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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계성(화왕)지맥(終)

개성(화왕)지맥 제3구간 - 가림고개에서 송진나루터까지

by 범여(梵如) 2025. 12. 26.

계성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송진나루

 

☞ 산행일시: 2025년 12월 21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날씨에 차가운 바람(올해 산행중 가장 추움)...오후에 맑음

☞ 산행거리: 도상거리 20.1km / 6시간 5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두곡버스 정류장 -가림고개- 효자비- 63.2m봉- 창녕조공& 유인 창녕성씨묘

                    무명봉- 안부- 126.1m봉- 유인김해김씨 묘- 안부- 무명봉- 영산신공 묘

                    안부- 137.6m봉- 안부- 무명봉- 창녕성공 묘- 안부- 무명봉- 136.3m봉

                    성사고개- 무명봉- 안부- 211.9m봉- 안부- 우실등- 안부- 164.2m봉

                    무명봉- 안부- 175m봉- 167.5m봉- 영아지 쉼터 갈림길- 영아지 고개

                    마분산 갈림길- 묘지- 전망대- 임도삼거리- 돌탑봉- 무명봉- 안개실고개

                   안부- 무명봉- 도초산- 무명봉- 안부- 무명봉- 남지공동산- 떡고개

                   파평윤공 묘- 당포리갈림길- 무명봉- 안부- 방추산- 갈림길- 안부

                  아랫골갈림길- 무명봉- 기민개 만댕- 묘지- 안부-무명봉- 갈림길- 박진로

                   남지교- 벽진판넬- 기영레미콘- 동포배수문- 남송1교- 남송교

                  낙동강파크골프장- 다리- 송진쇠나루- 송진마을-송진나루(합수점)

☞ 소 재 지: 경남 창녕군 장마면, 남지읍, 도천면

 

칼을 뽑았으면 호박이라도 쑤셔야지 하는 속담이 있다.

올 겨울에도 지난 겨울처럼 산은 낮지만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한 호남지역의

지맥길을 하나라도 줄여 볼려고 발버등을 쳐보지만 날씨가 따라주지 않으니 

우짜겠노... 하는 수 없이 지난주에 2구간을 끝낸 계성(신산경표상:화왕)지맥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간단하게 베낭을 챙겨서 이른 새벽에 서울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 구간의 지도

서울역발 → 동대구행 열차표

오늘 새벽 첫 버스는 큰 지체없이 서울역에 도착하니 04:55분.

매표창구에서 미리 예매한 열차표를 받아서 열차를 타러가는데 

강하게 불어대는 겨울바람이 차갑다...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올 겨울 들어서 가장 추운듯하고, 열차에 오르자마자 늘 습관처럼

깊은 잠에 빠진다.

동대구역(07:05)

동대구역을 빠져 나와서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서울에서는 나이 먹었다고해서 공짜 지하철를 타고 다니는데

대구에서는 지공거사 카드가 통용이 안되는지 얄짤없이

돈을 내야 하는가...신용카드로 서부주차장으로 향한다

서부버스 정류장(07:35)

버스정류장 내에있는 분식점에서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김밥한줄에

오뎅 2꼬치로 아침을 해결하고 해우소에 들려 비우는 즐거움을

만끽하고는 버스 플렛홈으로 향한다

대구서부발 → 남지행 버스표

오늘은 창녕이 아닌 남지로 가는 버스표를 끊는다.

그래봤자 창녕을 거쳐서 가기는 하지만 대구에서 출발한 버스는

창녕터미널에 들려서 10분 이상을 정차한 다음에 남지로 향한다

 

남지에 도착하여 저녁 막차인 18시 50분 버스를 예매하하는데

지난주에 창녕터미널에서 남지에서 서울가는 버스표를 왜 예매를

못하는지 의구심이 풀렸다...같은 회사의 버스이고, 출발지가 부산

사상터미널이라는 건 같지만, 남지를 경유하는 버스는 창녕을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고속도로로 올라서지만, 창녕을 경유하는 버스는 현풍을

거쳐서 고속도로에 들어서고 출발시간도, 남지에서 가는 버스는 18:50분이고

창녕에서 가는 버스는 창녕에서 18시 30분이 막차이다

 

터미널 밖을 나와서 택시를 타고 두곡마을로 향한다

남지버스터미널(09:15)

남지에서 택시를 타고 1022번 지방도로를 타고 두곡마을로 가는데

이 길은 남지에서 내 고향인 의령군 신반으로 가는 길이라 그리

낯설지는 않다... 1022번 지방도로로 가다가 고곡리 삼거리에서

신반으로 가는 1008번 지방도(도로명 주소:박진로)는 좌측으로

향하고 우측인 장마면 대봉면으로 향하다가 고갯마루에 있는

두곡버스장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한다.

버스정류장에서 바라본 창녕군 남지읍 고곡리 두곡(頭谷)마을의 모습

창녕군 남지읍 고곡리에 속해있는 두곡마을은 장마면 대봉리와 경계를

이루는 마을로 창녕현의 초입이라하여 머리실이라 불리는 마을로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부르게된 것이 두곡(頭谷)으로 바뀌었다고 하며, 『 호구총서 』

에도 두곡현이라 등장하니 오래된 지명인 듯 하다.

 

1640년대에 입향한 진양(진주)하씨의 세거지로, 두곡마을이 속해있는

고곡리(鼓谷里)는 본래 창녕현의 땅으로 남곡면 고곡촌과 두곡촌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1914년 고곡촌과 두곡촌이 합해 지면서 인근

자연마을과 함께 고곡리가 되었다.

 

고곡산성과 구진산성, 임진왜란 때 의병의 훈련소라 기록되어 있는 월송정 등

전적지가 있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며, 옛 남곡면 관할의 민원업무 처리를

위하여 남지읍 고곡 출장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행정리는 고곡과 두곡 2개로 나뉜다.

두곡버스 정류장(09:30)

버스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하는데 이른 아침부터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데 올 겨울에 산행을 하면서 느낀 가장 추운 날씨인 듯 하다

가림고개(75m)

경남 창녕군 장마면 대봉리와 창녕군 남지읍 고곡리를 잇는

1008번 지방도 2차선 도로가 지나며 우측에는 두곡버스정류장과

남지읍과 장마면의 경계 안내판과 반사경이 있다...가림고개 또는

가람고개라도 불리며 지명은 좌측의 대봉리에 있는 가림마을에서

따온 듯 하다

산행을 시작하다(09:40)

효자비(09:42)

녹슨 철대문 안쪽에 혀있는(?) 효자비각...

후손들의 손길이 닫지않는 듯한 느낌이라

많이 훼손되어 있어서 안타깝구나...

철대문 사이로 들여다보니 비각이 2개가 서 있는데 큰 비각에는

 "金孝子五昆弟紀跡碑" 라 적혀있고 작은 비각에는 이 분의 효행을

기록한 듯한 내용이 작은 글씨로 써여있는데, 마모가 되어 판독이

불가능하다.

효자비를 지나자 뚜렸한 등로의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서니 이동통신탑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63.2m봉에 도착한다

63.2m봉(09:45)

족보있는 봉우리라 당연히 있어야 할 준.희쌤의 산패는 보이지 않고

선답자들의 시그널 몇개만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우측 아래에는 창고같은 건물들이 보이고 남쪽으로 내려간다

63.2m봉에서 남쪽으로 향하는데 초반부터 땡자나무를

비롯한 잡목들의 강한 저항이 시작되니 오늘 산행이

그리 쉽지 않음을 예고한다

찔레나무를 뒤덮고 있는 칡넝쿨과 그 속에 숨어있는 두릅나무들의

엄청난 저항이 시작된다...칡넝쿨 사이로 빠지는 발목, 초반부터

시작되는 개고생...이또한 지나가야하는 과정이니라...

칡넝쿨 더미에서 바라본 창녕군 장마면 대봉면 윗가림마을의 모습

장마면에 속해있는 대봉리(大鳳里)는 1914년 대야리(大也里)와

어봉리(魚鳳里)가 합하여 대봉리가 되었으며, 서쪽으로 산을 등지고

동쪽으로는 계성천과 저습지와 들판을 앞둔 마을로 계성천을 건너

농사를 지으러 다니는 불편이 있으나 모두 대농가로 부자마을이 되었으며

6.25 한국전쟁 때 창녕군 내 최초의 격전지로 유명하다.

 

대봉마을의 앞산이 고기 형국이라 어봉(魚峰)이라 불렀으며, 영산신씨의

세거지이며, 예전에는 마을앞에 버들숲이 있어서 거림이라고 한 것이

마을의 지명이 되었으며, 윗가림과 아랫가림이라 불렀는데, 지금은 아랫

가림마을은 어봉이라 부르고 있다

창고같은 건물이 있는 좌측으로 오르는데 이곳 역시 만만찮다

좌측으로 우회하기 싫어서 칡넝쿨과 死鬪를 벌이면서

正攻法으로 능선을 치고 오르는데 초반부터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창녕조공& 유인 창녕성씨묘(09:58)

63.2m봉에서 100m정도 밖에 안되는 거리를 칡넝쿨의 강력한

태클에 직면하여 15여분이나 걸렸으니...여름철에는 이곳을

통과하려면 정말 개고생을 해야할 듯 싶다...이곳에서 숨한번

크게쉬고 선 채로 잠깐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묘지 뒷쪽으로

올라간다.

묘지 뒷쪽으로 이어지는 빡센 오르막길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미끄러운 낙엽과의

전면전(?)을 치르면서 능선으로 올라선다

무명봉(10:02)

무명봉에서 살짝 동남쪽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 가는데,

조금전 가림고개에서 올라오면서 개고생한 걸 보상받는 느낌이다

행여 후답자가 알바를 할까봐서 길목을 지키고 있구나...

늘 고맙습니다...세세생생 복받을깁니다

안부(10:06)

안부에 있는 뫳선생 사우나...혹 안전 사고가 났나?

접근금지 테이프가 쳐져 있구나

삭막한 겨울산길...차가운 바람에 맞서기 보다는

순응을 하면서 홀로 걷는 이 길은 산을 즐기기보다는

나에게는 살아야겠다는 처절함이 베어있는 산이랄까,

걷고 또 걷다가 보면 언제가는 끝이 보이겠제...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족보있는 126.1m봉이 나온다

126.1m봉(10:10)

다시 이어지는 잿빛 겨울산의 모습

아무도 찾지않은 이 능선의 겨울산길...베낭속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만 산꾼 범여와 동행을 하며 걷다보니

이발도 하지않은 묘지가 산꾼을 반기는구나...

유인김해김씨 묘(10:13)

안부(10:14)

무명봉(10:16)

반갑구먼...

잿빛 겨울산에 으름나무 이파리는 푸르름을

자랑하며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듯한 느낌이다

등로 좌측 아랫쪽으로는 낙엽을 이불삼아 깊은잠에 빠져있는

망자의 보금자리 아래 나뭇가지 사이로는 어봉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아랫가림마을과  대야마을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영산신공 묘(10:23)

안부(10:25)

137.6m봉(10:28)

항상 자신만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마음은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우리가 어떤 눈으로 보고
어떤 마음으로 믿느냐에 따라
인연도 되고, 악연도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도 세상은 흐르고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진심 하나 지키며 걸어가면 될뿐이다.

안부(10:31)

산행을 시작한 지 꽤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강하게

불어대는 바람은 그칠 기미가 없고, 잔뜩 흐린 날씨이긴

하지만 오랜 산행경험상 눈.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

손이 상당히 시립다

무명봉(10:37)

밋밋한 무명봉에서 완만하게 내려서니 낙엽에

묻혀버린 창녕성공 묘지가 나온다...묘비명을

보니 예전에 통덕랑(通德郎) 벼슬을 지내신 분이다  

창녕성공(昌寧成公)묘(10:40)

 

* 통덕랑(通德郎)은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가 제정될 때

  정5품 상계는 통덕랑, 하계는 통선랑으로 정하여져『경국대전』에 그대로 법제화되었다.

 

 정5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는 검상(檢詳)·정랑·지평(持平)·사의(司議)·헌납(獻納)·

 시독관(侍讀官)·교리(校理)·직장(直長)·기주관(記注官)··찬의(贊儀)·별좌·문학·

 등이 있었으며 일반적으로 통덕랑 이하는 낭품계(郎品階)로서 사(士)라고도 불렀다.

통덕랑은 향리들의 한품(限品)으로서도 중요하다. 향리의 호장(戶長)들이 스스로

통덕랑이라 자처하였다는 것이나 토관계(土官階)의 한품이 정5품이었던 것도 이것과 관계가 있다.

안부(10:46)

무명봉(10:48)

무명봉을 내려서면서 갈림길이 나오는 곳에서

좌측으로는 등로가 뚜렸한 장마면 대봉리 대야마을로

향하고 우측으로 등로가 잘 보이지 않는 묘지쪽으로

맥길은 이어진다

우측으로 내려서니 좌측 아랫쪽애는 신설임도가 조성중이고

맥길과 신설임도가 나란히 평행선을 그리며 성사고개로 향한다

136.3m봉(10:52)

136.3m봉을 내려와서 작업중인 신설임도를 만나고...

50m정도 임도를 따르다가...

임도를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선다

숲속으로 들어서니 등로는 잘보이지 않고 이곳이

예전에 예비군 훈련장이었는지 땅속에 박힌

타이어들이 보인다

지금은 예비군 대신 뫳선생들이 체력 훈련에 열심인듯 하다

뫳선생 사우나에서 맥길은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차량소리들이 시끄럽게 들리고 아침에 지나온 성사고개로 내려선다

성사고개(成士峴:75m:11:02)

창녕군 남지읍 아지리와 성사리를 잇는1021번 도로가 지나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성사리의 옛 지명은 형사리라 하였는데 모래가 쌓여 이루어진

골짜기라 하여 모래골 즉 형사(型砂)라 하였던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모래골이라 불리게 된 것은 두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하나는 성사리의 동쪽에

계성천이 흐르고 그 들판 일대가 냇물에 떠내려 와 만들어진 모래밭이므로

그런 지명이 붙었을것이며 또 하나는 성사 본동 매전에서 장시늪으로 이어지는

골자기가 넓은 모래밭으로 된 곳이어서 모래골이라 불리었던 것으로 보인다.

 

형사(刑士)가 성사(成士)로 바뀐 것은 구한말로 흔히 경상도에서는 형(兄)이나

형님을 이나 성님 으로 발음하듯 형사가 발음하기 쉬운 성사로 발음됨에 따라

뜻도 좋은 성사(刑士)로 기사된 것으로 보이며, 砂가 士로 바뀌었으니 모래와

상관없이 그 뜻은 마을이라 하겠다.

지맥길을 방호막 휀스에 막혀 버렸다.

아지리 방향으로 넘어간 다음에...

감나무밭 농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농로로 올라간다

감나무밭으로 들어선 다음에...

마루금에 복귀를 한다

과수원에서 바라본 창녕군 남지읍 아지리(阿支里)의 모습

아지리(阿支里)는 남지읍의 남부 옛 도사면의 지역이 영산현 소속인데 비해

북부인 남곡면은 창녕현의 소속이었다... 따라서 아지리(阿支里)는 본래 창녕현

남곡면의 땅으로 조선 정조 때(1789년)의 기록으로 각 방·면의 인구와 호수를

기록한 책인 『호구총수』에 본남곡촌(本南谷村)과 아지촌(阿枝村)으로 나뉘어

기록되어 있다.

 

아지리는 지금의 창아지를 『호구총수』에서 아지촌이라 한 것에서 왔다.

산으로 앞이 가려있는 동리라 하여  아까리 라 부르던 것을 「아지」로

차자(借字)한 것인데 앞실 아까리가 서로 그 음이 비슷하므로 조선조 말에

본남곡촌과 아지촌이 합해지면서 아지리로 되었다.

 

아지는 앞실의 음훈차로 보는데 「앞」을 언덕 아(阿)로 썼고, 「실」은

골(谷)의 훈이니

이것이 산의 뜻으로 변하여 「支」를 사용, 고개[峴], 티(峙)의 차자로

쓰면서 높은 지대를 나타낸 「池, 旨, 遲」와 같은 뜻으로 쓰인 것이니

역시 앞마을이란 뜻은 변하지 않았다 할 것이다.

 

「阿」는 상징적인 의미로도 쓰였는데, 인체에는 대개 여자의 봉곳한

젖가슴이나 둔부, 음부의 도톰한 부위를 연상시키는 곳을 지칭하였으며

아지리의 북쪽에 있는 산이 옥녀봉으로 이 산이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

이라 하여 산이 둥글어 여자의 둥글고 부드러운 선을 가진 것에서

연유되었으니 마찬가지로 아지리의 「阿」도 다분히 옥녀봉과 연관된

지명이라 추정된다.

느릿느릿 황소걸음으로 과수원으로 올라와서

과수원을 버리고 좌측의 임도로 올라선다

과수원 끄트머리의 감나무 한그루에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농장 쥔이 까치에 대한 배려인 듯 하다...까치밥을 하나 슬쩍하여

먹어보려고 했는데 감이 너무 얼어서 이빨도 들어가지 않는다.

여기까지 오면서 날씨도 너무 춥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허기가 지긴 하지만 추위를 피할만한

마땅한 곳이 없어서 가는데까지 가보기로 한다

농장 맨쪽에 올라서서 오늘 내가 걸었던 길을 뒤돌아 본다

우측으로는 화왕산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북쪽으로는

비슬산의 능선들이 먼 거리에 있어서 그런지 흐릿하기만 한다

무명봉(11:20)

무명봉을 지나면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맥길은 좌측으로 향하는데 독도에 살짝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좌측으로 들어서니 등로는 흐릿하나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보이기에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묵묘인지, 폐헬기장인지 모를 넓은 공터도 만난다

안부(11:32)

안부에서 오르막을 치고 오를 즈음에 준.희쌤의 격려문구를 만난다.

늘 고맙습니다

까칠하게 능선을 오른 다음에 살짝 우측으로

향하니 족보있는 211.9m봉 정상에 도착한다

211.9m봉(11:35)

211.9m봉 정상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내려가고...

맞은편에는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인 우실등(220.8m)이 얼굴을 내민다

등로 주위에는 키 크고 가는 소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안부(11:39)

청석돌처럼 보이는 臥石지대를 통과한다

느즈막한 시간에 버스표도 끊어 놨겠다...아무런 걱정없이

느릿느릿한 황소걸음으로 걷다가보니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다는 우실등 정상에 도착한다

우실등(牛膝峰:220.8m:11:45)

창녕군 남지읍 신전리와 아지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준,희쌤의 산패와 선답자들의 시그널, 쉼터의자가 있는 넓은 공터로

된 봉우리로 산행지도에는 우실등으로 표기가 되어 있으나, 카카오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조차 없는 없는 봉우리고, 오룩스맵 지도상에는

220.8m봉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지명의 유래는 주변의 산세가 소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이곳이

소의 무릎에에 해당된다 고 하여 유래된 지명이란다

인증샷

이곳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려 했지만 낙동강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거의 강풍 수준이라 휴식을 포기하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길...몸속의

에너지를 축적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등로인 듯 하다

안부(11:52)

좌측의 밭으로 내려가는 사면길이 보이고 망가진

휀스를 따라서 완만한 오르막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휀스 끄트머리에서 사면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숲속으로 올라서니 족보있는 164.2m봉이 나온다

164.2m봉(11:54)

오늘 산행중에 이곳에서 유일하게 삼각점을 만난다

164.2m봉 정상 4등 삼각점(남지428/1988복구)

164.2m봉에서 잡목을 헤치고 내려와서...

등로로 내려서니 좌측으로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보이고

등로를 따라서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지는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12:01)

간간히 보이는 뫳선생 체력단련장

안부(12:04)

안부를 지나니 나무계단으로 맥길은 이어지고

천천히 오르다가 등로 옴팍한 곳이 나오고

바람을 피할수가 있어서 이곳에서 육포와

두유하나로 원기를 보충하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175m봉(12:13)

우측으로 내려서니 민초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듯한 돌탑을 만난다

소나무 숲을 지나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사면길을

버리고 직진의 지저분한 곳으로 올라서니 족보있는

167.5m봉 정상이 나온다

167.5m봉(12:18)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잡목의 저항이 엄청 심하다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묘지 아래로 조금전에 헤어진 등로를 만난다

영아지 쉼터 갈림길(12:20)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남도지방에서는

지천으로 깔려 있으나, 경상도 지방 산에서는 보기드문

마삭줄이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다

내리막길로 내려간다...등로 우측의 나무가지 사이로

낙동강이 살짝 보이는데 저 곳이 남지 개비리란 곳이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시멘트 도로가 보이고 부부인듯한

두분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산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난다

영아지 고개(靈阿支:135m:12:23)

창녕군 남지읍 신전리에 있는 고개로 우측으로는 영아지 쉼터로

향하는 낙동강 자전거 길이 이어지고 남측 아래로는 개비리골로

이어지는 창나루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고, 그쪽에서 산책객들이 보인다

 

영아지(靈阿支)란 신전리의 서부 지역으로 낙동강의 동안(東岸)

골짜기에 있는 마을의 행정리 명칭으로 이 마을을 영산 아까리라

불려왔는데 곧 영산현의 아까리란 뜻으로 영산현의「靈」을 붙여

영아지가 되었는데, 바로 북쪽 마을인 창녕 아까리, 창아지(昌阿支)와

구분하여 쓰인다.

 

동쪽인 신전 마을로 가자면 산을 넘어가야 하므로 왕래가 어렵고,

예전에는 남지장에 가려면 남쪽 개비리를 거쳐 용산으로 가든지

아니면 배를 타고 낙동강을 이용하여 다녔으며, 영산신씨 세거지였으나,

그 후 창원 황씨가 살기 시작하였으며 아호재(阿湖齋 : 창원황씨 제각)가 있다.

 

창나리는 창이 있던 나루라는 뜻으로 한자로는 창진(倉津)으로

창고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유래가 있는데, 낙동강을 중심으로 하여

강 건너 백제와 국경을 이루고 있었으므로 군사가 주둔하면서 군사용

큰 창고가 있었다는 설이 있는가하면

나라의 세곡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고 추정하기도 하는데 암튼 창고가 있는

나루라는 뜻에서 유래된 창나리 마을은 현재까지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양아지 고개에서 임도파와 맥길파로 나뉘는 지역으로 우측으로 가면

맥길이고 좌측으로 가면 낙동강 자전거 길인데, 트랙상에는 임도로

맥길이 그어져 있어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마음같아서는 우측 아랫쪽의 개비리길을 따라서 걷고 싶지만 워낙

저질 체력인데다 산행 末尾에 체력이 우찌될 지 몰라서 입맛만

다시고 다시 길을 떠난다

우측 아래로 개비리길에서 올라오는 등로가 보이고 트레킹족들의
시그널도 보인다...지맥길을 졸업하고 한번 와보고 싶은 곳이다

 

남지 개비리길의 유래

영아지마을에 사는 황씨 할아버지의 개 누렁이가 11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그 중에 한 마리가 유독 눈에 띄게 조그마한 조리쟁이(못나고 작아 볼품이

없다는 뜻의 지방 사투리)였다...본시 개의 젖이 10개밖에 되지 않아 조리쟁이는

젖먹이 경쟁에서 항상 밀렸고 황씨 할아버지는 이를 가엾게 여겨 새끼들이 크자 

10마리는 남지시장에 내다 팔았지만 조리쟁이는 집에 남겨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등(山) 너머 시집간 황씨 할아버지의 딸이 친정에 왔다 가면서

조리쟁이를 키우겠다며 시댁인 알개실로 데려갔다...며칠 후 황씨 할아버지의

딸은 깜짝 놀랐는데 친정의 누렁이가 조리쟁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것이 아닌겠는가? 

누렁이가 젖을 주려고 등을 넘어온 것이었다.

 

그런일이 있은 후 누렁이는 조리쟁이에게 하루 한번 젖을 먹이고 간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폭설이 내린 날에도 여전히 누렁이는 알게실 마을에 나타났고

마을 사람들은 누렁이가 어느 길로 왔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누렁이 뒤를 따라

갔는데 누렁이는 낙동강을 따라 있는 절벽면의 급경사로 눈이 쌓이지 못하고

강으로 떨어져 눈이 없는 곳을 따라 다녔던 것을 확인하였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높은 산고개를 넘는 수고로움을 피하고 개(누렁이)가 다닌

비리(절벽)로 다니게 되어 ‘개비리’라는 길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또 다른 유래로는 개는 곧 浦 로 물가, 강가를 말하며 비리는 벼랑의 이곳 사투리로

따라서 개비리는 강가에 있는 벼랑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편안한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가지만 맘은 그리 편치않다

낙동강 자전거 도로라는 시멘트 임도와 마루금이

평행선을 이루면서 맥길을 이어가고 있다

마분산(馬墳山:180m) 갈림길(12:32)

창녕군 남지읍 신전리와 용산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임진왜란 때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이라 불리웠던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1552~1617)의  말 무덤이 있는 산이라는 뜻이며 '말무덤산馬墳山:

마분산:180m )' 을 창진산이라고 부른 것은 창나루에 있는 산이라는데서 유래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져 내려온다.

 

곽재우 장군은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령과 창녕 일대의 낙동강변을 누비며

신출귀몰한 전법으로 백전백승의 전과를 올렸다...이곳 마분산에서 토성을 쌓았는데

마분토성은 규모는 작으나 정상에 공간을 두어 낙동강가에는 보이지 않게 설계하였다

 

곽재우 장군은 왜장 하시바가 강변에서 공격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전면전으로는

열세임을 직감하고, 자신의 말에 벌통을 매달아 적진으로 돌격하게 하여, 벌떼의

공격에 혼란한 틈을 타 적진을 공격하여 손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왜군에게 자신의 말이 사살되자 그 공을 치하하여 토성안에 말의 무덤을

만들어주고, 그리고 이 산을 창진산(倉津山)에서 마분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임도입구라는 이정표에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

묘지(12:40)

계속되는 임도와 맥길은 평행선을 이루고...

다시 임도로 내려서고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가면 족보있는

140.7m봉이 있으나 그냥 전망대가 있는 임도로 향한다

전망대 직전에 우측으로 등로가 트이면서 남지읍 용산리 창남마을이

보이고, 개비리길로 이어지는 너머로는 낙동강, 그 뒷쪽으로는 5년전에

걸었던 광려(신산경표상:화개)지맥의 끄트머리가 보이고, 우뚝솟은

용화산이 보인다.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에 소재한 용화산(龍華山:193.2m)은 남강(南江)과

낙동강(洛東江)이 북쪽 산기슭에서 합쳐져 굽이쳐 흘러가고 있으며 낙동강의

공격 사면에 해당하는 곳에 침식 작용에 의한 기암절벽(奇巖絕壁)이 형성되어 있어

경관이 수려하여 옛날 선비들이 수업(修業)하던 합강정(合江亭)과 반구정(伴鷗亭)이

위치하고 있다.

 남강은 남에서 동으로 흐르고 낙동강은 서에서 동으로 흘러 옛말에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에 서출동유수(西出東流水)하면 명당(名堂)이라’하는데 이곳이

그러하다고 하며, 옛날 7마리 용(龍)이 승천하였다고 하여 용화산이라 부른다고 하며

봉우리[谷]가 99봉(峯)을 이룬다고 한다.또는 우리나라에 미륵신앙이 크게 성행할 때,

전국에 미륵이나 용화와 관련된 지명이 많이 생겨났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이를 뒷받침하듯 일설에는 용화산에 '청송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전망대(12:45)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지 개비리길(국가명승 제31호)

비리 란 절벽이란 뜻으로 이곳의 명칭인 개비리개가 다니는

절벽 또는 강가 절벽에 난 길 이라는 두 가지 어원에서 유래하였다

창녕 남지 개비리는 대동여지도 등 여러 조선시대의 고지도에

남아있어 길의 존재와 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개비리의 남단이 상당부분 멸실되었으나 최근에는

탐방로로 정비하였으며, 벼랑길을 걸으며 조망되는 낙동강의

모습이 아름답고 조선의 옛길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2021년

12월 8일에 명승으로 지정된 길이다

개비리길 지도...펌

남지개비리길은 남지개비리길은 남지읍 용산 마을과 영아지 마을을 잇는 6.4㎞

트레킹 코스로,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을 발아래 두고 깊어가는 가을 정취에 흠뻑

취하기 좋은 곳으로 가을이면 은빛 억새 군락이 하늘대는 강변 풍광이 아름답고,

야생화와 단풍으로 치장한 숲이 호젓하게 길을 터준다.

 

남지개비리길은 용산마을 창나루 주차장에서 출발해 창나루 전망대~영아지쉼터~

영아지 전망대~야생화 쉼터~죽림 쉼터~옹달샘 쉼터~용산 양수장~용산 마을로

돌아오는 순환형 코스로 총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며, 가파르고 아찔한 절벽

위를 지나가는 좁은 길이지만 경사가 완만해 산책하듯 편하게 걸을 수 있다

낙동강 우측의 산능성이 너머로는 의령(신산경표상:우봉)지맥

합수점인 기강나루인데 산에 막혀버려 아쉽기만 하다

오늘 내가 걷고있는 계성지맥이라 부르는 신산경표상의 화왕지맥도

처음에는 우측의 마분산을 거쳐 창날로 향했다가 우열곡절 끝에

남지읍내쪽으로 경로가 바뀌었다고 한다...낙동강 너머로 보이는

내고향의 山河들이 산꾼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임도삼거리(12:48)

Y자로 이어지는 갈림길에서 임도를 버리고...

 숲속으로 오른다

돌탑봉(12:50)

돌탑봉을 지나면서 맥길은 살짝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우측에

족보있는 132.3m봉이 있지만 무시하고 맥길로 향한다

굴지구인 불천물연(掘至九仞 不泉勿悁)이라

 

황금이 소나기처럼 쏟아질지라도

사람의 욕망을 다 채울 수는 없다

욕망에는 짧은 쾌락에

많은 고통이 따른다

지혜로운 이는 그와 같이 알고

천상의 쾌락도 기뻐하지 않는다

 

바르게 깨달은 이의 제자는

욕망이 다 없어짐을 기뻐한다

 

법구경의 좋은글 중에서

완만한 오르막 능선이 나오지만 트랙상

맥길은 우측의 사면길로 이어지니

마치 양넘 지갑줏듯이 편안하게 걷는다

내리막 능선이  넓은 공터의 묵은

묘지는 소나무 조림지처럼 변해버렸다

무명봉(12:55)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로 이어지는 직진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낙엽이 푹신한 직진의 내리막길로

향하는데 등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구나

탱자나무 울타리를 벗어나 뚜렸한 등로가 이어지고...

옴팍파인 고개로 내려서는데 이곳이 지도상의 안개실 고개이다

안개실고개(85m:13:00)

사진을 찍으면서 포커스를 잘못 맞췄는지 아니면

급하게 셔터를 누른 탓일까...반바지님의 표식이

제대로 잡히지 안했구나.

 

창녕군 남지읍 용산리 안개실 마을에서 신전리 신전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좌측으로는 뚜렸한 임도가 보이는데

신전천으로 이어지는 도로인 듯 하고 지명은 안개실 마을에서

차용한 듯 하다

 

용산리에 속해있는 안개실은 용산리 서쪽 골짜기 안쪽에 위치한 마을로,

마을 앞까지 낙동강물이 드나들고 늪이 있어 오리·거위 등 조류가 많이 날아와

살았던 곳인데, 이 때문에 ‘알처럼 둥근 골짜기’라는 의미에서 ‘알개실’ 또는

‘안개실’로 불렸으며, 한자로는 ‘아(鵝, 거위 아)’ 자를 써서 ‘아곡(鵝谷)’으로도 표기한다. 

안부(13:03)

안부를 지나면서 마루금은 직진의 급경사로 이어지나 이 길은

등로도 전혀 보이질 않는다...우측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바라보니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보인다...사연이 있겠지

나 역시 그 길로 향한다

우측의 등로로 따라서 올라간 다음에...

다시 좌측으로 꺽어져 마루금에 복귀한다

등로의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본 남지읍 신전리 신전(新田)마을의 모습

‘신전(新田)’ 은 ‘새터각단’ 또는 ‘새밭’이라는 뜻으로, 기존 마을이 협소해 황무지였던

도륜대를 개간해 새로 조성한 마을이라는 의미이다...이 마을은 원래 도륜대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개간 후 얻은 새밭이라는 뜻에서 신전리로 불리웠고, 1670년대

밀양 조음리에서 이주한 수원김씨 집안이 비옥한 땅을 개간해 정착한 곳으로

이 마을은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농촌 마을로, 주민 대부분이 벼농사를 경작하며

공동체 의식이 강한 마을이라고 한다. 

무명봉(13:10)

도초산으로 향하는 워밍업을 시작한다

억새가 무성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도초산 정상을

지키고 있는 산불감시초소가 범여를 격하게 환영한다

도초산(道草山:166.0m:13:15~20)

창녕군 남지읍 신전리와 학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면, 산불감시초소가 정상을 지킨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주변의 꼬맹이 산들을 아우르며 마치

群鷄一鶴처럼 주변의 모든 산들이 다 보이니 그야말로 一望無際의

산이다.

 

이명(異名)으로 도치산이라고도 하는데, 도치는 '도끼'의 창녕지역 방언으로

구전에 의하면 옛날 천지가 개벽하여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영산의 함박산

함배기(함지박)만큼, 도초산은 도치만큼 남아 도치산이라 하였던 데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지리지에 지명을 수록하고 있는데, "현의 서쪽 22리에 있으며, 창녕 화왕산에서 이어진다."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지도에서 읍치 서쪽으로 도초산을 기재하고 있으며, 여통산봉대와

소산봉대가 이를 끼고 서로 마주하고 있다고 한다

정상에 올라서니 오전의 잔뜩 찌푸린 날씨와는 달리 오후는

차가운 바람이 불기는 하지만, 날씨는 정말 쾌청하다.

내가 정상에 올라오는 걸 봤는지 초소안에서 감시요원이

문도 안 열면서, 마치 검사가 피의자 심문하듯 질문을 하는데

하도 가관이라 싹 무시하고 대꾸조차 안하는데도, 어디서 왔는냐

어디 사느냐고 꼬치꼬치 캐묻는다.

 

범여 曰: 이보시요 따뜻한 커피라도 한잔 주고서 질문이나

하시요 하니까 이곳에는 따뜻한 커피가 없다고 하기에

내가 대답을 한다...어디서 왔느냐고 하기에 '길에서 왔다' ...

어디 사느냐고 하는 대답에 '집에 산다' 고 하니까...어이가

없는지 말문을 닫아 버린다...나 역시 대꾸할 가치도 없기에

말도 안하고 주변의 조망을 카메라 렌즈에 담는다

산불감시초소 북쪽의 신전마을 너머로는 조금전에 지나온

소의 무릎 형상처럼 보인다는 우슬봉이 아쉬운 마음으로

범여를 쳐다본다

서남쪽으로는 낙남정맥 능선에 한가닥하는 반역의 산으로

낙인찍힌 함안의 여항산과 갓데미산으로 알려진 서북산도 아련히 보인다

동북쪽 맨 윗쪽으로는 비슬산, 우측으로는 창녕의 진산이라는

화왕산 능선과 계성(신산경표상:화왕)지맥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장관을 연출한다

겨울산에서 / 이해인

 

 

죽어서야
다시 사는 법을
여기 와서 배웁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모든 이와 헤어졌지만


모든 이를 다 새롭게 만난다고
하얗게 눈이 쌓인 겨울 산길에서
산새가 되어 불러보는
당신의 이름


눈 속에 노을 속에
사라지면서
다시 시작되는
나의 사랑이여

억새 너머로는 잠시후에 지나갈 방추산이 수줍은 듯 

억새 뒷쪽으로 숨어버렸고, 계성천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송진나루터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남지읍 너머로 좌측부터 마금산과 무룡산, 작대산들이 보이고

신산경표를 기준으로 합수점을 택하는 산꾼들이 산행을 마감하는

남지대교도 가깝게 보이는구나

도초산에서 바라본 남지읍(南池邑)의 모습

경남 창녕군 남서부에 위치한 읍으로계성천과 고곡천이 낙동강에 유입하면서

충적평야가 발달한 지억으로 남쪽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

북쪽으로 유어면, 동쪽은 도천면과 접하며 1914년 창녕군 남곡면에 영산군 도사면을

통합하였으며, 1936년 남지면이라 개칭하였다가, 1963년 남지읍으로 승격하였다.

 

『해동지도』에 두 지명 모두 수록하고 있으며, 지도에서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사면만 기록하고 있는데, 남곡면은 창녕계라고 기재하고 있는 곳이다.

도사면에는 기강진과 우질포진의 2개의 나루가 있는데, 교통의 중심부로 사통팔달의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영남의 젖줄 낙동강(洛東江)이 낙동강이라 불리게 된 것이 "동쪽으로 흐르는 강" 이라

한데서 연유되었다면 북에서부터 흘러오던 강이 동으로 그 흐름을 트는 곳이 바로 남지읍이다.

 

또 지리산에서 흘러오는 남강과 어우러져 강폭과 수심이 더욱 깊고 넓어지는 곳도 여기로

풍요하고 순후한 풍토를 지닌 창녕군의 남부 지역으로 높거나 가파른 산이 없고 유유히

흐르는 강은 넓고 기름진 들을 살찌우니 일찍이 기술 영농이 발달한 곳이 남지읍이다.

 

특히 예부터 낙동강 수로를 통한 강 상·하류의 각종 산물의 유통으로 남지리의 웃개나루

(上浦津 : 雩浦津, 亐叱浦)를 비롯한 용산리의 거룬강나루 (伽倻津 : 岐音江), 학계리의

도흥진(道興津), 월하리의 박진나루(朴只谷津) 등 이름난 나루터가 많은 곳이었다.

남쪽의 낙동강 너머로는 5년전에 걸었던 광려(신산경표상:화개)지맥

능선에 있는 용화산과 좌측으로 보이는 산이 서재산인 듯 하다

지맥상 트랙은 산불감시초소 동쪽으로 내려가야 하나

억새밭 아래로 내려가니 간벌을 하고 마구 버려진

폐목으로 인해 치고 나갈 구멍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남쪽으로 이어지는 등로로 내려섰다가

좌측의 사면길로 맥길상의 트랙으로 향한다

아카시아 나무의 강력한 저항에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마루금에 복귀한다

무명봉(13:40)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살짝 우측으로 향하는데 고도차가 없는

맥길이 계속 이어지고, 바람이 조금 잦아드는 느낌이라

편하게 길을 걷는다

안부(13:42)

안부에서 올라서니 창원황공 부부묘지가 있는 남지공동산에 오른다

남지공동산(共同山:65m:13:48)

창녕군 남지읍 마산리와 학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남지공동묘지를 말하는데 예전에 남포동 남쪽에 남지리의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개간되면서 이곳 산을 구입하여 남지리의

공동묘지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산으로 트랙상으로는 숫자조차

표시되지 않은 무명봉이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남지공동묘지가

자리한 산이라 해서 남지공동산이라 부른다

창원황공 부부묘지가 자리잡고 있는 남지공동산에서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는데 이곳부터는

등로에 묘지들이 빽빽한데 지도를 보니 남지공동묘지란다

묘지사이를 곡예하듯 내려가니 시멘트 임도가 나온다

도로로 내려서서 우측으로 마을과 저수지가 보이는데

남지읍 학계리 덕동마을이고, 저수지의 지명은 鶴桂池이다.

떡고개(德峴:13:53)

경남 창녕군 남지읍 학계리 덕동마을에서 남지읍 신전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맥꾼 사이에는 덕동고개로 알려진 고개이나

이 지역 주민들은 떡고개라 부르고 있다.

 

이 고개 옆에 남지공동묘지가 있는 관계로 사람이 죽어 갖다

내버리면서 덧(섶의 이곳말)만 덮어 두었다고 하여 덧고개라

하였다는 말이 있으며, 또 배가 고픈 사람에게 떡을 주었다 하여

떡고개라 불리었다고 하기도 하나 큰골이 덕곡(德谷)으로 기사되었으니

언덕의 「덕」(德)이 떡으로 된발음되었다고 본다.

 

고개가 동서로 두개가 있어 서편고개를 웃 떡고개라 하고 동편 공동묘지

옆을 지나는 고개를 아래 떡고개라 부르는데 이곳이 최근 넓게 확장되었으며

신전리 아이들의 통학로이기도 하였다.

휴식(13:54~14:00)

떡고개를 지나 오름길에 있는 묘지옆에서 바람을 피해

베낭을 내려놓고 초콜렛과 앙꼬빵 하나, 오렌지 쥬스로

허기진 배도 채우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능선으로 올라간다

떡고개를 지나도 공동묘지인 듯 묘지들이 많이 보인다.

빡센 오르막을 치고올라 뚜렸한 등로가 보이는 능선에

올라선다

능선에 올라서니 낙동강변 지역이라 그런지 다시 바람이 

드세지만, 오후가 되면서 날씨도 쾌청하고 기온이 많이

올라갔는지 그리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파평윤공 묘(14:10)

파평윤공 묘지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향한다

당포리(唐浦里 )갈림길(14:14)

창녕군 남지읍에 속한 당포리는 마산리의 북부로 방추산을 의지하고 동남향으로

자리잡은 마을인데 마을앞의 들이 넓으나 저습지와 굼논이 많이 있다... 땅이 굼턱지고

(땅이 움푹 깊이 파인 곳은 이곳말로 굼티기, 굼턱지다 라도 함) 뻘이 많은 곳이므로

땅굼이라 한 것이 땅꿈, 땅꼼으로 변하였다... 동쪽 영산구역에도 저습지와 땅이 질고

굼턱져서 땅꿈이라 불리는 곳이 있으니 이곳은 남지 땅꿈이라 하고 저쪽은 영산면의

땅이라하여 영산 땅꿈이라 하는데「唐浦」는 땅꿈의 음훈차이다.

 

그런데 ‘당(唐)’에 얽매여 마을 앞에 당(堂)이 있었다던가, 당나라 이여송이 지나갔다던가

하는 설이 있는데 모두 와전일 뿐이다... 마을 앞 수무눞에 물이 많아 동갯들에 농사지으러

나갈 때는 동네 사람들이 쪽배를 타고 다녔다 한다.

당포리 갈림길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향한다

합수점으로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점점 세게 불어온다.

그러나 오늘은 지맥길 하나를 접수한다는 부푼 마음에

느릿느릿 힘든 발걸음을 옮긴다

무명봉(14:16)

안부(14:18)

완만한 오르막길이지만  낙엽으로 인해서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힘들게 능선에 올라서니 바람은 바람은 더세지고.

체육시설과 넓은 공터가 있는 방추산 정상이다 

방추산(唐谷山:124.1m:14:24)

창녕군 남지읍 학계리와 마산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오룩스맵 지도에는

그냥 124.1m로 기록되어 있는 산으로 나뭇가지 사이로 남지들녘이

한 눈에 보인다

 

당포 서쪽에 있는 산으로 도초산의 동쪽 줄기이다...땅골산(唐谷山)이라고도

하는데 땅골은 땅꼼의 변화인데 땅꿈산이 땅골산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강한 바람의 등쌀(?)에 못이겨 서둘러 방추산 아래로 내려간다

호화묘지가 나오고  남지읍를 바라보면서 내려간다

갈림길(14:26)

도초산을 지나면서부터 마치 묘지투어를 하는

기분으로 망자와의 조우를 즐기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묘지투어(?)를 끝내고... 

급경사로 내려가는 길에 반가운 홍길동 아우의 흔적을

만나는데 무척이나 반갑구나...10년도 훨씬 넘은 시절에

금남정맥 계룡산 천단에서 봤으니...잘살고 있겠지...

미끄러운 낙엽길을 조심스레 내려서니 편안한 등로가 시작된다

안부(14:34)

안부로 올라서니 참 하늘 한번 곱다

억새꽃 연가 / 정심 김덕성

 

늦가을 바람 부는 날

서로 바람막이 되어주고

넉넉한 미소로 해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준다

 

가느린 몸매가 애처로워 보이고

부드럽고 솜 같은 윤기가 흐른다

 

굳건하게 억세게 살면서

비바람에 흔들려도 사랑은 한결같아

정의로 타협하며 자신의 의지로

소신 것 살아 온 억새

 

아름다운 길 걸어오며

슬기롭게 살며 사랑을 보여주면서

무리지어 바람에 맞추어 함께

허리가 휘어지도록 사랑의 춤추며

백발이 성성하여도

사랑할 줄 아는 억새

아랫골(下大浦)갈림길(14:38)

좌측은 창녕군 남지읍 마산리 아래골로  향하는 길이 보이고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마산정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아래골이라 불리며, 지도상에 나온 지명으로는 구포를 가리키며

당포 마을 남쪽 뜸으로 마을의 아래쪽에 해당하므로 아래골이라 한다

무명봉(14:42)

맥길은 고도를 확 낮추고 계속되는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기민개 만댕(65m:14:45)

남지읍 마산리 당포와 삼거리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이때「개」는 고개의 축약(縮約)이며, 만댕이는

산봉우리의 경상도 방언이다

기민개만댕에서 당포마을로 이어지는 직진능선을

버리고 우측의 내리막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묘지(14:46)

안부(14:48)

계성지맥길의 마지막 봉우리로 올라간다

마지막 봉우리로 오르면서 바라본 홍포마을의 모습

홍포(鴻浦)마을은 마산정 앞의 마을로 들 가운데에 형성된 들 마을로

예전에는 기러기가 많이 날아오던 갯벌이었으므로 홍포라 불리었다 하며,

1929년대에 홍포라는 동명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후에 기러기 날아가는

모양과 같이 마을의 형태가 조우동형(鳥羽同形)이어서인지 지금까지

쌍둥이가 7쌍이나 태어났다고 한다.

 

홍포의 「鴻」은 큰 기러기의 뜻이 있으나 그 훈이 크고(洪大), 넓은 것도 되니

아마 홍포를 「큰개 - 大浦, 넓개 - 넙개 - 廣浦」라 불리었으리라 생각된다.

이 일대의 들이 넓을 뿐만 아니라 낙동강의 지류가 용산에서 이 일과 마산정

앞으로도 흘렀으므로 넓은 개(浦)와 들을 이루고 있었으므로 ‘넙개’로 불릴 수 있

었을 것으로 보이며, 광산 김씨가 처음 살았다 하며, 그 후 안동 권씨가 왔다고 한다.

무명봉(14:50)

무명봉을 찍고...

 내리막길로 향한다.

내려온 길을 뒤돌아 본다

갈림길(14:52)

이제 지맥길의 산줄기는 완전히 끝났고 들길로 맥길을 이어가야하는

갈림길에 도착한다...우측으로는 신산경표상의 화왕지맥이 합수점으로

여기는 남지대교로 향하는 길이고, 직진으로는 수계를 기준으로

산줄기를 걷는 계성지맥길의 합수점인 송진나루로 향하는 길이다

 

남지대교로 향하는 화왕지맥 합수점으로 향하던, 송진나루로 향하는

계성지맥길로 향하던 간에, 그건 각자의 몫이고, 이건 맞고, 저건

그르다는 정답은 없다...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될 듯 싶다

우측으로 보이는 봉우리 아래가 오룩스맵상의 화왕지맥

끄트머리로 표기를 해놨는데, 그렇다면 이곳도 예전에

강이었는데 강을 매립하여 들로 만들었다는 얘기인가?...

좌측으로는 창녕의 진산이라는 화왕산 산줄기 보이고 바로 앞에는

지난 늦은봄에 산행을 하다가 멈춰버린 청도(신산경표상:열왕)지맥의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계성천으로 흘러가는 배수펌프장이 보이고 이름모를

새떼들이 내가 지나는 걸 보고 飛翔하며 날아간다

혼자놀기

박진로(15:02)

아침에 가림고개의 들머리로 가는 길에 지나갔던 박진로(1021번)

지방도를 가로 지른다...이곳으로 가서 박진나루 넘어가면 내고향인데...

박진로를 가로질러 공사중인 제방으로 올라선다

남지제방이라 불리는 제방둑을 따라서 합수점까지

계성천과 평행선을 이루면서 남쪽으로 향한다

남지읍과 도촌면을 나누면서 흘러가는 계성천의 모습

계성천(桂城川)은 창녕군 남지읍 남지리의 동쪽을 흐르는 큰 내(川)로

창녕읍 옥천리에서 시작하여 계성면과 장마면을 지나 영산면과 남지읍과

경계를 이루며 흘러 도천면 송진리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들었는데 동갯들의

동편을 싸돌아 흐르므로 해마다 침수를 시키는 요인이 되었으나, 제방을

축조한 이후 수침(水浸)이 없어졌는데 예전에는 계성천 본류는 월령앞 - 송진리

북쪽이었으며 지금의 수로는 용산리에서 시작하여 동으로 흘러내린 낙동강의

또 다른 샛강이라 한다

제방을 걸으면서 바라본 남지리(南旨里)의 모습

낙동강의 동안(東岸)을 끼고 있는 남지리는 산이 없는 지대로 돌을 전연 볼 수 없는

특징이 있는 강촌(江村)으로 어디를 봐도 모래뿐인 지대가 남지리인 것이다.

남지리라는 지명은 영산현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남마’라 불리었던 강마을

(江村)의 기사(記寫)인데 이 마을에 있는 웃개나루(上浦津)가 오래 전부터

유명하여 ‘남마’보다는 ‘웃개’로 더 알려져 있었다.

 

‘남지리’라는 지명이 처음 보이는 곳은 『호구총수』란 책에서이다.

『호구총수』는 조선 정조 때(1789)의 기록으로 각 방·면의 이름과 인구와 호수를

기록한 책으로 그때 「南旨里」로 기록되어 있음을 보아 사용된 오래 된 지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정초기 일본 관리들에 의해 작명된 것으로 알고 있는

이가 많았다.

 

「南旨」는 ‘남마’의 기사로 남마의 뜻은 ‘남쪽 마을’이란 뜻으로 새마을이 새말 - 새마

등으로, 윗마을이 웃말 - 웃마로 변하듯 남마을이 남말 - 남마로 변한 것이다. 남지의

「旨」자는 오래전부터 마을, 말을 나타내는 차자(借字)로 쓰여 왔다. 또 「旨」는

「池. 知. 遲」등과 함께 고원(高原)의 뜻 「티」(峙)의 차자로도 쓰였으며, 터(址)의

뜻으로도 사용되어 왔다.

 

군내에서 「旨」를 쓰는 마을이 여럿 있으니 장마면의 산지(山旨), 대합면의 평지(坪旨),

모지(茅芝), 등지(燈旨) 등이 있으며, 남지의 대명사로 사용되는 ‘웃개나루’는

『동국여지승람』「영산현」에는 칠원현(漆原縣)의 우질포(亐叱浦)로 기록되어 있다.

둑방길을 따라서 계속 내려가니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는 남지교가 범여의 앞길을 막는다

남지교(15:15)

남지교 다리 아래로 낮은 포복하듯 지나간다

벽진판넬(15:16)

제방공사를 하는지 마구 파헤쳐있지만 걷는데는 불편이 없다

기영레미콘(15:22)

동포배수문(15:25)

계속해서 이어지는 제방둑길...지루하다

동갯들(東浦 )은 『동국여지승람』 산천 편에 나오는 옛지명으로

동보포(同步浦 在縣西二十里)라 하였으며, 동보포(同步浦)의 ‘同’의 훈은

‘한가지’ ‘步’는 그 훈이 ‘걸을’ 외에 ‘나루터, 물가’이므로 낙동강과 계성천의

합류지점이 ‘한개’이니 이를 음훈차 기사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동갯들, 동포(東浦)라 불러 남지리 동쪽편에 있는 개, 들이란 뜻으로

동갯들이라 한 것으로 늪지와 밭이 많았던 들이었으나 해방 후 개간 경지정리

등으로 논이 되었으며 들판 가운데로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남지 진입로가 생겼다.

창녕군 도천면과 남지읍을 이어주는 남송교가 시야에 들어온다

남송1교( (南松1橋15:32)

창녕군 남지읍 남지리와 도천면 송진리을 잇는 교량으로 계성천 위를

통과하는데  남지 사람들이 영남 수리들에 가려면 꼭 건너야 하는 다리이다

옛날 남지 쪽에 주막집이 있었으며, 6.25 때 다리 가운데 포탄을 맞아 큰 구멍이

나기도 하였다고 한다

남송교(15:34)

남송1교를 지나자마자 남송교를 만난다.

1022번 지방도(도로명 주소:낙동로)가 지나가며 1989년

마구선(馬邱線) 확포장 때 새로 만들었다는 다리이다.

남송교 사이에 있는 수준점

수준점을 지나 제방 아래로 내려선다

수준점에서 바라본 남지하수종말처리장의 모습

남송교 아래로 내려간다

낙동강파크골프장(15:36)

나도 파크골프에 입문해볼까...

억새군락지로 이어지는 합수점...아직까지 끝이 보이질 않는구나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합수점으로 가야 하는데

10m정도 들어가보니 도저히 갈 방법이 없어 되돌아 나온다

조금을 더 가니 계성천 끄트머리의 합수점이 살짝

보이지만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입맛만 다시고

송진 쇠나루 방향으로 향한다

계성천을 건너면서 바라본 송진쇠나루의 모습

다리(16:00)

계성천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서 행여 합수점으로 가는

길이 있을까 싶어서 희미한 길이 보이는 억새밭으로 내려간다 

억새밭을 지나 계성천변에 도착하니 낚시꾼이 텐트를 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조심스레 지나간다

남쪽으로 내려가니 계성천으로 들어오는 조그만 개천이 길을 막는다

하는수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간다

씨잘데없는 짓거리만 하고 20분 이상의 시간을

허비한 체, 되돌아와서 송진쇠나루로 향한다

 

송진쇠나루(16:25)

내가 가야할 송진나루를  4대강 사업으로 송진 나루와 송진나루가 있던

강변마을이 사라지고 그곳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공원 인근의 언덕에는 당산나무 네 그루가 길가가 동쪽과 서쪽에 서 있다. 마을을 수호하던

수호목인 이들 당산나무만이 옛 나루터의 추억을 보여주며, 쇠나루공원 주변에는 메타세콰이어나무를

도로 변에 심어두어, 봄철이 되면 공원 진입로가 푸르게 변한다.

당산나무 주변에는 휴식공간으로 정자가 있고, 그네가 있어 당산나무 위용을 직접 느끼기 위해 찾은

관광객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송진(松津)1구마을(16:30)

창녕군 도천면 송진리의 지명유래는 ‘송진(松津)’이 소나무(松)와 물(津)을 뜻하며,

쇠나리가 한자로 ‘송진(솔나루, 松津)’로 쓰인 것이며, 송진리에는 조선시대 때

세곡을 모아 놓던 조창이 있었다... 그래서 세곡을 싣는 나루이며 배를 매어 두었던

나무가 소나무 말뚝이어서 ‘솔나무-쇠나루-쇠나리’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는 영산을 지키는 관문으로 관군이나 의병들이 진을 쳤던 곳으로

나루보다는 군사기지의 역할을 했으며, 또한 이곳은 도천면에서 국가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관음사(觀音寺)에는 도지정문화유산자료 제22호 관음사 석등

(觀音寺 石燈)을 비롯하여 관음사 미륵존불상(觀音寺彌勒尊佛像), 창녕 관음사

아미타불회도(昌寧 觀音寺 阿彌陀佛會圖), 도천삼층석탑(都泉三層石塔)을 보유하고

있으며 행정리로는 송진 1구, 송진 2구, 송진 3구 3개로 나뉜다.

트랙상으론 조금전 다리를 건너기 전에 억새밭으로 

가야만이 송진나루로 가는 정상적인 루트이나 갈 방법이

없어서 그냥 마산으로 향하는 1022번 도로를 따라 가는데

배가 엄청 고파온다...마침 식당이 보이기에 합수점이고 뭐고

살고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앞에 보이는 식당으로 가니 휴무중이다

바로옆의 식당으로 가니 영업중이란다

식사(16:40~17:05)

이곳에서 해장국 한그릇을 게눈 감추듯 뚝딱 해치우고나니

이제 정신이 좀 돌아온다...이곳에서 다시 송진나루로 가려는데

배가 부르니 긴장이 풀리는지 다리에 힘이 빠진다.

 

하는 수 없이 택시로 합수점으로 향하기로 하고 식당 쥔장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니 어디 가냐고 묻길래 송진나루로 가자고 하니 처음에는

이해를 못한다...이 지역 사람들은 바로앞에 보이는 송진쇠나루만 아는 모양이다

 

그러면 자기 아들에게 기름값만 주고 태워주라고 하는데 나야 

thank you지...식당 아들을 기사로 채용(?)하고 합수점으로 향한다

송진나루(17:20)

드디어 낙동강과 계성천이 만나는 합수점에 도착하니 감회가 새롭다.

내일이 1년중에 밤이 가장 길다는 冬至라서 그런지, 저녁 5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해는 저물고 낙동강을 비추는 落照가 환상 그 자체다.

남들보다 힘들게 산행을 하는 맥꾼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자체가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창녕군은 조선시대의 영산현으로, 이곳에는 유명한 나루가 있었는데, 송진나루,

시나리, 쇠나리, 솔나루 등으로 불렸던 나루로, 창녕군 도천면 송진리와 강 건너

함안군(옛 칠원현) 칠서면 이룡리를 잇는 나루였다... 쇠나루, 솔나루, 금진이라

불렸는데, 배를 매어두는 소나무 말뚝이 많았기에 솔나루라 불렸으며, 쇠는 금(金)을

뜻하기도 하므로, 금진(金津)이라 불렸다고 한다.

 

조선후기의 마을지명을 확인할 수 있는 『호구총수』에는 송진리라는 지명이

없으며, 일동리, 이동리, 삼동리만이 확인되는데, 아마 삼동리가 현재의 송진리로 볼 수 있다.

영남사람들의 젖줄이며, 많은 哀歡을 간직하고 있는 낙동강은 말이 없구나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林下筆記)에는 낙동강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낙동강(洛東江)은 그 근원이 안동의 태백산(太白山) 황지(黃池)에서 발원하여,

산을 뚫고 흐르기 때문에 그 이름을 천천(穿川)이라고도 한다.

천연대(天淵臺)를 경유하여 탁영담(濯纓潭)이 되고 다시 가야천(伽倻川)을

지나 박진(朴津)이 되어 진강(晉江)과 만나고, 그런 다음 호포(狐浦)를 지나

월당진(月堂津)이되어 다시 흩어져서 삼차하(三叉河)가 된다.

 

금호강(琴湖江)은 그 근원이 청송의 보현산에서 나와서 하빈(河濱)의 고현(古縣)을

경유하여 서쪽에서 낙동강과 서로 만나며, 황둔강(黃芚江)은 그 근원이 무주의 덕유산

불영봉에서 나와서, 합천에 이르러 징심천(澄心川)을 지나서 진천(鎭川)으로 들어갔다가

현창(玄倉)에 이르러 낙동강과 만난다...그리하여 태백산과 소백산, 조령과 죽령의 이남과

속리산, 황악산, 대덕산, 덕유산, 장안산, 지리산 이동과 고초산(高草山), 백암산, 취서산,

구룡산, 원적산(圓寂山) 이서의 모든 산의 물이 이 강으로 흘러든다라고...

 

* 『임하필기』는 조선후기 문신 이유원이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의(隨意)·

  수록(隨錄)한 것을 모아 엮은 종합서로 39권 33책의 필사본이다... 1871년

  천마산에서 탈고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관직에 있으면서 작성한 자료를 책으로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며, 경사자집(經史子集)과 전(典)·모(謨)·소학(小學)·금석(金石)·

  전고(典故)·풍속·역사·지리·산물·기용(器用)·서화·전적·시문·유문(遺聞) 등 광범한 분야에

  대해 수록한 잡저(雜著:한문으로  여러 가지 저술(), (), (), (), (),

  (), (등이 있다)이다... 「문헌지장편」에서는 단군조선에서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의 흥망성쇠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경상남도 창녕군 도천면 송진리에는 조선시대 영산현(靈山縣, 옛 창녕군)의 나루인

송진(松津)나루...옛날 세곡(稅穀)을 모아두는 강창(江倉)이 있던 나루로, 배를 매기

위해 솔나무 말뚝이 많다고 하여 쇠나루라 불렸다고 한다.

 

이 나루는 1871년에 편찬한 『영산현읍지』에서 확인되는데, “송진은 현 남쪽 15리

칠원현 경계 지점에 위치한다... 조창을 창설하고, 전에 이곳에서 부세를 봉진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창은 송진리의 창마마을에 있었다. 조선 후기에 송진에

강창(江倉)을 만들고, 영산현의 세곡을 모아두었다가 서울이나 마산창, 삼랑창으로

수송했으며, 이와 관련해 “아버지는 현감, 아들은 목사”라는 이야기가 전하며, 강창

건립에 도움을 준 영산현의 현감 조운한의 공적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건립되어 있다.

인증샷

송진나루에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대기하고

있는 차를타고 남지터미널에 도착한다(17:35)

남지터미널에 도착하니 1시간 15분이란 시간이란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화장실에서 여유롭게 씻고

환복을 한 다음에 커피한잔을 마시면서 1시간 이상을

멍때리기를 한다

남지터미널 버스 시간표

남지발 → 서울남부행 버스표

부산에서 오는 버스는 예상 시간보다 10분이상 늦게 도착하고

부산에서 滿車 수준으로 남지터미널에 도착하고, 곧바로 출발하여

고속도로에 진입하면서 난 꿈속으로 빠져든다...버스가 휴게소에

들어서면서 잠에서 깨어나니 추풍령 휴게소다.

 

바깥 날씨는 추풍령이라 그런지 엄청춥다...또다시 깊은 잠에

빠지고 도착하니 서울이다