멋진 奇巖을
만나는데 참으로 조물주의 손재주는 알아줄만 하다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의 흔적도 홀로걷는
산꾼에겐 그저 고맙고 반갑기만 하다

암봉(11:29)

또다시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안부(11:31)

암릉 사이로 이어지는 계속되는 오르내림...바짝 긴장하면서 걷는다

암봉(11:37)

도성암 계곡 너머로 창녕읍내의 흐릿한 모습
날씨는 참 좋은데 올 가을에 계속내린 비의
영향 탓인지 視界는 그리 좋지 못하다

749.6m봉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안전로프가
잘 설치되어 있어서 편하게 올라간다

암릉구간을 통과하니 편한 길이 나오고 749.6m봉 정상에 도착한다

749.6m봉(11:45)
749.6m봉을 지나자마자 맥길은 급한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이정표가 있는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11:46)

추억으로 저장해 두기에 당신은
너무 많이 가슴에 머물러 있는 사람
휴대전화에 저장된 이름 지우면
다시는 기억되지 않을 줄 알았다
사랑이라는 말이 소멸되지 않는 한
그리움은 영원히 존재하기에
지워버린 숫자가 가슴을 돌아다녔다
절대 잊힐 사람 아닌 거 알면서
절대 놓지 못할 인연인 거 알면서
가끔 멀리 있는 당신을 견디지 못하고
속이 좁아 이별을 이야기했다
사철 바뀌는 풍경 안에
영원이라는 말로 채워진 당신
또다시 그리움 들창 하나 생겨나
하염없이 열어 놓고
휴대전화에 당신을 적는다
당신 곁에 오래도록 사랑하며 있겠노라고
시인 김설하님의 놓지 못할 인연...

암릉사이로 이어지는 迷路를 걷다보니 지도상의 구현이 나온다

구현고개(具顯:11:53)
창녕군 창녕읍 말흘리와 옥천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좌측의
옥천리 방향으로는 전혀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으며, 우측의
말흘리 방향으로도 심곡사로 갈 수 있다는 이정표가 있으나
등로는 뚜렸하지 않다.
창녕읍 말흘리의 '구현(具顯)' 유래는 화왕산 끝자락에 위치한 지형적 특성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끝 말(末)'과 '솟을 현(顯)'을 합쳐 '말흘리(末屹里)'라 불리게
된데서 유래하며, 지형이 험하고 돌이 많고 물이 급한 곳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실제로 화왕산 계곡은 경사가 심하고, 비가 오면 계곡물이 급격히 불어나는 특징이
있으며, 말흘리는 신라·고려 초기에 화왕군 또는 창녕군 현청이 있었던 곳으로,
역사적 유적도 남아 있는 마을이다

구현고개에서 다시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막으로 향한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송이재배지역이라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 플랑카드가 걸려있어 조금은 조심스럽다...너무
걱정하지 마소...당신네들의 생계와 관련있는 송이를
무단으로 채취할 그런 몰상식한 산꾼은 아니니까...

암봉(12:01)

다시 편안한 길이 나오고...

서남쪽으로 멋진 암릉이 보이는데 저곳은 지맥 능선이
아니고 재련폭포가 있는 재련골로 향하는 능선이다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능선으로 올라가니 722.9m봉 정상이다

722.9m봉(12:06)

722.9m봉 정상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휘어진다

재련골(紫蓮谷) 갈림길(12:08)
화왕산의 남쪽 비들재 서펀 계곡인데 상퇴천 마을의 동편의 골짜기로 이 골짜기
중턱에 예전에 자련사(紫蓮寺)라는 절이 있었으므로 자련골이라 불리었는데
자련골이 재련골로 와전되었으며 현재의 자련사는 약 15년 전에 중건한 것이다.
골짜기는 두 갈래로 상퇴천에서 북쪽 골짜기로 오르면 자련사 터와 신당동
공동묘지(共同墓地)에 이르고 고개를 넘으면 옥천리 불당골로 넘어가며
남쪽 골짜기에는 재련폭포가 있어 여름이면 목욕하기에 좋은 곳으로 이름나 있다.
재련폭포(紫蓮瀑布)는 재련골 남쪽 골짜기에 있는 폭포로 읍내 인근에 있으므로
여름에 많은 사람들이 피서하러 놀러오는 곳으로 폭포의 높이는 7m라고 한다.

지맥길은 남쪽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로 향한다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들의 흔적

등로는 아주 유순하고 편한 내리막길이라
오랫만에 범여의 몸뚱아리가 호강하는 느낌이다

안부(12:13)

편하게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가야제...

뒤돌아보니 722.9m봉 정상에서 재련골로 향하는 뚜렸한 능선이 보인다

685.2m봉 정상에 도착하고 동쪽으로는 아침에 지나온
옥천매표소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보이고 선답자들의
시그널과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있다

685.2m봉(12:20)

685.2m봉에 있는 멋진 奇巖...산이 아니면 저 풍광을
누릴수가 있겠나 하는 생각에 남들이야 죽기 살기로
한,두번에 끝낼수 있는 지맥길을 나는 홀로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山川景槪를 즐기면서 걷는다.
햬민스님께서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적었지.
‘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 ’ 고...

남쪽으로 살짝 꺽어져 나무계단으로 내려가니
소나무가 점령하고 있는 폐헬기장이 나온다

폐헬기장(12:24)

화왕산을 지나면서 계속 불어대던 바람은 잦아졌고 정오를
지나면서부터 산자락을 내리쬐는 햇볕은 따사롭기만 하다

무명봉(12:29)

지맥길치고는 완전히 고속도로같은 느낌이다.

무명봉(12:34)

소나무...등로 가운데 자리잡은 죄로(?) 사람들에게 이리 밟히고
저리 밟히면서 참으로 기구하게 사는 모습이 안쓰럽구나

암봉(12:39)

비들재로 향하는 계속되는 내리막길

무명봉(12:41)

고사목으로 만든 썩어 문드러진 소나무 의자와
화왕산스토리길 안내판과 구조이정목이 있는 쉼터에
도착한다

쉼터(12:43)

쉼터를 지나니 암릉이 나오고 조심스레 내리막으로
향하는데 잠시후에 이정표와 구조이정목이 같이있는
퇴천저수지 갈림길에 도착한다

퇴천저수지 갈림길(12:45)
퇴천저수지는 창녕군 창녕읍 퇴천리 창녕공설운동장 근처에 있는 저수지이며,
퇴천리의 유래는 마을 앞을 흐르는 내(하천)의 이름이 ‘퇴끼내’에서 유래했으며,
한자로 ‘토끼 토(兎)’, ‘내 천(川)’을 써서 ‘퇴천리’가 되었다고 하며, 실제로 현지에서는
‘토끼’를 ‘퇴’로 발음하는 속음이 굳어져, 한자 표기와 달리 ‘토천리’로도 불리지만
공식적으로는 ‘퇴천리’라 불린다고 한다

비들재가 가까워진 모양이다...간간히 차량소리가 들린다

무명봉(12:47)

숲속을 벗어나...

비들재로 내려선다

비들재에 있는 등산안내도

비들재(鳩峴:385m:12:55~13:02)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와 퇴천리 경계에 있는 九折羊腸으로
이어지는 고개로 화왕산의 남쪽의 긴 산줄기를 비들재라 부르며,
고개 정상에는 이정표와 등산안내도, 쉴수있는 정자도 있다
산의 형상이 비둘기가 날개를 펴고 있는 형상이라 비둘기재라
한 것이 줄여서 비들재가 되었다고 하며 한자어로 '구현(鳩峴)'이라고
표기하고 사용한다... 전언에는 형상이 닭 볏처럼
쭈뼛쭈뼛하게 생긴 산의 고개라는 것에서 '벼슬→비슬→비들'로 변하여
'비들재'라고도 하는데,
'볏'을 지역 방언으로는 벼슬 혹은 비슬이라 한 것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비들재 쉼터라는 정자에서 잠깐 쉬면서 빵과
두유로 배를 채운 뒤에 옥천리 방향으로 내려간다

도로에서 水路를 건너 등로로 올라간다

구현산으로 향하는 길...생각보다 등로는 뚜렸하다

안부능선(13:05)

구현산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암릉구간을 빡세게 올랐다가 안부로 살짝
내려서면서 몸을 추스리며 긴 한숨을 내쉰다

안부(13:22)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고...

암릉구간을 치고 오르니 송이밭이라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 플랑카드가 있는
무명봉에 도착한다

무명봉(13:30)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나뭇가지 사이로 구현산이 얼굴을 내민다

안부(13:32)

안부에서 구현산으로 오르는 직진구간은 직벽에 가까운
암릉구간이라 등로도 없고 오를수도 없는지 좌측으로
뚜렸한 우회길이 보이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모두
그쪽으로 향하고 있다

사면으로 향한 다음에...

직벽으로 이어지는 암릉구간을 조심스레 오른다

구현산을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보니 우측으로 보이는
암릉 능선이 지난주에 걸었던 구룡산에서 관룡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고, 바로 앞에 능선은 내가 조금전에
지나온 722.9m봉 정상에서 재련폭포로 이어지는
능선이며, 이곳에서는 화왕산은 보이지가 않는구나

구현산이 가까워진 모양이다...등로가 조금 온순해지기 시작한다

마지막에 완만한 암릉을 통과하니 커다란 소나무에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있고, 이곳의 좌측에도 송이밭이 있는지 출입금지를 표하는
비닐띠지가 처져있으며, 조망은 거의 없으나 멋진 정상석이 산꾼을
반긴다.

구현산(鳩峴山:579.0m:13:42)
창녕군 창녕읍 퇴천리와 여초리, 옥천리 경계에 있는 화왕산 남쪽에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산의 형상이 비둘기와 같다 하여 ‘비둘기
구(鳩)’ 자를 써 ‘구현산(鳩峴山)’이라 불리게 된데서 비롯됐는데
비들산이라고도 부르며, 또는 산이 삐죽삐죽 여러 봉우리가 솟아올라
마치 닭의 벼슬처럼 생겼으므로 '벼슬-비슬-비들'로 변했다고 한다.
구현산 지명의 유래는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옛 기록이나
일제시기 자료에서도 그 지명을 확인할 수 없다.

구현산 정상에서 잠깐 머물다가 서쪽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3:50)
구현산에서 안부까지 뚝 떨어졌다가 다시
석대산으로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다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에서 선답자의 시그널과 함께
대한산경표의 저자인 산으로 아우님의 반가운 흔적을 만난다.
다들 우째 잘사는지 모르겠다.

갈림봉(14:00)
빡세게 올라서니 갈림봉에 도착하고 우측으로 꺽어져
석대산으로 향하는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4:04)

또 다시 암봉사이로 이어지는 빡센 오르막길

550m봉(14:10)

족보에도 없는 무명봉인 550m봉에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잠시지만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바람에 춤을추는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14:12)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는 암릉 사이를 곡예하듯 올라간다

조금전에 지나온 무명봉을 바라보면서 석대산 정상으로 향한다

석대산(566.0m:14:17)
창녕군 창녕읍 여초리와 계성면 사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은 암릉으로 되어 있으며, 준.희쌤의 산패와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국립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석대산이란 지명은 보이지 않고, 그냥 566.0m봉으로만 표기되어 있다.
석대산이란 지명은 창녕군의 어느 자료에도 보이지 않으나, AI브리핑이란
자료를 보니 옛날 한 선비가 신선들이 바둑 두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전설은
창녕 지역 등산로 안내나 등산지도 등에서도 언급되며, 산의 이름과 관
련된 지역 설화 중 하나로 남아 있다고 한다.

석대산을 지나면서부터 북쪽은 창녕군 창녕읍 퇴천리에서
여초리로, 남쪽은 창녕읍 옥천리에서 계성면 사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알까요?
알 리가 없죠
관심이 가는 쪽은 늘 이쪽이고
당신은 내가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언제나
애태우며 사랑하는 건 이쪽이고
당신은 늘 행복한 웃음으로
타인들의 사랑을 받으니까요
알까요?
알 리가 없죠
당신 앞에 서고 싶은 건 이쪽이고
오직 당신의 사랑을 바라는
마음뿐일지라도
이 내 마음 알 리 없는 무심한
당신이니까요
알까요?
알 리가 없죠
옷깃 스쳐 지나가도 모르는 척하는
당신이니까요
사랑하는 이쪽의 마음을
알 리가 없죠...!
문향란님의 행복한 짝사랑 중에서

까칠한 암봉에서 내려서는 길.
기럭지가 짧은 숏다리 범여는 이곳에서 애를 먹는다.
지난주에 바위에 무릎을 부딪힌 트라우마 때문일까
한참을 버벅거리면서 조심스레 내려간다

늦은 오후의 따스한 햇살 탓일까, 아니면 소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솔향 탓일까...머리가 개운하다

암봉(14:24)

힘들게 암릉구간을 통과하니 다시 길은 좋아지고...

무명봉 정상에는 산꾼을 겁박하는 플랑카드가
있어서 괜한 오해를 받기 싫어서 봉우리를 패스하고...

우회길로 내려간다

안부(14:30)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가다가...

등로를 버리고 살짝 우측으로 올라가니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500.8m봉이 나오는데, 아무런
생각없이 걷다보면 그냥 지나치는 愚를 범할 수 있다

500.8m봉(14:35)

500.8m봉에서 다시 등로를 복귀하니 남쪽으로 등로가
열리고 지난 2월에 걸었던 영취산(靈鷲山)이 물끄러미
범여를 바라본다

이제부터 고도는 점점 낮아지고
암릉구간도 현저히 줄어드는 느낌이다

안부(14:39)

암봉(14:43)

고수님!...반갑습니다...어찌 안 보인다 했습니다

안부(14:47)

예전에 묘지가 있었던 곳인가...축대가 보이는 곳으로 올라간다

가늘고 긴 소나무가 빽빽한 넓은 공터가 있는 461.7m봉에 도착한다

461.7m봉(14:51)

461.7m봉을 지나면서 화왕산 장군바위에서
시작된 암릉구간이 완전히 끝나고 陸山이 시작된다

철없는 넘...

묵묘(15:00)

안부(15:03)

332.6m봉(15:05)

332.6m봉을 지나니 돌탑이 나오고
급격하게 고도를 낮추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재선충으로 인한 소나무 무덤들이 많이 보이고...

뫳돼지 쉬키들의 식흔을 보면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온다

서흥김공&유인 밀성박씨 묘(15:20)

서흥김공 부부묘지를 지나 서쪽으로 트랙상의 맥길이나
그 길은 갈수가 없다...가봤자 5번국도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어서 고속도로를 무단횡단 할 수도 없고, 고속도로
윗쪽으로는 동원힐마루C.C라는 골프장이 길을 막는다.
그 다음으로는 감나무농장들이 많아서 도저히 갈 수가 없는 곳이다

직진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포기하고 우측에 보이는 묘지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와 5번 국도가 관통하고 있는 창녕군 창녕읍
여초리마을로 내려간다

묘지에서 바라본 갈 수없는 맥길의 모습
공장지대 뒷쪽으로 보이는 저 능선이 지맥길이고
저 봉우리 아래에 동원힐마루C.C라는 골프장이 있다

한참을 우회하여 여초리 마을로 내려간다

5번 국도가 지나가는 지하차도가 보이는데 이곳을 남통고개라고
하면, 좌측은 창녕군 장마면 초곡리이고 우측은 창녕읍 여초리다

도로에서 바라본 창녕군 창녕읍 여초리(余草里)의 모습
창녕군 장마면 초곡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로 5번국도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마을을 관통하고 있으며, 지명의 유래는 풀이 많아서
여초(余草)라고 하였으며, 현재 남통(南通)의 옛 지명인 여통의 ‘여(余)’ 자와
초막골의 ‘초(草)’ 자를 합하여 여초리라 부르며, 자연마을로는 여초마을의
본마을인 남통, 새동네, 지경골, 초막골이 있다.
‘남쪽으로 통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남통마을은 현재 여초마을로 불리고 있으며,
새동네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새로 생긴 마을이라 불리우는
동네로 중부내륙고속도로와 5번국도 사이에 있으며 경주이씨 집성촌이다.
초막골은 농사짓는 초막(농막)이 있어서 유래된 지명으로 창녕성씨의 세거지로
국립농산물품질관리 창녕사무소가 있고 읍내와 가까워 전원주택들이 많은
마을이며, 지경골(地境谷)은 예전에 창녕현과 영산현의 경계에 있었다고 해서
땅의 경계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마을 지명이다

여초리 맞은편에 있는 창녕군 장마면 초곡리에는 공장들이 많이 보이고
맥길에서 한참 벗어난 채로 도로를 따라서 제이드골프클럽 방향으로 향한다
창녕군 장마면에 속해있는 초곡리(草谷里)는 창녕읍과 계성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긴 골짜기 형태의 마을로 산과 산 사이의
마을이라는 의미로 새실(間室)이라 불리웠으며, 또한 마을 뒷산이
산돼지 형상이라 돼지의 고어(古語)인 톳을 사용하여 톳골이라고
불렀으며, 자연마을로는 새실, 분두골, 왕거름, 섭땀 등이 있다.
새실은 초곡리의 본마을로 400여년부터 김녕김씨의 세거지였으며,
지금은 파평윤씨와 김해김씨 등이 많이 살고있다.
분두골은 초곡리의 제일 윗쪽에 자리잡은 동쪽 끝마을로 톳골에서
나누어졌다하여 분(分)톳골, 분두골로 부르는 마을이며, 왕거름(王居里)은
산봉우리가 왕거미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며, 섭땀(下村)은
초곡마을 아랫쪽에 있다고 해서 부르는 지명이며, 서쪽땀이라 부르기도 한다

남통고개(南通峴:15:35)
창녕군 창녕읍 여초리와 장마면 초곡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5번 국도가 통과하는 암거가 있는 곳을 남통고개라 부르는데,
남쪽으로 통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남통마을은 현재 여초마을의
옛지명이 남통인데 여초마을에 있는 고개라 불리우는 지명이다

남통고개라 불리는 5분 국도 암거를 통과하니 초곡소류지가
나오고 그 뒷쪽으로 이어지는 오르지 못하는 마루금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암거(15:37)

중부내륙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여...

도로명 주소가 초곡길인 2차선 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창생농장 입구(15:42)

좌측으로 감나무 농장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상의
족보있는 94.2m봉은 눈팅이로 패스를 하고
도로를 따라서 무작정 걸어간다

마루금을 점령하고 있는 단감나무 농장

한토N&B공장을 지나면서...

단감나무 농장에서 내려오는 마루금에 복귀를 한다

분두골 입구(15:50)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서 조금만 더가면 나오는
분두골은 초곡리의 제일 윗쪽에 자리잡은 동쪽 끝마을로
톳골에서 나누어졌다하여 분(分)톳골, 분두골로 부르는 마을이다.

오늘 일몰시간이 17시 30분이라 1시간 30분정도 산행을
더해도, 아침에 서울가는 표를 예매해놨기 때문에 충분하나
갑자기 산행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산행을 종료하면서 바라본 쌍교산의 모습
창녕군 창녕읍 퇴천리와 여초리의 경계에 있는 쌍교산(雙轎山:469.5m)은
여초리 초막골 동남쪽, 화왕산의 남쪽 산줄기로 구현산의 서남쪽에 소재한다.
쌍거덤·쌩기덤이라고도 하는데, 쌍가마[雙轎]의 변화라고 하며, 지명은 옛날
천지개벽 때 온 세상이 물에 잠기고 산꼭대기의 바위만 남았는데, 그 모양이
마치 쌍가마 같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고 하며, 이 바위는 산 아래에서도 훤히
보이며, 그 맞은편 산을 '구시덤'이라고 부른다고 하며 날씨가 가물 때 이곳에
올라가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다음 구간에 지나가야할 제이드골프 클럽이라는 인도어골프장
뒷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바라보면서 아침에 이용했던 택시를
호출하니 10분만에 택시가 도착하고 택시를 타고 터미널이 아닌
목욕탕으로 가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터미널 근처로
와서 중국집에 들려서 짬뽕으로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 터미널로 향한다

창녕터미널(17:40)

창녕발 → 서울남부행 버스표

창녕터미널 버스 시간표

18시 30분에 창녕을 출발한 버스는 고속도로가 아닌 5번 국도를
따라서 현풍터미널로 향하는데 승객의 80%는 현풍에서 탑승
하는듯 하다...현풍을 출발하면서 서울가는 버스에서 깊은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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